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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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시설경기장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바클레이카드 센터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의 경기장이다.
훈련 시설발데베바스
기타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 · 관광
레알 마드리드가 소장한 빅 이어 11개

1 소개

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기록과 우승 과정 등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기록

2.1 통산 기록

참가경기승률득점실점득실 차승점우승준우승4강
45398236709259.3%87342444954211327
  • 굵은 글씨는 대회 최다 기록. 준우승을 제외한 모든 기록이 최다 기록이다. 홍진호가 제일 싫어하는 팀이라 카더라~

2.2 연표

시즌대회명최종 결과경기
1955/56유로피언 컵우승7502
1956/57유로피언 컵우승8611
1957/58유로피언 컵우승7511
1958/59유로피언 컵우승8521
1959/60유로피언 컵우승7601
1960/61유로피언 컵1라운드(16강)2011
1961/62유로피언 컵준우승10802
1962/63유로피언 컵예선2011
1963/64유로피언 컵준우승9702
1964/65유로피언 컵8강6411
1965/66유로피언 컵우승9522
1966/67유로피언 컵8강4103
1967/68유로피언 컵4강8332
1968/69유로피언 컵2라운드(16강)4301
1969/70유로피언 컵2라운드(16강)4202
1972/73유로피언 컵4강8413
1975/76유로피언 컵4강8233
1976/77유로피언 컵2라운드(16강)4211
1978/79유로피언 컵2라운드(16강)4301
1979/80유로피언 컵4강8503
1980/81유로피언 컵준우승9612
1986/87유로피언 컵4강8404
1987/88유로피언 컵4강8431
1988/89유로피언 컵4강8521
1989/90유로피언 컵2라운드(16강)4301
1990/91유로피언 컵8강6321
1995/96UEFA 챔피언스 리그8강8413
1997/98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11731
1998/99UEFA 챔피언스 리그8강8413
1999/00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171034
2000/01UEFA 챔피언스 리그4강16925
2001/02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171232
2002/03UEFA 챔피언스 리그4강17764
2003/04UEFA 챔피언스 리그8강10631
2004/05UEFA 챔피언스 리그16강10622
2005/06UEFA 챔피언스 리그16강8323
2006/07UEFA 챔피언스 리그16강8422
2007/08UEFA 챔피언스 리그16강8323
2008/09UEFA 챔피언스 리그16강8404
2009/10UEFA 챔피언스 리그16강8422
2010/11UEFA 챔피언스 리그4강12831
2011/12UEFA 챔피언스 리그4강121011
2012/13UEFA 챔피언스 리그4강12633
2013/14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131111
2014/15UEFA 챔피언스 리그4강12822
2015/16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13931
2016/17UEFA 챔피언스 리그진행중0000

3 우승 과정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 '레퀴프(L'Equipe)'의 주최로 1955/56 시즌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이 출범한 시기부터 레알 마드리드가 이룬 라 운데시마 전설이 시작된다.

3.1 1956년: La Primera(첫 번째)

레알 마드리드는 1954/55 시즌 프리메라 리가 챔피언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유러피언 컵에 참가하게 된다. 총 16팀이 참가한 가운데, 1라운드에서 대진이 정해지고 레알 마드리드는 스위스 대표인 세르베트 FC를 만나게 된다.
1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세르베트 FC를 1, 2차전 합계 7:0으로 대파하고 8강전에서 세르비아 대표인 FK 파르티잔을 만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FK 파르티잔을 4:0으로 완파하며 4강 진출을 장담했지만, FK 파르티잔의 반격은 매서웠고 2차전 후반 종료 3분 전 파르티잔이 3번째 골을 넣으며 턱밑까지 추격했던 탓에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동점 골은 허용하지 않아 종합 4:3으로 4강에 진출한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이탈리아 세리에의 대표인 AC 밀란이었다. AC 밀란을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 4:2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으나 밀란의 반격에 2실점을 하여 동점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행히 남은 시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동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비록 2:1로 패하였지만 종합 점수 5:4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스타드 드 랭스였다.[1] 레이몽 코파, 이달고라는 걸출한 스타들을 내세운 랭스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뒤지는 팀이 아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시작 10분 만에 르블롱과 템플린에게 2골을 실점하며 최악의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4분 뒤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골을 기록하여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엑토르 리알이 동점 골을 기록하였다.
전반전을 2:2로 팽팽하게 마무리한 후 후반이 시작되고, 랭스가 이달고의 골로 3:2로 달아나며 분위기가 랭스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실점한 지 5분 뒤 수비수 마르퀴토스가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동점 골을 기록하자 분위기가 역전되어 주도권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왔고, 디 스테파노와 리알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랭스의 수비진을 유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끈질긴 공격 끝에 디 스테파노가 만들어낸 찬스를 리알이 골로 연결하면서 점수가 4:3으로 역전되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어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초대 우승팀이 되었다.

