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라이트 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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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동백꽃(소설), 젊은 느티나무
한국적라이트 노벨. 대한민국에서도 시드노벨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 작가가 쓴 라이트 노벨이 출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장르문학 내에서의 논란거리. 비슷한 말로는 한국형 라이트 노벨이 있다.

1 시초

맨 처음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동인형식의 라이트 노벨 무크지 《드림아웃》이었다. 지금은 사이트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지만 옛날 편집장이었던 사람이 쓴 글 중에 그에 대해 증언한 것이 있었다.

애초에 한국형 같은건 광고멘트였어요. 제가 바란 건 한국인이 썼을 뿐인 일본 라노베였어요. (자폭)

하지만 처음에 《드림아웃》 관계자들이 대화방에서 시드노벨 관계자를 사칭했었다는 루머도 있는 만큼[1], 이쪽과의 혼용을 통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한국 라이트 노벨을 표방한 시드노벨이 창간하면 또 일본 쪽을 베꼈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간판을 한국적으로 내걸었다는 설도 있지만 정작 《뉴타입》 지에 게제된 광고 포스터들이나 홈페이지의 창간사를 뒤져봐도 한국적이나 한국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그 때 사용된 단어는 한국 라이트 노벨.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자, 시드노벨 측도 홈페이지에 그런 표현은 무척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적 라이트 노벨'이란 표현은 쓴 적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표방했다.

그럼에도 시드노벨에 대해 의혹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전에 편집부가 한국적이라는 의도로 카피를 넣었지만 지금 와서 그걸 모두 지우고 "그런 적 없어요"라며 발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웹상에 올라온 모든 글을 다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고(다른 사람이 복사한 글은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의혹을 입증할 증거가 나온 적도 없다.

루트노벨 또한 나름대로 한국적 라이트 노벨을 표방하고 있다. 루트노벨 프롤로그

그러니 꼬리를 찾아줘! 뒷면에 한국형 전기 러브 코미디 드립 좀 빼자

정작 "한국적 라이트 노벨" 같은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이 출간된 《월하의 동사무소》가 의외로 초기 라이트노벨 중 한국적 라이트노벨의 요소는 두루 갖췄다는 의견도 있다.[2] 그러나 여성향이다 보니 흥행성적은 다른 초기 라이트 노벨들에 비해서 밀렸다. 또한 작가의 과도한 오타쿠 개그와 이과덕질 때문에 많은 미덕이 묻히기도 했다.

1.1 논쟁과 한계

아무튼 "한국적 라이트 노벨"이라는 논제가 주어지면서 어떻게 해서 한국적 라이트 노벨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고찰과 함께 몇 달 간 한국적, 또는 한국형 라이트 노벨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이 오고 갔다.

따지고 보면 이 논쟁은 2001년도 전후 하이텔 시리얼 란에서 있던 논쟁을 시작으로[3] 끊임없이 일었던 '한국형 판타지 논쟁'과 이어지는 것이고, 그 한참 이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논의되던 한국적인 게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논제에서 갈라져 나온 논쟁 중 하나다. 게다가 저 '한국적'과 관련된 논쟁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말이 갖는 한계 때문에 확실한 결론이 도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논쟁의 대상인 라이트 노벨은 그 원류인 일본에서도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두루뭉술한 개념이다.[4] 애초부터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대상에 또 한 번 두루뭉술한 개념을 얹어버렸으니, 그 정의와 토론이 처음부터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게다가 임시적인 라이트 노벨의 정의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도입할 경우, 70~80년대 문화탄압으로 오랫동안 주춤했었고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운 일본 서브컬처들을 토대로 재건한 것이나 다름없어 한국적 차별성을 거기에 논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90년대 후반 《영혼기병 라젠카》의 폭망으로 주춤했고, 2003년 《원더풀 데이즈》의 대실패로 크리티컬을 맞아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게임계에서는 동시기 번들 CD경쟁시대의 폐해와 불법 공유 등으로 패키지 게임은 사멸해 버렸고, 온라인 게임밖에 안 남았다. 겜판소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출판만화 시장도 2000년대 후반 들어 급속도로 위축되었고, 다행히 그나마 웹툰이 출판만화 시장을 상당부분 대체한 상황이다. 그나마도 2016년 들어 웹툰 퀄리티의 하향평준화와, 실력과 인성 면에서 수준 미달의 작가들이 데뷔하는 부작용이 대두되어 웹툰 규제 찬성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업계의 위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1.2 소재보다는 형식

