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

(나창정에서 넘어옴)
이름임창정(任昌丁)
출생1973년 11월 30일, 경기 이천
본관풍천 임씨
신체170.1cm[1], 62kg, B형
학력중앙대학교 영화과
가족1남 3녀 중 셋째, 슬하 3남[2]
특기작사, 작곡, 모든 운동, 남도창, 모창, 디씨질(어그로)
종교개신교
인스타그램 공식 팬카페 임창정 갤러리
KBS 가요대상 대상
김건모
스피드
(1996)
임창정
그때 또 다시
(1997)
H.O.T.

(1998)
대종상 남우조연상
김일우
(1996)
임창정
(1997)
[3]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류승범
(2007)
임창정
(2008)
주진모
(2009)

대한민국만능엔터테이너 - 가수, 영화배우

1 개요

대한민국의 최정상급 보컬리스트이자 자신만의 색깔로 발라드 명곡을 써내려가는 싱어송라이터[4]

국내 대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1990년대 당시 가요계, 연기계[5], 예능계[6]에서 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유일한 연예인. [7]

전영록의 등장이후부터 개념은 존재했지만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었던 '만능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최초로 정착시킨 인물로, 이후 연예인들이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케이스는 몇배로 늘어났고[8], 2000년대에 탁재훈, 2010년대에 이승기배우, 가수, 예능 세 분야 모두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이들 중 아직 임창정의 경지까지 올라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9] 그야말로 다재다능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2 이력

2.1 데뷔(1990~1996)

1990년 영화 '남부군'에서 연기자로 데뷔. 이어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등 여러 공중파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과 조연 등으로 얼굴을 내밈과 동시에, 1995년에 정규 1집을 발표하여 가수로도 데뷔하여, '이미 나에게로' 등의 곡들로 가수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6년 발매된 2집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서, 그 다음해인 1997년에 영화 '비트'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임창정은 이 영화에서 양아치인 '환규' 역할을 맡아, 17대 1로 싸우는 양아치 연기를 실감나게 소화[10] 하여 유오성과 함께 당시 주목할 만한 신인 조연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 영화의 OST에 가수로서 참여하여 그가 부른 곡인 '슬픈연가' 또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불어 공중파 예능계에도 입성, KBS 슈퍼선데이의 '금촌댁네 사람들'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코믹연기로 주목을 받으면서 대중인지도를 어마어마하게 올려, 배우-가수-예능까지 섭렵하는 당시에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만능엔터테이너'라는 그만의 고유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 그의 히트곡 메들리.

2.2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전성기가 시작되다(1997)

이렇게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가수로서 3집 앨범을 내놓게 되는데 이 곡이 바로 지금의 임창정을 있게 만들어준 'Again', 원래 이 곡의 작사를 임창정 본인이 직접 하여 발매 직전 라디오에까지 내보냈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아 당시 유명한 작사가였던 박주연에게 작사를 맡겨 지금의 'Again'이 탄생하였다. 그는 이 노래로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거머쥐며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 쥐게 되었고 연이어 하반기에도 발표한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면서 가요톱텐에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마지막 수상자로 남게 되었다.[11]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그 해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임창정 인생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된다.[12][13]

2.3 전성기의 지속, 그리고 가수 은퇴(1998~2008)

이런 엄청난 인기로 3집 앨범은 임창정 가수 인생 최초의 히트 앨범으로서 자리매김 하게 된다. 3집을 계기로 그는 명실공히 인기가수로서 자리매김 하였고, 10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03년까지 약 6년 동안 앨범의 수록곡들은 1위를 차지하거나 상위권 순위에 랭크되면서 최고의 발라드 가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변심, 절교선언
특히 임창정의 정규 6집과 8집은 그의 앨범 중에 명반으로 손꼽히곤 하는데, 두 앨범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6집이라 하겠다. 2000년 2월에 발매된 정규 6집 'White'는 '다줄꺼야'로 유명한 작곡가 조규만[14]이 앨범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15]이고, 임창정이 일본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가수로서 창법에 변화를 준 첫 앨범이기도 하며, 특히 2000년 당시 국내 가요계에서는 거의 생소했던 Unplugged 스타일[16]로 제작된 특별한 앨범이기도 하다. 방송활동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의 연인', 'Smile Again', '기쁜 우리' 외에도 '이별이 나를 부를 때', '낮에', '너의 꿈에 부치는 편지' 등의 나머지 앨범 수록곡들 역시 타이틀곡이나 후속곡으로 경합을 벌였을 만큼 6집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8집 'Different Color'의 타이틀곡은 '기다리는 이유'라는 곡인데 정규 2집 타이클곡인 '혼자만의 이별'과 함께 임창정의 노래들 중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노래다. 이 외에도 원래 팬들 사이에서 명곡으로 꼽히던 '미련'은 히든싱어 임창정 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조현민이 부르자 대중들에게 재조명 받았으며 '위로'라는 노래도 한 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전성기 때는 역시 가수와 연기자로 큰 성공을 거둔 김민종과 라이벌 기믹이 있었는데, 임창정이 더 롱런한것도 있고 예능력에서도 넘사벽이라 임창정의 우세. 그리고 정규 10집 Bye의 활동을 끝으로 10집까지 내고 연기자로 돌아가겠다는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3년 10집 활동을 마친 후에 돌연 가수로서 은퇴 선언을 하고 영화배우로서 전념하게 된다.

영화 속 임창정의 연기의 특징은 다름아닌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선사해 주는 묘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라는 것이다. '비트',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등 그만의 고유 캐릭터뭘해도 소시민를 잘 표현해 낸 영화들에서 흥행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5년간 영화배우로서 전념하면서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배우로서도 큰 성과를 내었다. 윤제균 감독의 일종의 페르소나로서 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초대박작인 해운대 촬영을 자기가 거절했다.[17]

2.4 가수 복귀와 이후(2009~ )

스트리밍 전국시대에 다시 찾아온 전성기

은퇴했음에도 가수 활동에 미련이 많이 남았던지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자기 노래만 2시간 동안 부르고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스스로 밝힌 적도 있으며 심지어 2007년에는 후배 제드의 싱글 타이틀곡 '사랑의 숲에서 길을 잃다'에 피쳐링으로 지원사격을 하기도 했다.당시 라이브 영상 링크 결국 2009년 11집으로 가수로서 다시 컴백하여 활동했다. 예전만한 인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6년만에 컴백한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괜찮은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되겠다. 컴백한 당일 1위에 올랐었으나 슈퍼주니어가 곧바로 줄세우기를 해버렸다... 더불어 예능계에도 진출해 '천하무적 야구단'에 고정출연했으며 2010년 완전 하차함으로 예능에선 발을 뺀 상태.

