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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美術 / Modern Art
특별히 요즘 현대미술은 동시대미술이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징징이가 싫어하는 것.
同時代美術 / Contemporary Art
1 개요
시작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대체로 리얼리즘이나 인상주의를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시작으로 본다. 따라서 이 두 사조가 시작된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미술이 대표적인 얼굴마담 역할을 맡게 된다. 마네, 모네, 세잔, 고흐, 고갱 등의 유명 작가들이 이 시기, 이 사조의 대표 작가들이다.
이 시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임무를 맡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 미술은 대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느냐의 문제에서 벗어나 조형미나 개념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점선면색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탐구한 추상미술이나, 마르셀 뒤샹 이후 미술의 주요 경향이 된 개념미술이 대표적인 예.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보통 1830년대에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40년대까지는 모더니즘 미술이라 말하고,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더이상 '미술'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이다. 기존 미술 장르인 회화, 조소, 판화 등에서 벗어나, 소리, 촉감, 냄새, 맛 같은 요소까지 끌어들여 종합예술화 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포스트 모더니즘도 끝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지금의 미술을 칭할 때 현대미술이라는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지금의 미술'을 동시대미술 Contemporary Art 라고 칭하며 미술계에서는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2 현대미술 현황
과장 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점만 찍고 엄청난 거액에 팔리는 그림도 있다.
한마디로 아는 만큼만 보인다. 즉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에겐 설명을 들어도 난해한 분야.. 스피드왜건이 절실히 필요한 예술.
예술의 문제점 항목에 있는 내용을 더 상세히 서술하였다. 왜 하위 항목이 더 구구절절한지는 묻지 말자. 사실 이 항목은 현대미술을 까는 사람들을 위해 작성되었다 카더라. 아니지, 미술학도 아닌 사람들이 작성했겠지
구체적으로 대중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태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1 낮은 현대미술 수요
유감스럽게도 대중은 현대미술을 헐리우드 영화나 디즈니 만화영화처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화부가 2014년에 조사한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주로 TV 시청(51.4%),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11.5%), 게임(4.0%) 같이 실내에서 하는 소극적인 여가활동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르별 예술 행사 관람률(중복 채택 가능)을 보면 영화 관람이 65.8%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2위부터 4위까지도 대중음악,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예술에 치중되어 있었다. 올해 영화를 본 사람은 국민 세명 중 두명 꼴로 많지만, 미술 전시를 본 사람은 열명 중 한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도 이 미술 전시중에서 현대미술의 비중은 더 적을 것이므로 실제로 현대미술을 접한 관람자는 열명 중 한명도 안된다는 소리다. 실제로 2014년 광주 비엔날레의 경우 관람객 수가 감소해 20여만명에 그쳤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한 사람이 늘어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미술(시각예술)에 대한 수요 자체가 적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2.2 현대미술은 고상하다는 인식
(현대예술 vs 순수예술) vs (대중예술 = 상업예술)?
현대예술과 대중예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이 존재한다. 현대미술, 또는 순수미술은 흔히 '교양'에 필요한 것,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고, 대중예술이나 상업예술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이것이다. 현대미술계에 종사하는 종사자들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일반인들은 현대미술이 고상하고, 어려우며, 그렇기 때문에 난해하며 '우리 서민'과는 상관없는 '고상한 상류층,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회화, 조소 같은 시각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연예술에서도 연극, 오페라, 클래식 음악 연주회는 고상한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반대로 개그 프로그램, 사진,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최근에는 게임 같은 것은 저속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① 현대예술, 순수예술은 대중예술, 상업예술보다 가치있다는 시각(가치: 현대예술,순수예술 > 대중예술,상업예술)에는 여러가지 잣대가 혼재되어 있다. 첫째는 순수예술은 '예술은 순수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대중성을 추구하는 대중예술보다 가치가 높다'라는 주장이다.(순수하게 예술성을 추구하는 측면: 순수예술 > 대중예술) 둘째는 순수예술은 자본, 경제논리, 쉽게 말해 돈에 의해 가치평가가 좌지우지되지 않기 때문에 대중예술보다 가치가 높다는 주장이다.(돈에 좌지우지 되지 않음: 순수예술 > 상업예술) 셋째는 순수예술이 대중예술보다 '현대성', 즉 현대를 대변하는 어떤 '시대정신' 같은 것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실제로 더 잘 반영하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는 주장이다.(시대상을 더 잘 반영: 현대예술 > 대중예술) 그리고 이런 시각들에는 일반인들은 이러한 가치를 찾아내는데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는 일반인을 위해 대중적, 통속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반대로, 이러한 논리가 역으로 뒤집어지면 ② 현대예술, 순수예술이나 대중예술, 상업예술이나 그게 그거라는 시각, 또는 ③ 현대예술, 순수예술은 대중예술, 상업예술 보다 못하다는 시각(가치: 현대예술,순수예술 < 대중예술,상업예술)이 된다. 첫째로, 순수예술이 추구한다는 소위 예술의 순수성, 또는 예술의 자율성(autonomy)은 사실 한갓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있다.(순수하게 예술성을 추구? 애초에 예술성이란 기준이 뭐냐?) 둘째로, 순수예술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거래되는 점을 들며 현대예술도 돈에 의해 되지우지 된다고 이야기하는 태도가 있다.(돈에 좌지우지 됨: 순수예술 ≥ 상업예술) 셋째로 현대예술이 시대성을 반영한다는 주장 자체가 넌센스라 보는 시각이 있다.(시대상을 더 잘 반영: 현대예술 ≤ 대중예술) 도리어 동시대에 유행하는 영화나 대중가요가 더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특히 이와 연관되어 추상화가 자주 거론된다. 그리고 이런 시각들에는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보다 일반인을 위해 대중적, 통속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우월하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인터넷 상에는 후자의 생각을 반영한 글이 종종 올라온다.현대미술에 대한 일침
어떠한 의견이든 지지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지적을 하는 대다수의 대중들이 현대미술 전시를 단 한번도 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열리는 반고흐, 모네, 피카소 등과 같이 잘 알려진 작가의 전시는 더이상 현대미술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현대미술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많은 관객을 끌어야 하는 대형 미술관들이 그나마 알려져 있을 뿐이다. 큰 광고판에 노출되는 대형 전시가 아닌 다양한 미술전시 관람을 원한다면 네오룩, 뮤움 또는 도두바 같은 사이트를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한결같이 예산이 부족한 미술 전시에서 비용절감의 1순위가 홍보비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이트에 전시기간 동안 게재하는 홍보방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2.3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인식
한국 사회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태도는 대략 이 글에 나오는 댓글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이나 모더니즘 디자인은 이해하면서 모더니즘 현대미술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인들도 모더니즘 건축이나 디자인이 오늘날 아파트 문화나 소비상품들에 영향을 끼쳤고, 한국 사회를 매우 크게 변화시켰다는걸 안다. 하지만 모더니즘 예술에 대해서만은, 한국 대중들이 건축이나 디자인만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작 그 건축이나 디자인에 모더니즘 예술이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말이다. 그나마 나은 경우는 다분히 문화사대주의적으로 한국보다 먼저 앞서간 나라들에서 나온 예술이니 한국에도 도움이 될거라 막연히 믿는 경우고, 나쁜 경우는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같은 '새로운 것'을 막연히 배척하는 경우다.
