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FIFA 월드컵 | ||||
14회 | → | 15회 | → | 16회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 | 1994 FIFA 월드컵 미국 | →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목차
1 개괄
당시에는 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미국에서의 월드컵. 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 독점하던 월드컵을 최초로 제3대륙에서 개최한 월드컵이다. 멕시코가 두 번 월드컵을 개최한 적이 있으나 보통 라틴아메리카(중남미)로 묶이기 때문에 사실상 제3대륙에서의 월드컵으로는 미국 월드컵을 처음으로 본다. 미국인들은 미식축구에만 관심있고, 축구에는 무관심해서, 흥행 여부가 우려되었으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대국이고 이민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역설적이게도 가장 성공한 월드컵으로 평가되며,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상업적 수익을 안겨준 대회가 되었다. 미국내 언론에서도 일단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라고 홍보를 많이 해줬고, 결정적으로 월드컵 기간이 미식 축구 시즌이 아니었다. 미식축구는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서 다음해 연초에 끝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워낙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다보니 딱히 큰 돈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총 관중 수 3,587,538명으로 역대 월드컵 통산 1위다. 이 대회는 본선 출전국이 24개인 최후의 월드컵이고, 이후 대회부터 출전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나 경기수가 12경기 늘어났음에도 브라질 월드컵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1] 천조국 스포츠 내수시장의 위엄!
또한 대부분의 경기장이 6만 이상을 수용하는 미식축구 경기장이었다는 것도 많은 관중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다른 대회에서는 6만명급 이상 대형 구장은 개막전, 결승전, 4강전 등의 핵심 경기를 소화하는 대회의 메인스타디움으로 쓰이는 규모지만 미국 월드컵에서는 NFL 미식축구 경기장을 축구장으로 전용해 사용할수 있었기 때문에 신규 구장 지을 것 없이 대규모 관중동원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작은 구장이 워싱턴 D.C.의 RFK(로버트 F. 케네디) 스타디움(워싱턴 레드스킨스/워싱턴 세네터스 II/워싱턴 내셔널스의 전 홈구장)으로 수용인원 53,000명 규모였을 정도였으니(...) 미국 월드컵에서 경기가 개최된 NFL의 대표적인 경기장으로 뉴욕 자이언츠/뉴욕 제츠의 이스트 러더포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폰티악 실버돔, 시카고 베어스의 솔저 필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폭스보로 등이 있었다. 참고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홈구장 폰티악 실버돔은 FIFA 월드컵 사상 최초의 실내구장이었다.
이 대회의 성공 덕에 4대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의 인기에 밀리던 미국에서도 축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이후 미국에서 MLS라는 프로축구 리그가 재출범하는 토대가 되었다.[2]
전 대회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압박축구 전술의 유행으로 역대 최악의 저득점 대회[3]가 된 충격 탓에, 기존 승리팀에 2점을 주던 승점제를 승리팀에 3점을 주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수비수가 백패스한 공을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하였으며, 공인구를 좀 더 공격적으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 대회에서는 경기당 2.71골을 기록하여 전 대회에 비해서 평균득점이 크게 늘었다. 또한 기존에 2회까지만 허용되었던 선수 교체도 3회로 늘어났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진행되었고 이것이 경기력에 많은 영향을 미친 대회였다. 1994년이 전세계적으로 폭염으로 유독 무더웠던 해이기도 했다. 게다가 유럽 중계 등 대회 흥행을 위해 미국 현지시간으로 대낮에 경기가 열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4] 섭씨 3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폭염과 이에 대해 습도마저 매우 높은 환경 속에서 많은 경기가 치러졌다. 게다가 미식축구 경기장을 전용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 경기장에 햇볕을 막아줄 지붕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여름에도 기후가 비교적 서늘한 중북부 유럽팀 선수들이 평생 처음 겪어보는 더위 속에서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전대회 우승국인 독일은 평균연령이 31세에 달하는 고령 스쿼드였는데, 폭염으로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며 기대보다 상당히 저조한 경기력을 보였다.
또한 결승전이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된 최초의 대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조가 우주개발을 하는데...
그리고 펠레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활성화된 기념비적인(...) 월드컵이기도 하다. 단순히 팀과 선수의 승패에 영향을 준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
2 개최 구장
구장이름 | 수용인원 | 주요경기 | 소재지 | 당시 홈구장 팀 | 현재 용도 |
로즈보울 | 91,794 | 결승전 개최 |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5] | UCLA 미식축구팀 | 로즈보울 매년 개최 |
폰티악 실버돔 | 77,557 | 미시간주 폰티악 |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 2016년 철거예정 | |
스탠포드 스타디움 | 80,906 |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시 | 스탠퍼드 대학교 | 2006년 재건축 현 수용인원 50,000 | |
자이언츠 스타디움 | 75,338 | 뉴저지주 이스트 러더퍼드 | 뉴욕 자이언츠 뉴욕 제츠 | 철거후 재건축. 현재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 |
시트러스 보울 | 61,219 | 플로리다주 올랜도 |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 매년 캐피탈 원 볼 개최 MLS 올랜도시티 SC 홈구장 | |
솔저 필드 | 대회당시 63,117 | 개막전 개최 | 일리노이주 시카고 | 시카고 베어스 | 2003년 재건축 현 수용인원 61,500 |
코튼 보울 | 63,998 | 한국vs스페인전 한국vs독일전 | 텍사스주 댈러스 | 댈러스 번 (현 FC 댈러스) | 2008년 개보수 확장공사 현 수용인원 92,100 Red River Rivalry 정기전 댈러스 보울 매년 개최 |
폭스보로 스타디움 | 53,644 | 한국vs볼리비아전 | 매사추세츠주 폭스보로[6] |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 철거후 재건축. 현재 질레트 스타디움 |
RFK 스타디움 | 53,142 | 워싱턴 D.C. | 워싱턴 레드스킨스 | MLS D.C 유나이티드 홈구장 |
3 유치과정
미국 외에도 모로코와 브라질이 유치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제3대륙에서의 개최 여론이 드높아짐에 따라 브라질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였다. 사실상 미국과 모로코의 양자 대결.
모로코는 유럽과의 시차가 사실상 없고 거리가 짧아 선수단 및 관중의 방문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SOC 시설과 경기장이 빈약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국가재정에 대한 의구심이 높았다.
반면 미국은 유럽에서 대서양을 횡단해야 하기에 시차 및 거리 문제가 있었으나, 대신 상업적 흥행 요소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강력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SOC는 이미 갖춰져 있었는데다 경기장 확보도 미국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있는 건 달러뿐입니다. 다만 경기장들이 흩어져있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이는 4일 간격을 둔 경기일정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오히려 개최 도시를 비행기 타고 이동했으니, 선수들로서는 기차나 버스같은 장거리 지상교통보다는 더 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주 경기장은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로즈 볼 경기장으로, 결승과 준결승 중 한 경기, 3,4위전 등이 열렸다. 게다가 축구 덕후로 알려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까지 나서 주앙 아벨랑제 당시 FIFA 회장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벨랑제로 하여금 조국 브라질의 뒤통수를 치게 한 귀신저의 요술
결국 그런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최종적으로 미국 10표, 모로코 7표, 브라질 2표로 단 1번의 투표로 미국이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표가 모로코를 밀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부 반대가 있었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몇몇 정치인들이 미국은 야구하는 나라이기에 축구같은 월드컵 안해도 된다능~~이라고 징징거렸던 것. 물론 극히 일부 반대였고 보란듯이 월드컵 잘 개최하여 큰 수익을 거둔 대회로 평가되면서 이들 징징거림은 그저 헛소리로 작게 언급될 뿐이다.
4 진출국
● 표시는 개최국 자동진출, ★은 전 대회 우승국 자동진출이다. () 표시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이다.
