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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1] | 1990년형 모델[2] |
목차
Daewoo Imperial
1 개요
1989년 2월에 출시된 대우자동차의 플래그쉽 후륜구동 세단. 그랜저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현대자동차의 역습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시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간지나는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품질 문제와 판매 부진으로 인해 1993년에 단종되었다. 이때부터 슬슬 대우자동차의 대형차 모델에는 마가 끼기 시작했다.(...) 판매대수는 고작 863대. 대우자동차의 진정한 흑역사[3]
로얄 라인업에서 최고 계급을 자리하는 승용차였으며, 대우자동차에서 최초로 직렬 6기통 3,000cc 엔진을 장착한 세단이기도 하다. 로얄을 붙이지 않은 이름 덕에 로얄 시리즈와 다른 차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후드탑 더블D 마크를 달아서 그렇지 엄연히 로얄 시리즈의 총사령관이다. 슈퍼살롱의 기반이 된 오펠 세나토르의 차체와 플랫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엔진도 세나토르의 것을 장착했다.[4]
2 제작배경
2.1 대우 가문의 고급차 황금기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royalelineup.png
왼쪽부터 로얄살롱 후기형, 로얄살롱 초기형, 레코드 로얄(새한), 로얄듀크, 임페리얼이다.(작화는 청설모 화백.[5])
1980년대는 대우자동차의 고급차 독점시대였다. 그이유는 신진 크라운[6]부터 대우의 고급차는 최고라는 인식이 높으신 분들께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제1차 오일 쇼크로 많은 타격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오일쇼크가 호재가 되었는데,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하여 1973년 연말 부터 1978년초반까지 상공부에서 6기통 승용차 생산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4기통이었던 레코드 1900은 한동안 국산 최고급차의 지위를 독점하기도 했고,[7] 특히 제 2차 오일쇼크로 인하여 1978년 연말 부터 1981년 초반 까지와 1984년의 장관 및 국무위원급 관용차 엔진을 4기통으로 제한하는 조치는 엄청난 호재로 작용하여 경쟁자들을 한동안 따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8] 1983년 회사를 대우로 개명하면서 현대자동차를 꺾고 1972년에 출시된 레코드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우려먹으며 고급차 시장을 독점하였다.정부 덕을 많이 봤다 당시 로얄 살롱과 로얄 프린스 그리고 로얄 듀크 등 고급차 라인을 생산하면서 대우 왕좌를 지켜 나갔다. 이때 대우의 고급차 라인업인 로얄 시리즈에 있어서 상세한 설명은 대우 로얄에서 볼 수 있다.
2.2 난세는 영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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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영광을 누리던 와중에 상대 진영의 적장이 1986년에 데뷔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랜저는 시리우스 2,400cc 엔진으로 진화하며 당시 2,000cc이던 로얄 시리즈를 배기량/마력면에서 가볍게 제압했고,[9] 미쓰비시와의 공동 개발(기술 제휴)로 출시한 덕에, 미쓰비시의 부품을 대거 국산화하며 생산했으므로 내구성도 비교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과거 새한자동차 시절이던 1979년에 오펠 세나토르 초기형 기반의 2,800cc급 6기통 대형 세단을 내놓으려고 했으나, 당시 장관급 관용차의 4기통 제한으로 4기통 엔진의 레코드 로얄이 엄청난 호재를 보면서 매우 오만해진 나머지 6기통 대형 세단 발매를 취소하고 한동안 정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는데, 갑툭튀한 신인에 의해 무너지는 로얄 시리즈는 그야말로 대우자동차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결국 대우에서는 이제 전부터 희망했지만 만들지 않았던 6기통 대형 세단 프로젝트를 금고에서 꺼내게 된다.
