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략
일본군의 무기들이 각종 문제를 가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 설명한 문서이다.
일본군의 무기가 각종 문제를 가지고 연합군의 밥이 된것은 일본의 부족한 공업능력과 수뇌부의 구시대적인 전쟁관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개발진은 그럭저럭 쓸만하게 무기를 개발해냈는데 수뇌부가 구시대적인 교리에 맞게 고칠것을 요구해서 망치거나 공업능력의 부족으로 막상 양산하면 불량품이 속출하는 문제는 일본군의 무기개발에서 결코 드문일이 아니었다.
2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 교리
밑에 나올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첫번째
우선 일본군의 군사교리 자체가 시대적으로 뒤떨어졌다. 외국의 경험을 이상한 결론으로 받아들이거나, 기존 교리를 발전, 향상시키지 않은 경우가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군의 전차전 교리이다. 일본군의 전차는 1920-1930년대만 해도 중국대륙에서 전차도 대전차화기도 없는 국민당군 이나 군벌을 상대로 나름 활약하였다. 이 활약에 만족한 일본군은 전차는 소구경 화기를 탑재해서 보병지원용으로만 굴리면 된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동시기 다른 국가에도 이런 구식사상에 찌든 군인이나 정치인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까지 일본은 제대로된 전차전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말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이런 구시대적인 일본군은 결국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 전차부대에 대패하였다. 전투의 막바지에는 사단 규모 제대가 전멸하는 수준의 참패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군은 자신들의 피해를 감추려고만 했을 뿐, 패전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전차전 교리의 수정, 신형 전차의 개발, 지휘 능력 향상을 위한 간부교육, 군수보급체계의 개선 등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패전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장교들은 한직으로 좌천돼 버렸다.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친 것이다. 결국 일본군의 전차 운용 교리와 전차 수준은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1920, 1930년대 수준에서 정체되고 만다.
게다가 시대의 변화를 알아채고 새로운 능력을 추가하기 위해 기술자가 노력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면, 기존에는 중시되었으나 해당 시점에서는 이미 쓸모가 없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의 성능이 안 나온다고 타박하여 결과적으로 물건을 개악하게 만드는 뻘짓도 자주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말아먹은 대표적인 사례가 A6M, 즉 제로센의 후계기가 될 예정으로 나온 A7M 렛푸. 실제로 미군은 1942년부터 통신장비에 힘입은 타치 위브와 함께 붐앤줌이 새로운 전루교리로 체택되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데, A7M 렛푸의 경우 개발 자체는 붐앤줌에 맞춰서 개발했으나, 군부가 선회전도 할 수 있게 익면하중을 낮추라고 개발진에게 강요한 게 렛푸의 속도 성능이 개판이 된 주 원인이다.
뿐만 아니라 야기 우다 안테나와 관련된 전파탐신 문제에 관해서도 적에게 전파를 쏜다는 것은 자기 위치를 적에게 알리는 꼴이며 견시병으로 적을 감지하게 하면 된다는, 봉화나 올리던 시절의 논리를 들고 나와 전파탐신기의 채용조차 몇년을 막았을 정도니.... 이로 인해 둘리틀 특공대의 보복을 겸해서 행해진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운명의 5분,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칠면조 사냥을 당하는 등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더 심각한 건, 정작 개선이 필요할때는 "근성이 부족하다"라는 논리로 취소되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것.
3 공업능력이 개판이다!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두번째
당시 일본은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표방한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일본하면 첨단 과학 산업이 바로 떠오르지만, 당시 일본은 그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경공업 등으로 간신히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공업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 대부분을 (미국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던 나라를 선진국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일본의 산업체계는 전쟁으로 완전히 붕괴된다. 우선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서의 수입이 끊겼고, 엄청난 전비 소비, 전장에서의 많은 인력(잠재적 노동력) 소모 등으로 인해 사실상 일본 경제는 무너졌다.
그나마 대전 초기에는 일본의 군수 생산과 물자 공급이 정상적으로 돌아간 편이지만, 이건 모두 전쟁 전에 구미, 특히 미국으로부터 기술이나 기계 등을 지원받았던 것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일본군이 그렇게 자랑하던 제로센을 예로 들면 '영국의 비행기 설계'를 베끼고 '미국의 공작기계'를 이용해, '미국의 철'과 '영국의 보크사이트, 희소금속'으로 만들어, '미국의 윤활유, 항공기용 가솔린'으로 가동시키고 있었던 실정이었다. 그뿐 아니라 제로센의 프로펠러는 미국의 해밀턴사 라이센스 판을 그대로 썼다. 그래서 나중에 제로센을 노획한 미군이 "뭐야 이거? 프로펠러가 해밀턴사 카피잖아?" 하고 황당해했을 정도니... 전후 프로펠러 라이센스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해밀턴사와 한 협상에서 해밀턴사 대변인의 "그럼 1달러로 합시다." 드립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1]
결국 전쟁이 지속될수록 그동안 해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산업의 각 분야가 마비되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한 후에는 수입선을 독일로 돌리고자 했지만, 일본과 독일의 거리가 지나치게 먼 데다 독일 해군은 상당히 푸대접받고 있었던지라 유럽 일대의 제공권, 제해권을 연합군이 꽉 잡고 있던 탓에 실제 미국에서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끝내, 제공권을 연합군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후,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해 일본의 공장과 도시들은 그야말로 쓸려 나갔다. 망했어요. 이렇게 된 덕분에 대전 말에 그래도 쓸만한 장비들을 개발해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양을 생산하는건 불가능했고 수량은 수량대로 적고 신뢰성은 바닥을 기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4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모든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 세번째이자, 핵심.
당시 일본군 육해군은 뿌리부터 달랐다. 그런데 이건 다른 나라 군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뭐라고 하기 그렇지만, 일본군의 경우는 육군과 해군의 뿌리부터가 원수지간이라 싸워대기 일쑤인 사츠마 번(해군)과 초슈 번(육군)에서 비롯됐다. 이러다 보니, 육군에서 세운 작전을 해군이 공식적으로 알 수 있는 루트가 막혀 있었다. 반대로 돌려도 마찬가지. 대본영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현대의 합동참모본부 같은 군의 중심 개념이 아니라 덴노 앞에서 보고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랬기에 서로가 상대방의 작전계획 수립, 진행이나, 무기개발에 전혀 간섭을 받지 않는다. 전투 결과를 알아낼 때도 상대방에 심은 스파이를 통해서 알아낼 정도였고,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 총조차 같은 이름을 가진 총임에도 구경이 다른 탄을 쓴다. 이러면 무기 개발 노선부터가 육군용 무기, 해군용 무기로 이분화되면서 신무기의 개발이나, 기존 무기를 개량하기가 더더욱 까다로워진다.
