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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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인해전술/Example.jpg
인해전술을 잘 보여주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큰 나무와 그 그림자를 제외한 자잘한 것들이 전부 사람이다.

人海戰術, Human wave attack.

1 개요

Korean War - Chinese Human Wave

인간해일과도 같은 엄청난 규모로 몰려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 굳이 따지면 "인파전술"이라고 번역되는게 더 맞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 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 활약 덕분이다.[1]

2 수적 우위의 중요성

인해전술을 단순히 물량으로 밀어버리는 골빈 행위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발상으로 전쟁했던 골빈 지휘관도 많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인해전술이란 어디까지나 "작전지역에서 적보다 숫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고대의 전쟁부터 나폴레옹의 용병술에 이르기까지 보병 전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전술인 적보다 우월한 숫자로 협소한 적을 공략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것이야말로 승리를 위한 최단의 방법이자 최고의 방법인 것은 자명하다. 우세한 인력을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전투원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공격함으로써, 방어부대를 수적으로 압도하여 돌파구를 형성하고 방어지역을 분단·고립시키는 것을 말한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수반하게 되는 전근대적인 전술이지만, 방어부대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공포감을 주어 일시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도 있다.

란체스터 법칙에 따라 원거리에서 조건이 동일한 경우 두 편이 붙었을 때 단위 시간당 피해자의 수는 현 병력비의 제곱의 반비례라고 알려져 있다. 좀 더 쉬운 말로 예를 들자면 A국과 B국의 병력이 100대 50이라고 했을 경우, 병력비는 2:1이므로 피해자의 비는 2:1의 제곱의 반비례인 1/4:1이 된다. 즉 단위시간동안 B국의 피해자 수가 40명이라면, A국은 1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B국의 50여명의 병력이 전멸할 동안 A국은 10여명의 피해밖에 보지 않는다! 이 법칙은 대부분의 도상연습이나 시뮬레이션의 바탕이 된다.

결국 적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인해전술은 인명경시가 아니라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역설적 명제도 성립한다.[2]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전체적 전역에서는 연합군보다 숫자가 적었음에도 항상 접전지역에서는 수적 우위를 확보했고, 그것은 오랫 동안 그가 승리를 이어나가는 원인이 되었다. 이와 관련된 야사도 있다. 부하가 나폴레옹을 칭송하며 '폐하께서는 항상 소수로 다수를 이겼습니다.'라고 말하자, 나폴레옹은 이를 반박하며 '그렇지 않다. 나는 늘 다수로 소수를 이겼다'라고 발언했다.
또한 보어전쟁 당시에 인구 50만에 병력 7만의 보어를 정복하기 위해 영국이 45만 대군을 투입한 것도 대표적인 인해전술 가운데 하나이다.

전쟁사를 살펴보더라도 많은 병력과 인프라, 자원을 균형있게 가진 쪽이 승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사가와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웅의 '활약'은 대단한 승리가 부각되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것이지, 소위 '대첩'이라 할 만한 것은 전사에서 그리 흔치가 않다. 많은 적을 상대한 영웅이 전례에 없던 뛰어난 영웅이라든가, 적보다 더 우수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든가, 적장이 바보라든가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숫자가 많은 쪽이 적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 이에 관해 중국의 이름난 병법가인 손자손자병법에서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이기는 자는 별다른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서술하였다.

전쟁을 이기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영웅이 아니라 애초에 이길 상황을 만드는 전략이다. 영웅이 나오는 것이 나쁠 건 없으며 '영웅'이라고 부를 만큼 활약이나 업적을 남긴건 분명히 잘한 일이지만, 그런 영웅부터가 흔치 않으니 당연히 영웅없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즉 '인해전술' 또한 단순히 병력만 투입하는 무식하고 전근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엄연한 전술이란 범위 안에 속한다.

