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목록/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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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 중, 학술적인 자료를 모아 정리한 페이지.

1 고고학

2 공학

2.1 건축ㆍ건축물

2.2 IT 관련

2.2.1 컴퓨터 부품

2.2.2 소프트웨어

2.3 스마트 디바이스 관련

3 과학

3.1 물리학

3.2 생명과학

3.3 의학

3.4 천문학 및 우주개발

3.5 화학

3.6 유사과학

4 인문학

4.1 역사학

5 학자

6 그 외

  1.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도굴조차 안 된 왕릉을 발견한 건 좋았는데, 발굴 당시 최초 상태를 사진으로 찍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룻밤 안에 졸속으로 모든 유물들을 들어냈고 그 다음엔 기자들이 홍수처럼 발굴 현장에 들이닥쳤다. 대한민국 고고학 사상 최고의 발굴 성과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발굴 사례. 그리고 그 졸속을 증명할 사건이 또 터졌는데 2009년에 무령왕릉의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뼛조각 4개가 발견되었다. 급하게 유물을 수습하면서 아주 미세한 것들은 빗자루로 쓸어 담았기 때문. 이 때문에 당시 발굴한 고 김원용 교수의 이름을 따서 날림 발굴에 김원용식 발굴이란 별칭이 붙었다. 김원용 교수도 후회를 많이 했다고. 그에게도 흑역사이다.
  2. 특히 성남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례가 있고 주민들은 서울공항을 증오한다. 성남시의 사례 자체가 흑역사. 심지어 분당선도 서울공항의 보안 때문에 지상철에서 지하철로 바뀜과 동시에 대피선 설치 계획도 취소되었다.(...) 또한 탄천 재정비 계획도 수정되어야 했다.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잘만 지어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3. 진시황 때 지었다가 초군에 의해 불타버림. 항간에는 진나라가 멸망하고 나서도 다 지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4. 오다 노부나가가 야심차게 지은 성이지만... 얼마 안 가 불타버림.
  5. 물론 이 항목에 있는 건축물들에 얽힌 사건은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지만 건축물 자체는 건축학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흑역사나 다름없다.
  6. 물리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일명 공명으로 무너진 다리. 근데 정확히 얘기하면 공명 때문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7. 일본 도쿄 도 치요다 구 나가타 정에 있던 호텔. 1960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설계할 때 미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재난 발생 시 대피가 곤란한 구조였다. 1982년 2월 8일에 한 투숙객이 담배를 피우다가 잔 게 화재의 원인이 되었고 직접적인 화재와 유독 가스 중독 등으로 인해 33명이 사망하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게다가 당시 사장의 안전 불감증도 참사를 더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호텔은 사고 후 바로 폐쇄되어 14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되다가 철거되었다.
  8. 업계 최초의 TLC SSD이지만, 이듬해 속도가 폭락하는 결함이 발견되었다.
  9. 스트림 프로세서가 원래는 640개인데 무리하게 800개로 억지로 늘리는 바람에 대부분이 고장이 났다. 그래서 4850으로 교체해 줬을 정도...
  10. 인텔 최초의 32비트 CPU로 i8086을 대체하기 위한 후속으로 1981년에 개발되었으나 i8086과의 호환성이 없는데다가 32비트 CPU인데도 불구하고 성능이 워낙 구려서(동클럭 80286의 4분의 1 수준 성능) 실패했다. 사실은 8008, 8080의 후속으로 개발을 시작했으나 출시가 계속 지연되면서 8086의 후속으로 내놓으려다가 망해버린것. 인텔 최초의 흑역사였으나 다행히도 8086/8088의 성공으로 iAPX432의 실패로 인한 적자는 금방 만회하였다.
  11. 인텔 CPU 역사상 최악의 발열과 무시무시한 소비 전력을 자랑한다. 그것도 하필이면 발열로 악명 높은 프레스캇 코어 2개를 하나의 CPU에 우겨 넣은 샴쌍둥이였으니... 이후에 나온 펜티엄 D 프레슬러도 악명이 자자하지만, 펜티엄 D 스미스필드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다.