- 남미(3.5장) :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 북중미(2.25장) : 미국●, 멕시코
- 아시아(2장) : 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 아프리카(3장) : 나이지리아, 카메룬, 모로코
- 유럽(13장) :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루마니아, 벨기에, 그리스, 러시아, 스웨덴, 불가리아
- 오세아니아(0.25장) : 진출 실패
오스트레일리아가 북중미 3위 캐나다를 꺾었으나 남미 4위 아르헨티나와 접전 끝에 패했다.
아르헨티나는 오스트레일리아와의 플레이오프 직전 디에고 마라도나의 은퇴까지 번복시키면서 겨우겨우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라도나는 본선에서 결국...
24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그리스 3개국이 첫 출전국이다.
한편 이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사상 최초로 영국을 구성하는 4개 축구협회-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모조리 지역예선에서 광탈하여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대회이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가 2014년까지 계속 진출하여 현재로선 영국 구성국들 모두가 월드컵 구경을 못한 유일한 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5 대회 마스코트·공인구
대회 공식 엠블럼과 마스코트.
마스코트는 스트라이커(Striker). 개를 이용한 마스코트로 찬반양론이 엇갈렸는데 찬성측에선 친숙하다는 의견이, 반대쪽에선 너무 식상하고 단조롭다는 의견이 각각 나왔다. 주로 미국쪽에서 찬성 의견이 많았다고….
공인구는 퀘스트라(Questra). 아디다스가 만들었는데 지난 대회에서 너무 골이 안 터지고 수비적이었다는 지적때문에 골 좀 팍팍 넣으라고 공 표면을 기포가 있는 합성수지로 발랐다. 실제로 이 조치는 효과가 있어서 골키퍼들이 바뀐 공에 적응하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이에 따라 골도 많이 늘었다. 이 기술은 이후 월드컵 공인구의 기술적 표본이 된다.
월드컵 명장면 (BGM : Gloryland (주제가))
6 대회 진행
6.1 조별 라운드
최좌측이 조 1위, 최우측이 조 4위이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
A조 | 루마니아 | 스위스 | 미국 | 콜롬비아 |
B조 | 브라질 | 스웨덴 | 러시아 | 카메룬 |
C조 | 독일 | 스페인 | 대한민국 | 볼리비아 |
D조 | 나이지리아 | 불가리아 | 아르헨티나 | 그리스 |
E조 | 멕시코 | 아일랜드 | 이탈리아 | 노르웨이 |
F조 | 네덜란드 | 사우디아라비아 | 벨기에 | 모로코 |
A조는 콜롬비아가 독주하고 루마니아와 스위스가 경합하며 미국이 개최국 첫 1라운드 탈락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첫 날부터 이변이 시작되니, 미국이 스위스와 비기고, 루마니아가 콜롬비아를 3:1로 압살했다. 이후 경기에서는 스위스가 루마니아를 4:1로 압살하며 대혼전이 시작되었고, 최약체로 지목된 미국은 우승후보 콜롬비아를 2:1로 격침시키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국 대혼전 속에 루마니아와 스위스가 1, 2위로 16강에 직행했고, 미국은 1승 1무 1패로 3위를 차지했다. 우승후보 콜롬비아는 4위로 광탈했다.[7]
B조는 예상대로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브라질과 스웨덴의 독주였다. 지난 대회 검은 돌풍의 주역 카메룬은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비기며 2연속 16강을 노렸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16강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러시아에게 1:6으로 참패했다.[8][9] 브라질과 스웨덴이 조 1, 2위를 차지하고 러시아는 1승 2패로 3위.
C조는 독일과 스페인의 우세였다. 볼리비아가 한국을 몇 골 차로 이길 것인가, 또 독일과 스페인 중 어느 한 팀에 비길 수 있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적으로 독일과 스페인이 조 1, 2위를 차지하긴 했는데 진행양상이 매우 판이했다. 볼리비아는 1무 2패로 꼴지로 주저앉았고, 대한민국은 선전했으나 2무 1패로 조 3위. 이 당시까지는 조 3위 팀 중 전적이 좋은 4팀이 16강에 추가로 진출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은 승점이 모자라서 이 제도의 혜택을 얻지 못하고 짐을 싸야만 했다. 그러나 이 중 독일은 디팬딩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이력서와는 달리 노인학대를 하는 팀으로 애초부터 우승할 가망이 없었다. 우승후보라고 하기엔 선수들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당장 33살의 마테우스, 30살의 클린스만, 34살의 푈러 등이 죄다 30대 초중반의 고령이라 본선 32개국 팀들 중 가장 평균연령이 높았다. 30살을 뛰어넘었다. 그 결과 독일은 한국전에서 초반을 잘해놓고도 나이가 너무 많아 체력적 열세에 시달린 나머지 한국을 어떻게 이기는지 기술적으로는 매우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부족한 탓에 몸이 안따라줘서 결국 황선홍과 홍명보에게 연달아 골을 얻어맞고 3-2까지 추격당한 끝에 하마터면 비기거나 패할 뻔했다.
D조는 그리스가 3패하며 광탈하는 동안, 나머지 3팀이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쳤다. 아르헨티나가 첫 경기에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해트트릭과 디에고 마라도나의 추가골로 그리스를 4:0으로 승리했고, 이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선 마라도나의 능숙한 경기운영과 카니히아(90년 월드컵 브라질 전과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그 카니히아 맞다. 국내 많은 올드팬들에겐 영어식인 카니쟈로 알려져있지만.)의 멀티골로 2:1으로 승리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으나 직후의 약물검사에서 마라도나가 양성반응을 보여 추방(…), 이후 거짓말처럼 졸전끝에 불가리아에 무득점하며 패했다. 나이지리아는 첫경기에서 일방적인 공세끝에 불가리아를 3:0으로 바르며 아프리카 돌풍을 이어가나 했으나 아르헨티나에 패했고, 불가리아는 나이지리아에 발렸으나 마라도나가 빠진 아르헨티나를 2:0으로 발랐다(...) 3팀이 2승 1패인 상황에서 골득실, 다득점, 승자승 모두 따져 나이지리아와 불가리아가 조 1, 2위를 차지했다. 그리스가 승점자판기로 전락한 후 알케타스 파나굴리아스[10] 감독이 라커룸에서 풀이 죽은 선수들에게 기차 화톻을 삶아먹은 소리를 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
E조는 이번 대회 죽음의 조이며 월드컵 역사상 유일무이한 4팀 승점 동률이 발생한 조였다. 4팀 모두 상대에게 이기고 비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최종적으로 4팀 모두 1승 1무 1패 승점 4점이 나온 것. 심지어 골득실까지 똑같이 0이었다. 다득점에서 3골로 앞선 멕시코가 조 1위를 차지했고, 아일랜드는 이탈리아와 같이 다득점이 2골로 같았으나,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승리했기에 승자승 원칙으로 2위가 되었다. 단 1골밖에 넣지 못한 노르웨이는 꼴지가 되었다. 노르웨이 : 아니, 1승 1무 1패로 꼴찌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꼴찌라니!
F조는 D조와 매우 유사한 경기가 진행되었다. 모로코가 승점자판기를 해주는 동안 네덜란드가 사우디에 이기고 벨기에에 패했으며, 벨기에가 네덜란드를 이기고 사우디에 패했다. 그리고 사우디는 벨기에에 이기고 네덜란드에 패하여 서로 2승 1패씩을 기록했다. 네덜란드와 사우디가 골득실에 다득점까지 같았으나 승자승 원칙으로 네덜란드가 1위, 사우디가 2위를 차지했고 사우디 축구의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사우디 축구의 레전드였던 "중동의 마라도나" 사이드 알 오와이란 선수가 벨기에전에서 마라도나에 비교되는 수비수 4명과 골키퍼를 드리블로 멋지게 제치고 골을 넣는 멋진 장면[11]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조 3위 팀 6개국 중 상위 4개팀에 주어지는 16강 티켓은 2승 1패의 D조 아르헨티나와 F조 벨기에, 1승 1무 1패의 A조 미국과 E조 이탈리아가 차지하였다. 개최국이 3위를 했는데도 2라운드에 올랐다! 개최국 2라운드 진출 법칙 연속 달성! 하지만 16년뒤에도 개최국이 3위를 했으나 이때는 그런거 없다. 그리고 그 법칙은 깨지고 말았다...
