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독립운동

(대만 공화국에서 넘어옴)

타이완 섬에 존재했던 국가에 대해서는 타이완 민주국 문서를, 한국 방송사의 자막 실수에 대해서는 대만민국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중화민국은 이미 없어진 국가"

- 리덩후이 잠깐, 그럼 당신은 어디 총통이었수?[1]

중국과 대만에 각각 하나의 나라가 있다.(台灣中國、一邊一國)

- 타이완 독립운동 진영의 구호.

타이완 독립운동
臺灣獨立運動 (臺獨)
台灣獨立運動 (台獨)
타이완 독립운동의 상징인 대만기(臺灣旗)
영어Taiwanese Independence Movement
대만어Tâi-oân to̍k-li̍p ūn-tōng
일본어台湾独立運動(たいわんどくりつうんどう)

1 개요

대만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양측 모두)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주권국가인 대만 공화국(臺灣共和國)대만민국의 건설을 주장하는 일련의 운동을 말한다. 오해하기 쉬운데,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분리된 주권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은 대만 독립운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중국'이다.

2 역사

사실 대만 본성인들도 일제강점기에는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상당히 강했으며 1911년 신해혁명에 호응하는 봉기가 일어날 정도였다. 많은 대만 본성인들이 17~18세기에 푸젠 성 지역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이고, 푸젠 성과 긴밀한 연결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에 비해서 일본이 대만에서는 상당히 유화적인 통치를 한 이유로[2],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종전 직후 대만에서의 일본 철수를 아쉬워하던 대만인도 있었다.

위와 같은 복잡한 사정은 제쳐두고서라도, 대만 사람들을 일본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2등 국민 취급하는 것은 역시 다른 식민지 지역과 다를 바 없었으며 전쟁 수행으로 인해 타이완 민중의 삶은 고달파졌다. 타이완 총독부가 해체 직전에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후원하기도 했지만 세가 매우 미약했다.

그렇기에 대만이 중국에 반환되고 국민혁명군(이후 중화민국 국군)이 대만에 상륙했을 때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환호했다. 자신들과 같은 한족이 다수인 중화민국이 자신들을 2등 국민이 아닌 대륙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2.28 사건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최소 1만 8천명,최대 4만명에 달하는 본성인[3] 이때 학살당했으며 그 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도망쳐 온 뒤에도 외성인이 사회 주도세력으로 활동하여[4] 민주화 이전까지 본성인의 힘이 위축되었다. 국부천대를 전후해서 국민당을 따라 들어온 한줌도 안되는 외성인들이 정치권과 군부,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주도권을 쥐고 인구의 절대 다수를 자치하는 본성인들은 쩌리 신세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이에 '대만인은 대만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대만 고유의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어 대만 독립운동이 급성장하게 된다.

대만 독립운동 역시 홍콩 독립운동[5]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대만에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주장도 점점 득세하고 있다.대일합방? 대만의 중화민국 반환을 선언한 카이로 선언에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만의 중화민국 귀속을 부정하고 대만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이들 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크지는 않다. 카이로 선언과 달리 국제법적 구속력이 확실하게 있는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이 대만을 포기할 것이 확실히 규정되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재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성향의 학생운동인 NL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2.28과 비슷하게 중앙정부에 의한 대민학살(5.18 민주화운동)을 겪었기에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컸고. 또한,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대만을 중국(정확하게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구 중화민국 정부의 잔당)의 식민지로 규정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NL은 북한을 한민족사의 정통으로 바라보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지향하였다면(...), 대만의 독립세력은 중국 공산당을 중국사의 정통으로 인정하기는 하나(국공내전에서 이겼으니까), 대만이 중국에 속함은 거부하고 또한 중국과의 통일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독립을 지향하는데 중국과 통일을 주장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21세기에 대만 학생운동권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 사례를 참고하기도 한다.

3 전개양상

3.1 민주화 이전

국공내전 말기 미국이 타이완을 별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검토 단계에서 중단되었고 국민당이 쑨리런[6]을 연금시키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1950년 즈음에 일본, 홍콩, 미국, 캐나다의 본성인 화교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대만의 민주화운동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국민당 독재시기에 민주화나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것으로 가차없이 탄압되었으며,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나 친일파로 몰리기도 했다. 대만어를 비롯, 대만 토착 문화도 강력히 탄압되었다.대만 원주민들은 여전히 듣보잡 이당시 대만에서 얼마나 대만 토착 문화를 탄압했냐면, 각급학교에서 대만어를 쓰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벌을 받을 정도였다.

3.2 리덩후이의 양국론

민주화 이후 최초의 민선 총통이 된 리덩후이는 예전의 정책에서 변화를 가하여, 중국 본토 + 홍콩 + 마카오를 대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 펑후 + 진먼 + 마쭈 등으로 구성된 중화민국 양 국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로서는 중공을 부정하던 과거에서 일정부분 양보한 정책이나, 정작 중공측에서는 심하게 반발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 허나 정작 대만 내 범람 연맹에서는 조용했는데 애초 리덩후이가 국민당 소속 총통이었던데다 이 때까지는 양국론이 중화민국이라는 주권 국가를 강조하는 차원으로 해석되어서.....

