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예멜리아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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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or "The Last Emperor" Emelianenko

이름Фёдор Влади́мирович Емелья́ненко
Fedor Vladimirovich Emelianenko
Fyódor Vladímirovich Yemel'yánenko
표도르[1] 블라디미로비치 예멜리아넨코[2]
생년월일1976년 9월 28일
국적러시아
신체182cm, 104kg, B형[3]
종합격투기 전적41전 36승 4패 1무 1무효
11KO, 17서브미션, 9판정
3KO, 1서브미션
링네임마지막 황제[4]
주요 타이틀Rings 5대 무차별급 챔피언
Rings 무차별급 토너먼트 우승
Rings 앱솔룻 클래스 토너먼트 우승
PRIDE 2대 헤비급 챔피언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 우승
WAMMA 헤비급 챔피언
관련항목 : PRIDE 역대 챔피언

1 소개

1976년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 루한스크에서 태어났다. 2세에 부모를 따라 러시아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흑해 연안의 도시인 스타리 오스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용접공, 어머니교사였고 누나가 한 명, 동생이 두 명 있다. 동생 둘 모두 격투기에 입문하였는데 차남인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가 2003년, 그의 막내 동생인 이반은 2010년 MMA에 데뷔하였다. 베이스는 삼보.[5]

1991년에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1994년엔 단과대 무역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그는 러시아 군대에서 군 소방수로 일했다. 1999년엔 첫 아내인 옥사나와 결혼하였고, 같은 해 마샤를 얻었다. 이들은 2006년에 이혼하였다. 2007년에는 둘째 딸을 그의 오랜 여자친구인 마리나에게서 얻었고 2009년에 마리나와 재혼하였다.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 그리고 그림 그리기라고 하는데, 실제 표도르가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6]을 보면 재능이 있다. 표도르(효도르)는 독실한 러시아 정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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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르의 그림. 현재 일본 홈페이지는 삭제 된 상태.

2008년에 80명의 러시아 스포츠인 중 하나로 선정된다. 상트 페테부르크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성화 주자로 뛰기도 하였다.

최근에 마리나와 이혼하고 다시 첫 부인 옥사나와 재혼했다.

2 전적

2.1 Rings

종합격투기로 뛰어들기 전에는 유도와 삼보 선수로 활약했으며, 꽤 좋은 성적을 거둬오고 있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2000년 일본 격투기 무대인 Rings에서 종합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Rings는 일본의 실전 프로레슬링이 종합격투기로 변형되되는 과정에서 창설된 단체로, 안면 파운딩이 금지된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아로나가 효도르 상대로 여러번 상위 포지션을 를 잡는데 파운딩이 있었다면 최초로 1패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로나가 파운딩으로 끝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짤짤이로 치다보면 점수도 쌓이고 하위 포지션의 움직임도 막을 수 있다.

2000년 5월 마틴 라자로프와의 데뷔전에서 길로틴으로 승리, 이후 3연승을 거둔다. 같은 해 12월에 99 킹 오브 킹스 토너먼트 B블럭 예선에 참가했는데, 1차전에서 히카르도 아로나와 대결하게 된다. 계체량 당시 아로나는 90kg대, 효도르는 100kg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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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부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끝에 효도르의 승리로 끝났는데 아로나가 그라운드에서 우위를 잡고 있었는데 효도르가 판정빨로 이겼다는 의혹이 있었다.[7] 확실히 3라운드 내내 아로나가 위에서 압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스텐딩에서 유효타는 효도르가 좀더 많았고[8], 연장에선 효도르가 아주 약간 우세했다. 근소한 차이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해 지금도 논란이 많다. 11년 뒤에 알게 되겠지만 효도르의 약점(레슬링과 그라운드)이 드러나게 된 경기.

그리고 2차전에서 만난 코사카 츠요시에게 그의 첫 '패배'를 당한다. 이 경기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츠요시가 주먹을 잘못 날리면서 팔꿈치가 효도르의 안면에 적중, 출혈이 심해져 닥터체크를 통해 경기가 중단된 것으로[9] , 링스에서는 팔꿈치 패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팔꿈치 공격이 금지돼 있었는데 츠요시는 그 패드를 착용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은 규칙 위반이었다. 따라서 이것을 패배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 효도르가 진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츠요시가 다음 회전에 진출하게 된다.

이 경기가 그의 전적에 1패를 안기긴 하였으나 모든 MMA 팬들은 이것이 부당한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베우둠 이전까지는 사실상 무패행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토너먼트에선 결국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우승하는데 그는 MMA에서 효도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각되게 된다. 효도르는 훗날 프라이드에서 츠요시에게 설욕을 하게 된다.

2001년에는 무차별급 토너먼트[10]에 참가하여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첫 패배를 선사한 헤나토 소브랄을 판정으로 물리치며 결승에 진출, 5대 무차별급 타이틀을 두고 바비 호프만과 대결하게 되었다. 하지만 호프만이 어깨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타이틀은 그대로 효도르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2001년 10월에는 앱솔룻 클래스 토너먼트에 참가해여, 2002년 2월 결승에서 크리스 해즈만을 KO로 꺾고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한다. 이 토너먼트를 마지막으로 Rings가 해체되면서 효도르는 PRIDE로 무대를 옮긴다.

2.2 PRIDE

2002년 6월 PRIDE 21에서 그가 만난 상대는 Pancrase의 강자 네덜란드 출신의 세미 슐트였다. 당시 탄탄하지 못한 프라이드 헤비급에서 챔피언 후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월등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를 상대하는 효도르를 보며, 사람들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며 흥미롭게 지켜봤다. 211cm, 116kg의 거구를 상대로 182cm, 105kg의 효도르는 신체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태였다. 그러나 효도르는 3라운드 내내 슐트를 압도하며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프라이드에서의 첫 승리를 장식하게 된다.

2002년 12월에는 당시 PRIDE 2인자인 히스 헤링과 맞붙었다. 효도르는 다크호스 정도였으나 1라운드 내내 전매특허인 얼음 파운딩을 작렬 시켰고 그라운드에서도 우위를 점하였다. 인기가 높던 헤링은 경기 내내 하위 포지션에서 난타당했고 헤링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져 갔다. 경기 후반부에는 포지션이 반대로 뒤집혀 히스헤링도 파운딩을 쳤지만, 결국 1라운드가 끝난 뒤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끝난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강렬하게 펀치를 날리는 경우가 드물어,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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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로 타이틀 도전권을 얻게된 효도르는 2003년 3월 16일,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갖게 된다. 당시 노게이라는 콜먼, 헤링, 심지어는 떠오르던 야수 밥 샙까지 무너뜨리며 당대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허나 효도르는 선제 타격과 테이크다운으로 우위를 점한 뒤 노게이라를 수세로 몰고갔고, 서브미션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난 후 특유의 얼음 파운딩으로 우세를 점하였다. 이때 무려 20여 분 동안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와 파운드에서 두들겼다. 경기 후 세명의 심판들이 모두 3:0의 만장일치로 효도르의 판정승을 선언하였으며 효도르는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 타이틀을 프라이드가 없어질 때까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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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뒤 2003년 6월에는 IWGP 헤비급 챔피언 출신 후지타 카즈유키와 맞붙는다. 이때 효도르는 경기를 일찌감치 끝내려는 의도로 선제 공격을 하였으나 후지타의 훅이 효도르의 오른쪽 얼굴에 강타하여 효도르는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이후 테이크다운을 당해 가드에 몰리지만 후지타의 공세를 원천봉쇄하며 체력을 회복했고, 이스케이프 후 스탠딩에서 바디킥+원투 콤비테이션으로 다운을 빼앗은 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마무리지었다. 효도르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후지타는 단 한방만 적중시켰을 뿐이나 이것이 꽤나 셌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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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2003년 8월에는 개리 굿리지와 경기를 갖는다. 굿리지와의 경기에서 그는 타격에서 강타하여 다운 시킨 뒤 그라운드에서 연타를 퍼부어 TKO승을 하게 된다. 이때 효도르는 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뒤이어 수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한동안 링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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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효도르는 당시 떠오르던 강자, 미르코 크로캅과 경기를 가질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나, 이 부상때문에[11] 프라이드 측에서는 잠정 타이틀을 걸고 크로캅과 노게이라의 대진을 성사시키고 이 대진에서는 노게이라가 승리한다.

손이 나은 뒤 2003년 12월 이노키 봄바예에서 나카타 유지를 역시 1라운드에서 KO시키며 승리한다. 한데 복귀전을 PRIDE가 아닌 봄바예에서 가졌기 때문인지 봄바예의 프로모터들이 DSE의 사주를 받은 야쿠자의 협박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에는 다시 PRIDE로 돌아와 헤비급 GP 개막전에 출전하여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이자 UFC 전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마크 콜먼과 맞붙는다. 콜먼의 묻지마 태클에 밀려 TD를 허용했으나 가드에서 암바를 성공시키며 2분 11초만에 승리를 거뒀고, 이로써 그가 타격전뿐 아니라 하위 포지션에서도 꽤 잘 싸울 수 있는걸 보여주는 경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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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2004년 6월에는 GP 2라운드에서는 역시 전 UFC 헤비급 챔피언인 케빈 랜들맨과 경기를 가졌다. 랜들맨은 효도르를 상대로 환상적인 수플렉스를 성공시켰으나 효도르는 거의 대미지를 입지 않은 듯 곧바로 스윕에 성공했고, 파운딩에 이은 암락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로써 해머하우스는 효도르에게 1,2인자가 모두 패한다.

2004년 8월에는 GP 결승전에서 오가와 나오야를 가볍게 암바로 제압, 결승에서 다시 한 번 노게이라와 격돌했다. 장기인 얼음파운딩을 살리려 적극적으로 그라운드 게임에 임했지만 노게이라는 1차전때의 그 노게이라가 아니었다. 서브미션보다 파운딩 위주인 효도르의 그라운드 스타일을 파악한 노게이라는 효도르를 완벽히 가드에 가둬놓으며 게임 분위기를 좋게 이끈다.[12] 그라운드 상황에서 펀치를 날리는 순간 노게이라가 몸을 일으키면서 둘의 머리가 충돌했고, 이로 인해 효도르의 눈가에 굉장히 심한 컷팅이 생기며 경기 속행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경기는 무효처리되고 약 네 달 후인 12월 31일의 남제에서 3차전을 기약하게 되었다. 1차전과 달리 효도르는 NC가 선언되기 전까지 경기 5분 내내 노게이라의 가드에 갇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흐름이 안좋았기 때문에 효로드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노게이라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결과였다.

그리고 펼쳐진 3차전에서 2차전의 경험을 살려 완전히 다른 게임플랜을 짜왔는데,아예 그라운드로 돌입하지 않는 전략을 선보인다. 주짓수 매지션이라 불리는 노게이라 같은 특급 선수를 상대로 그라운드 게임은 본인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인지하였던 것이다. 이때 경기 1라운드에서 효도르는 노게이라를 경기 시작후 9분에 걸쳐 타격을 가했으며 유도식 메치기로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에 몇차례나 매다 꽂았다.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는 효도르는 테이크 다운식 방어와 카운터 펀치로 경기를 이끌었으며 그 결과 다시금 3:0 판정승을 거둔다. 이로서 효도르는 60억 분의 1의 사나이의 명칭-당시 그랑프리의 부제-와 잠정+정식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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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의 주 무기인 펀치-TD 연계.

