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

(북핵에서 넘어옴)
북한의 핵실험
1차
(2006년 10월 9일)
2차
(2009년 5월 25일)
3차
(2013년 2월 12일)
4차
(2016년 1월 6일)
5차
(2016년 9월 9일)
북한의 핵 전력과 대한민국의 대응
북한북한의 핵개발북한의
SLBM 개발
4차
핵실험
5차
핵실험
광명성
4호 발사
북극성 1호
(KN-11)
대한
민국
THAAD세종대왕급
(SM-3)
원자력
잠수함
배치 논란SM-3
도입 논란
대한민국의 핵무장

1 개요

The prospects for the talks making any progress in resolving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are slimmer than before. North Korea won't give up its nuclear weapons, and we can't ignore that basic point.

협상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진전이 있으리라는 가망은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그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 중국 분석가 장량위

북한의 핵개발은 무려 1955년, 즉 휴전협정이후 1950년대부터 소련에 핵물리학도들 유학시키는걸 시작으로 꾸준히 핵무기 보유를 위해 노력해왔음을 보여준다. 관련정보

북한알파이자 오메가떡밥 중 하나. 1990년대부터 나온 떡밥이며 북핵문제로 불린다. 북한 핵종 황제의 사실상 유일한 업적(?)

1997년에 망명한 황장엽은 회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미 북한 내부에서 핵무기 보유는 상식화되어 있고 지난 85년 소련 측이 핵개발을 문제 삼자 김일성 부자가 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북한의 핵 개발계획이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고 폭로하여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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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드립 덕에 국제사회에서 '그냥 소련/중국의 끄나풀 듣보잡 공산 국가' 이던 북한은 졸지에 90년대부터 대표적인 '불량국가' 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게 된다. 특히 2대 핵종 김정일의 치세(1994~2011)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핵이기 때문에 그의 미친 존재감은 극단으로 치솟았다.

한국군 vs 북한군의 변수 중 하나. 물론 사회주의 강성 대국뽕을 잘못 맞으면 아메리슘 총알 같은 SF라고 봐주기도 뭐한 해괴한 것이 나온다.

통일, 혹은 북한붕괴 이후 꽤나 골칫거리가 되어버릴 문제점 중 하나. 냉전시대에 서로 대립하던 미국소련의 핵실험장은 땅이라도 넓었지, 북한은 땅도 좁은 주제에 꾸준한 핵실험(풍계리)과 플루토늄(영변) 재처리로 방사성 물질을 차곡차곡 누적중이다(...)

실제 북한은 핵실험을 한 국가중 가장 좁은 국토 면적과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인도 파키스탄은 거의 무인 지대에 가까운 사막지역이나 태평양의 무인도에서 핵실험을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들 나라들처럼 마음대로 출력을 높여 핵실험을 할 공간자체가 없다.

반경 50km 안에 길주(10만) 김책(20만) 100km안에 청진(50만) 혜산(20만) 단천(20만) 도시외 몇개의 10만명급 읍단위 행정구역이 있고 200km안쪽에는 중국의 연길시(40만) 훈춘(20만)등의 도시가 있다.

지금까지의 5차례의 핵실험만해도 200km 밖의 중국 연길 훈춘까지 흔들리는 판인데 지금보다 출력을 2~3배정도 높인다거나 최소 10배이상 출력을 내는 수소폭탄실험을 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반경 50km안쪽의 북한 도시들은 지진으로 주택 공장 댐 저수지 광산이 붕괴하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게 뻔하다.

2 배경

80년대말에 북한은 전면적인 체제 위기와 마주하게 된다. 동구권이 대거 자본주의 국가로 체제전환 되고 설상가상으로 소련이 붕괴되어 원조로 버티던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남한보다 우위에 선 재래식 무기가 구식화되어 도저히 남한에 당할 수 없었다. 여기에 슈퍼 파워로 떠오른 미국이 자신들을 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것이 흔히 거론 되는 북한의 핵개발 배경이다.

그러나 소련의 핵개발중국의 핵개발 과정에서 핵기술 대한 접근 시도 등 북한의 핵개발 기도 자체는 남한도 핵개발에 열을 올리던 70년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공산권 패망에 따른 위기감으로 핵개발을 처음 시도하게 된 이유로서는 어폐가 있다. 위에서 서술한 내용들은 굳이 따지자면 동구권 붕괴 이후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집착하게 된 경위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동구권 붕괴 이전부터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찌감치 핵무장을 서둘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 모택동과 소련에 굉장히 많이 징징댔다는 기록[1]

다만 애시당초 2000년대 이후 완화된 남북긴장, 6자회담에서의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2] 2008년의 갑작스러운 핵개발 재개와 2013년의 미국의 불가침조약 제의 거부 등 일련의 정황들은 생존본능으로서의 핵개발이라는 상술된 내용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전략 핵무기는 기본적으로 모두 선공용이 아니라 보복용의 방어적 무기이며 북한의 핵무기도 이러한 방어적 대량보복 병기 범주에 들어간다.

가장 타당한 주장은 남한에 대한 선제 공격용으로 핵폭탄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고 이라크 리비아나 우크라이나처럼 핵을 포기한 국가들의 최후를 목격한 북한이 침략하면 대량보복을 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여 침략기도를 단념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무리를 해가며면서도 미국 본토까지 핵폭탄을 실어나를 수 있는 ICBM이나 잠수함 SLBM 에 집착하는 것이다. 물론 남한의 선제공격에대한 보복수단도 된다. 단지 남한에 대한 삥뜯기 위협용이라면 서울까지 100km 정도의 단거리 탄도탄이나 240mm 방사포 정도면 충분하다,

2.1 왜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북핵은 1990년대 초반, 일러도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인식이 많지만 북한은 1950년대 초반부터 핵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는 일제의 패망을 결정지은 무기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경험도 한몫했지만, 더 큰 원인은 한국전쟁 이후로 미국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북한은 전시에 국토 전체가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었으며 대동강과 원산 일대의 곡창지대가 궤멸적 타격을 입으면서 미군의 폭격에 대해 거의 히스테리 수준으로 두려워했는데,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당시 미군의 전폭기가 북한 상공을 비행하자 배짱을 부리던 김일성이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사과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전쟁 직후 한국에 수백기의 전술핵을 배치해놓았는데 이게 북한에게는 극악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인 핵능력을 완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것은 그들의 유일무이한 생존전략이었기에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굴하지 않았다. 1950년대부터 2016년 현재까지 북한은 쉬지 않고 핵무기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고, 그들의 인식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거대 패권세력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끝까지 핵 주권을 붙들어 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예나 지금이나 제일 북핵의 제일 목표는 체제 유지용이다. 핵무기를 가짐으로서 내외에 핵보유국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정권 유지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핵무기를 폐기하면 엄청난 혜택을 주겠다는 한미의 반응이 핵무기가 무서워서 하는 것이라 선전하고, 핵을 가졌다는 것이 3세계 국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정치적인 목적은 이렇고, 군사적인 목적으로는 이른바 대칭전력[3] 경쟁에서는 남한에 완벽하게 뒤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육해공군 통틀어 재래식 전력에서는 이제 남한에 상대가 안된다는것을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한 GDP 격차는 60배 이상이며, 인구는 2배이상 차이난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게 남한 지역의 무지막지한 인구 감소 정도인데 이게 북한에 도움이 될 정도로 실현가능성이 있는지도 미지수일 뿐더러 그렇다 해도 DMZ 돌파에나 도움이 되지 그 다음 경기도 북부에 깔린 시가지를 돌파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4] 재래식 전력이나 동원 가능한 병력, 전쟁지속능력(GDP) 등에서 상대가 안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할 방법은 오직 비대칭전력[5]뿐이다.

군사적으로 북한 따위의 핵무기는 사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이 핵무기 없이 벙커버스터만 북한에 몇십발 날려도 북한 수뇌부는 죽은 목숨이다.북한의 예산 규모를 감안하면 잘해봐야 20~30여 발의 핵미사일을 한국군이나 주한미군및 주일미군을 상대로 사용하는 정도일 텐데[6] 한-미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감안하면 최상의 시나리오가 서울에 한 발 정도 떨어뜨리고 그 다음 삼지창민병대 수백 발을 얻어맞고 북한 전체가 소위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기술이 진보한다고 쳐도 한국이나 주한 주일 미군 상대로나 유효하지, 미국 본토를 상대로는 다를 게 없다. 무엇보다 현재로선 북한의 경제 수준으로는 10~20kt급 수준의 핵미사일 20~30여 발이 한계인데 그 정도는 미국의 MD를 뚫을 수 없고 미국 본토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7]

그러나 정치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는 다이아몬드나 다름없다. 북한 따위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동북아의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다른 3세계 독재국가들도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볼까 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기술자가 미국이 모르는 사이 반미국가로 넘어간다면 미국 입장에서 그것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CIA 고위층 몇 명의 목이 날아가는 데는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아무리 MD가 있다고 해도, 미국 본토에 핵을 떨어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가와 없는가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반하는 몇 안되는 국가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내게는 별 해가 없지만 주변국들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들에게 핵 개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이 3국은 경제적,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핵을 독자개발 할 수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남아 국가들(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그 북한도 핵을 만드는데, 북한보다 강력한 국력을 갖고 있는 이 나라들이 설마 못만들까?)도 핵무기를 제조 및 보유하려 용을 쓸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 정세도 100배는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며, 최근 미국을 목표로 경제개발을 하고 있는 중국과 푸틴의 집권 후 국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

한국과 북한 사이에 한국전쟁이 재발하고 미국과 일본, 러시아와 중국이 참전해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해도, 재래식 병기만을 사용한다면 한반도나 만주 정도가 전쟁터가 되는 걸로 끝이고 그나마도 몇 년 안에 재건이 가능하지만, 핵전쟁이 벌어지면 다른 지역은 몰라도 최소한 북한은 생지옥 확정이다.

3 북한의 핵개발 역사

3.1 초기의 북핵 문제 (1979~2002)

북한의 핵개발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핵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한 시기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로 추정된다.[8]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은 핵물리학자들을 동원하여 핵무기에 대해 연구해왔지만[9] 실용화에 따르는 근본적인 문제는 위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1962년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가 세워지고, 1년후 소련의 협력을 받아 2MW급 연구용 소형 원자로가 건설된다. 1974년 김일성은 연설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북한은 1979년 자체 기술로 5MW급 실험용 원자로를 아무도 모르게 착공하기 시작했고, 1986년 1월 완공을 한 뒤 본격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선 1985년 12월 4기의 440MW급 소련형 VVER경수로 원전 도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의 요구조건인 NPT에 가입한다. 1992년 IAEA가 NPT 회원국인 북한을 핵사찰한 결과,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과 불일치 하자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거부하고 NPT를 일방적으로 탈퇴해버린다.

2003년 9월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KGB 간부 출신 크레스틴스키의 말을 빌어 1990년 전후 KGB가 북한이 핵무기개발체제를 완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했다고 한다. 크레스틴스키는 KGB가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근거로 1990년당시 크류티코프 KGB 의장이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등에 제출한 303K라는 보고서에 "북한 최초의 원자력 폭발장치 개발이 영변에서 완료됐다"는 사실이 명기돼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1987년 영변에 핵무기 전용이 가능한 플루토늄 추출시설을 완공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1990년 4월 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평안북도 영변에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시설이 완성 직전의 단계에 있다"면서, 그 증거로 이 일대 시설들을 찍은 한 장의 위성촬영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수십여차례 고폭실험을 해왔으며 2006년 1차 핵실험 이전에도 핵실험 대신 고폭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성능을 확인했다.#

1993년 3월 북한은 핵확산 금지 조약(NPT)를 탈퇴하기로 통보했다.. 이후 클린턴 행정부의 폭격 가능성까지 치닫으며 정국은 종전 이후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지만 북한은 1994년 6월 독재자킬러지미 카터의 설득을 통해 핵사찰을 수용했으며 한달 뒤인 7월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으로 하려고 했으나 간발의 차로 김일성이 보름만에 사망하면서 불발, 북미 기본합의서 조인수준으로 끝났다.

