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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 ||
날짜 | ||
208년 11월 | ||
장소 | ||
중국 후베이 성 셴닝 시 츠비 시 | ||
조조군 | 손-유 연합군 | |
지휘관 | 조조 | 손권 유비 |
참전 장수 | 조인 악진 서황 가후 장료 이전 허저 | 주유 정보 노숙 황개 한당 감녕 여몽 주태 능통 여범 서성 |
병력 | 조조군 16만+ 유표군 8만[1] ~ 80만[2] | 손권군 2만[3]~3만[4] 유비군 2천[5]~2만[6] |
피해 규모 | 불명 | 불명 |
결과 | ||
손-유 연합군의 승리 | ||
기타 | ||
조조의 형주 방면 지배력 약화. 큰 피해로 인해 한 동안 수비태세로 전환.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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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赤壁大戰 / 赤壁之战
삼국지의 중반부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맥스이며, 천하삼분지계의 시작이 된 전투.조조의 전성기에 사형을 선고한 전투.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더불어 삼국지 3대 전투로 꼽힌다.
2 배경
위성사진
실제 적벽대전이 벌어진 츠비(赤壁:적벽) 뭔가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고 생각되면 지는 거다[7]
이곳의 원래 명칭은 푸이(蒲圻:포기)였으나, 1998년,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도시 이름을 츠비로 변경했다.
사실 양쯔강의 수역이 계속 변화한지라 지금의 츠비가 정말 그때의 전쟁터인지도 잘 모른다.
당시 조조는 원소와 그 아들들의 잔당을 모두 처리하고 208년 6월 한나라의 승상에 오른후, 7월에 남하하여 유표가 죽고 유종이 뒤를 이은 형주를 침공해 9월에 항복을 받아낸다. 유비군은 장판파에서 조조의 추격을 받았으나 하구로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조조는 가후가 말림에도 불구하고 강동으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운다.[8]
3 정사에서의 적벽 대전
- 이 항목에서의 타임라인은 자치통감을 따라갑니다.
3.1 유비와 손권의 연합
3.1.1 노숙과 유비
유비가 이렇게 거듭 패퇴할 동안 208년에 오범의 예측대로 유표가 죽었다. 오나라에서는 노숙이 유표의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유비를 설득할 것을 손권에게 권하였고, 손권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숙이 유비가 이끄는 군세에 도달하기 전에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해 버렸고, 유비는 장판파에서 추격해오던 조조의 팔천 기병에게 한바탕 당한 뒤였다.
하구에서 유비를 만난 노숙이 이제 어찌할 요량이냐고 묻자, 유비는 옛 친구 오거에게 의지하러 가겠다고 한다. 노숙은 오거에게 가기보다는 손권에게 귀순하기를 설득하였고, 이어 제갈량에게 제갈근과 친분있음을 밝혔다. 결국 유비는 노숙의 말을 따라 악현 번구[9]에서 행군을 멈춘 후, 제갈량을 오나라로 보냈다.
3.1.2 제갈량의 낚시질
시상에서 정국을 고민하고 있던 손권을 만난 제갈량은 그를 만나자마자 "유비님을 도와주어 싸우도록 하십시오. 만약,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조조한테 항복하시든가요." 하고 말하며 오국의 국력을 무시했는데 만일 오나라의 국력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하면 유비가 손권에게 빌붙을 수 밖에 없다는 걸 환기시키는 꼴이므로 손권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장판파에서 조조한테 신나게 쫓겼던 유비가 보낸 제갈량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손권은 부아가 치밀어 되물었다, "그럼 어째서 유비는 조조한테 항복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제갈량은 자신의 주인 유비를 애초부터 손권과는 격이 다른 인물로 추켜세움으로써 손권을 겁 많은 졸장부로 만들어 버렸다. 당신 정도의 인간은 항복한들 어떠한가,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항복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런 말을 들으니 손권은 발끈하여 결연하게 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젊은 손권이 안 그래도 긴장되는 국면에 놓여 성마르게 되었으니 발끈하기야 했겠지만, 손권이 신중하게 돌아본다고 할 때 손권이 놓인 현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측면도 있다. 주전파와 항복파가 주로 이기냐 지냐를 논한 반면 제갈량의 발언은 싸움과 손권의 정체 관계에 대해 환기시킨 것이다. 주전과 항복을 고민하는 순간 손권의 정체성은 항복한들 어떠한들 납득이 가는 종류의 인간이 되는 것임을 명확하게 인지시킨다.
이렇게 제갈량이 딱 원하는 결정이 났으니, 제갈량은 아직 유비에게 2만 명의 군사가 있다면서 강노지말 고사를 예로 들어, 조조군은 밤낮으로 달려 남하하였으므로 지쳤는 데다가, 형주의 인심마저 얻지 못하고 있으니 유비와 손권의 군세가 힘을 합하면 솥의 세 발과 같은 균형잡힌 세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를 유심하게 들은 손권은 납득이 되어 부하들과 유비와의 동맹에 대하여 심도있는 의논을 하였다.
3.1.3 유비, 손권의 협력을 계획한 것은 노숙인가 제갈량인가?
내용을 보게 되면 노숙이 동맹을 제안했는지 제갈량이 동맹을 제안했는지 확실하지가 않은데 배송지는 노숙전에 주를 달아 노숙이 제안한 것이라고 하며 그 이유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제갈량이 한 말로 유명한 천하삼분지계는 노숙이 손권에게 먼저 설파했다는 말. 제갈량은 "형주를 토대로 촉을 삼켜라"고 말했고, 노숙은 "형주를 삼켜서 촉을 어렵게 만든 뒤 조조에 맞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형주를 두고 불같이 싸우게 된 것. 일설에 의하면 제갈량이나 노숙 외에도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렸던 말이라고 한다.
3.2 동오 내부의 분열
3.2.1 노숙
손권은 싸울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부하들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이때 조조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근래 천자의 말씀을 받들어 죄지은 자를 처벌하였소. 깃발이 남쪽을 가리키니 유종이 손을 모았소. 지금 수군 80만 명의 무리를 다스려서 바야흐로 장군과 함께 오에서 만나 사냥하려고 하오.
유종도 그냥 항복했으니 이제는 손권의 양주를 정복하겠다는 뜻. 손권 자신이 10만이라고 칭할 정도의 병력이었으나 각지에 흩어져서 반란병들을 토벌하던 세력들도 있어서 전 군은 동원할 수는 없었는데 조조는 손권군 전군이라고 쳐도 8배가 되는 군사를 끌고 온다는 편지가 떡 하고 오니 이 편지를 본 오나라의 신하들은 장소와 진송을 필두로 항복을 주장한다.
이들은 조조는 천자를 끼고 있어 명분이 있다는 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이점인 장강을 이미 조조가 형주를 얻었기에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고 유표의 몽충 1천척을 비롯한 잘 조련된 수군을 얻었으니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이때 동오의 명분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손책과 손권이 구축한 세력은 어디까지나 동오 지역의 호족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들이 그저 일시적으로 난을 피하기 위해 손씨의 세력에 가탁했을 뿐, 한나라 황실이라는 중앙의 권위에 대항하여 할거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손책이 공들여 영입했던 화흠 같은 경우는 이미 손권을 배신하고 조조에게 붙어버렸다. 심지어 손씨 내부에서도 손권의 사촌형인 손분은 아들을 볼모로 보내 조조에게 항복하려고 할 정도였고 이는 주치가 나서서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오직 노숙만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화장실에 가는[10] 손권을 따라잡아 처마 밑에서 만난다. 노숙이 무슨 뜻으로 왔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손권은 노숙의 두 손을 잡고 의중을 물으니 이에 노숙은 다른 사람은 모두 항복해도 손권님만큼은 항복할 수 없다. 신하들이 항복하면 모두 적당히 대우를 받고 태수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으나 손권님만큼은 갈 곳이 없으니 항복하자는 개소리는 무시하고 어서 대계를 정할 것을 권한다.
