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논란/윤리적 문제

< 성경‎ | 논란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는 규정상 비(非) 종교위키이며, 따라서 세속적 관점에서 쓰여지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특정 항목에서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이 충돌할 경우, 세속적 관점을 위주로 해당 항목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1 원죄 문제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인류는 일단 선악과를 먹었기에 원초적인 죄가 성립됐지만, 그것을 통하여 인류를 멸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끝없는 긍휼함이며 끝없는 인자함이라고 한다. 사실상 앞에 위치한 3가지의 끝없는 것들로 인하여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가 성립되며,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죄 개념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건 근본적으로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의 말뜻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긴 말이라고 주장한다. 애초에 야훼가 전지전능하다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터, 인간을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인간이 선악과로 타락할 것임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경에 따르면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이브는 선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정신 이상으로 인한 무죄 평결의 사유에 해당한다.

또한 원죄라는 개념 자체가 기독교 밖의 입장에서는 연좌제스러운 전근대적 발상의 산물일 뿐이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아담과 이브인데, 왜 그로 인해 인류가 대대손손 죄를 이어 받아야 하는가? 내가 먹지도 않은 선악과 때문에 덮어놓고 나를 죄인이라고 하더니만 뜬금없이 예수를 보내 있지도 않은 죄를 사해줬다는 언급에 어이가 없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원죄 개념에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우스개로 자주 쓰이는 유머도 있다.

A: 내가 개를 암수 1쌍 키웠는데 말이야. 내가 아주 이 개들을 예뻐했어. 그래서 안방에서 길렀지.

B: 정말 아꼈나 보구만.
A: 그런데 하루는 내가 삼겹살을 구워다 먹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급한 전화가 왔어. 그래서 나는 먹고 있던 삽겹살을 그냥 두고 나가야 했지.
B: 개들이 먹으면 어떡하려고?
A: 그래서 개들을 불러서 앉혀 놓고 단단히 이야기해 두었지. 이 삼겹살을 먹지 마라. 먹으면 정녕 너희가 죽을 것이다.
B: 그리고 나서?
A: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한 시간쯤 뒤에 돌아왔다네.
B: 개들이 삼겹살을 안 먹었던가?
A: 웬걸. 다 먹어 치웠더군.
B: 화가 많이 났겠구만. 그래서 어떻게 했나?
A: 안방에서 마당으로 내쫒아 버렸지.
B: 그리고?
A: 그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들도 죄견(罪犬)이라고 해서 마당에 그대로 두고, 그 새끼의 새끼들도, 그 새끼의 새끼들도, 그 새끼의 새끼들도 그렇게 취급해 줬다네.
B: 아니 먹은 개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새끼 개들이 삼겹살을 먹은 것도 아닌데 그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 새끼 개들이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A: 그래도 한번은 타지에 있던 내 아들이 와서 그 개들을 용서하라면서 나에게 삼겹살을 사 줬다네. 나는 그래서 개들에게, "내 아들이 너희 대신 내게 삼겹살을 사 줬다는 것을 믿는 개마다 죄를 사해 주겠다"라고 이야기했지.
B: (...)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는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에서는 저런 식으로 성경에 나온 글자 그대로만 보고 선악과를 먹었다고 연좌제로 물려받는 대역죄인같은 원죄 개념 이해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본다.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원죄는 엄밀히 말하면 직접적 죄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 초래된 악으로 치우치는 '경향성'에 가깝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창조된 인간에게 스스로 살아갈 자유의지가 있는 한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경향성도 인간에 대대로 내재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창세기의 선악과 에피소드는 이런 원죄 개념을 유대 문학적인 우화 장치로 설명했다고 볼 뿐인 것. 기독교 신학에서는(심지어 성서근본주의 종파마저도) 위의 예시처럼 간단하게 원죄 개념을 이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두자. 다만 이렇게 원죄 개념이 설명되어져도, 원죄의 근원이 된 자유의지 허용의 문제와 관련한 악의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여전히 제기될 수 있다.

또 기독교 신학에서는 죄로 치우치는 인간의 경향성을 원죄로 표현하지만, 단순히 악으로 치우치는 경향성을 로 표현한것은 우화로서 원래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매우 부적합한 표현이라는 주장도 많다. 경향성과 죄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데, 죄라는것은 어떤 일을 저지른 뒤에 붙는 평가이고 경향성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알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결국 표현상의 문제일 뿐이지 연좌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 경향성으로 해석한다면 유전적으로 그런 경향성이 이어지니 문제가 없어보여도 원죄라는 원 표현을 따른다면 (내면적 경향성으로 짓게 되는)죄를 대대로 상속하게 한 셈이니 사실상의 연좌제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이 문서 내에서 알수 있지만 연좌제를 부정하는 서술도 성경 내부에 있기 때문에 자가모순이 되버린다는 주장도 있다. 게임으로 치면 제작자 스스로가 버그가 걸리는 부분을 일부러 남겨놓고선 버그가 일어났다고 게임을 까는거랑 큰 차이가 없다 근데 연좌제 부정하는 이야기 바로 전페이지에선 연좌제로 차별하는 구절이 들어있다 거기다 여성 차별 부분에도 하와의 죄를 가지고 여성에 문제가 있으니 차별 해야한다는 식으로 위에서 지나치게 단순하다 본 관점에서의 해석에 의한 구절도 있다.

2 악신을 부리는 야훼

성경엔 분명 '야훼는 인자하시다'고 나오며, '야훼는 너무도 선해서 악한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원죄설)이 마주할 수 없다'고 나오는데, 사울 왕이나 아합 왕을 죽일 때에 야훼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악신'을 부리고, '거짓말하는 영'을 시켜서 그 둘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짓말 하는 영을 시켜서 사람을 죽이고 악신을 부리는 것이 공의로운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는 공의의 야훼와, 사랑의 야훼가 나오는데, 선하고 인자하시다는 사랑의 야훼이고, 벌을 주시는 부분은 공의의 야훼라고 해석을 하는데, 여기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살인자를 처형하는 것도 공의로운 것이므로 야훼의 위의 행위도 공의롭다고 주장한다. 또 악의 위에 있는 전능자, 악을 지배하는 신이라는 신학적 이미지도 도출해 낸다. 때문에 말락 야훼라는 개념도 만든적이 있을정도설정구멍을 이따위로 땜질해놓냐

하지만 성경이 집필될 당시 기준으로 공의로웠다는 이야기는, 그렇다면 21세기 현대의 보편적 윤리관에는 당연히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쓰도록 한 책이 시대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며 결국 그 시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창작물로서의 한계를 가지므로 창작된 존재라 비판할수도 있다.