김정일 정권 들어 핵 협상은 경색된 측면은 있지만 꾸준히 진행되어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 지원을 약속한다(남한 10억불=1조원 부담).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로켓 발사(실패)와 같은 사건은 있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2월에는 경수로 준비가 시작되었으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김정일이 회담했고, 남북정상회담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빌 클린턴은 앨 고어 당선을 통한 민주당 행정부의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임기 말 직접 현직 대통령으로 방북하여 북한과 평화협상을 마무리지으려고 했다. 지금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

이 때 경수로 지원이 지지부진하게 지연된 것이 초창기 핵 협상에서 북미간의 신뢰를 깨트린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98년도부터 경수로 건설 지연시 핵개발을 재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경수로 공사는 2002년 8월 7일[10]이 되어서야 첫 삽을 떴으며, 이 시기는 이미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면서 북미관계가 냉각된 때였다. 미국은 북한의 비밀 핵개발 의혹을 제기했고 경수로 공사는 몇달 안가 중단되고 만다.

이 시기가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던 절호의 찬스였다. 시기적으로도 NPT 탈퇴 전이었고 아직 북핵도 초기 단계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만들고 다시 만드는 건 쉽지만 한 번 만드는 건 쉽지 않으니...[11][12]

3.2 1차 핵실험, 그리고 6자회담 (2003 ~ 2007)

결국 북한은 2003년 1월 10일, 보란 듯이 핵확산 금지 조약(NPT)을 탈퇴했다. 8월 27일 최초로 6자회담이 열리지만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여하간 북한은 2004년 2차(2월), 3차(6월) 6자회담[13]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진행했고 기어이 2005년 7월과 9월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위해 다자간 대화의 틀로 북핵 문제를 해결" 이란 결론을 도출한 "9.19 선언"[14] 을 발표하게 된다.

이 직후에 한가지 변수가 발생하는데, 미국이 9.19선언 다음 날 김정일 통치자금이 묶여 있는 방코델타아시아 계좌를 동결시켜 버린 것이다! 2천5백만달러라는 통치자금이 묶여버리자 북한은 즉각 반발했고, 금융제제를 해결해야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어렵게 나온 9.19 선언의 이행은 처음부터 꼬여버렸다.

결국 05년 11월 시작된 5차 회담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도 북한은 2006년 7월의 대포동 2호 발사(실패)와 10월의 핵실험에 성공하고야 만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북한에서 그 동안 실행되었던 경제개혁조치가 잇다라 중단되고 친개혁적 관료(박봉주 내각)들의 자리가 대거 강경파로 교체된다.

2006년 10월 9일 벌인 핵 폭발 실험에 의하면 핵의 위력은 0.5kT( 중국에 사전 통보한 예상 핵실험 규모는 4kt이었다.)이다. [15]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가 15kT이다. 아주 단순히 계산해봐도 위력이 30배 이하. 서울대 캠퍼스 하나도 다 못 날린다고 한다.[16]

1차 핵실험에서 얻으려했던 4kt의 실험 결과를 뒤에서 보겠지만 2009년 5월 2차 실험 때 드디어 '3~4 kT 규모' 로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위력이 궁금하다면 원자폭탄의 위력을 참고할 것.

이렇게 발등의 불이 떨어지자 6자 회담은 급 진전된다(2007년 임기 말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역시 순조롭게 2차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여 성과를 내려던 노무현 정부의 합작품의 맥락도 있었을 것이다). 2007년 5차 6자회담의 성과로 '2.13 합의(외교통상부 천영우 차관보 with 힐 차관보/김계관, 우다웨이)' 가 이루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3.3 '2.13 합의'와 짧은 해빙 (2007 ~ 2008)

1.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가동 중단+봉인한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실사를 수용한다.

1.5개국은 북한에게 60일 이내 중유 5만톤부터 시작하는 에너지 지원을 한다.
1.모든 6개국은 상호 신뢰 증진, 동북아의 평화 지속을 위한 공동 노력을 하기 위한 긍정적인 발걸음을 내디딜 것에 동의한다. 직적 당사국은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협상한다.
1.6개국은 다음에 관한 5개의 실무그룹을 만든다. 한반도 비핵화,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경제와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와 안전에 관한 기구.

이 떡밥은 이미 1994년부터 있던 문제였다. 북한은 이것을 북미 수교, 북일 수교(=체제 안전 보장=김씨 정권 안전 보장)로 받아들였지만 미일은 그렇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모양. 아전인수[17] 사실 그거보다 더 낮은 단계의 평화라도 이룩되었다면 다행이었을 것이지만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은 게 문제긴 했다.

그렇게 07년 7월 영변 핵시설을 가동 중단이 발표되었으며 9월 1일엔 '핵시설 연내 불능화, 전면 신고 합의' 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다. 11월엔 불능화 조치가 착수되었으며 2008년엔 정권조차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바뀌면서 6월 북한은 핵 신고서를 제출했고 미국은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착수했다.

바로 4개월 전인 2월에는 뉴욕 필하모닉평양에서 북한 국가 '애국가(한국의 애국가와 다름)' 와 미국 국가the Star spangled banner를 연주하는 신선한 충격도 있었다.## 6월 27일 금요일, 북한은 영변 원자력 연구소의 상징인 냉각탑을 폭파했고 외국 언론인과 외교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당시 경수로 폭파는 국가에 생중계까진 아니더라도 폭파 20분뒤에 뉴스속보로 바로 보여줄정도로 상당히 핵심적인 이야기였다.

이렇게 핵개발이 종결되었다... 면 이 항목이 현재 진행형일 리 없다.

3.4 재경색과 2차 핵실험, 김정일의 사망 (2008 ~ 2012)

그 해 8월 26일, 북한은 사전협약과 달리 테러지원국 해제가 연기되자 연기가 10.3 합의(제2차 남북정상회담) 위반이라며 '대응조치' 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중단과 원상복구 고려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9월 19일엔 북 외무성 대변인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중" 이란 내용을 발표했다. 식겁한 미국은 10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로 발표했지만 북한은 멈추지 않았다. 그 해 12월의 6자 회담은 검증의정서 채택 실패로 끝났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07년 비핵화 합의에 따른 남한의 북한 핵연료봉 구입을 국제 시세보다 두 배라는 이유로 중단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 방송이 북한내에서 사라지고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었다.

해가 바뀐 2009년 4월, 북한은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훈련 참여는 곧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영변 핵시설 폐연료봉 재처리작업 착수" 를 주장한 북한은 눈엣가시였던[18]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2차 핵실험을 날려버렸다. 이 때가 5월 25일로 사망 2일 뒤이니 그야말로 북한이 준비한 희대의 고인드립. 물론 이런 분위기는 잠시 동안 뒤이어 사망한 김대중 대통령 국장에 따른 조문외교와 클린턴의 방북으로 완화되는 듯 싶었으나 북한은 결국 9월 자체 우라늄 농축 시험 성공을 선포해버렸다.

이후 11월 10일엔 이에 맞물려 대청해전(대청도 교전)이, 다음해 2010년 3월 26일엔 천안함 피격사건이 터졌으며 5월엔 자체 핵융합 성공을 주장했고, 수백개의 원심분리기와 2012년 목표로 영변 지역에 100MW 규모의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11월 드러났다. 같은 달인 11월 23일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이 우라늄이 왜 중요하냐면 미국이나 보수세력들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이를 원조받은 돈으로 개발했다고 하는 반면 북한은 부시가 먼저 있지도 않은 우라늄 핵개발을 빌미로 제네바 합의(이건 플루토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를 깼고 그래서 봉인된 플루토늄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했었다. 미국 측의 설명으로는 2001년 부시 행정부 시절 방북해서 핵 협상을 하던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당신들, 우라늄으로 핵개발하고 있지?' 라고 주장하자 북측에서 그래새꺄 라고 했다는 건데 북측은 전혀 그런 바 없다고 주장했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 11일 전인 2010년 11월 12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공개했고 이는 당초의 부인이 완전한 기만이었다는 해석의 매우 강력한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1년 12월 북한 핵개발의 최고 책임자인 김정일이 사망했다.

그래서 많은사람들이 혹시나 상황이 나아질거란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헛된희망이라는걸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은 더욱 진척되게 된다. 김정일 사망과 남한의 '통일세'추진 시도나 경제지원 중단 등의 압력으로 인한 체제위기의 불안감에서 고농축 우라늄탄 개발이 급진전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나온다.

3.5 광명성 3호 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 (2012 ~ 2016)

2012년 12월 12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3호로켓 은하 3호에 실려 발사와 위성의 지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나로호와 한달 반 가량 앞선 발사. 42일 만인 2013년 1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장거리 로켓발사를 규탄하는 대북제제 결의안을 채택시켰고, 다음날 북한은 바로 3차 핵실험 감행을 예고했다. 히로시마에 투하 된 리틀 보이 수준에 준하는 규모라고 한다. 안보리1월 29일 다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경제·군사적 조치를 규정한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추가로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의 첫 제재는 7장에 따라 행동하고 41장(경제제제)에 따라 조치하는 것인데 7장을 원용한다는 것은 한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 이로서 한반도는 다시 한 번 긴장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3년 1월, 은하 로켓 발사 후 후속타로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스멀스멀 뉴스지상에 오르내리더니, 급기야 2월 12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설날이 끝난 직후 핵실험을 강행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진도 4.9의 인공지진이 감지되었고. CNN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에 급보로 보도되었다, 실험 직후 공중파 3사는 뉴스특보를 방영했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각각 안전보장비상대책위원회를 긴급 구성했으며 UN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맞서고 나섰다.

이에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워치콘을 2단계로 격상했으며, 휴전선 부근엔 무장병력들이 긴장하며 대치중이다. 미국오바마 대통령은 우려를 나타내며 상황을 주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19]

왜 강행했는가에 대한 데에는 여러 관점이 있는데, 첫째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김정은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키우고 결집시키며 불안감을 해소시키려는 정치적 목적, 둘째는 이제 막 새 정부가 들어선, 또는 들어서게 될 주변국의 긴장을 유발하기 위한 경고의 목적. 남한 정부에겐 지원에 관한 무언의 압력과 대미관계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때도 정치적 목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전쟁을 일으키는건 북한도 원하는게 아니다. 또한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확고히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시도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는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 군사훈련 대항해 2009년이래 최초로 정전협정 백지화 운운이 재등장했다! 이게 마지막 수정이 되지 않기를 #

현재 정국에 대한 남한 내 여야(보수/진보)간 입장차는 다음과 같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 보수 : 아오 할 만큼 했네요. 북한이 테러지정국 해제를 해준다는데도 생난리를 치고 대청해전, 천안함, 연평도를 낸거 아뇨. 이 정권이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다고 저 미친놈들을 막냐 이겁니다. 북핵문제는 당신들 때 시작한 거고 그동안 제대로 된 해결 하나도 못한 거 아냐.
  • 진보 : PSI 같은 뻘짓거리에 왜 동참하냐고(것도 비밀리로)[20]... 이 정권(이명박 정권) 들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영향력도 못 쓰고 이 난리 나는 거 아뇨.[21] 정상 회담도 못해내고 임기 5년 중에 핵실험 2번 맞고 퇴임한 치들이 5년 전을 탓하나?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문제는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해결 될 실마리가 지금 시점에서는 전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북한이 왜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따져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능력으로는 북한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100%이며, 2010년대 들어와서는 더더욱 신뢰가 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로 말하면 북한을 믿느니 차라리... 사실 핵무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이후, 어떤 국가의 특정 정권이 어떠한 희생(경제적 파탄,외교적 고립 등)을 치르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결심하면, 군사적 직접 개입을 제외한 그 어떤 수단으로도 핵 보유를 저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소련,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의 핵 보유 과정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리고 4차 핵실험을 통해 이는 다시금 확인되었다.

3.6 4차 핵실험 (2016 ~ )

4차 핵실험이 1월에 결국 감행되었다. 그리고 5차 핵실험도 준비되고 있다는 보고까지 나왔다! 이때까지 북한의 핵실험은 약 3년 주기로 행해졌는데 2016년 3월 즈음에 이미 5차 실험준비를 다 마쳤다고 한다 국제에서 전례가 없는 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애초에 5차까지 계획한 것이 아니냐 라는 소리까지 나오고있다.

