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슈타펠

(나치 친위대에서 넘어옴)
Schutzstaffel
ϟϟ
200px-Schutzstaffel_Abzeichen.svg.png
엠블렘
SS-symbol2.png
토텐코프 엠블렘(장교)

1 개요

무장친위대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SS Marschiert in Feindesland und singt ein Teufelslied.
Ein Schütze steht am Wolgastrand und leise summt er mit,
Wir pfeifen auf unten und oben und uns kann die ganze Welt.
Verfluchen dder auch loben grad wie es jedem gefallt.
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하고 악마의 노래를 부른다.
한 소총수가 볼가 강가에서 나직이 흥얼거린다.
우리는 누구든 신경쓰지 않고
온 세상은 그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를 저주하거나 찬양할 수 있다.
Wo wir sind da geht's immer vorwärts,
und der Teufel, der lacht nur dazu.
Ha, ha, ha, ha, ha, ha.
Wir kämpfen für Deutschland,
Wir kämpfen für Hitler.
Der rote kommt niemals zur Ruh.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전진뿐이고,
악마는 이를 보고 웃기만 한다.
하, 하, 하, 하, 하, 하.
우리는 독일을 위해 싸우고,
우리는 히틀러를 위해 싸운다.
빨갱이들은 결코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 무장친위대(Waffen-SS)의 군가 《친위대는 적지에서 행군한다[1]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말하기도 두렵습니다. 그들이 뭘 위해 죽은 겁니까? 가령 영국군은 "우린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싸웠어. 독재와 맞서 싸웠다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대체 뭘 위해 싸운 겁니까? 그들에게는 무거운 죄의식이 가득했습니다. 이 대재앙을 부른 죄책감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위르겐 기르겐존, SS 비킹 사단 참전자

나치 독일에 존재했던 아돌프 히틀러사병집단이자 무장친위대. 독일의 흑역사. 본래 명칭은 슈츠슈타펠(Schutzstaffel)이며 보통은 약자 SS로 표기하고 SS로 부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슈츠슈타펠의 심볼은 룬 문자 ᛋ(시겔, 로마자 S와 동일한 발음)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로 다른 것을 SS라고 칭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매우 껄끄러워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 때문에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패니(Swallow Sidecar Company)는 2차대전이 끝나고 지금의 재규어로 사명을 바꾸었다. 또한 서양에선 S를 곡선이 아닌 SS 마크(룬 문자 시겔)처럼 각지게 표기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S는 꼭 곡선으로 표기해야만 한다. 한국에 과거에 존재했던 기업집단인 쌍용그룹의 로고가 SS마크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로고 교체를 검토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나치라는 단어에서 보통 사람들이 바로 연상하게 되는 검은 제복과 하켄크로이츠 등의 빨간 완장 찬 패거리가 바로 이들이다. SS 대원들의 정복. 참고로 무장친위대는 위장복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전투집단이다.

흔히 SS가 나치의 영향을 많이 받고 국방군은 나치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슈츠슈타펠이나 베어마흐트나 저지른 만행은 사실상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국방군은 '군대'고 SS는 나치당 예하 사병조직[2]이므로 국방군에 비해 잔혹행위가 부각된 것. 독일 국방군 항목을 참조하며 읽자.

2 창설 및 확장

SS는 그대로 번역하면 '경호대'라는 뜻이며, 원래는 아돌프 히틀러 개인의 신변 경호 및 총통관저 경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원래 SS는 돌격대(SA)의 하부조직으로 290명이라는 소규모였으며 계급 체계도 돌격대의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하인리히 힘러가 SS를 맡으면서 별개의 집단처럼 운용되기 시작하였다.

집권 후 히틀러는 집권에 큰 공을 세운 SA를 쓸모 없어진 사냥개 취급하여 토사구팽해버린다. 그 이유는 돌격대 대장인 에른스트 룀이 공공연히 '내가 없었으면 히틀러도 없었다'라며 떠들고 다닌 데다가, 규모가 너무 비대하여[3] 히틀러에게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SA는 제2의 혁명을 일으켜 귀족-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기를 원하는 반자본주의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이 때문에 히틀러를 지지한 보수층은 히틀러가 SA를 빨리 해체할 것을 원했다.

게다가 에른스트 룀은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 취급하는 독일 국방군을 SA에 흡수시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국민의 군대라는 의미에서의 인민군을 창설하려고 했다. 그전의 군대는 군의 고위층이 너무 구 프로이센 귀족층에 의해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군의 쿠데타 위협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독일군 지도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프로이센의 높으신 귀족 나으리들로 구성된 국방군 참모부는 바이에른 촌뜨기 위관 출신인 데다 동성애자 빨갱이인 룀이 국방장관이 되는 것도, 돌격대 지도부가 자신들과 동급이 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원수는 돌격대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정부를 비토하겠다고 경고하였다.

한편 군이 정부 위에 존재하던 독일의 특성상 나치의 군사력을 담당하던 룀의 추종세력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돌격대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히틀러가 룀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 역으로 제거될 가능성이 존재하였다. 히틀러는 있을지도 모르는 SA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수층과 군부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SA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결국 히틀러는 룀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힘러와 하이드리히에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병 출신이자 폭력배였던 요제프 디트리히에게 SS를 이끌고 가서 해치울 것을 명령한다. 장검의 밤으로 룀과 그를 따르는 세력이 전멸하면서 SA는 급속히 세력이 줄어들기 시작하고(그 뒤에도 일개 경호집단으로 존재는 했지만), 대신 SS의 세력이 급격히 커져 1933년부터는 경찰권까지 접수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종전시까지 모든 독일의 경찰 공무원들은 자신의 경찰 계급과 동급의 SS 계급을 함께 부여받았다. 다만 이들은 실제로는 SS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후에도 전범 처리는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SS 장관 하인리히 힘러는 히틀러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며 우상숭배를 하듯 받들어 모셨고, 게다가 나치당 초기에는 사무에 능력 있던 인텔리 히틀러도 그런 힘러를 좋아하여 독일의 사실상 3인자였다. 참고로 2인자는 헤르만 괴링이었다.

