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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제외.
조국을 지키려고 젊음을 바친 우리

북한산 정기 받아 충성으로 뭉쳤다
가슴마다 타오르는 필승의 그 신념
호국의 선봉이다 자랑스런 56사단
 
영광의 수도서울 우리가 사수하고
몸과 맘 다 바쳐서 적화망상 부수련다
가슴마다 타오르는 필승의 그 신념
호국의 선봉이다 자랑스런 56사단

56사단가

파일:56사.gif
제56향토보병사단

1 개요

연평도 포격 도발 1주기 추모 현수막을 내건 사단 위병소의 모습.

대한민국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6향토보병사단이다. 별칭은 북한산부대.저녁 5시, 6시 칼퇴근.. 주 5일 출근, 6시 칼퇴근이 아니라?

원래 서울특별시 중·서북부 지역만을 담당했던 사단이었으나, 2011년 12월 57사단(용마부대)을 흡수한 이후 서울 강북 전역을 관할 위수지역으로 삼고 있다. 구 57사단에 대해서는 아래의 별도 항목 참조.

1975년에 고양군 신도읍 화전리(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서 창설된 60훈련단(1990년에 창설된 제60동원보병사단의 전신이기도 하다)이 이 사단의 모체이며, 1984년에 수방사 예하 52사단과 함께 창설되었다. 사단 창설과 동시에 서울 강북 지역의 위수임무를 30사단(현 30기보사)으로부터 인수받았다.[1] 199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서울 강남 전역을 관할하는 향토사단은 제52향토보병사단 항목 참조.

전방 전투사단이 아닌 향토사단이고 병력 수도 그만큼 적기 때문에 전군에서의 비중이나 영향력,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으나,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수도 서울, 다시 서울의 심장부인 한강 이북 지역을 담당하는 부대이기 때문에(당장 관할 구역 내에 청와대가 있다![2]) 실질적인 중요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2 부대 마크

수도 서울에서도 가장 중요한 종로구, 중구 등 도심 지역을 방어하기 때문인지, 수방사 예하의 타 사단 부대마크와는 달리 수방사의 방패 모양 마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대 숫자(56)를 특별한 형상화 없이 그대로 쓰고 있다. 주황색 바탕색은 지하철 3호선을, 56은 다섯시 여섯시를, 칼은 칼퇴근을 상징하여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동계)5시나 (하계)6시에 칼퇴근 하는 56사단 상근병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3 위수 지역

서울특별시 강북 전역을 관할 위수지역[3]으로 삼고 있다. 단, 외출, 외박 허용구역으로서의 위수지역은 서울 한강 이남까지 확장되었다. 서울 강북 지역에 거주하는 예비군들의 향방훈련, 동원훈련 및 수많은 대학교 학생·직장예비군과 기업 직장예비군훈련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예하 연대들은 연중 예비군들의 저글링 러시 부대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예하 부대가 서울 남부권에 산재한 52사단과 다르게, 57사단 흡수 전까지 예하 연대가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은 의정부시, 남양주시 등지에 옛 57사단 예하 연대가 분포하고 있다.

서울 강북 도심에서 을지연습, 민방위훈련 등을 할 때 등장하는 군인들은 거의 이 사단 소속이다.

4 부대 배치

현역의 경우 육직부대(수방사)[4]의 특성상 306보충대 보다는 논산훈련소와 같은 후방 신병훈련소 출신자들이 더 많이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2작사 예하 향토사단 신교대 출신자에게 1, 3군 지역 부대 배치제도가 도입된 2010년 이전에는 그쪽 신교대 출신자가 갈 수 있었던 가장 최전방 부대이기도 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상근예비역에 경우 훈련 종료 이 후에 각자가 알아서 귀가해야 되기 때문에 서울 강북 서부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신병 훈련소인 백마부대 훈련소[5]에서 배출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러나 2012~13년 기준 상근예비역 중 백마부대 훈련소 출신은 찾아보기 힘들며 대부분 제32향토보병사단, 제37향토보병사단 등 충청권 향토사단 신교대 출신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호남권 향토사단 신교대 출신 정도. 때문에 상근예비역의 훈련소 퇴소 난이도가 높아졌다

신병교육대에서 배출된 이후에 사단에 도착하면 처음 보충중대라는 곳에서 대기꿀 빨기를 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사단의 기동대대 간부가 와서 전입 권유를 하는데[6] 되도록 무시하자. 어지간히 몸에 자신이 있지 않는 이상은 기동대대는 피하는 편이 좋다. 특히 서울에서 무슨 회의나 행사라도 열리게 되면 얄짤없이 기동로 방호, 감제고지 확보 명목으로 산속에 들어가서 노숙해야된다. 물론 헬기 레펠도 해보고 유격 조교도 해보고 싶다면 자원해라 막지는 않겠다. 어차피 연대가면 각종 검열과 예비군 훈련, 직할대 가면 사단 및 사령부 심부름(정말 별 희한한 일을 다 시킨다.) 등 피곤한건 똑같다. 아직 군에 입대를 안했거나 이제 막 배출된 신병들의 경우 이해가 안되겠지만, 이미 병력의 절반이 간부인 이상 어딜가든 지옥이다.