과거 한국형 판타지 논쟁의 한계를 이야기할 때 주로 나오는 비판이 "한국형 판타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실상 서구형 판타지의 논리와 재미를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한국형 소재를 잘 버무려낸 판타지 소설을 바랐지만 그런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고, 억지로 만들어봤자 난해하기만 할 뿐 원산지의 작품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한국적 라이트노벨을 바란 이들 역시 일본 라이트노벨의 재미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한국적인 소재를 대입해 만든 것을 바랄 뿐"이라는 지적이 있으며, 당연하지만 그런 라이트노벨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제대로 한국적 라이트 노벨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소재'에 집착하기보단 형식, 즉 소설의 뼈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새로 창조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이게 라이트 노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또 논쟁거리가 되겠으나 라이트 노벨이란 이름 자체의 정의가 모호한 만큼 정말 국내 장르소설계에 그런 소설 장르가 정립된다면 진정 한국 라이트노벨로 불러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일본 라이트노벨을 보면 대체로 "일본 라이트노벨이구나" 라고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라이트 노벨에 정형화된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 만화적 일러스트로 연출한 표지와 컬러/흑백 일러스트, 일본 만화와 매우 비슷한 말투와 스토리의 전개양상 등이 있다. 애당초 일본 라이트노벨이 성장하던 기반에는 수많은 일본 만화와 신본격, 신전기를 위시한 일본 장르문학의 영향이 깔려 있었다.

문제는 한국 작가들이 만드는 라이트노벨은 이러한 중간과정 없이 곧바로 일본 라이트노벨→한국 라이트노벨의 전이과정을 거쳤으며, 때문에 장르적으로 효과적인 사유와 해체 작업 없이 작가들에게 수용되어 왔고[5] 덕분에 그 결과물은 대개 일본 라이트노벨에서 국적만 한국으로 바꿔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시드노벨의 초창기 작품 《마법서와 수학정석》에서 야간자율학습이 등장하면서 한국적인 소재를 썼다는 일각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당시 대부분 독자들의 평가는 "일본 학원물 라이트노벨에서 지명과 인명만 한국으로 로컬라이징 한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이 의견은 현재 만들어지는 상당수의 한국 라이트노벨에도 적용 가능한 문제이다.

당장 적벽가를 예로 들어보면 적벽가는 한국 문화인 판소리이다. 이 적벽가의 배경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임에도 한국인들은 당당히 적벽가를 한국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유충렬전》, 《소대성전》, 《조웅전》, 그리고 현대에 들어 농담삼아 최초의 라이트노벨, 하렘 소설의 고전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구운몽》조차 배경이 중국임에도 한국적인 소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판소리에는 한국인이 만든 고유한 형식이 있고, 이 고전소설들도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군담소설, 몽유소설이라는 한국 고전 소설의 형식을 따랐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속한다.

그럼 라이트노벨을 생각해보자. 현재 한국에서 나오는 라이트노벨들이 따르는 형식은 무엇인가? 물건너와 정말 토씨하나 다를바 하나도 없는 그런 형식에 따르지 않는가? 단순하게 한국적 소재만 이 일본에서 온 일본식 소설 형식에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애를 써봐도 그 본질은 마치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가부키와 별 다를바 없다. 한국 사람이 만든 한국적 소재가 나오는 가부키는 한국식 문화일까, 일본식 문화일까?

물론 일본의 전통 문화 역시 그 근간은 고대 한국과 중국의 문화가 유입되어 일본의 특성에 맞게 현지화한 것이다. 아주 좋은 예로 기모노한복(북방 호복 계열 복식)과 한푸(한족 계열 복식)가 동시에 유입되면서 일본 풍토에 맞게 변하면서 지금의 형태에 이른 것이다. 이런 기모노를 한국의 것이나 중국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분명 환빠동북공정론자들이나 할 짓일 것이다.

한국의 전통 문화요소 역시 중국의 영향이 짙고, 하물며 그 중국마저도 몽골을 위시한 북방계 유목민족이나 인도를 비롯한 서역의 영향을 깊이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중일 각국은 저마다 차별화되는 국가색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말인즉슨 문화 요소란 서로 오고 가는 것인 만큼 라이트노벨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고유의 색이 없다는 주장은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6]

그러나 중요한 점은 외래의 것에 영향을 받았지만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변용한 사례인 기모노나 한국 고전 소설과는 달리 한국의 라이트노벨은 출발 이래 한국 풍토에 맞는 그렇다할 변화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3 수준 낮은 묘사

