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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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어린이날 더비에서 좌월 3점 홈런라뱅쓰리런을 치고난 후의 모습.

LG 트윈스 역대 주장
이상훈
(2003)
이병규
(2004)
조인성
(2005)
LG 트윈스 역대 주장
박용택
(2010~2011)
이병규
(2012~2013)
이진영
(2014~2015)
LG 트윈스 No.9
이병규(李炳圭 / Byung-Gyu Lee)
생년월일1974년 10월 25일
체격185cm, 85kg
출신지전라북도 김제시[1]
학력서울청구초 - 서대문중 - 장충고 - 단국대
포지션외야수, 1루수[2]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97년 1차 지명
소속팀LG 트윈스(1997~2006)
주니치 드래곤즈(2006~2009)
LG 트윈스(2010~ )
등장음악Queen - I was born to love you[3]
응원가L~G의 이병규[4][5]
보유 기록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6][7]
연타석 최다 안타 10안타[8]
역대 수상

1997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4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13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9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7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2005년, 2013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1999, 2000, 2001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2005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2001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득점상
2011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성구회
회원번호기록가입년도비고
62,273 안타[9]2012년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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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의 영원한 적토마
잠실 유일의 30-30 클럽 가입자

대표적인 별명은 적토마, 라뱅. 그래서 최훈 카툰에서는 적토마로 등장한다. 같은 팀 소속인 1983년이병규와 구별하기 위해 큰 이병규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큰 이병규로 검색하면 이 항목으로 온다. 당연히 1983년생 이병규작은 이병규라 불린다.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대한민국에서 갖다 맞추는 재주는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야구 선수. 주 포지션은 일본 진출 전에는 중견수, 복귀 후에는 주로 코너 외야수인데 성의없어 보이는 수비와 닥치고 휘두르는 배드볼 히팅으로 김성근 감독이 4할에 도전해야 하는 타자가 자기 재능에 만족하고 3할에 안주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른바 원조 4못쓰"게으른 천재"라는 비난 또한 함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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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그냥 비난이 아니라 그만큼 김성근 감독이 이병규의 자질을 아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김성근 감독 본인이 평생 맡아본 선수 중에 타자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복귀할 때 구단에 영입을 요청하기도 했고 이병규 또한 코나미컵에서 만났을때 제일 먼저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서 포옹(!!!)했다고.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장충고등학교 시절에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모교인 장충고등학교가 워낙 약체라 전국대회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동기인 신일고등학교의 강혁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었다. 당시 LG 트윈스에서 꾸준히 영입을 시도했지만 단국대로 진학한다. 고교시절과는 다르게 당시 단국대는 대학야구 강호였고[10], 아마 최다 타점 기록인 한 경기 11타점까지 기록하는 등 대학 야구 최고의 타자로 떠오르며 아마야구에서 이름을 떨쳤다. 고등학교때부터 이병규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던 LG 트윈스는 1차지명 주사위 싸움에서 이기자 주저없이 이병규에게 1차 지명권을 썼고, 결국 당시 박재홍의 신인 야수 최대 계약금(4억 3천만원)보다 1천만원 더 많은 4억 4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2.2 LG 트윈스 1기 (1997~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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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하며 5번 타자로 활약[11][12], 일본에 가기 전까지 한국야구에서 꾸준하게 성적을 냈다.

1997년에는 입단하자마자 3할타자 반열에 오르며 신인왕과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신동주최익성에는 뒤진 성적을 올렸기에 지금 팬들은 잘 모르는 논란거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드림팀으로 참가하여 병역을 면제받았다.

1999년에 기량이 만개하여, 30홈런 - 30도루라는 괴물같은 성적을 내며 30-30 클럽에 올랐다. 데뷔 이후 첫 두 자릿수 홈런 시즌을 30홈런으로 장식하며 장타율이 무려 2할이나 상승(...). 다만 이 시기가 역대 최악의 타고투저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지도. 1999년에만 30-30 가입자가 3명이나(이병규, 제이 데이비스, 홍현우) 배출되었고, 홈런으로만 한정해도 양준혁, 심정수, 마해영 등이 30개 이상을 쏘아올렸다. 이때 기록한 타점 수가 99타점으로 100타점을 넘겼더라면 3할-30홈런-100타점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두 자릿수 홈런에 6~70타점 이상을 칠 수 있는 타격으로 꾸준히 활약했다. 그렇지만 도루의 경우 2002년부터 겨우 8~10개를 왔다갔다 하다가 2006년에는 겨우 3개를 기록할 정도 급격히 감소해버렸다. 도루 감소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2003년 시즌 도중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발이 예전만 못해진 게 그 원인인 듯싶다.[13] 볼넷:삼진 비율도 계속 나빠져서 2004년 50 : 72, 2005년 34 : 62, 06년 31 : 65. 일본 진출 후엔 슬러거도 아니면서 삼진이 100개를 넘어갔다. 극악의 볼넷:삼진 비율 또한 변명하자면, 첫번째 이유로는 팀의 열악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1번과 3번을 넘나드는 우악스러운 타순 변경이 이유가 되겠고[14], 두번째 이유로는 선두타자로 나서는 경우 풀카운트까지 공을 끌어내여 후속 타자들에게 더 많은 공을 눈에 익게 하려는 임무 수행과정의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만 3번으로 가도 그 특유의 배드볼 히팅은 그칠 줄을 모르니 그냥 공에 배트가 끌려나가는 성향이라고 봐야할 듯. 그럼에도 3할대의 타율과 100개는 무난히 넘어가는 안타를 매 시즌마다 기록했다.

