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비판

조선일보 : 1등 신문의 탄생

"조선일보는 이미 신문의 역할과 힘을 넘어섰고, 특히 얼마전 영화 《애기섬》을 둘러싸고 빚어진 문제는 조선일보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 평등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바라는 소박한 심정으로 정영일영화평론상의 수상을 거부한다."

-영화평론가 박평식,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제 수상을 거부하며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그 이유는 상당히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언론의 주된 역할 중 하나인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비판을 사실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언론이란 강자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에, 북한서울 점령 때는 북한에, 독재정권 때는 군부에 붙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며, 6월 항쟁 이후에도 노태우의 집권으로 군사정권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고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자 정권과 유착한 재벌과 군사정권의 후신인 신한국당을 노골적으로 옹호해 왔다. 여소야대 시절에는 집권여당보다 더욱 강력한 한나라당 쪽에 붙어 기회주의적이고 권력에 빌붙는 태도를 보여 왔다. 진영논리를 위해서라면 사실관계를 거리낌없이 왜곡하며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좆선일보', '북조선일보' 등으로 불린다.

1 친일 성향과 추축국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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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에는 일왕이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있으며, 사진 위엔 용그림과 '황기 2600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사의 신년사에는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란 내용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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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자매지 '조광'에 실린 1940년 11월호 사설. 일장기나치 독일하켄크로이츠 깃발,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국기를 걸고 군국주의 삼국동맹"인류 역사상 획기적 대사건"이라 극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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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후의 임무 - 조선 군사 후원 연맹의 목적

"북지사변이 커지기 시작하자 조선 역시 제국시민으로서의 응분의 의무와 성의를 다하고자 시국대책을 강구 실시하고 있는 중 조선군사후원연맹은 가장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다. 군사후원연맹의 목적은 이미 그 규약 중의 목적에 관한 문구를 보고 알 바와 같이 총후의 임무를 다하자는 데 있다. 황국의 위무선양과 동양평화를 쌍견에 질머지고 제일선에 선 출정장병으로 하여금 안심과 용기를 가지고 신명을 도하여 제일선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데는 총후에 선 일반국민의 정신 물질 양방면에 긍하여서의 후원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 1937년 8월 12일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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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년 1월 1일 중일전쟁 기사의 참고 그림에서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을 맞이함은 억조신서가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육체가 유강하옵시다고 배승하옵는 바, 실로 성황성공, 동경동하할 바이다. 일년일도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한 은과 광대한 인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적성봉공, 충과 의(를 다하야 일념보국의 확과한 결심을 금할 수가 없으며…" - 1939년 4월 29일 조선일보 사설
"이와 같이 금년에 신문, 잡지용지 배급량이 줄어들게 되는 것은 만주와 지나 방면에서 선무공작에 쓰이는 용지가 격증한 까닭이다. 이것은 국내사정보다 더 긴급한 것이므로 만난을 배제하고 해야 될 일인즉 부득이한 사정이라." - 1940년 6월 22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신문통제의 국책과 총독부 당국의 통제방침에 순응하여 금일로서 폐간한다. 지나사변 발발 이래 본보는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더욱이 동아 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 1940년 조선일보 폐간사

  •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8년 12월 13일 언론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은 친일행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가 친일을 했다면 어떻게 기사가 압수되고 정간과 폐간까지 당했겠느냐"고 해명했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는 '친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일'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압수 건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조선일보 70년사" 뒤쪽에는 '해방전 조선일보 압수기사' 제목이 '자랑스럽게' 소개돼 있지만 문제의 기사들은 박헌영좌파 성향의 기자 17명이 서술한 것이다.
"언제나 투쟁이란 다수자가 승리를 얻는 것이다. 사회의 절대 다수를 점한 무산계급의 단결된 조직만 완성하면 최후 승리는 다반사일 것이다." - 1924년 11월 21일자 조선일보
"(조선은 현상타개를 필요로 하는데) 요체는 정치적인 제국주의와 경제적인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제도로 바꾸는 데 있는데 이에는 반드시 적로의 세세혁신운동과 그 보조는 일치하는 것이다." - 1925년 9월 8일자 조선일보
  • 특히 두 번째 기사 때문에 조선일보는 정간까지 당한다. 방우영 사장이 혁혁한 항일의 표징인 '압수'와 '정간'은 결국 사회주의 성향의 기자들이 쓴 기사들 때문이며, 그나마 이들이 조선일보에서 활약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기간에 무려 90건의 기사가 총독부에 압수당했으며 경영진은 1925년 9월 박헌영 등 화요계 중심의 사회주의 기자 17명은 강제 해고하였다. 그 뒤에는 알다시피 추축국을 찬양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노골적으로 옹호한다. 반면 방우영의 양조부인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경영하던 8년 동안 압수된 기사는 23건에 불과하다. 매국노 송병준이 조선일보를 경영하던 3년 6개월 동안 82건의 기사가 압수된 것과 대조적이며, 더욱이 1936년 8월부터 1940년 폐간 때까지는 단 한번도 기사가 압수된 적이 없다. 방응모의 대일관과 시국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현재까지도 친일파 청산 등에 대해 부정적이며 과거에 어쩔 수 없는 일을 들어 깎아내리는 것은 국론분열을 하려는 빨갱이들의 선동이다란 것이 신문의 논조이다. 물론 이는 동시대 조선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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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8.15 광복 이후 반민특위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활동에 들어가자, 친일행위에 앞장섰던 조선일보는 1949년의 사설을 통해 "새로운 국가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선 일제강점기 때 앞잡이 노릇을 한 인간들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극렬히 반대하고, 사전이 나오기 한 달 전에는 친일 청산이란 명목으로 세금 낭비를 한다느니, 친일 청산 그만 하라는 식의 사설을 실었고,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기 무섭게 친일행위를 한 공산주의자들이 안 실렸다며 민족문제연구소의 기준이 좌편향적이라고 꾸준히 공격하였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명단을 보면 도진순, 이명화, 오영섭 같은 우파 성향 교수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고, 친일인명사전 수록자들 구성을 면밀히 살펴보면 공산주의 최고참격 운동가 출신은 물론, 재북인사, 북한에서 최고인민의회나 애국렬사 등 고급 예우를 받은 자들도 수록돼 있다. 이 점은 조선일보의 전형적인 진영논리이다. 조선일보가 친일파라고 문제제기한 인물 중 한 명이 여운형인데, 여운형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건국동맹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 2011년 3월 1일 삼일절에 친일파 최남선을 재평가하자는 듯한 기사를 냈다. 이유인 즉슨, (최남선의 손자 말에 따르면) [[따뜻한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사회적 인사로의 행적을 은근슬쩍 묻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감성팔이물타기 기사를 삼일절에 내놓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2 독재 찬양

