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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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개요

2011년 7월 4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해병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사건은 4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소재 대한민국 해병대 제2해병사단 해안 소초에서 일어났다.
이 부대 소속으로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던 상병 계급의 김모 해병[1](19)은 오전 11시 20~35분 경 교대 근무자들이 총기를 맡기는 틈을 타서 상황실내 간이탄약고에서 K-2 소총 1정과 실탄 75발과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이 담긴 탄통을 미리 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김 해병은 사건 직전인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몰래 숨겨둔 소주 1병을 마셨으며[2] 오전 10시 30분에 잠이 깨서 나온 정준혁 해병(이병)과 창고에서 만나 대화하면서 "권승혁 해병(일병)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에 정 해병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으나 잠시 후 "소초원들 다 죽이고 탈영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이들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김 해병은 상황실에서 상황병인 L 해병(상병)과 대화를 나누다 상황부사관인 H 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상황실에 있는 총기보관함에서 병기를 탈취하고 탄약고 위에 놓여있던 탄통을 통째로 들고 나왔다고 한다.

H 하사는 고가초소 근무에 투입될 근무자에게 소총을 지급하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열었다가 교대 근무자의 소총을 반납받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그대로 열어놓은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상황실을 비웠으며 상황병 역시 이때 상황실을 비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해병은 정 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시키라고 지시한다. 오전 11시 40분경, 김 해병은 생활관으로 가서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이승렬 해병(상병)에게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상황부사관 모 하사는 쓰러져 있는 이 해병을 발견, 11시 42분 쯤 119에 신고했다. 한편 당초 범행을 공모했던 정 해병은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이 나서 고가초소 폭파를 실행하지 않고 김 해병을 피해 도망다닌다. 정 해병은 이승렬 해병이 쓰러져 있음을 목격한 뒤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리고 나서 계속 김 해병을 피해 다녔다.

계속해서 김 해병은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25)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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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6명이 잠자고 있던 제2생활관으로 들어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잠을 자던, 그가 정 해병에게 직접적으로 죽이고 싶다고 말했던 권승혁 해병(20)의 가슴에 3발을 발사했으며 그 다음으로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던 박치현 해병(상병, 21)에게 1발을 쏘았다. 권승혁 일병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박치현 해병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에 결국 사망했다. 김 해병은 계속해서 총을 쏘려고 다음 차례인 좌측 두 번째 침상에 누워 있던 권혁 해병(이병)쪽으로 몸을 돌렸다.

권혁 해병은 먼저 김 해병이 이 해병, 이 하사를 쏠 때의 총소리를 듣고 깨어나 있었으며 김 해병이 자기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달려들어서 왼손으로 총부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잡은 다음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 했으나 멜빵이 걸려 있어서 빼앗지는 못했다. 대신 권혁 해병은 가슴을 밀어서 김 해병을 문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잠근 다음 침대를 밀어 문을 못 열게 막았다.

그 와중에 권혁 해병은 하반신에 네 발의 총알을 맞았지만 다행히 나 치명적인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 쪽 고환에 총상을 입었다. 또 뜨거운 총신을 맨손으로 잡고 밀어냈기 때문에 에는 수포가 생기는 화상을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

권 해병이 총신을 부여잡는 데까지 성공하고 더 나아가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그 생활관 안에 있던 생존 선임해병들은 아무도 안 도와주고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고 심지어 권 해병이 김 해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 피 흘리는 자신에게 지혈을 해달라고 주변 선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혈조차 안 해주었다고 한다.# 또 권 해병 아버지가 올린 글에 따르면 권 해병은 이 상태에서 총을 맞은 선임해병에게 심폐소생술까지 해서 살리려 시도하고, 군가를 부르며 버티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권혁 해병이 총을 못뺏는다면 그 다음으로 총알세례 받을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들일테니까 자기들이 살기 위한 생존본능에서라도 같이 달려들어서 총 뺏는걸 도와주는게 당연했는데도 겁에 질려 바짝 얼어서 꼼짝 못하고 뒷구석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권혁 해병에게 총을 붙잡힌 상태라서 범인이 전방에다가 총을 맘대로 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권혁 해병이 이미 총부리를 잡아 꺾어 총구를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뺏으려고 몸싸움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바로 뒤쪽 침상에 있던 선임해병들은 얼마든지 달려들어서 같이 힘을 합하면 어렵지 않게 총을 뺏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권혁 해병과 범인이 둘다 양손으로 총을 잡고 서로 안뺏기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 사이에 다른 해병들이 빨리 달려와 먼저 그 총의 탄알집을 빼고 조정간 안전으로 돌려 놓기만 했어도 게임 끝이었다.

