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공방전

(한중 전투에서 넘어옴)

漢中攻防戰
한국과 중국간의 싸움이 아니다

1 개요

219년 한중에서 유비군과 조조군이 벌인 전투로 유비의 짧은 전성기를 대표하는 전투이기도 하다.

2 발단

적벽대전 이후 생겨난 불순 세력을 처리하며 집안 단속을 하던 조조는 211년 초 종요에게 한중의 장로를 정벌하라 명한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마초를 비롯한 관중 군벌들은 일제히 봉기하여 동관을 공격한다.

한편, 조조의 장로 공격소식에 마초와 마찬가지로 불안감을 느끼던 익주의 유장장송의 건의에 따라 유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장송을 사신으로 보내고, 유비는 이에 촉으로 들어와 211년 부터 212년까지는 장로를 공격하는 시늉만 하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인심을 후하게 베풀었다.(선주전)

마초의 봉기를 물리친 조조는 212년 위공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권위를 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이 해, 장송의 내통혐의가 드러나 처형이 되자 유비는 본격적으로 유장과 전쟁을 벌인다. 213년 방통이 전사하자 제갈량, 조운, 장비가 추가로 파견되었고 다음 해인 214년 갈 곳을 잃은 마초까지 유비에게 합류하여 위용을 갖추자 유장은 마침내 항복한다. 유비가 서천을 점령한 것이다.

한편, "서천을 얻으면 형주를 돌려준다"는 약속을 상기시키기 위해 오후 손권제갈근을 파견하자 유비는 "나는 지금 양주를 취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양주를 평정한 후에 곧바로 형주를 오나라에 전부 돌려주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오주전)

그러자 몹시 노한 손권은 여몽을 보내 장사, 영릉, 계양을 빼앗자 유비는 몸소 5만 대군을 이끌고 공안으로 내려가고, 관우를 익양으로 파견하여 손오동맹에 긴장감이 드높아진다.(선주전)

그런데 215년, 조조가 마침내 장로의 항복을 받고 한중을 손에 넣게 된다. 위협을 느낀 유비는 강하, 장사, 계양을 손권에게 속하게 하고 자신은 남군, 영릉, 무릉을 갖기로 합의한다.[1] 한중을 점령한 조조는 이대로 유비를 공격하라는 사마의유엽의 말을 듣지 않고 하후연장합에게 한중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을 일단 철수한다.

한편 대략 216년 무렵 조조는 위왕의 자리에 오른다. 장합은 군사를 움직여 파서(巴西)로 내려가 백성들을 한중으로 옮기려 하였고 탕거(宕渠)까지 이르자 장비가 나서 50일간 겨룬뒤에 패퇴당한다.

218년, 마침내 유비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진격한다. 이에 조홍을 보냈고, 그 해 7월, 결국 조조 역시 군대를 이끌어 서쪽으로 향하며 개시.

3 전개

3.1 탕거 전투

태조는 산관(散關)을 지나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시 먼저 장합을 보내 보졸 5천을 이끌고 선두에서 길을 뚫도록 했다. 양평(陽平)에 도착했는데 장로가 항복하자 태조는 돌아왔고, 장합과 하후연을 남겨 한중을 수비하며 유비에 맞서도록 했다. 장합은 따로 제군을 이끌고 파동(巴東), 파서(巴西)의 2군을 항복시키고, 그 백성들을 한중으로 옮겼다. 탕거(宕渠-익주 파군 탕거현)로 진군하여 유비의 장수인 장비(張飛)와 겨루었고, 군을 물려 남정(南鄭-익주 한중군 남정현)으로 돌아왔다. 탕구장군(盪寇將軍)에 임명되었다.

《정사 삼국지》장합전

11월, 장로(張魯)가 파중(巴中)으로부터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항복했다. 장로와 그 다섯 아들을 모두 열후에 봉했다. 유비가 유장(劉璋)을 습격해 익주(益州)를 차지하고 마침내 파중을 점거했다. 장합을 보내 이를 공격하게 했다.

12월, 공이 남정(南鄭)으로부터 돌아오며, 하후연을 남겨 한중에 주둔하게 했다.


《정사 삼국지》무제기

장비는 정졸(精卒-정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다른 길을 따라 장합군을 요격하여 교전했는데 (장합군은) 산길이 좁아 앞뒤가 서로 구원할 수 없었고 장비가 마침내 장합을 격파했다. 장합은 말을 버린 채 산을 타며 단지 휘하 10여 명과 함께 샛길을 따라 퇴각했고, (장합이) 군을 이끌고 남정(南鄭-한중군 남정현)으로 돌아가니 파(巴) 땅은 안정을 찾았다.

《정사 삼국지》장비전

한중전투의 일종의 간보기 같은 전투. 장비의 군은 1만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장합의 병력이 어느 정도 되었을지는 알 수가 없다.(연의에선 3만) 5천여에서 1만여 내외가 아닐까 추측되는데, 요격이라고 기록되 있는 것을 보아 별동대 작전으로 앞뒤가 분산되어 연계가 전혀 안되는 채로 대파한 것으로 보인다. 장합은 그야말로 병력은 다 잃고 목숨만 건져서 살아오게 된다.

연의에선 이 과정이 한층 극적으로 각색되어서 장비의 지략을 보여주게 된다. 일부러 술에 취하고 긴장을 풀어 장합의 공격을 유도하여 장합을 섬멸하는데, 장비의 바보짓을 쭈욱 보고 있던 독자들이 그 성장에 감탄하는 부분.[2] 마음 졸이던 유비도 감탄한다(...).[3] 장합이 이 부분에서 조홍의 충고도 무시하고 억지로 군사를 이끌고 갔다가 대패하는 야라레스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도 한중전에서 조홍이 격퇴시킨 뇌동을 이 전투과정에서 목을 베는 것으로 나오는등 전공을 얻은 측면도 있다.

3.2 가맹관 전투 (삼국지 연의)

자기 말도 안듣고 나갔다가 발리고 돌아온 장합을 보자 분노한 조홍이 목을 베려다가 주위의 만류(특히 곽회)에 단념하고 벌로서 가맹관을 공격하게 한다. 정사에서 두 명의 전공을 생각하면 흠좀무.

유비가 장합이 만만찮은 인물이라며 걱정하자 제갈량은 장비를 파서에서 불러 막아야겠다고 한다. 주위의 장수들을 대놓고 까내리는(…) 모욕(?)을 들은 장수들 중 황충이 나서서 "파서는 어찌하고 장 장군을 불러오려 하십니까? 신이 나서 적을 막겠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 위연이 나서서 "영감님은 뒤에서 쉬시기나 하시죠?"라고 하자 황충은 옆에 있던 무거운 칼을 들고 칼춤을 보이더니 강궁까지 단숨에 꺾어 버렸다. 시걸권 이에 제갈량은 그의 출진을 허락했고, 황충은 부장으로 엄안을 데려가면서 "그 역시 노인이나 실력이 나쁘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고생고생하면서 가맹관을 지키던 곽준맹달은 두 노인을 보자 어이가 없어져서 "제갈량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보내라는 원군은 안보내고 어찌 살아있는 송장을 보낸단 말이냐!"하고 쑥덕거리자 속상한 황충은 엄안을 불러 "늙은이들의 힘을 보여줍시다."하고 말한다. 엄안이 찬성하자 황충은 자신이 일부러 져서 장합을 끌어낸 뒤 엄안이 뒤에서 기습하기로 작전을 세운다.

