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플레이 스타일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이영호의 스1, 스2 플레이 스타일을 정리한 항목.

1 브루드워

테란의 완전체유일신.
테란의 정석이자 정점

말 그대로 테란이 사용해야 할 주요한 전략들을 모두 갖춘 완성형 프로게이머.특히 눈치가 백단이며, 상대의 수를 읽는 수읽기와 수싸움에 능하다. 때문에 상대의 날빌과 노림수, 꼼수는 번번히 눈치에 걸려 무산되기 일수.

같은 테란의 고수들인 정명훈이나 이재호 등과 비교해 보면 정명훈은 스피드에 기반한 신들린 토스전을 보여주지만 느린 APM으로 인한 멀티테스킹 부족과 바이오닉 컨트롤이 발목을 잡고, 이재호는 특유의 난전과 메카닉의 묵직함을 살리는 압도적인 저그전을 보여주지만 토막인데다 커리어가 상대가 안된다. 이성은은 이윤열의 재림을 보는 듯한 바이오닉 운영과 특유의 번뜩이는 재치와 역대 최강 마조작 킬러로 인해 테저전에서는 최상위권 강자였고 테테전도 수준급이었으나 당시 노장이었던 박영민에게 하트관광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프막 기질이 발목을 잡았고, 염보성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프로리그에서는 택뱅리쌍이 부럽지 않았던 활약을 선보였지만, 다양한 판짜기와 전략이 난무하는 개인리그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한때 높이의 박성균이라 불리면서 이영호와 비교되던 박성균마패관광으로만 기억됐지 이영호의 자리를 위협하진 못했다. 테란전에선 이영호와 맞먹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조병세는 테테전을 제외하면 스막수준이며 위너스 결승 역올킬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커리어도 없다. 투스타 레이스나 임요환을 떠올리게 하는 드랍쉽 운용으로 대표되는 유니크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신상문도 한때 이영호를 상대로 상대 전적이 앞설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개인리그는 4강 이상 진출하지 못했다. 역대 테란 본좌들과 비교하면 임요환의 타이밍감각과 전략적 센스, 이윤열의 천재성과 버금가는 두뇌회전과 상황판단, 최연성의 수싸움과 빌드짜기, 방어능력을 갖췄으며, 커리어의 제왕이었던 이윤열이 타고난 천재라면 이영호는 그야말로 승리의 여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영호의 스타일 하면 '반땅 싸움, 터렛 도배, 200싸움' 혹은 '전진 배럭, 벙커링, 꼼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런 경기들이 주로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생긴 고정관념에 가깝다. 저런식의 소위 '말려 죽이는' 운영은 우선 경기 시간부터 길기 때문에 기억에 잘 남으며, 무엇보다 상대도 일정 이상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로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나와서 더욱 잘 기억되게 된다. 대표적인 경기가 김명운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전설의 108 터렛이나, 탱크로 김윤환목동저그를 녹여버린 경기, 혹은 의도적으로 반땅 싸움 하기 어렵게 만든 단장의 능선에서조차 서플라이 디포만리장성을 쳐서 반땅 싸움을 강제한 진영화와의 결승전 등이 있다.[1]

vs 김명운.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 16강전

vs 김윤환. 2009 EVER 스타리그 4강전 3경기

실제로 대규모 후반 운용 능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대여섯부대 이상의 전투 병력을 컨트롤하면서 본진에서 생산도 쉬지 않고 하는 걸 보면 어지간한 유저들은 기가 질려 버릴 정도. 많은 선수들이 마이크로 컨트롤에는 능해도 병력이 불어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병력을 조금씩 흘리거나 비효율적인 운용·전투가 여기저기서 보이게 마련인데, 이영호는 그런게 거의 없다. 맵 전체를 보는 시야가 매우 넓으며, 단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이 최대의 전투 효율을 이끌어낸다. 특히 후반부에 scv 관리를 굉장히 잘 하기로도 유명한데, 이영호의 VOD나 리플레이를 끝까지 잘 보면 멀티를 4~6개씩 먹고 대규모 반땅 싸움을 가는 상황에도 단 1,2기라도 놀고 있는 일꾼이 거의 없으며 각 멀티마다 최적의 일꾼 수만을 배치한다. 의외로 APM은 다른 정상급 테란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지는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운용 능력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헛손질이 적고 효율적인 운영을 한다는 뜻.

허나 그런 반땅 싸움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후반 운영은 그가 잘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 벤젠에서 다수의 드랍쉽-벌처 플레이로 장윤철을 압살한 경기나, 포트리스에서 그야말로 양아치 테란의 진수를 보여주며(심지어 포트리스는 양아치 테란을 하기에 적합한 맵도 아니다) 도재욱을 농락한 경기, 혹은 고전적인 SK테란으로 마메울트라리스크를 녹인 문성진과의 경기 등을 보면 한 마디로 다른 것도 다 잘한다. 그것도 최고 수준으로.