이는 다른 신하들은 조조의 세력으로 전향하면 벼슬을 하면서 출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뜻인데 실제로 다른 세력에 있다가 조조 측에 투항하여 높은 벼슬을 받은 사례는 여러 명이 있었다.[11] 하지만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손권은 투항해봤자 잘 해야 목숨만 건지고 견제 받으면서 한직이나 내도는 처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들이 견지한 의견은 나의 소망을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었소. 오늘 그대가 원대한 계획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나와 생각이 일치하오. 이것은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내려 준 것이오!
그 말에 손권은 탄식하며 곧장 파양에 있는 주유를 돌아오게 한다.답정너
3.2.1.1 이에 대한 위나라의 기록
노숙전에 주석으로 있는 위서와 구진춘추에는 제갈량이 손권을 도발 한 것이나 싸우자고 주장한 것도 모두 노숙이 한 것으로 되어 있어 다른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손성은 오서 및 강표전에는 노숙이 처음으로 손권과 회견하였을 때부터 조공을 막아야 한다고 진술하여 제왕의 계략을 논하였고, 유표가 죽은 뒤, 곧 사자를 보내 정세를 관찰하게 하도록 요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제 와서 의견을 바꾸어 조공을 맞이하도록 권하여 도발하려 한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행동인데다가 이때 조공을 맞아들이도록 권하는 자가 많았는데, 노숙 한 사람만을 베려고 하였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평했다.
3.2.2 주유
파양에서 돌아온 주유는 사실상 황실의 적인 조조를 오히려 이 기회에 무찔러야 한다며 항복 측의 의견을 반박하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로 인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수전에서는 우리 오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
- 북쪽에는 아직 마초, 한수 같은 배후의 세력이 남아있다는 것
- 지금은 겨울이라 말에게 먹일 것이 없다는 것
- 중원의 사람들이 이 먼곳까지 왔으니 반드시 질병이 돌 것이라는 것.
주유의 이 같은 말에 손권은 전쟁을 결심하고
사악한 적이 한 왕실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로 일어서려고 한 지 오래되었소. 단지 원 씨 두 명, 여포, 유표와 나만을 꺼려했을 뿐이요.[12] 지금 몇몇 영웅은 이미 소멸되었고, 오직 나만 여전히 남아있소. 나는 사악한 적과 양립할 수 없는 형세요. 그대가 당연히 공격해야 한다고 한 것은 나의 생각과 매우 부합하는 것이며, 이는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준 것이오.
그리고는 칼을 뽑아 앞에 있는 주안[13]을 찍으며
제장과 관리들 가운데 감히 다시 마땅히 조조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 탁자와 같게 되리라!
하고는 회의를 끝마쳤다.
3.2.2.1 시기의 문제
주유전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자 주유가 나서 이들을 물리쳤다고 되어있는 반면 노숙전에는 다른 이들이 모두 항복을 논할 때 노숙이 혼자 반대하고 주유를 불러온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배송지는 주를 달아 노숙이 먼저 반대를 한 뒤 주유를 부른 것이 맞다고 확정하며 주유전의 내용은 노숙의 기록을 가로챈 것이라고 기록했다.
3.2.3 사실은 아직도 불안하다
주안까지 내려찍으며 결의한 손권이었지만 조조의 80만의 군대는 확실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주유는 그런 손권에게 밤 중에 다시 찾아가 80만은 아무리봐도 무리이며 조조가 원래 거느리고 있던 병사는 많아야 16만명, 거기다가 아직 확실하게 항복하지 않은 유표의 병사 8만이 다라고 하며 자신에게 5만의 병사만 주면 이들을 무찌르겠다고 한다. 손권은 주유의 등을 어루만지며
공근, 경이 여기까지 말한 것을 들으니 아주 내 마음과 같소. 자포와 원표[14]와 같은 사람들은 각각 처자식을 생각하며 사적인 생각을 마음속에 품어서 기대하던 것을 깊이 잃었으며 오직 경과 자경만이 나와 같을 뿐이고, 이것은 하늘이 경 두 사람으로 나를 돕게 한 것이오.
5만 명의 병사를 군사를 갑자기 모으기는 어려우나 이미 3만 명을 뽑아놓았고, 배와 양식, 전쟁도구를 다 갖추었소. 경과 자경, 정공[15]은 편리한 대로 앞서 출발하면, 고는 마땅히 인원을 계속 발동하고 자신과 양식을 많이 수레에 싣고서 경을 위하여 후방에서 지원하겠소. 경은 이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 진실로 해결하시오. 해후하는 것이 의도대로 아니 된다면 편리한 대로 고에게 돌아오시오. 고가 당연히 맹덕과 이것을 결판내겠소.
그런데 건강실록에 따르면
유비는 제갈량으로 하여금 손권에게 이르게 하였고, 손권은 주유, 정보와 장병 2만, 제갈량과 더불어 유비를 따르게 하여 남쪽에서 조조와 맞섰고, 손권은 스스로 장군이 되어 중군 1만으로 이어나가게 했다.
라고 되어 있다. 오주전에도 정보와 주유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가 2만명으로 되어 있는데 건강실록과 함께 해석하면 실제로 싸운 군대는 주유, 정보의 2만 군대일 가능성이 크다.공근, 자경, 정말 고마운데, 아무래도 2만 명으로만 싸워야 할거 같아 그리고는 주유와 정보를 좌우독으로 삼아서 유비와 함께 힘을 합쳐서 조조와 맞서게 하고 노숙을 천군교위로 삼아 방략 세우는 일을 돕게 하였다. 사실 이 당시 정보는 주유를 그렇게 좋게 보고 있지 않았으니 주유 입장에선 내부 균열을 봉합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었을 듯하다.
3.3 유비와 주유
번구에서 손권의 원군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비는 드디어 손권이 보낸 주유의 배를 발견하고 사람을 보내 주유를 위로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랫사람이 되는 주유는 부서를 떠날 수 없다면서 거꾸로 유비보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이 자리에서 이미 힘을 합치기로 했는데 부르는 것을 안 갈 수는 없다면서 직접 주유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유비는 주유의 군대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3만인 것을 발견한다. 노숙의 말에 허풍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겨우 3만? 유비가 실망감을 나타내며 적다고 말하자 주유는 그냥 자신이 공을 세워 적을 쳐부수는 것을 지켜보기나 하라고 핀잔을 준다. 유비는 예전에 만났던 노숙을 불러다가 함께 얘기를 하자고 하지만 주유는 이번에도 노숙은 명을 받아 움직일 수 없으니 직접 찾아가라고 말한다.
아랫사람이 이렇게까지 대하니 빡칠만도 하지만 유비는 노숙을 부르려고 했던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는 한편 한 군대를 이끌 주유의 엄정함을 확인한 것에 대해서는 기뻐한다. 좋아 이제 포상휴가를 주는 것만 남았군
3.3.1 이 기록의 신빙성
이 기록은 선주전의 강표전에 있는 기록인데 이 뒤에 유비는 주유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2천 명을 이끌고 형세를 관망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손성은 이 기록에 대해
유비는 웅재로, 필히 죽을 형편에 처하자 위급함을 오에 고해 도움을 얻어 달아날 수 있었으니, 다시 강변을 고망[16]하며 훗날의 계책을 품을 까닭이 없다. 강표전(江表傳)의 말은 응당 오인(吳人)들이 전미[17]하려는 말이다.
라고 기록했으며 자치통감 또한 강표전의 내용은 기록하되 유비가 주유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부분과 관망했다는 내용은 제외하고 기록했다.