황충을 우습게 보는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도 마찬가지라, 장합도 별로 대단치 않게 여기다가 황충과 엄안의 공격에 크게 혼이 나고 달아난다. 조홍은 제대로 열받아서 장합을 불러내 목을 베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곽회가 너무 몰아붙이면 투항해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하자[4] 하후연의 조카인 하후상과 뜬금없이 연의에서 한현의 아우로 나오는 한호에게 군사를 주어 장합을 구원토록 한다.[5]

적군의 기세가 높자 황충은 일부러 패배를 거듭하여 적을 교만케 하는 교병지계를 써서 방심하게 한다. 하지만 곽준&맹달은 '역시 늙은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어이없어하고, 본진에 있는 제갈량이 "황충 장군은 교병계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유비의 부하들 역시 개무시한다. 이에 유비가 제갈량의 말을 믿으면서도 "그래도 불안하니까 유봉을 보내서 돕게 해야겠소."라고 말하자 제갈량도 그렇게 생각하여 유봉을 보낸다. 이후 영채에 도착한 유봉이 유비의 말을 전하자 황충은. 그것은 나의 교병계이니 작은 주군(유봉은 유비의 양아들)께서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시오."라며 곧바로 하후상과 한호를 몰아붙인다. 이 때 유봉이 따라와서 "너무 뒤쫓으면 위험합니다"라고 했지만 황충은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맹추격하고, 군사들도 이에 힘을 얻어서 끝까지 몰아붙인다.

결국 하후상과 한호는 장합과 함께 천탕산에 있는 하후덕에게 도망간다.[6][7] 이에 황충과 엄안은 천탕산에 불을 지른 뒤 앞뒤로 양동작전을 가해 한호는 황충에게, 하후덕은 엄안에게 한방에 당해버린다. 간신히 살아남은 하후상과 장합은 하후연이 있는 정군산으로 목숨만 건져서 도망치게 된다.

3.3 유비 북진

건안 23년(218년), 선주가 제장들을 이끌고 한중으로 진병했다. 장군 오란(吳蘭), 뇌동(雷銅) 등을 나누어 보내 무도(武都-양주 무도군)로 들어가게 했으나 모두 조공의 군대에게 함몰되었다. 선주가 양평관(陽平關)에 머물며 하후연, 장합 등과 서로 맞섰다.

《정사 삼국지》선주전

유비가 장수 오란을 보내 하변(下辯-량주 무도군 하변현)에 주둔하게 하자 태조는 조홍(曹洪)을 보내 이를 공격하게 했는데, 조휴를 기도위로 임명해 조홍의 군무에 참여케 했다. 태조가 조휴에게 말했다,“네가 비록 참군(參軍)이지만 실제로는 장수(帥)이다”조홍이 이 영을 듣고 조휴에게 군무를 맡겼다.

유비가 장비를 보내 고산(固山)에 주둔케 하여 군의 배후를 끊으려 했다. 의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의심하자 조휴가 말했다.“적이 실제로 길을 끊고자 하면 응당 복병으로 몰래 행군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먼저 성세(聲勢)를 과장하니 이는 실제로는 그들이 이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적군이 아직 집결하지 못했을 때 급히 오란을 공격해야 할 것이고 오란이 격파되면 장비는 달아날 것입니다.”

조홍이 이를 좇아 진병(進兵)했고, 오란을 공격해 대파하니 과연 장비는 달아났다. 태조가 한중을 함락시키고 제군(諸軍)이 장안으로 돌아온 뒤 조휴를 중령군(中領軍)에 임명했다.


《정사 삼국지》조휴전

유비가 장비, 마초, 오란 등을 보내 하변(下辯)에 주둔하게 하니, 조홍을 보내 이에 맞서게 했다.

(중략)
조홍이 오란을 격파하고 그 장수 임기(任蘷) 등을 참수했다.
(중략)
3월, 장비, 마초는 한중으로 달아났고, 음평(陰平)의 저(氐)족 강단(強端)이 오란을 참수해 그 수급을 보내왔다.


《정사 삼국지》무제기

“조조가 일거에 장로를 항복시켜 한중을 평정하고도 이 기세를 틈타 파(巴), 촉(蜀)을 도모하지 않고 하후연, 장합을 남겨 둔수(屯守)케 하고 자신은 황급히 북쪽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그의 지모가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시 내부에 우환이 닥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하후연과 장합의 재략(才略)을 헤아려보면 우리의 장수(將帥)들보다 낫지 못하니 군사를 일으켜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때에 이르러 농업을 일으켜 곡식을 쌓고 (저들의) 빈틈을 엿보고 기회를 노린다면, 상(上)으로는 구적(寇敵)을 무너뜨려 왕실을 받들거나, 중(中)으로는 옹주, 양주를 잠식해 영토를 넓힐 수 있고, 하(下)로는 요해지를 굳게 지키며 오래도록 유지하는 계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정사 삼국지》법정전

218년 유비는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북진을 하게 된다. 법정전에 따르면 법정이 선주(유비)를 설득하여 선주가 좋게 여기어 출진하였다고 하고, 또한 법정이 종행(從行-수행)하였다 하니 유비의 북진에는 법정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앞서 먼저 군대를 보내 무도 땅에 들어가게 하는데 이때 언급되는 이름이 장비, 마초, 오란, 뇌동 등등이다. 전부 주둔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도 하변에 자리를 잡긴 했으나 조홍과 조휴 등의 활약에 물러나게 된 듯 보인다.

유비가 진식(陳式) 등 10여 영(營)을 보내 마명각도(馬鳴閣道)를 끊자 서황이 별도로 군을 이끌고 이를 쳐서 깨뜨렸는데, 적은 스스로 산과 계곡에 투신해 죽은 자가 많았다. - 서황전

보낸 진식도 서황에게 깨진다.

하변에 보냈던 병력이 쫓겨나자 유비는 양평관에 자리를 잡게 되고, 이에 하후연도 군대를 이끌고 와 양군은 섵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게 된다.

건안 23년(218년), 유비가 양평관에 주둔하자 하후연들이 제장들을 이끌고 이에 맞섰는데 서로 지키면서 해를 넘겼다.

《정사 삼국지》하후연전

당시 유비는 법정, 황권 등을 작전참모로 데려가고 제갈량에게 성도를 맡겼었다. 그 후 따로 연락을 취해 병력을 추가로 보내줄 것을 말했는데, 제갈량이 양홍에게 어찌해야 할지 묻자 양홍이 대답하길,

"한중은 익주의 인후로서 존망의 기회가 되는 지역입니다. 만일 한중을 잃는다면 촉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각 가문의 화근입니다. 오늘날의 일은 남자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 여자는 수송을 담당해야 하는데, 병사를 파견함에 있어 무엇을 의심합니까?"

이에 제갈량이 곧바로 지원병을 파견하였다.[8] 당시 촉군에게 한중의 존재가치가 어떠함을 보여주는지 알 수 있다.

3.4 정군산 전투

건안 24년(219년) 정월, 유비가 밤에 녹각(鹿角)을 불사르며 포위하자 하후연이 장합에게 동쪽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경병(輕兵)을 이끌고 남쪽을 지켰다. 유비가 장합에게 싸움을 걸었는데 장합군이 불리했다. 하후연은 지휘하던 병력의 절반을 나누어 장합을 돕게 했는데, 유비의 습격을 받아 마침내 하후연이 싸우다 죽었다. 시호를 내려 민후(愍侯)라 했다.