3.3 대만 정명운동

대만화대만돈이란 뜻이 아니다라고도 한다. Taiwanization[7]의 일환이다.

'중국-'이라는 접두어를 정부기관, 공기업 등에서 전부 삭제하고 '대만-'이라는 접두어로 바꾸는 정책을 말하며, 본래 독립을 지지하는 민간 단체에서 주도하던 운동이었지만, 천수이볜 정권 때 공식적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일련의 변화를 보자면.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에 기재된 '中華民國'을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으로, 'Republic of China'를 'Republic of China (Taiwan)'이라고 고쳤다.
  • 국영기업인 중국석유는 대만중유(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중화우정(中華郵政, China Post)은 대놓고 대만우정(臺灣郵政, Taiwan Post)으로 고쳤다. 중화민국 정부가 출자하는 중국강철(中國鋼鐵, China Steel)도 비슷하게 개명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힘들어 결국 개명하지 못했다.
  • 한국에서 중국 국민당을 대만 국민당이라고 표기하는 것도 이것의 영향이라 카더라.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한 뒤에는 이 조치들의 일부를 취소했으며 다시 원래대로 중국-중화란 이름으로 복귀하고 있다.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 등의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은 '中華民國'으로 되돌리되 영어판에서는 'Taiwan'을 삭제하지 않았다. 중국어권에서는 중화민국만 기재해도 중국 대륙과 혼동하지 않으므로 굳이 대만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했지만, 중국어권 밖에서는 혼동하기 때문에 Taiwan의 병기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다.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여 이 조치에 반발하는 일부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한자와 영어로 표기한 스티커를 여권 앞표지에 붙여 '중화민국'을 가려버리기도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이 여권을 여권 변조로 보고 입국 금지를 먹여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 대만중유는 중국석유로 되돌리고 있으나 이미 교체 작업이 상당히 진척돼서 지체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만우정은 중화우정으로 원상 복구했다[8].

3.4 절충안

대만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독립국가로 취급하는 것이다. 대만 독립이 가져올 혼란이나 양안 통일이 대만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거부감 사이에서 타협점으로 나온 방안으로 많은 대만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물론 중공에서는 역시 반대한다.(...) 그러나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하는 강경한 대만 독립운동을 막기 위하여 현상유지로 묵인하고 있다.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는 '중화민국 타이완'(Republic of China-Taiwan)이라는 대외명칭을 채택해 독립운동 세력이 주장해온 '대만국', '대만공화국'보다 온건적인 독립 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 대부분의 대만인이 통일도, 독립시도도 안하는 양안간 현상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대만인들로부터의 일정한 지지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콩고 공화국콩고 민주 공화국의 사례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베이징(China-Beijing), 중화민국을 중국-타이완(China-Taiwan) 혹은 중국-타이베이(China-Taipei)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현재 주요 국제기구와 올림픽 같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복잡한 외교적 공방전 속에 애매하게 묵시적으로 합의된 어정쩡한 명칭이지만, 마땅히 대안이 없어서 계속 쓰이고 있다.

3.5 여권 스티커 논란

독립운동 진영에서 현행 대만 여권의 '中華民國' 및 'REPUBLIC OF CHINA' 문구에 '臺灣國' 'REPUBLIC OF TAIWAN' 스티커를 붙이고 중화민국 국장 대신 대만 고유의 문화를 상징하는 원형 스티커를 붙이는 운동을 벌였다. 이는 대만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정부에서는 여권을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한 상태.

운동 초기에 스티커를 붙인 여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으며, 해당 운동가는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등에서 입국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경 검문이 강화되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싱가포르 이민국에서 해당 스티커 여권으로 입국심사를 받던 대만인 3명을 입국거절도 모자라 추방명령을 내렸다. 대만의 미국 대사관격인 미국제대협회(AIT)는 대만 외교부의 스티커 부착 관련 질의에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여권을 변경하는 행위는 여권 훼손에 해당하며 입국 거절의 위험성을 높인다."라고 밝혔으며,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도 스티커 부착 여권을 제시할 경우 2차 검색대에서 '강도높은 심문'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심지어 일본 공항에서도 대만인 여행객 일부가 스티커를 뗄 것을 요청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 추방시키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사실 여권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국가공신력을 떨어뜨리는 위험한 행위로 국적에 대한 임의변경으로 밀입국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타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여권과 색이 비슷한 베트남 여권에 '대한민국' 스티커와 무궁화 국장을 붙일 경우 내지를 보지 않으면 한국 여권인지 베트남 여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대만의 국가공신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미국 사증 면제 프로그램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륙 출신 중국 국민당이 기를 쓰고 '대만' 명의로 VWP 가입해줬더니 독립진영이 걷어차는 꼴