2013년 9월 24일 앨범 '나란놈이란'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컴백했다. 그간 공백기가 길었음에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전성기때 불렀던 노래들을 무리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복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격적인 예능 첫 출연으로 히든 싱어 시즌2에 첫번째 가수로 출연했는데 쟁쟁한 모창능력자들 사이에서 내가 임창정이다를 몸소 보여주시며 건재함을 알렸다. 예능쪽으로도 전현무의 깐죽거림에 열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역시 임창정이다'는 느낌의 입담을 과시했다. 그리고 모창능력자 6명이 '오랜만이야'의 후렴구를 함께 부르며 2003년 그가 은퇴할 때 모습을 재연하여 큰 감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얼떨결에 기부천사의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18][19]


싱글 앨범 '나란놈이란' 후속곡으로 나온 '문을 여시오 (feat.김창렬)'[20] M/V가 인터넷에서 유머사이트에서 엽기발랄한 내용으로 화제가 됐다. SNL 코리아에서 본인이 나왔던 스케치를 M/V에서 다시 선보인 것. 업이 하다. 문- 열어 판다치즈광고의 공익형 패러디

2014년 3월 20일 자정, 12집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흔한 노래'. 흔한 노래의 최고음은 8집의 '기다리는 이유'의 3옥타브 도라는 엄청난 고음과 같다. 하지만 꺾이는 음까지 포함하면 3옥도 #이다. 담배를 끊게 되면서 후유증도 많았지만 안정적인 고음을 다시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의 목상태를 다시 찾은 셈.

이후 '친한 사람'을 발매했는데, 타이틀곡 '임박사와 함께 춤을 (Feat. LE Of EXID, 이박사)'이 문을 여시오와 비슷한 컨셉의 댄스곡이다. 이래저래 2010년대의 댄스곡은 뽕짝으로 컨셉이 굳어진 모양.

2015년 9월 22일, 첫번째 미니앨범 "또 다시 사랑"을 발매했다. 최초 발매됐을 때는 차트마다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로 순위권에 안착했다가 밀려나고 있었다. 그러나 히든싱어 시즌4 도플싱어에서 임창정이 홍보한 것을 계기로 갑자기 역주행을 시작하더니, 추석 연휴 끝무렵인 29일 오전부터 대다수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기사에서도 나오듯이, 최초 발매했을 때는 순위에서 밀려났는데 소위 '차트 역주행'으로 1위까지 올라갔다. 특히 5위권에서 벗어나있을 때부터 5위권 순위에 있던 개리의 정규 타이틀곡과 소유&권정열의 듀엣곡을 넘어서고 1위로 등극했다. 소위 사재기 논란으로 한참 음악계가 달궈져있어 사실상 조작이 불가능한 차트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의미있는 성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2015년 10월 9일, 임창정은 이 곡으로 KBS 뮤직뱅크에서 14년 만에 1위를 달성했다.[21][22] 이틀 뒤인 10월 11일에는 골프 중계로 결방된 SBS 인기가요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 결과 밝혀졌다. [23] 곡이 발표 된지 1달이 지난 11월 10일까지 음원 차트에서 낮에는 3~4위권으로 밀려났다가 새벽 5시만 되면 다시 1위로 복귀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써 임창정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1위를 해본 가수중 하나가 되었다. 이 노래의 인기를 한번 더 실감하고 싶다면, 위 유투브 영상의 조회수를 봐보자..

여담이지만 SNL 코리아 류승수 편에서 이 노래를 복합 느낌이 나게 패러디하여 만들었다. 참고로 본인이 특별출연 했다!

무지막지한 음원 돌풍으로 인해 단 3개월만 차트에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멜론 연간 차트에서 11위를 기록했다!

2016년 9월 6일에 신곡 '내가 저지른 사랑'을 발표했고 발표하자마자 1위를 차지했다. 곡의 인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던지, 신곡이 공개된 지 24시간 도 채 되지 않아 팬의 커버 영상이 임창정 갤러리에 올라와 초개념글로 올라가기도 했다.[24] 그리고 9월 6일 현재 말 그대로 음원 차트를 쓸어담고 있으며, 멜론에서는 22시간 지붕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멜론 24시간 이용자수가 127만을 넘기면서 종전 아이유가 세운 기록[25]을 11개월만에 뛰어넘었다.[26]

참고로 이번 13집의 타이틀곡인 '내가 저지른 사랑'은 임창정이 발표한 곡들 중에서도 손 꼽힐 정도로 힘든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후렴구에선 연속 2옥타브 시의 음들이 쏟아지고[27], 후반부 애드립에서는 무려 3옥타브 레(!)의 음을 길게 끈다. 더 무서운 사실은 현재 발표된 곡은 기존에 계획한 초안보다 무려 두 키나 더 낮은 버전이라는 점...[28] 이로써 4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다만 대중적으로 매우 높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임창청 노래 치고는 '내가 저지른 사랑'이 생각보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최고음이 '3옥타브 레'이긴 하지만 호흡 조절과 성대 컨트롤을 잘 구사하면 나름 쉴 구간도 존재하고 후렴에서 계속 뻗혀나가는 고음들이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힘든 곡일지라도 예전 임창정 곡들 보다는 다소 무난한 난이도라 볼 수 있다.[29] 오히려 8집의 '기다리는 이유'가 전체적인 난이도가 더 높다고 평가 받는데 최고음이 '3옥타브 도'이지만 쉴 틈 없는 2옥타브 후반 구간에서 '내가 저지른 사랑'과는 달리 도무지 음들이 내려갈 틈이 없고 수직 현상처럼 올라가기 때문에 성대에 무리를 더 주기 마련이고, 실제로 임창정 역시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전성기 시절에서도 유독 '기다리는 이유' 만큼은 라이브에서 원키를 부른 적이 없을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자세한 13집 관련 내용은 I'M(음반) 항목 참조.

3 가창력

고음 발라드의 거장

연기력이나 예능감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임창정한테서 돋보이는 능력은 가창력. 국내에서 최정상급의 가창력을 지녔으며, 내는 곡마다 대히트를 치며 국내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라는 것을 증명했다.

벨팅을 사용함에도 0옥타브대에서 3옥타브 중반대까지 발성하는 넓은 음역대와 마이크를 멀리 떼어내 놓고 불러도 무대를 빈틈없이 꽉 채우는 무지막지한 성량, 폭발적이고 진솔한 감성을 바탕으로 수많은 발라드 히트곡들을 보유했으며, 특히 속이 꽉찬 고음에 있어서는 국내 최정상이라는 평가. 하지만 대표곡인 <소주 한 잔>만 들어봐도 알 수 있듯이 중저음도 매력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역대급 보컬리스트이다.

4 임창정과 연관된 작곡가들

은퇴전까지 정규 앨범만 10장을 발매하면서 수많은 작곡가들과 작업을 했다. 이 항목에서는 그 중에서도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하거나 임창정의 노래를 언급하는데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곡가와의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과의 관계를 서술한다.

먼저 작곡가들을 언급하기 전에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을 더욱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임창정 본인만의 스타일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인 색깔은 대중적인 색깔과 조금 거리감이 있다.[30] 임창정이 작곡한 대부분의 곡들은 음악 자체적으로 기승전결이 다른 대중적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으며, 한 소절 이후 다음 소절에 어떤식으로 노래가 진행이 되는지 예측하기 꽤 어렵다.[31]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은 그의 창법에서도 드러나는데, 본인이 가장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창법은 서정적 발라드보다 트로트에 가깝다. 이러한 창법들로 인해 90년대 이후 대중이 선호하는 서정적 발라드에 꼭 맞는 창법을 지닌 가수는 아니라는 점. 물론 임창정 정규 앨범 수록곡중 모든 곡들이 임창정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32] 그만큼 임창정 본인의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필요를 둘 다 충족시키기는 작곡가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다. [33] [34] 결론적으로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첫 번째 은퇴 이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곡에서 1) 고음이 여실히 드러나야 하며 [35] 2) 특유의 꺾는 창법이 요소요소 잘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대중적 발라드가 (고음 제외) 추구하는 바와는 상반된다.