제2단계로 돌입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하여

"(군사혁명)은 보다 나은 입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감행된 것으로서 이것이 거군적인 단결과 함께 국내외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게 된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 1961년 5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는 민족일보가 폐간되고 민족일보의 사장 조용수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구속되던 날 "'제2단계로 돌입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하여"란 제목의 사설로 5.16 군사정변을 찬양하였다.
  • 1961년 6월 27일과 28일에는 박정희의 특별기고문인 '지도자도'가 실렸다. 여기서 박정희는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강력한 타율에 지배받던 습성이 제2의 천성으로 변하여 자각, 자율, 책임감은 극도로 위축되어 버렸다"며 자신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함을 정당화했다.[3]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 비상 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1972년 10월 18일자 조선일보 사설

  • 10월 유신이 선포된 다음날에는 영구집권을 위한 초석을 "비상 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이요 시련이요 진보의 표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옹호하였다.
"무엇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6·7대나 대통령을 역임한 그를 또다시 환영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그의 영도력 때문이다. 그의 높은 사명감과 뛰어난 능력과 역사의식의 정당성 때문이다. … 우리는 더욱 전망적인 민족통일의 사명감과 구국중흥의 신념에 불타는 탁월한 영도자를 가졌다." - 1972년 12월 28일자 조선일보 기사
  • 박정희 대통령은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되자,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소위 체육관 선거란 부정한 방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이 마치 국민투표로 결정된 것처럼 왜곡하였고, 민족의 영도자 운운하면서 노골적인 미화에 앞장섰다.
  •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신군부에 대해서는 12월 20일자 사설을 통해 "군의 이러한 입장과 결의가 새삼 천명되었다는 것은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면서 찬양하였다.
  • 신군부가 자행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학살에 대해서는 광주 시민들을 '난동자'로 묘사하고, 학살의 주체인 계엄군을 미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사건을 왜곡하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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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1주 - 김대중 기자

