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흐테솀 유즈이을 시리즈 | ||||
무흐테솀 유즈이을 | 무흐테솀 유즈이을: 쾨셈 |
무흐테솀 유즈이을 (Muhteşem Yüzyıl) (2011) Magnificent Centur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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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시간 | 매주 목요일 밤 8시 00분 | |||
방송 기간 | 2011년 1월 5일 ~ 2014년 6월 11일 | |||
방송 횟수 | 139부작 | |||
채널 | ||||
제작사 | TIMS PRODUCTION | |||
연출 | 야무르 타일란, 두룰 타일란 | |||
극본 | 메랄 오카이, 이을마즈 샤힌 | |||
출연자 | 메리옘 우제를리, 할리트 에르겐치, 누르 펫타흐오을루, 오칸 얄라븍, 셀마 에르게치 外 | |||
링크 | 공식 홈페이지 > > |
시즌 3 오프닝
터키어 : Muhteşem Yüzyıl
영어 : Magnficient Century
그리스어 : Σουλειμάν Ο Μεγαλοπρεπής
러시아어 : Великолепный век
프랑스어 : Le Siècle magnifique
아랍어 : حريم السلطان(하림 알 술탄)
(2011 ~ 2014)
2010년대 초반 지중해권의 대표적인 인기 드라마
목차
1 개요
터키의 STAR TV에서 방영했던 유명 사극. 무흐테솀 유즈이을(Muhteşem Yüzyıl)은 터키어로 '위대한 세기'를 뜻한다. 쉴레이만 1세의 황후였던 휴렘 술탄[1]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극으로 휴렘 술탄은 본래 지금의 우크라이나 출신의 노예에서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황후가 된 터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후이다.이 사극이 유명해진 것은 터키를 넘어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모으며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2] 미드처럼 시즌별로 나뉘어서 방영을 했는데 노예에서 황후가 된 동화같은 스토리와 오스만 제국 시절 궁정과 이스탄불, 베일에 싸여있던 하렘을 화려하게 재현한 영상미, 막장 드라마스러운 하렘 여인들의 암투를 재현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 이 사극은 유럽 각국과 중동에 수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2014년 6월 11일, 역사에 기록된 대로 쉴레이만 대제가 헝가리 시게트바르 요새를 공격하는 도중에 병으로 사망하는 139화를 끝으로 시즌 4가 모두 끝났다.[3][4]
2 줄거리
주인공 '알렉산드라'는 본래 우크라이나에 살던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다.[5] 약혼자와 결혼을 앞둔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알렉산드라의 마을에 타타르족이 쳐들어오고 알렉산드라의 가족들은 모두 살해 당하고 알렉산드라는 타타르족 노예상인들에 의하여 이스탄불으로 끌려가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진상된다. 죽은 가족들 생각에 알렉산드라는 하렘에서도 반항을 하지만 하렘의 시종장에게 "술탄은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의 여인은 술탄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는 술탄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하렘 처자들의 궁중 암투가 이어진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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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레이만 대제(Sultan I. Süleyman): (할리트 에르겐치)
- 파일:Attachment/무흐테솀 유즈이을/Süleyman.jpg
- 젊은 시절
그리고 리즈 시절
- 파일:Attachment/무흐테솀 유즈이을/muhtesemsuleyiman.jpg
- 마지막 화에서의 모습. 사중관을 착용하고 있다.[6][7]
오스만 제국의 제 10대 황제로, 첫 회에서 파르갈르 이브라힘과 함께 사냥을 나가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궁궐로 달려가 황제가 된다. 이후 즉위식날 황궁에 팔려온 휴렘 술탄을 보고 첫 눈에 반해버려 첫날 밤부터 하루종일 부비부비 함께 지낸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과 휴렘 술탄을 사이에 두고 갈등한다. 즉위하기 전부터 마히데브란 술탄 사이에 무스타파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궁중내의 암투로 인해 훗날 황자시절부터 의형제나 마찬가지였던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를 숙청하고, 장남인데다 유능했던 무스타파를 반역죄로 처형[8]하고, 다 늙어가지고 휴렘 술탄이 낳은 두 아들인 셀림과 바예지트 사이에서 내전수준의 단두대 매치를 벌이는 꼴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 어찌보면 가질거 다 가진 황제임에도 인간적으로는 처량하고 고독한 인물이다.[9]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휴렘이 언제 쉴레이만과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1520년대의 어느 시점이라고하니, 적어도 쉴레이만이 즉위하고 몇년 뒤의 일.
덧붙여 위에서는 말년의 쉴레이만을 꽤나 처량한 인물로 묘사해놓았는데, 이브라힘과 무스타파를 처형한 것은 그렇다 치지만 단두대 매치만은 오스만 제국에서 여러 번 되풀이된 관습이자 법[10]이었기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쉴레이만의 경우는 다른 황제들보다 심리적인 타격이 더 컸을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 자기 자신은 역대 황제들 가운데 처음[11]으로 형제의 피를 손에 묻히지 않고 즉위했기 때문.[12]
쉴레이만 대제의 실제 취미였던 보석 세공과 시 짓기는 드라마에서 충실하게 재현되어져 나온다.
- 시위대에 합류한 쉴레이만 대제(…). 맨 왼쪽에 수염기른 대머리남자다.
담당배우 할리트 에르겐치는 진보적인 성향의 배우로 2013 터키 시위당시 탁심광장에 깜짝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배우는 40대인데 20대의 쉴레이만(…)에서 노년의 쉴레이만까지 모두 연기했다. 뭐 대머리라는 점만 빼면 나름대로 미중년이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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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 전성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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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등극(결혼) 후 | 노년기 |
이 드라마의 진주인공. 본명은 알렉산드라 라 로사(Alexandra La Rossa). 첫 화에서는 노예선에서부터 시작해 궁전에 들어와서도 쉴레이만의 어머니인 아이셰 하프사 술탄의 면전에서 어느 안전이라고!! 소리지르고 발광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후 쉴레이만의 승은을 입은 이후로는 이에 기세등등해서 노예선에서 알게 된 마리아(나중에 귈니할로 이름을 바꿈. 부르주 투나)에게 "이제 난 이 나라의 여왕[14]이 될거야!"라고 자기 야심을 드러내다가 이를 알게된 아이셰 하프사 술탄에 의해 벌을 받기도 하는 등, 생각 없어보이면서도, 나중에는 자기 야심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남자는 세계를 정복하지만, 여자는 그 남자를 정복한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물. 처음에는 터키어를 잘 못해서 쉴레이만을 '술리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휴렘과 쉴레이만의 첫 만남이 정말 대담한데 죽으려던 결심을 고치고 쉴레이만의 여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후, 아직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의 노예였던 휴렘의 앞을 지나가고 있던 쉴레이만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15] 쉴레이만을 향해 기절하는 척하면서 품에 안긴다. 쉴레이만은 그때는 '이건 뭐야.'하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부른 당돌한 여인을 떠올리면서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술탄과 합방할 수 있는 신호인 보라색 천을 휴렘에게 던지면서 자신의 침소로 부른다. 그리고 그 후는 역사에 남을 쉴레이만과 휴렘의 사랑이 시작된다.[16] 본래 정교회 성직자의 딸이었으니 당연히 기독교도였으나 단순히 술탄에게 사랑받는 노예가 아닌 오스만 제국의 안주인이 되는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까지 버리고 자청해서 무슬림이 된다.[17] 하렘 마스터(…) 쉴레이만이 건드린 여자들(…) 가운데서 가장 자녀가 많다. 순서대로 메흐메트 황자, 미흐리마흐 술탄,[18] 압둘라 황자, 셀림 황자, 바예지드 황자, 지한기르 황자의 어머니.
후술할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착한 여주인공이 아니라 하는 짓을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녀에 더 가깝다. 그래서 방송 기간 내내 시청자들에게 욕을 잔뜩 들어 먹었다.[19] 하지만 휴렘 역시 궁중의 여러 음모에 휘말려 험한 꼴을 당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동정도 받는 편이다.
드라마 초반인 시즌 1, 2만 해도 어쩌면 그 시대의 미인상답게 덩치가 크고 대단히 풍만했는데 그도 그럴만한게 이 여자 키가 178cm다. 시즌 3 이후 황후가 되자 살이 빠지고 예뻐지는것 같다. 다이어트를 했나?
휴렘의 젊은 시절을 맡은 배우[20]가 굉장히 미인이다. 터키에서도 휴렘이 하는 짓거리 보면 정나미 떨어지지만, 그놈의 외모땜에 미워할 수가 없다(…)고 평가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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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옘 우제를리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프로필 사진.
- 마히데브란 술탄(Mah-i Devran Sultan): (누르 펫타흐오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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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불운한 여인. 노예로 팔려온 휴렘과 달리 알바니아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오스만의 궁중에 들어왔다.[21]
앞으로 벌이질 일들은 꿈에도 모른채아들인 무스타파와 함께 콘야에서 이스탄불의 궁전으로 마차를 타고 오는 것이 첫 등장. 마차를 타고 올때부터 쉴레이만을 만날 생각에 행복해하던 마히데브란이었지만 막상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보니 황자 시절에는 자기만 바라보던 쉴레이만이[22] 황제가 되고 즉위한 첫날에 아이셰 하툰(아이셰 오플라즈)을 침실에 끌어들이더니만, 나중에 갑툭튀한 휴렘이 쉴레이만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불안해하면서 더 쉴레이만의 사랑을 갈구한다. 마히데브란이 매달리면 매달릴수록그리고 휴렘의 이간질로정나미가 떨어진 쉴레이만은 그런 그녀를 더욱 멀리하게 되고, 휴렘이 마히데브란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나선 쉴레이만에게 "내가 죽는 날까지 너랑 한 침대에 들 일은 없을거다."라는 통보까지 받는데… 그 때문인지 이 여자의 전용 테마곡은 굉장히 슬픈 분위기를 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원수같은 남편도둑놈휴렘 술탄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는 것[23][24]과, 셀림 2세가 어머니로 대접을 해 줘서 말년에는 어느 정도 편하게 살다 죽었다 정도.
실제 역사에서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휴렘과 머리끄댕이 붙잡고[25] 대판 싸운 뒤에는 아들 무스타파와 함께 지방으로 보내진다[26]. 그리고 무스타파가 반역죄로 처형된 이후 근근히 목숨만 연명하다가, 셀림 2세로부터 연금을 받는 덕분에 말년은 편하게 보냈다.
드라마에선 사랑에 굶주려 집착하고, 표독스러운 모습도 보이지만 이쪽도 상당히 미인이다. 전형적인 터키 미형이라고 불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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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르 펫타흐오울루의 프로필사진
- 하티제 술탄(Hatice Sultan): (셀마 에르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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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레이만의 여동생으로 남몰래 파르갈르 이브라힘을 사랑하고 있다. 처음 등장할때부터 베란다에 서서 이브라힘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있을 정도. 이브라힘도 하티제 술탄을 사랑하고 있지만, 넘사벽스러운 신분의 차이[27][28]로 인해 정략결혼으로 이스켄데르 파샤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스켄데르 파샤가 죽어버려 과부가 되고, 그 와중에도 이브라힘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둘은 남몰래 만나고, 이를 간파한 휴렘의 노력으로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29] 하지만 그 이브라힘마저 궁중의 암투로 죽어버리니… 어찌보면 다른 의미의 과부제조기인듯. 이브라힘이 죽게된 원인이 휴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휴렘과 충돌한다.
실제 역사에서 이브라힘과 결혼하게 된 것은 이브라힘을 총애하던 쉴레이만이 '자네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내 여동생이 과부가 됐는데, 생각 있어?' 하고 먼저 제안했기 때문[30]. 물론 이브라힘은 어이구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결혼 이전부터 두 사람이 연인관계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쉴레이만도 '가장 총애하는 신하 + 가장 아끼는 여동생' 이라는 생각만으로 결혼을 명령했을 개연성이 크다. 다만 하티제 술탄은 이브라힘이 처형된지 2년도 안되어 죽었는데, 남편의 죽음에 크게 상심하여 자살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브라힘을 사랑했던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사족으로 구글에서 Hatice Sultan이라고 검색창에 쳐 보면 한국어로 해티스 술탄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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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티제 술탄 역의 셀마 에르게치 역시 터키계 독일인이다. 이쪽도 꽤나 미인인데다 능력자인데 배우 겸 모델 겸 의사겸 사진가(…)이다.