3.4 전투의 진행
3.4.1 전초전
그리고 두 군대는 적벽에 집결했다. 과연 주유의 에측대로 조조의 군사들은 풍토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첫 교전에서 조조군은 패배하여 장강 북쪽으로 물러났다. 주유는 조조군을 견제하고자 하여 남쪽 강 언덕에 진영을 세웠다. 하지만, 양측의 병력차이는 여전히 컸을뿐더러, 시간이 끌면 끌수록 오나라가 불리해져갔다. 그렇게 속절없이 대치하던 어느날, 황개가 주유를 찾아왔다.
3.4.2 사항계
주유를 찾아온 황개는 적이 배를 서로 붙였음을 지적하며 화공을 사용할 것을 건의한다. 주유는 그 계책을 받아들여 몽충 10척에 마른 억새와 장작을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붓고 휘장으로 덮어서 위장한 다음 위에는 정기를 세우고 미리 주가[18]를 준비하여 그 끝에 맨다.
그리고는 조조에게 항복의 편지를 보내니 조조는 황개의 사자를 만나 자세히 묻고는 결국 황개의 사항계에 속아 넘어가 버린다.[19] 사실 오나라의 신하들은 이미 항복론자가 많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주유와 노숙만이 주전론을 펼친다'는 말은 온전히 거짓은 아니었고, 조조 역시 이러한 내부 사정은 정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황개의 사향계를 믿을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3.4.3 적벽은 아직 불타고 있는가
동남풍이 급하게 불자, 다급해진 황개는 열 척의 함선을 최전방에 내세우고, 강 가운데서 돛을 올려 나머지 배와 함께 차례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조조군의 병사와 관리들을 이를 보고는 "황개가 진짜로 항복하러 왔다!"며 좋아하였지만, 황개는 조조의 배들에서 2리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인화물질에 불을 붙여 조조의 함선들과 충돌하였다. 강한 바람을 타고 사이좋게 엮어져 있던 조조의 배들은 불에 타 침몰하는 배가 부지기수였으며, 곧이어 거센 불길은 강 언덕 위에 있던 군영에까지 이어졌다.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이 하늘에 피어올랐고, 사람과 말은 쉴새없이 낼름 거리는 불길에 사로잡혀 불타올랐으며, 뜨거움을 해소하고자 강에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은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뒤이어 주유는 경무장한 정예병을 인솔하여 조조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뇌고[20]를 쳐서 오림의 조조군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하지만 일등공신 황개는 날아왔던 유시에[21] 맞아 부상을 입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배에서 떨어져 강에 빠졌다. 그가 인솔하던 병사들이 그를 구출해줬으나 어둠속에 그가 누군지 몰라서 그냥 화장실안에 넣어버렸다. 가끔씩 이걸 평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문에는 置廁床中 이라고 하니 평상이 맞긴 하다. 다만 문제는 측상(廁床)이라는게 화장실 속에 비치된 평상이라는 것... 결국 황개는 병사들의 배려로 위생상태 괴악한 당시의 화장실속에서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셈이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황개가 한당을 보고는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쳐서 한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3.4.4 조조의 도망 길
유비와 주유가 계속해서 진격하니 조조는 화용으로부터 도보로 달아난다. 그런데 중간에 진흙탕을 만나서 길이 통하지 않고 날씨 또한 바람이 엄청 불어서 군사들에게 풀을 져다가 그것을 메우게 하고서야 기병이 마침내 지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병들에게 길을 만들어준 파리해진 군사들은 사람과 말에 밟혀서 진흙 속에 빠져 죽고 만다.
유비와 주유는 계속해서 조조를 쫓아 남군까지 도착하는데 도망쳐 나온 조조는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주위 제장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다만 계책을 쓰는 것이 부족하고 늦는구나. 만약 일찍이 불을 놓았다면 내가 비견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잠시 후 유비가 불을 놓았으나 이미 조조는 지나간 뒤였다.
3.4.5 기타 다른 기록들
태평어람에서는 영웅기의 기록을 보여주며 조조가 땟목을 만들었고 그걸 주유가 불태웠다고 말한다. 또한 오주전에서는 조조가 남아있는 배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고 한다.
산양공제기에서는 적벽에서 조조의 군선을 불태운것을 유비라고 기록하고 있고 화용도에서 조조가 달아나며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다만 계책을 쓰는 것이 부족하고 늦구나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주전에서도 유비가 먼저 공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뒤에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다고 하지만 둘 다 조조를 격파한 걸 유비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유비도 주장의 신분으로 이 전투에서 주유의 손오의 군대 못지 않은 활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5 결말과 평
사실상 실제 역사에선 조조에 맞서 유비와 손권이 군단 단위 전투로는 처음으로 제대로 한 방 먹인 사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삼국지 관련 작품들은 제갈량의 극적인 활약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인지 대부분 연의의 내용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조조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주유에게 남군을 빼앗기는 등 형주 남부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반대로 유비의 세력이 이를 거점으로 급격히 팽창했다. 자세한 내용은 형주 공방전 참고. 정원기 교수는 조조의 패인이 형주의 민심을 다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서둘러 공격한 데다가 궁지에 몰린 유비와 손권을 압박해 둘이 힘을 합치게 만들어 난이도를 스스로 올린 것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적벽대전이 겨울(음력 12월의 동지철)에 일어난 것을 본다면 조조가 전투를 서둘렀으며 이는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22] 주유가 지적했듯 조조군은 유비를 쫒기 위해 상당한 강행군을 하였으며 이들은 물 위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조조군의 주유, 유비 연합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전력이었던 기병의 경우 말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으며 또한 배 위에선 기병의 강점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조조는 자신의 군의 강점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을 전쟁터로 삼은 셈이었다.
조조군이 전염병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기록을 본다면 군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후 조건과 강행군의 여파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조조군이 주유군의 화공에 대책없이 당한 것을 본다면 적벽이 좁은 협곡을 끼고 있어 대선단을 기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인 듯하는데 그 이유는 넓은 곳에 포진하였다면 기동함으로써 화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조는 유종을 공격하기 위해 남하할 당시 손권까지 공격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 보이며 이는 중요한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합비에 대한 수비가 매우 빈약한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즉 조조가 적벽에서 싸우는 것은 치밀한 계획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 유종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자 내친 김에 손권까지 정복해 보려는 다소 즉흥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결과 조조군은 만반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편없는 컨디션으로 대군이 싸우기에 불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조조가 직접 지휘한 전투 중 유례없을 정도의 참패를 당하게 된다.
참패에 의한 손실이 상당히 큰지 조조는 화용도를 황급히 빠져나오는 구절이 정사에 보이며, 남군을 지키라고 남겨둔 조인의 경우 손권, 유비의 연합군보다 열세의 병력으로 지켜야했다. 적벽대전 이전 조조가 거느린 병력의 수가 유비, 주유의 연합군을 크게 웃돈 것을 감안해보면 조인이 이토록 적은 수의 병력을 거느린 것은 사실상 조조가 적벽전투에서 그의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고 봐야 하고 따라서 적벽에서의 패배는 삼국지 연의에서 묘사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의 대참사라 추측된다. 이 때의 손실의 여파 때문인지 조조는 그 이후로 대규모 총력전을 통해 유비나 손권을 멸망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국지적인 승리에 만족하며 병력을 철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기다가 사실상 거저 얻은 남형주는 그대로 유비와 손권에게 넘어가버렸고 덕분에 유비는 훗날 익주로 진출할 발판을 얻게 된다.
다만 배송지의 경우는 가후전에 가후가 더 이상의 진격을 반대하는 대목에 주석을 달아 조조의 이런 결정을 옹호하며 결과가 나빴을 뿐이지 의도는 좋았다며 득롱망촉의 고사까지 들어가며 설명을 한다.
