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반다이남코에서 넘어옴)

다른 뜻에 대해서는 아래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Bandai Namco Holdings
Bandai Namco Entertainment
정식 명칭株式会社 バンダイナムコ
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
영문 명칭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한글 명칭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설립일1955년 6월 1일[1]
업종게임 소프트웨어 공급
기업 규모직원 수
반다이 남코 게임스: 900여 명 (2013년)
반다이 남코 스튜디오: 1047명 (2012년)
홈페이지

1 개요

일본의 게임사로, 반다이의 게임사업부와 반프레스토, 그리고 남코가 통합된 회사의 명칭. 회장은 이시카와 슈쿠오. 남코 개발부 출신으로 두더지게임과 비슷한 형식의 와니와니 패닉을 기획, 일본 오락실에 대형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신인 남코는 1955년 나카무라 공업소에서 시작하였으며, NAMCO라는 이름은 나카무라 공업소의 영문 명칭인 NAkamura Manufacturing COrporation에서 따온 것이다.

1998년 반다이는 세가 게임즈와 합병하여 세가 반다이가 될 예정이었지만, 반다이 사내의 반대가 심하여 합병은 중지되었다. 이후 2003년 마찬가지로 남코도 세가에 합병을 신청했지만, 세가 측의 답변을 받지 못하다가 결국 사미에서 세가를 매수하여 세가 사미 홀딩스가 설립되었다.[2]

이렇게 세가에 퇴짜맞은 두 회사는 합병을 추진. 이후 2005년 반다이 남코 홀딩스를 설립하면서 통합 운영을 시작. 이후 2006년 두 회사의 합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기존 남코를 계승하여 반다이 남코 게임스가 만들어진다. 이후 2008년엔 반프레스토, 2009년엔 아타리 대부분[3]을 합침으로서 닌텐도, 코나미에 이은 일본 3대 큰 게임사가 되었다. 합병 이후로도 반다이는 독립된 법인으로 남지만, 게임 개발은 전부 반다이 남코 게임스로 이전된다.

합병이 되었긴 하지만 이미 합병전에 강력한 브랜드가 많았던 반다이남코인지라, 합병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는 합병전과 마찬가지로 반다이남코, 반프레스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합병전부터 이어져온 상품의 경우는 추가적으로 합병전의 로고를 따로 표기한다. 반다이 남코 게임스의 로고만 표시되는 경우는 합병 이후에 새로 시리즈가 진행된 시리즈이거나 신작에 한해서만 반다이 남코 게임스의 로고가 출력. 대표적으로 구 로고가 혼용되는 작품은 철권 시리즈로, 반다이 남코 게임스 로고 다음에 바로 구 남코의 로고가 출력된다.

하지만 2014년 4월 1일부터 출시되는 게임에는 3사 모두 반다이 남코 게임스로 브랜드가 통일된다고 한다.

2 역사

2.1 남코 황금기

창립 초기에는 원래 목마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였다가[4] 아타리의 게임들을 일본에 수입하는 계약을 맺으면서[5] 게임 업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고 지-비[6]를 시작으로 아케이드 게임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팩맨(1980), 갤러그(1981), 제비우스(1982) 마피 (1983) 등의 게임이 빅 히트를 치면서 훗날 남코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80년대 초반의 게임 시장에서 부동의 강자로 활약한다. 특히 팩맨의 뛰어난 게임성과 내부의 기술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지금도 교과서처럼 숭배되고 있으며, 대중에게도 일본 뿐만이 아닌 미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문화현상,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2.1.1 대중적인 8비트 폰트 보급 - 아타리/남코 폰트

118124217480.png
아타리의 슈퍼 브레이크 아웃 (1978)

118124213736.png
마피 (1983)

NES_Super_Mario_Bros.png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985)

Bubble-Bobble-Arcade-Gameplay-Screenshot-4.png
버블보블 (1986)

스샷의 위아래에 보이는 폰트들.

아타리에서 제작되고 '슈퍼 브레이크 아웃'을 필두로 쓰인 8x8 픽셀규격[7]의 8비트 게임 폰트를 일본 게임 업계에 보급한 것이 남코다. 아타리의 슈퍼 브레이크 아웃을 참고로 개발한 지-비 시절부터 저 폰트가 사용되었고[8] 이후 팩맨의 대히트를 매개로 8비트 시대 오락실 게임을 넘어선 비디오 게임 전반에서 저 폰트가 많이 쓰였다. 닌텐도 불세출의 히트작 동키콩,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9]에서 이 폰트를 쓴것이 해당 폰트가 8비트 게임 시대의 심볼이 된 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8x8 규격의 폰트는 특히 타이토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폰트였다. 타이토는 남코 다음으로 80년대 게임에서 아타리/남코 폰트를 가장 많이 써먹었던 메이커였다. 당장 버블보블부터가 이런 폰트를 쓴 대표적인 케이스였으니...