4.1 김형석

임창정의 대표적인 타이틀 곡들과 더불어 임창정을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 가수로 견인한 작곡가

임창정하면 당연 작곡가 김형석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임창정의 음악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다. 임창정을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자 3집부터 5집까지 임창정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했으며 [36] 이후 조규만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에도 8집의 '기다리는 이유'와 9집의 '슬픈 혼잣말'이라는 명곡 타이틀들을 2번이나 내놓은 작곡가이다.

임창정 한정 김형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각 시대 대중이 원하는 발라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며 임창정이란 가수를 활용함으로써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를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37]

임창정 스타일의 발라드를 완성시켰다고 말해도 될 만큼 임창정 한정 작곡가의 자질을 원없이 보여줬다. 가끔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극대화시킨 작곡가는 아니라고 단점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위에 언급 되었듯이 김형석이 작곡한 발라드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이러한 평가들은 주관적인 견해가 섞이기 마련이다. 다만 결론적으로 김형석이 다른 임창정 곡들을 써낸 작곡가들보다 더욱 빛나는 영역은 바로 임창정의 목소리를 통해 임창정만의 전통 발라드를 완성시켰고 특유의 슬픈 감성이 잘 묻어나오는 명곡들을 만들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담으로 세바퀴에서 밝혀지길 김형석과 임창정의 첫 만남은 노래방에서였다, 옆방에서 너무 노래를 잘해서 김형석이 양주 한 병을 들고 찾아갔는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임창정이여서 이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하고 놀랐으며, 꼭 작업을 같이 하자고 연락처를 교환했다고 한다. 다만 김형석은 임창정이 당시 자신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당시 임창정도 작곡가 김형석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4.2 조규만

5집까지 임창정을 대중적 성공으로 견인한 작곡가가 김형석이라면 은퇴 이전 가수 임창정의 후반부를 총괄했던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도 임창정의 타이틀곡을 견인한 적이 없는 (임창정 한정) 비운의 작곡가.

김형석이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작곡가라면 조규만은 본인의 색깔이 뚜렷하면서 (가장 정형화된 발라드 스타일) 그 색깔 자체가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이라 작곡가중에서도 못해도 중박 이상은 치는 작곡가이다. 5집까지 김형석의 시대가 끝나면서 6집부터 임창정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는데 6집부터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임창정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3집 summer dream, 6집의 Smile Again, 7집의 그대도 여기에, 8집의 너에게 모자란 나같은 곡들. 하지만 조규만 스스로의 스타일이 너무나도 확고하면서도 그 확고한 스타일이 임창정과는 극인지라 노래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적합하지 않았던 작곡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을 들어보면 임창정보다는 예전 전성기의 조성모에게 더욱 더 어울리는 곡들이 많다. 조규만의 음악적 성향과 임창정의 그것이 극이라는 것은 임창정이 조규만 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 특히 잘 드러난다. 녹음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감출 수 없는 공개 무대 라이브에서 부른 조규만 작곡의 smile again 후렴부를 들어보면 녹음곡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도호 우후수훌쑤이쬬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에 주의하면서 들어보자. # 물론 임창정이라는 가수가 임창정스러움을 버려두고라도 감정적으로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가수라 흠좀무 조규만과의 작업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으나 점점 임창정스러움이 김형석 시절보다 더 억압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형석 못지않게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한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곡한 곡들은 단 한번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점. 임창정 한정 콩라인이다. 6, 7집에서는 갑툭튀한 굇수 원상우에게 밀렸다면 8집 이후에는 다시 임창정과 작업한 김형석에게 밀려버렸다...[38] 그 후로 타이틀곡에 미련이 없어졌는지 9집이후 조규만 곡들은 8집 이전의 그것들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편.

다만 그가 총괄했던 음반중 6집이 임창정 팬들사이에서 주로 최고의 명반으로 뽑힌다는 점에서 임창정의 은퇴 이전 후반부의 가수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사실. 사실 조규만의 곡 색깔과 임창정 본인의 색깔이 안 맞았을 뿐이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은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조규만은 6집 이전에도 임창정과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지는 않았지만 3집의 "너를 잊기로 했어"는 조규만의 노래. 다만 이 노래는 기이하게도 6집 이후 조규만 작곡 노래들과는 달리 임창정스러움이 많이 묻어난다.

김형석과 조규만을 거치면서 예전 가장 임창정스러웠던 모습을 대중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는 없으리라 예상했으나...

4.3 원상우

6, 7집 한정으로 임창정 본인만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명곡들을 작곡한 임창정 한정 최고의 작곡가.

김형석이 앨범을 총괄하던 시대가 끝나고 조규만이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조규만의 시대가 오나 했지만. . . 갑툭튀한 원상우가 작곡한 곡들이 6, 7집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된다. 원상우의 곡들은 임창정 월드에서는 신세계였는데 불가능하리라 믿어졌던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였던 점. 실제로 6집 나의 연인의 경우에는 가장 임창정스러움의 요소 (고음과 꺾는 창법)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깊이 빠져들만한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조규만 곡에서도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규만 곡이 임창정 창법을 억압하는 방향이었다면 원상우는 임창정을 최대한 지지하면서 어떻게 대중적으로 잘 어필할 수 있는지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39] 원상우의 곡이 임창정의 임창정스러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6, 7집 한정으로 조규만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인 면모가 부족하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임창정의 작곡가로서 원상우의 가장 큰 의의는 제일 처음으로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선호를 조화시키는 법을 아는 작곡가였다는 점. [40]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원상우의 가장 큰 장점은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데 7집이후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대중적인 요소가 많이 파괴된 면모를 보인다(물론 임창정스러움은 더욱 부각되었을지 몰라도). 즉,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원상우의 리즈시절은 6, 7집,그 중에서도 6집이었다는 것. 7집 이후 임창정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41][42]

4.4 이동원

임창정 월드에서 1집을 제외하고 은퇴 이전 처음과 끝을 견인한 사람. 2집은 실패했으나 후에 소주 한 잔으로 은퇴이전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한 장본인.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 소주 한 잔을 임창정에게 선물한 작곡가.

현재 임창정하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곡은 바로 소주 한 잔이고 이 명곡의 작곡자가 바로 이동원이다. 2016년에 13집 타이틀 곡인 내가 저지른 사랑이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한 임창정이지만 꾸준히 임창정 이미지를 대표할 곡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소주 한 잔일 것이다.

사실 임창정 발라드 곡들이 대부분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소주 한 잔이 다른 곡들보다 왜 더 인기가 많은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이동원이 작곡한 2집의 혼자만의 이별[43]을 떠오르면 미칠듯한 고음과 일반인들은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한 난이도 덕분에 대표적인 발라드 곡으로 자리잡지 못 하였다. 또한 실용음악이 그 때 당시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평균적인 일반인들 가창력이 현재보다 높지 않았고, 그렇기에 임창정 노래는 노래방에 가서도 부르지 못 하는게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소주 한 잔이 나오고 임창정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았기에 준수한 음 높이로 여러 남성들이 부를 수 있었고, 결국 이 난이도 조절이 소주 한 잔의 대중적 성공에 견인했다.

