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주의 / 自由意志主義 / Libertarianism
1 개요
Libertarianis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간의 문제에 관련되어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전자는 형이상학적 의미이며, 후자는 사회철학, 정치철학적 의미이다.[1] 전자는 자유주의자, 자유의지론자라고 번역되며, 후자는 자유의지론자, 자유지상주의자, 자유지상론자라고도 번역된다. 이 항목에서는 이 단어에 대한 사회철학적 의미를 먼저 설명한다.
2 정치철학적 의미의 리버테리어니즘
자유의지주의는 모든 정부의 권위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상을 지칭하며 자유지상주의라고도 불린다. 이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자유의지주의자(Libertarian, 리버테리언)라고 불린다.
자유의지주의는 자유지상주의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자유를 극도로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자유지상주의에,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최선으로 한다는 측면에서는 자유의지주의에 모두 해당한다. 종종 자유주의와 혼동해서 사용되기도 하며, 일본어와 중국어에서도 동일하게 쓰이나 때로는 자유주의와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일본어로 완전자유주의(完全自由主義), 중국어로 자유인주의(自由人主義), 방임자유주의(放任自由主義)로도 번역된다. 2013년에는 경희대 철학과 정연교 교수가 '자유지선주의'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개인의 개인에 대한 완전한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개인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도 무한정 존중받아야된다는 주장이다.
무정부주의와도 공통점이 많고 실제로 무정부주의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기에 리버테리언이면서 무정부주의자인 사람도 있다.
유명한 리버테리언인 론폴도 인터뷰에서 무정부주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제 3당 자유당[2]은 정확히는 이걸 모토로 하는 당이다. 그외에 2015년까지 공화당에 소속해 있던 론 폴이 있다.
미국에만 있는 것으로 오인하기는 쉽지만 사실 미국처럼 극성이진 않다 하더라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부류는 유럽에도 적지 않다. 주로 이들은 리버럴이라 불리곤 하는데, 정작 미국에서 리버럴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비슷한 포지션을 취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3 이론
3.1 인간론
자유의지주의자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 모든 자유는 제한없이 행사될 수 있으며 누군가가 제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하며 법도 그것의 일종이다. 가령 언론의 자유를 예로 들자면, 당신은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모욕을 할 수 있지만, 그가 그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이유로 소송을 거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즉 자유를 행사하는 행위는 막지 않겠지만 자신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 그리고 이 행동들은 자신의 건전한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릴 때 그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을 물리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로 인해 극장주인과 관객들이 피해를 입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을 감안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를 넘어서 이를 형사재판으로 끌고가는 것, 즉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결과를 국가나 공동체가 당사자를 대신해 부담지게 하는 것은 자유지상주의에 있어서는 부정된다.[3]
3.1.1 자연권
자연권 이론은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자유지상주의자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철학적 기초로 받아들였던 사상이다. '자연권'은 역사적으로 자연법 사상이라는 더 포괄적인 사유체계의 정치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자연법 이론은 다음과 같은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 이상의 다양한 독립체로 구성된 세계에 살고 있고, 각각의 독립체는 다른 독립체와 구분되는 특유의 속성, 즉 '본질'을 갖고 있으며, 그 본질은 인간의 이성, 지각 및 정신 능력에 의해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리는 다른 금속과 구별되는 속성이 있어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철이나 석탄도 본연의 속성과 역할이 있다. 인간이라는 종 또한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 가능한 속성이 있다. 이에 더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계 및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에서 나타나는 구별 가능한 속성도 있다. 조금 지나치게 축약하여 말한다면, 모든 무기체와 유기체는 그것에 고유한 자연적 속성과 그것이 접촉하는 다른 독립체의 자연적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 식물이나 하등동물의 경우, 각자는 생물학적 특질 즉 '본능'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인간은 이와 달리 목적을 선택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스스로 마련하는 특질을 타고났다. 인간은 외부환경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본능을 갖고 있지 않아서, 각자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하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활용하여 가치관을 선택해야 하고, 원인과 결과를 판단해야 하고, 자신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목표 지향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평가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개인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각자가 자유롭게 배우고, 선택하고, 소질을 계발하고, 자신의 지식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각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된다. 자유지상주의에 따르면 이것이 인간 본성에 맞는 길이다.
누군가 폭력을 사용하여 이 과정을 방해하거나 저지른다면 그것은 곧 인간 속성에 의해 추구하는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배움과 선택을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매우 '반인간적'인 처사이며 인간의 욕구에 관한 자연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3.2 비침해성의 공리
자유지상주의 신조는 하나의 핵심적 공리에 의존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신체 또는 재산을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서 '비침해성의 공리'(Non-Aggression Principle)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침해'(Aggression)는 타인의 신체나 재산에 대하여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로 정의되며 공격(Invasion)과 유사한 뜻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면,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절대적 권리를 갖는다면, 이는 당연히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민의 자유'를 확고하게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시민적 자유는 개개인의 정신적 자유권인 언론, 출판 및 결사의 자유는 물론이고, 포르노나 변태적 성행위, 그리고 매춘과 같이 '피해자 없는 범죄'를 행할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한다.[4] 이와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징병제를 대규모 노예제도로 간주하며, 국가 간의 전쟁 특히 현대전과 같이 무고한 시민의 대량 살상을 유발하는 전쟁은 명백한 부당 행위로 간주한다.
