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서울특별시 노원구 남부 지역인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공릉1동, 공릉2동을 포함하는 선거구.
2 1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양주군 을 |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
제 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될 당시, 지금의 노원구 지역은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있었다. 제 1대 총선에서 노해면은 지금의 남양주시, 구리시 지역과 한 선거구로 묶여 선거를 실시하였다.
3 2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양주군 을 |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
4 3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양주군 을 |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
5 4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양주군 을 |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별내면 |
양주군 갑 선거구에서 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 지역과 같이 선거를 치루어 오던 별내면이 양주군 을 선거구로 변경되었다.
6 5대 국회 (민의원)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양주군 을 |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별내면 |
7 6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성북구 을 |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 |
1963년 1월 1일 부로, 노해면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북구의 관할로 들어가게 된다. 노해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 월계동,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의 9개 동으로 나뉘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이에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구도 종전의 양주군 을 선거구에서 성북구 을 선거구로 조정되었다.
8 7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성북구 을 |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 |
9 8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성북구 병 | 성북구 월곡동(현 성북구 하월곡동,상월곡동 지역), 장석동(현 성북구 장위동,석관동 지역), 창동(현 도봉구 창동,쌍문동, 노원구 월계동 지역), 태릉동(현 노원구 공릉동,하계동 지역) , 노원동(현 노원구 중계동, 상계동 지역) , 도봉동(현 도봉구 방학동,도봉동 지역)[2] |
성북구의 인구가 증가하여 국회의원 선거구도 2개에서 3개로 분구되어, 지금의 노원구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 월계동과 공릉동은 성북구 병 선거구의 소속이 되었다.
10 9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성북구 | 성북구 일원 (현재의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지역) |
제 9대 총선 부터 제 12대 총선까지는 중선거구제를 이용하여 한 선거구 당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성북구 선거구는 하나로 합구되어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11 10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도봉구 | 도봉구 일원 (현재의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지역) |
1973년 7월 1일부로, 미아동, 번동, 수유동, 우이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도봉동, 방학동, 공릉동, 하계동이 도봉구로 분구되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에 맞게 종전의 성북구 선거구에서 도봉구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12 11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도봉구 | 도봉구 일원 (현재의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지역) |
13 12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도봉구 | 도봉구 일원 (현재의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지역) |
14 13대 국회
선거구명 | 소속지역 |
노원구 갑 | 노원구 창동[4], 월계동, 공릉동 |
1988년 1월 1일 부로,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구되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도 도봉구 선거구에서 노원구 선거구로 분구되었고, 이번 총선부터 소선거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지금의 노원구 갑 선거구인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지역과 공릉1동, 공릉2동 지역은 지금의 도봉구 창동과 함께 노원구 갑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15 14대 국회
16 15대 국회
17 16대 총선
소속지역은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 월계4동, 공릉1동, 공릉2동, 공릉3동, 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2동, 중계3동이다.
현역 3선 백남치 의원은 신한국당에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유는 교통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김포매립지용도 변경등과 관련해 동아건설로부터 8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낙천되었지만 이에 반발해 자유민주연합으로 간 것. 백남치 의원의 빈자리는 전두환 정부에서 동력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에너지 전문가 최동규 후보가 공천되었다.
새천년민주당은 함승희 변호사를 공천했다. 그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며 정치권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성역은 없다라는 책을 낸 스타 검사. 외압에 의해 검사복을 벗고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총선에 출마했다.
이런 함승희 검사의 인기에 힘입어 43.17%의 득표로 최동규 후보를 6.8% 차이로 제치고 당선하게 된다.
18 17대 총선
노원구의 인구가 폭풍증가하자, 노원구의 국회의원 선거구도 인구에 맞게 2개에서 3개로 분구되어, 중계동과 하계동이 노원구 을선거구로 분구되어, 노원구 갑 선거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치권 비자금 수사로 유명해진 검사 출신의 현역 함승희 의원은 원내에 진출하고서도 검은돈 차단을 위해 '자금세탁방지법'과 '금융정보원법' 등 이른바 ‘돈세탁 방지 관련법’ 입안을 주도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때 탈당하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총선에 출마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정봉주 후보가 공천되었는데, 학생운동 후 《말》지 기자, 문익환 목사 보좌 등을 하다 미국에서 영어교육전문학위를 취득해 외대어학원을 운영하다가 총선에 출마했다. 한나라당에서는 현경병 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을 공천하였다.