그런데도 그 방 안의 어떤 해병들도 도와주지 못하고 패닉상태에서 눈앞의 싸움을 보고만 있었다는건 한심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찌보면 후술하는 빤스런보다도 이 부분이 이 사건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권혁 해병의 아버지는 해병대 가족모임 카페에 올린 글에서, 권 해병이 총을 빼앗으려 몸싸움하고 있을 때 한 명만 도와줬어도 권 해병이 총에 맞아 고환이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런 한심한 선임들이 그동안 고참이랍시고 권 해병에게 과자를 토하도록 먹이는 등 괴롭히며 전통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다는 게 분통이 터진다'면서 해병대 선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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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대 해병들 중에서 실무(자대) 배치받은 지 보름밖에 안 돼서 가장 해병대 물이 덜든 권 해병만 유일하게 진정한 군인다웠다는 게 해병대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후 김 해병은 생활관 바로 옆의 창고로 이동해서 정 해병을 만났다. 정 해병이 고가초소를 폭파시키지 못한 것을 안 김 해병은 동반자폭하기 위해 정 해병으로부터 수류탄을 빼앗아 터트렸고 얼굴 및 등에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정 해병은 곧바로 달아났으며, 수류탄 파편에 의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김 해병은 이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낮 12시 15분, 인천강화소방서 길상구급대 임동문 소방교(38) 등 6명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상자들을 수송했다.

한편 총격이 일어난 2생활관이 아닌 다른 생활관들에서 쉬고 있던 해병들은 총소리를 듣고는 놀란 나머지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와서 부대밖으로 도망을 치고 만다.
부대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옷[3]만 입은 해병들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 등 여기 저기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4.4 부대원들의 부대이탈 항목에서 상술.

2 피해자

이승훈 하사 등 3명이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고[4] 박치현 해병은 강화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도중 숨졌다. 박치현 해병은 사고 하루 전이 생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미니홈페이지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또한 사망자 중 권승혁 해병은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인 은지의 외사촌, 이승렬 해병은 개그맨 임혁필의 사촌동생이었다.

그 외에 권혁 해병을 포함해서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권혁 해병은 4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고환이 하나 터져서 병원에서 이를 적출하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3 사건 수사

초기에는 언론에서 총기난사 사고라고 불렀으나 수사결과 인위적인 사건임이 드러났다.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은 '김 해병은 평소엔 군생활을 잘 했다'는 증언[5],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총기를 훔칠 정도의 대담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부대에 원한을 품고 계획되었던 행동이 아닐까라는 추측, 김 해병이 다른 부대에서 지금 부대로 옮겨온 사람인데 문제가 있어서 온 게 아니냐는 추측들만 무성하다.

해병대의 생리를 잘 아는 전역자들이 많아 사건 초기부터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일 것이라는 설은 널리 퍼졌고 실제 사건수사 결과도 일치한다. 이 사건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 530GP 사건과 달리 '후임'이 '선임을 목표로' 삼지 않고 반대 양상을 보였고 김 해병은 구타, 왕따, 기수열외[6]는 없어져야 한다고 직접 진술했다. 사고조사관과 범인간 필담에서도 마찬가지 진술이 나왔다.#

김 해병의 사물함에서 3페이지 가량의 편지 형식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가 발견되었는데 자신을 비관하는 내용이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

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제가 그만큼 문제아였고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진짜 제 심정을 말씀드리면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 끝내고 싶다.

김 해병은 입대 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나,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관심소견이 식별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대에서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증언으로 보아 범행직전 음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인터넷에선 김 해병의 전역한 선임이라는 인물이 김 해병은 원래 기수열외자였다고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승훈 하사가 기수열외와는 겉보기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며, 이 하사가 사살되었다는 건 이 사건이 기수열외로 인한 사건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증거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다고 해도, 간부가 기수열외을 묵인 내지는 방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승훈 하사는 이 때문에 살해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기수열외로 공공연하게 무시를 하고 다녔던 정도였는데도 매일매일 같이 부대끼고 사는 소대장, 부대장이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김 해병 입장에서는 간부들에 대한 원한 역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 해병은 이승훈 하사는 사살했지만 소대장인 ○ 중위에게는 사살하기는커녕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난 뒤 수류탄으로 자해를 시도한 점으로 미뤄보면 간부라서 원한을 품었다기보다는 기수열외 문제 때문에 원한을 품은 것이 거의 확실시되어 보인다.

피해자 권승혁 해병의 유족들은 기수열외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권승혁 해병의 아버지인 권형구 씨는 이 사고의 가해자 김 해병이 자신의 아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혔으며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들었다고 아들에게 들었으며 거기에 권 해병은 오직 김 해병 하나 때문에 군생활이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권 해병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 육군 하사로 군복무중이던 권 해병의 친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상단의 의견 역시 증인이 모두 피해자의 친족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이 조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내 자식이 이렇게 어이없이 죽었을 리가 없어"라는 유족의 욕망음모론도 만들어내고 그걸 맹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괴롭히는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을 죽이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자세한 내막이 밝혀질 때까지는 더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다. 권 해병 유족들의 증언과 같은 사건들로 인해 기수열외를 당했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김 해병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수열외가 정당화되지는 않으며, 마찬가지로 부대 내에서 아군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김 해병의 행동도 결코 정당화가 될수 없다는 것도 잘 기억하자.