3.3 사유재산권
자유주의자(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리버럴들)들[5]이나 사회주의자 같은 좌파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개인의 자유는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개인 간의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섹스와 같은 개인적 '거래'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자기소유권은 철저히 옹호하지만, '물질적 재화'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은 부정한다. 즉,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는 '인권'은 철저히 지지하지만 '사유재산권'은 거부[6]하는 이분법적 입장을 취한다. 이에 비해 자유지상주의자는 인권과 사유재산권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분리할 수 없다고 보기에 이 둘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자들은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인간적' 권리로 생각하여 강력히 옹호하지만, 정부가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 각 개인의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적' 권리가 어떻게 행사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정부가 모든 언론 매체와 인쇄소를 소유한다면,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만약 정부가 모든 언론 매체를 소유한다면, 필연적으로 모든 언론 매체를 운영하고 배정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갖게 된다. 따라서 만약 정부가 자신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 매체의 사용을 제한한다면, 그 매체와 관련된 특정 국민의 '언론의 자유'는 한낱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릴 것이다. 또한, 정부 임의대로 부족한 예산을 여러 언론 매체에 배분하는 과정에서, 소수파 또는 소위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사회주의자들의 언론의 자유는 매우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정부가 모든 집회 장소를 소유하고 정부정책에 동조하는 집단에게만 그 장소의 사용을 허가한다면, '표현의 자유' 역시 언론의 자유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인권'과 '사유재산권'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초현실적인 추상적 존재로 취급하는 것처럼 심각한 오류이다. 인간이 자기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에 자신의 노동을 결합해 유용한 재화로 변환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또한 자신이 거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토지 및 자원 또한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인권', 즉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계속 보장받으려면 물질세계에서 자신이 생산한 재화에 대한 소유권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유재산권은 '사실상' 인권과 같다. 그리고 좌파들이 그토록 힘을 쏟고 있는 바로 그 인권이 보장되려면 필수적으로 사유재산권 보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자유지상주의의 자유관이 존 로크의 자유관을 철학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 매체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권리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7]
자유지선주의에서는 해당 문제에 대해서 노직의 해석과 로스바드의 해석이 나뉜다. 노직은 이를 “다른 사람들의 처지가 나로 인해 더 나빠지지 않을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Nozick 1974, 174-182) 로스바드 역시 최초 취득을 설명하기 위해 로크를 이용한다. 그러나 노직과 달리 단서를 달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 본인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자신의 몸을 써서 한 노동, 손으로 한 일 모두가 그의 소유이다. 따라서 그가 자연적으로 제공된 것을 그 상태에서 빼내어 자신의 노동을 섞은 후, 즉 자신에 속하는 어떤 것과 결합시킨 후 다시 돌려놓게 되면 그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 그의 소유가 된다. 로스바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크루소 경제”를 활용한다. 모두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는 것이다. 만약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혼자 남겨졌다면, 우리도 그와 같이 주변의 자원을 활용해서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의 원형이다.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생산이다. 따라서 생존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부인하지 못한다. 로스바드는 더 강력한 논거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생산한 것을 소유하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생산한 것을 소유하는 것은 ‘자연스런 사실’(natural fact)이기 때문이다.(Rothbard 1982, 34) 예를 들어, 크루소가 무소유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움막을 만들고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래도 사람들은 움막이 그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사용하기 전에 그의 허락을 구할 것이다. 설사 그가 움막을 방치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가 “움막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고 밝히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생산하는 행위가 이미 소유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에는 소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8]
3.4 국가론
기본적으로 리버테리어니즘은 무정부주의를 기반으로한다. 그러나 일반대중에는 최소국가주의가 리버테리어니즘의 정치적 목표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는데, 리버테리어니즘이 추구하는 완전한 사유재산권의 보장과 자유시장의 구현이라는 가치하에서는 정부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로버트 노직으로 대표되는 최소국가주의계통 리버테리어니즘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퍼진 것이다.[9]
자유지상주의 사상의 요체는 개인의 신체 및 그 개인이 자발적으로 획득한 사물에 대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다. 개별 범죄자와 범죄 집단도 당연히 거부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자유지상주의 신념이 여타 사상과 특별히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어느 사상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개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무작위적 폭력 행사를 용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행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편적 견해에 대해서도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 강조점이 다르다. 자유지상주의 사회에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데도 실재하지도 않는 '사회'의 이름으로 가해자를 기소하는 '검찰'이 없다. 고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피해자 자신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야기지만, 더 나아가 자유지상주의 세계에서는 피해자가 검사에게 기소를 요청하지 않고도 잘못된 사람에 대해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자유지상주의 형벌 체계에서 주안점은 '사회'로 하여금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 피해자에게 합당한 배상을 하도록 강제하는 데 있다. 이에 비해 현행제도는 피해 보상은커녕 가해자를 감금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피해자가 세금 형식으로 더 부담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는 재산권 보장을 근간으로 피해자를 배려하는 자유지상주의 세계에서는 분명 말이 안 되는 제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평화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간섭하는 현행제도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평화주의자인 존스라는 사람이 범죄자인 스미스에 의해 침해를 당해했다고 해보자. 존스가 자기 신념에 기초해 폭력행사를 통한 자기 방어에 반대하고, 그에 따라 범죄에 대한 어떤 처벌도 거부한다면, 존스는 단순히 기소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그 사건은 그것으로 마감된다. 심지어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범죄자를 추적해 재판을 넘기는 현행 검찰과 같은 정부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4 이념
4.1 축부에 대해
자유의지주의를 신봉하는 계층의 대부분이 부층이다보니 오해가 왕왕 발생하는데, 자유의지주의자의 최종 목표는 '내 마음 껏 돈을 벌어야 한다'가 아니다.[10]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 때문에. 사유재산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부산물과 같다는 것이다.[11] 자기의 능력을 제약받지 않고 발휘할 수 있으며 정부에 의해 자신의 가치관이 침해받지 않는 사회가 그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사회이며 사유재산 비호와 축적이 자유의지주의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의지주의자는 사실 축부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개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12] 돈버는 일은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궁리하라는 것이 자유지상주의의 관점이다.
4.2 정부주도의 사회복지에 대해
자유의지주의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무한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를 수긍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자유의지주의 사상에서는 정부주도의 사회복지란 개념은 없다. 노력을 해서 얻은 개인의 재산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복지가 있다면 기껏해야 일종의 자선 정도, 불쌍한 사람을 각자 양심껏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줘라 하는 수준이다. 무한경쟁을 벌여서 낙오한 사람은 게임의 룰에 따라 낙오를 감수해야 한다. 이게 신자유주의하고도 통한다. 그래서 자유의지주의는 좌파라곤 할 수 없다. 다만 자유의지주의는 인간의 선의를 믿기 때문에, 개인의 자선의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미국같은 국가에서 복지나 기부, 자선이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다.[13]
다만 경제면에서는 사상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가 그렇게 구별되진 않았다. 그리하여 하이에크 등과 시카고 대학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자들이라 칭하곤 한다. 그런데 얘들은 최소한의 빈곤 퇴치를 위한 재분배는 주로 사회안정, 안보 등을 이유로 대체로 인정한 바 있다. 뷰캐넌은 저 논리에 따라 부유층들은 사회안정을 통해 사유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빈곤층은 복지혜택을 얻기 때문에 쌍방이 합의하여 최소한의 빈곤 퇴치를 넘는 수준의 재분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이에크가 보건같은 정부 시설에 대헤서는 오히려 긍정적이였는 것은 무시하자
4.3 사회적 이슈에 대한 태도
사회문화적 분야에서 자유지상주의 입장은 현대의 이념적 잣대로 보면 좌익(특히 신좌파 및 좌파 자유주의자)과 유사하다. 그러나 좌익과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를 반대하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간섭은 물론이고, 규제 및 통제, 보조금 지급, 그리고 사업제한 및 금지 등을 통해 정부가 자유 시장경제에 간섭하는 모든 행위를 철저히 반대한다. 왜냐하면 모든 개인이 다른 사람의 침해 및 약탈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면, 그의 자산을 자유롭게 무상으로 양도, 증여 및 상속을 하거나 아무런 간섭 없이 다른 사람들의 재산과 교환(자유로운 계약이나 자유시장을 통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사유재산권과 자유로운 거래를 제한없이 보장하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위의 론 폴의 인터뷰 내용에서 나와있듯이 당신이 리버테리언 체제아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도 자유이고 지금의 시스템과 같은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것도 자유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지금처럼 당신이 다수에 속했다는 이유로 당신이 다른 개인을 강제로 시스템에 소속시킬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리버테리언은 민주주의에 부정적이다. 자주 접하게 되는 오개념중 하나로 절대 민주주의=자유 가 아니다. 헌법 민주주의에서는 비침해성의 공리를 어느정도 (기본권이라고 현대의 국가에서 규정하는부분) 받아들이긴 했지만, 대중과 정부에 의한 제약이 많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다수의 권위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과 경제체제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입장은 통상적 잣대에 의하면 극우적이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 어떤 경우는 좌파, 다른 경우는 우파와 입장이 같다고 해서 일관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각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일관성 있는 유일한 입장이다.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좌파와 우파는 모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좌파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쟁이나 강제징집과 같은 폭력에는 반대하면서 어떻게 세금징수나 시장통제와 같은 폭압적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모순을 보일 수 있는가?