2.2 패미콤 시절

1983년 말, 남코의 베테랑 제작진들이 회사의 열약한 근무 환경을 이유로 집단으로 퇴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10] 그러자 남코에서는 게임기 시장으로 눈을 돌려서 닌텐도의 두번째 서드파티로 계약하여[11] 1984년부터 자사의 인기 아케이드 게임들을 패미컴으로 이식, 하드웨어의 판매량을 견인하였다.

남코의 우량 게임들로 하드웨어 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기에 당시 닌텐도에서는 남코를 거의 '퍼스트 파티' 혹은 '사업상 파트너'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었는데, 단적으로 패미컴에 게임을 발매할때 거두어들이는 라이센스비도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남코만 유리하게 별도로 계약되어 있는데다가 남코의 자체제작 소프트는 자체적으로 롬팩을 생산 가능하게 하는 특혜[12]를 줄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 허나 남코에서는 이 특혜를 악용하여 닌텐도 몰래 편법으로 1985년부터 4년동안 자사제작이 아닌 일부 게임들을 자사제품이라고 속여서 발매[13]하고 패미컴을 본따서 자체 게임기까지 몰래 개발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닌텐도와의 골이 깊어지고 결국 첫 5년 계약이 끝나는 시점(1989년)에서 서드파티로 강등된다.

또한 패미콤 시기에는 남코에서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어서 회사 내부적으로도 조금 힘든 시기였는데 일종의 강등마냥 다른 서드 파티들하고 대우가 같아져 버리자 닌텐도에게 토사구팽당했다고 생각한 남코에서는 닌텐도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 생각도 했지만 그 때까지 한 짓도 있고, 내놓으면 적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 시장을 포기하고 손가락만 빨 수도 없었기에[14] 남코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 계약 사항을 수용하여 계약을 갱신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몇년이 지난 뒤에 인터뷰한 내용에도 이 얘기를 하면서 관계자가 잠시 침묵했다고 한다.

이렇게 계약 갱신은 수용했지만 그 뒤, 남코에서는 닌텐도 기종보다는 PC 엔진, 메가드라이브 등에 NAMCOT라는 명의로 소프트를 내면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게된다. 그러나 패미컴의 점유율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당시 남코에서 이들 게임기로 내놓은 게임들의 대다수 또한 흑역사에 가까운 졸작들이었다. 결국 시장에서 그나마 꾸준하게 팔리는 작품이 닌텐도와 계약 아래 제작되던 패밀리 스타디움(패미스타) 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되자 남코에서는 닌텐도가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닌텐도 하드로도 소프트를 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리즈 역시 슈퍼패미컴으로 갈아타면서 후발주자로 나온 코나미에서 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 밀려 캐버로우당하게 된다.

2.2.1 NAMCOT

가끔 구작중에 사명이 NAMCOT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브랜드는 NAMCO가 PS1 참여 이전까지 닌텐도에서 제조한 콘솔 이외의 기기에 자사의 게임을 이식할때 사용한 것이다.

멀쩡한 NAMCO를 놔두고 굳이 NAMCOT을 사용한 이유는 닌텐도가 처음 게임 제작사와 패미컴의 서드파티 계약을 맺을 때 타사의 콘솔로는 게임을 발매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조항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까지 닌텐도는 패미컴의 엄청난 성공으로 한창 자만심으로 가득차있는 상태였고 그렇게 타이트한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패미컴의 첫 서드파티였던 허드슨NEC와 파트너 계약을 맺어서 게임기 PC엔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도 "어차피 우리랑 상대도 안될텐데"하는 분위기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세가측에서 본격적으로 서드파티 영입을 시작하여 남코, 코나미, 캡콤 등 하드웨어 판매량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있는 게임 브랜드들이 메가드라이브로 게임을 발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미국에서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제네시스)가 슈퍼 패미컴(SNES)을 앞지르기 시작하자 닌텐도는 해당 조항을 들먹이며 다른 회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남코는 NAMCOT, 코나미는 KCET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닌텐도의 갑질이 끝난 시기는 굴지의 대기업인 소니가 게임기 사업에 참여한 32비트 시절이었다.