한편,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2011년 7월 6일 새벽 1시 쯤에 같은 부대 소속인 김 해병의 후임병인 정 해병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한 정황을 포착하면서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정 해병을 체포하였다. 정 해병은 구타를 없애기 위해 사고를 친 뒤 탈영하자고 뜻을 모았지만 실제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는데, 합동조사단이 허술한 무기관리를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해병의 혐의를 파악했으며 가해자인 김 해병이 부대 상황실 내 탄약고에서 총과 실탄을 훔칠 때 정 해병이 자신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김 해병이 6월 4일 오전 10시에서 10시 20분 사이에 상황실 내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을 훔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간이탄약고에서 실탄 75발, 수류탄 1발 등을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합동조사단은 정 해병이 김 해병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 해병은 공모혐의에 대해 부인했지만 두 사람 모두 사고를 치고 탈영하는데 뜻을 모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11년 4월 9일 부대에 배치된 정 해병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부대원들이 정 이병을 왕따시키면서 성경을 태우거나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비슷한 왕따 신세인 김 해병과 평소 친하게 지냈으며 사건 당시에는 김 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받아 근처 감시초소를 폭파시키려 했으나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포기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쉽사리 총기와 탄약이 도난당한 것은 허술한 탄약고 관리체계 때문이었다. 관리 담당인 상근예비역 김모 해병이 퇴근시 탄약고 열쇠를 상황실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근무시에 착용하는 옷에 넣어놓고 퇴근한다는 것을 안 김 해병은 김 해병이 퇴근 후 그 열쇠로 탄약고에 침입, 실탄과 총기를 꺼낸 것이다.

4 논란거리 정리

군대 안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난 건 이번만이 아니지만 특히 이 사건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4.1 기수열외

자세한 내용은 기수열외 문서 참조. 그동안 군대 내의 총기사고는 대개 후임이 괴롭히던 선임을 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후임이 선임을 괴롭혀서 선임이 후임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 성매매계 : 해병대에서 군인들 자체적으로 계모임을 하여 휴가 나오는 군인에게 돈을 몰아주는 성매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해당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로 이 시례의 경우 여자친구가 있는 해병대원이 성매매계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거부하자 기수열외시켰다는 부조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 기수열외 사례 : 이 외의 기수 열외 사례 등을 기사화하였다. 역시 사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별개의 사례들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

4.2 실탄 관리

상식적으로 실탄관리는 당연히 간부의 몫인데 이 사건에서 김 해병이 상근예비역에게서 탄약통 열쇠를 훔쳤다는 것. 게다가 이렇게 분대장도 아니고 상근예비역이 실탄을 관리한다는 것이 관례적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반적인 부대에서는 병이 절대 총기함이나 탄약고 열쇠를 관리하지 않는다(일부 부대에서는 분대장과 간부가 탄약고 및 무기고 KEY를 공동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총기와 실탄함은 이중 관건이라고 해서, 자물쇠 두개와 그 자물쇠 2개에 봉인지를 부착하는 절차를 거쳐야 총기를 불출 및 반납할 수 있다. 행정반에 총기함이 몰려있으면 한번에 자물쇠 두개를 물리고, 생활관별로 총기함이 있으면 역시 그쪽도 자물쇠 두개를 물리고, 생활관의 총기함 열쇠를 행정반에 모두 모아두고 그 열쇠함을 두번 더 잠근다. 그리고 그 열쇠함의 열쇠는 중대장&당직사관당직부사관의 목에 목걸이 형태로 걸려있다. 정상적이라면 중대장&당직사관과 당직부사관에게 모두 보고를 해야만 총기취급이 가능해지고, 이 과정을 거쳐 총기를 취급할 경우 총기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총기운영대장에 기록도 해야한다. 만약 목걸이 열쇠꾸러미나 열쇠함의 열쇠 하나라도 분실될 경우 당연히 중대 전체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난리가 난다.