《정사 삼국지》하후연전

건안 24년(219년), 한중(漢中) 정군산(定軍山)에서 하후연을 공격했다. 하후연의 군대는 매우 정예했으나 황충은 적의 예봉을 꺾어 어김없이 전진하며 사졸들을 격려하여 이끌고, 징과 북소리는 하늘을 울리고 환성은 골짜기를 뒤흔드니, 한 번 싸움으로 하후연을 참(斬)하고 하후연의 군대를 대패시켰다.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올랐다.

《정사 삼국지》황충전

법정이 말했다.“가히 공격할만 합니다.”선주가 황충(黃忠)에게 명해 높은 곳에 올라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이를 공격하게 하여 하후연군을 대파했고 하후연 등은 참수당했다. 조공(曹公)이 서쪽을 정벌하며 법정의 계책임을 듣고 말했다.“나는 예전부터 현덕(玄德-유비)이 이 같은 일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 필시 남의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알았다."

《정사 삼국지》법정전

해를 넘기는 지리한 대치 상태에서 먼저 공습을 가한건 유비였다.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병력이 이곳을 쳤다 저곳을 쳤다 어김없이 전진하였다 하니 그 기세가 얼마나 급작스럽고 번개같았을지 짐작이 된다. 결국 황충은 위의 군단장 하후연을 참살하는 대공을 세운다.[9]

이때 조조가 법정의 계책임을 듣고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유비는 그런 수를 쓸 수 있는 놈이 못 됨 ㅇㅇ"이라고 까는 부분이 흥미로운데, 이에 대한 배송지의 의견이 재미있다.

'신 송지가 보건대, 촉과 한중은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으니 유주(劉主-유비)의 지모가 어찌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장차 계략을 펼치기 전에 법정이 먼저 말했을 뿐이다. 무릇 좋은 모책을 들어 써서 공업을 이루는 것은 패왕된 자로서 누구나 그러하지 않던가? 위무(魏武-위무제 조조)가 이를 남의 가르침으로 여겼다면 또한 용렬하지 않은가! 이는 아마도 욕되고 한스러운 나머지 한 말로, 사실을 헤아려서 마땅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패배하고 하후연이 죽은데 빡쳐서 별 생각없이 한 말이라는 것(...). 화용도에서 패퇴하여 돌아는 형편에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다만 계책을 쓰는 것이 부족하고 늦구나. 만약 일찍이 불을 놓았다면 내가 비견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하고 비웃은 것이나 적벽대전 이후 "곽가가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지지 않았을 텐데"와 비슷한 급이라는 이야기. 쉽게 얘기해 허세.

'하후연이 살해된 후, 군대안의 인심은 불안하였다. 곽회가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탕구장군 장합을 군주로 추천하자 각 진영은 비로소 안정되었다. 그 다음날, 유비가 한수를 건너 공격해 오려고 했다. 각 장수들은 의논한 결과, 중과부적이고 유비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있는 이상 물에 의지하여 진을 만들고 유비에 대항하려고 했다. 곽회가 말했다.

『이것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적을 꺾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쳐서 적을 유인하여 반쯤 건넌 후에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반드시 유비를 무찌를수 있을것입니다.』

진을 친 후, 유비는 의심스럽게 여겨 건너지 않았다.


《정사 삼국지》곽회전

하후연이 죽자 위군은 크게 흔들렸다.[10] 일단 비어있는 사령관은 장합에게 맡기고 곽회의 기책으로 강을 넘어오는것은 막았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에 장안에 있던 조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3.5 정군산 전투 (삼국지 연의)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황충과 엄안이 장합, 하후덕, 하후상, 한호를 모조리 패퇴시켜버리자[11] 제갈량의 권유에 따라 유비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하게 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조조도 유엽의 권고에 "내가 공의 지난말[12]을 듣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구려!"라 말하며 무려 40만 대군을 집결시켜 하후돈을 선봉장으로 삼아 한중으로 진격한다.

가는 길에 겸사겸사 동관 무렵에서 자신이 지난 날 좌현왕에게서 구해주고 남편까지 짝을 만들어준 채옹의 딸 채염을 만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이때 채옹이 기록한 비문에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題臼)라는 글이 있자 채염에게 그 뜻을 물었고, 채염은 한단순이 쓴 비문을 채옹이 읽고 그 뒤에 쓴 것(자세한 것은 채옹 항목 참고)이라고 답했지만 뜻은 모른다고 했다. 이에 조조는 자신도 뜻을 알 수 없어 모사들에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물어본다. 모두 대답하지 못하고 오직 양수만이 알겠다고 하자 오기가 생겨서인지 "내가 답을 알 때까지 대답하지 말라"고 이른다. 이후 돌아가던 도중 양수에게 "나도 그 뜻을 알았다. 자네가 먼저 얘기해 보라."고 하고 양수가 뜻풀이를 해준다.

"황견유부(노란 명주실과 어린 여자)는 절묘[13]의 뜻이고, 외손제구는 호사[14]의 뜻이니, 이는 절묘호사(絶妙好辭, 굉장히 잘 쓴 글이라는 찬사)를 말합니다."

이에 조조는 그의 지식을 칭찬했고 좌중에서도 감탄했다.

조조가 도착할 무렵, 하후연을 공격할 장수에 대해 유비와 제갈량이 또 다시 "하후연 존X 짱이잖아. 막으려면 장비나 관우를 불러와야 하잖아. 근데 장비는 파서에 있고 관우는 형주에 있잖아. 그 사람들 안 불러오면 우린 안될거야 아마" 이러고 있자 한참 기세가 오른 황충은 또다시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한다. 제갈량이 말려보지만 노인네 옹고집이라 듣지를 않고 있으니 대신 법정을 부관으로 데려가라 하면서 꼭 법정의 의견을 들으라 명한다. 그러고도 불안해 조운, 유봉 등등에게 따로 군을 내주어 도와주게 한다.

황충은 도와주겠다는 젊은 사람들도 뒤로 하고 하후연과 일기토를 벌이는가 하면, 하후상을 사로잡기까지 하는 등 물 오른 활약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 부장 진식이 하후연에게 사로잡히자, 하후연에게 인질 교환을 제시한다.

양군의 부대가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진식과 하후상은 자군에게로 잽싸게 달려가나 하후상은 진지에 도착하려는 순간 황충의 활에 맞아 고꾸라지고 만다. 황충의 활에 눈 앞에서 조카가 크게 다치는 모습을 본 하후연은 대노하여 황충과 싸우나 황충은 하후연을 싸워 물리친다.

그리고 법정이 반객위주책[15]을 진언하여 하후연이 있는 진영보다 더 높은 곳에 진영을 설치해 완전히 내려다보게 한 후, 슬금슬금 진형을 전진시켜 나간다. 위험하다 느낀 하후연은 장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

그러나 황충은 침착하게 대응해 하후연의 예봉을 피하자 하후연은 조바심을 내서 나와서 덤비라고 한다. 이에 높은 곳에 있던 법정이 하얀 기를 휘둘러서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님을 전했고, 이후 하후연의 군세가 지쳐서 쉬자 붉은 깃발을 휘둘러서 곧장 공격하라고 전했다. 이에 황충이 닥돌해 기습을 가하니 하후연은 힘 한번 못써보고 두 토막이 나고, 유봉 등은 그 사이에 정군산의 진영을 장악, 장합은 남은 군사들을 추스려서 간신히 도망을 친다.

그리고 연의 한정으로, 이는 관로가 이미 예언했었다. 관로 항목 참고.

3.6 조조, 유비, 양웅 격돌하다.