다음해인 2005년 효도르는 크로캅과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기로 한다. 크로캅과의 대전의 2003년부터 거론된 꽤나 유명한 떡밥이었는데 당시 크로캅은 K-1에서 프라이드로의 전향을 성공적으로 하였으며 강자들을 연이어 꺾으면서 자신의 랭킹을 높이 끌어올였다. 그 뒤 크로캅은 효도르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는데 따라서 프라이드 측에선 두 선수간의 대결을 2003년 말 쯤에 개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효도르는 프라이드와의 계약상의 문제로 잠시 프라이드를 떠나 이노키의 붐 바예 프로모션과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두 선수간의 매치를 성사 시킬 수 없었고 이에따라 프라이드 측에선 잠정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벌여 노게이라와 크로캅과 맞붙게 하였다. 이때 노게이라가 승리하였고 때문에 통합 타이틀 전에선 크로캅이 아닌 노게이라가 효도르와 대결한 것이었다.

그 뒤 노게이라의 패배이후 크로캅은 효도르에게 도전하고자 하였으나 랜들맨에게 패배하여 이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워터맨을 꺾고 부활한 뒤 랜들맨과의 재경기에서 그를 이겼으며 뒤이어 마크 콜먼을 꺾음으로써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이로써 2005년 8월 28일에 마침내 크로캅과 효도르는 맞붙게 된다. 이는 종합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매치였다.[13] K-1 출신인 만큼 타격에 능한 크로캅을 상대로 효도르가 그라운드 위주의 플레이를 할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효도르는 타격 위주로 경기를 운영한다. 크로캅은 1라운드에서 잽을 적중시켜 효도르의 콧뼈를 골절시킨다. 효도르는 이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크로캅의 타격을 잘 피하면서 적절하게 그라운드로 유도하였고 체력이 약한 크로캅을 체력을 천천히 소모시킨다. 이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효도르가 유리해 졌고 그렇게 크로캅을 농락한 효도르는 3:0 판정승을 거두면서 명실공히 헤비급 최강의 남자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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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5년 남제에서 줄루징요를 26초만에 정리해버린다. 효도르의 매치업중에 가장 논란이 많은 경기로, 마이너 단체에서 활약했고, 메이저에서는 센토류를 이긴 1전 밖에 없던 선수를 아버지가 유명하단 이유로 이미지 메이킹해서 효도르와 붙였다. 2006년 10월의 미국 대회에서 다시 만난 마크 콜먼을 관광태운다. 2006년 남제에서는 마크 헌트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룬다. 이때 랭킹 1위였던 크로캅이 UFC로 떠났으므로 마크 헌트가 랭킹 1위 자격을 갖고 있었다. 효도르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바를 성공시킨다. 그러나 헌트는 이것에서 빠져나왔으며 역으로 키 락을 두 번이나 거는 놀라온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효도르는 이 두번의 기무라 공격을 모두 버텨내었고, 그 후 그라운드에서 탈출하여 다시 헌트의 탑을 뺏은 뒤 8분 15초 경 역으로 헌트에게 기무라를 걸어 탭아웃을 받아내며 승리를 거둔다. 효도르 논란 매치업 2번째. 전형적인 반쪽 선수인 마크헌트를 엄청난 강자로 이미지 메이킹해서 효도르와 붙였다. 이런 헌트한테도 그라운드 하위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라운드가 막장인 아닌가 하는 의심이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7년 3월 Bodogfight에서 당시 미들급 5위였던 맷 린들랜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뤘다. 경기 초반 더블 언더 훅을 파인 채 테이크다운 당할 위기에 처하자 로프를 잡아서 버텨내었고[14] 역으로 테이크다운한 다음에 린들랜드의 하체 관절기를 방어하고 마운트를 장악한 뒤에 리버스 암바로 승리를 거뒀다.

2.3 Affliction

프라이드의 해체 이후 그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효도르가 프라이드가 망하기 직전 러시아의 불독(=Bodogfight)에서 경기를 벌인 바 있었고 따라서 그가 불독에 갈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그의 매니저인 바딤과 불독 대표 칼빈 아이레와의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는다. 그 뒤 척 리델은 효도르가 UFC로 올 것임이 확실하다고 발티모어 선 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하여 UFC 행이 유력해져 보였다.

이때 UFC데이나 화이트 사장은 효도르와의 계약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그는 UFC 76 진행 도중 옥타곤에 등장, 효도르가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에 계약을 했으면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그는 효도르가 UFC에 온다면 당시 챔피언이었던 랜디 커투어와 타이틀 매치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계약은 성사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효도르의 매니저인 바딤이 UFC가 M-1 프로모션측에게 사업에 참여하게 해주길 원하였고, 효도르가 세계 컴뱃 삼보 대회 출전을 허가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이트는 효도르가 UFC에서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 경기를 갖길 원하였는데 이는 효도르의 삼보 토너먼트 출정 일정과 겹쳤다. 따라서 UFC와의 계약은 결렬됐으며, 효도르는 2007년 10월 러시아 종합격투기 단체인 M-1과 2년간 6경기에 출전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게 됐다.

2007년 12월에는 DSE의 후신 격인 연말 이벤트 대회 야렌노카에서 초청선수격으로 참가하여 최홍만과 이벤트성 매치를 벌였다. 암바로 탭을 받아내며 가볍게 승리. 암바의 첫 시도는 풀렸지만, 1분 후 두번째 암바를 잡아냈다.

2008년 7월 19일 Affliction에서 전에 UFC 헤비급 챔피언에 두번 오른바 있던 팀 실비아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맞붙게 되었다. 장기전이 기대됐지만 결국 34초만에 펀치 러시에 이어 그라운드로 돌입, 바로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승을 거뒀다. 당시 실비아는 허리부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UFC 탑급인 브랜든 베라에게 승리를 거둘 정도의 기량은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불어 전 UFC 챔피언에게 일방적인 초살 서브미션을 이끌어 내는 모습에 미국 팬들에게도 강렬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사실 이 경기가 있기 5 개월 전에 노게이라가 팀 실비아에게 고전 끝에 겨우 서브미션 승을 거둬서 많은 격투팬들도 이번에야말로 효도르도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껏 효도르가 상대한 선수들은 셔독 랭킹 10 위권 안의 뛰어난 선수들이었지만 팀 실비아 정도의 커리어에 신체 스펙을 동시에 가진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 경기로 효도르는 Affliction 초대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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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직후 랜디 커투어 이 등장, 효도르와의 대결을 잠깐 동안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둘의 대결은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데이나 화이트는 커투어가 UFC 91에서 브록 레스너에게 승리할 경우 두 선수의 대결을 주선할 의사를 비쳤다. 하지만 커투어가 레스너에게 패하면서 이 대결은 무산된다.

2009년 1월 25일에는 M-1 Affliction에서 전 UFC 챔피언인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맞아 또다시 1라운드 KO 승을 거두었다. 초반에는 알롭스키의 정교하고 위력적인 타격에 밀려 방어로 일관했지만 무리수를 두며 플라잉 니킥을 시도하려 한 듯한 알롭스키의 유리턱에 펀치를 꽂아넣으며 그대로 실신시켰다. 알롭스키는 월등한 체격과 복싱 테크닉을 이용해 효도르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모두 무력화 시키고 코너에 몰아 유리한 위치를 잡았지만 무리수를 두다가 한방에 골로 갔다. 알롭스키로서는 거의 다잡은 경기였는데 모처럼 만든 좋은 상황을 오바질하다 날려버렸다는 평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효도르의 경우 1 라운드 초반에는 전반적으로 밀린 양상이 있었지만 결국 승리. 헤비급 무차별 챔피언 이었던 크로캅이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여 생겼던 소위 프라이드 거품설이 다시 한번 사그러드는 계기가 되었고 ... 효도르는 다시 한번 전 UFC 챔피언 중 하나를 격침 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동세대의 셔독 랭킹 5 위권 내의 선수들을 모두 정리한 남자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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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에는 조쉬 바넷과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바넷이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며 아웃됐고, 리저버로 투입될 예정이던 비토 벨포트와의 대결마저 무산되어 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Affliction이 MMA 사업을 철수했고 효도르는 Strikeforce행을 선택했다.

2.4 Strikeforce

2009년 11월 7일 미국 시카고 시어스 센터 아레나의 Strikeforce에서 알롭스키를 1라운드 22초만에 KO시킨 브렛 로저스와의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레프트 잽에 코가 찢겨 출혈을 보였으나, 곧바로 TD를 성공시키며 우세를 잡았다. 그리고 2라운드 풀스윙한 라이트 훅을 적중시키며 실신 TKO 승을 거뒀다. 2라운드 1분 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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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6일 대회에서는 파브리시오 베우둠과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초반에 펀치러쉬에 베우둠이 미꾸라지 권법을 시전 적절히 주먹을 섞다가 드러누워버렸다(본인이 이후에 인터뷰에서 아닌 그라운드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운을 가장했다고 밝혔다). 이것을 다운당한 것으로 오인한 효도르는 성급하게 파운딩을 난사하며[15] 마무리를 지으려다가 베우둠의 트라이앵글 초크에 잡히고, 암바까지 내주며 탭아웃을 했다. 1라운드 1분 7초. 효도르의 충격적이면서 허무한 첫 패배.

항상 효도르의 경기 전에는 이번에는 효도르가 힘들지 않을 까 하는 시각들이 항상 존재 했었는데 이는 효도르의 무패 전설이 언제 끝날지 조마 조마 하는 팬들과 안티의 시선 이었고 또 하나는 효도르가 꺾었던 상대를 다시 꺾은 상대들이 항상 나타 났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효도르의 강력한 라이벌로 손꼽히던 크로캅을 케빈 랜들맨이 꺾었을 때가 그랬고 효도르와 판정까지 갔던 노게이라를 비록 지긴 했으나 크로캅이 스탠딩에서는 일방적으로 난타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팀 실비아는 노게이라를 고전 시켰고 효도르를 고전 시켰던 알롭스키를 브렛 로저스는 손 쉽게 이겼기 때문이다. 물론 로저스는 좀 거품이 있었다

이렇듯 항상 효도르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조마 조마 하던 예전의 경기들과는 달리 베우둠 전에서는 소위 베우둠은 창녀권 이라면서 항상 무시 당했었고 실력에 비해 프라이드 시절에도 노게이라 , 세르게이 한테 정리 되는등 소위 프라이드 빅 6 에서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선수라 ( 대충 효도르 , 노게이라 혹은 크로캅 , 조쉬 바넷 혹은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그 다음에 거론 되던 선수가 베우둠 이었다 ) 모든 전문가들이나 일반인 팬들은 효도르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 했지만 져서 더 더욱 충격이 었다. 이 이후로 효도르는 몰락하고 베우둠은 상승세를 타게 된다. 베우둠이 '케인 벨라스케즈를 이긴 것보다 효도르를 이긴 게 내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됐다'고 밝혔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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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뒤 효도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일어설 줄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우상으로 여기지만 나 역시 질 수도 있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신의 가호로 재경기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이길 것이다." 베우둠은 효도르를 지칭하여 '최고'라고 띄어주고 그의 우상이라고 말하였다. M-1 글로벌의 바딤은 자신의 최고 목표는 효도르와 베우둠간의 재경기를 치루는 것이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베우둠이 팔꿈치 수술로 장기 결장하게 되면서 재경기는 무산된다.