결국 2집 이후 김형석이 임창정을 인기가수로 견인하고 그 후 조규만이 후반 프로듀싱을 책임지면서 이동원은 그대로 잊혀지는 듯 했으나 은퇴 이전 마지막 앨범인 10집에서 소주 한 잔을 내세우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44] 일명 왕의 귀환. 이 후 소주 한 잔이라는 노래가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니 작곡한 곡수는 많지 않아도 임창정에게 있어서는 큰 도움을 준 작곡가.

5 활동

5.1 영화[45]

연도제목활동관객수흥행
1990남부군조연68만명(전국)성공
1990장미여관단역2천명(서울)실패
1992섬강에서하늘까지단역2만 3천명(서울)실패
1992걸어서하늘까지단역7만 5천명성공
1994게임의법칙단역12만명(서울)성공
1997비트조연35만명성공
1998엑스트라주연8만 2000명(서울)실패
1998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주연20만명(서울)실패
2000행복한 장의사주연12만명(서울)실패
2000자카르타주연70만명실패
2001두사부일체우정출연330만명성공
2002해적, 디스코 왕 되다주연130만명성공
2002색즉시공주연420만명성공
2003위대한 유산주연225만명성공
2003낭만자객우정출연96만명실패
2003역전에 산다특별출연55만명실패
2004시실리 2km주연200만명성공
2005파송송 계란탁주연110만명부진
2005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주연254만명성공
2006아치와 씨팍주연10만명실패
2007만남의 광장주연130만명성공
20071번가의 기적주연275만명성공
2007스카우트주연31만명실패
2007색즉시공2주연209만명성공
2009청담보살주연132만명성공
2010육혈포 강도단조연123만명성공
2010불량남녀주연49만명실패
2011사랑이 무서워주연40만명실패
2012비처럼 음악처럼주연미개봉-
2012공모자들주연164만명성공
2013창수주연43만명실패
2015치외법권주연35만명실패
2016대결우정출연

5.2 TV

  • 지구인(1990, KBS)
  • 여명의 눈동자(1991, MBC)
  • 해뜰날(1992, KBS)
  • 무당(1994, KBS)
  • 슈퍼선데이(1996-1997, KBS) -
금촌댁네 사람들, 둥근 해가 떴습니다
  • 남자셋 여자셋(1997, MBC)
  • 세리가 돌아왔다(1999, KBS)
  •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2002-2003, KBS) -
MC대격돌 3기
  • 천하무적 토요일(2009-2010, KBS)
  •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2010, MBC)
  • 지운수대통(2012, TV조선)
  • 좋은인연

5.3 음반

5.3.1 정규 앨범

음반제목발매일타이틀곡그 외 활동곡음반판매량
1집Rock & Razor Techno Music1995년 4월거짓같은 진실이미 나에게로10만장(추정치)
2집Because I'm not with you1996년 4월혼자만의 이별3만장 (추정치)
3집Again1997년 5월 16일그때 또 다시summer dream/결혼해 줘82만장
4집Lim Chang Jung 4th1998년 4월별이 되어늑대와 함께 춤을50만장
5집Story of...1999년 3월Love Affair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7만장
6집White2000년 2월 11일나의 연인(我戀)smile again/기쁜 우리56.1만장
7집WWW.Love.7th2000년 11월 1일날 닮은 너[46]www.사랑.com46.7만장
8집Different Color2001년 7월기다리는 이유[47]뭔데 뭔데/말해요38.9만장
9집구집(鳩集) : C.J.2002[48]2002년 5월 1일슬픈 혼잣말너를 너로써23.7만장
10집Bye2003년 6월 5일소주 한 잔Bye12.6만장
11집Return to My world2009년 3월 10일오랜만이야원하던 안 원하던2.5만장
12집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2014년 3월 20일흔한 노래어느 하루가추가바람
13집I'M2016년 9월 6일내가 저지른 사랑[49]-추가바람

5.3.2 비정규 앨범

-베스트

  • His 1st Best Album: Lim Chang Jung A To Z(2001)[50]
  • Remind(2010) - 잊혀지는 이별[51]

-싱글

  • 나란놈이란(2013) - 나란놈이란
  • 친한 사람(2014) - 임박사와 함께 춤을 (Feat. LE Of EXID, 이박사)

-미니

  • 또 다시 사랑(2015) - 또 다시 사랑[52]

-드라마

  • 지운수대통 OST - 언제나같은생각"집으로 가는 길""(2012)
  • 쓰리데이즈 OST Part 1(2014) - Goodbye
  • 조선총잡이 OST Part 4(2014) - 기다리라 해요
  • 달콤살벌 패밀리 OST Part 2(2015)- 괜찮아질텐데

-참여

  • 용감한형제 10주년 앨범 Part 1(2013) - 그렇게 당해놓고[53]

5.4 공연

  • 1993년 뮤지컬 동숭동 연가
  • 에비타
  • 마의 태자
  • 1998년 임창정 첫 단독콘서트 in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
  • 1999년 임창정 단독콘서트 서울-부산-청주 투어
  • 2009년 뮤지컬 빨래- 솔롱고
  • 2010년-11년 뮤지컬 라디오 스타- 매니저 박민수
  • 2012년-13년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뮤지컬)- 듀티울
  • 2014년 전국투어콘서트 "흔한노래.. 흔한 멜로디.."
  • 2014년 크리스마스 콘서트 "SHOW MAN"
  • 2015년~16년 20th 전국투어 콘서트 ‘My Story’

6 수상경력

  •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신인연기상 - 비트
  • 제35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 비트
  • 1997년 KBS 가요대상 대상
  • 1997년 MBC 영상음반대상 본상
  • 1997년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7년 SBS 가요대전 본상(1997~2002년 6년 연속)
  • 2000년 KBS PD가 뽑은 최고 인기가수상
  •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 색즉시공
  • 제4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스카우트[54]
  • 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상 - 공모자들 
  • 2015년 제4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파퓰러 싱어상

