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옥새

傳國玉璽

중국 역사상 국가를 이어 전승되어온 옥새. 전국새(傳國璽)라고도 한다. 중국사 최강의 레어 아이템?
삼국지연의절대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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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옥새의 명문 상상도.그런데 우측쓰기가 아니라 좌측쓰기로 쓰였다...... 그거야 도장찍으면 제대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반대로 새겨야 해서 명문 자체는 저게 맞다

상 : 수명우천 受命于天(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1]
하 : 기수영창 旣壽永昌(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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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상상으로 만든 모조품. 생크림 케이크?

1 역사

1.1 전설의 시작

<한비자> 화씨(和氏)편에 의하면 춘추전국시대 (礎)나라 사람으로 옥장인이었던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얻은 희귀한 보석 '화씨지벽(和氏之璧)'에서 기원된다. 변화는 봉황이 내려앉는 형산에서 원석을 채취해 초나라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은 옥공을 불러 옥을 감식하게 했으나, 그냥 돌덩이라고 하자 화가 난 여왕은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라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르자 변화는 다시 그 옥을 헌상했다. 그러나 감정 결과는 이번에도 그냥 돌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고 화가 난 무왕은 변화의 오른쪽 다리마저 잘라 버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뒤를 이었는데 옥 원석을 들고 통곡하는 변화의 사연을 알게 된 문왕은 사람을 시켜 다듬으니 진귀한 옥이 되었다. 문왕은 변화에게 보상으로 큰 상을 내리고 여생을 편안히 살게 해줬으며 그 옥을 '변화의 옥'이라는 뜻으로 '화씨지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2]

이 화씨지벽은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뒤 결국 (趙)나라 혜왕에게 넘어갔는데[3] (秦)나라 소양왕이 이를 얻으려고 성 열다섯개와 교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인상여염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증손자 진시황이 조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이를 얻게 되었는데, 조나라에서 가장 먼저 챙겨온 물건이 바로 화씨지벽이었다고 한다.

전국옥새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
아래에 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했다.

1.2 진나라

화씨지벽을 얻은 진시황은 재상 이사에게 명하여 통일 제국의 옥새를 만들게 했다. 기록에 의하면 옥새에 새긴 문구는 受命於天, 旣壽永昌[4]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는 이사가 지은 문구로 추정된다.

화씨벽 자체가 희귀한 물건인데다가 신통한 능력을 지녔는데 이것으로 옥새를 만들어서인지 전설에 의하면 신통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진시황이 동정호를 순시하던 중에 호수에 광풍이 불어 가 뒤집히려고 하자 급히 호수에 전국옥새를 던졌더니 곧 광풍이 멎고 파도가 잠잠해져 사방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8년 뒤에 진시황의 신하가 화음을 지나던 중 어떤 이가 신하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서는 전국옥새를 바치면서 용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원래 주인께 옥새를 돌려드린다라고 말하여 옥새를 바쳤다고 한다. 진시황은 그 '용왕'을 자신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전설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전설적인 보석으로 옥새를 만들게 한 일화는 진시황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화씨지벽이 아니라 남전산(藍田山)[5]에서 캔 옥으로 만든 것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사실 화씨지벽의 벽(璧)은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도넛과 같은 모양으로 가공한 옥을 말하는 어휘이기 때문에 조립식으로 만들거나 일부만 떼어내어 가공하지 않는 한 옥덩어리를 깎고 다듬어 옥새를 만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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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춘추전국시대 벽 유물.

1.3 한나라

이 후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호해가 조고에게 피살당한 뒤 조고가 잠시 옥새를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가 망하자, 진시황의 손자 자영이 옥새를 목에 걸고 진나라 수도 함양 근처까지 진격해 온 한고조 유방에게 나아가 이 옥새를 바쳤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함양에 항우가 입성했을 때 자영은 죽임을 당했다. 옥새를 바친다는 것은 유방을 황제로 인정한다는 셈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들은 항우가 격분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한나라를 세우면서 전국옥새는 한나라의 국새가 되었다. 그런데 전한 말기에 왕망이 한나라를 집어삼키려 할 때 이 옥새를 강탈했다. 왕망이 옥새를 강탈하고자 하여 심복 왕심 등을 보내 재촉하자 왕망의 고모였던 효원황태후 왕씨는 분노하여 옥새를 그들에게 집어던졌는데, 이 때문에 옥새의 모퉁이가 깨져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경시제 유현이 보낸 왕헌의 군대에 의해 왕망이 피살되고 옥새는 왕헌이 차지했는데, 결국 경시제가 이를 차지했다. 이 다음 적미군이 장안에 쳐들어오자 그들이 옹립한 허수아비 황제 유분자가 이를 차지했으나, 이후 광무제 유수가 의양에서 적미를 격파하고 다시 이 옥새를 되찾았다. 광무제는 후한을 건국한 다음 으로 옥새의 깨진 모퉁이를 때웠다고 한다. 바로 위의 모조품에 재현된 옥새의 금으로 보수된 모퉁이는 광무제가 보수한 부분을 기준으로 재현된 것이다.