2.4 현대미술가들은 성의없게 작업한다는 인식
인식에 대한 설명을 위해 파일을 첨부한다. 이 중에 현대미술 작품과 4살 아이 낙서가 섞여있는데, 각각 어느 쪽일까?
파일:현대미술 vs 4살 아이 낙서.jpg
사실 일반인이 현대미술을 보는 시야는 이와 크게 다를게 없을 것이다(...). 오죽 했으면 이런 풍자까지 나왔을까? 정작 해당 만화를 그린 사람 역시 미술학도라는 게 함정
뭔 소리냐 하면, 일반인들은 거칠게 말해서 어린아이 그림 들고와서 이만 잘 까면 가치가 생기는 것을 현대미술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에는 늘 이런저런 설명이 있고 어떠한 의도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반대로 막 그려놓고 그럴듯한 의미를 말빨로 창조해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있는 판이다. 또한 레디메이드 이후로는 여기에 더해서 더 양심없는 작가들은 남이 만든걸 자기가 찍었으니 예술이라고 우긴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자질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2.5 현대미술가들이 하는 짓은 막장이라는 인식
대표적으로 일반인들이 오늘날 현대미술에 거부감을 갖는 원인은, 얼핏 보기에 예술가들이 '괴상한 짓'을 하기 떄문이다. 실제로 현대미술에서는 온갖 난해한 행위들이 다 예술이랍시고 행해지고 있다.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라. 예술가가 구린 17가지 이유 이런 막장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럼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는 말이냐'라고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살인이나 폭력도 말이다.
2.6 현대미술은 버블이라는 인식
또한 1970년대 이후 아트 옥션에서 수십억~수백억을 호가하는 미술 작품 거래가 시작되면서, 일반인들의 반감 역시 비례해서 커졌다. 수십만원도 부들부들 떨면서 다뤄야 하는 일반 서민들에게, '점하나 찍은 그림 한점'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거래되는 모습은 위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이를 빈정거리는 글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한다. 현대미술 작품의 흔한 가격(有)현대미술 쥐뿔짤빵이 되어 돌려까이는 현대미술
2.7 현대미술은 부패와 연루되었다는 인식
또한 오늘날 예술계는 각종 비리의 온상이라기보다는 끄나풀으로 지적받고 있다. 당장 크게 문제점으로 지적 받는건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미술품[1],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그들만의 리그, 이와 연관되어 따라오는 각종 밀거래와 비리, 차별 등이 있겠다.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국내 예술계 상황을 쉴드쳐줄 것도 아닌 것이 당연지사. 구체적으로 미술계에서 있었던 주요 문제만 봐도, 작가의 유족까지 연루된 이중섭 위작사건, 박수근 <빨래터> 진위공방, 신정아 경력 위조 사건, 삼성 X파일 사건과 행복한 눈물#, 미협 주최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 등#의 문제가 있겠다.
2.8 현대미술계의 빈부격차
앞서 말한 예술계의 부패 문제와 대조시켜 보면, 그야말로 잘놈잘 못놈못. 안타깝게도 예술계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가 유지되는 한 이런 현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듯하다. 우린 안될거야 아마
우선 예술 관련 학과에서 인력이 과잉공급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안그런 학과가 어디 있겠느냐만 시각미술 쪽에 한정해서 보면, 한국에서만 예술을 아마추어 취미로서가 아니라 프로패셔널 직업으로 삼으려고 전공하고 졸업하는 사람이 한해 5천여명에 달한다.# 디자인 계열까지 합치면 1만 5천 내외라고 한다.# 의대 졸업생이 한해 1,200명 정도이고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합격자가 매년 1,000명인 것을 따지면 확실히 많은 편이긴 하다.[2]
게다가 이들 중 전업작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한해 졸업생 중 한두명에 그친다. 애초에 전업작가는 공모전이나 비엔날레 같은 판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데, 전 세계적으로 그런 공모전이나 비엔날레가 잘 돌아가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서유럽 몇몇 나라 정도.[3] 한국같이 제조업 위주 산업 구조를 가진 '공장 국가'에서, 애초에 사람들이 그런 여유로운 여가나 문화 향유를 즐기길 기대하는건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4]
사실 이는 사진이 등장하고 공장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더이상 초상화나 조각을 사람이 일일히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기술혁신의 폐해 문제는 예술가도 최소한 생명유지는 되어야 후속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은 '가난하지만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라는 식으로 미화하거나, 아니면 '예술 따위에 목숨거는 멍청이' 정도로 비하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말 절실한 대책을 마련해주기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5] 이 때문에 예술가가 일부 유명 예술가의 전시를 보이콧하는 사태도 일어난다. # 그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예술가도 궁여지책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에는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 대표적.
3 원인
현대미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면 19세기 이후 변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자세한 내용은 모더니즘 미술 참고)
3.1 기술 환경의 변화 : 사진의 등장과 재현 메타의 몰락
우선 기술적으로 19세기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사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에게 그 충격은 알파고를 본 바둑기사들이 느낀 충격 그 이상이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이나 대중은 한가지 고민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왜 굳이 사진을 찍으면 되는걸 그림을 그려서 복제를 해야 하는가? 서양화와 사진이 거의 동시에 들어온 한국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대수롭게 여기지만, 사진이 등장하고 인쇄 기술과 결합하면서 기존 미술판의 재현 메타는 사실상 완전히 엎어졌다.
사진뿐 아니라 이후 영화를 위시해 등장한 각종 영상 기술들 역시 이런 재현 메타의 몰락을 촉진시켰다. 80년대 이후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여기에 가세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HMD를 이용한 가상현실 기술이 추가로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쉽게 이 상황을 요약하면 기성 화가들은 굴삭기와 삽질 대결하는 상황이 됐다는 말이다. 조각가들도 다를 바 없다. 설계도와 CNC 밀링 머신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3D 프린터가 여기에 가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과거에 각 지역별로 한명씩 가내 수공업 혹은 도제식 수공업으로 작업하던 예술가들이 필요 없어지게 되었다.
