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올림픽
역대 동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
20회 | → | 21회 | → | 22회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 →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 →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
2010 Winter Olympics Jeux olympiques d’hiver de 2010 XXI Olympic Winter Games In Vancouver | ||
대회기간 | 2010년 2월 13일~3월 1일[1] | |
개최국가/도시 | 캐나다/밴쿠버 | |
대회 이념 | With glowing hearts Des plus brillants exploits (빛나는 이 마음과 함께) | |
공식 주제가 | One Dream | |
마스코트 | 미과, 콰치, 수미, 묵묵 | |
참가국 | 82개국 | |
참가선수 | 2,576명 | |
경기종목 | 15개 종목, 86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미카엘 장 | |
선수 선서 | 헤일리 위켄하이저 | |
심판 선서 | 미셸 베롤 | |
성화 점화 | 카트리오나 르메이 동 스티브 내쉬 낸시 그린 웨인 그레츠키 | |
주경기장 | BC 플레이스 |
목차
- 1 개요
- 2 경기 종목
- 3 개최지 선정 과정
- 4 주요국 대표팀
- 5 경기일자별 한국 선수들의 성적
- 5.1 1일째 (2월 13일)
- 5.2 2일째 (2월 14일)
- 5.3 3일째 (2월 15일)
- 5.4 4일째 (2월 16일)
- 5.5 5일째 (2월 17일)
- 5.6 6일째 (2월 18일)
- 5.7 7일째 (2월 19일)
- 5.8 8일째 (2월 20일)
- 5.9 9일째 (2월 21일)
- 5.10 10일째 (2월 22일)
- 5.11 11일째 (2월 23일)
- 5.12 12일째 (2월 24일)
- 5.13 13일째 (2월 25일)
- 5.14 14일째 (2월 26일)
- 5.15 15일째 (2월 27일)
- 5.16 16일째 (2월 28일)
- 5.17 17일째 (3월 1일)
- 6 사건사고
- 7 논란
1 개요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1번째 춘계동계 올림픽. 총 82개국에서 2629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988년 2월에 열렸던 캘거리 동계올림픽 이후 22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된 대회이다.
2 경기 종목
종목은 총 15개로
- 노르딕복합경기 (3) - 2.14, 23, 25
- 쇼트트랙 (8) - 2.13, 17, 20, 24, 26
- 스피드 스케이팅 (12) - 2.13~18, 20~21, 23~24, 26~27
- 크로스컨트리 스키 (12) - 2.15, 17, 19~20, 22, 24~25, 27~28
- 루지 (3) - 2.13~17
- 스노보드 (6) - 2.15~18, 2.26~27
- 아이스하키 (2) - 2.13~28
- 프리스타일 스키 (6) - 2.13~14, 20~25
- 바이애슬론 (10) - 2.13~14, 16, 18, 21, 23, 26
- 스켈레톤 (2) - 2.18~19
- 알파인 스키 (10) - 2.15, 17~21, 23~27
- 피겨 스케이팅 (4) - 2.14~16, 18~19, 21~23, 25, 27(갈라쇼)
- 봅슬레이 (3) - 2.20~21, 23~24, 26~27
- 스키점프 (3) - 2.12~13, 2.19~20, 22
- 컬링 (2) - 2.16~27
시간은 캐나다 현지 날짜이다.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세부종목 개수.
기상상황으로 인해 특히 스키 부분에서 원래 계획된 것과 다른 일정으로 치뤄졌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된 종목들이 모두 들어가있으며 거기에 프리스타일 스키 세부종목으로 스키크로스가 신설되었다. 여자 스키점프도 들어갈 듯 말 듯하였으나 결국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서 들어가지 못 하였으나, 결국 4년 후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 개막식과 폐막식, 빙상(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컬링)은 밴쿠버와 리치먼드에서.
- 노르딕 종목(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노르딕 복합)은 휘슬러 산(Whistler Mountain) 서쪽의 캘러핸밸리(Callaghan Valley).
- 알파인 스키는 휘슬러 산(Creekside).
- 썰매종목(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은 블랙콤 산(Blackcomb Mountain).
-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보드 경기는 사이프러스 산(Cypress Mountain).
- 아이스하키 경기는 NHL팀인 밴쿠버 커넉스(Vancouver Canucks)의 홈구장인 제너럴모터스 플레이스(General Motors Place)에서 열렸다.
2.1 캐나다의 절치부심
캐나다는 개막식을 최초로 실내에서 개최하였다. 누가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고향 아니랄까봐 화려한 개막식을 자랑하였다. 하지만...
캐나다는 이전의 두 번의 주최했던 올림픽에서 노 골드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번에는 'Own The Podium(시상대 점령)' 이란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다. 그 성과는 지난 토리노 올림픽에서 거둔 금 7개가 금 14개로 되는 등의 역대 개최국 사상 최대의 성적. 애당초에 금메달 14개는 한 국가가 한 번의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최대의 성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시 여겼던 캐나다의 국기 하키가 있었다. 2006년에는 총합 연봉 1억 달러가 넘는 팀이 고작 7위를 했고 "이 종목만 우승하면 다 져도 상관없다" 고까지 말했던 그 종목이었다! 결국 캐나다는 마지막날에 열린 (예선전에서 몇 십 년 만에 패배했던) 미국과의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드라마틱하게도 종료 0.3초 전에 동점골을 얻어맞았지만 연장전에 들어가서는 시종일관 부진했던 시드니 크로스비(피츠버그 펭귄스)의 골든골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축제는 끝났고 캐나다에는 10억 미국 달러라는 빚이 남았다. 적자가 50억 달러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흑자를 기록했다는 호평에 비하면 22년이 지나 캐나다가 다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을 때 그 시절의 경제적인 재현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역대 최악의 적자를 보인 캐나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빚을 전부 갚는 데에 30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도 그 저주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게 평창에 주지 그랬어[2]
2.2 피겨 스케이팅에 쏠린 관심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스케이팅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홈인 캐나다에서는 페어 종목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메달권을 기대해 볼 수 있었기에 관심이 컸다.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지만 이번 올림픽 만큼은 전례 없이 큰 관심을 받았는데,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나온 어느 불세출의 천재 덕분이었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훈련지가 캐나다에 있었기에, 캐나다 언론에서도 김연아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3]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경우 '별들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우승 후보가 많아서 그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엔트리만 해도 전시즌 월드챔피언인 에반 라이사첵, 수식어가 필요 없는 레전드 예브게니 플루셴코, 토리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스테판 랑비엘,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 캐나다의 패트릭 챈, 미국의 조니 위어, 2007 세계선수권자인 브라이언 쥬베르까지 있어 포디움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월드챔피언 라이사첵의 배당률이 낮았다는 말로 설명 끝 전 시즌 월드챔피언인 라이사첵이 이런 취급이었으니 그만큼 남자싱글은 각축전이었다.