7 트리비아

  • 최초로 음원차트 지붕킥 100회 돌파하였다 국민가수위엄 #
  • 신혜성과 듀엣곡을 발표했다.
  •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밤이면 밤마다에서 언급한 이야기로, 예전에 가수 오디션을 보러갔다가 윤도현을 만나서 결승까지 갔고, 둘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회사에서는 윤도현과 임창정을 둘다 캐스팅했지만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 연예계 주당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주사를 묻는 질문에 ' 마시면 그냥 잔다'라고 하자, 마르코가 "아침 9시까지 마시는데 잠이 안오면 사람이 아니죠."(…). 비틀즈 코드에 나와서 밝히기로는 술이 '깨면' 주사가 생긴다고 한다. 그 주사란 술을 찾는 것...
  • 1996년에 발매된 Because I'm Not With You 에선 임창정이 부른 가장 높은 노래인 혼자만의 이별이란 곡이 존재한다. 최고음이 3옥타브 레이기 때문에 엄청난 발성과 고음을 요구하며 자신도 힘들어서 별로 부르지 않은 노래라고 한다. 지금의 자신은 절대 라이브로 소화할 수 없는 곡이라고.. 한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리즈시절 임창정의 고음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노래. [55]
  • 임창정이라는 가수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흔히들 표 현하는건 '노력형 가수'. 순전히 노력으로 이루어진 실력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불후의 명곡 출연 당시 본인 입으로도 '난 타고난게 없다, 99프로의 노력이 있고 1프로가 타고났다. 따라서 김건모, 이승철과 같은 타고난 가수들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으로 톤이 높으며 창법 운운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유명한 반가성[56] 가수.[57] 음악방송 한구석에 립싱크 마크가 당연하던 시절에도 꾸준히 라이브만 해왔던 가수 중 한명이라 그런지 사소한 음이탈이나 음정, 박자는 신경쓰지 않고 화끈하게 노래를 부른다. 공연환경이 좋지 않은 공중파 음악방송에 나와 마이크를 저만치 떼어서 불러도 쩌렁쩌렁 울리는 성량도 압권. 한번은 방송국에서 실수로 "혼자만의 이별"을 두키씩이나 올려버리는 병크를 저질러 버렸는데 그냥 소화해내는 기염을 토해낸다. 한 키 맞다. 이것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데 원곡은 최고음이 3옥타브 레인데 이 라이브는 최고음이 3옥타브 레 #이다.[58] [1] 창정횽의 빡친 표정은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라디오에서 갑자기 "소주 한 잔"을 라이브로 부르게 되었는데, 음이 너무 낮은것 같아서 제작진에게 계속 올려달라고 하다 결국 원키를 넘어버렸지만 그대로 불러버린 적도 있다.[2] 여담이지만 조수미가 좋아하는 가수로 임창정을 꼽은 바 있는데, 다름아닌 가창력이 뛰어나서 좋아한다고 한다. 가장 최근 출연한 라디오 스타에서도 마이크를 한참 떼어놓고 부르는 모습에 다들 감탄했다.
  • 5집 타이틀 곡 'Love Affair'의 녹음시에, 곡의 후렴구 중에 '우리 단 한 번'이라는 가사 부분을 부를 때, '한~번'으로 음이 올라갈 때 실수로 실제 작곡된 코드보다 반음 내려진 음으로 '번'을 불러 녹음했는데, 당시 이 곡의 작곡자이자 프로듀싱을 맡았던 작곡가 김형석이 오히려 흡족해 하며 훨씬 좋다고 판단해 그대로 앨범에 싣게 되었다고 한다.
  • 7집 수록곡인 '날 닮은 너[59]'라는 곡엔 "두려워 겁이 나"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노래부를 때 이를 항상 "두려워 겁씨나"로 발음하여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표준어의 올바른 사용에 민감한 사람들은 상당히 거슬린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본인은 이에 대해 "틀린 발음인 것은 알았지만, 강조를 위해 일부러 그리 한 것"이라 뉴스기사를 통해 해명.[60]
사실 70대 이상 어르신들 중에 이렇게 발음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지만, 옛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 중에는 임창정이 외국인처럼 한국어를 발음한다며 원래 없었던 외계어나 언어 파괴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 2002년 가요 프로그램 출연시에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낯설어 보이는 여자 가수가 대기실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신인인거 같아 보이는데 인사할 기미가 없는 여자가수에게 선배로서 한 소리 할려고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가수는 다름아닌 6년 만에 컴백한 가요계의 마돈나 김완선이었다고...[61] 결국 임창정은 당황하면서 김완선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는...
  • 배우 이병헌의 데뷔 초반기에 임창정이 로드매니저 보조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어서 이병헌과 옛날에는 무척이나 호형호제 하던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임창정이 스타가 되고 난 후에 술자리에서 대판 크게 싸우고 난 뒤[62] 서로 3~4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다시 임창정이 먼저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했고, 이를 계기로 임창정은 이병헌과 자신의 관계처럼 누군가 막역한 동생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동생이 바로 칩사마[63]... 1년 동안 친하게 지내며 이병헌처럼 티격태격 싸움도 걸어보다가 맞을뻔 하고[64][65] 그만두기로 했다고... ㅎㄷㄷ 하지만 최근에 이수근이 제발로 찾아와 줬으니 소원 성취한 듯... 실제 막역하고 꽤나 아껴주는 듯 하다. 그리고 지금 신정환과 이수근은...
  • 연예계에서 군기를 강하게 따지는 성격이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아역으로 데뷔해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보고 자란 영향으로 보인다. <라디오스타>에서 신정환이 우연히 임창정을 식당에서 마주쳤는데, 임창정이 일행과 식사하고 있어 모르겠거니 하고 대충 인사도 안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임창정이 이런 행동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고, 곧바로 신정환을 손짓으로 슬그머니 불러서(말하면서 신정환이 임창정 흉내를 내는 것이 백미다.) 뒤로 불려가 쪼인트받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해프닝이 몇 건 더 있다고 한다.
  • 강심장에서 과거 오디션에서 "너는 이런 일(배우)해야 할 놈이 아니야. 너는 공부나 해야 돼. 너 같은 놈이 경쟁률 머리 수만 높여준 거다. 네가 뭐가 되겠냐. 네가 성공하면 내가 내 성을 갈겠다."라는 식의 조롱을 한 감독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십수년 후 바로 그 감독이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을 부탁하자 "매니저와 상의하시죠"로 대충 넘겨버린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술회한 바 있다. -
  • 90년대 말까지는 여드름이 엄청나게 많은 가수였다. 방송용 메이크업으로도 피부의 울퉁불퉁함이 가려지지 않았을 정도.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 꾸준한 관리와 피부과 시술로 매끈한 피부를 갖추게 되었다. [66]
  • 신인가수 시절의 임창정이 어느날 연예계 관계자들과 노래방에 들렸다고 한다. 분위기도 띄울 겸 임창정이 한 곡조를 뽑았고 그날따라 목소리가 좋았는지 폭발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한 작달막한 20대 일반인 여자가 피식 웃더니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신세계가 펼쳐졌다고 한다. 이후 며칠간 임창정은 절망에 빠져 가수를 계속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여자의 정체는 바로 박정현...임창정이 강심장에서 이야기한 당시의 비화[67] 임창정의 실제 증언에 따르면 박정현의 가창력은 방송으로 들어서는 다 느낄 수 없는 엄청나게 탁월한 가창력이라 박정현의 노래는 실제로 들어봐야만 그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 나는 가수다 출연설에 대해 이야기 한 바에 의하면 섭외 요청도 없었고 나갈 생각도 없다고 한다. 요청도 없었다고? 말도 안돼.나가수 시절에는 이미 11집 활동으로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창력을 보여줬던 터라.
  • 가수 허각이 임창정의 열렬한 팬이었고, 히든 싱어에 임창정이 출연하자 모창능력자로 함께 출연하여 방청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근데 얼굴이 드러난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만 들리기 시작해서 광탈 원래는 임창정의 절친인 김창렬을 통해 이전부터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실제로 만나기는 방송에서가 처음이라고 했다. 덕분에 그의 앞에 서자 눈을 못마주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임창정의 2003년 가수 은퇴를 회상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 불후의 명곡 이선희 편에서 등장해 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수 이선희에게 많은 애정표현을 했다. 밥사주세요 이선희편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그리고 전술한 과거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던 박정현에게 1표차이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68]
  • 겁이 없다. 연예계에서 한주먹 하는 김창렬을 상대로 서로 주먹을 교환한 적이 있다. 이유는 서로 롱다리 가수로 명성을 떨치던 김현정을 둘이서 서로 자기 여자친구로 만들려다가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 어디서 좀 놀았냐?
  • 가수데뷔 무려 20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쌩목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수이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논란인가 거슬러 올라가보면 20년차임에도 콘서트 경력이 전무한 데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쪼는 느낌의 고음부 발성에서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인해 임창정은 두 세 곡만 부르면 목이 맛이 가버리므로 콘서트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많은 사람들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게 현실. 하지만 이는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말도 안되는 소문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임창정은 콘서트 경력이 있다!!!!!! 그것도 98, 99년도 무려 두 번!!!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자신의 히트곡이 너무 모자랐고 시키는 대로만 노래 부르던 콘서트였기에 정말 재미가 없어서 다시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20년 차 가수가 된 지금은 히트곡이 넘쳐나기도 하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가 그립기도 해서 콘서트를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 자신의 노래를 공연하거나 콘서트중 클라이 막스 부분과 고음부분을 부를때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면서 입과 눈을 엄청나게 크게 벌리고 뜨는 표정을 자주 짓는다. 이에 팬들은 가사가 하늘에 떠있습니다. 라는 개드립을 시전. 영상이나 사진자료로 간간히 볼수 있다. [69]
  • 99년 마지막 콘서트로부터 15년이 지나서 전국투어 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2014년 5월 23,24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주, 인천, 광주, 대구, 고양, 부산, 울산, 제주까지 무려 9개 도시에서 10회에 걸친 콘서트를 하기로 했다는듯.. 얼마 전 끝난 서울 콘서트에서는 세 시간에 걸쳐 38곡이나 되는 그의 히트곡과 명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그의 현 주소지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그의 가게들이 여러 개 있다.[70][71] 그래서 그런지 그 주변에서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72] 성남시 축제에 시민 자격(..)으로 초대가수로 와서 4곡 부르고 갔다고. 참고로 무료로.


