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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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다인

1 개요

정식명칭은 미쓰비시 모터스(Mitsubishi Motors). 국내 홈페이지는 [1]이었으나 2013년 대한민국 철수 후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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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1970~1980년대까지 일본 내수용엔 그냥 MMC라고 써진 로고를 사용했다가 1990년 이후 흔히 미쓰비시 하면 생각나는 로고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랜서 에볼루션파제로[1]로 인한 랠리카 생산 기업의 이미지가 강하며, 특히 국내 자동차 업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대자동차의 기술적 뿌리 기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 내에서는 경차부터 대형승용차까지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고 있으나 해외시장에서 주력으로 수출하고 있는 차종들은 대개 위에서 말한 C세그먼트급의 모델이 아닌 이상 SUV 모델로서, 그 라인업이 충실하지는 않은 편이다.

2016년 현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팀원이 되었다. 참조 즉, 르노삼성, 다치아, 라다에 이어 4번째 새로운 르노-닛산 그룹의 멤버가 된 셈. 이로써 미쓰비시 그룹 내의 자동차 관련 브랜드들은 전부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 분리되었으며 상표만 공유한다. 물론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는 상표권 공유 가능한 수준으로 여전히 지분을 쥐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현재 미쓰비시 자동차르노-닛산 소속이며, 미쓰비시 후소는 다임러 벤츠 소속이다. 웬지 미쓰비시 연필이 생각난다면 기분탓이다.

2 1990년대 이전

원래는 미쓰비시 중공업 산하의 자동차 사업부였다. 1960년에 나온 '미쓰비시 500', 1962년 '미니카'라는 경차를 시작으로 승용차 업계에 뛰어들기 시작, 63년 콜트1000, 1969년에는 갤랑을 내놓더니 1973년 랜서의 첫 모델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1974년에는 아프리카 사파리 랠리를 완파하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1970년 2월, 미쓰비시 중공업이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작사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고, 그 해 4월 22일. 미쓰비시 자동차가 설립되었다. 1971년부터 제휴선인 크라이슬러를 통해 갤랑을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도 미라주등 다양한 모델을 내놓으며 그럭저럭 잘나가고 있었다.

다른 일본 자동차 회사들처럼 모델별로 판매 대리점을 다각화[2]했는데, 랜서, 미라주, 콜트등은 '카 프라자(Car Plaza)'에서 팔았고, 갤랑은 말 그대로 갤랑 전문점(...)에서 팔았다고 한다.[3]

참고로 1980년대 CM송을 대부분 마츠토야 유미가 담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마케팅에서도 선전을 했다지만...

3 잘 나갈 것 같았었는...데?


1990년대 초부터 파제로와 랜서 에볼루션으로 전 세계의 각종 랠리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고, 말레이시아의 자동차회사인 프로톤[4]에 차량 생산에 대한 각종 기술을 제공하고, 유럽의 푸조-시트로엥 그룹과 볼보,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자신들의 휘발유 직접분사 엔진 기술을 제공하는 등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이미지로 닛산을 압박하고 혼다와 경쟁하며 일본 내 제2대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만 같았지만,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은 1990년대 후반부터 미쓰비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회장이었던 구보 도미오[5]도 말년에 현대차와 비교하면서 임원들을 타박할 정도었다.

르노 인수 직전의 닛산자동차 못지않게 동일한 플랫폼으로 개성없는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들어내서 팔았으며,[6] 1980년대부터 '달리는 실러캔스'[7] 라는 치욕적인 별명과 함께 말아먹기 시작한 고급차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손을 잡은 뒤에도 마케팅 실패, 품질 문제 등으로 여전히 좋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현대차는그 모델을 가지고 대성공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량의 품질은 계속 하락했으며 이에 반해서 차량의 부품값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3.1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그래도 이전에 승승장구했던 미쓰비시 자동차는 이미 1996년부터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나태와 오만은 1996년 4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자회사에서 터진 성희롱 사건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인 여직원 약 300명이 직장 내에서 상습적 성희롱을 당해왔다며 집단 고소한 것이다. 미쓰비시는 3400만달러(약 380억원)라는 성희롱 소송 사상 최대의 화해금을 물고 사건을 종결지었으나 회사 이미지는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덩달아 미국 내 매상도 감소하고 만다.

2000년대 초, 자사에서 생산했고, 생산중이었던 120만 대[8]의 차량들에 중대한 결점[9]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해 오다가 운전자의 사망 사고 후 언론 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판매량 및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10] 회장이 경찰에 체포당하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11][12]

이후 대대적인 공개 사죄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신모델을 내놓으면서 어느정도 회복은 한 상황이지만 현재 사정이 그렇게 좋은 편은 되지 못하며, 어려운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모회사인 미쓰비시에서는 방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지금의 몰락까지 왔다고 한다. 실제로도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비중은 의외로 굉장히 작다고.

