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 |||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 |||
50px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 60px |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
65px |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 65px |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
55px | 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 55px | 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 |
200px | |
로고[1] | 마스코트 츠바쿠로(つば九郎)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Tokyo Yakult Swallows 東京ヤクルトスワローズ | |
구단 법인명 | ㈜야쿠르트 구단 (株式会社ヤクルト球団) |
창단 | 1950년 1월 25일 |
연고지 | 도쿄 도 |
구단 연고지 변천 | 도쿄 도 (1952~) |
구단명 변천 | 코쿠테츠 스왈로즈 (1950~1965) 산케이 스왈로즈 (1965) 산케이 아톰즈 (1966~1968) 아톰즈 (1969) 야쿠르트 아톰즈 (1970~1973) 야쿠르트 스왈로즈 (1974~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 |
홈 구장 | 고라쿠엔 구장 (1950~1963)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4~) |
2군 구장 | 야쿠르트 토다 구장 (1977~) |
모기업 | 일본국유철도(1950~1965) 산케이 신문(1965~1969) 야쿠르트(1970~) |
감독 | 마나카 미쓰루 (真中満) |
킷 스폰서 | 마제스틱 |
워드마크 | 100px |
일본시리즈 우승 (5회) | 1978, 1993, 1995, 1997, 2001 |
센트럴리그 우승 (7회) | 1978, 1992, 1993, 1995, 1997, 2001, 2015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 2015 |
공식 홈페이지 |
1978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 ||||
1977-한큐 브레이브스 | →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1979-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9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 ||||
1992-세이부 라이온즈 | →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1994-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5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 ||||
1994-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1996-오릭스 블루웨이브 |
1997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 ||||
1996-오릭스 블루웨이브 | →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1998-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2001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 ||||
2000-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2002-요미우리 자이언츠 |
목차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도쿄 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야쿠르트사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팀이다. 운영주체는 야쿠르트이지만 과거 산케이 신문이 구단을 인수, 운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 관계 쪽으로는 여전히 산케이 신문 및 후지 TV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
2 홈구장 : 메이지진구 구장
메이지진구 구장 항목 참조.
3 역사
1950년에 코쿠테츠 스왈로즈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나 1965년 산케이 스왈로즈, 1966~1968년의 산케이 아톰즈, 1969년 아톰즈, 1970~1973년 야쿠르트 아톰즈를 거쳐 1974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바꿨다. 2006년부터 연고명을 구단의 공식명칭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어느 도쿄 팀 때문에 여전히 야쿠르트 스왈로즈라고만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정작 도쿄 자이언츠는 이제 틀린 표기거늘
팀명의 스왈로스(Swallows)는 '제비'라는 뜻으로, 1950년대 일본국철이 메인스폰서였을 당시에 도카이도 본선 도쿄-오사카를 달리던 특급열차의 이름인 츠바메(=제비)에서 따 온 것이다. 참고로 저 열차 이름 "츠바메"는 아직도 큐슈 신칸센에서 쓰고 있다. 어떤 3세대 포켓몬이 아니다! 대충 한국철도 뉴커뮤니티스 같은 작명 센스. 그래서 산케이는 팀을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을 갈아버렸는데, 야쿠르트가 팀을 인수하고 이 이름을 부활시켰다(...).[3]
일본시리즈에서 5회, 센트럴리그에서 7회 우승하였다. 2012년까지 팀 통산전적은 3,803승 4,299패 288무, 승률 0.469이다. 통산 승률은 낮지만 이래뵈도 2015년 현재 일본시리즈 최다우승 4위다.
3.1 태동기(1950~1969, 코쿠테츠 시절)
1950년 일본국철이 노사단결 차원에서 고쿠테츠 스왈로즈로 창단하였으나, 프로 출신 선수가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후 전설적인 대투수인 카네다 마사이치가 입단하였으나 카네다 마사이치 원맨팀이라는 약팀 이미지[4]가 강했다. 저 당시 A클래스에 들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 정부가 관리하는 국영기업인 일본국철의 한계 때문에 선수영입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산케이신문·후지TV의 후지산케이 그룹에 1965년에 인수했지만 여전히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3.2 1970년대
하지만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1970년 야쿠르트사로 인수된 이후 1978년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관리야구로 첫 센트럴리그 우승에 뒤이어 일본시리즈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를 격파하고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5] 에이스 마츠오카 히로무[6], 스왈로즈 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와카마츠 츠토무, 스왈로즈 역사에 길이 남을 핵타선 클린업 오스기 카츠오-찰리 매뉴얼-스기우라 토오루가 이 당시의 주요 선수였다.
3.3 1980~1990년대
- 순위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2 | 4 | 6 | 6 | 5 | 6 | 6 | 4 | 5 | 4 |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5 | 3 | 1 | 1 | 4 | 1 | 4 | 1 | 4 | 4 |
1980년대에 저 황금세대가 대부분 은퇴하여 다시 약체가 되었으나, 이후 1990년대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취임하고서 특유의 ID야구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코시엔 스타 출신 강속구 투수 아라키 다이스케, 神算 후루타 아츠야, 좌우 에이스 이시이 가즈히사와 가와사키 겐지로, 비운의 에이스 이토 토모히토[7]와 마무리 투수 '미스터 제로' 타카츠 신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 이케야마 타카히로와 강타자 1루수 히로사와 카츠미, 톰 오말리, 잭 하웰 등의 클린업이 가세하며 전력이 강해져 일본시리즈에서 3회나 우승(1993년, 1995년, 1997년)왠지 한국의 쌍둥이팀을 보는듯 하다.을 차지하며 스왈로즈 황금시대를 일궈냈다. 그리고 2001년에도 다시 통산 5번째로 우승하였다. 그러고 보니 첫 우승인 1978년을 제외하면 홀수해에만 우승한 게 특징인데 이걸 징크스로 봐야 하나(…).
3.4 2000년대
- 순위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4 | 1 | 2 | 3 | 2 | 4 | 3 | 6 | 5 | 3 |
2000년대 들어서는 90년대 최강 포스는 많이 퇴색하여 01년 우승이후로는 많이 약해졌다. 그후 10년간은 대략 3위가 정위치라는게 대세. 00년대에 이미 인기팀 3강(요미우리, 주니치, 한신)중 한팀이 B클래스가 되면 남는 A클래스 자리를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특이한건 00-10년의 10년간 1위부터 6위까지를 다 경험한 유일한팀. 다만 상위권 6번(1위 1회, 2위 2회, 3위 3회)하위권 4번(4위 3회, 5위 1회, 6위 1회)으로 항상 중박은 치는게 보통이였다.
때문에 전력분석관들에게는 맨날 다크호스 취급. 어차피 5, 6위 베이스를 맨날 깔아주는 히로시마 와 요코하마, 그리고 맨날 2위만 하는 주니치 이 세팀은 매년 그게 그거라 예상하기 쉽고 만년 최강전력인 요미우리, 분위기 타는 한신을 제외하면 가장 순위고 활약이고 점치기 힘든 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LG 트윈스에서 페느님으로 불리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황금기의 끝무렵이던 03년까지 이 팀에서 활약하였다. 그외에는 임창용이나 이혜천, 세스 그레이싱어등을 한국에서 영입하는등 한국과 관련있는 용병이 많아 한국에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니엘 리오스는...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일본시리즈에 진출한 마지막 해인 2001년에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일본시리즈 대결에서 4승1패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영원한 콩라인 긴테츠
3.4.1 2009년 시즌
2009년에는 다테야마 쇼헤이 등 선발진들이 활약하고, 임창용이 7월까지 0.00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잘 나가다가 임창용이 2군으로 내려간 후 한때 5위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임창용이 다시 1군으로 승격한 이후 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다시 재역전하여 2009년 10월 9일에 있었던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1.2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승리, 센트럴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근데, 최종성적은 71승72패1무. 승률이 5할도 안된다. 흠좀무. 그리고 2위 주니치와 맞붙어 2패로 광탈하여 시즌을 끝냈다.
3.5 2010년대
- 순위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4 | 2 | 3 | 6 | 6 | 1 | 5 |
2010년대에도 7년만에 1위부터 6위까지 다 겪어봤다.
2000년 후반부터 부상자에 시달렸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부상 병동화가 옮아온 건지 매년 제 상태로 시즌을 진행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야전병원'(ヤ戰病院)이라 부를 정도이다.