효도르는 2010년 말에 K1으로 넘어간 Strikeforce의 헤비급 챔피언인 오브레임과의 주제도 모르고 대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브레임의 K-1 출전 관계로 무산되고 효도르는 2011년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에 참전, 2월 13일 개최된 토너먼트 1차전에서 안토니오 실바와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는 스탠딩 타격으로 적절히 버티다가 종료[16]

2라운드는 시작과 동시에 실바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한 뒤..체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풀마운트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하면서 맹렬한 파운딩과 함께 암트라이앵글 초크까지 당했다. 막판에 실바는 니 바를 시도했지만 걸리지는 않았다. 효도르는 이때 실바의 다리를 비틀면서 오히려 하체 관절기를 시도했지만 실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효도르를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제스쳐를 취했다. 결국 2라운드 종료 이후 파운딩의 후유증으로 인해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올라 닥터는 효도르의 오른쪽 눈이 안보이므로 이 경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고 하여 닥터 스탑을 하게 된다.

경기 후 효도르의 멘탈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서 은퇴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경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적절한 때 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행복한 선수생활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주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실바와의 경기 후 은퇴를 선언했는데 경기 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효도르의 매니저인 바딤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내 생각에 효도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한 것 때문에 감정이 고양된 상태여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경기의 결과가 과연 정당한 지 모르겠다. 만일 닥터 스탑으로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면 3라운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어떻게 알겠는가? 때문에 내 생각엔 여러분은 효도르가 케이지에 복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덧붙이길 효도르가 어떤 판단을 하건 자신은 존중할 의향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바딤은 은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효도르는 3일 후 은퇴선언을 번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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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0일. 댄 헨더슨을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다. 1라운드가 시작 직후 둘은 격렬하게 공방을 시작했는데, 효도르는 헨더슨의 왼손훅을 맞아 비틀거리기도 했고, 결국 헨더슨이 효도르를 케이지에 몰아붙이며 더티 복싱을 시전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풀어나갔다. 1라운드가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을때, 헨더슨이 더티복싱을 풀며 링 중앙에서 다시 둘의 타격전이 이어졌을때, 효도르가 밀어 붙이면서 날렸던 펀치에 걸려 넘어지며 밑에 깔린 하프가드상태가 되는 듯 했으나 순간적으로 헨더슨이 스윕, 옆으로 빠져나오면서 효도르의 겨드랑이 사이로 펀치를 집어넣었는데 이것이 적중, 효도르가 무릎이 풀리면서 엎드린 상태로 쓰러졌다. 헨더슨은 계속 효도르의 머리를 향해 해머링 등 추가 타격을 시도했고 레프리는 헨더슨을 막으며 효도르의 TKO패로 시합을 종료시켰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효도르는 스탑이 빨랐다고 말하다가 야유를 먹었는데 그야 당시 상황에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면 효도르가 똥오줌을 배설하는 것을 넘어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MA의 발전에 비해 표도르의 경우 한 방 펀치력을 제외하면 기술 수준 등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진은 예견이 되었지만, 헨더슨전의 기량은 부진 정도가 아니라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수준이었다. 덧붙여 다운을 빼앗은 뒤 파운딩을 내리꽂을때 불안정한 포지션에서 두들기다가 간단하게 스윕을 당했는데 헨더슨이 보여준 스윕 자체는 딱히 고난이도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MMA에 주로 나오는 스윕중 하나였고, 파해법이 충분히 나왔던 상태였다. 2011년 8월 5일, 데이나 화이트가 기자회견을 통해 스트라이크 포스에서 효도르가 퇴출됐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2.5 M-1 Global

2011년 11월 M-1 Global에서 제프 몬슨을 러시아로 불러들여 3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이 경기에서 몬슨과의 그래플링을 경계하며 스탠딩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몬슨의 태클과 클린치 시도가 전부 막혔고 이노키알리 포지션으로 그라운드 게임을 유도했으나 효도르가 응해주지 않은 채 스탠딩에서 압도하며 판정에서 만장일치로 승리하였다.

제프 몬슨을 꺾어 약점으로 평가받던 레슬링에서도 몬슨의 태클을 모두 방어해내는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타격에서 거리싸움이 우위였기 때문인 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루한 경기에 그라운드 게임을 회피했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이것은 전략적인 운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플링이 약해 그라운드에서 3연패를 당해놓고, 노기 그래플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몬슨과 그라운드로 맞붙는다면 그건 학습능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시합내용은 아니었고[17], 연패를 끊었다는 의의는 있을 지언정 정상권과는 거리가 있는 기량이었다는 평이 많다.

경기에서 승리하고도 혹평이 따르는 것은 UFC로 가지 않았음에도 기량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았고[18], 데이나 화이트 등을 비롯한 격투단체에서 챔피언급 대우와 계약금을 받았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이를 이용해 몸값을 올리기도 하여 황제 별명을 인정하며 황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달 후 12월에는 Dream의 연말 이벤트인 겡끼데스까 오미소카에서 이시이 사토시에게 KO로 승리했다. 시원스러운 KO 시합이었지만 기량이나 경력격차가 워낙 커 미스매치라 말이 많다. 실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한때 시합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이시이가 일본 유도를 대표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효도르 역시 유도계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시합이 열릴 수 있었다.

2012년 6월 21일 페드로 히조와 대결하여 초반 펀치공격으로 다운을 뺏은 후 파운딩을 먹여 약 2분여만에 실신 KO승을 거두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2번째은퇴 선언을 하며 효도르는 링을 떠나게 되었다.

2.6 복귀?...는 했는데 왜 안 UFC요?

2015년 7월 15일 뜬금없이 복귀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헌데 어쩌면 UFC의 약물제재 대폭 강화조치와 맞물렸을 가능성이 높아서 묘하게 타이밍이 들어맞긴 하다. 다만 PRIDE에서는 약물규제가 전무했기 때문에 다소 미묘하고, 그렇다고 당시 UFC가 약물 규제를 제대로 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 조치 이후 안드레이 알롭스키의 극적인 반등과 프랭크 미어의 연속 2경기 KO승이 나오는등 판도가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고 이 둘역시 사실상 끝났다는 박한 평가를 받던 선수들인지라 여기에 고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어디로 갈지가 문제인데 UFC , 벨라토르 , 신생 PRIDE , ROAD FC 등 여러 단체가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표도르가 개인이 아닌 사실상 기업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이기에 바딤 핀켈슈타인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긴 한다.

사실상 표도르의 영입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선 표도르 개인이 아니라 이 바딤 핀켈슈타인과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UFC팬들에게 있어 이 바딤은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며 표도르의 UFC행이 무산된 배경에도 이 양반이 있다. 왜 표도르가 이 사람을 신뢰하는지 격투 팬들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어 하곤 한다.

2015년 9월 2일자 기사에서 UFC 협상에 또 바딤 핀켈슈타인이 주도적으로 협상을 하는 사실이 드러났다. 몆년전 표도르의 UFC행 무산의 원흉이었던지라 이번에도 한미 격투팬들의 반응은 차가울 뿐이다. 주로 나오는 반응은 "또 니가 끼어들었냐?" & "표도르는 바딤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금치산자 & 한정치산자" & "표도르는 실은 바딤이 소유하고 조종하는 포켓몬이 아닐까?" 라고 반응을 보이면서 표도르까지 곁다리로 까이고 있다.

문제는 보통 UFC의 데이나 화이트는 선수 영입 협상을 할때 절대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파이터라는 상징성과 상품성때문에 보통은 인정하지 않는 대리인 협상에 응해주는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바딤이 몆년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무리한 요구를 할게 뻔하다는것이다.

"복귀전은 일본 혹은 미국"

그리고 UFC가 아닌 구 프라이드와 벨라토르의 합작 대회를 통해 일본에서 복귀전을 치르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UFC 가 아닌 다른 단체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동안 호의적이었던 팬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현재 최고의 단체는 UFC고 또한 효도르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세명의 선수 모두 UFC 소속 되어있다. 게다가 마치 UFC 갈 것 처럼 팬들의 기대치를 부풀려놓은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은데 왜 복귀하는지 이해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혹자는 효도르가 UFC에 가지 않은 이유는 선수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라는데, 파이트머니도 가장 많고 선수의 안전 보장을 가장 잘해주고, 자금원도 가장 깨끗하다. 도리어 그가 과거에 몸담았던 PRIDE야 말로 깔끔하지 않은 자금원과 선수에 대한 존중 결여로 범죄조직인 야쿠자와 결탁하고 선수들을 협박한 바 있다. 특히나 늦은 나이에 복귀해서 투혼을 불사르는 크로캅과 비교되면서 더욱 비판 받고 있다.

UFC 행을 또 거절한데다가 이런 말도안되는 변명까지 합쳐져 효도르에게 우호했던 여론인 Daum의 이종격투기카페에서도 효도르를 겁도르라며 불같이 까고 있다. 원래부터 효도르를 혐오하던 격투 갤러리에선 말할 필요조차 없다. 효도망

다만 앞서 말했듯 효도르는 기업 단위로 움직이는 선수이기 때문에 본인의 커리어만으로 그 행보를 판단하긴 힘들다. 일본단체인 라이진으로의 이적은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라이진이 발표한 대진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데, 키릴 시델니코프, 아나톨리 토코프, 바딤 넴코프, 발렌틴 몰다브스키 등 알렉산더 클럽 소속의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으며, 헤비급 토너먼트에 참가한 넴코프는 벨라토르 컨텐더나 KSW 챔피언, GCF 챔피언, 전 UFC 선수 등 나름대로 네임밸류가 있는 선수들과 경쟁한다. 결국 넴코프의 1회전 상대는 전 UFC 선수인 고란 렐리치고 원매치를 치르는 토코프 역시 벨라토르 소속의 AJ 매튜스와 대결하게 되었는데 넴코프나 토코프의 인지도를 감안하면 꽤 괜찮은 매치업이다. 특히 넴코프는 파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대우.

이러한 '러시아 소속 선수들의 대거 진출'은 PRIDE 해체 이후 UFC를 비롯한 단체들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종종 보이던 메뉴 중 하나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논란의 복귀는 효도르 본인이 현역으로서 뭔가를 이룰 목적을 갖고 한 일이라기보다 후진들이 참가하는 대회의 홍보차 얼굴마담 역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복귀선언 후 UFC와 데이나 화이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떡밥을 날렸던 행보에 대해서는 낚시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듯(...)