물론 무작정 병력만 갖다 박으면 이긴다고 생각하면 큰일. 행여나 양쪽 다 그런 생각만 한다면 단순한 소모전에 불과해진다. 열세인 상대편이 전략으로 이길 상황을 만들어버린다면 이 때는 장렬한 자폭을 한 셈이 된다(...). 이렇게 생각없이 병력을 꼴아박는 짓을 파상적 공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전투시 돌격과 참호개척을 반복하던 1차 대전 당시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무모한 돌격을 파상적 공세라고 부르면서 생각 없이 돌격한 게 아니라 전술적 행동이었다고 곧잘 포장했고, 이 때문에 군사관련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학자들의 잘못된 미화 및 재평가가 남발되었다. 즉 생각없이 머릿수만 믿고 병력을 꼴아박는 실책을 저질러 패전을 부른 인물인데도 파상적 공세를 펼치며 분투했지만 졌다는 식으로 미화해버리는 것이다.

무식하게 머릿수만 믿고 병력을 아무 생각없이 적진에다가 꼴아박아서 멀쩡한 수십만 대군을 날려보내길 반복한 군대는 일본군이다. 반자이 돌격 참조.

3 정확한 의미

윗 단락에서 강조하듯 분명 '인해전술'은 '병력의 수적 우세의 이점'을 노리는 전략 중 하나이다. 하지만 단순히 병력을 많이 동원하는 것만으로는 인해전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인해전술의 정확한 의미는 '아군 병력의 질적 수준과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아군 피해를 고려하지 않고 최단 시간내에 적에게 돌격하여 난전을 유도, 적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적을 압도하는 병력과 화력은 모든 지휘관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적 우세 (강력한 기갑 부대, 공군과 포병의 충분한 화력 지원, 잘 훈련된 정예 병력, 충분한 보급)의 확보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세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형적 이점 등의 다른 요소도 없이 전투를 벌여야 할 때 수적으로는 우세하다면 지휘관은 인해전술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해전술은 단순히 병력을 적의 우세한 화력에 꼴아박는 것만은 아니다. 지휘관이 휘하 병력들에게 적의 우세한 화력에 두들겨 맞아가면서 돌격을 하라고 지시하려면 그만큼 병사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지휘관이 병사들을 통제하고 있어야 한다. 이 와중에도 최대한 손해를 줄일 방법을 동원해야 적의 화력을 최대한 낭비시킬 수 있다.

4 역사상의 사례

4.1 6.25 전쟁때의 중국

이것으로 유명한 군대는 중공군(중국 인민해방군중국 인민지원군). 그럼 참전자부터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까지 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렸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유는 나폴레옹과 같다. 중공군은 최소한 접전지만큼은 적보다 많은 숫자를 끊임없이 보충하며 유지해왔던 것. 다만 중공군의 전술은 일반적인 인해전술과는 좀 다르다.

중공군은 구대전법, 그러니깐 큰 자루전법이란 전술을 사용했는데, 보병을 우회기동시켜 적 후방에 깊숙히 찔러넣어 퇴각로를 차단하고, 뱀이 아가리를 벌린 듯한 형상으로 포위한뒤 적을 각개격파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공군의 전략은 소련군 식의 기동전을 전차가 아니라 보병의 발로 실행한 것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최초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병력을 집중할 때나 깊숙히 우회기동한 부대가 포위섬멸에 나설 때 당하는 입장에선 말 그대로 중공군의 파도에 묻혀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인해전술로 인식된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일종의 포위섬멸전으로 그냥 별 생각없이 전면에서 수로 밀어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당시 중공군은 국공내전중일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베테랑들이었다. 중공군은 미군의 공중 정찰을 피해 야간에 산으로만 움직이는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동 속도는 산을 타면서도 하루에 20여km 수준이었으니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진격 속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포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만 이 전술을 실행할 때 우선 소규모의 부대를 먼저 보내고[3] 본대는 적의 방어선을 더듬어가며 포위, 이후 꽹과리나 나팔 소리를 신호로 수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가까스로 이들을 격퇴해도 얼마안가 그 숫자의 인원들을 어디선가 또 보충해 어택땅을 재차 반복하니 이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탄약과 인원을 질릴 정도로 계속 소모하는 소모전이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사례 중 하나인 임진강 전투를 다룬 '한국인만 몰랐던 파란 아리랑'이란 자서전[4]에서도 서서히 소모전 양상으로 치닫자 대대장까지 "머잖아 우리가 소총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꺼낼 정도로 인해전술은 보급 문제나 심리적 문제도 적잖이 일으킨다.

