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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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ASE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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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50 브루나이 | ?width=50 싱가포르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 ||
국기 | ||
국장 | ||
면적 | 331,689km | |
인구 | 94,348,835명(2015년) | |
인구 밀도 | 272/km2 | |
GDP(명목상) | 1,988억 500만 달러(2015년) | |
GDP(PPP) | 5,094억 6,600만 달러(2014년) | |
1인당 GDP(명목상) | 2,171 달러(2015년) | |
1인당 GDP(PPP) | 5,070 달러(2013년) | |
수도 | 하노이 | |
최대 도시 | 호치민 | |
정치체제 | 인민공화제, 단원제, 일당제, 공산주의 | |
서기장 | 응우옌푸쫑 | |
국가주석 | 쩐 다이 꽝 | |
임기 | 2016년 4월 2일 ~ | |
총리 | 응우옌 쑤언 푹 | |
공용어 | 베트남어 | |
국교 | 없음(종교 분포 : 토착 신앙 및 무종교 73%, 불교 12.5%, 기독교 8.3%, 카오다이교를 비롯한 신흥종교 6.2%.) | |
화폐단위 | 동(₫) | |
대한수교현황 |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92년, 북한 1950년) | |
모토 | Độc lập - Tự do - Hạnh phúc (한자로 독립 - 자유 - 행복) |
목차
Vietnam Timelapse (Full HD) |
1 개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정회원국으로 수도는 하노이. 정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共和社會主義越南, 공화사회주의월남)이다.
국내에서는 베트남 혹은 월남(越南)이라고도 부른다.[1]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월맹(越盟, 베트민[2])이라 불렀다. 월맹이란 "베트남 독립동맹(越南獨立同盟)"의 약칭.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일개 공산당의 정권으로 간주했기 때문. 우리는 자유진영에 속했던 남베트남을 국가로 승인하고,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수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월남 =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었다.[3] 남베트남이 망하여 옛 월맹정권을 승인하고, 수교를 맺은 지금은 당연히 월남 = 베트남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현지 발음에 충실한 한글 표기는 비엣남/볫남이다. 영어식 발음도 비엣남(Vietnam)에 가깝다. 이는 현지의 성조까지 포함되어 적혀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이도 저도 아닌 '베트남'이란 표기가 널리 쓰인다. '비엣남'을 그대로 일본어로 옮긴 ベトナム(베토나무)의 영향을 받은 표기가 그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4] 일본의 일부 문헌에 원어에 가깝게 ヴィエトナム(뷔에토나무)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아무튼 베트남어 원어에 가깝게 배려된 발음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윁남'이라고 부른다.
수도는 하노이지만 도시 규모는 오히려 경제 중심지인 남부의 호치민(구 사이공)이 더 크다. 호치민에 롯데리아가 먼저 들어갔을 정도다. 인구도 호치민이 인구수 1등이고 하노이가 2등이다. 하노이와 연계된 유래가 있는 "하노이의 탑"이란 퍼즐도 있다.
2 지리
흔히 베트남 하면 밀림을 떠올리지만 베트남 면적에서 숲의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19세기 때만 해도 베트남의 대부분 지역은 밀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농경 목적의 개간이나 베트남 전쟁 때의 고엽제 살포로 인한 삼림파괴 등으로 거의 숲이 남아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비슷하게 기타 동남아국가인 태국과 인도네시아, 미얀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삼림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주요 하천으로 홍강(Sông Hồng)과 메콩강(Sông Mê Kông)이 있다. 이 강 하류의 삼각주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활발하며 하노이나 호치민, 하이퐁, 껀터 등 주요 도시가 있다. 후에가 위치한 중북부 해안지역은 해안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중남부 해안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그 외 지역은 서쪽의 안남 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 지대이며 서쪽 캄보디아 국경 지대엔 고원 지대가 존재하는데 이 지역은 커피 산지로 유명하다. 최서단에는 푸꾸옥 섬이 존재하는데 베트남 본토에서는 40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캄보디아에서의 거리는 5km가 채 안 된다. 동쪽으로는 남중국해와 접하고 있는데 베트남에선 동해라고 부르며 중국과 호앙사 군도와 쯔엉사 군도의 영유권 문제로 다투고 있다.