3 활약상
3.1 우여곡절 끝의 탄생
출시당시 광고. 상당히 위엄돋는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앞서 말했듯 그랜저의 역공으로 대우 측은 마지막 Plan B 카드를 꺼내게 되는데, 10년전에 백지화되었던 6기통 대형 세단 계획을 다시 부활시켜 1989년 2월에 임페리얼을 발표하고 3월에 판매를 시작했다. 임페리얼도 로얄 시리즈처럼 오펠 레코드 계열 차체를 바탕으로 했는데, 오펠 레코드 시리즈 중에서도 롱 휠베이스 버전인 오펠 세나토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10] 이전동안 대우가 로얄 시리즈로 호재를 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새로운 차체를 바탕으로 한 신기종을 들고 온 현대의 역습으로 대우는 잠시 경계했다. 당시 2.0밖에 없던 로얄 시리즈에게 2.4리터의 그랜저는 당연히 무시하지 못할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의 재역습에 대우도 만만치 않았는지라, 이번 임페리얼의 개발을 통해 경쟁에서도 방어진을 치고, 이전동안 안 해본 6기통의 노하우도 익히고 그간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확실히 임페리얼은 4기통 제한이 풀리고 처음으로 등장한 6기통 세단인지라 당시 시리우스 2.4리터가 최고인 그랜저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3.2 상대 측의 반격
그러나 적장이 164마력 V6 3.0리터 SOHC 사이클론 엔진으로 중무장을 하고, 휠까지 삐딱하게 신고[11] 그랜저 3000이란 이름으로 재기하자 대우 측에서는 잠시 주춤한다. 저 저 각돌이놈 휠 삐딱하게 신은 거 좀봐라? 작정하고 삐뚤어진 자식이 더 강하다던데.. 알다시피 대우는 신진자동차 시절이었던 1972년의 크라운 단종 이후로는 오랫동안 정말 4기통 세단밖에 만들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현대는 2.0이 넘는 4기통 고배기량 엔진은 물론이고 포드 20M이나 포드 그라나다 라는 6기통 모델을 생산한 노하우도 있어서 처음에는 대우가 불리해 보였다. 좀더 말하자면 대우는 이전동안 4기통 엔진으로 호재를 보고 있어 6기통 엔진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대우를 암묵적으로 유리하게 해 준 4기통 제한도 풀리고, 소싯적에 6기통 쪼끔 만지작거려 본 적진에선 기다렸다는 듯 6기통을 역공하니 또다시 멘붕할 만도 했다.
하지만 대우는 처음에 의외로 잘 버텼다. 성능 항목에서 후술하겠다만, 우선 기본적인 성능상으로는 임페리얼이 우위였기 때문이었다.
3.3 의외로 준수한 성능
사실 판매량이 워낙 안습인 데다가 후술할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묻혔지만, 자체적인 성능은 오히려 그랜저를 뛰어넘는 차였다.
현재는 기본으로 달려 나오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보쉬제 ABS 브레이크를 탑재하였고ABS BY BOSCH, 오펠제 직렬 6기통 3000cc CIH 모트로닉 전자제어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여 국내 최초의 3,000cc 엔진 장착 차량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12] 4단 자동변속기는 일본 토요타의 자회사인 아이신에서 만든 것을 달았다. 184마력의 출력과 최대 시속 195km/h를 자랑하여[13] 성능상으로는 그랜저에 우위를 점하였고, 일부 자동차 매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연비는 8.06km/L. 전술한 대로 현대가 164마력에 165km/h(안전속도)[14]를 발휘하는 그랜저 V6 3.0 SOHC 모델을 출시하긴 했지만서도, 성능만 두고 본다면 임페리얼의 엔진은 각그랜저 V6의 엔진에 비해서도 전혀 꿀릴 것이 없는 엔진이었다. 오히려 마력이나 속력만 보자면 각그랜저 V6 3.0 SOHC보다도 어느 정도 앞서 갔으며, 직렬 6기통 엔진인지라 메리트도 있었다.[15] 게다가 휠도 그랜져같이 삐딱로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스펙상으로는 로얄시리즈의 총사령관을 맡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3.4 최초로 시도한 캠백(랜도우 탑)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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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1988년형 캐딜락 스빌 세단 페이튼 | 1985년~1993년형 캐딜락 드빌 세단의 후면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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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1993년형 크라이슬러 뉴요커 세단.[16] | 1990년형 대우 임페리얼의 뒷부분[17] |
사진의 차량 모두 수직 C필러에 가죽을 덧댄 모습이다. |
당시 국산 고급차로는 최초로 C필러 부분을 직각으로 세우고 가죽을 덧대어 꾸민 캠백 스타일(랜도우 탑)이 또다른 개성이었다. 초기형은 랜도우 탑(가죽)이 없이 그냥 각진 C필러의 캠백이었고 이후 랜도우 탑이 달렸다. 이러한 스타일은 원래 북미의 캐딜락 드빌이나 캐딜락 스빌, 크라이슬러 뉴요커(1990년식) 등등의 차에 있던 스타일이었는데, 뒷좌석 위주의 쇼퍼 드리븐 성향을 한껏 드러내는 모습이었는지라 이전의 다른 국산 고급 세단들에 비해 좀더 간지나는 스타일을 자랑했다. 그 외에도 고급차 포지션이었만큼 세부에도 신경을 썼는데, 인테리어에선 항공기를 연상시키는 센터페시아와 천연 송아지 가죽 마감을 사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계기판도 로얄 살롱 슈퍼처럼 트립 컴퓨터가 장착된 LCD 디지털 계기판이었다.