여자 싱글에서는 전 시즌 세계신기록을 다 갈아치우며 여왕으로 군림한 김연아의 압도적 우세가 예상되었다. 일본 빼고 특히 김연아는 올림픽시즌 초부터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우며 전설을 쓰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에 대해 이견이 없었지만, 유난히 한국이랑 일본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우승을 점치는 설레발과 회의론이 많았다. 특히 일본발 기사를 빙자한 소설과 저주글들을 그대로 번역한 국내 매체들이 이러한 불안에 불을 지폈으나[4], 그 시각 해외의 도박꾼들과 전문가들은 김연아가 얼마나 압도적인 스코어로 금메달을 딸 것인지를 놓고 배팅을 하고 있었다. 여자 싱글 올림픽 쇼트가 끝난 직후 북미 언론이 걱정한 유일한 것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래로 여싱 쇼트1위가 우승을 하지 못한 징크스를 김연아가 깰까 말까였다. 그리고 일본 언론들은 이 징크스를 종일 들먹이며 자위질을 했다
결과적으로 남자 싱글의 경우 예브게니 플루셴코가 백금메달 은메달로 밀렸고 아무도 예상 못했던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당시 라이서첵의 금메달을 놓고 스포츠 도박사이트의 배당률이 1:6에 달했을 정도로 기대를 한 사람이 없었다. 라이사첵은 올림픽 금을 확정한 직후, '내 성적이 좋았을 때엔 김연아의 성적도 좋았다. 내가 우승했으니 김연아도 우승할 것이다' 라면서 김연아의 우승을 예견하는 인터뷰를 했다. 동메달은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획득하여, 일본 남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얻었다.
여자 싱글에서는 김연아가 종전에 자신이 세웠던 세계신기록을 또 예상대로 경신하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NBC 해설가는 김연아의 프리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Long live the Queen (여왕 폐하 만세)이라는 말을 외쳤으며, 샌드라 베직은 "자신이 본 가장 위대한 올림픽 퍼포먼스들 중 하나"라는 최고의 극찬을 했다. "동계올림픽의 코마네치"라는 찬사를 보낸 미국 언론도 있었다. 전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올림픽 주요 뉴스로 김연아의 우승을 크게 보도했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로 유럽쪽 매체들이 기사에서 시적인 묘사들을 아끼지 않았다 카더라 특히 자크 로게는 현장에서 관전한 직후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아이스 댄싱에서 토빌과 딘의 연기를 본 이래 최고의 연기라는 엄청난 극찬을 했다. 참고로 자크 로게가 말한 저 토빌과 딘의 연기가 피겨 역사상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볼레로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안 와닫는 칭찬일 수 있지만 피겨팬이라면 자크 로게가 얼마나 대단한 찬사를 내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연아의 총점은 무려 228.56점으로 2위인 아사다 마오보다 23점이나 높은 점수였다. 이 대회에서 보여준 전설적인 연기로 김연아는 '피겨 여왕'[5]의 자리를 넘어 '피겨 여제', 전설[6]이 되었으며, 김연아의 프리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이 되었다.
다음 시즌부터 규정이 바뀜 [7] 에 따라 이 점수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도저히 깨질 수 없는 점수가 되었으며, 김연아는 기네스북 월드 레코드에 자동 등재되었다.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가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크리스티 야마구치[8] 이후로 김연아가 처음이다. 또 김연아는 1988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었던 야마구치 이후로 주니어 월드 챔피언이 올림픽 챔피언까지 오른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은메달리스트인 아사다 마오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올림픽에서 총 3번의 트리플악셀(쇼트 1번, 프리 2번)을 시도하고 성공한 세 번 째 트리플 악셀은 회전부족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를 신청, 인정이 되었다. 그러나 김연아의 올림픽 세계신기록은 기네스북 자동등재였다.
동메달을 차지한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는 1988년 캘거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앨리자베스 맨리 이후 처음으로 조국 캐나다에 올림픽 여자 싱글 메달을 가져다준 선수가 되었다.
미국의 16세, 미라이 나가수가 4위. 이로서 미국은 여자 싱글에서 출전 선수들이 예견은 했지만 모두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미국이 여자싱글에서 올림픽 메달을 건지지 못한 건 46년 전인 1964년 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4년 후 친콴타와 미국, 러시아가 결탁하여 피겨에 단체전을 신설하게 되는데 그래도 미국은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 아이스댄싱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는 등 오히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단지 미국에선 여자 싱글에 쏠리는 주목도가 다른 세 종목을 합친 것보다 넘사벽이어서 그렇지....
김연아 선수와 함께 출전한 한국의 곽민정 선수는 16세라는 어린 나이에도(이 대회에 참가한 모든 피겨 스케이터들 중에서 두번째로 어린 나이였다) 침착하면서 사랑스러운 연기를 선보여 1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김연아와 곽민정 이전에 한국이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거둔 성적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정성일 선수가 남자 싱글에서 기록한 17위가 최고 성적이다. 한편 곽민정의 경기를 중계하던 NBC 해설가는 '김연아가 퀸이라면 곽민정은 프린세스'라는 드립을 쳤다.
아이스 댄싱에서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캐나다의 테사 버츄/스캇 모이어 조가 북미 더비 라이벌인 미국의 메릴 데이비스/찰리 화이트 조를 밀어내고 금메달을 조국에 보탰다. 참고로 이 금메달이 더욱 대단한 이유가 아이스 댄싱 종목에서 전통적 강자인 유럽을 밀어내고 북미가 최초로 차지한 올림픽 금메달이다. 게다가 테사 버츄와 스캇 모이어는 둘 다 이십대 초반으로 아이스 댄서로서는 어린 나이에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올림픽 이후로 버츄/모이어와 데이비스/화이트는 4년 동안 세계선수권에서 1, 2위를 번갈아 해먹으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또 다시 우승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페어에서는 중국의 쉔 슈에/자오 홍보 조와 팡 칭/통 지안 조가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어,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사상 중국도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두 개의 동메달에 그친게 전부였던, 쉔/자오 부부는 은퇴까지 번복하고 돌아왔으며, 쇼트에서 연기한 역대급 퍼포먼스로 조국에 값진 금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러시아의 올림픽 페어 진기록을 끝장냈다
은메달이었던 팡/통 조는 훗날 이 올림픽이 둘의 관계를 발전시켰다고 고백했으며, 이듬해 약혼했다.
독일의 알리오나 사브첸코/로빈 졸코비 조가 동메달을 따고, 러시아의 유코 카바구티/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 조가 4위. 이로써 중국은 신흥 페어 강국의 명성을 드높인 반면, 러시아(소련 포함)의 12회 연속 올림픽 페어 스케이팅 금메달의 전설은 끝장나버렸다.