대기가 끝나면 높은 확률로 예하 연대로 배치를 받게 된다. 216, 217[7], 218, 219, 220, 221, 223연대[8][9]가 있는데 그중 동원예비군 훈련장과 사단내 유격장을 보유한 218연대가 가장 규모가 크다.[10] 218연대는 예비군 동원 훈련이 이뤄지는 곳으로 동원예비군과 연관있는 위키러에게는 용산 교장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할 것이다.

5 부대 구성

사단직할대(3697부대)

  • 공병대대[11]
  • 기동대대[12]
  • 보충중대
  • 정보통신대대[13]
  • 헌병대
  • 본부근무대
  • 보급수송근무대
  • 정비근무대[14]
  • 의무지원대[15]
  • 화생방지원대
  • 포병대대(2327부대)[16]

예하 연대

  • 218연대(3537부대/노고산부대/지축교장) - 가장 규모가 큰 연대로 동원훈련장과 유격훈련장을 보유. 막사도 그에 걸맞게 크고 아름다운 신형 막사가 들어서 있다.
  • 219연대(1905부대/삼각산부대/교현교장) - 맞은 편에 30사단 예하 여단이 있으며 72사단과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함. 연대 위병소 왼쪽에 포병대대가 위치하고 있다.
  • 220연대(2188부대/용마부대/덕릉교장) - 당고개역 근처에 위치한 연대이다. 2014년부로 시설노후를 이유로 예비군 훈련 기능이 중지되었다. 덕분에 강북구, 성북구 지역예비군 및 강북구, 성북구 소재 대학예비군들은 입소하는데 2시간 정도를 날린다 카더라.
  • 221연대(3298부대/비룡부대/금곡교장) - 73사단 바로 옆에 위치하였으며 연대 통폐합 당시 222연대의 부지를 합쳐서 218연대에 버금가는 크기를 자랑한다.
  • 223연대(2997부대/독수리부대/호원교장) - 의정부에 위치하였으며 부대 뒤로 도봉산이 있다.
  • 동원지원단 - 220연대와 같은 부지를 쓰고 있으며 단장은 연대장과 마찬가지로 대령이다.

6 부대 임무

예비군 훈련이 주된 임무이지만, 이런 향토·동원사단들이 다 그렇듯 현역 훈련도 하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하다. 대대 단위로 돌아가면서 예비군 훈련을 맡는데, 예비군 훈련이 없는 기간에는 현역 훈련 또는 각종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하 연대들은 규모가 매우 작아서, 경계 근무와 업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경우가 많다. 형식상 부대 단위는 연대로 되어 있지만, 실제 막사에 상주하고 있는 병력은 전방의 1개 중대급 인원밖에 되지 않는다(감편). 당연히 나머지 수많은 병력들은 유사시 동원된 예비군들로 채워진다(완편). 2008년 기준으로 연대 당 약 350여 명 수준.

참고로 56사단 근처 모 동원사단의 연대 당 병력은 이보다 훨씬 적다. 무려 두 자리 수... 동원 훈련장을 보유한 218연대는 그 규모가 좀 더 컸으나, 현재는 모든 연대가 200~300여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막사상주인원 외 상근예비역까지 치면 좀 더 많아지긴 한다. 사단 총 병력의 약 30~40%가 상근예비역이다.

7 부대 특성

현역들의 생활은 거의 대부분 어느 부대이건 비슷하겠으나 56사단은 부대의 특성상 도심지의 방어를 맡은 향토사단이라 각 동대에 소속된 예비역들을 관리해야하는 동대도 많다. 또한 동대에 소속된 상근예비역 병사들이 많다. 어찌보면 사단에 소속된 병력들 보다도 상근예비역들이 많을지도(...)모른다. 게다가 예하 연대로 출퇴근을 하는 병사들까지 합치면 정말 그럴 것이다.

부대 숫자(56)에 걸맞게(...) 과거에는 정말로 저녁 5시, 6시 칼퇴근이었지만, 현재는 전투부대가 아닌 행정부대화의 극한을 달려 저녁 5시, 6시 칼퇴근이 아니라 새벽 5시, 6시 칼퇴근 혹은 5시, 6시에 퇴근하면 칼맞는 곳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병사들의 추가 업무도 급상승! 어머나 씨발[17]-56사이의 칼이 그려진 부대마크 의미가 5시30분 칼퇴근이라 카더라

향토예비군 사단의 특성상, 병사의 수는 적은데 주적 간부는 차고 넘치는 곳이다. 수시로 부대에 드나드는 동대장들까지 포함하면, 간부 숫자만 세 자리 수에 이른다. 본격 병사보다 간부가 많은 부대