우파 역시 한편으로는 사유재산권 보장과 자유기업체제를 찬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과 징병제를 지지함을 물론, 단지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비침해적 활동(변태적 성행위 등) 및 사업의 불법화를 지지한다. 우파는 또한 군산복합체나 일부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광범위한 보조금 지급이나 시장 왜곡 또는 비효율 등의 병폐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어떻게 자유시장체제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노동조합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견해는 서로 갈리는 편이다. 참조
4.4 범죄론
자유지상주의 입장에서 범죄란 타인의 자유를 침해나 계약 위반을 의미한다. 따라서 범죄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맞는 벌(죄와 형벌의 비례성)을 줌으로서만이 비로소 사회전체의 안정과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래야만이 범죄자의 구제(salvation)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칸트도 한 적이 있다. .
그러므로, 범죄자에게는 재활교육이 필요없다. 오히려 동의를 받지 못한 재활교육을 하는 게 오히려 그 사람의 자유로운 행위의 권리를 침해하는 인격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남들에게 입힌 피해만큼 엄하게 처벌해 버리면 된다. 법경제학의 논의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5 비교
5.1 아나키즘
HOST : Lianna Brease on our Facebook page asks "I'm finding myself more distant from government involvement in general. Is it healthy to think like an anarchist? or what are your views on anarchy?"사회자 : 리아나 브리스는 우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대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내가 아나키스트 처럼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가요? 혹은 아나키에 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RON PAUL : I think if somebody is an anarchist and they totally believe in no government, and they don't use force at the moment to go and start shooting up the government so we don't have any government, that would be wrong, but to be an anarchist and assume responsibility for yourself, I think this is a great idea. And there's a lot of people, there's a lot of very close friends of mine who think political action is terrible and worthless. I happen to be one that believes that education is probably paramount. But political action can be very helpful. And sometimes political action, my elections and things and galvanizing interest is a measurement of our success on our ideas. So I think this is very important. But anarchy is not harmful to me, as long as you especially if you are true libertarian, you've rejected the use of force, I don't have to worry about you.
론폴 : 만약 어떤 사람이 아나키스트라면, 그들은 정부를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면, 나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는(비침해성의 공리-NAP를 말함) 아나키스트가 되려고 하는 경우, 내 생각에 이는 매우 훌륭하지 않나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나키즘을 믿고 있죠. 그리고 나와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게 정치적 행동이 끔찍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행동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데 상당히 도움이 돼요. 나의 선거를 비롯한 몇가지 정치적 행동들에 관한 강한 관심은 정치적 행동을 통해 우리 사상을 성공적으로 알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치적 행동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이 정치적 행동을 꺼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들은 나에게 해롭지 않습니다. 특히나 만약 당신이 진실된 자유지상주의자라면, 당신은 폭력을 쓰는 것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아나키스트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If you don't want to, your biggest problem of being an anarchist in the government that doesn't agree with you is that when I want to opt out they are going to come with guns. But you know, we do have instances where some people do get to opt out. When you think about the Amish and the Mennonites, I think they get exempt and ... they like to … Just think, those groups, why couldn't all of us have that opportunity? Look, we voluntarily want to get out and we want to take care of ourselves. Either an individual should be allowed to do that and get no benefits from the government, or a group can do this.
각설하고, 당신의 큰 걱정은 정부 체제에서 아나키스트로 살아갈 경우, 즉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할때 정부가 무력을 행사할텐데 그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 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요. 우리는 정부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허가해준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예시는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소규모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기독교 종파인 아미시와 메노나이트입니다. 나는 그들이 정부로부터 통제에서 벗어나는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또한 그러할 기회,혹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번 봅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떠나고 스스로를 돌보기를 원하죠. 개인은 이렇게 행동하기를 허가받아야 하며, 동시에 정부로 부터 이득을 봐서도 안됩니다. 아니면 그 집단에서 이렇게 조치를 취해야 겠죠. 이것이 자유지상주의 사회입니다.
A libertarian society actually gives full permission for socialism. Voluntary socialism. You know, if you want to get together, and there's been experiments with that in our history, you can have voluntary socialism. If you go together and you agree and we are running this community - large, small whatever - on a socialist scheme, you should be allowed to. But we should be allowed to stay out of that. But the problem is: it is so inefficient. That the socialists know their system is going to fail, so they have to use the force of the government gun to take money from the people who aren't socialists in order to subsidize their programs. Libertarianism gives full legal protection of anybody who wants to have voluntary socialism. But socialists never will endorse the idea of you having your personal liberty where you can take care of yourself and not ask for nothing from anybody else.
이러한 자유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완벽하게 허가해야합니다. 물론 자발적인 의사에 의거한 사회주의 집단을 말하는 것이구요.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다만 이러한 자발적 사회주의 공동체는 미국 역사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쨌건 만약 당신이 사회주의 공동체(그것이 크든 작든 어떻던 간에)에 참여하기로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반드시 허가되어야 겠지요. 정부는 당신이 제도권 공동체에서 빠지는 것을 원하는 것에 대해 허가해야한다 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스템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마 사회주의자들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에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을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자들에게서 마련하기 위해 정부의 무력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자유지상주의는 자발적 사회주의자들에게 까지도 완벽한 법적 보호를 제공해줍니다. 그들이 실패하건 어떻건 상관없이 말이죠.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당신의 개인적 자유와 사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서 어떠한 보호를 받을 수 없을것입니다.
아나키즘과 자유의지주의는 좀 통하긴 한다. 다만 기성 아나키즘이 정치적 억압은 물론 경제적 억압에도 반대한다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경제적 억압이란 것은 인정하지 않기에 충돌이 일어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본주의만이 아나키즘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시스템이며 기성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공동재산제등의 제도는 필연적으로 권위와 위계질서를 가져온다고 까는 반면, 전통적이고 주류인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이 대목에서 우파 아나키스트나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공정하고 이성적인 '자유 시장'이란 개념 자체가 애초에 멀리는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군함을 통한 자원 외교 부터 가깝게는 직간접적인 가격 통제, 비상시 비축 물자 살포, 위기시 양적 완화,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수 많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뒷받침을 통해 생긴, 전혀 자유롭지도 않고 자체적이지도 않은 허상이라며 반박한다. 대륙 유럽에서 이런 우파적 아나키즘은 존재감이 거의 없는 반면, 반대로 미국에서도 주류 사회 운동으로서 좌파 아나키즘은 IWW의 몰락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주제인데, 역사학자들이나 비교 정치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유럽발 좌파 아나키즘은 그 사상적 뿌리와 지향점을 자본주의 이전 농촌 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농민들이 향촌 단위로 구성하여 운영한 자치 기구인 미르에 두고 있다면, 미국의 경우 이렇게 전근대적 사회의 집단적 끈끈함 자체를 경험하지 못했고, 경제 활동의 주체가 노조나 농민 협동조합이 아닌 개인이었다는 역사적 배경의 차이라고 본다.