- 아이셰 하프사 술탄(Ayşe Hafsa Sultan): (네바핫 체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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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탄 쉴레이만과 하티제 술탄, 샤 술탄, 베이한 술탄, 파트마 술탄의 어머니이자 셀림 1세의 부인. 발리데 술탄(태후). 크림 칸국 출신[31]으로 첫 화에서 막 팔려온 휴렘 술탄이 자기 면전에서 난동을 부리자 러시아어로 "조용히 해!"라고 일갈하는 부분이 볼거리. 휴렘(아직은 알렉산드라)이 러시아말을 하는 그녀를 보고 "제발 저좀 도와주세요. 이 궁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버릴거에요."라고 하소연하자 "여기는 오스만 제국의 궁정이다. 네년을 죽이든가 아니면 살리는가는 오로지 폐하께 달려있다. 너는 그 분의 재산이야. 그리고 나도!"라고 말한다. 매우 보수적인 인물로 대놓고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려는 휴렘 술탄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중의 법도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휴렘과 마히데브란 사이의 관계를 중재하고, 황자들을 보살피는 등 궁중의 웃어른으로써의 역할을 다 한다.
마히데브란을 좀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쉴레이만을 두고 서로 라이벌이 되어가는 마히데브란과 휴렘의 다툼을 황태후의 자격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이는 황태후라는 이름을 앞세워 아들의 여자관계에 끼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오스만 제국의 법에 따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32]. 하지만 그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히데브란과 휴렘이 대판 싸우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후 마히데브란은 망했어요.
또한 하프사 술탄은 오스만 제국 술탄의 배우자들 중 황족, 귀족 출신으로서는 마지막인 여성 이기도 하다. 하프사 술탄을 포함해 초창기 술탄 배우자들은 동로마 제국 황녀, 튀르크 귀족 여성 등 고귀한 계급 출신이 다수를 이루었으나 크림 칸국 공주 출신인 하프사 술탄을 마지막으로 황족, 귀족 출신 배우자들은 자취를 감추게 됐고 휴렘 술탄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황후, 태후들은 노예, 고아, 포로 출신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아이셰 아이셰 하프사 술탄을 연기한 네바핫 체흐레는 터키의 원로배우로 1944년 생이며 1960년 미스 터키를 수상하기도 했었다. 1961년부터 꾸준히 배우활동을 했으며, 1960-70년대 '예실참'(Yeşilçam)이라고 불리던 터키 영화의 중흥기를 대표하는 배우중 하나이기도 하다.
- 네바핫 체흐레의 젊은 시절 모습
-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Pargalı İbrahim Paşa): (오칸 얄라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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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그리스의 파르가 출신의 예니체리출신, 술탄의 경호원. 쉴레이만이 황자였을때부터 그의 친구이자 동지이자 주인으로 섬겼으며, 쉴레이만이 즉위할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즉위해 있는 동안 널 죽일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맹세와 함께 직속경호대장으로 임명해 항상 가까이 둔다. 초기 몇 화에서는 술탄의 침실에 들 여성을 검문하는 것이 일(…)로 대놓고 쉴레이만을 독점하려 드는 휴렘을 경계한다. 한편 휴렘도 쉴레이만과 이브라힘 사이의 의형제[33]나 마찬가지인 우정을 질투하고, 자신과 쉴레이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드는 이브라힘을 증오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훗날 두번째 씨즌에서 이브라힘이 죽게된 원인도 휴렘.
대재상인 피리 메흐메트 파샤와 아흐메트 파샤등 여러 고관대작들에게 집중적인 견제를 받지만 총명한 머리[34]와 쉴레이만의 총애를 바탕으로 결국 제국의 대재상(vezir-i âzam)이 되어 큰 권세를 누리게 된다. 사랑하던 하티제 술탄과의 결혼도 성공. 그러나 궁정의 음모로 결국 처형당한다.
이브라힘은 훗날 처형되었으나, 쉴레이만은 그 이후에도 친구였던 이브라힘을 잊지 못한다. 마지막 화인 139화에서도 쉴레이만이 즉위했던 날에 이브라힘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던 장면을 회상하기도 하고 시게트바르의 천막에서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도 "이브라힘…"[35]
실제 역사에서도 쉴레이만이 황자였을 때부터 가까웠으며, 1520년에 쉴레이만이 즉위하자마자 술탄이 사냥에 쓸 매를 기르는 일을 감독하게 되었다. 이후 이브라힘이 '다른 대신들의 질투가 두려우니 제발 천천히 승진시켜달라' 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초고속 승진. 무려 3년만에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전까지 술탄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재상은 많았지만, 단 3년만에 황궁 내의 최하급 직위에서 최고위직까지 뛰어오른 경우는 없었다고 할 정도.
휴렘의 음모에 의해 제거된 것은 실제 역사와 같다. 이브라힘은 쉴레이만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영특한 무스타파를 차기 술탄으로 적극 지지했던 반면 휴렘은 자신의 친아들인 셀림을 다음 술탄으로 앉히기를 원했기 때문[36]. 결국 무스타파를 차기 술탄 후보로 인정하되 휴렘의 아들들만은 처형하지 않기로 합의가 이루어지지만, 결국 휴렘은 이브라힘을 질투하는 대신들과 손잡고 이브라힘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말년에 이르러서도 쉴레이만이 이브라힘을 잊지 못했다는 것도 실제 역사와 같다. 다만 유언이 '이브라힘' 이라든가 하는 것은 극중의 설정이고, 말년에 쓴 시 가운데 이브라힘과 비슷한 성격의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고 친구 사이의 신의나 우정 따위를 주제로 한 시가 많은 등으로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 쉼뷜 아아(Sümbül Ağa): (셀림 바이락타르),
쉼뷜 아아(왼쪽)와 귈 아아(오른쪽)
환관장으로 매일 쉴레이만에게 대령할(…) 여성을 찾는 역할과 하렘 내의 질서를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누가 환관 아니랄까봐 탐욕적으로 음흉한 성격이 특징. 이름인 쉼뷜(Sümbül)은 또 아이러니하게로 터키어로 히아신스를 의미한다(…). 발음이 어려워서 그런지, 휴렘 술탄도 그렇고 하렘에 처음 오는 여자들은 발음을 제대로 하질 못하는데, 그때마다 화를 내는 쉼뷜 아아의 모습도 개그포인트. 나중에 합류하는 귈 아아(엔긴 귀나이든)얘이름은 또 '장미'라는 뜻이다와는 쌍으로 드라마내 개그캐릭터를 담당하는데, 둘이서 주고받는 욕지거리와 장난질, 치고박고 싸우는 모습화투은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참고로 쉴레이만 대제와 마히데브란과 더불어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랬동안 개근하는 인물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하렘에서 일하는 환관 가운데 흑인이 많았다. 하렘의 환관을 가리키는 명칭이 '검은 환관(Kizlar Ağa)' 이었을 정도[37].
- 셰케르 아아(Şeker Ağa): (윅셀 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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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뚱한 체구의 궁중주방장. 궁중의 식사를 담당하며, 매일 자기가 만든 요리를 맛본다. 아마도 그때문에 살이 찐듯(…). 쉼뷜 아아와 귈 아아와 함께 이 드라마의 개그를 담당한다(…). 역시 가공인물인 듯 하며, Şeker는 터키어로 설탕이라는 뜻이다.
설탕을 좋아해서 살이 쪘나보다
- 니갸르 칼파(Nigâr Kalfa): (필리즈 아흐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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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파는 오스만 제국의 궁정에서 상궁정도와 비슷한 직책을 의미한다. 처음 노예로 팔려온 휴렘에게 "술탄은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의 여인은 술탄을 지배한다."며
바람을 넣은충고한 장본인.제국의 역적 제 1호이후에도 휴렘 술탄의 파벌을 형성해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휴렘을 돕는다.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으며, 하렘과 이브라힘 파샤의 저택을 오가며 시중을 든다. 나중에 시즌2에서 정식으로 결혼한 하티제 술탄과 적대관계가 되어버리고, 시즌1 마지막에서 레오가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니갸르 칼파가 그의 편지를 보고 이브라힘 파샤에게 꼰질러버린 거라 휴렘과의 관계도 꼬여버린다. 가상인물이지만, 작중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 설정상 투나(Tuna, 지금의 다뉴브강일대지역) 출신으로 빅토리아가 처음 하렘에 들어왔을때에도 "어? 나도 거기가 고향인데" 라고 반가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 귈샤 하툰(Gülşah Hatun): (니한 뷔윅아아츠), 마히데브란 술탄의 시녀로 특유의 충성심때문에 마히데브란의 자리를 위협하는 모든 이들에 대해 적대심을 품고 암투를 꾸민다 휴렘이 쉴레이만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마히데브란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을 저질러 문제를 만든다. 한편 궁궐에서 자꾸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는 수사를 벌이고, 그 범인이 귈샤라는 것을 밝혀내지만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로 휴렘 술탄을 싫어하기 때문에 문제를 덮어버린다. 한편 마히데브란은 귈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자신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가는 일이라는걸 알고 걱정하고, 결국 귈샤를 사정없이 패버린다. 그 후 귈샤는 모종의 계기로 마히데브란에게 내침을 당하고 그토록 증오했던 휴렘의 시녀가 된다. 하지만 겉으론 상냥하게 받아주던 휴렘도 이전에 그녀가 꾸민 음모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고,
뒤끝 쩌는휴렘의 책략으로 69화에서 니갸르 칼파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 귈니할 하툰(Gülnihal Hatun): (부르주 투나), 휴렘 술탄이 이스탄불에 팔려올때 함께 팔려온 기독교도 노예로 노예선에서 휴렘과 알게 된 이후 휴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이후 휴렘이 술탄이 되자 휴렘의 가장 가까운 시녀가 된다. 하지만 귈니할이 쉴레이만의 승은을 입자
심사가 배배 꼬인휴렘과 관계가 벌어지게 되고[38], 휴렘이 꾸민 모종의 음모로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잠시 드라마에서 퇴장하게 된다. 이후 비중은 거의 제로(…).
- 말코츠오울루 발리 베이(Malkoçoğlu Bali Bey): (부락 외즈치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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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탄의 경호실장이자 장군으로 26화부터 등장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병사들에게 희롱당하는 유대여인 아르미나(뮈즈데 우즈만)를 구해주고 첫 눈에 사랑에 빠져버리지만, 그녀는 냉랭하게 대하고, 아르미나의 아버지인 조슈아 에펜디도 유대인이 아닌 그에게 장가를 보내는 것을 꺼린다. 결국 발리 베이는 아르미나를 보쌈(!)해버리고, 갖은 설득과 노력끝에 아르미나는 발리 베이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하필이면 보쌈해서 대피하던 지역에 흑사병이 번져버리는 바람에 곧 죽어버린다. 이후에는 그리스인 술집 무녀인 엘레니카와 연애플러그를 꽃는 등 드라마의 내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실존 인물이다.
- 무스타파 황자(Şehzade Mustafa): (유년기는 베르칸 데미르바으, 성년기는 메흐멧 귄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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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히데브란의 아들로 쉴레이만의 맏아들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스탄불로 오면서 아버지와 이브라힘 파샤를 만날 생각에 기뻐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39] 궁전에서는 배다른 동생들인 휴렘의 자식들에게도 잘대해주고 같이 어울려 지내지만 아버지에게 소박맞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총명하고,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일찌감치 궁중 사람들 사이에서 쉴레이만의 유력한 후계자로 점찍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자식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휴렘과 궁중내의 암투로 인해 마니사로 쫓겨난다. 그 후에도 휴렘의 음모로 임지를 옮기고 아마시아로 좌천되었다가 기나긴 모종의 음모로 인해 아버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다. 유일하게 마히데브란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근거였던 인물이지만 무스타파가 죽고 나서 마히데브란의 비중도
가뜩이나 공기수준이지만공기로 떨어진다. 백성들과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상적인 황자 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최후가 안타깝다.[40].
