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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난... 인자한 미륵으로 살고 싶었어. 존경받고 추앙받는... 부처로 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젠 다 틀렸어. 시간이 없기 때문이야. 이제부터는... 부처가 아니라 인간 궁예로서 저들을 다스리려 하니 가슴이 아파. (중략) 내가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외롭고 분해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저 멀고 고단한 길을 결국 나 혼자 짐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야.[1]
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사실상 태조 왕건 전반부의 진 주인공. 궁예라는 인물이 사극에서 조명된 첫 사례.
김영철의 열연 덕분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수많은 명대사를 남겼으며 한 때 아이들 사이에 관심법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2] 김영철은 이전에도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 연기자였지만, 궁예 역 이후로 크게 인기가 폭발하여 2000년도에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중년 연기자 중 본좌급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다른 후삼국시대 배경 작품의 궁예 캐릭터도 김영철의 궁예 캐릭터를 못 따라갈 만큼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다만 장기간 안대를 착용하는 바람에 후유증으로 인하여 양쪽 눈의 시력이 달라져 부동시로 인해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사례 말고도 대부분의 애꾸눈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상당한 부담이긴 하지만.
태조 왕건의 궁예는 한국 사극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캐릭터다. 물론 광기어린 인물이 등장하는 거야 다른 사극에서도 종종 있지만, 이렇게 주인공급 인물이 광기까지 보이는 경우는 굉장히 흔치 않기 때문. 때로는 강단 있고 영명한 군주인 듯하면서도, 어떤 때는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광인과 같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그의 모든 행동이 정치적이고 확고한 결심 아래 움직이는지, 아니면 완전히 광기에 물들었는지도 종잡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해서 광기 자체는 독화살을 맞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생겼다가 한 도사가 지어 준 약을 먹고 사라졌으나, 궁예의 성격 자체가 처음과 다르게 많이 변했다. 기이한 카리스마를 느끼면서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역사서 상의 모습과 현대의 해석이 교차하는 수수께끼 같은 궁예라는 인물이 어떻게 초심을 잃고 몰락하나 표현했다.
8회에서 등장한 견훤과의 일기토도 있다. 11회쯤에 견훤이 수달을 상대로 청동기와를 던지면서 힘으로 제압하는 신이 있는데, 그 수달이 나중에 태봉국 장수 2명이랑 싸워도 삐가하니, 애꾸에 석장으로 24살의 견훤과 비등한 승부를 겨루는 게 그냥 본좌.
2 작중 행적
2.1 출생의 비밀 및 출사 이전
신라 북부의 요충지 철원성을 함락하고, 철원성에서 부처님의 나라가 건국되었음을 선포하면서 시작한다. 철원을 함락한 뒤, 왕륭을 제외한 호족들이 자진하여 궁예에 귀부하였는데, 궁예는 호족들이 바친 여인들을 물리면서 그들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선정을 베풀라는 일침을 날린다. 그리고 폭설이 내리던 날, 아직 귀부하지 않는 왕륭에 대해 종간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송악[3]으로 쫓겨와 유모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던 그 날을 회상한다.
궁예와 그의 유모는 신라군에게 쫓기며 송악 인근 세달사의 범교 스님에게로 가고 있었다. 신라군의 추격에서 벗어나 간신히 송악에 도착하였으나 유모는 고된 방랑길 때문에 몸을 상하여 쓰러졌는데, 이때 우연히 그 들을 발견한 왕륭이 그들을 거두어 자기 집의 방을 하나 내어주어 쉬도록 하였다. 이때 신라군은 이 들을 쫒아 왕륭의 집에 찾아가서는 역적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왕륭은 궁예가 그저 역적 누명을 쓴거라 생각하고는 신라군을 쫒아내버린다. 왕륭은 유력한 호족인데다 지역 통치자인 관계로 신라군은 어찌 못하고 돌아가 버린다. 그 직후 죽음을 직감한 유모는 그때서야 궁예가 가진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신라 왕실의 증표를 궁예에게 전달하고, 범교 스님에게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망한다. 궁예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유모를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 그 외 궁예의 유모가 죽는 날 왕건이 태어났고, 궁예와 왕건 둘의 기이한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왕건의 출생을 기념하여 왕륭은 동생 왕평달을 시켜 세달사에 제를 올리라고 하였고, 왕륭은 죽은 궁예의 유모를 거두어 왕평달로 하여금 궁예를 범교 스님으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궁예가 범교 스님에게 신라 왕실의 증표를 알려주자 범교는 한탄하면서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의 48대 국왕 경문왕으로[4] 47대 국왕 헌안왕의 사위였다. 헌안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었는데, 왕족이자 뛰어난 화랑이었던 김응렴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고 왕위를 잇게 하였다. 하지만 경문왕은 출중한 화랑이었지만 왕으로서의 통치에는 영 흥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왕위를 잇기 위해 반강제로 맺어진 선왕의 소생들에게도 흥미가 없었고, 그렇게 방황하다가 시골 어촌 아낙네에게 반하여 그녀를 후궁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그러다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아들이 바로 궁예이다.
하지만 총애에서도 밀리는데다 자식도 보기 어려운 정실 부인들이 궁예의 어머니를 좋아할 리가 없었고 당연히 궁예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문왕의 왕후들은 점을 보는 관리를 협박하여 궁예의 점괘를 흉하게 조작하였다. 점괘가 좋지 않자 대소 신료들의 여론도 좋지 않았고, 경문왕의 동생 위홍은 궁예의 처단을 권한다. 경문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위홍은 후궁전을 기습하여 궁예를 죽이려 하였으나 궁예의 어머니와 유모는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가 막다른 정자에 다다르자 궁예의 어머니는 정자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유모에게 궁예를 전달했는데 유모가 받는 과정에서 실수로 궁예의 눈을 찔렀다.
그러나 유모는 그 당시에 자신이 궁예의 눈을 찔렀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도피하다가 한 화랑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넘겼는데, 도움을 준 화랑이 바로 범교다.[5] 그렇게 범교는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 뒤,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고 불가에 귀의하여 다 잊어버리라고 권하였지만, 궁예는 스님이 되어 머리를 깎던 중에도 속마음은 신라 왕실을 향한 복수심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참고로 궁예가 세달사의 중이 되어 머리를 깎을 때 궁예를 데리고 법당으로 간 뒤 지켜보던 사람이 바로 종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장성한 뒤 그는 선종이라는 법명을 가진 채 세달사에서 7년, 외딴 산의 암자 3년 간 수행을 하였는데, 수행을 하면서 속세로 내려가 부처가 되어 세상을 구하겠다는 뜻을 품었다.[6] 그리고 궁예가 하산하고 세달사로 내려가던 중에, 까마귀가 그의 앞에 무언가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은 점을 칠 때 쓰는 상아로 만든 산가지 였고 거기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다. 궁예의 하산에서 동행하던 종간 또한 세상을 구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는데, 점을 보는 재주를 가졌던 종간은 이를 계기로 궁예를 왕이 될 사람으로 보아 궁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가 될 것임을 선언한다.