사실 중국이 왜 이런 전술을 채택했는지에 대해선 장비나 화력 면에선 엄청 안습이지만 병력만은 많다라는 점에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기려면 보병들을 고기방패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행위는 적이 튼실한 보급에 기인한 화력을 동원하면 그저 수많은 병력을 내다버리는 행위로 전락한다.

실제로 미군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수많은 공군과 함께 전선 전체를 밀어버리거나 불바다로 만드는 화해(火海)전술을 구사하자 중공군은 차츰 미군과의 정면승부를 꺼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공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가세한 장진호 전투. 이곳에서 중공군은 미군의 화력 앞에 큰 출혈을 강요당했다. 그럼에도 그 중요성 때문에 특유의 물량빨로 방어선을 포위했고 퇴로가 차단된 미 해병대는 직사 포격으로 중공군을 상대해야 할 지경이 됐지만 고군분투 끝에 흥남을 경유해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이것이 흥남 철수로 잘 알려진 흥남부두 철수작전.[5]

다만 이와 달리 모든 면에서 열세인 국군 및 다른 UN 연합군들을 상대로는 꽤 쏠쏠한 재미를 보았으므로 중공군은 화력덕후 미군보단 사정이 열약한 한국군과 타 UN군을 우선 공격대상으로 삼았다.[6][7]

어쨌든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에 대한 이미지는 나팔과 꽹과리를 치며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무시무시한 놈들.요약하면 저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아편을 탄 독주를 거하게 먹인 다음 맨몸에 꽹과리만 들려서 돌격시켰다는 루머도 존재한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닌게, 한국전쟁 당시 중공의 선전매체에서 적이 10만발의 총탄을 가지고 있다면 10만에 하나의 병사를 보내 이긴다!라고 홍보하기도 했다.[8]

아무튼 앞서 언급했다시피, 6.25에 출병한 중공군은 한국에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수십년간 계속된 내전중일전쟁을 치르며 상당한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휘관들의 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중공군이 치밀한 작전없이 무모하게 병력만 믿고 싸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병력만 믿고 싸운 것이 아니라 믿을 것이 병력밖에 없다보니 이런 작전을 쓴 것이다. 이런 구대전법은 몇년후 중공군이 중인전쟁에서 인도군에게 써먹어서 대승을 거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급기지가 인도보다 몇배나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에서(델리에서는 히말라야까지 수백km였지만, 북경에서 거리는 수천km였다) 모든 보급을 등짐이나 야크에 의존해서 그런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4.2 수나라

엄밀히 말해 수나라 군대는 당대의 상당한 강군[9]이었으므로 인해전술 항목에 소개하기는 힘든 부분일 수도 있으나 그들이 사용한 전략과 전술이 인해전술의 기본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여수전쟁에서 고구려수나라의 113만 전투병과 전쟁을 벌였음은 다 아는 이야기. 물론 양제의 수나라 군대는 요동성 방어선을 결코 돌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나라 군대는 분명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까지 도달했다. 간간이 고구려의 유격부대의 저항을 받았지만 병력은 거의 온전히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성 방어선을 뚫지 못했으면서도 평양을 공격할 수 있었던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인해전술이었다. 전방 방어선의 고구려군이 우회하는 적을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도 포위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어선이라는 것이 말처럼 주욱 이어진 선이 아니다. 아군이 지키는 주요 거점들을 임의로 이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압도적인 숫자의 적이 와서 인근의 아군 거점을 모조리 포위하고 일부가 아군의 후위로 들어간다면 이쪽에서는 손쓸 도리가 없다. 수양제의 113만 병력은 실제로 이것이 가능했던 것. 고구려는 무섭게도 이것을 모두 물리쳤지만 수도가 직접 공격을 받을 정도로 꽤 위험한 상황이었음은 사실이다.

즉 수나라의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해전술의 요소는,

1. 적을 각각 포위함으로써 적의 결집을 막고 분산, 고립시킨다.
2. 아군의 분산으로 적의 관심도 분산시킬 수 있다.
3. 아군의 주공을 감출 수 있다.
4. 적이 분산되므로 아군은 항상 수적 우세를 점한다.

