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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도 이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에 지명된 고려대학교 출신 가드들이 농구팬들의 기대치만큼 팀을 이끌지 못하는 모습이 나오자, 어느새부턴가 농구팬들이 프로에서 뛰고 있는 고대출신 가드들을 부르기 시작한 별명.
고대출신 가드 유망주들이 나오는 기사마다 꼭 하나씩은 달리는 댓글 중 하나이다.
2 해당 선수 일람
2.1 박재현
믿거고의 시작
2013년 고려대학교가 대학농구리그 및 프로아마 최강전 우승을 하면서 팀의 주축이었던 이승현, 이종현과 함께 고대왕조의 주역 중 한명이었으니 드래프트에서도 기대되는 유망주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해 빅 3로 불렸던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에 이은 차상위 순번이 확정적이었다. 그래서 신인드래프트 때 서울 삼성이 1.5%의 확률을 뚫고 4픽을 거머쥐자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박재현을 지명했다. 그러다보니 4픽을 얻은 삼성팬들의 심정은 드디어 암흑기를 뚫고 비상을 할 수 있겠거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박재현은 고려대학교 시절의 야전사령관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팀은 얇아진 스쿼드와 더불어 최하위권에서 노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암흑기 탈출에 기대를 걸었던 삼성 팬들이 시즌의 역적 중 하나로 박재현을 꼽게 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졌다.
2년차 시즌에는 김승현의 은퇴, 박병우의 이적으로 가드진이 심각하게 얇아지다보니 이정석에 이은 백업 포인트가드로 출장하여 1년차대비 훨씬 괜찮은 스탯을 선보였다. 1군과 D리그를 병행하며 경기감각을 되찾고 김준일이 영입되어 상대적으로 외곽의 기회가 많이 생겨 득점 스탯이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3년차 시즌에는 주희정의 친정 복귀로 이동엽, 이호현과 같이 백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출장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1년차와 비슷한 스탯을 찍고 있고, 결국 고양 오리온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러고도 상무에 붙었다!!
2.2 김지후
김지후는 고려대학교 시절 외곽으로 주는 킥아웃 패스를 받아 그대로 받아먹는 캐치 앤 샷에 최적화된 선수로, 기복이 있지만 슛하나만큼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4픽을 잡은 KCC가 왜 허웅을 잡지 않고 김지후를 잡았냐는 논쟁은 지금까지도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입단 이후에는 폭발력 하나만큼은 절륜한 모습을 보여주며 14-15시즌 12월 삼성과의 경기에서 22득점을 기록하는 등 1년 드래프트 선배인 박재현과는 다른 길을 걷는가 했다. 하지만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이 노출되고, 패턴이 파악당함에 따라 부진한 모습을 기록한데다, 결정적으로 성장세가 기대되었던 2년차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해 시즌의 8할을 날려먹었다.
그래도 15-16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고양 오리온의 수비전술이 쉽게 통하지 않도록 외곽포 지원도 해주는 등 쏠쏠한 역할을 해줘 차기 시즌에 대한 희망은 가장 나은 편. 믿거고 세 명 중에서는 슛이라는 분명한 강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10월 30일 위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안양 KGC와의 원정경기 4쿼터 게임클락 20여초를 남기고 공격권을 가지고 희대의 턴오버를 작렬하며 팀의 승리를 허공에 날려먹었다. 이에 추승균 전주 KCC감독은 격노하며 김지후의 출전시간을 대폭 줄여버린다.
2.3 이동엽
공수마진을 0으로 만드는 기적의 포인트가드 그래도 공수마진이 마이너스인 이호현보단 낫다
포인트가드 치고는 다소 느리지만,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믿거고 신화를 끊을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마찬가지로 공격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믿거고의 사슬을 피할 수 없었다. 스테판 동엽으로 비견되는 PO 4차전 마지막 슛은 그렇다 치더라도, 돌파까지는 괜찮게 하지만 슈팅 밸런스가 좋지 않아 페인트존 터프샷에서 에어볼이 종종 많이 나온다. 그래도 영웅심리가 없고 본인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괜찮긴 하려나....?