세달사에서 내려온 궁예와 종간은 범교 스님으로부터 떠날 생각을 갖게 되고, 범교도 그것을 알아 그렇게 속세로 내려가본들 소용없다고 다그치나 제자들을 말릴 수는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목적지를 눈치채 서라벌의 도선대사에게 가라는 말을 전하였으며, 그래도 스승이라고 마지막 선처로 서라벌에 왕륭에게 부탁을 해 놓아 궁예와 종간을 서라벌로 안내하도록 한다. 궁예는 종간과 함께 출생의 과거도 정리할 겸 도선대사도 보러 갈 겸해서 송악을 거쳐 뱃길로 서라벌로 가게 되고, 마침 왕륭은 상대등이 된 위홍에게 진귀한 물품들을 바치기 위해 서라벌로 가는 길이었으므로 왕륭, 왕건 부자와 재회한다. 왕건은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해 지휘가 흠잡을 데 없자 종간은 불안함을 직감하였고, 향후 궁예와 왕건은 상극이 될 것임을 궁예에게 조언하였으나 궁예는 왕건의 재주가 대단함을 감탄하기만 했을 뿐 종간의 조언을 물린다.
왕륭, 왕건 부자와 서라벌로 가는 길에 산적의 습격을 받아 종간과 무쌍을 펼치던 중, 위홍의 부하로 있던 견훤이 군대를 끌고 와 같이 산적을 진압한다. 물론 드라마에서의 각색이지만 후삼국시대의 주역들이 서라벌로 가는 길에서 조우했던 것이다.
궁예가 서라벌에 갔을 때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숙부 위홍이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으로서 권력을 휘둘렀을 뿐만 아니라, 궁예의 누이이자 자신의 조카인 진성여왕과 불륜행각을 벌이며 나라를 좀먹고 있었다. 궁예는 위홍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궁예 어머니의 소재를 물어보면서 동시에 위홍의 정계 은퇴를 권한다. 위홍이 정치에서 은퇴하여 스님이 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궁예의 예언은 현실이 되어, 위홍은 궁예가 떠난 다음날 진성여왕과 동침하던 중 복상사로 죽었다.
그 다음 궁예는 도선대사를 찾아가 자신의 앞날을 묻는데, 도선대사는 궁예에게 뜻을 이루겠으나 복이 박하니 천하를 얻은들 소용없다는 말만 남긴다. 훗날 백성의 마음을 얻어 나라를 세우나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심 때문에 폭군으로 변하여 멸망하는 궁예를 보면 놀랍게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언인 셈.
2.2 양길의 수하로 들어가다
이후 죽주(오늘날의 안성시)의 칠장사에서 비구니로 있는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주막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 기훤의 부하들이 들어와 깽판을 치자, 주먹과 목봉만으로 도적들을 두들겨 패서 쫒아내버린다. 다음날 칠장사로 올라가던 중,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신훤과 원회가 궁예한테 시비를 거는데, 종간은 원회와 일기투를 하여 이겼고, 궁예 역시 덤벼온 신훤을 제압한다. 궁예의 실력에 놀란 원회는 용서를 구하고, 궁예에게 기훤한테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어차피 갈 곳도 없던 궁예와 종간은 궁예의 어머니를 뵌 이후, 그 일대에서 장군을 자칭하는 산적 수괴인 기훤의 수하로 들어가게 된다. 칠장사에서 궁예는 어머니와 만나고, 어머니는 궁예가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았지만 이미 속세에 미련을 버린 뒤였다.
소승은 도저히 알지 못할 말씀이십니다. 오늘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라 하십니까? 소승은 이미 속가(속세)의 일은 잊은 지 오래랍니다. 인생은 짧고 부처님 만나기는 어렵다 하였습니다. 부질없는 망상에 이끌리지 마시고 수도에 정진하시구려. (방문이 닫기자 궁예 일행이 발걸음을 돌릴 때) 범교 스님께서 전하라 하십디다.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고,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다. 작은 번뇌의 끈 하나 버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큰 일을 이루려 하느냐?"[7] 하셨소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태조 왕건 9화에서 궁예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한 대사.
하지만 기훤은 살인과 약탈을 좋아하는데다 부상병들과 백성들을 그냥 내팽개치고 흥청망청 잔치나 벌이는 전형적인 인간 쓰레기였고, 궁예는 종간과 함께 부상병들과 다친 백성들을 돌본다. 별다른 댓가 없이 병자들을 돌볼 뿐더러, 심지어 부상당해서 식량을 얻지 못하는 병사에게 자기 식량을 선뜻 내어줄 정도로, 궁예가 그야말로 미륵과 같은 선행을 하는지라,덕분에 궁예는 기훤의 부하인 신훤과 원회 및 백성들의 민심을 얻게 된다.
이후 양길 세력이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괴산을 함락 시킨 것에 대해 경고성 서신을 보내자, 기훤은 노발대발하며 사자를 죽이려 하다가 수하들의 만류로 매질을 해서 돌려 보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훤은 세력 차이도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 문제는 병사 수도 많은 데다 갑주와 병장기도 제대로 갖추고, 장수와 군사 체계를 갖춰 훨씬 우월했던 양길군과 달리 기훤 쪽은 갑주 하나 없고 제대로 된 체계도 없이 그야말로 산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원회는 양길과 싸우려 하는 기훤을 만류하다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술 세레를 당하고 두들겨 맞는다.