  12. 2년이 지났지만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가 2014년 기준으로 3만원대로 가격이 급락. 물론 이 시점은 인텔 코어 i 시리즈(4세대)가 판매 중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
  13. 성능은 이전 세대인 Q6600보다 못하면서 가상화 지원도 안 된다.
  14. 제품이 나왔지만 물량이 안 풀렸다...
  15. 인텔 셀러론 최초의 제품이지만, L2 캐시를 아예 없애버리는 바람에 어떤 면에서는 펜티엄 MMX 만도 못한 성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성능적인 문제로 워낙 악평이 심했던 탓에 인텔은 128KB L2캐시를 넣은 후속작인 멘도시노 코어 셀러론을 조기에 출시하게 되었는데, L2캐시를 탑재하면서 펜티엄2와의 성능 격차를 줄인 멘도시노 코어 셀러론은 탁월한 가격대 성능비로 대박을 터트렸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우체국에서 판매하던 국민PC라든가, PC방 열풍이 시작되던 초창기 PC방의 상당수가 멘도시노 코어 셀러론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다.
  16. 비효율적인 설계로 인하여 전작인 1GHz 이상의 펜티엄3를 능가하기는 커녕 어떤 경우에는 1GHz 이상의 펜티엄3만도 못한 성능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투알라틴 펜티엄 3와 비교하면 성능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당초에는 소켓 423으로 등장했으며 RD램을 사용하는 850 칩셋과 같이 등장했으나, 소켓 423은 1년만에 버려지고, RD램을 사용하는 850 칩셋도 RD램의 비싼 가격으로 인하여 고전하면서 PC133 SD램을 사용하는 845 칩셋을 부랴부랴 개발했으나, 안 그래도 떨어지는 성능의 윌라멧은 SD램과 만나면서 PC133 SD램의 대역폭에 발목이 잡혀서 성능이 더욱 떨어지게 된다. DDR램을 사용하는 845 B0 칩셋과 노스우드 코어가 등장하면서 겨우 만회를 하게 되지만...
  17. 비효율적인 설계와 고클럭화 집중으로 인해 기본 쿨러는 예의 그 비행기 소음을 내었으며, 발열 또한 엄청났다. 당시 AMD 애슬론 64 시리즈는 설계도 좋고 효율도 좋아서 펜티엄4 위에서 날아다녔지만, 그놈의 마케팅 때문에 그런 악평에도 불구하고 AMD 애슬론 64 시리즈를 가볍게 능가하는 판매량을 자랑했다. 그리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AMD는 밑에 기록되어 있는 그 불도저를 내놓고 만다
  18. 전작의 프레스캇 코어는 발열과 전력 소모로 악평이었는데, 시더밀 코어는 발열과 전력 소모를 둘 다 잡는데 성공한다. 제품 자체는 준수하지만 하필이면 나온 시기가 듀얼 코어가 한참 보급되던 시기였기에 등장이 너무 늦었다. 게다가 얼마 안 있어서 코어 2 듀오의 출시를 앞두고 펜티엄D 프레슬러의 가격이 폭락하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 코어 2 듀오가 나오면서 그냥 묻히고 만다. 게다가 싱글 코어이면서도 기존의 915 보드에서는 제대로 지원되지 못해서 915 보드 사용자들의 업그레이드용 CPU로도 채택되지 못하고...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나름 명작이 되었을 물건이지만, 그래도 남은 재고들은 군대 사지방 등등으로 재고 처리 되기도 했다(...)
  19. 많이 쓰이는 ATX와 케이스 단계(!)에서 호환이 안 되어 따로 전용 규격 케이스를 사야 하는 데다 가격도 비싸서 개인용 시장에서 외면 당했다. 차라리 ATX에 사제 쿨러를 다는 게 더 좋을 지경이었다.
  20. ATX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규격이지만, ATX에 밀려서 금방 사라졌다. 백플레인에 장착해 쓰는 산업용 SBC 보드와 비슷한 형태로 PCI와 ISA 슬롯이 백플레인에 있으나, AGP 슬롯은 메인보드에 있으며 쥐 파먹은 듯한 모양의 NLX용 그래픽 카드만 사용 가능했다.
  21. H67, P67을 말함. 설계 결함으로 과도한 전력이 들어가 성능 저하 및 수명 감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샌디브릿지 아키텍처 기반 CPU가 잠시 주춤..거리나 싶었는데 경쟁사가 너무 못하는 바람에(.....) 간단한 리콜 후 잊혀졌다.