6.2 결선 토너먼트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16강 1경기 루마니아 3:2 아르헨티나 | I | 8강 1경기 루마니아 2:2(4:5) 스웨덴 | M | 4강 1경기 스웨덴 0:1 브라질 | P | 결승 브라질 0:0(3:2) 이탈리아 |
B | 16강 2경기 스웨덴 3:1 사우디아라비아 | ||||||
C | 16강 3경기 브라질 1:0 미국 | J | 8강 2경기 브라질 3:2 네덜란드 | ||||
D | 16강 4경기 네덜란드 2:0 아일랜드 | ||||||
- | |||||||
E | 16강 5경기 독일 3:2 벨기에 | K | 8강 3경기 독일 1:2 불가리아 | N | 4강 2경기 불가리아 1:2 이탈리아 | ||
F | 16강 6경기 멕시코 1:1(1:3) 불가리아 | ||||||
G | 16강 7경기 나이지리아 1:2 이탈리아 | L | 8강 4경기 이탈리아 2:1 스페인 | ||||
H | 16강 8경기 스페인 3:0 스위스 | O | 3/4위전 스웨덴 4:0 불가리아 |
1994 FIFA 월드컵 우승 |
브라질 |
네번째 우승 |
16강 첫 경기서부터 이변이 나왔다. 루마니아가 아르헨티나를 3:2로 격침시킨 것. 아무리 마라도나가 빠졌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스웨덴이 사우디를, 브라질이 미국을, 네덜란드가 아일랜드를, 독일이 벨기에를 격파하며 더 이상 이변이 없나 싶었으나 불가리아가 멕시코를 승부차기 끝에 이겨 8강에 합류하고, 나이지리아가 이탈리아를 격침시킬 뻔한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는 로베르토 바조가 경기 종료 직전 천금 같은 동점골을 뽑아내고 연장전에서 역전골까지 넣으며 광탈을 면했다. 마지막 경기에선 스페인이 스위스를 3:0으로 이겼다.
8강에서는 브라질이 네덜란드를 물리쳤는데, 이때 베베토가 골을 넣고 월드컵 기간중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축복하기 위해 호마리우 등 3명이 함께한 아기 어르기 세레모니는 월드컵 역사상 유명한 세레모니로 기록된다.[12] 이탈리아는 또 바조가 대활약 하며 후반 35분에 쐐기골을 터트려 스페인에 2:1 승리를 거두었다. 스웨덴은 루마니아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 끝에 5:4로 신승을 거두었다. 한편,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미국 월드컵 돌풍의 주인공 불가리아에 2:1로 역전패당하며 8강에서 주저앉았다.
4강전 1경기에서는 돌풍의 주인공 불가리아를 상대한 이탈리아가 또 바조가 2골을 휘몰아치며 스토이치코프가 1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불가리아에 2:1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2경기에서는 브라질이 스웨덴에 1:0으로 승리했으며 이후 3·4위전에서는 스웨덴이 4강까지 올라오며 모든 힘을 쥐어짜낸 불가리아에 4:0 완승을 거두었다.
대망의 결승전. 월드컵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손꼽히는 이 경기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연장전 포함 120분동안 골을 넣지 못했다. 결국 이어지는 운명의 승부차기... 양팀 첫 키커가 모두 실축한 다음 브라질은 3명이 연속으로 성공시켰으나 이탈리아는 4번째 키커 마사로가 실축하여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이탈리아는 마지막 키커가 성공시킨 다음 브라질 5번 키커의 실축을 기원해야 했고, 이탈리아의 5번째 키커는 16강전부터 내리 팀을 위기에서 구원한 로베르토 바조...
...그러나 영웅 바조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어 하늘로 날아가버렸고, 바조는 그라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조는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했고, 그 순간 브라질은 당시 그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월드컵 4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참고로, 당시 브라질은 24년만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7 화제의 팀들
7.1 대한민국
도하의 기적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본선에 오른 한국. 그러나 전 대회인 이탈리아 대회에서의 졸전과 세계 수준에서 몇 수 아래로 평가받는 아시아 예선에서도 고전했던 대한민국은 조별 리그 최하위가 유력시되었다. 더군다나 조 편성도 험난해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 유럽의 전통 강호이자 지난 대회에서 1:3 패배를 맛본 스페인,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를 격파한 볼리비아와 한 조에 속해서 3전 전패나 피하면 다행인 듯했다.
첫 경기는 댈러스에서 열린 스페인 전. 클레멘테 스페인 감독이 "대한민국 정도는 5:0으로 이기겠다."라고 장담하자 대한민국의 김호 감독은 "그럼 우린 딱 1:0으로 이기겠다."라고 응수했는데... 파란이 일어났다. 오히려 한국이 초반 이영진의 기습적인 슛을 시작으로 전반 내내 스페인을 상대로 주도권을 장악했고 전반 25분, 스페인의 미겔 앙헬 나달[13]이 퇴장당해 수적 우위까지 받으면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은 것. 그러나 고질병인 골 결정력 부족'황선홍=똥볼' 공식의 시작과 스페인 GK 산티아고 카니자레스의 선방에 막혀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후반 6분과 10분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예상대로 스페인이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후반 38분, 프리킥 찬스에서 홍명보의 슈팅으로 1골을 만회하면서 한국의 전면적인 총공세가 다시 시작됐고, 스페인은 우왕좌왕하며 4년 전과 다른 한국의 수준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후반 45분, 홍명보의 패스를 이어받은 서정원이 동점골을 터뜨리며 기적을 일궈냈다. 실점 장면에서 조금만 더 집중력을 보여줘서 한 골만이라도 막아냈다면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들지만, 2골차를 극복했다는 기쁨이 너무나 큰 대목이었다.