5.1.1 아나코 캐피탈리즘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조바람.
자유지상주의 분파에서 최소국가주의 다음으로 주류를 차지하는 분파이다. 정부(Government)라는 단어자체가 의미하는 바 처럼 정부체제 자체가 개인의 침해를 허용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며 정부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무정부 시장체제로 민영화 할 것을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현대에 들어서 무정부 실현에 대한 논증에 실패해, 상황에 따라 무권위적 태도를 지향하자는 정도의 의미로서 소극적인 아나키즘을 주장했고 그 빛을 잃은 반면 아나코 캐피탈리트들은 무정부 체제 실현에 대한 이론토대를 단단히 했으며 개인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토대로 무정부체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나코 캐피탈리즘의 관점은 주로 두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자유시장을 통한 무정부 체제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자연법적 관점, 정부체제 보다 무정부체제가 효율적이라는 관점으로 나뉠수 있다. 전자의 경우 오스트리아 학파의 머리 라스바드가, 후자의 경우엔 시카고 학파의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6 사례
6.1 미국
미국은 건국 이념부터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자유롭다"고 당시엔 혁신적인 현대적 민주공화제의 거의 최초모델로 제시되는 국가인만큼 자유의지주의가 타국가 대비 강한 편이다. 이 사상 때문에 미국의 불평등함이 크지 않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구 1억 넘는 나라 중에 평균 생활 수준이 미국만큼 되는 나라도 드물다. 심지어 미국은 인구가 3억이 넘는다. 게다가 미국은 유럽의 복지국가들과는 달리 많은 저소득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오는 나라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으론 이민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미국은 유럽과 비교하여 중산층의 입지가 확실히 불안하며, 또한 직업의 구조가 확실이 저임금쪽으로 몰려있다.[14] 그러나 이러한 유연한 노동시장이 미국 경제의 강점이라는 주장 또한 존재하고, 중산층의 입지가 확고하면 오히려 이민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15] 어쨌든 현 21세기에선 서로 다른 주들이 모인 연방제 등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모델에 그나마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vs공화당 양당정치 때문에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소수정당으로 Libertarian Party(자유지상당)도 있을 정도.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자선과 기부라는 것도 미국의 왕성한 자선행위를 보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다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주의 색채도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자유의지주의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공화당 내에서도 자유의지주의자들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지만,[16] 여전히 공화당의 주류는 보수주의이기에 이들의 목소리는 아직 그다지 반영되지 않는다. 대선에서 공화당이 오바마에게 두번이나 패배하면서 자유의지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다소 커지긴 했지만, 문제는 미국 보수 언론의 핵심인 폭스 뉴스한테 론 폴이 단단히 찍혔는지[17] 론 폴에 대한 보도를 안하고 투명인간 취급해서 주목을 많이 못 받는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위를 했는데도 5위와 6위를 한 인물들에 비해 언급을 안했다. 론 폴 다음으로 주목되는 인물은 전 뉴 멕시코 주지사인 게리 존슨과 론 폴의 아들 랜드 폴. 다만 랜드 폴은 티파티의 지도자로서 원리원칙주의자인 아버지보다는 보수주의성향이 강한 인물로 공화당 주류들과 현실에서 타협하는 면모도 보인다.
6.2 한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경우 지적, 문화적 전통이 구미권과는 많이 다르기에 자유지상주의에 대해 접하기가 어려우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로버트 노직이 조금 관심을 끌었으나 그뿐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 자신이 온전한 리버테리안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가 가지는 입지는 롤스가 대변해 온 자유주의적 이상의 대항마로서의 기능을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현 지구에서 자유지상주의가 주류인 곳은 없지만,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꾸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주의와 함께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정치인이나 국민들이나 대다수가 사회경제의 많은 분야에 있어서 국가주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자유지상주의를 주창하다가는 빨갱이로 오인받기 쉬우며, 설득이나 토론을 하려고 해도 자유지상주의가 주창하는 기본이론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이독경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땐 이 항목을 보여주자 다만 21세기 들어서부턴 자유지상주의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대한 책들이 점차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 지식인이라 칭할만한 인물은 경희대학교 철학과의 정연교 교수,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민경국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겸 프리덤팩토리 대표 김정호,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박광량 교수,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 김이석 박사, 대구대학교의 전용덕 교수와 이승모 강사 등이 있다. 하지만 비판자들의 시각에서는 몇몇 파격적인 점을 제외하면 신자유주의자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18]
2015년 2월달에는 자유경제원 등 국내 자유주의 세력이 급격하게 보수화, 친새누리당화 되는 흐름에 반발한 청년들이 설립한 자유지상주의 학술단체인 자유당(2015년)이 출범하였다.
2016년에는 경희대학교 철학과 3학년 2학기 과정에 '자유지상주의' 과목이 신설되었다. 담당 교수는 정연교 교수인용 오류: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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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숫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설명적인 이름을 사용하세요. 국내 강단에 처음 소개되는 사례.
6.3 인물
미국의 자유의지주의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선술한 정치인 론 폴과 아인 랜드이다.[19]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는 론 폴의 아들인 랜드 폴이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찰턴 헤스턴, 클린트 이스트우드[20]와 로버트 A. 하인라인, 글렌 제이콥스[21] 등이 있다.
정치철학적으로는 로버트 노직이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다. 다만 이 양반은 아나키 자체를 허구로 보았기 때문에 하이에크와 마찬가지로 좀 비껴나갔다.삐딱하게 나가야 대중성을 갖추게 되는 아이러니한 사상 순수한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을 쌓아올린 분은 선술한 경제학자 머리 로스바드. 역사적으로는 프랑스의 바스티아나 영국의 존 로크, 미국의 벤자민 터커와 라이샌더 스푸너 등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경제학적으로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자유지상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이들이 경제학자들이면서 지나치게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지나치게 시장근본주의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자유지상주의의 경제학적 토대는 사실상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머리 로스바드가 쌓아올린 수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우 좀 빗나간 부류로 평가되나 비현실적이라고 욕먹는 학파에서 빗나간 만큼 로스바드보다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로스바드의 경제학 이론이 좀 허술하다는 지적도 있고... 현대 학자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공고화한 것으로 유명한 한스 헤르만 호페와 세계적 석학 밀턴 프리드먼의 아들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는 토마스 제퍼슨과 앤드류 잭슨이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위인들이다.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을 인간취급 안한건 시대적 상황이라 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비주류 사상인만큼 현실정치에서 자유의지주의 이념을 실천하려는 인물은 드물다. 그래도 알려진 인물 중에선 론 폴과 그의 아들 랜드 폴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론 폴은 자유지상주의자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실상 세계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선봉장이자 그들 사이에선 재림예수급으로 추앙받는다. 못믿겠으면 당장 페이스북에 ron paul이라고 검색해보라, 관련 페이지가 수천개가 넘게 나오며, ron paul supporters from italy, ron paul supporters from ireland 등 다양한 국가의 론폴 지지자들이 만든 팬페이지가 나온다. 다만 지지자들이 많은 만큼 중2병 걸린 막장 지지자들도 많다. 오죽했으면 론폴지지자들을 비꼬는 밈으로 paultard라는게 있을 정도. 직역하면 폴바보 정도.(...) 이런 영향력 덕분인지 론 폴은 2012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양반의 정치적 행보를 살펴보면 정말 자유지상주의 이론을 현실에 실천하기 위해 피땀흘리며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항목에서 설명된 자유지상주의의 성향상 도출될 수 있는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 중 국가 해체를 제외하곤 실제 법안으로 미국의회에 상정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심지어 론 폴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미국 행정부를 해체해야 하고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FBI, CIA, NSA 같은 첩보기관의 해체이며, 수정헌법을 개헌해서 각 주가 연방정부로부터 독립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범하다.(...)