3 일부러 파라오의 마음을 조종해놓고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본격 사이코패스 야훼

탈출기(가톨릭)/출애굽기(개신교)에 따르면, 파라오는 스스로 이스라엘 인들을 억류한 것이 아니라, 야훼가 그런 마음이 들게끔 조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야훼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는다고 이집트에 재앙[1]을 내렸다. 뭐요? 그 이유가 또한 황당한데, 파라오를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자신에게 반(反)하게 해야 자신이 재앙을 내리고 기적을 보이며 이집트인들에게 스스로가 강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논리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파라오로 하여금 억지를 부리게 하여, 여러 가지 놀라운 일을 베풀어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 증거를 이집트 땅에서 드러내리라. 파라오는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손을 들어 이집트를 호되게 쳐서 나의 군대,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내는 것을 보고서야 이집트인들은 내가 야훼임을 알리라." (탈출기 7:3~5)

여기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성격은 다른 수많은 신화나 교훈처럼 사람의 인도에 있는데 '그냥 하느님이 다 좋게 만들었으니 에브리띵 이즈 오케이' 해버리면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으니 적당히 악역도 필요하고 선역도 있어야 권선징악이 되지 않겠느냐고 본다. 실제로 이 부분의 경우 이야기의 서사구조상 신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반항할 때 어떻게 된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극선하다는 신이 악도 직접 만들어버리게 되는 결과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종교 세계관에서는 하느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끊임없이 관계한다는 걸 감안해 보면, "그냥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움직이면 안 되는가?" 내지는 "야훼가 학살자가 아니라면 '대량 학살 말고도 다른 수단을 통해서 신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가?"(심지어 이집트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도!)는 반박이 비종교적 입장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애초에 전지전능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야훼가 맘만 먹는다면 굳이 학살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야훼는 굳이나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살해하는 대량 학살의 방법을 사용 했다는 점, 그나마도 야훼 스스로가 파라오가 완강한 마음을 먹게끔 조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성경의 전근대적이고 시대 한계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4 희생된 욥의 가족들

다음 욥기의 구절을 살펴보자.

야훼께서 사탄에게,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그는 여전하지 않느냐? 네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 다 헛일이었다." (욥기 2장 3절, 공동번역성서)

보면 알겠지만 욥기에는 야훼가 욥을 시험하려고 충동적으로 사람(욥의 자식들과 하인들)을 죽이고 재산(양과 낙타)를 빼앗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이 있다. 심지어 욥에게 극심한 피부병까지 주었다. 결과적으로 욥에게 더 많은 재산과 하인, 새 가족, 건강을 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러면 이전에 죽은 욥의 가족과 하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뭐든지 나중에 돌려주기만 하면 이렇게 함부로 시험에 들게 해도 된다는 것일까?

게다가 본문을 보면 야훼 스스로가 '네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으므로, 사탄이 그랬대요(…)라는 기독교인들의 해명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다는 표현은 욥기 초반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탄이 야훼에게 '인간은 당신께서 이래저래 여러 축복과 혜택을 주니까 순종하는 것이지 다 뺏고 시련을 주면 금방 돌아서 버릴 거다' 라는 식으로 도전했고, 그에 야훼가 응하여 '그럼 그렇게 해봐라' 라고 '사탄이 그를 시험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므로 전후 맥락을 제외하고 저 부분만을 보고 야훼가 '직접' 욥에게 저런 고통을 겪게 했다고 보기엔 비약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 신자들에게 고난받는 신앙인의 모범을 욥을 통해 보이게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논박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야훼의 속성을 볼 때, 야훼는 어차피 전지전능하여, 욥이 자기를 배반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전지전능한 통찰력을 지닌 야훼가, 이미 욥이 배반하지 않을 것임을 다 아는 상황에서도 사탄의 내기에 응하여 욥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다는 것이 되어 버리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욥기의 저자도 이게 석연치 않자, 뒷부분에 야훼와 욥의 대화에서 야훼의 말을 통해 무마시키려 시도한다. 해당 대화에서 야훼는 내가 베헤모스리바이어던을 만들고 다룰 정도로 강하고 복잡한 존재인데 고작 창조물인 너희가 뭘 안다고 설치는가? 라는 논리로 욥기를 끝낸다. 하지만 이건 전혀 근본적인 해명이 될 수 없다. 전형적인 무지에 호소하는 논리.라고 하겠다. 이 부분도 그렇지만 성서의 모든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들이 믿는 야훼의 전지전능함만으로 모든 것을 논파 가능하다. 야훼는 아무것도 안해도 전부 알기에 행동 자체를 취할 필요가 없지만 고작 피조물 몇몇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과시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 교인들이 오오 하나님 오오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귀결을 짚어가다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메달려 죽은 것은 하나의 쇼로 보이는 기현상을 느낄수 있다. 왜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에.