다만 항공기의 경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다.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항공기와 함재기에 요구되는 성능이 다르므로 별도로 개발할 필요가 있고 이는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육상기를 함재기로 개수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 경우 함재기는 육상기에 필요없는 장비들이 추가적으로 장비되므로 육상기에 비해서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가령 영국이 스핏파이어를 개수한 시파이어를 스핏파이어와 비교할 경우 스핏파이어 V형은 최고속력이 595 km/h에 상승률이 16.5 m/s 이지만 이를 개수한 시파이어 II형은 최고속력이 550km/h에 상승률이 12.0 m/s에 그쳤다.[2] 게다가 영국 해군이 육상기를 함재기로 개수한것은 자신들이 개발한 함재기가 하나같이 괴작이었기(페어리 풀머라던가...) 때문이지 그걸로 충분해서가 아니다. 이때문에 미제 함재기 또한 대량으로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영국 태평양 함대에서는 미국 함재기를 운용하는 비행대대가 영국 함재기를 운용하는 비행대대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3] 따라서 육상기와 동등한 성능을 얻고자한다면 단순히 개수하는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니까 하야부사랑 제로센의 성능차이가 별로 없었다는건 둘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쪽도 적어도 괜찮은 엔진이 만들어지면 공유하는것 정도는 했다. 가령 나카지마 호마레같은 고출력 엔진의 경우에는 Ki-84 하야테와 N1K-J 시덴에서 모두 사용했다.[4] 뭐 시덴이나 하야테나 같은 나카지마 생산품이긴 하지만.
문제는 지상기지에서만 운용할 수 있었던 항공기들의 경우이다. 해군은 지상기지에서만 운용할 수 있는 중형 폭격기들을 다수 운용하여 지상 및 대함임무에 투입하였다. 물론 미 해군도 B-24 중(重)폭격기를 해군사양으로 고친 PB4Y-2와 같은 기체를 운용하였고 냉전기 소련해군 또한 대함 임무를 목적으로 다수의 중형폭격기를 지상기지에서 운용하였다.[5] 해군 입장에서는 주력함[6]으로 싸우면 승산이 없기에 항공기를 이용해서 적의 전력을 소모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고 육군은 중(中) 혹은 중(重) 폭격기의 개발에 관심이 적은 상태였기에 해군에서 발주해서 이용하는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폭격기들이 활약하자 이를 시샘한 육군이 독자적으로 폭격기를 개발해버린다(...). 어차피 둘 다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만큼 그대로 가져다가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기체인데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미 육군항공대가 1944년에야 실전배치한 전략 폭격기 B-29수준의 폭격기를 해군에서 독자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만 봐도 육해군의 대립이 어느 정도로 극심했는지를 알수 있다. 문제는 설령 기체를 완전히 만들고 실전배치를 했다 쳐도 끝나지 않는데, 일본군 해군이 그런 체급의 폭격기를 실제로 만들었다고 해도 유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부터 문제다. 당장 미 육군항공대의 B-29만 해도 엔진의 내구 수명이 워낙 짧아서 75시간마다 엔진 교환이라는 강수를 썼던 마당에.
일본 육군 | Ki-21 97식 폭격기, Ki-49 100식 폭격기, Ki-67 4식 폭격기 |
일본 해군 | G2H 95식 폭격기, G3M 96식 폭격기, G4M, G5N 신잔, G6M, G7M 타이잔, G8N 렌잔, |
그렇다고 이 항공기들의 무장에 대해서도 말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똑같은 M2 중기관총을 배껴 쓰면서 탄환부터 시작한 모든 것을 육군과 해군이 따로 만들고 있었다는 거. 그것도 탄환 구경부터가 달라서 서로 호환도 안 된다! 즉 육군용 탄환은 해군 총에 쓸 수 없다는 거다.(...) 사실 이쪽은 이미 극에 달한 대립으로 서로 다른 탄약을 쓰는 상황이라 별 수 없이 자기들 탄약에 맞게 호환되게 만들수 밖에 없기는 했다. 항공기용 무장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같은 나라 군대가 탄약 호환부터 안된다는게 막장인것.
5 호환성이 뭐지?
대전 당시의 일본은 제대로 된 공업 규격이 없었다.[8] 일본군 병기의 부품 교체나 수리가 막장급으로 어렵고 성능이 천차만별이었던 건 바로 이 때문. 대표적인 예로 주력 전차였던 97식 전차를 들면, 이 전차를 주로 생산한 곳은 미츠비시와 히타치였는데, 두 업체간의 부품은 호환되지 않았다. 요컨대 분명히 같은 전차인데도 해당 전차를 만든 해당 업체의 부품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부품 공급에 엄청난 차질을 초래했다(...).
당시 일본의 병기 생산 공정은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에 호환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손으로 만들다보니 미세하게 규격에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 그렇기에 일본의 병기 제조에서는 숙련공의 중요도가 높았지만, 일본군은 그런 숙련공을 우대하기는 커녕 병사로 징발하는 희대의 병크를 벌인다. 그리고 곧 증발한다 숙련 노동자를 양성하는데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반해 알보병으로 징집하는데는 일주일, 전장에서 소모시키는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므로 일본의 숙련공들은 단기간에 씨가 마르게 된다. 그리고 제조공정에서 숙련공이 빠지고 그 자리를 여학생 등의 비숙련 노동자가 메우게 되면서 제조 공정에서 숙련공의 의존도가 컸던 일본의 무기는 갈수록 질이 하락하게 된다. 여학생들에게 필로폰 먹여가며 밤샘 노동으로 만든 비행기들, 활주로 갑판에 꺼내놓고 보니 비행기 날개길이가 제각각 이더라라는 웃지 못할 얘기는 전쟁 말엽에 숙련공까지 알보병으로 소모하는 극한의 인력소모때문에 나온 얘기. 이래놓고 쇼미더머니를 쳐갈겨 대며 아메리칸 스텐다드 마크 딱딱 박아 무기 대량생산 해대는 미국이랑 싸워서 이길 생각하면 도둑놈 심보다(....)
여기에 더해 위의 '극악한 생산성' 문단에서 언급되었던 데로 숙련공이 줄어드니 기술의 전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나마 기술 좀 배운 노동자들은 선배들처럼 전장으로, 그것도 수리병이나 다른 기술병이면 몰라도 알보병으로 끌려간다. 결국 일본의 기술력은 바닥을 친다. 극단적인 사례로 그 유명한 오각형 볼트가 나오지만, 비참하니까 일단 넘어가자.
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다. 아무리 육군과 해군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전투를 한다고 해도, 아리사카같은 소총이나 개인장구류처럼 같이 쓸 수 있는 물건도 많으며, 탄약처럼 호환성을 중시해야 할 품목도 많다. 하지만 일본군은 육군과 해군간의 관계가 적대적이어서 이런 물건들도 다 따로따로 만들어서 사용했다.
덕분에 통합해서 생산해도 부족한 물건을 양쪽에서 따로 만들기 때문에 보급 부족에 더 시달리게 되는 것은 기본이고, 탄약과 부품도 호환되지 않아서 정비 소요가 더 늘어난다. 해군기지에 육군기가 착륙한 경우를 가정해보더라도 간신히 연료만 수급이 가능할 수준이고 탄약도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글러먹었다. 물론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 사실 이건 서로 총알도 공유하기 싫어할 정도로 극심했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때문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 각자의 특성에 맞게 무기나 장비의 성능이 향상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성능들이 다 대동소이하다. 즉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서로 비슷한 물건을 따로 만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나오는 가공전기들을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양군의 무기와 장비중 호환가능한 것은 공용화하고'란 말이다. 웃기는 것은 이 말이 보통 일본 육군이나 해군 중 한 명이 나와서 다른 쪽에 양보를 하는 식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 맘 먹고 엄청난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처럼 묘사되는데, 타국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적인 미국은 전차, 대형 군함은 물론 개인 화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병기를 자동화 생산공정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했다. 품질도 좋았던 것은 덤. 미국은 2차대전 참전국 중에서 가장 많이 군수 물량을 뽑아냈고, 아메리칸 스탠다드라는 표준규격을 도입해서 병기의 호환성도 매우 뛰어났다.[9] 덤으로 미국은 비숙련공들을 지도해줄 숙련공을 충분히 확보해두었기에, 일본처럼 숙련공 부족으로 시달리지 않았다. 숙련공을 마구 징집해서 대전차총검술로 소모시킨 일본과는 수준이 달랐다!
