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거르는 고대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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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도 이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에 지명된 고려대학교 출신 가드들이 농구팬들의 기대치만큼 팀을 이끌지 못하는 모습이 나오자, 어느새부턴가 농구팬들이 프로에서 뛰고 있는 고대출신 가드들을 부르기 시작한 별명.

고대출신 가드 유망주들이 나오는 기사마다 꼭 하나씩은 달리는 댓글 중 하나이다.

2 해당 선수 일람

2.1 박재현

믿거고의 시작

2013년 고려대학교가 대학농구리그 및 프로아마 최강전 우승을 하면서 팀의 주축이었던 이승현, 이종현과 함께 고대왕조의 주역 중 한명이었으니 드래프트에서도 기대되는 유망주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해 빅 3로 불렸던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에 이은 차상위 순번이 확정적이었다. 그래서 신인드래프트 때 서울 삼성1.5%의 확률을 뚫고 4픽을 거머쥐자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박재현을 지명했다. 그러다보니 4픽을 얻은 삼성팬들의 심정은 드디어 암흑기를 뚫고 비상을 할 수 있겠거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박재현은 고려대학교 시절의 야전사령관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팀은 얇아진 스쿼드와 더불어 최하위권에서 노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암흑기 탈출에 기대를 걸었던 삼성 팬들이 시즌의 역적 중 하나로 박재현을 꼽게 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졌다.

2년차 시즌에는 김승현의 은퇴, 박병우의 이적으로 가드진이 심각하게 얇아지다보니 이정석에 이은 백업 포인트가드로 출장하여 1년차대비 훨씬 괜찮은 스탯을 선보였다. 1군과 D리그를 병행하며 경기감각을 되찾고 김준일이 영입되어 상대적으로 외곽의 기회가 많이 생겨 득점 스탯이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3년차 시즌에는 주희정의 친정 복귀로 이동엽, 이호현과 같이 백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출장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1년차와 비슷한 스탯을 찍고 있고, 결국 고양 오리온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러고도 상무에 붙었다!!

2.2 김지후

김지후는 고려대학교 시절 외곽으로 주는 킥아웃 패스를 받아 그대로 받아먹는 캐치 앤 샷에 최적화된 선수로, 기복이 있지만 슛하나만큼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4픽을 잡은 KCC가 왜 허웅을 잡지 않고 김지후를 잡았냐는 논쟁은 지금까지도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입단 이후에는 폭발력 하나만큼은 절륜한 모습을 보여주며 14-15시즌 12월 삼성과의 경기에서 22득점을 기록하는 등 1년 드래프트 선배인 박재현과는 다른 길을 걷는가 했다. 하지만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이 노출되고, 패턴이 파악당함에 따라 부진한 모습을 기록한데다, 결정적으로 성장세가 기대되었던 2년차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해 시즌의 8할을 날려먹었다.

그래도 15-16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고양 오리온의 수비전술이 쉽게 통하지 않도록 외곽포 지원도 해주는 등 쏠쏠한 역할을 해줘 차기 시즌에 대한 희망은 가장 나은 편. 믿거고 세 명 중에서는 슛이라는 분명한 강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10월 30일 위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안양 KGC와의 원정경기 4쿼터 게임클락 20여초를 남기고 공격권을 가지고 희대의 턴오버를 작렬하며 팀의 승리를 허공에 날려먹었다. 이에 추승균 전주 KCC감독은 격노하며 김지후의 출전시간을 대폭 줄여버린다.

2.3 이동엽

공수마진을 0으로 만드는 기적의 포인트가드 그래도 공수마진이 마이너스인 이호현보단 낫다

포인트가드 치고는 다소 느리지만,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믿거고 신화를 끊을 수 있을까 기대를 했지만 마찬가지로 공격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믿거고의 사슬을 피할 수 없었다. 스테판 동엽으로 비견되는 PO 4차전 마지막 슛은 그렇다 치더라도, 돌파까지는 괜찮게 하지만 슈팅 밸런스가 좋지 않아 페인트존 터프샷에서 에어볼이 종종 많이 나온다. 그래도 영웅심리가 없고 본인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괜찮긴 하려나....?

3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KBL 역대 드래프트를 살펴보면 그 시기에 각 대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해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3년도 드래프트까지도 이게 이어졌다.