"광주시를 외곽에서 들어가는 폭 40미터의 도로에 화정동(화정동은 동명이고 고개이름은 ‘잿등’임)이라는 고개가 있다. 그 고개에 내리막길에 바리게이드가 처져 있고 그 동쪽 넘어 무정부상태의 광주가 있다. … 쓰러진 전주와 각목 벽돌 등으로 처진 바리게이트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 198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 기사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 피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별력이 없는 법이다." - 198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 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감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군 곧 국군은 광주시민을 포함한 온 국민의 아들이고 동생들이며, 그래서 국민의 국군이며,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의 국군이다. 그러한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 198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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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8월 22일 전두환이 전역하고 육·해·공 3군 주요 지휘관들이 전두환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할 것을 결의하자 조선일보는 다음날 3면을 털어 <인간 전두환>이란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사에 앞서 공…나보다 국가 앞세워>,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해>라는 부제가 붙었다. 조선일보는 자신도 낯 뜨거웠던지 아카이브에서 이 3면을 삭제했다.
  • 8월 28일 전두환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자 조선일보는 "우리는 우선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온국민과 더불어 축하하며 그 전도에 영광이 있기를 회원해 마지 않는다. 전 대통령의 취임으로 바야흐로 새 시대 새 역사는 개막되고 있으며 많은 국민들은 전 대통령 정부에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걸고 나라의 장래와 자신들의 생활을 전망하고 있다."고 칭송하였다.
  • 조선일보는 독재정권을 칭송했던 만큼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해 극렬히 혐오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일컫는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기사글을 썼다.## 이들 조선일보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는 인민혁명당 사건 문서를 보기 바란다.
  • 제5공화국의 인권유린 사례 중 하나인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선 경찰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1986년 7월 7일에는 "부천서 사건-공안당국의 분석"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급진세력의 투쟁전략 전술 일환-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고 규정하여 사실을 왜곡하였으며, 17일에는 "성적 모욕 없었고 폭언 폭행만 했다", "운동권, 공권력 무력화 책동"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다음날에는 "부천사건에서 얻는 것"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시점에서 수사권 밖의 사람은 진실이 어떠했는가를 가릴 능력도 없고 그럴 입장도 못된다”고 주장하였다.
  • 그러나 4.19 혁명과 같이 국민적 저항으로 독재정권이 붕괴할 조짐이 보이면 태도를 급선회하여 정권을 비판하는 모순을 보인다. # 그러면서, 자신들은 "4.19 혁명을 국민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1961년 5.16 당시 군부의 공식 용어인 '혁명' 대신 '쿠데타'라는 용어를 쓴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쿠데타'가 군부의 불법행동이라는 숨은 뜻을 읽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1980년 5월 21일 기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비극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따위의 주장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 허구의 주장이다.
  • 조선일보의 그러한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은 6월 항쟁 당시의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때도 조선일보의 친권력적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조선일보는 ‘고문’이란 단어를 빼고 <조사받던 서울대생 사망>이라고 전했다. 동아일보가 고문당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것과 달랐다.
  • ‘직선제 개헌이 불가하다’는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이후 6월 9일에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사설 <랑에 섰다/ 다음에 올 것을 오지 않게 하려면>에서 “야권과 학생들은 최대의 슬기와 절제 그리고 온유함의 자세로 되돌아갈 것을 당부한다”면서 독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분쇄하려고 했다.
  •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평화적 정부 이양을 약속한 6.29 선언을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2면에 <위대한 나라로의 전진을 위해/대전환의 계기가 된 노 대표의 극적 선언>이라는 통단 사설을 실으면서 전두환 정권이 영웅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망언을 했다.
  •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때 조선일보는 김지하 시인의 기고 - 박홍 신부(서강대 총장) - 공안부 검찰 라인과 같은 한 배를 타며 '분신정국의 배후엔 죽음을 부추기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 구체적인 행동이 유서 대필이라는 시나리오로 이어지도록 프레임을 주도해나갔다. 이어 조선일보는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학생들, 노동자들에게 "나가 죽어라"고 했다'고 연일 대서특필로 써버려 '강기훈을 비열한 인간'으로 인식시켜버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5][6] 조선일보는 오늘날 강기훈씨에 대한 사과에 대해 어떠한 단 한 마디도 하지도 않고 있다. 반성은 커녕 오히려 '진실은 결국 강기훈씨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7]

3 종북 이적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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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8일 아침에 발간된 조선일보같은 날 오후에 발간된 조선일보.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적혀 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조선일보는 국방부의 허위 보도자료를 그대로 쓰면서 '인민군 격퇴. 국군 총반격!' 따위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8] 이어 북한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자, 조선일보는 호외로 '인민군 서울입성'이란 보도와 함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기사를 내보냈다.[9]

이와 같은 조선일보의 보도는 오늘날 조선일보 공식기록에 없다. 조선일보는 1950년 6월 26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을 보도한 뒤 6월 27일 저녁 6월 28일자 신문을 만들고 서울 본사의 신문 제작을 중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월 23일에서야 서울 본사에서 1차 전시판을 냈다. 따라서 이 호외는 역사에 없던, 전쟁기간 중 발행된 조선일보 지면으로 볼 수 있다.

이 호외 기사는 조선일보 사내 기자 직원들 가운데 북한에 지지 및 동조했던 직원들이 주도해서 호외로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에서도 조선일보 윤전기를 장악한 북한군이나, 조선일보 내 북한 동조자가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외로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의 행적인데, 방응모는 충분히 피난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내가 문화사업을 했고 육영사업을 했는데 공산당이라고 나를 해칠 리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면서 서울에 남았다.[10] 이는 전쟁 이전 좌파 지식인에게도 은밀하게 일정한 장학금을 대어 주던 사업가였기 때문에 북한정권이 자신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내무서원들에게 끌려가 북한으로 끌려가던 중에 결국 개성에서 죽었다.

전쟁 시기 조선일보의 사실왜곡성 보도, 북한 찬양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명백한 잘못이란 평가가 압도적이다. 개전 당시 조선일보 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이 '전황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 국방부 작전과장이 언론사들에게 "피난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했는데도, 국방부 보도과의 '허위 보도자료'를 다른 신문들과 함께 그대로 발표한 것은 한국 언론사에 큰 오점으로 자리잡혔다. 이런 허위기사를 사실이라고 믿은 많은 국민들은 '국군이 곧 이북 괴뢰집단을 격퇴하고 평양으로 진격'하리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 상당수의 서울시민들이 잔류해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4 1997년 외환 위기 관련보도

조선일보의 친재벌, 친정권적 성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잘 드러난다. 1997년 11월 21일 김영삼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전까지, 조선일보는 "경제위기가 아니다"란 요지의 기사를 계속 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 세계금융위기 관련보도

2008년 조선일보는 리만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기 2주 전에 해당 기업을 인수하자는 칼럼을 실어 비판받았다. 이로 인해 조선일보의 경제적 시각이 쓸모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6 천안함 관련보도

7 사실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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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사IN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불신하는 언론 1위를 차지했다.

