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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세계적으론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 된 시기. 그리고 대한민국에겐 건국 이래 최대 호황기[1] 이자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시련기.
1990년, 독일의 통일과 이듬해 발생한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사건 등,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고, 자유(자본주의) 세계가 승리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50여 년 간 지속되어 온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드디어 인류에게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오는가 했지만 그런 거 없었고, 콩고 전쟁, 걸프전, 유고 내전, 체첸 사태,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이 세계 각지에서 터졌다.
또한, 1990년대는 정보 혁명[2]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대중들에게 정보통신(IT)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이 이 시대로,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고성능 컴퓨터 등의 통신 기기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특히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은 세계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금융과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가 아주 활발히 진행되었던 시대였다. 미국은 이런 환경에서 아주 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중남미 지역은 그런거 없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보수주의가 정국을 주도했던 80년대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신진보주의(신자유주의를 가미한 진보)’의 시대였다.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대표적으로, 90년대 말 유럽은 대부분 제3의 길 성향의 사민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이른바 ‘장밋빛 유럽’.
북한에게는 드디어 반세기 가까이 집권하던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김정일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동구권 붕괴와 각종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중국과 러시아 파견 노동자를 통한 본격적인 북한 주민의 이탈이 시작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습격한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에서는 30년 간 집권한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였다.
해체된 구소련 지역에게는 그야말로 헬게이트의 시대였다. 체제전환의 진통과 외국 자본 및 재벌들의 약탈에 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EU에 편입되어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발트 3국조차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9천 달러에 육박하던 러시아권의 경제는 이 시기 바닥을 찍게 되었으며, 2000년 푸틴의 집권으로 그나마 상승세를 그리는 중. 그러나 그 사이에 세력권은 쪼그라들었고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인구는 줄었다(...)
반면 아프리카는 이 시기를 즈음해 여러 문제들이 터지면서 소말리아, 르완다,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등을 비롯해 내전이 일어나면서 지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부족전쟁이 주 원인인데 그나마 이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지만 적대 관계를 청산한 것은 아니다. 북쪽에서 진짜 무시무시한 폭풍[3]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장쩌민의 3세대 지도부 하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이 시기에 중국의 초강대국화가 예고되었다. 다만 지금만큼 커진 건 10년 정도 앞당겨진 결과.
1.1 1990년대의 대한민국 : 천국과 지옥
대한민국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세계에 위상을 떨치는 데 성공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독재 시대의 종식과 지속적인 호황, 경제 발전 등으로 인해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성수대교 붕괴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의 여러 인재(人災)로 인한 참극이 잇달아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Seoul MyeongDong 1993 서울 명동 |
이 시기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1980년대의 이념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사고를 했으며, 그러나 교복을 다시 도입하는 학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학교에선 빠따가 여전히 흔하게 돌아다녔다는 게 유머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X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대중 문화에 열광하는 뭔가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4] 그러나 X세대는 주체적인 문화를 창조하기보다는 상업문화의 소비주체로 전락하며 사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비판 역시 공존한다.[5] 이 시대의 구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방과후 학원 혹은 학습지 여러개 시키기로 '애 잡는 문화'도 1990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고[6] 사교육비 문제가 사회적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해였다.
다만 2010년대인 현재와 비교하면 1990년대의 문화 및 사회풍토는 지금에 비해 여전히 보수적인 면이 많았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전은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고 그 여세를 타서 OECD에 가입하는데 성공을 거두웠을 정도로 한국 경제가 부흥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른바 '신토불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일종의 국수주의가 지금에 비해 강했다. 한 가지 예로, 개인주의는 2015년 현재는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조금씩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서구의 퇴폐적 풍습이라는 명목으로 배척하려는 분위기가 여전히 어느정도 있었고 당대 신문기사에서도 오렌지족이 어쩌니 하는 기사들도 많이 나왔으며 과소비 타령도 많이 나오기도 했다. 정작 당시 통게를 보면 저축률이 20%를 넘는다
한마디로 IMF 전까지는 한국의 황금기. 무려 재미교포가 한국으로 일하러 오던 시대다. 명목상 경제지표는 2000년대 이후 1990년대보다 더 성장했으나 이 당시의 희망찬 사회 분위기는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1991년부터 외국인노동자들의 입국이 허용되어 매년 수십만의 외노자들이 들어오고 불법체류자들도 대량 양산되는 계기가 되는데[7] 이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노동자들의 임금 하향화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1980년대의 호황취업경기도 1990년대 초반부터는 서서히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1996년에는 비정규직법이 날치기로 통과, 1997년 외환 위기로 가속화 되어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교 입학률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대학교들도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인구 분포에서도 청소년 층이 줄고[8] 성인층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년층도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상고와 공고를 천시하고 인문계를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고, 대학 만능론[9]은 2000~2010년대 이후 사회의 독이 되고 있다.[10]
IMF 사회 영상 |
그리고 호황의 90년대 말에 이 사태가 터졌다.
