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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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三區

1 개요

서울 동남권 소재 3개의 구를 말한다. 서쪽으로부터 순서대로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이다. 송파구 동쪽의 강동구를 포함해 강남4구라는 용어도 종종 쓰인다.

흔히 언론에서 강남3구란 호칭이 쓰이는 이유는 2가지인데 우선 1번째는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지역이라는 점이고, 2번째는 서울에서 보수정당 지지층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란 점이다. 원인과 결과 다만 2번의 경우 주요 선거 결과를 보면 강남구, 서초구가 여전히 보수정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반면, 송파구는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1]

다만 2010년대 들어 보수 정권의 국정운영 실패로 인한 피로감 증가와 강남지역으로의 젊은층 인구 유입 등에 의해 야권의 난공불락이라고까지 불리던 이 곳도 보수 세력 지지가 예전보단 많이 약화되어가고 있다.[2]

2 정치

2.1 특징

이 지역은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민정당을 위시한 보수 계열 여당이 아닌 신진세력이나 중도-보수 계열 야당[3]의 손을 들어준 적이 더 많은 지역이었다. 이는 당시 동네 자체가 젊은 연령층의 고학력자들이 주로 이주해살던 영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3당 합당신한국당 창당 등을 거쳐 보수 여당이 크게 재편되고, 강남 지역의 지가 및 주택 가격도 크게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정치 성향은 서서히 보수 여당 성향으로 변화되어간다. 그리고 이런 보수지지 성향은 2천년대 참여정부 시기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이 쏟아지면서 절정으로 치달았으나, 이러한 보수지지 성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를 거치며 한풀 꺾이고, 이후론 보수세가 서서히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2.2 보수화

상술했듯 역사적으로 볼때 강남 지역은 80~90년대만 해도 신진세력이나 중도-보수 계열 야당이 오히려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던 지역이었는데,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남구 선거구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가 떨어진 유일한 서울 시내 선거구였을 정도였다.[4] 그리고 1987년 대선에서도 강남 지역은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이 제일 높았고,[5]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민주정의당에 우위를 보이며 1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0년 통일민주당이 민정당, 공화당과 3당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으로 거듭나면서, 1991년 지방선거에선 민자당이 우위를 나타내는가 했는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국가안전기획부 흑색선전 유인물 배포사건의 역풍으로 서초 을을 제외한 5개 선거구에서 민자당 후보가 낙선하는 참패를 당한다. 일단 강남 을은 믿기지 않겠지만 홍사덕 후보가 있던 민주당, 강남갑과 송파지역은 정주영이 이끄는 통일국민당, 서초구 갑은 박찬종이 이끄는 신정치개혁당 같은 야권이 해당 지역을 싹쓸이했을 정도.[6] 하지만 1992년 14대 대선에선 김영삼 후보가 전국에서 얻은 42%보다 높은, 특히 서울의 평균을 웃도는 득표율(서울 전체 YS 득표율은 36.7%, 강남3구의 YS 평균 득표율은 43.1%)[7]을 보이며 다시 우세를 점한다. 그런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또 마음이 바뀌어(...), 민주자유당 정원식, 민주당 조순, 무소속 돌풍 박찬종 후보까지 총 3파전이 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당시 보수 여당인 민주자유당 정원식 후보가 아닌 오히려 민주당의 조순,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줬다.[8][9]

이렇듯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곳은 민정당계가 영 힘을 못쓰고 오히려 야권 출신들이 뒤죽박죽 접전을 벌이던 난잡한(?) 지역이었으나, 1996년 15대 총선부터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분열된 야권을 주시하고 총력전을 펼친 결과 강남구 을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14대에 이어 재선한 홍사덕과 새정치국민회의 김병태가 당선된 송파구 병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강남3구는 본격적인 보수계 정당 텃밭으로 거듭나게 된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김대중 후보가 전반적으로 10~20%씩 우세했던 다른 구들과 달리 송파구 병을 제외한 강남3구에서 이회창 후보가 2%(송파구 을)~19%(강남구 갑) 정도 앞섰고,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같은 경우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중 노무현 후보가 송파구[10] 포함 23개 구에서 모두 우세했지만 강남구서초구에서만큼은 이회창 후보가 앞섰다. 탄핵 정국 당시 치러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서울특별시 전체로 볼땐 열린우리당 돌풍이 불어 압승을 거두었으나, 이 지역들에서만큼은 겨우 1석(송파구 병)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2.3 보수정당 지지 절정기