3.7 5차 핵실험

그리고 2016년 9월 9일 북한에 규모 5.04(기상청)의 인공지진이 발생하였다.

4 북한 핵무장 능력 수준 평가

4.1 무기급 핵물질의 규모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의 종류는 플루토늄(Pu)과 고농축우라늄(HEU)다. 이들 가운데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3차 핵실험을 한 직후인 2013년 2월을 기준으로 저급기술 적용시 최소 5~7개의 만들 분량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플루토늄의 생산지 역할을 해 온 영변 핵시설은 2008년의 냉각탑 폭파를 계기로 개점휴업 상태였고,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장 출신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2010년 방문할 당시에는 원자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들이 방치 상태로 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던 2013년 4월 2일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의 핵심시설인 5MW 흑연감속형 원자로를 비롯한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을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에 6개월 정도의 시설정비 기간이 요구될 것이며, 재가동이 실제 이루어질 경우 연간 1개 분량의 핵탄두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22]

근래에는 고농축우라늄이 플루토늄을 대신하여 북한의 새로운 핵무기 재료로 쓰일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10년 헤커 박사가 북한 방문 당시에 원심분리기 수백~1,000기 이상의 대규모 농축시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북한은 자신들의 원심분리기 수량이 2,000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경우 이론상으로 핵무기 1~2개 분량에 해당하는 40kg의 고농축우라늄을 매년 생산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농축 우라늄은 다음의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장에 유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첫째, 북한에 대규모의 광산이 존재하므로 원료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다. 둘째, 원자로를 포함하여 눈에 띠는 대규모의 시설이 요구되는 플루토늄 방식에 비해,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우라늄 농축시설은 적은 면적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이는 지하시설에 숨겨서 설치하는 데에도 적합하다. 땅굴 파기에 세계적 수준인 북한에게는 비밀리에 핵개발을 실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요인이다.[23]

물론 몇가지의 단점도 존재한다. 우선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는 데 많은 전기가 소모되는데, 북한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이들 시설을 장기간 정상적으로 돌리는 데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게다가 원심분리기의 부품 제작에는 상당히 정교한 공작기술, 기계가 필요한데, 북한의 공작기계 기술 수준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원심분리기 제조를 위해 상당 규모의 알루미늄이나 강철관을 수입했다고 해도, 관련 부품의 조달을 자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역시 안정적인 운영은 곤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관련 물질을 확보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현 시점에서 북한이 무기급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 될 전망이다.

4.2 핵무기의 실제 운용능력 평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2006년 10월 9일의 1차 핵실험은 인공지진파 진도 3.5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내었는데, 이는 자신들이 중국에 사전 통보한 4kt 규모에 20% 불과한 1kt에도 미달한 것으로 기술적으로는 실패나 다름없었다. 2009년 5월 25일의 2차 핵실험에 와서야 1차때의 설계 출력인 2~4kt를 기록했다. 1차때 실패했다 2차때 성공한 설계 출력 4kt은 크게 높아진 것이지만, 2차대전 당시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15~25kt에 비하면 여전히 크게 낮아서 북한의 핵개발 능력이 기술적으로 조악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년 후인 2013년 2월 12일설날 연휴 다음날 월요병을 핵실험으로 푸는 부칸의 3차 핵실험은 진도 4.9에 해당하는 약 6~7kt의 파괴력을 낸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미 국가정보국의 '수 kt'(several kilotons)과 러시아에서 발표한 '7kt 이상'과도 유사한 수준이다.) 당초 북한은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공언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소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폭발력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북한이 제한적 핵융합 기술을 사용하여 폭발력을 더욱 배가시키는 '증폭 분열'(boost fission) 방식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설레발까지 쳤다.[24]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북한은 리틀 보이팻맨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25] 한국 정부에서는 리틀 보이의 절반 수준이며, 심지어 독일의 언론 슈피겔에서는 3배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그 신빙성은 사실 크지 않다.

2016년 6월에 보도되는 뉴스에 따르면 소련 핵무기 개발자가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로인해서 광명성 1호부터 미사일 수준이 급격히 상승한것으로 본다. 지금 현재 괌까지 타격이 가능한 북한 미사일능력을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사실. 여담으로 푸틴 대통령이 기술자들을 돌려줄것을 요구하자 북한에서는 시급을 8천달러까지 올려 기술자들이 가는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의 SLBM 발사가 성공했다는 기사 가 나오면서 위협도가 한층더 증가하였다.

북한은 5차 핵실험에서도 폭발력이 10kt 정도에 머물러서 3-5차 모두 6-10kt 정도로 폭발력이 별로 늘지 않는 등 기술적으로 정체해 있어서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파키스탄의 핵실험 수준 (40kt) 은 물론 전술핵무기로도 최소수준인 히로시마 수준(20 kt)도 넘지 못하고 더구나 전략무기로는 최소수준인 100 kt 과는 10배 가량의 기술적 격차가 있어서 앞으로도 여러차례 더 실험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어떠한 경제재재나 위협에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핵실험과 핵개발을 계속할 것으로 추정되므로 세월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100kt 급의 열핵폭탄 (수소폭탄) 제조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4.3 핵무기의 소형화 수준 평가

북한이 벌써 5번이나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북한의 핵무기가 과연 어느 수준까지 올라갔는가에 대한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컴퓨터도 없던 시절인 2차대전 당시에 사용된 무게 3~4톤 이상의 항공기 탑재용 폭탄을 넘어, 미사일에 장착될 수 있는 0.5t이하의 '소형화/경량화'를 달성했는지의 여부가 큰 관심거리다.

북한이 이미 '소형화/경량화'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측은 1970년대 이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시간이 상당히 경과되어 왔다는 점, 역시 핵무기를 개발한 파키스탄[26] 등과의 관련 기술의 공조를 진행해 왔다는 점, 그리고 5차례의 실험과 10년의 핵실험에서 얻은 기술적 노하우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미국을 겨냥한 ICBM은 아직 안되더라도, 적어도 한반도 전체와 일본을 겨냥한 사거리 1,300km에 탄두중량 0.5~ 1톤인 로동 탄도미사일은 실전 배치수준이라는것. 2013년 4월 11일에는 미 하원의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조심스럽게 평가한다"는 내용이 담긴 DIA(미 국방정보국. 펜타곤 산하의 정보기관) 보고서를 공개하여 미국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27]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가 아직까지 히로시마/나가사키급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내지 못할 정도로 기술적인 불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아직까지 '개연성' 차원에 그치고 있다.[28] 게다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지하 핵실험과는 달리, 발사 및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불안정성(예: 진동, 고열)을 미사일에 장착된 탄두가 감당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검증 문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신뢰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스커드(사거리 300~1천㎞) 16발, 노동(1천300㎞) 6발, 무수단(3천500~4천㎞) 7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4발 등 탄도미사일만 32발을 발사했다.

이는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18년 동안 발사한 탄도미사일 16발의 2배에 해당한다. [29] 핵탄두를 어떻게든 작게 만들어서 미사일에 '쑤셔 넣어도', 발사 직후에 폭발하거나 아예 터지지도 않을 수 있다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통해 폭발력의 증대를 계속 과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형화/경량화 단계에 이전보다 크게 근접해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폭발력의 증대는 기폭장치의 성능 향상을 뜻하며, 이는 보다 적은 무기급 핵물질로도 큰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설령 현 시점에서는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이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으로 평가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2015년 현재 기준으로는 국내외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할 능력을 확보했거나, 가까워지고 있다는 견해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상황이다. 10월 24일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을 시작으로, 10월 27일에는 한민구 국방장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한미 양국의 군 최고 당국자들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높이기에 충분하다.[30]

2015년 1월 6일 발간된 국방부의 <국방백서 2014>에서는 북한의 핵무장 기술이 '상당 수준'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포함시켰다. 기존 핵개발 국가들의 소형화 달성기간이 2~7년이며, 북한이 최초 핵실험을 2006년 실시한 후 약 10년이 경과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31] 北 핵·미사일 위협 ‘수위’ 높아졌다

북한 핵문제가 현재처럼 국제적인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 계속되는 이상,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 능력 확보에 관한 우려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몇몇 학자와 언론에서는 고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가 플루토늄 방식보다 기술적으로 단순하며, 따라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도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고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는 '포신형'(gun-type)과 '내폭형'(implosion-type)으로 분류되는 데, 이 가운데 포신형은 기술적으로 매우 간단해서 굳이 핵실험을 안하고도 실전에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폭발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포신형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항공기 탑재형 폭탄으로만 쓰일 수 있으며, 탄도미사일 탑재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위 핵대포 등에 쓰였던 핵포탄은 포신형 건타입 인데도 나중에는 155mm 야포 대포탄 크기의 포신형 우라늄 원자탄도 개발되므로 우라늄 방식이나 포신형 방식이어서 탄도 미사일 탑재가 불가능한게 아니다. 포탄형 우라늄 원자탄이나 내폭형 플루토늄 원저탄이나 다 0.5톤에 훨씬 못미치는 소형 탄두가 개발되었고 그 소형화 발전 속도나 시기도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우라늄 원자탄은 우라늄 농축 비용에 비해 폭발효율이 낮아서 경제성이 낮아서 현대적 탄도미사일에 쓰이지않을 뿐이지 소형화와는 관련이 없다.

결국 고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려면 플루토늄 방식처럼 내폭형 탄두로 설계해야 하는데, 이 경우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더 폭발력이 낫다는 보장은 없어서 별도의 핵실험을 통해 성능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핵무기 하나를 만드는데 플르토늄은 나가사키급 20kt 기준으로는 고급기술시 3 kg, 중급기술시 3.5 kg, 저급기술시 6 kg이 필요하고.. 출력을 줄인 10Kt급 핵폭탄만을 기준으로 하면 고급기술시 1 kg, 중급기술시 1.5 kg, 저급기술시 3 kg의 플루토늄이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이 가진 최대 53 kg의 플루토늄에, 최대가정인 고급기술로 본다면, 53발의 10Kt급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반면,

고농축우라늄은 플루토늄의 경우보다 3~4배 많은 무게인 15~25kg이 요구되어 비효율적이다.[32] 플루토늄 제조비용 보다 우라늄 농축비용이 훨씬 비싸고 게다가 핵물질이 폭발에너지로 바뀌는 비율도 우라늄 원자탄은 1% 정도로 매우 낮다. 요컨대 미사일 장착을 염두에 두고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고농축우라늄은 플루토늄보다 결코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주의할 점은 폭발력의 규모나 '소형화/경량화'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 핵무기의 위협은 결코 함부로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장 5차 핵실험에서 사용된 10~12kt 폭발력으로도 반경 2km 이내의 인명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라면, 그 피해 수준이 수십만명으로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70년전 미국이 250kg 무게의 내폭형 플루토늄 소형 핵탄두 마크 7를 실험한 건 1951년으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불과 6년 만이다. 그러니 핵실험을 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북한은 무게 500kg이하의 내폭형 플루토늄 핵탄두 정도를 이미 개발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다만 아직 폭발력이 히로시마 급에도 미치지 않아서 탄도 미사일에 실어봐야 실효성이 떨어진다. 미국 등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 되려면 최소 100 킬로톤급 열핵폭탄을 실은 탄도미사일이라야 할 것이다.

2016년 3월 9일 북한은 핵탄두를 탄도로켓에 맞게 규격화, 소형화를 실현했다고 발표했다. 허나 이후 국군과 미 국방부 성명에서 대놓고 씹혔으나. 7~9월사이에 잇다른 뉴스의 보도와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현재 북한이 핵장치를 소형화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라고 대답한것을보아 사실일 가능성이높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제46차 안보협의회(SCM)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재연기와 맞춰 나온 것이어서 악화여론을 의식한 언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헥무기의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는 있으나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 되고 있지않다. 무엇보다 아직 핵탄두의 폭발력이 10kt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최소한의 전술적 핵폭탄의 기준에도 미달하고 있다. 이런 폭발력이 부족한 핵폭탄을 소형화해서 탄도탄 미사일에 싣는다해도 전술적 위협은 되어도 침략 억제를 위한 보복능력을 가진 전략무기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러니 북한의 핵개발의 최우선 과제는 소형화보다도 일단 전략적 대량보복로 의미있는 100kt의 폭발력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일정한 폭발력을 달성하기 전에는 탄도탄 미사일에 싣는 의미가 약하고 소형화의 의미도 약하다.