3.2 1957년: La Segunda(두 번째)

2번째 유러피언 컵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개최되었다. 유러피언 컵 첫 번째 대회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지나 1라운드에서 라피드 빈을 만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서 4:2로 빈을 이겼으나 2차전에서 1:3으로 패배, 5:5로 종합 점수가 동점이라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다행히 레알 마드리드는 2:0으로 라피드 빈을 꺾고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한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같이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팀 니스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니스를 상대로 종합 6:2 승리를 거두며 가볍게 4강에 진출한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잉글랜드 챔피언 맨유였다. 맨유는 대회를 치르면서 예선에서 만난 RSC 안더레흐트를 무려 종합 12:0이라는 무시무시한 점수차로 짓밟고,[2] 1라운드에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8강에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챔피언 아틀레틱 클럽을 꺾고 4강에 올라온 강팀이었다. 이 시기 맨유는 명장 맷 버스비가 이끄는 사단으로 이른바 버스비의 아이들이라 불렸고, 후에 보비 찰턴 등을 앞세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 팀의 시초였다. 하지만 그런 맨유를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비교적 무난하게 3:1으로 1차전 승리를 거두었고, 2차전에서도 먼저 2골을 넣은 뒤 동점을 허용하여 무승부로 끝나 종합 5:3으로 결승에 진출했다.[3]

결승 상대는 AC 밀란을 제치고 세리에 우승을 차지한 ACF 피오렌티나였다. 이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성적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프란시스코 헨토의 연속 골로 2:0 승리를 거두어 2연속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다.

3.3 1958년: La Tercera(세 번째)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예선을 통과한 레알 마드리드는 1라운드에서 만난 벨기에의 로얄 앤트워프를 종합 8:1로 가볍게 꺾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에서 프리메라 리가의 챔피언인 세비야 FC를 종합 10:2로 대파하며 4강에 오르고, 4강에서 헝가리 챔피언 바사스 SC를 꺾고 결승에 올라 AC 밀란과 맞붙는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 AC 밀란은 전 시즌 1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괴롭혔던 라피드 빈을 예선에서 만나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끝에 간신히 꺾고 1라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AC 밀란은 이후 1라운드에서 레인저스, 8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꺾고 4강에서는 맨유까지 꺾으며 위용을 내뿜었다.
스키피아노와 체사레 말디니[4]가 이끄는 AC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스키피아노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끌려간다. 하지만 이후 디 스테파노가 동점 골을 터트렸고, 뒤이어 AC 밀란이 1점을 더 달아났으나 다시 리알이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헨토가 결국 역전 결승골을 터트려 3번째 빅 이어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3.4 1959년: La Cuarta(네 번째)

레알 마드리드는 1회전과 8강에서 베식타쉬와 비엔나 SC를 꺾고 4강에서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는다. 1차전에선 레알 마드리드가 2:1 승리를 거두었지만 2차전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0 승리를 거두었고, 두 팀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 진출 팀을 가리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레알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원년 시즌 우승컵을 놓고 다투었던 랭스였다. 랭스는 이전에 유러피언 컵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주었기 때문에 의욕이 매우 강하였고, 당시 자신들의 에이스였던 레이몽 코파를 레알로 보낸 뒤 그 자리를 메꾼 쥐스트 퐁텐이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앞세워 대회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1분 만에 마테오스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 2분에 디 스테파노가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랭스와 점수 차를 벌렸고 호세 산타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레알의 수비진이 쥐스트 퐁텐을 중심으로 한 랭스의 공격진을 잘 막아내면서 2:0 승리로 네 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3.5 1960년: La Quinta(다섯 번째)