5 금송아지 사건

출애굽기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관련자들이 대부분 살해당하는데 정작 이 숭배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물론 아론이 강요를 받은 정황이 있기는 하지만, 금송아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실제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관련자가 모두 살해당하는 가운데 아론 만이 별다른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그런 식으로 따지면 본시오 빌라도도 강요 당했는데? 본시오 빌라도예수십자가에 못박을 아이디어를 냈냐? 그건 유대 제사장들이 낸 아이디어잖아[2]

아론이 회개를 했기 때문일까?금수저였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 가운데 회개한 자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동생이 모세라서

이에 대해서는 아론이 최초의 대사제로 임명될 사람이며, 탈출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위인이라 하느님이 아꼈다는 견해도 나온다 .결국 편애라는 거잖아
높으신 분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단지 권리만이 있을 뿐

6 뒷통수 치기 :화평이라 쓰고 노예사냥이라고 읽는다. 화평거절은 학살파티다! 야호! 모조리 죽여라!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하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하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3]로 삼아 부려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할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붙이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 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신명기 20장 10절~14절)

전지전능한 야훼께서 '전쟁할 때는 이렇게 하라'면서 직접 제시해 주시는 가이드 라인 되시겠다. 가만히 보면 참으로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치고자 하는 성에 접근해서는 화평을 맺자고 낚시질을 시도하여 성에서 그 화평 교섭을 믿고 성문을 열어주면 그 성의 거주민들을 노예로 잡아 부리고, 만약 화평을 맺자는 낚시질에 걸리지 않으면 공격해서 다 쳐죽이고 여자와 가축과 아이들을 전리품(…)으로 차지하라는 명령이다. 화평을 맺겠다고 하면 노예고, 안 맺겠다고 하면 살해당한다. 잔혹하기도 악명높은 몽골군도 순순히 항복한 상대에게는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성경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야훼의 개입이 있었고, 성경이 실존하는 야훼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해당 구절에서의 전지전능한 야훼의 명령과 사고 방식은 그 당시의 전근대적인 히브리족의 사고의 수준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7 성차별적 서술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창세기 3장 16절)

남자와 동등한 대상이 아닌 상명하복의 관계로 여자를 규정하고 있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사내 녀석들은 당장 죽여라. 남자를 안 일이 있는 여자도 다 죽여라. 다만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은 너희를 위하여 살려두어라." (민수기 31장 17절~18절)

남의 땅을 침략하고 다른 민족을 약탈할 때, 처녀들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죽이라고 하는 구절이다. 야훼의 명령으로 여성을 약탈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처녀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한 거지처녀의 구별은 중동지방의 끔찍한 할례방법을 보면된다. 여성할례를 참고

그런데 그 고발이 사실이어서 그 여자가 처녀였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여자를 아비의 집 문 앞에 끌어다 놓고 친정이 있는 성읍의 시민들이 돌로 쳐죽일 것이다. 그는 제 아비의 집에 있을 때 몸을 더럽혀, 이스라엘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부정한 짓을 너희 가운데서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 (신명기 22장 20~21절)

결혼을 했는데 처녀가 아니면 돌로 쳐 죽여도 정당하다는 구절이다. 처녀인지 아닌지는 당시 아니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병맛의식[4]을 보면 답이 나오고, 남자총각이 아니면 돌로 쳐 죽이라는 구절이 없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부분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현재 유대교계에서는 투석형을 행하지 않고 있고, 기독교계에서도 간음한 여인과 예수의 일화에 따라서, 전통적으로 투석형을 폐기하였고 행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지금 그딴 짓을 하면 현대 이 범죄자로 만들어서 야훼 품으로 보내주거나 사회로부터 유리시킬 테니까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사람이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에는, 둘 다 그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성읍 안에서 당하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일 것이요, 남자는 이웃의 아내를 범했기 때문에 죽일 것이다. 이런 부정한 짓을 너희 가운데서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남자가 들에서 만나 겁탈했을 경우에는, 그 여자를 겁탈한 남자만 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니므로 손댈 것까지는 없다. 이것은 이웃에게 맞아죽은 것과 꼭 같은 경우이다. 그 일을 당한 곳이 들이므로, 약혼한 그 처녀가 소리를 질러도 와서 건져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명기 22장 23~27절)

실제 강간이 벌어질 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매우 억울할 수 있다.[5] 강간당할 때 협박이나 구타 등 여러 이유로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면, 강간이 아니라 화간으로 처리한다는 이야기. 고대 사회의 전근대적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율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성읍 안이 아닌 들에서의 강간에 대해서는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니 딴에는 진보적이라고 해야 하나?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데 한 사람의 아내가 얻어맞는 남편을 도울 셈으로 손을 내밀어 상대편 불알을 잡았을 경우에는, 그 여자의 손을 잘라버려야 한다. 조금도 애처롭게 여기지 마라. (신명기 25장 11~12절)

이쪽도 참으로 전근대스럽기 그지없는 부분. 최악의 경우 남자를 의사양반에게 보낼 수도 있고 내가 고자라니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남편을 도울 수 있지만, 그래도 손을 자르는 건 좀 아니 많이 심하지 않은가? 매우 요상하고 전근대적인 내용으로 이래저래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여자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1주간, 월경하는 동안 부정하듯이 부정하다. 8일째 되는 날에는 아기포경을 잘라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여인은 30일하고 3일간, 로 더러워진 몸이 깨끗이 되기까지 집에 있어야 한다. 거룩한 물건에 결코 닿으면 안 된다. 기간이 차서 몸이 깨끗하게 되기까지 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계집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2주간, 월경하는 동안 부정하듯이 부정하다. 그리고 로 더러워진 몸이 깨끗하게 되기까지 66일간 집에 있어야 한다. (레위기 12장 2~8절)

이쪽도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잘 드러난다. 사내 아이를 낳았을 경우 1주일간 부정하다고 하면서 여자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그 2배인 2주간 부정하다고 하는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 신약성경에도 여성을 차별한다고 보여질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디모테오1서 2장 11~15절)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고린토1서 14장 34~35절)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고린토1서 11장 3절)
남자는 하느님의 모습과 영광을 지니고 있으니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여자에게서 남자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서 여자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보고 있으니 여자는 자기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는 표시로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고린토1서 11장 7~10절)
아내 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의 구원자로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에페소서 5장 22~24절)

이 모든 게 대놓고 성차별을 권장하는 구절이라 여성들에겐 매우 불쾌한 구절들이다. 실제로 페미니즘신학(여성신학)을 연구하는 여성 신학자들이나 여성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에 자주 불쾌감을 표시한다.

사실 아직도 유대교는 여성을 아래로 두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게 유대인들이 이혼할 때 하는 게트(Get)란 풍습이다. 이는 남편이 이혼하는 아내에게 "너를 다른 남자들에게도 허가한다."라는 내용이 써진 종이를 주는 의식이다. 이 종이가 없으면 그 여성은 다른 유태인 남성과 재혼할때 상당한 애로사항이 생길 수도 있다[6]. 이는 명백히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로 둔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걸 보면 고대에도 중동 지역의 여성 인권은 시궁창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고대에는 극히 일부를 빼곤 여성인권은 없었다

그리고 하와의 잘못 때문에 대대로 여성들을 차별해야 한다는 연좌제를 통한 차별도 들어있어 밥먹듯 어기는 신명기 24장을 어기고 있다.