고대 게르만 전설이나 판타지, 민족주의에 관심이 많던 힘러는 인종학적으로 우월한 독일 민족을 주장하고 체계화시켜 SS 대원은 3대에 걸친 신상증명서와 외모가 우수해야 했으며 온갖 게르만 의식과 고대문자 등을 심벌처럼 사용케 했다. 특히 SS의 본거지인 베벨스부르크 성 곳곳에 새겨진 슈바르체존네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조직에도 뻘짓을 했는데, 당장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 연대 같은 경우는 하나같이 174cm 이상의 장신에다가 충치 하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에 군복을 닮은 정복을 입고 소총으로 무장한 뒤 사열식을 하는 등 최고의 엘리트로서 선전 효과까지 기대하고 만들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사병의 평균 신장은 163cm였으니, 174cm면 현대의 184cm인 사람과 비슷한 신장을 보유한 셈이다.

하지만 '진짜' 전쟁이 임무인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애들 장난같이 보였을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허우대만 멀쩡하다 하여 '아름다운 저능아들'이라고 신랄하게 비꼬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물론 이 발언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가 아닌 이미 국방군이 있는데 뭐하러 실전 경험이 없는 초짜들을 모아서 친위대란 것을 만드냐는 의미이다. 문제는 발언한 사람이 육군에서 친위대로 전속한 펠릭스 슈타이너였다는 것이다!

3 알게마이네 SS

무장친위대가 창설되면서 기존의 '일반' 친위대 조직은 알게마이네 SS(Algemeine SS, 일반 SS)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형식상으로 양자가 완전히 독립된 것은 아니지만, 무장친위대가 국방군 총사령부의 지휘하에 들어가는 등 사실상 제 4의 군대가 되면서 알게마이네 SS와는 사실상 별도의 조직처럼 되었다.

더구나 병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무장 SS 내에 연합군 포로 중 전향자로 부대를 창설한 것은 물론, 심지어 점령지에서도 현지인 부대를 창설하는 등 '완벽한 게르만 인종'이라는 지원요건까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이를 두고 알게마이네 SS는 무장친위대를 '친위대 같지도 않은 놈들'이라고 투덜댔을 정도.

그러나 이건 친위대 내부의 구분에 불과하며, 연합군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친위대고 전쟁범죄와 각종 만행을 저지른 작자라는 점 역시 똑같이 인정받아서 전쟁 말기 강제로 끌려온 자들을 빼고는 전부 전범으로 처벌받게 된다.

무장 SS 출신들도 이들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겼는데, 한 것도 없이 후방에서 폼이나 잡아댔으면서 자기들 무시하고 전시엔 포로로 잡히기 전에 도망이나 다닌 것들이라며 치를 떨기도 한다.

이들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고, 포로 학살 등도 무장 SS가 저질렀으며, 혹여 활동했어도 전쟁 이전에 활동했는데 무슨 전쟁 범죄가 있냐면서 알게마이네 SS들을 커버치는 '알게마이네 SS 선옥론'을 외치는 일부 정신 나간 인간들도 있다. 이건 명백한 헛소리인데 그 악명 높은 아인자츠그루펜에 알게마이네도 상당수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무장친위대보다도 배는 더 악질이라고도 볼 수 있고 윗 문단에서 알다시피 알게마이네가 나온 배경이 우생학 그 자체인 만큼 토텐코프(수용소 전문부대)와 함께 같은 독일민족까지 학살하고 다녔다. 게슈타포야 악명높고 브란트게브하르트를 휘하로 둔 T-4 프로그램의 총책임자 필립 보울러(Philipp Bouhler)가 알게마이네 소속임을 안다면 알게마이네 선옥론 따위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반대로 최전선에서 전투 중이라 바쁜 무장 SS가 무슨 학살할 시간이 있냐며 바펜 SS 선옥론도 있고, 나쁜건 다 SS라는 국방군 선옥론도 있으나,[4] 현대의 연구 결과는 다 나쁜 놈들이다. 애초에 추축국 군사조직에 뭘 바랬는데 '선옥론'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4 계급

슈츠슈타펠/계급 참조.

5 무장친위대

무장친위대 항목 참조.

6 이야기거리

6.1 제복

width=100% 초창기 SS의 제복은 검정색을 메인으로 만들어졌다.width=100% 루돌프 헤스12인치 피규어
width=100% 친위대의 위장전투복

전쟁 이전에 쓰던 검정색 제복을 디자인한 회사가 슈투트가르트 근교 작은 의류회사였던 '휴고 보스'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보스와 그의 공장은 단지 제복 생산에 관여하였을 뿐이다. 참고로 당시 휴고 보스는 하청업체 수준의 영세한 회사였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휴고 보스 사장이 제복 생산에 대해서 사과하고 그에 대한 배상금도 기부했다. 이 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카를 디비히로, 1985년에 죽었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본받아 군복 코스프레를 좋아했으며, 굳이 제복을 안 입어도 될 만한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제복을 입히기도 했다. 사복 정장 차림으로 근무해도 충분한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 상당수도 제복을 지급받아 입었을 정도.