대한민국의 정치 분야로 들어가자면, 보스 정치, 3김 정치로 대표되는 시절로, 정당 간 정책대결은 커녕 거물급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합집산이 비일비재했었다(...). 그럼에도 문민정부 때 하나회를 해체했고, 전임 대통령을 비자금 횡령 혐의로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등 군사독재의 잔재가 어느 정도 척결되는 등의 변화는 있었기는 했다.
1990년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굵직한 '역사적'이라 할만한 사건은 많이 없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의 반작용(부실공사, 안전의식 부재) 격으로 벌어졌던 대형사고는 참 많이 일어났다. 사실 정치적으로 변동이 없었다고 보기에도 뭐한 게, 1990년 3당 합당 시기 이후부터 PK지역이 보수권으로 넘어가는 등의 변화는 엄연히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전 시대에 비해 눈에 띄는 정치·사회적인 사건이 눈에 덜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군사정권이 종식됨으로써 제6공화국 체제 하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더 이상의 정치 체제 상의 변동이 없을 뿐 아니라 공산권의 몰락과 북한과의 군사적 격차가 현저히 커짐에 따라 안보적 위기 역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1990년대는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이 가장 크게 변화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안정된 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등의 정보기기 보급에 의한 정보기술의 발전 속에서 한국인들의 삶은 은밀히, 그러나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의 권위주의적이고 무거운 사회 분위기를 떨쳐내고 좀 더 다양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사회 분위기로 바뀌었다. 더불어 경제적 풍요와 넘쳐나는 상품들 속에서 더 소비지향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사람들의 의식 역시도 좀 더 다양성에 대해 관대해지고 소비 트렌드에 민감해졌다.
1990년대는 1980년대까지의 대한민국과 단절하면서, 이후 시대인 밀레니엄 이후 시대의 모든 사회적 요소들의 맹아를 품고 있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예능, 아이돌, 한류, IT산업, 온라인 게임, 개인용 PC, 한국산 블록버스터, 핵가족, 휴대폰, 오타쿠, 왕따, 엽기, 패러디, 해외여행 등등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무수한 문화 요소들이 모두 이 시대에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시대라고 보아도 되겠다. 2000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사실상 1990년대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2010년대에 30~40대에 접어든 세대는 2010년대의 10대~20대 문화에 잘 적응하는데 비해 50대 이상 세대에서는 적응을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운동권[11], 절대적 빈곤 등 이전 시대의 산물들이 확실하게 몰락해 버렸으며, UN에 가입하고 경제적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지위가 바뀌는 등 국제적 위상도 올라갔다.
금융위기 사태 당시의 분위기 역시 오늘날 20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더 이상 한국이 무한히 성장하기만 하는 국가가 아닐 것이라는 자각, 무절제한 소비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기업과 국가의 경제가 제대로된 운용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 등이다.[12]
1.2 1990년대의 미국 : 20's 시즌 2
1990년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되고, 이듬 해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연쇄적인 붕괴가 시작되면서 말 그대로, 미국이 세계의 유일 초 강대국으로 명실 상부하게 부상했다. 그와 동시에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호황을 누린 시기이도 하며 이는 아래의 다우 존스 지수 그래프를 통해 그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대의 미국은 종종,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 직후인 1920년대와 비견되기도 하며, 두 시대는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1920년대는 미국이 세계의 유일의 초 강대국이 아니었고, 패권 국가들 중의 하나로 올라서게 된 시기였지만, 1990년대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약 50여년 간 지루하게 대결해 왔던 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를 지켜보며 미국이 1극의 국가로 등장하게되었으므로 대개 1920년대 보다 1990년대를 더 화려하게 보는 경향[13]이 짙다.