개최지가 북미인 걸 감안해도 피겨 스케이팅에서 러시아와 유럽이 유난히 부진하고, 북미와 아시아 등 비유럽 국가들이 선전한 대회였다.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유럽 국가들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것은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이후 50년만의 일이다. 그래도 1960년에는 은메달은 모두 유럽 선수들이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은메달도 남자 싱글에서 러시아 선수가 얻은 것이 전부였으며, 페어에서 독일, 아이스댄싱에서 러시아가 동메달을 따서 유럽 국가들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가져가는 데 그쳤다. 특히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텃밭이었던 아이스댄싱과 페어 종목에서 유럽이 몰락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전반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부진했던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가장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다. 피겨 스케이팅 변방국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올림픽에서 딴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했다. 4년 전 출전권을 얻지 못해 토리노올림픽에 단 한 명의 피겨스케이터도 내보내지 못했던 나라에서 올림픽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막대한 투자를 넘는 재능 효율만은 최고 한편 그동안 은메달과 동메달만 땄던 중국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첫 금메달의 감격을 맛봤다. 전대회에서 처음으로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던 일본은, 이번에는 금메달은 따지 못했으나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고, 남자 싱글에서 사상 첫 메달을 따면서 본전은 거두었다는 분위기. 그런데도 아사다 마오는 분하다고 카더라
캐나다는 염원하던 아이스댄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가 좋았고, 여자 싱글의 조애니 로셰트는 대회 직전에 모친을 잃는 슬픔 속에서도 선전을 펼쳐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모친상에 따른 동정과 홈 어드밴티지가 가산점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소소한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 언론 중 코리안 헤랄드가 살짝 보도할 정도. 정작 피겨계에서는 로셰트가 이번 올림픽 메달권이라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무엇보다 4위인 미라이 나가수와 5위인 안도 미키가 로셰트 보다 잘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 게다가 국내의 피겨 팬덤에서는 로셰트의 쇼트 점수가 아사다에 비해 너무 낮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와 같이 비유럽권 국가들이 피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외신들도 유럽 국가의 부진과 아시아 국가의 선전을 조명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러시아일 것이다. 불과 4년 전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만 금메달을 3개나 쓸어간 데 비해 이번에는 금메달은 없고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에 그친 것. 안습 그래서 2014년에 그딴 짓 벌인거냐?
총평을 내리자면,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뒤를 이어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좋은 의미로 두고두고 회자될 올림픽이다. 추악한 스캔들로 얼룩졌던 전전 대회와 여자 싱글[9]이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노잼이었던 전 대회의 악명을 지우고 팬들을 즐겁게 만든 대회였다. 남자 싱글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들이 나왔으며, 남자 싱글도 화려한 엔트리로 여러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네 종목 모두 골고루 화젯거리[10]가 많았던 점도 특징이었다. 마지막 그룹 선수들의 기량 또한 전 대회보다 상향화된 수준 높은 대회였다. 후일담으로, 이 대회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였던 에반 라이사첵은, 당시엔 다른 금메달리스트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으나, 4년 후 올림픽에서 남자 싱글 금메달과 은메달이 워낙 개판이었던 탓에 피겨팬들 사이에서 때아닌 재평가를 받게 된다.
2.3 마스코트
마스코트는 미가(전설의 바다곰. 형상은 곰+범고래), 콰치(사스콰치. 그냥 빅풋). 이 외에도 수미(패럴림픽 마스코트)와 Mukmuk가 있다. 모두 같은 날 발표되었는데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마스코트가 동시에 발표된 것은 물론 같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공홈에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얘네들 귀여움이 장난 아니다. 이는 이들을 그린 사람들 Meomi가 원래부터 귀여운 캐릭터를 만드는 디자이너 듀오라서...[11][12]
홈 스테이 프로그램에 쓰인 것으로 왼쪽이 Quatchi, 침대 위 Sumi, 침대 아래 Miga, 오른쪽이 Mukmuk.
매표소 (다른 사진)
이 모든 것을 주도한 건 바로 디자인 총감독으로 참여한 레오 오브스트바움(Leo Obstbaum)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의 배경 그림은 물론 포스터, 픽토그램, 성화봉, 메달 등 모든 분야의 디자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들어가보자. 그러나 2009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Leo and colleague working hard on perfecting the mascot plush toys(왼쪽이 레오).
3 개최지 선정 과정
캐나다올림픽위원회 내에서 밴쿠버, 퀘벡(몬트리올), 캘거리 중에서 2차투표에서 밴쿠버가 결정되었다.
동계올림픽 개최에 나선 도시는
밴쿠버(캐나다), 평창(대한민국),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베른(스위스), 안도라라 라벨라(안도라), 하얼빈(중국), 자카(스페인),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는 유고슬라비아 하에서 이미 동계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중 IOC에 의해 선정된 최종후보지는 밴쿠버, 평창, 잘츠부르크, 베른.
...이었지만 스위스 내부의 국민투표에서 베른 시민의 대다수가 거부함에 따라 베른은 자진 포기했다. 오오 선진국 오오
2003년 7월 2일 체코 프라하에서의 제 115차 IOC총회에서 최종 결정되기에 이르었다.
1차 투표 결과 | 득표수 |
평창 | 51표 |
밴쿠버 | 40표 |
잘츠부르크 | 16표 |
무효 | 4표 |
이때 1차 투표에서는 한국의 평창이 51표, 캐나다의 밴쿠버가 40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16표를 받아 유효표 과반(54명/107명)을 불과 세 명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평창의 우세는 당시 예측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IOC 자크 로게 위원장이 잠깐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거의 선정된 것 같은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는 뒤집혔다.
2차 투표 결과 | 득표수 |
평창 | 53표 |
밴쿠버 | 56표 |
무효 | 3표 |
이어 열린 2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의 표를 흡수한 밴쿠버가 56표로서 53표에 그친 평창을 제치고 유효표 과반(55명/109명, 탈락한 오스트리아 IOC 위원 한 명+무효표 안 던진 한 명)을 넘겨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평창의 3수 전설이 시작되었다.[13]
당시 이에 대해서 엄청난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동계올림픽을 넘보고 있던 무주군이 국내 선정과정에서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자 들고 일어났고 결국 달래기 위해 체결된 것이 양해각서에 따라 2010년은 평창, 2014는 무주가 하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당시 김운용씨가 투표 당시 '평창군을 찍지 마라' 라고 로비를 했다는 것이 밝혀져 불같이 까였다. 우왕ㅋ굳ㅋ.
결국 무주는 평창의 3수 도전과 함께 아직도 못 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이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국제대회 유치 없엉' 이라고 발언하는 덕분에 그 꿈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젠 평창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했네? 지못미. 하지만 실질적으론 무주에 동계 올림픽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규정으론 알파인 활강 스키 종목을 치르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고 급경사를 가진 경기장이 필요 한데, 이러한 경기장 규격을 만족 시키기 위해서는 무주의 지형 특성상 산 꼭대기에 50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 때문에라도 불가능 했다는 것. 이후 IOC에서 규정이 개정되어 낮은 경사로를 2번 뛰어 합산 거리로 기록을 측정 할 수 있게 변경 되었지만,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가 그동안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 부어 조성한 알펜시아 리조트 때문에라도 무주의 동계 올림픽 유치는 사실상 먼 이야기가 된 셈.[14] 어찌 되었든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서 동계 올림픽 유치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보상 차원에서 태권도 공원 유치 사업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던 경주나 춘천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던 무주군이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4 주요국 대표팀
4.1 대한민국 대표팀/경기 현황
한국 대표팀의 경우 선수단 46명(남 27, 여 19)+경기임원 18명+선수단장을 합해 총 83명이었다.