괴벨스장애인인 데다가 선전장관이었기 때문에 전혀 제복이 어울리지 않지만, 괴벨스조차도 군복스러운 당원 정복 등을 입고 나온 경우가 많다. 아들도 친위대에 입대시킨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도 제복 입고 나온 사진이 많다. 단, 이 시기엔 소련 등 여러 국가들도 외국에서 자국의 국력 과시 역할을 기대하여 고급 외교관들에게 화려한 제복을 지급하는 경향이 컸기에, 나치 독일만 유별났던 건 아니었다.

SS는 SA의 갈색 제복을 그대로 입었으나, SA 간부들이 장검의 밤으로 숙청된 이래 SS가 SA를 넘는 조직이 되어 SA와 차별성 및 우월감을 나타낼 필요성이 대두되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 재무장에 나서면서 "남성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의 군복이 필요해져, 이들의 주문에 의해 디자인 전공자였던 칼 디비치 교수가 디자인한 검은색 군복이 채택되었다. 히틀러는 이 군복을 통해 친위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적군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목적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셔츠는 SA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갈색이 제식이었으나, 개인이 임의로 흰색 셔츠를 속에 받쳐 입기도 했다. 넥타이는 검정색으로 바뀌었다.

설마 그럴 사람은 없을테지만, 유럽에서 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많은 국가에서 체포된다. 표현의 자유이건, 코스프레건 뭐든 간에 예외없다. 이 복장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이기 때문. 게다가 독일이나 프랑스,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체포되기 전에 시민들한테 맞아죽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 혐오의 대상이자 무서울 것 없이 망나니짓 하고 돌아다니는 네오 나치들조차 이 제복을 함부로 입고 다니지 않는다. 영국 등 일부 법적으로 관대한 국가의 경우 직접 나치즘에 찬동하는 언행이나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이상 법적 처벌은 못 하지만, 대신 시민들의 욕설이나 물리력 행사를 각오해야 한다. 보통 리인액트먼트의 경우 제한적인 장소에서 친나치적 퍼포먼스가 없이 착용할 경우 정도가 많이 허용되는 수준이고, 독일 같이 규제가 강한 곳은 영화 촬영용 복장조차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간 마크류가 있으면 떼어서 따로 보관하다 촬영 장소에서만 부착해야 할 정도다.

한때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경호실의 제복을 SS를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유용원 기자가 취재를 정리해 공개한 사진이 있다.

이 흑복은 많은 이들에게 나치 독일군 전체 혹은 친위대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종전시까지 입었을 거란 생각을 많이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퇴출된 옷이다.

zctj057%2011-500x500.jpg
ZCTJ059-500x500.JPG

1939년, 전쟁이 임박할 무렵 SS를 사조직에서 정규군화시키는 데 성공한 SS 장관 힘러가, "검은 제복이 간지는 나는데, 옛날에 전투력은 형편없으면서 병정놀이한다고 비아냥거리던 시절이 생각나니 검은 제복은 예복으로 빼고 정복으로는 군인다운 회색 옷으로 바꿔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위와 같은 회색 정복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자비 마련이 아니라 SS로부터 피복을 지급받은 인원들은 강제 반납 후 회색 제복으로 대체 지급되었고, 그 외 인원들은 사비로 맞추어야 했으며, 회수된 검은 제복은 이후 창설된 외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SS 대원들이나 현지 친독 민병대 등에게 약간의 개조를 거쳐 지급되는 식으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벤 양은 나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군인들이 팔에 새 문장이 달려있었는지 모자에 새 문장이 달려있었는지 그 러시아 군인에게 물어봐달라고 요구한다. 즉 그들이 국방군이었는지 아니면 SS였는지 말이다. 그 러시아 군인은 질문의 의미를 금방 이해한다. 러시아 마을에 있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회색 군복을 봤을 떄 국방군인지 친위대인지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독수리 문장이 어디 있는지 보는 것이다. 국방군은 모자와 가슴에, 친위대는 왼쪽 팔에 독수리 문장을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에도 널리 사용되는 식별법이었다. 베를린의 여인에서는 화자인 독일 여성과, 그녀와 대화하는 소련군 병사 모두가 이 식별법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소련-동유럽의 경우 저 독일군이 친위대냐 국방군이냐 구별하는 게 목숨줄을 쥔 경우도 있어서...

다만 깔끔한 검은 제복을 버리고 칙칙한 회색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저항이 없지 않아, SS 본부로부터 먼 외곽 지역에선 1943년 무렵까지 규정을 무시하고 슬쩍 착용한 경우도 존재한다. 전쟁 후반에 들어가면서 국민돌격대가 구성되어 어떻게든 입혀야 할 군복이 필요해지자 반납되거나 지급이 중단돼 쌓인 검정색 제복 재고품 위에 국민돌격대 완장을 수선한 다음 전선에 내보낸 사례도 있었다.