이때 하후연이 양평(陽平)에서 죽어 태조가 이를 우려했다. 정촉호군(征蜀護軍)으로 임명되어 서황 등을 지휘해 양평에서 유비의 별장인 고상(高詳)을 격파했다. - 조진전

조조가 한중에 도착하기전 조진과 서황이 고상을 격파한다.

(218년) 가을 7월, 군사를 조련하고 마침내 서쪽으로 유비를 정벌했다.

(중략)
9월, 장안에 이르렀다.
(중략)
(219년) 3월, 왕이 장안으로부터 야곡(斜谷)을 나왔는데, 군(王)이 요지를 차단하며 한중에 임하여 마침내 양평에 도착했다. 유비는 험지에 의지해 거수(拒守-막아서 지킴)했다.


《정사 삼국지》무제기

218년부터 군사를 일으켜 장안에 주둔하던 조조는 219년 하후연이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직접 군사를 일으킨다. 이 소식은 유비에게도 알려졌으나 유비는 기세에 고무되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자신만만했다.

조공이 장안으로부터 친히 대군을 이끌고 남쪽을 정벌했다. 선주가 멀리서 이를 헤아려 말했다.“비록 조공이 온다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니 내가 반드시 한천(漢川)을 차지할 것이다.”조공이 도착하자 선주는 군사들을 모아 험고한 곳을 지키고 끝내 교봉(交鋒-교전)하지 않자 (조공이) 여러 달이 지나도 이를 함락하지 못하고 사망자가 날로 많아졌다

《정사 삼국지》선주전

전투는 대단히 치열하였다고 한다. 지형의 우세함을 이용해 끈덕지게 버티는 유비와 어떻게든 몰아내려는 조조와의 혈전이었다. 바로 근처에서 화살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지휘를 했었다고 하니 치열함을 알 수 있다. 조운별전에서 그 숨막히는 상황의 일부를 볼 수 있다.

하후연이 패하자 조공(曹公-조조)이 (와서) 한중 땅을 다투었고 북산(北山) 아래에 군량을 운반하여 수천만 포대에 달했다. 황충이 가히 이를 탈취할 수 있다 하였고 조운의 군대가 황충을 수행해 군량을 탈취하려 했다.

황충이 기한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조운이 수십 기(騎)를 거느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위(圍-군사시설의 일종)를 나와 황충 등을 마중하며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 때마침 조공(曹公)이 양병(揚兵-거병;군세를 떨침)하여 대거 출전하니 조운이 조공의 전봉(前鋒)에 의해 공격받아 바야흐로 싸우는데 적의 대군이 도착하여 형세가 핍박되자 적진에 전돌(前突-돌진)하고 한편으론 싸우며 한편으론 물러섰다.

조공의 군(조조군)이 패했다가 다시 합치니 조운이 적을 무너뜨리고는 위(圍)로 달려 되돌아왔다. 장수 장저(張著)가 상처를 입자 조운이 다시 말을 달려 (적의) 영(營)으로 되돌아가 장저를 맞이했다. 조공의 군이 추격해 위(圍)에 이르렀다.

이때 면양장(沔陽長) 장익(張翼)이 조운의 위(圍) 안에 있었는데 장익이 문을 닫고 막아 지키려 하였으나 조운이 영(營)으로 들어와서 다시 문을 활짝 열고는 깃발을 내리고 북치는 것을 멈추었다. 조공의 군은 조운이 복병을 두었을까 의심하여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조운이 하늘을 뒤흔들 듯 북을 울리며 오로지 뒤에서 조공의 군에게 융노(戎弩)를 쏘아대니 조공의 군이 놀라고 어지러워져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았고 한수(漢水)에 떨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선주(先主)가 다음날 아침 조운의 영위(營圍)로 친히 와서 전날 싸운 곳을 둘러보고 말했다.

“자룡(子龍)은 일신이 모두 담덩어리(膽)로다.”음악과 술자리를 베풀어 저녁까지 이어졌고, 군중(軍中)에서는 조운을 일컬어 호위장군(虎威將軍-범 같은 위용을 갖춘 장군)이라 했다.


《정사 삼국지》조운별전

조조는 몇달째 가공할 공격을 퍼붓었으나 사망자만 생겨날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는 회군하고자 생각하며 계륵(雞肋-닭갈비)이라 영을 내렸다. 이에 양수가 군장을 꾸리자 어찌 회군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았냐며 묻자 양수는 대답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먹기에는 얻을 것이 없는것, 그것이 계륵입니다. 그것이 한중이니, 왕께서는 회군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정사 삼국지》구주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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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조공은 과연 군을 이끌고 돌아가니 선주가 마침내 한중을 차지했다. 유봉(劉封), 맹달(孟達), 이평(李平)[16] 등을 보내 상용(上庸)에서 신탐(申耽)을 공격했다.

《정사 삼국지》선주전

4 결과

조조가 후퇴함으로서 결국 유비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 승리는 유비에게 있어 엄청난 의미였다. 한때 다른 제후들의 객장으로 이리저리 전진하던 형편에서 형주 획득, 입촉의 성공, 그리고 한중의 승리로 마침내 조조와 자웅을 겨뤄볼만한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였고, 근 몇년간 계속해서 꾸준히 오르던 유비군의 기세에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이후 형주에서 관우가 조조에게 천도를 논하게 만들때까지, 촉군의 기세는 가히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한중 공방전의 승리는 유비군의 세력이 궤도에 올랐다는 의미기도 하였다. 그동안 유비군은 한 두명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극심했던 반면 한중전에선 총 지휘 유비, 대전략 법정, 세부 수정 황권, 선봉 황충, 기동대 조운, 후방방어 장비, 보급 제갈량, 반란 진압 및 수도 방위 이엄등으로 역할이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해내었다는 것을 보아 한중전에서는 촉군 장수들이 이토록 탄탄한 적도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17]

이 분위기는 유비의 한중왕 등극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대단한 공헌을 했다. 진수는 조비의 위황제 등극보다 유비의 한중왕 등극에 더 할애할 정도로 이는 삼국지 전체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데, 조조가 위공에 즉위하여 의 위엄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고조 유방이 일어났던 땅, 그리고 결국은 항적을 멸했던 그곳에서 유방과 자신을 동일시 시키는 정치적 제스처는 망해간다고 생각하던 한나라를 다시 일으킨다는, 그리고 진실로 부흥시키겠다는 충격을 모두의 가슴속에 안겨주었다.

또한 아무리 세력을 키워도 없앨 수 없던 조조에 대한 두려움을, 이 전투에서 승리하며 많이 해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비가 한중에서 조조를 퇴각시키며 대업의 길에 가까워졌던 그 순간, 형주 공방전에서 관우가 참살당하고 형주를 잃으면서 모든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5 참전 무장과 모사