출장 종목은
- 스피드 스케이팅 16명
- 쇼트트랙 10명
- 피겨 스케이팅 2명
- 스키 총 10명
- 루지 1명
- 봅슬레이 4명
- 스켈레톤 1명
- 바이애슬론 2명
이다. 15개 종목 중 12개 종목에 출전하여 당시까지 한국의 동계 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선수가 출전했다. 봅슬레이는 역대 최초 출전이며 강광배 선수는 썰매 전종목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봅슬레이는 원래 2인승도 출전이 가능하다고 통보가 왔었으나 오스트리아의 생떼 막장 행정으로 인해서 종합 랭킹에서 밀리게 되었고 결국 4인승만 출전하게 되었다. 노르딕복합, 아이스하키, 컬링은 출전권을 얻지 못해 불참.
대회 전의 목표는 금메달 6개 이상 획득을 통한 국가별 종합순위 10위권 이내 유지였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금 6, 은 3,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결론적으로 금 6, 은 6,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세부종목별로는 쇼트트랙 금 2(남 1000, 남 1500), 은 4(남 500, 남1500, 남계주 5000, 여 1500), 동 2(여 1000, 여 1500)/스피드 스케이팅 금 3(남 500, 남 10000, 여 500), 은 2(남 1000, 남 5000)/피겨 금 1(여자 싱글).
금메달 개수를 우선하는 국제식 계산으로는 5위, 전체 메달로 순위를 매기는 미국식 방식으로는 14개로 종합 7위다. 참고로 메달 순위 집계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문제가 되어왔다고 한다(링크).
어쨌든 한국은 금메달 숫자는 전 대회와 똑같지만 메달 수(14개)로 보나 성적(국내식으로 하면 5위)으로 보나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21일까지 금메달 딴 선수가 모두 1989년생 동갑이라 한국 선수는 1989년생 이외에는 금메달 못 따는 희한한 징크스가 생긴 것처럼 보였지만 김연아는 1990년생이란 말이다 앙돼! 다행히(?) 24일 88년생 이승훈의 스피드 스케이팅 10000m 금메달 획득으로 이 징크스가 깨졌다. 김연아도 무사히(?) 금메달 획득.
초반 스피드 스케이팅의 선전으로 예상보다 많은 메달을 딸 것 같아보였지만(금메달 10개라는 설레발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중국의 벽에 막혀 예전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계주의 경우 다 잡은 금메달을 막판의 제임스 휴이시의 해외언론에서도 애매한 답변을 내놓을 정도로 이유를 모를 판정으로 놓쳐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다.다행히 남자 쇼트트랙의 경우는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의 예상을 넘은 선전은 메달도 메달이지만 한국이 더 이상 "쇼트트랙만 잘 하는 나라"가 아닌 "빙상 강국" 으로 도약했음을 알리는 지표와도 같은 것이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문 금메달을 합치면 빙상 그랜드슬램이라고. 빙상 3개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것. 한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이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는 한국, 미국, 캐나다밖에 없다.[15]
하지만 '눈과 얼음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에서 여전한 설상(눈)종목의 부진은 다음 과제로서 남겨졌다. 썰매 종목에서는 사상 첫 출전에서 결선 진출을 이뤄낸 봅슬레이 4인조 대표팀의 성과는 결코 작지 않은 쾌거였다. 이것이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한국 내의 분위기는 좋았다.
4.2 기타 주요 국가 대표팀의 성적과 분위기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미국, 중국 등은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얻으며 분위기가 좋았던 반면,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핀란드 등은 부진한 성적에 울상.
개최국 캐나다는 금메달만 14개를 획득하여, 이전에 두 차례 치렀던 올림픽에서 노골드 징크스를 단번에 깨뜨릴 수 있었다. 금 14, 은7, 동5로 총 26개의 메달을 획득. 단일 동계 올림픽에서 한 국가가 14개의 금메달을 얻은 것은 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금메달 수 기준으로 캐나다가 1위를 하면서,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처럼 총메달을 기준으로 메달 순위를 매기던 캐나다 언론에서는 금메달을 우선시하여 메달 순위를 집계하면서 캐나다가 종합 우승을 했다고 한다. 빙상, 썰매, 스키 종목에서 고루 강세를 보였지만, 아이스하키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딴 것이 캐나다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시드니 크로스비의 연장전 골든골로 미국을 꺾은 남자 아이스하키가 대미를 장식했다.
미국은 금9, 은15, 동13개로 총 37개의 메달을 얻어 메달총계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미디어에서는 자국에서 열린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 이후 78년만에 종합 우승했다고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캐나다가 종합 우승한 것으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아폴로 안톤 오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은 없었지만, 은1과 동2을 추가하여 동계올림픽 통산 메달 8개를 기록, 미국 동계올림픽 참가 선수 중 가장 많은 메달을 딴 것도 화제였다. 노르딕 복합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던 노르딕 스키에서 미국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주목을 받았다.
중국은 금메달 5개를 따며, 동계 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여자 쇼트트랙 4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강국답게 여기서도 메달을 따고, 처음 참가한 여자 컬링에서도 동메달을 얻었다.
러시아의 부진은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메달 3개로 종합 11위에 그친 것. 소련 시절에는 늘 종합 1, 2위를 오가던 위엄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고, 차기 개최국으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게 되었다. 성적 부진에 화가 난 푸틴 총리는 동계올림픽 예산 사용내역을 감사할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체육부 장관 해임까지 거론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일본은 피겨스케이팅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은3, 동2을 땄다. 총메달수는 금메달 1개만 땄던 전 대회에 비해 늘어나서 본전은 뽑았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이라는 것이 중론. 자국에서 열렸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선수단 규모와 참가종목 수가 적은 한국과 중국에 밀리면서 종목만 다양한데 최고는 없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왔다. 일본은 그전까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적지만,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총메달 획득 개수만큼은 한국과 중국보다 많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총메달 개수마저 한국과 중국에 밀리게 되었다. 많은 선수를 파견한 만큼, 다양한 종목에서 큰 기대를 했으나, 아쉬운 차이로 메달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에서 4위를 하여 기대를 모았던 미나가와 겐타로는 이번에는 미끄러지면서 실격되어버렸고, 미나가와의 부인이자 프리스타일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여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우에무라 아이코는 이번에 4위로 메달을 놓쳤다. 올림픽 목메달 커플 탄생 노르딕 복합과 스키점프 단체전에서도 메달이 유력시되기도 했으나, 각각 6위, 5위로 메달을 못땄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은메달을 딴 것이 아쉽다고도 하지만, 김연아의 실력이 워낙 넘사벽이다 보니 체념하는 듯 하고, 대신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남자 싱글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남자 500m에서 은, 동을 한꺼번에 따고, 여자 단체 추발에서 예상외의 은메달을 딴 것으로 만족하는 분위기.[16] 다만, 일본 선수가 메달을 딸 때,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경우가 특히 두드러지게 보여 분위기가 더 저조했다고도 한다. 일본 선수가 시상대에 오른 것이 4차례인데[17], 그 중 2차례는 금메달을 한국 선수들이 얻어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러퍼졌다.
