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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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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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CX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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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형 스텔라.

HYUNDAI STELLAR

1 개요

1983년 5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생산했던 현대자동차후륜구동 세단.

2 상세

한동안 현대자동차에서 라이센스 생산하던 코티나포드와의 기술제휴 재계약에 실패하고 미쓰비시와 새롭게 제휴하여 생산이 불가능하게 되자, 현대자동차코티나후륜구동 플랫폼[1]을 기반으로 Y카라는 코드네임#[2]의 새로운 승용차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스텔라다. 기존의 승용차에 비해 넓은 공간과 편의장비를 내세워서 꾸준히 팔려 나갔으며, 이는 훗날 쏘나타대한민국 도로가 도배되는 기초를 쌓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자동차 배기량을 2.0리터에서 1.5리터로 팍 줄여 버리는 바람에[3] 출력이 부족해서 언덕길을 올라갈 때 출력 때문에 꽤나 고생했다고.[4] 게다가 한여름에 퍼져서 길가에서 후드를 열어놓고 있는 차의 대부분이 스텔라였기도 했다. 안습[5][6] 이같은 문제들 때문에 1980년대 중형 승용차 시장에서 대우 로얄 시리즈에 상당히 밀렸으며, 로얄 시리즈의 상위 차종들에 비해 한 급수 낮은 차량으로 평가받았지만 판매량이 많이 처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현대자동차는 중형차 시장의 장악을 위해 쏘나타 시대를 기다려야 했다.

사실 이 품질 문제는 현대자동차포드의 복잡한 사정도 있었는데, 당시 언제 포드와의 제휴가 끊길 지 몰라서 스텔라의 품질 테스트를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성급하게 출시한 것도 원인이었다고 한다.[7]

본래 직렬 4기통 1.4리터/1.6리터 새턴 엔진을 얹었다가 초기형의 품질이 떨어지자 1.5리터 엔진으로 통일했고, 1991년에 단종되기 전에 나왔던 최후기형에는 Y2에 장착된 1.8리터 시리우스 SOHC MPI 엔진도 후륜구동에 맞게 세팅하여 장착했다. 소나타에는 1.8리터/2.0리터 시리우스 엔진이 달렸었다.(Y1에 달린 시리우스 엔진은 MPI가 아니다.) 그리고 최후기형 1.8 MPI 및 LPG 택시에는 현대자동차의 바뀐 로고가 달린 휠캡이 장착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최후의 후륜구동 세단이었으며, 2008년에야 제네시스가 발매되며 현대자동차 후륜구동 세단의 맥이 이어진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스텔라의 현가장치 처음에는 구 코티나 마크 V와 같은 것으로서 전륜에는 더블위시본형, 후륜에는 일체차축식 4링크형이었다. 그러나, 1986년말부터 현대자동차가 독자개발한 현가장치로 변경되어 전륜은 맥퍼슨스트럿형, 후륜은 일체차축식 5링크형이 되었는데, 이는 현대자동차에서 최초로 독자개발한 후륜구동형 플랫폼[8]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상위 트림으로 소나타라는 차종을 선보였으며(이것이 1세대 Y1 현대 쏘나타), 1985년엔 카나다[9] 수출을 기념한 CXL 모델[10]이 출시, 1986년에는 북미 수출을 기념한 모델인 스텔라 APEX가 출시되었고, 19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스텔라 88' 이라는 모델이 나왔다, 하지만, 새로 나올 Y2 쏘나타를 위해서 1991년 승용차 모델이 단종되었고, 영업용으로는 인기가 좋아서 포니가 영업용으로 이어간 것처럼 1997년 초까지 바뀐 H로고 휠캡이 달린 영업용 LPG 택시 모델이 팔려 나갔다. 비록 출시 초반에는 좋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현대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수 모델이다.[11]

이 차의 이름을 딴 국내 인디밴드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라는 밴드가 있다. 옛날 남자,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뜻.

최상위 트림에 있었던 소나타는 크루즈 드라이브나 뒷좌석 시트 자동 조절 시스템 등의 당시 최고의 편의 장비들을 가지고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와 경쟁했으나, 스텔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판매는 바닥을 기고 말았다.

정주영현대그룹 회장이 전용차로 쓴 적이 있었다. 이 차를 타고 호텔에 갔는데, 호텔 도어맨이 외제차들 사이에 국산차가 보이자 호텔 격 떨어지니 비키라고 하다 정 회장 옆의 한 중역이 "타고 있는 사람을 봐야지 차를 보면 되겠냐?"고 호통을 친 일화가 있다.