이런 기술 변화 상황이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는 점은 이미 여러 사상가들이 고민한 문제였다. 발터 벤야민은 이 문제를 '복제'라는 측면에서 파고들었고, 명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유명한 아우라 개념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벤야민의 저작은 현대미술가들이라면 한번쯤 읽고 고민해볼 만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그리면 잘될거라고 말하는 건 노오력 해서 삽질해 굴삭기를 이기라는 말이나 다를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길거리 초상화 같은건 연필이나 붓이 주는 '분위기'에 어필하는 것이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일종의 기예고 상징적인 행위지 기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려면 사진을 찍는게 훨씬 낫다.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사람 얼굴을 극사실적으로 그리겠다고 몇주일을 붙잡고 있는건 비효율적인 짓일 뿐이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나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나 결과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상당수 사람들은 손으로 직접 그리면 뭔가 더 뛰어날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 혹은 잘못된 유추의 오류일 뿐이다. "과거 우리 장인들은 한땀한땀 정성들여 붓질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그러지 않고 날로먹으니 저질이다." "수제품은 공산품보다 질이 좋다. 따라서 수제작하는 고전미술이 작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찍어내는 현대미술보다 더 우수하다." 과거에 수제작을 했다고 현대에도 수제작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 직접 작가가 수제작하는 것이 기계제작이나 주문제작보다 더 우수하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물론 예술계에서도 극사실주의 같은 예외가 있지만,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게 아니라, 극사실적 작품을 현실과 가상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매개체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6] 미적인 평가 면에서 따져보면, 앞서 말한대로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이 사진과 무슨 차이인지 납득시키지 못하고 끝난다면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일반인들이야 그런것을 보고 진기해하며 좋아할지 몰라도, 수천-수만개의 이미지를 본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진부하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7]
3.2 사회 환경의 변화 :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식이 요구됨
기술 변화 외에도 사회 변화 면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이 시작된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미술은 이런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같은 예술이 여전히 과거 왕정시대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예술은 1) 신이나 천사나 영웅같이 현실에 없는 것들을 미화했고 2) 그리스 로마같이 먼 과거의 것들을 미화했으며 3) 종교나 권력자 같은 특정 대상을 이상적인 것으로 미화해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는 혁명 이후의 현실에 걸맞지 않았다. 이 새로운 시대는 이성과 합리의 시대여야 했고, 서열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여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대상을 미화하는 표현은 등장해선 안됐다. 그러나 나폴레옹을 절대신인 마냥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당수 예술가들이 이런 꼴을 못마땅해 했다. 때문에 이를 거부하려 시도했는데, 문제는 그러려면 사실적인 그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주의자인 쿠르베는 1을 거부했다. 쿠르베는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허깨비는 안그리겠다고 했다. 마네 같은 인상주의자들은 나아가 2를 거부했다. 그들은 신화나 이국적인 것을 그리지 않고 자기 주변에서 놀고 먹는 일상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3을 위해 이후의 예술가들은 'XX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기존의 색채를 벗어나거나(마티스),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피카소), 아예 형태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추상미술). 왜냐면 십자가 같이 간단한 상징 조차도 미화나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들은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 형태'의 묘사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당시는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대였고, 전쟁과 이념대립에 지친 예술가들은 '이럴거면 그냥 형상 안그리고 점,선,면,색만 그리고 말겠다'라는 생각으로 추상에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예술가들은 고답적인 고전미술을 그리거나, 아니면 파시즘 찬양 선전, 아니면 공산주의 찬양 선전, 그도 아니면 자본주의 광고나 그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순수하게 예술적 자유를 누리며 그리고 싶은 거나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 매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각상이나 초상화를 그렸는데 정권이 바뀌어서 파괴되면 착잡한걸 넘어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입체주의가 피카소 한 사람에 의해 창안된 것과는 달리, 이상하게 추상화가 유럽 여러 지역의 여러 사람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추상화가들이 이렇게 꼴보기 싫은 형상 자체를 배제하면서도 회화라는 매체는 유지하는 쪽으로 갔다면, 다다이스트 들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형식 실험을 했다. 신문지를 오려 콜라주를 한 것이 그러한 예이다. 존 하트필드는 이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당대 나치 독일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남겼다.
3.3 예술의 자율성 자각 : 예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김
나아가 이들은 이를 통해 기존 예술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재현 메타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면, 새로운 메타를 개척하려 한 것이다.
한 예로 칸딘스키는 추상회화를 통해 '음악의 선율'을 표현하려 했다.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리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연주하는 모습만 봐서는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독주곡을 연주하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연주회장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음악 자체를 그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뒤샹은 변기에 사인을 해 '예술의 정의와 예술가의 권한'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뒤샹은 <샘>이란 작품에서 그냥 시중에서 파는 변기를 사다가 R. Mutt라고 사인하고 전시하기만 했다. 이 미친 또라이 짓을 까려는 사람들은 도리어 혼란에 빠지게 됐는데, 왜 <샘>이 예술작품이 아닌지 따지다가 머리를 쥐어뜯었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변기라서? 변기를 전시해서?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아서? 첫번째 질문은 변기는 한번도 쓰지 않은 신상품이었기 때문에 더럽지 않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설령 썼어도 깨끗이 씻으면 그만이다. 두번째 질문은 그럼 변기가 아니라 다른 해괴한 걸 전시하면 예술이냐는 질문에 막혔다. 실제로 뒤샹은 자전거 바퀴나 병걸이를 전시하기도 했다. 어떤 사물은 전시할 만 하고 어떤 사물은 전시하지 말아야 하는지 일일히 기준을 세우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무효가 되어 버렸다. 세번째 질문은 자연 현상이나 공산품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기에 의미가 없었다. 석양이나 오로라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기계로 찍어낸 유리잔이나 프로펠러도 인간은 아름답다도 느낄 수 있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예술가(artist)가 굳이 장인(artisan)처럼 자기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가? 뒤샹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전통 예술을 그냥 망막이나 자극하는 예술이라고 깠고, 진정한 예술은 뇌를 사용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만든 주범 뒤샹의 이 또라이 짓은 후대에 뒤샹식 유명론(nominalism)이라 불리며 개념예술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이전 미술가들과 달리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럴려면 사진과 포토샵을 배우는게 훨씬 나은 시대가 현시대이다. 특히 형상 자체보다 개념에 더 집중하는 경우 더욱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조형미술에서 개념미술로 트렌드가 이동한 것도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추상 등의 조형실험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개념같은건 이해하긴 어렵긴하지만 무한하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그 가능성을 실험했던 것이다. 그 결과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재현하는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작품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설계자에 더 가깝다. 현대미술에서 작품 자체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워프게이트(?) 같은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현대미술 관람자는 작품의 외형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보고 평가하게 되었다. 굳이 같은 자극이라면 머리로 고민하는 것이 더 오랫동안 자극이 되고, 그렇다면 단순히 같은 그림찾기 식으로 '어 나 저거 봤어? 저거 사과지?' 생각하고 끝나게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이 새끼 평소에 하던 짓을 생각하면 이건 아마 이런 의도로 만들었을거야.'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고전미술에 비해 현대미술은 스무고개 같은 수수께끼에 더 가깝다. 수수께끼 질문이나 그림 그 자체는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을 도발 끌어들이기 위한 중간장치일 뿐이다. 현대미술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현대미술을 이해하려면 작품 그 자체만 보고 끝낼게 아니라, 전시장에 마련된 서문을 읽고 작가 약력을 검색해 보면서,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들었고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작업했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그렇게 '짐작'하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에티켓 중 하나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보려는 시도'없이 표피적인 외형에 대한 흥미로만 접근하면 현대미술은 당연히 재미없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대중이 비판받아야 할 점
4.1 현대미술을 잘못된 범주에 끼워넣는 태도
인터넷 상에서 현대미술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글들은 굉장히 단편적이다.