Waffen-SS%20%20076.jpg
일선에서 흙먼지 속에서 뒹굴어야 하는 무장 SS의 경우 육군과 별 차이가 없는 형태의 회록색 전투복을 지급받았고, 당연히 전쟁 말기로 갈수록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 흑복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져 갔다.

ss3.jpg

정규군 중 최초로 부대 단위로 위장복을 채택한 세력이다. 꼼꼼한 독일인들답게 초창기에는 떡갈나무 잎사귀(Oakleaf) 무늬의 춘하/추동에 맞는 색상의 두 가지 위장복을 만들었다가, 이후 예산 절감 등을 위해 점박이(Dot) 형태의 4계절용 위장 무늬를 또 다시 만들었다. 이 무늬들은 현대에 써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현재 독일연방군이 전군 공용 위장무늬로 채택하고 있는 점박이라는 뜻의 독일어인 플렉탄(Flecktarn)도 이 무늬에서 유래했다. 독일 패망 5년 후 벌어진 한국전쟁에서는 KLO 부대가 이 군복을 그대로 입었다. 몇몇 사진은 미국에서 KLO 부대에 보급할 때 일일이 떼어내기 귀찮았던 건지 심지어 슈츠슈타펠 계급장도 안 뗀 그대로 있다.그럼 북한군VS친위대?!

다만 위장무늬 전투복이 나치와 그 선봉장인 무장친위대 그 자체를 상징해버린 나머지 다른 패턴의 위장무늬를 육군과 공군 지상부대도 사용한 바 있는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위장무늬에 대한 서독군의 거부를 야기, 국경 수비대 등 소수만이 육/공군용 무늬와 유사한 것과 사용하다 뒤늦은 80년대 말에서야 플렉탄 위장무늬를 채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서독 뿐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신기술이 반드시 발전으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례. 여담으로 친위대들이 사용한 스목 패턴 위장무늬는 훗날 러시아군에서 참고하여 '파르티잔 패턴'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된다.

전차 승무원복은 초기에는 물자 부족으로 육군의 것을 같이 사용했으나 이후의 복장은 육군의 것과 재단 형태가 조금 차이난다. 전쟁 말기에는 위장무늬로 된 전차 승무원복도 등장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에 주둔한 기간에 이탈리아군의 군수창고를 접수, 이탈리이군의 위장복 천으로 독자적인 복장을 만든 SS 제1기갑사단(총통기 아돌프 히틀러, LSSAH) 등과 같이 사단 내에서 독자적으로 위장복을 만들어 지급한 사례도 있고, 이탈리아 해군 또는 크릭스마리네가죽[5]을 대거 노획, LSSAH와 SS 제12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말기에는 일부 육군사단의 전차 승무원의 방염복으로 지급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도 가죽이라는 특성상 방염효과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이 가죽옷은 미하엘 비트만과 요아힘 파이퍼가 입은 사진 덕분에도 유명하다.

6.2 문신

친위대 소속 군인들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특징적인 문신이 있었다. 왼쪽 팔의 겨드랑이와 닫는 부위 쯤에 1센티미터가 좀 안되는 크기로 자신의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긴 Blutgruppentätowierung(혈액형 문신)이 그것.

이 문신의 용도는 물론 큰 부상을 입었는데 군번줄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 군의가 신속히 수혈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문신의 위치가 왼팔의 높은 곳인 이유는 팔다리가 달아날 정도의 부상을 입더라도 왼팔 어깨죽지 부근은 붙어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거기가 날아가버릴 정도의 큰 부상이라면 어차피 죽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

그런데 국방군 소속의 장병이 친위대 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경우에 이 문신을 새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꽤 실용적이긴 하니까.

전쟁이 끝나고 독일이 패망한 후에는 연합군이 이 문신의 존재 여부로 친위대 소속이었던 자들을 색출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6]

6.3 참전자들

SS 출신 참전자들은 전후 SS가 완전한 범죄 조직이자 흑역사로 거듭난 덕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제 편입된 자들을 빼고는 일체의 참전군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거부당하고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기 일쑤였다. 후일 파울 하우저 장군이 HIAG(SS 참전용사 상조회)를 설립하였지만 이쪽도 극우파, 역사 수정주의자들로 몰려 감시당하다가 해체됐다.

하지만 SS 참전자들은 나치 이념과 관계 없이 '정예'라는 외양에 혹해서 지원했다는 사람도 있고, 강제로 징집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국방군이 무죄고 SS는 유죄라는 식의 논리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짙게 깔려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 다 전쟁범죄의 주체이고 SS가 나치즘에 쩔어있던 것 이상으로 국방군 역시 나치즘에 경도되거나 나치에는 반대하지만 군국주의자였던 사람들 투성이이기 때문에, 한 조직만을 흑역사화하는 식의 논리는 불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 영상. 당시의 참전자들에 의하면 SS는 뭔가 새로운 정예병이라는 선망의 시선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잔인할 정도의 훈련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탈영하다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영상에서 SS의 전쟁범죄를 여과 없이 언급하며 군 이외에 SS를 따로 만든 것을 까고 있는 국방군 장교조차도 SS가 군인으로서 아주 훌륭한 정예병이었고 장비도 좋았기 때문에 근처에 SS 부대가 있으면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정도. 다만 이러한 평을 받는 건 사단 번호 한자릿수 대의 일부 부대로서, 개전 전부터 존재했던 1,2,3 SS 사단을 포함해서 사단 번호가 낮은 사단일 수록 일찍 만들어진 사단이고 그런 사단일 수록 그나마 군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번호가 올라갈 수록 전쟁 후반기에 급조한 사단들로서 전투력과 기타 품성이 바닥으로 치닫는다. 이런 막장 사단들은 친위대의 악명에 걸맞지 않게 실전에서는 오줌이나 싸고 도망가는 것들이 후방에서 파르티잔이나 포로 학살에는 신나서 날뛰었다고 치를 떠는 참전자들도 많다. 대표적인 놈팽이들이 디를레방어 여단과 카민스키 여단.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역시 이들을 깐 적이 있다.