5 경기일자별 한국 선수들의 성적
5.1 1일째 (2월 13일)
- 개막식
- 스키점프 노멀힐(K-90) 개인전 예선
- 김현기(22위, 본선진출), 최흥철(40위, 본선진출), 최용직(43위, 탈락)
5.2 2일째 (2월 14일)
- 스키점프 노멀힐(K-90) 개인전 본선
- 김현기(40위), 최흥철(48위).
- 둘 다 결선 진출 실패.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0m
- 이승훈 은메달
- 바이애슬론 여자 7.5km 스프린트
- 문지희(56위)
- 프리스타일 여자 모굴 결승
- 서정화 (21위)
- 쇼트트랙 남자 1500m
- 루지 남자 싱글
- 이용 (1차 36위, 2차 34위)
5.3 3일째 (2월 15일)
- 바이애슬론 남자 10km
- 이인복(65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
- 노선영(19위), 이주연(23위), 박도영(26위)
- 루지 남자 싱글 결승
- 이용 (3차 35위, 4차 37위)
5.4 4일째 (2월 16일)
- 크로스컨트리 여자 개인 10km
- 이채원 (54위)
- 크로스컨트리 남자 개인 15km
- 이준길 (79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 모태범 금메달(1차 인 코스 기록 34.92, 2차 아웃코스 기록 34.90), 이강석 4위, 이규혁 15위, 문준 19위.
- 한국의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첫 '쇼트트랙 외의 종목' 에서 나온 금메달.
- 사람들의 초점은 세계랭킹 상위 랭커인 이규혁과 이강석에게 맞추어져 있었으나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다크호스 모태범[18]이 금메달을 수상. 1번째 레이스에서 2위, 2번째 레이스에서 2위. 2위를 2회 후 금메달을 수상했다. 1회차와 2회차의 레이스 기록을 합산해서 빠른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특유의 계산방법 덕에 거둔 쾌거. 황신의 가호가 있었던 듯. 이 날은 마침 자신의 생일이었다. 자기가 자신에게 금메달을 선물해준 격. 나중에 모태범이 500m보다 1000m에 더 자신 있다고 말해 1000m에서도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 1차 레이스가 끝나고 빙상을 정리하는 중 잠보니가 고장나서 경기가 1시간 이상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경기가 지연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벌어졌다. 어찌어찌 경기가 재개되었으나 좋은 기록을 내기에는 빙질이 매우 떨어진 열악한 상황. 어쩌면 이런 요소들 때문에 상위 랭커보다 다크호스가 금메달을 수상했는지도 모른다.
5.5 5일째 (2월 17일)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 이상화 금메달(1차 38초249 2차 37초850, 합계 76초09), 안지민 31위, 오민지 32위, 이보라 26위.
-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금메달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다. 이 때문에 '밴쿠버의 여신' 이라는 타이틀까지 붙기도 했다(...). 덧붙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가 한국체대 동기며 특히 모태범과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라는 거에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5.6 6일째 (2월 18일)
- 스노우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 김호준 예선 탈락 (1차 18위, 2차 8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 쇼트트랙 여자 500m
- 쇼트트랙 남자 1000m 조별전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
5.7 7일째 (2월 19일)
- 바이애슬론 여자 15km 개인
- 문지희(73위)
- 바이애슬론 남자 20Km 개인
- 이인복(71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 김유림 넘어져서 탈락, 이상화 23위.
- 스켈레톤 남자 1차, 2차 시기
- 조인호(1차 22위, 2차 24위)
5.8 8일째 (2월 20일)
- 스키 점프 라지힐 개인 예선
- 김현기(33위), 최흥철(34위), 최용직(46위, 결승 진출 실패)
- 크로스컨트리 여자 15km 추발
- 이채원(59위)
- 스켈레톤 남자 3차, 4차 시기
- 조인호(3차 23위, 4차 진출 실패)
5.9 9일째 (2월 21일)
- 스키 점프 라지힐 개인 1라운드
- 김현기(42위), 최흥철(49위), 둘 다 결승 진출 실패.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m
- 모태범(5위), 이종우(22위), 하홍선(31위)
- 쇼트트랙 여자 1500m
- 이은별 은메달, 박승희 동메달, 조해리(5위)
- 그놈의 부정출발과 선수가 넘어져 재출발, 거기에 어드밴티지까지 주여져 결승전에서 사상 초유의 8명 동시 출발이 이루어졌다. 보통 쇼트트랙은 4명 1조로 구성이 되어지고 1500m는 거리의 특수성 때문에 6명 1조로 이루어지는데 이미 예선에서부터 어드밴티지가 차곡차곡 쌓여 준결승에서 3조 중 7명 출발이 한 조가 생겨버렸고(...) Final A에선 8명이 뛰는 사태가 벌어졌었다(개인 3000m에서는 8명이 뛴다고는 하지만 이건 1500m다). Final B는 대신에 4명 출발했지만.
- 쇼트트랙 남자 1000m
- 이정수 금메달, 이호석 은메달, 성시백(결승 진출 실패 후 순위결정전인 Final B에서 실격, 7위)
- 선수들이 준결승에서 차례차례 실격당한 탓에 이 Final B에선 2명 1조라는 괴이한 경기가 펼쳐졌다(...).
5.10 10일째 (2월 22일)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500m
- 노선영(30위), 이주연(33위)
5.11 11일째 (2월 23일)
한국 선수 출장 경기 없음
5.12 12일째 (2월 24일)
-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 김우성(실격)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
- 이승훈 금메달(12분 58초 55)
- 올림픽 신기록이자 아시아 선수 최초의 빙속 장거리 금메달. 그간 아시아에선 여자 장거리에서만 메달이 있었다. 다만 약간의 운이 따라주긴 하였다.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항목 참조.
그리고 기적의 콩라인 탈출. 은메달을 2번이나 딸 뻔
- 피겨 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 김연아 1위(기술점수 44.70+예술점수 33.80/합계 78.50), 곽민정 15위(기술점수 31.40+예술점수 21.76/합계 53.16)
- 아사다 마오가 73.78점을 획득함으로써 연아신이라도 아슬아슬한 거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김연아는 바로 보란 듯이 78.50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기록하며 또 전설을 썼다. 곽민정은 15위로 프리 진출.