론 폴이 스스로 밝히는 정치성향은 헌법주의적 자유지상주의다. 다만 행보나 말하는 늬앙스를 보면 무정부주의적 자유지상주의도 긍정적으로 보며, 비폭력적 아나키스트가 되는 것은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론 폴의 이러한 행보와 성향이 실제 미국정치계에 영향을 주어 탄생한게 그 유명한 티 파티, 그래서 론폴의 별명이 '티파티의 대부'이다. 다만 현재 티파티의 성향이 철저한 자유지상주의 단체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35년생인 론 폴은 현재 일선에서 은퇴하고 사회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 랜드 폴이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고 있다. 아버지가 티파티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아들 랜드 폴은 실제로 티파티의 실세 중 한명으로, 비주류였기에 실제 정치적 영향력은 적었던 론폴에 비해 랜드 폴은 현실 정치에서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다만 랜드 폴은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주류 보수주의의 입장을 내비치고 있으며, 이점 때문에 아버지와는 달리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지지를 그다지 받고 있는 편은 아니다.
정치집단으로는 이미 몇번 언급된 공화당 내 정치세력인 티 파티와 미국의 군소정당 자유당(미국)이 대표적. 단, 티 파티는 공화당 내 세력이다보니 자유지상주의와 보수주의가 짬뽕되어 있다. 자유당은 창당 초기에 론 폴이나 로스바드가 당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현재 유명한 당원은 케인(프로레슬러)나 사우스파크의 제작진 트레이 파커가 있다. 당원수는 30만명 안팎이지만 이게 그나마 전세계 자유지상주의 정당 중 가장 큰 규모이다.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그래서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나름 100만표이상 꾸준히 득표하고, 인지도도 제법 있는 편. 공화당의 전 멕시코 주지사 게리 존슨 등 공화당 내 자유지상주의자들을 영입해서 대선 후보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론 폴도 여기 소속으로 선거에 나온 적이 있다.
여담으로 초소형 국민체인 미네르바 공화국은 자유의지주의를 기반으로 건국하려 했다. 그리고 통가한테 개관광당했지
7 오해
7.1 자유의지주의 = 보수주의?
결론만 말하자면 아니다. 자유지상주의는 동성애자 인권 존중, 성매매 합법화 찬성, 대마초 찬성, 군사 개입 축소 등 을 주장한다. 오히려 사회적인 면에선 좌익보다 더하면 더 했지 보수주의자는 전혀 아니다.
7.2 자유의지주의 = 파시즘?
파시즘은 국가가 개인에 우선하고, 국가가 모든 개인의 생활을 경제적이건, 사회적이건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유의지주의는 개인만을 중시하고 기본적으로 반국가주의를 골조로 하므로 파시즘과는 거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다. 다만 정치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는 자유의지주의의 특성 때문인지[22] 정치철학에 무지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주의를 파시즘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8 비판과 반론
8.1 비판
8.1.1 윤리관에 대한 비판
자유지상주의자는 성매매, 마약, 도박, 장기매매 등 '개인적 일탈'에 해당하는 행위를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거 진중권이 한창 물오르던 시절 자신의 저서에서 공병호를 디스할때 '님이 원하는 사회가 되면 장기매매도 판치는 퍽이나 아름다운 사회가 되겠군요'라는 말을 곁들이기도 했다. 또한 안전벨트나 오토바이 헬멧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한 처벌 같은 것도 거부하기도 한다. 그건 곧 개인의 자유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꼴리는대로 사는데 국가가 뭔 상관임? 죽어도 내가 죽는거지, 네가 죽는거냐. 망해도 내가 망하는거지, 네가 망하는거냐.' 이런 식이다. 물론 그 도로가 개인의 사유가 아닌이상 그런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어디에서나 당신이 맘대로할 행동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상이 아니다. 도로같은 경우에는 그 소유주가(개인이든 공공이든) 규칙을 만들고 사유물에서 개인을 퇴거시킬 권리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피해를 봤을때 당신이 보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자유지상주의의 이러한 극단적인 윤리관은 자유주의자들에게조차 좀 과격하게 들릴 수 있으며[23] 국가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이 들으면 혈압 오를 내용일 수 있다. 근데도 같은 보수진영에 소속되어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때문에 도덕성을 더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선 자유의지가 선(善)의지로 발현될 수 있게 하는게 진정한 자유주의라는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모두에게 마약하고 성매매하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윤리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것을 거부할 뿐이다.
8.1.2 사회복지 미비로 인한 기회의 평등의 위기
거기에 부의 재분배가 안되면 자유의지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해치기 쉬우며 이는 사회의 계층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 사회는 탈락자에 대한 무자비와 계층화 때문에 사회적 안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24] 미국 정부에서는 나름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듯 하지만 쉽진 않아보인다.[25]
이는 자유의지주의의 태생적 단점으로, 자유의지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위해 모든 이들이 같은 시작점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허나 자유의지주의의 이념상, 상속권자의 상속권을 빼앗을 수 없다. 그러면서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기회의 평등을 실현시킬 수 없으면서, 기회의 평등이 전제조건인 것이다. 모순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 이를 위한 대안으로 기부와 자선, 봉사활동을 이야기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복지기부에 대한 거절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전제가 되는 기회의 평등은 살얼음 같은 기반 위에 서있게 된다.
다만 애초에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상이다. 즉 인간을 보는 관점 자체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거시적인 측면은 2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경제적 공리주의의 입장에서는 고려해볼만한 비판이나 자유지상주의의 철학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은 되기가 어렵다. 애초에 철학적으로 보았을때 사상간의 우열은 없기 때문.
위의 문단은 분명 설득력이 있는 반론이다. 자유지상주의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 윤리적 관점을 가져다 쓰는 것은 그리 위협적인 공격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유지상주의의 이론이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의 근본적인 인간관(극단적인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데에는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상대주의적으로 보았을 때 사상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사상은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타인의 사상을 비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환빠, 주사파 역시 하나의 사상이지만, 그에 대해 비판이 많듯이. 먼소리여
하지만 위 비판들의 맹점은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이 아무런 보호없이 자유시장에 뛰어들것을 강요하지도, 자유시장주의를 개인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회주의 커뮤니티, 공산주의든 현재의 시스템이던 소속되는것은 당신의 자유다. 단지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에게 어떤 사상이나 정부, 국가 ,커뮤니티에 소속되는것을 강요할 수 없을 뿐이다. 자유시장주의는 단지 자유지상주의가 제시하는 큰틀일 뿐이다.