  22. 인텔이 440BX의 후속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칩셋으로 기본적으로 RD램용 칩셋이며, MTH를 추가하여 SD램도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나, MTH 버그로 SD램용 820 보드들은 전량 리콜 조치 당하며, 인텔에서는 RD램용 820보드에 128MB RD램을 끼워서 리콜해 주었다. 덕분에 리콜을 통해 128MB RD램을 얻기 위해서, SD램용 820 보드를 중고로 구하는 업자들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RD램용 820보드 또한 당시 RD램의 가격이 고가여서 결국 RD램과 함께 보기 좋게 흑역사가 되고 말았으며, 덕분에 그 자리에는 한동안 VIA의 694X 칩셋이 어부지리로 득세하게 된다.#
  23. 초기의 삼성 하드디스크는 엄청난 소음과 낮은 내구성, 느린 속도로 악명이 자자했다. 이후에 삼성 하드디스크는 스핀포인트 시리즈 등장 이후부터 어느 정도 개선 되었지만, 과거의 악명으로 인하여 삼성 하드디스크를 기피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는 하드디스크에서 철수하고 말았고...
  24. TLB 버그로 인해 페넘1의 경우 특정 연산을 수행하면 뻗어버렸다. 부랴부랴 AMD에서 소프트웨어적 방법으로 버그를 잡긴 잡았는데, 그만 전체적인 성능이 5~10% 하락하였다. 이로 인해 페넘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어 켄츠필드에 이어 요크필드에서도 밀리는 원인이 되었다. 나중엔 버그가 수정되어 나왔다.
  25. 원래 출시조차 몇 달이 밀려 많은 유저들이 좋은 성능을 기대했으나, 출시된 AMD FX 8150의 경우 기존의 '좋으면서 비싸다'는 평이었던 인텔 샌디브릿지 i5보다 더 비싸고 성능이 떨어진다. 심지어는 자사의 전작인 페넘2 X6 투반보다 성능이 비등비등할 정도. 코어당 성능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 컴퓨터를 게임 목적으로만 사용 하는 건 아니지만, 8코어를 전부 활용하는 프로그램이 2011년 말 현재로서 많을 리가 없다. 게다가 오버클럭을 하지 않고 사용하는데도 특정 게임이나 프로그램 사용 시 블루 스크린이 뜬다는 사용기까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26. 그나마 후속 아키텍처인 파일드라이버는 상황이 나아졌다. 그리고 불도저 제품군도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가성비가 좋아진 편이다. 그래도 인텔이랑 정면 대결은 아직 무리인 듯...
  27. 엄청 늦게 풀렸지만 얼마 안 가 단종 지못미..
  28. BTX 와는 다르다라고 외쳤지만 결국...
  29. 왜 태어났니???급의 물건...4830급의 성능이긴 한데 전력 소모가 4850보다 높다
  30. 초기 물량의 가격은 괜찮았으나 TSMC의 40nm 수율 문제로 인해 재고가 바닥났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졌다.
  31. 1995년에 등장한 NVIDIA 최초의 그래픽 칩셋이자 최초의 3D 칩셋이다. 그래픽 카드이면서도 SB16 호환 사운드 기능 까지도 갖추고 있어서 하나의 카드가 그래픽 카드와 사운드 카드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그래픽 성능도 떨어지고, SB16 호환 사운드카드 기능 조차도 좋지 못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 모두 놓치고 만다. 지원하는 게임은 세가 새턴에서 이식된 게임이 몇 가지 있었으나, 그 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국내에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의 EDGE 3D 시리즈와 가산의 WinX 3D가 이 NV1 칩셋을 사용했다.
  32. 엄청난 발열과 전력 소모, 그리고 쿨러의 엄청난 소음으로 인하여 드라이기로도 불렸으며, 그렇다고 경쟁사 제품 보다 그렇게 성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지포스 FX5900의 등장으로 인하여 지포스 FX5800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33. 일반 사용자용 GPU들은 애초에 단정밀도 위주로 만들어졌고 딱히 하는 작업(게임, 약간의 GPU가속등)이 배정밀도 연산이 필요한정도가 아니다.
  34. 다른 SSD 제품보다 한층 저렴하게 판매하는 건 좋았지만 컨트롤러의 엄청난 불안정성으로 엄청난 A/S 사례가 나왔으며, 지금도 A/S 받으러 가는 사람의 90%는 이 통큰 SSD를 들고 간다고 한다.... 유통사에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A/S 처리를 해 주는 안습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Agility3로 바꿔 주기도 한다.
  35. 11세대의 물품들이 펌웨어 이상으로 돌연사