현대에서 라노벨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대표사례로 미소녀 하렘물이 있다. 사실 하렘물 라노벨의 원류는 인물 일러스트가 등장하며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비주얼 노벨이나 미연시가 원조이고 그림이 섞인 소설이란 점에서 라노벨과 특징이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라노벨은 19금 묘사가 드물다는 정도? 그외엔 하렘 라노벨을 보면 미연시의 클리셰와 거의 판박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연시를 라노벨로 취급할 경우 클라나드AIR 같이 뛰어난 완성도의 감동깊은 작품이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에 다나카 로미오마루토 후미아키 같은 유명 미연시 작가가 라노벨 시나리오를 맡는 경우도 있다. 비단 미연시 작가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로맨스 요소가 있는 라노벨은 대부분이 청춘물로써의 묘사가 뛰어나거나 소설가로서의 서술 경력이 깊고, 심리묘사에 매우 뛰어난 경우가 많다.

예시를 들자면,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는 막판에 작가의 억지로 붕괴하긴 했지만 고찰글을 보면 알듯이 심리학의 전문지식을 베이스로 한 인물간의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캐릭터성을 살리고 있으며 애니판에선 이를 눈치채기 힘들다. 이야기 시리즈의 니시오 이신도 캐릭터성 뿐만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 정신이 망가진 사람의 심리묘사에 매우 탁월하다.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인간 내면에 있는 음습한 심리묘사에 탁월하며 애니판의 묘사로 알 수 없는 심리들을 다량 함축하고 있다.

비주얼 노벨 계열로 가도 슈타인즈 게이트, 카마이타치의 밤, 월희,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쓰르라미 울적에 등의 작품이 있는데 사실상 이런 작품들은 스토리와 캐릭터성도 좋지만 사건 묘사와 인물간 심리묘사가 허술하면 발상 자체가 초딩이 발로 끄적인 수준으로 폄하받기 쉬운 작품들이다. 결국 스토리와 캐릭터성이 아무리 좋아도 풍미깊은 사건묘사와 인물간 심리묘사가 핵심인데, 이런 묘사력에 주력하는 작가가 국내 라노벨계에는 매우 부족하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연애소설 작가가 라노벨을 쓰거나 미연시 시나리오 라이터가 라노벨을 쓰는게 아니므로 상대적으로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가들이 로맨스 라노벨을 좌지우지해야 하는데, 겉으로 한국 문화 풍토만을 접목할 뿐 일본식 클리셰와 캐릭터성에 의존하고 번역체 문장과 패러디가 난무하는데 심리묘사와 사건묘사는 수준 낮은 경우가 많아 뽕빨 미연시 수준의 저질 시나리오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명작 비주얼 노벨과 미연시를 보고 배워야 할 수준.

1.4 작가들의 부진한 노력

최소한 작가들의 노력으로 이 한국에 도입한 일본 서브컬쳐를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 해낸다면 일본에서 들어왔지만 엄연한 한국 서브컬처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한국적 라이트 노벨에 대한 논쟁이 불거진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재창조는커녕 원산지에서 나오는 완성도도 못 따라가며, 필력도 현저하게 떨어져 한장에 글자수가 몇 개 밖에 안되는 그런 불쏘시개나 주구장창 내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제자리 걸음이나 계속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력으로 발전을 못하고 있으니 그나마 버티기라도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또 일본 베끼기이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일었던 한국형 판타지 논쟁은 이후에도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못했다. 한국형 판타지 논쟁의 연장선인 한국적 라이트노벨 논쟁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이니 이런 결과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허나 한국 판타지소설계에서는 《퇴마록》이나 《눈물을 마시는 새》와 같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관련 논의에서 준수한 기준점이 될 만한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라이트노벨계에서 이런 식의 성공적인 예가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7]

한국에서 가장 먼저 라이트노벨을 표방했던 시드노벨은 《해한가》를 위시한 초기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독자들의 평가와는 별개로 부진을 면치 못하자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모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 한국 고대사 만화 《천손의 시대》 같은 준수한 작품들은 방출 혹은 외면하고 《모애모애 조선유학》 같은 괴작을 대상씩이나 주고 내는 상황에 이른다. 실상이 이런데도 과연 이런 일련의 작품군을 한국 문화이자 한국적인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런 복잡한 작업을 거치기 전에 우선 오덕계에서만 알아듣는 번역체 문장의 남발과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내용의 패러디클리셰 남발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8] 한국 순수문학만 꾸준히 읽어도 상당수 해결되는 문제인데, 거의 진전이 없는 걸 보면 정작 작가들 쪽에서는 별반 관심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인 작가가 당당하게 "이것은 한국적인 라이트 노벨입니다" 라고 말을 하기 위해선 기존 일본식 라이트노벨의 장점을 본받을 필요도 있겠지만 일본의 것과 같은 필체나 말투, 클리셰 등 노골적인 왜색까지 본받지는 않아야 한다. 한국적 소재를 라이트노벨에 끼워맞추는 것은 그 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1.5 현대에 들어서

