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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일 (목) 01:57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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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앤 파이터의 사도에 대해서는 카시야스(던전 앤 파이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FC 포르투 No. 1 | |
이케르 카시야스 페르난데스 (Iker Casillas Fernández) | |
생년월일 | 1981년 5월 20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마드리드 |
신체 조건 | 185cm, 84kg |
포지션 | 골키퍼 |
주로 쓰는 발 | 왼발 |
등번호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1번 FC 포르투 - 1번 |
유소년 클럽 | 레알 마드리드 CF (1990 ~ 1998) |
소속 클럽 | 레알 마드리드 CF (1998 ~ 2015) FC 포르투 (2015 ~ ) |
국가대표 (2000 ~ ) | 167경기[1] |
2010 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2] |
이케르 카시야스 |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주장 | |||||||||||
라울 곤살레스 (2003 ~ 2010) | → | 이케르 카시야스 (2010 ~ 2015) | → | 세르히오 라모스 (2015 ~ )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라울 곤살레스 (2002 ~ 2006) | → | 이케르 카시야스 (2006 ~ ) | → | 현직 |
"나는 볼을 막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팀의 패배를 막을 뿐이다."- 이케르 카시야스
레알 마드리드 CF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무적함대의 영원한 수호신
1 개요
스페인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페인 역대 최고의 골키퍼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다 경기 출전 시간을 보유하고 동시에 3개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별명은 성 이케르(San Iker), 카시야신[3], 골키퍼계의 갓라인[4][5][6], 기적의 사나이.
전성기때는 이탈리아의 지안루이지 부폰과 현시대 No. 1 골리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였던 선수였고 유로 2008을 전후로 부폰이 부상으로 주춤했던 사이, 확 치고 올라와, 한동안 세계 No. 1 골리 자리에 있었다. 월드컵 우승과 유로 2연패, FIFA World Best XI 5회, UEFA 올해의 팀 6회 등의 빛나는 커리어로 리카르도 사모라, 프란시스코 부요, 안도니 수비사레타,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등 기라성 같은 스페인의 명골키퍼들을 모두 넘어서는 데 성공, 일단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유로 2012 이후 부상으로 인한 급격한 폼 하락으로 세계 최고 골키퍼 자리는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에게 내주었다. 보통 골키퍼 커리어의 전성기는 30대에 찾아오는데 카시야스는 20대에 정점을 찍고 점점 내려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14/15시즌을 기점으로 다시 폼을 끌어올리며 부폰에 비해 모자를 것이 없는 폼을 보여줬다. 그러나 결국 케일러 나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영원할 것 같았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경력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에선 정치야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2 선수 경력
2.1 초창기
어린 시절의 카시야스
카시야스는 1981년 5월 20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모스톨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 카시야스는 시 교육부 관서의 공무원이었고 어머니 마리아는 미용사였다. 카시야스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남동생 우나이와 함께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우나이는 훗날 CD Móstoles의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다.)
카시야스는 1990년 9살의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입단했다. 그후 그는 성장하면서 유스팀에서 골키퍼로서의 기술을 갖췄고 1997년 11월 27일 16살의 나이에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로센보르그를 상대로 처음 1군 경기 벤치 명단에 들었다. 그후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백업으로서 경험을 쌓아가던 2000-01 시즌, 보도 일그너가 영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자 델 보스케 감독의 호출을 받고 1군 주전 골키퍼가 되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선방을 연이어 선보이며 레알이 전력을 재정비할 기반을 마련했다. 급기야 그는 19번째 생일이 있은지 4일 후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치뤄서 상대인 발렌시아를 3:0으로 제압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이때 그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결승전을 치른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후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로 발돋움헀지만 2001-02 시즌에 부진을 면치 못해 세자르 산체스의 백업이 되었다. 그러나 산체스가 2002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부상을 당하자 카시야스가 교체 투입되었다. 이때 그는 신들린 선방을 선보이며 레버쿠젠의 공세를 연이어 막아냈고 레알은 이에 힘입어 레버쿠젠을 2:1로 격파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카시야스는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차고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좋은 골키퍼 정도의 위상 정도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성 이케르'라는 위상을 얻게 된 것은 2003-04 시즌 부터였다.
2.2 기적의 사나이
카시야스 광렙 시절. 센터백들아 지금 어디에 있니?
카시야스가 월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2003/04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FC 포르투[7] 원정 경기의 선발 라인업이다.
대략 2003/04 시즌을 전후하여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스 영입 정책으로 수많은 스타들을 영입하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때 베스트 11과 서브의 기량 차이가 극명하여 마드리드는 상당 기간 일정 스쿼드로 모든 매치들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치르게 된다. 주전들의 체력 방전 방지와 유스 정책 실험 등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들을 가용하는 이른바 지네딘 지단과 프란시스코 파본의 이름을 딴 '지다네스 & 파보네스' 시스템을 한동안 가동했는데 이는 곧 치명적인 실책임이 입증되었다. 특히 안 그래도 스쿼드 두께가 얇은 수비진에 급격하게 구멍이 뚫리면서 이 시기 레알 마드리드는 정말 말 그대로 카시야스 혼자 수비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카시야스는 유스 정책의 실패에 따라 레알 유스에 있어서도 최후의 보루로서 수비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2004/05 시즌, 바르셀로나는 38 라운드 동안 총 331회의 슛을 허용했고, 이 중 골 문으로 향하는 유효 슛은 총 173회였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의 기록을 훨씬 상회하는 583회의 슛 및 348회의 유효 슛을 허용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583회 슛 허용은 세군다 리가로 강등된 누만시아(19위)와 알바세테(20위)의 기록을 넘어서는 놀라운 수치였다.
▲ 2004/05 시즌 라 리가 상위권 3 팀의 슛 허용 숫자 비교
1위 바르셀로나: 총 331회 슛 허용, 173회 유효 슛 허용, 실점 29
2위 레알 마드리드: 총 583회 슛 허용, 348회 유효 슛 허용, 실점 31
3위 비야레알: 총 421회 슛 허용, 229회 유효 슛 허용, 실점 37
▲ 2004/05 시즌 사모라 상 순위(출전 횟수-실점으로 집계)
1위 빅토르 발데스(바르셀로나): 35경기 출전, 25실점, -10.
2위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37경기 출전, 30실점[8], -7.
3위 레오 프랑코(아틀레티코): 37경기 출전, 32실점, -5.
무려 두 배에 가까운 슛 허용 숫자[9]에도 불구,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실점은 고작 2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러한 통계 자료는 해당 시즌 압도적인 수치로 최다 세이브 1위에 랭크되었음에도 불구, 사모라 상 부문에서는 2위에 머물러야 했던 '불운의 사나이' 이케르 카시야스가 위기 때마다 마드리드를 여러 차례 구해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카시야스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통계 자료도 있다. 우선 레알 마드리드가 38 라운드를 통틀어 가장 많은 슛을 허용했던 10경기를 손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세비야 원정 경기(25회), 아틀레티코 원정 경기(24회), 베티스 원정 경기(24회), 바르셀로나 홈 경기(24회), 베티스 홈 경기(23회), 사라고사 원정 경기(23회), 마요르카 원정 경기(21회), 오사수나 원정 경기(20회), 헤타페 원정 경기(20회), 레반테 원정 경기(18회).