이정도 엄중한 감시 속에서 보고없이 총기함을 열려면 중대장&당직사관과 당직부사관, 여기에 행정반에 있을 상황병들까지 모두 제압하고 열던가 절단기 등을 갖고와서 자물쇠를 부수는 수밖에 없다. 농담이 아니라 가 취침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다는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일과 중에는 중대장 혹은 (육군의 경우)행보관이, 일과 후에는 당직사관이나 상황실 당직자가 총기함 열쇠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총기와 실탄함을 열어둔 채로 담당 부사관이 자리를, 그것도 고작 담배를 피우려고 비웠다는 것은 이들의 군기가 얼마나 빠졌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4.3 음주

원래대로라면 영내음주는 간부(보통 중대장 이상의 지휘관)의 지휘하에 특별한 날에 한해 엄격히 이루어진다. 보통 병들이 영내에서 술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인데, 김 해병은 술에 취해 있었다.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술을 마셨는데 이 술을 이틀 전 경계근무를 하던 중 편의점에서 구입했다는 것.

군인이 경계근무 중에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가 있고 그래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막장스럽다.# 단순탈영을 넘어 초병의 수소이탈(군형법 28조)이다.

이는 해병대 뿐 아니라, 일부 민가 인근 소부대에선 간부의 묵인 내지는 동참이 있거나 몰래 들여오는 형태로 암암리에 남아 있다. 특히 초소나 검문소가 마을을 지나가야 도착할 수 있는 경우는 동선에 따라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 들러 기호품 등을 사는 것을 간부가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고, 군생활의 고단함과 비정상적인 처우로 인한 병들의 불만도 잠재울 겸 알고도 묵인해 주거나 아예 대놓고 돈주면서 오가는 길에 뭐 좀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지금에 비해 똥군기만 죽어라 챙기면서 FM대로 규정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던 8~90년대 전역자들 중 이런 소부대에서 근무한 이들의 추억담(?) 속에 초소에서 몰래 마시던 막걸리 같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나마 단속이 심해지고 똥군기가 점점 척결되어가는 분위기에 따라 이런 모습을 지양해가기 시작했으며, 격오지 초소가 줄어들고 있는 점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보기 힘들어졌을 뿐이다.

4.4 부대원들의 부대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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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인근 민간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가 들리자 팬티만 입은 해병대원 여러 명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건 원칙적으로 부대이탈이고 근무지 이탈에 해당한다. 참고로 군인은 위난을 피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으므로 위급상황에서도 군의 근무지 이탈은 100% 처벌받는다. 실제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침몰하는 함선에서 퇴함명령이 내리기 전에 배를 벗어난 승조원들은 일단 사람 생명은 구해야 하니 똑같이 구조를 한 뒤 근무지 이탈로 재판에 넘겨 처벌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이 점은 별 일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총소리를 듣고 놀랐을 테니 순전히 인간적인 면으로만 생각하면 도망치는 것도 이해할 만도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며, 그것도 언제든 북한군의 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전방 부대라는 점에서 총소리 몇 방에 한 부대가 아무 대응도 못하고 부대를 이탈해서 인근 마을로 도망치기만 했다는 것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만일 기습공격이라면 단 한 명의 적에게 한 부대가 거의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상대는 총을 들긴 했어도 술에 취한데다 같이 공모하기로 한 해병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7] 사실상 혼자서 범행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그동안 강인함을 과시하는 해병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속옷 바람으로 부대 밖으로까지 도망친 것은 꽤 망신스러운 일인 건 분명하다. 참고로 부대 밖으로 도망간 해병들은 총기 난사가 일어난 2생활관 등이 아닌 다른 생활관 안에서 속옷 차림으로 쉬고 있다가 총소리만 듣고 놀라 도망간 것이라서, 북한군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상황도 파악 못한채 그저 놀라고 겁나서 무작정 부대 밖으로 도망갔던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3년 뒤,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중동의 모 국가 군인 수천 명이 불과 수백 명의 오합지졸들에게 붙잡혀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참혹한 꼴을 당한 걸 보면 살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도 아니었다. 총을 들고 엄폐물 등에 의지한 채 맞서 싸우는 게 나았을 것이다.

온갖 말도 안 되는 똥군기는 다 잡으면서 정작 전장에서 꼭 필요한 겁은 나지만 내가 도망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싸우는 군기[8]는 안드로메다로 갖다 버린 셈이다. 사실 군기 타령하는 인간들 대다수가 이렇다. 오히려 평소에 조용히 지내던 이들이 전장에서 전우가 쓰러지는 걸 보고도 담담하게 싸운다. 겁이 안나서가 아니라, 싸워야 하니까.

그래서 사회에서는 이들을 빤스런 이라고 부르며 풍자하고 비웃었다.