실제 역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극중에서는 처음 등장할때 이스탄불로 돌아온 어린 무스타파가 아이셰 하프사 술탄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아버지가 보고싶어." 라고 말하자, 아이셰 하프사 술탄이 "폐하는 공무에 바쁘십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럼 이리 오라고 해. 명령이야!(…)" 라고 땡깡을 부린다.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이에 심기가 불편해져서 무스타파를 내보내고, 마히데브란 술탄만 남겨놓은 가운데서 "네가 시켰냐? 어떻게 무스타파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라고 책망한다[41]. 마히데브란이 무스타파에게 "왕자님은 차기 파디샤가 되실겁니다." 라고 바람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마히데브란에게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경고한다. 실제 역사에서 무스타파 황자가 자신이 후계자라고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쉴레이만 시대[42]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가장 유능한 황자가 뒤를 잇지 나이로 후계를 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43]. 배우인 메흐멧 귄쉬르가 정웅인을 많이 닮은 얼굴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스만인들의 인망을 한 몸에 받은 황자였다. 당연히 황위 계승자가 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으며, 무스타파가 휘렘 술탄의 음모에 의해 희생되자 차기 황제감이 근거도 없이 반역죄로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란이 일어났을 정도.
- 미흐리마흐 술탄(Mihrimah Sultan): (유년기는 멜리스 무틀루치, 성년기는 펠린 카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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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렘의 두번째 자식이자 딸로 처음에 휴렘이 미흐리마흐를 낳았을때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다시피 자랐지만, 그후 휴렘이 연달아 아들을 낳으면서(…) 상황이 좋아진다. 훗날 장성해서 대재상 뤼스템 파샤에게 시집을 가고, 뤼스템 파샤가 휴렘의 지지자가 되는데 기여한다. 실존 인물로 뤼스템 파샤의 아내였다는 점도 역사와 같으며, 동생이자 정치에는 무능했던 셀림 2세 치세에 정치에 개입했던 인물이다[44]. 여담으로 아버지 쉴레이만이 상당히 이뻐하여 원정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는데, 물론 군사 지휘를 했을 리는 없지만 가는 곳마다 페르시아어로 기행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서 페르시아어를 안다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를 할 줄 안다는 것과 비슷한 지위를 지녔다. 즉, 현명한 군주인 아버지와 머리는 좋았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은 셈.
근데 왜 이런 사람이 황제가 안 되고...여자를 황위에 올릴 순 없잖아
- 셀림 황자(Şehzade Selim): (유년기는 이이트 위스트, 성년기는 엔긴 외즈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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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렘의 세번째 아들[45]로 어린시절부터 질투와 야망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복형인 무스타파는 셀림을 아주 귀여워하고 항상 데리고 다녔지만 셀림은 형을 좋아하지 않았고,[46][47] 훗날 무스타파가 죽고나서는 동복동생인 바예지드와 골육상쟁을 벌인다. 이후 쉴레이만의 지시로 바예지드를 죽이고,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데 성공한다.
- 실존 인물로, 훗날의 셀림 2세. 다만 바예지드와의 싸움에서는 거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셀림을 후계자로 낙점한 쉴레이만이 재상인 소콜루 메메드 파샤에게 군대를 주어 일을 처리하게 했다. 이 결과 셀림은 황위에 오를 때까지 그 자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고 해도 좋았으며, 이는 오스만 제국 역사상 첫 번째 암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48]. 아버지를 뛰어넘는 업적을 세우겠노라는 '야망' 이란 게 있었는지도, 논란이 분분한 상황.
- 바예지트 황자(Şehzade Bayezit): (유년기는 에르한 잔 카르탈, 성년기는 아라스 불룻 이이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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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에 있는 남자가 바예지트 황자.
셀림 황자와 골육상쟁을 벌이다 패배하고 나서 이란[49]으로 망명을 간다. 그 때문에 1561년, 쉴레이만의 명으로 다섯명의 아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
셀림과 달리 무스타파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휴렘은 생전에 은근히 바예지트가 황위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쉴레이만에게 반역을 의심받자 정말로 군대를 일으켰으나 소콜루 메메드 파샤의 군대에 패하여 사파비 왕조로 망명했다. 그리고 쉴레이만의 지시를 받은 메메드 파샤는 당시 사파비 왕조의 황제였던 타흐마스프 1세에게 바예지드의 신변을 넘기라고 협상을 벌였고, 결국 타마습은 금을 받는 대가로 오스만 제국이 바예지드를 처형하기 위한 집행인을 보내도 좋다는 데에 합의했다.
- 마트락츠 나수흐(Matrakçı Nasuh) : (파티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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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니아 출신 궁정 세밀화가. 이브라힘의 친구로 이브라힘의 천거로 쉴레이만의 눈에 띄게 된다. 로도스 섬을 공략하려는 쉴레이만 대제의 명을 받고 로도스로 파견되어 섬의 요새와 그 특징들을 모두 그려내어 로도스 공략의 공신이 된다. 로도스에 다녀온 뒤 오스만 제국에 밀입국한 빅토리아가 자기가 보는 눈 앞에서 다치는 걸 본 후 빅토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처음에는 남장한 빅토리아를 소년으로 착각했으나 알고보니 여자였고 이때부터 마트락츠는 빅토리아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러나 빅토리아와의 저녁 식사 도중 집으로 찾아온 이브라힘이 빅토리아를 발견, 빅토리아를 하렘으로 보내 버린다. 안습.
- 실존 인물이나 부랑자처럼 살다가 이브라힘 파샤의 천거로 쉴레이만을 섬기게 된 드라마와는 달리, 쉴레이만의 부황인 셀림 1세 시대에 데브시르메 제도로 징집된 예니체리였다. 사격과 검술에 뛰어났으며 다섯 가지의 언어를 구사했고, 수학과 지리학을 연구하여 쓴 서적을 셀림에게 바쳤을 정도로 학식도 뛰어났다. 또 극중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종종 나오듯이 세밀화를 그리는 것이 취미여서 당시 콘스탄티노플 시가지 거의 전체를 화폭에 담았으며, 후에는 예니체리 교육기관에서 검술을 지도했다. 고관대작을 지냈다고는 하기 뭣하기에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정도면 나름 먼치킨이었던 듯.
- 극 초반에 가끔 나오는 검술 대련 스포츠인 마트락츠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극중에서 쓰이는 용구는 실제 쓰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예니체리 검술 대련용으로 고안했다고.
- 귈펨 하툰(Gülfem Hatun) : (셀렌 외즈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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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렘과 마히데브란와 더불어 쉴레이만의 자식을 낳은 또 다른 여성. 그러나 귈펨의 자식은 휴렘이 오기 전 이미 병이 들어 죽은 뒤 였고 귈펨은 쉴레이만 대신 하티제 술탄과 함께 지내며 그녀를 보살피며 말벗을 하고 있다. 하티제가 귈펨에게 자신의 비밀도 털어놓을 정도로 귈펨을 신뢰하고 있다. 귈펨은 하티제와 이브라힘이 오래전부터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편지 셔틀(…) 역할을 한다.
실존 인물이지만 유명세가 있는 휴렘과 마히데브란에 비해 귈펨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 그도 그럴게 휴렘과 마히데브란은 술탄(Sultan)으로 불리지만[50]' 귈펨은 단순히 파디샤(쉴레이만)과 동침한 적이 있는 여성이라는 '하툰(Hatun)'으로 불리는걸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3.1 특정 시즌에만 등장하는 인물
- 빅토리아(Viktoria): (사아데트 으시윽 악소이), 헝가리인으로 남편이 쉴레이만의 원정 당시 자신의 눈 앞에서 전사하는 모습을 보고, 복수심을 품으며 미리 매수해둔 경비병을 통해 하렘에 잠입한다. 하렘에서는 '충성스러운 여자'라는 뜻인 사드카(Sadıka)라는 이름을 얻고, 궁중에서 나름대로 잘 적응하며 쉴레이만의 승은(!)까지 입게 되지만 복수를 시도할때마다 일이 꼬여서 실패한다. 쉴레이만과 동침하고나서 적에게 몸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에 남몰래 흐느끼는 빅토리아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할 지경.
여기에 NTR당한데에 분노한 휴렘과 마히데브란의 증오증오 공격은 덤이후로도 계속 암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고 처형된다.[51] 궁중 세밀화가인 마트락츠 나수흐가 그녀에게 연정을 품어 계속 도망가자고 꼬드기다가 빅토리아가 츤츤거리다 처형되기 위해 마트락츠와 빅토리아가 단 둘이서 바다로 갔을때 빅토리아가 마트락츠에게 "정말로 나를 사랑하나요?"라고 묻고, 마트락츠가 "그래, 당신이랑 같이 이 배를 타고 도망가서 죽은 듯이 살 수도 있어."라고 말하자 자신을 직접 죽여줄 것을 부탁한다. 마트락츠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빅토리아를 준비해둔 자루에 집어넣고 바다로 던져서 죽인다.
- 레오(Leo): (세츠킨 외즈데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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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렘 술탄이 궁궐로 팔려오기 이전에 약혼한 옛 연인. 직업은 화가다. 타타르족의 침략 당시 휴렘은 레오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레오는 죽지 않고 알렉산드라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이스탄불까지 흘러들어오게 되고, 마침 결혼해
신접살림을새로 지을 궁전[52]을 서양화풍으로 장식하고 싶은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가 그에게 궁전을 장식할 벽화를 그려줄 것을 주문해 궁전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러다가 쉴레이만과 휴렘 술탄이 나란히 있는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게되고, 휴렘 술탄을 눈앞에서 본 레오는 그녀가 알렉산드라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쪽지를 보내 몰래 휴렘과 만난다. 휴렘은 "당신이 살아있는 줄은 몰랐는데…"라면서 한편으로는 기뻐하지만, "이제 모든 운명이 뒤바뀌었고, 당신과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알면 당신은 물론이고 나도 죽는다. 나는 술탄의 여자가 되었고, 벌써 애도 셋이나 낳았다."라면서 경고를 한다. 하지만 둘다 옛 감정이 식은건 아니라, 이 이후로도 몇번 만난다. 하지만 쪽지를 보내다가 레오가 휴렘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니갸르 칼파가 그 편지를 읽어보고, 러시아어로 쓰여진걸 알자 그걸 이브라힘에게 고해바친다(…). 그리고 레오의 짐속에서 남몰래 그린 알렉산드라의 초상화가 있는걸 보곤, "이젠 휴렘을 파멸시킬 날만 남았다!"라며 쾌재를 부르지만, 휴렘을 잃을 경우 쉴레이만이 느낄 상심때문에 조용히 처리하기로 결정한다.[53] 휴렘과 레오를 자신의 궁전에 초대한 다음 둘의 관계를 쉴레이만에게 일러 바치겠다고 휴렘을 협박해 휴렘이 직접 레오에게 치명적인 독이 든 로쿰을 먹이도록 하는 장면이 압권. 결국 독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죽는다는 것에 미소를 지으며 죽은 레오와 울부짖는 휴렘의 모습과 함께 시즌 1이 끝난다. 그리고 레오가 그린 휴렘의 초상화와 휴렘을 향한 마음이 담긴 레오의 노트는 그 이후로도 휴렘을 위협하는 도구가 되어 이브라힘 파샤와 마히데브란등 휴렘의 정적들에게 이용된다.
여담으로, 휴렘의 약혼자에 관한 설정은 휴렘 술탄을 소재로 한 각종 작품들 속에서 클리셰 수준으로 나오는 소재다. 우크라이나에서 나온 휴렘 술탄 관련 영화에서는 아예 휴렘의 결혼식 날에 타타르족이 마을로 쳐들어와 약혼자가 죽는 장면도 나온다.