사실 참여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강남지역에서 反열린우리당 성향이 그렇게까지 짙진 않았다. 그러나 2005~2006년 쯤을 전후해서 이곳은 한나라당 강세 지역에서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참여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정책이 규제 위주로 나오면서[11]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원하던 정책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고,[12] 이에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면서 이전부터 있던 反 김대중 성향이 차차 反 노무현 성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오세훈 당시 후보가 이 곳에서 7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으며 서울시장에 당선돼 당시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확실히 드러냈으며, 이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이때가 강남3구에서 반 한나라당 세력에 대한 반대성향이 가장 확실히 드러난 때로, 대선 당시 서울특별시 득표율 전체론 1위가 이명박 후보, 2위가 정동영 후보, 3위가 이회창 후보였으나, 압구정동, 대치동, 잠실7동, 서초동 등 일부 동 지역은 2위조차 이회창 후보였을 정도였다.

2008년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 당시에는 진보 성향의 주경복 후보가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이 지역에서만큼은 보수 성향의 공정택 후보가 우세를 보여 결국 전체 판세를 뒤집고 당선되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으로 출마한 오세훈 후보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 개표 막판까지 열세를 보였으나 막판 강남3구 유권자들의 몰표가 쏟아지며 대역전극으로 힘겹게 당선될 수 있었다. 심지어 '오세훈 일병 구한 강남 삼대장(...)'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그 당시 서울특별시 판세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한 셈. 그런데 웃긴게 두 사람 모두 임기를 못 마치고 도중하차한다. 그리고 다음 해 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걸면서까지 무상급식 투표를 밀어붙였을 때, 투표율 33.3%가 넘어야 개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결국 미달하며 개표하진 못했지만 서울에서 유이하게 강남구서초구, 이 두 곳만은 투표율 33.3%를 넘기며 오세훈 시장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2.4 동네별 정치성향

대형 아파트 밀집지역 혹은 부유층 거주지역의 경우 동별로 새누리당 득표율이 대체로 60~70%를 넘어간다. 특히 서울에서 가장 보수세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압구정동이 대표적 우세 지역으로 알려져있으며, 부촌으로 유명한 청담동, 삼성동, 도곡동 역시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인다. 서초구의 전통적인 부촌인 반포동과 법조 단지로 알려진 서초동, 아직 재건축이 되지 않은 개포동도 꽤나 새누리당이 우세한 지역.

그 외 학원밀집가로도 유명한 대치동은 우성, 선경, 은마아파트 등 비싼 아파트들로 모인 곳인데, 과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지역구로 이곳 또한 역시 새누리당세가 상당히 강하다. 2012년 총선 당시 강남 을에 출마한 정동영 후보가 을 지역 전체적으로는 39%를 얻으며 상당히 선전했지만, 대치동에서만큼은 20%대 득표율에 그쳤을 정도.[13] 나름 전국구 네임드의 정치인이었지만 얄짤없었다. 2000년대 중반쯤부턴 고가 아파트인 타워팰리스가 위치한 도곡 2동에서의 보수정당 득표율도 상당히 높아졌는데 심지어 투표소 별로 따지면 서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땐 보수정당 득표율이 88%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2012년 대선에선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무려(?) 14.7%를 얻기도 하는 등 과거에 비해선 주춤한 상태.[14]

송파구의 경우 전통적인 부촌이자 실버타운인 아시아선수촌아파트로 유명한 잠실7동, 또다른 대단지아파트인 올림픽훼밀리아파트가 있는 문정2동[15]과, 올림픽선수촌아파트로 알려진 오륜동 등이 보수정당 강세지역으로 알려졌었다. 사실 송파구가 강남3구로 불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잠실 신축 아파트 단지와 이 세 아파트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었을 정도.