이런 빤스런 도망과 밑에 항목에 나오는 응급처치도 전혀 못하는 등 한심했던 해병들의 행태는, 2015년의 DMZ 목함지뢰 사건 때 보여준 육군 대원들의 용감하고 침착했던 대응과도 많이 대조된다[9]. 철책통로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서 다리가 절단되어 날아가 버렸고 동료 대원들이 그 부상자를 옮기다가 또 폭발이 일어나서 다른 한 명의 대원도 다리가 절단돼 날아가는 무서운 참사가 연이어 일어났고, 순간적으로 북한군측의 포격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기가 먼저 살겠다고 이탈해서 도망가긴 커녕 전혀 우왕좌왕하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전방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중상자들을 챙긴 뒤 신속하게 후송하고 응급처치도 잘 하는 등 행동수칙에 맞게 흠잡을 데 없이 잘 대응하였다. 이런 신속한 조치 때문에 다리가 절단된 두 군인의 출혈과 감염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었고 차후 회복도 잘 될 수 있었다. 이런 의연한 대응 모습이 감시영상장비에 찍혀서 언론에 공개되어 국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4.5 응급처치

김 해병과 몸싸움을 벌여서 생활관 밖으로 밀어낸 권혁 해병은 몸싸움 도중 총상을 입어서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고 주위에 있던 선임들에게 지혈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주위 선임들 중 누구도 지혈하는 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지혈을 해야 했다.

지혈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상처부위에 붕대나 깨끗한 천을 대고 누르는 정도다. 군대 내에서는 목숨이 위험한 일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기본적인 응급처치 능력을 가르쳐야 하는데 간단한 지혈 방법조차도 몰랐다는 건 해병대에선 군인으로서의 제일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유사시 군용 허리띠나 침구류 등 지혈대 대신으로 쓰기 좋은 것은 주변에 널렸다. 우리나라가 참고한 미합중국 해병대에서는 CPR을 비롯한 기본적인 응급의료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지혈법을 몰랐더라도 후임이 코 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으면 당연히 달려와서 뭘로 출혈부위를 막든가, 아니면 누구나 살다 보면 배우는, 상처 부위에서 심장과 가까운 쪽을 묶어 지혈시키는[10] 식의 상식적인 조치라도 해야 되는 게 인간으로서 상식일 텐데도 그저 벌벌 떨면서 겁을 집어먹은 채로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저 위에 있는 권 해병 부모님이 쓴 글을 보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총기난사가 있던 2생활관 내에 있던 선임 해병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런 상황에 극도로 겁을 먹고 넋이 나가버린 패닉상태에 빠져 권 해병이 총을 빼앗으려 김 해병과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도, 김 해병을 문밖으로 밀어낸 뒤 지혈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선임들은 정신적 충격에서 못벗어나 그저 벌벌 떨면서 제자리에서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즉 이 사건에서 지혈문제는 지혈지식이나 책임회피 같은 이유에서라기보다는, 갑자기 코앞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광경을 본 정신적 쇼크와 극도의 공포 때문에 몸이 얼어붙어서 지혈이든 뭐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놀라고 겁먹은 상태였다 해도, 같은 부대의 동료 해병이 그것도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셈인 전우가 피를 철철 흘리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아무 도움도 안주고 방치했다는건 어떤 비판을 받아도 싸다.

군인으로서의 기본 교육조차 안 되어 있다는 문제점 외에도 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용기와 전우애조차도 안 갖춰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리고 가혹행위와 폭력으로 평시에만 보이게 잡은 해병대식 군기와 의리가 생사가 오가는 위급시 및 전쟁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음을 가르쳐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부 현/예비역 해병들이 아직도 변명하는, "타군은 안 그럴 것 같냐?"는 주장이 헛소리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평소에 자신들이 타군을 얕잡아보며 똥군기 덜 잡는다고 군인 취급도 안하며 열심히 스스로 무덤을 파온 대가일 뿐인 것이다.