또한, 조조가 이처럼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고 시기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굳이 전면전을 감행하였다가 참패를 초래한 원인을 조조의 연령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적벽대전 당시 조조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현대라면 '훗, 이제부터 중년의 원숙한 노련미를 보여주지!' 라고 말할만한 나이겠지만... 당대의 기준으로는 이미 할아버지 테크를 탔다고 봐야 할 나이였다는 점을 생각하자. 예순을 넘기기도 쉽지 않고 일흔을 넘기면 드물게 장수한 것이라고 하던 당시 기준으로 조조는 사실상 은퇴할 시기가 멀지 않은 노인이었다. 그런데 한번 출병한 군대를 되돌린다면... 갓 점령한 형주를 안돈하고 다시 출병을 준비하는 데는 수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 경우 나이 예순에 가까운 조조가 다시 직접 출병할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했던 것. 노년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도 상당하고, 예순살 노인이 직접 군을 이끌고 출전한다고 하면 주변의 만류나 불신등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도 감안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뭐 실제로 삼국지(정사든 연의든)를 보면 이후에도 조조가 직접 군을 이끌고 출병한 사례가 몇 차례 더 있었으니 지나친 걱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23] 어지간하면 내일이 보장되는 젊은이의 사고방식과 하루하루 늙고 쇠약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노인의 사고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특히 그때까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천하를 재패해 온 조조로써는 보장되지 않는 훗날을 믿기보다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쪽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더구나,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맞선 손권-유비진영의 주요 인물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조조와 비슷한 세대인 유비를 제외한 손권, 주유, 제갈량등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조조보다 20세 이상 젊었다. 즉, 당시 조조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한 세대 젊은, 아들뻘 되는 세대들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충분한 활력을 가지고 대두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결국 적벽대전 당시의 조조는 자신의 세대를 제패하고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젊은 세대가 성장해서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세대론의 입장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당장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이 당연하다. 자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쇠약해지고 약해질테고, 젊은이들은 경험을 쌓아서 성장하며 강해질 테니까.
이런 조조의 개인적 상황에 맞물려, 예상보다 훨씬 쉽게 형주를 점령한 결과 형주 점령을 위해 준비한 군대와 군비가 온전히 남았고, 약점이었던 수상전력 역시 형주를 흡수하면서 어느정도 보충된 상황이라면 준비가 불충분하고 상황이 최적이 아니라도 당장 싸우는 쪽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적벽의 대패로 입지가 약해진 조조는 이후 동작대를 세우면서 "내가 다른 애들은 다 잡았는데 유비랑 손권 등만은 평정 못했으니 군권 못 내놓는다"면서 입지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이후로도 조조에 반항하는 이들은 많았다. 군사적 세력으로는 여전히 조조가 최강자였지만 적벽 이후 정치적 세력으로는 유비와 손권이라는 라이벌들이 힘을 얻어서[24] 조조에겐 골치 아프게 된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은 조조가 천하통일 바로 직전에서 좌절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 본인에게 천하통일의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3.6 과연 적벽대전은 존재했는가
애초에 정사의 기록이라며 잔뜩 설명해두고 뭐하는 짓이야
사실 정사에서 누구의 기록을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좀 다른데, 무제기(조조전)에서는 역병으로 군사를 물렸다고 짤막하게 기록된 반면 주유전에서는 화공으로 조조군이 다 불탔으며 연기가 하늘을 메웠다는 묘사가 나온다.
정사 삼국지는 위를 이은 진의 사서라서 조조의 패배를 돌려 말한데 비해(군사를 물렸다거나 이길 수 없었다거나) 여기서 자유로운 산양공재기의 경우는(산양공, 즉 헌제의 측근이 쓴 사서다.) 확실히 조조가 패배했다고 쓰고 있다. 기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정사의 모든 기록들을 자세히 종합해본다면 적벽에서 실제로 큰 싸움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선 무제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록에는 적벽에서의 전투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적벽에서의 전투는 앞서 말했던 전초전으로 주유의 화공으로 대승을 거둔 것은 오림이다. 진수도 혼용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구분해서 알아두도록 하자.
3.7 연합군 병사의 규모
일단 대체적으로 군사의 규모는 비슷하지만 살짝 살짝 차이가 난다. 먼저 선주전에 주석으로 딸린 강표전의 기록에 따르면 주유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갈 때 유비는 2천의 군사로 뒤에 남았다고 나와있다.
정사 제갈량전의 제갈량의 말에 따르면 유비의 패잔병에다가 관우의 수군을 합쳐 만명, 강하의 유기가 지원한 병력 만명, 이 둘을 합쳐 2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고 나오고 손권은 3만의 군사를 지원했다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오주전의 기록을 보면 정보와 주유가 각기 1만을 이끌고 갔다는 말이 나온다.
거기다가 주유전 주석에는 5만을 달라는 주유에게 손권은 갑자기 5만을 주기는 어렵고 이미 뽑아놓은 3만이 있다는 말이 있으며 주유가 유비에게 3만의 병력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걸로 손권측의 군대는 3만이 거의 확실해지나 유비쪽은 손성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말한 강표전의 2천이라는 말과 제갈량이 주장한 2만이라는 말밖에 없어서 2만으로 추정된다.
결국 그들의 군대의 규모는 유비군 2만(제갈량의 주장)+ 손권군 3만 해서 5만의 병력 정도. 추가적으로 적벽에 참가한 오나라의 장수는 주유, 정보, 노숙, 황개, 한당, 감녕, 여몽, 주태, 능통, 여범, 서성이 확인된다.
3.8 화계의 실제 전공
기록에 따르면 결국 전투를 결정지은 화계는 10여척의 배와 동남풍 두가지만으로 효과가 극대화되었다는 기록뿐이다. 다만 이 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어림잡아도 10만명 규모를 실을 배들을 끌고 왔는데 기껏 10여척의 화공선에 허무하게 패퇴했다는 점에서 조금 의문이 든다. 이 점에서 정사나 자치통감중 어느 한쪽 자료가 부실하거나 안맞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화계의 효과가 해상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려면 불이 옮겨 붙을 필요가 있으며 불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질 지언정 붙어있지 않는 한 번지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큰 효과를 내려면 배끼리 근접할 필요가 있는데 자치통감에는 실제로 쇠사슬을 연결했다는 기록이 없는 반면 다른 기록중 수전에 익숙치 않은 병력을 위해 실제로 쇠사슬로 연결했다는 기록도 있기에 자세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황개가 겨우 10여척만을 이끌고 화계에 나선 것도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화공에 동원된 배들은 수십여척이라는 기록도 존재한다. 따라서 화공선의 규모 부터도 제대로 된 기록을 검증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제 화계 효과는 더 측정하기 힘들고 이 점 때문에 화공만으로 오군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의견은 신빙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점들에서 여러가지 교차 검증이 많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의견으로는 주유전과 무제기를 조합한 결과이다. 화공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도 맞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패주 요인은 전염병이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화계는 전염병으로 저하된 사기를 결정적으로 터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인 것.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는 생각보다 무시하기 힘든데 전염병은 사기 뿐 아니라 실제 병력 손실과 부상병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며 동료의 전염병이 자신에게 감염된다는 공포와 전염병 관리로 인해 진영이 어수선해지는 효과까지 나오며 실제 관리도 안되서 삼국지 무장중 병으로 죽은 명장만 여럿 된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든지 전염병은 패주 원인으로 매우 좋은 기폭제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2차 합비전인데 이 당시에도 장료의 습격이 충격적이긴 했으나 10만명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그냥 돌아간 결정적인 원인은 결국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였다. 물론 저 전염병이라는 기록이 기록자가 패자 입장에서 변명차 구겨 넣은 구실적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단순 변명용 거짓 기록으로 치부하기엔 시대상 의료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시기의 전염병은 충분히 전황을 좌지우지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는 가능성이 있어 어느정도 사실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도 있다.