한편 꾸준히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기도 했는데,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동메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예선 일본전에서 9회 끝내기 상황에서 나온 안타를 잡아 홈으로 쇄도하던 2루 주자를 보살시키던 장면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이다.

2.3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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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자 일본으로 진출, 주니치 드래곤즈 와 3년 계약을 맺는다. 사실, 이병규 일본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심지어 팬들 중엔 FA 몸값 올리려고 언플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2006년 내내 주니치 쪽에서 "오랫동안 이병규를 찜해놨었음. 이번에 꼭 데려갈거임. 이병규 항가항가."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실제로 주니치에서 모셔가는 수준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주니치 쪽에서 이병규를 원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2007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는 팀의 간판타자인 후쿠도메 고스케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상태라 외야에 공백이 생길 것이 예정된 상태. 중장거리 타자이고 운동능력이 뛰어난 타입이라는 점에서 두 선수가 비슷한 유형이기 때문에 대체 선수로서의 매력이 있고, 적응기간 1년 뒤에는 후쿠도메의 자리를 메꿀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한 것.하지만 결론은 후쿠도메나 이병규나 둘 다 외국 가서 망했다.

첫 시즌인 2007년에는 후쿠도메 고스케, 타이론 우즈에 이은 5번 타순에 배치되었는데, 초반에는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며 문제없이 일본 무대에 연착륙하는 듯 했으나 서서히 약점이 노출되면서 결국 .262 .295 .370 9홈런 46타점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특히 이 해에 기록한 108개의 삼진은 이병규의 커리어 역사상 유일한 세자릿수 삼진 기록으로 남아있다. 포스트시리즈에서도 37타수 6안타로 영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6안타 중에 5개가 장타였고 3홈런에 11타점이 있었으며 일본시리즈에서는 이 타점들이 영양가 만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주니치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꺾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며 개인 통산 첫번째 우승을 맛보게 된다. 코나미컵에도 등장하여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조국(한국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성적을 내팽겨친 열사라고 칭하며 '라면병규 + 열사'를 합쳐 '라열사'라고 불렸으나, 결승전에서 쐐기투런포를 때려내 주니치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 때문에 코나미컵이 끝나자 매국노인 이완용과 합성되어 '라완용'이라고 불렸다(...).

후쿠도메가 시카고 컵스로 떠난 2008년에는 이전 시즌보다 훨씬 많은 16개의 홈런과 65타점을 기록했지만, .254 .293 .416의 슬래시 라인은 여전히 낙제점이었다.

그리고 3년차인 2009년엔 별다른 부상이 없음에도 계속 2군에 상주하다가 1군에 올라와 단 3경기만을 뛰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주니치 외야의 공백이 생기면 1군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2군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다 시즌을 마쳤다. 시즌 종료후 09년 성적은 타율.217(101타수 22안타) 8타점 3홈런 으로 FA먹튀 확정. 그렇게 이병규는 주니치를 떠나게 된다.[15] 일본에서의 통산 기록은 3년동안 타율 0.254에 28홈런 97득점 119타점.

이병규가 일본 무대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배드볼 히터인 이병규의 스타일 자체가 철저하게 약점을 파고들며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하는 일본 야구의 트렌드와 상극이었다는 의견도 있으나, 결국 이병규의 최대 무기였던 컨택 능력이 상위리그인 NPB에서 쉽게 통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니치 팬들에게는 야구는 못했지만 좋은 선수 쯤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병규가 팀에서 뛸 당시 주니치 팬들의 여론은 당연히 좋지 못했다. 마쓰이 히데키가 양키즈에 입단할 당시 받은 금액과 필적하는 계약으로 데려온 선수였고, 중계권료는 전경기 출장시 3000만엔 정도로 연봉의 상당부분을 한국방송사가 책임진(...) 이승엽과는 경우가 달랐던 데다가 입단 당시 주니치 계열의 일본 언론이 한국의 이치로라고 선전을 하면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있었다. 여기에 주니치의 이전 외국인 선수였던 알렉스 오초아[16]에 비해 공수 양면에서 너무나 떨어진 모습을 보인지라 그와 비교되어 폭풍처럼 까였다.

다만 포스트시즌에서 임팩트 있는 활약이 있었고, 첫 해 이후로는 기대치가 많이 내려간 상태에서 의외성 있는 안타들을 뽑아내는 점, 성격이 좋은 점 등이 높이 평가되어 야구는 못하지만 재밌는 녀석 쯤의 입지를 확보하였고 퇴단한 이후에도 이대호가 일본 진출할 당시에 해 준 조언 등이 번역되어 알려지면서 일본 야구를 존중하는 자세가 높이 평가되어 야구는 못했지만 성격이 좋은 선수 정도의 평가로 정리되었다.