3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KBL 역대 드래프트를 살펴보면 그 시기에 각 대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해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3년도 드래프트까지도 이게 이어졌다.
역대 드래프트 결과 중 네임드 선수들 또는 임팩트가 있었던 선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 주요 선수 |
1998년 | 현주엽, 신기성(고려대), 박재일, 표명일(명지대), 김택훈(연세대), 이은호(중앙대), 정락영, 강기중(한양대) |
1999년 | 조상현, 조동현(연세대), 김성철, 강혁(경희대) |
2000년 | 이규섭, 강대협, 김기만(고려대), 임재현(중앙대), 은희석(연세대) |
2001년 | 김승현(동국대), 송영진, 황진원(중앙대), 전형수(고려대) |
2002년 | 김주성, 박지현(중앙대), 정훈, 진경석, 이한권(성균관대) |
2003년 | 김동우(연세대), 이현호, 오용준(고려대) |
2004년 | 양동근(한양대), 이정석(연세대), 김현중(동국대) |
2005년 | 방성윤(연세대), 김효범(뱅가드대), 김일두(고려대) |
2006년 | 김학섭, 조성민(한양대), 전정규(연세대), 이현민(경희대), 주태수(고려대), 이시준(명지대) |
2007년 |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이광재(연세대), 박상오, 함지훈(중앙대), 김영환(고려대), 김봉수, 송창무(명지대) |
2008년 | 하승진(연세대), 김민수(경희대), 윤호영, 강병현(중앙대), 차재영(고려대), 정재홍, 기승호, 천대현(동국대) |
2009년 | 박성진, 박진수(중앙대), 허일영(건국대) |
2010년 | 박찬희(경희대), 이정현, 박형철(연세대), 변기훈(건국대), 박찬성, |
2011년 | 오세근, 김선형, 함준후(중앙대), 정창영, 유성호, 김태홍(고려대), 김현민(단국대) |
2012년 | 김시래, 박지훈(명지대), 최부경(건국대), 김승원, 장민국(연세대), 최현민(중앙대), 박래훈(경희대) |
2012-13년 | 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정성수, 김현수(중앙대), 박경상, 김지완(연세대) |
2013년 |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경희대), 박재현(고려대) |
2014년 | 이승현, 김지후(고려대), 김준일, 허웅, 김기윤, 최승욱(연세대) |
2015년 | 문성곤, 이동엽(고려대), 한희원, 최창진(경희대), 이대헌, 서민수(동국대) |
특징이 한 가지 있다면, 로터리 픽에 유력한 선수가 걸리면, 그 출신 대학교의 동료 선수들도 1라운드에 지명받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그 단적인 예는 2007년과 2012-13년, 2014년 드래프트가 그랬다. 왜냐하면 가장 손발을 오래 맞춰왔기에 최상급의 경기력을 유지해왔으므로 자연스럽게 지명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로터리 픽이 유력한 선수들은 진작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2010년도 초반까지는 프로에서 지명을 받자마자 바로 활약을 했기에 최근에 들어서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즉시전력감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농구팬들이 늘어난건 사실이다.
특히 가드 포지션의 경우 로터리 픽에 선택된 가드들이 레전드 급의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았고, 2010년대를 보자면 상위 로터리픽에 들어간 가드인 박찬희, 이정현, 김선형, 김시래, 김민구, 두경민 등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은 그런 농구팬들의 기대에 걸맞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학리그에서 왕조를 구축한 고려대 출신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걸맞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지명된 프로팀에는 이승현과 이종현이 없다
- 정확히는 포워드, 센터진이 부실할 경우 이같은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의 문단에서 2010년대 상위 로터리 픽에 들어간 가드들이 배정된 팀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박찬희, 이정현 : 안양 KGC 인삼공사
이처럼 로터리픽에 꼽힌 가드 포지션들의 선수들도 신인시절에는 본인 혼자만의 힘으로 수위급 가드 물망에 올랐다기 보다는 나머지 팀원들의 공로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박재현, 김지후, 이동엽이 지명된 삼성과 KCC를 보면 포지션에서 어딘가에서 나사가 빠진 곳이 있기에 공수부담이 가중되어 대학시절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 낫다.