당연히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SS 출신 참전자들은 좋은 대우를 못 받는다. 하지만 반대로 독일보다 폴란드와 소련에게 더 시달린 바 있는 발트 3국에선 대우가 괜찮다. 사실 이 나라들에서 친위대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소련에게 더 시달린 역사가 있으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이와 관련된 문제로 주변국인 폴란드, 러시아 등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같은 이유로 똑같이 러시아와 폴란드에 시달리던 우크라이나에서도 초기에는 평가가 좋았다. 적어도 초기에는. 당시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이들을 러시아와 폴란드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킨 해방자들로 평가했고,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이들과 손을 잡고 그동안 자신들을 못 살게 부렸던 소련인들과 폴란드인들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아인자츠그루펜 때문에... 그 외에도 남미 같은 제3국으로 적지 않은 SS 참전자들이 이주를 했는데 심지어 이란 같은 중동으로 이주한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선 독일이 아닌 영국, 프랑스, 미국에게 시달린 역사가 있기 때문.

얼마 전인 2013년에 히틀러 지하 벙커의 통신부사관이었던 로후스 미슈 SS 통신상사가 죽기 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련과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란 말을 남겼다. 반대로 SS 전차 승무원으로 참전한 바 있는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친위대 입대를 후회한 바 있다.

친위대 출신 이들의 최후는 비참하게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제대로 된 직장도 못 구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한다던가 어찌해서 살아가더라도 요하임 파이퍼처럼 살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얼마 전 과거 나치 친위대에 속했던 이들이 전후 미국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미국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생활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친위대라면 치를 떨던 미국이 어찌된 일이냐라며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많이 모르는 일인데 사실 SS라고 해서 사람들이 무조건 혐오하고 그러는 수준은 아니었다. 좀 과장이 없진 않다. 전후에 세워진 서독군에서도 SS 출신 병사들이 존재하였으며 심지어 동독군과 슈타지에도 과거 게슈타포에서 일했던 이들이 비슷한 일을 하기도 했다.[7][8] 게다가 친위대는 주로 파르티잔 토벌에 굉장히 익숙하였기에 남미에서 용병으로 뛰며 공산 게릴라들을 사냥하고 다닌 친위대 장교와 하사관들도 있다.

반면 소련으로 인한 안좋은 경험을 한 발트3국에선 SS 출신 참전자들에 대해 인식이 좋은 편이다. 가끔 이런 행사도 연다... 독일러시아 입장에선 어그로