어찌되었든 냉정하게 말하자면 일본 시절은 이병규라는 이름값이 무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3.1 라뱅 쓰리런

이 항목은 라뱅쓰리런으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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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한 명이 거슬리는 건 신경쓰지 말자
이병규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홈런 중 쓰리런이 유독 많았다. 이 시기 동안 그래도 자주 중계되던 이승엽 경기와는 달리 중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이병규의 출장도 드물었던 주니치 경기에서 이병규가 홈런을 쳤네 마네 하는 낚시가 인터넷 상에서 빈발했다. 그런데...

이~뱅규 싸요나라 호무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08년 5월 4일 한신 타이거스전 일본 최강의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 큐지에게 쳐낸 끝내기 홈런. 후지카와의 2008년 유일한 패배가 이 홈런 때문이었다. 심지어 캐스터도 하는 말이 '설마했던 이병규가!'(...)

그래서 야갤에서는 이병규가 타석에 서면 라뱅 쓰리런이라고 도배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미묘한 투런도 너무 적은 솔로도 지나치게 많은 만루도 아닌 적절한 임팩트의 밸런스 잡힌 쓰리런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라뱅 쓰리런!! 이후 쓰리런은 야갤에서 전혀 예상치 않은 뜬금포가 터졌을때 주로 쓰였다. 긍정과 부정적 의미를 가리지 않고.

한국 복귀 후 야갤에서 이 '라뱅쓰리런 놀이' 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병규가 타석에 등장하면 제목이 '라뱅쓰리런ㅋㅋㅋ'이라는 글이 폭발하며, 물론 진짜 치면 더 폭발한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라뱅 다음에는 바로 쓰리런이 튀어나올 정도가 되더니 드디어 '호접지몽' 를 패러디한 일체설까지 나왔다.

너무 남발한 나머지 이제는 별 뜻없이 타석에 등장하기만 해도 쓰며, 다른 선수가 쓰리런을 칠 때도 결정적인 장면의 경우 종종 사용된다.

  • 라뱅 쓰리런 놀이의 법칙

1. 일본야구가 진행 중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진행됐다. 이병규의 국내 복귀 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2. 홈런은 반드시 '-리런' 이어야 한다. 예)투런 홈런 = 투리런 or 2타점 쓰리런
3. '쓰리런' 다음에는 을 반드시 2~3개 이상 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4. 투수 앞 땅볼이든,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이든 라뱅의 쓰리런엔 제한이 없다.[17]
5. 야구가 아니어도 좋다. 소재에 제한은 없다. 예시
6. '장합쓰리런' or '장합쓰라린', '라뱅쓰라린'으로 대체될 수 있다.[18]
7. 주로 결과가 흥했을 때 XX쓰리런, 망했을때는 XX쓰라린, 가끔 관광의 의미로 쓰리썸이라고 한다.

2.4 LG 트윈스 2기

2.4.1 2010 시즌

재계약에 실패한 이병규는 2010년 1월 8일, LG 트윈스와 2년간 연봉 4억원 + 계약금 1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일단 외야 포지션은 박용택-이대형-이진영으로 주전만으로도 포화상태인데다가 '유망주를 잘 발굴해보겠다'는 박종훈 감독의 발언[19]과 이택근의 트레이드로 그가 설 자리는 매우 좁기만 하다. 오카모토 신야 이택근 이병규가 유망주인가

4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이병규의 외야 수비 장면 리플레이가 나왔는데, 허구연이 라면드립을 쳤다(...).

5월 12일, 청주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야갤 화력이 폭발했다. "죽기 전에 라뱅 쓰리런을 보는구나ㅠㅠ" 6월 25일 한화전에서는 6타수 4안타를 치는 등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줬다.

결국 페이스를 그냥저냥 유지하며 부상시즌을 제외하면 커리어로우 수준의 성적인 0.290 9홈런 64타점 3도루의 최종 성적을 기록했다.

8월 13일 넥센전에서는 4회말 넥센 유한준이 친 홈런성 타구를 중계진조차 홈런으로 착각할 정도로 잡아내는 멋진 수비를 보여주었다. 동영상에 홈런성 타구가 잡히자 좋아하는 조작범신경쓰지 마라!

2.4.2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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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스터 올스타 수상식에서

나는 잘했는데 팀이 병신

이병규/2011년 항목 참조.

2.4.3 2012 시즌

4월 7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개막전에 5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차우찬을 상대로 3회초 무사 만루의 찬스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4점짜리 쓰리런만루홈런(2012시즌 1호 만루홈런)을 기록하였다. 이날 이병규의 만루포는 LG의 6:3 승리의 결승타가 되었다. 그리고 이병규는 이날 4타수 1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이날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이병규는 "(김기태) 신임 감독에게 첫승을 빨리 안기고 싶었는데 개막전에서 승리해서 기쁘다. 나와 감독님,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있는 홈런이었다."고 밝히며 "많은 사람들이 올해 LG를 최하위 후보로 꼽았는데 누가 그랬는지 다 알고 있다. 그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애교섞인 경고(?)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고는 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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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당시의 코스별 타율. 정말 미스테리하다(…).[20] 박팡야?