2.7 RIZIN FF

2015년 10월 8일 효도르가 택한 신 PRIDE의 정체는 라이진 파이팅 페더레이션으로 확정이 된다. 상대는 Deep 헤비급 챔피언인 싱 자이딥. 말이 좋아 중소단체 챔피언이지 MMA 전적 2전짜리 선수로, MMA 파이터라기보다는 K-1이나 글로리 등에서 활동해 온 입식격투가에 가까운 선수다.

2015년 12월 31일, 효도르는 모두의 예상대로 자이딥 싱을 압도하며 1라운드 TKO승[19]을 거둔다. 애초에 커리어로는 비교조차 안되는 떡밥이었고 유일한 변수가 있었다면 3년여의 공백과 39세의 나이였으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효도르는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젊은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에게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 며 자신의 후배들을 언급했다. 소속 선수들도 모두 승리를 거두며 제몫을 했다. 다만 넴코프는 2차전에서 만난 GCF 챔피언 이리 프로하즈카에게 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토너먼트 우승은 프로하즈카를 레슬링으로 누른 킹 모가 차지했으며 라이진 측의 기대주였던 이시이 사토시는 1회전 탈락했다. 최후의 승자는 킹 모.

효도르가 복귀전에서 MMA 전적 2전 짜리와 싸우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겁쟁이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 또한 나왔다. 이후에 효도르는 라이진이 아닌 다른 단체에서 MMA 경기를 치를 예정인데, 상대는 고작 라이트 헤비급이다.

2.8 EFN 50

결국 6월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EFN 50에서 파비오 말도나도를 상대하게 되었다. 파비오 말도나도를 15년 11월까지 UFC 라이트헤비급에서 활약했던 선수. 프로 복서로서 UFC에서 퇴출된 후로는 프로복싱에서 2KO를 거두는 등의 성적을 거두었으나 본래 헤비급이었던 효도르가 라이트헤비급인 말도나도와 "헤비급" 매치를 가지게 된 것은 효도르에게 의도적인 어드밴티지를 주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만약에 지기라도 한다면 사실상 공개처형이 되는 셈.

EFN50 메인이벤트로 파비오 말도나도와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초반 1라운드 특유의 붕붕훅으로 말도나도를 케이지로 밀어붙였지만, 안면이 열리자마자 들어온 카운터에 다운당해서 깔린 후 TKO 선언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 뒤에 간신히 일어서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모습이어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2라운드부터는 양쪽 다 체력이 소진된 모습을 보였고 결국 3 라운드까지 간 다음에 효도르가 판정승을 거뒀지만 전체적으로 졸전이었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홈 어드밴티지로 이긴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라이트 헤비급 선수를 상대로 1 라운드에 레프리 스톱 직전까지 가면서 이제 UFC 진출은 꿈도 꾸질 못할 기량을 드러내며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다만 1라운드의 판정을 두고 10:9로 채점해서 표도르의 승을 주느냐, 10:8로 해서 무승부로 했어야 하느냐하는 논란이 있었다. 10:8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역시 10:8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점수이기 때문에 어느 쪽을 골라도 애매한 경우긴 했다. 이후 World MMA Association가 이 경기를 재채점하여 무승부로 변경하기도 했으나 WMMAA가 딱히 공신력을 가진 단체는 아니기에 공식적으로 효도르의 승리는 변하지 않았다.

3 파이팅 스타일

3.1 전성기

삼보를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플링, 서브미션에 능숙하고 무엇보다 밸런싱이 뛰어나 체중이동이 큰 펀치를 연타하면서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펀치 공세 후 클린치 상황에서 유도식으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공격을 많이 구사하였는데[20], 펀치와 테익다운 연계 기술은 당시 동생인 알렉산더나 같은 소속이었던 로만젠소프도 구사하지 못하였다.

특히 그라운드 상위 포지션에서 상대의 가드를 뚫고 날리는 강력한 파운딩은 히스 헤링전에서 유명세를 타 '얼음 파운딩'으로 불려진다. 상체나 다리를 이용해 높은 곳에서의 낙차를 만들어 강력하게 내리 꽂는 이 공격은 효도르 이전에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강력한 기술이였다.[21]

그의 필승공식은 킥이 가능할 정도로 먼 거리에서 빠른 스피드로 강력한 훅과 함께 접근한 뒤 테이크 다운을 연계하여 그라운드 상위를 차지한뒤 '얼음 파운딩'을 구사하거나 서브미션으로 끝내는 형식이었다. 기무라 록, 암바,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능란하게 구사하였다. 반대로 상대의 공세에 가드 포지션으로 깔렸을 땐 특유의 유연함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거나 서브미션을 구사하거나, 혹은 거는 척하며 스윕을 성공시키었다.

물론 약점은 존재한다. 궤적이 큰 훅의 경우 정면에서 안면이 노출되기 때문에 카운터를 맞을 위험이 크다. 허나 전성기에 그는 빠른 스피드와 몸 놀림으로 상대의 카운터를 봉쇄하였다. 물론 이런 그의 타격전술은 상대의 타격거리 안으로 들어가야하는 만큼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이런 전술을 쓴 것은 기본적으로 복싱 스킬이 떨어지는 것에 원인이 있다. 또 전체적으로 타격 수준이 떨어지던 당시에는 이런 타격이 유행하기도 했고 체격이 작고 핸드 스피드가 빠른 효도르 입장에서는 괜찮은 전술이었던 것. 다만 전체적으로 타격 수준이 올라간 요새는 잘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냉정한 경기 진행정으로 상대의 스타일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경기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시합에 이겨도 타이틀을 따내도 표정에 변화가 없을 정도다. 상대 선수들은 그의 표정을 읽지못해 혼란에 빠졌고, 그래서 상대방이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또 경기에서 일어날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 후지타와의 경기에서 럭키펀치를 정확히 맞고도 후지타를 껴안고 회복해 초크로 끝내고, 랜들맨에게 백을 잡힌 상태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슬램을 당한 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는등 경기중에 생기는 최악의 상황에도 흔들림없이 대처했다.

UFC 초대 웰터급 챔피언이자 희대의 명 트레이너인 팻 밀레티치는 "그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그 어떤 파이터라고 하더라고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이 있는데, 그에게서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보다는, 덜 체계적인 타이어 매달고 달리기, 장작패기, 타이어 무거운 해머로 내려치기, 턱걸이 등의 안드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근력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록키에 나온 트레이닝이기 때문에 한때 록키식 트레이닝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의 약점 중 하나는 피부이다. 일단 피부가 너무 약해서 안면 스크래치가 TKO가 될 수 있는 MMA 선수로서는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의 경기에서 버팅으로 안면 출혈이 생기면서 노 게임이 선언되었고, 링스시절 코사카 츠요시에게 커팅으로 닥터 스톱 TKO를 당했다.

183cm/105kg의 체중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것은 의도적으로 증량한 것으로 20대 초반에는 70kg 대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신장(183cm)은 라이트 헤비급의 포레스트 그리핀(191cm)이나 미들급의 앤더슨 실바(188cm)보다도 작다. 요새는 웰터급 선수들도 신장이 커 효도르는 카를로스 콘딧(185cm)이나 닉 디아즈(185cm)보다도 작다.

많은 전문가들이 효도르의 적정 체급은 미들급 정도로 보고 있다. 헤비급에 작은 신장 선수가 없는건 아니다. 마크헌트나 로이넬슨은 효도르보다 작다. 그런데 이 선수들은 다 120kg 를 찍고 있다. 신장에서 불리하면 체중이라도 불려서 힘에선 안밀려야 된다 . UFC의 배드 마우스 프랭크 미어로부터 '살만 찌운 돼지'라는 독설을 듣기도 했는데 마크헌트나 넬슨은 20kg 나 더 나가는 것. 문제는 효도르는 스피드를 살린 테크니컬한 선수기 때문에 무작정 체중을 늘릴 수가 없다. 190cm/109kg의 미어가 작은 편에 속하는 UFC 헤비급에 비교하면 경기전 감량조차 안하는 효도르의 체격은 약점이다. 그런데 이 체격으로 203cm/118kg의 팀 실비아나 196cm/120kg의 브렛 로저스를 줄줄히 잡아내니 거의 묘기대행진의 수준이라고 볼 정도.

현재와 달리 2000년대 초반 mma경기에서 선수들의 체급분화가 덜 체계적이었고 헤비급의 선수층이 얇았기 때문에 크고 느린 헤비급 선수들을 테크닉으로 공략하는게 가능했다. 비슷한 케이스로 k-1 의 카오클라이가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큰 선수들이랑 잘싸우니 체급을 내리면 본 체급 선수들하고는 더 잘 싸우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카오클라이도 큰 선수들과 잘싸우다가 정작 본 체급에서는 그다지 활약을 못했는데 효도르가 댄핸더슨에게 테크닉에서 밀린걸 보면 효도르가 체급을 내린다고 잘 싸운다는 보장은 없다. 체급이 낮아 질수록 대체로 테크닉이나 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효도르가 헤비급에서 보였던 속도나 테크닉이 아래 체급 선수들 입장에선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테크닉이 좋아도 힘에서 밀려버리면 답이 안나오기 때문에아래 체급선수들은 윗 체급으로 잘 안올라간다. [22] 선수들이 체급을 쉽게 높이거나 내리지 않는 건 이런 이유.

3.2 몰락

전성기에는 뚜렷한 약점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기술적으로도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첫번째는 타격. 효도르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잽이나 스트레이트보다는 훅성의 펀치를 즐겨 사용했다. 궤적이 커 안면이 노출 되는 단점을 빠른 스피드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겸한 접근력으로 보완했고 여기에 클린치 테이크다운을 섞으며 보완했다. 알롭스키와 대전전에 프레디 로치는 이 약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게 당시에 먹혔던 이유는 타격과 테익다운을 겸비한 파이터가 당시에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레슬링이 좋으면, 타격과 그라운드가 빈약하였고, 반대로 타격이 좋으면 레슬링과 그라운드가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효도르의 경기를 보면 타격과 클린치를 이은 테익다운을 레슬러인 콜먼이나 랜들맨등에게는 사용하지 못하고, 스트라이커였던 크로캅이나 기습적인 테익다운에 취약하였던 노게이라에게는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효도르의 전술을 최초로 완벽하게 봉쇄한 선수는 알롭스키였다. 그는 효도르를 펀치 싸움에서 압도하며 클린치 테이크다운조차 무력화시켰다. 비록 카운터를 허용하며 실신 KO패를 당했으나 알롭스키는 효도르를 상대로 확실하게 우위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노화로 인해 스피드가 느려졌으므로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진 탓도 있다. 물론 나이가 더 많고 더 작은 핸더슨에게 졌던 적이 있어 노화로 인한 기량하락이 큰 영향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래플링이 뛰어난 편이었으나, MMA계의 평균적인 그라운드 수준이 그의 실력을 추월하였고 특히 이러한 점은 링에서 케이지로 변하면서 더욱 부각되었다. UFC의 성장으로 링이 감소하고 케이지가 많아지자 링에 익숙한 많은 선수들이 팔각형 철장인 옥타곤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했고 효도르도 마찬가지였다. 옥타곤과 새로운 룰에서는 테익다운과 굳히기를 통해 경기장 중앙을 차지하고 구석으로 압박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때문에 클린치와 테익다운 공방능력을 위한 레슬링과 불리한 포지션에서 탈출과 상황을 뒤집을 스윕을 위한 주짓수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현재 효도르는 과거와는 달리 그라운드와 테익다운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한마디로 MMA 발전속도 및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문제의 원인이 훈련방식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동생인 알렉산더마저 언급할 정도로 자주 제기되었는데, 훈련량은 매우 높지만 정작 그 내용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훈련은 매번 폐쇄된 환경에서 소수의 스탭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으며 연패 이후에도 네덜란드에서 타격만 가끔 교류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문제는 체계적인 훈련과 기술교류를 중시하는 현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합동훈련 등으로 전력을 노출시킬바에는 아예 교류를 안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연패 이후 주짓수, 레슬링을 연마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었다는 평을 들었고,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물론 나이가 많아, 노화로 인하여 경기기량이 저하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효도르는 1976년생으로 MMA 무대에서 10년 넘게 30번이 넘는 경기를 치뤘다. 30대 후반과 마흔이 넘어서도 기량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선수는 30대를 전후하여 은퇴한다. 이미 이정도 전적을 가진 노쇠한 선수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스타일을 개량해 나가는 것은 어렵다.