당연히 현대미술 전공자나 애호가들은 이런 글에 분개한다.
이런 소위 '현대미술을 까는 자료'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따른다.
- 단순한 형식의 작품을 보여 준다.(추상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 아니면 미친 짓으로 보이는 작품(캔 속의 똥, 나체 퍼포먼스 등)
- 경매에 비싼 값에 팔렸다는 이야기가 덧붙여 있다.
- 사실주의 회화가 그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 사실을 열거한다.
- 백남준, 앤디 워홀의 이야기(예술은 사기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숭배한다) 가 따라붙는다.
문제는 '현대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현대미술은 매우 다양한 사조들을 포함하는 대범주라는걸 간과하지 말자.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했고, 앤디 워홀은 팝아트를 했다. 이런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들을 간과하고 멋대로 백남준과 앤디 워홀의 말을 '현대미술'을 비판하는데 인용해선 안된다.심지어 그래피티 같은 것도 현대미술이다
이런 식의 오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한 예이다. "고전미술은 가치있지만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고전스포츠는 가치있지만 현대스포츠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다른 명제들도 마찬가지.
만화나 애니를 단지 "진지하지 않고 말초적인 쾌감만 추구한다"고 비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앞의 주장도 백남준의 현란한 비디오아트나 최근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예로 들면 금새 논파되어 버린다. 그나마 "내가 본 일부 현대예술가들의 예술은 형편없다. 다만 다른 현대예술가들의 예술이 어떤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하는것이 옳은 접근방식이다.
4.2 현대미술 작품의 제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작품의 크기, 전시장 환경,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위의 사이 톰블리 작품 크기를 봐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3~4미터에 달한다. 일반적인 추상화가들의 작품들도 대부분 굉장히 크다. 게다가 미술관 전시장에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벽 한면에 한두 작품만 걸리도록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루브르 미술관도 한 면을 한 작품을 위해 할애하지 주렁주렁 걸어놓진 않는다. 이런 전시 환경에서 작품을 보게 되면 단순한 점선면색으로 된 그림도 굉장히 큰 임펙트를 주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글들은 작품을 접하는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이는 조그만 모습으로 작품을 평가한다. 상술했듯이 마주하는 작품의 크기(size)나 규모(scale)가 주는 임펙트는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4.3 현대미술을 이해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태도
심층적인 문제는 현대미술을 까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다. 댓글을 봐도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을 이해하려 시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확연히 구분이 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특정한 논리를 들어가며 비판하는 경우라면 그나마 이해하려 시도한 경우다.
현대미술 반응
현대미술에 맨붕먹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여기서 중요한건 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하필 거울에다 물감을 칠했는지, 그것도 왜 하필 검붉은 물감을 칠했는지 생각하고 설명해보려는 것이지만 위의 글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렇게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당연히 저 작품을 '허접쓰레기에 값만 올려 붙인 것' 정도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 글의 예를 들어, 리히터가 서독 출신 작가이고 나치 독일과 분단 독일[8]을 경험했던 작가라는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예술가들의 사명중 하나가 이런 문제 제기이다. 이런 전체주의 같은 것은 묻어두고 묵인할 수록 더 위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대중은 이런 문제를 껄끄럽게 생각해 아예 언급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게 사실이다.
추상 운동은 가치중립을 지키려 시도한 사조가 된다. 추상화가들은 보통 "점선면색 자체는 가치중립적" 이라고 인식한다. 위풍당당하게 군복을 입은 나폴레옹과는 달리 점선면색으로 구성된 추상화 화면 자체는 어떤 선전, 선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특유의 의미전달방식[9]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고상/난해하다고 매도하는건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공통적으로 '내집단의 결속을 위해 외집단을 상정하고 그 외집단으로 여겨지는 대상들은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이다. 애초에 예술은 취향과 결부된다.
4.4 현대미술은 다 고상한 척 한다고 치부하는 태도
당연히 이런 해석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썰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해석하는 동안 '관람자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그게 좋아서 하는거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술가들은 자기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고, 관람자는 그 작품을 보면서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짐작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기 작품이 타인에게 보여질 때 뿌듯함을 느끼고, 자기 작품을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들을 만날때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면서 '저건 대체 뭔생각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우환 작가의 '점' 에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이우환 부연설명 + 댓글 답변 + 작품을 보는 방식!
두 글은 모더니즘에 기반한 어떤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없이 단순히 '저거 너무 없어보여', '나도 하겠네' 같은 식의 이유로 까는건 바람직하지 않은 짓이다. 이것도 따지고보면 일종의 외모지상주의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건 소박함이나 소소함인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가 중에는 과거 미술이 가졌던 선정적, 선전적, 선동적인 성격을 거부하고 일상에서 우리가 놓친 즐거움을 되살리고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먹었던 맛도 맛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영국 요리는 그 폐해를 제대로 보여준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멋들어진 이미지에 길들여지면, 흥미로운 작품도 볼품없는 것처럼 여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속에서 현대미술은 권력을 가진 메이저리티가 아니라 힘없는 마이너리티다. '권력을 가진 소수 상류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현대미술을 오해하는건 그 상류계층이 다른 분야에도 '투기'를 벌인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생각일 뿐이다
4.5 현대미술은 다 난해하다고 치부하는 태도
현대미술 중에도 난해하지 않고 대중친화적인 접근법을 추구하는 사조들이 있다. 팝아트, 민중미술, 미디어아트 등의 예가 그것이다. 팝아트는 당대 광고나 주요 이슈들을 차용해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민중미술은 당대 주요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미디어아트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대체로' 이런 사조들은 어렵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사조들은 상대적으로 서브컬쳐를 폭넓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엘범 자켓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호불호는 심하게 갈리지만,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경우 아예 일본 '오타쿠 문화'를 예술로 만들기도 했다. 행위예술가 로리 앤더슨이 발표한 '오 수퍼맨 O Superman'은 1982년 영국의 워너 브라더스사에 의해 출시되어 영국 팝 차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4.6 현대미술가들은 성의없게 작업한다는 인식
현대미술가들은 날로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추상화에서 이런 비판이 많은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술가 자신이나 평론가도 어린 애들 낙서와 구분 못하면서 그게 무슨 예술임?' 식으로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
공력을 들여 꼼꼼하게 현실 대상을 묘사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고, 그냥 물감을 칠해놓은 것 같은 추상화는 덜떨어진 작품 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을 재현할 방법이 사람의 손뿐이던 시절에는 경제적 수요상 그랬을지 모르지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사진으로 사실적 묘사가 흔해진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장 뒤뷔페가 일부러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으고 이를 따라한 이유는, 경제적으로 설명하면 '어린아이의 순수성'이라는 가치가 더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어린이처럼 그리는게 더 힘들다 말한것도 그런 맥락이다.
오늘날 사실적인 그림은
1) 사진으로 쉽게 제작할 수 있고
2) 이미 과거에 그린 사람이 많아서 희소성이 떨어진 상태.