4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
4.1 시작
조조군의 남하와 바로 항복해버린 유종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유비군은 간신히 신야에서부터 도망쳐서 당시 하구에 머물게 된다. 유비군의 참모 제갈량은 직접 강동으로 건너가 손권은 만나기 전에 먼저 장소, 우번 등의 오나라 화평파 문신들을 패드립을 동원해 키배(…)로 발라버렸다. (이 키배에 관해선 제갈량 항목 참고.)
이후 손권 앞으로 간 제갈량이 설득을 계속하지만 손권은 결단을 못 내리고 주유를 호출한다. 여기서 주유는 조조는 킹왕짱이니 싸워도 개털림. 그냥 항복하셈이라는 말을 하지만, 제갈량은 그것도 현명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역사에 길이 남을 패드립을 남긴다.
조조가 업에 동작대를 올리면서 동작대부란 시를 지었는데, 거기서 강동의 두 미녀 대교와 소교 자매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둘을 조조의 첩으로 보내면 이겼다! 고민 끝!이 된다.
실제 동작대부에 "連二橋(이교)於東西兮"라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여기에서 이교는 대교와 소교를 칭하는 것이 아닌, '두 다리'로 한자가 달랐다. 이부분을 제갈량이 "攬二喬(이교, 여기서는 당연히 대교와 소교다.)於東南兮"로 슬쩍 바꾼 것. 문제는, 저 대교와 소교가 각각 손책과 주유의 부인이란 것. 즉 저 소리는 손권한테는 자기 형수를, 주유 입장에서는 자기 처도 모자라 처형까지 대놓고 조조가 NTR하게 갖다바치란 것이다. 이에 열이 뻗힌 두 사람은 바로 전쟁을 선포하고 손권이 칼로 책상을 반토막낸다.[25]
그리고 노숙, 주유 등과 함께 조조를 물리칠 계책에 대해 논의한다. 조조군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대부분이 내륙지방 출신이기에 수군이 강한 손권군과는 반대로 해전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었다.
4.2 모략전
적벽대전의 서전에 해당하는 조조와 주유의 모략전은 아주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보다보면 완전 첩보전 수준 단순히 동오와 조위 사이의 모략 뿐만 아니라 제갈량의 재주를 경계하는 주유와 이로 비롯된 견제 및 암해도 일미.
일단 손권은 설득당하긴 했지만 아직도 내심 불안해하였고 이를 간파한 제갈량은 이 사실을 주유에게 알린다. 확인 결과 제갈량의 추측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이때부터 주유는 내심 제갈량을 경계하고 제거하려 한다. 노숙이 말려서 일단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을 시켜 제갈량을 스카웃하려고 시도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형님께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셈"하고 역으로 스카웃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어쨌든 동맹 관계인지라 대놓고 제갈량을 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소수의 병력을 지원하겠으니 조조가 군량을 쌓아둔 취철산을 공격하라고 퀘스트를 내준다. 물론 실제로는 조조의 손을 빌어 제갈량을 제거하겠다는 속셈. 하지만 제갈량은 걱정되어 찾아온 노숙에게 넌지시 주유가 수중전밖에 모른다고 디스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주유는 길길이 뛰며 자신이 직접 공격하겠다고 나선다. 그제서야 제갈량은 "조조가 평생 하는 짓이 군량 털기인데 가봤자 역관광 당한다"고 조언해서 자연스럽게 무마시킨다.
그리고 양측은 전초전을 벌이는데 조조군은 허접한 수군 실력 때문에 패배하고 이에 조조는 수전에 능숙한 채모와 장윤을 수군 도독으로 기용한다. 이에 주유는 두사람이 위협이 될 것을 짐작하여 제거하려고 한다. 마침 조조 측에서 주유를 항복시키겠다고 장간이 나선다. 하지만 주유가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장간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쩔쩔맨다. 오히려 주유는 장간을 거꾸로 이용하여 장간에게 조조군의 수군 담당자인 채모와 장윤에게 보내는 거짓 밀서를 가져가도록 상황을 꾸미고, 결국 주유에게 제대로 낚인 조조는 그들을 의심하여 목을 치게 된다.
물론 주유의 이 계책도 제갈량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노숙에게 설명한 뒤, 주유에게는 내가 알아차렸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노숙은 전부 일러바친다.(...) 하여 핑게를 잡기 위하여 주유는 제갈량에게 화살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제갈량에게 유비군은 밥만 쳐먹고 하는 일도 없으니 열흘 내에 10만 발의 화살을 만들어 내라고 퀘스트를 준다.[26] 이에 제갈량은 한 술 더 떠서 사흘이면 된다고 하고, 주유는 옳다구나며 군령장까지 적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갈량의 큰소리를 미심쩍게 생각한 주유는 노숙을 보내어 제갈량이 무슨 속셈인지 염탐하게 한다. 제갈량은 찾아온 노숙에게 너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책임지셈 하여 필요한 물자를 뜯어내면서 입단속을 시킨다.[27] 하지만 약속한 기일 바로 전날까지 장인을 동원하지도 않다가 그날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끼자, 동오군에게 배를 빌려 짚을 실은 뒤 조조군 진영 근처로 갔다. 의심 많은 조조는 접근하려 하지 않고 대량의 화살을 밤새 쏘아댔으며, 짚더미에 꽂힌 화살을 회수하니 10만발이 넘었다고 하며 이를 들은 주유는 기겁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화살을 쐈으면 어쩌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날씨가 안개상태라 불화살 커맨드가 비활성화 됐다고도 한다.[28]
화살 10만 발을 잃은 조조는 뭔가 좀 해야 되겠다 싶어서 처형당한 채모의 사촌 동생인 채중과 채화를 주유에게 거짓으로 투항시킨다. 채중과 채화는 채모가 조조에게 처형당해 분노했다면서 주유에게 믿음을 사지만 주유는 그들이 첩자라는 것을 다 꿰뚫어보고 있었다.[29]
한편 조조를 어떻게 격파할지에 대해 주유와 제갈량의 의견은 화공으로 통일되었고 때마침 황개도 주유를 찾아서 화계를 진언한다. 자세한 내용은 고육지계 및 감택 문서 참조.
여기에 의문을 품은 조조는 다시 장간을 보내는데 주유는 짐짓 자신과 내통하던 채모와 장윤이 정보 누설로 죽였다고 분노하는 척 하면서 장간을 붙잡아 한 암자에 가둬버린다. 여기서 장간은 방통을 만나는데 방통은 주유가 자신의 재능을 질투하여 암자에 가뒀다고 말하고, 조조에게 등용되고 싶다면서 장간과 함께 조조 진영에 간다. 조조는 '복룡 봉추'로 이름 높은 방통이 자신에게 왔다는 것에 기뻐한다. 방통은 북쪽 병사들의 배멀미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조조에게 "연환계"를 진언하여 배를 전부 쇠사슬로 묶게 해버린다. 정욱은 이 상황에 화공을 걱정하지만 조조는 풍향이 맞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전투 전날, 조조는 휘하 장졸들을 강가에 모아 놓고 연회를 벌였다. 연회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조조는 단가행이라는 시를 지어 즉석에서 읆는다. 하지만 시를 듣던 사람중 유복이 전쟁을 앞둔 시점인데 시구 하나가 불길하다는 말을 조조에게 했다가 조조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조조의 창에 맞아 죽어버리고, 이로 인해 연회는 흐지부지 끝나 버린다.