7 SS 소속 주요 인물

더 많은 정보에 대해서는 나치 독일/인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파울 하우서 - 무장친위대의 아버지로 이 항목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소수의 인물.
  • 카를 한케 - 마지막 친위대 국가지도자. 저지 슐레지엔 관구장 재임 당시 약 1,000명을 처형하여 브레슬라우의 교수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힘러의 배반이 확인된 이후 독일 경찰청장과 국가지도자를 승계받으나 이미 패전은 확정된 상태였으니 제대로 해본 건 없다. 브레슬라우 공방전 이후 프라하로 탈출하여 제 18 SS 의용 척탄병 사단 호르스트베셀에 숨었으나 이 부대는 체코를 탈출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다. 이후 SS 포로수용소 복역 중 탈출을 꾀하다가 사살되었다는 공식 기록이 있으나 일설에는 체코인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낸 후 구타하여 죽였다고 한다.
  • 하인리히 뮐러 -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흔히 "게슈타포 뮐러"라 불린자다.
동부전선 학살에 일조한 인물이다. 또한 2차대전 종전 이후 유일하게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최고위 나치 인물.
  • 하인츠 지크프리트 하이드리히☆ - 위의 하이드리히의 남동생으로 유태인과 집시를 구한 위대한 영웅. 특히 셸렌베르크가 "형놈과는 달리 인성이 괜찮네"라며 칭송까지 했다. 1944년 11월에 자살.
  • 테오도어 아이케 -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의 초대 사단장. 광신적인 나치 신봉자로 포로학살과 인종범죄로 얼룩진 토텐코프의 악명은 이 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장검의 밤에른스트 룀을 살해하였으며 다하우를 비롯한 초기 강제수용소 경비부대를 맡을 당시 수감자에게 노골적인 학대를 할 것을 명령하였다. 다만 부하들한테선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과 구데리안 같은 명장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나름 신망은 있었던 듯하다.
  • 카를 베커 - 무장친위대 소속으로 그도 히틀러와 나치 지지자였으나 '홀로코스트와 인종차별에는 무관심했었으며, 오히려 돈을 받고 이들을 구해줬다. 괴링과는 달리 전 재산을 뺏지 않았으며 10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한다. 전후 사업가가 되어 독일 최대의 거부가 되었다.
  • 쿠르트 게르슈타인 - 친위대 장교이자 무장 친위대 위생학 연구소의 구성원으로, 베우제츠와 트레블링카에 있는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대량 학살을 목격하였다. 스웨덴의 외교관 예란 본 오테르 (Göran von Otter) 와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교황 비오 12세를 포함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원들과도 접촉하여 국제 사회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리고자 하였다. 1945년에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른바 게르슈타인 보고 (Gerstein Report) 를 썼으며,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 하디 크루거 - 그 영화배우 맞다. 16살에 아돌프 히틀러 학교에서 아역배우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징집되어 니벨루겐 사단으로 보내졌다.
  • 요제프 멩겔레 - 위의 지크프리트와 파울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 쓰레기.
  • 아몬 괴트 - 폴란드의 크라코프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소장으로,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다. 재미로 사람을 쏴죽이는 등 인간 도살자였다. 이러고도 전후 자신의 죄는 힘러가 시켰다는 헛소리나 지껄였다.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쳤다.
  • 귄터 그라스 - 전후 독일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양철북의 작가. 일설에는 유겐트에서 친나치 발언만 좀 했다고 하지만, 미국 문서에서도 확인된 마당에...공군에 징집되었다가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17세 시절에 멋모르고 한 일이라서 1990년대에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주 큰 파장은 없었다. 참고로 SS는 원칙상 자원입대에 복무기간도 국방군보다 배는 더 길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친위대도 병력이 부족하면 국방군에게서 병력을 넘겨받기도 했다. 무장친위대 군복의 좌완에서 가끔 보이는 V자가 3개 겹쳐진 표식이 바로 국방군이 친위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때 부여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라스가 소속된 부대가 1945년의 심각한 병력 부족의 상황하에서도 최우선으로 재편되었던 제10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의 기갑부대인 것 등을 보면, 국방군에서 징집한 인원이 친위대로 넘어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렇게 강제 징집된 국방군 출신들은 나중에나마 SS 취급을 면하기도 했다.
  •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 3 SS 토텐코프 소속이자 '폭풍 속의 씨앗'의 저자. 출판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긍정적이진 않지만 부정적이지도 않으나, 회고록인 '폭풍 속의 씨앗' 자체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당시의 전황을 잘 묘사했지만 악명 높은 3 SS 토텐코프 사단 옹호 등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편이라 어느정도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 프리츠 크뇌힐라인 - 3 SS 토텐코프 소속 장교. 1940년 프랑스 전투 중 르 파라디에서 영국 노보크 연대 병사 89명에 대한 학살을 주도했으며 학살의 증인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를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도망치는 여자들까지 조준사격했다. 브루네거가 이때 "저들은 여자잖습니까" 라고 항명하자 이 이후로 그에게 온갖 명령을 하며 그를 죽이려 들었다. 말하자면 천하의 개쌍놈. 종전 후 영국에 인도되어 르 파라디 학살의 책임을 지고 1949년 사형당했다.
  • 루돌프 회스 ^ -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소장으로, 수백만이 죽은 인종청소의 가장 큰 주범이다. 의도적인 살해가 아니라 병과 기아 등 어쩔 수 없는 죽음이 대부분이었다고 되도 않는 변명을 하기도 한 진정한 쌍놈. 죽기 전에 목숨을 구걸할 요량이었는지 자기가 저지른 짓이 인류에 대한 범죄임이 분명하며 사죄한다는 식으로 데꿀멍하는 내용의 서찰을 쓰고 죽었으며, 나치 독일의 범죄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악마였기 때문에 목 매달린 자리는 현재까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연합군이 그의 죄악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아우슈비츠 근처까지 끌고 가서 교수형에 처했다고 하는데, 나치의 핵심 전범들조차 그런 대우는 받지 않은 점에서 얼마나 죄가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프리츠 크리스텐 - 일명 둡로프카의 대전차포. 홀로 50mm 대전차포를 조작하여 T-34 여러대를 격파하여 친위대 최초로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 요제프 크라머 ^- 이놈 역시 디를레방어급 인간쓰레기. 안네 프랑크가 있던 수용소의 수용소장. 포로식량비를 착복했으며 수용 능력의 8배가 넘는 8만 8천여 명을 쑤셔넣은 결과 티푸스가 창궐, 매일 250~300명씩 죽어나갔다. 그러나 처리를 못해 쥐가 시체를 먹고 산 사람까지 공격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3만 7천여 명에 달했다. 당연히 영국군에게 잡힌 후 열나게 두들겨 맞고 총살당한다. 이때는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 카를 게프하르트^ - T-4 프로그램 계획 및 그가 저지른 생체실험은 멩겔레를 초월한다. 힘러를 제외하면, 이 항목 최강의 인간말종. 전후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부하인 카를 브란트와 함께 헌병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신나게 얻어맞아 인사불성이 된 채로 교수형. 왜 같은 나치들도 폭행했냐면 그들에게조차 이놈이 벌인 행각이 자신들에게조차 생각도 못할 끔찍한 행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태인, 소련군 포로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지만 나치당원 중에서도 인간적인 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T-4 프로그램은 자국민에게 적용되었던 만큼 자국민을 죽이고 생체실험한 놈을 좋게 대해줄 리가 만무했다. 타치바나 요시오가 같이 수감된 장군들과 그 부하들에 얻어맞은 이유랑 같다.
  • 카를 브란트 - 상관인 게브하르트와 함께 T-4 프로그램 및 생체실험을 자행한 멩겔레, 카를 게브하르트와 함께 이 항목에서도 손꼽히는 인간말종. 멩겔레의 상관으로 멩겔레의 미친 실험에 자주 조언 등을 하기도 하였다. 독일인을 주로 죽인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놈이 인간말종인 건 변함 없다. 그리고 전범재판 자체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응징 목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자국민 학살자도 처벌 대상에 들어갔으므로 결국 그 역시 전범으로 분류되어 헌병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게브하르트와 함께 처형되었다.
  • 일제 코흐 - 악행에 있어 이르마 그레제와 친구 먹는 개쌍년. 이년은 감옥에 갇혀있다가 자살했다.
  •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 - 36 SS 장갑착탄병 사단 디를레방어의 사단장. 바르샤바 봉기 당시 폴란드 주민과 유태인들을 대량학살한 무장친위대가 자랑하는 인간쓰레기. 게다가 전과마저 엄청나게 화려해서 어린 여중생을 강간한 전력까지 가진 놈이다. 맙소사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자기가 저지른 학살을 파울 하우서가 지시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 앉았다. 결국 수용소에서 연합군 헌병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사형 집행도 못 받고 죽었다. 오토 스코르체니와는 사이가 엄청나게 안 좋았다.
  • 위르겐 기르겐존 - 5 SS 비킹 사단 소속의 병장. 위의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를 말한 주인공. 무장친위대 소속 중 몇 안되게 진심으로 뉘우치고 전후에 사민당원으로 활동하였다.
  • 리츠 랑앙케 - 판터 에이스로 다큐 '지상 최대의 전차전'에 등장한 바 있다. 2012년 사망.
  • 에른스트 바르크만 - 잘 알려진 판터 에이스. 전후 자신이 SS 참전자인 것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의 고향에선 대우가 좋았다. 전후 소방서장이 되었다.
  • 발타자르 볼 - 애칭 발티. 미하엘 비트만의 포수로 볼 역시 100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한 에이스였다. 비트만이 사망할 당시 부상으로 본국으로 후송되어 90년대까지 생존하였다.
  • 칼 프리치^ -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가오 잡다가 정작 종전 후 재판에서 나는 그런 적 없다고 살려달라고 온갖 진상을 있는 대로 부렸다. 심지어 자기를 비난하는 검사 다리를 붙잡고 오줌 싸면서 살려달라고 칭얼대었다. 결국 기관총에 맞아 육체가 조각조각 날아갔다. 심지어 성가를 부르다 펠릭스 슈타이너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자세한 건 콜베 항목 참조.
  • 막스 지몬 - 3 SS 토텐코프 사단장. 테오도어 아이케 사후 토텐코프의 사단장이 되었다. 그 역시 광신적인 나치 신봉자였다.
  • 오토 귄셰 - 영화 다운폴에서 히틀러에게 헤르만 페겔라인의 탈주를 보고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전후엔 회사원으로 일하다 2003년 사망했다.
  • 헤르만 페겔라인[9] - 힘러의 부관이자 히틀러의 인척. 에바 브라운의 자매와 결혼했기에 히틀러와는 동서지간 인척이 된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불과 며칠 전, 히틀러 몰래 총통벙커를 빠져나와 중립국으로 도망가다 친위대 국가보안국에 잡혔다. 히틀러의 분노를 사 결국 처형당했다. 헤르만 페겔라인의 남동생도 고위급 무장친위대 장교였는데, 동생 쪽은 전후에도 살아남았다.
  • 빌헬름 몽케

