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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세대 승용차[1]
현대 엑셀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전륜구동 소형 승용 자동차의 모델명이다.
정확히는 포니엑셀의 후속. 개발 코드네임명은 X2, 1989년 4월 1일 정식으로 출시된 이 차는 당시 한국 중형차 시장을 싹쓸이하던 쏘나타(Y2)와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대부분이 해외로 중고 수출되거나 폐차되어 보기 힘든 차가 되었다.
같은 플랫폼을 쓴 차량이 스쿠프다.
2 세대구분
1986년부터 약 3년 여에 걸쳐 1,500억원을 투입해 개발 했으며, 전작인 포니엑셀 및 프레스토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기존의 각진 스타일에서 벗어나 컴퓨터 설계를 통해 풀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실내공간을 넓혔다. 미쓰비시의 오리온 엔진을 그대로 썼지만, 당시 현대자동차 승용모델 중 쏘나타나 그랜저 등의 고급 라인업에나 들어가던 다중 연료분사(MPI) 엔진을 1.5리터 배기량 형식으로 탑재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래 현대자동차에서 기획한 모델명은 다른 것이었지만 수출 전략 차종으로 활약하던 현대 포니엑셀의 후속모델이었던 만큼 미국 딜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의 포니엑셀 수출명인 '엑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타결되었다고 한다.
1989년 4월 1일 정식 출시되어 무난한 가격과 괜찮은 성능 그리고 모나지 않은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페이스리프트가 출시되기 전까지 3년간 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다. 국내 출시와 동시에 대미 수출시장에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전작의 현대 포니엑셀의 재고처리 문제 때문에 수출계획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래도 이후 포니엑셀의 후속모델로 해외 수출에 호조를 띄며 쏘나타와 함께 현대자동차의 해외 진출에 기여를 한 모델로 기록된다.
출시 당시에는 기본 트림인 1.3리터 및 1.5리터 L, 중급형인 1.5리터 GL, 1.5리터 MPI 엔진이 탑재된 고급형인 GLSi 등 4가지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이후 출시 4개월 뒤인 1989년 8월부터 고급형 트림 GLSi에서 자동변속기, 강력 에어컨, 파워스티어링, 중앙집중식 잠금 장치, 광폭 타이어 및 전용 알루미늄 휠 등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한 최고급형 트림인 TRX(Top Range eXcel)를 추가로 출시하였다.
1990년에는 소형택시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으나 중형택시 열풍의 수혜자인 스텔라의 아성에 눌려 별로 빛을 보지는 못했고, 더불어 현대 포니엑셀의 컨셉을 물려받은 3도어와 5도어 트림도 추가로 출시하였는데 이들은 전부 1.5리터 배기량으로만 구성 되었다. 1991년 2월에는 200만대 생산 기념으로 1.3리터 배기량의 3도어 저가형 모델인 '엑셀 R'을 시판하기도 했는데, 페이스 리프트를 앞두고서 판매량이 열세였던 3도어 모델의 재고물량을 털기 위한 방편인듯 하다.
1991년 5월 페이스 리프트가 이루어져 보닛 끝단을 낮춰 전방시야를 넓히고 실내 인테리어도 곡선으로 다시 디자인하였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현대자동차 CI가 오늘날의 형태로 변경되어 엑셀 역시 새로운 CI 엠블렘이 적용되었다. 과거 현대 포니엑셀의 후속모델 격인 3도어 및 5도어 트림은 '엑셀 GS'라는 이름으로 새로 분류되었으며, 포니2의 단종 이후 명맥이 잠시 끊겼던 승용 화물차로 '엑셀 밴'이 추가 출시되었다. 또한 후미에 붙여진 모델명칭 엠블럼의 경우 초반에는 페이스 리프트 전과 같이 플라스틱 글자 형태였으나 얼마 안 가서 각인 인쇄 형태로 변경되어 三XC三L 비슷한 글씨로 디자인도 변경된다.