가공인물. 실제 역사에서는, 쉴레이만에게 바쳐지기 전까지 휴렘이 어디에서 뭘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극히 미미하다.[54] 연인 따위는 당연히 기록이 없고. 다만 타타르가 침공해올 당시 휴렘이 결혼 적령기였으므로, 약혼자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사벨라 포르투나(Isabella Fortuna): (멜리케 이펙 얄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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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공주이자 프리드리히 4세의 약혼녀로 카스티야[55]에서 배를 타고 가다 수행원과 함께 해적들에게 붙들려 이스탄불로 끌려온다. 27화에서부터 합류하며, 쉴레이만은 포로가 된 이사벨라를 정중하게 예우하면서도 인질로 활용하기 위해 이스탄불내 유럽대사와 주변 인물들과 접촉하는 것을 엄금한다.[56] 한편 휴렘은 새로운 적(…)이 왔다는 걸 짐작하고 이사벨라에게 적대적으로 군다. 이 여자가 겪게되는 일을 통해서 휴렘의 질투심이 어떻게 사람을 잡는지(…)를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쉴레이만을 야만인이라고 욕하더니 나중에 이사벨라는 쉴레이만을 흠모하게 된다. 그 이후로 휴렘과 이사벨라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초반에는 기를 쓰고 오스만에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쉴레이만에게 뿅 간 이후로는 하렘에도 들락 날락 거리는 등 휴렘의 어그로를 제대로 끈다. 이사벨라 역시 가톨릭 신자인 자신이 무슬림인 쉴레이만에게 이끌리니 마음속으로 갈등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의 남자 쉴레이만에게 점점 더 빠져들고 그를 유혹하려 애쓴다.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이사벨라를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고 마히데브란은 고소하다는 눈빛으로 휴렘을 바라보니 휴렘으로서는 미칠 노릇. 처음에는 눈을 부라리며 적대적으로 굴면서 견제를 하기만 하던 휴렘은 이사벨라에게 쉴레이만을 빼앗길거 같자 경쟁자를 떠나 보내려고 이사벨라의 탈출을 몰래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사벨라가 이스탄불 항구의 배에 가보니 그 배안에 이브라힘이 기다리고 있었고 탈출은 실패한다. 탈출까지 실패하자 휴렘은 손을 쓰기로 결심한다.
가공인물인 듯. 참고로 해적 이야기가 갑툭튀하는 건, 당시 오스만 제국은 북아프리카에 할거하던 여러 해적 집단들을 술탄의 신하 자격으로 보호해주고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오스만 제국의 신하로서 해군 역할을 하라는 의무라고 쓰고 계약이라 읽는다를 부과했기 때문이다.[57] 아마도 '미인이닷!' 하고서는 술탄에게 바치기로 했던 모양.[58]
- 로요슈 2세(Lajos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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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59]의 국왕이자, 헝가리 야기에우워 왕조의 마지막 국왕이다. 오스만 사절의 목을 참수하면서 호기롭게 등장하는 것은 실제 역사와 같지만 열받은 쉴레이만이 헝가리로 쳐들어오게 되고, 역사에서 그렇듯 여기서도 쉴레이만의 맞수로 나오지만 오스만 제국을 우습게 여기면서 여유부리다가 한창 물오른 전성기의 오스만군에게 계속 관광당한다. 실제 역사에서 로요슈 2세는 전성기가 끝나고 빠르게 몰락해가는 헝가리를 통치하기는 했지만 모하치 전투[60]에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진했던 왕이다. 참패한 후 황급히 도망치던 중 실수로 강에 빠져 익사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셈.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드라마에서는 성 안에서 파티[61] 도중에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영 취급이 좋지가 않다.[62] 러요시 2세 사후 헝가리는 오스만 제국에 병합[63]된다.
위의 사진에 보이듯이 극중에서는 웬 아저씨 삘 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이 사람. 쉴레이만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인물이다. 1506년생으로, 오스만 제국 사절의 목을 치라고 명령[64]했을 당시 열다섯 살 소년이었다. 모하치에서 전사했을 때는 스물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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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레이만 1세의 재위 초반의 교황으로 수상쩍은 분위기의 BGM(...)과 함께 종종 등장한다. 셀림 1세가 죽고 쉴레이만이 즉위했다는 소식이 교황청에 전해지자 사자가 죽고 양이 황위를 이었다고 좋아한다[66]. 그러나 로도스가 무너지고 헝가리가 무너지자 다들 데꿀멍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색이 되어 교황청을 지켜달라고 기도를 한다(…). 가만히 보면 마치 모든 일의 흑막처럼 묘사된다. 성직자들은 몰라도 클레멘스 7세는 분명 실존 인물. 다만 클레멘스의 치세는 가히 망했어요라고 할 만 한데, 이에 대해서는 사코 디 로마 참조. 시즌 3부터는 다른 교황으로 교체되는데 비중은 거의 제로. 시즌 3부터는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는 카를 5세의 얼굴이 더 많이 나온다.
그래봤자 카를 5세의 비중도 공기지만
- 누르바누 술탄(Nurbanu Sultan) : (매르베 볼루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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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림 황자와 누르바누
시즌 4에서 등장. 이탈리아인으로 셀림 황자의 부인이다. 본명은 체칠리아(세실리아)로 베네치아 공화국 귀족의 딸[67][68]이다. 당시 베네치아 령이었던 그리스 파로스섬에서 섬을 다스리던 아버지와 함께 호사스러운 귀족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 도중에 쳐들어온 해적들에게 수행원과 함께 납치되어 이스탄불로 온다. 옷입는것과 목욕하는것도 하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던 체칠리아는 술탄의 종이 되어버린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망하고 결국 자살을 시도했으나 셀림 황자가 자살하려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고 셀림과 사랑에 빠진다. 셀림에게 맞는 여인을 찾아주려던 휴렘의 승낙을 받고 누르바누라는 이름을 받고 셀림의 배우자가 된다. 그 이후 악녀 포지션이 되어 자신과 함께 오스만으로 끌려온 수행원이 쉴레이만의 후궁이 되자 그녀를 죽이고[69] 하티제 술탄과 이브라힘의 딸[70]도 죽인다. 남편인 셀림을 황제로 만들기 위하여 바예지드 황자를 제거하려는 음모도 꾸미고 나중에는 휴렘의 뜻을 거부하자 휴렘이 누르바누를 죽이려다 실패하는 막장 드라마까지 찍게 된다.
추후 셀림 2세의 황후가 되는 실존 인물이지만, 셀림의 총애를 받게 되는 과정이나 휴렘과의 인연(?), '막장 드라마' 를 찍는 등등은 거의 대부분 허구라고 보면 된다. 열세 살에 자신이 사는 마을로 쳐들어온 해적들에게 납치. 이사벨라 포르투나(위에서 썼듯이 이쪽은 가상인물이지만)와 마찬가지로 해적들이 미인이닷! 하고서는 황궁에 바친 경우다. 실존 인물 누르바누는 셀림 2세가 사망할 때까지는 가장 총애받는 애첩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기록이 없고, 아들인 무라드 3세가 즉위한 이후부터 비로소 고국 베네치아와의 외교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드문드문 기록이 보인다.
- 뤼스템 파샤(Rüstem Pasha) : (오잔 귀벤)
시즌 3에서 등장. 드라마 중후반부 오스만 제국 대재상. 휴렘의 조력자 역이며, 시즌 3에서 샤 술탄과 하티제 술탄의 음모 때문에 일시적으로 쉴레이만의 눈밖에 나 고생하고 있던 휴렘을 지원한다. 그 대신 뤼스템이 원한 것은 휴렘의 딸 미흐리마 술탄과 결혼하는 것.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휴렘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흐리마는 격하게 거부하지만 결정을 꺾을 수는 없었고 결혼식에서 미흐리마의 표정은 거의 나라 잃은 분워기. 샤 술탄 측에서는 쉴레이만에게 뤼스템이 나병을 감추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결혼은 이루어 졌고 혼인을 바탕으로 뤼스템은 큰 권세를 얻게 된다.
실존 인물로, 재상으로서의 임기는 1544년부터 1553년까지, 그리고 잠시 파직되었다가[71] 1555년부터 1561년에 죽을 때까지 다시 재상을 지냈다. 휘렘 술탄의 사위로서 무스타파 황자의 제거를 계획하는 등은 역사적 사실과 같으나, 사위라서 협력한 것인지 협력하는 대가로 사위가 된 것인지는 추가 바람. 본래는 크로아티아의 한미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자라서는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이자 이름난 대부호가 된 사람이며, 그 때문에 다른 관료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다. 이후 그 재산은 아내인 미흐리마흐 술탄이 셀림 2세 치세에 정치 자금으로 활용하게 된다.
- 데프네 술탄(Defne Sultan) : (야세민 알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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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예지드 황자의 배우자. 시즌 4에서 등장. 바예지드와 사랑을 나누던 후리지한 술탄이 눌바누와 싸우다 비명횡사한 후 바예지드의 눈에 띄어 연인관계가 된다. 그러나 사실 데프네의 정체는 눌바누의 꼭두각시. 눌바누가 데프네의 여동생 안나의 목숨을 쥐고 협박, 데프네는 협박에 못 이겨 바예지드를 암살하려다 발각되고 만다. 그러나 이미 아이까지 임신한 데프네를 차마 죽일수는 없었고 그 후에는 여차저차 풀린다. 바예지드와 그의 아들들이 처형된 후 자살한다.
실제 역사에서 바예지드의 배우자였던 시리아 출신 파트마 하세키 술탄을 대체하는 배역이다. 데프네와 달리 파트마 하세키 술탄은 자살하지 않았고 바예지드가 죽은 후에도 쭉 오래 살았다.
- 다예 하툰(Daye Hatun) : (세마 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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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에 있는 아줌마.
아이셰 하프사 술탄의 시녀. 30년간 하프사 술탄을 모신 베테랑. 하렘의 시종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다. "이 나라의 여왕이 되겠어.", "궁중의 모두를 내 발밑에 두겠어." 라는 휴렘의 말을 엿듣고 휴렘의 야심을 맨 처음 간파, 아이셰 하프사 술탄에게 휴렘의 문제 발언을 고자질 하는게 이 사람.
- 바르바로사 하이레딘 파샤(Barbaros Hayrettin Paşa) : (톨가 테킨)
- 붉은 수염으로 유명한 지중해의 해적 겸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 알제리를 근거지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해안지대를 매년 약탈하는 등 크게 세력을 떨쳐, 쉴레이만 대제로부터 오스만 제국군 해군 총사령관(Kapudan Pasha) 직을 받아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며 함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는 일을 감독하게도 된다[72]. 이후 1538년의 프레베자 해전에서 베네치아 공화국과 교황청, 카를 5세가 뭉친 유럽의 연합군을 격파하는 등 지중해를 오스만 제국의 앞마당으로 만들어놓았으며, 오늘날 터키에서도 '터키 해군의 아버지' 이자 바다의 영웅으로서 추앙받고 있는 인물.
작중에서는 대체적으로 무스타파 황자쪽 사람. 무스타파를 지원하고 있으며 사람을 보내 무스타파를 암살하려는 뤼스템의 음모를 저지하기도 했고 하이레딘의 딸 미흐뤼니사(가공인물인 듯. 정확한 사실은 추가 바람)는 무스타파 황자의 배우자가 된다.
이 외에도 해군 지휘관이자 지도 제작가로 유명한 피리 레이스, 미켈란젤로와 비교되기도 하는 오스만 제국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등 당대의 유명인사들이 등장한다.
