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1제국

(나폴레옹 제국에서 넘어옴)
프랑스의 역사
Histoire de France
~18세기19세기20세기~
고대 ~ 중세앙시앵 레짐프랑스 근대 정부 체제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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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프랑크 왕국서프랑크프랑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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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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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국
Empire Français
국기국장
1804년 ~ 1815년
국가출발의 노래
위치중앙유럽서유럽
남유럽의 대부분 [1]
수도파리
정치체제절대군주제
국가원수황제
언어프랑스어
종교가톨릭
주요사건1804년 건국
1796년 ~ 1815년 나폴레옹 전쟁
1815년 멸망
통화프랑
성립 이전프랑스 제1공화국
멸망 이후부르봉 왕정복고

1 개요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2]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건국한 대제국이다. 프랑스 제국이라고도 하지만 나폴레옹 한 사람이 하드캐리해서 생긴 제국이니만큼 통상 나폴레옹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나폴레옹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교황을 쌩까고 스스로 황제관을 쓰고 즉위한 1804년에 시작되어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 1814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3]

2 역사

2.1 탄생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세운 눈부신 공적을 바탕으로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 기존의 정부를 전복시킨뒤 스스로 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마렝고 전투아미앵 조약을 통해 적대국과의 평화 협정 체결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1802년 자신의 종신 통령 즉위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당연히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4]로 종신 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프랑스 제1공화국의 상원이 나폴레옹에게 황제 자리를 수여하는 안건을 비준하면서 1804년 12월 나폴레옹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제1제국의 탄생이다.

2.2 전성기

거칠것없는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위세에, 바이에른 왕국, 바덴 공국, 뷔르템베르크 공국과 같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주요 국가들조차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 라인 동맹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외교 상황은 프랑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재집권한 영국의 수상 윌리엄 피트오스트리아러시아에게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유럽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자'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

이에 나폴레옹은 군사적으로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통해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참교육 박살내는 한편으로, 외교적으로는 유럽 곳곳에 자신들의 피붙이와 믿을만한 부하 장수들을 낙하산 왕으로 부임시켜 이 국가들을 위성국가로 만들고자 시도했다.[5] 한편 나폴레옹은 독일 내 가장 강성국 중 하나인 프로이센에게 하노버 영토를 떼어주면서 반 프랑스 동맹에 가입하는 것을 막으려고도 시도한다. 그렇지만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한 반감은 독일 내에서 점차 확산되어갔고, 1806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6]을 맺고 라인 동맹에 가입한 바이에른을 침공하는데...망했어요. 프로이센 군은 개전 후 불과 4개월만에 수도 베를린까지 털려버린 것을 물론이거니와 틸지트 강화를 통해 막대한 배상금 및 군비 제한 조치를 당하고 만다.

또한 틸지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러시아와 동맹을 체결한다. 동맹의 조건은 프랑스가 러시아의 오스만 제국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러시아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륙봉쇄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7] 이로써 유럽 대륙의 강자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모두 영향권에 넣어둔 프랑스의 국력은 절정인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탈리아에는 괴뢰 국가이탈리아 왕국을 세운다.

2.3 쇠퇴기

그렇지만 절정기라고 보이던 바로 그 순간에 몰락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이 정복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빌미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발발한다. 현지의 게릴라 저항 세력과 이들을 후원하는 영국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 군은 고전을 계속하고, 이렇게 프랑스 군의 주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목이 잡히자 겉으로는 나폴레옹에게 평정당한 듯 했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중/동부 유럽에서 다시 반 프랑스의 움직임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삽시간에 관광태우며 아직까지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한편, 후계자를 얻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마리 루이즈를 아내이자 인질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이미 프랑스의 인적 동원 능력은[8][9]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이번엔 러시아가 스웨덴과 연합해서 나폴레옹에게 반항을 시작한다. 이에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역사에 길이 남을 대 참패였다.