보스턴 인근의 폭스보로에서 열린 2차전은 볼리비아 전. 한국은 3개 팀 중 그나마 약체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14]. 볼리비아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나 집중력은 한국이 더 높아서 90분 내내 한국이 경기 주도권을 쥐었다. 월드컵 사상 한국이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쥔 건 이때가 처음. 그러나 한국의 맹렬한 공세는 늘 마무리가 부족하여황선홍 무위로 그쳤고 한국은 첫 클린시트 경기에 만족해야 했다. 1954년 대회부터 9경기 연속으로 매 경기 실점을 기록했는데 통산 10번째 경기인 이 경기 결과로 인해 한국의 첫 월드컵 클린시트가 기록되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주심이 추가시간을 너무 과하게 줘서 선수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전반전때도 추가시간을 5분가량 줘서 과한거 아닌가? 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는 무려 8분 가량을 추가시간을 줘서 선수들의 진을 뺐다.누가 이기든 골 좀 넣으라고그때는 추가시간을 푯말로 알려주지 않고 주심재량이었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그래서 진이 빠진 선수들이 이상한 장면도 연출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 골키퍼 최인영이 볼리비아 선수에게 공을 굴려 패스하고(...) 또 그 공을 받은 볼리비아 선수는 '이걸 나에게 왜줘?'라는 식으로 다시 골키퍼에게 차줬다(...). 긴 추가시간에 정신이 나갔나? 당시 화면을 보면 그장면을 지켜보던 한국 수비수만 엄하게 깜짝 놀라서 죽어라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황선홍은 훗날 무릎팍도사에서 "스페인 전 때 1대1 찬스를 날렸던 것이, 결국 이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말았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15] 여하간 황선홍은 이 볼리비아전 한판으로 개발, 똥볼의 대명사가 되었다(...)[16]
이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2무로, 당시 한국의 월드컵 도전 사상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의 목표는 월드컵 첫승과 16강이었다. 90년과 다르게 무승부시 승점은 그대론데 승리시 승점이 3점이 되어버리면서 3무로는 진출하기가 힘들어졌고(실제로 90년 월드컵에선 3무와 1승 1무 1패의 승점이 3점으로 같았으나 94년부터 1승 1무 1패는 승점이 4점이 되고 1승 2패가 승점이 3점이 되어버렸으며 90년 월드컵에선 3무로 실제로 와일드카드를 쟁취해낸 팀이 있었으나, 94년 월드컵에서 16강 와일드카드진출컷은 결국 1승 1무 1패, 승점 4점이었다)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마지막 상대를 이겨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
조별리그 최종전. 역시나 독일은 강력했다. 황금 폭격기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독일 공격진은 전반에만 클린스만의 2골과 리들레의 골로 3점을 휘몰아쳤다. 스페인 이상으로 격이 다르게 강한 독일에 한국 수비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클린스만은 신기에 가까운 볼컨트롤 후 멋진 발리킥으로 득점하는 묘기까지 보여주며 한국팀에게 "역시 안되는가..."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다른 두 골은 골키퍼의 실수성 플레이로 인한 골이라는건 안자랑 나중에는 최인영 골키퍼가 당황해서 막을 골도 못 막고 실책으로 헌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독일은 여유있게 전반을 마쳤고, 당시 독일의 중계진이나 관중들은 '앞으로 몇골이나 더 넣을까?'를 주제로 이야기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실책을 범한 최인영을 빼고 당시 경희대학교 3학년이었던 이운재를 전격 기용하며 수비를 재조직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사실 이운재는 멀쩡한 상황이면 기용하지 않을 후보 키퍼였다. 최인영이 너무 부진하기도 했고 차기 월드컵을 위해 경험을 쌓아주려고 출전시킨 것. [17] 비슷한 연유로 앳된 유망주였던 조진호도 추후 월드컵을 위해 독일전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 폭망 보통 월드컵 멤버 중 한자리 정도는 이렇게 미래를 위해서 유망주에게 자리를 주곤 한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카카도 이런 식으로 첫 월드컵을 경험했다. 한국도 90년엔 황선홍, 홍명보, 94년엔 조진호, 98년엔 이동국, 02년엔 최태욱, 현영민 06년엔 박주영, 백지훈, 10년엔 이승렬, 김보경 등이 미래를 보고 데려간 유망주들이다. 2014년 엔트리는 그나마도 없다. 여하간 이렇게 출전한 이운재는 주변의 우려와 다르게 마테우스의 슛을 막아내는 등 오히려 최인영보다 안정적으로(...) 골문을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7분만에 황선홍의 슈팅이 독일의 골문을 갈랐다.[18] 이 때까지만 해도 경기의 흐름이 크게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으나 불과 10분만인 후반 18분 홍명보의 벼락같은 중거리 슛이 다시 독일의 골망을 흔들면서 경기 양상이 뒤집히기 시작한다.[19]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한국이 전방위에서 총공세에 나서고 최강의 공격진을 자랑하던 독일이 극단적인 수비전술을 쓰며 방어에 급급해진 것.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독일의 체력적 노쇠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한국의 계속된 공세를 육탄방어와 골키퍼 일크너의 선방쇼로 막아내야 했다. 관중들은 대추격을 시작한 한국을 향해 응원을 퍼붓기 시작했고 수비에만 급급했던 독일을 향해서는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20]
그러나 결국 한국의 추가득점은 나오지 않았고 2:3으로 석패, 2무 1패로 월드컵을 마친다. 비록 염원하던 첫승과 16강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경기 내용 면에서는 가히 16강급이라는 평가가 연이었고, 이 경기의 히어로라고도 할 수 있는 클린스만이 회고하길 "한국 팀이 전반전에도 저랬거나 후반전 때 만약 5분만 더 있었다면 우리가 졌을지도 모른다."라고 말 할 정도였다. 전반전에 너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 한편으로 이 경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그저 독일 입장에서 승점셔틀밖에 안되는 만만한 팀이었으나, 혹은 그냥 차범근이 태어난 나라 역전패가 떠오를 정도로 맹렬한 추격을 해오고 이로 인해 자국 공격수까지도 무력화시킨 이 날 경기 이후로 독일은 한국팀을 쉽게 얕잡아보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자국의 상대 팀이 한국으로 확정되자 언론에서 달갑지 않은 팀이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21] 어쨌든 이겼잖아? 2004년 12월 19일에 열린 친선 경기에서는 차두리에게 폭격당하며 고생하다가 기어이 3:1로 패했다. 그 경기의 감독이 클린스만
폭염이 독일 전 때의 분전의 열쇠로 꼽힌다. 1994년의 여름은 전세계적으로 40도를 넘나드는 엄청난 폭염을 기록했었고[22], 미국의 폭염은 습기가 없는 유럽의 여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므로[23][24] 유럽 팀은 항상 하던 것처럼 뛰었는데 후반 초중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특히 노장들로 구성된 독일의 경우는 그게 말할 것도 없었다고. 반면, 미국과 비슷한 기후에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한국 선수들은 폭염에 잘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반전과 비슷한 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독일 선수들에게는 맹렬한 플레이로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당해 1월에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폭염으로 인한 산소 부족을 대비해서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고 한다. 지금보면 주먹구구식 훈련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고.[25]
여러모로 볼리비아 전이 매우 아쉬웠다. 2차전에서 단 1골만 넣어 승리했다면, 한국은 조 3위 상위 4개팀에 주어지는 16강 티켓 경쟁에서 3위로 합류가 가능했다. 같은 1승 1무 1패인 미국(골득실 0, 3득점)과, 죽음의 조에서 고생한 이탈리아(골득실 0, 2득점)와 비교해서 한국은 볼리비아전 1:0 승리를 가정하면 골득실 0, 5득점으로 우위에 서기 때문.[26] 당시 황선홍, 김주성, 홍명보, 고정운, 하석주, 서정원, 노정윤 등 한국축구의 레전드들이 모두 현역이었고 실제 당시 경기를 봐도 스페인, 독일을 맞아서도 비등한 게임을 할 정도로 전력이 좋았다. 황선홍이 그렇게 많은 기회를 놓친 건 돌려 얘기하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만든 것이다. 요새 한국국대는 기회조차 못 만들잖아? 여담으로 계속 붉은 유니폼을 메인으로 하던 한국대표팀이 94월드컵을 맞아 붉은색은 상대를 흥분시키고 공격성을 이끌어내서 경기력에 손해를 준다라는 병맛스런 주장 + 우린 원래 백의민족이다.라는 주장에 흰색유니폼을 메인으로 바꿨다(세컨유니폼은 파란색). 그런데 파란색 세컨유니폼을 입고 뛴 독일전의 활약이 강렬하였기 때문인지 한국유니폼을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잦았고, 실제 월드컵 이후 흰색 상의, 파란색 하의가 메인으로 고정되었다(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참고). 이후 나이키가 한국 국대 유니폼 계약을 하면서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비록 조 3등이 되어 3등끼리의 경합에서 밀려서 탈락했지만 이 때는 애초에 한국은 약체로 분류되었고 도하의 기적으로 겨우 본선에 오르는 등 '역대 최약체 대표팀'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음에도 경기력도 훌륭했고 최초로 승점 2점을 번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전했다 볼 수 있었다. 애당초 2000년대의 한국축구를 기준으로 8~90년대를 보는건 무리가 있다. 당시 아시아 축구와 세계축구의 격차는 지금보다 더 어마어마했다.[27] 조 3등 중 아르헨티나 등은 2승 1패를 달성해서 승점이 넘사벽이라 대한민국과는 달리 16강에 조 3등으로 진출했다.
7.2 불가리아
이 대회의 또 다른 진정한 주인공이다. 2002년 월드컵 한국의 4강 신화를 8년 앞서 쓴 주인공.