이 시기의 스타선수라면 역시 아오키 노리치카. 다만 아오키가 2011년 시즌 이후 MLB로 건너간 이후 특출난 스타선수가 나오지 않다가, 최근에는 호타준족의 2루수 야마다 테츠토가 아오키를 이어 야쿠르트 등번호 1번의 계보를 이어받으며 간판스타로 활약중이다.
2012년까지 5년연속 꼴찌를 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대신하여 2013년부터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가 2015년 14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3.5.1 2010년 시즌
작년 3위의 흐름을 잇지 못하고 고질병 스러운 부상자 속출에 따른 분위기 다운으로 6월까지 승률 3할 때의 최하위를 달렸다. 결국 타카다 시게루감독이 휴양이라고 쓰고 해임시켜 버리고 당시 2군 감독이던 오가와 준지감독을 1군 감독 대행으로 올렸다.
많은 팬들은 6월밖에 안됐는데 성급한 거 아니냐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스카우트 출신이라 선수 보는 안목이 있었고 2군 감독 경험이 길었던 오가와 감독이 정말 빠르게 팀을 수습하여, 안좋은 흐름을 끊었다. 아오키 노리치카를 다시 1번으로 돌리고, 만년 후보였던 하타케야마 카즈히로를 과감히 4번에 기용하는등, 선수층을 제법 많이 물갈이 하여 이게 적중하였고 부상자 대신 2군에 있던 젋은선수들을 대거 기용해서 좋은 흐름을 잡았다.
결국 6월까지 거의 반시즌을 말아먹어 놓은 탓에 A클래스 진입은 실패했지만, 당시 3위던 한신 타이거스와 시즌 마지막까지 0.5게임차의 치열한 경쟁을 벌일정도의 저력을 발휘했다. 순수하게 오가와 감독이 지휘하던 시기의 성적만 뽑으면 승률 6할을 넘어 다음 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3.5.2 2011년 시즌
상술한 홀수해 징크스일 수도 있는 것이 2011년 한때는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니 전년 후반기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초반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을 선두권에서 보냈다. 특히 7월에는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 10게임차가 나는등 거의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8월부터 선발진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 그동안 잘 치던 클린업이 방사능을 먹었는지 급 선풍기 화 하면서 망했어요. 결국 9월말에 2위 주니치와 원정 4연전에서 1승 3패로 참패를 당해 1위를 내준후, 그대로 DTD하여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에게 2승 1패로 힘겹게 이겨 올라갔지만, 클라이맥스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주니치에게 어드밴티지 포함 2승 4패로 패퇴했다.
그리고 2위면서 득점보다 실점이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3.5.3 2012년 시즌
이제는 말하기도 지겨운 팀 전체의 스페랑카화가 절정에 달한 해였다. 임창용을 포함하여 주력급 부상 이탈자가 11명에 달하는 안습한 상황. 이중 절정은 주전포수 아이카와 료지인데, 4월에 한번 약 1개월 반을 골절상으로 이탈한 걸로 부족했는지 8월에 또 한 번 골절(…). 2ch에서는 골밀도 드립까지 나올 정도로 개그를 자아냈다.
말이 부상이탈 11명이지 부상자로만 팀 하나가 나올 지경(…). 이 때문에 4월을 선두로 마쳤으나 교류전에서 무섭게 DTD를 시전하여 교류전 최하위로 한때 5위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왜 DTD했는데 5위냐고? 에이, 꼴찌가 어딘지 알면서
그래도 이 와중에 각종 신인들과 2012년 NPB 최고 대박 외국인으로 투신타병투고타저속에서 1년차에 3할을 찍은 라스팅스 밀렛지, 백업포수였던 나카무라 유헤이의 분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여태까지 백업에만 그쳤던 타카이 유헤이, 매년 구단 전통스럽게 존재하던 신인 좌완 2년차 캐망(…) 징크스를 그럭저럭 잘 극복한 아카가와 카츠키, 어깨 빠지도록 애니콜로 등판한 우완 오시모토 타케히코와 좌완 히다카 료등등, 왠지 타팀에서 보면 듣보잡들이 하나 둘씩 갑툭튀하여 활약하였다.
그 결과 15년만에 B클래스 탈출을 꿈꾸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9월 초에 결국 끌어내려서, 시즌 종료시 68승 65패로 3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히로시마는 DTD를 체험하며 비밀번호 15자리를 기어이 찍고 만다.
재밌는 건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했다는 점. 2위 주니치는 항상 중요할때 야쿠르트에 발목을 잡혀서 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12구단중 가장 분전한 편. 반면에 만인의 호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는 10패나 퍼주는 인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요코하마의 첫 3연전 스윕이자 마지막 스윕도 한번 선물해줬고. 오오 의적 야쿨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상대전적 및 나고야돔 전적에서 앞서고 주력 이탈로 해볼만 하다고 평가되던 주니치와 맞붙었으나, 부상 복귀한 주력급들의 컨디션과 경기감 난조로 3시합동안 3점밖에 못내는 빈타에 허덕이다, 결국 3차전 8회말에 주니치 4번 블랑코에게 역전 만루홈런 한방 쳐맞고 격침. 1승 2패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퇴하며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3.5.4 2013년 시즌
선발진을 보자면 4월초부터 에이스 다테야마 쇼헤이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며 시즌 아웃되었지만,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가 두 자릿수 승리(8월 23일 기준 12승으로 다승 선두)와 2점대 자책점으로 선발진을 지탱해 주고 있다. 이시카와 마사노리가 방어율 3.45,리그 10위(8월 23일 기준)로 오가와의 뒤를 이어 분전하고 있지만 3승 7패, 승률 3할의 안습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더 안습한 것은 실점이 54점인데 자책점이 41점으로 13점이나 차이난다. 이게 다 타자들 때문이다 3선발이라 할 수 있는 신인(2011년 입단이지만 풀타임 선발은 올해가 처음) 야기 료스케도 방어율이 3.62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5승 8패로 승률 5할이 안된다. 작년 그럭저럭 성적을 냈던 아카가와는 3년차가 되더니 탈탈 털렸고, 아카가와와 비슷한 성적을 냈던 무라나카 쿄헤이는 4승 7패, 방어율 4.53으로 애매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중계-마무리를 보자면 작년 33세이브와 1.82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임창용의 공백을 메꿨던 토니 바넷은 불놀이를 하며 7점대 자책점에 1승 7패로 충격과 공포의 성적을 올리며 마무리 자리를 뺏겼다. 부상 후 돌아온 셋업맨 마츠오카 켄이치도 마찬가지로 7점대 자책점(...). 작년 분전했던 오시모토도 5.70의 방어율로 망했고, 히다카 료는 2경기 16.20의 막장스러운 성적만을 기록한 채 사라졌다. 신인 이시야마 다이치가 21홀드포인트, 작년 1.21의 방어율로 갑툭튀한 야마모토 테츠야가 12홀드-11세이브로 팀의노예중심계투 역할을 맡고 있다.
타자진을 보자면 발렌틴과 여덟 난쟁이 수준이다. 오릭스냐 8월 23일 기준 규정타석에 들어와 있는 선수는 발렌틴, 하타케야마 가즈히로 세 명밖에 없다. 발렌틴이 0.332(3위)/0.452(1위)/0.786(1위) 44홈런(1위,8월 22일 45,46호를 쳤지만 공식 사이트에 반영이 되지 않음) 96타점으로 리그를 씹어먹고, 30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일본 신기록 갱신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밀렛지(0.251/0.329/0.436 16홈런 49타점)와 하타케야마(0.221/0.282/0.376 12홈런 51타점)는 잉여롭기 그지없다. 기준을 200타수로 낮춰도 선수들 중에서도 3할은 여전히 발렌틴 혼자며, 2할7푼대 선수도 세 명, 발렌틴을 제외하면 두 명밖에 없다. 그나마 밀렛지는 중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야쿠르트의 2013 시즌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팀 평균자책점/타율 모두 센트럴 리그 5위에 위치해 있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시즌 초반에는 4할 중반대의 성적으로 혼전의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었으나 교류전에서 3할(7승 16패,0.304)의 승률을 거두며 12개 구단 중 11위[8]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DTD를 시전 중. 그나마 이번 시즌 센트럴 리그 자체가 2강 4중4약이라서 3위 히로시마와의 경기차가 6경기밖에 안나는 것이 그나마 희망이라면 희망이라 할 수 있었으나...