레알 마드리드가 위 10경기 동안 허용한 슛 숫자는 무려 222회. 유효 슛 또한 무려 137회로 그야말로 '맹폭'을 당했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상대 팀 공격수들에게 폭격을 당하면서도 고작 8실점밖에 기록하지 않았고, 10전 8승 2무라는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렸다. 흔히 일류 골키퍼는 승점 10점 이상을 보장해 준다고 말하지만, 카시야스는 사실상 혼자만의 힘으로 마드리드에게 승점 26점을 선물한 셈이다.[10]
'성 이케르' 시절 카시야스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
당시 그는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기에 '기적의 사나이', '성 이케르'라는 별칭이 붙었다. 골키퍼로서는 불리한 체형이지만(181cm) 고양이과에 가까운 순발력으로 선방하는 게 특기. 특히 낮게 깔려오는 공을 발로, 그것도 연속으로 막아내는 카시야스 특유의 솜씨는 일품이었다. 다만 백 패스 처리가 미숙한 점과 부정확한 골 킥이 약점으로 지적되었지만 이 또한 곧 개선되었다. 또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을 통솔하는 카리스마가 실로 대단해서 수비진을 철통같이 운영하고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흔들리던 팀동료들을 격려하여 전세를 뒤집는 솜씨도 훌륭했다.
이렇듯 2003년부터 엄청난 선방과 리더로서의 역량을 과시한 카시야스였지만 정작 라 리가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사모라 상은 수여받지 못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최대 라이벌 바르셀로나의 수문장 빅토르 발데스가 여러번 사모라 상을 수상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2007-08 시즌부터 최전성기를 맞이하며 발데스를 밀어내고 스페인 라 리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 최강의 골키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2.3 최전성기
세계 No.1 골키퍼에 등극하다 [11]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나이
'레알은 싫어도 카시야스는 좋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두에게 호감을 샀던 시절
2007-08 시즌, 카시야스는 그야말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리그 36경기에서 겨우 32골만 허용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31번째 리그 우승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그 결과 그는 고대하던 사모라 상을 수여받았다. 레알 보드진은 그의 멋진 활약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2008년 2월 14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2017년까지였고 계약 마지막 시즌에 서른 경기 이상을 출장하면 자동으로 게약이 연장되며 바이아웃은 1억 1300만 유로에 달했다. 이후 2009년 2월, 카시야스는 이전 레알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파코 부요의 454경기 출장과 동률을 이루었고 27살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가장 많은 출장을 한 골키퍼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의 이러한 꾸준한 활약을 주목한 맨체스터 시티가 바이아웃이 설정된 금액을 상회하는 1억 2천 9백만 유로를 지불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레알은 그런 제의를 받은 바 없다고 일축했고 카시야스 또한 전혀 떠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2009년 10월 4일, 카시야스는 세비야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을 선보였다. 세비야 선수가 반대쪽에서 살짝 내어준 크로스가 카시야스를 지나 디에고 페로티에게 연결되었고 빈 골문에 슛을 하는 순간 카시야스가 막아낸 것이다. 그는 경기 후 다른 스페인 골키퍼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고든 뱅크스는 "카시야스의 반사 신경은 놀랍다. 그가 만약 계속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는 역사에 남을 골키퍼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후 2010년 레알의 영원할 것 같았던 주장 라울이 떠나자, 카시야스가 라울의 뒤를 이어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이 되었다. 그후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으로서 매경기에 출장했고 2012년 1월 22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600번째 출장 기록을 세웠다.
물론 매사가 마냥 좋게 돌아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9/10 시즌부터 폼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으며 발데스나 레이나, 디에고 로페스 등에게 국대 골키퍼 자리를 위협받았고 2010-11 시즌엔 엘 클라시코에서 5:0 대배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팔짱을 끼고 슬픈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한동안 너무 편했어...나는 누구 여긴 어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일부 팬들은 팀의 주장으로서 라이벌에게 크게 지고 있을 때 팀을 독려해야 할 주장이 하늘이나 보고 있다고 깠다.(...)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는 카시야스
하지만 곧 기세를 회복한 레알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하면서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4연전(리그 1경기, 코파 델레이 경기, 챔피언스리그 2경기)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라 리가에선 무승부를 거뒀고 코파 델 레이에선 1승을 거두며 18년만에 레알 마드리드가 코파 델 레이 우승에 성공했다. 이때 카시야스는 후반전 바르셀로나의 높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공격에서 보통은 골로 연결될 3, 4차례의 슛을 전부 선방하며 바르셀로나 팬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12]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코파 델 레이도 우승 못한 보통 골키퍼라고 깠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못하게 생겼다.[13] 참고로 결승전 전에 레알 마드리드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코파 델 레이를 꼭 우승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의지가 믿기지 않을 선방의 원동력이 된 듯싶다. 인터뷰. 다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대결은 바르셀로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2011/12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엘 클라시코에서 팀이 1:3으로 패배하며 엘 클라시코 최다 실점 골키퍼의 불명예를 떠안았다. 팬들은 불쌍해서 못 봐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그도 그럴 것이 메시 한 명한테만 20골이 훌쩍 넘게 먹었으니...저놈의 메시가 카시야스 잡네 현재 바르사의 실력을 감안하면 카시야스 정도나 되니까 저 정도만 하고 마는 거지 다른 골키퍼였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코파 델레이 세비야와의 원정경기에서 물병을 맞았다. 아무리 판정 시비가 있었다 해도 자국 최고의 국대 골키퍼한테 물병을...
이런 저런 시련을 겪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2011-12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카시야스는 개인 통산 5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이 당시 카시야스는 그야말로 언터쳐블한 축구선수였다. 골키퍼로서의 실력은 마누엘 노이어, 지안루이지 부폰를 넘어 사실상 세계 No.1 골리로 거론될 정도로 엄청났고 지상 최고의 인기 클럽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멘탈도 훌륭해 그야말로 깔래야 깔 수 없는 인물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싫어하는 사람도 카시야스는 좋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는 안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2012-13 시즌, 그의 위상은 급격하게 추락하고 만다.
2.4 몰락의 시작, 2012-13 시즌
2011-12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뒤이어 유로 2012에서 성공을 거두며 잘 나가던 카시야스에게 한 유명 축구인이 칭찬을 해줬다. 문제는 그 사람이 다름아닌 펠레였다는 것. 펠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시야스가 발롱도르를 수상할 자격이 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펠레의 저주란 것이 그냥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것이었고 당시 카시야스가 발롱도르 후보에 거론될 만큼 매우 잘 나가는 건 사실이었기에 이 발언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카시야스는 얄궃게도 펠레의 이 같은 발언 이후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고 말았다...
몰락의 징조는 프리메라리가 1라운드에서부터 시작됐다. 발렌시아와의 경기 중 세트 피스 상황에서 날아오는 프리 킥을 막으려고 밀집 지대로 달려나오는 중 페페와 정통으로 박치기를 시전하면서 실점을 허용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이후에 뭔가 조금씩 폼이 떨어지더니 16 라운드 들어서는 동안 클린 시트는 단 6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감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이에 따라 성적 역시 지난 시즌에 비해 곤두박질 치면서 빌라노바 체제로 개편 이후 극강의 포스를 내뿜는 바르사는 물론이고 팔카오를 필두로 한 지역 라이벌인 ATM에게마저 밀려 3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모로 최악의 전반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더해 언론이 무리뉴와 카시야스의 불화설과 루머를 계속 퍼뜨리면서 마드리드 흔들기를 지속했고 급기야 무리뉴는 카시야스 벤치행이라는 극약 처방을 단행했다.