4.3 전투
오나라는 위를 공격할 모든 준비를 전부 마쳤지만 풍향이 맞지 않아서 화공을 시도할 수 없었다.[30] 주유는 너무 고민한 나머지 한 차례 쓰러지는데 제갈량이 약이 있다며 주유를 찾아가 술법으로 동남풍을 불러오겠다고 한다. 여길 기점으로 제갈량이 여러번 약을 팔기 시작한다
주유는 이를 믿지 못하나 제갈량은 기도를 하여 천문을 움직여 풍향을 바꾸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주유는 경비병까지 배치하며 제갈량이 남병산에서 칠성단[31]을 만들어놓고 기도를 올리는 동안 지켜본다. 제갈량이 며칠간 기도를 마치자 정말 풍향이 바뀌어 동남풍이 불고 주유는 천문까지 바꾸는 제갈량의 능력에 경악하여 제갈량을 죽이려 하나 조운이 제갈량을 구출해 가면서 실패하고 만다.[32]
아무튼 풍향이 바뀌었으니 주유의 오군은 진격을 개시한다. 첩자 노릇을 하던 채중은 감녕에게 오림으로 잡혀가서 목을 잘리고, 채화는 주유에게 끌려와서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군사들 앞에서 처형당한다.
황개는 짚을 가득 실은 배를 싣고 조조군 진영으로 오는데, 깃발에는 뻔뻔스럽게도 '선봉황개'라고 써있으며 양곡을 실어놨다는 배가 흘수선이 너무 높아 충돌 직전에 정욱에게 들키게 된다. 형주 출신이라 그나마 수전에 능한 문빙이 저지하려고 나섰지만 일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서 화공에 당해버리고 사슬로 묶인 배들은 뗄 수가 없어서 서로 붙어 깔끔하게(…) 타버렸다.
조조군은 그 가운데서 떼죽음을 당하고 만다. 조조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달아나지만 유비군이 이를 추격한다. 조조는 복병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껄껄 웃으면서 유비를 비웃지만 그때마다 장비, 조운에게 차례차례 복병을 당해 군사들을 잃고 만다. 결국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빌고 빌어 수 차례에 걸쳐 굴욕씬을 연출하며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가버린다. 말 그대로 조조군의 참패.
5 연의에서 각색된 부분
...까지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묘사된 모습으로 주원장과 진우량이 싸운 파양호에서의 싸움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 파양호 대전 항목도 알차니 보면 얼마나 닮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의에서는 나관중의 문학적 재능에 의해 상당히 극적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적벽대전의 중요섬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벽대전은 아래서 읽을 수 있듯이 중요한 싸움이었다. 나관중의 각색은 워낙 중요한 싸움이니 그에 걸맞게 극적인 각색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아무튼 연의에서 각색된 부분은 앞에서 말한 동남풍은 말할 것도 없고 몇 가지 더 말한다면...
- 채모와 장윤이 수군 대도독, 부도독을 맡다가 조조에게 죽게 하도록 장간을 이용했다는 것은 허구. 주유와 장간은 서로 아무 관계도 없고 전쟁이 끝난 뒤에 생애 딱 한 번 만난 사이다. 더욱이 장간은 사실 당대의 유명한 거상이었다. 이중 스파이로 삽질을 거듭하는 채중과 채화 역시 허구의 인물들이다.
- 방통이 등장하는 것은 나관중의 신캐릭터의 임팩트 있는 등장을 위해 배치한 장면이다. 배를 묶어 배멀미를 달래는 것은 조조군 내부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어찌 되었건 간에 털렸다.
- 조조의 후퇴 중 이리저리 복병에게 쳐맞는 묘사 역시 허구이다. 형주 수비군들에게 나름 할 일을 다 제시한 뒤에 여유있게 허(許)로 돌아갔다. 그 뒤에 형주는 제대로 관광을 타지만... 그나마도 제갈량은 조조가 형주/남군 길에서 형주 쪽을 택하고 남이릉/북이릉 갈림길에서 북이릉으로 갈테니 조운은 형주 길을, 장비는 북이릉 길을 막을 것을 명령하지만 조조는 남군 강릉으로 가기 위해 남이릉으로 이동하고, 조운은 남군 가는 길에[33], 장비는 남이릉 길에서 조조를 습격한다(...)
어찌 보면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좋은 부분이다. 이 사건 전에 사실상의 진 주인공인 제갈량이 등장하고 서서히 제갈량의 활약이 쌓여가면서 지금까지 거의 불패에 무적이던 조조가 크게 패배하며 이야기가 조조 1강 체제에서 조조, 유비, 손권이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삼파전이 시작된다. 적벽대전의 구성 자체도 거대한 적 한 명을 두 약한 동맹이 극적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만들기 좋은 구성이라 적벽대전만 다룬 작품도 많을 정도다.
그전까진 강동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정도로만 나오던 오나라가 본격적으로 스토리에 개입하는 부분인지라 오나라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부분이다.
제갈량이 대폭 부각된 연의와는 달리 정사에선 제갈량의 활약이 외교뿐이라고 까는 사람이 있지만 연의는 정사에서 간략하게 묘사된 부분을 소설적으로 묘사하고 흥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
우선 동오의 설전. 물론 작중 묘사된 것과 같은 설전은 없었겠지만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할 때 손권이 순순히 넘어갔을까? 손권의 마음을 잡고 혹시나 모를 항복론자들의 논리를 논파하기 위해 제갈량도 무던 애를 썼을 것이다. 최소한 손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전한 부분은 나와있다만…
그리고 작중 주유가 제갈량을 죽이려 하는 것은 그런 손유동맹이 속으론 다소 위태한 상황이었음을 예고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론 동맹파였던 주유가 악역이 된건 아마 도독이었던 그가 더 위협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선 형주를 지키거나 빼앗는 게 이득이었기에 같은 편이라 해도 뒷날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6 트리비아
그 유명세 때문에 별로 상관없는 조선에서 '적벽가'라는 판소리로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조조는 장승을 보고 "장비도 끔찍한데, 그 사촌이냐!"하면서 덜덜 떠는 추태를 보였다. 아니, 원래 민담에서 조조가 추태보이는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밌는 것이 적벽대전은 삼국지 연의 120화 중 50화정도에 끝난다.[34] 즉, 절반도 안된 부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보통 아동용 삼국지 각색물(보통 5권 정도 하는)들에선 4권, 즉 최후반의 빅 이벤트로 나온다.
조조의 대군이 백만대군이 아니라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7 기타 창작물
당연히 삼국지 관련 게임/영상물에서는 끊임없이 언급되며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연의 기준으로 나가는데 물론 정사 내용을 참고하는 작품들도 없진 않고, 아예 연의와 정사 둘 다 생까고 제 3의 루트(?)를 타는 작품들도 많다.
7.1 삼국전투기
제 3의 루트를 타는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는 유비군과 제갈량 둘 다 전쟁 내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와 위 둘 사이에 끼여서 기회주의적인 면모만을 보인다.
7.2 창천항로
창천항로의 경우 황개의 고육지계에 이은 화계로 패배한 후 도망가면서 더욱 거치지 않으면 안될 패배다 등으로 말하며 정신승리 계획대로의 표정을 짓는다. 흠좀무. 그리고 전쟁 처음부터 조조에게 하악거리던 제갈량은 조조에게 그 존재를 무시당하고 한동안 안보이더니 성도 전투에서 과거의 괴이한 이미지를 벗고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35]
7.3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관련 이벤트가 시리즈마다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삼국지 11에서는 적벽대전 이벤트가 안 나온다. 웃기는 건 삼국지 11 매뉴얼에서는 이벤트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에서 적벽대전이 언급되어 있었다.[36] 6PK 이후로 전통이 된 전술시뮬레이션 모드에서도 관우의 죽음 부분과 함께 전부 재현된 전투.