5.1

  • 좌장군(左將軍)·익주목(益州牧) 유비(劉備) 字 현덕(玄德)
탕거 전투 이후 법정이 친정을 권하자 218년 법정, 황권등을 대동하고 북진하였다. 양평관에 자리를 잡고 기회를 엿보다가 219년 일시에 기습을 하여 하후연군을 패퇴시키고 이후 조조의 대군이 오자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끈질기게 버티다가 219년 여름 경 기어코 패퇴시키고 승리를 거둔다.
  • 의도태수(宜都太守)·정로장군(征虜將軍)·신정후(新亭侯)·조아(爪牙)[18] 장비 字 익덕(益德)
탕거 전투에서 1만여의 병력을 이끌고 가 별동대 작전으로 장합 군을 궤멸시키는 공을 세운다. 이후 마초, 오란, 뇌동들과 무도 하변으로 가 자리를 잡으나 조홍과 조휴에게 패퇴당한다.
  • 촉군태수(蜀郡太守)·양무장군(楊武將軍)·모주(謀主)[19] 법정 字 효직(孝直)
218년 유비에게 말해 친정을 권유했고 자신도 직접 나아가 모사로 활약했다.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패퇴시킨 기습 공격은 법정의 계책이었다.
  • 편장군(偏將軍) 황권 字 공형(公衡)
법정과 함께 한중 공방전 내내 참모로 활약했다. 황권전에 의하면 두호, 박호를 격파하고 하후연을 살해하고 한중을 점령한 것이 모두 황권의 공이라고 할만큼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
  • 평서장군(平西將軍)·독임저(督臨沮)·도정후(都亭侯)·조아(爪牙) 마초 字 맹기(孟起)
장비, 오란, 뇌동등과 함께 무위 하변에 자리를 잡았지만 패퇴당하고 한중으로 물러났다.
  • 토로장군(討虜將軍) 황충 字 한승(漢升)
한중전 내내 선봉장의 역할을 맡아 돌격을 하여 맹활약을 하였다. 급기야 정군산에선 위의 정서장군 하후연을 참살하는 대공을 세워 전투의 양상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적의 군량을 탈취하려다가 위험한 지경에 빠지었으나 조운이 구원한다.
  • 익군장군(翊軍將軍) 조운 字 자룡(子龍)
황충이 군량을 탈취하려할때 수행하였다. 기한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수십 기만을 거느리고 나가 맞서 싸우며 상황을 살폈다.
  • 아문장군(牙門將軍) 위연 字 문장(文長)
한중 공방전이 끝난 후 한중태수로 임명된다.
  • 면양장(沔陽長)·서좌(書佐) 장익 字 백공(伯恭)
특별히 두드러지는 활약은 없으며 진영을 굳게 지켰다.
  • 부군중랑장(副軍中郞張) 유봉
특별히 두드러지는 활약은 없으며 자잘한 공훈을 세운다.
  • 의성태수(宜城太守) 맹달 字 자경(子敬)
한중전 내내 두드러지진 않으나 자잘한 공훈을 세운다.
마초, 장비, 뇌동등과 함께 무도 하변에 주둔하나 조홍과 조휴에게 패퇴당하고, 강단에게 목이 잘리어 조조에게 보내진다. 연의에서는 조창에게 참살된다.
마초, 장비, 오란등과 함께 무도 하변에 주둔하나 조홍에게 패퇴당하고 전사한다. 연의에서는 장합에게 참살된다.
  • 아문장(牙門將)·비장군(裨將軍) 왕평 字 자균(子均)
위나라 군으로 조조를 따라 한중정벌에 참여하다가 유비에게 귀순한다.
  • 중랑장(中郞將) 곽준 字 중막(仲邈)
삼국지연의 한정. 가맹관의 수비를 굳건히 하고 지켰다. 정사에서는 한중 공방전 이전에 사망.

그 외 진식, 고상

5.2

  • 위왕(魏王) 조조 字 맹덕(孟德)
218년 부터 군사를 일으켜 장안에 주둔하다가, 하후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유비에게 대적한다. 허나 굳건한 수비를 뚫을 수 없어 계륵이라 말하곤 퇴각한다.
  • 편장군(偏將軍)·도정후(都亭侯) 장합 字 준예(儁乂)
파서의 백성들을 한중으로 옮기다가 장비와 전투를 벌이나 대패하여 수십기만 이끌고 간신히 달아난다.
  • 정서장군(征西將軍) 하후연 字 묘재(妙才)
장합이 패퇴하고 유비가 북진하여 양평관에 머물자 그 주변에 진을 치고 오랫동안 대치한다. 허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괴멸당하고 황충에게 살해당한다.
  • 도호장군(都護將軍)·국명정후(國明亭侯) 조홍 字 자렴(子廉)
조휴와 함께 무도 하변으로 들어온 적군을 패퇴시키고 뇌동을 참살한다.
  • 중령군(中領軍) 조휴 字 문열(文烈)
참군의 신분으로 참가하였지만 조홍으로부터 장수와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유비가 장비등을 이용해 배후를 끊으려는 의도를 깨닫고 조언하여 오란을 공격, 대파시킨다.
  • 승상병조의령사·사마(司馬) 곽회 字 백제(伯濟)
하후연이 유비에게 참살당할때는 병이 있어 참전하지 못했다. 하후연이 죽어 군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장합을 후임으로 추천하여 군기를 잡고 한수를 건너 공격하려는 유비군을 유인하여 패퇴시키려는 책략을 내놓아,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유비는 한수를 건너지 않는다.
  • 오관장(五官將)·문학(文学) 하후상 字 백인(伯仁)
크게 두드러지는 않으나 자잘한 공훈등을 세운다.
  • 중견장군(中堅将軍) 허저 字 중강(仲康)
연의에서는 술을 먹고 강짜를 부리다가 패퇴당하는 야라레스러운 면모를 보여준다.
  • 주부(主簿) 양수 字 덕조(德祖)
한중전이 어렵게 전개되어 조조가 "계륵"이라는 말을 하자, 속뜻을 깨닫고 회군할 준비를 한다.
연의에서 한현의 동생으로 나와 형의 복수를 위해 황충에게 덤비다 그대로 참살당한다. 정사에서는 한호를 한중에 남기자는 말에 조조가 한호 없으면 난 어떡하라고 징징 거리면서 수도로 끌고간다.
  • 상서(尙書)·옹주자사(雍州刺史) 장기 字 덕용(德容)
한중전이 벌어지기전 조조에게 명해 한중의 백성 대다수를 장안으로 옮겼다. 이후 조홍과 무도 하변에서 오란을 격파하였다.
  • 시중(侍中) 승상장사(丞相長史) 두습 字 자사(子緖)
장로를 상대로 승리하고 한중을 맡아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설득하여 8만명의 낙양과 업으로의 자원 이주를 이뤄낸다. 그리고 하후연이 죽은 이후 군사의 수습을 훌륭하게 해낸다.

그 외 서황, 조진 등

5.3 기타

저족의 수령. 촉군의 오란이 위군의 조홍에게 대패하고 도망가자, 오란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바쳤다.

6 기타 창작물에서

6.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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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때쯤이 삼국지 시나리오 중에 인기가 많은 시점 중에 하나다. 삼국지11에선 결전제패중에 정군산 전투가 있고 오리지날 시나리오 중에 유비 입촉이 있다. 이 경우엔 형주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천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시작이다. 그리고 PK에서 한중공방전 시나리오가 추가. 맨 위의 그림이 이 시나리오 시작시 나오는 데모의 일부이다. 유비 휘하에 오호대장군이 모두 집결한 유일한 시나리오다.[20] 삼국지 10 영웅대결 시나리오 같은 경우엔 서천과 형주를 다 먹고 있는 유비의 최전성기 시점에서 진행[21]되는데, 가만히 냅두면 게임에서도 관우 장비가 우수수 죽고 형주는 오나라 땅이 되어버린다.