독일과의 전쟁으로 숙련공 자체가 부족했던 소련도 미국과 비슷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극단적인 수준의 규격화와 호환성으로 밀고 나가서 일본처럼 비숙련공들이 장비를 제작했는데도 장비들의 기본적인 생산량과 호환성만은 유지할 수 있었다.[10] 덕분에 독소전쟁 내내 소련군의 장비는 비록 신뢰성이나 인체공학적 요소 등은 부족했지만 생산성과 내구성만큼은 탑을 달렸으며 동시에 기본적인 성능도 충족할 수 있었다. 소련 전차를 본 독일인들이 뭐 이리 단순하냐고 경악했을 정도. 그냥 짝대기로 탱크가 움직였을 정도로 조작과 구조가 단순하니 쉽게쉽게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었다.
일본의 형편은 전쟁이 진행되면서 계속 악화되었다. 전쟁 초기부터 일본의 공업 능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전쟁 말기엔 공업 시설들이 폭격을 얻어맞으며 도쿄를 레알 불지옥으로 테라포밍 시킨 어떤 석기시대 매니아의 말처럼 밑의 스즈키네에선 군용 볼트, 그 옆집 하루노보네에선 군용 너트를 생산했다. 이렇게 기초공업부터 시작한 산업 전체가 가내수공업처럼 돌아가니 제품의 규격성이나 품질의 일관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리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주먹구구식의 공업능력을 자랑하며 궤멸했다(...).
6 스펙 따위는 장식입니다
기술 부족과 공업능력 부족은 일본군 무기의 스펙과 실제 성능의 차이를 불렀다. 애초에 개발 당시부터 일본의 상황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선진국 수준의 무기 스펙을 강요하던 높으신 분 때문에 기술자들이 쓰지 말아야 할 꼼수를 써서 실제 성능은 한참 아래지만 높으신 분이 요구한 스펙만 맞추는 경우가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공업능력 부족으로 인해 기술자가 공들여서 만든 시제품과 양산품의 차이가 커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97식 전차의 방어력은 스펙상으로는 분명히 37mm 대전차포의 포탄을 막아내는 수준이었지만, 현실에선 미군 경전차의 37mm 전차포 한 방으로 개발살나는 일이 속출했다. 덕분에 일본군은 자신들이 쓰는 37mm 대전차포의 관통력이 스펙과 달리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쟁 초기에 만들어진 치하부터가 저 모양이니 답이 없다.
저속 선회전과 기동력만을 믿고 속도, 공격력, 방어력, 내구성 등의 모든 면을 포기한 희대의 날아다니는 관짝 제로센을 비롯해 전쟁 말기에 생산된 Ki-84 하야테 같은 물건은 더더욱 골때리게도 맨 처음 제작된 시제기(프로토타입)가 정식 양산형보다 더 신뢰성이 높다는 괴상한 결과를 내며 절정에 다달았다. 그래서 사카이 사부로 같은 에이스 파일럿들은 정 타고 싶으면 그나마 성능이 보장되는 초기 생산형을 타거나 아예 하야부사같은 구식 기종을 타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할 정도였다.
이런 사태는 개선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전쟁 말기의 일본군 무기들은 자원수급 문제, 숙련공 부족 문제[11], 미군의 폭격 등으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없었기에 스펙과 실제 성능에 차이가 점점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7 프로토타입만 쓸만하다
일본 애니에서 흔히 보이는 프로토타입에 대한 미화도 이 당시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다. 프로토타입은 실력이 좋은 기술자들이 수제로 정밀하게 시간들여서 만드니 어찌어찌해서 쓸만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양산에 들어가면 빈약한 공업 생산력 때문에 영 못쓸 물건이 튀어 나오니까. 실제로 그런 예가 바로 Ki-84 하야테다. 하야테는 양산 과정에서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비행중 엔진이 멈춰버리는 등의 일이 많아 전장에서는 구형인 하야부사만도 못하다는 평을 들었으나, 제대로 만들어져서 정상적으로 관리만 받는다면 공랭식 기체 중에서는 우수한 축에 들어가는 물건이다.[12]
그럼 애니메이션처럼 프로토타입을 실전에 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력있는 숙련 기술자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만 가지고 병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대로 전황을 뒤집는 것은 엔터프라이즈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배는 미국 거잖아 안될거야 아마 그나마 이 경우도 대량생산이 안되는 함선인데다, 항공모함이어서 한 척으로 전황을 뒤집는 것이 가능했지만,[13] 전투기처럼 몇십~몇백기가 쏟아져 나오는 종류라면 몇대로 전황을 뒤집는 건 슈팅 게임 주인공 급 기체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파일럿이 적기 5대만 격추해도 에이스 소리를 듣듯, 전투기도 교전비가 5:1이면 이미 넘사벽이다. 게다가 일본의 적인 미국은 끝판왕이라서 함선마저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앞서 말한 엔터프라이즈도 실은 당시 미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2번함인 양산형이고, 호위항공모함은 분명히 군함인데도 100척 넘게 찍어냈다. 심지어 엔터프라이즈가 속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후속 함급인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분명히 정규 항공모함인데도 일본군의 항공모함이란 항공모함을 다 털어도 성능, 숫자 모두 압도해버린다.[14] 거기에 오로지 물자 수송을 위해 닥치는대로 마구 만들어서 마구 띄워보낸 리버티쉽에 이르러선...
설상가상으로 미군의 양산형 모델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야라레메카 양산형과 천지 차이가 났다. 일본군의 막강한 프로토타입보다 미군의 양산 모델이 더 강하니 버틸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는 일본군의 막강 프로토타입 구축함 시마카제로, 동시기에 미군이 58척을 찍어낸 알렌 M. 섬너급 구축함보다 속도와 뇌격전 능력은 앞서지만 대잠/대공성능이 크게 뒤쳐졌다. 그런데 2차 대전에서 구축함에게 요구된 건 우수한 대잠/대공성능이고, 뇌격전에서도 시마카제 정도로 빠를 필요는 없었다. 결국 시마카제는 일본군의 멍청한 운용까지 더해지면서 크게 활약하지도 못하고 전투로 함체가 상당부분 파손된 상태로 무리하다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보일러가 폭발하면서 폭침했다.