상술했듯이 시드노벨이 오히려 갈수록 모에(萌え)를 권장하는 추세로 흘러가니 포기하면 편해진 사람들도 많으므로 따져봐야 소용이 없어졌다. 결국은 해답이 보이지 않는 의미없는 논쟁일 뿐인 상황이 되었다. 이 논쟁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한국적 창작물의 한국적 서브컬처 개념에 대한 담론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작가 풀의 부족과 창작자와 업계의 관심 결여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의 라이트 노벨 역시 한국적 서브컬쳐 작품을 만들자는 기류에 속해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웹툰이나 게임과 같은 다른 장르에 비해 성과가 크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 이에 대한 관련 논의는 사실상 '한국적 라노벨 무용론' 쪽에 가까운 편인데, 믿도끝도 없고 답도 없는 논의에 피로감을 느끼고 상당수의 독자들이 한국적 라노벨 담론 자체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느정도 관심을 보이는 이들의 대체적인 의견조차 "한국산 라이트노벨의 창작 스타일들이 자연스럽게 축적되어 나타나게 될 양식이 곧 한국적 라이트노벨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잠정적인 결론이 되었다.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결론이기도 하지만 상술했듯이 한국적+라이트노벨이라는 애매한 개념이 중첩된 논의인지라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했다(...)

2 해결책

2.1 라노벨의 정확한 인식

가장 먼저 라노벨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에 있다. 먼저 라노벨은 일본 미소녀물의 통칭이 아니다.

일본에서 라이트 노벨의 정의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보다 훨씬 넓다. 문고(=노벨)에서 발매하여 단가가 싸고 3~4개월 내에 다음권이 발간되며 애니메이션 풍의 일러스트나 삽화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접근하기 쉬운 연재 소설의 총체를 말하며 주요 타겟층은 당연히 유아나 성인이 아닌 청소년층이다. 즉 소설 중간중간 삽화가 실려있는 청소년층 대상의 소설이 실린 그림 동화가 바로 라노벨이다.

이때문에 선정 장르도 비교적 넓다. 이 라이트 노벨이 대단해!의 역대 입상경력만 봐도 알듯이 추리 미스테리물이나 군상극, 대체역사물, 전쟁물, 순수 로맨스물 같은 다른 장르도 인정받는다. 정통파 판타지인 슬레이어즈와 일상+전쟁 SF물인 풀 메탈 패닉도 라노벨이며 미소녀 작화 없는 추리 미스테리물인 고전부 시리즈도 라노벨이다. 채운국 이야기도 라노벨이고, 듀라라라, 바카노 같은 군상극도 라노벨이고, 겜판소 같은 분위기의 소드 아트 온라인도 라노벨이다.

부기팝 시리즈 같은 컬트적인 소설이나 고쿠도 군 만유기 같은 다크히어로 판타지 소설도 라노벨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디폴메나 애니메풍 삽화와 일러스트가 중간중간 삽입된다는 것과 타겟층과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것, 배경 심리 묘사가 상세하다는 정도이다. 여기에 다양한 장르의 라노벨의 애니화나 만화화를 감안하면 청소년층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들 전부 삽화가 있는 소설 형태로 라노벨화하는게 가능하디. 이는 단지 삽화가 없고 연재주기에 제한이 없을 뿐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장르 소설 전반도 마찬가지다.

2.2 라노벨의 상업적 인식과 문화풍토

다만 다른 의미에선 순수 문학보단 상업적인 문학이므로 소년 만화와 같은 유행 문화로도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라노벨은 주간 연재만화처럼 꾸준히 연재해야 하고 상업적 성공여부에 따라 흐름이 변화되어 왔으며 전개를 상의하는 편집자도 존재한다. 흥행여부가 불투명하면 단권으로 짤리는 잡지만화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이전에 유행한 코드를 쓰는 일은 드물다. 결국 현재에 들어서 라이트 노벨은 청소년층을 타겟으로 상업성을 띈 삽화 연재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상업성을 띈 라노벨은 주요 독자층인 일본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풍토에 맞게 대리망상할 수 있는 소설에 가깝다.