이는 이는 해당 구절들이 기록된 시기의 전근대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저 구절을 바탕으로 여성 교우들을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나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같은 구절도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현대에서 받아들일 의미 자체는 복장을 단정히 하십시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7]

이쯤 되면 온갖 대중매체와 게임이 잔인하다고 규제하는 여가부가 왜 성경을 규제하지 않는지 의문이다(...).여가부는 돈이 안되면 규제하지 않는다

실제로 남부 침례회 센터에서 2000년에 '여성들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부차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결정한뒤 칙령을 내렸고, 여성이 교회에서 사제, 목사, 집사, 군대의 군목이 되는 것을 금지했다. 만약 여성이 남부 침례회 신학교 교실에서 가르칠 때 교실에서 남학생이 있다면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삼만구절이 넘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쳐선 안된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관련 연설 참조

성경에서 이렇게 여성을 천대하는건 성경이 쓰여졌을 당시 시절의 지나친 가부장적 사회가 이유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이 남성인 '아담'을 먼저 만들고 아담이 외로워하자 '하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여성은 애초부터 남성을 보조하기 위해서, 외로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뉘양스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또한 하와가 뱀의 꾀임에 넘어가 아담에게까지 선악과를 먹자고 권유하는 내용등을 포함해, 성경에서는 지속적으로 여성이 실수를 하는 존재처럼 묘사되어 있다. 덕분에 상술했다싶이 성경에서는 수십번도 넘게 여성이 남성을 가르쳐선 안된다는 서술이 존재한다.

8 가나안 민족들에 대한 기록

그들(가나안 민족)을 가차없이 전멸시키시려고, 야훼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고집을 세워 이스라엘과 싸우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쓸어버리게 하셨던 것이다. (여호수아 11:20)

밑에도 기술하겠지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가나안을 먼저 침략하여 노략질 한 것은 야훼이스라엘인들이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9 바빌론 아이들을 저주함

시편 137편은, 바빌론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파괴당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는 기도인데, 도중에 보면 그들의 아이를 바위에 메어 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을 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지?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야훼여, 잊지 마소서. 예루살렘이 떨어지던 날, 에돔 사람들이 뇌까리던 말, "쳐부숴라, 바닥이 드러나게 헐어버려라."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네 어린것들을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공동번역성서)

10 예리코의 전투에서의 유아 학살

구약 성경에 따르면, 이집트를 탈출해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을 침략하였다고 나와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신명기 20:16~17)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또한 이런 전통(?)은 후로도 이어진다.

(사무엘상 15:1-3) 사무엘사울에게 전하였다. "야훼께서 나를 보내시어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소. 그러니 이제 야훼의 말씀을 들으시오. 만군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이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즉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그 일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다. 그러니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여자, 아이와 젖먹이, 떼와 떼, 낙타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

이젠 아예 빼도박도 못하게 유아 살해를 야훼께서 직접 명하셨다(...). 이제 예리코의 전투를 살펴보자.

(여호수아 6장 20~21절)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나팔 소리는 울려 퍼졌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 백성은 "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백성은 일제히 성으로 곧장 쳐들어가 성을 점령하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온 세상을 창조한 사랑 넘치고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자기를 믿지 않는 자유의지를 행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답시고 전멸시키는 것도 충격과 공포지만 젖먹이 아기까지 죽이는 짓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말 그대로 극단적인 편애 행위. 신자들이 이 내용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주로 예리코는 아기를 인신공양하는 사악한 집단이기에 진멸당해 마땅하다고 한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질 그런 아기를 구하지도 않고 같이 죽였다(...). 한 마디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드립.

이에 대해 R.A 토리[8]는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암세포?

가나안과 예리코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패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전술했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그 부모의 죄와는 상관없다. 연좌제도 아니고 또한 가나안과 예리코인들이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설사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교육이나 제도 정비를 통해 교화하는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냈을 법한데 이런 방법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어떤 변명을 덧붙이더라도 이러한 학살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 유명한 학살자들도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온갖 변명과 핑계, 명분을 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것.

역사상 유명한 학살자들도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온갖 변명과 핑계, 명분을 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좀 더 도발적으로 말하면, 이게 홀로코스트와 뭐가 다를까? 나치스가 할 만한 변명에 똑같이 대입해보자.

유대 민족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히틀러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폐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히틀러는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정당 방위?

만일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인들이 멸절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 인들에게 멸절됐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정당 방위였다.

청동기 시대의 전쟁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이스라엘의 침략을 옹호하는 논리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더욱이 야훼가 전지전능하면 굳이나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시키지 않더라도 새로운 땅 하나 정도는 뚝딱하고 만들어서 이스라엘 인들을 거주하게 하면 될 텐데...

•예수가 오기 전이라서?

부모들의 타락으로 인해 아이들도 오염되었을 것이며 이는 예수의 복음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데, 당시는 예수가 오기 전이었다.

부모의 타락으로 아이들이 오염되었다는 말도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유아는 타락한 시대상과는 관계된 죄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전지전능하니 일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터, 갓난아이를 죽이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미리 끊어버릴 정도라면 처음부터 가나안과 예리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으면 되었을 게 아닌가?

•구약 시대니까 당시 시대 가치관의 한계로 보자

성경에서 여리고 성 전투의 시점은 분명히 구약이고, 이방인들의 믿음과 구원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시점은 신약이다. 즉 구약 시대에는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만의 야훼였으므로 성경에 쓰인 기록을 문제삼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의 구원자로 기록되지 않았고, 여리고 전투 당시에는 선택 받았다는 유대인만의 야훼였던 시대에 쓰여졌으므로 성경의 중심 사상에서 전체를 놓고 보면 벗어나지만 쓰인 시점만을 놓고 보면 문제가 없다.