1990년 이후, 중국이 G2로 떠오르기 전까지 약 20년 간은 세계의 정세를 미국이 자유자재로 통제 가능했던 시기였으며, 이라크 전쟁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여전히 1극강[14]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1.3 1990년대의 일본 : 잃어버린 10년
1990 - Yokohama Walkabout 横浜散歩 (901208) |
파일:일본주식.png |
(1988년~2010년)일본의 주식 시장 흐름 |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더이상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파일:일본부동산.gif |
(1980년~2010년)일본의 주택 시세 흐름 |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폭락은 매우 유명한 거품붕괴의 선례가 되었다.
1990년, 일본은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년간의 장기불황에 접어든다. 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고 평균 성장률은 0%에 달했다.
이웃 나라 이야기 2부 필패신화 |
해당 시기를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한다. 이 불황은 2010년대까지도 지속되어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다.
1.경기부양 | → | 2.부동산 거품 양산 | → | 3.거품 붕괴 | → | 4.경기 침체/1번 경기부양으로 무한 반복 |
이후 일부 경제학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주식 폭락을 예로 들면서 경기 부양으로 인한 거품양산과 그로 인한 거품붕괴, 침체의 사이클에 대하여 설파하게 된다.[15]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16] | 1990년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 ||||||||||
미국 전체 명목 GDP | 5,979 | 6,174 | 6,539 | 6,878 | 7,308 | 7,664 | 8,100 | 8,608 | 9,089 | 9,660 |
일본 전체 명목 GDP | 3,103 | 3,536 | 3,852 | 4,414 | 4,850 | 5,333 | 4,706 | 4,324 | 3,914 | 4,432 |
독일 전체 명목 GDP | 1,547 | 1,815 | 2,068 | 2,008 | 2,152 | 2,525 | 2,437 | 2,159 | 2,181 | 2,133 |
프랑스 전체 명목 GDP | 1,278 | 1,279 | 1,411 | 1,331 | 1,404 | 1,610 | 1,614 | 1,462 | 1,512 | 1,502 |
영국 전체 명목 GDP | 1,024 | 1,069 | 1,112 | 998 | 1,080 | 1,181 | 1,243 | 1,384 | 1,477 | 1,518 |
중국 전체 명목 GDP | 404 | 424 | 499 | 641 | 582 | 756 | 892 | 985 | 1,045 | 1,100 |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 284 | 332 | 356 | 391 | 458 | 559 | 603 | 560 | 376 | 486 |
일본은 성장 동력이 꺾여 오히려 경제규모가 줄어든 연도(1996년, 1997년, 1998년)도 있었던 시기다. 그래도 거시경제면으로 바라보면 경제의 규모는 여전히 세계2위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점차 고착화되었으며 미약하지만 차이가 벌어졌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조금씩 일본을 추격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든다.
2 문화
2.1 음악
1990's Billboard Hot 100 #1's (1990-1999) |
90년대는 역사상 가장 앨범시장 규모가 거대하여 앨범이 잘 팔리던 시절인 음악의 황금기다. 이 시기엔 지금과 같은 1회용 인스턴트 댄스음악과 달리 수 많은 세기의 명곡들이 탄생되었다.
90년대를 평정했던 음악은 흑인음악이다. 마이클 잭슨이 80년대에 음악계에서 흑인의 장벽을 깨부순 이후 90년대엔 그 동안 마이너 음악이었던 힙합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으며 수 많은 R&B가수들이 탄생해 대중음악과 결합하였다. 그 전까지는 대중음악과 거리가 멀었던 R&B음악들이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의 3대디바와 보이즈 투 맨, 마이클 볼튼등의 남성가수들에 의해서 팝과 일체화 되었고 본격적인 음악의 절정기를 만들어내었다. 힙합은 'Golden Era'라 불리는 시대를 맞아 2pac과 노토리어스 B.I.G.으로 대표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힙합 문화가 한국에도 수입되어서 한국 힙합씬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록 음악의 경우, 록 음악의 헤게모니가 하드 록에서 출발한 메탈 계열에서 펑크 록에서 출발한 얼터너티브 록로 완전히 돌아선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변화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얼터너티브 록 쪽에서 너바나의 <Nevermind>, 펄 잼의 <Ten> 등의 명반이 등장하였으며, 스매싱 펌킨스와 같은 그룹도 9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90년대 초반까지는 메탈의 기세도 여전히 등등해서 건즈 앤 로지스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메탈리카도 Metallica를 발매하며 대중적 인기를 드높였다. 그러나 90년대 초가 지나면서 메탈의 인기는 식어갔으며, 그나마 판테라 정도가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오히려 노르웨이, 스웨덴등의 북유럽에서는 Darkthrone, Mayhem 같은 밴드의 블랙 메탈과 멜로딕 데스 메탈필두로 헤비 메탈이 얼터니티브와 관계없이 기세등등했다.