반대로 송파구의 상당수 지역, 강남구 수서동이나[16] 젊은 층 거주가 많은 역삼동테헤란로 일대,[17] 서초구 양재동 등 원룸 주택이 많은 동네나 보금자리주택 및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많은 세곡동, 내곡동의 경우 전세, 월세로 사는 젊은 층들이 많아 민주당계 정당 지지율이 꽤 나온다. 직장이 강남인 경우 직장 근처에 살려는 젊은 직장인들이나 신혼부부 등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은 편이고, 반대로 보수정당 지지층은 몰표를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한 민주당계 우위까진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 지역 거주자들의 특징은 동별 투표율이 타 서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고,[18] 고가 아파트가 밀집하여 사업가와 임원은 물론, 고수입을 버는 전문직 종사자나 고위 공무원, 은퇴한 노년층 등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그들의 정치 성향에 의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보수정당 지지세가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한동안 이 지역의 부유층들이 분당신도시용인시 수지구 등으로 이주가 잦아졌을땐 그 동네들까지 보수화되는 경향을 띄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분당 지역의 부동산 하락세가 완연해지자, 반보수 성향의 표가 늘었다. 한땐 보수정당 표가 60%를 기록하며 강남권을 압도했으나 18대 대선에서는 보수 53%, 진보 47%를 기록하며 엇비슷해졌다. 그리고 용인 수지구의 경우는 분당보다 더 심하여서 이곳 역시 한때 보수 표가 60%를 넘기도 하였으나, 분당보다 부동산 하락이 더 컸기에 18대 대선에서는 보수 52%, 진보 48%로 추락하였다. 과연 원인이 부동산 하나 뿐일까[19]

2.5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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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들어서 소위 강남좌파가 담론화되고 있긴 하다. 특히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주통합당이 이 곳에 거물급 정치인[20]을 전략공천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새누리당이 석권하였다. 하지만 이 효과로 야권의 득표율도 상당히 상승하긴 했다.[21] 2012년 대선 때도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이어진 지지율 비율을 계속 이어갔다. 새누리당이 강남구에서 60.1%, 서초구에서 58.6%를 얻으며 여전히 강세를 보였으나, 문재인 후보는 야권 득표율이 2007년 대선 당시 20%에도 미치지 않다가, 보수-진보 양강 구도로 전환되자 박원순 시장처럼 강남3구에서 43%의 표를 얻으며 선전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교육감 재선거에서는 안정적인 교육 운영을 바라는 의사가 반영되어 보수성향 문용린[22] 교육감에게 60% 이상의 몰표(서초구,강남구)가 쏟아졌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박원순 시장이 강남3구에서 49.0%를 득표. 새누리당 소속의 정몽준 후보(50.4%)와 불과 1만1337표 차이로 '대단히' 선전했고 구별로 따지면 송파구에서는 53%대의 득표율을 얻어 정몽준 후보에게 앞섰고 서초구에서 47%, 강남구에서 45%로 선전했다.[23]## 여기에는 정몽준 후보가 네거티브에만 열중한 나머지 비전이나 설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삽질도 컸지만, 박원순 현 시장이 강남 3구 지역을 '적으로 안돌렸다는 점'도 컸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처음 당선됐을 때만 해도 강남지역은 '재건축은 다 물건너갔다. 우리만 엄청 조지겠네' 이런 분위기였으나, 오히려 재건축/리모델링 단지들(특히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 지역)이 박원순 시장 아래서 주민 동의만 하면 허용해주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별 잡음없이 예정대로 다 진행되었고, 거기다가 경전철에 한전부지-잠실 개발건까지 들고 나와서 이 지역에서는 우호적인 반응들을 꽤나 형성했었다. 또한 강남-반포-동작을 연결하는 9호선 라인 문제건도 해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시각이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 한명숙 후보가 출마했을 당시만 해도 강남3구 지역은 '대놓고 강남 적대시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된 셈. 또한 박원순 시장은 영동권 국제교류 복합지구(삼성동 코엑스 일대 지역 말한다) 개발 구상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 부분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대로 이런 선거 결과는 강남3구에게 박원순 서울시장이 잘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거기에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 등이 겹치면서 스스로 자폭한 면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세월호 사건 전 근소했던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들기도 하는데, 2010년 지방선거나 20대 총선을 보면 보수정당 후보가 심하면 2배 가까이 유리하게 나오던 지역도 실제론 낙선한 경우가 꽤 되기 때문에 여론조사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선전화를 잘 안쓰는 젊은이들의 의중이 잘 반영되지 못하는 여론조사의 한계라는 지적. 여튼 함께 치뤄진 교육감 선거에서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강남구, 서초구에서 각각 34.26%, 31.98%를 얻어 선전했다.[24][25] 여담으로 구청장 자리엔 모두 여성이 당선되는 진기록을 보여줬다.[26]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강남3구 지역 중 송파구 2곳, 강남구 1곳[27] 총 3곳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강남벨트도 더이상 무조건적으로 보수정당에 몰표를 주는 곳은 아니란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심지어 대표적 보수텃밭인 강남 갑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가 무려 45%를 득표하며 선전했다.[28] 게다가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에서는 야권(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이 새누리당을 앞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새누리당의 계속된 계파 갈등과 공천 파동, 박근혜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지고,[29] 반대로 세곡동, 내곡동, 위례신도시 등 새로 지은 아파트나 역삼동, 양재동 등으로의 젊은 층 유입이 더해지면서[30] 강남3구에서 야권 지지도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3 트리비아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강남3구에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이사왔거나 원룸에서 거주하는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의외로 많다.[31] 서울 최후의 판자촌인 구룡마을도 강남구에 위치해있다. 뭐, 이제는 임대아파트로 대체될 예정이지만. 또 진짜 부자라 할 수 있는 재벌들의 경우 강남이 아닌 서울 도심 인근 동네에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32] 일단 부유층, 상류층이긴 하나 재벌 수준까진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인식이 있는듯. 다만 저건 1,2세들 기준이지 재벌4세쯤 되는 사람들은 현재 강남에 많이 산다고 한다. 또 동 단위와 구 단위를 직접비교하는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부촌이란 인식 때문인지 강남3구 산다고 하면 오히려 속물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도매금으로 이런 취급을 받는데 불쾌감을 표시하는 강남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하자.