그렇찮아도 포악하고 무능한 기훤이 맘에 안 드는 데다 어자피 전쟁해봤자 죽을 게 뻔한 상황인지라, 그날 밤 신훤과 원회는 쿠테타를 일으킨다. 그전에 먼저 병사들이 기훤의 심복들을 처치한 관계로 아주 쉽게 기훤을 살해할 수 있었다. 궁예와 종간 역시 기훤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도 빨리 쿠테타가 성공할 거라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여간 신원과 원회는 기훤의 부하들을 이끌고 인망이 두터웠던 궁예를 지도자로 내세웠고(14화), 이 곳에서 큰 뜻을 펼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궁예는 양길에게 항복한다.(15화)
양길이 정세에 대해 묻자 궁예는 남쪽은 견훤과 신라가 싸우고 있고, 북쪽은 호족들이 있으니, 고립된 동쪽(명주성 지역)을 도모해야한다고 말한다. 궁예가 맘에 들었던 양길은 궁예에게 셋째딸 미향을 시집 보내는데, 승려로서 살아간 궁예는 미향을 여인이 아닌 부처님의 제자로 대한다. 궁예가 말한 대로 동쪽을 도모하기 위해, 양길은 궁예를 변방인 석남사로 보내는데, 궁예를 감시하기 위해 평소에 신뢰하던 은부를 부하로 딸려 보낸다. 그러나 은부는 이미 궁예를 진정한 주군으로 여기고 있었고, 애초에 은부가 지적했듯이 세력만 불린다면 동쪽으로 확장할 수 있는 석남사에, 완전히 믿지 못하는 궁예를 보내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석남사에 파견된 궁예는 구휼 활동을 벌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평등 사상을 전파하며 병사와 백성들과 함께 생활한다. 여기서 궁예는 직접 밭을 갈고 백성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등 직접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1년여 만에 석남사 일대는 안정화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동시에 동쪽을 정벌하기에 충분한 군세를 모으는 데 성공한다. 거기다 은부가 궁예에 대해 좋게 보고를 해 주었기에, 양길은 이를 믿고선 궁예에게 병사 600명을 지원해주고 동쪽을 정벌할 것을 명한다.(16화)
궁예의 군대는 명주성을 제외한 동쪽 지역들을 평정하였고, 가는 곳 마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병자에게 약을 주는지라 수많은 백성들이 궁예군에 몰렸고, 궁예는 수천의 병력을 거느리게 된다. 문제는 구휼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니 명주성에 이를 때 쯤엔 서서히 군량미가 바닥나고 있었다는 것. 명주성은 방어가 견고하고 군사 숫자도 많은 관계로 신중하게 공략하기로 결정하는데, 이때 양길이 궁예를 북원으로 소환한다. 궁예는 북원에 가던 중 허월과 만나게 되었고, 북원에서 처음으로 미향과 첫날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은부의 계략 덕분에 양길의 정예 장수들인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을 데리고 갈 수 있게 된다.
이후 다시 군대로 복귀하던 중 다시 허월과 만나는데, 궁예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허월은 궁예를 가짜 미륵이라 외쳤고, 허월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한 궁예는 오히려 허월을 대접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궁예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궁예 마음속에 숨겨져있던 욕망과 분노를 지적하던 허월은 독주를 여러 병 비운 끝에 명주성을 궁예에게 주겠다는 기괴한 발언을 한다. 다음날 군량미가 다 떨어졌고, 명주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끝장인 상황인 관계로 궁예는 공격을 개시하기 전 원회를 사자로 보내는데, 알고 보니 허월은 명주성의 성주 김순식의 아버지였고, 허월은 아들에게 명주성을 궁예에게 주라고 명령한다. 덕분에 궁예는 피해없이 명주성을 접수하였고, 명주성에서 추가 병력들과 장수들(배현경, 홍유)과 물자만 지원 받고 그대로 김순식에게 명주 지역의 통치권을 남겨준 다음, 철원으로 이동한다.(17~20화). 여기까지가 1화 이전의 내용이다.
드라마 초반부의 궁예는 호쾌하고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는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헤아림도 깊고 지혜로워 창업 군주다운 면모 또한 보인다. 기훤의 휘하에 있을 땐 기훤의 무관심에 방치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해 주며 자신들에게 배급된 쌀도 내주는 배려심을 보여주었고 성남사에선 대장군인 양길의 사위이자 장수임에도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백성들과 함께 손수 밭을 갈고 일을 하였으며, 명주성을 공략하러 올 땐 군량미를 모조리 풀어 자신을 찾아 몰려들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철원성 공략에는 투항을 권유하러 갔던 사자가 성 앞 진영의 장수의 활에 죽은 채 돌아오자,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 "수많은 희생을 막으려 했던 성스러운 죽음이다. 도솔천에 올라 영생불멸 할 것이다."라며 기도를 해 주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송악에 궁궐을 짓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고, 과거에 인연이 있긴 하지만 일개 신하가 된 왕륭이 죽자 친히 문상을 가기도 했다. 또 적이 되었다곤 하지만 옛 정으로 양길과의 전투를 피하려 했고, 비뇌성 전투에서 양길이 패배하자 자신의 아내인 미향과 함께 조용히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권하기도 했었으며 이후 순행길에서 죽주의 태수가 화려한 식기에 기름진 음식을 내오자 "관리가 청렴해야 백성이 편하다."며 호통을 치며 상을 3찬까지만, 고기를 빼고 다시 차려올 것과 음식들을 구휼소의 병자들에게 줄 것을 지시한다. 여기까진 그야말로 미륵의 현신에 지혜로운 성군이었다.
2.3 아지태와의 만남, 그리고 미륵의 타락
하지만 아지태의 아첨을 가려듣지 못하고 자신이 진짜 미륵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가면서 백성과 신료들에게 옴 마니 반메 훔을 외게 하는 등 초심을 잃고, 서서히 권력에 타락해가게 되며, 미륵신앙을 권력 유지용으로 쓴다. 다만 권력욕에 시야가 흐려진거지 아직까진 제정신이었기에, 석총이 궁예는 미륵이 아니라며 대놓고 직언을 날릴때, 석총을 나무라고 경고할 뿐, 별다른 해코지는 하진 않았다. 물론 석총도 궁예가 초심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돌직구를 날린 것이었다.
사실 미륵신앙은 궁예와 종간이 처음부터 내세우던 것이긴 했지만 처음에는 분명히 민심을 모으고 수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극초반 허월이 명주를 바치기 직전, 궁예의 성품을 시험해보기 위해 궁예가 미륵을 자칭하고 있다고 도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궁예는 이를 숨기긴 커녕 오히려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미륵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당당히 밝힌다. 또한 초반부에 법회(24화)를 열었을 때는 미륵의 세계를 욕심이 없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만민이 평등한 세계라고 칭하는 등, 미륵신앙을 도구로 이용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전제왕권에 악용된 것은 아지태의 농간에 놀아나면서부터였고 여기에 놀아나는 궁예에게 종간은 백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자신들의 초심을 수없이 간언하나 모조리 씹혔다. 게다가 아지태의 허황된 북벌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높은 이상에는 작은 희생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아집이 생겼고, 나아가 '시간은 짧고, 미륵인 나는 가고자 하는데 백성들이 쫓아오질 못한다'는 답답함을 키운다. 초반에는 궁예가 탐욕을 버리고 미륵의 세계를 만들자고 했건만, 정작 중반부에 이르러선 궁예가 자신에게 모든걸 바치면 나중에 큰 상을 내릴거라는,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스런 발언을 해댄다. 이는 24화의 법회와 81화(석총이 이 화에서 철퇴에 맞아죽는다)의 법회 장면을 비교해 보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후 후백제의 첩자에게 영 좋지 않은 독화살을 맞고 여러날 사경을 해메다 깨어나지만 독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을 불신하는 정신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이 정신질환은 아지태가 주인을 갈아타려 시도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궁예의 인간불신에는 정신질환 이전에도 이미 그 단초가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는 아지태를 사형인 종간이 일부러 죽이려 했음을 눈치챈 것이다. 궁예가 의심가는 인물을 잡아 일부러 그랬는지를 추궁하였으나 그는 극구 부인했고 종국에는 혀를 깨물어 자결하고 만다. 심증을 굳힌 궁예였지만 더 이상 추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종간을 불러 이 일을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 직후에 독화살 사건이 발생한다.