3.6 외성인, 본토인에 대한 시각 차이

현재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중국본토인들을 이웃나라 사람으로 여기며, 일부는 외성인을 포함한 본토 출신을 같은 민족으로조차 보지 않는다. 당, 송, 명, 청 이런 나라들도 국사가 아닌 외국사로 본다. 이들에 의하면 대만은 중국이 아니기에, 1949년 이전에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은 같은 국가 내 타 지방으로 이주해 온 외지인이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민온 이민자라고 본다. 그리고 진마 지구를 그 이웃나라로부터 뺏어왔다. 이는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서 현재 대만에 거주 혹은 체류중인 본토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부천대에 대한 시각도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는 '천도' 혹은 '피난'이고, 독립운동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침략' 혹은 '이민'이다. 다만 국공내전 직후 들어온 외성인에 한해서는 이웃나라 중국의 공산정권을 피해 대만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이민자로서 바라보며[9],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단어를 내포하는 '외성인'보다 새로운 이주자라는 뜻에서 신주민(新住民, Newcomers)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이는 독립운동의 상징가인 대만취청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3.7 유엔 가입 문제

1971年中華人民共和國進入聯合國,取代中華民國,台灣成為國際孤兒。為強烈表達台灣人民的意志,提升台灣的國際地位及參與,您是否同意政府以「台灣」名義加入聯合國?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유엔에 가입했으며, 이에 대만의 대표권이 상실되었다. 이제 대만의 적극적인 국제사회 참여를 위해, 여러분은 대만 정부의 대만 명의 유엔 가입 신청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신규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천수이볜 발의)

您是否同意我國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它組織,名稱採務實、有彈性的策略,亦即贊成以中華民國名義、或以台灣名義、或以其他有助於成功並兼顧尊嚴的名稱,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他國際組織?

여러분은 '중화민국' 혹은 '대만' 명의로 유엔재가입 및 산하 기관에 다시 가입하는 것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재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샤오완창 발의)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 유엔 가입은 1971년 이후 상실한 회원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게는 '대만' 국호로 유엔새로이 가입하는 것이다. 용어 사용을 봐도 전자는 "Taiwan should RETURN to the UN"이고 후자는 "Taiwan should ENTER the UN"이다. 다만 일반인들은 이런 용어를 엄밀히 따지지 않기 때문에 별 구별없이 쓰기도 한다.

4 오해

4.1 타이완은 중국의 식민지이다

'독립운동'의 어감 때문에 타이완이 중국(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식민지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사실상 중국본토와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식민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극렬 분리주의자의 경우에는 대만을 중화민국의 식민지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4.2 타이완 독립운동가들은 전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아래에 후술하겠지만 일부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일본 우익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또 그 중 일부는 우익사관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고는 있지만 모든 타이완 독립 지지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웃기게도 일본 우익세력들도 이 주장을 사실로 여기고 있으며 대만을 방문하는 도중 항일운동 사적지를 보고 멘붕에 빠지거나 중국 국민당의 역사왜곡이라고 욕하거나 혐대만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4.3 소수의 중국계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대표적 오해. 다수의 중국인이 소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현 대만의 주류 민족인 본성인들도 중국본토(정확하게는 푸젠 성 일대)에서 유래한 한족이고 대만 원주민들은 따로 있다. 대만 원주민은 대만 국민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한데, 불법이주가 판쳐서(...) 대만섬에 한족이 원주민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5 대내외 반응

5.1 중화민국 정치권

민주진보당대만단결연맹범록연맹에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한때 국기, 국가(國歌), 국호, 헌법까지 전부 바꾸자는 대만독립강령을 제창한 바 있으나 범람연맹 등 등 보수파의 반발로 일단은 유보한 상태이다. 강경 독립파가 아닌 이상 범록연맹이라 하더라도 중화민국의 현행 정치 체제는 존중하는 편이다. 최근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도 다소 온건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중.

5.2 중국 본토

중국 공산당은 이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1949년 양안분단 이래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수복하지 못한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만에 피난한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국가나 정치체제와의 수교를 철저히 거부한다. 또한 '대만의 독립' 그 자체를 국가분열행위로 간주하며, 대만이 독립 시도를 보일 경우 전쟁도 일으킬 수 있도록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해두었으며, 2008년에 중화민국의 국가체제를 대만으로 전환하는 헌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할지언정 타이완 독립을 묵과하지는 않는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내 국민투표에서 백지화(2008년 대만 총통 선거 전날 국민투표가 시행됐는데, 투표율이 50%에 미달해서 무산됐다.)시킨 적도 있다. 그나마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일단 '중국'의 일부라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고 92공식으로 서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또한 미국 눈치도 보이니깐 무력행위를 쓰지 않고 대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하나의 중국을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대만을 반대하고 '중공을 집어삼키겠다'는 중화민국을 용인하는 아이러니

2016년 대만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잡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우리의 대만정책은 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라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기사

5.3 중국 민주화 세력

이들 역시 타이완 독립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중국 공산당 1당체제를 완화, 해소, 혹은 타도하고 민주화를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노력하는 쪽이지, 대만의 독립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 총선거를 통해 민주화된 중국이 대만과 통일을 이루려 할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이나 민주화 세력이나 국가분열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이므로 만일 이들이 집권한 상태에서 대만이 독립을 강행한다면 중국 전체 국민투표를 거쳐 대만 병합을 결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독립을 저지하려고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실 반공/반체제 인사들 중, 민족주의에서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워낙 많다. 이에 따라 대만에 홍콩, 마카오와 같은 특별행정구 지위를 부여하는 일국양제 정책에는 현 중국공산당과 동일하게 긍정적이다.