2012년에는 네덜란드 현지공장을 폐쇄했고, 2015년 9월 25일에는 끝내 미국 일리노이 현지공장 폐쇄가 결정되어 외국 생산 거점을 잃게 됐다.

2016년 16년 전 일로 정신을 못 차린 것인지 연비를 조작한 것이 발각되었다. 처음에는 현 판매 중인 경차 2종[13]이 발각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추가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려 1991년부터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디젤게이트도 그렇고 추축국 전범기업들 종특이군

과징금이 1000억엔(...)이 넘을것으로 전망되고, 결국 2016년 5월 새로운 주인이 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2000억엔을 출자해 과징금 해결을 보면서 미쓰비시 자동차를 인수하기로 결정났다. 배상금이 조단위라 스케일이 다르다.

3.2 제발 우리 좀 데려가 달라구...

원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기존의 지분 관계에 있어 제일 큰 대주주가 다임러-크라이슬러였다. 물론 이 시기 전 1980년대부터 이미 크라이슬러와도 엔진이나 주요부품 등에서 협력관계를 맺어왔고, 크라이슬러도 미쓰비시 자동차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다.[14]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 크라이슬러를 다임러-벤츠가 인수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자, 그룹의 주축인 다임러-벤츠 측에서는 크라이슬러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미쓰비시 자동차를 다임러의 아시아 기지로 쓰기 위해 승용과 상용 부문을 몽땅 인수했었고, 현대자동차와도 손을 잡았었다.[15] 하지만 결국 다임러 벤츠 측에서 크라이슬러를 털어내면서 현재는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미쓰비시에서 손을 떼었으며, 대신 수익을 그럭저럭 잘 낸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계획대로 제대로 인수합병했다. 조금 더 말하자면, 미쯔비시 자동차는 다임러-벤츠가 주축인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전폭 지원해 주는 와중에서도 몰락을 거듭하는 중이었고, 그러던 중 크라이슬러와 지지고 볶던 다임러 벤츠가 크라이슬러와 결별하면서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이 와해되자, 벤츠는 미쓰비시 승용부문에서 손 떼버리고, 대신 대형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만 인수하여 다임러 그룹 내의 상용차 부문 아시아 기지로 재탄생시킨 것...[16]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쓰비시 그룹 측에선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까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 부문이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었는지라 이제는 승용차 부문을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한다. 그러면서 푸조-시트로엥이나 현대-기아 등 다른 기업들이 인수하려 하면 선뜻 안 내놓는게 문제

앞서 말했듯 자동차 부문 경영악화에다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 악화로 지원이 힘들어지자 기존의 대주주인 다임러측은 주식을 증자했고, 이 주식을 푸조가 사들임으로서 대주주 명단에 푸조가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푸조에 자사의 소형 SUV와 전기차를 공급하는 협력관계가 성립되었다. 당시 대주주인 푸조가 한때 얼라이언스를 제의했으나 미쓰비시 측에서 거절했다.[17] 그럼에도 SUV와 전기차 플랫폼 제공 등의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협력을 하기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미쓰비시의 기함 프라우디아[18]를 비롯한 중대형 세단들을 닛산 리뱃지 형식으로 내수 생산하고, 전기 자동차와 신형 세단의 개발·생산에 있어서 파트너쉽을 맺기로 하였다.[19] 결국 이러한 이유로 르노삼성의 부산 신호동 공장 생산라인에서 미쓰비시의 일부 차종들이 새로 혼류생산될 예정이라고 했었다. 출처 그러나, 부산공장에서 혼류생산하기로 한 라인업이 미쓰비시와 르노-닛산 간의 이견차로 중단되어 버림으로써 출처 미쓰비시의 새 중형차 개발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업계에서는 최근 엔화 환율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나자 미쓰비시가 마음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지금 이게 사실이라면 미쓰비시 스스로 복을 차버린 셈이다.

그렇게 르노-닛산 간의 협력도 잠깐 동안 불발되었다가, 연비조작 뻥카가 드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12일이 되자 닛산자동차가 허겁지겁 미쓰비시자동차 지분 34%의 2370억엔어치 주식을 사들이고, 덤으로 과징금도 전액 배상해 줌으로써 드디어 미쓰비시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쓰비시자동차는 현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4번째 새로운 일원[20]으로 편입된 상황이다. 참고1 참고2 그리고 미쓰비시자동차의 주가는 다음날부터 천정부지가 되고 있다링크 참고

결론적으로 르노-닛산 그룹에 레이싱 특화 브랜드가 하나 더 들어간 셈이며, 미쓰비시측의 기술이 닛산은 물론이고 모기업인 프랑스의 르노와 계열사인 한국의 르노삼성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업계에선 예측하고 있다. 다만 반대로 현재 미쓰비시의 기술력이 전기차 같은 일부 기술을 제외하면 현행 차량들과 비교해볼때 많이 낡은 감이 있고, 미쓰비시에게 실질적으로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르노와 닛산에게 차체와 기술력을 받아와서 이전의 낡은 차체와 기술력을 모조리 뒤엎고 새로운 르노닛산의 차체와 엔진들로 라인업을 부활시킬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한, 이제 미쓰비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 일원이 되었기에, 엎어졌던 계획이었던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미쓰비시 중형차량 혼류생산 계획도 다시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잠깐, 그렇다면 공장 근처에 가면 일부차종을 쉽게볼수 있다,그건가? 존나좋군? 어라? 현대가 가만히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경제전문가들과 차덕후들은 팝콘 들고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3.3 우린 예전에 바닥났다니까...