궁예가 사경을 헤매는 일주일 동안 종간은 금강산 도인을 초청해 궁예를 치유하는 한편, 화살을 쏜 범인[8]에게 거짓진술을 받아냄으로써 궁예가 의식이 없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그의 총애를 받는 아지태와 왕건을 동시에 모반 혐의로 죽이고자 한다. 그러나 처형 전에 다시 깨어난 궁예는 자신이 실신했었던 일주일 간의 정무보고를 종간에게 올리게끔 지시하고, 두 사람을 모반 혐의로 옥에 가두었다는 보고를 보자마자 극도로 분노한다.[9] 이 대목에서 종간을 불러올린 궁예가 안대까지 벗고 맨눈으로(!) 토해낸 저승 다녀온 소감이 항목 제일 위에 나와 있는 대사다.
이어 "세상은 이제 다른 모습의 미륵을 보게 될 것이오."라며 독기 품은 선언을 한 궁예는 그 화려한 핏빛 데뷔를 이튿날 시행한다. 친국 자리에 모반 사건의 용의자로 끌려온 인물들인 아지태, 왕씨 일가, 그리고 진범인 후백제의 첩자들을 세워놓고 궁예는 압박면접 관심법을 감행하였고, 진범들 중 결국 극한의 공포에 질려 사실을 자백한 한 명만 살려보내는 것으로 깔끔하게 사건을 처리한다.[10] 종간이 일주일을 끈 사건을 이런 식으로 단 몇 분 만에 처리한 궁예는 종간을 비웃듯 흘겨보며 한 마디를 던진다.
"이렇게 간단한 것인데... 내원은 몰랐던 모양이구려."(76화 중)
이때를 기점으로 궁예는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공포만이 옳은 방법이다.'라는 생각을 굳힌다. 독화살 때문에 반죽음을 경험한 뒤로, 궁예는 '천하의 미륵도 언젠가는 죽으며,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나 없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왕건마저 지적할 정도의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정신이상으로 인한 실정으로 북벌은 고사하고 내정부터 악화되기 시작하며, 실정에 실망한 아지태의 주인 갈아타기-강장자의 최후-부인과 자식의 처형까지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 이어진다. 석총의 환영으로 인한 리얼타임 킬링 쇼(...)는 덤.
사상이 바뀐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궁예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궁예의 폭정에 한 몫 했다. 도인의 기치료로 간신히 깨어나긴 했지만, 그 후유증이 남아있던 것. 종종 고통이 찾아와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고, 독주로 병나발을 불어야 간신히 고통이 진정될 정도였다. 이런데다 죽은 석총이가 종종 나타나 궁예를 욕하니,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 일은 아지태의 배신에 이어 황후 문제[11]까지 소급되면서 인간불신의 극에 달한다. 권력의 단맛과 영토를 넓히는 야심으로 인해 관심법으로 외척이나 트집잡힌 신하에, 관심법을 쓰고 있는데 기침하는 신하 1과 열병식에서 비웃은 아녀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아내랑 아들까지 신료들이 다 보는 앞에서도 잔혹한 처형을 강행하며 북벌과 후백제, 신라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마치 진시황까지 연상케 할 정도의 폭군으로 돌변해버린다. 작중에서 궁예가 진시황을 본받아야 할 군주라고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개소리 집어쳐! 궁예가 진짜로 마치 진시황처럼 변했다.
이후 궁예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백두산 도인을 모셔와서 100일 기도 약을 지어먹기까지 하는데, 약을 막 완성한 백두산 도인의 독백에 따르면 궁예의 운명은 이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다. 그걸 거스르려 하니 자기도 끝날 날이 임박했다며 탄식하는 건 덤. 그리고 예견대로 궁예는 약이 세다는 경고에도 걱정 말라고 해놓고선 약을 먹고는 바로 객혈을 하면서 이건 독약이라며 약을 내온 도인을 죽이라는 등 정줄놓 상태에 빠진다. 대미륵이라고 자칭하던 그도 결국은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장면 중 하나.
약을 먹고 3일을 푹 잔 후 다시 일어나니 증상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예전 궁예의 모습과 다르게 성격이 변해버린 상태였다. 그야말로 사이비 종교 교주가 다 되어서 관심법 운운하며 사람들을 때려죽일 때는 왕권에 대한 엄청난 집착뿐만 아니라 폭군의 면모까지 보인다. 정신질환 자체는 나았으나, 이미 그의 성격은 정신질환과 무관하게 일찌감치 망가져 있었고 의심병이 도져 아내와 두 아들까지 죽이는 막장을 찍게 된다. 심지어는 궁예의 최측근이자 그 폭정을 최대한 은폐하려 했던 종간마저도 왕비 처형 이후로는 은부에게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 약을 먹고 치료되기는커녕 병이 더해져서 실성하셨네."라고 탄식할 정도이다. 예전에 궁예가 기훤의 수하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살육에 대해 심히 언짢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때의 궁예는 여인만 약탈하지 않았을 뿐이지 예전 기훤이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심한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뭐? 미륵 뭐어↗↗↗?!
역사상 가장 소름 돋는 주폭 연기 클라스
참고로 저 장면은 단순히 궁예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나타낼 뿐만 아니라, 궁예가 상당히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초반부의 궁예였으면 희생이 생긴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을텐데, 저기선 아군의 희생을 뭐 그럴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궁예가 서서히 맛이 가고 타락해감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인물이기 때문에 자기 부인과 아들을 마군이라 부르며 때려 죽일 때, 그리고 왕건이 반역을 했다고 말하면서 미륵관심법을 쓴다면서 추궁할 때는 그야말로 긴장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로 미친 인간인지,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어서 냉철한 감정으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를 행동을 한다. 또한 극 중 병이 심해졌을 때와 도사가 지어 준 약을 먹고 눈에 있는 다크서클이 생겼다가 지워져 있는데 이것은 정신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를 표현하는 것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위에 언급했듯이 약 먹은 뒤로는 광인에서 폭군으로 변했지만.