아무튼 이런 괴악한 병/간부의 비율 때문에, 이 부대에서는 간부를 보고 쪼는 일은 거의 없다. 발에 채이는 게 대위라서(그것도 거의 다 대위 말년들이다.) 사람 좋은 간부라면 계급을 넘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쌓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
다만 반드시 피해야 할 존재가 있으니, 바로 동대장들이다. 예비군 훈련이 시작되면 일주일 내내 동대장들이 부대를 들락날락하게 되는데, 병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들이다. 직속 상관도 아닌데 사사건건 부려먹지[18], 마음에 안 들면 곧장 버럭하고, 또 다들 군생활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이라 자존심도 매우 강하다. 당연히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실제로 동대장들 중에는 짬밥이 상당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19] 현역 대대장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나이는 많지만 직위는 낮은 동대장들과 나이는 비슷하거나 더 어리지만(..) 직위는 직속상관인 대대장 사이에 기싸움이 발생한다면 소속 병사들은 죽어난다. 거기다가 옛날 사람들이라 현재 보안수칙에 무지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보안감사 시즌이면 정보과 간부와 병사들은 한숨을 푹푹 내쉰다. 자기 과실이면서 적당히 맡기고 '그럼 잘 부탁하네~'라고 튀는 동대장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 그리고 진정한 지옥은 초과근무. 초과근무를 켤 수 있는 오후 6시가 되는 순간 상황병은 지옥을 맛본다. 지휘통제실에 있는 군 내선과 민간선, 심지어는 통신쪽의 교환대까지 초과근무신청이 오기 때문.[20] 상황근무를 선 지 얼마 안되는 신병의 경우는 말그대로 멘탈붕괴를 맛본다. 하나라도 빵꾸나면 동대장들의 호통이 돌아오고(그사람들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돈이 사라지는거다) 간부와 고참병들의 까임도 동시에(...). 물론 익숙해진 상병 이상급은 동시에 전화기 3개를 커버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래봐야 보급병, 동원병들에게는 설설 긴다.(...) 특히 보급병들... "우리 동대 피복 좀 사이즈 좋은걸로 줘~"라고 징징대는 동대장들을 보면 귀엽다.(...) 좀 다른 얘기지만 소속 상근예비역에게도 약하다

또한 예비군 훈련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예비군 훈련장이 연대마다 딸려 있고 예비군 총기·탄약·물자들을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적은 병사들로 이것을 다 관리하기 힘들다. 또한 후술할 상급 부대의 각종 검열들과 겹쳐서, 행정병이든 전투병이든 공평하게 지옥을 본다.

거의 대부분의 예하연대 보병대대원들은 본부중대원들을 제외하고 모두 예비군 조교의 임무도 함께 수행한다. 상기의 내용은 예하연대 행정병들의 애환이 담겨있다면(...) 후술될 내용은 예비군 조교로서의 56사단 예하연대의 현역 소총수들 이야기이다. 전역한 예비역들은 모두들 알다시피 예비군 훈련은 크게 1~4년차 동원훈련 및 동미참 훈련, 5~6년차 향방훈련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잘 알것이다. 56사단의 보병대대들은 이 예비군훈련을 시키는 것이 평시 임무중 하나이며 3월부터 11월 까지 예비군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주요일과가 짜여진다. 현역 소총수들은 각 중대별로 전해져 내려오는 교육 시나리오를 숙지하여 예비역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게 된다. 물론 신병조교처럼 엄격하게 교육시키는 것은 불가하나 최소한 예비역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나름의 노력을 한다. 부디 예비군 훈련 조교들을 만날 경우 그들을 너무 비웃지는 않도록 하자. 그들 역시 뺑이치는 현역 소총수이므로.

첫째 동원훈련의 경우 전 육군의 모든 보병대대들이 그러하듯 향토사단의 보병대대도 동원훈련을 실시하며 동원훈련의 스케일이(...) 남 다르다. 대략 중대당 소집 인원 100여명에 현역이 10명 남짓 정도이며 동원훈련을 온 예비역들의 작게는 침구류부터 장구류 등등 그들의 2박 3일을 나게 해줄 장비들을 평상시 부터 관리한다 (...) 곰팡이가 슬거나 더러우면 민원의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원훈련 일주일 전부터는 모포털기, 메트리스 털기, 군장끈, 수통 등등의 위생관리를 실시하면서 동원훈련을 준비한다. 동원훈련 간에는 주특기 별로 예비군들을 모아서 주특기별 교육을 실시하며 교관인 동대장의 보조역할을 해야 하나(...) 주로 교육을 맡게 되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조교 : 선배님들 전방에 보이는 건물까지 약진하시겠습니다! 예비역 : 뭐래 약진이 뭐야?

