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미국인

1 개요

독일 혈통미국인을 말한다. 과거 독일의 영토가 중구난방이었던 탓에 현재는 폴란드체코, 러시아에 해당되는 지역 출신의 독일계 미국인들도 있다. 보통 스위스계 미국인이나 오스트리아계 미국인과는 구분한다.

숫자는 50,764,352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을 가능성이 높다.[1] 그 다음은 영국계 미국인이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물론 통설은 미국을 영국인 이주민들의 후손들로 보며 호주뉴질랜드, 캐나다와 같다. 독일계는 참고로 호주에서도 꽤 수가 많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57,947,374명이었는데, 많이 줄었다.

2 역사

상당히 초기부터 이민을 온 사람들이다. 독일의 혼란을 피해서 온 경우도 있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오기도 했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에도 상당한 숫자의 독일계들이 정착을 한 탓에 독일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독립선언서 등 각종 제문서를 독일어로도 번역해달라고 말한 게 와전되어 미국의 공용어가 독일어가 될 뻔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2]

장로교침례교, 감리교 출신이 많은 영국계 이민자들과 달리 루터교 출신이 많긴 하지만 일단 신교 출신에다가 민족적으로 유사한 탓에 독일계들은 미국에 빠르게 동화됐다.[3] 그탓에 별도의 커뮤니티가 미약하다.[4]

그러나 19세기말부터 독일이 미국의 가상적국, 적성국가가 되면서 미국의 반독감정이 강해지자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독일계들이 성의 독일어식 철자를 영어식 철자로 바꾸는 일이 많았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같은 경우에 본래 Eisenhauer였으나 Eisenhower로 바꾸었다.

1930년대에는 나치를 피해 유대계 독일인들이 이주를 하기도 했다. 반면 나치당 집권 초기만 해도 '미국-독일 분트'같은 미국내 독일인들이 주축이 된 파시즘 단체도 있었다. 1945년 이후로 주독미군이 독일에 주둔하면서 미군과 독일인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오기도 했고 이 과정에 독일 흑인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5]

2.1 볼가 독일인 / 흑해 독일인

1762년 러시아 제국 예카테리나 2세는 유럽으로 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 광활한 자국의 인구밀도도 높히고 가장 주요하게는 중/서유럽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농업 생산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 때 가장 많이 이주한 사람들이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지역의 빈농들 이었다. 이때 이주 장려 정책에 의해 이민 온 독일인들은 볼가 강 유역-지금의 볼고그라드 인근-과 흑해 연안 유크라이나 스텝지역에 많이 정착했는데, 이들을 볼가 독일인(볼가 게르만)(Поволжские немцы) , 흑해 독일인이라고 부른다.[6] 18세기 내내 꾸준히 이민이 이루어져 1897년 기준으로 볼가강 하류 지역에 사는 독일인의 수는 179만 명에 달했다.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예카테니라 여제는 칙령을 통해서 그들에게 여러가지 파격적인 특혜를 주게 되는데, 자신들의 언어, 문화, 자치공동체를 보장해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2가지...종교의 자유징집(병역) 면제 (이민 1세대는 물론 그 후손들까지) 라는 조건의 보장이다.

이주민들의 고향과 종교는 다양했는데, 독일 남부 바이에른 출신들은 가톨릭, 그외 다른 지방 출신들은 루터파 개신교를 믿거나, 메노이트라고 불리우는 재세례파의 일파도 많았다. 이 메노이트들은 미국의 아미쉬 교도들과 뿌리가 비슷한 교파인데 비폭력 평화주의 (즉, 징집 거부)가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후일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러시아로의 대이주 이후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한동안 잘 살던 이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러시아의 정책이 점점 자신들에 대한 특권을 줄여나가는 것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징집 면제 특권의 페지....이주 당시의 약속이 파기된 것도 열받는 마당에 위에 언급한 메노이트파 독일 이주민들은 (마치 지금 한국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으로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에 많은 볼가 독일인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무렵 다시 러시아를 떠나게 된다. 그들이 다시 떠나기로 한 곳은 다름아닌 신대륙. 이주민들은 러시아에서 떠나게 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종교문제였기 때문에 새로운 이주 대상국을 택하는 것도 주로 종교에 따라 이루어 지게 된다. 남부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가톨릭 이민자들은 주로 아르헨티나브라질로 갔고...