  36. 롱런했던 ET4000 시리즈와, ET6000을 필두로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그래픽 칩셋 제조사였으나, 1990년대 후반에 시장의 대세가 3D 그래픽 카드로 옮겨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했던 Tseng Labs는 시장의 대세를 따르지 못하고 3D 칩셋의 개발을 등한시하다가,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그리고 ATI에 인수되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37. 랩터 발매 5년만에 업글되어 나왔지만 SSD에 묻혔음... 2010년에 SATA3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지만... SSD가 많이 싸졌기에... 그저 지못미. 게다가 WD 하드디스크가 소음이 좀 있는데(특히 블랙 시리즈), 벨로시랩터는 10k rpm이라서 더 시끄럽다. 서버컴용 15k 하드도 시끄럽지만 용도가 있으니 무시하는데 비해(서버컴용은 쿨링팬 소음도 무시무시하다.), 가정용에서는 상당한 디메리트.
  38. 1990년대에 WD가 발표한 메인보드 규격으로, 486, 펜티엄 시절 슬림형 완제품 PC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메인보드에 라이저 카드를 이용해 PCI나 ISA 슬롯을 사용했고, ATX처럼 I/O 포트가 모두 메인보드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딱히 강제하는 규격 정의가 없다 보니 제조사 별로 중구난방인 경우도 많았고, 조립 PC에서는 사용된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LPX를 대체하는 인텔의 NLX 규격이 등장하면서 사장 되었으나 NLX도 얼마 안 가서 사장되어 흑역사가 되었다. 지금의 WD는 하드디스크 제조사를 떠올리지만, 그 당시에는 하드디스크 뿐만 아니라 그래픽 칩셋과 메인보드 칩셋 까지도 만드는 등 하드웨어 분야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던 시절이고 이런 메인보드 규격도 발표할 수 있었다.
  39. 2016년 현재 우리나라 지도는 아직도 시망이다. 지금이야 좀 나아졌지만 나올 당시에는 국내의 대부분의 지역이 표시가 되지 않았고(그러니까 미군정 시절...), 심지어는 독도竹島로 표기되어 있었다!(이쪽은 일본 지도 서비스인 맵판의 데이터를 가져다쓴게 원인이였다.)
  40. 윈도우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어 번역된 버전이지만, 등장이 1990년 5월로, 윈도우 3.0이 등장할 시기였기에 너무나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한글 윈도우 3.0이 등장하는 바람에, 한글 윈도우 2.1은 그냥 소리없이 묻혔다. 그리고 지금은 실행 가능한 파일도 남아있는 것이 전무하고, 남아있는 자료도 거의 없어서 사실상 환상의 윈도우가 되어버렸다.
  41. 사실 비스타는 좋은 운영체제였으나 당시 기준으로 미친듯한 사양과 XP 이후 너무나도 길었던 공백기간 때문에 많이 팔리지 못하였다. 실제로 XP가 2001년, 비스타가 2007년 공식 발매됐는데(기업용 2006년) 윈도우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다. 비스타가 망해버린 이유는 버그 덩어리였던 Windows Me와는 다르게 복합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그래서 Windows 7 자체가 비스타 커널에서 크게 다른 것이 없지만 반대로 판매량은 훨씬 뛰어난 것은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비스타를 재평가하려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42. Windows 7보다 약간의 성능 향상이 있었으나 UI의 급격한 변경으로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43.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된 워드프로세서로, 이스트소프트의 데뷔작. 프로로 데뷔하기 이전의 동아리 대학생들이 만든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도 매우 높았고, 매우 깔끔하고 쓰기 편한 UI와 더불어, 몇몇 기능은 동시대의 아래아 한글을 능가하기도 했으며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가격도 2만원대에 불과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었으나 당시 시장을 선점한 아래아 한글의 장벽이 너무 견고한데다가, 제대로 마케팅을 할 수 없었고, 아래아 한글과의 호환성이 거의 없다보니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게다가 얼마 후에 개발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명맥도 아예 끊겨 버리고.... 21세기 워드프로세서의 실패로 인하여 이후에 이스트소프트는 기술력으로 앞서가기 보다는 마케팅을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44. 한글 3.0b와 한글 97 사이에 잠깐 나왔던 제품. 후속작인 한글 97이 워낙 빨리 나와서 나오자 마자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래아 한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제품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