둘째 동미참 훈련의 경우 주둔지 내 훈련장에서 실시하게 되며 소속 조교의 군생활 중 가장 많이 실시하는 훈련이다. 아주 당연히 평상시에도 대대 별로 각각 교장을 맡아 관리한다. 훈련장은 각개교장, 사격장, 수류탄 교장 등등으로 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대대가 평시 인원이 반백이 안되는건 안자랑 예비군 훈련의 시즌인 3월부터 5월, 8월부터 11월은 그야말로 조기기상 및 작업과의 전쟁 시즌이기도 하며 대략 1주일에 3일은 예비군 훈련을, 2일은 작업을, 주말은 작업을(?)하는 힘든 시즌이기도 하다. 대략 서울 북부에 있는 모든 대학생들이 오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동원에 지정되지 않은 사회인들 역시 많이들 들어오고, 주말 예비군 훈련 제도가 생기면서 주말에도 훈련을 실시하는(?!) 환상적인 근무여건이 조성되기도 한다.

셋째 향방훈련의 경우 주둔지 훈련과 동대훈련 이 둘로 나뉜다. 보통 주둔지 훈련의 경우 동미참 훈련과 비슷하게 진행되며 예비역들은 3일간 혹은 하루동안 궁시렁거리며 훈련을 받게된다. 동대훈련의 경우 조교들이 총과 함께 저녁즈음 동대에서 지정한 동사무소 혹은 학교로 이동하게 되며 조교들은 총기함과 기타 교육보충교재를 같이 운송하는 빡셈이 함께함과 불구하고 동대 훈련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 사회의 공기는 맑기 때문이다. 물론 동대에서 하는 훈련 역시도 훈련 사이클은 동미참 훈련과 비슷하나 많은 공간을 필요로는 하지 않는 방독면, 구급법, 총기분해결합, 야전축성술 등만 교육하게 된다. 특히 예비역들을 밖에서 걷게 하는 지역 전술답사의 경우 조교들이 선호하며 사회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된다. 그리고 새벽에 훈련이 끝나고 꿀맛같은 오침을 즐기게 되지

이렇게 봄 여름 가을 예비군 훈련이 끝나면 받지 않은 현역 훈련들을 몰아서 받게 되며 1달에 중대 전투력 측정, 대대 ATT, 연대 RCT를 몰아 받은 후 혹한기 훈련에 돌입할 수도 있다. 야 신난다!! 물론 예비군 훈련을 잘 실시하지 않는 혹서기 6~7월의 경우에도 현역훈련은 빠질 수 없는 감초, 보통 유격훈련도 저때 받게 된다. 물론 각종 전술훈련들도 6~7월에 몰려들 수도 있다.

현역 훈련의 경우 전방에 비해 크게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 주둔지들이 인접한 곳들이 북한산 자락인지라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깊은 곳이 몇몇 있기는 하다.(대표적으로 깔딱고개가 있다. 주변 56사단 전역자가 있다면 물어볼 것) 행군 중 그나마 아스팔트를 밟으며 도시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면 축복. 서울시내 또는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행군하기도 한다. 단지 아스팔트가 딱딱하여 전투화와 마찰을 일으켜 필요이상의 물집이 잡히는 것은 후새드.

2010년 이전 사단장은 동원 주특기였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만 제대로 수행하면 그다지 크게 터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0년 군수 주특기인 공석철 소장(3사 15기)이 취임하였고, 예비군 훈련과 더불어 온갖 창고 사열 등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특기가 특기다 보니 정말 깐깐했다. 이후 2012년 사단장으로 김규하 소장(육사 39기)이 취임하면서 원래 분위기로 돌아갔다.

8 똥군기?

물론 지역도 후방지역인데다가 부대 업무도 전투가 아닌 예비군 훈련에 맞춰져 있다보니 아무래도 군기는 느슨할 수 밖에 없다.

네이버 모 카페에 올라온 글[21]에 의하면 지금은 해체된 57사단에 비해 똥군기가 상대적으로 더 심한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2003년 전까지는 별 다른 사고가 없어 5년 연속 무사고 부대 등의 홍보도 하고 했으나 2003년 말을 기점으로 해서 병영부조리 문제로 각종 사고가 터져 나오면서 현재의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울 강북의 모 대학 학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대학교 학생예비군 훈련에 참가했을때 어느 조교가 "며칠 전에 구타사건이 일어나서 여러명이 영창갔다."고 얘기했을 정도(...). 2006년 부터 2008년까지 56사단 직할대와 예하 연대들의 병영문화는 구타사건으로 인하여 병사들 사이에선 '대영창시대'라는 자조섞인 농담으로 불리웠다. 이에 따라 구타자는 영창직행 후 사단 경비소대에서 예하 연대로, 사단 기동대대에서 예하 연대로 날아가는 일 역시 많았다. 심지어 어느 이등병의 신고로 전역을 하루 남긴 말년병장(분대장 출신)이 영창 14박 15일을 다녀 온 후 전역할 정도였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만 하지 않는가? 물론 2006년부터 2007년까지의 대영창시대가 있은 후 2008년부터 부대 분위기가 격변하기 시작하여 선임이 후임에게 손을 대는 행위 자체가 자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최소한 영창직행 후 타부대 날리기 같은 사령부 차원의 부적응 유발 행위 역시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런데 아까 전 대학예비군훈련 조교 얘기는 2008년 이전이 아닌, 2012년경 얘기다