그 당시 대우그룹김우중 회장은 소나타라는 차명을 이용, '소나타는 소나 타는 차' 라고 비꼬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이 일화 때문에 스텔라의 상위 차종이 아닌 새로 설계한 차는 나타가 아닌 나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스텔라의 상위 차종격인 소나타는 현대자동차 역사에서도 흑역사 취급하는지 1988년에 출시한 Y2를 1세대 쏘나타라고 말한다. 현재는 쏘나타의 누적 생산대수가 많아지자 스텔라 베이스의 Y1도 쏘나타의 계보에 포함 중이다. 언제는 족보에서 파내더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그리고 소나타를 비웃었던 김우중 회장은 훗날 그리고 대우그룹 전체를 말아먹게 된다.

출시 당시(1983년)광고

출시 당시(1983년)홍보 영상

스텔라가 나오는 아랍어권 광고, 그냥 현대(هيونداي)라고 되어 있다. 하욘다이~~!

3 둘러보기

현대자동차의 차량(제네시스 브랜드 포함)
구분승용, SUV, RV, 승합버스트럭
1960년대코티나, 20MR버스
1970년대포니, 그라나다, HD1000(승합모델)HD버스, RB버스HD1000(트럭모델), 바이슨, 대형트럭
1980년대프레스토, 포니엑셀, 엑셀, 스텔라, 쏘나타,
그랜저, 그레이스
코러스, FB버스, 에어로버스포터, 마이티, 중형트럭
1990년대아토스, 아토스 프라임, 엑센트,
베르나, 엘란트라, 아반떼,
마르샤, 다이너스티, 에쿠스, 스쿠프, 티뷰론,
갤로퍼, 싼타모, 트라제 XG, 스타렉스
카운티, 에어로타운, 에어로시티슈퍼트럭
2000년대i10, 클릭, i20, i30, 링샹, 투스카니,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라비타,
투싼, 싼타페, 테라칸, 베라크루즈, 앙투라지
그린시티, 슈퍼 에어로시티, 유니버스리베로, 메가트럭, 파워트럭, 트라고 , 파맥스
2010년대이온, 블루온, HB20, Xcent, 웨둥,
아이오닉, i40, 미스트라, G70GENESIS, 아슬란,
G80GENESIS, EQ900GENESIS, 벨로스터, ix20, ix25,
맥스크루즈, 쏠라티, 코나
블루시티, 유니시티엑시언트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GENESIS -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
  1. 1971년에 등장한 뉴 코티나(코티나 마크III) 부터, 코티나 마크IV, 마크V까지 적용된 장수 플랫폼이다. 여기서 마크는 세대(generation)를 의미.
  2. 그리고 Y로 시작하는 코드네임은 이후에 쏘나타가 계승한다.
  3. 출시 초기에는 미쓰비시 새턴 엔진 1.4리터(포니2와 동일)와 1.6리터로 출시했지만, 1.4는 출력 부족, 1.6은 세제상 불리하기 때문에, 1984년 1.5로 통일했다.
  4. 대우의 프린스 시리즈는 이 점에서 더했다. 하지만 최강은 대우 로얄 XQ(후에 로얄 듀크). 이 차는 스텔라보다 더 큰 차체에 맵시나의 엔진(로얄듀크는 르망 엔진)을 장착한 바람에 초반에는 소형차 수준의 저렴한 세금으로 어느정도 선전했으나 워낙 힘이 딸리다 보니 이후에 부진한 판매 대수를 기록하고 조용히 사라졌다.(디젤도 나오긴 했지만...)
  5. 실제로 외국에서는 힘이 달린다는 이유로 팔아 버린 사람도 나왔다고 한다. 하긴, 덩치는 2리터 이상의 엔진을 올려야 할 차에 1.5리터 엔진을 얹었으니 힘이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저 일이 발생한 나라는 영국이다.
  6. 하지만 이 상황은 당시 대한민국, 요즘도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가 귀해서 단순히 탈것이 아닌 신분의 상징으로 보는 상황에서 차의 동력 성능이나 편의성과는 별개로 외부인들이 보는 소위 뽀다구에 중시하는 상황. 즉 뽀다구 나는 중형차를 타지만 뽀다구를 유지할만한 돈은 없다, 이 상황을 메이커에서 해석하기를 최대한 큰, 아니 크지 않다만 커 보이는 차체에 최대한 원가절감을 해서(즉 빈약한 엔진, 빈약한 편의장치) 저렴한 가격.(물론 후진국 기준으로는 이것도 싼 값은 아니다) 이 개념에 충실한 차종이였다.
  7. 이후 1999년 출시된 현대 트라제 XG 역시 2년 3개월만에 급하게 출시된 탓에 여러 품질 문제에 시달렸다.
  8. 단, 현가장치만 바뀌었을 뿐이고 바닥판 자체는 그대로였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플랫폼은 아니다.
  9. 당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캐나다가 아니라 카나다다. 현재도 이 영향이 남아 나이 좀 드신 분들은 카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0. 1987년 즈음에 모델명을 GX로 변경
  11. 지금은 쌍용 체어맨 H에 의해 그 기록이 깨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산 세단형 승용차 중에서는 최장수 모델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