  45. 아래아 한글 시리즈 중 최악의 실패작. 한글 워드프로세서계의 '윈도우즈 M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46. 뿌요뿌요로 유명한 게임회사 컴파일이 만든 기업용 소프트웨어. 컴파일 부도의 최대 원인 중 하나.
  47. 1996년 6월 4일 최초로 발사된 기체는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발사 후 채 40초도 되지 않아 공중에서 폭발하였다. 다행히 무인 우주선이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원인은 코드 재사용 과정에서 대충 복사 붙여넣기를 하는바람에 64비트 부동소수형 변수를 16비트 정수형에 대입하는 실수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오버플로우가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들인 돈은 5억 달러였기에 당시 연구자들은 모두 망연자실했다. 아리안 5호는 후에 해당 결함을 고쳐 현재도 활동중이다.
  48. 1997년 중국의 농부가 야노르니스(Yanornis)라는 원시 조류의 상반신과 미크로랍토르라는 나무를 타는 육식공룡의 하반신을 마개조짜깁기해 만든 가짜 화석. 워낙 적절하게 조작되어서 학자들도 처음에는 낚였다고 한다. 심지어 깃털까지 위조했다! 위의 필트다운인 사건과 비슷한 케이스
  49. 데이노니쿠스와 비슷한 공룡으로 추정되었고 한때 '데이노니쿠스 코리아넨시스'라는 학명으로 재명명된 적도 있었으나 화석이 워낙 단편적이라 의문명이 되었고 결국 코레아노사우루스란 학명은 나중에 보성에서 발견된 조각류의 학명으로 쓰이게 되었다.
  50. 19세기 독일 베링거 교수가 도마뱀 비늘,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화석들을 발견해 뷔르츠부르크의 석판화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리고 얼마 뒤 화석들을 발견한 곳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을 발견하였다. 즉, 자신을 시기한 다른 학자들이 그를 낚기 위해 가짜 화석들을 만들어 숨겨놓은 것. 때문에 베링거는 전재산을 털어 논문을 환수하다 세상을 떠났다.
  51. 1912년 영국 필트다운에서 아마추어 지질학자 찰스 도슨이라는 사람이 인류의 직계 조상 두개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한 사건. 당시 미싱 링크를 찾았다고 설레발 쳤으나, 조사 결과 인간과 오랑우탄 뼈를 교묘하게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52. 이전에는 고고학 분야에 있었으나 고인류는 고생물인 점을 감안해 고생물 분야로 이동했다.
  53. PPA 성분은 비강 내의 혈관의 확장에 따른 코 막힘 증상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혈관수축기능의 성분인데, 이 혈관수축기능이 코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혈관의 수축을 일으켜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54. 니노브는 116번과 118번 원소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은 동일한 결과를 얻는 데 실패했고 결국 조사결과 니노브의 주작이였던 것이 밝혀졌다. 덕분에 니노브가 참여했었던 111번과 112번도 재검증을 받아야 했다.
  55. 새로운 원소를 정식으로 발견하기 이전, 새로운 원소라 주장했던 원소들이다.
  56. 오가와 마사타카가 43번 원소로서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레늄이었다.
  57. 일본의 철학자로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철학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인물. 그러나 침략 전쟁 시기 천황 중심의 국체(國體)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지지했다. 나치 협력 의혹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하이데거와 달리, 이쪽은 빼도 박도 못하는 파시스트.
  58. 한국 사상사를 당파성론, 정체성론 등 식민사학적 관점에서 철저히 왜곡시켰고, 그 잔재는 지금도 남아 있다.