동유럽의 변방 불가리아는 이전부터 꾸준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나 단 1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승리에 가장 가까웠던 건 1986년 월드컵의 2차전 한국과의 경기였으나, 김종부에게 동점을 허용해 승리를 놓쳤다.[28]
1994 월드컵 개막 전까지, 불가리아는 월드컵 본선에 5회 나서 6무 10패에 2라운드 1회 진출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예선에서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제치고 올라오며 이번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첫 경기, 나이지리아에 3:0 떡실신(...).
그러나 불가리아는 2차전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스토이치코프를 앞세운 불가리아는 그리스를 상대로 4:0으로 압승하며 자국의 월드컵 첫 승리와 함께 나이지리아전 패배를 만회했고, 3차전에서는 아르헨티나를 2:0으로 완파하는 대 이변을 일으키며 조 2위로 16강에 합류했다.
16강전에서는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를 승부차기 접전 끝에 격파하였고, 8강에선 디펜딩챔피언 독일과 만났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독일에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나라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독일을 연파하며 파죽지세로 4강에 나선 것이다.
비록 4강에서 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3·4위전에서도 스웨덴에 완패했지만 불가리아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기적이었다.
직전 대회까지 한 번도 1승을 하지 못한 점이나, 강호들을 연거푸 격파하고 4강까지 치고 올라간 점, 그리고 3·4위전에서 패한 것까지 8년 뒤의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아니 한국이 1994년의 불가리아와 닮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7.3 콜롬비아
이 대회 최대의 비운의 주인공. 이게 다 펠레 때문이다!
사실 콜롬비아는 이 대회의 우승후보로까지 꼽힌 무시무시한 팀이었다. 남미예선 A조에서 6전 4승 2무 무패, 13득점 2실점이라는 무서운 성적을 보여주며 여유롭게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남미예선이 조를 2개로 나눠 각 조 1위가 직행[29]하는 구조였고, 브라질이 B조에 속해있긴 했지만 A조도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가 속한 만만찮은 조였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2번 다 이겼다. 홈에서 2:1 승리, 그리고 원정에서 5:0 승리를 기록했는데, 당시 최강팀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런 압승을 거둔 강팀이었던 것. 즉, 브라질을 피했다고 저평가할 팀이 아니다. 오히려 당시엔 브라질이 콜롬비아를 피해 다행이라는 소리까지 있었다.
더군다나 조편성까지 최상이었다. 톱시드에 개최국 미국이 배정된 A조에 편성되면서, 스위스와 루마니아, 미국과 같은 조가 된 것이다. 루마니아가 강팀이긴 하지만 콜롬비아에 비하면 약간 아래였고, 스위스는 한 수 아래고, 미국은 개최국 첫 1라운드 광탈이 유력한 팀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 경기에서 게오르기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에 3:1 완패를 당한 것이다. 뭐라 변명할 수 없는 완벽한 완패였다. 하지만 루마니아도 충분히 강하기에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이변이었다. 남은 미국과 스위스는 명백히 한 수 아래였고, 2경기를 모두 이기면 16강은 별 문제 없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대회 최대의 비극의 시발점인 미국전. 전반 34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자책골을 넣었다. 뒤이어 추가골까지 허용하면서 콜롬비아는 패닉 상태. 경기 종료 직전에 간신히 1골을 만회했으나 경기는 1:2로 끝났고, 콜롬비아는 개최국 돌풍의 최대 희생양이 되었다. 모두가 예상 못한 초유의 사태였다.
졸지에 2패를 떠앉게 된 콜롬비아는 자력 16강 진출이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건 무조건 스위스를 이기고, 미국이 루마니아를 이겨주길 기도해야 하는 거뿐이었다. 콜롬비아는 2패 3득점 5실점, 루마니아는 1승 1패 4득점 5실점. 이 시나리오대로만 흐르면 콜롬비아는 골득실에서 루마니아에 앞서 조3위를 차지, 타팀 3위와의 경합에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스위스를 2:0으로 격파하며 마지막 불길을 살렸으나 루마니아는 전반 17분만에 선취골을 넣었다. 콜롬비아 선수단이 간절히 원했으나 미국은 동점골조차 넣지 못하고 패배. 루마니아 2승 1패, 스위스와 미국이 1승 1무 1패가 되며 콜롬비아는 1승 2패, 조 최하위로 내려앉으며 광탈했다. 설령 미국이 루마니아를 잡아 콜롬비아가 조 3위가 되었더라도 16강 진출은 불가능했다. 콜롬비아가 각 조 3위 6개팀 중 4위를 놓고 경합할 팀은 러시아인데 러시아가 마지막 경기를 6:1로 이겨서 7득점 6실점, 골득실 +1인 상황...
콜롬비아 국내 여론은 대폭발했고, 선수단은 귀국을 두려워하며 모두들 산산히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모든 죄를 뒤집어쓰며 귀국한 선수가 바로 미국전 자책골의 주인공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그가 자책골만 넣지 않았어도 콜롬비아는 16강에 진출했을 것이다. 그런 여론이 국내에 팽배한 상황에서 결국 그는 귀국 직후인 7월 2일 살해당했다. 에스코바르가 새벽 3시경에 술집에서 친구들과 떨어져서 잠시 혼자 있는 사이에 3인조가 다가와서 그에게 시비를 걸다 그 중 두 명이 총을 꺼내서 각각 12발씩 쏜 후 도요타 트럭을 타고 현장을 떠난 것. 그들은 총을 쏘면서 "자살골 참 고맙구나!" 라고 외쳤다고 한다. 정황으로 보아 기회를 노리다 저지른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이 높으며, 콜롬비아 승리에 막대한 돈을 걸었다가 몽땅 날린 마피아 조직이 배후에 있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이 범죄와 관련해서 한 명이 체포되기는 했지만 저 3인조는 지금까지도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30]
그 어느 때보다 우승 가능성이 높았던 콜롬비아의 월드컵 도전은 이렇게 피로 얼룩진 비극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저주 때문일까? 콜롬비아는 이후 1998년 대회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더니 이후에는 아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다가 20년만에 2014 월드컵 본선 진출했고, 특급 신성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대활약 속에 8강 진출이란 콜롬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미국 월드컵에서의 비극을 마침내 털어내었다.
7.4 사우디아라비아
월드컵에 처음 나간 팀이었지만, 아시아 팀으로는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북한이 이탈리아에 승리하여 2라운드에 진출한 이후 28년만에 본선 첫승과 2라운드 진출을 동시에 이루었다. 특히 북한은 비록 이탈리아를 이기긴 했지만, 소련, 칠레에 각각 1패 1무승부를 거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로코, 벨기에에 각각 승리하고 비록 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유럽 강호 네덜란드에 선제골을 명중시키는 등 경기 내용면에서도 상당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오와이란은 중앙선 부근에서 부터 5명을 제끼고 골을 넣어 큰 인상을 남겼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우디 대표팀은 1989년 U-17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맴버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이들이 성인이 되어 첫 월드컵 본선 진출, 본선 첫승, 본선 첫 2라운드 진출을 동시에 이루어낸 것이었다. 아시아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무려 개막 1개월 전에 선수단을 미국에 입국시켜 현지 적응 훈련을 시킬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이때에 절정을 이룬 사우디아라비아 축구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98 월드컵에서는 1무 2패(2득점 7실점) 탈락, 2002 월드컵에서는 3전 전패(무득점 12실점) 탈락, 2006 월드컵 1무 2패(2득점 7실점) 탈락하더니, 2010년 월드컵에서는 지역 최종예선 탈락, 2014년 월드컵에서는 아예 지역 최종 예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좀처럼 나아지는 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듯하다. 안습. 쇄국축구와 후진국식 행정의 폐해
7.5 노르웨이
이 대회 두번째 비운의 주인공.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56년만에 본선에 진출한 노르웨이. 그러나 이탈리아, 아일랜드, 멕시코와 함께 E조로 편성되면서 험난한 16강행이 예고되었고, 결국 예상대로 E조 판세는 사상 최악의 물고 물리는 각축전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네 팀 모두 1승 1무 1패를 주고 받으며 승점 4점을 획득한 데다 골 득실까지 같아서 결국 다득점 우선으로 조별리그 순위를 결정짓게 되었는데, 그 결과 3경기 통틀어 1골밖에 못 넣은 노르웨이는 조 최하위로 밀려나 예선 탈락하게 된다. 특히 조 1위를 차지한 멕시코를 이긴 게 바로 노르웨이였으니,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참으로 미치도록 억울한 심정이었을 듯.