  • 중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을 절취하여 전혀 다른 뉘앙스의 문장으로 탄생시킨다. 절취기준은 조선일보의 이득과 관련되어 있으며, 비록 기득권이나 수구 보수진영의 기사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거나 조선의 비위를 거슬려 섭섭하게 할 경우 여지없이 연금술의 대상이 된다.
  •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사실관계가 바뀐다. 대표적인 예로 2007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해 반대하는 사설을 썼는데 2008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의 반박은 조선일보는 2007년에도 미국소 수입을 반대하자는 게 아니라, 당시 광우병은 위험하지만, 잘 관리하면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전제한 것이며, 오히려 당시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없다고 소개했다. 그러므로 논조를 바꾼 적이 없다는 것이다.링크)
  • 황우석 논문조작 파문 당시 여론이 황우석에 유리할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까고 황우석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말을 바꾸어 노무현 대통령을 깠다.(응?)당시 기사 비교
  • 주필이었던 김대중(언론인)[11]은 2005년 12월 5일 칼럼에서 황우석 사건 때, PD 수첩이 불리하던 당시 PD 수첩 PD를 주사파로 매도했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관련 후속 보도를 통해 한학수 당시 PD를 민주노동당에 물들었다고 비난했고, 최승호 책임 PD를 코드에 맞춘 곡학아세 보도를 했다고 매도했다. 물론 황우석 사건이 거짓말로 판명된 다음, 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전에 미국 문헌의 오역으로도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1]
  •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미군을 도와 파병하자던 조선일보는 원래 파병지 키르쿠크가서 사진 몇 장 찍어오고 안전한 곳이라고 기사를 썼는데, 웬걸. 전쟁 이후 이 산유지대를 둘러싸고 시아와 순니 세력의 내전이 크게 벌어졌다. 잘못된 보도로 국군을 사지에 몰아넣을 뻔했다.
  • 국내 최대라는 발행부수를 유지하기 위해 형식상으론 신문대금이 있으나 실제로는 신문대금을 받지 않아 실질적으론 무가지에 가깝다. 더군다나 조선일보를 구독신청하면 사은품을 한아름 안겨주기 때문에 오히려 돈을 받아가면서 보는 꼴.[12]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의 종이 신문들이 대부분 구독자들이 내는 신문 대금은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광고비가 신문사를 실질적으로 먹여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항목들의 이미지와 더불어 '조선찌라시'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 2002년 한국 ABC협회의 조사에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위한 목적으로 조사기관에 부수를 부풀려줄 것을 요구하여 5만 6,000여부를 부풀린 175만 6,193부로 보고했음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 안보 상업주의와 이를 위한 거짓보도 역시 조선일보가 비판 받아야 하는 부분.[13]
  • 전교조에 대한 극도의 반감도 문제이다. 전교조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전교조 소속 교사 개인의 잘못도 전교조를 걸고 넘어지면서 전교조 공격에 열중한다. 그러면서도 비전교조 교사의 개인 잘못의 경우 교총 소속 등은 전혀 거론하지 않으며 개인 문제로만 다루는 이중성을 보인다. 부분을 전체로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는 셈.
  •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대해 아주 치명적일 수 있는 허위 보도를 하고 정정보도를 하지 않는다. 이 고유 스킬을 TV조선도 18대 대선 때 저질렀다.
  • 진보진영의 주장은 일단 앞뒤 안가리고 까고 본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들이 깔 때 쓴 근거가 사라지거나 잘못된 걸로 밝혀지면 자기들이 언제 그걸 근거로 삼아서 썼냐는 듯 그 근거에 대한 입장이 180˚ 바뀐다. 대표적인 예로는 남미의 룰라 정권에 대한 기사들과[14] 최근의 비정규직 '대란'에 대한 경고 기사.[15] 등등...
  •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자신들 이념에 반대되는 진보세력에게 비판을 퍼부었으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서부터는 정부에 매우 따사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20촌 까지 들먹이며 친인척비리라며 들이댔던 반면, 김윤옥여사의 사촌언니 30억 사기혐의 기사에서는 청와대의 해명만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 6면 지면배치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터졌는데 관련 기사가 배치된 지면의 머리기사는 <잇따른 호재…여 정국주도권 잡나>라는 기사였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 관련 기사는 6면 하단에 작게 배치했다. # 이쯤되면 너무한 정도.