  59.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재임하던 시절 나치 당에 가입한 흑역사가 있다. 적극적인 나치 지지자였는지, 소극적인 협력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남아 있지만, 나치 당의 방침에 따라 유태인 교수들을 추방하는 데 협력한 점은 있다(그 피해자 가운데에는 자신의 스승인 에드문트 후설도 있었다).
  60. 비교종교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파시스트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61.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승려로 서구에 선불교를 널리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선(禪)이 일본식 발음인 'Zen'으로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 사람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한 흑역사가 있다.
  62. 한국전쟁 시기에 많은 중도, 민족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납북되면서 남한은 학문적 스펙트럼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런다고 북한이 이들을 잘 활용한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 남북 모두 학문적으로 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
  63.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반나치활동으로 처형되었다.
  64. 명대의 유학자로 영락제의 황위 찬탈을 비난하다가 처형당했다.
  65. 평생 수집해 온 나비 표본들이 6.25 전쟁 통에 모조리 불타버렸고, 본인도 전쟁 중에 사망했다.
  66. 한때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프로이트의 부성(父性) 중심, 범결정론을 비판하고, 모성(母性) 중심, 의지의 자율성을 주장하여 결국 프로이트로부터 파문당했다. 이로 인해 정통 프로이트 학파에서 오토 랑크는 인용은 물론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다.
  67. 70년대 한국 지도학계의 권위자 중 하나로, 서울대 사범대 지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68. 황금가지를 저술한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2차 대전 중 루프트바페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69. 세종시에서 KEI 주최로 열린 환경문제 관련 워크숍에 참석해 참석자들에게 스스로를 친일파라고 밝히고 천황(일왕)폐하 만라고 세 번 외쳐 워크숍에 참석한 수십명을 뒤집어지게 했다.출처 이후 해당 사건을 취재한 아시아경제의 오종탁 기자와의 통화 식사 자리에서 농담으로 했던 말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여놓았다.종북주의자들이 김일성 만세삼창해도 농담이라고 넘어갈판
  70. 공밀레#s-2.3 항목의 2.3 북한의 사례 항목 참조
  71. 어떤 의미로는 낚시의 시초라고 할 만한 사건
  72. 1989년 3월 23일, 미국 유타대의 스탠리 폰즈와 마틴 프라이슈만이 상온에서 핵융합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사건.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 결과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미국 물리학회는 위 실험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73. 2000년 서울시립대 대학원생이었던 이명원이 국문학계의 권위자 김윤식 교수의 저작 <한국 근대소설사 연구>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표절했다는 것을 지적하자, 해당 대학 교수들이 이명원을 '제도적으로 매장'한 사건. 이후 이명원은 성균관대로 학적을 옮기게 된다. 표절 항목 참고
  74.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75. 사회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일컬어지던 연구자 디데리크 슈타펠(D.Stapel)의 논문들 중 55편이 모두 주작인 걸로 밝혀져서 해당 분야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논문들 중 일부는 피인용수가 100~170회에 달했으며, 총 인용수는 심지어 2,000회에 이를 정도였다. 이 때문에 해당 분야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일시 주저앉았으며, 관련된 수많은 저널들에서 논문철회 신청이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