5.13 13일째 (2월 25일)
-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1차 시기
- 김선주 (53위)
- 쇼트트랙 여자 1000m 예선
- 박승희, 조해리 셋 다 조 1위로 준준결승 진출
- 쇼트트랙 남자 500m 예선
- 성시백, 이호석, 곽윤기 셋 다 조 1위로 준준결승 진출
-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
5.14 14일째 (2월 26일)
-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2차 시기
- 김선주 (종합 49위)
- 피겨 스케이팅 여자 프리 스케이팅
- 김연아 금메달(프리 150.06+쇼트 78.50=총점 228.56점), 곽민정 13위(프리 102.37+쇼트 53.16=총점 155.53점)
- 김연아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점수는 쇼트, 프리, 총점 모든 분야에서 월드 베스트. 흠좀무. 2위인
콩아사다 마오와의 점수 차이가 23.06점이다. - 곽민정 선수의 순위도 김연아를 제외한 역대 한국 피겨 역사상 최고 순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5.15 15일째 (2월 27일)
- 알파인 스키 여자 회전
- 김선주(1차 58위, 2차 46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단체 추발 8강
- 이승훈, 이종우, 하홍선(탈락, 최종순위 5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발 8강
- 노선영, 박도영, 이주연(탈락, 최종순위 8위)
- 봅슬레이 4인승 1차, 2차 주행
- 선수는 강광배, 김동현, 김정수, 이진희. 1차 23위, 2차 18위
- 쇼트트랙 남자 500m
- 성시백 은메달, 곽윤기(결승 진출 실패, 5위), 이호석(결승 진출 실패, 8위)
- 성시백은 금메달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미끄러져서 아쉬움을 샀다. 일단 넘어진 채로 3위로 들어왔는데 오노가 실격하면서 은메달이 되었다.
성시백 은메달이 아깝긴 하지만 오노 탈락이 더욱 더 즐겁다는 후문이...
- 쇼트트랙 여자 1000m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5.16 16일째 (2월 28일)
- 알파인 스키 남자 회전 1차, 2차 시기
- 김우성(1차 DNF), 정동현(1차 DNF)
- 기상 상태가 워낙에 막장인 데다가 가뜩이나 위험한 코스였기 때문에 DNF가 속출했다. 전체 선수 중 무려 절반이 DNF였다.
- 봅슬레이 4인승 3차, 4차 주행
- 선수는 강광배, 김동현, 김정수, 이진희. 3차 20위, 4차 19위.
- 봅슬레이의 경우 한국에선 불모지나 마찬가지고 이번이 첫 출전이다. 게다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결승(4차)에 진출해 큰 의미를 갖는다.
5.17 17일째 (3월 1일)
- 폐막식
6 사건사고
6.1 조지아의 루지 선수 사망
개막 직전 조지아의 루지 선수 노다르 쿠마리타쉬빌리가 연습 중 코스를 이탈하여 쇠기둥에 부딪치는 불의의 사고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사고가 발생하자 조지아 선수단은 올림픽을 포기하고 전원 철수까지 고려하였으나 결국 참가를 결정. 개막식에서 애도의 뜻으로 국기 위에 검은 띠를 부착하고 선수들도 검은 목도리와 검은 띠를 착용하고 입장하였다. 관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조지아 선수들을 격려하였으며 이후 진행 중에도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역시 충격이 컸는지 조지아의 레반 구레시즈 선수는 루지 남자 싱글 1차 레이스에 나오지 않았으며 당시 사고를 목격했던 한국의 이용 선수도 성적이 부진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국제루지연맹에선 출발 지점을 아래쪽으로 당기자는 의견을 냈으며 이를 받아들여 남자 1인승 경기의 경우 출발점을 176m 아래쪽으로 당겨 여자 선수의 출발점에서 경기를 시작하기로 했으며 여자 1인승 및 2인승 경기는 주니어 선수의 출발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사고로 인해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들이 사망한 사고 이래 38년만에 올림픽기와 캐나다기를 조기로 게양했다.
그의 사망은 루지만이 아니라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비슷한 코스를 이용하는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19일, 훈련 도중 전복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링크.
거기다 23일에 스타트 위치를 수정했음에도 봅슬레이 남자 2인승 2차 시기 도중 네덜란드 1팀이 전복 사고가 일어나는 덕분에 약간의 코스 개조(11번 코너를 수정)를 해놓은 상태. 4인승 경기는 개조된 상태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조금 안전해졌다곤 하지만 27일 봅슬레이 경기에서 전복 사고가 속출했다.[19] 문제가 되었던 13번 코너에서 일본, 영국, 미국팀 등이 전복했으며 무사히 코너를 빠져나온 팀도 코너 이탈시 벽에 충돌이 있는 등[20]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국제봅슬레이 연맹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회 참가 조건을 까다롭게 바꾸는 바람에... 완주율이 낮고 코스 탈락 빈도가 잦았던 한국 루지/스켈레톤 팀은 대부분 월드컵 대회를 캔슬당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지금은 메달리스트 출신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고 실력을 강화하여 소치 본선 진출까지 무난한 상태로 발전했다고.
6.2 개막식 성화 장치 작동 오류
개막식 성화 장면을 잘 보면 성화 주자들이 바닥에서 올라와서 서로 엮이는 기둥에 불을 붙이게 되어있는데 4개가 올라와야 하건만 3개만 올라오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 하나를 담당했던 주자는 그냥 멀뚱멀뚱 구경만...오륜기 고장보다 안습...
이후 폐막식 퍼포먼스 첫 순서에서 이전에 불을 붙이지 못했던 성화 주자 카트리오나 르 메 돈(Catriona Le May Doan)이 재등장, 문제의 성화대 하나를 올리고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폐막식이니만큼 불이 얼마 못 갔지만...
6.3 밴쿠버의 안 좋은 기상 상태+운영미스
밴쿠버의 기상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닌지라 대회 초기에는 알파인 스키 경기를 전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영상인 건 그렇다 쳐도 며칠동안 비가 왔다는 게 문제. 산 정상에서는 눈이 오는데 피니시라인에서는 비가 오는 아스트랄한 상황까지 나왔었다 한다. 그나마 모굴 같은 프리스타일 스키는 진행할 수 있다지만 기상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부상 위험이 높은 알파인스키는 전부 연기된 상태. 이건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춘계올림픽인 듯 그리고 알파인 스키는 16일의 폭설로 인해 다시 연기되었다. 평창은 지금 영하인 데다가 워싱턴 등 미주 동부에서는 희대의 폭설이 쏟아졌는데... 이른바 평창의 저주인 것일까.
근데 밴쿠버의 2월 평균 기상 온도가 4.6도인데도 불구하고 늦게 개최를 한 밴쿠버의 잘못도 어느 정도는 있다. 대회 중에 온도가 올라갈 걸 예측 못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대회가 개최 중이었던 2월 24일, 밴쿠버 시내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춘계올림픽 확정
16일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 도중 정빙기가 고장나는 통에 1차 시기 중간에 1시간 동안의 지체 시간이 있었다. 대체 투입된 정빙기도 얼음을 제대로 정리해주지 못하는 통에 얼음 상태는 그야말로 개판. 이 상황에서 경기가 치러졌고 그 때문인지 선수들의 최고기록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쇼트트랙 여자부 경기에서 스타팅 심판이 좀 막장 수준이라서 그런지 플라잉이 자주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여자 500m 예선에서 8경기 전부 플라잉(부정출발)이 나온 것은 희대의 개그라고 볼 정도. 아무리 스타트가 중요한 500m이지만 그래도 예선 8경기에서 전부 플라잉이 나온 건 심판의 문제라고 봐야 될 듯. 결국 이 스타팅 심판은 500m 준결승/결승에서도 똑같이 플라잉맨이 되어주셨다. 게다가 이 심판, 1000m에서도 또 플라잉 행진을 해주셨다(선수들이 적응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일어났다). 그나마 스타트가 덜 중요한 다른 경기들도 플라잉이 쏟아지고 있어서 ISU가 무슨 징계를 내릴지도...