4 꿈도 펴 보지 못하고...
하지만 개성있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유럽차 특유의 캬르릉 소리가 나는 엔진음 및 생소한 캠백/랜도우탑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운전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거기에 어렵사리 오펠에서 구해 온 세나토르용 184마력 모트로닉 직렬 6기통 3.0리터 SOHC 가솔린 엔진은 주행성능이 비단결같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잦은 오버히트가 발생하는 등 품질 문제가 빈번해 큰 불만이 쏟아졌다. 특히 여름만 되면 오버히트가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펠 본가도 이 직렬 6기통 엔진이 잦은 오버히트로 품질 문제를 일으키자 1980년대 중반부터 후속 V6 엔진을 개발해 1990년부터 교체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오펠이 오버히트를 내는 이 직렬 6기통 엔진을 대우자동차에게 흔쾌히 주었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는 거다.마리오 괴체? 냉각계 쪽에 문제가 많았고, 정비사들의 입에서도 육두문자가 나올 정도로 엔진의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출시 초기에는 부품 수급 문제로 150대 정도 생산한 후 잠시 양산이 중단됐다가 생산이 재개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주문생산을 고집해서, 월 200대 정도 주문을 받아 생산했다.
결국 유럽산 엔진과 캠백/랜도우탑 스타일의 현지화 실패, 잇따른 잔고장과 오버히트 등을 이유로 형편없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우자동차는 대형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대차게 망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망했어요로 전락해 버린 임페리얼은 총 863대만 생산된 후 1993년에 소리소문없이 단종되었다. 되레 임페리얼에 비해 훨씬 낮은 마력과 부족해 보이던 엔진 성능을 지녔던 그랜저 V6 3.0 SOHC는 오히려 임페리얼보다 내구성이 좋고 조용하여 대한민국적인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는지라 휠까지 삐딱하게 신더니, 그것도 전범기업의 엔진을 국산화해서 유럽+미국 스타일인 임페리얼과 달리 좋은 성적을 내게 되었다.(...) 결국 단점으로 인해 장점들이 가려진 셈.
이후 임페리얼은 극소수의 개체만 남은 레어템이 되었다. 2011년 보배드림에 임페리얼이 매물로 올라올 때 화제가 되어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매입하는 사람도 없는 데다가 아무도 이 차를 인수하려 엄두를 내지 못해서, 결국 보배드림 측에선 자동차 박물관에 판매하고 만다.
5 이후 대우 가문의 고급 대형차 흑역사
임페리얼이 단종되자 대우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은 잠시동안 2,000cc급인 슈퍼살롱 브로엄이 담당하게 되었고, 한때 브로엄의 3.0 모델이 팔리기도 했다.
임페리얼이 단종된 이듬해인 1994년에 아카디아가 대우의 기함 지위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일본제 차량이었던 아카디아 역시 다이너스티, 엔터프라이즈, 체어맨의 출시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신통찮은 성적을 냈고, 대우자동차는 고급차의 한을 풀기 위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1999년에 아카디아를 단종시키고 체어맨을 자사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내세웠지만,[18] 대우그룹의 부도로 다시 떨어져 나가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다.(...) 그나마 아카디아는 상대적으로 임페리얼에 비해 잘 나간 편이었지만, 문제는 그놈의 차값...