아무래도 스토리가 궁예가 죽고 왕건이 고려를 세워야 하니까 원래는 금방 죽을 캐릭터였는데 그 인기 덕분에 비중있는 캐릭터로 변해서 궁예의 등장이 1기 / 견훤과 왕건이 라이벌로 서로 대립각을 내세우는 2기 하는 식으로 나뉘었다. 덕분에 태조 궁예라는 이명도 얻었다. 실제 방영 당시, 궁예가 죽자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가 끝난 줄 알았다고 한다.
2.4 몰락한 미륵의 최후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다한 북벌을 그대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대제국을 이루시게. 그 말을 하고 싶어 아우를 보자고 한 것이야.""난 일찍이 아우를 죽일 수 있었어.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 왠 줄 아는가? 아우가 형보다 나았기 때문이야. 부디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다한 모든 것을 아우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아우가 말이야.(120회/제국의 아침 2회)[12]"
5:31 부분부터
그래서 죽음도 역사서와 다르게 <태조 왕건>에서는 비장하고 카리스마있게 영웅다운 최후로 각색했다. 죽기 직전에 왕건과 마지막으로 술을 나누며 하는 대사나 모습은 정말 명장면 중의 명장면. 참고로 이 장면은 김영철의 제안으로 만든 장면이라고... 왕건은 궁예를 끝까지 죽일 생각이 없었던 듯 '편히 쉴 곳을 마련했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나 궁예는 정말 편해지는 길은 눈을 감는 것 뿐이라며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가기 좋은 날씨라는 말에서 훗날 나오는 영화의 명대사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가 떠오른다. 또한 어떤 게임 종족의 전투기 조종사도 떠오른다.
이 장면에서 작가의 입맛에 따라 정사의 기록을 무시하고 자신이 미화하고 싶은 기록에 한해서만 '승자의 기록'을 들먹이면서 미화를 하려 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작중 궁예의 죽는 장면이 나온 직후 창작이라는 나레이션을 넣어줘서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했다. 사실 궁예란 인물의 기록이 워낙 적어 관점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릴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13]
게다가, 삼국사기의 기록이 궁예의 곡해가 나올 수 있을뿐더러 각색은 했지만 드라마 내에서도 사서에 기록한 궁예의 포악한 행동들도 그대로 묘사를 하고 있으니까 일방적인 미화나 왜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 캐릭터의 한계
초반의 궁예는 그야말로 현신한 미륵이었지만 한편으로 그 한계점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변에 종간이나 은부, 왕건 같은 충신들만 있었을 때는 별 문제 없었으나, 아지태라는 간신을 총애하게 되면서 그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3.1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독선
타락 이전부터 궁예가 가지고 있던 단점 중 하나. 궁예는 처음부터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했고, 광인이 되기 전에도 궁예의 목표는 여전히 세상을 구하는 것이었다(68회 마지막에 궁예가 독백한다). 문제는 그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 극 초반에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으나, 아지태를 만난 이후부턴 '대제국의 건설=세상을 구하는 방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나마 내실을 튼튼히 다지면서 천천히 확장을 진행했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겠는데, 문제는 전쟁[14]을 하느라 국가 재정이 약해진 상황에서 무리한 천도를 실행하는등,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계획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 많은 이들이 현실을 감안해달라고 간언했으나, 궁예는 이러한 간언을 모두 무시하며, 오직 아지태의 감언이설만 받아들였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을거라며 협박할 정도. 궁예는 제딴에 이 힘든 시기를 참고 견디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니, 그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희생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희생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음에도 궁예를 이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고, 남의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게 광인이 되기전 멀쩡하던 시절부터 그런 것이다.
종간이 간언을 포기하고, 다른 이[15]들이 간언하는걸 말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종간도 궁예와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충신인 만큼 여러차례 간언을 했으나, 궁예는 이를 모조리 씹었다. 종간이 단순한 신하 A도 아닌, 궁예의 최 측근이자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다른 사람이 간언해봤자 궁예가 받아들일리가 없는게 당연한 것. 애초에 백성들이 굶어죽어가고 국고가 바닥난걸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닌 양반이, 종간이 북벌을 하지 말자도 아닌 좀만 늦추자는 얘기였음에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북벌계획을 추진한다는 점(83화 참조)에서, 간언한다는 것 자체가 아예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궁예의 이런 독선적인 성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간언을 물리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간언하는 자들을 협박하더니, 급기야는 자신이 진짜 미륵이며, 석가모니는 가짜임을 공표하면서 아예 자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포장한다.
4 기타 이모저모
젊은 시절, 각간 김위홍[16]에게 "이보시오, 김위홍 각간 나으리. 나는 당신 같은 숙부는 없소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할 때와 이후 강장자를 "잔 받으란 말이오!!" 하면서 일갈하는 장면은 그의 매력적인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종간에게는 유일무이하게 황제가 되어서도 공적인 자리에서 내원이라고 호칭할 때든 사적으로 사형이라고 부르는 자리에서든 존댓말을 쓴다. 그러면서도 종간과 은부까지 물고 늘어지는 왕건은 종간이나 은부 못지 않게 신뢰하는 인간미도 보여준다. 여러모로 봤을 때 종간이나 왕건과는 애증이 많은 관계. 궁예는 왕건에게 관심법을 쓰면서도 끝까지 왕건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미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은 모반을 꾀하기 시작했고 염상, 원극유까지 끌어들인 후 왕건을 군주로 추대하고 모반을 일으켜 황궁으로 쳐들어간다. 궁예는 종간과 사이 좋게 지내길 바랬고, 종간은 궁예에게 끝까지 왕건을 제거하게끔 간언했는데, 종간이 예언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궁예가 왕건을 시중으로 재임명하고 술자리를 가지게 된 후 왕건은 홍유 등의 추대를 받아 진짜로 황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극 중에서는 황후 처형 이후 116화부터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 등이 황제를 미치광이라고 디스하면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왕건을 군주로 끌어들이고 염상과 원극유까지 포섭하면서 조직적으로 반란을 도모하는 식으로 반란이 진행된다. 반란 자체가 꽤나 치밀하게 진행돼서[17] 종간이랑 은부가 손을 쓰지도 못하고 왕건이 황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그 이후로는 알다시피...