또 소형화는 열핵무기 개발과 폭발력 확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핵융합으로 핵분열 증폭을 하지않고 핵분열 탄두의 크기만 키워서는 핵폭발의 충격파로 핵물질이 흩어져버려서 핵물질 분열비율이 떨어져 핵폭발의 위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고 또 핵분열탄을 단순히 소형화 하는 것만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폭발위력이 더욱 줄어들 뿐이다. 그러므로 핵무기를 실용적으로 의미있게 소형화 하는 길은 결국 2차 핵융합을 통한 단위 무게/크기당 폭발력을 크게 증대하는 핵분열증폭이므로 열핵폭탄(수소폭탄)의 개발이 곧 폭발력 확대와 소형화를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공통 기본 기술이어서 사실상 같은 목표이다.

따라서 아직 10kt 선에 머물고 있는 북한의 소형화 주장이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북한이 핵대포 같은 소형 전술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목표하는게 아닌 이상 전략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는 소형화일 뿐이다. 미국의 전술핵무기인 155mm 핵대포탄도 40kt 급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경우 최초의 핵분열탄 실험을 성공킨 후 열핵폭탄을 성공시키는데 7-8년 가량 걸렸는데 북한은 최초의 핵분열에 성공한것은 2006년이라 시기적으로는 머지않아 열핵폭탄도 성공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파키스탄이 1년만에 성공시킨 40 kt 급의 핵분열도 아직 성공시키지 못하고 10kt 급에 답보하고 있어서 과연 열핵폭탄 개발에 접근중인 수준인지 매우 회의적이다. 일단 20-40 kt 급 핵분열탄 실험을 성공킨다면 그후 7-8년 후에는 열핵폭탄의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수 있다.

4.4 열핵폭탄 개발 논란

2015 년 말에 북한의 김정은은 수소폭탄을 이미 개발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였다.[33] 현대의 핵폭탄은 흔히 수소폭탄이라고 불리는 열핵폭탄(thermonuclear bomb) 이 대부분이며 이로서 북한도 (아직은 실험을 한 건 아니나) 현대적 핵탄두 설계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이나 한국 등은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부정적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원자폭탄과 열핵폭탄(수소폭탄)의 기술적 난이도 차는 그리 크지 않다. 소련은 1949년 원자탄 실험 성공하고 4년 후인 1953년에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킨다. 중국은 1964년 원자탄 성공 후 3년 만에 1967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수소폭탄 기술에 대한 정보를 구하거나 개발 하기 쉬우므로 그 훨씬 장벽이 낮을 것이다.

또한 원자폭탄은 플루토늄 이나 무기급 농축 우라늄 등 아주 만들기 어렵고 비싼 핵물질이 필요하지만 수소폭탄 제조에 추가로 필요한 리튬 동위원소 나 삼중수소,[34] 열화우라늄 (U238) 등 추가 핵물질 재료는 원자폭탄의 핵물질보다 월등히 만들기 쉽다. 또 구조적으로도 열핵폭탄의 1차 기폭부인 플루토늄 원자폭탄은 상당히 복잡하고 개발하기 어렵지만 핵융합 스파크 플러그와 핵융합 코어, 핵분열 템퍼로 구성되어 핵폭탄의 폭발력을 크게 중대시키는 2차 핵융합 부분은 상대적으로 구조가 간단해서 플로토늄 원자폭탄 기폭을 확실하게 성공시킬 정도의 기술이면 개발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니 이미 2006년 핵실험에 성공했고 이후 2009년, 2013 년 두 차례의 확실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 북한이 2015년 말에 현대적 열핵폭탄 설계 기술을 획득했다는건 결코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이미 열핵탄두 제작은 끝났을 것이고 다만 실제 핵실험은 중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의 폭발력을 통상 6-16 킬로톤 급으로 추정하므로 만약 앞으로 북한이 4차 실험을 실시하고 적어도 10배 이상 인 백~수백 킬로톤 급의 폭발력을 보인다면 이를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어쩌면 3차 핵실험의 폭발력이 핵무기로 쓰기에는 한참 부족한 6 킬로톤에 불과한 것은 그 자체로 핵무기로 쓰기위해 실험한 게 아니라 개발 중이던 열핵폭탄 탄두의 1차 기폭장치로 쓸 소형 플루토늄 원자폭탄의 기폭을 실험한 것일 수도 있다. 6 kt이라면 핵무기로는 너무 약해도 열핵폭탄의 기폭장치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다만 이럴 경우 통상 열핵폭탄 탄두는 플루토늄 핵폭탄 보다 크기나 무게가 2-4배로 늘어 난다. 북한은 플루토늄 핵탄두의 크기와 무게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소형화하는데는 성공했을 것 추정되지만 북한의 현 기술로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 밖에 없는 열핵탄두를 탄도 미사일에 장착해 멀리 발사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의 현재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로 보아 무거운 열핵탄두를 수천 킬로미터 이상 발사하기는 어렵지만 로켓의 적재량을 늘리고 대신 사정거리를 대폭 줄이는 방법으로 수 톤급의 무거운 열핵탄두라도 발사할 수 있다. 현 기술 정도로도 천 km 내외의 서울, 평택, 계룡대, 도쿄, 베이징 등은 북한의 열핵폭탄 탄도탄의 사정권에 든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발사 시험에 직접 참관하는 등 김정은의 중점적 관심사로 보인다. 미국의 미니트맨 미사일 같은 사정거리가 일만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대륙간 탄도탄을 북한이 보유하면 북한도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이를 개발하는 것은 북한의 국력으로는 버겁기도 하고 또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사일로를 선제타격하면 쉽게 무력화 될 수 있다.

반면에 SLBM은 북한이 개발한 아직 무거운 열핵탄두를 장착하고도 1000-3000 킬로미터 정도의 사정거리를 가지는 대포동 미사일 급 정도의 중거리 SLBM을 개발하는 건 큰 무리가 아니다. 또 잠수함은 쉽게 발견되지 않으므로 미국의 선제공격에 무력화 되지 않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열핵탄두를 장착한 SLBM을 탑재한 북한 잠수함이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부 해안의 대도시 부근 바다까지 은밀하게 접근해 핵공격 으로 보복할 수 있어 보복수단으로서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북한이 SLBM으로 미국에 보복을 하면 미국도 당연히 북한 전역이 석기시대로 돌아가도록 수많은 핵폭탄을 퍼부어서 북한 국가는 완전히 멸망하고 북한 인민들도 거의 다 죽겠지만 북한이 그것도 각오하고 미국 본토에 보복에 나서면 미국도 수백만명의 민간인 미국시민이 죽는 엄청난 피해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도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 처럼 북한을 공격하려고 마음먹기 어려워진다.

이게 '너죽고 나죽고 같이 죽자' 식의 미친 전략 같아 보이지만 냉전시대의 프랑스가 러시아 미국 등에 비해 핵전력이 크게 열세일 때 취한 비례억지전략과 유사한 전략으로 핵전력이 열세인 핵보유 국가가 핵강국과 맞서 대항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로 보아 북한은 장기적으로 수백 킬로톤 대의 열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을 제작해서 북한의 재래식 잠수함 몇 척에 나누어 실어서 배치하고 언제나 최소한 1척 이상이 동해나 태평양 일대를 은밀하게 돌아다니게 하고, 만약 자신들이 미국이나 남한 등으로 부터 공격을 받으면 이를 보복할 최후의 보복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영국 등이 다수의 핵탄두를 장착한 트라이덴트 MIRV SLBM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을 적재한 잠수함 함대 만으로 핵전력을 유지하는 영국의 핵억지력 전략과 유사하다.

북한은 현재 재래식 전력으로는 남한에 크게 열세이므로 항상 군사적 방어와 체제유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이런 비대칭적 핵보복 수단을 통해 재래식 전력의 열세, 인구 및 경제력 열세를 만회하려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재래식 전력 유지에 들어가는 국방비와 인력을 절감해 경제건설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5 북한 핵 불가능 떡밥과 분석

뭐 보수측에선 2004년 미국 펜타곤을 인용한 이런 영상#을 만들기도 했지만 1.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급 폭탄이 2. 서울 한복판인 한미연합사 부근에서 3. 스커드 미사일로 4. 전면전을 목표로 터진다는 이야기는 애초에 여러 모로 현실성이 없다. 핵무기 날리다가 북한전역이 석기시대

5.1 폭격 가능 여부

첫번째로 파괴력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당장 쏠 방법이 없다는 것.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핵무기의 기술적 수준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2~3톤 내외의 항공기 탑재용일 가능성이 높고 이건 스커드 미사일의 최대 탄두 중량인 1톤을 그냥 웃돈다.[35] 그렇다면 비행기로 직접 운송하여 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인데, 현대전의 방공망을 감안하면 북한군이 B-2 성능을 능가하는 폭격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힘들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IL-28 폭격기의 최대 페이로드 중량이 10톤이 조금 넘긴 하지만 노후화 정도[36]를 생각하면 페이로드를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물론 SLBM이라면 사정이다르다 최근들어 북한의 SLBM 기술력이 상당해짐에 따라 위협도가 높은것은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북한의 핵 투발 수단은 다음과 같다.

  • 미사일
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러시아의 현용 대륙간 탄도미사일조차도 최대탄두중량이 3톤을 넘지 못하였다.[37] 즉, 북한은 핵 소형화를 위한 정밀한 기폭장치 개발을 해내지 못하는 한 절대 미사일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SLBM이 발사성공을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미사일의 폭격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있다.
또한,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이 아닌,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의 스케일업하는쪽으로 개발할수도 있다. 북한입장에서야 어쨌든 경기도까지만 날아가도 핵폭탄만 탑재할수있으면 남한에게 협박질할 카드가 될테니, ICBM처럼 고기능, 고정밀 미사일이아닌 그저 날아가고 탑재량 빵빵하고, 폭발고도 3,40~100미터대, 공산오차 1킬로미터가 나더라도 폭발만 해주면 남한측에선 무시할수가 없다.
그리고 광명성 4호의 1단추진체를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발사한다면 북한의 핵폭탄이 최대탄두중량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38]
  • 폭격기
북한 공군이 가진 IL-28 폭격기라면 탑재가 가능하다지만 글쎄다? IL-28 폭격기가 핵을 싣고 저공으로 침투하여 폭격하러 온다면 다음과 같은 방어선을 뚫어야 가능하다.
  • 1차 방어막 - 전방 육군 사단과 저공레이더
국군에선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저공침투로 꽤 쏠쏠한 재미를 얻자,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전방 곳곳에 저공레이더를 쫙 깔아두었다. 그리고 사단마다 방공중대/방공대대가 있으며 주요 여단마다 방공중대가 배속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고정포 형식으로 상당한 대공포가 숨어있으며, 여기에 조금만 내려오면 방공포병까지 숨어있다는 것이다.
  • 2차 방어막 - 공군 방공포병의 마중
공군 방공포병의 철매-2, 패트리엇, 그리고 노후화 되었지만 느린 폭격기 정돈 씹어먹는 나이키와 호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다. 천우신조로 전방의 저공레이더와 육군 방공부대를 비껴왔더라 하더라도, 조악한 대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공미사일이 날아든다.
  • 3차 방어막 - 수원의 제10전투비행단에서 출격한 F-5E 전투기
가장 먼저 스크램블 발동한 F-5E가 날아들 것이다. 폭격기로써 이들과 어찌 대적하려고?
  • 4차 방어선 - 수도 방위사령부
대한민국의 군단/군단급 사령부/군단급 제대 중 가장 크고 아름답고 넓은 관할지역과 최대 6~8만명의 전력을 지닌 수도방위사령부는 전시에 육군과 공군의 방공전력까지 지휘권 아래 둘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으로 말이 많지만 이 수도방위사령부만큼은 한미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이리 언급된 4중 방어막을 뚫고 서울에 핵을 떨구고 간다면 한반도 전쟁사, 아니 전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사례가 될 것이다.
  • 핵 트레일러
컨테이너 안에 핵을 싣고 트레일러로 운송한 다음 서울까지 내려와 터트리는 것이다. 문제는 북쪽에서 트레일러가 사전 통보도 없이 내려온다니 군인들은 그 사이 졸고 있는가? K-2, 아니 K-5 권총에도 무력화 될 것이다.
물론 이 방법도 방심은 금물이다. 북한 측도 머리가 있으니 무작정 트레일러를 몰고 내려오지는 않을 것이고 제 3국 등을 거쳐 일반 화물 컨테이너로 위장해 들여오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일 것이다. 물론 국정원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방법은 소형화/경량화 따위 필요 없으므로, 지금 당장 북한이 핵공격을 지른다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 하지만 제 3 국을 거쳐서 핵을 싣고 오는 과정에서 화물검사에서 발각될 염려가 있으므로, 이 방법 역시 그닥 현실적이지는 않다.
  • 핵지뢰
이것이 종합적으로 가장 현실적인데. 개풍시쯤에 묻어두었다가 한미연합군이 북진시 쾅! 터트려 북진을 저지하는 식.
사실 전술적으로도 북한에 이익이 가진 않는다. 평상시는 물론이고(그랬다간 미국과 남한이 이렇게 된 이상 평양으로 진격이다!를 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국지)전시에 터트린다면 북한이 피하고 싶어하는 국제적 전면전이 벌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자기 방위용 핵" 이 될 수밖에 없다는 참담한 결론. 물론 그렇다고 북핵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인명경시사상이 팽배한 집단이라 북한지역, 특히 주석궁과 주요시설이 밀집한 평양에 영향만 가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5.2 전략적 전쟁 가능 여부+주변국 핵무장