문제는 카시야스를 밀어내고 대신 투입된 안토니오 아단이 기존에 카시야스의 존재감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서 그 역시 17 라운드 말라가전 3대 2 패배의 주역이 되었고, 이어진 18 라운드 레알 바야돌리드 전에서는 전반 8분만에 퇴장을 당하면서 카시야스 강제 복귀(...)를 앞당겨 결국 카시야스가 서브로서 피치 위로 올라오게 되는 희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날 카시야스는 프리에토 개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면서 여전히 불안감을 계속 노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날 이후 셀타 비고와의 코파 델 레이 16강 2차전을 비롯해 총 5경기 연속 클린 시트를 기록하면서 '역시 카시야신'이라는 클래스를 입증하며 서서히 본 궤도에 안착하나 싶었으나...
코파 델 레이 8강 2차전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전반 17분 흘러나온 볼을 처리하려는 와중 아르벨로아가 걷어차려는 킥에 손가락을 대신 차이면서 결국 다시 부상으로 벤치로 돌아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2~3주 부상이 예상됐으나 제대로 된 정밀 검사 결과 제 1 중수골(엄지손가락과 손목을 연결하는 뼈) 골절로 손가락이 완전히 나가 버리는 큰 부상임이 드러나면서 손가락 안에 뼈 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영구적인 나사 2개를 박는 큰 수술 끝에 최소 12주(3달) 결장이라는, 마드리드 팬으로서는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링크.
이로써 1월 31일 부터 이어지는 코파 델 레이 4강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부터 맨유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그리고 중간에 또 껴있는 리가 엘 클라시코 등 죽음의 5연전을 카시야스가 모두 결장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됨으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또다른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자 비야레알의 주전 골리였던 디에고 로페스를 겨울 영입 시장에서 급하게 영입해 오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으나 카시야스가 없는 마드리드의 골 문은 여전히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컨페더레이션스 컵 이탈리아전에서 다시금 수문장 자리를 꿰차 6차례의 유효 슛을 효과적으로 선방하며 MoM으로 선정되어 클래스를 인증했다. 이로써 디에고 로페스와의 다음 시즌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질 듯했다.
그리고 레알 베티스와의 리가 개막전에서 안첼로티는 로페스를 선발로 썼는데, 로페스가 준수한 활약으로 안정감을 보여주면서 카시야스에게 시련의 시즌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하지만 현지 팬들은 로페스가 나오자마자 엄청난 야유를 퍼부어대며 카시야스를 밀어낸 그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2경기 연속으로 로페스가 선발이고, 로페스에게 팬들의 야유가 더욱 심해지자 카시야스가 프로다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아르벨로아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인터뷰의 핵심은 언론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마치 무리뉴의 저번 시즌을 겨냥한 듯하다.
2.4.1 카시야스와 무리뉴, 그리고 디에고 로폐즈
이렇듯 2012-13 시즌 카시야스는 리그에서 부진하다 디에고 로페스 영입 이후 서브 골키퍼로 내려가자 당시 감독이던 무리뉴와 반목한다던 루머가 공공연히 나돌았으며[14] 그 당시에 자신의 부인에게 팀의 내부 사정을 발설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허나 이는 카시야스가 팀 내부 사정을 발설했다는 자체만으로 까여야 한다는 것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자신의 직장일을 부인에게 말했다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부인이 언론인 사라 카르보네로라는 것이다, 이 여인은 카시야스가 부상으로 빠져있는 상황에서 엘 클라시코 직전에 불화설이 사실이라는 듯한 뉘양스의 발언을 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때 카시야스 또한 여친 입 관리 못한다고 엄청나게 까였고 그 와중에 여친 사진에 좋아요 눌렀다가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카시야스의 팬들도 그의 대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또한 반 마드리드 성향을 지니고 있는 스페인의 엘 문도 데포르티보를 필두로 각종 언론은 현 카시야스와 무리뉴의 상황을 한없이 안좋은 쪽으로 몰고갔다. 실제로 카시야스와 무리뉴의 상황은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는 언론의 흔들기에 분노가 폭발한 카시야스를 필두로 한 마드리드 선수단은 성명서를 통해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어지는 허위 사실 유포시 전면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
한국 내 레알 마드리드 팬 사이트의 여론 역시 그에게 실망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데다 그의 이번 시즌 행실을 비난하는 게시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며 까임의 왕좌에까지 올라야 했다. 거기다 기사 댓글란에서는 스페인 출신의 짬밥을 이용해 감독의 권한을 넘보고 언론을 조종하는 데다 여친에게 팀의 내부 사정을 고자질했다며 거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선 이적하는 무리뉴 감독에게 자신과 그 사이엔 아무 악감정이 없다는 말을 했단 기사에도 그를 욕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을 정도니...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인 그를 옹호하는 현지 팬들과 기자들에 의해 무리뉴 감독 역시 피해를 입었으나, 또다른 당사자인 카시야스 역시 최대 피해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무리뉴 감독과 갈등을 맺은 선수는 호날두였다고 커밍 아웃하여, 관련도 없는 제 3자였는데 불화의 주범으로 배 터지게 욕 먹었다며 뒤늦게야 동정을 사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이 불화설의 진정한 피해자는 카시야스였다는 말까지 나오는 중.
불화설이나 벤치행에 대한 비난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은 마르카나 아스 등 스포츠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 라 리가 경기 중계 시간이 늦고 관심이 적은 점, 무리뉴 감독의 안티들이 카시야스의 역성을 드는 점 모두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라울도 성공하지 못했던 스페인 국가 대표 팀을 화합의 리더십으로 이끌었다는 사람이 왜 무리뉴하고만 불화를 일으킬까? 그리고 무리뉴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과 잘 지내는데 왜 카시야스하고만 사이가 나쁠까? 이 두 사람의 불화설은 결정적인 증거 없이는 하기 힘든 아주 파격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레알 마드리드도 전례 없이 마르카에게 법적인 조치 등 강경한 대응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헤타페전이 열린 1월 27일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는 마르카를 비난하는 팬들의 응원 문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무리뉴와 아단에게 베르나베우의 팬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헤타페전의 대상으로 당분간 마르카 측의 비난은 힘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 와중에 급하게 수혈해 왔던 디에고 로페스가 인생 선방을 보여주며 완벽하게 카시야스를 대체하여 카시야스는 부상에서 돌아오더라도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고되게 되었다. 여러모로 이번 시즌은 카시야스의 최악의 시즌인 듯.
그리고 마드리드를 떠나게 된 무리뉴 감독이 불화설에 대한 진실을 밝혔다.
카시야스와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오히려 트러블은 그와 애정어린 사제 지간이자 같은 포르투갈 출신이라 특히 더 친밀했다고 알려진 호날두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술적인 부분에서 아주 작은 문제라고 언급했기에 2012/13 시즌 내내 마드리드를 뒤흔들어 놓았던 카시야스 파동과는 비교 거리도 안된다(...)
어쨌거나 무리뉴와 카시야스 본인들은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는 등 감정없이 잘 헤어진 듯하지만, 이 불화설로 인해 마드리드 팬 내부에선 분열이 일어났고 카시야스 팬들과 무리뉴 감독, 호날두의 팬들은 여전히 사이가 나빠 불화설에 대한 갑론을박은 사태가 진화, 종료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카시야스가 인터뷰에서 벤치행을 겪고 팀 주전에서 밀려난 이 시기가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링크 팀에게 무엇이 최선인가란 생각을 하면서 울고, 밤엔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하니 엄청나게 힘들었던 듯...자신은 뼛속까지 마드리디스타이고 구단을 자기 자신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애정을 드러내었으나 골닷컴 등 사이트에 이 인터뷰가 올라온 뒤 로페스와 공평하게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며 해외 팬들에게마저 비난을 받고 아직도 한국 레알 마드리드 팬 사이트 내에서는 불화설에 대해 카시야스가 책임이 있냐 없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팬들 중 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은 여친 관리 잘 못한 건 까여도 할말 없다는 것.