4 세계적인 흥행과 인기
이 항목이 작성된 이유
이 드라마가 터키에서 방영될때는 터키 내부의 이슬람 율법 학자들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 선정적인 작품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하였고 첫화 방영 후 스타티비 방송국 앞에서 이 드라마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방영 예고편이 나간지 25일만에 터키방송심의위원회는 7만 5천 건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친이슬람적 성향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이 드라마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작중에서 남녀가 서로 정을 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이나 서구 기준으로는 별로 야하지도 않은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73] 에르도안은 노발대발하며 터키 방영 당시 칼질을 했다. 애초에 계획했던것보다 휴렘 술탄의 비중은 줄어들고 쉴레이만 1세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이 때문. 이와는 대조적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다룬 '페티 1453'이라는 영화는 터키 정부에서 대놓고 밀어줬다. 그런데 중동 각국의 정상들이 모이는 정상회담에서 아랍 국가 정상들이 "너네 나라 드라마 왜 이렇게 재미있나요?" 라고 에르도안에게 물으면서 화제 삼는 바람에 에르도안이 대단히 뻘쭘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에 방영된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한류 비슷한 터키 열풍이 일었는데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 50% 정도 증가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드라마와 동시에 방영된 오스만 제국 관련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이 덩달아 상승하였다. 놀랍게도 터키와 철천지 원수관계로 유명한 그리스에서 드라마 방영 후 터키어 학습열풍이 불었다.[74] 러시아에서는 드라마가 결방되자 방송국에 시청자들의 격렬한 항의가 줄을 이었으며, 오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에서는 한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터키와 무슬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세르비아에서도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게 되어 발칸 반도에서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무시되어왔던 오스만 제국 시절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터키와의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평을 받을 정도. 드라마에서 오스만의 적국으로 나오는 헝가리에서도 RTL에서 방영했는데 꽤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 루마니아에서는 13%의 시청률을 기록, 2013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되었으며[75] 크로아티아에서도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랍과 동유럽, 그리스에서만 알려져 있던 터키 드라마가 서유럽에서도 방영된 것은 이 드라마가 처음. 프랑스 2TV 방영시 20%의 시청률이 나온것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터키 사극이 처음으로 방영되었다.
이런 인기로 인해 마케도니아 국회에서는 터키 드라마 상영 제한법을 통과시켰고, 그리스의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황금새벽당은 이걸 보는건 다시금 항복하는 것과 다름 없다면서 보지 말자는 캠페인을 전개했고, 테살로니키의 그리스 정교회 주교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들이 오스만 투르크를 긍정적으로 묘사한다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기사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풍경인데
중앙아시아에는 정식으로 수출된 것은 아니지만[76], 러시아어와 터키어 위성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했으며 거기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드라마의 출연진들이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장녀인 굴나라 카리모바와[77] 만난 것이 신문에 크게 나기도 하였다. 출처
파키스탄에서도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파키스탄에서 방영했던 모든 드라마 시청률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방영 당시 난리가 났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세속적 권력자이기도 하지만 이슬람의 종교지도자인 칼리파이기도 했는데, 근엄한 이미지의 지도자 대신에 여자와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니 보수적인 이맘들이 거품을 물고 까댔다고. 물론 사우디의 시청자들은 어차피 위성방송을 통해서 방영되기 때문에 잘만 봤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FOX 산하인 Mundo FOX에서 '위대한 술탄 쉴레이만(Suleiman el gran Sultan)'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7월 1일부터 방영하고 있다. 다만 Mundo FOX 방송 자체가 히스패닉을 타깃으로 하는 채널이기 때문에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방송한다. 방송사 자체에서는 꽤 띄어줄 의향인지 Mundo FOX 홈페이지 첫 화면 상단에 있지만 유럽이나 중동과 같은 인기는 힘들어 보인다.홈페이지 히스패닉 채널에서 방송하는 이유는 중남미 쪽으로 진출할 의향 때문인 것 같은데 칠레에서 2014년 12월부터 방영 중. 칠레에서의 반응은 꽤 좋은 편이라서 주연 배우들이 칠레를 방문했다고 한다.
터키 드라마가 왜 중동과 그리스에서 인기가 많은지, 주 시청자들인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그리스 영화인 '키스메트:아랍을 뒤흔든 드라마'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시나리오 작가인 메랄 오카이(Meral Okay)와 휴렘 술탄역의 메리옘 우제를리(Meryem Uzerli), 쉴레이만 대제 역을 맡았던 할리트 에르겐치(Halit ergenç)의 인터뷰가 나온다. 내용을 보면 아랍과 그리스의 여성 시청자들은 쉴레이만을 로맨틱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노예에서 황후가 된 휴렘의 성공 스토리를 대단히 부러워 하는 모양이다. 또한 그리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드라마를 방송하는 그리스 방송국 앞에서 방영 금지와 터키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시위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한국 개봉 예고편, 영어자막으로 만들어진 본편
터키 교민들과 터키 주재 유학생들 중에서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많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봤는데 화려한 의상과 막장성 짙은 궁중암투라는 스토리에 높은 점수를 준 사람도 있고 클리셰 투성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다.[78] 비단 교민들 뿐 아니라 방영된 국가들에서도 여성 시청자들의 비중이 높았다.
중국 방영이 결정되었다. CCTV에서 방영했다.
인도네시아에서 2014년 12월부터 방영중. 이전부터 터키 드라마는 동남아 진출을 여러차례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가 동남아 시장을 뚫었다. 베트남에서도 2015년 3월부터 방영.
터키인들 중에서는 이 드라미를 시청한 외국인들이 터키 역사에 대해 오해한다면서 드라마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고증' 문단을 참고하면 좋고, '등장인물' 문단을 꼼꼼히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사실 여인천하를 보고 조선시대 역사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에미레이트 항공 여객기에서 VOD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전세계 52개국에서 방영되었거나 방영 중이다.
5 볼수 있는 곳
유투브에도 이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관련 동영상들이 많다. 전용 채널도 있다. 여기서 지나간 드라마들을 1화부터 마지막 139화까지 모두 볼수 있다. 1회 분량이 매우 길다. 단 전용채널은 터키어로만 방영된다. 이 드라마 보려고 기를 쓰는(…) 외국인들 덕분에 영어 자막 달린것도 존재하긴 한다.(시즌 1 1화)
우리나라에도 알음알음 드라마의 이름이 알려져 있는지 몇몇 사람들이 한국어 번역 요청을 했으나, 방대한 분량과 국내에서 터키어의 마이너한 이미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스만 제국 역사라는 장벽이 있어서인지 한국어 자막은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솔직히 귀찮다. 한 편에 두시간씩이나 되는게 100편이 넘는다. 거기에 간혹 아랍어도 나와서 인터넷의 영어 번역자나 러시아어 번역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용자가 영어로 번역을 한 후 영어 자막을 첨부하여 유튜브와 비미오에 한회씩 올리고 있는 중이다.[79]
1화[80]
1화 ~ 59화 유튜브 영어자막
15 ~ 17화, 21 ~ 31화, 37화 유튜브 영어자막
1화 ~ 59화 비미오 영어자막
139화(터키어)
6 고증
참고로 신문기사다.
터키 예디테페 대학교 식품학 교수인 외즈게 사만즈와 작가인 투르굿 쿳이 위 장면에서 크게 짚을 수 있는 15가지의 고증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1- 근위병
근위병이 쓰고 있는 모자가 시기에 맞지 않는다. 술탄이 식사를 하는데 근위병의 수와 식사를 돕는 하인의 수가 너무 적다. 실제로 술탄은 식사를 할때 한 무리의 하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했다.
2- 식탁보
당시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 무릎 위에 식탁보를 얹었다. 오늘날 스타일과 다르다.
3- 앉은 자세
당시에는 감히 술탄에게 등을 보이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술탄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메흐메트 2세이후 술탄들은 혼자서만 식사를 하는 예법이 정해졌다[81].
4- 촛불
밥상위의 촛불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에는 접시모양의 촛대에 초를 놓았다. 밥상위에 놓인 라크와 포크와 나이프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5- 컵
할례를 받은 아이에게 선물하는 컵과 생김새가 닮았다.
6- 빵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빵을 덩어리째 손으로 떼어 먹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오븐에서 나온 빵은 없었다. 그리고 빵을 잘라 그릇에 담아 놓았는데, 이는 당시의 풍습에 맞지 않는다.
7- 빵과 고기:
오늘날 같은 모습으로 한 접시에 빵과 고기를 같이 놓았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빵과 고기를 따로 담아 놓았다.
8- 식탁의 상태
당시에는 술상이 아닌 이상, 오늘날처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는게 아니라, 하인이 그때 그때 음식을 가져왔었다. 술탄이 음식을 다 먹으면 그 접시를 물리고, 새로운 음식을 내오는 식이었다. 한 상에 술과 음식과 빵이 함께 놓여있는 것은 매우 이상한 모습이다.
9- 식기도구들
당시 오스만 제국 궁정에서는 중국산 도자기와 이즈닉산 도자기, 동그릇, 톰백그릇을 사용했다. 그릇의 모양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10- 물병
위의 유리 물병은 19세기 스타일이다. 또한 당시에는 물을 마시고 싶으면 하인이 잔에 물을 담아주는 형식이었지, 직접 물을 따라마시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물병은 동으로 만들었지 유리로 만들지 않았다.
11- 뚜껑달린 도자기 팬
19세기에 이을드즈 궁전에서 생산하던 도자기를 사용했다.
12- 앞접시
당시에는 앞접시가 없었다. 상위에는 딱 하나의 접시만이 있었고, 모두가 그 음식접시를 공유했다. 또한 재상들이 단체로 모인 상에서는 각 사람마다 각접시 하나별로 음식을 나눠서 주었다. 앞접시를 쓰는 풍습은 프랑스식 예법으로 1850년대 이후에야 등장한다.
13- 과일접시
과일접시는 식사 후에 와야 한다.
14- 숟가락
쉴레이만 대제가 살았던 시절에 금속 숟가락이 가당키나 하는가? 이는 19세기에나 등장한다. 그 당시에는 대모갑이나 거북껍질로 만들고 보석으로 장식한 수저를 사용했었다. 위의 장면에 등장하는 금속 숟가락은 그 당시 유럽궁정에서 조차도 없었다.
15- 초록색 사과
원래 터키에는 없던 종이다. 나중에 20세기 되어서야 유럽에서 소개된 종이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무흐테솀 유즈이을은 나름 고증에 신경을 쓴 탓인지, 오스만 시대의 터키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 특히 쉴레이만이 휴렘 술탄에게 지어주는 시나 연애편지[82]는 오스만어로 된 원본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터키인들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오스만 시대의 궁중용어와 직책 등도 현대어로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데다가 단어도 옛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터키어를 배우는 사람이 이 드라마를 보고 터키어를 배우는건 상당히 어렵다. 이는 일본 시대극보고 일본어배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대 터키어도 유럽권과 마찬가지로 왕족을 1인칭 복수로 칭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반영된다. 이를테면 "Hünkârım şu an halvette girdiler." 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폐하께서는 지금 합궁에 드셨사옵니다." 라고 황제를 3인칭 단수로 지칭해 girdi 라고 써야 정상이지만 3인칭 복수로 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알고 있다(biliyorum), 알았다(anladım), 절대로 안된다(asla olamaz) 같은 어휘도 당시의 어휘를 사용해서 각각 mâlum, alâ, zinhar edemez 등으로 사용하고 있어 고어를 모르는 터키인들조차도 햇갈려한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외국 인물들 특히 유럽인들이 작중에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일단 여주인공부터 우크라이나인 외국 인물들이 등장할때는 해당 국가 언어로 말을 하되 거기에 터키어를 더빙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가령 이사벨라 포르투나는 스페인어, 초창기의 누르바누 술탄은 이탈리아어, 카를 5세는 독일어로 말을 하되[83] 해당 국가 언어 음성은 줄이고 더빙한 터키어 음성을 붙인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휴렘의 경우 회상씬에서는 러시아어로 말을 하고 거기에 자막을 붙이는 형태로 나오나 그 이외 장면에서는 1화부터 어눌하긴 하지만 터키어로 말한다. 이 외에도 러요시 2세와 타흐마스프 1세는 원래대로라면 헝가리어와 페르시아어로 말을 해야 겠으나 그런거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유창한 터키어로 대화한다(…)[84]. 터키인들도 알아듣기 힘든 오스만 터키어는 자막이 달린다.
전체적인 고증 수준은 튜더스나 마르코 폴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시즌 1, 2, 4는 몇몇 창작 인물들만 제외하면 역사적 사실과 심각할 정도로 차이나는 점은 없지만[85] 시즌 3 스토리는 약간의 허구가 가미되어 있다.