웃기는 건 이게 상급부대들이 너무 관심을 많이 보여서 그렇다는 것이다.민간인과의 접촉이 많은 예비군 업무 특성뿐만아니라 담당지역도 지역이다 보니 바로 윗 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부터 시작해서 육군본부, 함동참모본부, 국방부까지 전부다 검열을 나온다. 이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주된 업무인 예비군 훈련을 제외하고 현역 교육, 훈련에 있어서 실질적인 교육, 훈련보다는 검열에 특화된 보여주기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봐라, 한달 전에 사령부 검열 때문에 했던 훈련을 이번엔 육본이, 합참이[22] 차례대로 돌림빵을 놓는다. 게다가 완편의 1/10도 안되는 상황에서(거의 동원사단급이다!) 온갖 훈련에는 반드시 작전 편제상의 부대 규모에 가깝게 참여해야하니... 대대훈련 중에 사령부에서 내려온 검열관이라는 작자가 담당 진지가 20개면 중대인원이 10명이더라도 전부 점령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서 다른 대대에서 데려다가 채운적도 많다.

때문에 이 부대의 훈련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검열관이 작계대로 훈련하는지 유심히 지켜본다. → 당연히 병력도 장비도 후달리니 되질 않는다. → 검열관 표정이 슬슬 안좋아진다. → 현장에 있는 참모들로부터 훈련 경과를 보고 받은 사단장이 수화기를 든다. → 연대장실 전화가 울린다. 훈련부대의 운명은...(더이상의 자세한 내리갈굼은 생략한다.) → 상급부대(주로 사단이다.)에서 견학차 나온 참모가 검열관에게 부대 실정등을 구구절절 얘기해서 잘 타일러 어떻게든 성적이 중박은 치는 수준으로 훈련을 적절히 마무리 한다.[23]

부대 임무특성상 북한 공작원 침투대비(대침투·국지도발) 훈련을 자주하는데, 이때 대항군을 사단 정보처에서 운영하게 된다.[24] 한 번은 도주로 차단부터 수색정찰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자, 사단장이 참모들을 불러 모아서 '이런 것도 똑바로 못할거면 군복 벗어라'라고 갈구기 시작했고 결국 정보참모가 눈치가 보였는지 대항군을 일부러 수색정찰부대 위치로 유도해서 체포당해(?) 드렸다.

이후 차단선 점령, 수색정찰을 미친듯이 연습했고, 2012년 전투지휘검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35특공대대원들이 대항군으로 참가했는데, 시작부터 계속 차단선에 걸리고, 수색부대에 잡히는 바람에 '이놈들은 잡았지만 아직 잔당이 더 있더라' 라는 식으로 다 잡은 대항군을 놓아주고 또 놓아주면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물론 부대가 잘하기도 했지만, 이번 대항군은 사단 기동대대만큼 부대사정과 작전지역 지리를 잘 모르는 탓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병크는 이어져서, 정보참모가 상황부여도 안되었는데 훈련장소로 이동하고 작전참모에게 참고하라고 줬던 훈련 시나리오를 지휘소 간부들에게 뿌렸다 걸리는 바람에 [25] 사령부에서 "야 이딴식으로 하면 전투지휘검열이고 뭐고 없다"는 식의 질책을 받았다.

9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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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생이며 육군사관학교 23기 출신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의 명령으로 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친한 후배인 특수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살해했다. 1993년 제56사단장으로 있다가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제거 때 강제전역당했다. 2010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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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대 사단장: 박철수 (예)소장(2006년 ~ 2008년)
육군사관학교 33기 출신이며 사단장 역임 후 제1야전군사령부 참모장, 6.25 60주년 사업단장, 수도방위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현재는 전쟁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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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사단장: 김재삼 (예)소장(2008년 ~ 2010년)
육군사관학교 35기 출신이다. 위에 잠시 언급된 '동원 주특기 사단장'으로, 사단장 취임 이전에도 주로 동원정책 분야의 보직을 두루 맡아오며군 내부에서는 자타공인 동원전문가로 통했다. 사단장 역임 후 국방부 동원기획관을 지냈으며, 군문을 나온 현재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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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사단장: 공석철 (예)소장(2010년 ~ 2012년)
육군3사관학교 15기이다. 사단장 역임 후 육군종합군수학교 학교장과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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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대 사단장: 김규하 소장(2012년 ~ 2014년)
육군사관학교 39기 출신이다. 2012년 5월에 사단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4년 5월까지 임기를 마치고 육군훈련소의 훈련소장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로 육군인사사령부의 사령관으로 부임해서 중장으로 진급하는 줄 알았으나 실패하고, 15년 11월 한직인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부임하였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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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대 사단장: 신상범 소장(2014년 ~ 2016년)
육사 41기 출신이다.
  • 24대 사단장: 인성환 소장(2016년 ~ )

육사 43기 출신이며,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을 역임하였다.