대만의 범람연맹 입장에서는 중공의 1당독재체제가 사라지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될 경우, 통일을 거부하는 실질적인 명분이 사라진 셈으로(중국대륙의 민주화) 점진적으로 대륙과의 통일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범록연맹 측에서는 독재정권이 사라진 이상 우리는 이제 남남이라는 식으로 분리독립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유중국대륙-자유대만으로 체제만 바뀐채 양안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5.4 홍콩 독립운동

타이완 독립운동의 든든한 우군.

최근들어 홍콩과 대만 양 측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동포로서 중국 공산당의 압제에 같이 맞서는 게 아니라, '이웃나라'를 도와 공동의 적에 맞서는 것이다. 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겐 홍콩인 역시 중국본토인과 똑같이 외국인이다. 다만 본토인보다 홍콩인에 좀 더 호의적인 것 뿐.

5.5 대한민국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과 실질협력 지속 증진"

북한과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양안관계의 악화로 동북아 정세가 긴장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지만 실질적 교류는 확대하는 식으로 사실상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양안 문제에 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기에 대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 편이다. 사실 대만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중국과 대만을 다른 나라로 분리해서 보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사실 현 타이완 상황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구태여 현 중국 국민당을 외세라고 볼 경우) 외세의 지배에 대한 반감도 있고, 2016년 들어서는 급증하는 반중 감정이나 쯔위 사태도 겹치면서, 혹은 (한족계) 본성인과 대만 원주민을 혼동해서 타이완 독립에 대해 동정적인 반응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근데 쯔위는 '중화민국'의 국기를 들었다가 봉변당했다는 점에서 대만 독립의 상징으로 봐야 할지는 애매하다 대만독립기를 들었다면 모를까

5.6 미국

미국은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만과의 경제, 문화교류 등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는 건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미국은 믿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대만 관련 문서 #

본 문건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과 관련하여 1979년판 타이완 관계법, Pub. L. No. 96-8, 4(b)(1) 조항에서 “미국법이 외국의 국가, 나라, 주, 정부 또는 그와 유사한 단체를 언급하거나 이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항상 이러한 용어가 대만을 포함하고 대만과 관련하여 적용한다”고 적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2 U.S.C. § 3303(b)(1) 조항. 따라서 이민-국적법 217조, 8 U.S.C. 1187의 법률 조항에 근거한 Visa Waiver Program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은 대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1979년 이래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왔던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치합니다.

-미국 국무부국토안보부사증 면제 프로그램 및 ESTA 발급 관련 설명

영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미중관계에 있어 항상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며 대만은 중국 고유의 영토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CIA 팩트북의 세계 국가정보를 보면 대만은 국가도 속령도 아닌 Others에 속해 있다. 그러나 대만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 정부와 비공식적인 관계는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방어용 한정이지만 무기도 판매한다. 바가지 씌워 파는 것은 넘어가자

미국 입장에서 대만은 한반도와 함께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 대륙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을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여 중국과 정면충돌하는 것도 되도록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륙과는 분리된 중화민국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이다. 2015년 미국 전승절 기념 행사에서 타이완 대표를 '중화민국'으로 호칭하여 주미 중국 대사가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는데, 이때도 '중화민국'이라고 언급했지 '대만'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진보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보다 중국 국민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 더 환대를 받는 걸 보면 미국의 입장을 대충 실감할 수 있다. 다만 민주진보당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된 직후 국무부가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공화당에서 대만과 재수교 떡밥을 던진 바 있으나 외교에 무지하다는 욕만 먹고 닥버로우했다(...).

최근, 민진당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부는 다시 대만 독립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입장은 그렇다 치고 민간에서는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단체가 몇 있다. 대만공화국의 건국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주도로, 미국에 체재하는 소수의 대만 본성인들과 소수의 일본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10].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중국의 견제를 위해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reintroduce)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라는 연구결과를 내기도 했다. 재가입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봐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지는 불분명.