2.3 플레이스테이션 시절

닌텐도와 함께 슈퍼패미컴의 CD 확장기기를 개발하던 도중 닌텐도에게 뒷통수를 맞은 소니의 쿠다라기 켄은 회사에게 직접 게임기 시장 진출을 건의하게되고 소니는 남코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남코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며 플레이스테이션과 완전 호환되는 기판인 SYSTEM 11을 개발하고 릿지 레이서(1993), 철권(1994), 에이스 컴뱃(1995), 타임 크라이시스 (1995) 등의 명작 3D게임들을 연이어 발매하면서 소니를 적극 후원하면서 12년만에 황금기 시절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비록 플레이스테이션의 런칭에 전격 참여한 남코였지만 철권 발매시까지 NAMCOT 브랜드를 사용한걸 보면 그래도 여차하면 닌텐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던거 같은데, 닌텐도가 이적 행위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는 초강경 자세[15]를 보이면서 남코는 1995년에 NAMCOT를 폐지하고 '릿지 레이서', '철권', '에이스 컴뱃' 등 60개가 넘는 타이틀을 발매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3D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대표적인 회사가 되어버린다. 이에 비해서 동시대 닌텐도 기종인 닌텐도 64로 발매한 게임은 패미스타 64 딱 1개였는데, 이마저도 쿠소게.[16] 참고로 남코에서 세가 새턴용으로 발매한 게임은 단 하나도 없다. 그때 만약 남코가 새턴으로 갔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90년대 초반부터 남코는 게임 제작 이외에 다양한 사업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1992년에 개장한 자사의 아케이드 센터 원더 애그를 1995년, 원더 애그2라는 이름으로 게임 테마의 테마파크로 확대하여 테마파크 사업에 진출하였고[17] 애니메이션 시장에도 진출하였다. 그러나 원더 에그2는 2000년도에 수익 악화로 폐점했고 남코가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악평만 들었다.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로봇팬과 아이돌 마스터 팬에게 동시에 외면당했고 그 전에 만든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 애니메이션판은 원작의 초반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18] 그나마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애니판도 제대로 만들면 장편일 게 뻔한 것을 달랑 4화로 만들었다. 제노사가 애니판은 달랑 13화만 만들고 끝...이정도면 마가 끼인 게 아니라 남코 쪽이 무성의할 정도. 그나마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재평가받는 중이지만 아이돌 마스터 2가 아니었다면 이런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 외의 것은 재평가가 사실상 불가능 수준이다.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지만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 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3 평가

게임에 이미 만들어 놓은걸 락해놓고 DLC로 락을 해제해서 팔아먹는 방식이라 더까이고 있다. 즉 클리어 특전등으로 열어버릴 수 있는 컨텐츠를 DLC로 팔아 DLC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어 그런지 게임이 갈수록 성의가 없어진다는 말도 있다.[19]

그리고 "DLC를 사지않는 게이머는 게이머가 아니다." 라는 캡콤의 "자신들의 미래 컨텐츠는 DLC." 이후 최악의 망발을 내뱉었다. 이후 일본 국내외에서 신랄하게 까인 뒤 사과발언을 했지만 씨알도 안먹히는 중.[20]

물론 흑역사급 게임만 만드는 건 아니고 호평인 게임도 내긴 하고 있다. 아케이드에 대해서는 건담 VS시리즈가 선방을 해주다가 최신작인 기동전사 건담 EXTREME VS가 현지에선 언터처블급의 인기를 자랑[21] 하고, 2010년에는 갓이터 시리즈가 호평을 받고 하프밀리언을 돌파했으며, 반프레스토 제작의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포터블 역시 호평.

. 그래도 PS VITA로 나온 후속작인 소드 아트 온라인 : 할로우 프래그넌트은 혹평받은 요소를 많이 개선하고 사후지원도 빵빵한편이라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이라는 평을 받고있다.

또한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for Nintendo 3DS / Wii U를 유한회사 소라와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코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편. [22]

그리고 2015년 시작을 테일즈 오브 제스티리아로 테일즈 시리즈의 20주년을 실패했다.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KOTY후보 등극 시켜놓은 상태. 이후 DLC의 깽판까지 합해서 여태까지 안 먹었던 욕을 몰아서 먹고있는 중.

