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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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橘) 씨의 귤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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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立花)씨의 은행잎 문장.

1 橘 또는 立花

히라가나たちばな
표준 외래어 표기법다치바나
통용 표기타치바나, 다치바나
최영애-김용옥 표기법타찌바나
백괴사전 표기법타치바나
온두루어 표기법닷디아나

한자 橘는 일본어을 의미하나, 귤이라는 단어는 미캉(蜜柑)으로도 사용되는 일이 잦고 대부분은 일본의 성씨로 많이 사용된다. 橘인 타치바나를 성씨로 사용하는 사람은 2015년 기준 5,660명이 있다.

나름 역사는 깊은 가문이라 미나모토(源), 타이라(平), 후지와라(藤原)와 함께 일본 4대 본성 중 하나, 일족이 담당한 부분은 사건의 기록과 그 문헌의 보관. 일본측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아스카 시대 말기의 궁녀였던 아가타노 미누카이노 미치요[1]겐메이 덴노로부터 귤나무 가지가 장식된 잔을 하사받았던 데서 유래한 성으로, 미치요의 두 아들인 가쓰라기 왕과 사이 왕이 어머니의 다치바나 성을 이어받아 각기 다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와 다치바나노 사이(橘佐爲)로 이름을 바꾸었다. 다치바나 씨는 특이하게도 모계로부터 물려진 성씨인 셈.

헤이안 시대 초기에 후지와라 가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용되었으나[2] 곧바로 후지와라의 전성기가 열리자 쇠퇴를 거듭해 지금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사실, 이쪽도 찾아보면 후손이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는 한데[3] 다른 성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

立花는 발음은 たちばな로 같으나, 橘와는 다른 성씨이다. 이쪽은 본성이 아닌 묘자로 분류되며, 결정적으로 立花씨의 본성은 橘이 아니다. 예를 들면 아래의 타치바나 도세츠의 본성은 후지와라.

이와 반대로 서브컬처에서는 상당히 흔한 성씨로 등장하는데, 한자로 한 글자인 성씨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성씨이기 때문이다. '4대 본성'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 미나모토/타이라/후지와라는 각각 연상되는 역사상의 인물이 너무 많은 반면에, 타치바나는 빨리 몰락한 탓에[4] 듣보잡(…)으로 전락해서 유명세에 비해서 이미지가 희박한 탓.

특히 가면라이더 시리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이기도 한데, 초대 가면라이더에 등장한 이래, 쇼와 라이더의 정신적 지주가 된 타치바나 토베에(오얏상)의 존재 때문. 이 캐릭터가 등장했던 쇼와 라이더 시리즈는 물론, 헤이세이 라이더에서도 이를 오마쥬하여 타치바나란 이름을 가진 캐릭이 많이 나왔기 때문.

이와 비슷한 경우로 히이라기(柊, ひいらぎ), 쿠스노키(楠, くすのき),[5] 카츠라(桂, かつら) 등이 있지만 타치바나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참고로 에로게/미연시 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성씨라고 한다. 정말 압도적으로 많다.

2 본성을 사용하는 경우

3 일반 성씨의 경우

다치바나/타치바나 모두 이 항목에서 다루며, 한자 표기가 立花일 경우 ☆표시.

3.1 실존 인물

3.2 가상 인물

  1. 비다쓰 덴노의 후손으로 알려진 미누 왕과 결혼해 가쓰라기 왕과 사이 왕 두 아들을 두었고, 나중에 후지와라노 후히토에게 재취해서 후지와라노 고묘시를 낳았는데 이 고묘시가 쇼무 덴노의 황후가 된다.
  2. 다치바나 씨 출신으로 사가 덴노의 황후가 된 다치바나노 가치코(단린 황후)가 유명하다. 여담으로 가치코의 아버지인 다치바나노 기요토모(橘淸友)는 777년에 발해에서 사신으로 온 사도몽(史都蒙)으로부터 관상을 본 적이 있는데, 사도몽은 "자손 중에서 귀한 사람이 나올 것이나, 당신 자신에게 그 복이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딸 가치코가 황후가 된 것과는 달리 기요토모는 32세에 병사함으로써그리고 다치바나 씨가 후세에 다른 혼세에 비해 별로 떨치지 못함으로써 사도몽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이 일화는 일본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고려인 관상가 대목의 모델이 되었다.). 이 단린 황후는 용모가 아름다웠던 것으로 유명한데, 승려나 신관들조차 그 용모를 보고 제대로 수행에 정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때문에 황후는 죽기 전에 자신의 시신을 땅에 묻지 말고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서 썩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그 과정을 그린 그림이 '단림황후구상도회(檀林皇后九相圖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항설백물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인 '가타비라가쓰지'는 이 일화에서 등장하는 단림황후의 시신을 버렸다는 교토의 지명을 소개하고 그것을 모티브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구상도 항목 참조.
  3. 징비록에도 쓰시마에서 온 일본의 사신으로 "조선의 창은 참 짧군요 ㅋㅋ"하고 비웃었다는 귤강광(橘康廣, 유즈야 야스히로)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쓰시마 도주의 명을 받아 조선에 와서 울릉도가 일본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면서 조선 어민들의 출어를 금지해 달라는 씨알도 안 먹힐 개소리요구를 했던 귤진중(橘眞重, 다다 요자에몬)도 있다. 어째 다치바나 씨로 조선에 온 사람들 가운데 긍정적인 인간이 없는 듯도 싶지만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친한파이자 지한파로 꼽히는 아메노모리 호슈도 타치바나를 혼세로 자처했다.
  4. 겐페이토키쓰 4대 혼세의 경우 헤이안 시대에 일어난 타이라노 마사카도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난을 진압하면서 성립된 무문(武門)인데, 타치바나가 여기에 끼이는 것은 이요노쿠니(지금의 일본 에히메 현)의 경고사였던 타치바나노 토야스(橘遠保)라는 인물이 후지와라노 스미토모를 잡아 죽이는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타치바나노 토야스는 포상으로 미노노스케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의문의 피살을 당했는데, 밤중에 길을 가다 습격을 당하고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된 것. 이 점도 타치바나 가문이 다른 세 혼세와는 달리 무사 가문으로써 성장하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타치바나노 토야스가 왜 누구한테 살해를 당한건지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못미.
  5.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경우는 다치바나 씨를 혼세로 한다는 설도 있다. 상술한 타치바나노 토야스가 마사시게의 선조라는 것.
  6. 러일전쟁 당시의 장교로 요양(遼陽) 전투에서 전사하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인물.
  7. 본명은 橘 표기이다. 예명이 立花
  8. 1974년 문예춘추다나카 가쿠에이의 비리의혹을 게재하여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한 인물
  9. 사실상 아래의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인물들이 타치바나란 이름을 갖게 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10. 다만 작중에서는 가타카나 표기인 タチバナ로 표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
  11. 이쪽은 立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