각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그 중에서도 이영호의 진정한 트레이드마크는 감각과 눈치, 판단력이다. 사실 상술되어있듯이 각 스타일을 나누었을때 부분마다 그것에 근접한 선수가 있다고 봤을때 이부분이야 말로 테란 이영호만의 능력이라고 볼수있다.[2] 귀맵을 의심받을 정도로 황당한 정찰[3][4], 날빌을 포함해 상대의 빌드를 눈치채는 능력,상대 유닛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 놀랍도록 정확한 타이밍 감각 등은 경악할 수준.[5] 저그전이나 테란전에서 럴커나 마인이 매복해 있을 위치를 예측하고 바로 앞에서 병력을 멈추고 스캔을 뿌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프로토스전에서도 드랍이나 아비터가 올 만한 루트에 터렛을 정확히 박아두는 것은 기본이며, 이경민 전에서 리콜을 위해 아비터가 대기하고 있던 장소로 베슬이 찾아가서 EMP를 날리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해설자들도 맵핵이니 듀얼 모니터 드립을 치며 어안이 벙벙해했다.

심리전 또한 뛰어나다. 경기 내적인 심리전이라 볼 수 있는 꼼수, 날빌뿐 아니라 외적인 심리전에도 강한데, 애초에 꼼딩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생각해 보자. 송병구를 거하게 낚아 버린 결승전 등 가위바위보 싸움에 매우 능하며, 큰 경기, 다전제에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인다. 급기야는 자신의 강함 그 자체까지도 심리전 요소로 활용하여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가 쫄아버려 소극적, 수비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데, 이는 최연성과도 닮은 점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당장 데이터가 말해준다. 2007년 이래 2012년 기준으로 데뷔 5년차인데, 2012년 1월까지 전적이 통산 트리플 70%였다. 이는 역대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유일한 기록인 동시에 압도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특정 스타일로 승부하는 선수라면 저런 전적이 나오기 힘든 것이, 반드시 그 스타일에 상성적으로 우월한 다른 스타일이나 선수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영호는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것.

다만 이영호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는 만큼 실제 경기 내에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양상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며, 본인 기량과 상관 없이 이건 플레이 스타일로 불릴 만하다. 원팩더블 혹은 원배럭더블 형태로 앞마당을 먹고 초반 압박은 특유의 수비로 버티면서 병력을 부풀린 뒤, 탱크 화력을 기반으로 멀티를 하나하나 늘려 나가고, 마침내는 압도적인 병력을 뽑아내면서 상대를 찍어 눌러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이영호의 플레이 스타일. 보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현재 테란의 가장 정형화된 플레이 스타일인데, 본인 기량 자체가 워낙 탄탄하다 보니 상대가 찌를 틈이 잘 나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느낄 수 있는 인상은 정말 단단하다는 느낌. 특히 정명훈과 함께 레이트메카닉의 형성에 일조한 것처럼 시즈 탱크를 쭉 깔아놓고 만들어내는 이영호의 영역은 뚫기가 쉽지 않다(108터렛이니 쇄국테란이니 하는 별명도 이런 스타일에서 나왔다.). 끝내 자신의 영역을 사수하고 이를 폭발력으로 끌어내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이영호라면'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역전형 경기를 만드는 동력을 스스로 마련한 셈.

이를 기반으로 SK 플래닛 프로 리그 시즌 1에서는 시즌 전승에 도전했으나, 막판에 날카로운 타이밍을 기초로 한 프로토스의 찌르기에 2패를 당하며 무산. 손석희가 인터뷰에서 스캔 타이밍 등까지 분석했다는 말로 보아, 다소 스타일이 굳어가는 인상이 있었다. 이에 본인도 바카닉을 적극 활용하는 등 스타일에 변칙을 주고 이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시도했으나, 이후에는 손목 부상과 병행 등의 문제가 겹치며 경기력이 하락하기 시작해 이전만한 절대 포스는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데뷔 초창기의 마이크로 컨트롤면에서는 의외로 평범, 혹은 안좋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빌드가 강점이라 바이오닉 천재라는 데뷔 초 별명과는 괴리감이 있다. 데뷔 초 난전 상황에서 병력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준 조형근과의 타우크로스 경기나 김정우의 초반 공격에 무너진 대한항공 스타 리그 시즌 1 결승전 3, 4, 5경기, 유닛 컨트롤에 있어서 탑을 달리는 송병구김준영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창 운영 능력이 무르익기 전에는 최강급 메카닉과 난전을 구사하는 최상급 저그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이제동에게서는 2008년에 승리한 경기 중에 무난한 후반 운영에서 승리한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고 메카닉 테란이나 불꽃테란같이 정석에서 살짝 벗어난 경기들이었다. 개인 리그에서도 3저그 조에서 탈락하고 8강에서도 저그에게 탈락하는 등 번번이 저그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전성기가 오고나서는 컨트롤 면에서 발전을 거듭했고, 수읽기가 발전해 초반에 무너지는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또한 벙커링같은 극초반 전략부터 시작해 레이트 메카닉 등 극후반 저그를 상대하는 전략까지 흡수함으로써 완전체로 거듭났다.