그리고 6월 1일 잠실 한화전에서 한일통산 2,000안타 달성!!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00, 출루율 0.333, 장타율 0.400 41타점 52득점 5홈런으로 마감했다. 타격 생산력은 장타율이 겨우 4할에 턱걸이하는 등 (OPS형 타자가 드문 크보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심각하게 저하되었지만[21] 불혹이 눈앞인데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팀은 뭐 일찌감치

2.4.4 2013 시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회광반조가 뭔지 보여준 시즌
어느덧 40세에 진입했고 시즌 초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약간의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기록과 최고령 타격왕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게다가 2011년과는 달리 팀도 간만에 신바람을 맛보며 암흑기에서 탈출했다!

이병규/2013년 항목 참조.

2.4.5 2014 시즌

만 40세가 되어 맞이하는 시즌으로, 지난 시즌 부상 때문에 미뤄진 2000안타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병규/2014년 항목 참조.

2.4.6 2015 시즌

시즌 초반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4월 9일까지 8경기 20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이란 성적을 올렸다. 이에 쥐갤에서는 지게뱅과 같은 멸칭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4월 10일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2-1로 뒤진 8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라뱅 쓰리런을 치며 LG 트윈스의 팬들과 야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해당 경기는 LG가 2-5로 승리하여 결승타점의 주인공이 되었다.이와중에 야갤에선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쓰리런일수도 있다고 우울해하기도

그러나 그 이후로는 상당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심하게 까이고 있다. 양상문도 까이는데, 이유는 왜 이딴 놈 안내리냐고. 까이는 이유를 가장 두드러진 부분들만 정리하면 현재 부상으로 전력질주도 불가능한데다가 수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지명타자나 대타롤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 홈런이라도 쳐주면 모를까 매번 홈런을 치면 대타나 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대타나 지명타자 역할을 충실하게 하느냐면 그것 역시 아님에도 끝까지 1군에 두며 기용하니 연봉옵션 챙겨주기나 프런트의 관여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팬들에게는 이진영, 작은 이병규 등과 함께 철밥통들로 까이는 중. 5월 6일 두산전에서 1사만루 4-5로 추격하는 도중, 대타로 나와 병살을 적립시키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거기에 5월 13일 NC전에서는 또다시 대타로 나와 병살을 적립. 이 병살도 아주 가관인 것이 첫 판정은 삼진이었지만 이병규가 배트에 맞았다고 주장하며 파울로 정정, 다시 타격하며 병살이 된 것이다. 정당한 항의였고 번복된건 문제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루 주자가 작뱅이었다. 7말 1타 2병규

5월 13일 경기 종료 기준으로 성적은 63타수 11안타 1홈런 6타점 3득점 11삼진 3병살, 타율 .175 출루율 .221 장타율 .270. KBReport 기준의 WAR는 -0.68로 뒤에서 3위, 팀에서는 독보적인 뒤에서 1위로 눈을 썩게 하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같이 까이는 이진영보다도 못하고 있는 상태며, 7번 이병규는 타율이 낮고 삼진을 많이 당했어도 장타율과 출루율이 한참 높기 때문에 비교할 급 자체가 안 되고 있다.

5월 14일 NC 다이노스와의 5차전에 10회말 0-0 1사 1루 상황에서 손주인의 대타로 나와서 맥빠진 스윙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4구만에 삼진을 적립했다. 이젠 팬들이 '병살 안 쳤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하는 수준이다...

5월 15일~16일 SK 와이번스와 경기에서 두 번 모두 대타로 출전하여 각각 2루타, 동점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아직 비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연속 안타를 때려내자 여론이 어느정도 수그러들긴 하는 상황이다. 다만 팀은 5-2, 7-6으로 연패했다.

17일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선 선발 출장,3타수 1안타(2루타)를 기록했다.부활의 조짐이 보이는게 다행.....논란틀 올라온 다음날부터 잘하는거 보니 이놈 위키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22]

5월 1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2루타 포함 2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부상 때문에 이진영과 교체되었다. 최근 나흘간 7타수 5안타(2루타 3개)를 기록 중이다. 하필 부활의 날개를 펼치려는데 부상이 재발하여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이게 다 수비에 라뱅을 넣은 양상문의 잘못이다. 8월 6일 근황으론 2군에선 0.222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8월 26일까지 해서 퓨처스 타율은 0.253이다.

그러다 9월 1일자로 1군에 복귀했다.!!!!!! 확장엔트리에 끼어 올라온 것. 올라오자마자 넥센전에 대타로 나와서 오랜만에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이후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로 나오거나, 경기의 맨 마지막 타석에 나오고 있다. 여전히 잠실야구장의 LG팬들은 이병규의 등장에 환호하고 있으나 찬스때마다 번번히 젊은 투수들의 공에 맥없이 헛스윙만 하고 있어 LG팬들에게 분노와 안쓰러움을 주고 있다.

9월 21일 대타로 1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이후 10월 6일 시즌 최종전까지 10연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즌 최종성적은 53경기 92타수, 타율 .217, 20안타 1홈런. 그야말로 폭망하였다. 14년에도 기대 이하였지만 15년의 성적은 종전보다 훨씬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팬들은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평가.

이후 이진영과 함께 40인 보호명단서 제외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어차피 내놓아도 안데려가는걸 이라고 했지만 만약에 진짜 데려갔다면 엄청난 난리가 났을 거다

KBO 대기록 중 하나인 3000루타 1000타점 1000득점에 28루타, 28타점, 5득점차로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고 있는데, 사실상 마지막 시즌인 2016년에 달성할지 여부도 하나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40인 명단과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못 들어간 걸로 보아 16시즌 중 1군 출전 가능성도 낮은 현실.