구약 시대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구약 레위기에서 야훼는 스스로도 분명, 부모의 죄로 그 자식을 죽일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놓고 자신을 믿지 않는 아말렉의 젖먹이 아기까지 참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구약이 쓰여졌던 그 당시 시대를 감안해도 야훼의 행위는 21세기 현대의 보편 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비윤리적이며 잔악하기 때문에 기독교 외부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구약 성경의 비윤리적 내용을 21세기 현대에 가치 있는 내용으로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가나안과 예리코의 아이들은 타락한 사회에 있느니 차라리 죽어서 하나님 품에 있는게 나았을 것이다.

죽은 아이들은 천국으로 간다는 가톨릭 등의 현대 교리에 따른 논증이다. 다만 이 교리를 적용한다고 해도 그 방법에 있어서 대단히 비윤리적이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무지에 의거한 논증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광대해서 지각이 제한된 인간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허허허 그럼 성경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서 완벽히 이해가 되시는 거군요
전형적인 무지에 의거한 논증이다.

위의 광신도들의 개소리(해석)가 이해가 안되는 게 당연하다. 이해하기 위해선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참조하면 된다.
인간들을 못배운 병신으로 만들어놓고서 우리 꿀꾸리우스의 크고 광대한 계획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구약을 완성하는 신약성경
기독교 측에서는 윤리적, 율법적, 신앙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던 구약 시대를 완성하는 신약의 가치를 강조하며, 이러한 점들을 구약 시대의 한계로 보는 입장을 견지한다.
다시말해, 이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을 동일하게 존중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구약이 원본이라면 신약은 패치(?)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이 충돌하는 부분은 신약에서의 관점이 더 완전한 관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신약에서 예수에 의해 야훼의 성향이 다르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야훼가 구약에서 저지른 이러한 학살 행위를 미화하거나 덮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만물이 이 말씀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야훼가 명한 예리코의 학살이 이루어지는 동안 예수도 그 야훼의 우편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덧붙여 참조하면 그런 예리코의 유아 학살 행위를 직접 시행한 것이 예수(=야훼)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성경이 좀 틀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여기에 대해 상당수의 보편교회 신학자들과 진보/중도적인 개신교인들은 성경에 나온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는 것은 사실 근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가톨릭, 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감리교와 예장 통합 측의 부분적 교세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서도 구약의 야훼의 학살을 애써 무시하며 조롱해도 상관 없지만 성경이 신화도 섞여있으며 왜곡도 섞여있고 편집과 필사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있는 경전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이 문단의 비판은 사실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성경이 신화도 섞여 있으며 왜곡도 섞여 있고 편집과 필사 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 있는, 말하자면 인간적인 한계점이 존재하는 경전이라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와 같은 다른 신화와 다를 바가 대체 무엇이냐 라는 비판적 의문이 생길수밖에 없다.

또 이에 대해 구약외경인 <지혜서> 12장에는 예리코를 비롯한 가나안인들의 죄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나안들에게 내린 하느님이 신중한 징벌 - 당신의 거룩한 땅에 살던 옛 주민들, 당신께서는 그들의 가증스러운 관습 때문에, 마술과 불경한 제사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셨습니다. 아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음복한다며 사람의 살과 피에다가 내장까지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광란의 의식이 한창 벌어질 때에 그 참가자들을, 힘없는 생명들을 살해한 그 부모들을 당신께서는 저희 조상들을 통하여 멸망시키시어 모든 땅 가운데에서 당신께 가장 값진 이 땅이 하느님의 자녀들인 훌륭한 이주민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도 인간이기에 당신께서는 소중히 여기시고 당신 군대의 선봉으로 말벌들을 보내시어 저들을 조금씩 멸망시키게 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싸움터에서 저 악인들을 의인들 손에 넘기실 수도 무서운 야수나 엄중한 말씀으로 단번에 퍄멀시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조급씩 심판하시어, 저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물론 당신께서는 저들이 근본부터 악하고 악을 타고났으며 그들의 사고방식이 영원히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저들은 처음부터 저주받은 종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이 저지른 죄를 당신께서 용서하신 것은 누가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지혜서 12장 3절~11절, 가톨릭 성경)

그러나 구약 성경의 가나안 관련 서술은 교차 검증이 제대로 되는 역사적 기술이 아닌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인들을 진멸시켰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혜서의 해당 서술은 후대 유대인들의 아전인수격인 서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논란이다. 또한 가나안인들이 불의한 사회 체제를 가졌으므로 몰살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는 서술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도 하다.

또 불의한 사회체제를 가졌다고 해서 젖먹이 아기까지 다 칼로 몰살시키는 것은 전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온갖 살육과 학살을 저질러 온 자들도 온갖 핑계와 변명을 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지혜서의 해당 서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한 해명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예리코의 전투를 비롯한 가나안 정벌에 대한 가톨릭 교황청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분노는 우리가 하느님 자신이신 사랑에 대해 어긋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벗어나 사는 사람, 선을 벗어나 사는 사람은 그럼으로써 그 분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은 부정적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분노는 지배욕에 찬 독재자가 매를 드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내적인 논리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 곧 우리를 지탱해주는 사랑에서 벗어나면 그야말로 공허와 어둠 속으로 빠져 버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는 이른바 사랑의 영역에 존재하지 못하고, 분노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하느님의 형벌은 하느님께서 벌금을 부과하시고 사람에게 무엇인가 제재를 가하시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는 의미의 형벌이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의 형벌은 우리가 실제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노선으로 들어서고 올바른 삶을 벗어날 경우에 느끼게 되는 당연한 결과들의 표현입니다. "

11 다윗과 간통한 밧세바에 대한 처결 문제

우선 다음의 기록을 보자.