8 설계도는 거들 뿐
무기 설계부터 서구 국가에선 이미 오래전에 폐기한 방식을 사용했다. 위에 언급된 기술력 부재 때문에 우수한 설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서구 국가의 최신기술을 도입해서 설계도에 반영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현장에서 해당 기술을 살릴 능력이 없으므로 설계도를 제대로 그려도 있으나 마나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를 어엿비 불쌍히 여긴 독일군이 자국의 우수한 무기 설계도를 보내주었지만, 당시 일본의 열악한 공업 생산 능력으로 인해 그렇게 카피한 무기조차 원본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군이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줬더니, 자석과 성형작약탄, 심지어 수류탄에 들어가는 지연신관도 제대로 못 만드는 바람에 나온 자돌폭뢰가 있다. 저 흡착지뢰란 게 애초에 독일군이 제대로 된 보병용 대전차화기를 만들지 못해서 나온거다.(...) 그것조차 베끼지 못했으니...[15]
이건 미군 무기를 베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계도는 없어도 노획품은 있으니까 맨땅에 헤딩할 일은 없지만, M1 개런드조차 제대로 카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복잡한 병기를 베낄 수는 없다. 독일군의 반자동 화기인 G43도 미국의 M1 개런드보다 훨씬 복잡하고 성능도 영 좋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넘사벽 StG44를 만들었고 일본군엔 그런 거 없다.
심지어 MG 151은 그냥 손도 못댔다. 히엔에 달아보고 일본제 기관포와는 차원이 다른 그 화력과 신뢰성에 감탄하여 복제하고자 했으나 손도 댈 수 없었다. 물론 MG 151은 미국 역시 복제하려다 인치로 수치변경하는 등의 삽질로 작동불량이 빈발해서 골머리를 앓은 복잡한 물건이긴 하지만 손 조차도 댈 수 없던 것 보다야 훨씬 사정이 나았던 편.[16] 결국 초기에 입수한 800정을 400대에[17] 달아주고는 이후 생산분량은 자국산의 안습한 12.7mm 기관총으로 때우거나 그나마 쓸만한 Ho-5 기관포를 달아줬다.
9 쓸데없이 고퀄리티
일본군의 무기는 성능과 별로 연관이 없는 분야에서 쓸데없이 고퀄리티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 일본군의 주력 소총.
- 극초기형에는 일각대와 대공용 조준기가 붙어있었는데, 일본군도 그게 쓸데없이 고퀄리티임을 알았기에 중기형부터는 모두 사라졌다.
- 이 기관총에 쓰는 30발짜리 탄창에는 잔탄 카운터가 붙어 있었다. 탄약 아껴쓰라고 넣은 기능 같은데, 이러면 탄창 가격이 비싸진다. 그보다 기관총용 30발짜리 탄창에 그런 기능이 굳이 필요한가? 기관총의 존재 의의를 생각하면 이건 완벽한 바보짓이다.[18] 그리고 이 기관총에는 착검장치가 있어서, 51cm짜리 군도를 총검이랍시고 달아놨다. 최소 10kg에 달하는 기관총으로 총검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기관총 운용 병력에게 기관총으로 총검술 훈련을 시켰다.
미친 거 아냐?
-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채용된 장교용의 일본군도인데,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생산해서 칼날의 질은 떨어졌는데, 금도금된 도장구, 칼집 장식 등은 쓸데없이 화려했다. 반면에 내구력은 크게 떨어져서, 화려한 장식이 부서지거나 칼날이 손잡이로부터 분리되어 날아가거나 칼날이 휘어지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나중에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생산성과 품질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양산형 칼날로 바뀌지만, 하몬 같은 쓸데없는 장식을 좋아하는 일본군 장교들은 공장제 칼날을 하품 취급했다.
- 기관단총 주제에 양각대와 장거리 조준기가 붙어있다. 기관단총의 짧은 유효사거리를 감안하면 이런 물건들을 활용할 일이 전혀 없다(...) 이런 거 붙이느라 생산성만 떨어졌으니 그저 안습.
- 일본군 해군의 수륙양용전차인 카미는 45cm 경어뢰 2발을 장착할 수 있지만, 당연히 수륙양용전차가 실전에서 어뢰를 발사할 일은 없었고 양산계획에 차질만 초래했다. 쓰지도 않을 기능을 넣느라 생산을 늦추다니 무슨 지거리야! 참고로 제2 차 세계대전기에 미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같은 대규모 상륙 작전에서 운용한 상륙지원용 상륙장갑차들도 무장은 지상 공격용 기관포나 기관총 정도였지, 어뢰 같은 걸 달지는 않았다. 상륙장갑차 항목과 LVT항목을 참고할 것.
- 이 권총이 시제폼으로 나올 때는 권총이면서 군도로도 쓸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권총의 시제품에는 칼날을 달 수 있었다고.
결론적으로 저 쓸데없이 고퀄리티를 추구하다 보니 쓸모없는 저퀄리티인 물건들이 나온 것이다.
10 써 먹기 힘들다!
일본군 무기는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제로센은 조종실력이 뛰어난 천재 조종사만 그 성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나라 기술자들이 '바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반면, 일본 기술자들은 천재들만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데 열중한 것이다. 오늘날 일본 애니 등지에서 흔히 나오곤 하는 '너무 우월해서 천재정도 아니면 다루지도 못 하는 무기'[19]라는 클리셰는 이런 역사적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 만화의 주인공들은 보정을 받다 못해 치트키 쓴다는 의혹까지 부를 정도로 조연들이 심각하게 잉여화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기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나 보다 본격 바보들이 만든 천재들을 위한 무기 vs 천재들이 만든 바보들을 위한 무기[20]
여기서 더 안습인 것은 실제 일본군의 무기는 일본 애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세계 최고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천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바보라도 사용할수 있는 무기를 만들 기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능도 시원찮은 녀석이 조종마저 어렵다라는 최악의 조건인 것. 천재 운운도 대단한 게 아니라 단순히 사용자가 천재쯤은 되어야 떨어지는 무기 성능을 그나마 간신히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뿐이다(...). 실제로 사카이 사부로가 자서전에서 일본이 제로센의 후계기로 만든 시덴, 하야테 등에 대해 평가하면서 '성능은 좋다. 근데 조종성이 나쁘다. 그것 때문에 죽은 파일럿들이 꽤 있다'고 악평했다. 그뿐 아니라 제로센의 진짜 후계기로 만들어진 A7M 렛푸의 경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대파시켰던 바 있고 343 해군항공대의 비행대장 출신이었던 시가 요시오가 테스트 파일럿으로 참여하고 나서 "이따위 물건을 만들려는 놈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라고 혹평하기도 했다.[21]
인간을 무시하는 설계도 난이도 증가에 한몫 했는데, 97식 전차는 포수가 직접 무거운 대포가 실린 포가를 한쪽 어깨로 받친 상태에서 인력으로만 밀고 당겨야 조준이 된다는 방식을 채택하였고, 독일 전차의 선진적인 기술력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치하 개(改)에서도 이런 무식한 방식을 고수했다.[22] 1식 중전차 치헤를 조작하려면 빡빡한 기어를 넣기 위해 소련 전차병만큼이나 팔 힘이 세어야 했다. 일본군의 군함 역시 야마토급 전함을 포함한 일부 전함을 제외하고는 죄다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해서 영국 해군으로부터 "우리가 타는 건 호텔쉽이군"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23] 게다가 아리사카의 노리쇠는 그 악명높은 카르카노 보다도 더 뻑뻑해서 재장전 하는데에 애를 먹었다.