2.4.7 2016 시즌

FA계약의 마지막해, 팬들은 분명 '적토마' 이병규를 그리워 한다.

FA계약의 마지막 시즌인만큼 2016시즌 종료 후 은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은퇴 암시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시무식 때 1차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게 밝혀졌다. LG 팬들 사이에서는 '이제 진짜 마지막 시즌이구나' 라는 생각이 확산됐다.

오키나와에서 진행되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한 듯하다. # 양상문 감독은 컨디션이 올라오면 오키나와에 언제든지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범경기에서는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고 2군에서 5월 12일을 기준으로 4할6푼2리의 맹타를 쳤다. 어차피 사실상 마지막이니 한번쯤 1군에 등록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양상문 감독이 이병규를 1군에 올리기를 바라는 팬들이 생겼다.

6월 18일 경기까지 퓨처스 리그에서 108타수 44안타, 타율 0.407를 기록하였다.

6월 21일 주간야구에서 이병규를 1군에서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얘기했는데, 양상문 감독은 이병규를 올리지 않는 이유를 이병규가 팀케미를 망쳐서 라고 말하였다. 최원호 해설위원은 이 사태를 대차게 깠고, 양상문 감독을 향한 팬들의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져가는 중이다.
하지만 어느 기사에선 이병규와 이진영이 팀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후배들 기를 죽여서 양상문과 프런트가 손을 잡고 이병규는 2군에 이진영은 2차드래프트로 풀어버렸다는 루머가 언급되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판단이 힘들다.

6월 말 이병규가 부상당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부상에 대해 음모론도 있었지만 실제로 재활 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8월 8일 경찰과의 퓨쳐스 리그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복귀전에서 1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복귀한 후에도 퓨처스 리그에서 5경기 13타수 7안타 4볼넷 0피삼진, 타율 0.538로 맹타를 휘둘렀다. 8월 16일까지 누적 타율은 0.421.

어쩌면 9월 확대 엔트리 때 1군에 등록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결국 8월 31일 기사로 확대 엔트리 시행 후에도 이병규 콜업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으로 유명한 패배 토템 꼴전드를 콜업해서 욕먹은 옆 집과 비교된다

과거 양상문이 롯데 감독을 하던 시절에 2군에서 맹타를 휘둘렀으나, 양상문 감독이 기회도 안 주고 떠밀 듯이 은퇴시켰던 박정태가 생각나는 부분이다.[23]

'100% 가동' LG, 전력질주로 가을야구 향하다
위 기사에 따르면 양 감독과 프런트는 이병규(9번)의 콜업 시기를 조율 중이다. 아직 확실한 시점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최소한 정규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이병규를 1군에 올릴 계획이다. LG 구단 고위관계자는 15일 “감독님께서 이 부분을 두고 매일 고민 중이시다. 확실한 점은 순위가 어느 정도 정해지는 시점이 되면, 이병규를 올린다는 것이다. 이병규가 끝까지 1군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전했다. 라고 한다.

10월 6일부로 LG가 4위를 확정지음에 따라 최종전을 앞두고 1군에 등록되었다. 10월 8일 두산과의 정규시즌 최종전 4회말에 니퍼트의 구원 등판에 맞춰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쳤으나 작뱅이 홈으로 들어오다 아웃되어 타점은 기록하지 못했다.민폐도 이런 민폐가없다.

1군 경기는 올해 처음인데다가 상대 투수인 니퍼트는 선발이 아니라 불펜으로 나와서 투구수도 많지 않던 시점에서 절묘한 안타를 기록했다. 이병규9의 클러치 히터로서의 능력을 느끼게 하는 스윙이었다. 다만 민폐 중의 민폐가 아웃을 먹어버렸지만 차라리 너가 은퇴해라 안할꺼면 차라리 등번호라도 반납해라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제외되었다. 부인 인스타에 의하면 여행을 떠난 듯 하다.