청춘 라노벨은 당연히 일본인이 주인공이고 일본식 교복을 입으며 일본의 학창시절과 사건, 논란을 묘사하고 있으며 반의 군집형태나 화젯거리, 취미나 개그 코드도 일본 풍토에 맞게 묘사된다. 일본식 판타지는 일본 설화나 역사적인 존재가 등장하거나 일본 무기가 등장하고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 근성론적인 가치관에 맞는 캐릭터가 활약하게 된다. 이런 특징은 일본 청춘만화나 역사 판타지 만화에서 충분히 묘사되고 있다.

즉 한국식 라노벨이란 일본 라노벨과 달리 주요 독자층인 한국 청소년들이 국내 문화풍토에 맞게 대리망상할 수 있는 내용에 가깝다.

청춘 라노벨은 당연히 한국인이 주인공이고 한국식 교복을 입으며 한국의 학창시절과 사건, 논란을 묘사하고 있으며 반의 군집형태나 화젯거리, 취미나 개그 코드도 한국 풍토에 맞게 묘사되어야 한다. 더욱이 한국식 판타지는 한국 설화나 역사적인 존재가 등장하거나 한국 무기가 등장하고 힌국의 청렴결백 정신과 유교적 가치관에 맞는 캐릭터가 활약하게 된다. 이는 한국 웹툰이나 청춘만화, 역사 판타지 만화에서 충분히 묘사되고 있다.

현재까지 현대의 한국 풍토를 제대로 묘사한 라노벨은 손에 꼽는다. 친구끼리 가벼운 몸싸움이나 욕설, 장난은 기본이고 매점에 같이 가거나 PC방에서 온겜하거나 폰겜질하며 놀고 점수걱정 대학걱정 군대걱정하고 남자들은 게임과 뻘짓과 야한것을 좋아하며 수학여행 이벤트, 학원 째기, 야간자율학습, 입시위주 교육같은 학창요소는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친구와 떡볶이, 순대, 닭꼬치를 먹거나 출출할때 짜장면, 탕수육을 시켜먹고 라면에 계란 얹고 먹거나 짜파게티 끓여먹는 모습이 얼마나 나올까?

일본 연예인이나 유명인, 일본 만화나 문학, TV 프로가 간접 묘사되는 일본 라노벨과 달리 한국 연예인이나 유명인, 만화나 웹툰, 문학 TV 프로는 국산 라노벨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고 있다. 물론 스갤문학이나 국내 유머나 개드립을 접목한 작품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기에 폰겜을 즐기거나 페북, 카톡, 아프리카 TV, 유튜브, 티비플을 즐기고 오유, 디시, 루리웹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취미로 즐기는 모습이 얼마나 나오나 생각해보자.

그나마 한국문화 묘사가 출중히 접목된 장르로 학교폭력물이나 외모지상주의(웹툰), 연놈, 연애혁명만 봐도 일진물일 지언정 이만큼만 리얼하게 묘사해도 한국적 라노벨이라고 충분히 부를만한 물건이 된다. 그 외에는 굿모닝! 티쳐 정도로 특히 굿모닝 티쳐는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 사이에서 폭풍공감을 쏟아냈던 전설의 작품. 한국 웹툰인 우리들은 푸르다도 일본식 클리셰가 주력이지만 국내 풍토를 제대로 접목한 흔적이 많아서 이쪽도 한국식 청춘 라노벨에 가까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한국 풍토가 진한 고전 소설중에서 농담삼아 한국식 라노벨로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하렘물 구운몽이나 한국식 츤데레가 등장하는 운수 좋은 날, 봄봄, 동백꽃(소설)이 있고 젊은 느티나무는 무려 1960년에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 브라콤, 츤데레, 도짓코, 집에 없는 부모 설정이 등장하는 내여귀의 한국판 라노벨이라고 볼 수 있다. 홍길동전허생전도 초월적인 능력으로 태생을 극복하고 사회 풍자를 한다는 점에서 어딘가 라노벨과 닮아있다.

한국의 배경과 풍토를 진하게 묘사하면서 드문드문 라노벨 요소가 등장하는 정도라면 한국적 라노벨도 아예 불가능한것은 아니라는걸 느낄 수 있다.

2.3 국산 문화의 접목

흥행성 여부와 시대변화를 뒷전으로 두더라도 미소녀 뽕빨물의 편견을 버리고 장르들을 명확히 파악하면 국산 애니도 라노벨로 접목하는건 의외로 쉽다.