등이었다. 이후 한국을 공격하는 중국 왕조는 직접적으로 방어선을 돌파하기보다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우회기동하는 전략을 많이 취했다.

4.3 원나라

칭기즈 칸이 주로 사용하는 전술 중 하나였다. 샤리 골골라에서 무투칸을 잃자 칭기즈 칸은 넘사벽 숫자의 병력을 이용하여 그야말로 샤리 골골라 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4.4 소련

사람들은 '인해전술' 하면 구 공산권 국가를 생각한다. 공산권 국가 특유의 인명경시풍조와 인력동원능력이 특히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소련=인해전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 동안 냉전시절 서방 전문가들에 의해 소련은 '숫자'라는 식으로 폄훼되어 왔고, 이제서야 그 오명이 벗겨지는 듯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소련하면 무식함이란 단어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사실 소련의 소련군제2차 세계대전 이전 발전된 제파식 전술을 제창했다. 제병합동의 긴밀한 구조 속에 막대한 포병지원과 항공력을 바탕으로 적의 좁은 포위망에 대규모 전력을 투입, 1파, 정예2파, 증원 3파 식으로 돌파구를 확보하면서 적을 분쇄시키는 전술로써 이는 당시 서구 각국이 편협한 방어전에 얽매였던데 비해 훨씬 기동전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인간으로 전차에 육장갑을 둘렀다고 비판하는 탱크 데산트도 아무 생각없이 나온 전술이 아니라 적진 돌파시에 순간적인 화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2차대전 초기에는 소련군이 단순한 인해전술로 나온건 사실이다. 이미 '실전'을 치를 때 여전히 병력수에 비해 사관육성기관들의 전문 장교 공급력이 부족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다가[10] 스탈린대숙청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고 가장 중요한 통신과 기동력, 화력집중의 미비로 결국 구세기적 인해전술로 후퇴해버린 점 때문에 독일과 싸우기 전에 이미 붉은 군대 자체가 파탄났기 때문이다. 군대 체계가 완전히 맛이 갔는데 옛날에 짠 좋은 전술 따위를 쓸 여력이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정치장교 등을 동원해서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제정신 차리고 멀쩡한 장교마저도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할 수 없게 막았기 때문에 이 시기(독소전쟁 초기) 소련과 독일의 병력 손실비는 무려 20대 1에 달했다. 특히 소련이 위기 시절에 반동과 스파이로 이루어진 이른바 형벌 부대를 대규모로 동원한 사실은 숨길 수 없다. 물론 이후 양측의 손실비 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는 1:1.5~1:1.3 사이의 손실비를 기록하게 된다.[11]

5 여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해전술하면 '무식하게 병력만 꼴아박는 전술'로 알고 있는데, 이와 가장 비슷한 전법을 쓴 군대는 바로 북한군이었다. 한국전쟁 참조. 그리고 이 전법의 원조는 바로 프랑스군이다. 프랑스군은 WW1때 화려한 색의 군복을 입은 병사들을 기관총 진지에 돌격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문혁 당시의 홍위병들도 꽤나 애용했는데, (자기들 관점에서의) 반동분자가 너무 강하거나, 아니면 문화재를 자기 지역의 홍위병들로만으로 처리를 못할 것 같을 경우 주변 지역의 홍위병들을 불러다가 합세해서 압도적인 물량으로 개발살내버렸다.

인터넷 신조어로 사용되기도 한 웨이브(wave)라는 단어[12]는 여기서 유래했고, 요즘엔 그냥 머릿수가 엄청 많아서 개떼처럼 달려드는 것에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 저글링 개떼 러쉬.

6 매체에서의 인해전술

인간을 포함, 번식이나 생산 능력 혹은 인구 수에서 월등한 종족이 인해전술을 쓰는 것으로 묘사되며 특히 SF물에서 곤충을 베이스로 한 종족이 이런 경향이 강하다. 해전술이 아닌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사람이 아니무니다 잡몹야라레메카가 이런 인해전술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엄청난 수의 인해전술을 쓰면 주연급 캐릭터도 물리칠 수 있다. 여기에 나열된 매체 속 인해전술은 거의 무식하게 병력만 꼴아박는 행위이다.