어떤 자가 남의 아내와 한 자리에 들었다가 붙잡혔을 경우에는, 같이 자던 그 남자와 여자를 함께 죽여야 한다. 이런 부정한 짓을 이스라엘에서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 (신명기 22:22)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일 수 없고,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신명기 24:16)

보다시피 아비가 자식의 죄 때문에, 혹은 자식이 아비의 죄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며, 각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만 책임지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들켰을 경우[9] 남자와 여자를 모두 죽이도록 되어 있다.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울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나는 네 상전의 딸과 아내들까지 네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딸들까지 너에게 주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어떤 여자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였다. 암몬 군의 칼을 빌려 그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 너의 집안에는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으리라.'" (사무엘하 12:7~10)
야훼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준 아이에게 중병을 내리셨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베옷을 걸친 채 밤을 새우며, 어린것을 살려달라고 맨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늙은 신하들이 둘러서서 일어나라고 했으나, 그는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더불어 음식을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기는 마침내 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무엘하 12:15~18)

분명 자기가 내린 율법에서는 연좌제를 금해놓고, 정작 사무엘하의 기록에 의하면 간통과 불륜을 저지른 다윗과 밧세바는 살고, 죄 없는 아기가 부모의 죄로 죽게 된다.

신명기의 이야기와는 모순되게 분명 연좌제를 금지한다 했음에도 처벌 방식은 영락없이 연좌제다. 불륜의 주체인 다윗과 밧세바는 왜 처벌받지 않는데 아무런 죄없이 태어난 갓난아기는 뭐가 되는가? 야훼 스스로 내린 율법을 스스로 어긴것이나 다름없는 처사다.[10]

죽이는 주체가 야훼면 야훼 자신은 율법을 초월한 존재니 문제 없다 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야훼의 명령으로 연좌제로 사람을 죽이는것도 율법에 맞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연좌제로 처벌할때 야훼가 시켰다하면 정당화 될테고 그러면 연좌제를 금지한 신명기의 이야기는 뭐가되는가? 결국엔 야훼 스스로가 어김으로서 율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셈이다. 그럴거면 뭐하러 연좌제를 금지했는가? 연좌제로 벌을 주고서 그게 야훼의 명령이었다고 한다면 율법을 넘어서 정당화 가능할텐데 그럼 율법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신명기 23장 3~5절을 보면

사생아는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 후손은 10대에 이르기까지도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 후손은 10대가 아니라 언제까지라도 야훼의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와 이리로 오는 도중에,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가지고 나와서 너희를 맞이하기는커녕, 브올의 아들 발람을 메소포타미아 지방 브돌에서 불러다가 돈을 주며 너희를 저주하게 하였다.

연좌제를 금지하는 율법 바로 전 장에 연좌제로 처벌하는 구절이 나와 있다(…). 물론 24장에선 어디까지나 연좌제로 죽는 것만 이야기했다고 넘어갈 순 있지만, 결국 연좌제가 금지인 건지 아닌지 명확하지 못하다.

12 무신론자는 부도덕하다

어리석은 자들, 제 속으로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말들 하면서, 썩은 일 추한 일에 모두 빠져서 착한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시편 14장 1절, 공동번역성서)

어리석은 사람은 신이 없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한데다가 좋은일은 안한다고 말하고 있다(...). [11] 그렇다보니 이 구절을 토대로 무신론자를 공격하는 기독교측의 해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무신론자들도 이 구절에 대해서 자신들에 대해 공격하는 구절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이다. 외국의 무신론적 성경비판 사이트에선 이 구절에 대해서 Fool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부분까지 비판할 정도로 부정적으로 본다. 한국의 교회들도 시편 14장을 근거로 무신론자를 공격하는 말도 많다. 이 구절을 인용해 무신론을 비난하는 말이 많자 이런식으로 반박하는 영상도 올라왔다.[12]

이에대해서 이 구절이 무신론자가 비도덕하다고 단정짓는게 악인들은 모두 무신론자 즉 무신론자=모두 악인은 아니지만 악인들은 모두 무신론자라는 역으로 말하면 악인중에선 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없다고 말하는것으로서 잘못된 선악관을 심는 구절이라는 의견이 있다. 무엇보다 어리석은자=Fool의 원래 의미는 어리석은자가 아닌 도덕심이 부족한 자라는 의미였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쪽으로 보더라도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야훼(or알라)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이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가 된다. 이와 연관된 이야기로 히틀러나 스탈린이 무신론자였고 그들은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예수쟁이의 헛소리가 있는데 히틀러의 종교관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그는 기독교를 (이유가 어찌되었든)완전히 부정하지 않았고,[13] 스탈린은 그가 무신론자라 악행을 저지른게 아닌, 자신을 내세워 행한 가짜 공산주의를 근거로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애당초 모든 악인이 무신론자란것도 무신론에는 악한 경향성이 있다는 해석을 낳을 여지는 남는것이다. 반대로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선하다는 도덕적 우위를 부여하는 오류도 범할수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때 당시엔 야훼=국가체제나 다름없으므로 야훼를 부정하는것은 곧 체제를 부정하는것이 되므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악행과 동일시 되더라도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본래 종교란것이 당시에 도덕이나 법체계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것이므로 신을 부정하는것=도덕과 법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왕권신수설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으며 이에 대해서도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13장 1~2절)

로마서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조차도 무정부주의자를 디스하는 이야기가 되버리는데다가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권위는 국민이 국가에 내린것으로 보며 저 이야기의 정 반대가 된다(...). 결국 이 이야기들은 고대인들에겐 국가에 권위를 내리는 합리적 방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점에서도 무신론자나 무정부주의자들과 같은 다른 사상을 가지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이야기였고 국가체제, 도덕, 철학등이 발전해서 더이상 신의 권위가 필요 없어진 이후에는 국가체제, 도덕, 철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현재 이 구절의 의미는 야훼의 교리를 잘 따르고 법을 잘 지키자 정도가 되니 큰 문제는 없을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제정신이 박힌 기독교인들 한정이라는 게 문제지

13 호모포비아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13, 공동번역성서)
인간이 이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부끄러운 욕정에 빠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여자들은 정상적인 성행위 대신 비정상적인 것을 즐기며, 남자들 역시 여자와의 정상적인 성관계를 버리고 남자끼리 정욕의 불길을 태우면서 서로 어울려서 망측한 짓을 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그 잘못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부정과 부패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악의에 싸여서 없는 말을 지어내고, 서로 헐뜯고 하느님의 미움을 사고 난폭하고 거만하며 제 자랑만 하고 악한 일을 꾀하고 부모를 거역할 뿐더러, 분별력도, 신의도, 온정도, 자비도 없습니다. 그런 모양으로 사는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법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자기들만 그런 짓들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짓들을 행하는 남들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로마서 1장 26~32절, 공동번역성서)
사악한 자는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색을 탐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주정꾼이나, 비방하는 자나, 약탈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고린토1서 6장 9~10절, 공동번역성서)