북부 지방은 중화민국(대만) 및 중국 남부와 흡사한 아열대 기후이고 일부 고산 지대의 경우 온대 기후에 가깝다. 2013년 12월 16일에는 폭설도 내렸을 정도. 남부 지방은 전형적인 건기ㅡ혹서기ㅡ우기의 인도차이나 기후이며 중부 지방은 이 중간쯤 되는 기후를 띈다. 어쨌든 전반적으론 덥고 습한 편이다. 강수량은 대부분 지역에서 2,000mm 조금 안 되는 정도다. 북부 지역은 아열대로 연간 온도 차가 커서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차가 약 20°C에 달하는 지역도 있으나,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기후로 연간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연간 최저 및 최고기온 차는 약 7°C 이다.
강우량은 전국적으로 연 평균 1,800mm 정도이나 우기 때는 더 높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호찌민시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우기(5~10월)와 건기(11~4월)가 6개월씩 교차되며,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미묘한 사계절의 변화가 있어 연말과 연초의 기후가 한국의 늦가을 날씨와 유사하다. 우기(5~10월) 시에는 하루 30분 정도의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는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 현상으로 인해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때가 많다.
3 민족
- 문서 참조 : 베트남인
4 역사
위 그림(폴란드공)은 고대나 중세가 아닌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랑스(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미국(베트남 전쟁), 중국(중국-베트남 전쟁)을 모두 몰아내고 민주 캄푸치아(베트남-캄보디아 전쟁), 베트남 공화국(베트남 전쟁)은 승리한 근성을 나타낸 것이다.[5][6]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악명 높은 제국의 무덤으로 서아시아에 아프가니스탄이 있다면 동남아에는 베트남이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함께 전통적인 강호다. 더욱이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 시절(민주 캄푸치아)에 베트남에게 점령당한 이후 현재까지 베트남의 영향권 하에 있다. 참고로 베트남군은 1980년대 말 캄보디아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중국보다는 그 경쟁심이랑 반감은 적은데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타이를 짓뭉개 버린 적도 여러 번이라 그럴 듯하다.
"근성의 민족"으로 유명하다. 중국 대륙을 제패한 몽골군(쿠빌라이 칸)과 청나라군(건륭제)도 베트남을 정복하려다가 실패했다.
19세기 프랑스 및 영국의 식민 침략을 걱정하면서도 패권 전쟁을 위해 타이, 크메르와 죽도록 싸우는 통에 국력이 쇠퇴하여 나중에 나라를 빼앗는 프랑스가 더 좋아할 일만 해 버렸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세계 열강인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 모두 한번씩 싸워 본 국가. 게다가 이들과 싸워서 결국 몰아내 버렸다. 프랑스와 미국은 공식적으로 베트남에게 패전한 걸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역시 베트남을 침공했었으나 뭔가 조금 소득이 있다 싶을 때 결국 근성의 베트남인들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남방작전(아시아 침공)에 맞서 싸운 전쟁과 그 후로는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독립운동이나 공산주의 노선, 캄보디아와의 분쟁 등의 이유로 프랑스, 미국, 중국에 맞서 싸웠다.
물론 그렇다고 베트남도 좋은 게 아닌 것이 이 강대국들과 맞서싸운다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상식적으로 어디 잃을 것도 없는 테러집단도 아니고 좋아서 프랑스, 미국, 중국 상대로 차례대로 중간에 공백기도 없이 연달아 전쟁하고 싶어하는 미친X이 있을리가.... 게다가 전면전에서는 강대국들한테 털리고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국의 정글과 산악에 의존한 게릴라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베트남 민간인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해 강대국들 물러나게 하고는 베트남도 후유증이 심각했다. 그래서 함부로 강대국들과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5 사회
5.1 통화
- 베트남 동 항목 참조.