그 외에 배틀을 못쓴다 비판받았는데, 배틀로 이긴 경기도 꽤 늘어난 데다 애초에 배틀은 자주 나오는 유닛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잘한다 못한다고 평가하기엔 표본이 부족하다. 애초에 테테전이 배틀 못쓴다고 안되는 종족전도 아니고. 그리고 이영호는 배틀의 대표적 카운터 유닛들인 골리앗이나 레이스를 잘 다룬다. 먼저 배틀 카드를 꺼내든 상대방을 골리앗이나 레이스로 역관광 보낸 경기도 가끔 보이는 편.

도움글: # # ##

1.1 KTF 이적과 이윤열의 수제자설

팬택이 이영호를 연습생으로 데려온 것은 2005년으로, 이때 데려온 선수가 이영호와 박성균, 그리고 전태양이다. 2006년까지 이영호는 팬택의 연습생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연습생은 해당 팀으로 드래프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2007년 초 팬택이 워크 아웃을 선언하여 팀의 존속이 불확실해지자 이영호의 아버지는 KTF측과 접촉하여 계약했고[6], 이영호는 2007년 상반기 신인 드래프트를 포기하고 KTF에 입단했다.

헌데 이전에 협회가 워크 아웃이 선언된 팬택 측을 지원하면서 '팬택 인수 이전에는 이윤열을 포함한 팬택 선수들의 트레이드는 불가능하다'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영호가 예선을 뚫고 온게임넷 스타 리그 듀얼 토너먼트에 출전하며 KTF 소속으로 표기되자 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다른 프로 게임단 측에서 불만을 표시하였고 일시적으로 이영호가 KTF 숙소를 나오고 팬택으로 돌아가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는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택 측은 이영호의 구단 소속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팬택 측에 KTF가 이적료를 지불하고 KTF 매직엔스로의 이적이 합의된다. 이후 이영호는 추천 선수 자격으로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얻었다.이때 이영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KT는 성적 부진으로 프로 리그에서 진작 발을 뺐을지도 모른다!

이후 이영호의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지자 이윤열의 팬들은 이영호의 플레이가 이윤열과 판박이이며 이영호가 이윤열의 수제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고 이영호 본인이 직접적으로 배운 건 거의 없다는 인터뷰를 했다. 굳이 배운 것이라면 센스 정도고 당시에는 아직 자신의 레벨이 떨어져서 배울 게 없었다고. 결정적으로 이영호의 스타일은 오히려 큰 맥과 빌드 조립을 좋아하는 최연성에 가깝다.

그리고 포모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오히려 이윤열 보다는 옆에서 같이 지냈던 김재춘, 한동훈, 김성진에게 많이 배웠다고 하고 이들이 스승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1.2 소년가장

또한 팀인 KTF에서 올드 유저들이 다 나가면서 이영호 혼자 팀을 이끌고 있는 상태였는데, POS 시절 박성준과 팬택 시절 이윤열에 비교될 정도로 혹사당했다. 경기 수로만 따진다면 그때보다 더 심하게 혹사당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소년 가장.

사실 소화한 경기 수만 놓고 보면 이제동, 김택용 등도 이영호보다 못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경우엔 자신을 받쳐줄 수 있는 선수가 여럿 있는 것에 비해 이영호는 언제나 자신밖에 믿을 선수가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프레셔의 정도가 다르다. 자신이 3킬을 해도 남은 1 킬을 할 선수가 없어 팀이 패배하기도 하고, 자신이 날빌이라도 당해 무너지는 날엔 일찌감치 패배가 99% 확정되는 상황이니 말 다 했다.

07 시즌 이후부터 이영호가 패배하고도 팀이 승리한 적은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경기 수가 적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경기수가 많은 현 프로 리그 체제에서 원 맨 팀의 에이스를 담당하는 선수는 통산 승률 7할대의 S급 선수가 아닌 이상 엄청난 혹사로 인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막강한 전력을 가진 화승 OZ와의 위너스 리그 경기에서 올킬을 하기도 했으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팀을 먹여살렸다. 박찬수를 제외한 다른 KTF 선수들은 다들 엎드려 경배해야할 상황이었다.

2008년 6월에 접어들면서부터 과다한 경기 출전으로 인한 피로 누적과 스타일 노출로 점차 패배가 늘었으며, 한동안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양대 백수였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이기 때문에, 이지훈 감독과의 오랜 상담 끝에 김준영 등에게 당한 패배는 운이 없어서일 뿐이라고 결론짓고 팀의 에이스로서 프로 리그에 매진하였다. 이렇게 양대 백수가 된 직후에 KTF가 MBC 게임에게 승리하면서 마무리 1승을 올린 이영호도 인터뷰를 했는데(2009년 2월 21일)... 이 때 인터뷰 내용이 정말 잔잔한 감동... 이라기 보다는 안습한 내용이라서 뭇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개인 리그에서 떨어졌지만 환경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 탓이라고 하며 미련없이 프로 리그에 집중하겠다는 어른스러운 멘트는 참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특히 "내가 더 열심히 프로 리그를 준비해서 (박)찬수 형이 나처럼 되지 않도록 하겠다(웃음)"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박찬수그딴 짓이나 저질렀으니 이 때 이런 인터뷰를 했던 이영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와 같은 개념 인터뷰 때문에 착한 소년 가장의 이미지가 더욱 커져서, 원래는 안티였던 사람들도 못 까겠다 혹은 팬이 되겠다고 하는 경우가 속속 증가하였다.