7 참조 항목

8 이 이름을 딴 유희왕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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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명칭인해전술
일어판 명칭 人海戦術
영어판 명칭Human-Wave Tactics
지속함정카드
각 턴의 엔드 페이즈시, 그 턴에 전투에 의해서 파괴된 자신의 레벨 2 이하의 일반 몬스터의 수만큼, 덱에서 레벨 2 이하의 일반 몬스터를 선택하고 자신 필드 위에 특수 소환한다. 그 후 덱을 셔플한다.

레벨 2 이하의 일반 몬스터를 주축으로 쓰는 덱에서 활용될 수 있다. 상대가 파괴한 만큼 레벨 2 이하의 일반 몬스터가 필드 위로 나오므로 다음 상대 턴에서 벽이 되어 줄 수 있고 릴리즈, 엑시즈 소환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 거기에 덱 압축 효과는 덤.

다만 초반에 얼마나 일반 몬스터를 전개하는가와 덱에서 일반 몬스터가 줄어들어서 후반부에 마법/함정 카드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몬스터를 파괴한 후 이 카드를 파괴하면 당연히 특수소환이 불가능하다.

일러스트에 나온 건 모케모케이며 대혁명, 사우전드 에너지, 오버 리미트, 천공의 성역, 파라오의 사도와도 관계가 있다.
  1. 마오쩌둥이 "인민의 바다"에 중국 국민당군을 허우적거리게 하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2. 이 명제를 보여준 군대의 대표적인 예는 6.25 전쟁 당시의 중공군을 꼽을 수 있다. 6.25 당시 중공군의 장비는 그야말로 처참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이들에게 있어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유엔군에게 피해를 최대한 늘리는 방법은 적이 도저히 어찌하지 못할 만큼의 압도적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소량의 병력이나 적과 비슷한 숫자의 병력을 보내면 장비의 질적 열세로 인하여 어차피 질 수 밖에 없었다.
  3. 국민당군 패잔병들로 재교육 과정을 거친 자들, 즉, 사실상의 형벌부대를 총알받이 겸 미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증명할 자료는 없다. 또한 중공군은 이런 사안에 굉장히 예민했기에 직접 '사실상의 형벌부대'를 조직할 리가 없다.
  4. 영국 육군 대장 안소니 파라-호커리(1924~2006) 경의 전쟁 회고록.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로, 한국전쟁 당시 장교로 참전한 베테랑이다. 당시 그는 대위 계급으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부관으로 종군하였는데, 적의 인해전술로 대대가 와해된 후 2년 4개월 동안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잡히기를 7회 반복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제16공수여단장, 북대서양 조약기구 북부 유럽 주둔군 총사령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군사 보좌관 등을 지냈다.
  5. 이후 전사에 남을 주요 격전지를 함명으로 붙이는 미 해군의 관례에 따라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에 '장진호'의 이름을 붙여 초신(Chosin, 長津) 함이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다. 발음이 일본어식인 이유는 당시 한반도 지도를 대부분 일본어로 써서 그걸 보고 그냥 '초신'이라고 불렀기 때문.
  6. 비슷한 예로 2차대전 당시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영국군은 독일군이 아니라 이탈리아군을 공세 대상으로 삼았다.
  7. 전쟁 후반이 되자 미군의 포병지원이 한국군까지 커버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백마고지 전투.
  8. 다만 마오쩌둥이 한 말인 "목표를 위해서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인간은 죽기 마련인데, 그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거나 또는 깃털보다 가볍다." 人固有一死-惑重于泰山, 惑輕于鴻毛"는 사마천의 말을 재인용한 것으로 인해전술과는 별 관계없다.