4.6 부상자 이송 문제

일부 외과 전문의들은 중상을 입고 사망한 박치현 해병이 곧바로 헬기로 이송돼 1시간 이내에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에게 응급수술을 받았더라면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해병은 국군수도병원 도착 후인 오후 3시 15분에 공식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국군수도병원 도착 당시 사실상 사망한 상태(D.O.A·Dead On Arrival)였다. 만일 총기난사 사건 직후 군이 곧바로 군 헬기를 불러 이송했더라면 1시간 이내에 수술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견해다. 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길상면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국군수도병원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90km이다. 보통 시속 200km로 나는 헬기로 이송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헬기가 김포에서 사건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1시간 이내에 이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김포에서 온 헬기는 의료 장비가 장착되지 않아 곧바로 부르지 않았다"면서 "출혈이 심한 박 해병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수혈받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해병이 총상을 입고 2시간 35분 동안 생명이 유지됐는데도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은 우리 군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65만명의 우리 군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상 환자가 2시간 35분 동안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1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때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기퍼즈 하원의원은 단 35분만에 애리조나 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후 육군에서 발생한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4.7 비판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비판받아도 할말 없는건 사실이지만, 잘잘못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심리 상태를 분석해보면 그들은 그냥 그대로 얼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해병대란 껍데기를 걷어치우고 보면, 그냥 겉멋든 20대 초반의 앳된 풋내기들인데, 문제는 이게 그나마 어느정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는 평시가 아니고 완전 퍼져서 자다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다. 30대 구직자도 면접관 예상 질문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한 상태에서도 막상 딱 면접관 맞닥뜨리면 긴장되서 머리가 하얘질 수 있는데, 이건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나마도 긴장상태가 유지되는 훈련 중이라든지 그냥 자기 전 내무반 상황정도만 되더라도 상황은 달랐을텐데, 완전 퍼져서 무방비로 자고 있다가 총소리 한방에 심장 덜컥하며 잠에서 깼을텐데, 동료가 옆에서 피철철 흘리며 죽어있고 동료가 총을 들고 살기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봤다면 20대 초반의 어린 청년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라서 아마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청년들도 평생 PTSD증후군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기에 이들도 군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외부에서 쳐들어온 거라면 사이렌이 울리며 비상사태가 선포되기에 잠에서 깨어나서 어느정도 정신도 차리고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데, 이건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완전 무방비 상태(잠)에서 급작스럽게 당한 것이기에 아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공포와 충격으로 굳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에 보인 육군의 대처와 비교하며 까곤 하는데, 당시는 이미 완전 무장하고 실전에 준하는 훈련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즉각 대처가 용이한 환경이었으나, 이 사건은 무방비로 완전 퍼져서 자고 있던 상황이라 즉각적인 대처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평시 긴장 상태로 간주하고 이 사건을 바라보니 왜 즉각 달려가서 도와주거나 신속하게 응급처치 못했냐고 질타하는 건데, 이는 당시 해병대원들이 완전 무방비 상태(잠)였던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뢰사건은 애초에 경계근무 자체가 지뢰가 있을 것도 상정한 것이고 당연히 이런 지뢰당한 상황에 대한 훈련도 몸에 익혀져있는 반면, 내무실에서 자다가 동료가 총을 쏘며 난동을 부리는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대비훈련도 받지 않았을테니, 더군다나 자다 깬 상태로 이런 초실전상황을 처음 맞닥뜨렸으니 어버버하며 굳어버린 면이 있긴 하다.

만약 자기 전에 그냥 퍼져서 노닥거리고 있는 내무반 상태만 유지되었어도, 동료가 목숨걸고 싸우는 상황에서 그냥 멍하니 쳐다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 동료가 죽으면 다음은 자기들 차례니까 더더욱. 이성적이었다면 당연히 도와줬어야할 상황인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부상당한 동료가 응급처치를 요구하는데도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당시엔 거의 실어증에 준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권혁 해병은 총부리가 자신을 겨누니 거의 본능으로 막아서며 몸싸움이 벌어진 건데, 용감하게 대처하여 정신력이 강해보이는 권해병조차 입원해 있을때 문소리만으로도 놀라는 등 PTSD증후군을 호소했을 정도니 자다 깬 무방비 상태라는 점에서 충격은 훨씬 컸을 것이다. 만약 권해병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느정도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대비한 상태니 정신적 데미지는 완화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무방비로 자다가 급작스레 당한 사건이라 용감하고 정신력 강한 권해병조차도 심한 PTSD증후군을 호소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것이다.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마치 면역력을 가진 상태에서 바이러스를 맞닥뜨린 상황에 비유할 수 있기에 데미지를 완화할 수 있는데, 완전 긴장을 풀고 잠에 곯아떨어진 상태에서 저런 초실전상황을 맞닥뜨린 것은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최강의 바이러스를 맞닥뜨린 셈이니 권해병을 포함한 당시 내무반 해병대원들 전부 평생 PTSD증후군을 앓고가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군인이다. 그것도 언제든 북한군의 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전방 부대의 군인.
군인과 군대의 존재는 위급상황시의 대처인데 부대에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병이 혼자서 범인을 상대하는 동안 바로 뒤에 있던 선임해병들은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고, 이병이 범인을 문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은 다음에도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한 점은 부적절한 행동이다. 위급상황시 전혀 대처 못하는 해병대. 그것도 단 한 명에게 무너져버린 전방부대라는건 존재자체에 크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범행동기를 보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범행동기에 의하면 부대원들이 평소에 범인에게 고통을 준 건 사실로 보인다.
상대가 총을 들 정도로 고통속에서 지내게 하고, 총 든 범인과 맞딱뜨리자 겁을 먹고 아무것도 못한 건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5 사건 여파