이후 한때 대우가 쌍용을 인수하며 체어맨이 한때 3분할 그릴을 달고 팔린 적이 있었지만, 대우가 쌍용을 다시 내뱉으며 스테이츠맨이 나오기 전까지 대형차 라인업이 비어 있었다. 이로 인해 최상위 라인업은 한때 매그너스가 맡았다.
GM대우로 바뀐 후 홀덴의 후륜구동 대형 세단 라인업을 호주에서 수입하여 들여오면서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로 데뷔시켰으나, 대한민국 실정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부진을 면하지 못해 수입이 중지됐다. 2010년 9월 베리타스의 수입 중지 이후 뷰익 라크로스를 조립 생산해 동년 10월 알페온으로 데뷔시켰으나, 그랜저, K7, SM7같은 경쟁자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평가만 받고[19] 2016년 3월에 단종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임페리얼의 데뷔 때부터 제대로 마가 낀 대우자동차의 대형차 모델 흑역사는 아카디아, 쉬라츠, GM대우의 스테이츠맨, 베리타스까지 이어지게 된다.[20] 결국 한 단계 아래의 준대형급인 알페온을 플래그쉽 모델로 출시해서 사실상 대우 계열의 대형급 모델은 영원히 흑역사로 남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알페온마저 흑역사가 된 후 임팔라의 도입을 결정하고, 미국에서 수입하여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처럼 OEM 수입차로 판매하고 있으며 임팔라 역시 준대형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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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한국GM, 자일대우버스, 타타대우상용차의 차량 | |||
구분 | 승용, SUV, RV, 승합, 경상용차 | 버스 | 트럭 |
1970년대 | 제미니, 로얄 시리즈 | BD시리즈, BU시리즈, BF시리즈, BR101 | 엘프, 대형트럭 |
1980년대 | 맵시, 맵시나, 르망, 임페리얼, 바네트(승합모델) | BV시리즈, BS시리즈, 로얄버스, BH시리즈 | 바네트(트럭모델) |
1990년대 | 티코, 마티즈, 라노스, 에스페로, 프린스, 씨에로, 누비라, 레간자, 매그너스, 브로엄/슈퍼살롱, 아카디아, | BM090 | 차세대트럭 |
2000년대 | 칼로스, 젠트라, 라세티, 토스카, 스테이츠맨, 베리타스, G2X, 윈스톰, 레조 | BC211, FX시리즈, BX212 | 노부스, 프리마 |
2010년대 | 스파크, 아베오, 크루즈, 말리부, 알페온, 트랙스, 캡티바, 올란도 | 레스타 | |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 ↑ 캐딜락 드빌이나 캐딜락 스빌, 1988~1993년형 크라이슬러 뉴요커를 연상시키게 하는 직각 C필러가 특징이다. 출처
- ↑ 직각 C필러 부분에 가죽으로 덧대서 고급스러움을 살린 버전. 대우 측 말로는 이걸 캠벡 스타일이라고 TV 광고에서 말했고, 신문 광고에서는 랜도우 탑(Landow top)이라고 언급했다. 출처 가죽으로 덧댄 것이 랜도우 탑이며, 초기형처럼 직각으로 C필러를 꺾어 놓은게 캠벡이다.
- ↑ 그래도 바네트나 엘프보다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임페리얼은 그나마 기억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바네트와 엘프는 각각 포터(그레이스), 봉고(베스타)와 마이티, 타이탄, 트레이드에게 참패한것도 모자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걸 느껴보고 싶다면, 구글에 대우 임페리얼과 대우 엘프2를 검색한 뒤 나오는 사진 수를 비교해 보자.(...)
- ↑ 이 덕에 몇몇 부품은 로얄살롱이나 슈퍼살롱과 호환된다고 한다.
- ↑ 청설모 선생이 연재했던 자동차 카툰의 "로얄살롱"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다.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자. Part1 Part2 Part3 Part4
- ↑ 신진자동차 시절 토요타와 제휴할때 조립한 토요타 크라운이 신진 크라운이다. 물론 저우언라이 때문에 토요타의 예고없는 제휴 철회로 인해 크라운의 생산도 중단되자, 이후 오펠 레코드를 들여오며 GM과 협력하게 되고 이후 대우 시절까지 GM과 협력하게 된다.