1994년 4월 출시된 후속모델인 엑센트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단종 될 것으로 보였으나, 엑센트로 넘어가며 단종된 화물 적재용 3도어[2]의 구매층[3]과 딜러들의 요청으로 7월까지 연장생산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덧붙여 직계 후속은 없으나 따지자면 아토스 밴 - 모닝 밴/레이 밴 정도가 되겠다. 사족으로 마음의 소리 946화 에서도 서울대에게 BMW(작중 명칭 BWM)라고 낚였다. 그 이후의 행적은 통닭집 배달차ᆞ조준의 자가용으로 이용되는 듯.[4]
3 평판
3.1 국내
1980년대 후반 자동차 시장은 지금과 같이 중대형 비중이 높지 않았다. 여전히 자동차는고가의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발 경제 호조에 따라 한국 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각 가정에도 마이카 붐이 일었고, 구매력이 있는 30~50대에서 첫 차로 소형차를 선호했기 때문에 소형차 시장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동차 회사에서도 소형차 판촉에 가장 열을 올렸는데 당시 시장에는 1986년 출시된 대우 르망과 1987년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 평균 자동차 교체 주기는 3년[5]이었다. 현대에서는 이에 따라 1985년 출시된 현대 포니엑셀의 후속 차량을 개발했고 그것이 바로 엑셀이었던 것이다.
당시 기아 프라이드는 일본에서 막 들여온 따끈따끈한 차체설계에 뛰어난 동력성능과 경제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크게 인기를 얻진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프라이드가 해치백이었기 때문. 지금이야 해치백이란 개념이 크게 요상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당시에는 해치백을 타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사고시에 바로 골로 간다거나(!) 하는 인식이 많았고, '꽁지 빠진 차'라는 별명을 얻어 미운털 박히기 일쑤였다. 1988년 프라이드의 베이스인 포드 페스티바, 마쓰다 121에는 있지도 않은 5도어 해치백 모델[6], 1990년에는 4도어 세단 모델[7], 1996년에는 5도어 웨건 모델까지 생산하면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다. 많이 팔긴 했지만 시장을 선도하진 못했다.
대우 르망은 한국에 월드카 개념으로 GM 오펠의 카데트 E를 조립생산한 것인데, 카데트 E가 유럽시장에 등장한 것은 1984년으로 사실상 기술적으로 뛰어난 차량은 아니었다.[8] 1986년 3도어 해치백 레이서와 르망살롱(GTE), 1988년 5도어 해치백 펜타파이브, 1989년 GSI와 1.6 TBI, 1990년 임팩트, 1991년 이름셔[9] 등 정말 다양한 엔진 및 트림을 내놓았고, 특히 날렵한 디자인과 중후한 승차감, 다른 차량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으로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들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실사용자들은 르망의 무거운 차체와 그로 인한 낮은 연비에 시달려야했다. 그리고 시장에서도 고만고만한 판매율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엑셀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한 것이었다. 1988년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Y2 쏘나타의 얼굴과 꽁무니를 그대로 이식한 듯한 모습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스타일은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후한, 40대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실내 디자인은 소형차의 기본에 충실하였고, 쏘나타에 달리던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를 달아 힘과 연비를 동시에 잡았다.[10] 당시 잡지 기사를 보면 엑셀을 마치 스포츠카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현대 로비의 힘일 뿐이고 그 정도로 잘 나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비면에서 프라이드와 비교해서 꿀리지 않으면서 중후한 맛에 없어 보이지 않는 그런 차가 나타난 것이다. 현대차 모델 포지셔닝의 승리이다.[11]
엑셀은 등장과 동시에 거의 매 달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한 두 번 프라이드에게 자리를 내주었었고, 엘란트라에게 한 번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1992~3년을 기점으로 점점 소비자들이 준중형, 중형차량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엘란트라와 쏘나타에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그럼에도 1994년까지 수출 포함 144만여대를 판매하여 밀리언셀러를 달성했고, 포니엑셀까지 단일 모델로 묶었을때는 250만여대를 판매하여 현대자동차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월야환담에 찬조 출연 한적이 있다. 캐런 몬티가 이름에 대해 평하길 밟고 뒤지라고....