119화에서 보게 되면 왕건이 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습니다, 형님 폐하, 이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어찌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있겠습니까..." 하며 독백하는 것과 궁예가 왕건의 반란을 보고 받고 나서도 믿지 못하며 "이보게, 은부장.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겐가? 그 아우가 왜 반란을 해! 왜...!" 이러면서 절규하는 것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김영철의 열연으로 인하여 미화되어 보이지만, 미화된 캐릭터라고 보긴 힘들다. 궁예의 광기와 실정도 자세히 묘사했기 때문. 가령 최응이 왕건에 의한 반정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에 종간에게 초심을 잃은 폐하는 천자로서는 부적절해졌다고 일침을 놓는 바 있다.
또한 처음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자기 부인과 자식들까지 죽이는 와중에서도 왕건에게만은 항상 너그러웠고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후반에 들어 왕건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기록에서와 같이 관심법을 쓰기도 하나, 단 한 번도 그에게 해코지를 하려 든 적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말하길 아우가 자신보다 나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8]
후사는 정략으로 결혼하게 된 양길의 딸 미향에게서 나온 아들이 있고, 강비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두었는데, 미향에게서 나온 아들은 바로 명주의 절로 보내져 친부모도 모른 채 승려로 살아가게 되다가 어느날 어느 백성이 데리고 가서 사라졌다는 석연치 않은 소식으로 나오는게 마지막이며, 강비의 아들들은 그 중 둘을 때려죽였고 살아남은 갓난 막내 '순백'은 궁예 사후 한 궁녀가 몰래 궁에서 키우다가 몸이 좋지 않게 되자 궁녀가 어떻게 할줄 몰라 데리고 나오다가 우연히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왕건과 신료들에게 발각된다. 왕건은 복지겸 등 신료들의 우려에도 자비를 베풀어 아이는 목숨을 건지고 이후 벼슬을 하게 된다고 나레이션이 말한다.
양길에게 투항하던 날 바로 양길이 궁예에게 준 셋째 딸인 미향의 경우 아내가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로 대하였고, 그나마 아들 하나도 미향이 '아내로서 대접받지 못할 바에야 죽겠다'라고 하자 마지못해 합방해서 나왔다. 미향은 궁예의 부하가 된 복지겸의 조건으로 양길이 멸망할때 까지 살아 남았지만, 양길의 딸이란 이유로 강비와 복지겸을 제외하곤 나머지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가 명주에서 아들과 만나지 못한 정신적 고통[19]에 시달리다가 결국 화재에 휘말려서 죽게 된다
캐릭터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성장기를 보낸 인물이다. 왕건은 유력한 호족의 자식인 만큼,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견훤에 경우 시작부터 성인으로 등장하였기에 그 이전의 삶은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궁예에 경우 시작부터 신라군에 쫒겨 죽을 뻔한데다 결국 어머니로 여기던 유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아주 기구한 유년기를 겪었다. 때문에 야망은 있어도 남에게 딱히 적개심을 가지지 않았던 왕건과 견훤과 달리 궁예에 경우 야망 외에 신라에 대한 적개심 또한 가지고 있었다. 물론 견훤측도 가정사가 기구한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 쪽에 경우 쌍방 과실인데다, 3대가 애증이 교차하는 반면에, 궁예 측은 아예 아버지측이 가족 노릇을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궁예를 죽이려 한 만큼, 신라에 대한 증오심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및 타락 이전에는 야망과 이성과 꿈이 적개심과 분노와 욕망[20] 억누르고 있는 만큼, 도움이 된다면 신라계 출신도 받아들였지만[21], 타락하여 이성이 날아갔을 땐 그 적개심이 우선으로 발현이 되었는지 신라에서 투항한 사람들을 무작정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사실 타락하기 이전에도 그 트라우마가 엄청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긴 한데, 가령 42화에 궁예가 부석사에서 경문왕의 초상화를 보고는 분노하며 초상화에 칼빵을 놓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의 강렬한 연기 덕분에 김영철은 야인시대에서 장년 김두한 역할로 캐스팅되어 이환경 작가와의 인연을 한 번 더 이어가게 된다. 야인시대 마지막회에서 말년의 김두한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불상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절을 올리는데,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석가모니를 자신의 자리를 훔친 도둑이라 칭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묘한 장면이다.
사실은 부적절한 사이트 탓에 인심을 잃었다 카더라 사실 해당 발언을 한 건 종간인데... 부적절한 책사를 둬서 망한 궁예였던 것인가
4.1 무력 본좌
궁예가 군주-정치인 캐릭터인데다, 극초반 이후부턴 전쟁터에 나간적이 없기에 비중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 드라마 내 숨겨진 무력 본좌이기도 하다.
설정상 세달사에서 무술 훈련을 받았다고 하며, 덕분에 창술[22]에 능한 모습을 보인다. 도적 여러명은 그냥 석장으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 무력화 시킬 수 있을 정도.
7화에선 위홍의 집에 들어갈려다 견훤과 시비가 붙어 일기투를 하게 되는데, 겨우 석장 하나 들고 싸우는데도 칼든 견훤과 비등한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 견훤은 수백근 청동화로를 냅다 들어 던지고, 말 두마리로 끌고 가던 통나무를 맨손으로 뺏어선 추격해 오던 적군을 상대로 무쌍을 펼치는 등, 무력 면에선 누구 하나 따라올 수 없는 굇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굇수상대로 일기투를 대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젋은 시절 궁예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강한지 알 수 있다.
5 패러디 및 필수요소화
관련 항목: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심지어 연애 서큘레이션도 부르신 궁예
한창 이 드라마가 유행할 때, 신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플래쉬로 패러디되었다. 궁예가 폐하라고 부르지 말라는데, 내군이 폐하라고 부르는 센스 또한 2002년 대선에서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나오면서 회자된 적도 많았다.
이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심영을 위시한 필수요소들이 너무나도 장기집권한 탓에 심영에서 파생 된 김두한의 영향으로(...) 궁예 역시 많이는 아니지만 관련 동영상들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고자라니와 같이 합성되는 정도였지만, 점차 궁예만의 합성물이 나오고 있는 중.
위에 나온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를 니코니코니를 시전하는 신하를 죽이는 장면으로 패러디한 영상도 있다. 그리고 이는 마치 궁예를 보는 듯한 카리스마 대장 버전으로도 패러디되었다.(...) 메르스버전도 만들어졌다.
사실 모에속성을 가진 캐릭터이다 이...이이 음란한 짐승같으니라구!