2016년 르노-닛산에게 인수되어 한시름 놓았지만, 그럼에도 현재는 예전의 명성을 찾을 길이 없는 수렁에 빠진 상태이다. 차량의 경쟁력도 부족한 상태며, 신차는 뜸하고 차량의 완성도 또한 경쟁업체에 비하면 떨어지는 상태. 오죽하면 북미에서 근래 발전중인 현대자동차가 더 나아보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플랫폼 노후화&부재로 세계 시장에서 중형급 이상에서 갤랑, 데보네어, 프라우디아가 전부 단종되며 완전히 철수했고 매년 전년 대비 30%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201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사실상 소형 플랫폼으로의 집중을 선언하며 중형급 포기를 기정사실화했으나 2012년부터 일본 내수시장에 닛산의 일부 모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드십 엔진 형식의 경차 i[21](전기차 버전은 i-MIEV) 등이 시장에서 선전하며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으나, 판매량은 일본 내수 시장 부동의 꼴찌 수준이다.

다만 앞으로 주목받을 시장인 전기자동차 시장에 대비한 기술력을 상당히 빠르게 키워놓은 상황이라,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다. 현재 일본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먼저 전기자동차인 i-MIEV를 내놓고 판매하고 있다. 닛산 리프에 묻히잖아 하지만 판매량은 그저 안습.

상황이 이런지라 전통의 모터스포츠 부분에서는 이미 2008년 일찌감치 철수했고, 자사가 직접 하던 렌터카 사업[22]도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2014년 북미 시장에서 사라질 브랜드 리스트에서 볼보와 미쓰비시 자동차를 언급했다. 그래도 볼보가 미쓰비시보단 어느 정도 나은 상태.

2014년에는 자사의 간판 모델인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의 단종을 발표했으며, 2015년에는 그 베이스 모델이 되었던 랜서 역시 단종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과거의 명성을 전부 잃어버렸다.

다만 세계 최초로 4WD SUV 모델의 PHEV를 발표, 곧바로 상용화하고, 세계 각지의 랠리에서도 다시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다,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에 대한 기술력이 상당해, 자금만 뒷받침된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할수있다.

3.4 살기는 살았는데, 갈길이 멀잖아...

전술했듯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 주축인 닛산자동차가 2016년 5월 현재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업계나 언론에선 르노닛산이 미쓰비시와 영향을 어느정도 주고 받으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크게 두가지로 예측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과거 미쓰비시 자동차의 레이싱이나 자동차 관련한 여러 기술들이 모기업인 르노는 물론이고 미쓰비시 자동차를 데려간 닛산과, 르노의 한국 기지인 르노삼성에게도 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사실 르노와 닛산도 레이싱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미쓰비시 역시 이들과 만만치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 파제로 등으로 쌓아온 4륜구동 명성이 아직 다 죽은것은 아니기에 르노, 닛산, 르노삼성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예측이 적지 않다. 참고1 참고2

물론 그보다도 르노와 닛산이 엔진과 차체를 미쓰비시에게 제공하여 새로운 라인업을 만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미쓰비시의 기술력은 전기차나 4WD 기술을 제외한 일반 차량 기술력에 한해서는 현행 차량들과 비교해볼때 많이 낡은 감이 있고, 인수가 있기 전에 미쓰비시 자동차에선 자신들이 신차를 제작하지 못해서 몇몇 닛산의 차를 들여와 뱃지 앤지니어링으로 판매한적이 있기 때문이다.[23] 그래서 이전에 남아있던 낡은 차체와 엔진들 싹 갈아엎고 르노와 닛산이 새로운 차체와 엔진을 제공해서 다시 미쓰비시 라인업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4 대한민국과 미쓰비시의 인연