- ↑ 이것 때문에 현대 그라나다의 출시가 4년이나 지연되었다.
- ↑ 덕분에 1979년에 계획되었던 6기통 2,800cc 기함 모델 출시는 없던 일이 되었다.
- ↑ 처음 등장한 버전은 시리우스 2,000cc 버전이었으나, 이 역시 대우 로얄 시리즈에겐 적잖은 위협이었다.
- ↑ 오펠 세나토르는 로얄 시리즈 중 수퍼살롱의 기반이 된 차체이기도 하다. 게다가 임페리얼은 제작시 수퍼살롱과 몇 부품은 호환될 정도라고 한다.
- ↑ 사진 이상하게도 그랜저는 3,000CC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중후함에 어울리지 않게, 로고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새겨진 삐딱로고 휠을 신고 있다. 다행히 저 삐딱로고 휠은 나중에 H로고로 바뀌면서 정렬로고 휠이 된다. 이 시기에는 세계구급으로 대유행이었는지 로고가 삐딱하게 새겨진 휠이 달린 차들이 적지 않았다. 당장 현대 쏘나타의 Y2모델만 봐도 그렇고 닛산의 고급형 모델인 닛산 세드릭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우 로얄 프린스의 후기형 모델 휠캡이나 대우 프린스 전기형 모델 알루미늄휠과 후기형 모델 휠캡의 경우 역시 삐딱로고였다.
- ↑ 1989년 임페리얼이 출시되기 전까지 그랜저는 2.0리터 시리우스 엔진, 2.4리터 시리우스 엔진만 있었다. 2.0에는 수동 5단/자동 4단, 2.4에는 자동 4단. 다만 임페리얼이 나오고 바로 그랜저 V6 3.0리터 SOHC 엔진 버전이 1989년 9월에 나왔다.
- ↑ 이 제원은 본가의 원래 모델인 세나토르의 엔진이 낼 수 있는 185km/h에 157마력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이다.
- ↑ 2세대 그랜저에 달린 V6 3.0 DOHC 사이클론 엔진의 최고속도는
의외로 낮은189km/h였다.(V6 2.5는 195km/h, V6 3.5는 210km/h) - ↑ 1990년대 당시 직렬 6기통 엔진은 유럽 대형 고급 세단들에 주로 쓰였다.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나 재규어 XJ 등의 고급세단들 라인업의 중간 클래스인 2500~3500cc대 엔진들도 직렬 6기통이었으며, 볼보 960이나 오펠 세나토르 B같이 준대형 고급 세단들 중에서도 직렬 6기통을 달아 차별화를 꾀한 차들도 상당했었다. 특히 BMW의 직렬 6기통 엔진은 비단결같은 주행성능을 지닌다 하여 실키식스(silky six)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었을 정도. 물론 나중에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BMW와 볼보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다른 대형세단들은 V형 6기통으로 교체되지만(...) 사족으로 현재까지 직렬 6기통을 단 대한민국 고급 세단은 벤츠의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쌍용 체어맨W I6 3.2/3.6 DOHC가 유일하다.
- ↑ 사진참조
- ↑ 광고 사진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참조.(매일경제신문 1990.02.19)
- ↑ 이 과정에서 흑역사가 된 프로젝트가 대우 쉬라츠다.
- ↑ 첫 등장시에도 넓찍하고 안락한 차체에 비해 엔진 힘이 턱없이 딸려서 "할배온"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
이게 다 보령 미션 때문이다 - ↑ 참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스테이츠맨에 깔린 후륜구동 플랫폼이 V-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이게 그 전설의 장수만세 오펠 레코드 플랫폼, 즉 임페리얼을 포함한 로얄 시리즈와 프린스, 브로엄에 깔린 플랫폼이다. 이 후륜구동 플랫폼에서 나온 끝물 모델이 스테이츠맨이라는 것이다. 베리타스에 깔린 것은 제타 플랫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