신뢰성 부족도 난이도 상승에 한몫 단단히 했다. 예를 들어 94식 권총은 구조상 문제로 인해 옆구리를 치면 저절로 발포된다. 10식 파쇄 수류탄을 던지려면 안전핀을 뺀 후에 신관부를 철모에 때리고 던져야 하는 골때리는 사용법을 따라야 하며, 그나마도 신관이 불량품이면 수류탄을 철모에 때리는 순간 자폭한다. 이뭐병.
그리고 일본군 무기의 써먹기 힘든 점을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단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11 복잡한 사용/정비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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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총기 사용 설명서 |
보다시피 글자 투성이. 사용자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이것은 명치유신 시기 이래로 행해진 의무적인 초등교육(당시에는 소학교) 정책의 초점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을 양성하고, 이들을 필요에 따라 곧바로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황국 신민화 교육의 일종이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24] 그런데 이 문서를 보시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그림도 없이 오로지 글자로만 어려운 내용만 빼곡하게 채워넣으면 읽기에도 이해하기도 매우 힘들다.[25] 안 그래도 일본군 무기는 사용하기 힘든 걸로 악명이 높은데, 설명서까지 어려우면 조종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히라가나가 아니라 가타카나라서 어렵다[26] 한자도 신자체가 아닌 구자체고,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로 쓰여 있다.[27]
그런데 적인 미군의 설명서에는 글자의 수가 극단적으로 적었고 대신 그림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당시 노획한 미군의 무기 사용 설명서를 들여다 본 일본군은 '미군들은 죄다 바보인가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던 것. 일본군이 생각했던대로 미군이 죄다 바보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바보도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28]
이건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티거에 모에선을 쐬서 만든 엘비라 티거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 여성과 친해지는 방법을 통해 티거 전차병들이 티거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티거 조종 지침서 '티거 피벨'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보는 입장에서는 예쁜 여자 그림도 있는 만화 쪽이 전공서적보다 보기 편하지 않겠는가.
소련도 경직된 사회분위기상 만화 매뉴얼까지는 힘들었지만[29] 바보도 쓸 수 있는 무기 컨셉에 맞게 삽화가 상당량 들어간 매뉴얼을 사용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됐듯이 적국인 독일인들도 놀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보들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고려한 결과다.
소련의 군사학은 마르크스적 유물론과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영향을 받아 반드시 물량우위를 갖추도록 노력할 것을 모든 전략전술에 전제하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에서 잠재적 아군으로 가정하는 대상은 못배운 노동자들과 소작농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신속히 혁명의 전위대로 무장시킬 수 있도록 무기체계 설계시 성능은 좀 낮더라도 생산성과 신뢰성, 교육 용이성을 중점에 둔다. 그래서 공산권 개인장비는 사실 교범까지도 필요없이 한두시간 구두교육 만으로도 어지간히 다룰 수 있는 편이다.
이 설명서만 봐도 일본이 우월한 민족이라서 복잡한 무기와 설명서를 터득할 수 있으며 적군은 멍청해서 얻어봤자 사용할 수 없다는 망상을 가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근데 과연 미군이 총알 떨어졌다면 자기 총을 버리고 이런 일본군의 무기를 들까? 과달카날땐 들었잖아 그래서 그런지 앞서 언급했다시피 요즘 나오는 일본애니의 클리셰인 '너무 우월해서 천재정도 아니면 다루지도 못 하는 무기' 또한 괜히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무기 메뉴얼은 시험에 나올 책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도 충분히 자기 무기는 다룰 수 있을 만큼 쉽고 간편하게 설명한 덕분에 무기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한 미군과, 글을 너무 어렵게 쓴 나머지 설명서 해독조차 힘든 일본군. 실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을 닥치는 대로 징집한 군대에서는 아무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똑똑한 놈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상당히 어리버리한 인간도 끼어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넌 이런 것도 못읽지? 읽고도 모르냐!"하는 부심을 충족시키는 것 보다는, "그 어떤 바보도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쪽이 더 나은 것이다. 이건 평시의 부대 안에서도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데, 전시의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담으로 마브러브 얼터너티브에서 총기 분해조립의 제한시간이 과장된 것도[30] 이러한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고 한다.
12 정비? 그거 먹는건가?
무기는 만들었다고 전부가 아니다. 유지 보수 역시 중요하다. 무기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량이라든가, 후계기 개발 및 선정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정비다. 이것에 대해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미국에 있을 당시 겪은 일화에도 잘 나오는데, 야마모토가 몰다 퍼져버린 자동차를 지나가던 평범한 소녀가 뚝딱 고쳐내던 것을 보고 그 경험에 의해 태평양 전쟁 개전을 반대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일본군은 이걸 게을리 했다. 일례로 일본군 항공대에서 항공기 정비요원은 조종사 교육 도중 조종사 후보생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선발해서 시켰다.[31] 그런데다가 전차들의 정비는 부품의 호환성이 가장 중요한데도 규격화가 되지 않아서 해당 전차를 만든 기업의 부품을 쓰지 않고는 수리가 불가능했다니 말 다 했다. 대전 후반에는 무기들의 정비를 담당해야 하는 기술병들이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치면, 알보병으로 전장에 끌려나가야 하는 판국인데 더 설명이 필요한지?
13 동맹국의 무기를 쓰면 되잖아?
자국 무기가 엉망이고 적군 무기를 노획하기도 힘들다면 동맹국의 무기를 지원받아서 쓴다는 방법이 있다. 이탈리아군의 무기야 일본군보다 조금 나은 성능이니 그러려니 해도, 독일군의 무기는 매우 성능이 좋으니까 수입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든 독일이든간에 이 나라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다. 거기까지 가려면 북극을 건너가거나 인도양이나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대서양의 제해권은 연합군에게 있다. 당연히 보통 수송선을 타고 가면 죽으니까 크고 아름다운 잠수함을 타고 가야 하는데, 그런 대형 수송 잠수함은 연합군에 비해 비교적 잠수함이 대형함이었던 일본에도 몇 척밖에 없다. 이래서는 수입해오는 무기의 양이 극단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으며, 예비부품을 조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만든 게 그 유명한 매스 드라이버, 구스타프 열차포... 물론 믿으면 일본군
그래서 독일에서 잠수함을 통해서 수백개 정도인 대량(?)으로 입수한 무기들은 따로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소중한 취급을 받고 정성들여서 손질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무기를 지급받은 부대는 정예부대로 평가받기 때문에 나중에 가면 독일제 무기 = 일본 정예병의 무기라는 요상한 법칙까지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후세의 소설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데, 일례로 가공전기에 등장하는 "마우저포"라는 물건은 MG 151 20mm 기관포로 독일에서 생산하여 잠수함을 이용해 들여온 무기라서,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본의 손이 닿지 않았음에도 미화물에 당당히 등장시키는 구상자체가 웃긴 일인데, 그걸 작가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부품 생산/수급자체가 힘드니 전황에 도움이 될리도 없고 오래 쓸 수도 없었다.