두가지 특징을 지닌다. 인상주의 이후로 고흐같이 '왜곡'해 그린 그림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추상도 같은 맥락으로, 사실적 묘사보다 조형 실험이나 비물질적 표현이 강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추상이 한때 각광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4.7 현대미술은 다 막장이라 치부하는 태도
당연히 이것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속한다. 상식적으로 세계에 현대예술가만 수만명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수십만개는 넘을텐데 그런 작품들이 다 막장일리가. 반례로 러버덕 프로젝트를 들어보자. 러버덕 프로젝트도 현대미술인데 이게 과연 막장인가? 그리고 괴상해 보이는 작품들 역시 맥락을 훝어보면 뭔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맥락을 보면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도 없지 않다.
기예르모 베르가스의 작품 역시 논쟁이 되었는데, 이 작가는 갤러리에 개를 매달고 굶겨 죽이는 과정을 예술이랍시고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내막은 사람들의 위선을 들춰보이는 작품에 가깝다.
다른 예로 예술가의 똥의 경우 부자들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과열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러한 현실에 반대하던 예술가들이 기존 예술에 대한 조롱하는 뜻 혹은 갤러리에 소장할 수 없는 작품(물질적인 작품은 없고 그 개념만 있다거나..)을 목표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경우 따지고 보면 '미치광이를 가장한 정상인'인 경우가 많은 셈.
애브젝트(abject) 아트의 경우 일부러 더러운 오물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런 작업들은 결국 내용을 보면 '차별하지 말자', '편견을 가지고 남을 대하지 말자'는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으로 이렇게 다양한 것들에서 배울건 배웠기 때문에 현대미술이 식상해지지 않고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고갱이나 피카소가 추구하기도 했던 원시주의 역시 이런 맥락이다. 당시로는 원시인, 야만인 취급받던 지역의 공예나 토산품을 예술로 인정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미술이 다 막장은 아니'라는 말이 '현대미술가들은 다 선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진찍는다고 몇백년된 소나무를 훼손한다거나, 예술을 빙자해 타인을 성추행하는 짓거리까지 옹호해서는 당연히 안된다.[10] 다만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예술까지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막나가는 작업은 사회에서뿐 아니라 같은 현대미술계에서도 제제를 가하게 되어 있다.
4.8 현대미술은 다 버블이라 치부하는 태도
상업적인 작품 역시 많아졌기 때문에 돈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작품은 예술이 아니며, 비상업적으로 예술가의 의도를 표현한 작품만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대중에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애당초 대부분의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잘 알려진 과거의 유명한 미술가/음악가/건축가 중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11]그렇기에 현대에는 그런 상업예술가와 순수예술가의 구분이 확연히 나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서로 남의 떡을 탐내는 관계가 되었다. 순수예술은 상업예술의 돈과 흥보능력을 탐내고, 상업예술은 순수예술의 '특이하고 자유로운 시도'와 '예술에서 우위에 있다는 지위'를 탐낸다.~
예술에게 표면적으로 매겨지는 가치를, 예술가의 의도를 비롯한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학에 있어 발생적 오류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미학적 기준으로 수익성은 대부분 미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데다 개념적으로도 질적 가치의 대표개념인 예술과 양적 가치의 대표개념인 돈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성은 예술성과 평행적이다. 회화나 연극이 돈을 벌어들인다고 그것이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일부 예술가들은 상업예술을 하다 전업작가가 된 경우도 있다. 르네 마그리트나 앤디 워홀이 대표적.
이러한 상업성 부분과 마찬가지로, 대중성 역시 예술성과는 관련이 없는 척도이다. 예술적으로는 허접해 보이는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는 성공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던가 잘 팔린다 하는 문제는 예술성에 의해 결정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게임성'이란 말에 사운드, 그래픽, 모션, 동선 설계, 시나리오 설계 등의 잣대가 다 들어가듯 말이다. 어떤 예술은 순수하게 조형미를 탐구해서 예술일 수 있고, 어떤 예술은 새로운 개념을 탐구해서 예술일 수 있고, 어떤 예술은 불의로운 것에 저항해서 예술일 수 있다.
다만 지나친 상업주의가 결과적으로 예술의 다양성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다. 잘 팔리는 작품을 만들려다 보면 예술가가 자기 기량을 펼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실 현대에 와서 부각된 점이 아니라 인류역사 내내 그랬던, 새롭다고 하기도 힘든 이야기다. 후원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작업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된,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사례다.
고전 예술조차 귀족같은 후원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자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취된 예술은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민속품이나 민중미술 정도. 이런 이야기도 예술분야에 국한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중요한건 '비싼 예술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예술을 비싸게 뻥튀기 시키는 작전세력'이 문제인 것이다. 주식처럼 특정 작가의 작품 가치를 부풀리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고, 일부 작가들이 이에 영합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지, 예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5 현대미술가들이 비판받아야 할 점
하지만 현대미술가들이 완전히 무결한 것은 아니다. 크게 두가지 문제가 있다.
5.1 현대미술이 부패와 연루되어 있는데 고치지 않으려는 태도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단락적인 디스글에 반론도 하고, 비평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러든 저러든, 현대미술이 썩은건 분명하다(...). 유독 다른 항목에 비해 비관적이다. 아래에는 구체적인 부패, 비리, 불합리 사례만 기재하길 바람. 일단 현대미술은 사람을 벽에 처박는 거라는 건 알아
5.1.1 권력, 자본 연루
공정하게 평가받기보다는 특정 집단 내에서 취향과 주관에 따라 평가 받기 때문에 부패와 결탁하기도 쉽다. 현대미술은 소수를 겨냥한 취향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그 취향을 보장해주는 소수가 결정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위 스폰서가 얼마나 빵빵하냐에 따라 작가의 역량이 달라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디시갤러가 댓글로 말해준 내용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게 리얼이다.#[12]
미술시장은 그 특유의 주관성 때문에 각종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분야이다. 2014년 한 아트페어에서는 총 230억원의 미술품이 팔렸다고 나왔지만, 정작 대부분의 화랑들은 언제 그런 미술품이 팔렸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애초에 소비자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돈많은 애호가 층에 한정되다보니, 얼마나 우수고객과 연줄을 유지하고 작품을 사도록 유도하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미술시장 안의 화랑들도 빈부격차가 극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데서 오는 부작용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후원자로 유명하다. 성공한 광고회사 임원이었던 사치는 YBA 대표 작가들을 발굴하고 띄워주었다. 이 과정에서 데미안 허스트가 상어를 표본처리해 수조에 담가 <살아 있는 누군가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특성 만큼이나 반박도 거세서, 지금도 YBA를 '광고로 만들어진 작가들'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는 모마, 구겐하임미술관 등의 뒤에 재벌이 있다. 구겐하임은 이름 그대로 구겐하임 재단 산하고, 모마는 록펠러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재벌들이 자기 재산에서 세금을 떼이지 않으려고 예술 재단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히 기부하면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재단을 만들거나 미술관, 대학 재단에 기부하면 관리가 잘된다나?