강남3구라는 말에 대해서도 지역마다 이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초구,강남구를 강남으로 치고, 송파구는 강남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강남구 내에서도 양재천 이북은 양재천 이남을 강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남구 관내 양재천에 놓여진 한 보행교의 경우 양재천 북측에서 건설을 반대해서 장기간 보류돼있다 건설된 예가 있다. 양재천 남측 빈민들이 넘어다니는게 싫다는 이유였다고.(...) 얘들은 속물 맞다.

4 관련 항목

  1. 송파구 중 비교적 부촌인 잠실동, 신천동, 문정동, 오륜동은 강남, 서초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지만, 삼전동, 석촌동, 거여동, 마천동은 오히려 진보 성향이 강한 곳이다. 선거구로도 송파구 병의 경우 과장 좀 보태서 진보 텃밭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
  2. 그런 점들이 극대화되어 보수정당이 참패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동작구를 포함시켜 강남4구로 칭하거나, 3곳 중 민주당계가 무려 2곳이나 당선된 송파구를 제외하고 서초구, 강남구, 동작구를 강남3구로 치기도 한다. (하지만 20대 총선 기준으론 동작구 뿐 아니라 강남구조차도 강남을에서 민주당계 의석이 1석 나왔고, 강남갑에서조차 더민주가 45%로 선전하는 등 격전지가 되었다.) 혹은 지리적으로는 강북이지만 정치적으론 보수정당이 우세했던 용산구를 강남4구라 치기도 한다.
  3. 주로 박찬종, 김영삼, 정주영 등이 속한 당을 많이 밀어주었다. 강남구 을 한정으로 한나라당 가기전 홍사덕 역시 지지가 높았다.
  4. 당시에는 중선거구제를 체택해서 선거구당 2명씩을 뽑았던데다가 여당에 의한 관권-금권선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시절이기 때문에 호남권이라고 해도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되기 용이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해당 선거에서 민정당은 꼴랑 27%를 얻었는데 그럼에도 서울지역 의석수 28석 가운데 13석을 획득했다. 그만큼 민정당이 떨어지기 어려웠다는 것.
  5. 그 당시 강남권 뿐만 아니라 서울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웬만한 중대형 아파트를 낀 동네에서는 모두 김영삼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 서울 전체 득표율 순위에서는 김대중 > 노태우 > 김영삼 순이었지만 강남권에서만큼은 김영삼 > 노태우 > 김대중 순이었다. 물론 애초 세 사람의 득표율차가 고만고만하긴 했지만. 자세한 건 아래 사진 참조.
    파일:13대 대선 서울특별시.jpg
  6. 그나마 YS의 최측근이었던 김덕룡(서초乙) 의원도 해당 지역구에서 1000여표 차로 근소하게 승리한 것이었다. 만약 표가 국민당 쪽으로 많이 가지 않았다면 서초 을에서조차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
  7. 사실 강남권의 反 김대중 성향은 대략 1987년 대선 때부터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1992년 대선 때 이 곳 강남3구에서 정주영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제친 지역이 꽤 됐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이나 잠실7동, 대치동 등.
  8. 단, 강남구청장과 서초구청장은 민자당이 가져갔다.
  9. 참고로 여당인 민자당 후보 정원식 전 총리가 서울지역에서 대패한 선거이며 심지어 강남, 서초에서조차 민자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구청장은 용케 당선됐다. 당시 서울 500여개 동 중 용산구 동부이촌동, 송파구 잠실 7동 단 2개 동에서만 정원식 후보가 1위였다.
  10. 송파구, 용산구는 상당히 간발의 차로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고 한다.
  11. 예를 들어 LTV 도입, 공시가격 6억 이상 보유자에게 물리는 세금인 종합부동산세 등의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규제만 한건 아닌데, 사실 땅값 잡으려고 최종보스 분위기를 풍기며 나온 분양원가제 공개 정책 같은 부분은 노 전 대통령의 반대로 결국 시행되지 않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그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자신들의 재산상 위협을 느꼈던 건 사실. 말이 부자지 실상은 가진게 아파트 밖에 없던 이들도 있었으니.