구글에 의하면 모 정보 단체의 수장이라고 한다.[23] 누가 지금 하이드라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아크원자로 돌리는 소리를 내었는가?
사실 고려에서 관심법쓰다가 왕건한테 혼나고 나라버리고 미국건너가사 장수해서 쉴드국장된거라 카더라
천 오백년 뒤 아이어에서 신관으로 환생하여 법회 중 자신을 비웃으며 능멸한 왕질악 도사를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치며 사이오닉 폭풍으로 처단했으나 이후 왕질악에 의하여 독약이 들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람에 해독제도 못 찾고 죽었다 카더라. 영상
미레바 와카루 사건으로 인해 다시 뜨고 있다.(...)
불교적 색채, 애꾸눈, 대머리, 독심술 속성 중 하나 정도만 있으면 손쉽게 궁예드립의 희생양이 된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의 대사를 빌려오면 금상첨화.
6 명대사?
주로 충성심과 군자의 도, 또는 부하들을 아끼는 발언들이 명대사인 왕건이나, 희노애락의 표현이나 캐릭터의 호방함을 나타내는 발언들이 명대사인 견훤과 달리, 궁예에 경우 중반부터 제정신이 아니다보니 잘 알려진 대사들이 극과 극에 치닫는 것이 특징. 멀쩡한 시절이던 초반부에는 고결함과 높은 이상을 드러내는 발언들을 하는 반면에, 타락하면서 부터는 광기와 살의가 뒤섞인 망언들을 내뱉는다.
나는 미륵부처의 힘으로 오늘날 나라를 세웠소이다. 미륵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욕심이 없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만민이 평등한 세계를 일컫는 것이오. 그대들은 스스로 늘 안고 겸허히 반성을 해야 할 것이외다. 과연 백성을 위해 살았는가? 자신은 배불리 먹고 남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진 않았는가? 작은 권력이 있다 하여 불우한 힘으로 가엾은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억누르진 않았는가? 과연 내 것을 남에게 주어 본 적이 있는가? 남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은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깨달아서 지켜야 할 것이외다. 아시겠소이까? 이것이 바로 미륵의 도리외다.궁예의 초심
나라를 지켜요? 나라라? 하하하하! 거 대답 한 번 기가 막히외다~ 이보시오, 김위홍 각간 나으리. 내게는 당신같은 숙부는 없소이다. 나라를 위하여 그리 했다? 아니지, 그것은 당신의 야망 때문이었소.
관심법...관심법이라... 그렇지. 도를 깨닫고,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참 나를 돌아볼 수 있다 하였다. 옳은 말이다. 나를 본다. 그리고 상대를 본다. 그리고 천하를 본다. 그렇다. 이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요히 입정에 인해 있으면 참으로 깨달은 자는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관심법이 아닌가? 관심법... 관심법이라... 내가 여태 왜 이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고... 관심법이라... 관심법...관심법... 그 모든 전설의 시작!
천하를 훔쳐 백성들에게 되돌리고자 하옵니다. 이것을 어찌 도적이라고 하겠사옵니까?[24]궁예의 초심 2
"난... 가족이 없어. 난 어렸을 때 가족이나 그 주변으로부터 버림받고 내던져진 과거밖에 없어. 나도 어떤 때는 형님을 갖고 싶고 또 아우를 미치도록 두고 싶을 때가 있었지. 어렸을 때는 내 부모님이 그렇게 보고 싶을 때가 있었어. 그 사람들은 날 죽이려 했고 내버렸지만 말씀이야."[25]
내가 미륵이니라!흑화의 시작
현실에 맞게, 불경을 다시 쓰기로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소이다. (종간 :경전을... 경전을... 새로 쓰시옵니까? (충격) 아니, 경전이란 오로지 부처님만이 쓰시는...) (궁예가 천천히 돌아본다) 내가 바로... 부처요. (제66화 중)
옴 마니 반메 훔
중생들이여!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나 미륵을 기다렸는가?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 안타까이 그대들을 보며 오늘을 기다렸는가? 허나, 그대들은 안심하라. 나는 하생하여 인간세에 내려왔고, 지금 그대들 앞에 있느니라. 내가 그대들을 보호하고, 이끌고 가 저 천상의 낙원에 이를 것이니라.
철퇴로 으깨어 주어라.
도대체, 그대들이 이 나라의 벼슬아치들인지, 아니면 뒷간의 똥막대기인지.... 그걸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대들 모두 하나같이 똥으로 가득차 있어, 똥 말이야! 미륵인 나는 달리려고 하는데, 너희 똥막대기들이 쫓아 오지를 못해! 이 말을 알아 듣겠는가? 알아 듣는가 하는 말이야?(중략) 내 잠시 더 관심법으로 보아야 겠구먼. 과연, 누가 이 조정에서 도태 되어야 할 것인지... 누가 쓸모 없는 허접쓰레기인지 말이야!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하!! 아주 잘 만들었다. 정말 잘 만들었어. 그래, 이것이 바로 법이야! 무지몽매한 것들은 그저 이 몽둥이가 약이란 말이야. 하하하하!!
법봉으로 때려 죽여라!
마군이! 저기 마군이가 있어!!
글쎄 백성들이 이래![26]
잔 받으란 말이오!!!!!댓글창에 '나도 움찔했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웃었어? 이 중요하고 성스러운 자리에서 웃음소리를 내? 이런 음탕한 것들이 있나, 어디서 그런 더러운 웃음소리를 내! [27]
중요한 자리에는 꼭 항상 마가 낀단 말이야!![28]
먼저 황후는 이 미륵의 아내로서 그 자질을 잃었어! 미륵의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맑아야 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허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이렇게 가는 것 을...
부디... 성군이 되시게... 성군이...
- ↑ 제75회 中. 12분 30초부터.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뒤 그가 백성에게 느낀 배신감과 울분을 쏟아낸 대사. 안대를 벗고 맨눈으로 "그래, 내가 애꾸면 어떻고 신라에서 버림받은 왕자면 어떠해!" 하고 일갈하는 대사 또한 백미.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평생 자신의 내면을 숨기며 살아온 궁예가 이 정도까지 자신의 내면심리를 밑바닥까지 다 드러낸 적은 없었다.
- ↑ 그리고 종영 14년이 지난 2016년 현재에도 궁예질이란 말은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 ↑ 지금의 개성으로, 왕륭과 왕건 부자의 근거지이다.
- ↑ 궁예의 혈통은 이렇다할 정설이 없는 논란거리이긴 하나, 드라마에서는 다수설인 경문왕 부친설을 채택하였다.