역대 드래프트 결과 중 네임드 선수들 또는 임팩트가 있었던 선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주요 선수
1998년현주엽, 신기성(고려대), 박재일, 표명일(명지대), 김택훈(연세대), 이은호(중앙대), 정락영, 강기중(한양대)
1999년조상현, 조동현(연세대), 김성철, 강혁(경희대)
2000년이규섭, 강대협, 김기만(고려대), 임재현(중앙대), 은희석(연세대)
2001년김승현(동국대), 송영진, 황진원(중앙대), 전형수(고려대)
2002년김주성, 박지현(중앙대), 정훈, 진경석, 이한권(성균관대)
2003년김동우(연세대), 이현호, 오용준(고려대)
2004년양동근(한양대), 이정석(연세대), 김현중(동국대)
2005년방성윤(연세대), 김효범(뱅가드대), 김일두(고려대)
2006년김학섭, 조성민(한양대), 전정규(연세대), 이현민(경희대), 주태수(고려대), 이시준(명지대)
2007년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이광재(연세대), 박상오, 함지훈(중앙대), 김영환(고려대), 김봉수, 송창무(명지대)
2008년하승진(연세대), 김민수(경희대), 윤호영, 강병현(중앙대), 차재영(고려대), 정재홍, 기승호, 천대현(동국대)
2009년박성진, 박진수(중앙대), 허일영(건국대)
2010년박찬희(경희대), 이정현, 박형철(연세대), 변기훈(건국대), 박찬성, 안재욱, 류종현(중앙대)
2011년오세근, 김선형, 함준후(중앙대), 정창영, 유성호, 김태홍(고려대), 김현민(단국대)
2012년김시래, 박지훈(명지대), 최부경(건국대), 김승원, 장민국(연세대), 최현민(중앙대), 박래훈(경희대)
2012-13년장재석, 임동섭, 유병훈, 정성수, 김현수(중앙대), 박경상, 김지완(연세대)
2013년김종규, 김민구, 두경민(경희대), 박재현(고려대)
2014년이승현, 김지후(고려대), 김준일, 허웅, 김기윤, 최승욱(연세대)
2015년문성곤, 이동엽(고려대), 한희원, 최창진(경희대), 이대헌, 서민수(동국대)

특징이 한 가지 있다면, 로터리 픽에 유력한 선수가 걸리면, 그 출신 대학교의 동료 선수들도 1라운드에 지명받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그 단적인 예는 2007년과 2012-13년, 2014년 드래프트가 그랬다. 왜냐하면 가장 손발을 오래 맞춰왔기에 최상급의 경기력을 유지해왔으므로 자연스럽게 지명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로터리 픽이 유력한 선수들은 진작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2010년도 초반까지는 프로에서 지명을 받자마자 바로 활약을 했기에 최근에 들어서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즉시전력감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농구팬들이 늘어난건 사실이다.
특히 가드 포지션의 경우 로터리 픽에 선택된 가드들이 레전드 급의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았고, 2010년대를 보자면 상위 로터리픽에 들어간 가드인 박찬희, 이정현, 김선형, 김시래, 김민구, 두경민 등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은 그런 농구팬들의 기대에 걸맞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학리그에서 왕조를 구축한 고려대 출신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걸맞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지명된 프로팀에는 이승현과 이종현이 없다
정확히는 포워드, 센터진이 부실할 경우 이같은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의 문단에서 2010년대 상위 로터리 픽에 들어간 가드들이 배정된 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둘은 인삼신기라 불리던 2011-12시즌 당시 코트를 초토화 시켜 패기로 우승했다는 주목을 받았는데, 양희종의 제대, 오세근의 입단으로 인해 단숨에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했고, 양희종, 오세근의 미칠듯한 활약으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 두 프론트 코드의 특징은 시야가 넓고, BQ가 좋은 것은 물론 수비력도 출중했기에 공수 전반적으로 가드진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었다. 실제로 양희종, 오세근이 부상으로 시달리는 시기를 보면 KGC의 경기력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입단 첫해에도 화려한 테크닉들을 앞세워 관중몰이를 하긴 했지만 주포인 알렉산더 존슨의 부상 이후 DTD를 시작하여 플옵 진출에 실패한 것을 보면 가드 혼자만으로 팀을 이끌기는 힘들다는 것을 증명했다. 정규리그 우승을 포함한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때는 공수의 핵심인 애런 헤인즈코트니 심스, 박상오, 김민수, 최부경, 박승리 등의 쟁쟁한 국내 선수가 있었기에 김선형의 공격 포텐셜을 줄이면서까지 포인트 가드로 육성을 했어도 상위권 전력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모비스 시기의 성적은 양동근 빨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래도 함지훈, 리카르도 라틀리프, 로드 벤슨, 문태영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백코트 진으로 우승권을 넘나든 것은 사실이다. 모비스 시절 시래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긴 했어도 뛰어난 포워드, 센터진에게 자신의 패스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는 모비스의 통합우승을 일궈내는데 큰 도움이 됬다.
LG 시절에도 로드 벤슨, 문태종, 김종규라는 선수들 속에서 본인의 역량과 페인트 존의 시너지가 합쳐져 매년 PO에는 꾸준히 진출하고 있다.
음주운전 이전에는 말그대로 국대 10년을 책임질 초특급 가드 유망주였던 만큼 허재 전 감독이 차기 시즌 구상을 했을때 김민구를 핵심에 놓고 운영을 했다. 부상 이후인 2015-16시즌에는 본인이 많이 못뛰긴 했지만 그래도 역대급 프론트 코드진인 하승진, 허버트 힐, 안드레 에밋이라는 초강력 스쿼드를 앞세워 PO 4차전에서는 이 세명이 도합 89득점을 하여 인삼공사를 초토화시킨 전적이 있었다. 물론 이 셋이 공중분해되자 바닥권에서 놀만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경기력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중심을 지켜주는 김주성, 윤호영, 로드 벤슨, 웬델 맥키네스의 존재는 외곽에서 볼배급만 해줘도 손쉽게 득점이 가능한 두경민의 장점이 합쳐져 14-16시즌까지는 말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애시당초 동부의 2015-16시즌 3점슛 성공률이 고양 오리온에 이은 2위이다.