3 기타

  • 1997년 프로 데뷔전부터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다름아닌 경기 후 인터뷰때 했던 도발성 발언. 개막전에게 상대투수였던 해태 조계현에게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른 것 까진 좋았는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신인이라고 봐주지 마시고 성의있게 던져주셨으면 좋겠다." 이 흠좀무한 인터뷰에 해태 선수단은 물론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아주 가루가 되다 못해 나노분자가 될 때까지 까였을 경솔한 발언.[24] LG 트윈스 선수단도 다른 의미에서 난리가 났으며, 바로 다음날 코치진들이 직접 이병규를 데리고 해태 덕아웃에 와서 정중히 사과를 함으로서 일단락되었다. 참고로 당사자인 조계현이 이 때를 회고하기를 투수들이 많이 화가 나서 (빈볼을) 어디에다 맞히면 되냐고 물어왔지만, 조계현 본인은 이병규의 이런 당돌한 패기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지 말고 그냥 삼진으로 잡으라고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 이병규가 진짜 선배를 도발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일종의 말실수였다는 걸 이해해주고 넘어간 셈.
  • 1998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가 친 타구를 강동우가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무릎 골절을 당해 선수 생활을 망치다시피 한 부상을 입었을 때 손으로 목긋기 제스처를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당시 심각한 부상인줄 몰랐고, 코치에게 자신이 아웃되었냐고 묻는 의미로 사용한 제스쳐라는 해명이 있었다. 상기의 인터뷰 사건과 더불어 타 팀 팬들에게 이병규를 오해하게 만든 대표적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 계속해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듯 선배인 김용수에게 술먹고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면서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 하지만 2013년에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진출하면서 나아진 듯. 그러나 현재 LG 소속 선수로서 가을 야구를 가장 많이 치른 선수가 바로 라뱅이다. 믿기어렵지만 이병규는 3번의 한국시리즈를 포함 총 6번이나 가을야구를 LG선수로서 경험하였다. 그리고 주니치에서는 우승도 했다. 할건 다 했네
  • 같은 팀에 7번을 단 작뱅 이병규가 있기 때문에 가끔 가다 분신술을 썼다는 등의 개드립이 나오곤 하며, 실제로 2010년 5월 1일 SK 와이번스 전과 2011년 8월 28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한 이닝에 두 선수가 홈런을 같이 친 적이 있다.
  • 2013년 11월 24일에 방영된 런닝맨 초능력 야구 특집에 출연해서 예상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기 때문에 이병규를 처음 본 사람들은 호감이 간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마법진~!! 그리고 그 마법진 자세를 LG트윈스 러브 페스티벌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본인 말로는 두 아들이 런닝맨을 좋아해서 출연했다고 했으며, 한 번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악역의 이미지를 부각된 영화배우 안길강과 은근히 닮았는데 묘하게도 안길강은 LG 트윈스팬이다.이병규 아버님 성함도 길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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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인 아내를 두었으며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가족 사랑이 대단해 헬멧 오른쪽에 아내의 성씨와 두 아들의 이니셜을 쓴다.
  • KBO팬들 사이에서는 싸인매너가 별로 좋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다만 이는 옛날에는 싸인을 잘 해줬는데 한번은 싸인 받은 팬이 자신의 싸인 받은 물품을 비싸게 팔아먹은 이후 잘 안 해준다는 속설이 있으니 판단은 유보.
  • 유독 엠엘비파크디시인사이드 등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코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수로 꼽히는 불가사의한 여론이 많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안티들만 이러는게 아니라 충성도 높은 LG팬들까지도 이런 글을 올리는게 자주 보인다.(…). 이병규가 타격코치가 되면 "내가 치는거 봐봐! 공이 딱 오지? 그럼 치면 돼! 쉽지?" 라고 할 게 뻔하다는 게 그 이유. 이 점은 이병규가 확실히 자신만의 노하우로 놀라운 컨텍능력을 가졌지만 이런 스킬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게 아닌 이유도 있지만, 왠지 이병규는 성격상 이럴 거 같다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배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2015년 시점에서도 코치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무능하고 실패하는 코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능력보다는 철밥통이나 붙임성으로 자리를 지키거나 거기에 안주해 코치로써 자신의 코칭을 발전시키는데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거나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독불장군형들이 주로 이런 실패한 감독 & 코치의 유형임을 생각해볼 때 벌써부터 이병규가 코치하면 무조건 실패할 거라는 결론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며, 누구든 간에 지도자가 돼서 많은 공부와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잘하고 발전해나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니 벌써부터 지도자로 성공 & 실패를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병규가 은퇴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나 공부를 철저히 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게 필요하다.[25] 21세기부터는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도 네티즌들이 지켜보는 시대가 되었고 그런 변화에 따른 일종의 관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팀을 이끄는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부상등으로 LG 트윈스 2군에 내려가게 될때 2군 후배들이 불편해 하는 사항들을 구단에 즉각적으로 알려 시정요구를 했다. 2014년에 다리부상으로 3개월간 구리 챔피언스 파크에 내려가있을때 2군 후배들이 이른시각+짧은 식사시간으로 불편해 하자 구단 담당자에게 곧바로 보고해 식사시간을 조절케 했으며 1군 선수들에게만 LG 전자의 휴대폰이 지급되자 구단측에 2군 포함한 전 선수들에게 LG 전자 휴대폰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한 이도 이병규였다.
  • 진갑용이 201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선언을 하면서, 2016년에도 현역생활을 지속할 경우 2016시즌에는 최고령 야수가 된다. 심지어 2015년 시즌 종료 후 일본프로야구에도 이병규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없게 되었다. 야수 아시아 최고령.... 그러나 투수를 포함하면 최고령 선수는 아마도 될 수 없을 듯하다. 최영필이 은퇴하지 않는 한.... 바다 건너에 쿠옹이 계신다. 계획대로라면 50까지 뛴다니 상대가 안된다.
  • 2016년 KBO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류제국이 말한 바에 의하면, 2016년에 LG 트윈스가 우승한다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 외야 펜스 문이 열리며 이병규가 말을 타고 잠실 야구장을 달리겠다고 한다(...) 이에 박용택은 "몇 년 전부터 얘기해 왔던 것으로, 실제로 프런트에서 이 약속을 꼭 지켜주겠다고 했다"라고(...)과연? [1]
  • 정찬헌 - 정근우 빈볼시비 벤클에서 유래한 밈으로 라뱅이 시켰다가 있다. 당시 빈볼에 대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정찬헌이 단독으로 했을리는 없고 고참 선수가 시켰을 것이다 - 이병규가 시켰다 - 라뱅이 시켰다 라는 추측으로 유래한 것으로 추정. 이후 무슨 일이 터질때마다 "라뱅이...라뱅이 시켰다..."라는 쪽으로 간혹 튀어나오게 되었다. LG랑은 1그램도 상관없는 일이더라도(...) 그리고 402 대첩에서 LG가 이기자 라뱅이 이기라고 시켰다는 드립도