두번째로 거기다가 한 번 발사 잘못했다가는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국지전으로 끝나더라도 주변 국가이자 준 핵보유국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바로 핵 개발에 들어설 명분이 생긴다(어쨌든 한국과 일본도 주위 모든 나라가 핵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상의 적대국인 북한마저 핵을 가지게 된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핵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에겐 전혀 좋을 게 없으며 괜히 자신들의 권력 유지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사실 미국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경계하는 이유는 이때문인데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기술이 상당히 발전한 국가들이 만들어낸다면 그 위력은 북한의 핵무기로는 상대도 안 될 강대국들이 가지고 있는 핵과 비슷한 수준의 핵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골치 아파진다는 말씀. 이때문에 러시아나 중국도 북한의 핵개발 자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지금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 알레르기 수준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핵무장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미 ICBM으로 쓸만한 발사체는 개발완료되어 언제라도 양산 가능한 상태이고 유사시 강대국이랑 본격적인 핵전쟁을 벌일수 있을정도로 핵무기를 양산할 경제력도 충분하다.[39] 또한 한국도 일본 정도까진 아니지만 강대국의 것과 비슷한 위력을 지닌 핵무기를 다수 개발해 배치할수 있는 국력은 충분히 되니 한일 핵무장이 세계의 경계를 받는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한국은 방사성 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상당수준 보유하고 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이러한 봉인을 풀 수 있는 방아쇠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원자력 재처리 시설 보유에 미국이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빠른 핵무기화가 가능하다라는 점 때문이라 한국은 핵무기 전용이 기존 방식보다 약간 어려운 재처리 방식을 사용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도 역시 어떻게든 하면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탐탁치않게 여기는 듯.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과 일본이 핵개발에 돌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입장발표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이후부터 한동안 해 온 바 있다. 또한 2013년 1월 북한은하 3호 발사에 대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주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은 자중해야 한다'고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2013년 2월 20일 북한은 이에 대해 한국을 최종파괴하겠다고 협박을 업그레이드했다! [1]

한국만 협박한게 아니라 중국도 협박했다(...) 2016년 3월, 김정은의 북한은, 중국은 북한의 적이며, 중국에게 핵전쟁을 일으킬수도 있다고 중국을 상대로 협박했다. [40] [2]
기사제목 WWIII fears as Kim Jong-un threatens China with 'nuclear war' and declares country 'an enemy'
내용일부 Kim Jong-un has threatened China with 'nuclear war' after declaring the country an 'enemy of North Korea .'

2014년 11월 22일, 러시아 외무부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러시아에 대하여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면서, 기존의 입장에서 상당한 선회를 보여주었다.# 이 발표는 러시아 외무부의 공식 발표이고, 외무부 장관의 발표이기 때문에 단순한 외교관의 언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의 이와 같은 발표는 북한의 리수용, 최룡해와 같은 최고위급 인사들이 줄줄히 러시아를 방문한 이후에 나온 것이라서, 북한의 외교적 조치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다만, 저러한 언급 뒤에 당연히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시도는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악영향을 비치고 핵확산을 촉진할 수 있다고 언급하여 북한의 핵 보유를 긍정하지는 않았다.[41][42]

그리고 미국입장으로서 한,일의 핵무장을 목숨걸고 막아야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다름아니라 핵우산 정책인데 한,일 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대가로 미국의 핵우산으로부터 지켜지는 국가들이다. 쉽게말해 한,일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상대국가로부터 핵공격을 당하면 미국이 대신 보복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의 핵무장은 "이제 미국의 핵우산정책은 못믿겠으니 독자적으로 핵무장해서 스스로를 지킬 것이다." 라는 메시지인것이다. 미국의 가장 큰 동맹들 중 둘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동북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축소는 물론이거니와 NPT체제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지며 미국의 전세계적인 헤게모니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됨은 물론 핵확산은 심각하게 가중될것이다.

5.3 전술적 사용 가능여부

세번째로 직접적인 전술핵 사용에도 문제가 있다. 방사능 오염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한반도에 터지면 어떻게든지 북한도 이 방사능에 노출이 되기 쉽다. 그리고 식수에 방사능이 오염된다면 그 식수와 식수를 이용해서 생산된 식량은 최소 몇 년간 사용 불가다. 게다가 그냥 되는 대로 터뜨려버린다면 양쪽의 피해도 만만찮을 것이다. 실사판 모던워페어 아니면 방사능 유출 한반도 Ver.

그런데 관리가 개판이라서 가만히 냅둬도 저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진짜 헤도라라도 개발하나

사실 핵무기 자체보다는 그 부산물로 만들어진 더티 밤이 더 위험하다. 이런 건 크기도 천차만별이고 그냥 수도권 상수원 같은 곳에 포탄에 넣어서 쏴버리면 포격 지점 근처가 방사능으로 오염되기 때문이다. 핵폭탄보다야 위력이 약하지만 일단 방사능 물질이 수돗물로 흘러나온다 생각해보자.

5.4 핵실험, 방사능 유출으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

아무리 갱도를 이용한 지하 핵실험이라도 환경오염 위험은 무시할 수 없다. 폐광 안에서 폭발시켜 폐광 안의 암석이 녹아 유리질을 구성해 방사성 부산물을 차단한다 해도 근처에 수맥이 있다면 방사성 물질이 수맥으로 흘러들어 남한의 지하수까지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국내 환경운동단체들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지만 반면에 남한의 환경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한의 환경에 영향이 없다면 지금 당장으로써는 다행이겠지만 차후 통일된 후 핵실험을 했던 지역에 무슨 후유증이 남아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핵실험과 핵개발을 하는데 있어 얼마나 처리를 제대로하는지, 안전장치는 제대로 하고 실험을 하는 것인지 밝혀진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탈북자나 단편적으로 나오는 정보들도 북한의 핵처리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가능성이 염두 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방사능 폐기물 관리와 유출 문제, 그리고 영변 원자로의 안정성이다. 2014년 이후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던 문제. # 최소한 히로시마/나가사키 급의 유출 가능성은 심각하게 고려되고 있으며, 제트류의 진로인 일본 홋카이도혼슈 북부, 황해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균렬 교수의 가상 시나리오 # 인터뷰

정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여러 예측이 나오긴 하지만, 이런식의 믿음은 곤란하다(...) 일당 독재와 언론 통제로 아무런 정보가 안나오는 곳이 적어도 조사해서 비리를 적발하는 곳보다 제대로 운영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 북한의 원전은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때의 원전처럼 흑연 감속제를 사용하는 후진 원전이란 문제도 있다. 아무리 원전의 위험성이 0%라고 보장할 수 없다고 해도, 비등수형 원전의 사고였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보다 안전성이 높은 가압수로형("중탕") 원전을 운용하며, 그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하는 나라의 원전과, 국가 막장 테크와 경제 붕괴를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 독재국가의 핵폭탄을 비교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6 대응

통일 되면 우리도 핵 무장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꿈 같은 소리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형편이다. 바로 그 통일이 안 되게 생겼다. 그리고 국제관계상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도중에 통일이 되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IAEA의 주관 아래 핵 미사일을 해제하는 길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43]

더구나 핵보유는 장기적으로 볼때에도 매우 좋지않다. 개발은 둘째치고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데 아무리 통일한국이라고 해도 당장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거기다 설사 핵개발을 할 경우 주변국, 특히 일본을 무시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기존 핵보유국인 러시아나 중국도 그냥 둘리가 없다. 특히 직접 당사자가 되는 중국의 경우는 결사반대할 것이 자명하다.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을 편드는 중국조차 북한의 핵개발소식은 민감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잊지말자.리틀보이나 팻맨의 위력도 못 따라가는 상황인데 차라리 해제하는게 나을지도...

6.1 경제 제재

이미 최고 수준으로 하고 있어서 대한민국으로서는 더 할 거리도 별로 없다. 제재가 북한에게 핵개발에 따른 불이익, 위기 의식을 실감토록 강요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북한이 손에 넣은 핵무기를 없앨 수는 없다. 단 경제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중국 쪽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를 무시하고 북한을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대외교역액의 90% 정도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자신들의 장기생존이 미국에 대한 대량보복수단 확보여부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경제제재로 북한이 이란 처럼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는것이 북한 관련 전문가들의 일반적 판단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중국의 지원이 없어도 봉쇄 수준이 아니라면 북한 경제, 무엇보다 북한 체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도고 버틸 수 있다라는 견해도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등의 외국업체와의 거래도 금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추진하고 있고 이는 사실상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조치이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조치도 중국과의 마찰만 커질뿐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는 실패할 것이다. 심지어는 중국이 진심으로 강력한 북한재제에 들어가 북한에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같은 기아와 경제파탄을 초래하더라도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개발을 경제원조용 협상카드나 협박용 카드 정도로 보았지만 현재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은 결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도 오바마 대통령 임기동안의 미국의 경제제재와 "전략적 인내" 전략은 결국 시간허비였을 뿐 거의 아무런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한국 등이 어떤 재재를 하건 또는 반대로 북한에 평화협정이나 경제원조 등 어떠한 당근이나 보상을 하더라도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잠수함 등 미국에 대한 대량보복수단 확보를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북한이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은 거 처럼 북한도 이라크와 리비아에서의 교훈으로 미국을 전혀 신용하지 않기 때문에 협정 등 미국의 약속은 아무 소용이 없다. 때문에 어떤 핵개발을 단지 경제적 외교적으로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협상카드로 여겼다면 이미 충분히 쓸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

6.2 전술핵 재배치

핵무장에 관한 북한의 능력과 의지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드러나고, 좀처럼 단기간 내에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학계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비확산 전략을 폐기한 뒤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여 본격적인 억지전략을 추구하자' 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핵 억지전략은 이미 냉전기의 독일(서독)이 자국 내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그 운용에 상당부분 관여하는 방식의 핵전략을 추구하면서 효과가 입증된 것으로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개념이 아니다. 심지어 냉전이 종식되고 독일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소멸한 현재까지도 독일 영토 내에는 수백 발의 미군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어있다.[44]

과거 한국도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소속으로 다양한 형태의 전술핵이 배치되었고, 가장 많을 때는 1970년대에 약 700발이나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의 전술핵은 북한 단독의 침략보다는, 중국까지 참전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개선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수량이 100~200발로 크게 감소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1991년에는 북한에 핵개발의 구실을 없앤다는 취지 아래, 나머지 전술핵도 철수하게 되었다.