- ↑ 경문왕이 화랑이던 시절 범교와 경문왕은 친구 사이였고, 범교는 뛰어난 화랑이었던 경문왕을 왕으로 옹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궁예의 박복한 운명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 왕실의 증표를 유모에게 전달한 사람도 바로 범교다.
- ↑ 세상을 구하겠다는 궁예의 꿈은 그 당시 트렌드였던 미륵신앙와 결합하여 후에 궁예 스스로 미륵을 자처한다.
- ↑ 법구경에 나오는 글귀다.
- ↑ 최승우가 보낸 후백제의 첩자
- ↑ 이 직후 나오는 궁예의 독백을 살펴보면, '내가 죽고 없으면 이 나라를 이끌어갈 만한 인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라는 의미에서의 분노다. 자신이 보기에는 왕건과 아지태 모두 죄가 없으며 이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얕은 술책이 있었을 뿐인데, 그토록 믿었던 종간이 겨우 이 정도 계략에 놀아날 정도밖에 안 됐던가 하는 것.
- ↑ 이제는 궁예의 상징이나 다름없게 된 철퇴(플레일과 메이스 형태 둘 다 등장한다 정확히는 법봉이 메이스 형태) 처형씬이 이때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상하게도 철퇴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듯한법봉 제작은 후의 일. - ↑ 종간과 왕건이 일찍이 강비의 정혼 사실을 숨겼던 일
- ↑ 제국의 아침 2회에서 죽기 직전 왕건의 회상에서 나왔는데 태조 왕건과 후속으로 방영된 제국의 아침 둘다 이환경 작가가 작업한것이라서 가능한것이다.
- ↑ 시중에 나온 교양 역사서들만 살펴봐도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에서처럼 도적떼 두목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평가에서부터 이재범의 슬픈 궁예에서처럼 나름대로 확고한 비전을 가진 군웅이라는 평가까지 천차만별이다.
- ↑ 천도 얘기가 나올때 왕건은 나주 상륙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 ↑ 가령 박유라던가 염상이라던가
- ↑ 이때 김위홍 역할은 김주영이 연기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8년뒤 대왕 세종에선 김영철(배우)이 연기한 태종(조선)의 의제 이숙번으로 나온다.
- ↑ 실제로 내군에 있었던 염상이 내군의 장일까지 포섭해서 군의 이동 상태까지 감춘다.
- ↑ 왕건을 매우 신뢰했으며, 관심법을 쓰던 그 때도 실제로는 왕건을 죽일 마음이 없었을뿐더러 왕건이 반역에 연루되지도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지 왕건으로 하여금 스스로 모반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강력한 왕권을 재확인하고자 했기에 왕건에게도 관심법을 썼던 것이다. 왕건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잘 따라 주자 모반을 용서한 뒤 왕건을 흐뭇하게 바라본 이유이기도 하다.
법봉을 건 짜고 치는 고스톱 - ↑ 미향 스스로 '다른 건 다 참을 만 한데, 아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라고 했을 정도. 궁예를 따라 순행을 하던 도중 아들이 있다는 명주에 도착하자 정신적인 불안정이 극에 달해 '어머니' 를 부르는 환청을 듣게 되고, 그 환청에 답하는 과정에서 처소에 불을 지르고 만다.
- ↑ 극초반인 20화에 이에 대한 복선이 나온다. 미친 땡중으로 가장한 허월이 궁예와 술자리를 가지는데, 이때 허월은 궁예의 숨겨진 분노와 욕망을 언급한다. 물론 당시 성인군자의 모습을 보이는데다, 그릇도 넓었던 궁예를 마음에 들어한 허월은 명주지역을 그대로 궁예에게 바치긴 했지만, 허월의 평가는 일종의 복선인 셈이었다.
- ↑ 가령 극 초반부 에피소드인 13화에선 기훤이 괴산을 공격할 때 주민들을 약탈하고, 신라출신 관원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나중에 궁예는 그 관원들을 그대로 자리에 놔뒀으면 지역을 통치하는데 편했을 거라고 한탄한다.
- ↑ 정확히는 석장을 이용했다. 물론 창의 경우 봉에 날붙이를 추가하면 되므로 비슷하긴 하다.
- ↑ 구글에서 이걸 봤는지 몰라도(...) 지금은 닉 퓨리 대신 '궁예 관심법'이 뜬다.
관심법은 왜 뜨는 거야 - ↑ 6화에서 궁예와 종간이 도선대사를 만났을 때의 대사이다. 궁예의 이 말에 도선대사는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살다보니 천지가 반쪽으로 보이는 모양이로구나."라고 말하며 궁예를 나무란다. 이미 도선대사는 훗날 궁예의 타락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 ↑ 제29화 중. 왕건에게 의형제 맺기를 제안하면서. 그러나 이렇게 애정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유사가족으로 둔 형 종간과 동생 왕건은 끝까지 화합하지 못했으며, 궁예 본인도 의동생인 왕건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의도야 어찌됐든 이 드라마에서 궁예라는 캐릭터는 태어날 때에도, 죽을 때에도 가족에게 버림받고 내던져진 것이다.
- ↑ 드라마 초반, 백성에 대한 궁예의 태도와 정 반대되는 모습이다. 타락전 궁예는 야심도 있지만 한편으로 진정으로 백성으로 구하고자 한 인물이었던 만큼, 백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에 슬퍼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령 19화에선 전염병에 걸린 백성들을 보며 슬퍼하면서도 백성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말에서 낙마했는데 웃었다는 건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다. 실제로 말에서 저렇게 떨어지면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첫 실수 때 잠깐만 웃은 게 아니라 (사실 누군가가 낙마했는데 그걸 보고 웃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다) 계속 웃어댔으니 딱히 궁예가 아니어도 화날 행동이긴 하다. 오죽하면 댓글들도 궁예를 재평가한다던가 옹호하고 통쾌하다는 댓글이 많다.
- ↑ 중요한 법회 자리에서 석총이 훼방을 놓았을 때 한 번, 그리고 열병식 당시 신료 부인들이 깔깔대며 웃었을 때 또 한 번 나온 대사.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마군으로 매도해 버리는
편리한아집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마군으로 판정받은 자들은 전부 즉결처형되었다. 궁예가 죽은 뒤에는 아자개가 고려로 귀부할 때 다시 한번 나오는데, 당시 이흔암이 왕건과 아자개를 제거할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자개가 언급한다. 다만 캐릭터가 다른 만큼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 역정을 내듯이 내뱉는 궁예와 달리 '허허허... 뭐, 세상에 어떻게 다 좋은 일만 있겠어, 그래. 왜,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그랬거든.ㅎㅎㅎ' 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