이러한 타격패턴의 문제점, 새로운 그라운드 흐름에 대한 이해도 부족, 룰과 경기장의 변화는 그를 몰락시켰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고 말았다. [23]

네델란드에서 킥복싱을 배우는 등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안한건 아니다. 문제는 그 노력의 방향이 대세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거다. 주짓수와 레슬링을 소홀히 했으니까. 참고로 레드데빌은 효도르와 게가드 무사시 이후로는 이렇다할 세계구급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는 러시안 탑 팀도 마찬가지다.(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골든 글로리로 이적했으니 예외[24].)

베이스가 되는 삼보자체의 문제점도 있다. 삼보 자체가 타격 레슬링 그라운드가 포함되어 있어서 MMA 에 적응하기는 빠르다. 반면에 타격도 최정상급은 아니고 레슬링도 최정상급은 아니고 그라운드도 최정상급은 아니란 문제가 있다. 과거의 약점이 뚜렷한 선수들한테는 약점을 공략하긴 좋았지만 현재 추세는 특정 부분에 약점을 가진 선수는 없다시피하고 그 와중에 자기들의 특기 분야를 극강으로 살리는게 일반적이다.

  • 베우둠 전을 통해 그의 그라운드 및 파운딩의 약점이 공략 당했다.
  • 안토니오 실바전을 통해 그의 클린치 및 그라운드의 약점이 공략 당했다.
  • 댄 핸더슨전을 통해 그의 타격, 클린치 및 그라운드의 약점이 공략 당했다.

상위에서 포지셔닝 보다는 파운딩에 집중하는것과 하위에서의 움직임이 서툰것 등은 전형적인 삼보의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베우둠 전의 실수(해당 인터뷰에서 너무 서둘렀다고 말했다.)와 실바와의 체급 차이와는 달리 댄 핸더슨 전을 통해 그는 1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4 기타

모스크바 남쪽의 소도시인 스타리 오스콜(Старый Оскол, Stary Oskol) 출신으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이다. 때문인지 우크라이나 출신인 이고르 보브찬친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 국기를 두르는 세리머니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초청을 받은 일화 등을 생각하면 그의 정체성은 러시아인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듯 하다.

쇼맨쉽 마이크웍이 전혀 없고 항상 매너 좋은 모범생이다. 다르게 말하면 캐릭터에 임팩트가 없는데 극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따로 캐릭터를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유명해지기 전에는 대우가 별로 안좋았다. 노게이라와의 타이틀전에서는 5천 달러만 받고 싸웠다, 반면 노게이라는 3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PRIDE 챔프에 등극한 뒤에는 1천만 ~ 1천5백만엔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어플릭션이나 스트라이크포스에서는 30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 하지만 실비아, 알롭스키가 각각 80만, 150만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실력에 비해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오죽 딱했으면 별 상관도 없는 마크 콜먼이 '효도르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을까.

00년대까지만 해도 북미에서의 상품성이나 인지도는 그저그랬는데, 0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에서 활약하면 미칠듯한 피니시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0년대 초반 무렵에는 인기가 상당히 올라갔다. 실례로 CBS를 통해 방영된 2011년 2월의 실바전은 평균 74만 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하며 역대 Strikeforce 기록을 갱신했다.

물론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국민스타급이다. 일례로 2011년 M-1에서 가진 복귀전은 거의 10년 만에 러시아에서 치른 시합이었는데, 여기서 22,000명의 입장객과 750만 가구(생방송 490만)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관중이 2만명을 넘어가는 이벤트는 UFC 대회를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체형은 보다시피 배나오고 둥글둥글한 귀여운(!?) 체형이라 운동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운동량이 많아도 방법에 따라선 근육의 크기와 힘이 쎄질뿐 지방이 많이 소모되지 않기도 하며, 지방소모에 신경을 안쓴다 던가 식사량이 지방과 칼로리가 많을 경우 아무리 운동해도 저런체형이된다. 실제로, 효도르의 몸을 잘 살펴보면 근육양이나 체형 자체는 상당히 단련된 형태다. 비슷한 예로 유도선수들에게서 저런 경우가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친근한 얼굴 때문에 의외로 '귀엽다'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든 사진을 슈렉과 일치시킨 합성도 있다.

삼보를 비롯한 러시아의 격투기, 전통문화 홍보에 관심이 많다. 심지어 베우둠에게 패배한 후에도 '내가 잘못해서 진 것이지 삼보가 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

BJ 펜, 료토 마치다 등과 더불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다. 왜 약물을 한 게 아니라 안 한 선수를 찾아내는 신기한 현상이 나오냐면 격투기판에서 약물 사용이 광범위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UFC 에서 USADA 도입 이후로 많은 선수들이 적발되고 있다. 자신만만하던 BJ와 마치다도 약물에 걸렸으며 반달레이 실바나 크로캅을 비롯하여 과거 PRIDE에서 활동하던 동시대 선수들도 도핑에 걸렸다. 특히나 일본단체는 약물검사가 엉망이어서 PRIDE 출신들에 대해서는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게 대부분. 무엇보다 효도르의 팀 동료인 키릴도 약을 빨다 걸렸고 게다가 러시아가 약물 강국이란 것도 하나의 이유.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효도르는 걸린적이 없으니까 약물 논쟁이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약물 논쟁이 나왔냐면 긁어 부스럼이라고 효빠들이 효도르는 클린한 상태로 약쟁이들을 때려잡았다는 식으로 언플을 하니까 효까들이 반박을 하면서 논쟁이 생긴 것.

2010년 5월 정계 진출설이 돌면서 은퇴설이 돌기도 했다. 스트라이크포스와 계약된 2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하원의원 선거에 진출할 것이라고 한다. 근데 떨어지면... 이에 대해 효도르측의 의견이 나왔는데, 정계 진출은 맞으나, 은퇴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떨어지면 돌아와야 한다니까 결국 떨어지고 돌아와서 졌다. 제대로 망했다.

성격도 굉장히 착한데다 멘탈도 매우 좋다. 광팬들과 그의 매니저 바딤 핀켈슈타인만 아니면 까일 일이 없는 선수. 빠가 까를 만든다까가 빠를 만든다 두 공식의 수혜자다.

카와스미 아야코가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과연 여왕님이라고나 할까. 기사왕은 격투황제를 존경하는가. 링크

2012년 5월 18일 러시아 MMA연맹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13년 김보성과 같이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이라는 으리 영화에 출연[25]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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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비가 붙어도 조용조용하게 말로 해결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원래 운동 좀 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정신적인 수련도 하는 겸이여서, 정신이상, 술/마약 등 어딘가 중독되지 않은 이상 나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그런데 솔직히 누가 시비를 걸겠어 비슷한 성격을 가진 러시아 운동선수가 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럼 우리나라 체대의 똥군기는 뭘로 설명해야 하지

히스토리 채널 인간 병기에서는 삼보편에서 사범으로 출연해서 진행자인 제이슨 챔버스, 빌 더프에게 삼보를 가르쳐주고 그들에게 대전상대를 정해줬다. 제이슨 챔버스의 말로는 표도르가 직접 나와서 대련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2016년 10월에 그의 딸이 길거리에서 괴한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기사에서 나온 것 처럼 사건의 배후에 람잔 카디로프 현 체첸 공화국 대통령이 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4.1 악역

평소의 매너 좋은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PRIDE에서는 악역 최종보스 이미지였다. 과묵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어레인지하여 냉혹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마케팅에 들어가 '차가운 눈동자(冷たい瞳)의 챔피언'이 되었고 오히려 그에 맞서는 랜들맨, 오가와, 노게이라 등이 '뜨거운 영혼(熱き魂)'의 선역[26]으로 부각되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PRIDE의 아이돌 출신 여성 해설자인 코이케 에이코는 노게이라가 효도르에게 난타당하자 울어버리기까지 했다.

북미권에서도 'ice cold'한 이미지로 통한다. 이쪽은 어째 돌프 룬드그렌같은 이미지다. 테마곡인 Era의 'Enae Volare Mezzo'는 북미 PRIDE 해설자이자 UFC 4대 헤비급 챔피언인 바스 루텐이 가장 좋아하는 테마곡이라고 한다.

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terminator.jpg

대강 이런 식

이 때문일까? 일본에서는 경기장에서의 엄청난 환호와는 달리 인기가 거의 없다. 일본의 한 잡지에서의 종합 격투기 선수 인기 투표에 따르면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 2%정도밖에 안됐다고 카더라.[27] 미국에서도 밉상으로 통한다. 러시아인인데다가 전UFC 챔피언을 4 관광시킨 탓도 있고 거기다 그 넷 중 세명이 미국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그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팬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때문에 PRIDE에서는 탑독임에도 청코너에서 등장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관중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대부분 상대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유일하게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응원을 받았던 경기가 있는데 바로 베우둠전이다. 데뷔 이래로 그렇게 환호를 받은 경기가 없었는데 그만 져버렸다.

그래도 MMA계의 전설에 대한 예우로 야유를 받는 일은 별로 없으며, 환호를 받은 상대선수들도 죄다 효도르보다 원래 인기가 많은 선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아무나 이겨라" 분위기(…) 콜먼 전에서는 미국 무대 데뷔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죄다 'Fe-dor' 챈트를 하기도 했다. 모 안습 챔프의 경우는 야유를 받았다(…) 그렇다고 효도르도 일방적으로 환호를 받은 건 아닌데, 입장할 때 야유를 받다가 상대를 KO시킨 후 관중들이 놀라서 벙쪄있다가 환호를 받으며 퇴장한다.