아주 대충 요약하면 레위기에선 동성애자는 죽어야 하며 로마서에선 동성애자는 천하의 개쌍놈들이며 고린토1서에선 니들 천국 못간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요약하면 동성애자는 쳐죽여야 할 천하의 개쌍놈들이며 천국은 국물도 없다 심지어 로마서와 고린토1서는 신약 성경이라 구약은 전근대적이라 그렇다는 식의 쉴드도 칠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로마서와 고린토1서(전서)에 나오는 구절은 예수가 직접 한 말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변론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딱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동성애를 하는것도 아닐 뿐더러 그들이 동성애를 한다고 딱히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는것도 아니다. 물론 동성애를 하면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없는건 아니지만, 똑같이 이성애를 하면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결국 동성애나 이성애 같은 어떤 성적 지향성도, 그 성적 지향성을 지닌 개인의 도덕성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이 몇구절이 미친 영향은 엄청난데 이 구절들 때문에 동성애는 죄악시 되었고 그들을 박해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비기독교권에도 동성애에대한 적대의식이 퍼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만큼[14][15] 사실상 동성애자들에게 악의 근원이나 다름없고 심지어 종교를 배척하는 공산주의에서도 그런 동성애 박해 문화의 영향으로 동성애자를 박해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정말 진보적인 일부 개신교 계열의 교단(대표적으로 선진국 지역 성공회)이 아닌 이상 비교적 온건한 측의 기독교 종파들(특히 가톨릭)마저도 동성애자들의 결혼엔 반대하고 있으며 그 외엔 동성애자를 저 구절 그대로 볼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선 호모포비아 참고.

14 인신공양

완전 봉헌물이 된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대속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레위기 27장 29절, 공동번역성서)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기 22장 2절, 공동번역성서)#
그때에 입타는 주님께 서원을 하였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판관기 11장 30~31절, 공동번역성서)
입타가 미츠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딸이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그를 맞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입타에게 그 아이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었다. 자기 딸을 본 순간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판관기 11장 34~35절)

레위기 27장에선 명확히 인신공양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와 판관기(사사기) 양쪽 모두 제물을 바치는 방식이 번제물인데 이게 뭔가 하면 제물의 팔다리를 자르고 머리를 자른 후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불로 태워서 그 연기를 제물로 바치는것(...) 몰라 그거 뭐야 무서워

창세기에선 어디까지나 다행히도 미수로 그쳤지만 사사기에 대해선 진짜로 번제물로 바쳤을것이라 보는 시각이 크다. 현대의 성경들은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처녀로 살다 죽는 걸로 끝냈지만 이런 해석은 12, 13세기에나 나왔다고 한다. 이에대해서 or로 해석하냐 and로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지고 or라면 번제물로 안바쳤다는 식의 해명도 있긴 하지만 처녀로 살다 죽는게 한참 뒤에나 나온 부분이란걸 생각하면 그냥 번제물로 바쳐졌다고 보는게 편하다(...)

하지만 12, 13세기의 학자들이 고친것처럼성령이 강림하셔서 "번제물로 바쳤다"를 "처녀로 살다 (번제물이 되어) 죽다"로 고치셨군요 허허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사실을 약간 말하지 않은 것 뿐이다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야만적 신앙에서 Be폭력 비폭력 종교로 변화했고 결국 이 산제물에 대해선 한참 전부터 해결설정구멍 땜질 되었으니 기독교인들은 신학자들에게 제물로 바쳐지지 않게 성경을 조작한 것에 대해 감사를 하도록 하자그러니까 진실은폐, 언론조작,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감사하라는 소리다 할렐루야!!. 사실 신학자들에게 감사할 필요도 없다. 현재도 인신공양을 하는 짓거리를 했다간 현대 법 체제가 인신공양을 자행한 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야훼 곁으로 보내주거나 친절하게 사회로부터 유리시켜 줄 것이다.

15 노예제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당장에 숨지게 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종이 하루나 이틀만 더 살아 있어도 벌을 면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And if a man smite his servant, or his maid, with a rod, and he die under his hand; he shall be surely punished. Notwithstanding, if he continue a day or two, he shall not be punished: for he is his money (출애굽기 21장 20~21절, KJV)
If a man beats his male or female slave with a rod and the slave dies as a direct result, he must be punished, but he is not to be punished if the slave gets up after a day or two, since the slave is his property. (출애굽기 21장 20~21절, niv)