7.6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는 비록 준우승이라는 기라성같은 성적을 냈으나 실상은 세대교체에 실패해서 팀 자체는 완전히 개판이었다. 안 그래도 그런 팀이 이제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우승을 하던 멤버들 중에 마라도나 말고는 남아있는 멤버조차 없었다. 1986년의 그 황금함대를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여기의 아르헨티나는 그 황금함대의 호르헤 발다노도 없고 호세 부루차가도 없다. 발다노 대신으로 들어온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이 당시 기준으로 보면 발다노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2류 선수에 불과했다. 훗날 위대해졌을지 어쨌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 월드컵에서의 바티는 그냥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바티가 그리스전에서 해트트릭을 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마라도나가 어시스트를 기가 막히게 해서 바티는 걍 마라도나 앞에 발만 갖다 대고 골을 넣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나이지리아전에도 이어져서 마라도나가 있는 대로 밀대기해줘서 나이지리아 마저 관광시켜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마라도나가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직후 도핑에 걸렸고 그걸로 엔트리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마라도나가 없어진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빈 껍데기뿐인 듣보잡 팀으로 전락해서 불가리아에게 0-2로 패해 조 3위간의 경쟁을 해야만 했고 그 경쟁끝에 16강에 겨우 올라갔다. 거기서도 루마니아한테 2-3으로 털리고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런 심각한 상황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7.7 독일
노인 학대의 극치. 본선 진출 팀 중 가장 늙은 팀.
겉으로 보기엔 디펜딩 챔피언이라 최강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우승후보 조차 아니었다. 왜냐 하면 그놈의 나이! 선수들 나이가 지나치게 많았다. 로타어 마테우스 33살, 위르겐 클린스만 30살, 루디 푈러 34살 등 정말 노장들만 수두루 빽빽인 팀이었다. 막내인 올리버 칸 조차 25살이었으니 나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때문에 매 경기마다 기술적으로는 상대를 압도해도 체력적으로 열세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마터면 패할 뻔하기까지 했다. 매 경기마다 독일의 패턴은 다음과 같았다.
- 전반전: 폭풍같이 몰아붙여 승기를 잡다.
- 후반전: 전반전때 힘 다 쏟아서 지쳐서 빌빌 쌌다.
독일의 입장에서 할만했던 상대인 스페인과 비긴 이유는 이런 이유였다. 16강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초반에 잠깐 실수를 한 것을 제외하고 3-1로 압도하는 위용까지 보여줘 놓고서도 또 그놈의 체력이 발목이 되어 경기종료 직전에 실점을 하고 만다. 그 이후 벨기에전에서 힘 다 빼고 나자 안그래도 체력 약한 늙은 팀이 스페인, 볼리비아, 한국, 벨기에까지 체력을 몽땅 쏟아부어버려서 이젠 빈껍데기만 남은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8강에서 만난 불가리아를 상대로는 실력 자체는 독일이 넘사벽으로 좋았다. 그러나 경기 시작 70분 부터 선수들의 체력이 슬슬 빠지더니 결국 지쳐서 불가리아한테 있는대로 농락당했고 결국 역전골을 맞고 패해 4강 진출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상대를 만날 때마다 분명 어떻게 이기는지는 알고 있긴 한데 몸이 그걸 못따라가서 계속 부진했기 때문에 차라리 실력 없어서 고전한 것보다 훨씬 원통했다.
7.8 브라질
펠레의 저주의 최초 수혜자.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이래 24년 동안 우승은 커녕 단 한 번도 결승에 진출해 보지 못한 브라질은 내홍에 시달렸다. 그러나 1994년 월드컵 예선을 통과하고 나서 이 분은 "브라질은 자격이 없다" 라고 말을 했고[31] 조편성은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 러시아[32], 전 대회 돌풍의 주인공 카메룬[33]이 있는 B조에 편성되었다. 사람들은 걱정을 했으나 저주가 축복이 되었는지 스웨덴과 무승부를 한 것을 제외하면 러시아와 카메룬을 때려잡고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고, 개최국인 미국을 만나 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레오나르두가 팔꿈치로 미국 선수의 광대뼈를 박살내는 반칙이 들통나 퇴장을 당한 끝에 간신히 1:0으로 이기고 올라왔다. 이어진 8강에서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데니스 베르캄프가 건재한 네덜란드를 펠레 스코어 끝에 3:2 승리. 4강전에서는 조 예선 에서 비겼던 스웨덴을 만나 1:0 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가 하드캐리하며 간신히 결승전에 올라온 이탈리아. 치열한 접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 끝에 간신히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호마리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잘 했지만 영감이 한 번 까주니까 잘 풀렸다 라고 말했다.
7.9 이탈리아
월드컵 죽음의 조에 속해 출발부터 삐걱거렸던[34] 이탈리아. 하지만 로베르토 바조의 영웅기질은 이 대회부터 드러났다. 16강 나이지리아 전에서 종료 직전까지 0:1로 뒤지고 있던[35] 이탈리아는 44분경 바조의 기적같은 골로 1:1로 균형을 맞춰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 후반 9분에 페널티킥으로 또 역전골을 넣어 2:1로 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간다. 이어진 스페인과의 8강전 역시 바조가 역전골을 넣어 2:1로 승리,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이끄는 불가리아와의 4강전은 전반에 바조가 2골을 넣어 2:1로 승리를 했다. 브라질과의 결승전은 양 팀이 골을 넣지 못해서[36] 0:0으로 비기며 승부차기까지 갔다. 하지만 3:2로 뒤진, 5번째 상황 키커는 바조, 허나 그의 킥은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결국 브라질의 승리이자 우승.[37][38] 바조는 한 순간에 영웅에서 역적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39].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선수 생활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 PK는 다시 차고 싶다. 나는 4년간 악몽에 시달렸다. 라는 말을 할 정도 였다. 이탈리아는 이 후에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로 한번 더 패했으며 처음으로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둔 대회는 유로 2000 이었다[40].
8 기록실
- 최다 득점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불가리아 & 올레크 살렌코, 러시아. 6골.
- 최초 득점 : 조르쥬 브레기, 스위스. 6월 18일 개막전, 對 미국, 전반 39분.
- 최초 퇴장 : 마르코 에체베리, 볼리비아. 6월 17일 對 독일, 후반 37분.
- 최초 완전 무득점 경기 : 6월 23일 대한민국 對 볼리비아.
- 최초 승리 국가 및 다득점 국가 : 루마니아. 6월 18일 對 콜롬비아, 3:1 승.
- 최초 패널티킥 : 하이 지 올리베이라, 브라질. 6월 20일 對 러시아, 후반 7분.
- 최초 멀티골 : 플로린 러두치오이우, 루마니아. 6월 18일 對 콜롬비아. 전반 16분 및 후반 44분.
- 해트트릭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6월 21일 對 그리스.
- 올렌크 살렌코, 러시아. 6월 28일 對 카메룬. [41]
- 최다 득점 및 득점차 경기 : 6월 28일 러시아 對 카메룬. 6 : 1.
- 자책골 :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콜롬비아. 6월 22일 對 미국, 전반 34분.
- 최초 역전승 : 6월 20일 네덜란드 對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승.