90년대 중반에 오면 80년대 끝무렵에 더 스미스, 스톤 로지스등을 통해 비롯된 브릿팝 음악이 본격적으로 부상한다.스웨이드를 시작으로 블러, 오아시스 등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으며, 라디오헤드는 90년대 중후반 <The Bends>와 <OK Computer>라는 명반을 내놓음으로써 90년대 록 음악을 집대성하고 'Radioheadism'이라는 음악 풍조를 탄생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콜드플레이와 Muse, 엘보우, 킨과 같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이 시기에 매우 발전했다. 펫 샵 보이즈 류의 신스팝이나 테크노 등에 머무르던 일렉트로니카는 이 무렵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되게 된다.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등의 메가 히트 밴드들이 등장하였으며. 에이펙스 트윈은 비단 일렉트로니카만이 아닌 대중 문화 전반에 큰 흔적을 남겼다.
K-POP : 1990 ~ 1997 | K-POP : 1998 ~ 1999 |
한국은 이 시기에 대중음악의 양적 전성기를 맞았다. 음반의 100만 장 판매 시대가 열렸고, 200만 장이 넘게 팔리는 앨범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자주 볼 수 있었다. 장르가 다양화되었던 시기로 보이지만 음반판매량에 있어서는 댄스와 발라드음악이 절대적으로 그 비중을 차지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힙합문화의 도입을 제외한다면 장르적 다양성은 차라리 1980년대가 나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전람회, 015B와 같이 대학생들이 가요계에 데뷔하는 경우가 있었으며[17]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등의 아티스트가 등장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 기존 가요와 다른 파격적 시도들을 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듀스는 1993년에 데뷔하여 인기를 끌었고 대표적 곡인 '여름안에서' '우리는' 등을 내놓고 인기를 누려가고 있었으나 1995년 11월 20일 김성재의 사망으로 이후 듀스는 중단되었다. 이현도가 결국 마지막으로 Deux Forever라는 곡을 끝으로 듀스는 해체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데뷔하였고,'난 알아요', '하여가'등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했지만 1994년에 '교실이데아'라는 곡을 거꾸로 돌리니 '피가 모자라'가 들린다며 여론이 시끄러웠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창작의 고통'을 이유로 1996년에 은퇴선언을 한다. 그 이후부터는 H.O.T를 필두로 한 아이돌 음악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다만, 초창기였던만큼 일본 음악산업을 데드 카피하는 악습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직면했었다. 지금은 한류다 뭐다 해서 아이돌 음악의 위상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때는 현재와 같은 아이돌 문화가 걸음마를 떼던 단계였던지라 성숙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J-songs BIBLE 90's (Japanese Single Sales Top 200 1990~1994 | J-songs BIBLE 90's (Japanese Single Sales Ranking 1995~1999 |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다양한 장르들의 음악이 여럿 나왔으며, 음반 판매량이 최고를 기록하던 시기였다. 일본이 장기적 경제 불황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는 부분. 물론 장기적 경기 침체가 오히려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 소비를 늘렸다는 분석도 여럿 있다. Mr. Children, B'z, Spitz와 같은 록밴드들이나 시부야계 아티스트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8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X Japan을 통해 비주얼계 록음악도 성행했었다.
또한 에이벡스의 Super Eurobeat 시리즈가 컴필레이션 앨범의 딜레마와 한계를 딛고 오리콘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아무로 나미에와 V6가 유로비트 장르로 90년대 중후반을 휩쓰는 등 유로비트도 약진했었다.[18]
1995년. 홍대 일대의 클럽 드럭을 중심으로 펑크 록 위주의 인디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96년 11월, 기념비적인 앨범인 Our Nation Vol.1이 발매되고 '스트리트펑크쇼'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2.2 게임
게임계에서는 90년대 초중반엔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등의 16비트 콘솔 게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콘솔 전쟁이 80년대보다 상당히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16비트 콘솔 싸움은 결과적으로 슈퍼패미컴이 승리하였지만 80년대에 패미컴이 온갖 게임 시장을 장악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치열한 싸움이였다.