그러나 디에고 로페즈에게 취한 카시야스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카시야스도, 무리뉴도 아닌 디에고 로페즈다. 그저 카시야스가 부진과 부상에 빠져서 레알이 그를 필요로 하기에 와서 잘해줬을 뿐인데 팬들은 감히 카시야스를 밀어냈다며 비난을 퍼붓질 않나, 분명 그가 카시야스보다 더 잘한 면이 많았는데 끝내 카시야스에게 밀려버리질 않나... 더구나 그는 로페즈에 대해 묘한 언플을 하며 팬들이 로페즈를 비난하는 것에 팀의 주장으로서 막지도 않고 방관 내지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계다가 2014년 여름 휴식기 도중 카시야스는 한 어느 팬이 올린 로페즈를 향한 자극적인 내용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또다시 논란을 야기시켰다. 이 글 내용을 요약하자면 "레알이 이 꼴이 난 건 디에고 로페즈 때문이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카시야스를 다치게 한 cono [15] (아르벨로아 비하 용어)때문이야." 라는 내용이다. 기사
이어서 카시야스의 아버지는 "로페즈? 걔 내 아들보다 못하잖아." 라는 인터뷰를 했다. (후에 카시야스 부모님은 아들이 포르투로 떠날때, 왜 내 아들보다 못하는 로페즈가 밀란에 있는데 내 아들은 포르투 같은 팀에 가야하냐며 로페즈와 포르투를 디스 했다.)
이에 곧바로 아르벨로아가 카시야스의 비난이 섞인 친무리뉴 성향의 레알 지역 매거진 트위터 글을 리트윗해서 논란이 되었는데 아르벨로아가 리트윗 한 것은 90p가 넘는 레알마드리드 관련 장문 기사가 실린 페이지였고, 이 기사의 표지는 카시야스가 빅이어를 들고있는 사진이었다. 실제로 아르벨로아는 논란이 불거지자 다 읽어보지 않아서 몰랐다, 오해를 일으켜서 캡틴 이케르와 레알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곧바로 카시야스와 레알 팬들에게 사과문을 올렸다.
또한 아르벨로아는 "레알의 골키퍼는 모두 동등하게 존중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카시야스를 존중하지만 로페즈도 아단도 존중받고 그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해." 라는 인터뷰를 했고 카시야스는 "아르벨로아 의견 존중해. 걔는 그런 생각 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주전으로 복귀한거야." 라며 누가 주장인가 싶을 발언을 한다. 무리뉴 사건[16] 으로 이미 큰 대립을 겪었고 그 로페즈와 아르벨로아가 레알 유스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이유도 있었을테고, (물론 그 외적인 이야기도 있을것이다) 여튼 국대와 클럽에서 수년을 보고 지낸 친구인 카시야스와 아르벨로아가 멀어진 것에 라울 알비올이 서글픔을 토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카시야스와 무리뉴 간의 불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카시야스가 일방적으로 무리뉴를 음해하려고 정치질을 했다고 보기엔 정황증거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다. 하지만 디에고 로페즈를 비난하는 여론을 말리긴 커녕 오히려 그 여론을 조장하는 언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의 가족(여친과 아버지)이 로페즈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고 팬이 로페즈를 공격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데도 이를 말리거나 로페즈를 지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결국 카시야스는 무리뉴에게 대놓고 대들거나 반기를 들지 않았더라도 무리뉴와 불화를 빛어 팀내 분위기를 해쳤고 부진하고 있는 그를 대신해 영입된 로페즈를 음해하는 일에 방관 내지 방조하는 치졸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는 명백히 주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며 훗날 그의 경력에 두고두고 오점이 될 부끄러운 행위였다.
2.5 클래스를 입증한 2013-14 시즌
그 후 2013년 9월 18일(한국 시간 기준) 갈라타사라이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경기에서 무려 '238일'만에 선발로 출장했다. 중요 대회인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주전 출장이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출전이라 할 수 있었다.[17] 비록 다음 경기도 주전 출전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폼을 끌어올려 다시 확고한 주전으로 입지를 잡길 바랬지만...
경기 시작 13분 만에 세르히오 라모스와 부딪혀서 갈비뼈 부상을 당하며 교체됐다.
다행히도 금방 부상에서 복귀해서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2차전부터 다시 출전하기 시작했고, 이후 각성이라도 했는지 디에고 로페스에 꿀리지 않을 만한 슈퍼 세이브들을 연발하면서 952분 무실점의 대기록을 작성하였다.[18][19][20] 때문에 안첼로티 감독도 골키퍼 주전 자리를 놓고 고민하게 될 정도이다. 또한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vs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만 가면 작아지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자동문이 되어 로이스 등을 골문앞까지 통과시킬때 혈혈 단신으로 슈퍼세이브 행진을 보여주어 레알마드리드를 챔피언스리그 4강에 간신히 안착시켰다. 경기 후 레알 마드리드 내 평점 1위는 덤.
일단은 안첼로티 감독은 골키퍼 이원화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신 카시야스를 리그에서 보기를 원하는 마드리드 팬들은 섭섭할 뿐이다 안첼로티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하면 폼을 유지시키기 위해 리그 경기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 결승 진출에 성공하면서 리그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로페스 지못미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는 전반전 치명적인 상황 판단 미스를 하며 선제골의 원인이 되어 역적이 될 위기에 몰렸으나, 경기 종료 2분 전 세르히오 라모스의 극적인 헤딩 동점 골로 간신히 살아났다. 카시야스 본인도 죽다 살아난 심정이었는지 후반전이 종료되자마자 라모스에게 격하게 뽀뽀를 했다. 결국 연장전에서 가레스 베일의 결승골,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카시야스는 또 정줄을 놓아 실점 위기를 자초하며 이 경기에서 대활약을 했던 디 마리아의 호통을 받았다 마르셀루, 호날두의 쐐기 골로 팀은 4-1로 우승하며 라 데시마를 달성하였고 동시에 본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무패 기록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보여준 어이없는 실점과 불안한 모습 때문에 로페스와의 비교는 또다시 불타오른 상황. 특히나 레알 마드리드의 오랜 숙원인 라 데시마를 결정짓는 경기에서 팀에 민폐만 끼치는 모습을 보였기에 더욱 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울은 카시야스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둠으로써, 카시야스는 성인 무대 데뷔 후 자신이 출전한 모든 결승전에서 패한 적이 없게 되었다.
2.6 성 이케르의 쓸쓸한 퇴장
2014년 이후 카시야스의 폼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젠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던 팬들도 경기 도중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부을 정도로 돌아설 정도로, 그의 부진은 심각했다.
26일에 있을 엘 클라시코 더비가 마지막 주전 기회일 수도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엘 클라시코 더비가 3-1로 끝이 났다. 전반 2분 만에 선제 골을 먹혀서 역시 카성룡이란 말이 나오는 듯 했으나 바르셀로나가 자멸하고 카시야스도 자신의 실력을 다시 보여주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어서 13경기에서 6실점만을 하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다시금 증명해내는 듯 보였으나... 2월 8일 ATM전에서 4실점으로 대패하면서 다시금 경기력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4실점도 문제인데 티아구 멘데스의 선제골은 궤도상 막을 만한 슛이 카시야스의 기름손을 스치고 들어간 골이다보니 논란이 되는 중. 거기에 카시야스가 인터뷰에서 선제골에 대해 "바란에 맞고 굴절되어 막기 어려웠다."라는 변명을 하여 또 다시 정치야스라는 조롱을 듣게 되었다. 물론 굴절이 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시야스의 팔쪽으로 향했기 때문에 충분히 막을만한 슛이었고 주장이 되서 그렇게 공식적인 인터뷰로 한참 어린 후배 기를 죽여야겠냐고 욕을 먹었다.