그 외엔 철권6, 철권 태그 토너먼트 2, 소울 칼리버 5를 합본으로 한 파이팅 컬렉션을 발매 했는데 오리지널의 DLC와 세이브가 파이팅 컬렉션과 연동이 안된다. 보통 이 경우엔 지원 패치를 내놓거나 연동 기능을 넣는게 보통인데 이 쪽은 파이팅 컬렉션 전용 DLC를 팔아 먹겠다고 대놓고 광고했다

국내 리듬게임계에서도 상당히 의문을 표현하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태고의 달인 신기판에서 대거 라이센스곡들을 잘랐는데, 옆 회사모 시리즈와는 대비되는 상황. 또한 동더광장을 지원해주지 않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동더광장에서 살 수 있는 곡들 중 일부를 아예 통상해금으로 푼 경우도 있지만[23] 안 푼 곡들이 훨씬 더 많기에...... 그리고 잘린 곡들이나 업뎃된 곡 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들이 많다. 업데이트는 3주~1달은 늦는 게 보통이고, 해금을 하더라도 일본에 갔다오게 하는정책을 자랑한다. 이 상황이 극까지 간 게 천하제일리겜축제 당시의 행보와 유현의 난 해금. 국내에 정발된 그루브코스터에도 수록되어 있는 뮤직 리볼버나 EXTREME MGG★★★ 가 잘려있고, 신데마스 곡들도 특수 이벤트 해금이라는 명목으로 잘려 있다. 어떤 사람의 태고 개발자와의 대화에서 개발자는 그루브코스터 곡들은 판권을 얻어오기가 힘들고, 다른 곡들도 그 외 다른 사정들이 많다고 했다.

그나마 2015년 들어 효자가 하나 나왔으니 바로 Project CARS. 자체 개발은 아니고 니드 포 스피드 : 쉬프트를 제작하던 슬라이틀리 매드 스튜디오가 일렉트로닉 아츠와 관계를 끊고 반남과 파트너를 맺고 낸 작품이다. 역대급 레이싱 게임이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2015년 5월 16일 기준으로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린 비디오 게임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후반기에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가 아이돌 게임으로서도 모바일 게임으로서도 엄청난 호평을 듣고 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4 행보

2010년엔 세금탈루를 하다 걸려 거액을 추징당한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2010년 1/4분기에는 300억엔 가량의 적자를 내고 대규모의 구조조정(=사원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 결과 2010년 전반기에는 겨우 본전수준으로 회복에 성공했다.

2011년 상반기 봄엔 아이돌 마스터 2의 발매가 예정되어있어 자금사정이 호조로 돌아서려나 했더니, 이 아이돌 마스터 2가 여캐 4명을 삭제시키고 남캐 3명을 추가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저지르는데……. 상세한 내용은 아이돌 마스터 2 문서 참조. 하지만 아이돌 마스터 애니메이션과 PS3 이식판으로 예토전생하는데 성공하고 잃어버린 팬층도 다시 되찾았다.하지만, 두 번 다시 엑박마스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현 세대 엑스박스용 아이마스의 가능성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하지만 하위호환이 된다면 어떨까? 하지만, 일본 내수용으로 시작한데다 오래된 작품이라 과연?

한동안 PC로 나오는 게임에 GFWL을 적용했었다. 멀쩡한 게임에 무슨 지거리야! 릿지 레이서 언바운디드만 해도 잘만 스팀을 사용중이었다.(…)

스퀘어 에닉스 북미지사 등(어?) 해외 게임을 아시아 지역에 퍼블리싱하여 출시하기도 한다.
PC 게이머들을 그냥 호구로 취급하는 중이다. 툼 레이더 PC판은 콘솔판보다 늦게 내놓는 짓거리를 벌이는 등. 덕분에 이들이 발매한 아시아 버전을 수입하였던 인트라링스는 안들어도 될 욕까지 먹어야 했다.

이상하게 잘 눈에 띄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서양에서 거하게 대박친 다크 소울 시리즈 브랜드도 가지고 있다. 제작사는 물론 프롬 소프트웨어이지만 반남 브랜드를 가지고도 유료 DLC도 하나 밖에 없고[24] DLC구성도 탄탄하고 밸런싱이 맞춰저있는 반남내부에서도 기이한 브랜드이다.

2015년에 Project CARS, F1 2015[25], RIDE 등 모터스포츠 게임 유통을 활발히 맡기 시작했다..

철권 프로듀서인 하라다 카츠히로를 중심으로 가상현실 게임인 섬머 레슨을 개발중이다.