4 플레이 스타일

과거 최고의 호타준족 이제는 구자욱과 황재균, 박건우 같은 후배들이 잇는 계보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 높은 볼부터 거의 바닥에 처박히는 볼까지 일단 휘둘러서 공을 맞히고 보는 타입으로, 컨디션이 좋을 때의 이병규는 별 희한한 공까지 안타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인다.[26] 덕분에 통산 타율 자체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4위(0.314)에 올라 있으나, 볼넷 숫자 또한 적어서[27] 출루율은 커리어 내내 4할을 넘겨본 적이 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잠실구장을 쓰면서도 30홈런을 달성하는 등[28] 상당한 장타력을 과시했으며, 그 이후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정도의 홈런은 기록한 선수. 단, 2003시즌의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후 주루 능력은 많이 떨어져서 그 이후 도루에 관해 내세울 만한 기록은 없다.[29][30]

타격뿐 아니라 수비 면에서도 역대급의 외야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위치 선정이나 타구 판단에 상당한 재능이 있어, 타자가 공을 치면 낙구 지점에 미리 가서 만사 귀찮은 듯이 글러브만 살짝 뻗어 잡아내는 수비가 일품이다. 설렁설렁 하는 것 같아보여도 타구 종착지점에 이미 가 있기에 문제가 없다. 센스뿐 아니라 빠른 발과 강한 어깨송구는 개판[31] 등으로 신체조건 또한 좋아서, 많은 야구인들도 역대 외야수 중 손꼽히는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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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금지어에 이은 소위 라면수비의 계승자. 특징으론 잡지 못할 공은 세컨플레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특유의 성의없어 보이는 움직임과 합쳐져 싸이에 달린 댓글로 인해 '동네 슈퍼에 라면사러 가는 것 같은 수비' 라는 말이 퍼지며 까이게 되어 라면병규(라뱅)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타격부진과 한일전에서의 실책성 플레이를 하여 평소에 야구를 보지 않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병규의 타격폼도 홍성흔처럼 배트를 마구 흔들어 대지 않고 언뜻보면 성의없게 멀뚱멀뚱 서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수도...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장타율출루율
1997LG 트윈스126495.305151
(3위)
31
(4위)
8
(2위)
769822343.442.368
1998124499.27913931
(4위)
5
(5위)
967751136.415.329
1999131550.349
(2위)
192
(1위)
43
(1위)
8
(3위)
3099117
(2위)
3134.620.394
2000129527.323170
(1위)
281189999
(3위)
1452.482.383
2001133542.308167
(1위)
30
(5위)
4
(4위)
1283107
(1위)
2454.445.373
2002109389.293114250124354950.450.375
200344154.279439253020121.461.365
2004129496.323
(5위)
160
(3위)
262146495
(2위)
850.468.397
2005119466.337
(1위)
157
(1위)
24
(6위)
2975621034.455.388
2006120478.297142
(3위)
29
(2위)
175551331.406.344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장타율출루율
2007주니치
드래곤즈
132478.26212523194643023.370.295
2008105418.254106162166540123.416.293
200928101.2182230381405.337.255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장타율출루율
2010LG 트윈스117404.29011714196449336.396.345
2011127485.338
(3위)
164
(2위)
240167564228.487
(5위)
.375
2012118420.30012625154152522.400.333
201398374.348
(1위)
13019357439222.455.384
201462195.25149602252318.313.288
20155496.219217019305.323.255
2016111.000100000001.0001.000
KBO 통산
(16시즌)
17406570.311
(7위)
2043
(4위)
371
(4위)
38161972995147526.425.362
NPB 통산
(3시즌)
265997.2542534232811997151.386.290
역대수상
연도수상내용
1997년최우수 신인상 수상,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1999년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2000년
2001년
2004년
2005년
2011년올스타전 MVP 수상
2013년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부분 수상
  1. 포털사이트 등에는 출신지가 서울특별시로 되어있지만 실제 출신지는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이다. 어릴 때 서울로 상경하였다.
  2. 602 대첩 때 지명타자로 나왔다가 야수진이 전부 소진되자 9회부터 1루를 맡았다. 사실 LG에서 주니치로 건너가기 전에도 여러 게임에 1루수 출전 경력이 있다고 한다.