6.2 창천항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조가 죽을뻔해서 공포에 질리는 모습이 나온 부분. 특히나 다른 패배와 달리 이번의 조조는 정말 분해서 "이렇게 분통넘치는 철퇴는 처음이구나!"하고 외치기도 한다. 짤방의 조조의 말도 그렇고 하후연도 "전쟁으로 풍요로움을 더럽힐 셈이냐!"하고 유비에게 일갈하는데... 탕거 전투에 보듯이 먼저 공격한 전쟁에서 저런 말을 하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장비가 장합을 바르는 부분은 장합이 "제가 전에 졌던 이유는..."식으로 한줄로 처리되며 조홍이 오란과 뇌동을 쳐죽이는 장면은 묘사돼있다. 간지 폭풍을 내뿜는 하후연은 다굴빵에 황충의 뒤통수 치기에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리고 조조가 도착하고 난 뒤에는 제대로 된 전투도 안나오고 끝나버린다. 조조가 언제나처럼 유비를 끌어내서 싸우려고 하지만 유비는 응답하지 않고, 애꿎은 제갈량이 열폭하며 조조를 사로잡아라, 라는 자못 야라레스런 모습을 보이다가 기절하고 분노해서 돌아가는 조조를 보고 유비는 "네 놈 뜻대로 되게 하진 않는다"며 노려본다. 창천항로의 대부분의 싸움은 항상 조조 뜻대로 된 데 비하면 한중에선 조조가 물먹은 셈.

6.3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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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 누구냐?

유비 : "한나라 황실의 후예로 유비 자는 현덕이라 하오. 맹덕형 건망증이 심하시구려"

조조 : "아, 이제보니 현덕 아우님이구먼. 세상에 자네보다 더 건망증 심한 사람도 있나? 옛날 동탁을 토벌하던 시절 누가 자네를 18로 제후에 넣어줬나? 여포에게 쫒겨 갈곳 없던 시절, 누가 자넬 거둬줬나?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마땅한 법인데...자넨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반란을 일으켜 천하를 혼란시키는군."

유비 : "조조 네놈은 멋대로 왕이라 칭하고, 한나라를 찬탈하여 황제를 가두고 황후를 시해하여 충신들을 도륙했다. 한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든 네놈을 씹어먹어도 한이 풀리질 않아. 오늘 난 천자의 혈서를 받들어 네놈을 죽여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조조 : "하~ 또 날 씹어먹겠다고? 좀 신선한 표현은 없나? 현덕, 내 뒤엔 40만 대군이 버티고 있다. 항복하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유비 : "조맹덕. 오늘의 싸움을 18년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왔소. 내년 이 날 그대 무덤에 가서 성묘하리다."

조조 : "정말 감히 나와 싸울 셈인가?"

유비 : "허세부리는 것 같나?"

촉빠들이나, 유비의 팬들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는 순간으로, 근 20년 이상 근거지 없이 적은 병력으로 이리저리 떠돌면서, 조조가 너무 유능해 분통터진다던지, 자신은 무능하다며 자결할뻔한 장면까지 나온 유비가 마침내 수십만의 대군을 갖추고 중요한 거점을 두고서 조조가 끌고온 수십만의 대군과 전면전을 펼치는 순간이 왔기때문. 슬슬 제작비를 아껴야 했던 시점이었는지 전투 자체는 별로 인상적이진 않는다. 그보다 조조와 유비, 진건빈과 우화위 두 배우가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연기력과 포스가 엄청난다. 위의 대사만 봐도 둘사이의 말빨이 꽤 쩌는것을 볼수 있다. 본래 이 드라마에서 유비가 강인한 이미지긴 하지만 입촉후 이 때쯤부터 해서 눈빛과 표정 자체가 변한다. 허세부리는 것 같냐는 유비의 말에 어이를 상실하는 조조의 표정 또한 백미.

6.4 삼국지 영걸전

와구관, 가맹관, 천탕산, 정군산, 한수, 양평관. 총 여섯 개의 전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와구관의 전투 1,2(vs 장합)가 있고 가맹관으로 가는 루트와 정군산으로 가는 루트가 나뉜다. 정군산을 정벌하면 다시 천탕산과 한수 직행으로 루트가 나뉘고, 가맹관은 천탕산과 정군산으로 루트가 나뉘므로 (이후 모두 한수에서 만난다) 다섯~여섯 전투를 치러야하는 것이다.

가맹관을 갈 경우 하후덕을 엄안이 박살내고, 이후 정군산(하후연) 선택시 서황이, 천탕산(서황) 루트를 탈 경우 하후연이 원군으로 간다. 즉 어떻게 되든 하후연은 죽는다. 만약 가맹관으로 가지 않고 정군산으로 가서 바로 하후연을 박살내면 하후덕은 선택지에 따라[22] 천탕산에서 죽거나 증발한다(...) 서황의 레벨이 보정격으로 하후연보다 높지만 도깽개깽인 전투들.

다른건 다 할만한데...그냥 되는대로 키웠다면 양평관 전투에서 GG치고 쓴 맛을 보게 될 확를이 크다. 물론 꾸준히 노가다를 했다면 무난하게 깰 수 있고, 장판파처럼 대군이 답이 없이 진군해오는게 아니고 공격범위가 되는 적과 그 주변의 적들만 진군해오기때문에 적절한 속도로 진군하면서 각개격파한다면 노가다를 하지 않았어도 크게 어렵지 않게 클리어 가능하다.

6.5 삼국지 공명전

공명이 안나오니까 중간과정은 대충 생략해주고 바로 한수전투로 돌입(…). 유비를 다리 끝까지 이동시켰다가 다시 올려주면 조조가 혼란에 빠지며 왕평에게 아군을 인접시키면 아군으로 투항한다. (왕평을 그냥 퇴각시켜도 전투후에 합류하긴 한다) 공명전이야 어차피 난이도가 낮으니 키우고 싶은 장수들끼리 적당히 경험치를 나눠먹자. 뭐 어차피 이 시점까지 키울수 있는 장수라곤 그렇게 많은편이 아니긴 하지만.

장비, 황충 등이 나오는 마지막 전투고 멋모르고 키우다보면 장비가 중기병까지 진급할 수도 있지만 손대지말고 조운과 제갈량, 덤이라면 왕평, 맹호대 정도를 레벨을 올려두자. 한중왕 즉위 후 역시 맥성 전투가 나오게 된다.

6.6 삼국지 조조전

정군산, 한수, 사곡. 총 세 개의 전투로 구성되어 있다. 박망파 전투도 그렇고, 장판파 전투도 그랬지만, 조조군보다 유비군이 더 많다.

사실모드에서는 정군산에서 적을 전멸시키거나 조조의 본대가 오는 20턴 동안 버텨서 승리하면 모든 공격이 치명타가 터지는 옥새를 얻으며 후속 전투를 거치지 않는다. 정군산 진지나 한중성, 둘 중 한 곳이 점령되면 한 발 늦은 조조 본대가 병력을 이끌고 후퇴하면서 한수 전투 분기점으로 간다. 하후연이 황충과 접촉하여 죽으면 조황비전을 얻는다. 한수에서는 정사나 연의에도 묘사된 제갈량의 기만작전이 볼만하나 북쪽 산 속에 숨은 조운을 발각시켜 없애면 방어력 디버프에 걸리지 않는다. 12턴이 지나거나 적을 전멸시키면 야곡이 기습당했다는 소식이 날아오고 조조군은 후퇴, 야곡 전투로 넘어간다. 적을 전멸시켜 전투를 끝냈을 때만 제갈건을 얻게 된다. 조창이 우군으로 참전하는 야곡 전투는 어찌어찌 적을 헤치고 진내에 돌입하자마자 유비와 장비 등이 이끄는 대규모 부대가 후방에서 기습하는 힘든 구성이지만, 퇴각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그대로 싸워나가면서 유비와 장비를 퇴각시키면 자웅일대검과 사모를 손에 얻고, 전멸 승리 시 적로도 얻을 수 있다. 옥새가 물론 굉장히 좋긴 하지만 한수와 야곡을 거치면서 얻는 세 개의 보물도 상당한 효용을 지녔으므로 취향에 따라 분기를 잘 골라야 한다.