이 사건으로 해병대의 총체적으로 무너진 기강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병대에 대한 폭풍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것은 언론에 밝혀진 내용이며 앞으로 어떻게 밝혀질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해병대는 이 사건 이후 3진아웃제를 도입해 구타, 가혹행위 등을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성공 여부에 관한 논란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해병 대령의 해병대 병 성추행 등 각종 성추행 사건들과 평상시의 제 항로로 멀쩡히 가고 있는 민항기에다가 사격을 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같은 군 편성 지역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거짓말처럼 연달아 일어난다 해병대 소장이 상급자인 해병대사령관(중장)을 음해했다가 구속된 하극상 사건까지 연달아 일어나서 해병대가 욕을 먹고 있던 와중에 이 사건까지 터졌다.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디씨인사이드의 해병대 갤러리에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연대장 민모 대령대대장 한모 중령은 지휘책임을 물어 보직해임됐다.[11] 기사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애당초 지휘관이 부하들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하급 지휘관인 중대장에게 군법대로 가혹행위를 방지하고 적발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즉, 아무리 좋게 봐줘도 '부하들에게 신경을 안 썼다' 내지는 '부하들에게 휘둘렸다'는 이야기가 되기에 어떻게 봐도 지휘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미군의 경우에도 가혹행위를 묵인한 지휘관은 엄연히 자기 책임으로 일을 저지른 만큼 최소 보직해임, 책임소재에 따라서는 중징계 처분에 따라 강제전역도 당한다.기사

또한 국방부에서는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연루가 없다 하더라도 평소에 정모 해병에게 각종 가혹행위[12]를 자행한 선임 해병 4명에 대해서도 구속 수감 조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라는, 다소 의지드립에 가까워보이는 발언을 하여 엄청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사실 군대라는 비현실적, 비인격적인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니 이를 논리적으로 볼 때는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문맥상 군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부적응하는 아이들이 문제라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 문제였던 모양. 거기다 병역면제자(이전에 군통수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발언을 하니 대중들에게 더더욱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에 청와대는 앞뒤가 잘려 기사가 나가서 표현이 달라졌다고 해명했다. 긴말할 것 없이 그냥 기사로 확인하고 알아서 개인이 판단하길 바란다.#default #

심지어 해병수색대 대원조차도 해병대의 한심한 현실을 깠다. 그리고 댓글에는 여지없이 수색대라고 까는 해병대의 댓글이 달렸다. 해병수색대와 해병대는 이 사건이 아니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 해병수색대도 딱히 가혹행위 수준이 낮은 데가 아니라서, 그냥 수색대 출신이 일반 해병들을 디스하고 싶었을 뿐인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육군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도 덤으로 여전히 가혹행위가 척결되지 않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당시 해병대사령관 유낙준 장군은 전역한 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남양주갑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연평도 포격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생사령관(...)을 표방했으나 이 사건의 이미지 때문에 결국 낙천되었다.

6 사후처리

가해자인 김 해병은 김포 우리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은 뒤 국군수도병원을 거쳐 국군대전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바로 구속 조치되어 수사에 들어갔다. 같은 부대원들도 죄다 헌병대로 불려가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조사를 받았다.

국방부는 사망한 4명에게 1계급 진급을 추서했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였다.# 물론 비판이 나왔다. 사망자들이 김 해병을 괴롭히던 사람들이었고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저런 대우를 해주냐는 것. 전우에게 가혹행위를 가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 결국 괴롭힘을 당하던 전우가 다른 전우들에게 총을 쏠 정도로 갈구는 일이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주고 진급까지 시켜줄 정도로 훈장감인 일이라는 걸 국가가 직접 인증했다.

이후 재판에 따라 김 해병에게는 사형. 정 해병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되었으며 2013년 1월 24일 대법원에 의해 판결이 확정되어 국군교도소[13]법무부 소속 일반 교도소[14]에 수감 중이다.

이로써, 2016년 기준으로 사형이 확정된 군 사형수는 김 해병을 합쳐 총 4명(육군 3명, 해병대 1명)으로 나머지 3명은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김동민과 1996년에 역시 총기난사로 3명의 육군 병사를 살해한 김용식, 육군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임도빈이다. 이들과 정 해병은 6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을 경우 병적에서 제적된다는 병역법 3조에 따라, 병적에서 제적되었다. 다만, 군인 신분일 때 형을 선고받았으므로 총살형을 집행해야 하기에, 집행 명령이 나올 때까지 민간인 신분이 되었음에도 법무부 교도소가 아닌 총살이 가능한 유일한 시설인 국군교도소에 수감된다.

6.1 권혁 해병 관련 처리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은 권혁 해병은 허벅지 총상은 물론 고환 한쪽까지 적출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PTSD 증상까지 보였지만 국방부는 2011년 8월 19일 권 해병에게 국군수도병원에서 퇴원하여 부대로 복귀하라고 통보했다.[15]

그리고 해병대사령부는 한창 권혁 해병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엔 '영웅'이라면서 훈장 추천이나 포상을 해줄 것처럼 공언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발뺌을 했다. 권혁 해병의 공과 희생에 대한 무관심을 해병대 스스로 인증한 셈이다.

