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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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길선 등의 사례가 있으나 절대 다수가 한족계. 성씨의 연원은 송나라에서 비롯한 길당이 시조로 8학사의 일원인 길당은 고려 문종때 귀화해 해평백에 봉해졌다.[1] 남한보다 북한(평안북도 선천군, 영변군 등)에 더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6.25 전쟁 이후 성씨 순위가 급락했다고 한다(62위 -> 72위 -> 현재 76위). 그래도 아래에 나오는 길재호(영변군)나 길창덕(선천군) 등 평안도 출신들이 전쟁통에 월남하기도 했다.

해평길씨, 선산길씨 등이 있으나 시조는 같으며 사실상 해평 길씨 단본이다. 선산은 단지 길씨의 세거지명(여러 대 동안 산 고장의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평(면)이 (구舊)선산(군)이고, 선산이 해평이다. 고려 개성 성균관 생원이었던 길시우를 1대로 중간 시조는 야은 길재(8대)이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길재 이래 은거하여 직접 중앙 관직에 나간 조상은 많지 않다. 길재는 후손들은 조선에 나가 벼슬하라고 했는데 청개구리처럼 대를 이어 은거했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원종공신 1등에 길회(병조정랑(정5품), 사헌부 장령(정4품))와 만력제를 배향하고 삼학사의 관직을 높이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 길경조(예조정랑 역임) 정도가 있다.

2005년 인구 센서스에서는 76위(32,418명 - 가운데 해평길씨 20,338)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집성촌은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2]이며 경상북도 선산(구미시)에도 상당수의 인구와 유적이 남아있다. 그외 전라남도 장흥군강원도 춘천시에도 집성촌이 있다.

2 실존인물

3 가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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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다수의 자료에는 길당이 당나라 사람이라고 적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평길씨세보(海平吉氏世譜)》에 의하면 길당이 귀화한 고려 문종 재위기는 11세기 초반. 정작 당 황조는 907년 주전충에게 망했고 그 후신을 자처한 후당(937년 멸망),남당(975년 멸망)도 이미 없어져 북송이 통일한지 오래였다. 잘못된 오류이나 전혀 고쳐져있지 않은 셈. 두산백과나 위키백과에는 정확히 송나라라고 기술되어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길씨들도 당나라때 귀화한 걸로 알고 있다.
  2. 야은 길재 선생이 금주(금산)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중랑장 신면의 딸과 결혼한 땅이 부리인데, 증손자 때부터 부리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참고로 마을 이름 유래가 길재가 출사를 거부하며 말한 충신불사이군에서 불이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사족으로 길씨 파 중에 실제로 불이파가 있다. 아무튼 길씨가 부리면 지역 양반의 40~45%를 차지했으며, 남원 양씨(20%)와 함께 양대 거족이었는데, 6.25 전쟁 때 주요한 마을 내 좌우 갈등 연구 사례 가운데 하나.
  3. 생전에 패티김,혜은이와 콤비를 이뤘던 대중음악 작곡가. 1927년~1995년. 대표곡으로 <서울의 찬가>,<당신은 모르실거야> 등이 있다. 단,길옥윤은 예명이고 본명은 최치정이다. 일본에서 공연시 일본의 문인들의 이름을 본따서 요시야 쥰(吉屋潤)으로 행세했고,그게 굳어진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