퇴마록이나 룬의 아이들,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같은 메가히트 소설도 삽화가 삽입된 형태로 3~4개월 단위의 분량으로 꾸준히 문고나 노벨에서 발매된다면 국산 판타지 라노벨이나 다름없다. 청소년층 장르 소설을 쓰는 대히트 작가를 영입하고 일러스트를 붙여서 연재한다면 충분히 수작 이상의 라노벨을 낼 여건이 된다는 뜻이다. 애초에 국내 라노벨이 지탄받는 이유는 일본식 클리셰와 문화풍토 묘사, 편중된 장르, 번역체 문장과 패러디에 있기 때문.

일본 라노벨 장르를 바탕으로 청소년층을 겨냥한 국산 장편 애니를 다소 손을거쳐 라노벨화한다고 생각해도 몇편 꼽을 수 있다.

먼저 디스토피아 세계관인 녹색전차 해모수나 인명구조 메카물인 레스톨 특수구조대, 정치적 암투의 SF물 가이스터즈, 역사 SF물인 바다의 전설 장보고, 강아지의 사회적 투쟁을 다룬 하얀마음 백구, 이세계 생물 능력자 배틀물 유니미니펫, 레이싱 배틀물 트랙시티 등도 라노벨화가 가능하다. 캐릭터 연령을 높이면 아기공룡 둘리도 비일상물로 연재가 충분히 가능하고, 아스타를 향해 차구차구 같이 캐릭터가 많은 스포츠물도 청춘물로 묘사가 가능하다.

그 외에도 드라마 시나리오도 충분히 접목이 가능하다. 로맨스물 대히트작인 겨울연가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청춘 라노벨화가 가능하며 역사물인 선덕여왕,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도 굳이 연애물 없이도 충분히 역사물 라노벨로 어필할 수 있다. 더욱이 청춘 드라마 물인 베토벤 바이러스, 제빵왕 김탁구, 학교(드라마), 순풍산부인과, 논스톱 시리즈도 한국 문화풍토를 묘사한 청춘물 라노벨로 충분히 승화가 가능하다.

고전문학도 마찬가지다. 우스갯소리로 하렘물 장르인 구운몽이 국산 하렘소설의 원류로 취급받고 운수 좋은 날동백꽃이 국산 츤데레 소설의 원류로 불리는 것을 생각해보자. 홍길동전은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도적질로 깽판을 치고 왕조를 뒤흔들고 자기 국가를 세웠다는 점에서 국가나 권위에 하극상을 일으키는 라노벨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허생전은 라노벨계의 희대의 사기꾼 주인공들과 비교해도 견줄만 하다.

결국 청소년층을 포괄하는 시나리오를 갖추고 작품성만 충분하면 한국식 라노벨이란 말도 어찌보면 누워서 떡먹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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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상현 작가가 쓴 시드노벨 전쟁사 참고.
  2. 동사무소, 공무원 시험 경쟁률, 수학의 정석, 서울시 내 여러 랜드마크와 같은 현대적인 한국적 소재와 한국 전래의 무속귀신을 버무렸다는 점에서.
  3. 심지어 해당 논쟁의 중심에는 이영도, 이우혁, 김경진, 안병도 등, 1세대 판타지소설이 부흥하던 시기에 PC통신에서 주로 활동하던 유명 작가들이 있었다. 거기다 논쟁의 결말도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4. 전격문고 편집장을 지냈던 미키 카즈마자기들이 출간하는 것들이 라이트노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5.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만화와 장르문학은 계보가 매우 불분명하다. 한국 만화는 만화 검열제정병섭군 자살 사건 등 정부의 탄압으로 몰락했고, 장르문학은 딱히 젊은 작가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원로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장르문학계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일본 작가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6. 이영도는 2001년도의 논쟁에서 "미국은 유럽(의 문화와 문학적 요소 등)을 가져다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장르 판타지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7. 그나마 관련 평론에서 언급되는 사례가 《미얄의 추천》 정도이며, 작품성을 배제하고 단순 흥행작으로 기준을 확대해도 《나와 호랑이님》까지인데, 예시로 든 이들 작품이 라이트노벨계에서 퇴마록과 눈마새 수준의 롤모델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
  8. 마음의 소리선천적 얼간이들 같은 인기 웹툰들도 일본 애니메이션 패러디는 흔하게 사용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라이트노벨이 지향하는 애니메이션 패러디는 예시로 든 웹툰과 같이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그들만의 리그를 고착화시키기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