4.1 현대자동차와의 미운정 고운정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대자동차어머니[24]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설립 초창기에 영국 포드가 조립라인으로만 써먹다가 품질 문제[25]로 기술제휴 연장을 거절하고 먹튀한 후 현대자동차가 1970년대 중반 고유모델 개발을 위한 자동차 핵심기술 제휴건으로 일본의 자동차 기업을 찾아 헤맸으나 토요타, 혼다 등의 기업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비참한 현실에서 이들보다 약간 하위 레벨이었고 일본의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미쓰비시 자동차가 자동차 기술 전수라는 조건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에서 두 회사의 오랜 인연이 시작된다.[26] 이후 30여년이 흐른 2008년 에쿠스 1세대가 단종이 되고 나서야 현대자동차가 미쓰비시와의 기술종속 관계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현대자동차의 성장과 기술 발전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자동차의 첫 고유 모델로 유명한 포니는 미쓰비시의 양산모델인 랜서 1세대의 후륜구동 플랫폼과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얹은 파생형 모델[27]에 가깝고, 현대자동차의 본격 수출작이라 할 수 있는 포니엑셀을 비롯한 프레스토, 엑셀미쓰비시미라쥬(수출명 : 콜트) 1세대 모델을 베이스로 개발 및 변형된 것이며, 실제로 1세대 엑셀을 미쓰비시에서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현대자동차로부터 OEM 공급받아 수출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역대 히트작 중형차라 할 수 있는 쏘나타(Y2)도 미쓰비시 갤랑을 베이스로 개발되었다. 또한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기함급 라인업인 그랜저의 1,2세대 모델과, 에쿠스 1세대 모델은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작품이고, 1990년대 초중반 현대정공(이후 자동차 생산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합병)에서 최초 개발 및 출시하였던 갤로퍼싼타모는 각각 미쓰비시의 미쓰비시 파제로와 샤리오를 뱃지 엔지니어링 수준으로 재조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까지 현대자동차 모델에 장착되는 엔진, 변속기를 비롯한 파워트레인 쪽은 모두 미쓰비시 제품일 정도로 자동차 핵심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거의 100%에 가까웠다.[28]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1980년대 후반부터 연구소를 신설하는 등 자체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에 힘을 쏟은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엔진들과 변속기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고 2002년 세타엔진의 개발을 계기로 현대자동차의 기술적인 자립도는 급속도로 상승하게 되면서 미쓰비시와의 기술적 종속관계 또한 결별 수준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자신들의 기술제공으로 성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현대자동차가 이제는 그 규모나 수준이 엄청나게 커지는 바람에 20세기의 기술종속관계가 역전되는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2리터급 엔진은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 크라이슬러가 공동 진행했던 GEMA 플랜에 따라 세타 엔진을 기반으로하는 4B1계열 엔진을 제조하고 있다. 헤드에는 자신들의 가변 밸브 타이밍, 가변 밸브 리프트 기술인 MIVEC을 적용했으며 일부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세타 엔진과 완전히 동일한 블럭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엔진'으로 미쓰비시의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됐다. 과거 차량까지 입맛대로 만들어 현대자동차가 팔 것을 종용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상황이다. 노후화된 V6 3.0리터 SOHC 사이클론 엔진[29]을 대체하기 위해 람다 엔진을 노리고 있다는 설도 있었는데, 람다보다 크기가 작지만 그래도 신형 6기통인 6B3 엔진이 있고 중형차 이상에서는 거의 철수하다시피해서 람다를 쓸 일도 없다.(...) 2010년 10월에는 현대파워텍에서 자동변속기를 구매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떴다. 실제로 미쓰비시 갤랑 포르티스(대한민국에 팔렸던 랜서 2.0 DOHC 일반형)에는 닛산 계열의 자트코에서 만든 CVT가 달린다. 위에서 언급한 결함 은폐건으로 인해 회사가 도산직전까지 가자 역으로 현대자동차의 미쓰비시 인수설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 원체 현대 내에서도 스승격인 미쓰비시를 돕고 싶어했고 인수합병도 여러차례 고려했으며, 미쓰비시 측에서도 현대와 다시 협력하여 재기하고 싶어했으나 둘 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못했다고 한다. 현실의 벽은 의외로 높다 [30] 어머니의 품에서 성장한 아들이 이젠 늙고 힘없는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실제론 고려장에 가까운 슬픈 현실