이처럼 로터리픽에 꼽힌 가드 포지션들의 선수들도 신인시절에는 본인 혼자만의 힘으로 수위급 가드 물망에 올랐다기 보다는 나머지 팀원들의 공로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박재현, 김지후, 이동엽이 지명된 삼성과 KCC를 보면 포지션에서 어딘가에서 나사가 빠진 곳이 있기에 공수부담이 가중되어 대학시절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 낫다.

  • 대학 시절에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와 스킬을 갖추지 못했다
대학 농구 지도자들이 비판을 받는 점이기도 한데, 성적에만 혈안이 되어 가장 기본적인 드리블, 수비 로테이션, 슈팅 밸런스를 잡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1픽임에도 불구하고 농갤 아이돌로 취급을 받는(...) 장재석문성곤, 김종규[1]이 있다.
장재석은 그 사이즈 치고는 대단한 운동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볼 핸들링과 슈팅 밸런스와 공격기술의 부재때문에 지금까지도 매경기마다 농구팬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으며[2], 문성곤은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공수 포텐셜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승현, 이종현에게 공격을 맡겨 사실상 외곽 해결사로서의 롤을 부여하지 않았다. 프로 지명 이후에도 팀내 장신라인업의 핵심인 양희종, 오세근이 혹사와 부상으로 결장 중인 와중에 순위싸움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성곤에게 출전시간을 매우 적게 할애한 탓에 프로에서 가장 중요한 1년차때 경기감각을 익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3]
믿거고 3인방을 보면, 박재현, 이동엽은 스피드, 키 외에는 사실상 장점이 없는 상황이며, 김지후는 슈팅이라는 확실한 강점이 있긴 하지만 수비 조직력 및 공격 기본기에서 약점을 보여 프로 적응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약점들이 드래프트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 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당장 2016-17 신인드래프트만 보더라도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항상 키배가 벌어질 정도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니.....

4 그렇다면 선배 가드들은 어땠는가?