한국에서는 과거 군사정권과 미술 간의 연관관계가 지적받기도 했다. 시공사의 경우 미술 관련 서적을 많이 출판하는 편인데, 이 시공사의 주인이 전두환 전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다. 미술품을 많이 사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리고 강제 덕밍아웃 #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13] 한편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는 미디어아트 전문 아트센터인 아트센터 나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기사에 보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 직함이 표기되어 있다.
삼성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예술을 후원했다. 이병철 회장의 호 호암을 따서 호암미술관을 짓기도.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뒤에는 리움(Leeum)을 지었다. 이씨의 Lee와 미술관의 Museum을 따온 합성어라고 한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로이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비자금 관련 재산 목록에서 나오기도.# 이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서미 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2014년 9월에도 다시 구속됐다.# 홍송원 대표는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도 연관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수배되었다가 죽은채로 발견된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은 아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는데, 자신의 예술성을 증명받는 대가로 프랑스의 유명 큐레이터들을 상대로 10억 단위의 돈을 뿌리며[14] 루브르 박물관의 행사와 공개 전시회[15] 자신의 사진을 독점게시한 과거사[16]가 르몽드 지를 통해 폭로되었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의해 실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병언, 유대균 두 부자의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 #2, #3)
르몽드지의 폭로 이후 유병언의 과거 행적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프랑스 예술계의 평판이 추락하고 있다. 예술가라면 인생의 목표라할 수 있는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의 독점게시 행사라거나, 베르사유 궁전의 단독 전시회의 값어치가 고작 10억으로 열 수 있는 싸구려(?) 행사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의외다!! 이놈이(…)? 10억을 싸구려로 만드는 빵국의 예술 결국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은 이에 대해 항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프랑스 경찰의 경우, 타 국가의 수사협조에 대해 콧대높은 자존심을 세우며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오기로 유명한데[17] 유병언 일가의 수사에 대해선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1.2 부조리한 주종 관계
우리는 상식적으로 미술가가 미술계의 주인이라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 현대미술에서 미술가는 큐레이터, 갤러리스트[18]와 상하관계에 있고, 다시 이들은 소수의 소비자들이나 아트 딜러와 상하관계에 있다. 대강 권력서열을 따진다면 수집가 갑부[19] > 유명 미술관[20] > 유명 미술 언론[21] > 예술 경매 회사[22] > 관객 > 큐레이터 > 갤러리스트 > 평론가 > 미술가 순의 피라미드가 형성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일 수록 왼쪽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게 된다.[23] 물론 일부 소수 유명 미술가는 이 상하관계를 쌈싸먹는다. 관객이 갑부, 미술관, 미술 언론, 경매 회사보다 영향력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적은 이유는, 갑부, 미술관, 미술 언론, 경매 회사는 사실상 일반인 관객의 반응을 그렇게 많이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갑부나 경매 회사, 갤러리스트들은 대중성보다 돈을 따라 움직이고, 미술관이나 미술 언론은 애초에 자기 설립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운영을 하지 않고 그냥 마이웨이를 간다. 전시 관람자수에 목매는 건 큐레이터나 미술가들이다. 얼핏 생각하면 미술가는 현대미술의 핵심으로 우대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시궁창. 이미 떴거나 연줄있는 작가 외의 예술가들은 수백-수천만원 자기 돈 출혈내면서 개인전을 연다.
사실상 갤러리와 개인 작가들은 거의 갑을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부조리도 만만치 않다.# 따지고보면 정말 일부 갑부 소비자들이나 성공한 몇%의 인사들을 제외하면 미술계 종사자 중 열에 아홉의 수입은 평균이하다.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한스 애빙 암스테르담대 예술사회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예술가의 94%는 일반 노동자의 평균 수입 이하"의 생계비만 가지고 산다고 단언한다. "고작 6%의 예술가만 예술계에서 명성과 부를 얻는다"고 한다.# 예술가뿐 아니라 관련 주변 종사자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론가 반이정은 미술잡지가 원고료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24]
5.1.3 위작 사건
국내 작가들의 위작 사건도 문제이다. 위조지폐와 마찬가지로 위작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려 미술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이다. 주로 근현대화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위작이 많이 제작, 유통되고 있다. 이는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서 객관성이 부족하기 때문.# # # # #
대표적으로 이중섭의 둘째 아들 이태성(야마모토 야스나리)이 2005년 3월 16일 첫 공개해서 경매에 내놓은 그림 8점이 2005년 10월 가짜로 밝혀져서 파장이 일어났다. 이를 기점으로 이중섭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있었다. 한국미술품평가원에 따르면 이중섭이 위작이 가장 많은 작가라고 한다. 187건의 감정 중 무려 108건이 위작이고 진작은 77건, 감정 불능 2건이었다. 의뢰된 작품의 58%가 가짜였던 셈이다.#
박수근의 작품들 중에도 위작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에는 <빨래터> 위작 논쟁 등이 벌어져 재판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김환기의 경우도 단순한 그림 양식 때문에 쉽게 위작이 나오는 작가중 한명이다. 지난 10년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감정한 김환기의 작품 262점 중 24%인 63점이 위작이라고 한다. #
천경자의 경우는 상당히 심각해서, 국립현대미술관 측까지 연루되는 대형 스캔들로 번졌다.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사건 항목 참고.
이우환의 경우 국내 유통 작품 13점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이에 결국 정부가 미술 유통 구조를 손보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5.1.4 학연, 지연 중심주의
학벌 중심의 예술계판 구성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왜 안나오나 했다[25]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만을 우대한다는 의혹이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전 서울관 개관 기념 전시 '자이트가이스트 시대정신' 전에서도 서울대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해 한국미술협회가 반대시위를 열기도 했다.# 결국 정형민 관장은 직위해제됐다.# 그렇다고 미협 쪽이 깨끗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쪽도 지연과 학벌에 좌지우지 되는건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미협은 이전에 미술대전 심사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런 학벌위주 전시 관행을 타개한다고 시도된 공장미술제에서도 작가 지원금 무지급 논란 문제가 벌어져 논란이 되었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지금도 학벌, 파벌에 따른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트 스타 코리아 프로그램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마 과거 것까지 치면 더 있을 것이다.