  • 1997년 한솔엠닷컴 CM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했다. 싸요싸요싸요싸요!하는 거렁뱅이(?)를 휴대폰으로 쏴죽이는(??)위엄
  • 2015년 10월 9일자 뮤직뱅크에서 또 다시 사랑으로 2003년 이후 무려 13년만에 음악 순위 프로그램 1위를 거두었다. 감동적인 소감은 덤.[73]
  • 디시인사이드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에 굉장히 많이 보이고 있다. 팬들은 휴먼아재체라고 하며 즐겁게 노는 중 유동으로 활동해서 조작하다가 들켜서 자진 납세하는 경우도 있다.


  • 판듀 2화에서 그때 또 다시를 여자 키로 올려 불렀다... 흠좀무
  • BTOB서은광이 이분의 팬이다. 실제로 임창정 하위호환이라 불릴 만큼 음색도 창법도 비슷하다.
  • 이혼하며 세 아들 중 첫째, 둘째는 임창정이, 막내는 전 부인이 양육하는 것으로 합의했는데 이를 두고 이상한 루머가 돌더니 급기야 '임창정의 셋째 아들은 임창정 친자가 아니며, 이를 이유로 두 부부가 이혼했고 막내만 부인이 키운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찌라시가 돌았다. 악플이 계속되자 결국 임창정의 전 부인이 악플러들을 고소했고, 그 과정에서 세 아들에 대하여 모두 친자검사를 한 결과 세 아들 모두 동일한 부계, 모계관계가 성립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악플러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아직도 이 루머를 믿고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근거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사자들에게 당연히 큰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허위사실을 함부로 유포하지 말자.
  • 2016년 7월 19일 부친상을 당했다고 한다. 향년 90세로, 천수를 누리셨다.
  • 일반인 여성과 열애중이라고 한다. 무려 18세 연하라고 한다...
  1. 본인이 아주 강력하게 주장한다.
  2. 본인 인스타그램에 아들 사진, 영상들을 자주 올릴 정도로 아들바보이다.
  3. IMF 경제위기로 열리지 못하고, 이듬해 4월에 36회 시상식이 열렸다.
  4. 가창력으로는 여타 본좌급 보컬에 밀리지 않는데다가, 음반 판매량도 역대급이다. 또한 송라이팅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본인 앨범에 수록된 명곡 중 일정 부분이 임창정이 작사 작곡한 곡이라는 점.
  5. 영화 비트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쪽에서는 흥행에 거의 성공하는 편이다. 물론 오히려 그의 연기커리어에 더 중요한 작품들은 조연이던 비트보다 90년대 후반부터 나온 주연 작품들이지만...
  6. 90년대 초중반 주말 KBS 예능프로그램에서 '금촌댁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 비슷한 코너를 통해 개그우먼 정선희와 바보 캐릭터에 가까운 조금 모자란(?) 부부 연기를 하여 큰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 가수 활동을 본격화하며 이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는데 출연 전만 해도 대중 인지도가 높지 않았으나 이걸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연기와 노래 쪽으로도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7. 예능까지는 아니지만 가수와 배우 활동 모두 성공한 연예인으로는 엄정화가 있는데, 가요로는 비슷했었으나 신곡 <내가 저지른 사랑>의 대히트로 인해 임창정이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음원 판매량이라는 히트의 기준에서다. 원래부터 가창력으로는 임창정이 톱클래스에 들었었다.), 연기쪽에서는 엄정화가 임창정보다 급이 좀 더 높다. 하지만 엄정화는 임창정처럼 예능에서 진행과 예능 연기까지 맡는 스타일의 메인 출연자로 활약한 적은 없어서 예능으로 임창정만큼의 성공을 해봤다고 할 수는 없다. 임창정은 3분야 모두 확고한 정점을 찍어본 경험이 있다는 의미가 독보적으로 있는 연예인이다.
  8. 이전에는 김민종김원준이 연기와 가수를 병행하였고,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었지만 김민종은 괜찮았던 드라마 커리어에 비해 영화에서는 죽을 쑤었고 김원준은 연기쪽에서는 실패를 거두고 있었다.
  9. 임창정은 그야말로 가요계에서도 주류면서 영화에서도 꾸준히 주연급으로 출연하여 흥행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보며 톱급의 위치를 굳히도록 성장하였으나 다른 멀티엔터테이너들은 가요든 연기든 예능이든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임창정의 최고 커리어에 도달해보지 못했다. 못해서건 일부러 안 한 것이건
  10. 당시 소위 노는 애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돌던 '17대 1로 다구리 붙는다'는 허풍은 사실 이 영화에 출연한 임창정의 대사였다. 하지만 이 대사를 생각해낸건 정우성이라고 정우성 본인이 직접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언급했다.
  11. 이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
  12. 이 당시 가요대상을 놓고 경쟁했던 팀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였는데, 팬덤의 화력도 대단하던 시기였으며 히든 싱어 2에 출연해서 밝힌 일화로 당시 임창정이 'Again'으로 대상을 타자 H.O.T. 팬덤이 반발했고(...) 앵콜을 부를 땐 이미 그 팬덤이 다 빠져나가고 10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임창정을 국민가수로 만들어 준 작곡가 김형석 씨는 작곡상을 수상했다.
  13. 결혼해 줘 이전에 활동한 summer dream도 가요톱텐에서 최고 5위까지 오를 정도로 선전했다.
  14.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가수 조규찬의 형이기도 하다.
  15. 이 앨범이 제작된 2000년 당시에 조규만의 프로듀싱을 거친 가요 발라드 음반들은 모두 히트하는 등 조규만은 거의 발라드계의 미다스의 손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특히 임창정 6집은 조규찬, 이승환, 황세준 등 가요계의 최고의 작곡가들과 함께한 그 당시 조규만 프로듀싱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6.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음이 배제된 최정예 밴드 라이브 연주 스타일이다. 일부 댄스곡들을 제외하고서 타이틀 곡인 "나의 연인"을 비롯한 거의 모든 앨범 수록곡들은 함춘호(기타), 샘리(기타), 이태윤(베이스), 박영용(퍼커션), 장혁(드럼) 등 최정예 밴드 세션의 탄탄한 연주에 14인조 오케스트라가 가미되었다.
  17. 황금어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미 2007년에 출연료를 먼저 받고 촬영을 기다리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영화를 놓쳤다고. 그 놓친 작품들이란 해운대, 과속스캔들, 거북이 달린다