결국 권혁 해병은 해병대사령부로 옮겨진 이후 한달 남짓 지난 9월 19일, PTSD 증세가 심해져 국군수도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2011년 12월 31일 의병 제대가 결정되었으며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상의 후유증과 PTSD는 낫지 않았다고. 관련기사. 기사에서는 의가사 제대로 잘못 표기되어 있으나 의병제대가 맞다.

이후 2012년 2월 22일 권혁 해병은 보국훈장 광복장 수여와 함께 일병 계급으로 의병제대하였다.#[16]

7 곁가지 사건들

사건 바로 하루 전날 7월 3일에 총기난사가 일어난 부대인 해병대 2사단 소속의 이병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유족들은 선임들이 옷을 벗기고 성추행과 갖가지 모욕을 줬고 나라사랑카드를 긁게 해서 먹을 것 등을 강탈했으며 군번을 도용해 전화를 거는 등의 갖가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는 구타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며칠 뒤인 7월 10일에는 포항에 위치한 제1해병사단에서 해병대원 한명이 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은 해병대에게 지옥같은 한 해가 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생활 행동강령전면 개정되었다.

8 관련 문서

  1. 병들을 계급명이 아닌 000 수병(님)이라 부르는 해군과 마찬가지로, 해병대도 해병대 병을 부를 때 계급명 대신 000 해병(님)하는 식으로 부른다. 관등성명 등 계급이 앞으로 올 때만 계급과 이름을 함께 부른다.
  2. 사건 이틀 전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에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구입하여 창고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3. 인터넷 상에서 이 사건이 올라올 때마다 저 해병들이 입고 있던건 속옷 팬티가 아니라 트렁크 형태의 해병대 하체육복 하의였을 거라고 주장하며 카더라를 퍼트리는 해병들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건 현장엔 있지도 않았던 해병 출신들의 상상,추측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다. 기사, 저녁뉴스, 아침방송 뉴스 등에서 증언한 여러 다른 주민들이 모두 다 '속옷'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자기들 맘대로 팬티가 아니었을거라고 우기는건 쪽팔림을 조금이라도 면해보고 싶어하는 해병들의 바람일 뿐인 것이다. 저 주민들은 강화도의 해병대 부대와 소초 바로 옆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분들이라서 여름 때마다 해병들이 늘 입고 다니고 구보와 운동할 때도 입고 있는 체육복 하의를 많이 봤을텐데 그걸 '속옷'과 헷갈릴 리는 없다.
  4. 한 사람은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던 도중 숨을 거뒀다.
  5. 휴가 중에 싸우는 학생들을 잘 타일러 경찰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
  6. '구타도 없어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참고해보면 '구타가 가미된 기수열외'인 가능성이 높다.
  7. 정 해병이 사건에 상당히 깊이 관련되어 있었음에도 4명이 살해된 사건에 연루된 가담자 치고는 가벼운 징역 10년을 받은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8. 사실 전장에서 겁이 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다못해 특수부대원들조차 죽음의 공포에 덜덜 떨다가 나중에 PTSD로 고생한다.
  9. 물론 이 경우 의무병과 통신병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이 전부 간부들이었다만
  10. 물론 이 경우 후송이 늦어지는 경우 등엔 조직이 일부 괴사해 부상당한 부위를 잘라내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생명은 건진다.
  11. 미군의 경우 이런 사고가 날 경우 사고자의 인성판단을 맨 먼저 한다. 즉, 원래부터 어떤 방법을 써서 대처를 해도 사고를 칠 게 분명할 만큼 답이 안나오는 놈인지 진짜 지휘를 잘못해서 사고가 났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경우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보직해임이 당연하다.
  12. 정 해병의 성경책 소각하기, 정 해병이 전투복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정 해병의 바지에 살충제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 붙이기 등등.
  13. 군 사형수는 구치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형수인 김 해병은 국군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4. 정 해병은 징역 1년 6월 이상을 받은 경우로 군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무부 소속 교도소로 이송한다.
  15. 징병검사에서 고환에 손상이 있을 경우 6급 병역면제(민방위 포함 완전 면제) 판정을 받지만, 현역 복무 중 의병전역 기준에는 고환 손상에 관한 조항이 없다. 가끔 병무청 의사들이 진단서 들이미는 신검자에게 차라리 입대한 다음에 의병전역을 하는 게 쉽다고 사탕발림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병전역은 중증 장애인이나 팔다리 결손 등 누가 봐도 당장 전역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아니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16. 모 해병대 카페에서 저 사진의 권혁 해병의 머리가 길다고 까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김 해병이 저지른 살인 행각으로 충격을 받아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는데다 해병대사령부의 무시까지 겹쳐 심각한 고통을 받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당장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 길이를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해병대사령부에서도 권 해병의 정신이 불안정적인 점 등을 감안해 이발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