90년대 초중반때만 해도 후반때와는 달리 80년대 전반의 게임들과 같은 선상에 있거나 약간 상위호환에 있는 편이였다. 실제로 91년에 등장한 희대의 명작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등장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을 제외하면 게임의 역사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발달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때 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를 같은 세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것이 딱히 문제점인 것도 아니며 이때부터 게임이 점차 더 대중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80년대 전반 게임들의 장점들과 스타일을 지니면서 더 대중적이고 더 세련된 모습을 보이게 되어 90년대만의 특징을 부여하기도 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기 시작한 5세대 콘솔 시대로, 이 시기에 비디오 게임의 비약적인 그래픽 상승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PC에서는 둠 시리즈가 그래픽 혁명, 미스트(게임)시리즈가 CDROM의 대용량 매체를 적극 활용한 인터랙티브 혁명을 이끌어 냈고, 콘솔쪽에서는 32비트 게임기들이 보다 제대로 된 폴리곤 그래픽 지원과 세가 새턴은 2D가 훌륭한 대신 타 32비트 기종보다 3D가 구리긴 했지만 일단은 CDROM 매체를 이용한 풀모션 비디오[19] 활용으로 3D 게임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중후반은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PC-FX등의 게임기들이 경합하며 만들어낸 2D 게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세가와 소니의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치열한 무한경쟁이 수없이 많은 2D 수작 게임들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90년대말 플레이스테이션 2와 드림캐스트가 등장하며 보다 완연한 3D게임 시대가 열렸으나 그 전까지만해도 폴리곤 기술은 텍스쳐의 해상도도 낮고 해서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으며 1999년까지는 2D의 우세가 지속된다. 그나마 새턴과 플스의 초반 싸움에서 새턴이 플스하고 호각을 뜬 이유도 새턴이 2D쪽에서는 확실히 우위를 점했기 때문. 그 게임 이후로 새턴이 밀릴때에도 2D 격투게임/슈팅게임의 이식률이 좋은 새턴은 이쪽 장르 매니아들에게 여전히 수요가 높았었다. 2000년대 초반, 6세대 콘솔의 등장을 거치면서 3D 구현기술이 발전해 2002년쯤에는 완전한 3D의 우세가 굳혀졌다.
휴대용 게임의 경우는 게임보이가 90년대를 주름잡았고 전세계를 평정했다. 게임보이는 아직 흑백 8비트 그래픽으로 작동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선 성능이 매우 좋았던 혁명적인 휴대용 게임기였다.
그리고 RTS 계열의 게임들이 전성기를 향해 가던 시대였다. 워크래프트 시리즈, 스타크래프트, RTS의 아버지 듄 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임진록[20], 쥬라기 원시전, 다크 콜로니 등 전설급의 명작들이 쏟아진 10년 이기도하다.
3 기타
그 유명한 공전절후의 수집품인 띠부띠부씰이 나왔던 시기였다.
2010년대 들어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시리즈 등 90년대를 추억팔이하는 영상물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맞은 70년대, 80년대 초반 출생들이 주요한 소비세력으로 진입한다는 의미. 또한 오버뮤직씬에서는 UV, 인디뮤직씬에서는 90년대 K-POP을 컨셉으로 한 기린(뮤지션)[21]이라는 아티스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서울의 이태원과 홍대 등을 시작으로 밤과 음악사이라는 90년대 가요를 튜닝해주는 주점형 클럽 체인점도 이런 맥락에서 히트치고 있다. 설립 자체는 2005년이지만 근년의 90년대 복고풍 붐에 이어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카더라.
묘하게 세기말적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였는데 90년대 초에는 다미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휴거) 소동을 일으켰다. 90년대 말로 갈수록 노스트라다무스 떡밥과 Y2K 문제 등이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한국에서도 IMF 시대라는 경제적 원인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 시기 젊은이들의 패션을 다룬 뉴스 영상이 갑자기 2016년에 재발굴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문서 참고.
4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 해당 시대 작품은 제외.
- 건축학 개론
- 그놈 목소리
- 돼지의 왕[22]
- 무한도전 - 개그학개론(이나영) 특집,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리즈
- 범죄와의 전쟁
- 사생결단
- 시월애
- 아마가미
-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 에덴의 동쪽(드라마) 후반기
- 엔젤아이즈
- 월플라워
-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 GTA 산 안드레아스
- 1999, 면회
- 타짜
- 핫라인 마이애미 2
- 7번방의 선물
- 프렌즈
- 히트맨(2016)
- 해리포터 시리즈
- 회색도시2
5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들을 적을 것.