1.4 삼국 시대

후한 말기에 옥새는 다시 파란을 겪었는데, 반동탁연합군이 낙양으로 쳐들어오자 동탁은 장안으로 천도하면서(말이 좋아 천도 였지 사실 그는 도망을 간 것이었다.) 낙양에 불을 질러 낙양이 폐허가 되었을 때 사라졌다.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폐허가된 동도(낙양)에 반동탁연합군이 들어왔을 때 손견 휘하의 한 병사가 우물에서 오색광채가 비치는 것을 봤다. 그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우물을 들여다보니 궁녀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를 건져 광채의 근원을 살펴보니 궁녀의 시신은 전국옥새를 목에 걸고 있었다고 한다. 전국옥새를 탐낸 손견은 옥새를 발견 한 것을 다른 제후들에게는 비밀로 한채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결국 이러한 사실을 들켜서 결국 원소의 요청을 받은 유표의 공격으로 인하여 죽었다. 전국옥새는 이후 손책에게 그 소유권이 양도되었으나, 손책은 원술을 떠나 스스로를 세력을 일으키고자 하여 옥새를 병력과 바꾸는 거래를 원술과 하였다.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옥새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원술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파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연의와 마찬가지로 원술은 옥새를 바탕으로 칭제를 하였다. 그러나 주변 제후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상황이 위급해지자 원술은 원소에게 전국옥새를 보냈고 구원을 청하였다. 한동안 원소에게 그 소유권이 있던 옥새는 원소 일가가 망하면서 조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조조가 죽은 뒤 조비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으면서 전국옥새는 그대로 조위의 국새가 되었다.

1.5 위진남북조~수당

이 후 조위가 서진에 의해 멸망되어 전국옥새는 서진에게 그 소유권이 양도됬다. 이 다음 서진이 전조 유총에 의하여 망한 다음에는 그에게 넘어갔다가 후조 석륵 그리고 염위 염민을 거쳤다. 염민의 아들 염지는 이를 동진에게 넘겼고 이 후 옥새는 유송-남-나라를 거쳤다. 양나라 때 후경의 난이 일어나자 사방이 혼란스러운 와중 시중이 옥새를 지닌 채 북제로 달아나 북제가 옥새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북제가 멸망하자 북주가 옥새를 차지하였다. 북주를 멸한 나라가 옥새를 차지하였으나 다시 나라가 옥새를 차지하였다.

1.6 최후의 순간

당나라가 후량주전충에게 망한 뒤 후량을 멸한 후당의 장종 이존욱이 가지고 있다가 명종 이사원, 민제 이종후를 거쳐 후당의 마지막 황제였던 말제 이종가가 마지막 소유자였다. 그는 내분으로 후진 태조 석경당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아 쳐들와 이에 이종가가 현무루에 불을 질러 그의 일가가 분신자살할 때 품에 안고 있었으나 결국 옥새는 사라졌다고 한다. 석경당은 요를 끌어들여 욕먹더니 여기서도 이후 ---을 거쳐서 여러 번 전국옥새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진품이 아닌 걸로 판정되었다고 한다. 진작에 녹아버렸겄지...

말 그대로 나라에서 나라를 이어 내려온 옥새라는 이름답게 각 왕조들은 선양을 받든 찬탈을 하든 간에 가장 먼저 이 전국옥새부터 챙겼다고 생각된다. 구정과 전국옥새는 천자의 양대 상징일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의 상징 그 자체다. 그러므로 이 유서 깊은 옥새가 찾아진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 고대사에 영향을 크게 미친 유물 중 하나이므로 당장 발견되어 진위만 확인된다면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의 보물임은 창창하다.