3.2 해외
미국시장 시판 당시 광고(1989년 말). 경적으로 밀어내는 차(...)는 엑셀 스포티인 듯.
해외에서는 과거 평판이랄 게 있지도 않았을때 부터 엑셀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미국시장에서는 포니라는 이름 대신에 엑셀이란 이름이 먼저 사용되었다.[13] 유럽시장과 캐나다에는 계속해서 포니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14] 영국, 독일 등 경제 대국에 최초로 수출된 현대 차량이기도 하다.
평판이랄게 없는 이유는 이미 현대가 미국에서 딸리는 품질을 만회하기 위해 물량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당시 선대 모델인 포니 엑셀의 주요 광고 카피는 '@@@달러에 차를 사세요'였다. 너무나 싼 가격에 겨우 달릴 수 있는 차를 판매한 것이다. 하지만 차를 팔 줄만 알았지 서비스 센터나 부품 수급은 엉망이었다. 결국 '몇 번 타다 버리는 현대', '걍 싼차'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구축하고야 만다.
품질이 좋아진 모델이 들어가봤자 개선된 서비스 정책이 없으면 내리막길이 75도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엑셀은 선대 모델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계속 싸고 싼 차로 악명(?)을 떨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한국 사람들보다는 외국인들이 주로 차량 관리를 잘하는 편인지라, 구글 검색을 하면 여전히 쌩쌩하게 엑셀을 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문화적 차이라기 보다는 자동차 문화 성숙도의 차이라 보면 된다.
재밌는 사실은 현대에서 북미 일부 시장에 현대 엑셀이라는 이름 대신 미쓰비씨의 이름을 빌려 차를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명칭은 미쓰비씨 프레시스(Mitsubishi Precis). 당시 해외 진출에 있어서 걸음마 수준이었던 현대의 서비스망과 판매망, 그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현대와 기술적 제휴관계라 쓰고 지배관계이라 읽는다에 있었던 미쓰비시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포니엑셀부터 베르나까지, 1986년부터 이런 판매방식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15]
미국의 자동차 커뮤니티 Edmunds.com에서 가장 못생긴 차 100위 중 83위에 올랐다. 오른 다른 국산차로는 오피러스, 티뷰론 터뷸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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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차량(제네시스 브랜드 포함) | |||
구분 | 승용, SUV, RV, 승합 | 버스 | 트럭 |
1960년대 | 코티나, 20M | R버스 | |
1970년대 | 포니, 그라나다, HD1000(승합모델) | HD버스, RB버스 | HD1000(트럭모델), 바이슨, 대형트럭 |
1980년대 | 프레스토, 포니엑셀, 엑셀, 스텔라, 쏘나타, 그랜저, 그레이스 | 코러스, FB버스, 에어로버스 | 포터, 마이티, 중형트럭 |
1990년대 | 아토스, 아토스 프라임, 엑센트, 베르나, 엘란트라, 아반떼, 마르샤, 다이너스티, 에쿠스, 스쿠프, 티뷰론, 갤로퍼, 싼타모, 트라제 XG, 스타렉스 | 카운티, 에어로타운, 에어로시티 | 슈퍼트럭 |
2000년대 | i10, 클릭, i20, i30, 링샹, 투스카니,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라비타, 투싼, 싼타페, 테라칸, 베라크루즈, 앙투라지 | 그린시티, 슈퍼 에어로시티, 유니버스 | 리베로, 메가트럭, 파워트럭, 트라고 , 파맥스 |
2010년대 | 이온, 블루온, HB20, Xcent, 웨둥, 아이오닉, i40, 미스트라, G70GENESIS, 아슬란, G80GENESIS, EQ900GENESIS, 벨로스터, ix20, ix25, 맥스크루즈, 쏠라티, 코나 | 블루시티, 유니시티 | 엑시언트 |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GENESIS -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 |
- ↑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의미를 이렇게 보는데 1세대 : 포니, 포니2. 2세대: (포니)엑셀, 프레스토 식으로.