이후 챔스에서 성사된 2번의 마드리드더비에서 모두 클린시트를 기록하면서 반 데 사르의 UCL 최다 클린시트 기록을 경신했다.[21]
안첼로티가 선임되었을 때 "무리뉴보다는 안첼로티. 그는 선수 출신이라 선수를 잘 이해해." 라면서 은근한 무리뉴 디스 뉘앙스를 풍기더니 안첼로티가 해임되니까 "그가 감독일 때 경기에 많이 뛰고 싶었는데 나바스를 써서 그러지 못했다. 아쉬웠어." 라고 말하며 안첼로티와 나바스를 동시에 디스하는듯한 말을 했다. 이후 페레즈가 안첼로티 후임 감독으로 무리뉴 리턴을 계획한 게 밝혀지면서 당시 무리뉴가 "카시야스, 라모스, 호날두가 있는 한 나는 가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졌다. 이로써 무리뉴가 전에 언급한 '3마리의 검은양' 이 반무리뉴파로 밝혀진 대표 3인방이었다
후반기의 레알마드리드의 어그로 지분은 호날두와 베일이 모두 가져가서 카시야스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줄었고, 시즌이 끝난 현재 이적설이 매우 강력하게 뜨고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헤아를 영입해오겠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고 데헤아 본인도 재계약 소식이 없는 등 거의 이적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이다. 그에 따라 카시야스가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데헤아의 이적조건에 카시야스의 방출이 포함되어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카시야스는 레알을 떠나기로 결정했으며 FC 포르투로의 이적에 동의하면서 7월 10일 고별식을 치렀다. 마르카 기사
2.7 포르투 시절
2.7.1 15/16 시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카시야스는 데 헤아 영입설과 관련한 이러저러한 사정상 레알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차기 행선지로는 FC 포르투가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레알에서의 고액 주급은 포르투에겐 엄청난 부담인지라 연봉 보조를 놓고 양 구단의 신경전이 있었다. 결국 이를 해결했는지 떠나는 것은 확실시되었다.[22]
2015년 7월 12일 카시야스는 결국 25년의 세월을 함께하고 16년간 지켜왔던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FC 포르투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적 확정 오피셜이 뜬 직후 카시야스는 고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카시야스는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위해 운을 떼다 차마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이에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이 박수로 응하기도 하였다. 다만 구단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혼자 들어와 혼자 성명서 읽고 혼자 나갔다. 이에 대해 여론이 나빠지자 레알마드리드는 부랴부랴 다음날인 월요일 베르나베우에서 페레즈 회장을 동반하여 2차로 고별식을 열었다. 평일 낮 시간이라서 참석한 팬은 2천명 정도.
이하는 기자회견 전문.
제일 먼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구장에서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도와주신 여러분과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게 감사를 보내고 싶습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제 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걸 멈추기로 했습니다. 저는 포르투로 이적합니다.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포르투가 청사진을 제시해준 것이며 두 번째 이유는 지난 며칠간 포르투가 저를 향해 보여준 노력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포르투가 보여준 흥미에 저는 모든 트로피를 따내는 것을 목표로 보답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마드리디스타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절 키워준 구단을 향해 작별인사를 건네는 힘겨운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첫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저는 모든 꿈을 이룬 남자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사랑과 지원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는 저를 축구 선수뿐 아니라 한명의 인간으로서도 성장시켜준 곳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레알 마드리드의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다음으로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오늘에서야 얼굴을 트게 된 동료들일지라도요. 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귀한 순간들을 경험해왔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두고 떠납니다. 언제나 그대들을 믿고 있겠습니다.
또한 그간 함께했던 감독들도 생각납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기에 어떤 감독일지라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코칭스태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게 조언을 주시고 어려운 시간을 이해시켜주시던 분들이니까요. 물론 함께 즐거워하던 여러분도, 구단의 모든 직원들도,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있도록 하루라도 도와주신 여러분도입니다. 여기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해주시는 분들이에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기랑 아기 엄마도 함께 저와 영원히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무조건의 지원을 받았던 것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5년간은 주장으로도 활동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어요. 제가 잘하던 선수로 기억되든지 못하던 선수로 기억되든지 보다는 그저 좋은 남자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영원히 고맙습니다. 죽어도 잊지 못할 겁니다. 그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HALA MADRID’에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작별을 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끝이자 시작이니까요. 우린 언젠간 다시 함께하게 될 겁니다.
포르투로 이적함에 따라 라이벌 SL 벤피카에서 뛰고 있는 줄리오 세자르와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15/2016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2차전 vs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선방 2차례를 기록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세 무리뉴의 고개숙인 모습과 대조되는 포효가 인상깊다.
이후 11월 13일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사상 최초로 A매치 100경기 무실점 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또 국가대표팀에서 빠지지만 않는다면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인 아메드 하산[23] 의 A매치 184경기 출전 기록까지 깰 수있게 된다. [24]
포르투에서 뛰는 현재 15 -16 시즌 카시야스는 정규리그 32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내줬다 [1] 문제는 이 기록이 포르투의 지난 15년중에서의 최악의 기록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작년 포르투의 벽인 산드로와 다닐루가 이적한 것을 이유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포르투의 실점 순위는 3위이다. 따라서 준수한 활약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포르투 단장은 카시야스의 영입을 재앙이라 표현했고, 카시야스를 미국으로 방출하는것이 포르투 역사상 최고의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굴욕적인 말도 들었다 [2]
그러나 포르투 회장은 이 발언을 절대로 하지않았으며 재계약을 제안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언론은 미러가 아닌 신빙성이 높은 스카이스포츠이다.[3]
이적 초는 레알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는데 최근 레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SNS에 레알 승리 글을 올린다든지 케일러 나바스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레알에게 행운이 깃들어 리그 우승을 거머쥐길 바라고 챔스에서는 바이언과 레알의 우승 경쟁을 예상하지만 " 아틀레티코랑 하는 것도 좋아. 재경기네? 승자도 라데시마때랑 같길 바란다." 고 말했다.
아르벨로아에 대해서도 드디어 입을 열었는데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때 싸움을 하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 오래 봐왔고 크게 싸워봤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긴 할 것이다.
여담으로 피케가 "챔스 우승 어디가 할 거 같아?" 라는 말에 "일단 넌 나랑 포테이토칩 먹으면서 결승전 보고 있을걸." 라고 대답했고 바르셀로나는 탈락했다. 신 들린 카신
최근엔 아르벨로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모든 선수들에게 축하받을 만하면서 모든 레전드가 이런 고별식을 펼쳐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르벨로아는 레알 마드리드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이며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인생에 최고의 일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2.7.2 16/17 시즌
AS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2차 전에서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도왔다. 1차 전에서 살라의 연속된 두 번의 슈팅을 모두 막고 선방에 이은 리바운드된 공을 나잉골란의 재차 슛까지 막는 3단 선방을 보였다. 2차전에서도 전반 초반 나잉골란의 강력한 중거리슛을 선방하고, 제코의 패스에 이은 살라의 문전 앞 노마크 상태에서 결정적인 슛을 슈퍼세이브했다.
2.8 국가대표 경력
2.8.1 2004년 이전
카시야스는 1997 FIFA U-17 월드컵에 차출되면서 국가대표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스페인 U-17 축구 대표팀은 이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했는데, 그는 이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그후 카시야스는 후에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다. 2년 후 그는 같은 해에 FIFA 세계 유소년 챔피언십과 UEFA-CAF 자오선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처음에는 후보였지만, 그는 클럽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어 곧 주전으로 도약했다.