가상모드의 경우 정군산 전투에서 옥새를 얻으려면 10턴 내로 적을 전멸시켜 끝내야 한다. 10턴이 지나면 마왕에게 홀린 공명이 병력을 모두 퇴각시키며 캠페인 종료. 사실모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치르게 되는(사실모드 35번, 가상모드 32번) 전투다. 그래서 버티기만 하면 매우 쉽지만, 제한시간 때문에 옥새를 얻는 난이도는 상당히 높다. ~그냥 모래폭풍 갈기면 게임 끝난다. 성에서 쓰면 데미지까지 상승한다. 둔갑천서까지 있으면 회귀 2번 합쳐서 한턴에 4회 공격 가능하다.~

6.7 진삼국무쌍 시리즈

3편에서는 하후상과 진식의 포로교환 이벤트와 함께 전투 개시. 촉군과 위군 양쪽 모두, 자기네 본진으로 귀환하는 하후상 또는 진식을 때려잡을 수 있지만 이 때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적군 본진의 문이 닫히면서 복병이 출현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반대로 잘 키운 무장이고 각오만 되어있으면 스테이지 클리어 단축의 기회다.

촉군 시점의 진행은, 하후덕을 격파하여 정군산을 제압하고 나면 황충이 하후연에게 돌격하지만 곧 고립된다. 황충을 도와서 하후연과 장합을 격파하고 이어 나타나는 조조를 격파하면 승리.

위군 시점에서는 시작하자마자 사기 최대인 황충 부대가 정군산의 하후덕을 압박해 온다. 하후덕 패주로 정군산을 빼앗기면 아군 전부대의 사기가 떨어지므로 구해 주러 나가는 편이 좋다. 플레이어와 황충이 조우하면 황충 도발 이벤트가 발생. 이후 황충을 격파하면 적 총대장 유비가 이미 정군산 쪽으로 오고 있으므로 반갑게 맞아 주자. 후방에서 조운의 원군이 나타나서 유비와 합류하므로, 가능한 한 빨리 격파해서 승리를 달성.

4편에서는 양군의 시작 시점이 다르다. 촉군은 중앙의 보급거점을 떨어뜨려 천탕산을 공략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이 때 천탕산을 수비하던 하후덕이 갑자기 사기를 끌어올리고 나서 우라돌격아군 본진으로 돌격해 온다. 이를 그냥 두면 아군 장수들이 줄줄이 깨지고 총대장 유비마저 위험해지므로 하후덕을 빠르게 처리하자. 이후 랩퍼하후연을 공략하고 조조를 격퇴하면 승리.

위군은 천탕산을 빼앗긴 상황에서 전투를 개시한다. 시작하자마자 본진 앞까지 쇄도해 있는 적군들을 잡아내다 보면 클론무장이 하나씩 오다가(이때 여유가 있다면 북서쪽의 위연을 격파해 두는 것이 좋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황충 부대가 본격적으로 진군해 온다. 플레이어가 하후연이 아닐 경우, 황충이 하후연에게 근접하면 하후연 전사 이벤트가 발생하고 아군이 대폭 불리해진다. 이를 막으려면 길목에서 황충을 요격하거나 미리 황충에게 가서 제압해야 하는데, 강화 상태의 황충과 그를 지원하는 엄안 관평 이엄 등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므로 꽤나 까다롭다. 일단 황충을 잡고 나면 그 뒤는 수월하다.

5편에서는 촉군과 위군이 서로 황충과 하후연을 격파하고, 3개의 산 중 상대의 산 2개를 모두 차지하며, 아군 장수가 패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공목표가 있다. 둘 다 초반이 중요한 전투이다. 위군 시나리오의 난이도는 3, 촉군 시나리오의 난이도는 4로 느낌상으로도 촉군 시나리오가 더 어렵다. 맵은 삽기산과 정군산이 소용돌이 모양이라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촉군은 삽기산으로 공격을 가고 천탕산 남경계소 근처에서 방어를 하는데 너무 한 곳만 집중해서 싸우면 공격하는 쪽에선 제갈량이나 법정이, 방어하는 쪽에선 이엄이 쉽게 패주하여 전공목표3을 실패하게 된다. 수라모드에서는 천탕산 남경계소 근처에서 등장하는 조운을 빼고는 목표3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 그냥 운에 맡기도록 하자.
목표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삽기산으로 공격을 가 아군 전체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낫다. 삽기산을 제압했다면 하후연이 정군산에서 내려오는데 강화가 되어 있으므로 주의해야 싸워야 한다. 삽기산을 제압하고 하후연을 죽였다면 그 후는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위군은 촉군보다는 좀 더 쉽다. 왜냐하면 천탕산이 그냥 평지마냥 되어 있어 정군산처럼 빙글빙글 올라갈 필요가 없는데다 황충이 초반에 내려와 황충을 격파하여 아군 사기를 빨리 올려 클리어를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아군이 삽기산으로 공격을 가는데, 먼저 삽기산 동진지를 제압하여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있으면 황충과 클론무장들이 삽기산에서 뛰어내려 하후연과 클론무장들을 공격한다. 그냥 놔두면 하후연이 패주하여 목표1을 실패하므로 신속히 황충을 격파한다.[23] 그 후 삽기산을 제압한다면 촉군 시나리오보다 훨씬 쉽게 클리어를 할 수 있다. 원군으로 조운이 오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아군은 삽기산을 제압할 시점이므로 왕평이 쉽게 패주하지 않고 잘 버틸 것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6편에서는 위나라 시나리오에서는 전반부를 하후연으로 플레이한다. 황충을 격파하면 포박하지만, 클리어 직후 포박을 풀어낸 황충이 활을 쏘자 거기에 맞서려던 하후연의 활이 갑자기 부서지면서[24] 하후연은 그대로 사망. 죽기 전 허탈해하는 하후연의 독백이 서글프다.

후반부에서는 장합으로 플레이하여 무사히 퇴각하는 시나리오. 후반부를 클리어하면 조조가 정군산과 하후연을 내준 건 형주에 있는 관우를 격파하기 위한 계책이었다는 식으로 비정할 정도로 냉철하게 알려주자 하후돈을 비롯한 위나라 장수 대부분이 반발.

촉나라 시나리오는 황충으로 플레이. 하후연을 잡고, 총대장 조조까지 잡아 사살 직전까지 가지만 조조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걸려들었군이라며 도망. 그리고 다음 시나리오는 번성 전투.

7편에서 위나라 시나리오는 사실모드 전투로 등장.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25] 하후연이 역사대로 전사하지만, 조건을 만족시키면 생존한다.

촉나라 시나리오에서도 IF 조건을 만족시키면, 놀랍게도 하후연이 죽지 않고 조조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번 뒤 자신도 같이 퇴각한다. 그리고 방통과 서서가 합류한 IF 조건과 조휴 격파에 성공하면 이 전투 직후 달아나는 조조와 하후연을 황충, 마초, 마대가 추격하려고 하지만 제갈량과 방통이 도망가게 두라고 말린다.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 명에게 쫓아가면 조조의 의도대로 된다.고 이유를 설명. 6편 정군산 전투를 해본 사람이라면 묘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서서가 먼저 관우를 도우러 번성에 가고, 그 다음으로 방통이 마초와 마대를 데리고 곧장 한중에서 번성으로 지원을 간다.