예를 들어 삼국지 10 PK의 적벽대전 시나리오에서는(조조군 기준 서술), 초반에 역병으로 인해 병력이 감소한 뒤 몇 턴 후에 감택이 조조에게 거짓항복을 하러 오는데, 이 때 설전 이벤트 할래? 말래? 선택지가 나온다. 당연히 안 하면 나중에 황개가 조조 군 아무 배로나 접근하면 화공 때문에 개발살이 나므로 조조로 이기고 싶으면 해야 한다. 물론 신들린 컨트롤로 황개를 접근하기 전에 죽이면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지만...
명령을 받지 않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지원군들과 오군의 배가 제일 좋은 배(투함)들이라 설전 전에 도발을 이용한 유인으로 죽이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데 유인을 가지고 있는 게 조조 혼자인 데다가 2턴 정도면 풀리기 때문에 엄청난 화력 집중이 필요하고, 조종 가능한 궁병부대가 채모 혼자이므로 포기하는 게 좋다. 만약에 이 설전을 이기면 오히려 황개가 조조군 배로 접근했을 때 조조군이 역화공을 걸어서 적군들을 다 개발살낼 수 있다. 그럼 승리가 거진 확정된다. 반대로 설전을 졌을 경우에는 이미 끝났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조조로 적벽대전을 클리어한 후에는 허저로 개인 플레이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는 허저로 조조와 설전을 떠서 이겨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온다. 물론 다른 군대를 선택 시에는 그냥 원작대로 플레이 하면 된다.
삼국지 12에선 수전이 없어서 적벽대전을 실제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이벤트로 진행된다. 물론 스토리 전개는 연의를 따르며 내정 좀 하다보면 각종 이벤트가 알아서 진행되면서 조조가 그냥 물러가고 유비가 강릉을 낼름 먹어치운다. 동영상으로 연의 이벤트를 나름대로 충실히 재현하지만 실제로 인게임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것은 마이너스 포인트.
삼국지 13에서는 영걸전 스테이지와 본편 시나리오로 등장하며 수전도 추가되었다. 물론 이벤트도 존재.
7.4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짤막하게 이벤트 씬 한두 장면으로 처리되고, 전투 자체가 없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주유가 제갈량을 처치하려고 보낸 군사들로부터 도주하는 전투와 손발이 오그라지는 동영상 이후 패주하는 조조군을 발라먹는 전투가 있다. 일방적인 추격전으로, 조조군이 모두 제정상이 아니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군 부대 수가 적보다 많은 전투다.[37] 뭐 그래봤자 1부대 차이에다 이건 컨트롤이 불가능한 아군 잡궁병과 잡보병을 포함한 숫자다. 게다가 아군 부대들은 흩어져 있어서 각개격파당하기 쉬우므로 숫적 의미가 거의 없다. 이때 곽가가 살아있으면 주유의 화계를 간파하나 그렇지 않으면 물위에서 보정을 받는 손권의 수군을 상대하느라 애먹게 된다. 하지만 간파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불탄 배들이 오히려 적당한 장애물이 되주기 때문에 의외로 상대하기 쉬운 구석도 있다. 물론 조조전 전체의 전투들과 비교해 볼 때 꽤 난이도 있는 전투인건 사실이다. 화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혹은 간파했어도 아군 피해가 누적되면 화용도를 통해 도망치는 전투가 구현되는데 조조전에서는 다소 어려운 전투로 나온다. 주인공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기 때문.
7.5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데 특히 진삼국무쌍4에서의 조조의 대사가 하나하나 큰 웃음을 주어서 명대사로 꼽히고 있다.승리의 정승욱
진삼국무쌍5에서는 수영 시스템의 추가로 적을 배에서 날려 물로 떨어뜨리거나 직접 물로 뛰어들수 있다. 문제는 배에서 뛰어내리면 다시 올라갈수 있는 계단이 꽤 멀어서 한참 수영해야 된다. 그리고 이전까진 움직일수 없었던 배가 이번 작에선 징을 울리면 실시간으로 움직일수 있게 되었다. 배를 육지에서 떼어놔 선상을 방해하는등의 행동이 가능...하지만 적벽전 맵 자체가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맵이라 잘 쓰이지는 않는다. 조조군 시나리오로 할시 방통을 없애거나 제단을 파괴하거나 둘중 하나만 해도 클리어가 수월해진다. 손권군 시나리오의 경우는 제갈량의 기도를 방해하는 적을 처단하고, 황개를 화공선까지 무사히 인도하면 화계가 벌어지고 적군 사기가 대폭 하락하므로 쉬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번외로 여포군 시나리오가 존재하는데, 조조vs손권 싸움에 끼어들어 깽판을 치는(...) 스테이지. 황개를 잡거나 제갈량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화계를 방해할 수 있고, 그냥 방치해뒀다가 다 잡을 수도 있다. 특기할 점으로 조조를 잡으면 전위가 격분하고, 손권을 잡으면 주유가 격분하는데, 조조와 손권을 잡고 나서 주유와 전위가 다 살아 있다면 조조군과 손권군이 연합하여 공격해온다. 그리고 진궁, "이런이런" 킬수를 왕창 늘리고 싶다면 이 쪽이 나을 것이다.
진삼국무쌍6에서는 조조군일 경우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연환계, 동남풍, 화계 저지가 전부 불가능하다. 허저가 암만 무쌍펼쳐봤자 무조건 화계이벤트가 일어나고 전 부대가 속속들이 나가떨어지니 조조 탈출에만 신경쓰자. 후편은 적벽탈출전. 손권군은 주유로 본진과 제단을 노리는 조조군을 막다보면 화계이벤트가 일어나고 황개로 플레이무장이 바뀐다. 이후는 학살타임. 유비군은 조운으로 공작선의 연노에 탑승해서 배에 올라타는 조조군 장수들을 격파하면 된다. 후편은 관우로 조조추격.
진삼국무쌍7에서는 위군은 사실모드면 6편처럼 대패하지만, 곽가가 살아있는 IF모드면 오히려 역관광하는 시나리오. 오나라 시나리오는 화공준비를 위해 우선 조조군 예봉을 몰아낸 뒤, 제갈량을 엄호해 책략을 성공시키는 시나리오다. 촉군 시나리오는 유비, 제갈량, 조운이 손상향과 노숙의 엄호를 받아 동남풍을 일으키고, 연환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조군 내부에 잠입한 방통을 도우로 조조군 선단에 진입해 책략을 마무리하는 것. 여기서 IF조건을 만족시킨 상황[38]이라면 서서를 설득시켜 전장을 이탈하게 한 뒤 클리어 후 다시 유비에게 돌아오게 된다.
7.6 RPG 게임 적벽대전
삼국지 무장쟁패와 폭소피구로 유명한 대만의 팬더에서 적벽대전이란 RPG 게임을 발매하기도 했다. RPG게임으로서는 독특하게 주인공이 3명이었으며, 유비, 조조, 손견 3명 중에서 한명을 선택해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대신 게임의 전체적인 길이는 조금 짧다. 무장들이 무장쟁패의 그래픽 그대로 도트화되어 등장하는 것도 특징. 제목은 적벽대전이지만 시나리오는 황건난때부터 시작한다. 최종전은 역시나 적벽대전으로 마무리.
7.7 영화 적벽대전
영화로는 적벽대전이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7.8 명탐정 코난
명탐정 코난의 애니메이션 558~561화의 에피소드인 사망의 관, 붉은 벽(死亡の館、赤い壁) 에피소드에서 붉은 벽이라는 의미의 赤い壁에서 의미가 없는 글자인 い를 제외하면 적벽대전이 일어난 장소인 적벽(赤壁)을 가리키는 글자가 된다.