스타 검사로 유명해진 함승희 후보였지만 탄핵 역풍을 막기는 어려웠다. 결국 정봉주 후보가 42.69%의 득표율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19 18대 총선
현역 정봉주 의원은 BBK진상조사단장을 맡아 BBK 의혹을 앞장서서 알렸고, 이로인해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민주당 함승희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탈당 때 탈당파들을 맹공격했고, 다시 통합될 때 "배신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며 탈당한다. 대신 친박연대로 옮겨 총선에 출마하게 된다. 한나라당에서는 현경병 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이 다시 출마, 세 후보는 17대 국회에 이어 다시 리턴매치를 갖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뉴타운 열풍은 이곳에서도 이목이 집중되었고, 부동산 값이 상승해 수도권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상당한 관심을 내 보였다. 현역인 정봉주 의원은 BBK 의혹 등 여러 활동을 했지만 지역이 크게 변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평가. 대신 뉴타운 바람을 타고 지역 개발을 위해 뛰어 왔던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가 주목 받았다. 그러나 함승희 전 의원이 친박연대로 출마하면서 표가 갈리는 상황.
물론 정봉주 후보도 지역 공약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봉주 후보는 월계동 지역에는 '성북역 인근에 위치한 시멘트기지 이전', '성북역 지하화 본격 추진', '성북역 민자역사 추진', '개방형 자율학교 유치', '어린이 공원 및 녹지조성'을, 공릉동 지역에는 '서울대병원 유치', '4년간 교육예산 1,000억 원 집중 투자', '국내 최초의 IT영재학교 설립'을 내걸었다. 또한 '월계동과 공릉동을 연결하는 '오버브릿지' 건설', '전선 지중화 사업으로 안전한 거리 조성', '경춘선 폐선부지 공원화 사업', '신공덕역 문화복지센터 건립'을 공약했고, 국회에 진출하면 '대학등록금 상환제와 후불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현경병 후보는 '성북역 민자역사 & 초고층 주상복합단지 조성', '월계 뉴타운 지정 및 재개발·재건축을 추진', '동부간선로 확장', '중랑천 개발', '공릉 서울테크노파크 차질 없이 완공' ,'경춘선 폐선부지 주변 개발 및 공원화 사업' ,'법원 터 일대 복합상업․ 학원가로 조성' ,'공릉종합스타디움(구 공릉배수지) 2단계 문화체육 공간조성 사업 추진', '100억 원 규모의 노원시민장학재단을 설립', '1호선 석계역~성북역~월계역~녹천역 구간을 지하화' 등 지역 개발 공약을 내놓았다.
결과는 현경병 후보가 현역 정봉주 후보를 4%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 19대 총선
월계4동은 2009년 1월 1일 세개로 쪼개져 월계1동, 월계2동, 월계3동으로 각각 편입되었고, 공릉1.3동의 명칭이 공릉1동으로 바뀌었다.
현역 새누리당 현경병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심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러나 임기 1년전이므로 재보궐 선거를 치루지는 않았다. 현경병 위원 대신 새누리당은 이노근 전 노원구청장을 공천했다. 이노근 후보는 민선 4기 노원구청장으로 제5회 지방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한편 정봉주 전 의원은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로 인기를 얻고 총선을 준비했지만, BBK 사건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로 실형이 확정,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민주통합당은 대신 '나는 꼼수다'를 함께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을 공천하였다. 김용민 후보는 극동방송, 기독교TV 등에서 근무하다가 시사평론가로 '시사자키' 등을 진행했고, 이후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되었다. 김용민 후보는 사과했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이에 민주통합당 이해찬은 사퇴를 권고했으나 문재인, 한명숙 대표는 김용민을 끌어안고 갈 것을 당부했다. 김용민 후보 역시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결국 이노근 후보가 김용민 후보를 5.86%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이노근 | 새누리당 | 40,865 | 50.06% | 1 | |
2 | 김용민 | 민주통합당 | 36,083 | 44.20% | 2 | |
3 | 김철수 | 자유선진당 | 1,761 | 2.15% | 4 | |
4 | 우승배 | 무소속 | 2,913 | 3.56% | 3 | |
선거인수 | 143,388 | 무효표 | 692 |
투표수 | 82,314 | 투표율 | 57.41% |
21 18대 대선
22 20대 총선
새누리당인 현역 이노근 의원은 단수추천으로 공천되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경선을 통해 고용진 전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공천했다. 19대 국회에서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던 장하나 의원은 경선에서 패했다.
본선에서는 야권의 표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진 후보가 이노근 의원을 2,096표차로 제치고 초선으로 당선됐다.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이노근 | 새누리당 | 34,109 | 39.37% | 2 | |
2 | 고용진 | 더불어민주당 | 36,205 | 41.79% | 1 | |
3 | 이형남 | 국민의당 | 16,309 | 18.82% | 3 | |
선거인수 | 140,642 | 무효표 | 981 |
투표수 | 87,604 | 투표율 | 62.29% |
- ↑ 5,097표 득표. 득표율은 확인 불가능.
- ↑ http://uci.or.kr/G500:1310377-00000010318813
- ↑ 1980년 8월 27일에 사직하였다.
- ↑ 1988년 1월 1일 노원구가 도봉구로부터 분구될 당시, 도봉동과 창동도 노원구 관할로 넘어갔었지만, 다음해인 1989년 1월 1일 도봉구 관할로 돌아갔다.
- ↑ 재외국민, 부재자 득표수 및 타후보 득표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