시즌 최종 성적은 144전 57승 83패 4무(승률 0.407)로 1위 요미우리와 28.5게임, 3위 히로시마와 11.5게임차 꼴지를 차지하며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6년 연속 꼴찌를 막아줬다. 고마워요 야쿠르트
시즌 후 남은 것은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아시아 최초 60홈런 달성[9]과 대졸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의 단독 다승왕과 승률왕, 그리고 신인왕 .[10] 시즌 중반기부터 털리긴 했어도 새롭게 발견한 선발 야기 료스케와 이시야마 다이치, 야마모토 테츠야의 발견정도가 희망이라 할 수 있다. 19년 동안 뛰며 내야의 철벽수비를 책임진 레전드 미야모토 신야까지 은퇴하며 2013년의 야쿠르트는 정말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3.5.5 2014년 시즌
팀의 레전드인 타카츠 신고가 투수코치로 팀에 복귀했다.그러나 투수진은...
4월 22일 기준으로 팀 ERA가 5.95라는 초월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순위는 밑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깔아주고 있는 덕에 꼴찌는 아니지만 서로 겨우 1경기 차이며,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경기차가 꽤 나고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팀의 승수의 반절을 책임지고 있던 소년가장 오가와 야스히로가 18일 선발등판 도중 3회에 오른손에 강습타구를 맞고 골절상을 입어 완치에만 최소 6주가 걸린다는 정밀진단이 나왔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결국 걱정은 현실이되서 교류전에서 한신,카프와 함께 리그 만년 꼴찌라기엔 오히려 야쿠르트보다 잘하고 있는 베이스보다 낮은 성적을 남기며 시원하게 망했다.
원래 칠때 시원하게 치고, 못칠땐 더럽게 못치던 불량다이너마이트 타선이 8월 들어서면서 말그대로 폭발. 연속시합 2자릿수 안타, 8월 팀평균 타율이 4할대에 근접하는등 미친듯한 공격성을 보여주고 있다.투수진을 제물로 삼아 공격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는 수준의 시합들을 벌이고 있는데, 8월 5일 한신전에서는 패배했지만 한신의 메신저를 상대로 20-11(...)[11],그 후 8월 7일에는 13-4, 지금까지는 은행 취급 당하면서 털리던 요코하마를 8 월8일 12-3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런팀이 왜 리그 꼴찌인거냐는 한탄이 팬들사이에서 터져나오게 만들었다.왜긴 왜야 투수진이 노답이니까 그런거지
하지만 여전히 투수진은 답이 없었고 9월 29일 히로시마 원정경기에서 패하며 2년 연속 꼴찌 확정. 1위 요미우리와는 21게임차, 5위 요코하마와는 6.5게임차로 2년 연속 꼴찌확정. 타선은 타출장 0.279(1)/0.339(1)/0.412(2)로 리그 최상위의 성적이고 규정 타석 채운 3할 타자가 5명에 20홈런 이상도 3명으로 리그 톱의 성적을 달렸다. 2루수 주전자리를 차지한 야마다 테츠토는 타출장 0.324(3)/0.403(4)/0.539(3)의 비율스탯과 29홈런 89타점 106득점 15도루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트렸다.[12] 수비만 믿고 본다던 외야수 유헤이[13]도 3할-20홈런을 치는 대활약으로 베스트나인에 선정. 다만 지난 시즌에 대활약을 했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112경기동안 31홈런 69타점이라는 해괴한 성적으로 기대에 못미친것이 흠.
문제는 투수진. 문자 그대로 붕괴수준이다. ERA 4.67로 혼자서 다른 세계서 놀고 있다.[14]선발진에선 에이스 오가와는 시즌 중 부상을 당하고나서 롤러코스터 피칭, 한때 에이스던 이시카와는 선발 로테이션을 유일하게 지키긴 했지만 커리어 로우, 작년에 발견했던 선수들도 폭망. 그래도 아키요시 료[15] 라는 신인이 불펜을 지탱하며 또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다음년에 퍼지지 마라... 결국 오가와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며 쓸쓸하게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됐다.
3.5.6 2015년 시즌
2년 연속 최하위에서 14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
오가와 감독의 뒤를 이어 수석 타격코치던 마나카 미쓰루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FA시장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에이스였던 나루세 요시히사를 3년 6억엔에 영입했다. 일부에서는 장원준보다도 싸다면서 KBO 팀에서도 영입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답이 없는 투수진에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겠지만, 2013, 2014 시즌을 말아먹은 전력에서 보면 또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애초에 원소속팀이던 지바에서도 1년 계약을 제시했을 정도니. 또한 주전 유격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닛폰햄에서 베테랑 유격수 오비키 케이지를 3년 3억엔에 데려왔다. 나카무라 유헤이에게 주전 포수를 내준 아이카와 료지가 FA를 선언, 교진으로 이적했다.
시즌에 들어서면서 주전 외야수인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라스팅스 밀리지 가 둘 다 부상으로 이탈하고 마는 악재를 겪었다. 그런데 작년의 투수붕괴를 우려했는지 타선 강화는 아예 포기하고(...) 그냥 투수에, 특히 불펜에 외국인 선수들을 올인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일단 미치 데닝이라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외국인 타자를 한 명 데려오긴 했는데 1군 최저연봉 1440만엔의 1/4밖에 안 되는 연봉 360만엔(...)이라는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 투수진은 개막 후 14경기 연속 3실점 이하를 기록하여 1956년 니시테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리그 시작 초반에는 과연 작년과 같은 팀인지 의심이 들만큼 일취월장한 투수력과 밀리지와 발렌틴이 빠졌음에도 강력한 타선으로 인해 상위권을 질주. 4월 중순까지 리그 1위를 유지하는 등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5월 초부터 재작년부터 발목을 잡던 투수력이 다시 하락하며 9연패를 하는등 극심한 부진을 겪으면서 순위도 수직하강. 한때는 최하위 자리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당했지만, 교류전 돌입과 함께 살아나면서 팀 승률 5할 전후를 유지하는 중. 리그 1,2위인 교진과 DeNA가 한신, 야쿠르트와는 반대로 교류전에서 나란히 망하면서 승패 득실을 엄청나게 깎아먹은지라 어부지리로 A클래스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타선의 경우 외국인 2명의 이탈 외에도 유헤이를 비롯한 작년 주전들의 부진, FA 오비키의 먹튀화 등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으나, 타선의 축인 야마다 테츠토가 여전히 날아다니면서 퍼시픽의 야나기타 유키에 비견될 정도의 활약을 펼치고 있고, 야마다,야나기타 모두 트리플스리(3할 30홈런 30도루 이상)을 노리고 있다. 하타케야마가 1년 활약하고 10년 동안 뒷골 땡기게 하다가 FA를 앞둔 이제야 각성해서 리그 홈런왕 페이스로 장타를 쳐주고 있으며 만년 내야유틸이던 아라나미가 프로 8년차만에 뜬금 각성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도 제법 있어서 작년 만큼의 폭발감은 아니지만 리그 평균 수준은 해 주고 있다. 360만엔의 남자 미치 데닝은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동점홈런, 역전 만루홈런을 기록하면서(두 경기 다 역전승) 연봉 치고는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사실 야쿠르트가 잘 친다기보단 한신과 교진 타선이 워낙 망해서 리그 중간이라고 봐야겠지만(...).