8 창작물에서의 등장

울펜슈타인 3D에서는 독일군과 달리 좀 어두운 파란색 제복을 입고 주인공을 발견하면 "흠빠골~"혹은 "훗바보~!!"(Schutzstaffel의 몬데그린)을 외치며 MP40을 두다다다 발사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습득하게 되는 MP40과는 질적으로 다른 건지 텅텅텅거리는 주인공의 MP40보다는 발사음이 묵직하고, 데미지도 상당히 괴악하다. 가까이서 맞을수록 데미지를 더 많이 받게 되는 울펜슈타인 특성상 근거리에서 이런 공격을 연속으로 맞으면 3초도 안 되어서 화면이 시뻘개지고 끔살당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래서 상당히 주의해야 할 적이다. 다행인 것은 총을 꺼내들 때 딜레이가 있고 한 번 공격을 맞으면 다시 총 꺼내들 때의 딜레이를 보여주므로 연사되는 무기로 잡으면 무난하다. 여러 명을 상대할 때는 두들겨 맞는 SS, 뒤쪽에 있는 SS(혹은 다른 적도 마찬가지)가 총을 발사하는 게 고스란히 플레이어를 향한 데미지로 들어가므로 주의할 것. 권총으로 잡을 수도 있지만 버튼을 연타하는 감각이 요구되고 위력도 낮기 때문에 비추천. MP40이 없는 상태에서 잡으면 죽을 때 MP40을 드랍한다. 같이 얻게 되는 약간의 탄약수는 랜덤. 버전에 따라서 6발 고정인 경우도 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에서도 당연히 등장하지만 보통의 병사들보다 좀 더 강한 무기를 들고 나오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긴 실제로도 큰 차이는 없긴 했고... 단, 몇몇 미션에서는 위장복 사양의 SS가 몇명 나오긴 한다.

울펜슈타인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으나, 이들이 베일의 힘에 노출되면 울펜슈타인판 언데드 '데스포일드(Despoiled)'가 된다. 이 녀석은 꽤 강적으로, 한마디로 은엄폐와 총기 사격, 마법 사용을 하는 언데드라고 보면 된다. 언데드답게 체력이 비상하게 높으며, 사용하는 마법 구체 투척 공격은 꽤 아프다. 일반 국방군 버전은 없는 걸 보니 SS만 이렇게 되는 듯.