덤으로 큰 무기를 수송하기도 어렵다. 티거 전차를 구입해놓고도 수송이 안 돼서 못 가져온 적이 있을 지경이다. 게다가 이미 대금까지 지불해버린걸 또 환불해달라고 하기도 뭐한지라 독일에게 양도했고, 이 일본군 소속 티거는 독일군이 사용하다 소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도 일본군은 웁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자기들이 쓸 무기도 모자라는 상태였다. 일본에 무기를 보내줄 정도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만성적인 무기부족으로 인해 생긴 촌극도 있을 지경. 그럼에도 독일은 동맹국을 챙겨주기위해 '알아서 베끼라고' 여러가지 기계류 모델 및 샘플, 설계도를 잠수함으로 보내주었는데, 일본군엔 그걸 복제할 기술력이 없었다. 그에 반해 연합군 측의 미군은 M4 셔먼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서 동맹국 군에 증여도 할 정도였다. 심지어 대전기의 소련도 셔먼을 랜드리스 해서 쓸 정도였다!
14 가격은 안드로메다로
위와 같은 병크는 당연히 가격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가격대 성능비가 진짜로 좋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안 그래도 성능도 안좋은 물건을 소량만 보유하게 되는 막장사태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일본군의 94식 이스즈 6륜 트럭은 똑같은 성능의 민간용에 비해 3배 비쌌다. 붉은색이였나 보다 게다가 해당 트럭의 성능은 일본군 스스로도 욕이 나올 정도로 안좋았다.이는 일본군의 후예인 일본 자위대에도 고스란히 전승된다.[32]
위에서도 언급된 상륙 전차 카미는 상륙전 시에 포격지원을 우선으로 해야 할 상륙전차에 상륙지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어뢰 운용을 위한 부품들을 덕지덕지 붙이느라 차량성능과 가격에 악영향을 준 경우다. 상륙전차가 배를 격침시킬 일이 있나보다.
15 후계기가 없어요
저런 문제들도 크지만 이 문제 역시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A6M이나 97식 전차등의 일본 무기들이 위키 내에서 대차게 까이고 우주쓰레기의 대명사 취급 받지만 만들어진 직후를 기준으로 한다면 중간은 가거나, 꽤 괜찮은 무기 축에 드는 경우도 많다. 그 악명 높은 제로센만 봐도 등장할 당시엔 "저새끼들이 2000마력짜리를 만들었어!!"라고 평가되었을 정도이다.[33]
문제는 그런 무기들을 이렇다할 개량이나 후계기 없이 너무 오래 우려먹었다는 점이다. 어라 쟤네는 만날때마다 비행기가 바뀌네[34] 물론 일본군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어서 나름대로 개량은 했다. 하지만 연합군이나 독일군 장비의 개량에 비하면 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성능 향상이 미미했으며, 일부는 차라리 개량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할 정도로 개악된 점도 있었다.
같은 추축군인 독일에서 전쟁기간 내내 쓰인 4호 전차의 경우 첫 실전에 투입된 형태인 D형은 치하와 마찬가지로 보병지원용 전차였던만큼 안습하기 그지없는 카탈로그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동체급 전차들 중에서는 굉장히 우수한 축에 속하는 전차로 업그레이드 되어 전쟁 후반기까지 꾸준하게 활약했으며 전투기인 Bf109 역시 계속된 개량 덕분에 전쟁 말기까지 활약을 펼쳤다. 덕분에 4호전차나 Bf109는 적국의 동체급 장비들과 비교해서 전쟁 내내 거의 비슷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예 저 둘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부 국가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제로센의 라이벌 F4F 와일드캣 역시 날개를 접을 수 있도록 개량하고, 기관총의 숫자를 늘리고, 엔진의 출력을 강화하는 등 지속적인 개량을 거쳤으며 전쟁 중기에 가면 아예 후계기인 F6F 헬캣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호위항모용으로 용도가 전환되어 최전선 주력병기에서 물러났다.[35] 그리고 서부전선의 잡졸 취급받는 그 M4 셔먼도 실제로는 포방패, 궤도, 주포 등 여러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량한 덕분에 서부전선이나 랜드리스를 통해 지원한 동부전선에서도 의외로 괜찮은 전적을 쌓았다. 이후의 한국전쟁에서도 이러한 업그레이드에 힘입어 공산군의 T-34 전차를 능가하거나 최소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소련에 티거가 없어서 근데 소련엔 그 티거를 때려잡는 IS가 있었잖아
반면 제로센은 후계기인 렛푸부터 전쟁 끝날 때까지 제대로 생산되지 못했으며, 전쟁 말기 즈음엔 파일럿들의 요청과 엔진의 강화 등으로 일격이탈은 수행할 정도까지 내구성은 끌어올려져 있었으나 끊임없는 개량에도 불구하고 적 폭격기조차 제대로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으며[36] 무장 역시 적기를 제대로 막아낼만큼의 화력이라고 보기엔 부족했다.
치하 전차 역시 나올 당시엔 보병지원용 차량이었기에 대전차전을 상정하지 않았고, 어쨌든 일단은 전차기에 대전차화기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보병 지원 방면으로는 활약할 수 있었다. 대전차 능력이 형편없던 중국군 상대로는 이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점차 대전차전이 중시되고 전차의 성능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개량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한 개량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후계기인 치헤와 치누도 전황에 영향을 끼치기엔 너무 늦게 뽑혀나왔으며 설사 제때 배치되었다고 해도 미군의 주력전차인 셔먼과 과연 대등히 맞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전차들이었다.[37] 결국 전쟁기간 내내 일본군 전차병들은 시대의 흐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양철관이 돼 버린 하고나 치하 같은 전차를 타며 고통받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군은 치하 전차의 후속 전차를 생산하긴 했다. 다만, 치누는 만들어놓고 본토방어 때문에 써먹지도 못했고, 치토는 프로토타입만 만들어 놓고 종전, 치리는 미완성으로 종전을 맞이했다. 그런데다가 초중전차인 100식 전차 역시.. 게다가 제로센의 후속기인 A7M 렛푸는 엔진이 문제라서 제대로 생산도 못했다.[38] 그래서 프로토타입 몇 기 생산하고 끝.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렛푸는 시제기, 즉 프로토타입부터 실패였다. 오죽하면 343 해군항공대의 비행대장을 지낸 시가 요시오가 테스트 파일럿으로 렛푸를 테스트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 "이따위 물건을 만들려는 놈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였겠나?[39]
16 기름이 없단 말이다!
일본군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쉽게 표현하면 야마토급 전함 문서에서 야마토가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라는 항목에 있는 대로다.
요약하면 총포류를 제외한 어떤 무기든 연료가 없으면 굴러가질 못한다.
애초에 일본군 해군이 미국에 진주만 공습을 때리며 태평양 전쟁을 개전한 이유도 연료부족이 이유 중 하나일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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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담으로 제로센의 엔진에 사용된 볼 베어링의 정밀도는 현대 일본의 파칭코 구슬 이하의 정밀도(...)를 자랑했다고 한다. 다만 진짜 저정도 수준으로 떨어진건 대전 말에 공업능력이 개판으로 떨어진 시점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 ↑ 해당 자료. Seafire IIc performance PDF. 스핏파이어는 같은 형식번호라도 엔진을 비롯해서 차이가 있으므로 동일한 출력의 엔진을 가진 기체끼리 비교함.