보면 알겠지만 진삼 시리즈에서는 한중 공방전에서 중요한 승부의 변수로 작용한 하후연의 최후가 나오는 정군산 전투를 주무대로 삼고 있다. 아무래도 하후연의 마지막 전투라는 점 때문에 관우의 마지막 전투인 번성 전투와 비슷한 비중을 주는 모양. 5편에서야 그나마 한중 공방전을 비슷하게 재현해준 전투가 나오지만 5편만 나오고 그 뒤로는 안 나온다.

6.8 삼국전투기

파일:한중 공방전 삼국전투기.png
[26]

삼국전투기를 계속 봐 왔던 촉빠 독자들에게 있어 감동을 주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챕터

관우, 장비, 제갈양이 주로 활약하던 이전에 비해 유비 측의 여러 장수들이 골고루 활약하는 파트이자, 이전까지 계속 여기저기서 치이고 채이던 유비군이 드디어 제대로 된 군세를 이끌고 조조군과 맞대결을 벌이면서 최전성기에 다다르는 웹툰 초반부 이야기부터 얼빠진 유비를 봐 왔던 독자들에게 있어 진정한 군주의 모습과 결의를 보이는 이 때의 유비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


사실상 촉군의 두 주인공은 필승의 책략을 짜내며 영혼을 불사른 법정과 오랜 시간 숨겨온 자신의 뜻을 드러낸 유비.


위나라군은 법정이 짠 계략대로 움직이고[27] 황충하후연을 죽이는 것을 기점으로 여러 장수들의 활약에 조조군의 사기가 하나둘 꺾이기 시작하며 마침내 조조 또한 더 이상 한중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퇴각하고 만다. 또한 이 전투에서 문빙의 매복에 의해 위기에 처한 황충을 구하기 위해 조운이 활약한 장면은 합비2 전투에서 나타난 장료의 무지막지한 작화력과 비교될 정도로 잘 나타나 있다.

6.9 진 연희무쌍

위나라 루트에서 나온다. 정군산에 하후연이 출병한 이후 카즈토가 정군산이란 말에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하다가 알아채고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구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한번 기절.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위 루트 새드엔딩의 플래그를 꽂기 시작한다(...). 그래도 하후연이 위기에 처한 순간 구원군이 도착해서 위기를 모면하고, 이후 조조가 스스로를 미끼로 적군을 꾀어내려 하다가 위기에 처한걸 카즈토가 구해준다. 이 한중 공방전에서 손실을 최소화 하고선, 이후 적벽대전을 기점으로 위나라가 본격적인 공세에 들어서는 계기가 마련된다.
  1.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걍 주라고 한것으로 나온다.
  2. 아니 사실 장합조차도 술쳐먹는 장비를 보며 저 자식이 돌았구나 하고 갔다가 제대로 얻어터진다.
  3. 그런데 제갈량은 이걸 미리 알았는지 술을 보내달라는 장비의 요구에 좋은 술을 보내주었다. 장비:쭉쭉 들이키자! 부하:안주는? 장비:장합 목
  4. 사실 또 장합은 여기서 굴욕을 겪긴 했지만 조조군에서 명장에 속하는 장수였다.
  5. 연의에서 한현은 황충(정확히는 위연)에게 살해당했고, 한호는 이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6.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에서는 천탕산과 정군산 중 어디로 퇴각할까 고민하다가 하후상의 "정군산은 하후연 형님이 지키고 있으니 문제 없고, 천탕산이나 보호합시다."라며 천탕산으로 간다. 아무래도 하후덕이 더 능력이 없던 모양이다.
  7. 사실 연의에서는 장합이 한호와 하후상을 말렸는데 그런 소리나 하니 늙은이들에게 패한다고 했었다.
  8. 이 질문의 본의는 촉 출신의 양홍을 통해 촉의 원주민들이 완벽하게 유비군에 동화되었는지를 알아보는데 있었다.
  9. 정사에는 一戰斬淵이라는 구절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황충이 하후연을 직접 베었다고 볼 수는 없다.
  10. 하후연의 전사로 인해 당시 한중 방면에 주둔했던 조조군의 지휘체계가 붕괴되었고 결국 한중 공방전 동안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으며 조조가 한중에서 퇴각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11. 하후덕,하후상,한호야 그렇다 쳐도 장합까지 깰 정도면 ㅎㄷㄷ
  12. 한중의 장로를 무찌른 후 잠시 쉬고 있었는데, 유엽과 사마의가 조조에게 "이대로 밀어붙여서 서천을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조조는 군사들이 지쳐 있다는 이유로 무시했었다.
  13. 絶妙, 노란 명주실은 실(絲)에 색(色)이 있는 것이고 幼는 少, 婦는 女와 바꿔 쓸 수 있으니 이렇게 되면 妙라고 다시 쓸 수 있다.
  14. 好辭. 딸(女)이 낳은 자녀(子)는 외손자. 그리고 제구는 다섯 가지의 맛을 담는 그릇이고 그 중 매운(辛) 맛을 담는(受)이니 이렇게 글자를 재구성하면 나온다.
  15. 손님이 주인의 집으로 서서히 쳐들어가되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 열받은 주인이 먼저 달려나올 것이고, 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한다는 계책.
  16. 개명한 이엄이다.
  17. 그러나 1세대 무장들의 사망과 이릉대전에서 2세대 무장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다시 촉은 인력난에 시달리며 한 두명에게 부담이 극심해졌다. 제갈량문집을 보면 적군과 싸웠는데 -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싸웠는지는 안나와있지만 - 녹각을 허무는데 병장기가 다 상해서 하마터면 패할뻔 했는데 이번에 보급받은 병장기는 많이 써도 손상되지 않더라. 결국 제조담당자가 할 일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문책하여야 한다. 라는 기록까지 있다.
  18. 용맹한 장수라는 칭호.
  19. 중요한 모사라는 칭호
  20. 유비 입촉의 경우 마초가 독립군주로 서량 지역에 따로 떨어져 있고(군주인지라 세력 멸망 전에는 등용도 안되고 마초 특기 때문에 붙잡기라도 하면 살려두기도 까다롭다.) 그 다음 시나리오는 유비가 죽은 이후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오호대장군이 모두 유비 밑에 있는 건 PK의 이 시나리오 뿐이다.
  21. 217년에서 시작되며 처음으로 나타나는 역사 이벤트가 장비가 장합을 격퇴시킨 탕거 전투다.
  22. 서황이 원군으로 가고 비어있는 천탕산에 하후덕이 오는데 정군산 이후 천탕산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가 나온다.
  23. 난이도 보통 이하에선 사기에 따라 반대로 하후연이 황충을 때려잡아버려 목표를 실패하는 기현상도 발생한다;;
  24. 전투 시작 전 이벤트 영상에서 황충이 하후연과 장합에게 활을 쏘는데, 장합은 화살을 그냥 피했으나 하후연은 그 화살을 직접 활로 쳐 버린다. 여기에서부터 복선이 깔려 있었던 셈.
  25. 일정 시간 후 황충이 천탕산을 통해 백도어를 시전하는데 이걸 막아내는 것이 IF 조건.
  26. 이미지의 인물들은 좌측 상단부가 법정, 하단부가 유비, 우측 상단부가 황충, 하단부가 조운.
  27. 한중 공방전 시작 전에 법정이 말그대로 을 불사르며 계략을 짜는 장면이 있는데 꽤나 인상깊은 장면, 이후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유비에게 충고 또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