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ENTERPRISE
1 개요
感動의 世界
기아자동차에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생산한 FR 대형 플래그쉽 세단으로 프로젝트명은 T3이다. 원래 초기에 기획된 모델명은 마젠티스 3600이었고 1997년 1월 17일 출시를 목표로 1996년 말 부터 라디오 티저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는데, 어쩐지 이 명칭은 사장되고[1] 출시일도 미뤄지며 1997년 3월 18일 지금의 명칭인 엔터프라이즈로 최종 확정되어 3월 27일 출시되었다.
2 상세
1995년 11월 당시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 마쓰다의 제의에 따라 센티아라는 차명으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인 OEM 방식으로 생산하여 일본에 수출만을 먼저 개시하고 이후 현대자동차의 다이너스티에 대항하기 위해 대한민국 취향에 맞게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후드탑 앰블럼과 범퍼 등을 좀더 웅장하고 권위적인 스타일로 손질해 내서 드디어 1997년 3월 27일 엔터프라이즈라는 차명으로 국내 판매를 개시하였다. 전장이 무려 5,020mm[2]. 전륜구동이었던 다이너스티나 아카디아와 달리, 쌍용 체어맨과 함께 후륜구동을 채택한 국산 최고급 세단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3]한국을 대표한다면서 배경은 영국이다
엔진은 V형 6기통 2.5리터 및 3.0리터, 3.6리터 엔진의 3종이 존재. 1997년 출시 당시 국내 최대 승용차 배기량[4]을 기록했던 3.6리터 엔진은 기아 포텐샤부터 쓰던 마쓰다의 3리터급 V6 JE-ZE 엔진의 배기량을 기아자동차에서 자체적으로 확대시킨 것으로, 3.6리터라는 숫자는 당시 경쟁모델의 배기량이 3.5리터였던 점을 다분히 의식한 숫자였다. 전장이 5,010mm라는것도 그렇고 숫자 장난이 좀 많다 2.5리터 엔진 또한 마쓰다의 J5-DE엔진으로 엔터프라이즈 출시 이후 페이스리프트 된 뉴 포텐샤에 장착되어 쓰였다. 변속기는 4단 자동으로 최고 모델인 3.6리터 엔진의 출력은 230마력, 여기에 최고속도 역시 230km/h이다.
차량 특성은 앞뒤로 긴 전형적인 세단. 특히나 엔진후드나 트렁크나 길고 평평한 외관은 딱 봐도 기아 포텐샤의 후계 차량임을 짐작케 하는데, 이는 포텐샤의 원형이 된 마쓰다 루체 5세대의 후속 차량이 마쓰다 센티아였기에 당연지사.
1998년 출시된 그랜저 XG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카에 주로 장착되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하여 도어에 유리가이드가 없고, 차체에 유리고무가 부착되어서 유리창을 내리고 문을 열었을때는 아주 독특한 느낌을 줘서 그나마 올드한 느낌의 차량에 멋을 부여해 주었다. ADS라는 전자제어식 현가 장치를 장착했으며[5] INTELLIGENT CONTROL이라는 ECU를 포인트로 밀어서 광고했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뒷좌석 안마기능 또한 엔터프라이즈의 빼놓을수 없는 자랑거리. 후륜구동답게 주행성과 코너링에서는 합격점을 줄만했지만 하체 부품, 특히 후륜 부싱류가 내구성이 떨어졌었고 처음으로 만들어 본 조절식 댐퍼(일명 쇼바)의 극도로 짧은 수명은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IMF로 망해 버린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는 성공의 상징으로 선택하는 최고급 차량의 상품가치를 심하게 훼손시켰다. 후속차량급인 오피러스는 EF의 플랫폼을 사용한 현대의 전륜구동 차량이었고, 순수 기아차의 계보는 이 차량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뒤에, 정주영 회장이 시승해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차를 어떻게 이렇게나 못 팔았냐며...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에쿠스나 체어맨처럼 B필러를 늘린 리무진 모델이 존재한다. 10대 한정 생산이었으나, 실제로는 6대를 제작하여 판매 했었다는듯. 이 중 한대가 정주영 회장의 2호차였다고 한다. 또한 인테리어 트림 종류 중 하나로 나전칠기가 고려된 적이 있었으나, 진품을 쓰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모조품을 쓰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결국은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2001년 건설교통부에 의해 엔진출력 과대 표기가 정정되었을 때, 이 차의 3리터 엔진의 출력이 194마력에서 160마력으로 자그마치 34마력이나 내려갔다.[6] 이는 동일 차종의 2.5리터 엔진[7]의 157마력(175마력에서 정정)과 고작 3마력밖에 차이나지 않는 수치. 다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국산차들이 그로스 출력[8]을 네트 출력보다 더 많이 사용해서 이러한 문제가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배기가스 규제에 걸려 3.6리터 엔진은 더 이상 장착할 수 없게 되었다.