남자부 500m에서 스타트를 담당했던 한국 스타터 분은 플라잉 별도 없이 제대로 진행했는데 유독 이 심판만 그랬다.
6.4 동메달로 장난치던 미국 대표 사건
밴쿠버 현지 시간으로 18일에 스노우보드 하프파이프의 동메달리스트인 스카티 라고라는 선수가 그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이 딴 동메달을 자신의 검열삭제에 달아맨 뒤 다행히 바지는 입고 있었다고 여성들을 유혹했다. 그런데 한 동양 여성이 거기에 키스를 했다.[21] 이게 인터넷상에 유포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고 한다. 기사링크.
라고는 이 소식이 퍼진 후 대표팀에 사죄한 뒤 밴쿠버를 떠났지만 이미 명예는 실추된 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때 '자유분방한 X-Game의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라면서 정식 종목 채택에 반발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별 탈 없이 지나갔다가 밴쿠버에서 이런 일이 터져버렸다.
6.5 쇠고기 햄버거 먹은 인도 대표 사건?
인도 공화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라힘 카말 선수와 스노보드 선수 아만딥 거프릿 선수가 쇠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다 적발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패러디 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가 기사랍시고 내놓은 것으로밝혀졌다. 원문 패러디 기사. 인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국가다. 힌두교 신자가 쇠고기를 먹더라도 종교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공적 단위에서 처벌 받을 리는 없다(...)
6.6 케냐 선수들의 사고
케냐 선수 8명 중 4명이 주차장에서 사자에게 물려서 동계올림픽에 불참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것도 패러디 기사였다. 심지어 위와 같은 출처다. 원문 기사 링크 역시 기레기들 종특
6.7 중국 선수의 부상
밑에 있는 '2월 25일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 실격 논란' 참고.
금메달이 확정되자 중국의 여자 쇼트트랙 선수 왕멍은 너무 기쁜 나머지 스케이트를 펜스 위로 올리며 코치와 포옹했다. 그런데 이때 근처에 있었던 장후이 선수가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피를 흘렸다.
나중에 장후이 선수의 부상을 보고 한국 선수들의 반칙으로 중국 선수가 다친 거라는 둥 말이 많았으나 나중에 왕멍 선수가 자신의 실수로 다친 거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한국 인터넷에선 '왕멍 팀킬' 이라 불리며 유명해졌다.
7 논란
7.1 SBS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독점방송
SBS의 독점방송으로 인해서 KBS, MBC 등은 동계올림픽 방송을 못하게 되었다. KBS와 MBC가 방송권 공유로 낸 방송통신위원회에 낸 분쟁조정신청을 SBS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방통위도 더이상 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KBS, MBC가 소송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BS는 현지 중개권 독점만이 아닌 영상 전송마저 거부하고 있으며 SBS측은 "KBS, MBC는 지금까지 협상 태도가 무성의했고 이제 와서 무임승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는 입장이다.
자세한 것은 이것을 참조하자. 김연아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올림픽 팬들은 KBS, MBC 보지 말고 SBS에 채널을 고정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대형 스포츠 행사를 중계할 때 방송 3사가 같은 경기를 중계함으로서 벌어지는 전파 낭비 논란과 그에 의한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권 박탈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렇다고 해서 한 방송사가 대형 스포츠 행사의 중계권을 독식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차중계/순환중계라는 윈윈 대안도 있음을 알아두자.
하지만 14일 쇼트트랙 중계 때 처음 캐스터가 나와서 말할 때 소리가 20여 초 동안 안 나오는 방송 사고가 났다. 또한 개막식 전 스키점프 예선 때는 20여 분 동안 스튜디오 캐스터 소리는 물론 해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또 15일 스피드 스케이팅 중계 도중 박도영 선수가 출발선에 섰을 때 국적 표시를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로 했다. 우왕ㅋ굳ㅋ.
손기정이 지하에서 울 일이다. 현장에서 바로 수정되긴 했으나 예리한 기자들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또한 16일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에도 2위를 한 일본 선수만 계속 비춰주어 "실격으로 금메달이 바뀐 줄 알았다" 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건 캐나다 현지에서 나오는 방송 신호를 통제하는 권한이 SBS측에 전혀 없기 때문에 나온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를 대기도 그런 게 현지 생중계다. 경기장 스크린에 다 뜨는 마당에 방송 송출 핑계 댈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독점 중계할 때 자체 영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카메라를 갖고 가겠다고 했다니 더더욱.
결국 2월 24일 대형 사고를 쳤다.
그리고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올림픽 폐회식을 방송할 때(재방송 포함) 한국 선수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다. 아시아 쪽을 거의 안 찍은 캐나다 현지 방송은 그렇다 쳐도 다른 나라 방송국들은 자체 카메라 들고 가서 찍었다는데 SBS는 만약에 대비해 자체 카메라로 찍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소리라 폐회식을 본 사람들 여럿이 황당해했다고 한다.
7.2 해설자 관련 논란
7.2.1 남자 피겨 스케이터는 동성애자?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중계하던 오스트레일리아 해설자들이 선수들을 동성애자라고 조롱해 문제가 되었다. 참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 해설자들도 비슷한 짓을 해서 같이 문제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두 나라 해설 모두 미국의 조니 위어 선수를 꼬집어 말한 것이다. 사실 이 선수는 예전부터 쏘핫! 한 이미지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선수이다.[22] 여성스러움은 컨셉이 아니라 빙판에서 내려와서도 사람이 똑같으며(...) 시즌 갈라쇼에 레이디 가가를 들고 나오는 용자. 이런 자유분방한 태도 때문에 심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걸로도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점수가 너무 낮다는 논란이 나왔고 납득하지 못할 점수에 야유하는 관중들을 키크존의 선수 본인이 진정시켜야 했다. 아쉽지만 나이가 있어서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일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올림픽에 입고 나온 쇼트 프로그램 코스튬. 프리 프로그램에선 좀 정상적인 옷을 입고 나오나 싶더니 키크존에서 머리에 꽃 꽂은 남자가 되면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국제적 논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위어 선수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다소 불만을 표시하는 것 외에는 더 일이 커지지 않고 슬쩍 넘어갔다. 실수 없이 잘했어도 아쉽게 포디움엔 못 들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터진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신체점제에 대한 불만제기 건[23]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최대 이슈로 부상해버리는 바람에 이 사건은 묻혀버린 듯.
7.2.2 제갈성렬의 해설
스피드 스케이팅 SBS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제갈성렬이 '샤우팅 해설' 로 논란이 되었다. 참고. 그의 해설에 대해선 같이 흥분을 느낄 수 있어서 괜찮다고 보는 사람과 전문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 둘로 나뉘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이대로만 끝났으면 심권호 해설의 사례처럼 '감정적인 해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2월 24일에 사고를 한 번에 2개나 일으켰다. 자세한 건 제갈성렬 항목을 참고.