여튼 이런 자유지상주의의 소유권 절대주의를 비판하며, 소유권은 특정 상황에서 일정부분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존 롤스가 있다. 자유지상주의는 절대 무제한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인의 (과도한) 소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입증 할 수 있다면 사유재산도 제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8.1.3 법철학적 의문
법철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강력한 의문이 제기된다.
사유재산권은 왜 신성시 되는가?
그에 대해서는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어야만 국가의 억압이 없을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마르스크수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언론사를 기업이 소유하나 국가가 소유하나 자본가들의 소유라는 점에서 다른 건 하나 없다고 재반론 할 수도 있다. 국가 자체가 자본가들의 위원회라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소유한다고 해도 그 국가의 권력을 어떻게 창출하는 가, 민주적 과정이 어떤가에 따라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하는 것도 자치 공동체가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치 공동체는 '동의를 받은 권력에 의한 통치'를 추구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방식이나 '민주집중제'에 의해 완벽히 민주적이지만 한 번 위임된 권력이 독재를 할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닌 국가론과도 다르다.
하여간 사유재산권이 국가의 억압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그렇다면 사유재산권은 어떠한 윤리적 요청에서 나오는 근본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합목적적인 수단일 뿐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 그렇다고 그 자체가 모든 논의의 전제가 되는 당연한 윤리적 '공리'라고 놓는다면, 그게 왜 공리가 되느냐는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것을 공리로 놓는 것은 정치철학자인 온건 우파 롤즈 역시 하고 있는 일이라서 우파 전체에 공통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로크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전적 논증이 있다. 즉 사유재산은 노력에 의한 산물이므로 이를 보장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하다는 것. 그런데 이재용이 막노동을 하는 사람보다 수천배 이상의 노력을 해서 돈을 그리 버는 것인가? 능력의 차이에 따른 보상의 차이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수천배 이상의 돈을 버는 것이 그만큼의 능력 차이가 있어서인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주된 치부 수단인 금융, 좀 더 고전적으로 말하면 돈놀이가 정당한 노력의 댓가인가? 또한 토지를 이미 소유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아 불로소득을 올리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루소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노력, 능력, 선점, 타이밍, 운, 기타 모든 수단에 의한 소득과 사유재산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상속된 재산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상속재산을 리셋 하고 시작하자고 하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동의를 할까? 물론 위에 나와 있듯이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속재산이 왜 정당한가에 대해서 만큼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수백년 전의 보수주의자들은 그에 대해 신의 섭리나, 사회 전체가 노력[26]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식의 대답을 했지만,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인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거래를 통한 소유권 획득만 따져 봐도 이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의 소유권이 정당한지 재판에서 따지려면 그 사람이 정당하게 소유권을 이전받았다는 것을 증빙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 전 소유자의 소유권이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민법(재산법)적으로 필연적인 요건이다. 정당한 소유권 없는 자에게서 물건을 매수한 사람이 정당한 소유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전 사람의 소유권을 따져야 하고, 그렇다면 또 그 전 사람의, 또 그 전 사람의....이렇게 추급해 들어가다보면 최초의 소유권에 대한 정당성을 논증해야 한다. 그런데 최초에는 권리가 아니라 단지 어떤 물건, 어떤 땅을 특정인의 수중으로 가져왔다는 사실만 남게 된다. 그런데 '사실'이 왜 '권리'가 되는가?
자유지상주의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증을 하려면 이러한 윤리적, 법철학적 질문에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이 아니라 단순한 이해관계의 논리, 부르주아들의 자기변호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유지상주의 역시 왜 이러한 자유지상주의 사회가 존재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분명 철학적, 이념적, 윤리적 기반을 깔고 논증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본적인 비판에 대해서도 당위적인 해명을 해야 하지만 그런 부분은 매우 미흡하다.
8.2 반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의 성격이 권력을 좌우한다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국가의 권력이 그 국가의 성격을 좌우한다. 그들의 논리대로 설령 국가=자본가의 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사유재산권이 보호된다면 국가=모든 인민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권이 보호될 경우 마르크스주의자들 또한 언론과 출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공동체가 보호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같다.
그럼에도 결국 사악한 자본가들도 소유하기 때문에 국가=자본가 편이라는 논리를 꺼낸다면 오히려 결론은 더 간단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결국 인간을 우열로 그리고 좋고 나쁨으로 편가르기를 함으로서 나쁜 놈, 열등한 놈은 마땅히 차별받아야 하며 금지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신분제를 꺼내드는 봉건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또 국가 권력의 창출 과정에 따라 사유재산권 철폐의 효과나 영향,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동의받지 않고 이루어진) 정당한 폭력이라는 말과도 같은 모순이다. 아나키즘에서는 '자발적' 공동체를 만드니 그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철폐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방식이건 민주집정제 방식은 이와 다르다. 왜냐하면 자발적 공동체가 아님에도 국가가 '개인'들에게서 떠들 수 있는 권리를 강제로 뺏아간다는 사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그것이 무력이든 법적으로든 말이다. 결국 둘다 국가가 폭력을 사용해 개인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재산권이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 바로 모든 인간의 행동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행동하는 존재다. 행동이란 항상 수단을 통해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 그 수단은 사물, 재화, 상품 등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을 일컫는다. 사유재산권은 곧 저런 수단물에 대해 최우선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사유재산권을 통해 타인이든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사유재산권이 없다면 정부나 타인이 자기 멋대로 나의 수단물을 강탈해갈 수 있고 나의 모든 자유로운 행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언론 자유라고 할 때도 만약 종이, 잉크, 펜, 컴퓨터, 인쇄기, 노동, 녹음기 등의 소유를 국가가 쥔다면 우리는 언론 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언론활동이라는 목적 추구가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물을 정부가 강탈했기 떄문에 우리는 언론활동에 필요한 모든 구체적 활동은 사실상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그들의 눈치만을 볼 수 밖에 없고 결국 우리는 허울뿐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은 바로 교환이다. 교환은 내가 너에게 그리고 네가 나에게 서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재용의 소득이 높은 이유는 이재용이 막노동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더 많은 가치의 상품을 많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노동자라고 해서 그가 천하다는 것이 아니다. 막노동자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막노동자의 노동을 낮게 평가하려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이며 막노동자들은 그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매우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동의한다면 충분히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또 금융 혹은 돈놀이가 정당한 이유, 토지를 지대소득이 정당한 이유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돈이 급한 사람에게 돈을, 토지의 이용권과 그 부산물이 급한 사람에게 원하는 것들을 제공하였고 그 제공의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교환이 이루어진 이유는 공급자는 그것을 누가 필요한 지 또 얼마나 필요한 지 또 어떻게 해야 수요자를 더 만족시킬 지 판단하고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불로소득이라는 말은 굉장히 잘못된 표현이다. 물론 불로소득이란 사실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노동을 하지 않은 소득이 아니라 결정하고 판단하여 수익처가 될 곳을 가려내어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투자소득이라고 하는 것이 정당하다.
8.2.1 상속
이런 점에서 상속세야말로 가장 치졸하기 짝이 없는 세금이다. 첫째. 사유재산권은 이용과 처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을 그냥 버리고 가든 거지에게 주든 자식에게 주든 얼마든 지 자유롭다. 그런데 왜 특정 행위만 금지되어야 하는 가? 우리는 거지에게 기부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레쥬를 들먹이여 칭찬한다. 그런데 왜 자식에게 주는 것은 부당한가? 어짜피 둘다 (사후)증여 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기 떄문이다. 누구에게 주든 그것은 재산권자 뜻에 달린 것이다.