투수진은 리그 반환점도 안 돈 시점이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으나, 교류전까지의 성적은 매우 양호한 편. 약한 타력을 괜찮은 투수력으로 보완해서 그럭저럭의 성적을 내던 야쿠르트의 과거 팀 컬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13년에 완전 망하고 14년에도 미묘한 성적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토니 바넷과 올란도 로만이 귀신같이 동시에 부활하고, 새로 1군 외국인 자리를 채우게 된 로건 온드두섹 역시 리그 최상위 셋업으로 활약하고 있다. 불펜의 안정화에 힘입어 선발진도 오가와, 이시카와의 에이스카드 2장이 살아나면서 작년에 비하면 그럭저럭 봐줄만 한 성적을 찍고 있는 중. 그리고 올해도 변치 않고 피홈런왕을 노리는 나루세와(주니치의 가쓰라 이오리,한신의 에고시 다이가,DeNA의 다카조 슈토에게 연속으로 프로 첫홈런을 허용하였다) 폭투왕을 노리는 아라카키
이렇게 타선도 투수진도 나름 살아나면서 5할에서 겨우 +2이던 한신에게 싹쓸이 승을 거둬 7월 3일 기준으로 팀득점 2위, 팀 평균자책점 3위를 찍으면서 리그 단독 1위에 올라섰다. 정작 팀득점 1위 팀평자 2위의 히로시마는 5위지만 그렇지만 세리그 자체가 2, 3, 4, 5위까지 1위와 반게임차라는 카오스에 빠져버렸다. 사실 6위 주니치와도 4게임차밖에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역시 교류전에서 세리그 모두가 망한 탓이 크다. 졸지에 거인의 최대 천적과 함께 선두권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8월 17일 현재 5할에 겨우 +1임에도 불구하고 교진에 승률이 조금 앞서 세리그 2위 자리에 앉았다.
9월 22일 현재 약 10경기를 남기고 있는 상황에서 2, 3위 교진, 한신에 2경기 앞서 1위를 사수중. 한신과 교진이 분위기가 안좋아지는 와중에 유일하게 승수를 쌓고 있어 우승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9월 25일 기준으로 2위 교진과는 2게임 차, 3위 한신과는 4.5게임 차이며, 이 날 4위 히로시마가 한신에게 3-0으로 패하면서[16] 3시즌 만에 A클래스 복귀를 확정지었다. 매직넘버는 5.
9월 26, 27일에 열리는 교진과의 원정 2연전은 2015시즌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시리즈이다. 교진이 2연전을 쓸어담을 경우 승차가 없어지게 되고,[17] 야쿠르트가 2연전을 쓸어담으면 4게임 차가 되며 매직넘버가 1이 된다! 그렇게 맞이한 2연전에서 26일 경기는 3-4로 패, 27일 경기는 2-1로 승리하여 1승씩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매직넘버는 3.[18] 9월 28일 주니치와의 홈 경기에서 2-6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교진은 한신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매직넘버가 1로 줄어 14년만의 세리그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기게 되었다! 과연 우승의 제물은 히로시마와 한신 중 누가 될 것인가 9월 29일 히로시마와의 홈 경기는 4-2 패배를 당했다. 매직넘버는 아직 1. 일단 폭탄돌리기 성공한 히로시마 하지만 한신이 승리하면 폭탄은 다시 히로시마에게로[19][20]
10월 1일 경기는 일본 전역에 비가 오면서 센트럴 리그 경기가 모두 취소되었다.[21] 야루르트 VS 한신 경기는 10월 2일에, 교진 VS DeNA 경기는 10월 3일로 편성되었다. 결국 10월 2일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 한신전에서 11회 연장 승부 끝에 6번 타자 유헤이의 끝내기 안타로 1-2 승리, 14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10월 14일부터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의 상대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결정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된 이후 난생 처음 리그 우승팀의 입장에서 어드밴티지 1승을 먹고 자신만만하게 임했건만 믿었던 불빠따가 전부 배신을 때리면서 상대팀 투수인 우츠미 테츠야의 역투에 제압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물빠따 상대팀의 4번타자인 사카모토 하야토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하는 등 1대4로 패배. 기껏 1승을 먹고서도 1경기만에 1승1패의 동률 상황이 되면서 일본시리즈 진출 플랜이 어긋나게 됐다. 어드밴티지가 아깝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에서 오가와와 바넷의 계투로 요미우리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고 4회말 하타케야마의 희생플라이와 유헤이의 땅볼로 2점을 선취하고 6회말에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2타점 적시타로 추가점을 내면서 4대0으로 승리. 다시 2승 1패로 앞서나갔다. 이어진 3차전에서도 선발 다테야마의 6이닝 무실점을 비롯하여 필승조들의 계투로 2경기 연속 영봉승을 기록하면서 2대0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을 3승 1패로 만들었다. 다음날 열린 4차전은 초반 상대팀의 야수선택과 실책성 플레이를 틈타 3점을 선취했으나 5회초에 상대팀 타선에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했던 아베 신노스케의 2타점 적시타로 1점차로 추격 당했다. 이어진 7회초 1사 1, 2루에서 이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7할에 가까운 맹타를 휘두르고 5회초에도 적시타를 때렸던 요미우리 타선의 유일한 희망 아베를 투수땅볼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분위기를 굳혔다. 결국 8, 9회 요미우리의 공격을 무난하게 넘기고 어드밴티지 포함 4승 1패의 전적으로 14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서는 상대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압도적인 전력을 뛰어넘지 못하고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일본시리즈에 관해서는 2015년 일본시리즈 항목 참조.
3.5.7 2016년 시즌
우승의 단꿈에서 깨니 다시 B클래스로 추락
전년도에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3연전을 시원하게 3연패하면서 좋지 않은 스타트를 끊었다. 허나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홈 3연전에선 1차전 오가와 야스히로의 완투승, 2차전 이시카와 마사노리의 7이닝 1실점 호투로 2승 1패 위닝시리즈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작년의 우승은 플루크였다고 자백하는 듯 막장화의 길을 걸으면서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쳐졌다. 특히 투수력의 붕괴가 눈에 띄는데 전년도에 맹활약하면서 투수진의 기둥역할을 한 불펜의 외국인 투수 트리오는 완전히 해체되었고[22] 후반기에 자리를 잡는 듯 했던 선발 로테이션도 완전히 망가졌다. 전년도 드래프트 당시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유난히 주목을 받은(...) 도요 대학 출신의 드래프트 1위 하라 주리[23]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이다. 그나마 하라가 로테이션 투수에 걸맞는 활약이라도 한다면 성공한 드래프트라고 칭찬이라도 하겠지만, 현실은 정말로 로테이션을 채울 수 투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직 기량이 완성되지 못한 신인을 억지로 로테이션에 쑤셔넣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수준.
시즌 개막부터 주력들의 줄부상으로 팀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이다. 팀에서 제대로 활약하는 선수라고는 전년도에 완전히 포텐셜이 만개한 주포 야마다 테츠토나, 오릭스 버팔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몇 년간의 부진으로 방출된 것을 중견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주워온 사카구치 토모타카, 비율스탯은 그냥저냥이지만 홈런은 잘 치는 블라디미르 발렌틴, 장타력은 거의 없지만 야마다 앞에서 안타라도 잘 치고 나가주는 가와바타 싱고 정도. 그나마 가와바타도 후반기에 들어와서 부상으로 결장중이다.. 야마다는 전년도에 이어 홈런 1위, 도루 1위에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찍으며 팀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도루까지 포함해서 타격 8관왕에 도전 중. 하지만 투수진은 그야말로 멸망.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팀 평균자책점이 5점대를 찍으면서 리그 탑급의 공격력을 가지고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최하위인 상태로 교류전에 돌입했다. 리그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세리그가 전반적으로 혼전 양상이라 교류전 돌입 당시 1위와 단 5.5게임차. 그렇다고 희망을 가질만한 상황이냐 하면 그렇게 보기도 힘든 것이 5월 내내 최하위에 고정되어 순위와 게임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 이대로 가면 작년에 시즌 내내 클라이맥스 시리즈 추격권은 유지했지만 결국 추격만 하고 끝난 히로시마 꼴로 최하위를 못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교류전에 들어와서는 모두의 예상대로 퍼시픽 리그 팀들의 보약 노릇을 하면서 교류전에서도 최하위로 쳐져 있다. 퍼시픽리그 여러분들 시원한 야쿠르트 하나 드시고 가세요. 교류전 들어가기 전에도 나빴던 성적이 교류전 와서 더욱 나빠졌다. 문제는 저 3승 9패가 전년도 일본시리즈의 맞상대이자 전년도보다 더 잘나가며 센트럴리그 팀들에게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취급을 받는(...) 소프트뱅크와는 아직 붙지도 않은 상태의 성적이라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대로 가면 최근 4년동안 최하위만 3번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쓸 가능성이 높다. 그 최하위를 안한 한 해가 우승이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소뱅에게 당연히 루징시리즈를 기록했고 이어진 사이타마 세이부에게도 루징을 기록하면서 6승 12패로 교류전에서 오릭스 버팔로즈와 최하위권에 쳐져있다. 2015년 일본시리즈? (웃음)
외야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팀을 거쳐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하재훈과 계약하였다.관련기사. 6월 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날인 9일 일본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애초에 줄부상당한 주전 외야진의 공백을 잠시 메꾸는 수준의 보험용 계약이었는지라 데뷔 10일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24]
6월 14일 시점에서도 여전히 리그 최하위를 순항중. 그래도 교류전 시작 전까지 1~5위가 2.5게임차 이내 혼전인 와중에 야쿠르트 혼자 독보적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던 때에 비해 교류전 사이에 히로시마는 쭉 치고 올라가고 나머지 세리그 팀은 부진하면서 많이 추격한 상황이다. 물론 아직 탈꼴찌는 하지 못하였으나 7월 2일 기준으로 2위인 DeNA와 단 2게임차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리고 7월 3일, 한신의 부진으로 최하위를 드디어 탈출했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 한신과의 단두대 매치 맞대결에서 연패하면서 다시 최하위로 추락. 38승 1무 49패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히로시마를 제외한 모든 팀의 DTD 덕분에 상위권 추격의 가능성은 있지만 팀 전력이 받쳐주지를 못하기 때문에 후반기에 극적인 분위기 반전이 없는 한 한신과의 최하위 탈출 경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7월 22일~24일 나고야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며 주니치를 끌어내리고 4위 등극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A클래스보다는 최하위가 더 가까운 승차이긴 하지만 마냥 최하위권에 있던 시절보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8월에 차곡차곡 승을 쌓으면서 DTD를 시전한 한신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고 9월 시점에서 3위 요코하마를 맹추격하고 있다.