유러피언 컵 4연패를 이룬 레알 마드리드는 더 강화돤 조직력과 전력을 보여주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1회전 죄네스 에슈를 상대로 1차전 7:0, 2차전 5:2로 종합 12:2 승리를 거두었고, 8강에 올라 1차전 니스에게 3:2 패배를 당했지만 2차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 최대 숙적 FC 바르셀로나로 유러피언 컵 최초로 엘 클라시코가 벌어졌다. 바르셀로나는 예선전에서 불가리아 챔피언 CDNA 소피아를 종합 6:2로 꺾고, 1차전에서 강팀 AC 밀란을 1차전 2:0, 2차전 5:1로 대파하여 종합 7:1로 8강에 진출하였으며, 8강에서 울버햄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1차전 4:0, 2차전 5:2 완승을 거두어 종합 9:2로 4강까지 올라와 숙적 레알과 맞붙게 된 것이다.
4강에서 벌어진 엘 클라시코는 1, 2차전 모두 레알이 각각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분데스리가 챔피언에 오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였다. 프랑크푸르트의 크레스가 선제골을 넣으며 프랑크푸르트가 앞서갔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2골을 넣어 역전하여 전반을 마친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레알의 푸스카스가 해트트릭을 넘어 4골을 터트려 점수차를 크게 벌렸다. 프랑크푸르트의 스타인이 1골을 만회하였지만, 디 스테파노가 1골을 추가해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 두 선수가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고, 스타인이 1골을 더 만회해 7:3으로 경기를 끝마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하였다. 참고로 프랑크푸르트의 마지막 만회 골 때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인 마르퀴토스가 어처구니 없는 백 패스 실수를 하였는데, 이에 동료가 불같이 화를 냈다. 7-2로 앞선 상황에서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팀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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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 5개와 함께 있는 디 스테파노

3.6 1966년: La Sexta(여섯 번째)

유러피언 컵 5연패를 이룬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1961/1962 시즌 결승에 올라, 페렌츠 푸스카스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벤피카와 팽팽하게 3:3으로 맞섰으나 신예 에우제비우에게 2골을 내주어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2시즌 뒤 1963/1964 시즌에도 결승에 진출했는데, 이때는 카테나치오를 최초로 들고 나와 'La Grande Inter(위대한 인테르)'라 불렸던 인테르에게 3: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유러피언 컵 출범 후 5년 동안 모든 결승전을 휩쓸었던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이제는 독보적인 최강이 아니었고, 디 스테파노, 레이몽 코파, 산타마리아 등이 팀을 떠난 뒤에는 다시 유럽 정상을 노리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1965/1966 시즌 팀의 전설이자 감독이었던 미겔 무뇨스의 지도와, 아직 팀에 남아 있던 황금 세대 페렌츠 푸스카스프란시스코 헨토, 그리고 아만시오 아마로를 비롯한 신예들의 활약을 통해서 레알 마드리드는 다시 한 번 유러피언 컵 정상에 도전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예선전에서 페예노르트, 1라운드에서 킬마녹, 8강전에서 RSC 안더레흐트, 4강전에서 인테르를 꺾으면서 결승에서 FK 파르티잔과 격돌하게 된다. 파르티잔은 맨유를 꺾고 올라올 만큼 강한 전력을 구축하였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 파르티잔의 바소비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이후 아만시오가 동점 골, 세레나가 역전골을 터트렸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파르티잔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6번째 빅 이어를 차지하였다.
황금 세대가 저물고 새롭게 구성되어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한 이 팀은 'Yé-yé Madrid(예-예 마드리드)'라 불렸다(레알 마드리드 CF/역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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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 6개와 함께 있는 헨토

3.7 1998년: La Séptima(일곱 번째)

1965/1966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거둔 뒤, 1980/1981 시즌 결승전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5] 약 32년간 빅 이어를 들지 못했고, 17년간 빅 이어에 다가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독수리 오 형제'라 불린 5인조를 중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으나 유러피언 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고, 레알 마드리드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이 유러피언 컵도 UEFA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되었다.