미국에는 중화민국 국적자가 두 부류로 나뉘는데 1945년 이전에 본토에서 건너간 중국(본토)인 + 1949년 이후 건너간 외성인 출신 대만인이 한 부류고, 또 다른 부류는 대만 본성인이다. 전자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며 대만독립에는 원론적으로 반대하고, 후자는 독립국가로서의 대만의 주권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5.7 일본

1972년 중일공동성명 이래로 일본 정부는 대만과의 비정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 #

일본 역시 공식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있어 중국과 수교하고 있고, 중화민국과는 비공식적 교류 관계만 있을 뿐 중화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하지는 않는다. 대만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 국민당의 집권을 선호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 정계에서는 대체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진보당의 집권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국력 및 중국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민간 일본인의 경우 같은 섬나라로서, 혹은 예전 일본 제국시절 첫 식민지였던 점으로 인해, 대만 독립운동 지지유무에 상관없이 경제문화적인 이유로 대만에 친근감을 느끼며, 일본인 특유의 대륙중국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중국문화 체험을 위해 대륙 대신 대만을 찾는 일본인들도 많다. 대만의 외국계 문화에서 한류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일본 문화. 정치적 의견과 별개로 "중국이 대만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만의 국제사회 참여 문제에 어느정도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에도 (재)가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혹은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대만을 싫어한다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사실 둘다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둘다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일본인의 경우, 좌익 일본인은 중화인민공화국제국주의국가, 중화민국을 구 독재세력의 잔재로 바라보며 반제전선으로서의 대만독립을 지지하기도 한다. 우익 일본인의 경우 그 이유가 상당히 골때리는 편인데, 아래 문단에 후술한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대만=중화민국 이렇게 두개의 중국론으로 양안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도 있다.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郎)의 두개의 중국론에 대한 논평(일본어).

5.7.1 일본의 우익 세력

타이완 독립운동의 든든한 우군 2.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나 우익 민간 인사들 몇몇은 대만 독립진영의 정치인과 개인 자격으로서 교류하고 있으며, 일본 정치인들은 대놓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지만 민간 우익 인사들 중에서는 중국 견제에 대한 일환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있다.

대만에서도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대만을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옹호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강대국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본 우익진영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독립진영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리덩후이친일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일부 대만 독립진영의 인사가 일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거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여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일단 그들의 명목은 대개 '전쟁에서 희생된 대만 사람들에 대한 추도'이며, 대표적으로 쑤전창 민주진보당 대표가 있다. 그럼 이 쪽으로 가던가 리덩후이는 자기 형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 리덩후이가 야스쿠니를 가는 표면상 목적이 "내 형이 합사되어있는 사당에 참배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 물론 이 신사에 합사된 대만인 전몰자들을 빼달라는 대만인들의 항의에 대해서는 이들도 침묵으로 일관한다.[11]

5.8 해외 화교

해외의 화교들 중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이나 파룬궁 신도 등은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보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너질 시 중화민국이 본토를 차지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조하는 중화권 해외 언론으로 보쉰이나 대기원시보 등이 있다. 오 사다하루의 경우 아버지가 저장 성 출신으로 본인은 중화민국 국적이지만 자신을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여긴다.

반면 본성인 출신 화교들은 독자적인 대만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미국 등에서 대만의 UN 가입 시위를 벌이는 쪽은 대부분 이 사람들이다. 특히 대만계 미국인이나 일본인의 경우, 대륙 출신 구 화교나 중국 본토인, 홍콩/마카오 출신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끔 중화민국 지지 화교와 대만독립 지지 화교가 상호 시위를 벌일 때가 있는데 둘 다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6 만약 대만 독립국이 새로 건국될 경우

이 말은 곧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는 의미와 같고, 반분열국가법을 내세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이므로, 대만과 중국과의 전면전쟁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남중국해동중국해 분쟁 등으로 인해 미국, 일본 등과의 군사적 충돌이 끝내 이루어지고,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폭발할 수 있다. 중국이 그 충돌에서 밀릴 경우, 아편 전쟁이나 시모노세키 조약 때 처럼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중화민국을 강력히 엄호하는 미국, 일본의 주도로 하나의 중국 정책 포기 및 대만의 독립국 지위 보장을 압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적성국가와의 정면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해왔고, 일본 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쪽을 선호하며 또 일반 일본인들도 전쟁에 대해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타이완의 독립 보장이 성공할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

이 문단에서는, 중화민국 정부가, 혹은 분리주의 세력이 혁명. 쿠데타 등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전복된 뒤,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할 경우를 가정한다. 타이완 섬이 독립국이 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유력한 국명은 타이완 공화국(台灣共和國, Republic of Taiwan)이므로, 본 항목에서는 독립국 국명을 타이완 공화국(혹은 대만 공화국)으로 설정하고 서술한다.