6.1 실제 역사와의 비교
6.1.1 휴렘 술탄
- 실제 역사에서는 '소리지르고 발광'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아들을 차기 술탄에 앉히려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후궁의 아들이 술탄이 되면 자기 자신은 황궁 밖으로 쫓겨나고 아들들은 모조리 처형당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어떻게 보면 야심찬 성격이었다기보다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일지도.[86][87]
휴렘이 쉴레이만을 진심으로 좋아했는지는 확인 불가능. 쉴레이만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황제의 첩이 된 자신의 처지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황제의 애첩이자 다음 황제의 모후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쉴레이만이 휴렘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애첩을 노예해방시키고 정식 황후로 삼는다거나 평생 자기 옆에 있게 한다거나[88] 하는 등 이전까지의 관습을 깬 것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또한 휴렘은 폴란드 왕에게 편지를 두 통 보내 등, 황후로서 정치에 일부 개입했다.
6.1.2 이브라힘 파샤
- 작중에서는 그리스 노예 출신이라 하여 다른 관료들로부터 멸시받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명백한 고증 오류다. 보다 상세한 소개는 예니체리 항목을 참고하고 여기에서는 간단히 쓰면, 초창기 오스만 제국은 투르크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데브시르메 제도가 도입되어 발칸 반도의 기독교도 소년들을 징집해다가 군사 지휘관과 관료로 등용하기 시작하는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메드 2세는 전제군주정을 수립하기 위해 데브시르메 징집자들을 정치의 중핵으로 들어앉히고 이전까지 지배층이었던 투르크인들은 일종의 야당으로 만들어 여당. 즉 데브시르메 출신들을 견제하게 한다. 하지만 이후 재상을 비롯한 고위 관직에 데브시르메 출신자들이 임명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쉴레이만 대제 치세에는 마침내 두 세력이 공존하던 균형이 깨어지고 데브시르메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즉 실제 역사에서 극중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인 노예 따위와 국정을 논의해야 하다니...' 라며 한탄하는 관료가 있었다면, 이브라힘으로서는 "그러는 당신은. 당신도 세르비아(또는 알바니아나 불가리아) 출신 아뇨?" 라고 따질 수 있었을 것[89].
또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뇌하는 모습도 그려지지만, 이 부분은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 비잔틴 제국이나 세르비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지의 소년들이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 이유가, '황제에게 충성하는 유능한 관료' 로서의 정체성을 새로 수립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정도. 더군다나 이브라힘은 재상이 된 뒤에 부모를 콘스탄티노플로 모셔와 봉양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자신의 고향이나 출신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90].
6.1.3 헝가리 및 전쟁 관련
- 극중에서는 로요슈 2세가 현군이든 폭군이든 나름 왕답게 그려지는데, 실제로는 당시의 헝가리는 말만 왕국이지 귀족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왕권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1521년의 베오그라드 공방전, 1526년의 모하치 전투 모두, '투르크가 쳐들어왔으니 군대를 이끌고 모여라!' 라는 왕명이 떨어졌음에도 제 때에 집결지에 모인 귀족이 한 명도 없었을 정도. 베오그라드는 그러다 떨어졌고, 모하치 때는 로요슈가 집결지로 먼저 향한 뒤에야 귀족들도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즌 1에 국한해 서술하자면, 먼저 로요슈 2세 시대의 헝가리는 오스만 제국에 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에게 다짜고짜 '연공 바칠래, 죽을래.' 라고 강요했고, 헝가리가 그걸 거부하자 침공한 것. 반면 극중에서는 헝가리가 오스만 제국에 바치기로 했던 연공을 몇년째 지불하지 않았고, 그것이 침공의 명분이 되었다. 또 베오그라드 공방전이 벌어졌을 당시 국왕 로요슈는 부다에 있었고, 나름 치열하게 묘사되는 드라마와 달리 당시 헝가리 수비군은 6백 명에 불과했다. 전투의 여파가 나름 커서 그렇지, 전투 자체는 시시한 싸움이었다.
로도스 공방전은 더 문제가 많은데, 당시 성 요한 기사단의 상징이 검은 바탕에 하얀 십자가(정확히는 변형된 모양의 십자가)였던 건 맞지만 갑옷에 들어가는 문장은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였다. 또 전투 장면을 보면 기사단 측의 병사들은 큼지막한 방패를 들고 있는데, 물론 당시의 기록화를 보면 기사들이 방패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귀족 자제들만 입단을 허용했던 특징 탓에 기사들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용병을 고용하거나 로도스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맞섰는데, 극중에서는 용병이고 주민이고 없고 기사가 수천 명이었던 걸로 퉁치자고 했던 모양. 그리고 주인공은 휘렘 술탄이지 쉴레이만이 아니어서인지 공방전이 상당히 간략하게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반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쉴레이만이 이끄는 본군은 전위부대보다 한달 뒤에 로도스에 도착하지만 그래도 요새 위에 오스만의 깃발을 게양하기까지 5개월이나 걸렸으며, 그마저도 정공법으로는 끝끝내 함락하지 못하고 항복을 협상한 결과였다. 로도스 공방전으로부터 8년이나 지난 뒤에 스페인이 기사단을 신하로 삼으며 떼어준 땅인 몰타가 이 당시에도 기사단 영토로 묘사되는 건 보너스.
또 베오그라드 공방전 때에도 그렇고 로도스 때에도 그렇고 예니체리들이 검을 들고 백병전을 벌이는데, 이미 백년 전인 무라드 2세 때에 예니체리의 제식병기로 총이 채택되었다. 총이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극중에서처럼 예니체리들이 검과 방패를 들고 우라돌격했을 가능성은 적의 성이나 요새를 직접 공격할 때 또는 도저히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가 아니면 낮다고 해야 할 것이다[91].
어차피 전쟁물이 아니라 하렘의 궁중암투물이다.
7 기타
시노하라 치에(篠原千絵)가 그린 만화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夢の雫 黄金の鳥籠)'도 휴렘 술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92]
실제 역사와 드라마에서 휴렘 술탄과 이브라힘 파샤는 정적 관계임에 반해 본 만화에서는 비밀스러운 연인관계로 나온다(…).
코믹스화 되기도 했다. '승리로 가는길(Zafer Yolunda)'라는 제목의 만화로 시즌 2에 나오는 모하치 전투 등을 소재로 그렸다.
드라마에서 쉴레이만이 휴렘에게 초록색 에메랄드가 박힌 반지를 선물로 주는데 이걸 실제 상품화했다. 상품화된 반지들은 애청자들인 터키와 유럽 아줌마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팔려 나갔다.
[1]
작중에 나오는 오스만 제국 시절 의상들이 굉장히 화려하다.
[2]
시즌 1,2만 해도 CG는 별로였지만 시즌 3 이후부터는 CG가 수준급이다.
8 후속작
무흐테솀 유즈이을: 쾨셈 항목 참조.
9 관련 사이트
위키피디아(영문)- ↑ 서방에서는 '록셀라나'로 알려져 있다.
- ↑ 사실 이 사극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터키의 대중문화는 한류처럼 여러 곳에서 인기가 높은편이다.
터키류?사우디 주부들은 터키 드라마 보려고 TV앞에 모여들고 유명한 터키 연예인이 중동의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거 보고 실신하는(…) 현지 팬들이 생길정도. 실제로도 터키 음악이 많은 팬들을 모으는 등 터키는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산업 강국이다. 터키 음악은 레바논 음악 다음으로 이집트 음악과 더불어 아랍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는 음악시장이다. - ↑ 진주인공인 휴렘 술탄은 134화에서 병으로 쉴레이만 대제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참고로 쉴레이만의 재위기간이 1520년부터 1566년까지의 46년이고, 휴렘 술탄이 죽은 것이 1558년. 휴렘 사후의 8년은 대충 때웠다는 소리… 지만, 주인공이 쉴레이만이 아니라니 그러려니 하자.
- ↑ 게다가 1558년 이후 8년은, 쉴레이만 치세 전기나 중기에 비해 큼직큼직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게 사실이다. 휘렘 술탄이 죽었을 무렵에는 쉴레이만의 후계 문제도 대부분 정리가 되었고, 제아무리 황제라도 사람인 이상 60대가 3~40대처럼 활발한 활동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 물론 1558년부터 1565년까지도 오스만 제국의 정복전쟁은 바다에서 계속되었지만, 쉴레이만이 직접 지휘한 것도 없는 관계로 왜 다루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기는 애매하다. 쉴레이만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라면야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휘렘 술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이기도 하고.
- ↑ 정교회 사제는 가톨릭 사제와 달리 일정 계급 이하의 사제의 경우 결혼을 할수 있다.
- ↑ 쉴레이만은 자신이 교황보다 더 위대하다고 자부하며 교황의 삼중관을 능가하는 사중관을 만들어 착용했다. 마지막 화에서 이스탄불에서 헝가리까지 이 사중관을 쓰고 갔다.
- ↑ 당시 오스만 제국의 동맹이었던 프랑스가 제작하여 선물로 주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https://en.wikipedia.org/wiki/Antonio_Rincon 참고.
- ↑ 휴렘 술탄의 음모 때문. 보다 자세한 내막은 이브라힘과 무스타파 항목 참고.
- ↑ 가까운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으면서 말수도 줄어들고 결정적으로 휴렘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굉장히 수척해진다.
- ↑ 메흐메트 2세가 법제화. 그 내용은 '황자들 가운데 누구든 콘스탄티노플에 가장 먼저 입성하는 자가 다음 황제가 될 것이며, 새로 황제가 된 자는 그의 형제를 모조리 제거하라 ' 라는 것으로, 즉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황제 자리를 계승하는 게 아니라 황자 가운데 가장 유능한 자가 계승하라는 것. 본래 남자 형제들만 처형되는게 원칙인데 누나와 여동생까지 죽인 경우도 있다.
- ↑ 건국자인 오스만 1세와, 2대 황제인 오르한은 제외. 애초에 이들은 '황제' 는커녕 '술탄' 으로도 불리지 못했고, 아직 국가 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다.
- ↑ 부황인 셀림 1세가, 자신의 동생들과 조카들을 몽땅 숙청해준 덕이다. 그런데다, 쉴레이만은 셀림의 외아들. 즉, '제거' 할 형제가 없었다. 다만 이 때문인지 쉴레이만은 메메드의 법을 어기고 자신의 후계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며, 그 뒤를 이은 막장 암군 셀림 2세도 아들들을 모두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원칙이었음에도 '장남 무라드가 이미 총독으로 내려가 있잖음. 그럼 걔한테 황제 자리 물려주면 되는데, 다른 아들들은 뭣하러 보내?' 라는 입장이었다. 결국 메메드의 황위 계승법은 아흐메트 1세 때에 이르러 폐지된다.
- ↑ 100회 이후로는 바히데 페르친
- ↑ 터키어로 Kraliçe라고 말한다. 휴렘이 오스만 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설마 오스만 제국에서 어떤 호칭을 쓰는지 알았을까… 또 오스만 제국시절에는 황후라는 별도의 호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황자를 생산한 후궁을 가리켜 '하세키 술탄(Haseki Sultan)' 이라 했는데, 이건 쉴레이만의 휘렘을 황후로 책봉하며 신설한 칭호이기에 논외.
- ↑ 노예가 술탄의 이름을 직접 부르니 상식적으로 보면 목이 떨어질 상황이었고 그 장면을 본 환관들과 나인들의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 나중에 휴렘이
죽은 척 했다가깨어나고 나서 쉼뷜 아아가 "너 미쳤냐? 우리가 얼마나 가슴이 처렁처렁했는지 알기나 하냐?" 라고 호통을 친다. - ↑ 물론 휴렘은 자신이 술탄의 여자가 되겠다는 일념도 가지고 있었지만 잘생긴 쉴레이만에게 반한 상태였다. 시즌 3 이후 중간 중간 여러가지 음모 때문에 사랑이 식는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으나 휴렘과 쉴레이만은 결과적으로 정말 금슬좋은 노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 무슬림과 결혼하려면 무슬림이 되어야 한다. 참고로 극중에서는 쉴레이만이 직접 휘렘의 개종 의식(?)을 치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뭐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장소나 절차가 문제라면 모를까 쉴레이만이 휘렘을 직접 개종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쉴레이만의 아버지인 셀림 1세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칼리프도 겸하게 되었기 때문. 즉 쉴레이만이 개종시켜주는 건 한 나라의 황제랍시고 나대는 게 아니라, 기독교로 따지자면 교황이 직접 세례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 ↑ 술탄이라는 말이 갑툭튀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자면, 메흐메트 2세 이래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황제' 로 불리게 되면서 '술탄' 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모후나 후궁, 황자나 공주 등 황족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술탄의 모후를 뜻하는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 이하 오스만 제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도 '술탄' 이라는 용어가 쓰인 부분은, 황태후나 황후, 공주 등 여자 황족이라고 이해하고 읽으면 된다.