그러나 몰락을 거듭한 지금은, 고급차 부문에서 닛산 푸가를 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기함인 프라우디아와 디그니티 신형을 만들게 되었다. 게다가 르노-닛산과 공동개발하는 중형 세단을 대한민국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생산라인에서 만들어내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미쓰비시 자동차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인수가 된다. 결국 현대 입장에서는 자신을 가르친 스승이 이젠 자기 라이벌 르노삼성의 스승님들인 르노닛산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난감스런 상황이 되었다. 더불어 적이 더 커지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4.2 정작 들어왔더니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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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2008년 9월 대한민국 진출 이후 10월 랜서 에볼루션아웃랜더의 판매를 시작했고, 11월에는 이클립스 쿠페를 선보였으나 당시 엔고 환율까지 덮치면서 2008년 10월 53대, 11월 7대, 12월 5대라는 판매량의 위엄을 보여주며 (2008년 11~12월 초기 선보였던 랜서 에볼루션과 아웃랜더를 월별로 각각 1대씩밖에 못파는 막장테크를 탔다!) 진출 첫 해에 철수 위기를 겪었다. 이후에는 매월 수십대 정도의 매출은 유지하고 있으나 판매 부진으로 딜러가 이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안습한 상태다. 2010년 기준으로 랜서(갤랑 포르티스)의 가격은 3,000만원 전후(옵션에 따라 2900만원대)의 가격을 책정했으나, 랜서 에볼루션은 6000만원이 넘는 가격이 책정되어 원성을 많이 들었다. 국내 판매된 미국사양 랜서 에볼루션TC-SST에 S-SWC까지 달린 MSRP 45,000불의 풀옵션 사양이였고, 환율 영향도 있으나 시장의 기대수준이 4,000만원 중반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베이스가 된 일반형 랜서도 판매하였으나 국산 준중형과 비교해도 나을 바 없는 품질로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영업사원들의 사정인지 나중에는 신차가 대량으로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되는 안습의 상황까지 발생했다. 상황이 이쯤되니까 갤로퍼의 원판 모델 파제로가 국내에 발매되었다는 건 아무도 신경조차 안썼다. 결국 철수 고려 중이라는 안습한 기사가 나왔다. 미쓰비시만이 아니라 스바루일본차가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맥을 못추는 편이긴 한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1년 4월 7일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국내 공식 수입사인 MMSK가 사업을 접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2011년 1분기 실적이 34대에 불과할 정도로 영업 적자가 심각하며 이와는 별도로 대주주인 대우자동차판매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MMSK는 자본 잠식률이 93%에 달해 기업으로서의 생존력이 없는 상태였다. 미쓰비시 자동차에서는 새로운 대한민국 수입사를 선정한다고 하지만.....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결국 MMSK가 청산되고 나서 새로운 업체가 그 자리를 메웠는데, 범 한진그룹 계열인 CXC 모터스가 그 자리를 잡았다. 참고로 CXC 모터스의 대표인 조현호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의 조카다. 2012년 3월 16일 대한민국에 재진출하였으며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재진출후 2012년 4월까지 등록 및 판매 0대로 단 1대도 팔지 못했다. 2012년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들이 모두 부진하지만 미쓰비시 자동차는 2012년 상반기 판매 대수는 22대, 그것도 상당수는 내부 직원 판매로, 일반 소비자 판매는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재철수가 머지 않았다.

결국 2013년 CXC 모터스는 전시장을 폐쇄하여 한 곳만 남은 상태고 이마저도 재고 처분 후에 폐쇄할 예정으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있다. 결국 2013년 7월 한국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CXC 측은 잠정 중단일 뿐 재철수가 아니라지만 명백한 사망플래그. 2013년 10월 CXC 모터스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대한민국에서 다시 철수했고 때문에 대한민국 호갱 구매자들은 보증 수리같은 AS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버림받은 상황이다.

4.3 르노삼성을 통한 부활?

그러나, 현재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가 미쓰비시를 인수한 상황이니 이제 르노삼성을 통해서 미쓰비시 차들을 AS받거나 고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르노삼성에서 승용 부문 부족한 라인업을 미쓰비시에서 들여와 리뱃징해서 채울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 외에도 르노삼성에서 생산되는 차량을 역으로 미쓰비시 라인업으로 리뱃징해서 수출할수 있다는 업계 분석도 있다. 원체 닛산이 미쓰비시를 인수하기 전 협력관계일때 르노삼성의 부산 신호동 공장에서 미쓰비시 브랜드의 중형차를 혼류 생산한다는 계획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계획은 잠시 엎어지긴 했지만 이제 미쓰비시 자동차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미쓰비시의 세단들이 르노삼성을 통해 플랫폼과 기술 교류를 하거나, 르노삼성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혼류 생산되리라는 분석이 있다.

이런 것을 쉽게 예를 들자면 (아직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고 예를 든 것이다.) 현행 2016~2017년식 미쓰비시 파제로 롱보디를 QM6 그랜드, 파제로 숏보디를 QM6 큐빅이라는 이름[31]으로 한국에 들여온다거나, 역으로 SM6를 리뱃징하여 미쓰비시 갤랑이나 미쓰비시 디아망떼로 일본, 북미, 남미에 수출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르삼과 협력을 하긴 하더라도, 브랜드 공식수입 자체는 안될 가능성이 높다. 참조 이전에 한국시장에서 존재감 없는 인지도, 팬들 울리는 가격, 불성실한 서비스, 전범기업의 그림자로 2번씩이나 미역국을 먹고 또다시 공식으로 수입한다면 오히려 더 역효과만 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쓰비시 그룹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 본적을 옮기긴 했으나, 전범기업의 먼지를 완전히 털어낸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미쓰비시 브랜드 자체로 판매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미쓰비시의 차를 도입을 하거나 조립생산을 하게 된다면 르노삼성 상표와 차명으로 교체하는 뱃지 엔지니어링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일부에서는 르노삼성이 경차로 르노 트윙고를 들여오려다가 국내 경차규격을 초과하는 문제로 포기한 적이 있었기에, 이참에 미쓰비시의 경차를 리뱃징해서 르노삼성이 판매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