하지만 노게이라가 그랬듯이 이 분과 경기를 했으면 야유를 받았을 듯.[28]

4.2 한국과의 관계

삼보 세미나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무한도전에 출연해 멤버들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정상급의 선수치고는 배가 좀 나오고 뚱뚱해보여서 안티들에게는 '효돼지'라고 까인다.아니,까인다기 보다는 다른나라엔 이런 별명이 없다. 별칭으로 부르기는 하는데,,,또한 2005년 이후부터는 떡밥 매치가 대다수였기에 "효공무원"이라는 별명으로 까이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인기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란건 변함이 없다. 프라이드 이후 몇몇 경기는 러시아와 한국에서만 중계권을 산 적도 있다. 참고로 무한도전 토이 애니메이션 "무한도전의 휴일"에 하하의 게임친구로 나왔다. 이걸도 보아서 무한도전이랑은 꽤나 친숙한듯.

흑역사가 되어버린 선유꿀 광고가 있다. 이 광고로 '꿀도르' 란 별명도 얻었다. 왜 흑역사냐면 효도르가 이 광고에 대해 15억원대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기 때문이다. 아니 "선유꿀 좋아요" 해놓고(...)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건 말도 안된다. 아마도 M-1측은 촬영 이후에 좀 더 떡고물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자 소송을 걸었던 모양. 여담으로 이 광고는 마비노기 메인스트림에서 패러디 되었다.

한국언론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쇼프로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며 온라인 게임 런칭 이벤트나 CF도 외국인 스포츠맨 중에선 독보적으로 많이 출연한다. 심지어는 동생인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역시 효도르의 동생이란 타이틀로 스타킹에 출연한 적이 있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도 카메오로 출연. 사실 쇼맨쉽이 떨어져 실력에 비해 인기가 없는 편인데 한국에 왔을때 열광적인 반응에 감명을 받았다고.

2008년 방한 때는 이파니와 데이트를 한적이 있다. 유명 격투기 선수와 플레이보이 모델의 만남이어서 해외 언론에서 스캔들성 기사가 나기도.

2010년 9월에는 대한삼보협회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더불어 11월에 다시 한국을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석, 같이 온 아내와 함께 김장절대 2번 항목이 아니다! 2번항목이었다면 효도르 는 아마 지금도 감옥에 있었을 것이다을 담갔다. 평소에 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도 밝혔다. 평소에 김치를 먹는다는 말은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김치를 잘 먹기는 한다. 묵은지를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외국인 중 하나. 사실 러시아 요리 항목을 가보면 알겠지만 러시아 요리중에 고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식 당근·마르코브 포-코레이스키 즉 당근김치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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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훈련과정

훈련에 대해서는 링크에 나오는 바와 같이 주로 산에서 한다. 산에서 달리기를 비롯하여 체력훈련과 기술훈련을 하며 특별히 비싼 도구를 사용하진 않는다. 산에서 달리기를 할 때는 타이어를 끌고 달리는 경우도 있고 그냥 달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커다란 쇠망치로 타이어를 내리치는 등 타이어를 최대한 활용해서 훈련을 한다.

4.4 별명

링네임 이외에도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ロシアン ラスト エンペラ. 일본에서 유래했다. Rings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붙여졌다. 셔독의 링네임이나 북미에서는 '러시안'을 빼고 'The Last Emperor'라고만 한다.
  • 얼음 주먹
氷の拳. 일본에서 유래했다. 히스 헤링을 파운딩으로 때려눕힌 경기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기에 붙여졌다.
  • 얼음의 혼
氷の魂. 일본에서 유래. 항상 침착냉정한 멘탈과 악역의 이미지가 겹쳐져 만들어짐.
  • 60억분의 1
역시 일본에서 유래. 그가 우승한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의 부제이기도 하다.
  • 효돼지
동글동글한 체형과 얼굴이 귀엽다며 이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체형관리를 안한다고 비난의 의미로 쓰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이런 친근한 이미지는 없다. 일본에도 비슷하게 효부타(돼지)라는 별명이 있다.
  • 효느님, 효돌신
한국 한정. 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빠들이 붙여준 별명.
  • 꿀도르
선유꿀 광고 때문에 붙은 별명.

4.5 PRIDE 해체 이후의 행보

00년대 PRIDE 헤비급은 UFC조차 능가할 정도로 극강의 라인업이었고 그 중심에는 효도르가 있었다. 비록 몸값은 조쉬 바넷보다도 낮았지만 그가 가진 최강이라는 이미지는 MMA 시장에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PRIDE가 없어진 후 그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4.5.1 Zuffa와의 협상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끼다 똥 된 경우. 그야말로 5년 간에 걸친 밀당의 현장을 볼 수 있다.

2007년 UFC가 제의한 몸값은 4경기에 경기당 200만 달러(보너스를 제외한 순수 파이트머니만!). 이것은 효도르가 몸값에서는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크로캅(35만달러)이나 UFC의 살아있는 신화인 척 리델(50만달러, 당시 최고액)보다도 높은 금액이었으며 2013년 현재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비공개 사항일 계약금이나 커머셜 피를 합치면 이 금액은 갑절에 이르렀을 것을 예상되었다. 하지만 효도르는 이를 거절하고 Affliction, Strikeforce 등 2위권 단체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이때문에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기서도 UFC에서 계약 조건으로 내걸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파이트머니를 수령했기에 바딤이 다 가져가서 그렇지 파이트머니 액수 문제를 제기하기엔 논란이 많이 따랐다.

Zuffa와의 첫 번째 협상은 결렬되었으나 Affliction에서 보인 활약이 워낙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에 2009년 Affliction의 철수 이후 다시 Zuffa의 입질이 시작됐다. 이 때 UFC가 제안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파이트 머니는 경기 당 300만 달러.
  • 데뷔와 동시에 타이틀전.
  • PPV 수당 지급.[29]
  • 삼보 출전 가능.[30]
  • M-1 홍보 허용.

Zuffa의 조건은 유례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만약 이 계약이 실행되었다면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을 역대 최고의 대전료였을 것이다. M-1 홍보 조항은 M-1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옥타곤 바닥에 M-1 로고를 새겨넣는 정도까지 허용했는데, UFC가 자신들의 스폰서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몇 의류 브랜드의 옷을 입지 못하게 한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조건 역시 퇴짜를 맞으며 UFC행은 다시 한 번 좌초된다. 또한 이 쯤 되자 팬들과 안티 사이에서 농담으로만 돌았던 효도르 도망설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효도르의 안티가 늘어나기 시작한것도 이 시기였다.

표도르 측은 독점계약과 종신계약 조항 등을 물고 늘어졌으나 M-1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UFC와의 공동개최'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Zuffa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M-1의 요구조건은 한 마디로 '표도르를 빌려줄테니 파이를 갈라먹자'였는데 북미에서 맨땅에 헤딩해가며 UFC를 일궈 온 Zuffa와 데이나 화이트가 그걸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 결국 표도르는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Strikeforce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백사장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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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표도르 예멜리아넨코/money2.gif

돈을 들고 쫓아오는 화이트와 도망치는 효도르. 왜 돈을 주는데 받지를 못하니 더 줘

그러던 것이 2011년 Strikeforce에서 퇴출당한 이후에는 갑을이 완전히 역전되어 표도르측이 UFC에 러브콜을 보내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Zuffa 측이 완강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 급기야 M-1이 공동개최도 필요없다며 어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나 UFC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2차례나 UFC행을 거절한 표도르의 행보는 많은 팬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최강자의 자리에 있던 그가 최고의 무대에서 싸우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 물론 데이나가 공동개최를 받아들였다면 성사되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무리한 요구조건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M-1과의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Affliction과 Strikeforce는 그 말로가 좋지 못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표도르가 무서워서 UFC에 안간다'는 일명 겁도르설이 떠돌기도 했다.

4.5.2 패배 이후

베우둠전과 실바전에서의 패배로 그의 가치는 대폭 하락하게 되었다. 애초에 효도르라는 파이터가 가진 가치는 그의 무패 전적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8년간 수성해 오던 셔독 랭킹 1위를 내주었고, 헤비급 내에서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M-1 또한 효도르와 동반 몰락 중.

2010년 베우둠에게 패할 때만 하더라도 '최강에서 물러났을 뿐, 여전히 강한 선수'로 평가받았으나 2011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안토니오 실바에게 패하면서 헤비급에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

한 체급 아래의 댄 헨더슨과의 경기에서도 KO패를 당한다.

셔독 랭킹은 베우둠전에서 3위, 실바전 후에는 8위로 내려앉았고 헨도전 이후에는 랭킹 밖으로 밀려났다.

4.5.3 복귀 가능성

2011년 첫 은퇴 당시에는 복귀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고 실제로도 은퇴 발언 이후 단 3일만에 번복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12년 두 번째 은퇴 이후로는 아예 복귀하지 않기로 못을 박아버린 듯 하다.

기실 효도르는 Affliction 시절부터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왔고 2010년에는 정계진출 의향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은퇴 후의 인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M-1 Global의 운명을 고스란히 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은퇴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만도 사실이다. 효도르 없는 M-1은 그 가치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 게다가 M-1에게 착취당하고 있는과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Strikeforce 역시 그가 이탈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M-1의 바딤 핀켈슈타인은 실바전 후의 인터뷰에서 '효도르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를 설득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효도르의 프로모션을 쥐고 흔들던 바딤의 말인 만큼, 이 발언이 갖는 의미는 크다. 게다가 Strikeforce의 스캇 코커 역시 '효도르가 리저버로 토너먼트에 난입하거나 베우둠-오브레임전의 패자와 싸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니 그럴거면 발렌타인이랑 로자리오는 왜 불렀는데

그리고 역시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1년 2월 13일 러시아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불과 3일만에 은퇴를 번복했다. 가능하면 헤비급 토너먼트를 통해 복귀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노쇠한데다가 무엇보다 약점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Strikeforce의 경우 꽤나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효도르의 상품성은 M-1 뿐 아니라 스포 입장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일단 은퇴는 막았고, 어떻게든 헤비급 GP에서 다시 한 번 굴려 보겠다는 것이 스캇 코커의 입장. 리저버 4인방은 그냥 지못미.

결론을 말하자면, 먹여 살리는 입이 여러개다 보니 은퇴도 마음대로 못했던 몸이었다. 안습.

이후 M-1과 계약을 맺었던 Strikeofoce가 UFC에 합병된 이후 3연패로 인해 퇴출당한 이후로는 주가가 많이 떨어졌고 매니아들의 관심도 많이 식었다.은퇴했는데도 반년넘게 위키에 작성이 안됐을 정도 이후 2012년 6월까지 M-1에서 3경기를 뛰고 은퇴했다. 예전에 비해 경쟁력도 상품성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M-1측도 은퇴를 말릴 생각은 없었던 듯 싶다.