학벌 중심의 미술계 내의 성폭력 관련 문제도 은폐되고 있을 뿐, 만연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아트리크스'를 만들어 제보를 받기도 하였다.#
5.1.5 자질 검증 노력 부족
이외에도 미술계의 인물 자질 검증 노력도 비판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건이 신정아 경력 위조 사건. 금호그룹 산하의 금호미술관 알바생이었던 신정아는 당시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금호그룹 측과 갈등을 빚고 사임하자 채용되었다고 한다. 신정아를 채용한 것은 큐레이터를 단순한 박물관 관리자로 생각하던 금호그룹 고위층의 무지의 결과라고 한다. 이후 2001년에 금호그룹측에 허위 경력이 들통나서 잘렸으나, 아무도 신정아의 허위경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금호그룹도 허위경력으로 자르기는 했어도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신정아는 다시 위조된 경력으로 성곡 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하였다. 이후 2005년 동국대 미술사학과 조교수에 임용되고 2007년 7월 광주 비엔날레 감독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이후 결국 들통핬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간 신정아의 비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지금도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무는 것에 대해 신정아가 고위층의 많은 비밀과 비리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해 관련인사들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신정아의 비리를 문제삼지 않아 이것이 그의 사기행각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준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뒷배가 있는지 2014년 8월 15일 MBN의 아궁이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계속 복귀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비엔날레 등 주요 미술 관련 행사들이 시원찮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대중매체가 전파하는 상업예술의 홍수 속에서 미술계 종사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싶으면 그만큼 신경쓰고 노력해야 하는데 점점 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여기에 지역자치단체는 예술에 대해 공부하지도 않고 대강 그럴듯한 행사기획서만 보고서는 비엔날레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부실 미술행사가 넘쳐나고 있는 것.#[26] 덧붙여 앞서 적었던 갤러리 부조리와 마찬가지로 비엔날레도 전시참여 작가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 수에서 봐도 광주비엔날레[27],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의 나름 자리잡은 대형 비엔날레조차 관람자가 수십만명 선에 그친다.[28] 그나마 여기서 학생 관람객과 공무원 등을 빼면 관람자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가거나 지역미술잔치로 만들 수도 없으니 이들 비엔날레 주최위원회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인 상황.[29]
최근에는 조영남 대작 사건이 미술계의 부실한 자질 검증 시스템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조영남 사건의 경우 자본 연루나 부조리한 주종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결국 대중의 무관심 + 미술계 내부의 연고 중시 +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작전 세력 이 삼박자가 들어맞으면서 한국미술계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5.1.6 인권 침해 방관
무엇보다 예술가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 이는 해외 예술가든 국내 예술가든 마찬가지로, 해외 예술가들이 인권을 침해당한 사례로는 포천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노동자 착취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5.2 현대미술계의 빈부격차를 방관하는 태도
결과적으로 현대미술계의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다. 연줄있는 작가는 금전적인 지원과 이론적인 지원을 받아 잘나가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작가들은 현대미술계를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스 에빙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예술 자체가 지닌 높은 가치 때문에 예술가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어서"라고 한다. "예술은 좋으니까 작가라면 (돈, 생계, 목숨 걱정은 하지 않고)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예술 분야의 ’에토스‘(ethos·기풍)가 머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부조리한 구조에 항의하기는 커녕)예술가들은 낮은 수입에도 열심히 예술 활동을 하려는 성향을 지녔다.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돈으로 (예술 활동을) 환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건 현대미술 스스로 상업미술, 대중미술과 스스로가 뭔가 다르다는 '구별짓기'를 하는 것 때문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음악, 문학 등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른바 순수예술, 혹은 인디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상업성, 대중성과 '다른 그 무엇가'를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경향이 있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작품으로 돈을 벌지 않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다. 돈을 덜 벌 뿐이지 돈을 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예술노동의 댓가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작가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추급권 보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일반인들의 인식은 현대미술의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현대미술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디자인, 영화, 광고 같은 대중예술이나 상업예술로 나가지 않고 자기 소신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은 외골수처럼 비춰진다. 일반인들에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의 모습은 다분히 미화되어 있다. 세잔, 고흐, 고갱에 대한 인식이 신화처럼 미화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는 다시 위에 적힌 문제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 한국의 사회문화 변화를 예상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살았던 예술가들은 서구가 거쳐갔던 여러 문제들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에 대해 고민했을 가능 또한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점점 서구화되고 있다. 또한 단일한 집단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점점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사진이나 공장 자동화 같은 대량생산 체제 때문에 비슷비슷한 이미지 결과물들이 증가하면서, 예술가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사람들도 상당량의 이미지(광고든 영화든 인터넷이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몸의 자세를 튼다던지 좀 더 세밀하게 그린다던지 하면 통했지만, 이젠 쉽게 이미지 수정과 조작이 가능해지면서 그런 기술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테크닉 수준으로 인식이 떨어지게 되었다.[30]
경쟁자는 많은데 사실적 재현으로는 예술적 가치가 먹히지 않으니, 예술가들은 뭔가 눈길을 확 끄는 새로운 그리고 괴상한 것을 시도하거나, 일반인들이 놓친 하지만 심심한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이를 알아보려면 예술가가 그런 시도를 한 맥락을 알아야 하고, 그런 맥락을 알려면 관련된 내용을 '공부'해야 하니, 현대미술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안목을 가지고 인정해주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되고, 이것이 일반인들에겐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에는 새롭게 보이는 것이 그들 예술가나 전문가의 눈에는 식상한 것, 이미 누군가 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도 여기에 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돈이나 지연에 얽매이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게 세대차와 연관되어 버리면, 젊은 예술가/애호가들이 기성 예술가/애호가를 까는 일이 (혹은 그 반대가) 벌어지게 된다.
사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이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설이나 회화나 연극은 고상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저급한 저질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소설, 회화, 연극도 오랜 옛날에서 저열하다고 까였다. 괜히 중세가 아니지 역으로 아마 수세대가 지나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기성예술매체가 돼서 기득권 자리를 지키려 할지도 모른다.[31]
예술계에 한정해서 보면, 예술 생산자인 예술가와 소비자인 관객 사이의 갈등이 있고, 예술 생산자 및 종사자(화상, 평론가 등)끼리의 갈등이 있게 된다. 앞의 경우 난해한 현대미술을 까는 원동력이 된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그냥 노력도 안하고 대강 뭔가 해놓고 장황한 헛소리 갖다 붙여 그럴듯하게 꾸미려 든다 여기게 되기 때문. 뒤의 경우, 이미 대학 교수 자리 꿰찬 작가들을 신진 작가들이 까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세대가 다르다보니 사고방식이나 취향도 다른데다, 근본적으로 앞사람들이 떨어져야 뒷사람들에게 기회가 올테니까. 이를 고상한 말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한다 카더라.[32]
결국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건 산업화, 도시화된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를 이해하려면 역설적이게도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이런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왜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발전 못하죠?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처럼 창의적인 사람이 안나오죠?' 같은 소리를 계속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역사상 문화적으로 강했던 국가들은 다 그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투자하지 않는데 결실이 나오길 바라는건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예술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횟수가 많을 수록 발전하고,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인재가 나오길 바라면서, 왜 이전에 창의적이었던 분야는 외면하는가?
대안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을 옹호하는 자들 역시 현대미술을 비판하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정확한 배경지식 없이 액면만 보고 평가한다"라고 폄하는 작태를 보이는 이상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길은 멀기만 할 것이다.
6 관련 문서
- ↑ 다만 이건 현대미술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 ↑ 이 때문에 미술학과의 교육 커리큘럼이 많은 졸업생 수를 내는 쪽보다 질을 따지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는 별개지만 최근 정부에서는 출산율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중인데, 이로 인해 취업률 등의 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는 예술 관련 학과는 불이익을 받는다.# 이는 인문학쪽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 관련 학과를 한두개만 남기고 다 없앨 수도 없다. 천재 혼자만 활동하는 분야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천재를 평가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 그 천재를 지원해주는 사람, 그 천재의 업적을 후대에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분야가 유지되는 것이다.