- ↑ 유튜브 댓글이나 시청자 게시판등을 보녀 휴렘이 죽을때 한쪽에서는 아쉬워 하는 반응이, 한쪽에서는 "잘죽었다. X년(…)"이라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 ↑ 터키계 독일인이다. 아버지가 터키인, 어머니는 독일인.
- ↑ 드라마에서는 알바니아 출신 설을 채택했는데 캅카스의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어떤쪽이던 간에 미천한 신분의 휴렘과 달리 고귀한 신분이었다는건 변하는게 없다.
- ↑ 휴렘을 만나기 전에는 마히데브란을 총애했다. 마히데브란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보석 박힌 반지를 손수 만들고 있었을 정도. 하지만 쉴레이만이 휴렘을 만난 뒤 이 반지는 휴렘의 것이 된다.
- ↑ 1498~1500년생으로 추정되며 158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81~83살까지 살았다. 당시 평균수명을 봐도 꽤 장수한 것으로, 쉴레이만 대제는 72세(1566년), 휴렘은 58세(1558년)에 세상을 떠났다.
- ↑ 또 휴렘의 아들로 쉴레이만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셀림 2세마저 1574년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 아들인 무라드 3세가 뒤를 이었다.
- ↑ 손톱으로 할퀴고 싸운 것은 분명한 듯. 마히데브란이 휴렘의 얼굴에 상처를 냈고, 휴렘은
아파하기는커녕그걸 이용. 쉴레이만에게서 앞으로 두번 다시는 마히데브란의 침소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 ↑ 무스타파가 지방 총독으로 임명되었기 때문. 황자를 총독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아래의 무스타파 황자 항목 참고.
- ↑ 하나는 술탄의 여동생, 하나는 노예… 예니체리는 아무리 큰 권력을 누릴지라도 공식적으로는 술탄의 노예신분이다.
- ↑ 다만 오스만 제국의 고관이 황족과 결혼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황족과 결혼한 경우 '다마트(damat)' 라는 별명이 붙는데 이런 별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관과 황족의 결혼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실제로도 오스만 제국 역사상 '다마트 ㅁㅁㅁ 파샤' 라고 불리는 관료는 비교적 중요한 인물만 꼽아도 스무명이 넘어간다. 즉, '넘사벽스러운 신분의 차이' 가 결코 아니다.
- ↑ 쉴레이만은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하여 몇날 몇일동안 화려한 파티를 연다.
- ↑ '넘사벽스러운 신분의 차이' 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해주는 예. 이로 인해 이브라힘도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 라고도 불리게 됐으나... 다른 '이브라힘' 들도 많은 탓에 오늘날에는 '파르갈르' 등의 별명이 훨씬 많이 쓰인다.
- ↑ 크림 칸국의 공주였다. 크림칸국은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일대에 있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인접한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할줄 아는 것이다.
- ↑ 투르크어로 황태후는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 이라 하며, 하렘 조직을 통괄하는 위치였다. 즉 황족들을 단속하며, 하렘에 국한해서는 황제 이상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하렘의 여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까지도 갖고 있었다). 즉 후궁들끼리 싸움이 났다면 그걸 교통정리하는 게 발리데 술탄의 역할 가운데 하나였고,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리데 술탄의 권한은 이후 그녀들이 제국의 정치에까지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 ↑ 실제 역사에서,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이 때문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 ↑ 신묘한 계책을 내는건 물론이고,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해서 초반부 부터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의 말을 죄다 통역한다. 마르틴 루터의 파문과 그와 관련된 소식을 들은 후 루터가 교황청의 근심이 될것을 예견한다.
- ↑ 이브라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 ↑ 무스타파가 술탄이 되면, 자기 자신은 황궁에서 쫓겨나고 아들들은 모조리 처형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 ↑ 이건 여담이지만, 하얀 환관(Kapı Ağa)도 있었다. 이들은 환관이라고는 하지만 성기능을 잃지는 않았으며, 하렘에서 일하지 않고 황제의 비서 비스무리한 역할을 수행했다.
- ↑ 그런데 얘도 휴렘이 승은을 입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자신도 덩달아 이슬람교로 개종한다. 속으로는 "나도 승은좀 받자." 라고 생각한것.
- ↑ 이브라힘 파샤와는 친분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한 것으로, 이브라힘은 사심없이 오스만 제국의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쉴레이만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무스타파를 차기 황제로 지지했었다.
- ↑ 실제 역사에서 당시 신성로마제국에서 파견한 대사 오지에 길랭 드뷔스베크(Ogier Ghiselin de Busbecq)는, '(쉴레이만의) 아들들 가운데 무스타파라는 자가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 교육받았고 사려 깊으며 이제 24세 또는 25세이기에 제위에 오를 만한 나이가 되었다. 부디 신께서 그런 힘을 가진 바르바리인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라고 기록했을 정도. 다만 드뷔스베크라는 사람은 오스만빠 기질이 다분했기에, 적당히 가감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 ↑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친할머니에게 '명령이야!' 라고 땡깡부린 것이기 때문.
- ↑ 정확히는 16대 술탄인 아흐메트 1세(재위: 1603~1617) 때까지
- ↑ 황자가 10대 중후반쯤 되면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살펴보는 게 관습이었는데, 이때 황자의 모후(술탄을 기준으로 하면 여러 후궁 중 하나)가 황자를 따라가는 것도 관습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마히데브란을 몰아내고 쉴레이만을 독차지하려던 휴렘이 이용한 것이 바로 이 관습. 무스타파도 이제 지방으로 내려갈 나이가 되었으니, 모자가 함께 저쪽 시골에 가서 처박혀 있으라는 것.
- ↑ 주로 셀림에게 군자금을 빌려주는 식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오스만 제국은 전통적으로 모후(발리데 술탄)에게 충분한 품위 유지비를 제공하여 자선사업도 하고 모스크 건설도 후원하고 하며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는데, 휘렘이 쉴레이만보다 일찍 죽다 보니 미흐리마흐가 사실상 발리데 술탄의 역할을 맡아 품위 유지비를 챙겼던 것. 또 남편인 뤼스템 파샤도 대부호로 유명했다. 다만 셀림의 치세에는 재상인 소콜루 메메드 파샤가 전권을 쥐었기에, 2인자 정도로 행세했다고 보는 게 옳겠다.
- ↑ 첫째인 메메드와 둘째인 압둘라는 일찍 죽었다.
- ↑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무스타파와 사이가 좋았던 것은 휘렘의 장남이었던 메메드.
- ↑ 휴렘 술탄의 막내아들인 지한기르와 대조적이다. 지한기르 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형 무스타파가 죽었다는 소식에 우울증에 걸려서 곧 죽어버린다. 실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에 묘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이 부분 차후에 수정 바람) 지한기르는 선천적으로 몸이 불편했고 이것이 장애로 발전했다. 즉 여차하면 황제도 전장에 직접 나가야 하는 오스만 제국에서는 애당초 차기 황제감으로 고려되지 않았으며, 혹 살해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 ↑ 제위 경쟁에서 셀림이 한 일이라고는 자신이 맡아 다스리는 지방에서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과, 아버지가 뭘 명령하면 곧바로 예 알겠습니다를 시전한 것 뿐. 어떻게 보면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황자라기보다 쉴레이만의 눈밖에 나지 않은 유일한 황자라고 해도 좋았으며, 제위에 올라 아버지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셀림이 곧바로 내린 명령도 '내가 황제가 된 것도 다 재상 그대 덕이니 앞으로도 매사를 다 그대가 알아서 처결하라' 라는 식이었다. - ↑ 정확히는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
- ↑ 정확히는 황자를 낳은 '하세키 술탄(Haseki sultan, 다만 세세하게 고증 오류가 있는 게, 하세키 술탄이라는 칭호는 쉴레이만이 휘렘 술탄을 총애하며 그녀에게 처음으로 붙여준 칭호다. 휘렘 술탄의 뒤를 이어 하세키 술탄이 된 인물은 셀림 2세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던 누르바누 술탄.)
- ↑ 과일접시 뒤에 단도를 숨겨서 쉴레이만에게 접근해서 그의 목에 칼을 겨누지만 쉴레이만은 낙법(…)으로 사드카를 제압한다.
- ↑ '궁전이 아니라 저택 아냐?' 하는 분이 있겠지만, 드라마에 묘사된 궁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오늘날까지도 '이브라힘 파샤의 궁전(İbrahim Paşa Sarayı)' 이 남아있다. 다만 세월이 흐른 만큼 누군가의 저택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고, 터키 이슬람 미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치가 참 절묘한데, 톱카프 궁전에서 걸어서 5분거리정도밖에 안되는데다가, 저택을 기점으로 바로 앞에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말의 광장이 있고, 서쪽으로는 아야 소피아와 톱카프 궁전이 있다.
- ↑ 휴렘은 레오와의 관계가 쉴레이만에게 발각되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레오가 처형당하고 자신은 쉴레이만의 명령으로 이브라힘에게 목이 졸려죽는(…) 악몽을 꾸게 된다. 문제의 그 처형당하는 꿈.
- ↑ 쉴레이만의 총애를 받기 전까지, 휴렘은 일개 신부의 딸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버지가 그리 신분이 높은 성직자도 아니었고.
- ↑ 오늘날 스페인에 있는 지역.
- ↑ 이사벨라 포르투나의 약혼자는 카를 5세의 인척이다. 이사벨라를 인질로 잡아 라이벌인 카를 5세를 엿먹이려는 의도.
- ↑ 계약인 것이, 해적들로서도 손해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자금 지원은 둘째치고 스페인 같은 나라가 대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본거지를 잃어도 술탄의 지원 하에 되찾을 수 있었고, 본거지를 불법으로 점령한 세력에서 어디어디 총독 하는 식으로 공식 작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
- ↑ 실제로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아래에 등장하는 누르바누 술탄이 아주 좋은 예.
- ↑ 작중에서는 마자리스탄(Macaristan)으로 불린다. '마자르족의 땅' 이라는 뜻이며, 오늘날 터키에서도 헝가리라 하지 않고 마자리스탄이라 부르고 있다.
- ↑ 시즌2 26화 후반부. 영어자막이 달린 영상이다… 실제 역사속에서도 오스만 제국이 언제나 전위대로 내세우는 아자브와 아큰즈가 큰 타격을 입을 정도로 헝가리가 우세를 잡았으나 곧 예니체리와 시파히 등 오스만 제국의 본군이 도착했고, 그 다음은 헝가리의 기병대가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데도 돌격을 외치다가 전멸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헝가리군 우익은 쉴레이만의 흉갑에 화살을 꽂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그것이 오스만에 맞서 수십년간 항쟁한 강국 헝가리의 마지막이었다). 쉴레이만 본인도 '이건 뭔가 이상한데' 싶었는지, 모하치에서 대승을 거두었는데도 불구하고 헝가리의 수도 부다로 진격하지 않고 몇날 며칠 동안 모하치에서 야영했을 정도.
- ↑ 빅토리아의 결혼을 축하해주던 저녁식사 자리였다. 러요시 2세가 새 신부인 빅토리아의 목에 직접 목걸이를 걸어준다. 빅토리아와 결혼한 헝가리 귀족은 그 직후 성으로 쳐들어온 오스만군에게서 러요시 2세를 지키다가 전사한다.
- ↑ 터키 영화 '정복자 1453'에서도 실제로는 명군이었던 동로마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를 환락에 빠진 암군으로 왜곡했었던 것이 연상된다.