만약 전술핵 재배치를 대안으로 고려한다면, 그 형태는 1) 공중투하형 폭탄이나 2) 탄도/순항미사일 장착형 탄두, 그리고 3) 기타(예: 핵지뢰)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냉전 이후 실전배치 핵무기의 대다수를 ICBM이나 SLBM에 장착하는 메가톤급 전략핵 중심으로 전환한 상태이며, 폭격기나 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로 발사하는 킬로톤급의 전술핵은 2012년 기준으로 500여발만 남아있다. 이는 1991년의 6,600발에 비하면 10% 미만에 불과하다.#

500여발의 전술핵 가운데 미사일 발사형은 약 200발인데, 모두 공군의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ALCM) 탑재형뿐이다. 1987년 소련과의 중거리 핵전력 폐기(INF) 조약으로 퍼싱-2 탄도미사일, 지상발사형 핵 순항미사일이 전량 폐기되고, 냉전 이후에는 ICBM 이외의 탄도미사일들이 재래식 탄두로 전환되면서 미군은 미사일 탑재형 전술핵의 비중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심지어 미국은 2010년에 해군의 토마호크 장착형 전술핵 200발마저 모두 현역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했다.

현 시점에서 미군의 주력 전술핵탄두는 약 300발의 B61 공중투하형이며,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한다면 이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B61 Mod 12는 최대 340킬로톤까지 위력조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며, 개발 당시부터 '핵 벙커버스터(Nuclear bunker buster)'로서의 능력을 염두에 두고 시험받은 전술핵이다. 이런 전술핵무기들을 F-22/35같은 스텔스 전폭기들이 탑재하고, 그야말로 치트키를 친 정찰능력을 갖춘 미군이 북한의 핵무기 가동징후가 포착되자마자 북한의 지하 네트워크에 대해서 선제타격으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북한이 한가롭게 ICBM,SLBM 타령이나 할 여유가 있을까?(...)[45]

하지만 이러한 공중투하형 전술핵은 미사일 발사형에 비해 발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실전배치될 경우 북한의 1차적인 공격 표적으로 노출되어 생존성이 취약할 것이라는 문제점이 생긴다. 때문에 군사적 측면에서 미군의 전술핵은 그 수량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형도 공중투하형으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재배치를 주장하는 이들의 기대만큼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의미에서 전술핵의 재배치는 좁게는 '한반도 비핵화의 포기', 보다 넓게는 '남북통일의 포기'라는 매우 큰 정치적 부담을 야기시킬 수 있는 문제다. 북한의 핵무장 규모가 현재의 10기 안팎에서 인도/파키스탄 수준인 수십~100발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한반도 비핵화가 한국과 국제사회의 목표로 추구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소수 주장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학자, 정치인들은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수단'으로서의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1980년대에 미국이 소련의 SS-20 동유럽 배치에 맞서 퍼싱-2 등을 서독에 배치하고, 이후 고르바초프와의 INF 조약으로 미소의 동시 전술핵 폐기를 유도했던 전례를 따르자는 논리. 하지만 미소 두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SS-20과 퍼싱-2는 자신들이 보유한 핵전력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폐기해도 전체 핵전력 규모에 큰 변화는 없는 수준이었다. 자신들이 보유한 소수의 핵전력 모두를 협상 대상에 걸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단순히 전술핵을 넣고 빼느냐의 여부를 갖고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 한마디로 비교 대상이 잘못 연결된 것.

6.3 군사적 대비

북한의 핵 보유가 확실해진 이상 핵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비하여 최악의 경우 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핵 방공호를 대규모로 건설하고 북한이 사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핵탄두 장착 탄도미사일에 대한 요격시스템을 갖추는 방어전술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핵능력 자체를 조기에 무력화시켜 남북간 핵전쟁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선제타격에 필요한 전력과 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초기 강경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의 1994년 북폭 시나리오의 재현[46]이랄까. 다만 1994년에는 북한의 핵무장 관련 능력이 영변군 중심의 핵시설에만 집중된 상태였고, 무기급 핵물질의 수량도 핵실험 이전의 5개 이하 정도로 평가되던 때였다. 20년 넘게 지난 오늘날의 북한은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고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기반 능력을 확보했고, 해당 시설은 영변 이외에도 산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거 이스라엘이 이라크 오시라크, 시리아의 원자로를 선제타격하는 방식으로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 지역 공격만 하는 형태로 핵개발 능력을 원천 제거하는 방식을 보여줬지만, 이는 북한에 시도하기에는 너무도 늦었다.[47]

결국 현재로서는 미국의 막강 핵전력을 기반으로 하는 핵우산 공약을 발전, 구체화시켜 북한에게 '단 한발의 핵이라도 사용한다면, 너희는 멸망한다'는 점을 주지시켜 억제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자체 핵무장보다 위력은 약할지라도 유사시 북한의 핵탑재 수단(예: 미사일, 항공기)을 사전에 파괴할 수 있도록 광역 정보수집 자산과 장거리 탄도/순항미사일 등을 포함하는 비핵 전략무기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 또한 최악의 경우에는 전면전 역시 각오해야 한다.

7 근본적 해결책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적에는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데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7.1 핵 협상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하는 것은 왜 핵을 개발하려느냐와 같은 질문이다. 체제 보장을 위한 억지수단인데, 그럴 필요가 해소되면 핵을 가질 필요도 없어진다.

- 김연철 前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가장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고 영변 냉각탑 폭파 등 가장 많은 진전을 이루었던 방식이자, 가장 복잡한 방식. 북한 핵개발의 근본적인 의도는 정권 존속이기에 정권 존속에 필요하다고 보이는 외부 조치 (평화조약, 불가침조약)등을 담보로 핵 포기를 유도하는 협상이다.

협상방식 중 하나였던 6자회담에서 보듯 무려 6국의 합의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며, 상호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 방식이다. 햇볕정책이 이루어지던 시절에는 중유 제공, 경수로 공사 등을 통해 북한이 핵 발전을 포기했을 때의 대가로 실질적인 지원이 일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승계해 남북간의 신뢰를 쌓아 갔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미측에서 BDA계좌 동결 하나 터트리자 그 공들였던 9.19합의가 하루만에 휴지조각이 되는 등 국제공조의 어려움으로 인한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핵 협상을 위해서는 최소한 남, 북, 미, 중이 협상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지도부가 장기집권하는 북한과 중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미간의 합의조차 엇나가기 일쑤였다. 부시 대통령 집권기간과 민주정부의 집권기간이 완전히 겹친 점도 있지만, 꼭 공화당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보는 북핵과 미국이 보는 북핵은 그 주안점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협상이 여러 차례 수렁에 빠지고 지연되면서 한국은 보수정권이 집권했으며, 심지어 북한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일정 부분 전략적 수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핵 협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예측하기 힘든데, 왜냐하면 남북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PSI참가 결정 이후 사실상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에서 19대 대통령이 집권하는 2018년부터 핵 협상을 재개한다고 한다면 이는 기존 협상의 연장선이 아니라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협상의 당사자들이 거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협상 중단 이후로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협상 전략부터 재설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7.2 중국군의 개입을 통한 북한 장악

중국 인민해방군이 치안출동의 형태로 평양을 점령하고 김정은의 권력을 빼앗은 뒤 핵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지만 동해에 중국 해군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유사시 한국을 포위하여 고사시키기가 훨씬 쉬워지며, 또한 북한이 중국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여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되며, 이것이 한국의 미래에 얼마나 악영향으로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최악의 경우 한-미 측에서 합의를 파기하고 북한으로 진격하여[48] 양측 간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7.3 한국 주도의 전쟁을 통한 북한 장악

한국군과 미군이 작정하고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한 지역 장악[49]을 통한 안보상 이득 유지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지만 타이밍이 하나라도 잘못되면 한국이 입을 피해가 너무 커지는 것이 문제다. 또한 북한 포병전력은 워낙 그 규모가 커서 전부 격파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방의 군인들은 별 피해가 없는데 경기 북부 지역과 서울이 북한의 포격을 얻어맞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으로서는 피로스의 승리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겠지만 북한군의 포병 전력은 비대하기만 할 뿐 실이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50] 이보단 중국이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붕괴는 환영하더라도 그 뒤 한-미의 북한 장악은 환영하지 않아 침공해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은 의도대로 서울을 비롯한 요충지 포격도 수월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반면에 한국군은 맘만 먹으면 평양을 언제든지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전면 선제공격을 가하여 북한의 주요 비행장이나 요충지, 수도를 포격으로 정밀타격한 후 한국군 혹은 한미연합군이 북진하는 형태의 문제라면 오히려 기존에 알려진 전시의 개전초기 피해를 최소화할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 데다가 중국이 북한지역으로 이 문제를 두고 개입하더라도 영토를 양분할 생각이 한국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중국이 과연 일전을 불사하고 북한을 위해 한국과 국운을 걸고 싸울지 여부의 미지수는 충분히 남아있다. 그만큼 한국군은 중국에게 있어서 만만하지 않은 상대이고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가세한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달라지게 될 것이란 점이 맹점인 것.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이 기회에 중국이 개입하여 전면전을 걸경우에 중국을 이 기회에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수단[51]으로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점 등 여러모로 골치 아픈 문제임은 확실하다.

7.4 UN 정규군의 개입

UN군 자체가 상비군이 아니기 때문에 편성 및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병력은 제3세계 군인들 중심으로 어떻게 갖춘다고 쳐도 장비가 문제고, 북한이 그 기간을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UN군을 갖춘다면 그 타겟이 누가 봐도 뻔한데 그 동안 북한이 가만히 있겠는가?

7.5 내부 쿠데타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 세력이 친미 또는 친중 정권을 세우고 그 대가로 핵 포기를 선언할 수 있다. 하지만 통제가 심한 북한에서의 무장 봉기는 그닥 현실성이 없다. 무엇보다 새로 들어선 정권이 핵을 포기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만일 여러 세력으로 쪼개지는 내전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나 미국 입장에서는 핵무기의 소유권조차 파악하기 힘든 막장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제 3세계로의 핵무기 유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7.6 미국과 중국의 공조

어차피 북한의 핵개발과 탄도탄의 타겟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다. 이미 잠수함 발사 SLBM 미사일까지 성공한 마당에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핵탄두를 실은 북한 잠수함이 출현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국에 배치할 사드 미사일 같은 소극적 방어수단은 미국에 대한 북핵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 미국으로선 대러시아 문제 이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중요한 안보문제이다.[52] 중국으로서도 북한의 핵이 결코 반갑지않다. 동북아의 평화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을 줄이려는 중국으로선 미국의 무력 개입이나 한국 일본의 핵무장 시도의 빌미가 되고있는 북핵과 미사일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 체제 자체가 붕괴해서 사라지는 것도 중국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안보적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타협책은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반도에 가진 기득권, 종주권을 상호 존중하면서도, 절대로 핵무장을 포기하지않을 김정은 체제만 외과적으로 제거하고 교체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위의 중국군 개입안은 중국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고 한국주도안은 미국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 그러므로 양국이 타협가능한 선은 중국의 묵인하에 미국이 나서서 무력으로 급습하여 북한의 지도부를 교체하되 그 뒷수습에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방안 정도이다. 무력행사과정에 중국이 미군의 중국영공/영해 통과를 묵인하는 식의 소극적 협력을 할 수도 있다. 군사작전 후 뒷수습은 비교적 소수의 중립적인 유엔연합군을 파견해서 북한의 국가재건을 추진하고 중국은 압록강 국경에, 미군은 휴전선에 군대를 집결시키되 북한영토에 진입하지는 않고 북한군의 위협을 제압해 소수의 유엔군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혹시 북한이 한국에 도발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지만 작전 자체가 김정은이 평양 이외의 지역에 머물러 있을 때 미사일이나 항공폭격 중심의 속전속결 단기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고 길어야 며칠 이내에 종결될 수 있어서 국지적 피해는 있겠지만 기습당한 북한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사전준비 없이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렵다. 또 북한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패배가 확실한 선제공격에 섣불리 나서기도 어렵다. 김정은이 1차 시도에서 살아남아서 중국에 망명하더라도 목표는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이므로 결과는 성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 제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가장 큰 변수는 한국이 이 기회에 통일을 하겠다고 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하게 북한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군이나 중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계획 전체가 어그러 질 수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어서 이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이 이런 돌발행동을 하지않도록 하는게 한국에 대한 설득의 핵심이고 이런 한국이 행동을 하지않을 또는 못할 것이란 걸 중국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대중국 설득의 핵심이다

새로 들어서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반미정책과 핵과 미사일등을 포기하고 군사력도 대폭 감축하고 한미일 및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경제적 원조를 한다. 새로운 북한정권의 안정과 남한의 통일 시도로 부터 북한을 지키기 위해 조중우호조약의 갱신등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종주권을 미국과 한국이 일정부분 인정해주는 타협을 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 교체는 미국-중국-한국 모두 만족할만한 충분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타협점이 존재한다. 권력층을 제외한 북한주민 들에게도 큰 이익이 된다. 이렇게 하면 미국으로서도 골치꺼리를 제거한 게 되고 중국으로서도 중국의 안보 관심과 한반도에서의 이익을 충족하게 되어 양국이 다 만족할 수 있다. 한국도 이 기회에 통일을 하자고 오바하는 김치국을 마시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적대적 북한이 사라지니 큰 이득이다.