그러던 중 레알 마드리드는 유프 하인케스 체제에서 1997/1998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리그에서는 최종 4위로 마칠 만큼 순탄하지 못했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실로 오래간만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8강에서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격파하면서 고대하던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챔피언스 리그 득점 1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3위 필리포 인자기를 앞세운 무시무시한 화력과, 지네딘 지단, 디디에 데샹, 에드가 다비즈가 지배하는 강력한 중원을 지닌 유벤투스였다. 유벤투스는 1995/1996 시즌 챔피언이자 전 시즌인 1996/1997 시즌 준우승팀이었고, 3년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유벤투스는 너무도 강력하였기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벤투스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팽팽했고, 치열한 경기 끝에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미야토비치가 골을 기록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리드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페르난도 이에로와 마누엘 산치스 등 수비진이 유벤투스의 강력한 공세를 잘 막으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3.8 2000년: La Octava(여덟 번째)

1997/1998 시즌 빅 이어를 들어올린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리그 성적 부진을 이유로 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경질하게 되었고, 이어서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거스 히딩크, 존 토샥까지 선임과 경질을 반복하면서 팀 지휘 체계에 혼란이 찾아왔다. 존 토샥에 이어서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 출신인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었다.

팀의 여건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델 보스케가 취임한 레알 마드리드는 1999/2000 시즌 리그에서 끔찍한 부진을 겪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2전 2패를 당해 조별 리그 2위로 밀려난 채 8강에 진출하여 디펜딩 챔피언 맨유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레알과 만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차전을 0:0 무승부로 끝낸 뒤, 홈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2차전을 앞두고 "더 이상 레알 마드리드는 두렵지 않다."라며 레알 마드리드를 도발하며 심리전을 구사했다. 이에 발끈한 라울 곤살레스"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해주겠다."라고 답하며 2차전에 들어섰다.
로이 킨의 자책골로 인해 레알이 앞선 채로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에 들어서 양 팀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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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열한 공방 속에서 라울은 경기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스스로 증명하듯 골을 터트리고, 이어서 2분 뒤 페르난도 레돈도가 세련된 플레이로 수비를 벗기고 보낸 패스를 받아 쐐기 골을 터트려 순식간에 3:0 리드를 가져왔다. 이후 맨유는 데이비드 베컴폴 스콜스의 PK 골로 2골을 만회해봤지만 이미 늦었고 팀은 맨유 원정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참고로 이 경기와 2002/2003 8강 1차전에서 라울에게 2골을 실점하며 고배를 마시게 되었던 퍼거슨은 이후 라울을 매우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반 니스텔로이와 함께 투 톱을 이뤄 자신의 팀에 두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라울이 레알을 떠나는 순간에도 마이클 오언이 없었다면 라울을 영입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애착을 보였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조별 리그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뮌헨이었다. 그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역시나 뮌헨의 우세와 결승행을 예측하며 레알의 결승행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니콜라스 아넬카의 활약으로 종합 3:2로 바이에른 뮌헨을 누르고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의 숙적 FC 바르셀로나를 종합 5:3으로 꺾고 올라온 발렌시아 CF였다. 이로써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리그 소속 팀 간 결승전이 성사되었다. 당시 발렌시아는 아르헨티나 출신 명장 쿠페르 감독의 지휘 아래 전 유럽이 주목하는 신흥 강호로 성장하던 때라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는 매우 팽팽하게 진행될 것이라 예측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레알이 발렌시아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전반전에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헤더 선제골을 기록해 리드를 잡았고, 스티브 맥마나만이 멋진 발리 슛으로 골을 기록하며 발렌시아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그리고 이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라울이 약 70m를 질주한 뒤 쐐기 골을 넣으며 공동 득점 1위에 오름과 동시에 팀의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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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빅 이어는 레알 마드리드의 차지가 되었고, 이 대회의 주역이였던 라울 곤살레스, 그리고 골문을 지켰던 이케르 카시야스는 향후 팀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3.9 2002년: La Novena(아홉 번째)