  • 외교
    • 전세계에서 중화민국(中華民國)나 Republic of China라는 명칭이 모조리 사라지거나 대만(台灣), Taiwan으로 교체될 것이다.
    • 일부 국가가 대만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승인국 취급할 수도 있다.
    • 대한민국의 경우 수교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현성은 낮다. 중국이 남북통일을 방해하지 않거나 북한 붕괴를 방기하는 조건으로 대만에 대한 불승인을 요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 당연하게도 중국에 수교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16]. 다만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 우선 대만공격을 막아내야 할 것이다.
    • 유엔에 '대만'(Republic of Taiwan)으로 가입을 시도할 것이다. 가입이 성사될 경우 기존 중화민국과의 영속성은 단절된다[17]. 대만은 '중화민국'이 아닌 신규 가입국 '대만공화국'으로 불리울 것이다. 다만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써 전국력을 총동원해서 막을 가능성이 크고, 홍콩과 관련하여 최소 2047년까지는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영국[18]과 미국등 서방권은 물론이고 같은 반서방 진영 국가인 중국과도 영 좋지 못한 관계에 놓여있는 러시아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독일, 세르비아,[19], 불가리아[20] 같은 다른 서방.유럽권 나라들 역시 중국과 대만의 대립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19세기 말 처럼 중국이 아예 힘을 잃어 다른 나라에 휘둘리는 상황이 아닌 이상 대만 혼자서 지지를 얻기는 무리일 것이 있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조어도), 대만명 댜오위타이(조어대))의 영유권 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댜오위타이는 독립국가 대만의 부속도서이므로 대만과 관계가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대만 정부의 영유권 주장이 약화될 수 있다. 이 경우 무주지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도 대만이 아니라 푸젠 성 부속도서라고 주장하면 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없음"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1860년대에 대만은 푸젠성의 일부였으므로 어느 정도 근거는 있다. 1885년에 타이완 성이 독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입장에서 영유권 주장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 국내에서도 "댜오위타이는 대만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며 일본에 조금 더 호의적인 범록연맹일지라도 주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
    • 중국측이 남중국해에 설정해놓은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은 사실 중화민국 정부가 설정한 11단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 남중국해 분쟁 판결에 양안이 모두 비판성명을 내놓는 등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하여 양안은 연대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대만정부 또한 명목상으로는 이를 이어받을 것이지만, 신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현 실효지배지역을 제외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대신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정치
    • 헌법이 새로 제정되거나 개정된다. 정부기관이나 정책, 제도 등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기존의 중화민국의 모든 것을 해소하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고 정부기관도 해체후 재설립 수순을 밟을 수 있다.
      • 혹은 중화민국이 사용하던 예전의 제도들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도 있다. 다만 중화민국, 중국, 중화 등의 명칭은 바뀔 것이다. 중화민국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은 대만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aiwan)으로 바뀐다던지. 조직이 대체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행정원 대륙위원회, 몽장위원회 등은 사라지고, 대 중국 관련 업무는 외교부로 이관된다.
    •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중국 국민당은 당명에서 '중국'이라는 명칭을 삭제하거나대만 국민당, 최악의 경우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또한 중국과의 통일을 추구하는 범람연맹은 수년간 지지율을 올리기 힘들겠지만, 대만 본연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보수정당 연맹으로 전환할 경우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 행정구역
    • 타이완 성푸젠 성은 폐지된다.
      • 구 중화민국의 대륙부 미수복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영구히 포기한다. 당연히 이 지역에 설치된 명목상의 행정구역 또한 폐지된다.
    • 직할시와 현(縣)이 최상위 행정구역 역할을 할 것이다. 성할시는 직할시로 승격되거나 인근 현에 통합될 수 있다.
    • 푸젠 성의 도서부, 즉 진먼과 마쭈가 계속 대만공화국에 남아있을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대만과 상관없는 중국 땅이었는데 중국에 돌려주자!"라는 주장과 "대만의 국가안보를 위해 계속 대만이 영유하고 있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이 대립할 수 있다. 다만 대만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영토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으며 중국이 해당 지역에 영유권 주장을 제기할 경우 새로운 영토분쟁지역이 될 수 있다.
  • 사회
    • 대만어가 국어, 공용어로 지정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법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45년 중화민국의 대만 수복 이래 70년 이상 쓰인 언어인 만큼 표준중국어객가어의 지위도 역시 공용어로 지정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그냥 표준중국어를 계속 국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 원주민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계속되거나, 구 중화민국 정부의 정책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한족계 대만 본성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답시고 원주민어가 더 무시당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 원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 외성인의 경우 이미 국부천대 이래 반세기 동안 대만인으로 살아온만큼 극렬 중국통합주의자 이외에는 계속 대만인으로 살게될 것이다. 