둘째. 상속을 하는 이유는 부를 대대손손 아껴쓰기 위함이다. 즉 미래세대가 방탕하게 날려먹지 말고 이것으로 미래에 더 유익한 일들을 하라는 의미다. 우리는 이것을 저축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서민의 저축은 정당하고 부자의 저축은 그른가?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얼마나 인간을 편가르기하고 우열을 가르기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셋째. 상속이란 결국 다른 수 많은 경제행위 중 한가지다. 다만 생애 마지막에 이뤄지는 것의 차이다. 생존기간동안의 경제행위는 인정하면서 왜 마지막에만 허용을 하지 않는가? 바로 상속에 의해서 상속자의 인생이 결정이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상속이란 행위로 인해 상속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인생의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영구화되는 즉 말 그대로 삶과 운명을 바꾸므로 그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인생이란 상속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각자의 삶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존재하는 여러 환경과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부잣집에 태어났다고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고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삶을 사는 기초점일 뿐이다. 다만 더 힘드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다. 앞으로의 삶은 각자가 알아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를 비웃으며 결국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은 평생 잘 살테고 가난한 놈은 평생 못살 것이라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8.2.2 사회적 약자의 성공과 발전
그러나 이야말로 무지의 근본이다. 인간은 바위, 금속, 물이 아니다. 저런 자연물은 조건 반응하는 존재들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품고 자신만의 행동이 가능한 자이다. 물은 자기가 싫다고 섭씨 0도에서 얼지 않는 것이 아니며 바위는 자기가 좋다고 강력한 힘에 돌멩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조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만의 생각으로 목적을 품고 능동적으로 행동을 하는 자다. 따라서 나는 어디서 태어났으니깐 내 삶은 이럴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자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종이 아니라 무생물이라고 떠벌리는 것과도 같다. 의지드립 어디 한번 네 존재를 증명해봐 ㅎㅎㅎ
또한 기회균등을 강조하여 경제적 여건이 되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인간은 무생물도 동식물도 아니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성공은 그의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지 단순히 그가 얼마나 의욕을 품는가 단순히 얼마나 노력하느냐와는 상관이 없는 주장이다. 노력해도 안되더라 하는 근거는 행동을 노력 혹은 의지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행동은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부여되는 불확실성을 뚫고 자신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성취해내는 것이다. 여기에 부자라서 더 성공하고 가난해서 실패하고 장애인이라서 극소수만 성공한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현실에서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는 이런 현상 자체는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답은 2가지다. 만약 자신의 물질적 삶 혹은 물질적 제반 환경의 개선만을 원하는 것이라면 시장에 의해 쉽게 이루어진다. 반면 슈퍼스타처럼 상위 1프로에 도전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혹은 하위 1프로 처럼 극도록 어려운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스스로 자발적으로 도와주면 된다. 어렵다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도와주면 될일이다. 자유지상주의는 복지국가나 복지정책을 비판하지 자발적 복지는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그럼 여기에 대해 과연 일개 개인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혹은 도덕, 감정(충동)에 의거한 자발적 복지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매우 가변적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 없는 소리다. 왜냐하면 결국 복지정책은 이타심에 기반해 있지 않는다는 반증이고 결국 정부나 정책 당국 같은 특정 소수의 이타심에 기반한 자의적인 정책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과 무관하게 자기 멋대로 정책을 피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뒷받침하는 근거는 사회의 불만을 달래우고 내부 분열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단순히 사회 체제의 존속을 위해서라는 독재자적 발상으로 국한될 수 밖에없다.
재산권 논의 중 하나가 바로 맨 처음 소유권에 대한 논의다. 맨 처음으로 소유한 사람의 권리는 어찌해서 인정되는가? 바로 그 사람이 그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이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고 한다면 역으로 왜 사실이 권리박탈 혹은 권리무효로 이어져야 하는가? 내가 나의 노력, 능력 등 각종 작용을 하였음에도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예를 들어 오직 서울에 있는 나만이 그 사물에 사람의 힘을 가했는데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산의 누군가도 소유여야 하는가 혹은 왜 아무도 소유하지 말아야 하는가?
9 관련 창작
자유의지주의를 다룬 세계관의 대표적인 소설로는 아인 랜드(Ayn Rand)가 쓴 '아틀라스(Atlas Shrugged)'[27][28]가 있다.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소재가 자유의지주의이며, 이것에 대해 아주 강한 긍정을 보이는 작품이다. 아인 랜드 자신은 자신의 사상을 객관주의(Objectivism)라고 정의했다. 사실 자유의지주의 픽션의 비조는 하인라인이 아닌 랜드라고 보는 게 옳다.
하인라인의 SF 세 편도 있다. 첫번째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여기서 베르나르도 데 라 파즈(Bernardo De La Paz) 교수가 전형적인 자유의지주의자이다. 이 교수가 선거제도, 세금, 경제, 기타 등등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뉴엘 데이비스 오켈리도 역시 자유의지주의를 열심히 변호하는 달세계인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작품으로는 '낯선 땅 이방인(Stranger in the Strange Land)'이 있다. 거기서 주발 하쇼란 아저씨가 하인라인의 대변자이다. 마지막으로, 역시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다. 하인라인은 낯선 땅의 이방인과 스타쉽 트루퍼스를 거의 동시에 썼다. 양 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쓴 것이다. 그래서 두 작품은 자유의지주의의 옹호과 그 정반대편에 위치한 전체주의를 까는 작품을 각각 소개한 셈이다.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뒤보아 중령의 이야기가 자유의지주의의 주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 속 자유의지주의자로는 바이오쇼크의 앤드류 라이언을 들 수 있다. 참고로 앤드류 라이언(Andrew Ryan) 자체가 소설 아틀라스의 저자 아인 랜드의 오마주다[29]. 러시아 출신 미국인이라는 설정도 그렇고. 물론 앤드류 라이언은 이후에 파시스트적인 모습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러나 랩처는 화폐도, 법률도, 행정도 민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자유의지주의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차라리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10 형이상학적 의미의 리버테리어니즘
Libertarianism은 때로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이 맥락에서 이 단어는 '자유주의자', '자유의지주의자' 등으로 번역된다. 이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서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입장 중 하나이기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 배경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서 문제가 대두된 것은 결정론이 나타나면서이다. 이 결정론은 대략적으로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중세의 신학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의 과학적인 입장이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비롯된 중세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서 신은 전지하니까 시간이라는 변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중세의 신은 내가 무엇을 할지 안할지에 대해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근대과학적 결정론이다. 뉴턴 이후로 과학은 수학적 원리로 표현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모든 영역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법칙에 대해서 완벽히 알고, 지금의 세계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안다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시점에 손을 들지, 들지 않을지까지 말이다. 비록 현대에 들어와서 양자역학이 나타나며 모든 영역이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거시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주어진 법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위의 둘 중 하나가 맞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물리적으로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모든 행동이 물리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자유로운가? 혹은 자유롭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상식적으로, 자유라는 것은 어떤 의지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은 경우를 나타내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간의 문제는 이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1.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대립하지 않는다.(양립 가능론)
2.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대립하는데, 세상은 결정론적이므로, 자유 의지는 허상이다.(강한 결정론, hard-determinism)
3.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대립하는데, 자유의지가 진정으로 존재하므로 세상은 결정론일 수가 없다.