  •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신임 국방장관 임명장 수여식 때의 일. 기사제목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핏발 선 주먹'>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이한 대처가 화근이 된 구제역 파동으로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하게 된 상황에서도 정부에 대한 비판은커녕 '구제역 대책회의 마련한 MB, 매뉴얼대로 해도 안되고... "그럼 더이상 어떻게 하자는 거냐" 답답해진 대통령은 물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따위의 길고 긴 부제를 단 감성기사를 1면에 싣기도. 시름만 하다가 넘어갈 거면 도대체 대한민국 정부는 왜 있는 걸까? 를 얘기해야 하는 게 언론이 아닐까?. 빼도박도 못하는 이중잣대이다. 자신들은 노무현 정권 때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노무현을 욕하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했다.
  • 왠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극렬하게 노무현을 깠고, 또 까고 있으며, 앞으로도 깔 듯한 느낌. 신경무 씨의 만평을 보면 노무현 퇴임이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연재분량 절반 이상이 노무현의 얼굴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노무현 대통령 취급에서 180도만 돌리면 된다. 그러나 2009년 5월 25일... 노무현대통령의 사망으로 다시 한번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다. 또한 사망 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나 생전 행적에 대한 보도가 불성실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어쨌든 자숙의 의미인지 며칠 후 신경무 화백이 쉰다는 이후로 만평을 지면에 게재하지 않다가 2011년 1월 10일 연재를 재개하였으나 신경무 화백이 2월 12일 지병인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만평 작가가 바뀌었다.
  • 1980년대 중반,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와 이른바 '민족 신문지 논쟁'으로 서로를 헐뜯어 오히려 그 명예를 매우 실추시켰다.#
  • 사실 조선일보의 최악의 사건은 만보산 오보사건으로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이 싸우던 만보산 사건에 조선인들이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하자. 화난 조선인들이 중국인들을 살해하고 다치게 하는 등 무서운 폭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는 신문이 제일 신뢰성이 있고 위력이 셌다. 물론 신문만 믿고 폭동한 조선인들도 피해자는 아니다. 1930년대에 신문이 아니면 뭘 믿어? 신문만 읽고 폭동 일으키고 살인하는 게 자랑이냐?
  • 최초의 태극기 공개사건. 최초의 태극기 기사의 관련 사진에서 '대청국속 고려국기'란 글자에서 '대청국속'이란 글자를 짤라버렸다. 한국어판 영어판,이둘을 비교한 일본의 어느 게시판,조선족 중심의 연변통보의 비교사진 왜곡보도다. 다만 대청국속이라고 표시된 태극기 사진은 '통상장정성안휘편(通商章程成案彙編)'이란 중국 청나라 이홍장이 1886년 청나라와 외국이 맺은 조약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기록한 책으로 청나라 측의 일방적으로 멋대로한 표기였을 뿐이다. 게다가 기사에서는 1883년 3월의 '고려국기'라고 연도를 잘못 표기했다. 또한 정작 중요한 1882년 7월 미국 해군성 항해국(Navy Department Bureau of Navigation)이 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에 수록된 최초의 태극기, 일명 이응준 태극기 사진은 싣지 않았다. 기사 자료의 오류와 왜곡, 정작 중요한 자료의 부재가 어우러진 난장판이다.
  • 2004년 문희준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락 자격증이 있다면 따고 싶지 않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문희준은 루머가 부담스러워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기사 제목은 문희준 “록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로 나왔고, 이에 본인도 놀랐다고... 결국 안티들에게 까일 떡밥만 하나 더 던져준 셈.
  • 문희준 인터뷰 11년 뒤 해당 기자는 고작 간장 종지 2개를 안 준다고 빡쳐서 해당 식당을 비난하는 칼럼이라고 부르기엔 뭐한 그런 것을 썼다.## 다른 언론의 기사(후일담)에 따르면 (항의를 하자) 간장을 갖다준 건 물론이고 1번 테이블 손님(해당 기자가 있던 테이블)에게 사과도 했다고 한다(...) 식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실명공개까지 하던 모 애국보수 만화가가 생각나는 대목. 자세한 이야기는 간장 두 종지 항목 참조. ##
  • 스티브 잡스 사망 후 조선비즈에서 국내 스마트폰 경쟁력에는 도움이라는 기사를 쓰는 병크를 터트렸다(…). # 자기들도 잘못한 걸 알았는지 지금은 기사를 내렸다.
  • 올림픽 국가대표 복싱선수인 신종훈 선수에 대해 과거 일진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신종훈 선수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고 분노. 같은 선수를 인터뷰한 한국일보, 경향신문에는 일진이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에대해 기사를 쓴 홍준기 기자는 할말은 없지만 정정기사는 내지 않겠다고 버텼다. #