5.2 교통
오토바이가 매우 많다. 대략 3천만 대 정도로 추산된다.
처음보는 사람은 무슨 폭주족이 이렇게 많은가 할 정도다. 차보다 싸고 정비도 간단해서인데 중국처럼 온가족 4~5명이 스쿠터 하나에 타고 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7] 당연히 사고도 엄청 많이 난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과거 베트남 전쟁 사망자 수를 웃돈다는 얘기도 있다. 베트남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30명이 사망하는 꼴이라고 한다. 또한 많은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과거에는 도시의 대기오염도 심각한 수준이었으나 갈수록 환경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배기가스를 획기적으로 저감시킬 수 있는 인젝션기술이 오토바이에도 적용되면서 요즘에는 서울의 공기와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오토바이 라이더 거의 전원이 헬멧을 착용하는데 이를 어기면 오토바이를 압류한다고 한다. 그런데 헬멧이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플라스틱 바가지 수준이라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헬멧에 대한 품질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헬멧과 함께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이 스카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토바이 매연으로 대도시의 공기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36거리나 호안끼엠 호수 주변 시장가들은 길의 폭이 좁고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데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는일이 다반사여서, 만약 가이드가 동반한 상태라면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기도 한다(...)하지만 안써도 그리 숨막히진 않더라
오토바이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하는 곳은 고속도로와 국도인데 일반 도로와 국도가 겹치는 부분에서 공안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이념을 띠기 때문에 '경찰' 보다는 '공안'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공안들이 겹치는 길을 넘어오는 운전자를 잡아 바로 벌금크리를 때린다. 예전에는 '헬멧 대여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를 이용하여 단속을 피한 다음 반납하면 되는 방법이 있었지만 요즘은 헬멧을 대여하는 곳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찾기 힘들다. 보통 주차요금이 2천 동에서 5천동(2015년 기준)이다. 롯데 마트는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며, 헬멧도 무료로 맡아준다.
혹시 길을 건널 때 오토바이가 오고 있으면 멈추지 말고 속도를 유지하며 지나가야 한다. 괜히 멈추거나 빨리 가면 피하려다 치이는 수가 있다. 가던 속도 그대로 가면 알아서 피해간다. 단, 자동차는 보행자가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달리는 속도가 차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출발을 하지 말든가(...) 정 못 건너겠으면 현지인들이 건너갈 때 같은 리듬을 맞추면서 걸어가면된다. 이런식으로?
오토바이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몇년 전부터 수입차에 대해 200%의 관세를 매기고 있기 때문에 차 값이 상당히 비싸다. 아무리 그래도 경차가 우리나라에서 1000만원인데 몇십~백만원 대인 오토바이와 비교를 할수 없다. orz. 탑기어 멤버들이 베트남에서 하노이-하롱베이를 갈 때 차를 구하지 못해 1,500만 동으로 바이크를 사고 달렸다.[8]
게다가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유지하기 힘들다. 대졸 사무직 임금이 월 300달러이고 일반 서비스업 종사자 임금이 월 120~150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휘발유 1리터 가격이 대략 1달러다. 이것은 대만보다 조금 싼 가격이며 베트남의 소득수준이 한국의 1/15-18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휘발유는 배급제이고 매우 적은 양이기 때문에 고급 공산당 간부가 아닌 이상 오토바이를 탈 수밖에 없는 점이 있다.