2013년 1월, 데이나 화이트가 기자회견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 효도르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역시 은퇴한 브록 레스너를 불러와 달라스에 있는 스타디움에서 거대한 복귀전을 기획하고 있었고, 양측의 설득도 순조롭게 끝난 상황이었지만 그만 효도르의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효도르는 복귀 의사를 잃고, 가족에게 충실하게단 말과 함께 협상을 그만두었고 그 소식을 들은 레스너도 복귀를 번복하였다. 팬들에겐 향후 효도르의 개인상황에 따라 복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또한 수 년동안 겉으로는 그렇게 까대면서도 여전히 효도르를 대려오려고 한 데이나 화이트의 츤데레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2015년 7월, 복귀를 선언했다!! 다만 약물규제로 집단으로 너프먹으니까 복귀한 거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많다. 그런데 사실 약물규제로 너프 먹은건 해당 선수들 잘못이다. 실제로 UFC에서 약물규제가 강화된 이후 체급을 올리려는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파이터가 늘어났으며 프랭크 미어의 뜬금없는 2경기 연속 KO와 이 시기 이후 판도 변화가 약물규정 강화와 타이밍이 얼추 들어 맞는다.

반면에 효도르의 귀환을 반기는 팬들과 파이터들도 다수. 특히 프랭크 미어, 안드레이 알롭스키 등 동시대를 풍미했던 올드 파이터들이 환영의 멘트와 함께 한판 붙자(...)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2015년 8월 5일 UFC와 협상 중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왕이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선수와 싸우고 싶다며 주제도 모르고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파브리시오 베우둠과의 대결을 원한다고 밝혔다.[31]

그러나 결국 UFC를 통한 복귀는 무산되었다.

4.6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

웬지 누군가와 표도르의 합성같다
동생인 알렉산더도 형과 같은 삼보의 강자이다. 형을 따라 PRIDE에 입성했으며 M-1 등의 무대에서 MMA 파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PRIDE 시절 "나를 꺾을 상대는 동생 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 물론 이제 와서 베우둠안토니오 실바, 그리고 댄 핸더슨이 들으면 폭소할 말이다.

2006년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알렉산더가 미르코 크로캅에게 KO로 패했을 때 하이킥에 맞아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크로캅이 파운딩을 하자 'Сука(쑤까)'[32]라며 욕설을 날렸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

그러나 바딤 관련으로 문제를 겪은 후 관계가 소원해진 듯 하다. 알렉산더가 스킨헤드와 어울리며 인종차별 혐의를 받으면서 더욱 악화된 듯.

4.7 바딤 핀켈슈타인

M-1의 보스이며 효도르의 매니저이기도 한데, M-1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뒤에도 효도르 한명만 믿고 다른 멀쩡한 단체들에게 공동개최를 요구하며 민폐를 끼치고 있다.

당연히 효도르에게는 전혀 득될 것이 없는 인간이지만 왜인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사기꾼한테 속고 있다 동생인 알렉산더조차 효도르와 바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 항간에는 효도르가 약점을 잡혔다느니 실은 M-1의 지분을 공동소유한 공생관계라느니 루머만 무성하다. 효도르의 UFC행이 좌절된 이유도 99.99%는 바딤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짚어볼 사실이 있다. 일단 M-1 측에서는 효도르가 자신들의 대주주이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M-1 글로벌의 부사장이자 미국 책임자인 제리 밀렌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Fedor is part owner in M-1, and Fedor has complete faith in Vadim," Millen said. "Fedor was there in negotiations with the UFC, and he knows exactly what was offered, what was going on." #
(표도르는 M-1의 주주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표도르는 UFC와 협상할때 같이있었으며 또한 UFC측에서 그에게 무슨 오퍼를 넣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즉 표도르가 M-1 글로벌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공식으로 발언한 것이었다. 효도르가 M-1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M-1의 사업 확장에 동의하는 것을 본다면 그가 소유한 M-1 글로벌의 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바딤 측과 표도르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지만..

사실 효도르가 격투기 선수 답지 않게 국제 무역을 전공하였고 또한 이것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인데 바딤의 봉이 돼서 그 몰래 돈을 뜯어내는 것을 순순히 당하고 있을리 없잖는가. 그간의 행보를 보면 효도르는 바딤과 함께 실질적인 M-1의 공동 소유자이자 공동 경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33] 또한 효도르도 격투기 선수만 평생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때문에 그는 M-1을 경영 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 같고 또한 이것은 그의 전공에도 맞다.

하지만 돈이 돌아가는 상황은 또 다르다. PRIDE가 해체된 이후 효도르는 매 시합마다 1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급받아왔다. 그런데 이 금액 중 상당부분이 M-1의 주식에 투자되었다. 예를 들어 2011년 6월의 Strikeforce 대회에서 효도르가 받은 파이트머니는 150만 달러인데 효도르는 이 중 120만 달러를 M-1의 주식을 사는데 썼다. 2009년 11월의 Strikeforce 데뷔전에서 Strikeforce가 M-1 측에 지급한 금액은 230만 달러인데 그중 200만 달러를 바딤과 M-1이 절반씩 먹었고 정작 효도르에게는 30만 달러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효도르가 이러한 자신의 투자행위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현금을 마다하고 구입할 정도로 M-1의 주식이 가치가 있을까. 물론 30만 달러도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고 구소련에서 청년기를 보낸 효도르의 경제관념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이런 현상은 러시아 MMA 전반에 걸친 일이기도 하다. 일례로 러시안 탑 팀의 경우는 00년대 중반 무렵 지속적으로 선수들의 대전료를 갈취해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실은 이 사건에 효도르와 알렉산더도 연관되어 있는데, 당시 에밀리아넨코 형제는 자신들의 대전료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34] M-1의 주장에 의혹이 더해지는 것은 이러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확실한 것은 효도르와 M-1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정도.

4.8 효도르의 저주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저주 항목 참조.

4.9 거품설

표도르 예멜리아넨코/거품설 참조.

4.10 최면술 드립과 진실공방

표도르 예멜리아넨코/최면술 사건 참조.

4.11 효빠

2000년대 헤비급의 최종보스였고 MMA의 레전드 중 하나였던 만큼, 효도르에게는 큰 팬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검증을 하지 못할 주장을 남발하는 이들이 많다. 주 레파토리는 효도르가 역대 MMA 선수 중 최강이라고 주장하는 것. 효도르의 세 번의 패배를 방심, 약물 등 때문이였다고 아득바득 우긴다. 일단 효도르가 베우둠전에서 성급했던 것은 맞지만, 그건 본인의 실책이지 베우둠을 깎아내릴 이유가 못 되고, 안토니오 실바가 과거에 약물적발을 당한 전적은 있지만, 효도르와의 경기에서는 심사를 통과했다.[35] 육체의 노쇠화를 핑계대기도 하지만, 효도르를 해머피스트로 실신시킨 댄 핸더슨은 효도르보다 6살이나 많고 2체급이나 아래인 선수였다. 베우둠은 효도르 보다 한 살 어린데 케인을 이기고 UFC 챔피언까지 먹었다. 안토니오 실바도 3살 밖에 차이가 없다. 2016년 5월 기준 UFC 헤비급 랭킹 TOP10에서 나이 많은 선수를 꼽아보자. 알리스타 오브레임 36살 베우둠 39살 벤 로스웰 35살 알롭스키 38살 마크헌트 42살 조쉬바넷 39살 로이넬슨 40살 효도르가 댄 핸더슨한테 진 나이가 34살이다. 그러니까 지금 UFC 헤비급 탑10 중 7명이 당시 효도르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다. 또 노쇠화를 주장하면서 타 스포츠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MMA 에서 나이먹고 뛰는 건 워낙 흔한 일이라 당시 효도르 나이대면 오히려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기준으로 UFC 챔피언의 나이를 보자. 스티페 미오치치는 35살, 다니엘 코미어 38살, 마이클 비스핑 38살, 타이론 우들리 35살, 에디 알바레즈 33살, 코너 맥그리거 29살, 도미닉 크루즈 32살, 드미트리우스 존슨 31살, 20대는 코너맥그리거 한명 뿐이다. 실제로 효도르의 최근 말도나도전 움직임을 보면 노쇠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3연패에서 몇년이 지난 지금조차 스텝이나 핸드스피드는 전성기때 못지 않다. 그리고 3연패 할 당시에도 딱히 움직임 자체가 노쇠화 해서 타격으로 발리거나 한 게 아니었다. 베우둠전은 어처구니 없는 전술의 실패였고, 핸더슨전도 원래 문제로 지적 받았던 레슬링과 주짓수가 한계를 들어낸거였고 이때도 타격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핸더슨한테 카운터 먹고도 금방 회복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핸더슨을 핀치로 몰아넣기 까지 했다. 즉 이것저것 패배에 핑계를 두며 효도르를 세계 최강의 파이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트래쉬 토크의 달인인 차엘 소넨도 이 점을 지적했다.[36] 워낙에 말이 공격적이였고, 소넨의 평소 이미지 때문에 흘려들은 사람들도 많을 지 모르지만, 차엘 소넨은 요즘 동네북인 실바와 핸더슨에게 털린 효도르를 최강의 파이터라고 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 효도르가 빡센 일정을 소화했다는 것에 대한 반론도 되는데, 전적이 몇전이 되든 떡밥이 상당하다는 것.

UFC 지상주의가 아니라도 Strikeforce에서 보여준 효도르의 모습은 절대 최강의 선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강이여야 할 격투기 선수가 3연패를 하고 퇴출당한 시점에서 그 선수는 애초에 1인자도 최강자도 아니다.

위의 셋뿐만이 아니라, 과거 효도르와의 경기에서 편파논쟁이 있었던 히카르도 아로나까지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로나는 효도르를 깔아뭉게고 상위에서 압박했고 연장까지 가고 난 후, 서브미션 시도가 더 많았던 효도르에게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극성 효빠들은 아로나가 스탠딩으로 붙었으면 바로 초살당했을 거라고 아로나를 깎아내리는데, 이것은 그냥 아로나의 스타일이고 효도르야말로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데 전문가였다. 사실 MMA 에서 자신의 특기대로 싸우거나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건 비겁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영리하고 권장되는 플레이다. 효도르를 신격화시키는 극성 팬들이 과거에 아로나가 효도르와 치열한 접점을 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깎아내리는 것 뿐.

루머를 만들어내는 것도 기가 막히다. 효도르의 링네임인 '마지막 황제'는 Rings 해산 전 마지막 챔피언이었던 것이 유래한 건데, 효빠들은 이를 MMA에서 '황제'를 링네임으로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선수라고 헛소리를 퍼뜨린 전적이 있다.

이외에도 케인 벨라스케즈다니엘 코미어가 활약할 때, 굳이 '포스트 효도르', '블랙 효도르' 따위의 별명을 붙혀 간접적으로 띄우려는 경우도 있는데[37], 당연히 벨라스케즈나 코미어의 팬은 대부분 이를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관점에 따라서는 그들이 최강이라고 주장하는 효도르를 비참하게 유린한 안토니오 실바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던 벨라스케즈와 코미어에게 효도르 따위를 비교하는 것은 둘에게 실례라고 할 수도 있다.

효빠 중에서는 특히 벨라스케즈를 까며 물타기를 하려는 종자가 많은데 이들의 주장은 다 효도르 얼굴에 침뱉기다. 주 레퍼토리는 벨라스케즈가 베우둠에게 당한 패배인데 1분만에 베우둠에게 팔장애인 될 뻔하고 탭친 효도르의 팬들이 할 말은 아니다.