그나마 크라머 선수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순순히 인정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24일 재방송을 보여주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실격인 줄 알고 있었으나 심판 판정이 나지 않았기에 자제하고 있었다' 라는 거짓 해명을 하여 추가적인 까임거리를 제공하였다.
또한 해명 이후 재방송 때 더빙을 해서 더 까였고 결국 25일에 자진하차를 하기로 했다. 해설 문제도 있지만 기독교드립 덕분에 조계종에서 태클 먹은 게 가장 크다고...
7.3 2월 25일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 실격 논란
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팀은 25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실격 판정을 받았다.
한국은 쇼트트랙 중국팀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9바퀴 돌 때까지 중국에 2위로 밀렸다 앞서간 한국은 다시 중국에 선두를 내줬지만 4바퀴를 남기고 재역전에 성공해 결국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다.
5바퀴 남은 가운데 터치를 받은 김민정이 선두로 코너를 돌다가 오른쪽 팔이 바짝 뒤따라 오던 중국 쑨린린의 얼굴에 부딪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심판진의 지적으로 인해 실격 사유가 되었다. 손이 얼굴을 치거나 얼굴 부위까지 올라와서 시야를 가리는 것은 규정상 실격 사유라고 한다. 실제로 날도 부딪쳤긴 하지만 심판진이 지적한 것은 손 부분이었다.[24]
다 잡은 듯했던 금메달은 결국 실격으로 인해 노메달로 바뀌고 말았고 여자 계주 5연패의 위업은 달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돌며 기쁨의 눈물을 쏟았던 한국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김기훈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 등 코치진은 격하게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송이 계속 중국 선수가 얼굴에 피가 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는 중국 선수들끼리 금메달 확정 후에 좋아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며 애당초에 피가난 선수는 문제가 된 쑨린린(111번) 선수가 아닌 장후이(113번)이다. 결론은 팀킬 아닌 팀킬.
해외에서도 도저히 어떻게 말할 처지가 안되는지 애매하게 평가를 하고 있으며 출전했던 중국 선수들조차 "왜 실격인진 모르겠지만 반칙이 있었던 것 같다" 라고 할 정도로 정당한 싸움이었다고 하는데 왜 혼자서 실격 처리했는지는 아직도 의문.
그리고 더 석연치 않은 점은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때 김동성의 금메달을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넘긴 제임스 휴이시 심판이 이 시합의 심판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계속 발굴(?) 중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내린 석연치 않은 한국 선수 실격 판정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같은 날 열린 중국이 금메달 따는 게 확실했던 프리스타일 여자 에어리얼 종목에서 호주 선수에게 통한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을 놓쳤다. 쇼트트랙의 그 휴이시 심판의 국적은 호주이기 때문에 혹자는 이걸 보고 '이것이 올림픽'이라고 하기도...
휴이시 심판은 자신이 심판을 맡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예정대로 여자부 1000m 결승까지 심판을 볼 것이라 했었으나 마지막 날인 27일 결국 독일 심판으로 교체되었다.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대표팀 멤버였던 김민정 선수는 이 일에 여러 모로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올림픽이 끝난 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휴이시 심판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그래도 휴이시 심판을 욕하면서도 자신들을 응원해준 네티즌들의 도움이 위로가 많이 되었다고.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한국시간 기준. 현지기간이면 하루씩 빼면 된다.
- ↑ 1990년대 이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들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단, 대부분의 경기 시설을 1회용으로 건설해서 비용을 최소화한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은 흑자 대회였다.
- ↑ 반대로 아사다 마오는 코치가 러시아의 피겨 대모인 타라소바였고 전지훈련지도 주로 러시아였다. 대충 알렉세이 야구딘과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구도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야구딘이 북미에서 훈련했고 스타일도 소위 말하는 북미 스타일이었기에 북미 언론이 무척 우호적이었는데, 김연아도 이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 재미있는 건 올림픽시즌 초반 아사다 마오의 국제대회 성적이 정말 최악이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시즌 중반 일본 내셔널을 기점으로 기량을 끌어올려 올림픽 은메달과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었지만, 시즌 초엔 정말 마오타들조차 외면할 경기력을 선보이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한국의 피알못 기레기들은 아사다가 죽쑤던 그 순간에도 일본의 언플성 기사들을 그대로 퍼와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 ↑ 2008-2009시즌에서 보여준 끝판왕 포스로 이미 해외 언론에서도 '여왕' 칭호를 듣고 있었다. '피겨 요정' 이란 별명은 사실상 시니어 1년차에 졸업했다.
- ↑ 그러나 김연아는 2008-2009시즌,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남자선수의 영역대였던 총점 200점을 깬 시점에서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거기에 밴쿠버 올림픽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 ↑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스파이럴이 완전히 사라지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10-11 시즌에는 코레오 스파이럴, 11-12 시즌 이후에는 코레오 시퀀스로 바뀌었다.
- ↑ 일본계 미국인이다.
- ↑ 보통 여자 싱글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스케이팅 4종목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도가 큰 메인 이벤트다.
- ↑ 남싱은 별들의 전쟁이었고, 여싱은 한일전이었으며(해외 해설자들도 경기 시작전 한일 양국의 역사적 배경을 들어 설명했다), 페어는 중국vs중국, 아이스댄싱의 경우 캐나다vs미국이었던데다 두 조 모두 코치가 같아서 함께 훈련하는 등 비화가 많았다.
- ↑ 참고로 이 둘은 바다탐험대 옥토넛의 원작자다. 시기상 이게 먼저지만.
- ↑ 출발 드림팀에 나온 내용을 잘못 들으신 분들이 있을 텐데, 거기 나왔던 한국인 두 명은 마스코트 인형을 만들었지 마스코트를 만든 게 아니다.
- ↑ 참고로 이때와 같은 1차 투표 유럽 분산 후 2차 투표 유럽 단결 현상은 평창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 ↑ 하지만 개정된 규정에도 불구하고 평창에선 가리왕산을 밀어서 스키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엄청난 비판받고 있다. 자세한 건 가리왕산 항목 참조.
- ↑ 일본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은 1998년 대회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2006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한 대회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 ↑ 대진운도 상당히 좋았다.
- ↑ 남자 500m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획득
- ↑ 이 당시 모태범은 출전한 3명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국제적인 대회에서의 랭킹이 낮은 데다 500m는 그의 주종목이 아니라서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 2인승 때도 전복 사고가 일어났는데 하물며 그것보다 크기가 더 큰 4인승에서 안 일어나라는 법도 없다. 애초에 개조했던 이유가 2인승에서 전복 사고가 나왔기 때문에 4인승에서는 속출할 거라 예상하고 코스를 개조했던 것.
근데 효과는 없음 - ↑ 2인승에서도 똑같은 불안요소가 생겼다. 결국 DNF가 속출.
- ↑ 당연한 거지만 검열삭제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 ↑ 올림픽 이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커밍아웃했다.
- ↑ 한국에선 처음엔 메달에 관한 논쟁인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신체점제에 대한 불만제기였고 이에 관한 것이 언론의 왜곡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버린 것이다. 플루셴코 항목을 참고.
- ↑ 중국 신화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무리한 추월 과정에서 생긴 반칙으로 인해 실격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앞서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