  • 50년대
    • 김영기: 현 KBL의 "불통총재"로 유명하지만 50~60년대 한국농구 불세출의 가드. 일명 "드리볼"의 마술사. 신동파, 유희형, 김인건 등을 이끌고 69년 방콕 아시아선수권과 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하던 당시 감독.
  • 70년대
    • 김동광: 최철권과 함께 기업은행 농구단의 레전드. 국대에서도 주전을 놓치지 않았으나, 정작 국제대회 결승마다 중국에 밀리던 콩라인의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김동광이 국대를 은퇴한 82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박수교의 맹활약 끝에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80년대
    • 이충희: 182의 단신이었으나 커리어 대부분을 포워드로 뛰었다.
    • 김진: 2002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금메달 당시 감독으로 유명하나, 올드팬들에게는 김현준과 함께 80-90년대 삼성전자의 주전 슈터로 더 익숙하다. 90년 FIBA 월드컵과 베이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90년대 (KBL 드래프트 이전)
    • 김상식, 정인교: 각각 기업은행, 산업은행의 에이스로서 커리어 대부분을 포워드로 뛰다 프로 출범이후 2번으로 전환.
    • 윤호영: 윤호영과는 다르다!! 이쪽은 가드 드리블이 좋았던 단신가드. 암흑기 고대의 앞선을 이끌던 선장이었으나 피지컬, 득점력 부족으로 삼성전자 입단 후 별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프로출범후 5시즌만에 은퇴, 이후 KBL 심판으로 전업하여 명성(?)을 떨친다.
    • 김병철: 대구 오리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폭발적인 3점슛을 가진 허재 이후 최고의 2번이었으나,[4] 신장이 작아 명성에 비해 국대에서는 중용되지 못하였다.[5]
    • 박규현: 뛰어난 수비력으로 어느팀으로 가던 키 식스맨 역할은 하였다.
    • 주희정: 고려대 2학년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자퇴 후 나래이동통신(현 원주 동부 프로미)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6] 97-98 시즌 신인상에 이후, KBL에서만 20시즌째 뛰고있는 살아있는 전설.
  • KBL 드래프트 이후
KBL 첫 드래프트는 현주엽, 윤영필(경희대), 김택훈 등 토종빅맨이 대세였다. 그리하여 당시만해도 빠르기만 하고 3점이 다소 약하던 신기성은 예상외로 변청운(건국대), 이은호(중앙대), 박재일(명지대)에도 밀려 전체 7위로 원주 TG에 선발되는데, 98-99 시즌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당시 청주 SK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지 못한 서장훈, 현주엽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한다. 신기성의 바로 다음 순위가 "모래반지빵야빵야" 표명일(명지대) 이었다.
  • 00년: 이정래(7순위, 창원LG), 강대협(12순위, 대전현대)
명지고 시절 김병철을 능가할 슈터라고 평가받았던 이정래는, 대학시절부터 허리부상으로 골골대느라 기대치만큼 활약하지 못했음에도 창원LG에 1라운드에 선발된다. (부상이 안타깝긴 하나 믿거고의 시초)
오히려 2라운더 강대협황진원과 더불어 KBL 최고의 저니맨이자 키 식스맨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 01년: 전형수(2순위, 여수코리아텐더)
뛰어난 돌파와 정교한 슛을 갖춘 왼손잡이 공격형 가드로 당시 최대어 송영진에 이어 2순위로 여수 코리아텐더에 선발된다.재정문제로 부도직전이던 팀을 플레이오프 직전까지 이끄는등 코텐 돌풍을 주도했으나, 바로 다음 3순위가 하필 슈퍼루키[7]였던 탓에 뭔가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쉬운 활약이었다.
  • 02년: 한정훈(6순위, 서울SK), 정선규(9순위, 창원LG), 김경록(12순위, 창원LG)
본격 믿거고의 시작.. 김주성 & 낙생고 3인방 드래프트로 기대를 모았으나, 김주성(1순위), 진경석(3순위), 박지현(4순위), 이한권(5순위)을 제외하곤 대부분 프로에서 폭망하는 등(2순위 정훈 포함) 실제 뎁스는 매우 떨어졌던 해로, 사실 누굴 뽑았어도 망픽이었다.
  • 05년: 정상헌(8순위, 대구오리온스), 김지훈(17위, 안양KT&G)
재앙급 믿거고. 경복고 출신 대형가드 정상헌은 고교시절 방성윤과 함께 FIBA Asia U-19 대회를 접수하는 등 천재로 불렸으나 고려대 진학후 방황에 빠져 연고전 한번만 뛰는 등 문제아로 유명했다. 대구오리온스 김진 감독이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여 자퇴생 신분인 그를 무려 1라운드에 선발하였으나 아니나다를까 팀 이탈.(-_-) 다음시즌 울산모비스로 트레이드되어 유재학 감독의 지도아래 어느정도 선수생활일 재개하고 06-07 시즌 우승멤버에도 이름을 올린뒤 이듬해 상무로 입대하기까지 하나, 상무 제대후 귀신같이 은퇴!! 그후엔 다들 알다시피 (...)
안양KT&G 김동광 감독은 고대에서도 백업가드였던 아들 김지훈이 2라운드에서도 선발되지 않자, 17순위로 자기가 감독하는 팀으로 父情선발하여 아들의 취업문을 열어준다. 참고로 이때 고려대 포워드 김동욱이 전체 14순위로 삼성에 뽑혔다.앞에 팀들은 다 뭐한겨??
  • 06년: 임휘종(7순위, 안양KT&G->서울삼성으로 트레이드), 배경한(10순위, 원주동부), 전원석(14순위, 안양KT&G)
믿거고는 계속된다. 2000년대 중반 고대의 싹쓸이 스카웃은 대단했다. 특히 고교농구의 에이스란 에이스는 죄다 모아놓은듯한 화려한 가드진이 유명했는데, 결과는 이정석, 김태술로 실속을 챙긴 연세대에 매번 밀렸고, 심지어 중앙대에도 맥을 못췄다.
특히 임휘종은 2003년 그리스 FIBA U-20 대회에서 한국이 16팀중 12위를 차지할때 주전으로 뛰던 장신가드였는데, [8] 이른바 황금세대 사이에서도 주전으로 뛰었음에도 불구, 대학시절 별 발전이 없이 프로에 와서 미미한 커리어를 보낸다. 바로 뒷순번이 무려 한양대조성민으로 부산KTF 추일승 감독이 낼름 가져갔고, 2라운드 15순위에는 괜찮은 빅맨인 중앙대 한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안양KT&G 김동광 감독은 2년연속 2라운드에 고대가드를 뽑고 이듬해 서울삼성 감독으로 이직한다.