  18. 본인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85표 이상을 못 받으면 히든 판정단 100명 전원에 싱글1집 사인CD를 증정하기로 했고, 결국 우승은 했으나 목표한 점수를 얻지 못하며 사인CD 증정. 여기에 모창능력자 중 한사람이 어머니 임플란트 비용을 벌기 위해 출연했다고 하자 본인이 연락처를 주며 흔쾌히 그 비용을 대주기로 약속했으며, 마지막으로 모창능력자로 출연한 허각의 단독콘서트에 게스트 출연도 약속했다. 의리의 사나이.
  19. 임플란트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어머니께 임플란트를 해드리기로 한 모창능력자가 임창정 갤러리에 인증글을 남겼는데, 진짜로 임창정의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어머니께서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고, 재차 권유가 왔으나 어머니께서 다시 한 번 사양하셔서 그냥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20. 김창렬이 프로듀스 했던 원더보이즈의 '문을 여시오'를 리메이크한 곡. '김창렬의 올드스쿨'의 중간 시그널 음악이기도하다. 여담으로 이 노래가 원더보이즈가 발매하기 전인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G.DRAGON에게 들려주었던 샘플 중 한 곡이 이 노래였다. 만에하나 이 때 GD가 '바람났어'가 아닌 이 곡을 채택했다면 이 노래는 임창정이나 원더보이즈가 아닌 저 두 사람이 불렀을지도 모른다.
  21. 2001년 1월 25일에 1위를 차지한 "날 닮은 너"가 임창정의 마지막 뮤뱅 1위 수상 기록이며, 그해 8월부터 뮤직뱅크는 리퀘스트 시스템으로 전환해 순위제를 잠시 중단했다. 그런데 수상소감 땐 착각하고 13년만이라고 했다
  22. 한편,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수상한 것은 2003년 7월 26일 MBC 음악캠프에서 "소주 한 잔" 이후 12년 만이다.
  23. 인기가요 1위 수상은 2003년 7월 20일 "소주 한 잔"으로 뮤티즌송 트로피를 받은 뒤 12년 만이다.
  24. 신곡이 공개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래방에서 녹화한 것에 신기해하는 반응이 많다.USB에 MR 넣은 거 아닌가
  25. 2015년 10월 발표된 스물셋. 124만
  26. 3집이 큰 성공을 이뤘던 것처럼 13집도 다시 큰 성공을 했다.옛 1집부터 10집까지의 행보를 다시 밟는듯 하지만 예전보다 좋아진 느낌이다.
  27. 임창정의 말로는 작정하고 어렵게 만들었다는데 노래방에서 부르는 우리들은 죽어납니다, 그의 친구인 김창렬은 대놓고 인스타그램에 후렴을 완창한 영상을 올리고, "쉽네~"라고 디스(?)했다. 댓글창에 깨알 같은 나창정씨 앙탈은 덤
  28. 즉 원래대로라면 이 곡의 최고음은 무려 3옥 미...무슨 락커도 아니고
  29. 다만 임창정 노래들이 워낙 미친 난이도라 상대적으로 무난한 난이도라 치는거지 타 가수들의 노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친 난이도라 볼 수 있다
  30. 이는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노래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음악적 깊이를 떠나서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
  31.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과 극을 이루는 작곡가로 임창정과 작곡가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조규만이 있는데 조규만의 곡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에 언제 어디서 음악적으로 극적인 전개가 등장할지 청중이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쉽다. 조규만의 곡들은 대부분 기승전결이 뚜렷하며 verse와 후렴사이에 극적인 전개를 선호하지만,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곡들은 대부분 이런 경계가 모호하다.
  32. 그랬다면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33. 이는 각 앨범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대중적 시선을 고려하여 선택한 타이틀곡과 임창정 본인이 작곡한 곡들 사이에는 음악적인 괴리가 있다.
  34. 대표적으로 2집 타이틀곡인 이동원 작곡의 혼자만의 이별과 임창정 작곡의 염원의 눈물을 비교해보자. '혼자만의 이별'에 비해 '염원의 눈물'은 상대적으로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극대화되기에 최적화 된 곡이다.
  35. 임창정은 고음에서 특유의 톤과 감정이 가장 잘 표현되는 가수이다. 단순히 고음을 잘 내기때문에 가창력있는 가수가 아니라 고음에서 감정표현이 가장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가수이기때문
  36. 3집부터 5집까지의 타이틀곡은 모두 김형석 작곡이다
  37. 이는 김형석이 작곡한 임창정의 타이틀 곡에서 알 수 있는데 김형석만의 '정형화된' 음악적 스타일을 찾기 어렵다는 점. 그때 또 다시 -> 별이 되어 -> Love Affair -> 기다리는 이유에 이르기 까지 음악적으로 다양한 (발라드 안에서)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9집 슬픈 혼잣말에서 가장 정형화된 발라드 스타일로서 정착하게 된다.
  38. 특히 7집 조규만 작곡 수록곡 "그대도 여기에" 작업 상황이 영상으로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녹음 후 임창정이 "타이틀 곡 나온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시 원상우의 "날 닮은 너(#"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된다.
  39. 물론 원상우의 타이틀 곡들(나의 연인이나 날 닮은 너 #)이 임창정스러움을 100% 반영한 곡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임창정스러움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중 가장 임창정스러운 곡들임에는 틀림없다.
  40. 임창정의 곡들은 다른 가수가 부르기 꺼려하는 곡들이 많은데 특히 원상우의 곡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대중가요계에서 임창정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수가 전무하기때문
  41. 실제로 8집에 김형석 조규만 원상우가 프로듀서로서 참가한다고 했을때 임창정 팬들은 그때 또 다시 + 스마일 어게인 + 나의 연인을 기대했으나. .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8집에서 조규만과 김형석이 프로듀싱한 파트는 결코 나쁘지 않았으나 원상우가 프로듀싱한 파트는 좀 매니악하다..
  42. 원상우가 작곡한 9집 '너를 너로써'는 그래도 후속곡이었다.
  43. 재미나게도 임창정팬들에게는 명곡이나 인기를 얻는데에 실패했던 2집의 혼자만의 이별이나 나의 여백을 작곡한 그 작곡가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방송국에서 두키올려버려 분노의 가창을 했던 그 노래가 바로 혼자만의 이별