카시야스는 2000년 6월 3일 19세 14일의 나이로 스웨덴과의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다. 하지만 유로 2000에는 스쿼드에 뽑히지 못했다. 리고 2002년 월드컵 명단에 등록되었다. 처음에는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의 후보로 뽑혔지만, 카니살레스가 어처구니 없는 부상[25]을 당하면서 졸지에 그가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그는 16강 아일랜드 전에서 패널티킥과 승부차기를 막아내며 스페인의 8강 진출을 이끌어내는 영웅으로 등극했다. 8강전에서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지만 승부차기에서 패배의 쓴맛을 맛보았다.
2.8.2 유로 2004, 그리고 2006 월드컵
이후 카시야스는 스페인 국대에서 페널티 킥, 공중 볼그리고 예능에 강점을 가진 리버풀의 골키퍼 페페 레이나나 비야레알의 디에고 로페스, 플라잉 니킥과 1:1 상황에서는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며 발을 이용한 빌드 업에도 혹은 상대 선수에게 패스함으로써 경기를 뒤집는 크랙적인 능력에도 능한 바르셀로나의 빅토르 발데스, 10년 동안 후보였다가 이적해서 주전 되더니 사모라 상 덜컥 받아 버린 팔롭, 알무니아 등 우수한 골키퍼들을 밀어내고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카시야스는 유로 2004 예선에서 단지 네 골을 내주며 전 경기를 소화하였다. 그는 노르웨이을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오슬로에서 3 대 0으로 승리하며 클린 싯을 기록했다. 또한 2006 월드컵에서도 주전 선수로 활동했으나 16강전에서 프랑스에게 3:1로 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8.3 유로 2008
2008년 유로컵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
2008년 라울 곤잘레스가 유로 2008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카시야스는 라울을 대신해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그는 유로 2008 D 그룹에서 러시아와 스웨덴과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그리스 전에서는 호세 마누엘 레이나에게 자리를 넘기며 휴식을 취하였다.
카시야스는 이탈리아와의 8강에서 혈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부폰을 상대로 벌인 승부차기 대결에서 안토니오 디 나탈레와 다니엘레 데 로시의 패널티킥을 막아내며 4:2의 스코어로 스페인이 4강에 진출하였다.
카시야스는 조별예선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골을 내준 이후 8강, 4강, 결승까지 클린 싯을 기록하였다. 2008년 6월 29일, 카시야스는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대표팀의 1 대 0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서 그는 유럽 선수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최초의 골키퍼 주장이 되었다.
2.8.4 2010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이 확정된 직후 가장 먼저 기쁨의 포옹을 나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두 주장.
2010년 월드컵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
2010 월드컵은 카시야스의 선수 경력 사상 최고의 대회였다. 사실 카시야스는 2009-10 시즌 때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그러나 그는 이 월드컵에서 동물적인 감각을 선보이며 스페인의 승승장구를 이끌어냈다. 월드컵 8강전에서 파라과이의 패널티킥을 막아내어 4강 진출의 영웅이 되기도 했고 결승전에서는 네덜란드의 스타 플레이어 아르연 로번과의 일대일 상황을 두 번이나 막아내며 스페인의 FIFA 월드컵 우승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카시야스는 전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야신상'을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여담으로 결승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리포터인 자신의 애인 사라 카르보네로에게 기습 키스를 했다. 팀은 우승에다가 페어 플레이 상, 자신은 야신 상을 탔기에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그랬다고 한다.
2.8.5 유로 2012
유로 2012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
카시야스는 유로 2012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여지없는 모습으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8강 진출을 놓고 조별 예선 당시 마지막 3차전 크로아티아 전에서 패배할 경우에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 스페인이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 크로아티아가 초반에 매서운 맹공으로 스페인을 몰아쳤고 루카 모드리치의 크로스를 받은 라키티치가 수비수를 따돌리고 그대로 헤딩으로 골 문에 꽂아넣는 슛을 시도했지만 카시야스가 말도 안되는 반응 속도로 쳐 내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 내었다. 이후 헤수스 나바스의 골로 스페인은 8강에 진출했고 당시 라키티치는 인터뷰에서 스페인 최고의 선수로 단연 카시야스를 꼽았다.
<스페인의 크랙은 카시야스>
기존에 세계 넘버 1 골키퍼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이탈리아의 부폰과의 대결도 흥미로웠던 부분인데, 이미 앞선 수상 경력에서 보듯이 이미 부폰과는 역대로 봐도 동급,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보는 이들도 많지만 국내를 비롯해서 아직까지는 부폰과의 비교에서 카시야스의 열세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로 2008을 포함해서 이번에도 이탈리아와의 연이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현존 세계 원탑 골리로써의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한편, 이미 부폰과는 동등하게 역대 최고 골키퍼의 반열에 올랐음을 여실히 입증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리가 확실해진 4:0 상황, 크게 뒤진 데다가 부상 불운으로 인해 수적 열세까지 겹쳐 사실상 저항이 불가능해진 상대 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심판에게 인저리 타임 3분을 적용하지 않고 게임을 끝낼 것을 요청하는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줘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얘네들은 그런 자비조차 없었지
심판! 심판!상대 팀을 존중하십시오.
이탈리아를 존중하십시오.
4-0 아닙니까?
이때만 해도 카시야스는 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서의 압도적인 실력과 포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멘탈까지 겸비한 완전체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이런 대단한 선수가 몇년 후 급격하게 추락할 줄은...
2.8.6 2014 월드컵
청개구리 카시야스
노인을 공경하며 절하는 참된 젊은이의 자세
6월 14일자 경기인 지난 결승전의 리턴 매치인 네덜란드전에서 5-1 참패를 당한다. 디에고 코스타가 얻어낸 사비 알론소의 페널티 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스페인은 결국 전반 44분 로빈 반 페르시의 헤딩 골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반 네덜란드의 맹공에 제대로 멘붕이 찾아온 카시야스는 연속 골을 허용하기 시작하는데, 세 번째 골에서 공중 볼 위치 선정 실수를 드러내더니, 영 좋지 않은 퍼스트 터치로 판 페르시에게 네 번째 골을 헌납하는 추태마저 부리고 만다. 결국 아르옌 로벤에게 제껴지면서 네 발로 기어다니는 굴욕을 선보이며 대참사의 정점을 찍고 만다. 경기 시작 전 그는 월드컵 433분 무실점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경기만 무실점으로 마쳤으면 1990년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키퍼였던 왈테르 젠가의 517분 무실점 최고 기록을 깰 수 있었을 것이다. 지못미 카시야스. 물론 뒷공간을 아낌없이 내주고 휙휙 제껴지는 수비진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카시야스 본인의 퍼포먼스도 너무도 좋지 않아 다음 경기 주전 보장조차 힘들어졌다고 여기는 시청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네 번째 골인 반 페르시의 골에서는 어이없는 곳에 다이빙하고 일어나서 같은 짓을 반복하며 로벤의 슛 때는 일어나지 못해 기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너무 어이가 없어 다시 반복). 욕 두 번 먹는 우리 주장님 폭풍처럼 털린 후 카시야스에게 붙은 별명은 다름 아닌 카성룡... 더불어 오렌지 군단의 5대 1 대승을 예측한 한국의 한 시민의 선견지명이 주목받게 되었다.