  • 겨울왕국 안나 성우 박지윤과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도 왜곡은 여전해서 '동료들이 너무 수면 아래에만 활동한다'며 걱정하는 박지윤을 순식간에 '혼자만 주목받고 싶다'는 건방진 성우로 바꿔버렸다. #
  • 메르스 질병에 대한 보도행태도 보였다. 2014년 9월 조선일보는 '공기 통해 전염되는 '메르스 바이러스', 사스보다 6배 강력'이라는 제목에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 내용에 따르면 분명히 '공기를 통해 전염' 된다고 되어 있다. 또한 '공기 샘플을 채취한 결과, 공기중 '메르스 바이러스' 유전자 단편을 발견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로써 조선일보는 메르스가 공기감염이 된다는 것을 밝힌것이다.# 그러나, 2015년 5월말부터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전염이 확산되어가자, 조선일보는 2015년 5월 31일자 기사에서는 '공기전염 증거는 없다' 며 제목에 기사를 보도한다.# 도대체 어떤게 사실이고, 어떤게 거짓인가?! 이는 조선일보가 '때마다 다른 기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 조선일보의 선정적인 기사 선정과 배타적 성향이다. 예로 기독교내에서도 기득권들만이 믿는 일부만의 조선일보의 권위편승적인 성격에 기독교 매몰성향이 만나면 사회적인 소모를 일으키는 갈등유발 기사가 탄생한다. 특별히 주관을 개입하지는 않아도 (일부)기독교의 의사관철과 관련된 기사가 자주 올라온다. 다만 조선일보는 기독교 매몰성향 때문에 정당한 권리관계보다는 통념을 중시하는 성향이 짙다. 또한 조선TV에 등장하는 여성 진행자의 상당수가 이화여대 출신이다. 다소 파시즘적인 여성부의 주춧돌이 된 그 세력출신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복지로 돌리는 이유는 조선일보의 정치적 스탠스가 무상복지 반대이기 때문이다.
  • 국정교과서 사태와 관련, 1인 시위에 나선 김제동을 대상으로 언플을 시전하다가 가루가 되도록 네티즌들에게 까였다. 네티즌들 曰 "기사는 기자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를 '김제동 1인시위, 국정교과서 반대?... 네티즌 '힐링캠프나 잘하지' 일침'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문제는 내용 어디에도 힐링캠프 관련 언급이 없을뿐더러 제목과는 상관없는 선정적인 보도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네이버가 이 기사를 긁어가는 바람에 평판만 더 떨어지게 생겼다. # #2 김제동이 친노이고 진보 성향이란 이유로 이런 제목을 작성한 거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최장집 교수 사건: 나무위키 뿐 아니라 위키백과다른 언론 에서도 확인 할 수 있고, 이 사건이 당시 사회에 끼쳤던 영향은 개인 블로그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 자체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일보 자체보다는 계열사인 월간 조선 우종창 기자의 기사로 시작된 것이지만,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16] 이한우 기자의 기사등을 통해 조선일보도 한 다리 낀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경우 안티조선 운동의 형성 과정에도 큰 사건을 끼쳤으며, 시간이 흘러 사건이 잊혀진 현재는 '최장집 교수의 논문 해석을 두고 벌어진 논쟁' 정도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실상은 조선일보가 즐겨 사용하던 일부 절취기술을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한 사건으로써 관련 소송에서도 사실상 조선일보가 전패한 명백한 왜곡기사 사건이다. 어쨌건 이 사건은 매체의 발달로 인해 대중이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접하기 쉬워진 시대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 조선일보측이 구시대적 언론플레이를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은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유난히 안티 사이트가 많다. 물총닷컴#, 우리모두#, 조아세#,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 # 등. 안티측에서는 이러한 조선일보를 죄선일보, 혹은 북조선일보 등의 별칭을 붙이면서 까고 있다. 단일 사이트는 아니지만 디시인사이드에 조선일보 갤러리도 존재한다. 물론 디시답지 않게옹호하는 인원보다는 까는 인원이 압도적이고 글도 잘 안 올라오긴 하지만. 아고라에서는 좆선일보라고 까일 때가 많다. 또한 조선일보 구독자에게는 조센징(조선일보 보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기도 한다. 물론 섹드립의 달인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중장년층 이상의 경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지금까지 계속 봐왔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꾸준히 애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정치적 스탠스를 배제하고 일간지 기사로서의 퀄리티만 놓고 본다면, 기사의 분량이나 필력, 사회 저명인사 인터뷰의 수준 등에 있어서 다른 언론사가 따라올 수 없는 기사를 쏟아낸다.[17] 이러한 단편적인 예가 바로 간장 두 종지라고 볼 수 있다. 칼럼의 내용은 둘째치고, 저 화려한 필력 만큼은 어지간한 소설 뺨치지 않던가?