이 방안의 핵심쟁점은 새로운 북한에서 중국의 역할을 어느정도 인정해줄 것인가하는 것이다. 중국의 안보적 경제적 이익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중국은 결코 이 방안에 동의하거나 협력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중국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달갑지않은 미국이 이를 받을 리가 없다. 중국은 적어도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세력이 될 때까지 30년 정도는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지 않고 계속 존속하는 보장을 요구할 것이다. 중국의 동의를 얻기위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 보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가 단기간에 남한에 의해 흡수 통일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일정한 북한군사력의 규모유지나 한국군의 규모축소, 중국군 자동개입 등 여러 안전장치를 요구할 것이다. 또한 북한의 약화로 인한 중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해 한반도의 주둔 미군도 미래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제안도 포함할 수 있다. 중국이 제안했다는 북한분할제안을 고려해 볼수도 있다. 영구할양은 아니고 서북 3-4개 도를 홍콩처럼 중국에 몇십년 정도 조차지로 빌려주는 안도 가능하다.

시기를 보자면 아직은 조금 이르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ICBM 실험, SLBM 탑재 잠수함 건조 등 북한의 추가 도발로 김정은 정권 제거에 대한 미국과 중국 내의 찬성 여론이 더 무르익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임기말이고 외교와 협상에 능한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 된 후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성공시키면 중국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 이를 추진할 여건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정권교체나 여론이나 동의 여부는 계획 추진의 큰 변수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정권붕괴를 언급하고 국방부장관이 김정은 제거작전을 언급하며 한국군이 직접 참수작전에 나설 뜻을 흘리고 있다.[53]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없이 착수하긴 어렵고 아마 외교전을 펼치고 있을 터이지만 중국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미국이나 중국도 자신들의 의도대로 한반도 상황을 이끌기 위해서는 한국이 선수를 치기 전에 먼저 김정은 제거작전에 양국이 합의해 실행에 나설 수도 있다.

8 현실과 전망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북한의 핵개발이 정확히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뭐에 쓰려는지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고 또한 그에 대한 연구도 별로 되어있지 않는지라 정확한 사정은 이 분야 전문가들도 잘 모른다. 더구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북핵에 대해 보유를 막는 데에 초점에 맞춰져 왔지 정작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한 정책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지라 더욱 그렇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항들을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북한의 핵무장 능력은 양적/질적으로 과거 '10기 미만의 항공기 투하용 고농축우라늄 폭탄'을 보유했던 남아공[54]보다는 고도화되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단 핵무기 수량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 등과 달리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수준의 핵소형화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핵무기는 수량 자체의 부족, 탑재수단의 제한성 등으로 인해 과거 미국이 이라크, 리비아를 상대로 했던 것과 같은 일방적인 선제 침공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외부세계를 상대로 자신들의 공갈협박에 무게감을 높이는 정도의 수세적인 효과만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굳이 공세적인 목적으로 활용된다면 한국을 상대로 한 기습적인 단기도발(예: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과정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반격을 위축시키기 핵 사용을 위협할 가능성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이제 내가 핵을 갖고 있으니, 싸움을 걸어도 반격하지 못하겠지?' 라고 오판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반영한다.[55]

현재 핵 확산 전문가나 국제정치학자들 대다수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북한이 조만간 핵전력을 보유하게 된다는 사실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은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 때문에 예방전쟁 등의 선제공격 방안도 논의되는 실정이다.

결국 이 상황에선 현실적으로는 '너도나도 핵무장과 같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자', 혹은 '핵우산을 통해 최악의 사태나 막고 보자' 가 그나마 해답이며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혹은 충돌)도 이를 염두해두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핵보유 자체는 인정을 하거나, 위협에 대해서는 큰 우려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북한이 비서방권, 반미 국가에게 핵기술이나 핵 자체를 수출하는 상황. 그리고 핵을 미사일에 탑재하는 데 성공하는 상황은 중국이나 서방권 모두 우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소규모의 핵이나마 소형화에 성공하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해 전쟁 상황에서 핵을 얻어맞을 경우에 대비하여 이미 킬 체인 및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상황이며, 미국은 주한미군에 THAAD를 배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고,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56]를 논의하고 있다.

2015년 8월 4일에는 중국이 북한 지역에 대해 한-미-러와 분할 통치를 하기로 제안한 문서가 공개되기도 하였다. 황해도와 평안남도는 한국, 강원도는 미국, 함경북도는 러시아, 나머지 지역 전체를 중국이 장악하고 평양은 4개국 공동관리구역으로 하는 방안인데[57] 중국 스스로도 북한의 장기적인 체제 유지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통일한국친중화를 우려하여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거라면 모를까, 완충지대로 유지하는 정도는 검토해볼 만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보도 내용 [58]

작계 5015에는 북한의 핵 및 기타 대량살상무기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제거[59] 및 북한군의 공세 역량에 대한 섬멸작전 등은 포함됐지만 북한으로 진입하는 것에대한 고려가 없는 것 같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 보도 내용 1관련 보도 내용 2

한편 국방부는 5015 공개에 부정적이며 2015년 8월 당시 일부 공개된 부분도 각군 제대별 구체적인 작전계획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며 '작계 5015'를 2015년 안에 마무리 지으려는 상태이다. 다만 위에서 이미 미국이 북한에 대한 지상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명백하게 밝힌 이상 북한으로 진격하더라도 미국의 협조를 받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은 등 한계는 명백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기보사단 3개를 해체하고 7개의 여단으로 나누는 건 물론 그 병력을 보병군단에 배속하고 있을 정도.[60] 어차피 병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DMZ 이남에서는 방어전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북한의 핵실험이후 대북제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중국은 북한을 지속적으로 지원함으로서 국제적 합의가 점차 엇나가고 있으며 북한은 4차 핵실험 이후에도 더 박차를 가해 또 핵실험을 했음이 밝혀져 긴장도가 상승하는 중이다.

북한 외무성이 인터뷰에서 6차 ~ 8차 핵실험이 있을 것이며, 미국이 북한을 위협한다는 망발을 내놓았다.# 또, 2020년까지 최대 79개 제조 가능하며, 1~2차례 추가 핵실험하고 중단 선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있다.#