종을 때려 죽이면 형벌을 받지만, 하루나 이틀 연명하면 형벌을 면한다. 다시 말해, 죽지 않을 만큼만 패면 괜찮다는 이야기. 그리고 명백하게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노예 해방을 감행할 때, 반대파들이 "노예제는 성경이 명하는 권리이고 법"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대하여 출애굽기 21장 16절에 사람을 훔쳐서 팔거나 자기 손에 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라고 되어 있으며, 이것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팔아 넘기는 노예 상인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시말해 당시 이민족들에 비하면 구약의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수준의 사회 제도였다는 것. 기독교인들에 의하면 모세는 이런 법을 제정한 이유가 잔혹한 노예 제도가 이스라엘 시대의 노예 제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이들은 성경에서의 노예 제도는 일종의 파산법이었다고 주장한다. 고대엔 재정에 문제가 생겨 빚을 갚지 못하게 될 때에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빚을 못 갚으면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데 모세가 제정한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와 다르게 한 사람이 빚을 못갚게 되면 채권자나 다른 부자에게 가서 자신을 종으로 팔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만약 그 사람이 동의하면 그는 빚을 갚아주고 거처를 제공하고 특별한 기술을 갖도록 가령 목수,미장이로 훈련시켜 급여를 주면서 부렸고 저축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그리고 6년이 지나면 7년째 그들을 풀어주어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훈련시켜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정부가 개입을 하는 대신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종 제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성경이 이를 노예 대신 종이라고 번역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노예 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 있었던 잔학한 노예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맹점이 있으니,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출애굽기 21장 16절의 구절에 명시된 것은 같은 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들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기독교인들의 주장대로 이스라엘의 종 제도가 비교적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유대인들에게 통용되는 내집단 도덕이었지, 타민족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유대인 내수용 내집단 도덕에 불과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야훼의 명령으로 예리코의 학살 같은 사건을 저지르고 심지어 자랑까지 해 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쨋든 본 항목에 게재된 출애굽기 21장 20~21절에 의하면 종은 주인의 재산이라고 본 것은 맞다..[16] 더욱이 성경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도 노예에 대한 처우가 좋았는지는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정말로 히브리 사회에서 종이라는 개념이 파산 상태의 개인을 회생시켜 재사회화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대체 왜 본 항목의 구절에서 그 개인을 다른 개인의 소유물 내지는 재산으로 명시했는지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일언반구도 없으며, 주인이 종을 때리더라도 이틀 동안만 살다가 죽으면 주인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될 수 없다. 즉, 기독교인들은 본문에 게재된 출애굽기 21장 20~21절에 대한 직접적 해명을 회피하고 그걸 쉴드쳐보겠다고 다른 구절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17] 따라서 성경 내에서 언급되는 종이 파산자를 회생시키고 재사회화 시켜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것은 마치 이슬람교가 당시 여성의 인권을 일부 신장시켰다 해서 지금도 여성의 인권이 높은 종교가 아니듯이, 상대적으로 본다고 해서 구약이 허락하는 노예제를 반박하기는 힘들며, 성경 내부에 산재해 있는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전근대성과 시대적 한계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16 조롱의 댓가

(열왕기하 2:23~24)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베델로 올라갔다. 그가 베델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대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 2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이런 미친 놀림받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편하게 죽여드리겠습니다. 살인청부라면 언제어디서나 야훼상조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정확한 해석이 아니고 오해받은 것, 또는 그저 야훼에게 살인청부기도한 결과일 뿐이란 해석도 있다. 자세한 것은 엘리사 항목을 참조.

17 불구자 문제

우선 다음 성경 구절을 보자.

야훼께서 그를 꾸짖으셨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를 만들고 눈을 열어주거나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게 하느냐? 나 야훼가 아니더냐? (출애굽기 4:11)

야훼가 병자나 불구자를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레위기의 율법을 보면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의 후손 대대로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하느님께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소경이든지 절름발이든지 얼굴이 일그러졌든지 사지가 제대로 생기지 않았든지 하여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다리가 부러졌거나 팔이 부러진 사람, 곱추, 난쟁이, 눈에 백태 낀 자, 옴쟁이, 종기가 많이 난 사람, 고자는 성소에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중략-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그의 하느님께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레위기 21:16~21)

분명 야훼는 자신이 불구자와 병자들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래놓고선 그 불구자와 병자들더러 예배도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그러니까 나한테 잘보이지 않으면 인생꼬이게 만들겠다라는 조폭논리

신학자들은 이것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위생적인 측면에서 구별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성막과 성전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에) 장애인을 성소로 오지 못하게 하는 구절은 고대 유대 민족 특유의 선민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성경/비판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장남들을 죽이고, 개구리 비를 내리고, 로 물들이고 등등.
  2. 이 부분은 좀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게 유대인들 스스로 핏값을 자신들에게 돌리라고 한바있다.
  3. 공동번역 성서에서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려고주작(...)한 것으로, 개역개정판에는 노비로, 영문 성경에는 slaves로 나와 있다.그런다고 진실이 가려지나? 너무나도 추잡해서 할말이 없다
  4. 여성할례를 참고하라
  5. 이건 현대 가치관으로 볼 때 뿐 아니라, 당시 여성들 입장에서도 매우 억울할 노릇이다. 강간당한 것도 서러운데 강간범과 나란히 함께 돌에 맞아 죽어야 하다니! 공의롭다는 야훼의 처결이 이 모양이라니
  6. 랍비의 주례를 받을 수 없다. 물론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헌법이 최고법이니 강제성은 없어서 여성이 안 받을 수도 있고, 남성 쪽에서 안 줘도 이혼할 수 있다.
  7. 다만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지에서는 이 구절에 따라 여성들이 미사보나 머리수건을 성당에 들어갈 때 쓰기도 한다. 교리적으로 엄격히 정해진 건 아닌데, 많이들 관습적으로 쓴다.
  8. 1856~1928 미국의 목사, 성향이 복음주의자다. 그의 1907년 저서 <성경의 난제 해석>에 잘 나와 있으며, 아래의 의견도 여기서 발췌한다.
  9.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으로 번역했다.
  10. 물론 현실적으로 봤을때 야훼가 벌로서 아기를 죽인 게 아니라 아기의 죽음으로서 자기의 죄를 덮으려는 다윗의 조작일 것이므로 야훼와는 별 관련도 없을것이다. 비기독교 관점에선 그냥 왕혼자서 자기죄를 자기 자식한테 뒤집어 씌우고 자기 죄를 해결한 패륜아나 다름없는 이야기다.
  11. 하지만 도덕과 관련해서 무신론자들은 특별히 악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비종교적인 도시들이 종교적인 도시들보다 범죄율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ISIL이 차지하고 있는 라카모술지상락원인지 생각해 보라(...)
  12. 영상을 보면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이 무신론자는 애국자는 커녕 시민도 아니라는 비난을 했다는것도 알수 있다. 미국의 극단적인 기독교의 시각을 알수 있는 부분
  13. 다만 종전 후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히틀러의 종교관 단락 참조.
  14. http://timetree.zum.com/116733/116741가 근거지만 부정확할 경우 수정바람
  15. 사실 기독교말고도 반동성애적인 것은 어디든지 있다. 게다가 인류는 애초부터 이성애 중점이 많았는데 이것이 기독교때문에 동성애가 확산되자 않았다고 보기엔...
  16. 영문 kjv와 niv에도 각각 money와 property로 기재되어 있다.
  17. 심지어 어떤 기독교인은 본 항목에 게재된 출애굽기 21장 20~21절에 대한 직접적 해명을 회피하기 위하여 아예 해당 구절을 지워버리는 반달을 저지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