정보 통신의 발달로 케이블TV와 인터넷 따위가 활성화 되기 전에는 외신 보도라면서 외국 기사나 외국인의 발언을 자기 입맛대로 날조 해석해서 슬쩍 내보내거나 아니면 점잔빼고 타블로이드지에 실린 내용을 옮겨 싣는 등의 병크플레이를 펼치기도[18][19] 했으나(그 당시에는 어차피 원문 찾아볼 사람도 없고 방법도 없었으니까) 또한 외신들이 자기네를 인용보도하면 그 내용을 외신이 그렇게 보도한 양 왜곡해서 보도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딴지일보나 안티조선 운동권 같은 데서 가루가 되도록 까인 다음에 요즘은 거의 안 한다.[20]

참고로 마이클 잭슨에 대한 좋은 기사를 낸 적이 없다. 아마 마이클 잭슨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했기 때문인가 보다예전에 구라라고 밝혀진 슈퍼 박테리아 감염소문도 조선일보에서 전해진 것. 정론지라면서 영국의 더썬이나 미국의 타블로이드는 허구한 날 인용한다.

초국가적 언론이다. 국가의 허가 없이 북한 군인, 주민과 연락하는 것은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21]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북한 관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북한소식통', '북한장교', '북한군인' 등에게 제공받은 정보라는 식의 레퍼토리를 올려댄다. 이게 진짜라면 국가보안법까지는 오버라고 해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째서인지 조선일보 독자들은 아무런 신경을 안 쓴다.(...) 여담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북한 현지주민과 인터뷰했다는 식의 글을 보고 몇몇 독자가 '국가보안법을 뛰어넘어서 존재하시는 초국가 언론단체시네요' 라는 식의 비아냥을 올리자 조선일보 관리자와 독자들이 대동단결해 순식간에 댓글 차단 → 삭제 → 반대 진영 까기라는 병크로 이어지는 이뭐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에서 좋은 방송보도·신문과 나쁜 방송보도·신문을 선정하고 있는데, 조선일보가 가장 많이 나쁜 신문[22]으로 뽑혔다.

8 게임 매도에 대한 비판

게임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여긴다. 게임 셧다운제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게임마약, 쓰레기더미'등의 자극적인 기사를 계속 보내고 있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이후로는 게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왜곡보도하며 만악의 근원으로 몰고 있다. 사실 한국의 주류 우익 언론들은 외형적으로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가 읽는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거창하게 포장하고 싶어하지만,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 가장 쉽고 포퓰리즘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당연히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에 대한 주도력을 잡는데 매우 능하다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를 적대시하는[23] 이들 신문이 게임이나 만화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퍼뜨리려 하는 것이 정치적 스텐스를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만만한 희생양을 잡아서 이들을 조지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 언론들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다.

  •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에서 왕따 가해자들이 사과문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게임에 비유 -> 게임이 왕따의 원인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 학원폭력과 게임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쓰고 있으니 답이 없다. 이런 인과관계를 거꾸로 쓴 기사가 하나 더 나왔는데, 빵셔틀의 "셔틀" 어원이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래했다 -> 빵셔틀의 탄생은 스타크래프트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그럼 아리랑치기는 민요가 원인이냐"라는 비꼬기도 나왔다. 전국의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임요환은 빵셔틀왕이냐?" 라는 말도 올라왔는데 삭제했다. 이쯤되면 적반하장이다.
  • 게임의 폭력성 실험을 하기도 했다. 폭력게임을 25분 한 다음... 이런 식의 실험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MBC의 실험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조선일보를 줘봤을 때랑 한겨레를 25분 읽게 한 다음 조선일보를 줘봤을 때랑 뇌반응이 다르니 한겨레는 위험하다는 결론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논리는 조선일보랑 한겨레를 뒤바꿔도 성립되므로, 조선일보도 위험한 셈. 실제로 베플이 "조선일보 25분 읽게 하고 뇌사진 찍어보니 경악"이었다.
  • 맨헌트 2라는 마이너한 폭력적인 게임[24]을 친절하게 소개해주면서 게임은 폭력적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 게다가 이 기사에서, 기자는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게임을 받았다.
  • 게임은 마약이다라는 기사를 내며 "정상적인 아이가 게임을 하면 이상한 아이로 변해버린다"라는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폰게임 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이니 옆자리에 앉으면 안되겠네?
  • 이젠 조작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조선일보의 기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댓글 반응이다. "맞다. 내 조카도 초등학생인데 서든어택인지 뭔지 돈은 되는 대로 갖다바치면서 즐긴다. 얘가 나중에 사람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댓글을 달면 추천 40개를 받는데 게임에 대한 사회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슬플 뿐이다. 애당초 조선일보 사이트가 우파 중년층 이상이 많이 찾는 곳임을 감안해야 할 듯. 중년층 이상의 게임, 만화에 대한 인식이야 뭐...

그런데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디지틀조선일보는 별도로 온라인게임 뉴스 사이트 '게임조선'#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에선 대한민국 게임대상, 스타리그를 공동주최하고 있다. 뭐지? 그래서 게임조선의 커뮤니티 회원들이 조선일보를 까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9 2012년 선거 개입설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얼마 앞둔 4월 7일 인천광역시 전역에서 조선일보 신문이 무료로 대량 배포된 것이 알려져 뉴스를 탔다.

무료로 배표된 신문 1면에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에 대한 비난성 기사가 실려 있었고, 안쪽 면에는 '김연광(새누리당·부평을) "홍, 친일파 손자"…홍영표(민주통합당·부평을) "막판 네거티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선거법에선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불유리한 내용이 담긴 물건의 허가받지 않은 인물이나 단체의 배포를 금하고 있는데, 이는 선거법 95조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에 해당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아파트 입구에 몇 십부가 쌓여 있어서 마치 무료 행사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가져가게 하거나, 심지어는 당일 프로야구 개막전으로 사람이 미어터지는 문학 경기장에서도 이런 배포 행위가 이루어진 것이라 경찰은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관계자 중 일부를 불구속 입건한 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동년 4월 9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언론사 기자가 나와 인터뷰를 하니 들어보자.

2012년 10월 11일 인천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경찰의 기소의견을 되물렸다.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4월 7일, 무료로 배포된 조선일보 1면에는 배포지역인 인천을 홍보하는 내용의 기획기사가 실려있었기에 홍보용으로 배포된 것이라는 진술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판단은 알아서.