- 개그콘서트
- 금융실명제
- 대전액션게임[23]
- 대학수학능력시험
- 대한민국 게임회사들(넥슨, 엔씨소프트 등)
- 대한민국 아이돌
- 도시형버스의 냉방화[24]와 몬드리안 도색
- 동인 음악, 동인 게임
- 드림콘서트
- 뮤직뱅크
- 블랙 데이
- 빼빼로데이
- 양판소
- 온라인 게임
- 월드 와이드 웹
- 윈도우 : 정확히는 한글 윈도우를 말하며, 최초의 윈도우인 윈도우 1.0은 198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윈도우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90년 5월 2.1버전이 한글화되면서부터다.
- 음성채팅
- 인터넷
- 직행좌석버스(대표적인 예로 분당에서 강남을 거쳐 서울역까지 가는 1005-1번)
- 짬짜면
- 초등학교 : 1996년 국민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
- 초월이식
- 편의점
- 할인마트
- 화이트데이
- PC방 : 2000년대의 상징이지만 이 시대에 시작되었다.
- 케이블방송(MBN, YTN, 엠넷, 투니버스 등)
- SBS
- EBS
- 출구조사 : 사실 영미권이나 프랑스 등지에선 이미 70년대에 대중화가 되었지만, 선거법 문제 때문에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다.
- HTS
- 인터넷 검열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ATi, NVIDIA로 대표되는 3D가속지원 그래픽카드
- DVD
6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경양식
- 대한뉴스
- 오디오
- 운동권 : 1996년 연세대 사태로 사실상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 학력고사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행으로 폐지되었다.
- 국한문혼용체
- LP : CD가 등장하면서 망했다. 하지만 LD, 배타맥스, VHS, 카세트 테이프, VCD 등이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단종된것과 달리 이 쪽은 쇠퇴한 뒤에도 한시적으로 생산중이다.
- VHS
- VCD
7 이 시대에 나온 말들
※ 현재도 계속 쓰이고 있는 말들을 적을 것.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
※ 이 시대에만 반짝했던 것들을 적을 것.
- 1세대 리듬 게임 - DDR, 비트매니아, 파라파라같은 리듬게임의 태동기.
- KOF - 스트리트 파이터가 1980년대 후반을 상징한다면, 1990년대는 KOF가 있다. 철권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는 2000년대로 보는 것이 맞다.
- 3D 그래픽 산업의 확대
- 휴대용 CD 플레이어
- PC통신
- CRT
- PCS[28]
- 가요톱10(손범수 MC 시절) : 물론, 가요톱10은 1980년대에도 인기가 있었지만. 1990년대도 손범수 MC의 활약 덕분에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이후 1998년 2월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 가족오락관
- 게임북(장석준 작)
- 남성용 줄무늬 팬티
- 농구대잔치
- 드래곤볼 - 물론, 1980년대에도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다.
- 다마고치 - 사실상 모든 초중고등학생들은 다 갖고 있었다고 봐도 된다.
- 대전 엑스포
- 미니카
- 줄로 감는 팽이
- 삐삐 (무선호출기)
- 사쿠라 대전 - 1990년대 미소녀 게임 전성시대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 서태지와 아이들 - 1990년대를 상징하는 청소년들의 아이콘이자 대중가요계의 끝판왕.
- 스티브 유
- 어린이 영화
- 디즈니 만화동산
- 옛날 어린이들은
- 요요
- 시티폰
- 우정의 무대
- 줄리아나 도쿄
- 중국제 테트리스 게임기 / 열쇠고리 테트리스 게임기
- 플로피디스크[29]
- 700 서비스
- 문구점 TCG
- IMF
- Y2K 문제
- 쫄티
- 트윈픽스
- 순풍 산부인과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슬레이어즈
- 슬램덩크
- 슈퍼 마리오 시리즈 - 1980년대의 작품이지만, 1990년대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 모래시계
- 판관 포청천
- 용자 시리즈
- 음성사서함
- 메가드라이브
- 슈퍼패미컴
- 게임보이
- 동급생, 프린세스 메이커를 비롯한 미연시 게임.
- 따조 - 1995년 치토스에서 끼워파는 부록이었다. 띠부띠부씰이 나오기 이전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메가히트급의 인기가 있었던 수집품이었다.