6경기 남은 기준으로 최소 4승을 해야 6강을 바라볼 수 있다. 3패하는 순간 요코하마 DeNA 승률을 앞설 수 없으므로[25] B클래스가 확정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 9월 18일 주니치에게 8-1로 대패한데다 DeNA가 그날 6-3으로 승리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결국 경기가 없던 9월 19일에 DeNA가 히로시마를 잡으며 야쿠르트는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막판 계속해서 패배를 거듭하며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했다.
4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연 평균 | 1,322,678명 (-1.9%) | 1,432,695명 ( +8.3%) | 1,438,775명 (+0.4%) | 1,657,511명 (+15.2%) | 1,779,460명[26] (+8.9%) | |
일일 평균 | 18,321명 | 19,899명 | 19,983명 | 23,021명 | 25,063명[27] |
5 인기
같은 연고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비해 팬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며. 대부분의 경우 메이지진구 구장 홈 경기에서도 원정 온 구단의 팬들이 더 많다고 한다. 전반적인 인기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센트럴리그 구단중에선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특히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아예 그냥 한신 홈구장처럼 되어버린다. 비슷한 예로 요코하마 스타디움과 오릭스 버팔로즈의 홈구장 오사카 돔도 한신전이 있는 날에는 한신 팬들의 숫자가 더 많아서 한신 홈구장이 되어 버린다. 오사카가 괜히 한신국이 아녀. 게다가 2013년 이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경기에서도 히로시마 팬들이 더 많이 올 정도이다(...).
전국구까지는 아니어도 지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주니치 드래곤즈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달리, 야쿠르트나 요코하마는 공룡 구단 교진이 먹다 남긴 것이나 다름 없는 도쿄와 그 인근의 팬베이스를 갖고 있으니 오히려 빅마켓에 자리한 것이 불리한 상황. 하지만 과거 도쿄돔에 있을때 닛폰햄 파이터즈 나 요코하마보다는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구축하고 있고 성적도 그나마 나은 편이라 상황이 나은 편이다.
다만 진구구장에 한신 타이거스 굿즈샵이 먼저 들어왔다는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정확히는 진구구장 내에는 어느 구단의 굿즈 샵도 없었다. 이는 진구구장 자체가 야쿠르트 구단 소유의 구장이 아닌 아마추어 야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특정 구단의 굿즈샵 입점을 금지시켜 놓았기 때문. 한신 굿즈삽 얘기가 와전된 것은 진구구장 길목에 한신 팬클럽 소유의 점포가 있는데 이게 진구구장에서 제일 가깝고, 처음에 코쿠테츠 시절에는 공식 굿즈샵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
그래서 야쿠르트 구단에서 구단 공식 굿즈를 시합 시작 4시간전부터 종료후 1시간까지 임시 천막을 세워서 팔았으나, 2014년 5월 25일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이 오픈했다! 명칭은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 1호점 스타디움거리점으로 가이엔마에역에서 진구구장으로 가는길 도중 오른쪽을 보면 계단을 조금 내려가 반지하식으로 굿즈샵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7월 21일에는 2호점인 츠바쿠로점이 오픈했다. 진구구장 뒤쪽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입구 간판이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굿즈샵이 보인다. 츠바쿠로점의 특징은 이름에 걸맞게 굿즈샵 가운데에 떡하니 서있는 마스코트 츠바쿠로의 등신대 장식물. 홈경기가 있는 날 굿즈샵에선 이 등신대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참고로 진구구장은 수도권 구장중에서는 표값이 가장 싼편으로, 요미우리, 한신이 원정왔을때만 지정석을 살짝 올려받긴 하지만 그 올려받은 게 다른 구장이랑 비슷한 수준의 저렴함을 자랑한다. 티켓 가격에 있어서는 굉장히 양심적인 운영을 하는편. 게다가 거인/한신 올려받는것도 귀여운 수준인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정작 한신전인 경우는 가장 싼 지정석이 아예 없어진다. 그리고 도쿄돔은 어린이 요금도 없어서 가족끼리 가도 짤없이 성인요금 다 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난민마냥 제대로 보기도 힘은 입석을 논외로 치면 일본내에서 가장 비싸게 받는 수준이며, 한신의 경우도 요미우리 원정에 한해서 특별요금이 적용되는 등, 인기 카드 특별요금이 있다고 해서 진구구장이 비싸다는건 그야말로 사실왜곡수준.
참고로 그 올려받는다는 지정석도 올린 가격으로 1, 3루 불펜 바로 옆자리가 4천엔으로, 구장마다 특색이 있으니 1:1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보통 다른 구단이면 기본 5-6천엔 하는 자리를 저정도 가격에 제공한다.
득점을 하거나 7회 아래의 도쿄온도를 부르며 '럭키 세븐' 응원을 할 때는 팬들이 비닐우산을 펴서 응원한다. 아래 항목에서 민요노래에 맞춰서 우산을 흔드는 식으로. 여기에는 수가 적은 홈팀 관중 수를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과, 비싼 응원도구를 살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건 아래에서 설명할 오카다 마사야스 씨와 관계가 있다.
6 유니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유니폼 항목 참조.
7 응원가 : 도쿄온도(東京音頭)[28]
대표적인 응원가는 도쿄온도(東京音頭). 특이하게 타령조 민요를 응원가로 쓰고 있다. 이것은 사실 응원가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원래 니시조 야소(西條八十:1892~1970)가 1933년 작곡한 유행가였는데, 야쿠르트가 처음으로 우승한 1978년부터 스왈로즈의 응원가로 쓰였다. 당시 한 사설 응원단의 단장이었던 오카다 마사야스(岡田正泰)[29]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이전 롯데 오리온즈가 1960년대 도쿄를 홈으로 쓸때는 롯데의 응원가였다. 그리고 현재 J리그에서도 도쿄를 본거지로 쓰는 FC 도쿄의 응원가이기도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전주랑 간주 부분에 "くたばれ讀賣~ くたばれ讀賣~ (죽어라 요미우리)"라는 추임새를 넣는다. 참고로 저 '죽어라'도 좋게 번역해서 '죽어라'이지, 실제 어감을 살려서 번역하면 '뒈져라', '엿먹어라'에 가깝다. 영어의 Fuck You를 일본의 영어사전에서는 뜻풀이를 이 말로 할 정도이다. 특히 위 도쿄온도 작곡, 작사자의 후손[30]이 저 추임새를 넣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고. 당연히 정식 응원가 가사도 아니고 공식 응원단에서는 저거 넣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부를 사람들은 꿋꿋히 부른다. 야쿠르트 응원단에서는 저 부분에 東京ヤクルト, 즉 '도쿄 야쿠르트'를 넣어 부를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소용없다 애초에 길고 라임도 잘 안맞는다 저렇게 하면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요미우리 외의 다른 팀(특히 한신)과의 진구구장 경기에서 7회말에 이 노래가 나오게 되면 저 부분만은 양팀 팬들이 일제히 합창을 한다. 한신 팬들이 더 크게 부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요미우리와 야쿠르트가 격돌하면, 요미우리 팬들은 도쿄온도에 맞춰 "죽어라 한신"을 외친다고 한다(...)