다만 대만공화국 국적으로 남을 것인지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것인지 선택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완전한 대만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만일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21] 화교처럼 대만공화국의 영주권자로서 영주할 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구 중화민국과 대만공화국 내의 외성인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법적으로 외성인에 대한 차별은 엄격히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외성인의 인구가 대만 인구 전체의 1/10에 불과한 만큼 예전 만큼의 기득권을 누리기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 장제스의 묘를 중국으로 이장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이장 요청을 중국 공산당이 받아들일 경우 중국으로 이장될 가능성이 높다. 장제스는 자신의 유해를 타이완에 묻지말고 중화민국이 본토로 돌아갈떄 자신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후 천수이볜 집권 당시 장제스의 묘를 고향인 저장 성 닝보로 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때 현지 관료들도 내심 바라는 분위기였으나 마잉주 집권 이후 무산되었다. 하지만 한때 폴란드에 속해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리투아니아로 넘어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묘가 있는 폴란드의 국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사례로 볼때 대만 땅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대만을 장기간 철권독재로 통치한 만큼 장제스의 기념물들은 대부분 철거, 이전 될 가능성이 높지만, 쑨원까지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만 민족이 중국과의 연결성을 완전히 부정할지, 아니면 연결되었다가 나중에 분리되어 지금 독립을 추진하기로 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도 쑨원 기념관이 있는 걸 참고하면 된다. 다만 쑨원에 대한 취급이 국부(國父)가 아닌 '중국(중화권) 혹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 정도로 격하(?)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인이 '대만'공화국의 국부가 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 우창 봉기신해혁명의 기념일이자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이 건국기념일이 아닌 외국의 사건 기념일 정도로 격하될 것이다. 신해혁명은 더 이상 대만 공화국과 관계없는 구 중화민국/현행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평일이 된다. 대신 대만공화국의 건국기념일이 새로이 제정되어 정부에 의해 기념되어질 것이다.
    • 평화기념일(2.28)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현재 대만에서 민주열사로 추앙받는 사건 당시 관련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 역사 교육에서도 중국 역사가 아닌 대만이 중국 청나라에게 흡수되기 이전의 대만 원주민 역사와 명청 교체기 당시 청나라에 대항했던 정성공의 동녕왕국을 중점으로 역사 교육을 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대만 원주민 역사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있는게 없는데다가(...) 중국 시기의 역사도 엄연한 역사이므로 그대로 교육할 것이다. 대신 중국사는 싱가포르처럼 동아시아역사 과목의 일부로서 중화권으로 완전히 외국의 역사로 교육하게 된다.
    • 대만에서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큰 섬이 하이난(海南)으로 서술된다. 천수이볜 정권 시절에는 대만에서도 중국 지리 교과에 저렇게 기술했다. 마잉주 정권 시절에는 다시 대만이 가장 큰 섬으로 기술되었다가, 차이잉원 정권 출범 이후 천수이볜 정권기의 교육과정으로 복귀했다.
  • 교통
    • 타이베이 시내의 수많은 길 이름이 바뀔 수 있는데 왜냐 하면 대만에는 중국대륙과 몽골 지명에서 따온 길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유명 지명이야 많이 알겠지만 중국 대륙 지리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곳도 많다. 편의를 감안해 랜드마크를 제외한 상당수는 남을 수도 있다.
    • 열차 등급 중 하나인 쥐광하오(莒光號)의 이름이 바뀐다. 본토 수복의 의지를 담은 이름인데 자세한 설명은 타이완 철로관리국 문서 참고.
  • 국제정세
    • 동아시아의 서방 진영은 새로운 동맹국이 될 수 있는 국가가 생기므로,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견제하기가 더 용이해진다. 반면, 현재는 동쪽의 한국이나 남서쪽의 베트남 정도로만 신경쓰면 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양안 최전선에 잠재적인 위협이 하나 더 생기며, 특히 미국일본이 엄호하는 경우에는 그 위력이 더 커진다.
    • 중국이 이에 대한 견제책으로 북한을 더욱 엄호할 수도 있으며, 한국을 최대한 끌어들이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논란에서 볼 듯,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맹인 한국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낮다.
    • 명목상 '자국 영토'인 대만을 지키지 못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율이 낮아질 수 있으며, 특히 "외세랑 분리주의에 굴복해 땅을 팔아먹은 집단"이라는 선전이라도 나올 수 있다.
  1. 물론 이 발언은 퇴임한지 한참 뒤에 나온 발언이다.
  2. 대만이 독립 국가를 거의 세워본 적이 없이 계속해서 외래 세력의 통치를 받아 왔기 때문에 결국 같은 외래 세력인 일본의 통치에 쉽게 적응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저항이 덜 했고 대만이 일본이 얻은 첫 식민지(대만이 1895년, 관동주남사할린이 1905년, 조선이 1910년, 가 1921년)인 관계로 다른 유럽 열강에게 '우리 일본도 식민지 지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기 때문에 식민지 치고는 상당히 대우를 잘 해줬다. 일본의 대만 통치는 가장 성공적인 제국주의 식민지배 중 하나로 평가된다.
  3. 외성인도 6~700명 사망했다.
  4. 관리, 교사 임용 할당을 국부천대 이전의 비율인 전 지역의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해놓았는데(가령 정부가 어느 해 교사를 1천 명 뽑는다고 가정했을 때 국부천대 이전 타이완 성의 인구 비율은 전국의 1.6%에 불과, 이전 할당제도를 적용한다면 교사를 1천 명 중 16명만 본성인으로 뽑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본성인이 인구의 85% 정도롤 차지하니 본성인은 16명만 뽑는 경쟁 속에서 박터지게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10%를 차지하는 외성인은 984명을 임용하므로 임용 경쟁에서 본성인에 훨씬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외성인 중에서도 상당히 적게 온 지역은 더 유리했다. 외성인도 출신지역 따지면 푸젠이 많아서. 즉 본성인에 대한 차별이다.) 1992년 이전까지 국민당에게 타이완은 본토로 돌아가기 위한 전진기지에 불과했기에 임시조치로 사용한 것이었겠지만 본성인에게는 또 하나의 차별대우라는 각인을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기능했다. 이 탓에 1970년대 이전까지는 외,본성인 갈등이 굉장히 심각했었다. 지금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과거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외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외성인은 85%, 본성인은 97%가 가장 친한 존재가 외, 본성인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5. 