- 띠부띠부씰 - 1997년의 포켓몬스터 무인편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스티커. 1990년대의 학생들(특히 초등학생)에게는 그야말로 "따조? 그거 먹는 건가요?" 수준으로 이 수집품에 미쳤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인 파장도 어마어마했다.
- 몰래카메라 -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가 진행하던 코너.
- 500원짜리 해적판 만화책
- 포켓몬스터 - 1990년대 후반기를 상징하는 전설의 애니메이션.
- 토이 스토리 시리즈 - 3D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
- 마카레나 - 짧은 시간에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댄스.
- 무스
- 신창원 티셔츠
- 브릿지 (블리치-탈색)
- 텔레토비 - 1997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유아교육 프로그램.
- 파라파라 - 다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 귀찌 [30]
-
815콜라 - MD 플레이어
8.2 이 시대의 유행어
※ 이 시대에만 쓰인 말들을 적을 것.
- 따봉
- 레게
- 밤새지 마란말야 (김국진의 현대전자 컴퓨터 CF의 유행어)
- 사랑해요 밀키스[31]
- 아, 응애에요 (김흥국이 했던 멘트)
- 에네르기파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명대사)
- 오렌지족
- 빠순이 - 오빠부대라는 말은 이미 조용필이 가요계를 평정하던 70~80년대에도 있었다.
- 롱다리 ↔ 숏다리
-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 아이~조아! 이제~ 그만! : 텔레토비의 유행어.
- 잘자 내꿈꿔 - 조성모, 이정현의 통신사 CF의 명대사
- 캡[32], 캡숑
- 펩시맨!
- 개작두(용작두)를 대령하라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명대사)
-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유행어)
- 저. 이번에 내려요. (캔커피 레쓰비의 유행어)
9 90년대생
1990년부터 199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2000년생을 제외하면 20세기를 살아본 가장 어린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최후의 아날로그세대이자 최초의 디지털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이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LP판이 명맥을 잇고 있었다.[33] 또 이들이 어렸을때 본격적으로 가정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으로는 기존의 세대보다 부유할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게 이들이 어렸을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래서 이 세대는 타 세대에 비해 양극화가 심한 편이다. 잘된 집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매우 행복하게 기억하는 한편 어려웠던 집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매우 불행하게 기억한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들의 부모는 386세대로 어릴때 IMF를 겪긴 했지만 타 세대에 비해 큰 타격을 안받은 편이고 지상파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자랐다. 그 애니들의 상당수가 로봇 만화였고 이는 이 세대 남자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즈음 인터넷이 대중화 되기 시작해 크레이지 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등을 하고 놀았고 각종 사이트들에 출몰해서 개초딩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오프라인에선 미니카나 탑블레이드 등을 갖고 놀았다. 디지몬 카드나 유희왕 카드를 뭣도 모르고 열심히 모은 세대이다. 중고등학교 무렵엔 버즈, SG 워너비 노래를 열창하고 발라드 시대가 끝을 내릴 무렵 때마침 나온 빅뱅,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을 보면서 열광했던 세대이자 졸업할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며 3포세대라는 단어가 나와 사회진출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98년~99년생 제외하고 대부분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쓴맛을 보고 있는 중..
10 1990년대에 들어가는 해
1990년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1980년대 말부터 이어졌던 경제적으로 최고의 시기.
- ↑ 과거 선사 시대의 농업 혁명, 18세기의 산업 혁명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3대 혁명 중 하나에 해당된다. 그 첨병은 바로 인터넷.
- ↑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없을 듯.
- ↑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대중 문화는 본래 취향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러한 과정이 수용자의 개성을 확정짓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 당시까지는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 범위가 그리 많지 않아서, 개성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획일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 ↑ 이 시기의 문화 소비에 대해 일명 '명품세대'라는 용어도 있다.
- ↑ 다만 애를 잡는 문화는 훨씬 전부터 있었다. 1960년대를 예를 들자면 명문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국민학교 6학년생들을 혹독하게 교육시킨다거나 하는 것도 있었고, 이후에 명문고등학교로 내보낼려는 풍토가 조성되자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도입되기도 했다. 단지 당시에는 남녀차별적인 정서도 있었고 해서 비교적 덜할 뿐이었다.