2001/2002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델 보스케 감독의 3번째 시즌이자 창단 100주년을 맞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은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피구를 영입하며 시작했던 '갈락티코스'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프랑스 국가 대표이자 유벤투스의 에이스인 지네딘 지단을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로 영입, 이전 시즌 4강에서 떨어져 실패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다시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 리그에서는 발렌시아와 데포르티보가 선전하며 혼돈 상태에 빠지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3, 4위를 기록하였고 발렌시아가 우승, 데포르티보가 준우승을 거두어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또한 코파 델 레이 역시 결승에서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남은 것은 챔피언스 리그뿐인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일인 3월 6일에 열렸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완벽한 100주년 잔치를 놓친 셈이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본선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는 무난히 타 팀들을 꺾고 8강에 진출하였으나, 상대는 전 시즌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숙적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지네딘 지단을 영입해도 결과가 달라질 건 없다'고 자만하였다. 그리고 뮌헨의 홈 구장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제레미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81분과 87분에 에펜베르크, 피자로에게 연속 골을 허용해 2:1로 역전패하게 된다. 뮌헨이 1차전을 가져가면서 상황은 뮌헨이 말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2차전이 열린 레알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지네딘 지단이 뛰어난 활약으로 뮌헨을 고전시켰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 이반 엘게라가 선제골을 넣고 구티가 추가 골을 보태며 2:0으로 승리, 합산 스코어 3:2로 디펜딩 챔피언 뮌헨을 꺾고 4강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100주년 결승행 티켓이 걸린 4강전 상대는, 운명의 장난인지 최고의 숙적 바르셀로나로 결정되었고 41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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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1차전에서 경기 내내 엄청난 활약을 한 지단이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앞서갔고, 후반 종료 직전 맥마나만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2:0으로 눌렀다.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는 거세게 몰아쳤지만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고, 레알 마드리드는 숙적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2년 만에 다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무대로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8강에서 리버풀 FC, 4강에선 퍼거슨의 맨유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선제골은 이른 시간에 나왔다. 전반 8분 만에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긴 스로잉 패스를 받은 라울이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로 골망을 가르며 레알 마드리드가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전반 13분, 프리킥 찬스를 얻은 레버쿠젠의 수비수 루시우가 헤더로 골을 기록하며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Wow, fantastic. fan~tastic![6]

그러나 경기는 전반이 종료되기 직전에 카를루스가 올린 크로스를 지네딘 지단이 멋진 왼발 발리 슛으로 연결, 지금까지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히는 골을 터트리며 팀의 리드를 되찾아왔다.

지네딘 지단의 골이 터진 뒤, 전반이 종료되고 기세가 꺾일 법도 했던 레버쿠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거세지는 경기 속에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세사르가 부상으로 빠지고 이케르 카시야스가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카시야스는 남은 시간 동안 레버쿠젠의 맹공을 엄청난 선방으로 막아내 팀의 리드를 지켰고, 결국 스코어 2:1로 레알 마드리드가 레버쿠젠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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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어를 들고 우승을 자축하는 선수들빅 이어를 든 지단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9번째이자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3.10 2014년: La Décima(열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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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 팀 중 유일하게 레알 마드리드만이 가진 타이틀. 오랜 세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기다려왔던 소망이다.

3.10.1 라 데시마 달성 전까지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인 골과 함께 9번째 빅 이어를 차지한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갈락티코 정책이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실패로 끝나고, 오랜 기간 동안 챔스와 멀어진 모습을 보였다. 16강에서 수 차례 떨어졌고, 특히 올림피크 리옹에게만 3번이나 덜미를 잡히며 굴욕을 겪었다. 그로 인해 레알의 회장은 페레스에서 라몬 칼데론으로 바뀌었고 팀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챔피언스 리그 성적은 신통치 않았으며 리그에서도 점점 바르셀로나에게 밀리게 되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마드리드라는 조롱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다시 레알의 회장으로 부임하고, 갈락티코의 부활이라는 이름 아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카림 벤제마, 사비 알론소 등이 영입되면서 유럽 정상 탈환를 노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2010년 여름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뒤 조직력이 살아나면서 16강 징크스와 리옹 징크스를 깨부수고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승 문턱인 4강에서 3번이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정상을 탈환하는 데 실패한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2013년 여름 무리뉴 감독이 사임하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했다. 그리고 메수트 외질곤살로 이과인이 팀을 나간 뒤 이스코, 가레스 베일 등이 영입되는데, 레알 마드리드는 초기에는 영입된 가레스 베일의 부진과 언론의 흔들기 등으로 내외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안첼로티가 구상한 BBC 라인이 완성되고 카시야스와 디에고 로페스 골키퍼를 번갈아 사용하는 이원화 정책, 그리고 앙헬 디 마리아의 중앙 미드필더 이동이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3.10.2 라 데시마를 향한 발걸음