  12. 노 전 대통령이 집권 시절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에 반대되는 발언을 종종 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강남에 열등감 느끼는거 아니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실제로 대통령이 "강남 사람과 밥을 먹고 차 마시는 사람이 정책을 펴기 때문에 강남 중심의 정책이 나온다고 밝힌 바 있었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13. 당선자는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었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서 더민주 전현희 후보에게 떨어지고 만다.
  14. 이는 진보적인 성향의 의사, 변호사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역 주민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15. 가락시장 건너편에 있으며 이 동 역시 탄천 바로 옆에 있는 동네다. 문정동 로데오 거리와도 가깝다.
  16. 특이하게도 이 쪽은 중대형 단지에 비해 영구임대 단지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이 높다. 노년층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7. 특히 다세대 주택 위주의 도곡로테헤란로 사이 지역은 80~90년대에도 진보 강세 지역이었다.
  18. 정치 참여도를 보여주는 투표율 자체가 일단 높은데다 대형 아파트 내부에 투표소가 밀집한 경우가 있어 여타 동네보다 투표를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 사실 보수정권의 삽질도 한몫했다.
  20. 송파 을 천정배, 강남 을 정동영 등.
  21. 헌데 아이러니한건 민주당계 정당이 유리했던 송파 병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해버렸다는 것이다. 덕분에 당시 야권은 강남3구에서 단 1석도 확보하지 못하고 만다. 물론 송파 병의 경우 배우 출신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가 아들 유명세까지 더해 워낙에 네임드였고, 반면 민주당 후보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긴 했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선 김을동 후보가 떨어진게 함정.
  22. 모든 구에서 최소 6%(강북구)에서-최대 41%(강남구) 정도 앞섰다.
  23. 송파구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이 우세한 건 2002년 대선 이후 처음이다. 일부 지역구로 나뉜 국회의원 선거를 제외한 나머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24.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다른 지역에서는 곽노현 후보가 30%대로 박빙이였거나 앞섰는데, 강남구, 서초구에서만큼은 20% 후반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
  25. 게다가 보수성향 후보와의 격차도 좁혔다. (서초구 13%->3%) (강남구 15% -> 8%), 송파구에서는 37.89%를 득표해서 33.97%를 득표한 문용린 교육감 후보를 앞질렀다.
  26. 서초-조은희, 강남-신연희, 송파-박춘희.희자 돌림 당은 다 새누리당
  27. 강남을에서 전현희 후보가 야당 의원으로 24년만에 당선되었다.
  28.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김성곤 후보의 경우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더민주 전략공천위원장이었는데, 강남갑에 후보가 없자 서울에서 새누리당이 무투표 당선되는 꼴은 못본다고(...) 본인 스스로를 강남갑에 전략공천했다는 것이다. 그정도로 큰 기대도 안하고 나간 선거에서 45%를 득표했으니 강남에서 얼마나 반새누리 정서가 심했는지 알 수 있다.
  29.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으로 지지를 돌린 경우도 있었지만, 새누리는 싫은데 차마 민주당도 못찍겠다며 아예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영향인지 강남구 갑의 경우 투표율이 서울 꼴찌였다.
  30. 다만 반포동 같은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동네의 경우 젊은층 인구가 늘어나도 아직은 여전히 새누리당 초강세 지역이다. 아니 되레 보수지지 성향이 더 짙어지고 있는 판국.
  31. 이를 다룬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32. 주로 한남동이나 성북동에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