르노닛산의 미쓰비시자동차 인수 초기엔 르노삼성의 준중형 플랫폼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쓰비시 랜서(후속)를 제작하기로 닛산 측에서 발표를 했다고 영문 위키에 쓰여있었다.[32] 이렇게 랜서가 부활한다면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도 르노삼성 차대 기반으로 부활시킬수 있다는 것이 유력했었다. 란에보 : 뭐라고 내..내가 서민 3호기라니! 3호기라니! 말도안돼! 그러나 7월 이후부터는 르노삼성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다는 계획에 대한 말이 영문위키에선 지워져 있다. 르노닛산과 미쓰비시 측에서도 이렇게 발표를 했다가 아니다가 왔다갔다 번복하는 이유는 아직 정식 인수만 했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플랫폼과 기술협력을 받을 것이란 계획만 잡혔지 아직 어떤 플랫폼을 쓸지 어떻게 개발할지는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더 자세한 것은 두고 봐야 할 일. 위키참조

우선은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에게 인수된 사실과 르노 또는 르노삼성에서 제작한 차체들이 새로운 미쓰비시 차량의 생산 기반이 될 것이라는 것 외에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측에서는 미쓰비시 브랜드를 최대한 존중해 준다고 했으나, 한 그룹 일원이 된 이상 서로간의 기술협력과 공유는 당연히 이루어질 듯. 이후 추가 정보 생기면 추가바람.

5 성룡 하면 미쓰비시


▲ 영화 성룡의 썬더볼트 오프닝에 등장하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생산 공장[33]과 주행시험장[34]

1980년대 중반부터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과 제작협력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성룡의 해외진출과 함께 가히 전 세계적인 PPL 효과를 보았다.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이 성룡의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4년 영화 쾌찬차부터이며, 이후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CIA, 빅타임 등에 이르기까지 성룡이 출연하는 영화의 상당수에 자사의 자동차 모델이 등장하였다. 1995년작 영화 성룡의 썬더볼트대놓고미쓰비시 자동차 홍보영화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PPL의 정점을 이루었다. 경쟁자용 레이싱카를 제외하고서는 영화에 투입되는 차량들을 거의 대부분을 지원했고, 오프닝에서처럼 주인공 설정이 미쓰비시 자동차의 드라이버 연수생으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성룡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정비공장의 견인차조차도 미쓰비시 모델일 정도였다. 실제 이 견인차는 미쓰비시 후소에서 만든 미쓰비시 후소 캔터라는 모델로, 현대자동차의 2톤~3.5톤급 중형트럭 모델인 마이티의 초기 모델은 캔터의 라이센스 버젼이었기에 앞부분을 보면 익숙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빅토리녹스맥가이버가 있다면 미쓰비시 자동차에는 성룡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성룡의 버프로도 일어서기 힘든 상황인지라...이 상황을 지켜보는 성룡 형님도 씁쓸할 듯

6 생산차량

6.1 승용

6.2 SUV/RV

7 단종차량

7.1 승용

7.2 스포츠카

  • 랜서 에볼루션 - 속칭 란에보 또는 에보. 2014년 수익 악화와 환경 규제로 인해 단종되었다.
  • FTO - FTO는 Fresh Touring Origination의 약자.
  • GTO - GTO는 Gran Turismo Omologato의 약자. 폰티악 GTO와의 이름 겹침이 겹쳐 해외에는 3000GT로 팔렸고 닷지에서 스텔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7.3 SUV/RV