- 무득점팀 : 그리스
- 3전 전패 : 모로코, 그리스
총 141골이 기록되었으며 이를 경기당 평균으로 환산할 경우 2.71골이다.
9 결과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1 | 브라질 | 7 | 5 | 2 | 0 | 11 | 3 | +8 | 17 | 우승 |
2 | 이탈리아 | 7 | 4 | 2 | 1 | 8 | 5 | +3 | 14 | 준우승 |
3 | 스웨덴 | 7 | 3 | 3 | 1 | 15 | 8 | +7 | 12 | 3위 |
4 | 불가리아 | 7 | 3 | 1 | 3 | 10 | 11 | -1 | 10 | 4위 |
5 | 독일 | 5 | 3 | 1 | 1 | 9 | 7 | +2 | 10 | 8강 |
6 | 루마니아 | 5 | 3 | 1 | 1 | 10 | 9 | +1 | 10 | 8강 |
7 | 네덜란드 | 5 | 3 | 0 | 2 | 8 | 6 | +2 | 9 | 8강 |
8 | 스페인 | 5 | 2 | 2 | 1 | 10 | 6 | +4 | 8 | 8강 |
9 | 나이지리아 | 4 | 2 | 0 | 2 | 7 | 4 | +3 | 6 | 16강 |
10 | 아르헨티나 | 4 | 2 | 0 | 2 | 8 | 6 | +2 | 6 | 16강 |
11 | 벨기에 | 4 | 2 | 0 | 2 | 4 | 4 | 0 | 6 | 16강 |
12 | 사우디아라비아 | 4 | 2 | 0 | 2 | 5 | 6 | -1 | 6 | 16강 |
13 | 멕시코 | 4 | 1 | 2 | 1 | 4 | 4 | 0 | 4 | 16강 |
14 | 미국 | 4 | 1 | 1 | 2 | 3 | 4 | -1 | 4 | 16강 |
15 | 스위스 | 4 | 1 | 1 | 2 | 5 | 7 | -2 | 4 | 16강 |
16 | 아일랜드 | 4 | 1 | 1 | 2 | 2 | 4 | -2 | 4 | 16강 |
17 | 노르웨이 | 3 | 1 | 1 | 1 | 1 | 1 | 0 | 4 | 1라운드 |
18 | 러시아 | 3 | 1 | 0 | 2 | 7 | 6 | +1 | 3 | 1라운드 |
19 | 콜롬비아 | 3 | 1 | 0 | 2 | 4 | 5 | -1 | 3 | 1라운드 |
20 | 대한민국 | 3 | 0 | 2 | 1 | 4 | 5 | -1 | 2 | 1라운드 |
21 | 볼리비아 | 3 | 0 | 1 | 2 | 1 | 4 | -3 | 1 | 1라운드 |
22 | 카메룬 | 3 | 0 | 1 | 2 | 3 | 11 | -8 | 1 | 1라운드 |
23 | 모로코 | 3 | 0 | 0 | 3 | 2 | 5 | -7 | 0 | 1라운드 |
24 | 그리스 | 3 | 0 | 0 | 3 | 0 | 10 | -10 | 0 | 1라운드 |
- 골든슈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 올레크 살렌코(러시아)
- 골든볼 : 호마리우(브라질)
- 실버볼 :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
- 브론즈볼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 야신상 : 미셀 프뢰돔(벨기에)
- 신인상 : 마크 오베르마스(네덜란드)
- 페어플레이상 : 브라질
- 최고의 인기팀 : 브라질
- 올스타팀
10 이야깃거리
-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볼리비아에서는 월드컵 개막일인 6월 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곤살로 산체스 대통령이 직접 독일과의 개막전을 관전하러 미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개막전 결과는 볼리비아의 0:1 패배. 역시나 남미에서 중하위권을 맴도는 볼리비아의 실력으로는 디펜딩 챔피언을 넘기에 역부족이었다. 한편 이 경기에서 볼리비아의 주전 미드필더인 마르코 에체베리아가 어이없게 퇴장(한국전에 대비하여 체력을 아낀다고 후반 막판 교체투입되었는데, 교체당한 선수가 경기장을 나가지 않고 12명으로 플레이하였다....) 당하자 흥분한 몇몇 볼리비아 국민들이 주심의 고국인 멕시코 대사관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 멕시코와 불가리아의 16강전에서는 골대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골대를 새로 교체하느라 약 10여분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 이 대회에서 나온 유행어는 "신은 □□□인!" 결승전을 앞두고 브라질에서는 당연히 "신은 브라질인!"이라 외쳤고, 이탈리아에서는 당연히 "신은 이탈리아인!"을 외쳤다. 이 대회에서 4강 돌퐁을 일으킨 불가리아 역시 이탈리아와의 4강전을 앞두고 "신은 불가리아인!" 드립을 쳤지만 결과는 1:2 패배. 패배 후 불가리아의 골잡이 흐리스트 스토이치코프는 "신은 불가리아인이 맞지만 심판은 프랑스인이었다."고 말했는데.
고만해 미친놈들아!, 참고로 프랑스는 지역예선에서 불가리아와의 홈 경기와 원정 경기 모두 패배하여 결국 조 3위로 밀려나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 이 대회부터 승리 승점이 종전의 2점에서 3점으로 변경되는 첫 대회가 되었다.
- 러시아의 살렌코는 1경기에만 5골을 넣어서 총 6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한 선수가 한 경기에 넣은 최다골이다.
- 카메룬의 로저밀러는 42세의 나이로 러시아를 상대로 득점하여 역대 최고령 득점 기록을 세웠다. [42]
- 독일의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한국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관중들이 야유를 퍼붓자 그들을 상대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당연히 바로 교체당한 뒤 귀국 조치 되었으며 에펜베르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국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 결승전이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부차기로 우승이 정해진 최초의 월드컵이다.
-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조 추첨식 당시 펠레가 치욕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추첨식 때 펠레는 당연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피파 회장인 아벨란제가 펠레가 추첨식 행사에 와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린 것. 그것도 추첨식이 열리기 단 1시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유는 바로 아벨란제의 사위와 펠레의 대립. 당시 아벨란제의 사위인 히카르두 테이셰이라는 브라질축구협회 회장에 재직하면서 펠레에게 뇌물을 상납하라고 요구하다가 거절당하는 등 크게 대립했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아벨란제가 펠레에게 모욕을 가한 것이다. 펠레가 불참하는 것은 말이 안되므로 프란츠 베켄바워와 당시 미국 월드컵 조직위원장인 앨런 로젠버그가 간곡히 설득했으나 아벨란제는 "정 그러면 미국 월드컵을 취소시키겠다"라는 망언까지 내뱉었고, 끝내 펠레는 추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 월드컵에서 최초로 조별예선 3전 전승팀이 없었던 대회였다. 그나마 잘 나온 성적은 2승 1무
- ↑ 2위 기록은 3,429,873명을 기록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 ↑ 사실 MLS 출범 이전에 북미축구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가 1968년부터 1984년까지 운영됐다. 그러나 저조한 인기와 재정난으로 리그가 폐지된다.
- ↑ 52경기 115골로, 경기당 2.21골이었다.
- ↑ 유럽 주요 지역과 미국과의 시차는 6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쉽게 얘기하자면, 미국에서 낮경기로 벌어졌던 경기들은 유럽에서는 저녁 프라임타임에 중계됐다는 얘기다.
- ↑ LA의 위성도시 중 하나이다.
- ↑ 보스턴의 위성도시.