루터파나 메노이트 등 신교 계통 이민자 들은 북미로 떠났다. 북미로 간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아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한지/건조형 농업에 맞는 미국 대평원 북부쪽에 정착하게 되는데, 제일 많이 간 곳이 노스 다코타, 사우스 다코타이고, 그 다음이 네브래스카캔사스 등... 또한 주변 미네소타미시건 등에도 많이 정착했다. ​캐나다로 간 사람들은 알버타주, 매니토바주, 서스캐처원 등에 착하고...[7][8]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주한 볼가 게르만은 독일계 미국인 중에서는 늦게 유입된 집단이라 하겠다.

3 대표적인 인물

  1. 영국계 미국인 항목 참고
  2. 공식적으로 미국은 공용어가 없다. 단 미군에서는 3인 이상이 모일 경우 영어로 대화하도록 하고 있다.
  3. 앵글로색슨 자체가 게르만족 종파중 하나이며 이들은 독일 작센 출신이다.
  4. 오늘날 독일계 미국인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영어식 이름을 쓰고 있다.
  5. 2014년 월드컵에서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이었던 저메인 존스와 존 브룩스, 티머시 챈들러가 독일과 미국의 복수국적이었다.
  6. 당시 서유럽의 빈농들은 신대륙으로 많이 가던 시절, 러시아로 이주한 독일인 들은 미지의 신대륙 서부개척보다는 상대적으로 만만한 리스크가 적은 러시아 이민을 택한 것
  7. 이들 미국으로 이주한 볼가 독일인들은 독일계 미국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미국으로 이민가서도 '볼가 독일인' 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다.
  8. 북미로 이주한 볼가 독일인 중에 메노이트 파들은 또다시 시련을 겪기도 했는데, 역시 징집문제였다.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사회적 차별과 여러 문제들이 발생해서 징집거부로 감옥에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9.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영국 피가 섞여 있다.
  10.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피가 섞여 있다.
  11. 독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피가 섞여 있다.
  12. 엄마 쪽으로는 독일, 스위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의 피를 받았고 아빠 쪽으로는 케냐의 루오족 피를 받았다.
  13. 독일, 폴란드 피가 섞여 있다.
  14. 독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피가 섞여 있다.
  15. 독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피가 섞여 있다.
  16. 독일, 스위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피가 섞여 있다.
  17. 독일, 스웨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피가 섞여 있다.
  18. 다만 클린스만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경우. 취소선 드립대로면 거스 히딩크는 네덜란드계 한국인이 되고 울리 슈틸리케는 독일계 한국인이 된다.
  19. 독일, 중국 피가 섞여 있다.
  20. 이소룡의 엄마가 독일+중국 혼혈이다. 아들인 이소룡도 엄마를 많이 닮아서 그런지 가끔 서양인 같은 인상을 준다. 장두형, 좁은 얼굴, 날카로운 얼굴형, 쌍꺼풀, 꽤 높은 콧대 등 서양인의 특징이 많다.
  21. 독일, 프랑스, 헝가리 피가 섞여 있다.
  22. 독일, 잉글랜드, 폴란드, 헝가리 피가 섞여 있다.
  23. 독일, 아일랜드, 잉글랜드, 포르투갈 피가 섞여 있다.
  24.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피가 섞여 있다.
  25. 독일, 아일랜드, 잉글랜드 피가 섞여 있다.
  26. 독일, 아일랜드, 잉글랜드 피가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