8 컨셉 카

  1. 이 차종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1991년 현대정공이 파제로 1세대를 현대 갤로퍼로 판매하였기 때문이다.
  2.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한국과 달리 판매하는 차량별로 대리점을 세분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3. 비슷한 사례로, 대한민국에서 한때 갤로퍼와 싼타모는 '현대자동차써비스'라는 전문점에서만 판매한 적이 있었고 에쿠스 또한 차별화를 위해 따로 전시점을 연 적이 있다. 단 수도권에서나 그렇게 했고, 지방에서는 그냥 현대자동차 영업소에서 판매했다.
  4. 1994년에 로터스를 인수한 회사다.
  5. 久保富夫. 미쯔비시 중공업/자동차에서 전설적으로 통하던 사람이다. 1931년 동경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미쯔비시 중공업 비행사업부로 입사뒤에 바로 Ki-46 100식 사령정찰기 개발 주임을 맡았고. 전후에는 자동차 사업부로 이적해 공장장에서 회장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6. 갤랑 플랫폼으로 에테르나, 레그넘을 만들었으며, 랜서 플랫폼으로 미라지,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근데 갤랑과 에테르나, 레그넘이라던가 랜서와 미라지는 말이 좋아서 형제차지 실상은 그냥 같은 차에 이름만 바꿔서 파는 뱃지 엔지니어링 수준이었다. 특히 1996년 이후 모델들은 닛산 못지않게 어느 차가 오리지널이고 어떤 차가 변형모델인지 구별도 못할 정도였다. 그 중 미쓰비시 카리스마볼보 S40 1세대와 동일한 모델이었고 네덜란드에서 생산됐다.
  7. 1964년(!!!!)에 나와 1986년까지 22년 동안 판매된 1세대 데보네어를 말한다. 실러캔스:스무살짜리 애기가 깝치네 ㅋㅋㅋ 에어로타운이스타나:어이쿠 막내 왔다! (플랫폼:30년+a) 이후 1986년에 들어서야 2세대 모델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현대 그랜저로 팔렸다.
  8. 승용차 갤랑, 파제로, 파제로 이오, 랜서(란에보 포함), 델리카 스페이스 기어 163,707대, 대형 상용차 더 그레이트, 슈퍼 그레이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킹, 에어로 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스타 1백만대
  9. 휠을 고정하는 볼트가 깨져서 타이어가 튀어나갔다. 그것도 대형 트럭(!) 이 결함으로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와 튀어나온 타이어에 아이 어머니가 맞아 어머니가 그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크게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10. 때마침 12개월 동안 0퍼센트 할인, 0퍼센트 이자, 0달러 선납금이라는 0-0-0 마케팅을 했었는데, 이 사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0-0-0 마케팅으로 산 차를 중고로 다시 팔아버리는 바람에 미쓰비시는 심각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11. 지금도 몇몇 언론에서 설문조사나 의견조사를 하면 일본인들 대부분은 미쓰비시의 결함은폐에 대해 "회사 책임자가 그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전통대로라면 책임자가 할복이라도 했어야 할 상황이다" 라고 했을 정도다. 이는 실제로 모터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일본내 시민들에게 자동차 회사들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할때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같은 일본 소비자들까지 등을 돌릴까?
  12. 이 사건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소설 '하늘을 나는 타이어(空飛ぶタイヤ)'의 모티브가 되었다.
  13.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닛산자동차의 이름으로 판매된 것까지 포함하면 4종이다.
  14. 이 시기 크라이슬러 차종 중에서는 미쓰비시에서 제작된 엔진을 크라이슬러가 자사 입맛에 맞게 튜닝하여 얹은 차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긴밀한 관계였던 셈. 포드도 가끔 야마하에서 엔진을 주문해 오긴 하지만 그보다 더했다 보면 되겠다.
  15. 이 당시 다임러크라이슬러 홈페이지에서 보면 벤츠, 크라이슬러, 미쓰비시 자동차가 한 그룹으로 속해있었고, 현대자동차는 협력(Joint Venture)로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잠시동안이지만....사족으로 이 시기엔 현대가 상용차 부문에서 벤츠의 엔진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당시는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이 계속 굳건하다고 믿었기에 다임러 벤츠 측에서는 상용차부터 승용차 부문 전 라인업 기술 협력의 초석으로, 맨 먼저 현대의 상용차 부문과 협력을 야금야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쌍용은 엄청 난감했었을듯 물론 크라이슬러와 벤츠 간의 여러 문제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와해되고 나서는 결국 중단되고 말았지만...
  16.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여 앞으로도 다임러가 벤츠가 계속 소유중이다. 본문에서도 서술했지만 미쓰비시 그룹 내에선 에선 승용 부문이 갈수록 병크로 치닫고 있었고, 그나마 승용부문에 비해 수익을 더 잘 내는 쪽이 상용차 부문이었다. 승용차 부문에 비해 수익도 잘 내고 일도 잘 하던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를 당연히 벤츠는 포기할 수 없었고, 미쓰비시 후소를 메르세데스 벤츠 상용차의 아시아 기지로 키워내기 위해 지분인수를 늘려 자회사로 만들었다.
  17. 아마도 푸조 측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보고 대항하려는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사간 이해관계와 유로화 약세 등의 문제로 PSA 측과 미쓰비시는 자본제휴를 그만두게 되고, 경기회복 후에 다시 지분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출처