참고로 요미우리는 상용한자인 読売보다 구자체인 讀賣로 썼을때 더욱더 비하의 의미가 강하다고 해서 안티 요미우리 세력들(특히 한신)이 애용한다.(...) 이유는 불명.
한신 타이거스 방문 경기 때 3루 한신 응원석에서 찍은 동영상이고, 원정이든 홈이든 다 같이 부르고 있다(...) 위아더 월드!くだばれ讀賣
가사
ハァ 踊り踊るなら チョイト 하아 춤을 추려면 살짝쿵 東京音頭 ヨイヨイ 도쿄 타령 좋다 좋아 花の都の 花の都の真中で サテ 꽃의 도시 꽃의 도시 한가운데서 그러면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얼씨구 절씨구 좋다 좋아 좋아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얼씨구 절씨구 좋다 좋아 좋아 |
센트럴 리그 올스타전 때는 5개 구단 팬들이 대동단결하여 합창으로 くたばれ讀賣 죽어버려 요미우리 를 외친다! [31] 위 아 더 월드 그리고 2011년 올스타전[32]에서는 리그 개막 전 대형 사건을 치고 난 자이언츠였던 터라 11개 구단 팬들이 일제히 죽어버려 요미우리를 떼창했고, 그 다음 자이언츠 응원가가 나오자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이후 올스타전 응원가 메들리에서는 응원가를 도중에 잘라 야유가 나오지 않도록 편집하고 있다.[33]
2015년 야쿠르트 공식 응원단이 '죽어라 요미우리'를 외치는 관습(?)을 제발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이언츠 응원단측에서 우리한테 도대체 왜그럼?몰라서 묻나라고 하소연을 해오기도 하고, 몇몇 경기에서 격분한 자이언츠 팬과 야쿠르트 팬사이에 난투가 발생하기도 해서 더 이상은 간과할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 정착된 문화라 아직도 팬들은 상관없이 부르고 있고(...), 야쿠르트 선수 출신 해설자가 자이언츠측의 빈볼에 격노해서 본분을 잊고 요미우리를 욕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두 구단이라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심지어 퍼시픽리그 팬들도 따라 부른다. 교류전에서 도쿄온도가 나올 때 죽어라 요미우리와 함께 따라 부르는 건 이미 하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을 정도. 특히 고라쿠엔 구장, 도쿄돔에서 2004년까지 전세살이를 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도쿄 동부와 치바 현이 팬베이스인 치바 롯데 마린스, 요미우리와 80년대 일본시리즈에서 자주 만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팬들이 크게 따라 부른다. [34]
천조국에 Yankees Suck이 있다면 열도에는 くたばれ讀賣가 있다.
8 한국인 선수
우리나라 선수인 임창용, 이혜천이 2000년대 후반에 플레이한 것이 가장 큰 인연이다. 임창용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다. 임창용이 '미스터 제로'로 불릴 정도로 정상급 활약을 펼쳤고, 임창용이 등판하면 2ch 야쿠르트 응원 스레드가 '임'(イム)으로 도배가 된 적도 있었다.[35] 임창용은 11년까지 부동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으나, 2012년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몇 경기 못던지고 시즌 아웃. 결국 퇴단하고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이혜천은 좌완 중간계투로 2년간 그럭저럭 활약하다 귀국했다. 이후 한국인 선수와는 인연이 없다가 2016년 5월에 시카고 컵스 마이너,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외야수 하재훈과 계약하였다.
그 외에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LG 트윈스에서 활약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대표적인 야쿠르트 출신의 외국인 선수. 한국에서 뛰던 용병을 데려가 성공한 사례도 있는데, KIA 타이거즈에서 뛰던 걸 데려와 야쿠르트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세스 그레이싱어가 있다. 하지만 다니엘 리오스는...
팀 역사를 빛낸 선수들 중에도 재일교포 선수들이 눈에 띈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다승(400)과 탈삼진(4,490) 1위 기록 보유자인 '덴노' 가네다 마사이치가 대표적이다.
9 이모저모
- 마스코트는
펭귄 닮은제비인 츠바쿠로[36], 츠바미[37]가 있다. 사진의 오른쪽의 슬림한 제비인 엔타로[38]가 있었으나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하여 '한 마리 평범한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산케이 아톰즈일때는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을 마스코트로 쓰기도 했다.
- 츠바쿠로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도아라와 쌍벽을 이루는 4차원 캐릭터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연봉은 야쿠르트 터프맨 무제한 제공, 1만엔 + 성과급. 2012년 시즌 종료 후엔 구단 마스코트 주제에 FA를 선언하기도 했다...가 철회했다. 2012년 연봉협상 장면(...) 2014년 시즌 후 야쿠르트는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선발 투수 나루세 요시히사를 영입했는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보상선수, 아니 보상조(鳥)로 츠바쿠로를 요구했다. 심지어 보상선수에 츠바쿠로가 없다는 것을 확인까지 하고 요구했다(...). 당연히 스왈로즈에서는 팀 전력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거부.
그리고 이걸 본 한국의 모 야구단 마스코트와 모 축구단 마스코트들이 따라하는데..2016년에는 반다이의 S.H. 피규어아츠에서 츠바쿠로의 가동식 피규어가 제작되었다. 피규어 홍보 페이지.
- 이 구단의 대표적인 팬으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산케이 아톰즈 시절부터 팀을 응원했고, 이 팀 소속의 외국인 타자였던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진구구장 외야석에서 반년 동안 썼다고 하니 대단한 열성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해(1978년)에 야쿠르트는 구단 사상 첫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당시 쓴 짧은 수필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해'에는 약팀을 응원하는 팬의 심정이 절절히 드러나있다.(...) 2013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클럽 명예회원에 위촉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글을 한 편 남기기도 했다.'구장에 가서 홈 팀을 응원하자'
- 또한 H2로 유명한 아다치 미츠루도 스왈로즈의 열성 팬.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야쿠르트 팬클럽 모집 일러스트##나 팬 클럽 카드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야쿠르트의 선수들을 모티브로 한 듯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H2에서 히로의 친구이자 포수로 나온 노다 아츠시는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인 후루타 아츠야를 모티브로 했으며, 크로스게임에서는 아예 특정 선수가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서 언급된다. 그 선수의 이름은 이가라시 료타. 일본인 최초로 당시 최고구속인 158Km를 찍은 강속구 투수이자 작중에서 언급되는 '시속 160km를 던질 수 있는 남자'. 재미있는 것은 이가라시 료타가 2008년 부상으로 빠지면서 마무리 투수의 공백을 임창용선수가 메우게 되었다는 것.
언젠가는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서 뱀직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강속구 투수가 등장할지도?이가라시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현재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중이다.
- 반대로 정작 구단의 오너가 거인팬임을 공언해서 빈축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단을 산케이에서 인수한 야쿠르트 사장 마쓰조노 히사미가 "거인에게는 져도 된다" 등의 발언을 남긴 것. 다만 마쓰조노의 오너로서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족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 최근 주목받는 야구만화인 그라제니의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가 소속된 진구 스파이더스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모티브로 한 팀이다. 감독, 코칭스태프, 주요 선수들,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에서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그것들과 유사한 점들이 발견되기도.
드래프트 1차지명 흑역사라든가
- 일본 성우인 카와스미 아야코 또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다. 스케쥴이 없는 날은 꼬박꼬박 챙겨보러 다닌다고 한다.
-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서 모로보시 키라리 역을 맡은 성우 마츠자키 레이도 이 구단의 열성 팬인게 알려졌는데 야쿠르트 경기때 그녀의 얼굴이 찍힌 적도 있다.
- 한국에서는 야쿠르트가 스폰을 서는 것에 착안하여 유산균으로 불리고 있다.