홍콩 반환 때도 대만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베이징의 중앙정부가 최소 50년간 홍콩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일국양제 원칙을 내걸었기 때문에 홍콩인들은 대체로 환호했다. 당시 한국 문화방송이 홍콩인을 인터뷰한 뉴스를 보면,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고 답한 바 있다. 반면 천안문 6.4 항쟁 등을 이유로 중국을 믿지 못해 다른 영연방 국가로 도피성 이민을 가거나 반환에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하기도 했고, 지금은 약속과 다르게 중공 중앙정부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또한 본토와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홍콩인이 본토인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생겼고, 비슷하게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 세력이 존재한다. 심지어 영국으로 복귀하자거나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 휘하에 들어갈 것을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
  6. 친미주의자로 본토 수복을 포기하고 타이완의 방어를 견고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7. 다시 한국어로 옮길경우 '대만 본토화운동' 즉 대만 자체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는 운동
  8. 원래 중화우정에서 발행하는 우표에는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라고 찍혀 있었다. 대만우정이 되면서 臺灣 TAIWAN이라 바뀌게 되었다. 중화우정으로 되돌아가면서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TAIWAN)이 되었다. 영어표기는 결국 정-반-합.
  9. 다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는 100% 옳지 않은 게 외성인에 의한 본성인 탄압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0. 단체 내부에 대만공화국의 (가칭)깃발과 일본국기(히노마루),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11.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은 나치 독일과 연대한 적도 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세일본 제국과의 연대를 통해 독립을 시도한 바 있다.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아니하고를 떠나서, 다른 국가의 세력과 손을 잡는 것 그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대부가 친나치, 반유대 발언을 했던 사실이 두고두고 까이고 있고, "나치를 위해 싸운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면 욕을 먹는 것같이 제국주의의 만행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12. 1963년에 가로 적,백,흑 삼색기에 흰색 중앙에 별 3개가 든 국기를 썼으나 이후 아랍 문자가 들어가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별이 빠지고 지금의 아랍 문자만 남은 국기가 되었다.
  13. 프랑코 정권 시기 독수리가 그려진 국기를 사용했으나 1970년대 말 왕정 복고되고 나서 수년뒤인 1981년에 기존 국기에 들어있는 독수리를 빼고 새 국장이 들어있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14.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쪽도 기존 국기를 개정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15.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공산정권 시대 국장이 그려진 국기들을 사용했으나 1980년대 이후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국기에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문장을 삭제, 수정하였다.
  16.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겠지만 대만 독립 지지자들의 목표 중 하나가 중국과의 일반 수교관계 회복이다. 일단 대만의 독립국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일부 반중주의자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수교를 거부할 수도 있다.
  17. 중화민국의 권리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향유하고 있다. 국가승계의 논리.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의석이 내전 이후의 리비아 신정부에게 인계되었다. 다만 대만과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데, 리비아 신정부의 의석 인계는 국가 내의 정권교체일 뿐이다. 기존 정부가 정당성을 잃은 상황에서 내전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 합법정부로 인정된다. '중국'의 의석이 대만에서 중국대륙 소유로 교체된 것도 비슷한 절차를 따랐지만 대만과 중국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임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가입을 위해 총회 차원에서 허점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18.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권을 유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영국이 합법적으로 홍콩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당시에도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빼고 다른 나라는 별관심 없었지만 영국은 개입했다.
  19. 심지어 이 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면서 더 극단적으로 대만 여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대만인의 자국 입국을 법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세르비아의 경우 이러한 문제랑 다른 문제로 인해 서방 국가들과 관계가 영 좋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친러만 고수하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친중 성향을 띠는 면이 크고, 설상가상으로 앞문장에서 언급된 문제에서 대만이 세르비아의 반대편 당사자를 편드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친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20. 아예 대만 여권도 인정하지 않고 대만 국적자의 입국,방문을 원천 금지해버린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와 달리 대만 여권을 인정하고 대만인의 입국,방문을 허용해주고 있지만 대만 일반여권만 인정하고 있고 대만 외교관,관용 여권은 불허하며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대만인의 자국 입국,방문은 금지,차단하고 있다.
  21. 그러나 중국 여권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수도 적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꽃필것이다. 그래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는데 중국본토의 부자들이 취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