5 공식 SNS

6 한국 관계사

7 관련 문서

8 대표작

굵은 글씨는 PS4 혹은 VITA를 지원하는 한국어 작품을 뜻합니다.
  1. 전신인 남코의 설립일
  2. 대신 세가 게임즈와 합작을 제작했다.
  3. 미국에 있는 본사 빼고 다 먹었다!
  4. 그래서 창립 초기에는 회사 로고도 말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현재 우리가 아는 워드마크는 1971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
  5. 정확히는 1974년에 아타리 일본지사를 먹고 수입권까지 가져갔다고 보는 게 맞다.
  6. 간단히 말해서 슈퍼 브레이크아웃(아타리 원조 벽돌깨기2)에 핀볼을 접목한 게임이다.
  7. 실질적으로는 7x7 사이즈다. 왜냐하면 한쪽 모서리에 1픽셀 한줄로 여백을 두기 때문.
  8. 상술했듯이 남코는 아타리 수입책으로서 게임 업계에 뛰어들었다.
  9. 닌텐도 최초의 아타리/남코 폰트 도입은 1979년작 '보안관'이라는 게임이다. 덧붙여 닌텐도 게임 및 닌텐도 하드웨어 게임의 아타리/남코폰트 상당수는 거의 같지만 숫자 8이 조금 틀린등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다.
  10. 남코에서 퇴사한 직원들은 이후 캡콤에 입사하였고 캡콤은 1984년 벌거스를 발매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게임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11. 첫번째 서드파티는 허드슨.
  12. 닌텐도는 자사 밖의 회사에서는 자사 게임기에 들어가는 롬팩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출하량 제어나 이익 면에서 닌텐도가 매우 유리해지며, 이것은 닌텐도 64에서도 롬팩을 고집한 이유로 꼽힌다.
  13.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 에리카와 사토루의 꿈 모험, 버거 타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14. 패미컴의 황금기 시절인 80년대는 게임이 아무리 허접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게 기본이었다.
  15. 드라이한 교토 상인이 운영하는 회사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6. 북미에서는 3개 발매되었다. 미스 팩맨 메이즈 매드니스, 릿지레이서 64, 남코 뮤지엄 64.
  17. 원더 애그2에서 잘 알려진 어트랙션은 관객참여 극장형 스페이스 건슈팅게임인 갤럭시안 스퀘어(이쪽은 1인용으로 따로 이식되어서 일반 아케이드로도 출시되었다.), 모션캡쳐 철권 2(...) 등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의 세계토픽 TV 프로그램인 세계는 지금에 소개된적도 있고 철권 3~철권 TT에서의 샤오유 배경 스테이지 또한 이 원더에그가 모티브인것으로 추정된다.
  18. 게임도 스토리에 문제가 있었는데 애니는 더...
  19. 하라다가 의상을 제외한 캐릭터나 스테이지 등은 무료 DLC로 내겠다고 했는데, 아예 의상까지 무료로 풀렸다. 유료 DLC는 저작권을 쥐고 있지 않는 전작의 음악과 영상들.
  20. 사과글의 말투가 전혀 사과하지 않는 말투 같은 게 큰 일조를 했다.
  21. 워낙 오락실 숫자가 많아 피크타임의 경우에도 웬만해서는 대기하지 않고 바로 플레이가 가능한것이 일본 오락실의 대부분 게임들의 특성이지만, 그런 기기들과는 다르게 피크타임에 가면 어느 오락실에 가도 서너명 앞에 대기하고 플레이해야되는 풍경까지 펼쳐진다. 아르카디아 비디오게임 인컴률 1위를 괜히 하는것이 아니다.
  22. 팩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이템만 봐도 남코 쪽 아이템이 2개나 되며 (스페셜 플래그, 보스 갤러거), 맞을 때의 효과가 많이 좀 강해진 면이 있는데 실제로 남코의 그래픽 쪽 스탭들이 많이 참여했다.
  23. 케챠동2000
  24. Prepare to Die Edition. 말이 DLC지 확장팩이나 다름 없는 구성이다. 적절한 외전스토리와 상당한 난이도의 보스 구성으로 대호평.
  25. 유럽, 북미, 중국 해당. 아시아에서는 유비소프트가 유통을 맡는다.
  26. 안다미로가 신 태고의 달인외 여렷 아케이드 게임을 유통한다
  27. SD건담 넥스트 에볼루션을 개발한 회사로, 캡파를 만들었던 트리니티 팀이 소프트맥스를 나가 설립한 회사이다.
  28. 문서 내용이 할로우 프래그먼트와 동일하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남코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