  18. 과거 1세대를 현대 에쿠스와 공동 개발했던 그 프라우디아 맞다. 현재 2세대는 닛산 푸가/닛산 시마를 마크만 새로 바꿔서 프라우디아라고 팔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작 일본 내에서 판매량이 신통할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일본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마크만 미쓰비시로 단걸 눈치 못 챌리가....출처
  19. 우선 일본 언론에서도 "도요타와 독일 폭스바겐, 미국 제네럴모터스로 구성된 3강 체제에서 르노닛산과 미쓰비시 연합이 더해진 4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하며 "이전까지의 미쓰비시의 제휴들이 실패였다"고 까는 점을 봐서는 차라리 미쓰비시측도 이번 협력만큼은 안정적인 자본제휴나 매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속내인듯도 하다. 하기사 이전까지는 협력이고 나발이고 뭐 하려고만 하면 전부 망했어요 루트를 타니 출처
  20. 르노삼성, 다치아, 라다에 이은 4번째 르노닛산 계열 브랜드
  21. 스마트 포투에 들어가는 1.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이 i에 장착되는 엔진이다.
  22. 일본은 자동차 메이커가 직접 렌터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23. 일례로 앞서 전술했듯 자사의 기함인 프라우디아 2세대를 자신들이 제작하지 않고 닛산 푸가 세단을 들여와서 리뱃징만 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
  24. 물론 아버지는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故 정주영 회장이다.
  25.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포드 코티나가 택시로 운행하던 도중 계속 퍼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 바람에 코티나는 "고치나"/"코피나"/"섰다 하면 코티나"(...)등의 별명이 붙는 등 골치를 앓았다. 원인 규명 결과 당시 대한민국의 나쁜 도로 사정 때문에 유럽 도로 사정에 맞게 설계되어 있었던 코티나가 견뎌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품 중 일부가 침수되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차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26. 처음에는 현대자동차가 굽히고 들어간 듯 하지만 파트너쉽 관계가 맺어지고 나서부터는 실질적으로 서로 윈-윈한 상황이었다. 첫 협력 제품이었던 랜서 기반의 현대 포니가 성공하여 그럭저럭 소형차는 자리를 잡았는데 중형차 이상은 여전히 영국 포드의 한물 간 모델이나 만들고 있을 정도로 기술이 없었던 상황에서, 88올림픽 특수를 맞아 내수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되던 중, 대형급 고유 모델의 개발과 기업 규모의 성장에 있어서 미쓰비시의 기술 지원은 당시로서 필수 불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미쓰비시는 1964년에 처음 출시되어 20년 이상 지날 때까지 모델 변경 하나 없이 달리는 실러캔스 같은 악평을 듣던 구닥다리 데보네어의 풀 모델 체인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 문제로 지연되던 중이었는데, 현대자동차와의 파트너쉽으로 자금을 지원받은 덕에 출시될 수 있었던 것이 전륜구동의 현대 그랜저미쓰비시 데보네어이다.
  27. 그나마 차체 디자인을 현대자동차이탈리아의 유명 카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완전히 새롭게 맡긴 덕분에 고유모델로서 체면치레는 했다.
  28. 허영만 만화 아스팔트 사나이에 나오는 대기업 기룡모터스가 이렇다...일본에 대한 핵심기술 의존도가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견디다 못한 주인공 이강토가 사표를 쓰고 허구헌날 딴지걸던 부사장에게 오물을 뿌리고 "일제 구닥다리 차량 돈주고 사오며 기술 의존하는 주제에 뭐가 대기업이고 뭐가 잘났냐!"라고 일갈하고 나온다....90년대 초만 해도 이랬다.
  29. 이건 1990년 전후의 각그랜저에 장착되던 오래 된 V6 3.0리터 SOHC 엔진이다...
  30. 실제로 현대와 미쓰비시 간에 재협력/합병에 대해 서로 마음은 맞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못했다는 분석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지 않다. 현대에서는 그간 배운 정이 있어서 협력이나 합병 또는 투자를 해보려 고려했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포기했다고. 원체 미쓰비시 그룹 자체가 과거 전범 기업인데다 사죄에 대해서는 인색한지라, 만일 미쓰비시 자동차 부문만 현대가 인수한다 해도 "전범기업을 형제로 들이느냐" 라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정말로 현대가 미쓰비시를 인수합병했다면 두 기업간에 얻는 시너지는 적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31. 일반 QM5가 단종된 대신 신형 콜레오스는 후속 QM6가 되기로 확정되었다. 다만,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파제로를 들여오기보단 신형 콜레오스를 한국엔 QM6, 일본에는 최신형 파제로 또는 파제로 스포츠로 도입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다.
  32. 원문은 <Nissan and Mitsubishi have announced plans to develop a mid-size sedan to replace the current Lancer, using a Renault Samsung platform, and Nissan has said that they plan to share some car platforms and jointly develop future vehicles with Mitsubishi Motors.>
  33. 영상을 초반부에 야외 적차해 놓은 차량들과 중반부에 조립되는 차량을 보면 싼타모와 판박이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싼타모의 오리지널 모델인 미쓰비시 샤리오다.
  34. 주행시험장에서 성룡을 비롯한 연수생들을 태우고 고속질주하는 버스도 현대 에어로 버스의 원형인 미쓰비시 후소의 에어로 버스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