둠 2: 헬 온 어스에서도 울펜슈타인 SS들이 등장한다. 숨겨진 울펜슈타인 3D 레벨을 패러디한 맵에서 등장하는데, 원작의 레벨에서 적이 등장하는 위치에 난이도에 따라 최대 4명까지 몰려다닌다. 비밀레벨 안에 숨겨진 2차 맵에선 사이버데몬과 함께 다수가 등장하는데 오히려 사이버데몬이 열받아서 플레이어보다 먼저 팀킬하게 만드는 잡몹 그 자체다. 공격은 원작처럼 기관단총을 연사하는데 원작보다 더 어설프고 결정적으로 거리에 따른 데미지 차이가 전혀 없어서 화력 자체는 형편없다. 물량공세를 논외로 친다면 SS가 차지하는 위치는 타 둠2 몬스터와 비교할 경우 샷건가이헤비 웨폰 듀드 중간 정도의 위치. 게다가 공격받을 때의 비명소리도 좀비맨의 그 사운드를 재탕했다. 더욱 안습한 건 다른 몬스터와 동일하게 자기들끼리도 싸우는데 여러 마리가 나오면 어설픈 적중율에 자기들끼리 쏘다가 거의 죽어나가니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사망시의 비명은 울펜슈타인의 그것과 흡사하지만 원작 PC판에는 없는 소리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 캠페인이 들어간 게임이라면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초반에는 독일군이 나오다가 후반 베를린 전투까지 진행하면 등장하는 것이 전통. 월드 앳 워에서는 국회의사당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은 부상자까지 총 들고 뛰어나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표현해준다. 월드 앳 워의 SS는 보통 국방군이 회색 제복을 입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새까만 제복을 입고 있어 쉽게 구분 가능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참고로 여기서의 SS 친위대원들은 군복이 검은색 톤의 제복과 암녹색 톤의 제복 이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아이언 스카이에서는 월면 나치로 나온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마크와 복장이 딱 친위대.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2부 전투조류에 등장하는 루돌 폰 슈트로하임은 원작에서 슈츠슈타펠 소속으로 등장했으나, 그가 슈츠슈타펠이라는 설정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죠죠 발매 25주년 기념 애니메이션에서는 독일국방군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제복은 여전히 슈츠슈타펠 제복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확장팩 어포징 프론트에서 새로 등장한 진영 판저 엘리트(전차군단)은 마켓 가든 작전 당시 연합군을 막아낸 SS 부대를 모티브로 했다. 근데 어째서인지 정예인 SS의 장비가 오히려 국방군에 비해 어설프고 전투력도 딸린다.

Fury_227.jpg
Fury_Batallion.jpg
Fury_MP40.jpg
퓨리에서 후반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제 1 SS기갑사단장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My Honor was Loyalty라는 영화가 알렉산드로 페페(Alexandro Pepe)의 감독하에 제작되고 있으며 예고편도 나온 상태다. 페이스북

만화 블리치에서 악당 유하바하의 친위대 슈테른릿터를 '슈츠슈타펠'이라 칭한다.

헬싱라스트 바탈리온이 바로 이들이다.

일본의 전쟁만화가인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소재가 소재다 보니... 단편이나 종합이 아닌 순수하게 SS만 다룬 작품만 기재한다면 불꽃의 기사,강철의 사신,해피 타이거,장갑척탄병,비트만 전기 1943 등이 있다.

영-독 합작 영화 조이 디비전에서도 꽤 등장하는 편. 주인공의 회상에서 그들을 구해준 부상당한 SS병사와 영국 자유군단 소속의 SS중사가 등장한다.

머나먼 다리켈리의 영웅들에선 상당히 중립적으로 등장한다.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렸다[10]에서 1943년 게토 봉기 당시 SS병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슈타이너 중령과 그의 병사들이 형벌부대로 격하된다. 후속작인 독수리 날아오르다에선 조지 워싱턴 여단 소속의 SS대위가 등장.[11] 나중엔 아일랜드로 망명한다. 동시에 히믈러의 부관인 베르거 SS소령과 히믈러와 대척하는 발터 셀렌부르크가 등장. 히믈러와 베르거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는 완전히 나치즘에 잔뜩 중독된 인물이자, 개념까지 상실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슈타인브레너. 나이는 19살밖에 안 되었으면서 계급은 병장이나 되고, 일개 사병인 주제에 친위대라는 것만 믿고 국방군 지휘관들한테 깝쳐댄다. 근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국방군 주임원사, 소대장, 중대장은 슈타인브레너가 친위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도를 넘은 오만방자함을 보이면서

거들먹거려도 눈감아준다. 아니, 정확히는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만약 국방군 대대장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1. 영화 퓨리에서도 이 곡이 나온다. 주인공 전차의 막내가 정찰 다녀오다가 덤불속에서 마주치는 무장친위대 부대가 부른다.
  2. 전자는 억지로 끌려온 사람들도 다수겠지만, 후자는 말단사병들도 기본적으로 나치당원이다. 상황이 막장으로 치닫을수록 의미가 없어지긴 하지만.
  3. 한창 때는 300만명이 넘었다.
  4. 사실 예전엔 이들이 주류였다.
  5. 주로 기관실이나 잠수함 등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방염복으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이 거의 유사한 것을 독일 해군도 기관실 근무자 및 잠수함 승조원 중 사병들(장교용은 디자인이 달랐다)에게 지급했다. 이 외에도 44년 즈음이면 거의 힘을 잃은 크릭스마리네의 군수물자를 대신 지급하였다.
  6.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회고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7. 존 르카레의 히트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영국 정보부를 괴멸시킨 문트도 히틀러 유겐트 출신이란 설정.
  8.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인공과 같이 수업을 듣는 법학도들 중 무장친위대 출신 아버지를 둔 이들도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9. 몰락 패러디에서 히틀러의 만악의 근원 기믹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10. 번역이 제각각인데 독수리 내리다, 독수리 내려앉다로도 불린다. 원서 제목 그대로 번역하면 '독수리 내려앉다'지만, 날개치며 내렸다가 더 멋지다는 이유로 많이 쓰인다.
  11. 겨울전쟁 당시 용병 조종사로 투입되었다가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독일과 핀란드에 선전포고하면서 본의 아니게 포로가 된다. 이후 협의를 통해 동부전선에서만 복무하는 걸로 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