러시아에서의 참패로 다시 고무된 프로이센이 반 프랑스 동맹에 재가담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공주인 마리 루이즈의 안위를 걱정해서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이지 대놓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 한편 전쟁에 지친 프랑스 내부에서도 나폴레옹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미 러시아 원정이 한창이던 1812년 12월에 파리에서 쿠데타 기도가 있었으며, 징집에 반항하는 움직임도 거세졌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먼치킨 급인 자신의 군사적 능력으로 어떻게 어떻게 군대를 재건하고 대 프랑스 동맹군들을 몰아붙였지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참패로 망했어요. 1814년이 되자 이제 나폴레옹은 이전과는 정반대로 동맹군의 프랑스 침략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고, 결국 파리가 함락당하고 만다. 이후 나폴레옹은 1814년 4월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2.4 멸망

그렇게 나폴레옹을 대체할 인물로 루이 16세의 동생이 루이 18세로 즉위했지만, 모든 것을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그의 움직임은 국민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고, 대 프랑스 동맹국 측도 나폴레옹이라는 타도할 대상이 사라지자 빈 회의에서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고 신나게 쌈박질만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이듬해인 1815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다시 정권을 장악하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프로이센 동맹군에게 패하고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백일천하. 그리고 이로써 프랑스 제1제국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3 영향

겨우 10여 년 간 존재했던 국가지만, 세계사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름만 제국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를 복속시킨 유럽의 패자였고, 전세계적 흐름을 아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역사의 흐름으로 권력에 오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제국을 세운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그 덕에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잠재적으론 유지 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쑤셔놓은 전 유럽에는 나폴레옹 법전이 퍼지고 이 법전은 현대 법체계의 기본적 밑받침이 된다.[10] 코르시카 출신의 군인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잔불꽃과 묘하게 얽혀 전 유럽에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 그리고 프로이센은 제일 심하게 털려서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되어 독일 통일의 발판을 간접적으로 다지고, 직접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수백 개의 독일 공국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주권을 행사하며 치고 박다가 수십 개로 통일되면서 독일 제국 통일이 수월해졌다.
  • 프랑스 국내에는 보나파르트즘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효과를 그대로 받은 나폴레옹의 조카가 황제가 된다. 그러나 능력은 삼촌에 비해 영 좋지 않았으므로[11] 보나파르트즘의 종말을 담당한다.
  1. 프랑스본토, 독일의 85%이상, 이탈리아 전역, 스페인, 스위스, 폴란드, (지도엔 표기 되어 있지 않지만)스웨덴 등등,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도 러시아 원정 전까지는 동맹국이라 부르고 실상은 속국이나 다름 없었다. 프랑크 왕국 전성기의 영토에다가 에스파냐를 더하면, 얼추 프랑스 제1제국과 맞아떨어진다.
  2. 그당시 영국,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을 거의다 먹었다.
  3. 물론 1815년의 백일천하가 공식적인 프랑스 제1제국의 최후이기는 하다.
  4. 찬성이 3백만표에 반대가 8000표였다고 한다(...)
  5.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천년 전통의 신성 로마 제국제위가 코르시카 촌놈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을 폐지시켜버렸다(...)
  6. 이것이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다.
  7. 다만 이 시기에 이미 영국은 한창 산업혁명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적으로 영국보다는 유럽측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고 한다.(...)
  8. 아무리 별명이 유럽의 중국이라지만, 전 유럽을 상대로 10년 넘게 싸우는데 병력이 안부족하면 그게 기적이다.
  9. 사회를 구성하는 건장한 청년들을 군사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가 생산력이 감소한다. 그걸 막기위해 나잇대가 안맞는 인원을 동원할 경우 병력의 질의 저하를 가져오고... 평화가 최고야
  10.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격퇴해서 나폴레옹의 법전이 보급될 리 없었고, 후에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개혁에 몰두하지 않아 결국 소련이 탄생하며 몰락한다. 유럽 버전 식민지 근대화론
  11. 외교와 군사업무를 삼촌보다 못 해서 그렇지, 내치만 놓고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