  44. 2집 이후 10집전까지 임창정과 작업을 아예 안 한건 아니다. 5집의 숨은 명곡 운명이라는 곡도 그의 작품
  45. 2000년대 이전에는 제대로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2000년대 이전 관객수는 서울기준으로 작성
  46. 라이브 영상
  47. 내가 저지른 사랑이 현재 대표적인 임창정 고음 곡이지만, 역대 최고난이도를 평하면 여전히 기다리는 이유가 꼽힌다, 심지어 이 때 전성기 시절에서도 다른 어려운 곡들은 원키로 소화했지만 유독 기다리는 이유만 라이브로 항상 한 키를 낮추고 부를 정도로 임창정 본인 역시 부담스러워 했던 노래다
  48. 2014년에 음원 서비스가 재개되었다. 이 앨범은 cd 1장의 전혀 다른 종이케이스 홍보용 음반이 존재.
  49. 임창정이 이 노래를 연습하다가 낮에 별을 보았다고 한다.
  50. 임창정의 사전 허락 없이 소속사가 무단으로 편집해 발매한 베스트 앨범.
  51. 신곡 2곡을 수록함과 동시에, 기존 히트곡들을 재편곡하여 수록. 활동이 짧은 만큼 앨범도 적게 찍어 임창정 앨범 중 희귀에 속한다.
  52. 초반 물량 5천장에 새로 찍은 1천장이 전부인 앨범으로, 인기를 얻어 가요 프로그램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했을 당시 이미 절판된 상태.
  53. 홍보용 디지털 싱글 cd 존재.
  54. 이로써 임창정은 가수 인생 최고의 커리어인 가요대상과 배우 인생 최고의 커리어인 남우주연상을 모두 경험한 유일무이한 연예인이 된다. 진정한 만능엔터테이너
  55. 애초에 임창정 노래는 거의다 소화하기 힘든 노래다. 왜 그가 레전설로 불리우는지 알수 있는 노래들. 한번은 방송사 실수로 라이브 도중 1키를 올려버린 병크를 저질러 버리고 말았는데 임창정은 가뿐히 소화해 낸다. 암살실패 --참고로 이 영상은 유투브에서 '임창정 암살'로만 검색해도 볼 수 있다(...) 그의 음역대가 얼마나 넓은지 알수 있는 케이스.
  56.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잘못 알려진 창법이다. 그냥 발라드에 맞춘 톤이 높은 진성가수로써 유명하다 생각하면 된다
  57. 각 앨범 타이틀곡들만 불러봐도 클라이막스가면 가빠오는 호흡과 꾸준히 높은 음 때문에 노래방에서 안드로메다를 느낄 수 있게 된다.
  58. 유튭에 떠도는 나머지 한 영상이 -1키 라이브라 그것 기준으론 2키긴 하지만 음원 기준으론 1키가 맞다.
  59. 라이브 영상 http://todayhumor.com/?star_222568
  60.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난 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로는 겁씨나가 표준어인 줄 알고 그렇게 썼는데 일이 커지자 시적 허용이라고 했다고..
  61. 참고로 김완선은 임창정보다 4살 많은 연장자인데다가, 가요계 데뷔년도는 임창정보다 10년 가까이 앞선 완전 대선배다. 그리고 착각할만큼 동안이기도 하고.
  62. 술을 계속 권하자 임창정이 스케줄 때문에 이를 거부하자, 이병헌이 임창정에게 뜨고서 변했다며 나무랬는데, 임창정이 무명시절 이병헌이 도와주지 않았던 서운함이 터지며 대판 싸웠던 것.
  63. MC대격돌 3기(공포의 쿵쿵따 2기) 때부터 함께한 경력이 있어서 친해진 듯.
  64. 참고로 신정환은 한창 연예인 활동할 당시 방송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에서는 꽤 카리스마 있는 편이고, 후배들이 따르는 선배였다고 알려져 있다. 가요계 군기반장으로 유명한 이성진조차 방송에서 '정환이형은 군기를 잡는것도 아니면서 진지하게 동생들을 잘 챙겨서 따를 수 밖에 없는 형'이다라고 할 정도. 과거 남희석-이상민-신정환-탁재훈 등 많은 연예인이 연루되었던 일반인과의 폭행시비 사건 때(취한 일반인들이 먼저 남희석에게 시비를 걸어서 생긴 사건)도 물러나지 않은 건 신정환뿐이라고 한다. 반대로 나이차이 많이 안 나는 형들에게는 약간 대드는 느낌도 있는데, 선배가 후배에게 군기잡거나 규율잡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1살 형인 임창정과 김창렬이 군기잡듯이 행동할 때 저항한 것이라고 한다. 연예계에서 임창정-김창렬의 이미지 때문에 쫄았던 연예인들이 많지만 신정환은 오히려 겁내지 않는 부류라고 한다.
  65. 심지어 과거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에도 김창렬이 나왔을때 신정환과 김창렬-임창정 사이에 있었던 그 일을 대략 이야기 했는데 별거 아니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신정환이 그들을 만나 "어 형"하면서 손을 들고 인사했는데 그걸 건방지게 생각해 마음에 안 들어하는 태도를 임창정-김창렬 두 사람이 보이며 왜 그런 식으로 인사하냐고 물었고 신정환도 그에 화가나서 상황이 크게 거칠어질 뻔 한 것. 다만 진짜 싸우기전에 마무리되고 그 후에 대충 풀리기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정환은 그 말 이후 "나는 아직도 한두살 형들한테 90도 인사는 못한다."고 했고 김창렬은 "에이 우리가 언제 그런거 하라고 했어?"라면서 약간의 앙금이 남아있음을 보였다.
  66. 연예인은 하고 싶은데 여드름이 너무 많아 항상 고민과 컴플렉스를 동시에 가지던 어느날 민간요법으로 여드름을 없애기로 결정하고 마늘을 빻아 팩처럼 얼굴에 발랐다고 한다. 이에 10분이 지나서 떄보니 여드름이 가라앉고 새살이 돋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이왕 한거 '제대로 해보자!' 하고 얼굴 전체에 마늘을 바르고 10분 이상 있다가 떼었더니 얼굴 전체가 까맣게 되어버린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에 임창정의 아버지는 "똥바가지 얼굴 주제에 무슨 연예인을 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67. 박정현의 기억에 따르면 이병헌의 생일파티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물론 당시 박정현은 데뷔전이었다.
  68. 단 박정현의 순번이 1번이였고, 임창정의 순번은 6번이었다.
  69. 애초에 임창정 노래는 엄청난 가창력과 진성의 고음을 요구하는 노래가 대부분인지라 일반인들은 이런 표정을 죽어라 짓고 노래를 불러도 힙겹게 완창하거나, 완창하지 못하고 포기, 너무 무리해서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저런표정을 짓든 안짓든 그 음역대를 맟춰 노래를 부르는게 대단한 일 이다.참고로 노래는 너무좋아서 흥얼거리고 다니다가 막상 노래방을 가면 너무 높아 부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0. 소주 한 잔이라는 술집이다. 참고로 울산점의 채용광고가 상당히 인기를 끌었는데, 직원의 대우는 몰론 마지막의 "사장이 적게 벌면 됩니다" 라는 문구때문에 저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다.
  71. 가끔씩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가기도 한다.
  72. 특히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들과 근처 당구장에서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사실 운중동에 살면서 임창정을 한번도 못 본건 이사온지 얼마 안된 사람들 뿐이다.
  73. 햇수로는 13년, 만으로는 12년 만의 1위 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