10 기타 특이 사항

외박의 경우 위수지역서울특별시 강북 전역(종로, 명동, 홍대, 신촌 등)과 인접지역인 의정부시, 고양시(일산), 남양주시 등지에서 즐길 수 있다. 그래도 한강 건너 강남권이나 인천, 부천, 수원 등지까지 가는 사람들도 다 있다 서울권 부대인만큼 축복받은 외박구역을 자랑한다. 그리고 2012년부터 위수지역이 변경되어서 한강 이남까지 이동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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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부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북한산을 끼고 있는 부대 경치는 제법 절경이지만, 근 2년간 죽어라 볼 풍경이니 결국 질려서 전역 후 북한산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부대에 따라 휴일이나 전투휴무, 또는 일과 후 체력단련 때 북한산(또는 근처의 좀 더 낮은 산들) 등반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불광역 인근의 군장점에서는 올록볼록한 계급장과 스카치 계급장 등을 오버로크 쳐주는데, 이걸 두고 '불광 친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2011년 이후 소위 뽈록이 계급장이나 왕병장 등을 상부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기 때문에, 불광 문화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동네는 삐죽이 오바로크가 기본 사양이며, 간부들도 지적을 안 한다. 오히려 같이 휴가, 외박 복귀하는 선임이나 간부가 이런 삐쭉이, 뽈록이 계급장을 달아주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는 2012년 중후반 찍찍이로 사단마크, 계급장을 부착하는 신형전투복이 보급되면서 완전히 옛날얘기가 되었다.

사단 본부와 예하 연대 모두 서울 시내로의 진입이 매우 용이하다. 서울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 노선이 존재한다(서울 버스 704). 차가 안 막히고 좀 밟아 주시는 기사 분이라면 서울역 도착 30분대도 가능한 놀라운 부대.[27] 특히 집이 서울 시내나 근교 수도권 도시인 축복받은 병사의 경우 오전 9시 전후에 집에 도착하여, 휴가(위수지역·외박가능지역 내라면 외박도 포함) 첫날부터 부모님이 차려 주신 뜨끈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복귀할 때에도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다!(...) 비수도권 출신 병사 역시 빨리 출발하면 KTX를 기준으로 정오 이전에 고향으로 갈 수도 있다.[28]

서울서부지방법원 관할구역+중앙지방법원 관할 일부+서울북부지방법원 관할+의정부지방법원 일부?

2015년부로 덕릉예비군훈련장의 예비군 훈련 기능이 중지되어 성북구, 강북구 지역 예비군들은 저 멀리 남양주에 있는 연대[29]로 가서 훈련을 받는다. 물론 훈련장으로 가는데 드는 시간이 기존보다 최소 2.5배 이상 늘어난 것이 이쪽 사람들한테 날벼락이다. 매일 아침 당고개역에서 보이던 예비군들의 행렬이 도농역으로 옮겨진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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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사단장이 지하철을?[30]

11 구 57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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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사단장이었던 이범수 소장(학군 18기)[31] , 부대기를 건네는 수방사령관은 권혁순 장군이다.

1984년 서울 강북 동부 및 근교지역에 있던 훈련단이 개편되어 출범한 사단이었다. 구 57사단은 서울 동북·동부 지역을 관할 위수지역으로 삼던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향토사단이었다. 별칭은 용마부대. 중랑구구리시 경계에 있는 용마산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이름은 '방패부대'였지만, 수방사에서 채가는 바람(...)에 별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단본부는 남양주시에 있는 현재의 71사단 주둔지에서 창설되었으나 중간에 구리시의 북부간선도로가 위치한 자리로 이전하여 2011년 해체시까지 계속 그 곳에 주둔해 있었으며 과거 신병교육대대도 존재했다고 한다. 본래 북부간선도로가 생기기 전 구리시와 서울시 경계선 산 중턱에 한 개 부대로 만들어졌으나 90년대 북부간선도로 공사로 부대가 A직할대, B직할대로 쪼개져버리는 바람에 업무상 다른 직할대 부대로 이동시 직할대 앞 위병소에서 승인을 받거나 혹은 간부와 같이 북부간선도로를 건너가야 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시도 경계선에 위치하다보니 전화국번도 서울의 02)와 경기도의 031)이 같이 들어왔다.

북부간선도로를 자주 가 본 사람이면 중간에 광고장애물이 있는 것을 알 것인데, 여기 바로 지나서 표지판 없이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나 있다. 그 위치가 사령부였다(...). 별로 비밀도 아니었던 게, 남양주 버스 65-1의 이곳 정류장 명이 예나 지금이나 '57사단'이다. 참고로 바로 옆으로, 즉 사령부와 북부간선도로를 사이에 두고 구 중앙선 철길이 있었다. 현재도 이 망우리굴은 멀쩡하게 있으나 훈련용으로 쓰이기도 하니 괜히 폐역답사까지 가지는 말자. 구리 포천간 고속도로 공사로 터널이 흙에 그대로 매립되었다. 터널 안에 흙을 넣어 공간을 채우고 위를 살짝 덮었다. 삽으로 파면 금방 나올지도?