참고로 네이버에 소년 가장을 치면 소년 가장 이영호, 이영호 소년 가장이 자동 완성으로 따라 붙는다. 게다가 이영호를 치면 이영호 연봉, 이영호 소년 가장, 이영호 인간극장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스타랑은 상관도 없는 축구 칼럼에서조차 비교 사례로서 이영호가 언급됐다. 그의 소년 가장 이미지가 점점 확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던 대목.

몇몇 뉴비들은 낚여서 지식 in에 이영호 선수 '정말 소년 가장인가요?' 하는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멀쩡히 살아 계신 이영호의 부모님 지못미...

박지수안상원의 KTF 이적, 고강민박찬수의 상승세 등을 고려하면 소년 가장 처지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커 보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가 이후 우정호의 뜬금없는 각성과 함께 처지가 조금 나아지긴 했다. 박카스 스타 리그 2008 우승 당시의 이영호는 결승에서 송병구를 3연속 타이밍러쉬로 30분도 안되는 시간에 끝내버렸고 2007 다음 스타리그 8강 때 붙은 꼼딩이라는 별명이 정착됐다.

2010년 NATE MSL 4강에서 한상봉을 상대로 2연벙을 시전 꼼딩의 부활을 알렸다. 2010년 5월 13일 하나대투증권 MSL 4강에서 윤용태를 상대로 또한번 2연벙을 시전 지못미 뇌룡 하며 2연속 4강 2연벙합치면 4번을 하며 그분의 직계 후계자가 자신임을 알렸다.

09-10 시즌의 위너스리그에서는 완전히 그의 세계였다. 다른 팀이라면 모를까, KT는 0:3으로 밀리고 있어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는 위너스 리그의 방식에 가장 부합되는 사고를 팬들이 믿게끔 하는 것도...다 이영호가 있었기 때문.
09-10 위너스 리그 결승전 대장 등장신... 등장신부터가 완벽하게 이영호의, 이영호를 위한, 이영호에 의한 결승전임을 모두에게 알리고, 또 알렸다.

결국 KT는 위너스 리그는 물론이고 정규 시즌 1위에 광안리에서 감동의 우승을 이뤄내며, 진정한 통합 우승을 석권하며 이영호에게 더이상 소년 가장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게 되었...어야 했지만...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시즌에서 7전 4선승제로의 변경 및 주전급 선수들의 몰락으로 인해 다시 소년 가장 체제로 돌입했다. 그리고 2011년을 기준으로 이영호의 나이는 20대로 진입, 이제동과 같은 청년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동안의 혹사 탓일까, 위너스 리그 개막전인 2011년 1월 8일, 팀이 1:3 스코어로 밀리고 있었을때 이영호가 출전해 기적의 역3킬을 달성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후에 이영호와의 인터뷰에서 팔 부상으로 인해 제 컨디션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팬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의사의 말로는 더 악화되지 않으려면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니 생각보다 상태가 안좋은 모양이다. 굳이 게임을 계속 하려면 스트레칭을 잘 해야 한다고 하며 이영호의 이모부가 물리치료기까지 갖다준 상태다. 이로 인해 팬들은 이영호가 최연성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닌지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7]

2011년 3월 12일, 2011 MSL에서 서바이버 토너먼트을 돌파하고 32강에 진출한 후, 인터뷰를 가졌을때 자신의 팔목 부상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다행히 팔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엑스레이로 촬영했는데도 이상이 없었다지만 꾸준히 스트레칭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KT스포츠단에 재활치료시설이 있다는데 많은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무사히 완치될 듯 싶다. 기사
이후 정밀검사에서 근육이상이 발견되었고 2011년 9월 19일 건국대학교 병원에서 약 두 시간 정도 오른쪽 팔 쪽의 신경감압술 수술을 받았다.

2 스타크래프트 2

물량과 최적화의 달인. 하지만 변화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해 커리어를 마감.