본인도 충격이 컸는지 이튿날 훈련장에서도 마음 고생이 심한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감독과 동료들
이후 다음 경기인 칠레전에도 출전하였지만 네덜란드전과 별 다른 폼 차이 없이 2실점을 하며 스페인의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는 스페인 국가 대표 주전 자리도 위태위태해진 상황. 호주와의 최종전엔 페페 레이나가 그 대신 출전하여 클린 시트를 기록했다. 다행히 스페인 국내 여론이 지난 몇 년간 할 만큼 해 준 대표팀에 대해 크게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아서 공항에서 엿을 뒤집어쓴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진 않았다. 아무튼 이 대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고 있는 골키퍼들의 미친 듯한 활약과 맞물려 카시야스는 그가 얼마나 처참한 부진을 겪고있는지 온 몸으로 웅변하며 브라질을 떠나야 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부폰과 팀 하워드가 맹활약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안습. 물론 골키퍼만 잘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기에 팀 하워드는 16강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도 짐을 싸야 했고, 부폰이 속한 이탈리아는 결국 조별 탈락을 했다.
국대 주전만 위태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소속팀에선 카시야스가 하락세임을 확신하고 아예 그를 바겐세일할 것이라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물론 오피셜은 아니지만, 현지에선 레알이 코스타리카의 8강 신화를 이끈 레반테의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와 강력히 연결되는 등 예사로이 넘길 분위기는 아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한 경기 최다 실점의 불명예를 안고 브라질 월드컵을 마감하는 듯했으나, 브라질이 7-1로 말 그대로 탈탈 털리면서 치욕적인 기록은 줄리우 세자르가 가져가게 되었다.정성룡:다행이다
2.8.7 유로 2016
2015년 10월 9일에 열린 슬로바키아와의 유로컵 예선 경기에서 스페인이 2-1로 패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선제골을 먹히는 상황에서 카시야스의 결정적인 실수가 패인으로 작용했는데, 유라이 쿠크카가 찬 슈팅이 정면으로 날아왔는데 카시야스는 이 상황에서 갑자기 몸을 오른쪽으로 날렸다(......). 이에 델 보스케 감독은 "자세히는 못 봤지만 볼이 이상하게 휘는 바람에 그가 속은 것"이라며 그를 두둔했다.
다만 이는 수비벽이 카시야스의 시야를 가렸으며, 슈팅이 휘면서 카시야스의 시야에 들어올 무렵에는 이미 완전히 반대로 꺾였기 때문에 카시야스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후스코어드에서는 카시야스에게 5.3점을 주며 워스트를 주었다. 참고로 MOM으로 선정된 쿠크카가 위에서 카시야스를 낚아 득점에 성공한 그 선수다. 다만 이거 후스코어드평점이다. 후스코어드는 축구계에서 위닝 평점급(...)위상으로 그다지 의미를 부여할만한 평점은 아니라는 것은 축구에 오래 관심을 가졌다면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13일에 열렸던 룩셈부르크와의 유로컵 경기에서 데 헤아에게 밀려 벤치 신세가 되었다. 데 헤아가 아직 A매치를 3경기밖에 안뛰어서 딱 잡아 평가 할 순 없지만 이 경기에서 준수한 활약을 선보인걸로 보아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피할 순 없을듯 하다.
이로써, 2000년도의 최고의 골키퍼들중 지안루이지 부폰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유망주들에게 점점 밀려가는 모양새다...
그후 2015-16 시즌이 끝난 뒤 치러진 유로 2016에서는 다비드 데 헤아에게 주전 골리 자리를 내주며 벤치를 지켰다. 그동안 이케르 카시야스가 지키던 스페인의 골리 자리가 세대교체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16강에서 이탈리아에게 0-2로 패배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델 보스케 감독의 마지막 대회였던 유로 탈락 후 카시야스가 sns에 자신의 트위터에 람보2 의 마지막 장면을 올리며 은퇴를 암시하는듯 했지만 나중에 스페인 메체 아스는 " 카시야스는 대표팀 은퇴 계획을 가지고 있지않다" 고 전했다.
델 보스케감독은 카데나세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에게 은퇴메세지를 보냈지만 카시야스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4]
주전 골키퍼자리를 데헤아에게 준 코칭스탭과 감독의 결정에 불만을 가졌고, 그래서 스탭과의 관계가 그저 그랬기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경기한 카시야스에게 감사한다고도 말했다.
국내외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지않은 편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실수, 소속팀에서 좋지 않은 폼을 보여줄때도 한결같이 카시야스를 대표팀에 기용하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지지를 보냈던 델 보스케였기 때문에 어떻게 카시야스가 델 보스케에게 그럴수 있냐는 것. 심지어 무리뉴가 옳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관련하여 스페인 언론 엘 문도에서는 '골키퍼 코치가 카시야스에게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몸상태를 물었고, 이를 선발출장으로 받아들였다. 경기 시작 5시간전 라디오에 카시야스가 선발로 나온다고 보도되었다. 코칭스탭들은 이걸 카시야스가 유출했다고 믿고 있으며 배신으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5]
2016년 7월 4일 카시야스의 트위터에 델보스케 감독의 은퇴 축하 트윗이 올라왔다. 그리고 델보스케와의 화해 소식도 들려왔다.
[6]
후에 델 보스케는 인터뷰에서 카시야스와의 의견 대립이 아버지와 아들 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같은 것이었다고 밝혔으며, 이를 언론에 말했던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카시야스는 그가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설명을 미리 해 주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델 보스케는 선발 라인업 결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대립이 일어난 모양.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화해했다고 한다.
[7]
이후 골닷컴에서 이니에스타가 델 보스케와 카시야스의 충돌에 대해 굉장히 놀랐다고 인터뷰를 했다.
[8]
3 수상
- 클럽
- 레알 마드리드 C.F
- 프리메라 리가 :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 코파 델 레이 : 2010/11, 2013/14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 2001, 2003, 2008, 2012
- UEFA 챔피언스 리그 : 1999/2000, 2001/02, 2013/2014
- UEFA 슈퍼 컵 : 2002, 2014
- FIFA 클럽 월드컵 : 2014
- 인터컨티넨탈 컵 : 2002
- 레알 마드리드 C.F
- 국가 대표
- 개인 수상 경력
- 2000 브라보 상
- 2000 돈 발롱 선정 라 리가 올해의 선수
- 2007/08 사모라 상
- 2007/08 ESM 선정 베스트 11
-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UEFA 선정 올해의 베스트 11[26]
- 2008, 2009, 2010, 2011, 2012 FIFA 선정 올해의 베스트 11[27]
- 2008, 2009, 2010, 2011, 2012 IFFHS 선정 올해의 베스트 11
- 2009/10 스포츠 메리트 선정 로열 오더 금메달
- 2009, 2012 LFP 선정 올해의 베스트 골키퍼
- 2008, 2012 유로 베스트 팀 11
-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야신상
-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베스트 11
4 카시야스에 대한 말말말
"모두가 패했다고 느꼈을 때 카시야스가 나타나 당신을 구원할 겁니다." - 사비 에르난데스
"카시야스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31살인데 모든 것을 다 이뤘다. 그는 17~18세부터 레알 1군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것이 카시야스에 대한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 에드 윈 반 데 사르
"카시야스는 공격수가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알고 움직이는 골키퍼입니다." - 슬라벤 빌리치
"카시야스는 자신의 신속함과 집요함으로 상황을 잘 타개할 줄 알고 있다. 카시야스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 호세 프란시스코 몰리나
"스페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으려고 하는 수많은 쟁쟁한 골키퍼들 속에서도 카시야스는 꾸준히 군계일학의 활약을 보인다." - 수비사레타
"카시야스를 넘어 골을 넣으려면 최고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 - 호세 레이나
"카시야스의 반사신경은 믿을 수 없다." - 고든 뱅크스
"그는 어떤상황에서든 침착하게 경기를 하는 훌륭한 골키퍼다." - 앙헬 이리바르
5 기타
여자친구인 TV 리포터 사라 카르보네로[28] 가 호날두보다 메시가 낫다느니, 호날두가 자신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다니 등등 레알 마드리드 팬이라면 부아가 치밀듯한 소리를 자꾸 해댔고 무리뉴와 레알 선수들 사이가 안좋다고 대놓고 방송에서 언급했는데 카시야스는 그녀가 언론인이기 때문에 할 말을 하는 것 뿐이라고 변호하기 바빠서 그냥 넌씨눈 취급받았다. 사라는 아틀레티코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팬으로 알려져있다. 덧붙여 카시야스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바르셀로나의 팬이다.