10 원균옹호론 인증

강적들에서 원유철의원 관련되어, 원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역사왜곡이란 식의 발언이 공중파를 탔다. 이는 노무현 정권 당시 역사왜곡물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갈등관계이던 조선일보가 여기에서는 침묵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단 두 사람이 이야기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국가안보를 중시한다고 그렇게나 주장한 언론이 그 관련성이 중대한 문제에 왜곡을 일삼는 것. 더 나아가 종편. 그것도 역사 관련된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 시사 및 예능에서 이러한 태도는 조선일보의 견해로서도 인지되기 쉽다.

11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2016년 8월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원안대로 시행될 전망이 보이자 편파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써 사람들에게 고유의 관습을 좋아한다는 비웃음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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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대중매체사, 강준만 저
  2. 이 시기 조선일보 사장 안재홍이 구속된 상태였고, 사장직 공석이었던 상태다.
  3.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4. 그리고 조선일보는 이제까지 이러한 보도행태에 대한 사과는 일절 하지 않았다.
  5. #1991년 5월 10일자 사설 - 박홍총장의 경고(사설);
  6. #1991년 5월 15일 사회면 '애인에 준 메모확보',#1991년 5월 20일 사회면 '전민련 총무부장 수사/김기설씨 대필관련/ 강기훈씨 검찰, "필적동일"용의자 지목
  7. #
  8. 이는 당시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서울신문, 자유신문 등 모든 언론들도 그랬다.
  9. 아침신문의 제목은 '제공권 완전장악. 국군 의정부를 탈환' 이고 호외의 제목은 '인민군 서울입성. 미국 대사관 등을 완전해방' 이다.
  10. 출처 - 이동욱, '계초 방응모', 방일영문화재단, 1996. p464. 방응모는 점령 당시 북한 당국에 불려가서도 "육영사업으로 없는 이들 돈 대어 가르쳤고, 또 조림사업 간척사업밖에 한 것이 없소"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11. 여기서 나오는 김대중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니다.
  12. 다만 이것도 신문 받을때 말을 잘해야 주는 듯 하다. 이에 대해 몰랐던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13. 예를 들어 강릉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때 잠수함에 대포가 실렸다며 개드립을 쳤다. 때문에 국방부에서 항의했지만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우겼다. 또한 한국 언론사에 길이남을 흑역사인 김일성 저격사망 오보사건은...
  14. 이거 포퓰리즘이에여ㅋ 얘네 이렇게 가다간 곧 망함ㅋ 자료들도 뒷받침 중ㅋ 근데 노무현도 요즘 포퓰리즘정책 막 쏟아내는데 이제 대한민국 곧 망한다 봐라 -> 브라질의 경제가 룰라 정권 집권 이후에 고도로 성장하자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있었으나..
  15. 비정규직 한시 기간 연장이 다 되어가자 이제 이 법 끝나면 비정규직이 와장창창 해고돼서 대한민국은 카오스로.. 그게 싫으면 빨리 비정규직 한시고용 연장하여라 근데 멍청한 민주당과 기타 나라를 깎아먹는 노조들은 지들 기득권에 눈이 멀어서 그거 반대한대요 여러분 -> 노동부 통계에서도 비정규직 대란이 없다는 게 밝혀지자 오히려 잘못 예측했다고 노동부를 깜.
  16. 90년대 말, PC통신 시대에 벌어졌던 해당 사건 관련 논쟁을 보면 오늘날까지 활동중인 유명 --키워~~논객들의 푸릇푸릇한 시절도 볼 수 있다.
  17. 이유야 여러 가지다. 사회에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가장 높기 때문에 인터뷰이들이 홍보 차원에서라도 가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있고, 사회 저명인사 중 조선일보와 정치적 스탠스가 비슷한 분들이 많은 것도 있고, 기자 지망생들도 언론사 취업에 있어서는 급여와 복리후생이 뛰어난 조선일보를 우선순위에 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가장 우수한 자질을 가진 기자가 조선일보 기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8. 이걸 제대로 까발리고 폭로한 사람이 바로 리영희김어준이었다.
  19. 대표적인 내용으로 르윈스키 사건으로 미국이 시끌하던 때에 힐러리가 화가 치민 나머지 클린턴을 핸드폰으로 때렸다는 황색잡지 위클리 월드 뉴스의 기사에 낚여 클린턴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합성 사진을 지면에 실었던 적이 있다. 기사
  20. 근데, 황현희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을 만든 계기가 조선일보에 나온 것(분명 이 내용으로 조선일보 지면에 나왔음)과 상상플러스제 입으로 말한 게 다르다...
  21.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의2 1항에 따라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
  22.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 6월, 2016년 1, 2월 네 차례만 빼고 모두 선정되었다. 2015년 3월과 2016년 1, 2월에는 동아일보가, 2015년 6월에는 중앙일보가 나쁜 신문으로 뽑혔다. 2016년 5월은 동아일보가, 7월은 조중동이 공동 선정되었다.
  23. 여성부 자체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운 부처이고 여기에 원래 행정자치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주관하던 병크성 부문을 합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행한 것이다. 원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수에는 가부장적이거나, 나쁘게는 남성우월적인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다. 보수언론 역시 자신들의 주 소비층인 50~60대 이상의 기성 가부장주의자들의 시각을 잘 맞추어 주는 성향을 갖고 있다. 아얘 이들 언론의 핵심 구성원 자체가 그런 성향이기도 하고.
  24.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통과된 국가에서도 판매에 제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