- ↑ NAVAL AIR SQUADRON INDEX (700-1800)
- ↑ [1]
- ↑ Naval Air Force. 보면 알겠지만 1985년에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폭격기 160대가 해군 항공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 ↑ 일본의 국력 자체가 미국같은 강대국에 비해서 열세인 상황이고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같은 조약으로 주력함의 비율이 영국:미국:일본=5:5:3으로 제한되었으니 일본군이 아무리 바보라도 주력함의 숫자로는 못이긴다는걸 모를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 수적 열세를 압도할 질적 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것도 아닌것 일본의 건함 노하우가 일본보다 좋다고 보기도 어려운데다가 타국이 3연장포를 탑재할때 2연장포로 버티다가 뒤늦게 야마토급 전함에 가서야 3연장포를 탑재했다. 그나마도 성능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말이 많은 물건이기도 하다. 야마토급 전함 항목 참조.
- ↑ 엔진 몇개를 제외하면 계획상으로만 존재하는 물건이다. 덕분에 G10N 후가쿠 문서에 들어가서 보면 나오는 건 죄다 상상도다.
- ↑ 공업 규격은 산업화, 자동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어떤 물건이 규격이 되고 나면 그 규격에 맞춰 나오면 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개량도 하면서 기술력도 올라가며, 규격에 맞지 않는 것은 자연히 도태되는 것. 어떤 의미로는 규모의 경제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영역이 규격화라고 볼 수 있다.
- ↑ 기동전사 건담 UC에서 등장한 '유니버셜 스탠다드 역시 이것의 오마주. 차라리 여기선 지온 잔당도 US를 따라서 장비 호환이 되었지만 현실의 일본군은 그런 거 없다.
- ↑ 애초에 소련은 독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수백만명이 넘는 기술자, 노동자들, 과학연구소와 과학자들, 산업체와 집단 농장들, 그 재산과 기계, 가축들을 우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으로 소개시켰다. 중요기술자들 같은 경우엔 독일군의 포격을 받는 와중에도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빼돌렸고 덕분에 소련은 랜드리스를 받으며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물자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런 차이가 있었기에 일본이 오각형 볼트나 만들고 있을 때, 소련은 핵개발까지 가능했다.
- ↑ 문제는 숙련공이 부족하다면서 정작 숙련공이 생기면 그대로 전장에 투입해서 알보병으로 갈아넣는다는 것이지만...
- ↑ 적어도 항공기술에 있어서는 서방 선진국들은 못따라가도 소련과 비등한 수준까지는 갔었고, 오히려 과급기 같은 부분에서는 소련보다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 후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한 공업능력 상실은 그 얄구진 빛마저 바래게 만들었다.#
- ↑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교전을 치르더라도 카미카제라든지, 어뢰 같은 배 자체를 노린 공격이 아니고는 왠만하면 함재기 피해만 있지 본체인 항모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반해 포격전의 경우 이기더라도 적 포탄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수리 및 정비가 필요하다. 즉, 항모는 계속해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
- ↑ 일본이 태평양 전쟁 개전 초부터 항복할 때까지 보유한 경항공모함, 개조 항공모함을 포함한 전체 항공모함 척 수가 26척인데, 대전기의 미국이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후속 함급으로 급조한 에식스급 항공모함만 따진 척 수가 24척이다.(원래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계획 당시 32척 규모로 건조할 예정이었다.) 모자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대전기에 취역시킨, 100척이 넘는 호위항공모함을 빼고 순수하게 에식스급 항공모함만 쳐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중요한 거 한가지.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이 태평양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무렵이면 일본에 항공모함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항공모함들이 정규건 개조건 할 것 없이 거의 다 침몰돼서 없어졌다는 것도 있고, 일본 해군 수뇌부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함대결전사상 때문.
이러니 항공모함을 내다버리지... - ↑ 물론 2차 세계대전때 독일군 화기가 마냥 우수한건 아니었다. 인류 최초의 돌격소총 StG44이나 전기톱 소리를 들은 MG42, 명작 기관단총 MP38/40, 루거/발|P터계열 권총 같은 역작들도 많았지만 기관총 모에(...)에 너무 빠져 반자동 소총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거나 하는 나사빠진 면도 있었다. 대전차무기의 경우는 군비재건 중에 전쟁이 나버린 바람에 개전시점에서는 제대로된 것은 아직 배치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중에 추가되었으므로 패스.
- ↑ 사실 미국도 이상할 정도로 20mm 기관포 개발에서 삽질을 거듭했는데 히스파노 기관포도 미국에서 만든건 이상하게 신뢰성이 더 떨어진다던가 하는 문제는 있었다.
- ↑ Ki-61에 주로 사용했는데 추락한 기체에 달린 기관포까지 회수해서 쓸 정도로 애지중지 사용했다고 한다.
- ↑ 이게 왜 바보짓인지 알기 쉽게 해설하면, 소총(자동 소총, 반자동 소총, 볼트액션식 소총 할 것 없이.)이나 저격총 같은 총은 격발할 때마다 한 발씩 나가는 총이므로 탄창이 있는 총이라도 잔탄 카운터가 붙는 게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관총은 목표부터가 소총과는 달라서 연발로 제압사격을 하면서 일정 범위를 화력으로 갈아버리는 것을 주 목표로 한다. 그렇기에 잔탄을 신경쓸 여유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래에 있는 100식 기관단총의 장거리 조준기 역시 마찬가지.
- ↑ 특히 건그레이브에서 케르베로스는 "파괴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단 한 사람 빼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언급했다.
- ↑ 실제로 이런 취지의 발언을 독일의 항공기 기술자가 일본군 에이스 파일럿과의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 ↑ 사실 이리 된 이유는 군부가 익면하중을 제로센처럼(!) 낮추라고 해서 무리하게 낮췄다. 그러니 결과가 이 모양. 즉, 렛푸도 제로센마냥 제1차 세계대전기의 항공전 교리를 깔고 제작하라고 군부가 강요한 게 렛푸의 성능이 개판이 된 원인이다.
차라리 그냥 복엽기를 만들던지? - ↑ 영국의 2파운더 전차포를 탑재한 초기형 전차들도 치하와 비슷한 조준 방식을 가지지만 포가의 조정이 더 가볍고 정밀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명중률 저하와 속사시 조준이 제멋대로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독일 전차나 대전차포에게 발린 뒤에는 아예 해당 전차 자체를 구식병기로 격하하거나 주포를 환장하면서 인력 조준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변경한다. 이런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것 자체가 일본이 영일동맹에서 얻은 기술력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 했다는 증거다.
- ↑ 이것은 만들다가 개장되면서 함종이 바뀐 군함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아마기급 순양전함이었던 아카기와 카가급 전함이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카가. 이걸 감안하면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시나노 역시 다르지 않았을 듯.