레알 마드리드는 16강에서 샬케 04를 상대로 원정 1차전에서 BBC 공격진이 모두 2골씩 터트리면서 6:1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에서도 3:1 승리를 거두며 2연승 합계 9:2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만났다. 도르트문트는 전 시즌 4강에서 종합 4:3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 베일과 이스코, 호날두의 골로 3:0 승리를 거두었으나 2차전 마르코 로이스에게 2골을 얻어맞으며 위기에 처하고, 카시야스의 활약으로 간신히 종합 점수 3:2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에 올라온 레알 마드리드가 상대하게 된 클럽은 2011/2012 시즌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둬 레알을 4강에서 탈락시킨 팀이자 당시 디펜딩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뮌헨의 감독은 레알의 천적이라 불리던 펩 과르디올라였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6전 4승 2무 0패를 기록하던 중이라 뮌헨 킬러라고 할 수 있었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역대 전적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열세였고 더군다나 원정에서는 10전 1무 9패로 단 1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이 뮌헨의 결승 진출을 예상하는 가운데 1차전이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안첼로티 체제하에서 무리뉴의 역습 축구 대신 지공을 추구하는 팀으로 바뀌었지만, 이때 뮌헨을 상대로는 노골적으로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전반전 초반에 뮌헨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반코트 게임을 펼치는 듯했고 팬들 역시 뮌헨의 득점은 시간 문제라는 반응을 실시간으로 쏟아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레알 마드리드는 18분에 이스코, 호날두, 코엔트랑, 벤제마로 이어지는 완벽한 카운터 어택을 작렬시켜 리드를 잡았고, 이후에도 뮌헨의 티키타카를 어렵지 않게 방어하면서 적은 공 점유로 효율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전반전 리드를 지켜내어 경기는 1-0 승리로 마무리되었는데, 뮌헨 입장에선 3-0이 나왔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느껴지는 경기였으며 펩 과르디올라는 답답한 전개를 보다 못해 물병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레알 마드리드가 1점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2차전을 준비하기 위해 알리안츠 아레나로 향하였다.

3.10.2.1 라이벌 완파와 결승 진출

2차전 역시 바이에른 뮌헨이 점유율을 확보하고, 레알 마드리드는 틈틈이 나는 역습 기회를 노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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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역습을 통해 얻은 코너킥 기회에서 루카 모드리치가 올린 크로스를 세르히오 라모스가 헤더로 연결하면서 급격히 기울었다. 뮌헨은 만회 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리며 더 공격적으로 임하였고, 그로 인해 생긴 광활한 뒷공간 덕분에 레알은 역습을 하기 더욱 쉬워졌다.

그리고 역습을 통해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디 마리아가 올린 크로스를 라모스가 받아 다시 한 번 헤더로 골을 넣으면서 레알이 승기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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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당황하여 공격을 제대로 풀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프랑크 리베리다니엘 카르바할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리플레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히기도 했다.[7] 이후 호날두가 그림 같은 역습을 마무리하는 골을 터트려 메시가 세운 챔피언스 리그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하였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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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경기 막바지에 호날두는 프리킥 골까지 추가하면서 적지에서 4:0 대승을 거두고 2연승, 합계 전적 5:0 완승으로 12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다. 이로써 16강, 8강, 4강 모두 독일 클럽을 만나 5승 1패를 기록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지역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고 결승전 최초로 마드리드 더비가 열리게 되었다.