- ↑ 사실 유럽 이외 국가에서 '블록버스터급' 관람객 동원이 가능한 미술관이나 전시행사는 그리 많지 않다.
- ↑ 사실 국내에서 성공해 해외로 나가서도 성공한 작가가 사실상 없다. 백남준이나 이우환 같은 경우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공부한 해외파다. 전통을 곧이곧대로 파면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외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전통이 없을까? 이국풍으로 먹히려면 어디까지나 가볍고 쾌락에 호소할 때만 먹히는 것이다. 일본이 성공한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 ↑ 아트 스타 코리아 프로그램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 ↑ 이에 관한 설명은 다음의 영상을 참고하자.#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대부분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이전에는 현실-그림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현실-사진-그림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극사실주의 화가들이 그 과정에서 제기하는 물음은 과연 그렇다면 가상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대중매체로 보고 들은 이미지 정보들이 과연 진실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쉽게 비유를 매트리스를 떠올리면 된다.
- ↑ 간단히 말해, 전문가들은 웬만한 이미지에는 '질린' 사람들이다. 미식가가 웬만한 요리에는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뭔가 그 권태의 역치를 넘어서는 특출난 차이가 있어야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연줄로 쉴드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계속 그런 진부한 작업을 반복하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 ↑ 독일연방공화국(서독) vs 독일민주공화국(동독)
- ↑ 의미는 명확하게 고정되어있지 않고 모호하지만 대신 관객이 해석하는데 자유도는 높다.
- ↑ 하지만 피카소는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따지면 이미 감방행이다.(...)
- ↑ 절대다수의 화가와 음악가들은 돈을 받고 작품을 만들어 주거나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돈없이 먹고 살 순 없으므로 당연한 노릇.
- ↑ 갤러가 쓴 댓글 내용 보면 키아프나 아시아프 같은 공모전 등을 잘 아는 등 미술계 종사자가 맞다. 그리고 저 갤러가 쓴 말처럼 냉정히 말해 한국에서 인맥없이 성공하는 작가는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개가 해외파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 ↑ 그런데 프랜시스 베이컨을 모작한 것처럼 보인다.
- ↑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약 15억 원), 베르사유 궁전에 (정원 복원 프로젝트 비용을 겸해서) 140만 유로(약 19억 7천만 원)을 후원금으로 지급했다.
- ↑ 루브르 박물관 본관이 아니고 분관에 전시되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이 연루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시한 공간이 본관인지 분관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 ↑ 이 때 전시에 관련된, 장소 대관과 전시물 설치비용 등 모든 비용을 지출했다고.
- ↑ 대표적으로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이 있었다.
- ↑ 쉽게 설명하자면 미술관에서 일하면 큐레이터, 일반 상업 갤러리 화랑에서 일하면 갤러리스트다. 물론 갤러리스트들도 큐레이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업무 특성상 전시를 기획하는 것보다 작품을 파는게 우선시되기 때문에 성격이 많이 다르다.
- ↑ 유명 컬렉터들
- ↑ 뉴욕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구겐하임 미술관 등
- ↑ 해외의 아트 오브 아메리카, 국내의 월간미술, 아트인컬쳐 등의 잡지
- ↑ 소더비, 크리스티 등
- ↑ 미술가: "난 미술을 한다. 아트에 대한 나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평론가: "근데 식상하네요. 좀 새로운걸 시도 좀 해보시죠?" 갤러리스트: "작가님, 작품 안팔렸어요. 평론가님, 전시 서문좀 싸게 써주시죠?" 큐레이터: "작가님, 전시 명단에서 뺄까요?" 관객: "아 이거 작가도 평론도 전시도 다 왜이래 이거." 경매 회사: "이 작품은 유찰되었습니다." 미술 잡지: "이 작가 별론데 기사에서 빼죠?" 미술관: "컬렉션에 이 작가작품을 넣어야 하나?" 갑부: "전시에 작품을 대여해달라고?"
- ↑ 참고로 이 글에서 언급한 잡지 '아XXX처'와 '퍼XXX트'는 각각 '아트인컬쳐'와 '퍼블릭아트'를 말한다.
- ↑ 국내 미술판에서는 국내파만 따지면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 한예종 정도가 지배적이다.(국민대는 디자인 계열이 좀 더 강세로 평가받는다.) 한국 미술계에서 이들 대학 출신 작가들의 영향력은 굉장히 강하다. 물론 지방대학 출신이나 해외파 출신이면서 성공한 작가를 찾아보는건 어렵지야 않지만, 미피아 카르텔로서의 영향력은 못미치는게 사실이다.
- ↑ 다만 이 기사에서 비엔날레'만' 가지고 한국 미술행사가 과잉이라고 주장하는건 오류다. 전세계 비엔날레는 200여개 뿐일지 몰라도, 미술제나 기타 다른 미술 행사를 감안하면 수천여개는 넘을 것이기 때문. 한국 미술행사는 솔직히 해외와 비교하고, 국내에서 배출되는 미술전공자 수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더 문제인건 여기서 미술 행사 숫자를 늘려도 대중들이 이를 수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비엔날레였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백남준이 선구안을 가지고 광주비엔날레를 추진하도록 종용했다.
- ↑ 보통 이런 비엔날레는 두달 넘게 개최되는데, 영화제나 지스타 등의 다른 행사가 일주일 미만에 비슷한 숫자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관중동원력에서 딸리는 것이다.
- ↑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혹자는 광주비엔날레에 광주 출신 작가가 적고, 부산비엔날레에 부산 출신 작가가 적다고 따지는건, 이건 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한국/인천 출신 선수가 적냐고 따지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애초에 비엔날레는 전세계의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선보이자고 여는 행사다. 비엔날레는 전국체전처럼 지역작가들 동네잔치 하자고 여는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엔날레는 최근의 다양한 예술 작품과 경향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이걸 무시하고 대중성이 없다 따지는건 말이 안되는 것이다. 비엔날레를 고전주의나 인상주의 작가들 작품으로 도배해야 대중성 있다고 말할 건가? 이는 예술가들에게 그냥 과거의 예술을 답습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를게 없다.
- ↑ 적어도 프로페셔널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오늘날 그냥 평범한 작품 가지고 예술이라 한다면 '그게 뭐?' 같은 소리 듣기 딱 좋다. 스포츠 등 다른 분야의 프로들과는 달리 예술분야의 프로들은 '남들이 안했던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 ↑ 사실 이미 이런 경향은 다른 세대든 같은 세대든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근거도 없이 자기 취향만 옳고 남의 취향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 커뮤니티든 발견되니 말이다.
- ↑ 원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서 제창한 개념으로, 성장 발달 과정에서 남아가 겪게 되는 변화를 비유하는 개념이었으나, 이후 예술계에 넘어오면서 '기성세력에 저항하는 신진세력의 고뇌' 같은 식으로 의미가 와전된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