- 대학 시절에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와 스킬을 갖추지 못했다
- 대학 농구 지도자들이 비판을 받는 점이기도 한데, 성적에만 혈안이 되어 가장 기본적인 드리블, 수비 로테이션, 슈팅 밸런스를 잡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1픽임에도 불구하고 농갤 아이돌로 취급을 받는(...) 장재석과 문성곤
, 김종규[1]이 있다. - 장재석은 그 사이즈 치고는 대단한 운동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볼 핸들링과 슈팅 밸런스와 공격기술의 부재때문에 지금까지도 매경기마다 농구팬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으며[2], 문성곤은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공수 포텐셜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승현, 이종현에게 공격을 맡겨 사실상 외곽 해결사로서의 롤을 부여하지 않았다. 프로 지명 이후에도 팀내 장신라인업의 핵심인 양희종, 오세근이 혹사와 부상으로 결장 중인 와중에 순위싸움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성곤에게 출전시간을 매우 적게 할애한 탓에 프로에서 가장 중요한 1년차때 경기감각을 익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3]
- 믿거고 3인방을 보면, 박재현, 이동엽은 스피드, 키 외에는 사실상 장점이 없는 상황이며, 김지후는 슈팅이라는 확실한 강점이 있긴 하지만 수비 조직력 및 공격 기본기에서 약점을 보여 프로 적응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들이 드래프트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 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당장 2016-17 신인드래프트만 보더라도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항상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니.....
4 그렇다면 선배 가드들은 어땠는가?
- 50년대
- 70년대
- 80년대
- 90년대 (KBL 드래프트 이전)
-
김상식, 정인교: 각각 기업은행, 산업은행의 에이스로서 커리어 대부분을 포워드로 뛰다 프로 출범이후 2번으로 전환. - 윤호영:
윤호영과는 다르다!! 이쪽은 가드드리블이 좋았던 단신가드. 암흑기 고대의 앞선을 이끌던 선장이었으나 피지컬, 득점력 부족으로 삼성전자 입단 후 별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프로출범후 5시즌만에 은퇴, 이후 KBL 심판으로 전업하여 명성(?)을 떨친다. - 김병철: 대구 오리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폭발적인 3점슛을 가진 허재 이후 최고의 2번이었으나,[4] 신장이 작아 명성에 비해 국대에서는 중용되지 못하였다.[5]
- 박규현: 뛰어난 수비력으로 어느팀으로 가던 키 식스맨 역할은 하였다.
- 주희정: 고려대 2학년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자퇴 후 나래이동통신(현 원주 동부 프로미)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6] 97-98 시즌 신인상에 이후, KBL에서만 20시즌째 뛰고있는 살아있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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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L 드래프트 이후
- 98년: 신기성 (7순위, 원주TG)
- 00년: 이정래(7순위, 창원LG), 강대협(12순위, 대전현대)
- 01년: 전형수(2순위, 여수코리아텐더)
- 02년: 한정훈(6순위, 서울SK), 정선규(9순위, 창원LG), 김경록(12순위, 창원LG)
- 05년:
정상헌(8순위, 대구오리온스), 김지훈(17위, 안양KT&G)
- 재앙급 믿거고. 경복고 출신 대형가드
정상헌은 고교시절 방성윤과 함께 FIBA Asia U-19 대회를 접수하는 등 천재로 불렸으나 고려대 진학후 방황에 빠져 연고전 한번만 뛰는 등 문제아로 유명했다. 대구오리온스 김진 감독이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여 자퇴생 신분인 그를 무려 1라운드에 선발하였으나 아니나다를까 팀 이탈.(-_-) 다음시즌 울산모비스로 트레이드되어 유재학 감독의 지도아래 어느정도 선수생활일 재개하고 06-07 시즌 우승멤버에도 이름을 올린뒤 이듬해 상무로 입대하기까지 하나, 상무 제대후 귀신같이 은퇴!! 그후엔 다들 알다시피 (...) - 안양KT&G 김동광 감독은 고대에서도 백업가드였던 아들 김지훈이 2라운드에서도 선발되지 않자, 17순위로 자기가 감독하는 팀으로 父情선발하여 아들의 취업문을 열어준다. 참고로 이때 고려대 포워드 김동욱이 전체 14순위로 삼성에 뽑혔다.