3.10.3 리스본의 기적

이 문단은 리스본의 기적 · 리스본의 악몽(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끈끈한 압박과 수비에 막혀 제대로 공격을 펼치지 못하였고, 점유율은 장악하고 있었지만 사비 알론소의 부재 탓인지 볼 운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9] 또한 아틀레티코 쪽도 수비는 효율적으로 해내고 있었으나 디에고 코스타가 이른 시간에 부상이 재발해 그라운드에서 나갔기 때문에 득점 기회 창출엔 레알 마드리드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세트피스 상황에서 카시야스가 어설프게 볼을 커트하려 앞으로 나갔다가 위치 선정을 잘못 하여 디에고 고딘에게 골을 내줘 레알 마드리드가 끌려가게 된다. 이에 카를로 안첼로티는 사미 케디라파비우 코엔트랑을 빼고 이스코와 마르셀루를 투입하였다. 하지만 이스코, 마르셀루 투입은 AT의 수비진을 흔들기는 하였으나 무너뜨리기엔 조금 부족했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벤제마를 빼고 알바로 모라타까지 투입해보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AT의 수비진들은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하였는지 압박이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은 모드리치, 디 마리아, 베일을 통해서 차츰 원활하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T의 골문은 뚫리지 않았고, 시간은 경기 종료 시간을 넘어 추가 시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좌절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디에고 시메오네의 주도 아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은 힘찬 목소리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소리가 경기장을 메웠다. 그리고 추가 시간은 5분이 주어진다. 추가 시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파상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고 추가 시간 3분에 코너킥을 얻게 되는데...

모두가 숨죽인 상태에서 모드리치가 크로스를 올린 순간 레알 마드리드의 의지와 근성이 담긴 한 방을 라모스가 헤더로 날렸고, 볼은 골대의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동점 골이 터짐과 동시에 경기장은 일순간 레알 팬들의 함성 소리로 뒤흔들리고 아틀레티코 팬들은 패닉에 빠지며 양 팀 서포터즈의 분위기가 뒤집혀버렸다.

추가 시간이 종료되며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시메오네는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활동량과 타이트한 압박을 들고 나왔는데 정규 시간 내에 승부를 보지 못한 이상 아틀레티코에겐 희망이 없었다. 경기의 흐름은 극적으로 뒤바뀌었고, AT 마드리드는 체력이 떨어져 특유의 조직력 축구가 무력화되어 공격진이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다. 레알은 기세를 올리며 공격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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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연장 후반 5분, 디 마리아의 팬텀 드리블 돌파에 이은 슛이 티보 쿠르투아 골키퍼에게 막혔으나, 튕겨져 나온 볼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베일이 헤더로 마무리를 지었고, 레알은 마침내 110분 만에 리드를 잡는 데 성공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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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AT 마드리드는 수비 라인을 끌어올리고 공격에 나섰으나, 체력이 떨어져 전방으로 볼 운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설상가상으로 연장 후반 12분에 마르셀루에게 공간을 내주고 슛을 허용하여 3번째 실점을 하게 되었고, 이 골이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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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AT 마드리드는 1분 후 호날두에게 페널티킥도 내주었고, 호날두는 침착하게 마무리지으며 팀의 승리를 장식했다. 챔피언스 리그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을 17골로 늘리면서 11경기 17골이라는 경악할 기록을 남겼다.

레알 마드리드는 의지와 근성을 통해 극적인 4:1로 대역전승을 일구어 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 AT 마드리드는 끈끈한 조직력 축구가 마지막에 헐거워지며 다 잡은 대어를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레알 마드리드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라 데시마'를 이루게 되었다.

3.11 2016년: La Undécima(열한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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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최다 우승팀에 등극하다.[11]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에 라 데시마를 안겼던 카를로 안첼로티가 수뇌부의 의아한 판단으로 경질된 뒤 라파엘 베니테스를 감독으로 맞이하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015/16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샤흐타르 도네츠크, 말뫼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5승 1무, 조 1위로 가볍게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PSG와의 2경기에서 상당히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고, 리그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아 비관적인 전망이 대세를 이루었다. 결국 베니테스가 중도 경질되고 카스티야를 이끌고 있었던 지네딘 지단이 선임되었다.