  • 07년: 신제록(12순위, 안양KT&G)
신제록 역시 황금세대의 청대 시절 주전 2번이었다. (03년 세계대회는 부상으로 불참) 4학년 연고전때 당시 연세대로 편입했던 이동준의 출전을 놓고 양팀이 신경전을 벌일때 당시 고대 주장이었다. (결국 이동준은 출전하지 못했고 06년 연고전은 고려대가 이긴다.) 프로에서는 부상과 씨름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탤런트 신성록의 동생으로 더 유명하다. 황금세대답게 후순위에도 알짜가 많았는데, 14순위 "봉다디" 김봉수, 17순위 꽃창무, 3라운드 22순위의 슛쟁이 정병국 등이 아직 잘 뛰고있다.

안양KT&G는 3년연속 2라운드에 고대가드를 뽑는다. 이번엔 이상범 감독

운동능력이 뛰어난 가드. 1번으로의 능력은 다소 아쉬우나, 수비가 매우 좋고 2번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일단 믿거고에서는 제외.
  • 10년: 신정섭(12순위, 원주동부), 김태주(13순위, 서울삼성)
모두 2라운더들로 별 기대치가 없었으나, 신정섭의 경우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바 있다.
  • 11년: 정창영(8순위, 창원LG), 홍세용(20순위, 안양KGC->원주동부로 트레이드)
정창영은 창원LG의 가드난을 해소할만한 장신가드로 기대를 모았으나, 큰 활약없이 2시즌을 보내고 상무에 입대한다. (그리고 기존의 양우섭, 유병훈, 정창영 중 누구도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창원LG는 포가난 해소를 위해 트레이드를 통해 김시래를 영입한다.)
단신슈터였던 홍세용은 커리어 대부분을 2군리그에서만 뛰다 계약해지되었고, 현재 실업팀인 DY이글스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12년 1차 드래프트: 조찬형 (3라운드 21순위, 안양KGC)
단신슈터였던 조찬형은 1군에서 단 한게임도 뛰지 못하고 방출된다.
믿고거의 역사는 길었다. 이후 역사는 13년 4순위 박재현으로 이어진다.
  1. 입단 초기에 공격에서 나사가 빠진 모습이 간혹 나오기에 마족규란 별명이 붙기도 했으니.....
  2. 물론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수비는 일취월장한 수준
  3. 사실 5라운드 시점에서는 KCC와 모비스가 크레이지 모드를 달리고 있었고, 6위권과의 승차가 꽤나 벌어진 상태였기에 맘 편하게 6강 PO를 대비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렇게 총력전을 선언해놓고 승률은 9승 9패로 딱 5할을 찍었으니.....
  4. 어디까지나 허재 이후다. 조성민의 등장전까지.
  5. 90년대까지는 허재의 아성을 넘을수 없었고, 허재가 사고를 쳐서(음주운전) 국대에 없을때는 운동능력과 센스가 좋은 이상민이 강동희와 함께 백코트를 이뤘다. 02년 부산아시안게임때는 포워드 문경은이 2번에서 뛰었고, 김병철은 03년 하얼빈 아시아선수권 이후부터 짧은 기간 동안 활약하였다.
  6. 신기성보다 고려대 1년 후배지만, 자퇴 후 바로 입단하는 바람에 드래프트 없이 97-98시즌부터 KBL에 데뷔했다. 97-98시즌 신인상 수상자임에도 다음해 신기성이 드래프트로 합류하면서 서울삼성으로 트레이드된다.
  7. 전시즌 꼴찌였던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가세하자마자 01-02 시즌 우승을 차지한다
  8. 당시 주전은 김태술-임휘종-양희종-차재영-하승진 + 윤호영, 이광재, 함지훈, 정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