- ↑ 엄밀히 말하면 3분의 2만. 러요시가 전사한 이후 헝가리의 귀족들은 다음 왕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두고 분열하는데, 두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러요시의 처남이었다)가 헝가리의 3분의 1을 통치하게 되고. 다른 3분의 1은 오스만 제국이 지지했던 후보가 '트란실바니아 공작' 으로서 통치. 남은 3분의 1은 오스만 제국의 직할령이 된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는 헝가리를 놓고 계속해서 전쟁과 강화를 되풀이했고, 오스만 제국 쇠퇴기인 1699년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에 완전 합병.
- ↑ 극중에서는 직접 베어주신다.
- ↑ 공식으로는 Papa(터키어로 '교황')으로 불리지만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클레멘스 7세로 단정 지어놓았다. 그 당시 재위했던 교황들을 클레멘스 7세 한 명으로 퉁친듯.
- ↑ 쉴레이만이라는 이름에 가려진데다 재위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셀림도 상당히 먼치킨스러운 인물이다. 8년밖에 안되는 치세 동안 페르시아를 제압하고 이집트를 정복하여,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두배 가까이 넓힌 공이 있기 때문. 참고로 무라드 2세가 사망하고 메흐메트 2세가 즉위했을 때에도 유럽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못한 놈이 즉위했다며 반겼는데, 그 결과는…
아무래도 당시 유럽인들이 헛다리 짚는 데 선수들이었던 모양이다. - ↑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투표로 선출되는 지도자인 도제(Doge)였던 세바스티아노 베니에르의 조카였다고 한다. 베네치아 출신이라는 설 이외에도 스페인계 유대인 집안이라는 오스만 제국측 기록도 있지만, 드라마에선 베네치아 양갓집 규수로 설정한 듯. 누르바누가 이탈리아인이라는 근거는 누르바누가 베네치아인이라고 증명한 오스만 주재 베네치아 외교관들의 증언과 베네치아 공화국 측의 기록이다.
- ↑ 반대로 스페인계 유대인이라는 설은 벨기에에서 은행업을 하다가 당시 벨기에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오스만으로 건너온 유대인 거부 요셉 나시의 여동생이라는 설이다. 요셉 나시와 그녀의 숙모인 그라시아 멘데스 나시는 쉴레이만을 설득해 팔레스타인으로 스페인계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는데 성공한다.
- ↑ 이건 그 수행원을 질투하던 휴렘의 명에 따른것이다. 수행원의 본명은 발레리아. 오스만에서는 '나제닌 하툰'이라고 불린다.
- ↑ 후리지한 술탄이라고 불린다. 바예지드 황자와 연인 관계이다.
- ↑ 워낙에 인기가 많았던 무스타파 황자를 제거하는 데 일등공신이 바로 뤼스템이었기 때문. 그리고 쉴레이만은 그를 파직하고 전공이 많았던 카라 아메드 파샤를 재상으로 임명하나, 자신의 사위가 다시 재상이 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을 알았던 휘렘은 아메드 파샤를 실각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아내의 말만 곧이들은 쉴레이만은 아메드를 처형장으로 보내버린다.
- ↑ 오스만 제국 정부 관료가 아니라 해적 출신으로 해군 총사령관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총사령관직이 갖는 무게와 하이르 앗 딘의 활약상을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때 쉴레이만에게서 받은 임무라는 것이 '모든 지중해 국가들의 함대를 합친 것만큼' 많은 함선을 건조하여 강력한 함대를 만들라는 것. 다소 후덜덜한 임무이기는 했지만, 주요 '지중해 국가' 들의 연합함대를 격파한 프레베자 해전을 보면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도 좋을 듯 하다.
- ↑ 둘이서 침대에서 입을 맞춘 후 화면이 흐려진다.
- ↑ 참고로 이들은 한일관계보다 더 심할 정도로 정말 사이가 좋지 않다. 자세한것은 그리스-터키 관계 참조.
- ↑ 루마니아에서는 위낙에 공영 TVR뿐만 아니라 민영방송사도 엄청나게 난립하는 덕택에 터키 드라마 뿐 아니라 자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인도 드라마, 심지어 한국 드라마까지 방영되는 치열한 경쟁때문에 6%대만 넘어도 대박이 나는데 그 두배다.
- ↑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에서는 정식으로 수출되어 방영했다.
- ↑ 외교관 겸 가수 겸 의상 디자이너 겸 자선 사업가 겸 이동통신 회사 소유주 겸 금광 소유주에 FC 분요드코르의 구단주였고 한때 현 대통령의 후계자로 거론되었지만 현재는 어찌된 일인지 감금 상태.
- ↑ 모 위키러는 터키 판 여인천하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지존을 놓고 다투는 궁중 여인들의 다툼이라는 소재에서 장희빈 비슷하다는 평도 있다.
휴렘 술탄은 해피 엔딩이었지만 정난정과 장희빈은 배드 엔딩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 ↑ 자막이 나오지 않으면 유튜브와 비미오의 캡션 기능을 켜서 영어 자막을 선택하면 된다.
- ↑ 무흐테솀 유즈이을 공식 유튜브 계정
- ↑ 메메드 2세 이전까지 술탄들은 재상 이하 고위 관료들의 자문회의기구인 '디반(divan)' 을 직접 주재했는데, 회의가 해뜰녘에 시작되어 여름에는 정오. 겨울에는 오후녘에나 끝났기 때문에 회의 중간중간에 식사를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술탄도 관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전제군주로 군림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이것도 정복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한 메메드는 관료들과 거리두기를 시도. 디반을 황제가 직접 주재하는 관습도 폐하고 식사도 황제 혼자서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극중에서는 쉴레이만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거 없었고, 회의가 다 끝나면 재상이 황제를 알현하여 회의에서 논의된 사항과 결과를 보고하고 황명을 받은 다음 그것을 다른 관료들에게 전달했다(이때의 황명은 디반 회의으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도 있었지만, 니들은 다 틀렸고 내가 맞다는 식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문자 그대로 자문기구였던 셈이었지만, 회의의 구성원들은 각 분야별로 제국의 최고 브레인들이었기에 결정이 존중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전쟁 선포 등 황제가 가끔씩 재상 이하 관료들에게 특정 사항을 전달해야 할 경우는 예외.
- ↑ 쉴레이만은 휴렘에게 바치는 연애시를 실제로 썼다. 심지어 시인으로서의 필명을 '연인' 이라는 뜻의 '무히비(Muhibbi)' 로 정했을 정도. 다만 이것은 휴렘의 연인이라는 것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시의 연인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134화에서 휴렘이 숨을 거둘때 휴렘은 쉴레이만에게 오래전에 쉴레이만이 휴렘에게 바친 연애시를 다시 한번 들려 달라고 부탁하고 쉴레이만이 읊는 시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난다영어 자막 달린 해당 장면 동영상. 쉴레이만의 연애시를 보고 싶다면, 휴렘 술탄 항목 참고.
- ↑ 참고로, 실제로 카를이 신하나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썼을 가능성은 낮다. 언어를 배우는 데에 거의 천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 네덜란드어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 그런데다,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의 말이라고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짐은 신에게는 스페인어, 여자에게는 이탈리아어, 남자에게는 프랑스어, 그리고 짐의 애마에게는 독일어를 쓰노라." 그런데다 카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으로서 치세의 대부분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신성로마제국은 친동생인 페르디난트(훗날의 페르디난트 1세)가 '황제 대리' 로 통치했다. 즉 고증에 충실하자면 스페인어가 나와야겠으나, 아무래도, '카를 5세 = 신성로마제국 황제'. 그러니까 독일인. 이라고 생각한 듯. 추가적으로 카를은 유년기에 저지대 지방에서 자라 네덜란드 말을 잘했고 스페인 어는 잘 못했으며 그런 점 때문에 스페인의 국민들에게 외국인 군주라고 적대되기도 한 사실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치세 초의 이야기. 애초에 스페인 왕으로 등극하는 조건 가운데 '스페인어를 배울 것' 이 있었으며, 점차 능숙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독일어를 쓴다는 것은 문제.
- ↑ 다만 어거지로나마 변호를 하자면, 사파비 제국은 5대 황제인 아바스 1세 치세 이전까지 아제르바이잔어를 궁정언어로 사용했다. 그리고 타마습 1세는 2대 황제이므로 고증에 철저하자면 아제르바이잔어를 써야 옳은데,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는 서로 친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운 언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를 한 학과에서 교육하고, 두 언어를 서로 비교해보는 연구도 많을 정도. 다만 아제르바이잔어는 어디까지나 아제르바이잔어이지 터키어가 아니기 때문에 터키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고, 헝가리는 이런 것도 없으므로 꼼짝없는 고증 오류.
아마 헝가리어가 되는 배우를 구할 수가 없었나 보다 - ↑ 다만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수두룩하게 나온다. 얼핏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
- ↑ 그 '몸부림' 이 오스만 제국 쇠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 ↑ 여담으로 극중에서는 이브라힘 파샤와 휘렘 술탄 사이의 갈등이 진작부터 시작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 '몸부림' 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브라힘 파샤는 마히데브란 소생의 황자 무스타파가 유달리 총명하다는 이유로 그를 지지했지만, '살아남아야' 하는 휘렘으로서는 무스타파의 황제 즉위는 절대로 안 될 말이었기 때문. 극중에서는 이브라힘 파샤가 하렘을 관리하는 직책 비스무리한 것을 꽤 오래 맡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승진의 계단을 착착 밟아올라가기 바빴을 것이므로 휘렘 술탄에 대해서도 '폐하께서 흠뻑 빠져계신 여자가 있나보다' 식으로만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 황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지방에 총독으로 보내고, 그때 황자의 어머니(황제를 기준으로 하면 첩)도 함께 보내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때 황자의 어머니는 황자가 황제로 즉위하지 않는 한 콘스탄티노플로 귀환 불가능.
- ↑ 실제로 극중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이브라힘을 크게 견제하고 그가 재상에 취임하는 것도 불쾌하게 생각한 끝에 이집트 총독으로 좌천된 하인 아메드 파샤(Hain Ahmed Pasha)
下人이 아니다는 그루지야 출신으로, 데브시르메 제도로 징집되어 관료가 되었다. 즉 아메드 자신도 투르크인이 아닌데다 '노예' 인 셈. - ↑ 다만 극중에서는 이브라힘이 다시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고향인 파르가로 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긴 것은 맞고 그로 인해 콘스탄티노플로 부른 것도 맞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선언한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로 보기 어렵다. 아직 민족 개념이 희미했던 쉴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어느 민족이냐보다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훨씬 중요했는데, 파르가 주민들은 기독교도인 반면 이브라힘은 무슬림. 설령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다 치더라도, 줄곧 기독교도였던 것과 기독교→이슬람→기독교 테크를 탄 사람이 똑같이 여겨질 리는 없다. 가족이야 반기고 환영했겠지만 동네 주민들까지 살갑게 대했을 가능성은 낮으며(이해가 잘 안 된다면, 일제 시대에 서울에서 태어났다가 어렸을 때 일본으로 건너간 일본인이 '내 고향은 한국이니, 돌아가겠다' 라고 선언하고 다시 서울로 건너온 걸 떠올려보자. 다른 한국인들과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겠는가.), 그 때문인지 극중의 이브라힘도 '죽더라도 내 곁에서 죽어!' 라는 쉴레이만의 편지 한 통에 곧바로 파르가에 정착하려는 생각을 접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간다.
- ↑ 또 항목을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예니체리는 애당초 돌격부대가 아니라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탱커에 해당하는 부대였다.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주력 딜러는 오스만 제국의 주력군이었던 시파히. 물론 공방전은 야전과 달라지는 게 당연하지만, 사회적인 신분도 높은데다 정예병이기까지 한 예니체리를 함부로 쓸 수는 없었던 게 당연하다.
- ↑ 한국에서는 쉴레이만 대제와 휴렘의 사랑 이야기가 별반 인지도가 없지만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각종 창작물에서 질리고 질릴만큼 써먹을 만큼 유명한 소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