2.1 자유의 날개

이영호의 스타크래프트 2 플레이 스타일은 운영형 중에서도 극 운영형으로 손꼽힌다. 이는 병행 시즌부터 보인 것으로 이영호의 스타 2 첫 경기였던 김정우 전에서도 견제없이 무리하게 부유한 플레이를 하다 패배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무작정 트리플만 먹고 본다’는 의미인 ‘꼼리플’이란 단어가 나왔을 정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운영법과 최적화를 갖추어 나갔는데 그 증거가 옥션 스타리그 2012에서 장민철을 비롯한 3명의 토스를 모두 이기고 조 1위로 진출하는 성과다. 이때 한규종 코치는 래더에서도 트리플에 컨트롤과 생산력 단계를 밟아나가 상대를 잡아내기에 ‘영호는 불가사의하다.’고 평했고 엄재경 해설은 브루드 워에서 하던대로 하면 자유의 날개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영호는 되게끔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는 포장을 감안해야 하는 것으로 협회 참전 이전부터 윤영서를 비롯해 이미 스타크래프트 2의 테란들은 기본적으로 트리플을 이용해 그 자원력을 바탕으로 회전력을 중시한 운영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마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이영호 특유의 최적화로 인해 트리플을 가져간 속도는 차이가 없으면서 다른 테란 선수들에 비해 물량이 폭발하는 시기가 빠르다는 것인데 이는 초반을 무리없이 넘기게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후반으로 끌고 가야 할 토스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는 원병영 더블보다 아예 생더블 후 트리플 속도를 약간 늦춰 더욱 최적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영호가 승리한 경기를 위주로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자원위주 운영을 뒷받침하는 자원최적화와 적절한 타이밍에 생산건물을 늘리는 빌드 구축 능력, 그리고 대량의 물량을 뽑아내는 생산력, 그리고 이 대규모 병력을 통제하는 매크로 능력은 거의 이영호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는 테프전에서의 강세로 나타나는데, 이영호는 엄청난 속도로 200을 채워버리면서 끊임없는 소모전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마치 스타 1의 저프전처럼 처음 몇 번은 프로토스가 이길지라도 서서히 갖춰진 조합이 깨지면서 쑥 밀려버린다.

반면 단점을 살펴보면 먼저 기초적인 산개 컨트롤이 부족했다. 대규모 군단의 통솔 능력은 뛰어나지만 감염충을 상대할 때와 같이 반드시 산개 마이크로 컨트롤이 필요한 상황에서 산개를 전혀 하지 않아 진균을 그대로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이고[8] 또한 중후반 운영에서도 시야가 좁아 그 물량을 오로지 중앙회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VS 김동원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유리한 상황에서 견제가 전혀 없는 것과 상대의 견제에 이리저리 쉽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이영호가 최상위권으로 발돋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고집은 좋지만 스 2 테란은 날카로운 견제와 재빠른 치고 빠지기가 없이는 절대 최상위권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항상 1승만 더 하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연패하는 멘탈 문제와 자원 확보에 집중된 좁은 빌드 선택폭까지 지적받고 있다.

다만 2013년 2월 27일 진행된 코드 A 24강전에서는, 많은 시청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정윤종을 다방향 의료선 견제로 압살해 버렸다. 이영호가 다방향 견제도 가능한 선수임을 보여 준 경기. 다만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군단의 심장으로 전환되고 이후 이영호가 다시는 이런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탓에 아쉬운 경기가 되어버렸다.

2.2 군단의 심장

자유의 날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극 운영형에 속한다. 이기는 패턴을 볼때 주로 트리플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에 트리플이 안정화되면 그 최적화된 트리플을 바탕으로 물량 생산을 통해 상대방을 물량으로 찍어누르는 패턴으로 주로 가고있으며, 물량 생산 능력은 수많은 프로게이머 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능력은 여전하다.

실제로 군단의 심장으로 전환하면서 땅거미 지뢰가 등장해 이영호식 트리플 운영은 날개를 단 호랑이가 되었다. 2013 WCS Korea Season 1, MANGOSIX GSL 32강에서 최종혁, 김민철을 마이오닉 조합을 통해 저그들을 힘으로 밀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경기력을 보여 주며 16강에 진출한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다. 즉, 이영호의 운영이 더욱 탄탄해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컨트롤적인 부분은 완벽히 보완에 성공해 더 이상 교전에서 허무하게 병력을 잃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고 무작정 의미없는 회전력 싸움을 하기보다 내가 당한만큼 상대에게도 준다는 개념으로 반반 싸움을 유도해내 회전력을 극대화시켰다.

문제는 남은 단점 하나가 크게 부각되었는데 트리플 운영 완성 전의 타이밍을 노리는 올인 러쉬에 거의 대부분 맥없이 무너지는 것이 고쳐지긴커녕 더욱 심해졌다. 4월 달 프로리그 패배의 원인이 초반 찌르기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7월 중순의 스타리그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 굳이 찾아볼 필요 없이 2013년까지의 신 리쌍록의 비공식전 포함 전적은 11:6의 더블 스코어로 이영호가 절대 열세에 놓여 있는데, 패배의 대부분은 더블링, 바링링 등의 초반 찌르기를 막지 못해 맥없이 무너지는 양상을 보였고 2013 WCS Korea Season 1, MANGOSIX GSL 16강 탈락의 원인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스타1 시기에 보여주었던 눈치는 여전히 보여주지 않고있으며, 산개 컨트롤이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 개선해야할 점이 보이며, 빌드의 고착화등이 여전히 문제시되는 상황이 놓여져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스 2로 전환되면서 짜 온 대로 경기가 풀리면 운영의 마법사, 그렇지 못하면 운영의 맙소사가 되는 박태민과 비슷해지는 듯. 어쩐지! 박태민이 그렇게 이영호의 자 세팅을 좋아하더니... 스 1 시절처럼 정상의 자리에 서고자 한다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

군단의 심장이 마무리되고, 이영호의 은퇴 시점에서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자면 이영호의 생산력만큼은 원탑의 자리를 노려본 적 있던 다른 어떤 테란과 비교해봐도 대등했다.