해체되면서 220, 221, 223연대는 56사단에 편입되었고, 222연대는 해체되었다. 해체된 연대의 예비군 훈련장은 221연대가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다. (어차피 1연대와 2연대는 서로 붙어있었기에 따로 분리하기 보단 합치는게 더 나았다.) 구 57사단 본부 시설물은 주둔지(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위수부대인 55사단이 인수하여, 그 사단 예하의 동원지원단에서 사용하고 있다.
223연대(독수리연대, 호원교장)의 경우 대충 호원IC부터 회룡탐방센터까지 길이를 가지고있다. 이 부대에 예비군을 갈 경우 사격은 꼭 시키는데 예비군강당에서 사격장까지가 오르막내리막이 왔다갔다 하는 약 1km 정도를 꾸준히 걷고 걸어야한다. 그리고 6발 쏘고 내려오면 분노가 치민다(...) 현역 땐 몰랐는데 예비군때 가보니 뒤질 맛
169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경계초소를 마주할 수도 있다. 까불진 말자 애들 힘들다

부대마크는 용마산(원래는 불암산이었다) 봉우리를 숫자 57로 형상화한 모양으로언더우드, 기세가 세 보인다. 구 57사단 부대마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 방위병이 기안했다고 한다. 참고로 워낙 독특한 사단 마크에 워낙 듣보잡 부대이다 보니, 간혹 국군양주병원에서 타 부대와 만났을 때 "우리는 산악 기동을 전문으로 하는 산타기 부대예요." 라고 해도 믿었다고 한다.(...) 2008년도까진 국군양주병원에서 외진을 받았으나 2009년부터 국군수도병원으로 외진병원이 바뀌었다. 이유는 사단장 왈: '수방사 예하 부대인데 가까운 서울 놔두고 왜 양주까지 가느냐' 라고 한마디 하셨단다. (...)

서울 중·서북부 지역의 수많은 대학교 학생예비군을 관할하던 통합 전 56사단과 마찬가지로, 구 57사단은 서울 동북·동부 지역의 수많은 대학교 학생예비군을 관할하였다.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삼육대, 서경대, 서울과기대, 서울시립대, 세종대, KAIST 홍릉캠퍼스, 한국외대, 한성대, 한양대수많은 인서울 대학들이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 대학교들, 즉 성신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등의 교직원들도 이 곳으로 직장예비군 훈련을 갔다. 육군사관학교도 이 부대의 위수지역 내에 있다.

예하 연대가 한 지역에 집중되었던 구 56사단과 다르게, 구 57사단 예하 연대들은 의정부시, 남양주시 등지에 산재해 있었다. 서울 시계에 바짝 붙은 타 수방사 예하 사단과 이 부대 다른 연대와 다르게, 어떤 연대는 서울 시계와 상당히 떨어진 곳(남양주시)에 있었다. 그래서 서울 모 구 거주 예비군은 상대적으로 더 먼 거리를 가야 한다. 여담으로 후술할 예비군 총기 사고가 난 그 연대이다.