- 영구결번은 없지만, 1번과 27번을 명예번호로 사용한다. 와카마츠 츠토무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었으나, 그 상징성을 높이 사서 팀을 짊어지는 선수들에게만 물러주는 식으로 사용하도록 바꾸었다. 와카마츠 이후 야쿠르트의 1번 계보는 다음과 같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로 꼽히는 이케야마 타카히로가 91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다가 반납, 이후 이와무라 아키노리에게 1번을 물려 받고 계속 사용하다가 메이저리그로 진출, 3년간 결번 상태였다가 다시 2010년부터 아오키 노리치카가 이 1번을 달기 시작하였다. 아오키 노리치카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5년간 결번 상태였으나, 2010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이자 2루수 포지션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야마다 테츠토가 2015시즌 종료 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는데 역시나 23번을 떼고 1번을 달게 되었다. 27번 역시 후루타 아츠야의 은퇴와 함께 명예번호로 처리됐다. 1번과 마찬가지로 팀을 짊어질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결번이 되는 번호이다. 본래 2009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FA로 이적해 온 아이카와 료지에게 이 등번호를 물려 줄 예정이었으나 부담감 때문인지 본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현재는 결번 상태. 더불어 27번은 89년 용병 투수가 사용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오야 아키히코 등 역대 야쿠르트 스왈로즈 주전 포수들이 쭉 착용했던 번호이기도 하다.
10 선수 정보
10.1 현역(2015년/등번호기준)
10.1.1 감독
- 77. 마나카 미쓰루
10.1.2 투수
- 11. 사토 요시노리
- 12. 이시야마 타이치
- 14. 아키요시 료
- 15. 무라나카 쿄헤이
- 17. 나루세 요시히사
- 19. 이시카와 마사노리
- 20. 야마모토 테츠야
- 21. 마츠오카 켄이치
- 22. 마스부치 타츠요시
- 25. 다테야마 쇼헤이
- 26. 큐코 켄타로
- 29. 오가와 야스히로
- 58. 로건 온드루섹
- 65. 오시모토 타케히코
- 66. 아라카키 나기사
- 67. 히라이 료
- 68. 야마나카 히로후미
- 70. 야기 료스케
10.1.3 포수
10.1.4 내야수
- 1. 야마다 테츠토
- 2. 오비키 케이지
- 3. 니시우라 나오미치
- 5. 가와바타 신고
- 7. 타나카 히로야스
- 8. 타케우치 신이치
- 10. 모리오카 료스케
- 24. 아라키 타카히로
- 33.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 59. 이마나미 타카히로
10.1.5 외야수
- 0. 히야네 와타루
- 4. 블라디미르 발렌틴
- 9. 이이하라 야스시
- 31. 마츠모토 유이치[39]
- 41. 타카이 유헤이[40]
- 42 사카구치 토모타카
- 50. 우에다 츠요시
- 71. 미첼 더닝
- 85. 라스팅스 밀렛지
10.2 OB
10.2.1 투수
- 카네다 마사이치 (1950 - 1964)
- 마츠오카 히로무 (1968 - 1985)
- 야스다 타케시 (1972 - 1987)
- 오바나 타카오 (1978 - 1991)
- 아라키 다이스케 (1983 - 1995)
- 원조 고시엔 아이돌. 오 사다하루의 모교이기도 한 와세다실업고를 고시엔 준우승으로 이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의 인기는 후에 나올 후배들인 PL학원의 구와타 마스미-기요하라 가즈히로, 세이료 고교의 마쓰이 히데키, 요코하마 고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손수건 왕자로 유명한 고교 후배 사이토 유키, 그 라이벌 이었던 고마자와대학 도마코마이고교의 다나카 마사히로 등의 고교시절 인기 따위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시절 아들을 가진 부모들의 상당수가 자기 자식의 이름을 다이스케라고 짓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였으며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할 때 프로의 주목을 받았으며 추첨 끝에 야쿠르트가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시켰다. 그러나 인기가 가져온 중압감에 못 이겨서인지 프로에서는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통산 성적 39승 49패 2세이브, 방어율 4.80.
- 오카바야시 요이치 (1991 - 2000)
- 타카츠 신고 (1991 - 2003, 2006 - 2007)
- 이시이 카즈히사 (1992 - 2001, 2006 - 2007)
- 이토 토모히토 (1993 - 2003)
- 요시이 마사토 (1995 - 1997)
- 타바타 카즈야 (1996 - 1999)
- 이시이 히로토시 (1996 -2011)
- 릭 구톰슨 (2005 - 2006)
- 세스 그레이싱어 (2007)
- 임창용 (2008 - 2012)
- 이혜천 (2009 - 2010)
10.2.2 포수
10.2.3 내야수
- 도이 쇼스케 (1956-1959)
- 토요다 야스미츠 (1963 - 1969)
- 오오스기 카츠오 (1975 - 1983)
- 바비 마르카노 (1983-1985)
- 히로사와 카츠미 (1984 - 1995)
- 밥 호너 (1987)
- 이케야마 타카히로 (1984 - 2002)
- 잭 하웰 (1992 - 1994)
- 미야모토 신야 (1995 - 2013)
- 톰 오말리 (1995 - 1996)
- 짐 테이텀 (1997)
- 로베르토 페타지니 (1999 - 2002)
10.2.4 외야수
-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이었던 그 매뉴얼 맞다.
- 쿠리야마 히데키 (1984 - 1990)
- 이이다 테츠야 (1987 - 2004)
- 마나카 미쓰루 (1993 - 2008)
- 이나바 아츠노리 (1995 - 2004)
- 드웨인 호지 (1997 - 1998)
- 알렉스 라미레스 (2001 - 2007)
- 아론 가이엘 (2007 - 2011)
- 후쿠치 카즈키 (2008 - 2012)
10.2.5 역대 감독
역대 | 이름 | 활동 연도 | 연수 | 비고 | 팀 명칭 |
1대 | 니시가키 토쿠오 西垣徳雄 | 1950 ~ 1953 | 4년 | 고쿠테츠 스왈로즈 | |
2대 | 후지타 소이치 藤田宗一 | 1954 ~ 1955 | 2년 | ||
3대 | 우노 미츠오 宇野光雄 | 1956 ~ 1960 | 5년 | ||
4대 | 스나오시 쿠니노부 砂押邦信 | 1961 ~ 1962 | 2년 | 1차 | |
5대 | 하마자키 신지 浜崎真二 | 1963 | 1년 | ||
6대 | 하야시 기이치 林義一 | 1964 ~ 1965년 4월 27일 | 1년 4개월 | 1965 시즌 도중 퇴임 | |
7대 | 스나오시 쿠니노부 砂押邦信 | 1965년 4월 27일 ~ 동년 잔여 시즌 | 6개월 | 2차, 시즌 도중 팀 명칭 변경 (고쿠테츠→산케이) | 산케이 스왈로즈 |
8대 | 이이다 토쿠지 飯田徳治 | 1966 ~ 1967 | 2년 | 산케이 아톰즈 | |
9대 | 벳쇼 타케히코 別所毅彦 | 1968 ~ 1970년 8월 | 1년 8개월 | 1969년 팀 명칭 변경 (산케이 아톰즈→아톰즈) 1970년 팀 명칭 변경 (아톰즈→야쿠르트 아톰즈) 1970 시즌 도중 해임 | 야쿠르트 아톰즈 |
10대 | 오가와 요시하루 小川善治 | 1970년 8월 ~ 동년 잔여 시즌 | 3개월 | 감독 대행 | |
11대 | 미하라 오사무 三原脩 | 1971 ~ 1973 | 3년 | ||
12대 | 아라카와 히로시 荒川博 | 1974 ~ 1976.5 | 3년 | 1976년 시즌 중 해임 | 야쿠르트 스왈로즈 |
13대 | 히로오카 타츠로 広岡達朗 | 1976.5 ~ 1979.8 | 4년 3개월 | 팀 역사상 최초의, 1978년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1979년 시즌 도중 사임. 잔여 경기는 사토 타카오(佐藤孝夫)가 대행 | |
14대 | 타케가미 시로 武上四郎 | 1980 ~ 1984.4 | 4년 4개월 | 1984 시즌 시즌 중 퇴임 1984년 5월 하순까지는 나카니시 후토시(中西太)가 대행 | |
15대 | 도바시 마사유키 土橋正幸 | 1984.5 ~ 1986 | 2년 7개월 | ||
16대 | 세키네 쥰조 関根潤三 | 1987 ~ 1989 | 3년 | ||
17대 | 노무라 카츠야 野村克也 | 1990 ~ 1998 | 9년 | 1993년, 1995, 1997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 |
18대 | 와카마츠 츠토무 若松勉 | 1999 ~ 2005 | 7년 | 2001년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 |
19대 | 후루타 아츠야 古田敦也 | 2006 ~ 2007 | 2년 | 선수 겸 감독 | |
20대 | 타카다 시게루 高田繁 | 2008 ~ 2010.5 | 2년 5개월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
21대 | 오가와 쥰지 小川淳司 | 2010.5 ~ 2014 | 3년 7개월 | 2010 잔여 시즌은 감독 대행 | |
22대 | 마나카 미쓰루 真中満 | 2015 ~ | 재임 중 |
10.3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 요시이 마사토 (뉴욕 메츠->콜로라도 로키스->몬트리올 엑스포스->일본 복귀 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치바 롯데 마린즈)
- 이시이 카즈히사 (LA 다저스→뉴욕 메츠→일본 복귀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타카츠 신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일본 복귀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우리 히어로즈外)
- 이가라시 료타 (뉴욕 메츠→일본 복귀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이와무라 아키노리 (탬파베이 레이스→피츠버그 파이리츠→일본 복귀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방출 후 야쿠르트 복귀)
- 아오키 노리치카 (밀워키 브루어스→캔자스시티 로열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임창용 (시카고 컵스→한국 복귀 후 삼성 라이온즈)
- ↑ 2013년부터 사용중이다. 2012년까지는 헬멧 로고가 달랐다.