기아자동차 승용 모델의 최고봉이었으나 같은 해 기아자동차의 부도로 판매량이 반토막났고 판매량이 반토막이 나서 부도가 나는게 보통인데... 여기다 1999년 현대 에쿠스가 출시되면서 사실상 최대 배기량 및 전장 기록을 에쿠스에게 넘겨주고 말았으며, 2003년까지 근근히 양산되다가 결국 기아 오피러스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의 후광을 업고 있던 쌍용 체어맨 역시 강력한 경쟁차였다. 뭣좀 해볼려고 하면 안되던 기아의 징크스.
엔터프라이즈의 후속 모델이라 할 만한 차량은 15년 후에 출시된 K9이다. 오피러스와 K7은 전륜구동이기 때문.
3 여담
이 차의 이름과 동일한 농구단이 한국 프로농구단 중 하나인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전신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농구단이었다. 2001년에 모회사가 현대모비스로 바뀌며 개명되었다.
4 둘러보기
150px 기아자동차 대형 승용차 | |||
단종 차량 | 시판 차량 | ||
604 | 엔터프라이즈 | 오피러스 | K9 |
기아자동차의 차량 | ||||
구분 | 승용, SUV, RV, 승합, 경상용차 | 버스 | 트럭 | 군용차 |
1960년대 | K-360, T-600, T-1500, T-2000 | |||
1970년대 | 124, 브리사, 132, 604 | B버스, AB버스, AM버스 | 타이탄, 복서, KB트럭 | K-111, K-511, K-711 |
1980년대 | 프라이드, 캐피탈, 콩코드, 봉고(승합모델), 베스타, AC버스, 토픽 | 콤비, 코스모스 | 봉고(트럭모델), 세레스, 트레이드, 라이노, AM트럭 | K-311, K-811 |
1990년대 | 비스토, 아벨라, 리오, 세피아, 슈마, 크레도스, 포텐샤, 엔터프라이즈, 엘란, 스포티지, 록스타, 레토나, 카렌스, 카스타, 카니발, 프레지오, 타우너 | 그랜버드 | 그랜토 | K-131 |
2000년대 | 모닝, 스펙트라, 쎄라토, 씨드, 포르테, 옵티마, 로체, 앙투라지 (VQ SEDONA), K7, 오피러스, 쏘울, 쏘렌토, 모하비, 벤가 | 파맥스 | K-911 | |
2010년대 | 레이, K2, K3, K4, K5, K9, KX3, KX5, KX7, 니로, 스팅어 | K-151, 중형전술차 | ||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 ↑ 사장된 명칭인 '마젠티스'는 추후 기아 옵티마의 수출명으로 재활용하게 된다.
- ↑ 마쓰다 센티아와 비교시 전장이 100mm 정도 길었으나, 휠베이스는 2,850mm로 동일. 범퍼의 사이즈를 키우는 식으로 차량 길이를 늘려서 '5미터가 넘는 최고급 대형 세단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려 시도했다.
- ↑ 이 광고의 문구는 마젠티스 3600으로 불리던 1996년 말 제작된 라디오 티저광고의 문구와 명칭만 바꾸면 동일하다.
- ↑ 이는 1999년에 에쿠스가 V8 4.5리터 엔진으로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 ↑ 엔트리 모델에선 빠져 있다.
- ↑ 참고로 이 엔진은 포텐샤의 엔진을 개량해서 쓴 거다.
- ↑ 마쓰다의 J5 엔진. 초기 카니발의 V6엔진과는 다르다. 기아가 로버사의 KV6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한 적이 있으며 오직 1세대 카니발에만 올라갔다.
- ↑ 엔진에다가 흡배기 매니폴드만 장착하고 출력을 측정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