이 중 세 번째 입장이 자유주의자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이 입장에 속하는 경우는 데카르트나 칸트, 실존주의 철학자들, 예컨대 장 폴 사르트르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30] 현대의 agent-causation을 주창하는 사람들 역시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 영어권 저자들 역시 이 용어가 동음이의어라고 생각하여, L을 대문자/소문자로 써서 두 의미를 구분하려고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 ↑ 그러나 양당제가 확고한 미국에서는 대략 1% 내외 득표하는 수준이다. 위키백과의 설명도 참고하길 바란다.
- ↑ 범죄자 자신이 성격개조를 요청한 경우 상대방이 그 요청을 수락할 경우에 한해서 성격개조가 정당화된다.
- ↑ 왜냐하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범죄'를 타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한 폭력적 침해로 정의하기 때문에, 피해자 없는 범죄는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다.
- ↑ 미국식의 리버럴이나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유주의자로 번역하는 건 좀 어폐가 있다. 리버럴이나 사회민주주의자는 정치,사회적인 면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나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 개입-그리고 그로 인한 자유의 일정한 제한-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 ↑ 표현이 지나치다. 여기서 자유주의자는 미국식의 liberal로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통하는 개념으로 쓰인 것 같은데 사회민주주의에서 사유재산권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의 재분배나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사유재산권에 대한 적절한 통제 내지 제한을 지지하는 것일뿐. 사실 위에서 썼듯 미국식 리버럴을 자유주의라고 번역하는 것 자체가 좀 문제가 있다.
- ↑ 그러나 적어도 토지의 사유에 관한 로크의 주장은 모순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토지를 충분히 가질 수 없고 결국 선착순으로 토지를 가지게 되는데, 로크는 이것에 대해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충분한 토지가 있을 때라는 비현실적 가정으로 변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라면 토지가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필요가 없는 자유재가 된다는 것. 하튼 이것이 유명한 로크의 단서이다.
- ↑ <출처>로스바드의 자연법적 소유권 이론에 대한 비교 방법론적 고찰 (경희대 철학과 정연교 교수, 「자유와 시장」 제2권 제1호 2010.10)
- ↑ 그리고 미국의 우파 자유의지주의의 아이콘 중 하나인 아인 랜드의 이념도 최소국가주의측에 가깝다. 구미권에서 자유의지주의 비판때 보통 "우리는 정부를 없애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이유중 하나.
- ↑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단순히 축부가 목적이라면 힘으로 뺏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유와 전혀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 ↑ 청교도 이론가인 장 칼뱅의 프로테스탄티즘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 ↑ 국가기관 등이 나의 정당한 재산을 갈취하려 든다면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돈을 잃기 때문보다도 강제로 돈을 빼앗기기 때문.
- ↑ 다만,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세금 면제나 감세를 목적으로 기부와 자선을 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세금이 줄어든 양이나 그 이상으로 복지혜택이 돌아가므로 국가가 결국은 복지에 돈을 쓰는 것과 같다.
- ↑ 공업이 많이 퇴화되어 전에 공업이 번창했던 오대호 밑의 지역은 러스트 벨트라 불리며 많이 가난해졌다. 독일의 루르 지역이 아직도 번창한 것과 대조된다.
- ↑ 미국의 공업이 쇠퇴한 원인은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가 크다.
- ↑ 상술된 론 폴은 거의 재야 대통령 수준. 인터넷에서도 인기가 아주 좋다. 다만 문제는 인기에 비례해 빠들의 극성 댓글들이 늘다보니 빠가 까를 만든다식의 시나리오가 성립되어 안티도 늘어났다는 것.(...) 자유의지주의자들을 까는 단어 중에서 Paultard(폴바보)가 있을 정도다. 다른 단어는 아인 랜드 빠들을 까는 Randroid.
- ↑ 론 폴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나중에 2008년과 2012년 경선에서 그 전쟁을 밀어 붙혀서 미국 재정을 망친 공화당을 깠다. 심지어 "오바마가 재정을 말아먹은게 아니라 이미 망가져있었다."라는 말까지 했으니 폭스한테 제대로 찍혔을 것이다.
- ↑ 이는 유사한 개념임에도 지칭하는 단어를 서로 다르게 쓰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자유주의는 말 그 자체(neo)에서 알 수 있듯이 1980년 이후 부활한 자유주의를 (주로 좌익들 혹은 반反자유주의자들이) 비칭하려는 의도나 성격이 강하지만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ism은 자유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리버럴 liberal과 구분하기 위해 쓰는 단어다.
- ↑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집안이 재산을 몰수당했다.
- ↑ "50년대 군 복무 시절부터 공화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나는 어느 정파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자유의지주의자에 가깝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가깝다는 것이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항목의 다른 자유의지주의자(가령 아인 랜드)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기는 조금 힘들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들, 특히 '언포기븐'과 같은 영화들은 약자를 억압하는 시장 논리를 적나라하게 까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의지주의자들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
- ↑ 사실 글렌 제이콥스의 경우에는 자유의지주의 쪽보다는 그의 본업인 프로레슬러로 유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유의지주의자 중에서 이름이 유명해진 경우이다.
- ↑ 로스바드 계열의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말할 것도 없고, 주류라고 볼 수 있는 로버트 노직또한 원리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 ↑ 첨언하는데 리버럴리즘과 리버테리어니즘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을 온건하냐 과격하냐의 차이로 구분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 ↑ 현재 미국의 계층화는 1980년대 레이건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혁명의 유산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젠하워 같은 초기 냉전 시대 공화당 대통령들도 루즈벨트가 세운 복지국가의 기초에 대해 반대된 의견은 없었을 정도니.
- ↑ 미국에서는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원래 의도라고 이 점을 많이 지적하지만, 제퍼슨 같은 건국자들이 "헌법은 사회의 진보와 맞추어 진화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한 것을 근거로 반박을 하는 이들도 있다. 좋은 예로 현대 사회라면 그냥 인종차별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일 5분의 3 타협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시선으로만 보면 좀 헷갈리겠지만, 남부 노예주들 쪽이 흑인 인구를 하원위원 수 계산에 첨부를 원했다. 문제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놔두자니 흑인들이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니...
- ↑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마음으로 열심히 산다는 얘기다.
- ↑ 번역이 미묘하다. 원제의 뜻은 '아틀라스가 (어깨를)들썩이다'는 정도이다. 사회를 진정으로 이끌고 있는 엘리트들이 작심하고 단체로 그 사회를 떠나는 경우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 ↑ 참고로 인터넷 사이트 4chan의 /lit/에선 거의 면갤의 항봉무녀급 대세를 타고 있다.(...) 작가와 함께.
- ↑ 아니, 아나그람으로 WE R AYN RAND가 나오니 설명이 必要韓紙?
- ↑ 해석에 따라 이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는지는 갈릴 수도 있다. 특히 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