- ↑ 그 예로 2015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마지막 4차전은 후지 TV에서 생중계를 했고, 다음날 산케이 신문 산하 산케이 스포츠만이 유일하게 야쿠르트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1면 톱으로 실었다. 나머지 신문은?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 사임이 1면 톱기사였다.(...)
-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같이, 아니 이보다 더해 마스코트는 물론이고 팀명도 저작권이 외부에 있었으므로 아톰즈라는 이름을 무한히 쓸 수 없기는 했다.
- ↑ '치면 병살, 지키면 실책, 달리면 아웃'이라는 구호도 있었다고..
- ↑ 만년 꼴지였던 스왈로즈의 우승은 그 밖에도 여러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 중 소설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대표 소설인 '야구감독'은 스왈로즈의 우승을 소설화 했다.
- ↑ 여담으로 구단가 "날아올라라 야쿠르트 스왈로즈(とびだせヤクルトスワローズ)" 를 직접 불렀다. 현재도 간간히 구장에서 불려진다.
- ↑ 변화가 크고 빠른 고속 슬라이더로 야쿠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혹사로 인하여 33살의 나이로 2003년도에 은퇴를 하였다. H2에서 쿠니미 히로가 후반부에 고속 슬라이더를 마스터 하는 장면은 이 선수의 오마쥬로 추정된다.
- ↑ 꼴지는
명불허전요쿄하마. 그런데 시즌 성적에선 그 요코하마에게 밀리고 있다. - ↑ 시즌 최종성적 130경기 439타수 145안타 60홈런(1위) 131타점(2위) 94득점(1위) 0.330(2위)/0.455(1위)/0.779(1위). 잉여로운 야쿠르트 타선만 아니었다면 블랑코를 제치고 타점 1위도 먹을 수 있었으나...답이 없는 야쿠르트의 타선때문에...규정타석을 채운 선수가 발렌틴밖에 없다.
- ↑ 시즌 최종전에서 공동 다승왕을 노리던 히로시마 에이스 마에다 겐타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패전을 먹였다.
- ↑ 그 날 메신저는 2안타 4타점을 적립했다.
- ↑ 안타, 득점, 2루타, 총루타 1위. 안타의 경우 193개를 쳤는데 일본인 우타자 안타 시즌기록을 세웠다.
- ↑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다.
- ↑ 1위 요미우리부터 5위 한신까지 모두 3점대. 5위 한신도 3.88로 야쿠르트랑 1점 가까이 차이난다.
- ↑ 무슨 이유에선지 다음 일본야구 기록실이나 국내 야구기사등에서는 아키요시 요시라고 쓰고있다. 야쿠르트 공홈과 위키백과에서는 아키요시 료라고 표시.
- ↑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한신의 마무리 오승환은 시즌 41세이브를 거두면서 NPB 외국인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 ↑ 단, 승률에서는 앞서기 때문에 1위는 유지할 수 있다.
- ↑ 여담으로 3위 한신이 히로시마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2위도 확정지었다.
- ↑ 물론 교진이 DeNA와의 경기를 모두 이긴다는 가정 하에.
- ↑ 심지어 그 때 지면 본인들 홈에서 우승을 내주게 된다
- ↑ 한편 퍼시픽 리그는 이날 모두 돔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렸기 때문에 경기를 열 수 있었다.
- ↑ 철벽 마무리였던 토니 바넷은 텍사스 레인저스로, 올랜도 로먼은 대만프로야구 라미고 몽키스로 이적했다. 마무리 투수 자리를 맡게 된 로건 온드루섹만 남았었으나 온드루섹도 16시즌 중반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며 완전 해체.
- ↑ 원래 처음부터 1순위 지명을 고려한 선수가 아니라 메이지 대학 출신의 다카야마 준을 놓고 한신 타이거스와 경합 끝에 추첨에서 떨어져서 대체 1순위로 지명한 선수이다. 참고로 다카야마 추첨 당시 제비를 뽑은 마나카 미쓰루 감독이 자기가 뽑은 제비가 당첨인 것으로 착각하고 인터뷰에서 다카야마에게 메시지까지 보낸 상황에서 나중에 확인한 결과 본인의 착각이었음이 판명되어 개망신을 당했었다(...)
- ↑ 하재훈은 7월 10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주로 대타로 출전했고 7월 31일 2군으로 내려간 뒤 시즌 끝까지 2군에 머물렀다.
- ↑ DeNA 전패 시 승률 0.464, 야쿠르트 3승 3패시 승률 0.458.
- ↑ 구단 신기록
- ↑ 구단 신기록
- ↑ 온도(音頭)는 일본 전통 민요로서 2/2박자를 가진다. 한국의 타령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하다.
- ↑ 전설적인 스왈로즈 팬으로서, 고쿠테츠가 세리그의 밑바닥을 책임지던 시절부터 숨을 거두는 2002년까지 근 50년 간(...) 열광적으로 스왈로즈를 응원했다. 도쿄온도나 비닐우산 등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특징적인 응원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 [2] 참고.
- ↑ 저작권자라는 말도 있다.
- ↑ 영상 1:20부터 짤막하게 나온다.
- ↑ 3회 개최된 경기 중 2차전인 QVC 마린 필드 개최 경기이다.
- ↑ 해당 영상을 보면 마지막 거인 응원가가 나오는 타이밍에 풍선을 날려 묻어버리는(...) 상황이 등장한다.
- ↑ 일본어 위키백과의 설명을 보면 같은 노래를 응원곡으로 쓰는 J리그 축구팀 FC 도쿄의 팬들도 저 추임새를 따라한다고 한다. 물론 이 때의 요미우리의 의미는 요미우리 산하 축구팀인 도쿄 베르디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NPB에서 요미우리의 위치에 비해 J리그에서의 도쿄 베르디의 위치가 약하므로 큰 반향은 없단다. 그 외에 FC 도쿄의 배구팀도 과거 응원가로 쓴 적이 있다.
- ↑ '임'의 일어인 イム를 붙이면 佛의 약자(仏)가 나오기 때문.
- ↑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96.
- ↑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3.
- ↑ 등번호는 야쿠르트에서 따온 8960. 버팔로 벨의 치마를 들췄다가 픽시브에서 변태 취급을 당했다.
- ↑ 일본계 브라질인이었으나 2004년 일본 국적을 획득하였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브라질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 ↑ 선수등록명은 "유헤이". 좌완 파이어볼러 유망주였다가 타자로 전향한, 이토이 요시오같은 케이스.
- ↑ 왜 그런지는 카와이 카즈미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