  9. 흔히 고구려에 쓸려나간 오합지졸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고구려가 운이 좋았고 수양제의 뻘짓과 당시 고구려 지휘관들이 먼치킨이어서 수나라 대군을 쓸어버릴수 있었던거지, 결코 수나라군이 병신이어서 쓸려나간게 아니다. 그리고 수나라를 물리치는데 고구려는 엄청난 국력 손실을 입었다. 그 때문에 후대에 당나라가 수나라보다 약소한 전력으로 쳐들어오자 야전에서 맥없이 패전만 거듭했고, 수나라가 쳐들어 온 이후 백성들이 병사들 시체를 먹으며 겨울을 지냈다는 내용의 야사가 많다.
  10. 500만 병력을 지휘해야 하는데 30 명 당 소위 하나를 임관한다 쳐도 17만 여명이 필요하나 장교 공급력은 1만 명이 채 되지 못했다. 그런고로 초졸 장교, 무학 장교 같은게 무더기로 임관된다
  11. 포로사망자는 제외한 수치.
  12. 인해전술의 영어명칭이 'Human wave attack'이다.
  13. 북한군은 무식하게 병력만 꼴아박아서 수많은 병력을 날려버리는 전법을 가장 활발히 시행한 군대이다.
  14. 다중 환영분신술로 인해전술을 쓴다.
  15. 2부부터 인해전술을 쓴다.
  16. 중국이 좀비를 상대로 인해전술을 구사했으나 먹어서 자기편으로 만든다는 좀비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쳐발릴 뻔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이 물량에서 발릴 뻔했다. 흠좀무. 근데, 역사상 처음이라고 할수 없는게, 중국은 예전부터 유목민족의 물량에게 발릴 뻔했던 적이 있고, 몽골의 물량에게 발린 적이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물량에 의해 밀릴 뻔한적도 있고, 6.25 전쟁 당시의 한국군의 물량한테 발릴 뻔 한적이 있다.
  17. 곤충형 군체물량종족의 원조
  18. 바이도의 특성상 모든것을 침식하므로 오늘 격추된 동료가 내일의 적군으로 변하는 일이 일어난다.
  19. 다만 이쪽의 선구자중 하나인 중국 역시 기본 유닛인 홍위병을 한번에 두명씩 뽑아재낄수 있지만 고급 테크 유닛들이 난무하는 후반까지 쓰는건 효율이 썩 좋진 않다.
  20. 핵전쟁 이후인데 어떻게 물량을 쓰냐고 묻는다면 폴아웃2 시점 NCR의 인구수는 70만을 넘었다. 다른 황무지 세력 인구수가 5자리를 못넘은걸 생각하면 중국의 재림이라 봐도 무방한데다 황무지 레이더마냥 조잡한 무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장비를 지급받고 원한다면 한번에 다수를 꼴아박을 수있는 지휘력도 가지고 있다. 오퍼레이션 선버스트 때는 BOS와의 전투에서 BOS 팔라딘과 NCR 보병과의 병력차가 8배 이상 차이가 났고 뉴 베가스 시점에도 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전선에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다.
  21. 오크나 타이라니드에 비해서는 적지만 은하 전체에 영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물량도 어마어마해서 타이라니드 전쟁 당시 징집된 가드맨만 해도 니드와 물량빨에서 비등했다고 한다. 미니어처 게임에선 한술 더 떠 그 반대의 경우가 나온다. 오크 보이즈를 포함한 오크와 니드는 한 유닛에 최대 30모델인데, 임페리얼 가드의 인팬트리 플래툰은 보병 가드맨만 50모델에 달하는데다 가드맨이 저들보다 싸다. 거기다 아스트라 밀리타룸도 인해전술을 쓴다(...). 사실 설정상으로도 인해전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세력이 바로 인류제국인데, 절대적인 통합권력없이 각 군벌들이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한 타 세력과는 달리 인류제국은 각 영역의 행성들에서 차출한 병사들을 모두 모아서 일정한 전장에 집중시킬 수 있는 지휘력이 있기 때문에 작정하고 싸우기로 마음먹은 전장에서는 대개 적 세력보다 훨씬 많은 인력을 투입해 갈아넣을 수 있다(...). 인간의 번식력, 성장속도 등을 고려하면 저 물량을 언제까지 계속 유지할까 싶겠지만 워낙 넓은 영토에 퍼진데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인공자궁을 이용해 클론 병사를 찍어내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