실제로 명탐정 코난 내에서의 붉은 벽은 피해자가 만들어낸 다잉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모로후시 타카아키 경부가 제갈량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중의적인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사용된 부제 또한, 삼국지와 관련된 고사이다. 삼고의 예, 장중의 물건, 죽은 공명[39], 공성의 계.[40]
7.9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선 특이하게도 오군의 모든 계략이 이미 조조에게 들통난 상황.
가후가 이미 계략을 다 꿰뚫어 본 상황이기에 오군이 오히려 궁지에 몰려 고생하는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사마의가 이중삼중으로 첩보전을 벌이며 밀약했음이 밝혀지면서 전개는 반전되고, 결국 조조군 함대는 본래 역사대로 주유에게 박살난다.
심지어 화용도를 통해 달아나야 했을 조조는 아예 제갈량과 관우에게 사로잡히기까지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사마의와 제갈량은 여기서 조조가 죽으면 오나라가 너무 급속히 커진다는데 의견을 일치하고 놔준다. 순식간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름으로 조조를 놔주게 되어 의리의 화신격이 된 관우의 투덜거림은 덤(...)
7.10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47화 제목. 극 중에서 적벽무술대회 라는 무술대회에서 조조와 사마의가 신화가 시작된 장소라는 점을 이용, 카이저 영웅패의 완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영웅심을 흡수하고자 대회장을 습격한다.- ↑ 주유의 주장
- ↑ 조조의 편지
- ↑ 오주전 정보와 주유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 한정.
- ↑ 선주전 주석 강표전, 제갈량전, 자치통감, 건강실록에 따르면 주유, 정보군 각각 1만씩보내 유비군과 함께 조조군과 싸우게 하고 손권이 후방 중군으로 1만을 거느렸다 되어 있다.
- ↑ 선주전 주석 강표전에 유비가 후방병력과 함께 남은 2천병사를 뜻하는데 이 기록은 다른 기록과 달리 유비가 직접 공격한게 아니라 후방에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오류로 여겨진다.
- ↑ 제갈량전 제갈량의 주장
- ↑ 사실 연의의 위용만큼 크고 아름다운 절벽과 강폭은 아니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험난한 지형이다.
- ↑ 이 가후의 의견에 대해서는 배송지가 길게 평을 해뒀는데 아래의 결말과 평 항목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스포일러도 많고 말이지 - ↑ 악현은 강하의 속현인데 호종이 악현장을 지내는 등 손권의 땅이었다.
- ↑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도 화장실에 간다는 말이 된다. 당시 화장실은 사용방법이 좀 복잡한지라(…)
- ↑ 대표적으로 조조의 친아들, 조카, 심복을 죽인 것을 포함해서 조조에게 두번이나 빅엿을 먹였음에도 조조의 생전에는 측근으로 중용되었던 가후를 들 수 있다.
- ↑ 사실상 조조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세력들이었다.
- ↑ 천자에게 올리는 글을 올려놓는 책상
- ↑ 각각 장소#s-2와 진송의 자
- ↑ 程公. 정보를 말한다.
- ↑ 顧望-형세를 관망하며 거취를 결정하지 아니함
- ↑ 專美-아름다운 명성을 독차지함
- ↑ 일종의 쾌속선으로 쇠북종과 기치를 배 위에 설치했고 뱃전 위에는 낮은 담을 세웠으며 노를 젓는 선부는 많고 전투병이 적은 병선이다. 승선원이 전부 힘센 장사에다 정예병이었으며 배의 속도는 마치 갈매기처럼 빨랐다고 한다. 이상 해당 내용에 대한 권중달역 자치통감 주석의 기록.
- ↑ 여기서 주유가 황개를 때리는 고육지책과 조조의 의심에 대한 감택의 답변은 연의 창작이다.
- ↑ 팔면으로 된 북, 병사를 지휘하는 도구로 북을 치면 공격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으며 특히 뇌고는 전술 시 신속한 공격에 사용된다. 이상 역시나 자치통감의 주석의 기록이다.
- ↑ 연의에서는 장료가 쏜 화살에
- ↑ 삼국지연의처럼 조조가 강의 서북안에 포진했다는 가정하에 조조가 소위 계절풍을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정작 동지에는 역계절풍이 하루이틀 정도 부는 경우가 있다. 조조는 바로 이것에 당했던 것이다. 연의에도 "동지(冬至)는 음기가 절정이라 다시 양기(陽氣)가 움트는 시절이니, 어찌 잠시인들 동남풍이 없겠는가. 조금도 이상히 생각할 것 없다.(冬至一陽生 來復之時,安得無東南風, 何足為怪)”라면서 애써 황개의 투항을 믿으려는 장면이 있다.
- ↑ 조조는 꽤나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다. '조조닭'이라는 전용 보양식도 챙겨먹었을 정도.
- ↑ 적벽 이후 유비는 남형주를 얻으며 손권도 적벽땐 2~3만 정도밖에 군사를 못 모았지만 이후 합비에는 10만이나 되는 병사를 쏟아부을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다.
- ↑ 다만 조조가 적벽대전 전날에 연회를 벌이면서 한 말에 의하면 조조는 진짜로 오나라를 정벌하면 대교와 소교를 취해 동작대에 살게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애초에 조조는 장수의 사촌 장제의 미망인 추씨를 건드리는 등 작중에서 유부녀를 건드린 적이 꽤 많다(...)
- ↑ 물론 장인들이나 필요한 재료들은 일부러 지원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 ↑ 주유에게로 돌아간 노숙은 "제갈량이 아교, 칠 등의 재료를 쓰지 않는다"고 두리뭉실하게 보고한다.
- ↑ 실제 사서에서 불화살이 처음 기록된 건 위략으로 제갈량의 2차 북벌 때에 학소가 썼다. 즉 적벽대전 시점에서 불화살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화살 받기 일화는 연의 창작인 만큼 나관중이 정사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이부분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 ↑ 채중 채화가 투항하면서 일가족을 데려오지 않았다는 점 때문.
- ↑ 남쪽에 있었던 오군이 화공을 펼칠려면 동남풍이 불어야 했는데 전쟁을 준비하던 때는 한겨울이어서 서북풍이 불고 있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부니 자칫하면 오히려 오군이 역으로 화공을 당할 것이 분명했었다.
- ↑ 이를 기념해서 중국에는 배풍대라는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을 세워놨다.
- ↑ 근데 이것도 제갈량이 미리 예측하고 유비한데 조운을 보내달라 요청했다고 묘사되었다.
- ↑ 이 부분은 묘사가 정확히 되지 않아서 조조가 형주 길로 가다가 조운의 습격을 받고 남군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도 있다.
- ↑ 화용도가 나오는 부분이 50화
- ↑ 기존에는 조조가 누워있던 사이에 전투에 패했다고 되어 있었는데 조조가 전초전에서 독이 든 생선을 먹고 쓰러졌던 건 적벽대전 이전이고 전투 전에 돌아와 황개와 대면까지 하고 화계 이후 강릉까지 말타고 도망간다.
- ↑ 이후 11 PK에서 결전제패에서 적벽대전 전투가 수록된다.
- ↑ 엄격하게 말해서 계책을 간파했을 경우의 실제 참전 병력 한정. 스토리 진행상 오나라 측에서 운수대 3기가 본격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퇴각한다.
- ↑ 서서를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계 실행 이후 북쪽 선단 지역에 보면 서서가 무적 판정으로 서 있다. 도중에 유비가 서서에 대해서 걱정하는 말을 하면 그때 가서 이벤트를 진행시켜야 한다.
- ↑ 이 경우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는다에서 앞부분만 잘라낸 말이다.
- ↑ 공성의 계에서는, 제갈량과 주유가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계책을 내놓는 대목을 재현한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