1994년 모 연대에서 세종대 학생이 대학예비군 훈련 도중 총탄 오발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제56향토보병사단/로그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물론 강북 지역은 수경사도 공동으로 관할하기는 했다.
  2.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질적으로 청와대를 지키는 것은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제1경비단/제1방공여단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들이다.
  3. 여기서 말하는 위수지역은 외박 허용구역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본래대로 담당 작전구역을 의미한다.
  4. 2작사 예하 향토사단 신교대 입영자들은 2010년 전방 배치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그들이 갈 수 있는 '최전방'이 서울 강북의 56사단과 지금은 없어진 57사단이었다.
  5. 농담이 아니라 사단본부가 위치한 3호선 구파발역에서 3정거장만 더가면 백마부대 본부가 있는 원당역에 내릴 수 있다.
  6. 보충중대가 기동대대와 같은 막사를 쓰기 때문이다.
  7. 2011년 11월 57사단과의 통폐합으로 이들 연대도 통폐합됨.
  8. 이 중 220연대부터는 구 57사단.
  9. 222연대 역시 2011년 11월 221연대에 통폐합되어 공번이 되었다.
  10. 단 221연대는 옛날 222연대와 통폐합돼서(부대가 통폐합된 수준이 아니라 딱 붙어있던 두 개 연대의 교장을 하나로 합쳐버렸다(...). 그래서 연대 크기만큼은 218연대와 맞먹는다.
  11. 현재 구 216연대 막사 및 부지에 주둔하고 있다. 그 이전엔 기동대대 및 보충중대와 같은 건물을 사용
  12. 마찬가지로 공병대대 및 보충중대와 이전까지 같은 막사를 썼지만 2012년 여름부터 일정기간 동안 막사 리모델링으로 인해 컨테이너 막사 시절을 겪었었다.
  13. 과거엔 의무대와 같은 막사를 사용했지만 막사 리모델링과 의무대 막사 신축으로 인해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 동안에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의 방패교육대로 옮겨갔다.
  14. 위의 본부대와 보수대와 함께 통합 막사를 사용한다. 사단 본청 바로 옆에 위치하였는데 굉장히 큰 신식 막사이다.
  15. 2012년에 신 막사를 준공하였으며 사단 위병소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16. 219연대 위병소 근처에 주둔하고 있으며 컨테이너 막사에 병력은 80명 내외로 상당히 적은 편이다. 여담이지만 부대명이 562포병대대이다!
  17. 단 연대급의 행정병에 한해서는 5시~6시 칼퇴근이 맞다. 작전병을 제외하고. 자세한 내용은 코렁탕이므로 생략.
  18. 게다가 동대장들은 당연히 현역 간부들의 선배라서 통제할 방법도 없다. 사단장은 '대대장이 동대장들을 통제하라'는 식으로 지시하지만, 글쎄...
  19. 정년이 중령~대령에 상당하는 50대 중~후반인데다 대위~소령에서 퇴직하고 시험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이고 짬이고 어지간한 현역 간부들은 비교도 안된다. 보통 해당 지역에서 제일 나이어린 동대장이라야 40대 초반. 이 정도 나이면 현역 부대에선 소령에서 상사 이상이다. 특히 인원이 적은 향토사단 특성상 해당 부대에선 대대장 정도가 아니면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 이렇게 번거롭게 하는 이유가, 초과근무를 동대장들이 직접 입력할 수 있게 했더니 눌러놓고 나가놀다가 종료시간인 10시쯤 되서 적당히 끄고 나가는 경우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
  21. 원래 57사단 소속이었다가 부대 해체로 56사단 예하부대로 옮겨져 버린 군인의 사연.
  22. 예비군 훈련의 경우에는 국방부까지. 여기까지 보면 수방사 예하 향토/동원 사단의 공통적인 문제이지 않나?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56사단은 위수지역내에 미군기지가 있다보니, 검열 부대에 합참과 한미연합사가 추가 된다. 게다가 이 두 곳은 미군과 연계가 이루어지다 보니 기존의 사령부나 육본과 같은 육군에서 요구하는 검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검열이 이루어진다.
  23. 2014년 즈음해서는 검열관이건 사령관이건 부대 사정을 대충 다 알고있기 때문에 타협 없이도 적당히 훈련이 마무리된다 카더라
  24. 말이 정보처지 병력은 상기된 기동대 병력을 데려다가 쓴다. 예하 연대의 경우 평시 편제를 완전이 충족시켜도 전투병이 연대 전체를 통틀어 40% 이상을 넘기 힘들며, 그나마도 변칙적으로 기행병으로 운용되는 인원이 상당하기 때문에 전투력은 바닥인데, 여기다가 사단내 유일한 전투 병력인 기동대 애들을 풀어버리면...결과는 안봐도 뻔하다.
  25. 원래 시나리오는 검열부대에서 알면 안된다.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시험 앞두고 문제은행 만든게 유출된 상황
  26. 육군종합행정학교장은 예전부터 중장진급에 실패한 소장들의 끝물 보직이었다. 80년 5.18 때도 육사 10기인 소준열이 종합행정학교장이었고, 교육사령관으로 부임하고 518을 진압하고, 진급에 성공한다. 만약 소 장군이 518진압을 거부했다면 더 이상 진급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규하 소장의 전임자인 윤완선 소장도 육사 38기로 3사단장, 합동군사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잘나갔으나 종행교장으로 부임하였고, 현재 2작사 부사령관으로 마지막 보직을 지내고 있다.
  27. 현재는 불가능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은평뉴타운이 개발 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현재는 상습정체구간인 통일로를 쭉 통과하느라 보통 1시간 이상 걸린다. 정말 빨리 가야 50분대... 게다가 56사단 예하 부대는 부대 앞에서 탈 수 있는 버스 노선이 서울 버스 704고양 버스 34 2개밖에 없으며, 둘 다 배차간격도 좋은 편이 아니다. 만약 버스를 바로 앞에서 놓쳤다면 버스 기다리는 시간만 1~20분은 족히 걸린다.
  28. 물론 이는 각 부대 나름이다. 사단 본부대의 경우 행보관이 총기 정비가 제대로 안 되었다고 11시까지 총기 검사를 한 후 나가게 한 경우도 있었다.
  29. 금곡교장이라 불리는 그곳인데 실질적인 위치는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는 양정동에 가깝다.
  30. 사단장 옆의 인물은 박인용(예비역 해군 대장) 국가안전처 장관이다.
  31. 2013년에 중장으로 진급해 6군단군단장으로 취임했지만 2014년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군단장에서 물러났다. 사진 속의 권혁순 장군도 당시 제3야전군사령관으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니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한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