- ↑ 1990년대부터 기업주들이 싼 임금의 유혹으로 인한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외노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 ↑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 19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1.5명대까지 줄어들면서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출생아수가 60만 명대까지 떨어졌고, 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이 한창 학창생황를 보냈을 때가 1990년대~2000년대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 참조. 물론 당대에는 남아선호사상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농어촌지역이나 탄광촌에서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서 정책이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하 생략.
- ↑ '사람은 무조건 대학을 가야한다', '대학 안 가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라는 용어.
- ↑ 1990년대~2000년대 당시 중학교에서는 인문계를 중시하고 상고와 공고를 천시했으며, 인문계고교에서는 무조건 대학 입학만 중시하고 학생의 진로와 생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교육을 북한처럼 세뇌교육 형식을 통해 교육했다(한국판 북한 학교). 학부모들도 역시 이에 격렬하게 동조하였고 당연하게도 당대에도 많은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이후에도 대학을 가야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기 쉽다는 메리트때문에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대엔... - ↑ 1996년 연세대 사태로 운동권은 헤드샷을 맞아 사실상 대학 내에서 소수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 엄밀히 말하자면 1970년대 오일쇼크때도 있었기는 했지만 너무 간격이 멀고(...) 1990년대 초반에도 3저호황이 끝나고 해서 중소기업들의 파산률이 크게 늘어나고 무역수지도 적자로 돌아섰으며 물가도 급상승하는 테크를 밟았지만 경제성장률이 6% 아래로 꺾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 ↑ 이 무렵 헐리웃에선 에어 포스 원, 아마겟돈, 진주만 등 미국 중심 사관의 영화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냉전에서 승리한 당시 미국민들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 2015년 현재까지도 미국의 군사력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의 군사력 총합 사이의 격차은 여전히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다.
- ↑ 어설픈 경기 부양과 인구 감소로 집값 폭락한 일본
- ↑ (1990~199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
- ↑ 확실히 이건 MBC 대학가요제의 공이 컸다. (그런데 015B는 전신이었던 무한궤도부터 생각하자면 1988년 데뷔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로 대학생이 가수로 데뷔하는 건 대학가요제가 만들어진 시기인 197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단지 1970년대 후반의 대학생들이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있었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대학생 가수들은 등장부터 이전 선배들과는 다른 프로 뮤지션으로서 데뷔했다는 차이가 있다.
- ↑ 그리고 이는,2000년 5월에 발매되었던 슈퍼 유로비트 110집이 7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과 오리콘차트 3주간 1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되는 씨앗이 되었다.
- ↑ 게임외적인 부분의 CG/실사동영상을 재생하는 용도가 메인이었지만 몇몇 게임은 이러한 풀모션 비디오를 배경에 일부 박아넣는 식의 연출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7에서 이런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 ↑ 국산 RTS게임
- ↑ 후자의 경우, 정확히는 90년대 초중반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같은 뉴 잭스윙, 힙합, 브레이크비트성 댄스 뮤직이다.
- ↑ 주인공인 황경민, 정종석이 15년 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김철이 존재했을 당시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한 시기로, 김철이 "부모? 야, 내가 국민학교 때 아빠라는 인간은 사업 망하자마자 도망쳐버렸어. 우리 버리고..."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를 봤을 때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1995년까지 사용했다.
- ↑ 물론 오락실은 2000년대 시망했지만.
- ↑ 1995년 4월부터 출고되는 입석형 버스에는 냉·난방장치가 설치되서 나온다.
- ↑ 당시 전뇌회선상 유머의 주 매개체였다. 인터넷 보급은 90년대 말이 되어야 보급이 되었다.
- ↑ 이외에도 PC통신으로 시작된 유머 시리즈들은 많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에 언급해본다.
- ↑ 오늘날의 포털 사이트 카페 서비스같은 개념이다.
- ↑ 90년대 말을 풍미했던 당시 휴대전화통신 시스템.
- ↑ 다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주도권을 CD에게 내줘야만 했다.
- ↑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끼워 거는 식의 악세사리.
- ↑ 90년대 롯데칠성의 탄산음료 밀키스 광고 때 영화배우 주윤발이 말했던 대사. 이 대사 덕분에 그 당시 밀키스 매출이 급상승했다.
- ↑ 캡틴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어원은 일진문화에 두고있다는게 씁슬하다.
그래서 근성모는 그레이트 캡짱이라는 만화를 내놓았나보다? - ↑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사하라 라는 밴드는 90년대에 1집과 2집이 나왔는데 1집은 lp판인 1반면 2집은 cd로 나오는 점으로 과도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