심지어 이신형, 조성주, 최지성과 비교해도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생산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최적화 능력은 테란 중에 최상위 수준으로 좋기 때문에 자원을 거의 남기지 않고 딱딱 시간 맞춰서 건물을 짓고 병력과 일꾼을 생산하는 덕에 트리플은 비스무리하게 가져가더라도 멀티의 활성화 속도가 남들보다 더 빨라서 상대하는 입장에서 대비하는 타이밍이 몇 박자씩 늦게 되어서 이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빠른 자원 수집 → 생산의 단계에서 이영호를 능가하는 선수는 꼽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호에게 맞는 트렌드, 즉, 테란이 운영하기 좋고 초반을 무난히 넘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이영호는 무섭게 강해진다. 2013년 MANGOSIX GSL에서 이 대회 우승자인 김민철을 마이오닉 물량의 회전력으로 압살해버린 경기, 2014년 지독한 슬럼프에서 탈출하여 한순간에 '갓'으로 만들어줬던 IEM Season Ⅸ - Toronto, 2015년 테란의 대 토스전 트렌드가 빠른 트리플로 바뀌자 올해의 토스로 꼽히던 김준호3라운드, 4라운드 연속 빠른 트리플로 찍어 눌렀던 경기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이영호에게 이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가 트리플을 먹기 전의 타이밍을 노린다면 보통 이하의 테란이 되고 만다. 교전 컨트롤이 좋은 것도 아니고 견제를 열심히 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대의 노림수를 파악하는 면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또 상대를 심리전으로 흔드는 것도 없다.

결국, 이영호의 최대 단점은 장점을 뒤집으면 된다.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한다. 트렌드를 만들어내는거야 거의 그것만으로도 레전드의 반열에 오를 법한 선수들이나 하는 것이지만, 이영호는 트렌드가 바뀌면 거기에 적응하는 속도가 다른 게이머에 비교하면 너무 느렸다. 아니,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이영호의 플레이 스타일은 기본 시작 빌드만 살짝 바뀌었을 뿐, 스타 2 전환 이후부터 거의 바뀐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이영호는 극단적인 슬럼프와 반짝 강세를 동시에 보여줬다. 2013 MLG Winter Championship을 기점으로 저그전 승률 원탑부터 혐산당들에게는 테란 원탑으로까지 추앙받다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을 16강 탈락을 시작으로 드림핵 부쿠레슈티에서 32강[9], IEM VIII New York에서 16강 탈락, 그러니까 토너먼트는 가보지도 못하고 다 떨어졌고 2014년에는 예선행만 2시즌, 그러나 버프먹자마자 2014 KeSPA Cup 4강과 IEM 우승을 보여주는 등 원래 스타 2가 굴곡이 심하지만 이영호는 특히나 더 심했다.

거기다 플레이 스타일이 몇년째 고정이 되고 한번 삘이 꽂히는 빌드가 있으면 그 빌드만 죽어라 쓰니 한번 반등을 해도 얼마 안가 파해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가더라도 그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듭된 양대리그 다전제 무패(…)와 티어 대회조차 최고 성적이 2티어 우승 1회, 1티어 준우승 1회이다.

그런데 슬럼프는 오래 갔다. 일단 스타2란 게임부터가 스1때부터 보여주던 이영호식 운영에 맞는 환경이 아니였고, 계속 파해된 스타일을 유지해나가니 파면 팔수록 약점이 나오고 설상가상으로 군단의 심장이 날이 갈수록 공격성이 중시되면서 무난히 후반간다는 전제가 성립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 저그전, 토스전을 상대하는 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소위 시소놀이가 심각했다. 군심 초에는 아직 발전이 덜 되어서 둘다 정면 힘싸움에 치중했던 때라 잘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토스전을 3베이스 치즈러쉬로 재미 좀 보나 싶더니 저그전에서 망하고 저그전 메카닉으로 다시 살아나나 싶더니 토스전 초반 공세를 못 버텨서 망하고(…) 이제는 저그전, 토스전을 보완하니 테란전에서 발목을 잡고(...) 그래서 반등하고도 꼭 어느 한 종족전이 불안하단 소리가 나오고 그게 곧 슬럼프로 이어졌다.

이는 군단의 심장 마지막 해를 커리어 로우는 물론이고 오만가지 굴욕을 다 당했던 최악의 해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짓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프로토스는 어떻게든 테란과 무난한 중반 싸움을 피하기 위해 미친듯이 초반을 파고 들었고 저그 또한 바이오닉은 2베이스 뮤링링으로 조였으며 메카닉이 재발견되고 나서도 빠른 시일 내로 초반 파해법을 발견해 그냥 트리플을 주는 일은 없었다.
이러면 스타일을 어떻게든 바꿔나가면서 트렌드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이영호는 그게 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문제될거라 여겼지만 대다수 팬들이 그보다는 밸런스의 문제,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생각했고 IEM 토론토까진 그게 맞는듯 했으나 2015년 결국 쌓이고 쌓인게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연패로 다가왔다.