  3. 등장음악 중간중간마다 "오~~~~ 이!! 병!! 규!!"를 외친다.
  4. 기존 음악을 개사한 곡이 아닌 별도의 전용응원가. 가사는 "L~G의 이병~규 L~G의 이병~규 L~G의 이병~규 안타안타안타안타 이병~규". 원래는 서용빈의 응원가였으나 서용빈이 1999년 병역비리로 시즌을 접은 이후로 이병규에게로 응원가가 넘어왔다. 이병규가 일본에 있던 2009시즌엔 이진영이 잠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초창기 야갤에서 이승엽의 응원 구호, 타이론 우즈의 응원가와 함께 크보 3대 응원가로 칭해지기도 했다.더 이상 들을 일 없다
  5. 2014 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 대타 타석에서의 역대급 떼창 이병규 라는 선수가 LG라는 구단에서 어떠한 위상과 인기를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6. 만 38세 8개월 10일
  7. 2013년 7월 5일 목동 넥센전
  8. 2013년 7월 2일~7월 10일
  9. KBO 2,021 + NPB 253
  10. 당시 단국대는 최만호, 심성보, 강동우와 같은 프로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있었다.
  11. 1997년 신인왕 수상 당시 성적이 0.305/7홈런/69타점/23도루. 상식대로라면 테이블 세터로 기용되었어야 했지만 2번 자리에 동봉철(이때 김재현은 신장염으로 1시즌을 날림)이 있었기 때문에 4번 심재학과 하위 타선의 김동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5번타자에 자리했었다.
  12. 그리고 이병규는 2015년 시즌까지 LG가 배출한 마지막 신인왕이다. 안습그래도 KIA롯데보단 낫다 하다못해 가장 신인왕 늦은팀도 붙어있는 이놈의 엘롯기
  13. 당시 전문가들은 이병규가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지만 이병규는 그 다음 시즌에 완벽하게 부활한다.
  14. 실제로 한 해에도 1번과 3번을 왔다갔다한 적이 부지기수다. 1번과 3번의 임무가 천양지차인 점을 생각해보면 그 어려움이 느껴진다. 더 이병규가 대단한 것은 어느 타순에 가도 중간 이상의 결과를 끌어냈다는 것. 이는 같은 팀의 박용택도 마찬가지인데, 감독에 따라 1번과 클린업을 오갔으며 강한 2번 드립도 종종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4번 자리는 친 적이 별로 없는데, 2010년이 그나마 유일하다. 2001년부터 일본진출 전까지 4번을 친 선수들은 댄 로마이어(2001, 퇴출 후에는 양준혁)→매니 마르티네스(2002~03)→박용택(2004~06)이었다.
  15. 물론 방출은 아니고, 그냥 구단이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은 것. 본인도 한국 복귀시 '방출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16. 리그 최고의 강견이라 평가받으면서 주니치의 중견수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타선에서도 적당한 장타력으로 후쿠도메와 우즈의 뒤를 받치는 5, 6번 타자로 활약했다. 주니치와 재계약에 실패한 이듬해인 2007년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해 2년간 준수한 성적을 낸 뒤 은퇴했다.
  17. 예) 땅볼 시 "라뱅 땅볼쓰리런ㅋㅋㅋㅋㅋㅋ", 병살타가 나올 시 "라뱅 병살쓰리런ㅋㅋㅋㅋㅋㅋ" 등.
  18. 국내 복귀 후 추가된 항목. 삼국지 8의 한 장면을 캡처해 만든 이 짤방이 '야갤러 감별짤방'으로 사용되면서(정상인이면 '장합 쓰라린'으로 읽지만, 야갤러 라면 '장합 쓰리런'으로 잘못 읽는다.) 퍼진 말이다. '쓰라린'과 '쓰리런'을 한글로 썼을 때 시각적으로 비슷하기 때문. 그리고 미의 본좌와 헷갈리지 말자.
  19. 그런데 LG 프런트에서 필요한 건 안 사주고(선발투수), 자꾸 쓸데없는 것만 사다주니 문제...
  20. 이 사진에 나와있는 것은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핫콜드존을 도입해 스트라이크존 코스별로 타율을 매긴 것. 빨간색은 그 코스에 강하다는 표시, 파란색은 그 코스에 약하다는 표시 되시겠다.
  21. 특히나 코너 외야수라면 더욱 안 좋은 수치다.
  22. 한때 논란틀이 있었다가 현재는 사라진 상태이다.5월 15일에 붙었다가 얼마안가 떨어졌다.
  23. 박정태와 이병규의 공통점을 살펴보자면, 한 때 팀의 주장으로서 파이팅 넘쳤던 선수들이고,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쇠화가 오자 신인에게 기회를 주면서 등 떠밀듯이 은퇴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24. 2007년 김광현이 미디어데이에서 류현진을 가볍게 도발했을 때 먹었던 욕이 어느정도였는지를 감안하면 절대 과장이 아니다.
  25. 물론 이점은 이병규뿐만이 아니라 은퇴를 앞둔 선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긴 하다.
  26. 전체적으로 비판하는 논조이긴 했으나, GQ에서 김성근 감독은 '컨디션 좋을 때의 이병규는 이치로급 컨택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27. 연평균 40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28. 당시 도루도 31개를 해서 30-30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잠실구장을 쓰면서 30-30은 커녕 20-20을 달성한 선수도 이병규 포함 단 세 명뿐이다. 다만 30홈런을 기록했던 1999년이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9. 단 베이스러닝은 아직까지도 나이에 비해 빠른편에 속한다.
  30. 현재는 아예 주루가 안된다.즉,타격과 수비밖에 안된다는 소리.
  31. 6분 10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