- ↑ 이 당시 미국의 감독이었던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1986년 멕시코 8강, 1990년 코스타리카 16강, 이 대회에서 미국 16강, 1998년 나이지리아 16강 등 당시 축구계의 주류와 거리가 멀었던 팀들을 2라운드에 진출시키기로 유명했다. 2002년 우리나라 대표팀감독으로도 섭외 우선순위가 높았다. 그러나 2002년 중국을 16강에 못 올린 후 이 시절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 이 경기에서 러시아의 올렉 살렌코는 5골을 뽑아냈다.(3번째 골은 PK였다.) 이는 월드컵 한 경기 개인 최다 골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살렌코는 러시아가 예선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5골을 몰아넣어서 총 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 ↑ 카메룬의 레전드 로저 밀러는 이 경기에서 골을 뽑아내어 42세 역대 최고령 득점자로 기록됐다. 그러나 팀이 3: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골이라 기뻐할 수 없었고 결국 6:1로 참패하면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월드컵 역대 기록이 두 개나 나온 나름 중요한 경기?
- ↑ Alketas Panagoulias(Αλκέτας Παναγούλιας). 1934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출생한 축구인으로 미국의 축구팀 Greek American AA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미국 국대 감독을 맡은 적이 있을 정도로 미국과 인연이 깊은 축구인이었다. 이 대회에서 3전 전패로 광탈한 후 그리스 국대 감독에서 사퇴하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이라클리스 테살로니키 FC와 아리스 FC에서 감독을 맡다가 은퇴하였다. 그리고 2012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작고하였다.
- ↑ 이 골은 FIFA가 선정한 세기의 골(FIFA's Goal of the Century rankings) 6위에 뽑혔다.
- ↑ 사실 이 세레모니를 네덜란드전에 처음 한 건 아니다. 조별예선에서 골을 넣고도 한 적이 있는데 네덜란드와의 경기가 워낙이나 임팩트가 있어서 이때의 세레모니만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베베토와 사이가 나쁘던 호마리우가 와서 같이 세레모니를 한 것도 의미가 있고...
- ↑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의 삼촌으로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중앙 수비수였다. 그리고 8년 뒤 한일 월드컵 8강에서도 한국전에 출장했다.
- ↑ 더구나 볼리비아는 당시 골잡이었던 마르코 에체베리아가 전 경기에서의 어이없는 퇴장(딴에는 한국전 대비한답시고 후반 막판 컨디션 조절차 교체 출전했는데, 교체당한 선수가 착각하여 피치에서 나오지 않아 12명으로 플레이하였다는 사유로 들어가자마자 퇴장...) 한국전에 출전할 수 없어서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 ↑ 그런데 볼리비아전 때 황선홍도 황선홍이지만 하석주도 만만찮게 욕을 먹었다. 후반 추가시간에 황선홍의 힐패스를 받아 결정적인 1:1찬스를 맞았는데 왼발로 찬 슛이 골키퍼에 막히고 말았다. 사실 황선홍처럼 똥볼도 아니었고 잘 못 찼다기보다는 키퍼가 잘 막은 거였지만 시간대가 시간대이고 16강을 가냐마냐 하는 중요한 경기였던지라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하석주는 심적 충격이 너무 커서 김호 감독에게 독일전은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 사건을 계기로 왼발 킥을 엄청 연습해서 후에 '왼발의 달인'이 되었다고 하니 하석주 개인적으론 좋은 경험이 된 셈이 되었다.
- ↑ 당시 동네아이들 사이에서 축구하다가 홈런을 날리거나 똥볼을 차면 '아~~ 이런 황선홍!!'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 였다.
- ↑ 하지만 최인영이 사라지고 1인자가 될 줄 알았던 이운재는1차로 서동명을 만나 한 번 밀렸다가 밀어내고 2차로 김병지에게 밀려 98월드컵 주전을 내준다. 02년에는 결국 주전을 차지하며 먼 길을 돌아온다.
- ↑ 하지만 황선홍은 골을 넣고도 좋아할 수 없었다. "스페인 전이나 볼리비아 전에서 이렇게 골을 넣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에...
- ↑ 참고로 이 골은 미국 월드컵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성공시킨 골이다. 그리고 멋진 인생 골을 성공시키고도 담담하게 손가락으로 1을 가리키는 홍명보의 세레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넣고 방방뛰었는데 그건 카메라에 안 잡혔다그래서 당시 동네에서 축구를 하던 꼬마들이 많이 흉내내곤 했다. - ↑ 그 와중에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교체당하면서 관중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기도 했다.
- ↑ 독일 축구팬들의 대체적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이 이기긴 할거 같은데 확실히 장담은 못하겠다."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의견이었고 대부분 "한국에 질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았다. 당시 독일이 결과적으로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경기력이 안좋아서 자국에서도 비난을 받던 시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 ↑ 한국에서도 2012년까지 그런 폭염에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자.
- ↑ 얼핏 보면 어차피 같은 여름인데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습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습기가 없는 여름을 다른 상황으로 바꿔보자면, 한겨울 방안에 난로를 세게 틀어놓고 있는 상황인데 이 경우 땀이 나긴 해도 상당히 건조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으로 땀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습기가 있는 한국의 여름을 생각해보면.....
떠올리기만 해도 축축해진다 - ↑ 더구나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은 텍사스 주 댈러스 커튼 볼이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스페인전도 여기서...(다만 이후에 벌어진 스웨덴 vs 사우디아라비아(16강)와 브라질 vs 네덜란드(8강)은 각각 스웨덴과 브라질의 승리로 끝났다.) 반면, 볼리비아 전은 보스턴 근처 폭스보로에서 있었다. 한국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는 모두 시카고 솔저 필드에서 열렸다.
- ↑ 사실 이 훈련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를 때 실시한 훈련이다.(사실 2002년 이전에 '4강 신화'라고 하면 이 성과를 지칭했다. 2002년 이후엔 묻혔지만) 당시 감독인 박종환은 고지대인 멕시코는 산소가 부족해서 체력을 보완한다고 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
이미 검증된 훈련이었던 것외신에서도 깜짝 4강에 오른 한국을 주목하며 이런 훈련을 신기한 듯 관심을 가졌었다. 94월드컵 팀도 꿈이여 다시 한 번식으로 다시 시도 해봤던 것 - ↑ 실현되었다면 이 대회 준우승팀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한국이 조금만 더 선전했으면 대회의 판도가 뿌리채 뒤바뀔 수 있었던 것.
- ↑ 8~90년대의 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진출 1위팀은 아시아 플레이오프 진출팀과 경기를 했을 정도였다.
- ↑ 그런데 16강은 갔다. 불가리아는 당시 2무 1패였는데, 다른 3위팀들 중 승점 3점 이상이 단 2팀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1승의 승점이 2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헝가리가 운다. - ↑ 각 조 2위는 플레이오프 후 승자가 본선 합류, 패자는 북중미 3위 - 오세아니아 1위 플레이오프 승자와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룬다.
- ↑ 이 후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미국 VS 콜롬비아의 개막전 경기에 에스코바르를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 ↑ 실제로도 지역 예선에서 굉장히 부진했다.
- ↑ 전 대회 까지는 소련.
- ↑ 로저 밀러 가 아직도 건재했다. 그 당시 42살.
- ↑ 지난 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둔 아일랜드한테 첫 경기 부터 패했다.
- ↑ 지안프랑코 졸라가 오심 논란이 있는 퇴장을 당했다.
- ↑ 골만 못 넣었을 뿐 경기 자체는 굉장히 치열했다. 호마리우와 베베토가 슈팅을 하면, 바조와 마사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공격진 역시 되받아쳤다.
- ↑ 하지만 바조만의 책임이 아닌데 바조보다 앞선 순번이었던 프랑코 바레시와 다니엘레 마사로가 먼저 실축했는데, 마사로의 실축이 더 컸다.
- ↑ 만약 바조가 성공했더라도 브라질의 다음 키커가 넣으면 브라질의 승리였다.
- ↑ 실제로 바조의 동상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 ↑ 공교롭게도 바조가 은퇴한 이후로부터는 승부차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있다.
- ↑ 1경기 5골
- ↑ 참고로 위의 살렌코 5골과 로저밀러 최고령 골은 러시아:카메룬 한 경기에서 나온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