결국 은퇴로 인하여 공허의 유산에서는 그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3 종족을 바꿨다면?

2014년부터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이른바 종변 떡밥. 예컨대 이영호의 수비적이고 중후반 운영 지향적인 면은 테란과 맞지 않으니 다른 종족으로 변경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보기엔 이뭐병스럽겠지만 이 주제는 이영호에 관련된 떡밥 중에서 가장 자주 오르내리던 떡밥이었다. 애초에 이영호는 스타 2로 전환되자 프로토스를 하려고 했고 그걸 막은게 이지훈 前 KT 감독이었다고 할 정도로 선수 본인도 프로토스를 맞다고 여겼고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이영호가 잘하던 시절에는 아무래도 이런 떡밥에 신경쓰기보다 이번에 우승하나 못하나로 싸우기 바쁘다보니 없었는데 2014년 연이은 예선행과 테란에서 프로토스로 바꾸자마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김도우 때문에 확 떠올랐다.

사실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등 각종 스타 커뮤니티에서 이영호의 위상을 생각하면 꽤 흥미로운 떡밥이기도 해서 여러 가지 말말말이 많이 나온 떡밥이기도 하다. 테란에 있어서는 이영호같은 스타일이 희귀종이기도 하고[10] 테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떡밥이었다.

우선 분명히 해두자면 확언할 순 없다. 김도우, 김준호에 의해서 프로토스 쪽으로 많이 가닥을 잡지만 스타 2 병행 때 많은 선수들이 종족 변경을 했고 특히 프로토스로 전환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 중에 유이하게 살아남은 선수가 저 둘이다. 두 선수의 종족 변경 전 플레이 스타일을 프로토스와 가깝게 여긴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대강 '추측'을 해볼 때 부정적으로 보자면 종족 변경을 한다고 해도 할 종족이 없다. 이에는 크게 첫째로 프로토스의 경우 생산력과 최적화의 장점을 살리기 힘들고, 저그의 경우 상대의 노림수와 심리전으로부터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영호의 플레이 스타일은 얼핏 보면 프로토스가 어울릴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병행할 즈음의 말이다. 확실히 병행 시즌이던 2012년 중반 프로토스는 정파라 불리는 수비형 프로토스가 대세이긴 했다. 단기 포스 최강이라 불리던 정윤종, 단단한 수비로 알려진 박현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자유의 날개 말부터 이미 정파 프로토스들의 위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박현우는 끝도 없이 부진하고 정윤종도 그 강력한 포스를 되살리지 못했으며[11] 자유의 날개 마지막 두 시즌동안 8강 이상 간 프로토스가 장민철, 원이삭, 장현우인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저그전에 수비적으로만 하기엔 무감타가 무섭고 테란전은 그보다 더 심해서 승률이 엄청 기울어버린 때가 바로 이 시기다.

거기다 군단의 심장으로 넘어와서는 프로토스는 더 이상 수비만 하면 안되는 종족으로 바뀌었다. 김유진 같은 극 사파 프로토스는 물론 김도우, 김준호, 백동준, 정윤종 다들 정상에 오르기까지 공수 일체의 면모를 보였기에 가능했다.
특히 정윤종은 2013년 정파 토스의 한계를 보이고 난 후 GSL 우승까지 인고의 시간 끝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사파 성향을 탑재했고 그 덕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이영호가 프로토스로 종변하면 그동안 안되던 트렌드 적응이 된다? 될 수도 있지만 안 될 확률이 더 크다.
그리고 이영호의 최대 무기인 생산력과 최적화를 써먹고 싶어도 못써먹는다. 연결체의 시간 증폭부터가 마나 되는대로 쓰기보다는 서로 상황을 봐가며 쓰는 것이고 테란과 달리 생산 여건이 간편한데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거기에 맞는 빌드를 쓰고 운영에선 견제를 막는걸 넘어 아예 먼저 때리는게 대세가 됐으며 최대한 정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멀티태스킹을 더 우선시한다. 즉, 예전처럼 수비형 프로토스가 환영받는 시절은 일찌감치 떠나고 없다.
공허의 유산으로 넘어온 현재 토스를 수비 지향형으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수비형 운영의 핵심인 거신은 완벽히 관짝에 들어가고 말았으며, 사도와 분열기, 테란의 해방선, 저그의 가시지옥과 궤멸충으로 대표되는 신유닛들은 토스 유저들로 하여금 더욱더 공격 지향형 운영과 마이크로 컨트롤, 멀티테스킹을 강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비형 운영을 고집하는 것은 테란과 저그에게 대놓고 나 죽여줍쇼 하는 거나 같다.