업계에서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 로건게가드 무사시가 있다.

4.12 효까

반대로 효도르를 필요 이상으로 폄하하는 안티 역시 존재한다. 주된 주장은 효도르의 커리어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 일본에서 떡밥만 먹으며 PRIDE의 밀어주기로 만들어 낸 이미지의 거품'이라는 것이다. 즉 효도르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

이들의 특성을 꼽아보자면 첫번째로 효도르와 싸운 선수들을 모두 떡밥이나 거품으로다. 왜냐하면 그래야 '효도르는 강자와 싸운 적이 없고 떡밥만 먹었다'라는 주장이 유효해지기 때문. 그래서 Strikeforce가 존속했을 때는 베우둠이 떡밥으로 몰리기도 했다. 효도르와 싸웠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표도르 예멜리아넨코/거품설에서도 볼 수 있듯 효도르의 상대 중에는 10위~20위권 내의 강자들이 포진해 있었고 이런 선수들과 싸워온 효도르의 커리어는 MMA 헤비급 역사상 노게이라에 이어 2번째로 험난한 대진이었다. 참고 물론 차엘 소년이 지적했듯이 전적이 몇이든 떡밥이 많은 곳은 부정할 수 없고 효도르와 같은 일본 무대에서 뛰었던 오브레임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따라서 랭킹제에 매우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랭킹제를 받아들일 경우 효도르의 상대들이 당시를 기준으로는 강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랭킹을 무시하고 내가 보기에 이 선수는 실력이 없어 보인다라는 논리를 들이댄다. 주로 '이 선수 A는 B에게 패했으니 그 선수보다 밑이고 그 B는 또 C에게 패한 적이 있으니 A는 그보다도 밑이고...' 하는 단편적인 승자승식 짱개논리가 주를 이루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세상에 거품 아닌 선수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랭킹은 선수의 '실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평가방식 중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다. '실력'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고 개인의 기준에 따라 갈릴 여지가 있으나, '실적'은 경기의 승패라는 뚜렷한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주관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아무리 주관을 넣어도 진 경기를 이겼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UFC 지상주의자가 많다. 오직 UFC만이 최고의 단체였고 당시에도 UFC 이외의 단체에서 쌓아올린 전적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PRIDE를 비롯한 일본의 단체는 떡밥매치나 하던 서커스 단체로 몬다. 하지만 당시를 기준으로는 UFC의 선수층도 탄탄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중량급은 일본 단체들의 선수층이 더 우위였다. 단적으로 2003년~2006년 사이의 UFC 헤비급의 면면을 살펴보면 간 맥기나 저스틴 아일러스, 폴 부엔텔로, 제프 몬슨 등이 타이틀전에 나설 정도로 부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노게이라, 크로캅, 하리토노프, 베우둠, 바넷, 헤링 등을 보유한 PRIDE 쪽이 압도적이다시피 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들 중 다수가 2016년까지도(!) UFC 상위 랭커로 활약하고 있을만큼 당시 PRIDE 헤비급은 강자들의 향연이었다. 반면 당시 UFC 랭커 중 2016년까지 살아남은 선수는 미어와 알롭스키 정도다. 알롭스키는 지옥까지 내려갔다 올라왔고...

미묘하게 크로캅에게 호의적이다. 실제로 나무위키의 서술도 효도르에게 우호적으로 작성될 때는 크로캅에게 부정적이 되고, 크로캅에게 우호적으로 작성될 때는 효도르에게 부정적이 된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효빠와 캅빠의 뿌리깊은 반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효까 집결지인 격갤만 봐도 크로캅에게는 상당히 우호적이고, 과거 엔하위키 시절 효도르가 극찬을 받았을 때 크로캅 항목에는 욕 밖에 없었다. 미르코 크로캅/별명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물론 이종카페나 앤디훅처럼 양쪽 모두에게 호의적인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업계에서 대표적인 인물로는 데이나 화이트차엘 소넨 등.
  1.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표도르'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본 격투기 무대에서 주로 활약하면서 일본쪽 표기와 발음에 의지하다보니 우리나라 팬들도 대부분 효도르라고 부른다. 종성 발음이 한국어에 비해 적은 일본어와 f 계열 발음이 현대 한글 표기에서는 안 쓰이는 한국어의 차이. 그런데 본인에게 '표도르'와 '효도르' 중 어느 것이 맞냐고 물어봤더니 '효도르가 맞다'고 대답했다는 말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러시아어의 Ф는 영어의 f보다 훨씬 입술을 약하게 물기 때문에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어의 ふ와 발음 방법이 같... 진 않고 소리만 비슷하다. 일본어 ふ는 무성양순마찰음.
  2. 실제 발음은 표다르 블라디미라비치 예몔랴녠까에 가깝다.
  3. http://www.global-mma.com/t4341-fedor-facts-by-kusok
  4. Rings 해산 전 마지막 챔피언이었던 것이 유래.
  5. 사실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내에서 삼보를 알리게된건 효도르 덕분이라 보면된다. 지금도 덕택에 미국선수중에서는 레슬링 출신들이 많은 것 처럼 동구권의 파이터들 중에서는 삼보선수출신들이 많다.
  6. 동화 일러스트같은 귀엽고 훈훈한 일러스트가 꽤 있다
  7. 둘의 체중차가 15kg나 났는데다 아로나는 일본에 오기전까지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8. 문젠 스탠딩보다 그라운드가 더 많았던 경기
  9. 효도르는 경기 뒤 이 팔꿈치 공격이 자신이 이전의 아로나와 가진 경기에서 입었던 상처를 벌어지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10. 4대 무차별급 챔피언인 길버트 아이블이 PRIDE로 이적하며 타이틀이 공석이 되자, 이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된 대회다.
  11. 이후에도 주먹 부상을 언급하면서 중요한 경기를 질질 끄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을 정도다.
  12. 농담이 아니라 효도르는 경기내내 아무것도 못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정도 노게이라의 가드에 농락당했다. 장기인 얼음파운딩은 노게이라의 가드에 막혀 죄다 단발로 끝났고 피해도 못줬다. 화면에서도 효도르가 당황한 기색이 눈에 보일정도 였는데, 간신히 가드에서 빠져나와놓고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노게이라의 품에 무력하게 안기는(...) 장면이 나올 정도. 분위기를 바꾸려 스텐딩 선언이나 스톰핑을 날릴법도 한데
  13. 이는 국내 기준으로 당시 방송사였던 XTM에서 세기의 대결이라면서 광고를 질리도록 많이 해줬던 덕분이었다. 어느정도 였냐면 시내버스 측면 광고판에도 광고를 붙였고, 해당 경기를 효도르 팬과 크로캅 팬을 초청해서극장에서 생중계 해주기도 했다. 크로캅 자체도 K-1 경력 등의 이유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 10%라는 당시 마이너 매체였던 MMA 중계로(그것도 외국 선수간의 대결로) 케이블 기준 대박 시청률이 나오게 되었다. 이 경기 이후 최홍만의 분전과 겹치면서 국내 격투기 붐이 일게 되는 계기가 된다.
  14. 엄연한 반칙이다. 이것때문에 한동안 까였고 효도로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15. 게다가 정타도 거의 없었다.
  16. 타격에서도 오히려 실바의 뒷손 스트레이트에 크게 휘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7. 더구나 이 경기가 있었던 11월 20일에는 UFC 139의 댄 헨더슨 vs 마우리시오 쇼군의 역사적인 명승부가 있었기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18. 오랜 기간 Sherdog 헤비급 랭킹 1위였다.
  19. 사실상 타격 서브미션승. 영상을 자세히 보면 자이딥 싱이 탭을 친다.
  20. 유도 선수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21. 단 이 공격은 강한 만큼 주먹 부상의 위험이 컸다. 잘못하다간 자기 공격에 자기 주먹이 부러진다.
  22. 이걸 잘 보여준게 코너 맥그리어와 닉 디아즈의 싸움
  23. 효도르와 동세대(2000년대 초중반)의 탑파이터 중 2011년에 이르러서도 헤비급에서 정상권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프랭크 미어 정도. 그리고 그 미어 조차 2012년 이후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6년에 와서 마크헌트 베우둠 안토니오 실바 안드레이 알롭스키,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이것도 옛말이 되버렸다.
  24. 하리토노프 역시 부진상태로 상향된 올라운더의 유행을 버티지 못했다.
  25. 배역 이름도 ФЁДОР표도르 - 동료들은 애칭인 페지아ФЕДЯ라고 부른다(데д는 야Я 앞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페댜'로는 들리지 않는다).
  26. 예외가 있다면 크로캅 전. 크로캅의 캐릭터는 '차갑지만 나쁜 놈은 아닌 사람' 이어서 이런 대립으로 끌고가기엔 여러모로 곤란했는지, 이 경기는 선악 대결이 아닌 초인간의 대결로 홍보되었다.
  27. 참고로 1위는 약 50%의 지지율을 얻은 크로캅이며, 그 뒤를 노게이라, 세르게이 등이 이었다.
  28. 거기다가 커투어의 기믹은 캡틴 아메리카이다. 효도르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이고...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뭐긴 뭐야 경기 시작과 동시에 USA 챈트 폭발이지
  29. PPV 수당은 어지간한 톱 스타가 아니면 받지 못한다. 심지어는 효도르 이상으로 인기가 많은 반더레이 실바같은 파이터들도 쉽게 받지 못할 정도이다. 효도르의 미국 내 상품성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라 볼 수 있겠다.
  30. 이 역시 UFC의 독점 계약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전 계약 당시 효도르 측이 문제삼았던것도 이 부분이었는데 쿨하게 허용해준 것.
  31. 당연하지만 성사되면 효도르에게 있어서는 공개처형이나 마찬가지다. 말도나도와 비길 정도로 기량이 떨어진 현 상황에서 아직도 UFC 헤비급에서 활약하는 베우둠을 상대로는 답이 없다.
  32. 개새끼
  33. 효도르가 M-1을 알리는 것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보려면 그가 경기를 가지기 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안토니오 실바와의 대전에서도 어플릭션과 M-1 글로벌의 대회에 참여하여 기쁘다 라고 발언하며 이 대회에 M-1이 참여 하고 있음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34. 이후 에밀리아넨코 형제는 RTT를 나오고, 이를 하리토노프가 비난하면서 PRIDE가 이걸 대립구도로 써먹는다. 실은 하리토노프도 곧 RTT에서 뛰쳐나왔다...
  35. 헨더슨은 금지약물을 적발당한 것이 아니라 TRT를 받았기 때문에 비판받았다. 규정상으론 합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도핑사실을 시인하는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바는 스테로이드도 걸렸고 TRT도 했다.
  36. 효도르는 전적 3승 3패의 평범한 선수라고 주장.
  37. 애초에 파이팅 스타일도 다르고 유사점도 없는데, 그냥 승승장구하던 둘에게 효도르를 붙히고 싶은 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