시나노는 개장 완료 작업을 하러 가던 도중에 잠수함에게 걸려서 꼬르륵 해버렸지만... - ↑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1930년대 말부터 황국 신민화 교육이 실시되었다고 나와 있지만, 일본에는 이미 명치유신기부터 자국의 국민과 군인을 언제든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식으로 세뇌하는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다. 단지 그 강도가 1930년대 말에 비해서는 훨씬 약했을 뿐이다.(왜 이렇게 된 건지 하면, 명치유신 당시에는 일본의 국민들에게만 세뇌를 하면 됐지만, 1910년 이후 한반도가 식민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 사람들이 보통 독해야지.... 한반도 사람들을 일본의 노예로 삼기 위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인 창씨개명도 그 와중에 나온 것이다.) 일본사를 전공하거나, 관련 내용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 하고 떠오를 만한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육칙어와 군인칙유.
- ↑ 간단한 예시로 옛날 MS-DOS의 프로그램 실행시킬 때마다 일일이 CD명령어로 디렉토리를 옮겨다니며 명령어를 때려넣는 방식이 쉬울까, 오늘날 Windows의 간단한 아이콘 클릭이 쉬울까를 생각하면 된다.
뭐 요즘도 명령어 일일이 때려넣어야 할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니 넘어가자. - ↑ 일본 제국은 공문서나 학교 교육에서는 히라가나를 잘 쓰지 않고 가타카나만 사용했다. 문제는 탁점도 없다는 거지만.
- ↑ 실제로 일본인이라 해도 구어체는 잘 구사하면서, 문어체는 아예 읽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가 라디오로 발표한 항복선언, 일명 옥음방송도 일본어 문어체(황족언어라고 하지만 문어체가 맞다. 자세한 건 옥음방송 항목 참고.)로 구성된 항복선언서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를 못할까 싶어서 방송사에서 구어체로 통역을 했을 정도다.
- ↑ 60년대 베트남 전쟁때 미군은 M16을 사용하는 병사를 위해서 만화로 매뉴얼을 만들었다. 만화
- ↑ 그것도 스탈린 시대 얘기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경우 풍부한 삽화를 곁들인 병사용 현지 민사 대응법 책자같은걸 지급했다.
- ↑ 제한시간이 15분, 평균 10분 그리고 M-16의 분해조립시간이 얼마냐고 묻자 글쎄 5분?이라고 답했다. 참고로 현 우리나라 국군에서 M16 분해조립을 하는 데 주는 시간은 최대 1분 20초에서 1분 30초 정도지만, 숙달되면 30초 내외로 떡을 친다.
- ↑ 이런 와중에도 병크가 터진다. 정작 조종사의 계급은 조종사 지원 전의 계급으로 묶고 진급에도 소태같이 군다. 그에 반해 정비병들은 계급이 차차 오르니, 나중에는 조종사 후보생에서 탈락해서 정비병이 된 사람이 같은 비행학교 출신인 조종사보다 계급이 더 높아지는 사태도 나온다. 즉 같은 비행학교에서 공부했고 조종사 탈락한 한쪽에게 조종사가 자기 항공기를 정비해달라고 할 때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도 터지는 것이다.
- ↑ 실제로 일본 자위대에서 운영하는 73식 시리즈 중형,대형 트럭들의 평가는 엄청 나게 안 좋은데도 가격은 비슷한 체급 혹은 동급 체급의 민수 트럭보다 더 비싸서 자위관들 사이에서 이걸 퇴역시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업체-자위대간의 유착이라고 할 정도. 참고로 중형 트럭은 도요타와 히노가 생산하며 대형트럭은 94식을 만든 이스즈에서 만들었다.
- ↑ 다만 제로센의 기동성은 기체를 만든 재료부터 내구도를 무시한 터무니없는 감량에 의한 것이었다. 그 결과 방어력은 이름답게 제로... 그리고 기체 강도 역시 제로여서 기동성이라 해봐야 (실속에 빠지기 쉬운) 저속에서의 선회전 위주 기동성이니 고속에서 해야 하는, 연합군 기체가 툭하면 700km/h, 800km/h, 900km/h 대를 찍으면서 해대는 붐 엔 줌 같은 급강하 기동을 따라 하면 기체가 가속도를 버틸 수가 없어서 산산조각날 수도 있는 건 덤. (일례로 F4F 와일드캣이 붐 엔 줌 기동을 해도 제로센은 그걸 제대로 잡을 수 조차 없다. 오히려 따라잡으려 했다가 산산조각나기 십상.) 2000마력 소리도 이를 몰랐기에 나온 말이다. 자세한 사항은 제로센(제로센의 정확한 명칭은 A6M이며 풀어서 쓰면 미쓰비시 사 설계의 여섯번째 모델인 0식 함상 전투기.)의 스펙 표를 보자.
- ↑ F6F 헬캣의 경우는 바로 전 함재기인 F4F 와일드캣과 모양이 비슷해서 똑같은 걸로 착각하고 스에다 토시유키 같이 와일드캣을 상대하던 방법으로 헬캣을 상대하다가 역으로 털려버린 경우가 자주 있었다.
- ↑ 이때 호위항모용이 된 와일드캣을 FM-1, FM-2 라 부르는데 이거 원래의 F4F 와일드캣 개발사인 그루먼에서 제작한 게 아니라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서 제작한 거다.(물론 FM-1, FM-2의 기본적인 설계는 F4F-4가 아닌 F4F-3와 비슷하다. 엔진이 기존의 1200마력에서 1300마력대로 업그레이드 된 것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게다가 대전기 최강의 함재기라 불리는 F4U 콜세어의 경우 타이어 제조 회사인 굳이어(goodyear) 사에서 제작한 것도 있다. 콜세어 시리즈 중 FG로 네이밍 된 것이 굳이어 사 생산 버전.
- ↑ 전쟁 종료까지 살아남은 에이스 파일럿 아카마츠 사다아키의 인터뷰에선 그 제로센으로 활약한 베테랑이 '적기에 비해 제로센은 상승성능, 하강성능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저 사람은 단신으로 머스탱 수십기 사이에 뛰어들어 한기를 격추하고 귀환한 레전드급 파일럿인데도 말이다.
- ↑ 치누를 테스트해본 미군의 평가에 따르면 '셔먼으론 안 붙는게 좋을 듯.'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지만 이게 '셔먼만큼은 되니 퍼싱으로 밀어버리자.'인지 '이거 셔먼보다 훨씬 세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치누의 성능은 카탈로그상으로는 초기형 셔먼보다 약간 열세한 수준이지만 이 항목을 보면 알수 있듯이 실제 품질은 카탈로그보다 훨씬 저질일건 뻔한 만큼 치하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지 강화된 셔먼에게 털릴 건 뻔하였다. 이걸로 미뤄볼때 저 '셔먼으로는 안 붙는 게 좋을 듯'이라는 언급은 단순한 엄살로 보인다.
- ↑ 왜 엔진이 문제였는지 하면, 엔진 생산 설비 자체부터 제로센의 엔진에만 고착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토 타입용 엔진 몇 기만 생산하고 끝. 그리고 A7M 렛푸의 엔진은 설계상 2000마력을 넘는 엔진을 달 예정이었다. 그런데 기술이 따라가야지...렛푸가 시제기만 몇기 만들어지고 끝난 건 바로 이 때문.
- ↑ 이것도 이유가 멍청한 군부가 익면하중을 제로수준까지(...) 낮추라고해서 무리하게 낮추다 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