9 관련항목

  1.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사실 핵무기는 북한보다 남한에 먼저 있었다. 주한미군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전술핵 배치를 완료해 놓았고 이는 북한보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원래 비핵화 선언이나 핵무기 확산 반대는 북한이 먼저 주장했고 80년대까지 주장했다. 195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 1기 제12차 회의의 ‘조선반도 핵무기 반입반대 결정’이 있었고, 1986년 6월 23일 북한은 정부 명의로 ‘조선반도에서 비 핵지대, 평화지대를 창설할 데 대한 제안’을 발표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소련의 핵우산이 상실되고 나서 그에 따른 불안감으로 핵실험을 서둘렀다는 분석도 있다.
  2. 2005년에는 미측에서 2013년의 불가침조약 카드를 연상시키는 선제공격 포기 선언도 제시되었으나 북한은 이마저도 거부한 바 있다.
  3. 어떤 무기를 한 측이 갖고 있을 때 다른 국가도 같은 값의 투자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
  4. 모병제를 주장하는 측의 논지가 이것이다. 어차피 서울만 파괴되지 않으면 치명타는 아닌데 그냥 경기 북부 지역을 깔끔하게 시가전장으로 삼아 북한의 대군을 일단 지연시킨 뒤 바로 징병제로 전환해서 몇개월 정도 전쟁 준비를 한 다음 미군의 증원을 받아 반격을 개시하자는 것, 특히 고양,파주, 의정부의 신도시 또는 재개발 구역들은 건축물들이 시가전을 염두해두고 건축되어 북한군이 기동성을 최대(풉)한 활용하여 서울을 타격하려고 해도 지리멸렬한 시가전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
  5. 어떤 무기를 갖고 있을 때 동등한 투자로 이에 대응할 수 없는 무기체계.
  6. 탄도미사일도 다 돈이다. 현재 반미 국가들 중에 각종 미사일 체계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이란인 건 역으로 이란이 가장 돈이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7. 현재 미국의 MD 돌파는 오직 러시아만 가능한데, 그것도 토폴-M과 수천 발의 대륙간탄도탄을 때려박는 소위 물량전술로 해결하고 있다.
  8. 대한민국 보수 세력 일각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펼친 햇볕정책 덕에 북한의 핵개발이 가능했다고 주장하지만 기초적인 핵무기 생산 과정은 1990년대 초에 이미 완료됐다.
  9. 북한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의 부인이었던 탈북자가 쓴 자전 소설 '인간이고 싶다' 를 보면 방사선피폭된 남편이 무너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2006년 뉴스위크에서도 북한 핵개발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으로 북한 이공계 두뇌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증언을 다룬다. 김책공대 62학번의 경우 핵개발에 참여하며 거의 대부분이 사망하여 죽은 학번이라고 한다. 공밀레 항목 참조.
  10. 94년 제네바 협약에서는 2003년을 완공 기한으로 명시했었다. 결국 북한은 2003년에 NPT를 탈퇴하고야 만다.
  11. 그러나 사실 북한은 이때도 여전히 핵연료를 기폭시키기 위한 고폭실험을 계속 수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94년 (북미)기본합의 이전에 북한이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핵무기 1~2개와 2003년 10월 2일 북한이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선언한 폐연료봉 8,000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제작했을 핵무기 4~6개를 합하면 모두 6~8개가 된다.# 경수로 제공이 완료되고 평화협상을 체결했어도 북핵 문제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
  12. 다만 이 기사가 나온 2004년의 예측과는 달리 2014년 현재 북한의 핵전력은 "오는 2010년까지 플루토늄 핵무기 235개(1,182㎏), 우라늄 핵무기 18개(450㎏) 등 최대 253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 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또한 2006년 대포동 2호 역시 대차게 실패했다(참고로 리틀보이와 팻맨이 4톤이다). 스틸레인 같은 웹툰에서야 수소폭탄도 개발했다 하지만...
  13. 이수혁 차관보 with 켈리 차관보/북측 김계관 외무성 부상, 왕이 부부장.
  14. 후에 장관을 지낸 송민순 차관보 with 크리스토퍼힐 차관보/김계관, 우다웨이 부부상.
  15.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날 오전 10시 35분께 함경북도 화대리 지역에서 진도 3.58에서 3.7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다.
  16. 당시 미국 몇몇 언론에선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느니 위력이 없다면서 사실은 다른 걸로 시늉만 내고 이걸 빌미로 뭔가 외교적 성과를 얻으려고 쇼한 게 아니냐는 분석 및 주장도 나온 바 있다.
  17. 흥미롭게도 대체적으로 남한의 진보세력은 (주장에서 한중, 한러 수교에 대응된다고 여겨지는) 북미, 북일 수교와 평화협정의 체결을 냉전 체제의 종결로 받아들이는 한편, 보수 세력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각 북한과 미, 일의 해석에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18.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 1차 핵실험의 태도, 그리고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돌출 행동으로 뚱돼지 김정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19. 은하 로켓 발사 직후 이런 짓을 벌인 것은 ICBM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날릴 만한 기술력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게 경고하는 성격이 크다.하지만 만약 미국을 공격하게 된다면 북한은 지도상에서 없어질지 모른다.
  20. 보수측은 PSI참여도 05년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며 이명박 정부는 전정부의 설거지를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진보측은 노무현 정부에서 부시 전 미대통령의 PSI 참여요구를 "PSI에 전면적인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PSI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고 동북아시아에서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사안별로 협의해 나가겠다" 정도 발언으로 틀어막았는데 (CNN은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 설득에는 실패, 말은 얻었지만 행동은 얻지 못했다"고 보도), 이명박 정부는 친미정책의 일환으로 스스로 PSI 전면참여를 천명해 놓고 논란이 되니 노무현정부 탓을 한다는 입장이다.
  21. 실제로 북한은 식량, 비료 지원 중단 등의 조치를 대북 봉쇄에 따른 제제의 일환으로서 해석하는 감이 있다. 보수측에선 이건 참여정부 때부터 있던 일이며 참여정부 스스로도 이미 06년 이전에 실제적 제제 조치로서 식량, 비료를 중단했다#고 본다. 한편 진보 측에서는 해당 항목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비난 부분은 식량, 비료 중단 조치만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총체적 대북정책의 실종을 지적한 것이기에 참여정부때도 식량 비료를 중단하기도 했었다는 것만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문제를 두둔하기는 어렵다고 여긴다.
  22. 다만 실제 플루토늄의 확보에는 원자로를 돌린 후, 수개월 동안의 재처리 공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을 선언한 2013년 4월 기준으로 북한의 플루토늄 재고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약 2년 후, 그것도 겨우 1개 추가되는 정도에 불과해진다. 요컨대 당장의 위협은 아닐지라도, 한국과 국제사회 입장에서는 수년 내에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할 입장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23. 이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국방/정보당국과 상당수의 학자들은 북한이 헤커 박사 일행에게 공개한 농축시설 이외의 비밀 시설이 다른 지역에 존재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24. 이러한 예상에는 2010년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던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25. 다만 핵실험에 따른 인공지진파의 규모는 측정장소, 기관에 따라 편차가 존재하며,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연구기관과 민간 학자들은 폭발력을 진도 5.0~5.1 이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지진파 진도 0.1의 차이는 폭발력 기준 2배 이상의 차이를 내므로, 결코 가볍게 볼 사항이 아니다. 이 평가가 맞다면 3차 핵실험 당시의 폭발력은 12~15kt 이상으로 거의 히로시마급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26. 북한은 1990년대 파키스탄에 로동 탄도미사일의 기술을 수출하는 대신, 파키스탄의 우라늄농축 기술과 핵탄두 설계 방식 등을 전수받은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27. 게다가 문제의 보고서는 원래 비공개 기밀문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담당자의 실수로 공개 문서로 분류된 것으로 나타나 당시 하원 청문회에 참석했던 미군 당국자들을 당황시켰다.
  28.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경량화' 달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핵실험에서 폭발력이 낮게 나타난 것은 북한이 2차대전 시절의 초보적 항공기 투하 핵무기는 생략하고, 처음부터 미사일 탑재를 위해 설계된 소형 탄두를 갖고 실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판단은 알아서...
  29. 서태평양을 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무수단의 경우 시험발사 7번중 6번이 실패할정도만 계속해서 시험발사하고있다 .
  30. 다만 해당 발언들은 제4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 전환을 2015년보다 이후로, 그것도 '조건에 기반한'이라는 명분으로 구체적인 시일을 명시하지 않도록 결정한 시점 직후에 나왔다. 이 점에서 전작권 전환의 재연기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도 존재한다.
  31. 다만 기존의 핵무장국들이 첫 핵실험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급에 해당하는 10~20킬로톤급의 폭발력을 기록했던 반면, 북한은 2013년의 세번째 핵실험에서야 그와 근접하는 폭발력을 기록했음을 고려할 때, 여전히 수년 이상의 기술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게다가 미사일에 장착할 정도로 탄두 크기를 줄였다고 해도, 미사일의 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고열 등의 각종 기술적 장애까지 극복하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32. 지금까지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들 가운데 파키스탄을 제외한 대부분이 플루토늄을 핵무기의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3.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일성) 수령님께서 이곳에서 울리신 력사의 총성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34. 삼중수소는 그램당 3만달러나 할 정도로 매우 비싸고 대량으로 구하기 어려운 물질이지만 열핵폭탄 제조에는 값싼 리튬을 대신 사용한다. 핵분열 때 나오는 대량의 중성자로 리튬을 삼중수소로 원소 변환시켜 핵융합에 사용한다.
  35. 2014년 10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갖고 있고, 이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1톤이하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말임.그런데 어짜피 개인적인 사견일뿐이다
  36. 기체 자체가 50년대의 항공기이고 후기생산분을 도입했다 쳐도 '그' 소련에서도 80년대에 전량 도태된 항공기이다.
  37. 냉전 초기의 핵폭탄은 크기가 커서 억지로 넣기 위해서 5톤을 싣는 놈도 있었다. 근데 이놈은 액체로켓이라 발사도 20시간가까이 준비했으며, 돈도 엄청나게 먹어서 당시 강성하던 소련의 국방예산을 무지막지하게 먹어서 서둘러 교체될 정도였다.. 현용 러시아의 미사일인 SS-18도 사실 3톤은 조금 넘게 싣고 다닌다
  38. 위의 ICBM은 말그대로 대륙을 건널정도의 사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최대탄두중량이 작은거고 코앞인 대한민국에 날린다면 연료량을 줄여서 그만큼 탑재중량을 더 늘일 수 있다.
  39. 최근들어 계속 휘청거리는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일본도 아직까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특히 일본이라고 미국에 순종적인 것만은 아니고, 반미를 부르짖는 극성 우익도 다수 존재하는 만큼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핵무장할 경우 다시 70년 전의 말 안듣는 일본을 상대하느라 골치아플수도 있다.
  40. 만일 이게 진심이라면 나 자살하겠소!!랑 똑같다. 실제로도 같은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가 동시에 덤벼도 이기기 매우 힘든나라가 중국인데 북한따위가 협박을 한 것이다....
  41. 그런데 이러한 양면적인 입장은 한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3각 군사동맹을 경계하는 것으로, 북한이 괜히 핵을 보유해서 3국이 비대칭적 군사 우위를 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해당 발표에서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 일본, 한국 등은 비대칭적 대응으로서 북한의 위협에 군사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 등의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고 논평하였다.
  42.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입장 선회는 북한의 핵 보유를 어느 정도 선에서 인정하는 형식으로 타협하려는 로드맵의 초석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에는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 사실화한 상태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러시아도 그동안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해 오고 있다.
  43. 미사일 발사체 기술은 어떻게 얻을 수 있어도 핵무기는 절대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44. 하지만 독일은 냉전 직후 전범국가로서 경계를 받아 왔으며, 통일 당시에도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던 특수성을 갖는다.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국력이나 인구 측면에서 러시아에 자력으로 맞설 재래식군사력을 건설할 능력이나 의지가 희박한 실정. 이러한 점들이 냉전 이후에도 미국이 굳이 유럽에 러시아를 견제할 전술핵을 남겨두고 있는 근거인데,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손꼽히는 한국의 상황을 이들 국가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45. 결정적으로 이런 전술핵탄두를 탄두로 쓰는 지하공격용 GBU-28이나 그냥 지상군 타격용으로 쓸 B-61 Mod 12나 모두 레이저나 GPS 유도, 관성유도로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아니, 얘초에 이것들을 개발하면서 얻은 성과들이 JDAM으로 이어졌다(...)
  46. 이 1994년은 주한 미 대사관에서 남한에 있는 10만명 넘는 미국인을 전부 철수시킬 준비를 하고 주한미군도 비상이 걸려서 바빴던 시기다. 당시 카투사로 복무했던 중년 남성들이 아직도 그 시기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고들 할 정도. 미 국방부에서 자체 워게임을 갖가지 시나리오를 다 상상해내며 시도해봤지만 적어도 미군 사상자만 5만 명. 한국군과 한국 민간인은 합쳐서 수십만이 나올 정도의 큰 피해와 비용부담이 예상되자 결국 흐지부지되고 지미 카터가 나서서 김일성을 암살(...)하며 썰로만 끝났다. 남한 또한 전쟁으로 인해 적어도 수만의 사망자와 수백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낼 게 분명해서 결사반대함으로써 결국 보류됐다. 이를 두고 당시 존 샬리카시빌리 합참의장이 한 말이 유명한데, "수술은 성공해도 환자는 사망한다."
  47. 1994년 당시 영변 폭격을 검토했던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전 한국을 방문해서 "선제공격을 통한 북한 핵의 제거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48. 이 경우 국경지대의 북한군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 편을 들 것이 거의 확실시될 경우 중국의 개입에 맞춰 선공을 가해 미리 정리하되 북진은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49. 단 북위 40도 정도는 중국이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UN을 앞세워 이 문제를 논하게 될 것이다.
  50. 도리어 개전 그 즉시 평양이 불바다가 되어 수뇌부가 모조리 전멸돼 북한군은 급속도로 와해될 가능성이 더 크다.
  51. 대만, 오키나와, 한반도에서 대규모 공군, 항모 소속 항공대가 출진해 중국의 각종 산업단지가 몰려있는 동부 해안 산업단지를 폭격하면 중국 경제는 나락으로...
  52. 미국의 RAND 국책연구소 평가로는 북한은 2020년에 핵무기 실전배치 등 늦어도 2025년 까지는 미국에 대한 실질적인 핵공격 능력을 갖출거라고 판단하고 있고 2017년 취임하는 차기 미대통령에게 5대 안보과제를 제시하며 제 1순위를 북핵문제 해결로 꼽고있다.
  53. 현재는 북한이 핵폭탄을 사용하면 이에대한 보복으로 참수작전을 실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 북한이 핵을 선제사용하지는 않을 것이고 참수작전은 북한이 핵사용 아닌 재래식 대규모 남침시에도 실행될 것이고 북한이 먼저 선공하면 당연히 북한 지도부도 안전한 곳에 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마도 "북한의 핵사용이 임박한 것이 확실"하면 예방적으로 참수작전을 실행하겠다는 식으로 남한정부의 수사가 바뀌면 남한이 선제적인 김정은 제거작전을 추진하는 징후로 볼 수있다.
  54. 이는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는 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고수했던 백인정권 시절의 일이며, 넬슨 만델라의 흑인 정부로 민주화된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했다.
  55.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핵전쟁을 비롯한 전면전쟁의 가능성은 낮아지는 대신, 외교적 기싸움의 형태로 제래식 군사력을 이용한 제한 국지전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를 국제정치학에서는 '안정-불안정의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1998년에 차례로 핵실험을 실시한 인도, 파키스탄은 이듬해 양국의 오랜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산악지역 카르길에서 2개월 동안 국지전을 벌인 바 있다.
  56. 한국이 무장하는 데 있어 실제 이유는 미국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나 당장 내세우는 명분은 일단 북한이기 때문이다.
  57. 해당 링크의 지도 참조.
  58. 실제 해당 보도 내용을 보면 미국은 북한 지역의 안정화를 위한 증원군의 투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방위가 목적이라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한국이 부족한 해공군과 정보/전략자산만 지원해도 중국까지 막는 게 가능하지만, 북한 지역의 안정화 및 방위는 한국만으로는 무리여서 미 지상군의 투입이 필수이다.
  59. 과거와 다른 점은 김정은 체제 자체에 대해서는 제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즉 김정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며 이 과정에서의 제한적인 지상전은 수행이 가능하다.
  60. 기동부대는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철칙이며, 보병군단에 배속되면 결국 보병전력에 화력과 방어력을 보강해 주는 역할밖에 못한다. 그나마 사단급이면 독립적으로 운용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지만, 여단은 기본적으로 연대처럼 독립운용보다는 배속운용을 상정한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6개 기보사단을 다 없애려다가 기동군단 하나도 없으면 적의 장갑군단에 맞서거나 유사시 우회기동전이라도 펼칠 부대가 전혀 없게 된다는 반대로 축소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