앞에 팀들은 다 뭐한겨??
- 재앙급 믿거고. 경복고 출신 대형가드
- 06년: 임휘종(7순위, 안양KT&G->서울삼성으로 트레이드), 배경한(10순위, 원주동부), 전원석(14순위, 안양KT&G)
- 믿거고는 계속된다. 2000년대 중반 고대의 싹쓸이 스카웃은 대단했다. 특히 고교농구의 에이스란 에이스는 죄다 모아놓은듯한 화려한 가드진이 유명했는데, 결과는 이정석, 김태술로 실속을 챙긴 연세대에 매번 밀렸고, 심지어 중앙대에도 맥을 못췄다.
- 특히 임휘종은 2003년 그리스 FIBA U-20 대회에서 한국이 16팀중 12위를 차지할때 주전으로 뛰던 장신가드였는데, [8] 이른바 황금세대 사이에서도 주전으로 뛰었음에도 불구, 대학시절 별 발전이 없이 프로에 와서 미미한 커리어를 보낸다. 바로 뒷순번이 무려 한양대조성민으로 부산KTF 추일승 감독이 낼름 가져갔고, 2라운드 15순위에는 괜찮은 빅맨인 중앙대 한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안양KT&G 김동광 감독은 2년연속 2라운드에 고대가드를 뽑고 이듬해 서울삼성 감독으로 이직한다.
- 07년: 신제록(12순위, 안양KT&G)
안양KT&G는 3년연속 2라운드에 고대가드를 뽑는다. 이번엔 이상범 감독
- 08년: 양우섭(13순위, 부산KTF)
- 운동능력이 뛰어난 가드. 1번으로의 능력은 다소 아쉬우나, 수비가 매우 좋고 2번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일단 믿거고에서는 제외.
- 10년:
신정섭(12순위, 원주동부), 김태주(13순위, 서울삼성)
- 모두 2라운더들로 별 기대치가 없었으나,
신정섭의 경우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바 있다.
- 모두 2라운더들로 별 기대치가 없었으나,
- 11년: 정창영(8순위, 창원LG), 홍세용(20순위, 안양KGC->원주동부로 트레이드)
- 12년 1차 드래프트: 조찬형 (3라운드 21순위, 안양KGC)
- 단신슈터였던 조찬형은 1군에서 단 한게임도 뛰지 못하고 방출된다.
- ↑ 입단 초기에 공격에서 나사가 빠진 모습이 간혹 나오기에 마족규란 별명이 붙기도 했으니.....
- ↑ 물론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수비는 일취월장한 수준
- ↑ 사실 5라운드 시점에서는 KCC와 모비스가 크레이지 모드를 달리고 있었고, 6위권과의 승차가 꽤나 벌어진 상태였기에 맘 편하게 6강 PO를 대비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렇게 총력전을 선언해놓고 승률은 9승 9패로 딱 5할을 찍었으니.....
- ↑ 어디까지나 허재 이후다. 조성민의 등장전까지.
- ↑ 90년대까지는 허재의 아성을 넘을수 없었고, 허재가 사고를 쳐서(음주운전) 국대에 없을때는 운동능력과 센스가 좋은 이상민이 강동희와 함께 백코트를 이뤘다. 02년 부산아시안게임때는 포워드 문경은이 2번에서 뛰었고, 김병철은 03년 하얼빈 아시아선수권 이후부터 짧은 기간 동안 활약하였다.
- ↑ 신기성보다 고려대 1년 후배지만, 자퇴 후 바로 입단하는 바람에 드래프트 없이 97-98시즌부터 KBL에 데뷔했다. 97-98시즌 신인상 수상자임에도 다음해 신기성이 드래프트로 합류하면서 서울삼성으로 트레이드된다.
- ↑ 전시즌 꼴찌였던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가세하자마자 01-02 시즌 우승을 차지한다
- ↑ 당시 주전은 김태술-임휘종-양희종-차재영-하승진 + 윤호영, 이광재, 함지훈, 정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