스페인의 미존개오. 그의 소울이 담긴 듯한 가방을 보자.
마드리드 사니까 미존마오 아닌가
사진의 공통점을 찾아 보자
과연 패션 테러리스트 호날두가 있는 팀의 주장이로다 이제는 주장 아니다
한국과의 인연으로는 2002년 월드컵 8강에서 스페인 국대의 골키퍼로 나온적이 있다. 그때는 승부차기 끝에 이운재가 호아킨의 킥을 막아내며 카시야스에게 패배를 안긴 바 있다. 카시야스 자신도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이운재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경기에 나온다면 인사하겠다고 하였다..
- 2016년 6월 1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한국과의 친선경기에서 골키퍼로 선발출장했다.
이외에도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국가 대표 팀의 주장이자 No. 1인,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과의 라이벌 플래그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존경한다는 인터뷰를 보였고, 그 후 경기장에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팬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링크 깨알 같은 긱스와 존 테리 언급 새하얀 그분
2014년 1월3일,아들 마르틴 카시야스 카르보네로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기본적으로 얼굴이 되어서 그런지 정말 잘생겼다. 여담으로 사라의 풀네임이 사라 카르보네로 아르벨로, 사라의 성 위치가 좀만 바뀌었으면 아들에게 카시야스와 오랜 냉전을 겪은 그분 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들어갈 뻔...
링크
-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자, 유럽 선수 역대 최다 출전자, 현역 선수 역대 최다 출전자(2016년 현재 계속 경신중)
- ↑ 2010년 월드컵부터 상명이 야신상에서 골든글러브로 바뀜
- ↑ 카시야스+신이란 뜻도 있다. 중의적 의미.
- ↑ 월드컵 우승 1회, 챔스리그 우승 3회, 유로 우승 2회, 골든 글러브 (야신상), UEFA 올해의 팀 6연속 선정, FIFA/FIFPro 월드베스트 5연속 선정, 발롱도르 4위가 그의 대표적인 업적
- ↑ UEFA 올해의 팀과 FIFA/FIFPro 월드베스트의 경우 카시야스가 최다선정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 그의 대표적인 라이벌이나 경쟁자로 꼽히는 잔루이지 부폰은 챔스 우승과 유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페트르 체흐는 월드컵 우승과 유로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은퇴한 올리버 칸은 월드컵을 차지하는데 실패했고, 에드윈 반 데 사르는 월드컵과 유로 우승에 실패했다. 최근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마누엘 노이어의 경우 역시 커리어에서 들만한 컵은 다 들었지만 아직 앙리 들로네컵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커리어적인 면에서 만큼은 카시야스가 자신과 동시대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뛰고있는 수많은 골키퍼들에 비해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 ↑ 주제 무리뉴가 감독이었으며 포르투는 이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 ↑ 이게 얼마나 엄청난지 알기 쉽게 2014/2015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인 데 헤아와 비교해주자면 데헤아는 2014/2015시즌에 37경기에 출장해 36실점을 기록했다.
- ↑ 유효 슛은 두 배를 넘는다.
- ↑ 많은 사람들이 '마드리드 더비'에서 카시야스를 상대로 득점할 수 없었던 토레스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 ↑ 부폰은 부상으로 주춤한 상태였고, 데헤아는 아직 기량이 올라오지 않았으며 노이어도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전이어서 이 당시 최고의 골키퍼에 카시야스라는 대답은 별 이견이 없었다. 실제로도 전성기시절 월드베스트 골키퍼자리는 5년간 카시야스의 차지였다.
- ↑ 특히 페드로의 완벽한 로빙 슛을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막아낸 장면이 백미였다.
- ↑ 리가, 챔스, 유로,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를 전부 우승한 카시야스에게 있어 깔 것이라곤 코파 델 레이밖에 없었다. 물론 마드리드 팬들의 자학 개그.
- ↑ 다만 무리뉴의 첼시 이적 이후에는 무리뉴와 반목하던 사이는 카시야스가 아니라 호날두였디는 루머도 나돌았다.
- ↑ 스페인어로 원통, 원뿔, 주차장에 세워놓는 원뿔모양 통을 뜻한다. 나이를 먹어 기력이 떨어진 아르벨로아의 수비가 주차장 원뿔급이라고 안티들이 비하할 때 쓰는 용어. 최근 피케가 언급하면서 또 논란이 되었다.
- ↑ 카시야스가 포르투 이적 후 "무리뉴 부임 당시 우리는 큰 대립이 있었고 그 때문에 선수들이 분열했다."고 말했고 아르벨로아도 "부상이 우리가 서먹해진 이유는 아니야..." 라고 넌지시 말한 거 보면 둘이 절교한 것에 가장 큰 이유가 이 사건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인듯.
- ↑ 이는 안첼로티 감독의 골키퍼 이원화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리가는 로페스가 출전하고 챔스는 카시야스가 출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출장이 가능한 것이었다.
- ↑ 이는 카시야스가 주전 골키퍼였을 당시에 세웠던 기록인 520분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 ↑ 이 기록 경신이 멈춘 샬케 04 원정 경기에서도 단 1실점뿐이었다. 그것도 여러 차례 골이나 다름없는 위기를 맞으면서. 그리고 이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샬케를 6:1로 도륙냈다.
- ↑ 여담으로 이 기록은 코파 델 레이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세운 무실점 기록이다. 만약 엘 클라시코가 성사된 코파 델 레이 결승전도 무실점으로 지켜낸다면 코파 델 레이 역사상 최초의 전 경기 무실점 키퍼가 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1실점을 허용해서 실패. 그래도 역대 최소 실점이긴 하다.
- ↑ 반 데 사르의 클린시트 횟수는 51회이며 카시야스는 최근 52회로 반 데 사르를 제치고 UCL 최다 클린시트 1위에 올라섰다.
- ↑ 17M의 연봉 중 일부 삭감을 카시야스가 받아들이고, 나머지 연봉을 절반 씩 양팀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 6~7M 선.
- ↑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설적인 선수이다.
- ↑ 카시야스가 유로 2016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의사를 밝히면서 그의 A매치 출전 기록은 167경기에서 그칠 것으로 보인다.
- ↑ 목욕하던 도중에 향수병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병이 깨져 사방에 파편이 날렸는데, 그 파편에 찔려 부상당했다고 한다.(...)
- ↑ 6회로 역대 최다. 공동 2위는 3회 선정된 부폰과 노이어
- ↑ 5회로 역대 최다. 2위는 3회 선정된 노이어
- ↑ 현재는 부인. 보통 왁스들이 여신으로 추앙되는데 반해 가뜩이나 언론인인데다가 레알에 관해 안좋은 이야기만 해서 역대급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카시야스의 이 전 여친 에바의 이미지가 무척 좋았고, 우연의 일치인지 신기하게도 카시야스가 사라와 만난 이후 실력, 멘탈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한 몫 한 듯하다.
- ↑ 친구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