2 기타

코에이의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매력을 100으로 만들어주는, 혹은 세력의 명성을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삼국지2에서는 신용도를 올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만큼 신용도를 100으로 만들어주는 옥새가 아이템 중 가장 효율이 높기에 이걸 얻기 위해 낙양을 함락했다가 다시 후퇴해서 다른 세력에게 일부러 넘겨주고 다시 침공하는 노가다 플레이가 이어지기도 했다. 삼국지 9에서는 화씨벽과 전국옥새가 동시에 등장하는 고증오류가 생겼다.[6] 삼국지 조조전에서도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조조전에선 무조건 회심공격으로 바꿔준다.

드라마 삼국에선 동탁장안 천도 후 낙양성 폐허에서 손견이 발견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손견이 옥새를 얻고 야망을 불태우자, 손책과 황개를 비롯한 장수들은 축하를 하지만 이것에 대해 어린 손권은 이걸 만든 진시황은 2대밖에 못갔다는 식의 말을 하며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데 조조도 우려의 말을 하였고, 이는 손견의 죽음의 복선이 된다. 원소와 원술은 매복한 군사들을 불러 손견에게 동맹군의 맹주로서 옥새를 맡아 놓는다란 명분으로 내놓을것을 주장하지만, 마찬가지로 수하들을 매복했던 손견에게 역으로 위협당해 그 자리에서 얻는건 포기한다. 결국 원소와 원술은 평소 손견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유표를 시켜 손견을 뒤통수 쳐서[7] 죽임으로서 손권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 후 손책이 갖고 있다가 주유의 권고로 원술에게 넘어가는 건 연의와 동일하며, 원술은 손책에게 정보, 황개, 한당, 조모 네 장수를 내준다. 이후 이걸 갖고 나이 든 책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변 부하들의 추대에 중나라를 건국하고 황제가 되지만, 주변 제후들의 비웃음만 사고 황명을 띄고 처 들어온 조조에게 털린다. 원술의 자살 후 유비는 5만 군사는 가지고 옥새에 주령, 노초를 붙여 조조에게 보낸다.

여담으로 조조와 유비는 이 물건을 별로 중히 여기진 않는데 심지어 조조는 돌덩이라 지칭할 정도다. 그도 그럴만 한게 옥새 비주얼이 참으로 뭐하다.[8] 주유도 원술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손책에게 '사내라면 칼을 들어야지 그깟 돌덩이 갖고 뭐하겠냐'라고 한다.

SD건담 삼국전에서는 이 옥새가 천옥개를 소환하는 아이템으로 쓰인다. 단, 악역 캐릭터가 쓸 경우는 천옥개 소환대신 일시적으로 자신의 파워업을 이루나 대신 영혼을 빼앗기는 리스크가 있다. 또한 애니판에는 나오지 못한 암흑옥새 사이코[9]가 존재한다. 암흑옥새 사이코, 사마사 페넬로페, 사마소 크시, 사마염 자쿠2, 치우 노이에 질이 합체해서 전신 치우 건담이 탄생한다.

한국사에서 비슷하게 왕조에서 왕조로 이어지는 천명을 상징한 물건으로 천사옥대라는 허리띠가 있었다.
  1. 어떤 판본에서는 于대신 於를 쓴다. 어(於)와 우(于)는 비슷한 성격의 전치사이며, 표준 중국어에서는 모두 yu(위) 로 발음한다.
  2. 한비자의 저자 한비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을 화씨지벽으로 비유하며 세상에 쓰이기를 기원한 것으로,이러한 뜻을 간파한 시황제는 그를 등용하였다.
  3. 화씨지벽이 조나라로 넘어가는 과정은 항목 참조.
  4. 수명어천, 기수영창 :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
  5. 예로부터 질이 좋은 옥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6. 이것은 삼국지 시리즈에서 옥새가 남전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전승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7. 유표는 손견에게 그냥 보내주고 원술에겐 가라쳐서 보고하겠다 하고서 손견에게서 다시는 형주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지만, 손견군이 함선으로 이동하던 도중 기습을 한다.
  8. 위 모조품 사진처럼 생긴 모양에, 위에는 누런 색이 좀 들어가 있다.
  9. 평상시는 거대한 검은 옥새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힘이 개방되면 사이코 건담의 형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