16강 상대는 AS 로마로 결정되었고 지단이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호날두와 헤세의 골로 2-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도 호날두와 하메스의 골로 2-0으로 승리해 합계 4-0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로마가 준비를 잘 하고 나와 고전했지만 라모스, 바란, 페페 세 중앙 수비수가 엄청난 수비력으로 공세를 막아냈다.

8강 상대는 볼프스부르크로 결정되었다. 볼프스부르크는 리그 중위권에서 허덕이던 상황이라 8강 진출 팀 중 벤피카와 더불어 가장 쉬운 상대로 여겨졌고, 지단 부임 이후 승승장구하던 레알 마드리드가 손쉽게 4강에 오를 것이라 점쳐졌다.
하지만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다닐루가 지킨 사실 털린 오른쪽 측면이 파괴당하며 0-2로 패배했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잡고 기세가 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그러나 2차전 홈 경기에서 호날두가 필드 골 1골, 코너킥 헤더 1골, 직접 프리킥 1골로 해트트릭을 작렬시켜 어렵지 않게 2점 열세를 뒤집고 4강에 진출했다.

4강 진출 팀이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으로 추려졌고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시티와 맞붙게 되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최다 우승팀을 만나게 되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선 두 팀 다 100%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조금 우세했지만 조 하트의 선방이 빛났던 경기. 다만 두 팀 모두 홈 경기력과 원정 경기력의 차이가 극심한 팀인데 1차전이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었으니 레알 마드리드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고, 결국 2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둬 2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총 성적은 6경기서 4승 1무 1패였다.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리스본에서 대결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아틀레티코는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4강에서 바이에른을 꺾고 결승에 안착,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만 잡으면 레바뮌을 모두 잡고 우승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전반 15분 세르히오 라모스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후반 75분 카라스코의 동점 골로 또다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로 승부차기를 하게 된다. 양 팀의 3번 키커까지 모두 득점한 상황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4번 키커 후안프란의 실축으로 레알이 5:3으로 이기면서 '라 운데시마'를 달성하였다. 이 우승으로 2002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지네딘 지단은 감독으로서 다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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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11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

4 기타

  • 레알 마드리드가 라 데시마를 이룬 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모여 기념 곡이자 새 응원가인 'Hala Madrid y nada más' 음원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라 운데시마 이후 플라시도 도밍고가 단독으로 부른 편곡으로 재발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응원가#s-8 참고.
라 데시마를 이루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가 거쳤던 과정을 9분으로 압축해 만든 영상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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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데시마 이후 이런 셔츠도 만들어졌다(...). 라모스가 동점 골을 넣은 93분(Minuto 93)을 의미한다. 여러모로 아틀레티코 능욕(...).
  1. 지금 랭스는 리그앙의 그저 그런 팀일지 모르겠으나, 당시 랭스는 프랑스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유러피언 컵에 참가한 강팀이었으며 1952년부터 1962년까지 10년간 5번 리그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의 지배자였다. 그리고 이 전성기가 끝난 뒤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랭스는 단 1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2. 1차전 2:0, 2차전 10:0(!).
  3. 당시 19세였던 보비 찰턴이 벤치에서 디 스테파노의 1차전 플레이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4.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이다.
  5. 이 당시 감독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였다.
  6. 이 골이 터지자 소리친 해설자의 멘트.
  7. 이날 리베리는 카르바할에게 완전히 삭제당했는데, 경기까지 패색이 짙어 흥분을 참지 못한 것. 하지만 뺨을 맞은 카르바할이 되려 여유만만한 인터뷰로 리베리를 약올렸다.
  8. 덧붙여 기록을 경신한 호날두는 이런 세리머니를 하였다. 호렌지 캬라멜 파일:CQuBTbN.gif
  9. 4강 2차전에서 불의의 반칙으로 경고 누적이 되어 결승전에 나오지 못했다.
  10. 베일의 역전골이 터지자 경기에 출장 못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알론소는 관중석을 뛰쳐나와 동료들과 역전골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AdmiredMatureHammerkop.gif
  11. 이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각각 4회로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