- ↑ 포니 트럭에서 이어진 계보의 모델로 뒷 좌석 및 트렁크 공간 모두 화물 적재공간으로 설계했으며 최대적재중량은 300kg이었다. 당시 승용차 같은 느낌이면서도 화물차 기능을 하기에 나름 인기가 좋았으나, 승용차 급으로 작으면서도 봉고의 형태로 나온 대우 다마스와 아시아 타우너(원래 아시아 자동차 브랜드로 발매. 이후 1998년 기아 그룹이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기아 타우너로 바뀐다.)의 등장으로 수요가 감소하면서 엑센트에서부터 단종되었다.
- ↑ 화물용 3도어의 경우 395만원의 가격으로 당시 엑셀의 최저가였고, 티코의 가격에 근접해 있었으며, 세법상 화물자동차로 분류되기에 동급 승용차 대비 90%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
- ↑ 덧붙이자면 BMW라고 속은 것을 알고도 계속 아끼는것 같다.
- ↑ 2016년 현재 8년 이상으로 늘어난 것에 비교하면 정말 짧다. 그런데 그게 이유가 있다. 당시 국산차의 성능이 딱 그 정도였다. 국내 기술이 없어 해외 차들을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들여왔어도 조립 기술 및 강판 방청 기술이 떨어지는 바람에 3년 타면 신차와는 많은 차이가, 8년쯤 타면 폐차 일보 직전일 정도로 하체부식이 심했다. 1996년만 해도 1986년식 차를 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2016년 현재 2006년식 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해외 메이커의 이 차 저 차를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들여오다 보니 모델간 일관성도 없었고 이는 단종시 부품 수급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교체주기가 짧을 수 밖에. 그 이전 85년도 스텔라의 광고에선 대놓고 교체주기를 2년정도로 말할 정도였다.
- ↑ 한국에서 도어 숫자를 계산하는 방법은 최근까지 유리가 달린 문이었으나, 벨로스터부터는 아닌 듯 한데, 이 기준에 따르면 벨로스터는 4도어 차량이다.
- ↑ 바로 프라이드 베타다. 이 차를 본 포드 관계자는 이렇게 작은 차로 세단을 만든 것을 보고 놀랐다는 후문이 있다. 이후 1995년에는 프라이드의 후속으로 나온 기아 아벨라에서도 '아벨라 델타'라는 4도어 세단 모델을 만든다.
- ↑ 그렇다 한들 엑셀보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현대 기술력이 뛰어난것도 아닐뿐더러 르망항목에도 있지만 차대가 지속적으로 개량된 일종의 최종형으로, 기술적부분은 어디까지나 세계기준. 엑셀이 출시된 이후에도 르망이 한국에서 "고속도로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 ↑ 2014년까지 메이커튠은 이 차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앞의 임팩트도 그렇지만 소형차에 중형차용 2000cc 엔진을 탑재한 녀석이다. 그래서 가격 역시 1200만 원으로 당시에는 소형차 주제에 중형차인 대우 프린스 2000cc 풀옵션과 가격이 비슷했다!
- ↑ 다만 이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가 달린 모델인 TRX와 GLSI 모델의 경우 당시의 일반 배터리가 아닌 특수 배터리를 순정으로 장착해야 했기에 차량 유지비가 조금 더 나가기도 했다.
- ↑ 이후 국내 자동차 관련 언론에서 현대의 모델 포지셔닝을 기준으로 차급을 선정하는 것이 대세가 됨에 따라 경쟁사 차들 중 현대차 기준 포지셔닝에 잘 안맞는 차들(즉 소형인지 중형인지 애매한 차종)은 더 성능이 우수한 모델이라도 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려야 했다.
- ↑ 광고에 나오는 여자아이 모델은 다름아닌 김민정!
- ↑ 기존의 포니엑셀이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 ↑ 현대는 1986년 북미시장 진출 이전에 캐나다와 동구권 국가에 포니를 먼저 소량 수출하였다. 따라서 유럽시장에선 포니의 이미지를 계속 부여했던 것이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중 하나. 현재 판매중인 4세대 액센트도 미국의 닷지(DODGE)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멕시코에서 닷지 애티튜드(Attitude)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