그렇다면 남는 건 저그인데 사실 이영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에는 저그가 딱이기도 하다. 생산성, 최적화 모두 좋은 편이고 손빠른 선수들이 자주 보여주는 맵을 뒤덮는 점막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단점도 극대화된다는 것. 저그란 종족은 태생부터가 상대방에게 한번 주도권을 넘겨주고 시작한다. 그럼 우선은 상대의 공격을 한번 막고 시작해야 하는 것인데 이영호가 이런 심리전 단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나마 테란이 수비적인 면에서는 상대의 올인을 막을만한 여건이 조금이라도 마련되는 종족이지만 저그는 정말 상대방의 수를 꿰뚫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종족이다. 그 대신으로 정찰 능력이 테란보다 월등히 좋지만 정찰력을 제대로 써먹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

고로 프로토스든 저그든 이영호가 종변하기에 마땅찮은 종족이 없다. 저그야 말할 것도 없고 스1 테란의 컨셉을 스2 토스가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스2 토스는 수비적인 것보다는 열심히 상대방을 두들기는 쪽으로 선회한데다 생산력이나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어서 이제 와서 프로토스 종변 떡밥 던지는 건 혐산당으로 위장한 까일 가능성이 오히려 높을 정도다. 애초에 팬이면 현 프로토스의 세태를 아는 이상 종변 떡밥을 던지기가 쉽지 않으니.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하긴 했다. 이영호의 꼼리플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테란의 부족한 후반 능력을 커버하기 위한 것이고 굳이 종변하고 나서도 계속 트리플을 욕심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일리는 있는 말이다. 빠른 트리플 이후에 쥐어짜내는 식의 운영은 테란이 아니면 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좀더 후반에 여유가 있는 종족을 하게 된다면 바뀔 여지는 충분히 있다.
또한 이영호의 스1 시절을 생각하면 장점이 꼭 생산성과 최적화에만 치우쳐질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프로토스로 바뀌게 된다면 기존의 장점을 버리더라도 새 옷을 입는데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영호의 스타크래프트 2 커리어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며 나름대로의 입지를 쌓아올렸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입지를 쌓아올리기 위해서 종족을 바꾼다는 것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알 수는 없다. 만약이란 걸 붙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으니. 이제 와서는 긍정적인 입장도 부정적인 입장도 그저 안주거리 정도로나 여기지만 이영호의 화제성을 새삼 실감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영호의 은퇴로 이제 종변 떡밥은 영원히 사라질 듯.
  1. 그런데 이영호의 이런 플레이 덕분에 이후에 나오는 맵들은 테란이 반땅은 커녕 트리플 이후의 멀티 먹기도 어렵게 설계된 것이 많다. 물론 이영호는 트리플 최적화 등을 통해 이를 극복했지만 이영호 외에는 정명훈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테란 선수들은 죽어나갔다.
  2. 마재윤시대를 시작으로 종종 볼수있는 특기분야(?)인데 이영호만큼 눈에띄었던 선수는 없었다.
  3. 실제로 이재호의 전진 배럭을 SCV유 턴해서 발견하는 바람에 귀맵 논란이 일어났고 '최종병'등의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전의 귀맵 논란들에 비해 당시의 함성 소리는 그다지 크지도 않았으며, 이전에도 장윤철전진 게이트를 극초반에 발견하는 등 놀라운 정찰력을 선보인 바가 많다고 하며, 비판하는 측에서는 아무리 눈치가 쩔어도 어떻게 유 턴을 하냐? 그렇게 함성이 작은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4. 그러나 온게임넷 타임 머신의 경우 환경음으로 스타크래프트 배경 음악을 타임 머신이 울릴 정도로 크게 틀어준다. MBC GAME이나 다른 스튜디오의 경우 해설 소리가 약간 들려 실제로도 듣고 플레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온게임넷은 해설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며 진에어 스타리그 4강 정도는 되어야 함성이 들린다고 한다. 허나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시즌의 경우 하태기 감독이 직접 이의를 제기해 논란이 일었던 이재호전에서는 상대편인 이재호도 함성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정황을 볼 때 이영호 역시 함성을 들었을 확률이 높다.
  5. 물론 처음부터 이 정도로 강했던 것은 아니며, 날빌 혹은 쇼부로 무너진 경기도 적지 않기에 집중적으로 연습했는지 2012년의 첫 김정우 전에서는 정찰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 저글링 러쉬를 막아냈다.
  6. 중학생이었던 이영호는 제도상으로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다.
  7. 최연성은 2008년 1월, 샤워중 손목에 큰 부상을 입어 결국 프로게이머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도 손목 부상 등으로 심하게 부진하거나 최악의 경우엔 은퇴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8. 실제로 2013 HOT6 GSL Season 1 코드 A 1차전 승리 후 이영호 본인이 방송 경기에서 연습만큼 마이크로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다 밝힌 바 있다. 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9. 그 유명한 드미트로 플립척에게 감군 10기에 관광당한 경기가 여기서 나왔다.
  10. 당장 비슷한 선수가 최지성 말곤 없으니.
  11. 당장 그 포스를 금가게 한 선수 중 하나가 테란 이영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