그런데 길거리가면 벤츠 S클래스와 GL클래스, 렉서스 LX등 고급차들이 즐비한거 보아 이 동네도 빈부격차는 많이 심한듯(...) 믿지 못하겠지만 포르쉐, 마세라티 심지어는 페라리까지도 가끔다닌다(...) 물론 고급 당간부 및 그 자제나 일부 외국 기업인 한정이다.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다보니, 좀 큰 식당에서는 오토바이 발렛파킹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베트남 대부분 도시의 4차선 이상 도로에서는 마지막 차로나 하위 차로 절반 정도는 항상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9] 그리고 길이 막히면 도보로 가서 도보에 오토바이가 전진하고 있는걸 가끔식 볼수 있다.버스도 가끔식 그런다고 카더라.베트남에서의 도보는 좋은편에 속 하지못하며 출퇴근 시간에는 오토바이가 도보로 건너는 경우가 있으며.관리가 안되는곳은 풀이 무성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종로 쯤 되는 시내 주요 간선도로라도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고 다 비보호 좌회전인데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하지 않고 신호 바뀌자마자 좌회전 차와 오토바이부터 닥돌하며 직진 신호와 동시에 보행신호를 받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 사이로 지나다닌다.[10] 그렇다고 직진차량이 좌회전 차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게 아니라 같이 닥돌해서 순식간에 교차로가 엉킨다.[11] 매우 조심해야 한다.
호치민 시에 비해 규모가 작은 도시(달랏 등)도 교통이 혼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쪽은 신호등을 보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수준인데다가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그조차도 없다. 차선은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아 마구 엉키는데, 택시 몇 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토바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알아서 잘들 비켜간다. 대신 경적을 3초 간격으로 울려댄다 이런 지역에서 도보로 다닐 경우 무단횡단에 익숙해져야 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말 겁도 안 먹고 잘 다니지만 처음이라면 타이밍이 안 잡힌다. 이럴 때는 그냥 차가 안 올 때까지 영원히기다리던가, 아니면 옆에 현지인들이 건널 때 따라 건너자.
베트남은 유독 무단횡단이 심하고 그마저도 공안들이 매우 관대하다. 워낙 신호등과 횡단보도 개판이고[12] 그나마 있는 횡단보도마저도 큼지막한 SUV들이 돌진(...)하다 싶이하니..신호건널때는 조심 또 조심하자. 훅간다.
호치민 시 중앙터미널 등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는 공안이 항상 대기하다가 신호가 바뀌면 보행자들과 같이 건너준다. 물론 이 때는 아무리 날뛰는 오토바이도 얌전해진다.
강력범죄는 많이 일어나지 않지만 소매치기, 날치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다낭 같은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호치민, 하노이에 여행 계획이 있다면 물건 간수 꼭꼭 잘하자. 궁금한 사람은 구글이나 네이버에 베트남 날치기나 베트남 소매치기 정도만 검색해 봐도 우수수 쏟아져 나올 정도로 사례가 많다. 어께에 매는 가방(특히 여자들 핸드백)은 매는 순간 "'이거 가져가 주세요!"' 라고 소매치기에게 알려주는 것이니 백팩을 매고 다니자. 또한 차도 쪽으로 걸으면 당연히 오토바이 날치기에 노출되므로 반드시 인도 쪽으로 걷도록 한다. 차도 가까이 갈수록 날치기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 요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유형으로 도둑이 피해자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가져간다(...). 특히 2월달같이 설날이 있어 바쁘고 마트같은 복잡한곳에 당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전기 충격기 따위를 현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말 것. 저런 걸 구입해서 국제선 비행기도 못 타지만 호신 무기에 대상이 범죄자라도 저런 걸로 현지인을 조지면 보복당하거나 현지 경찰서로 끌려가서 곱게 안 끝난다. 아예 처음부터 극도로 조심해서 날치기범의 표적이 되지 말든가, 뺏기면 그냥 공안에 신고하고 잊자.안습
그전에 돈은 그날 쓸 돈만 들고 다니도 스마트폰은 잘 간수하며 아이패드같은 고가제품은 숙소 같은 곳 에만 들고다니면 소매치기 당할 일은 없다. 다 자기 간수하기 나름이다.
도시 고속도로급 정도 되는 도로에는 좌회전 신호가 따로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도로라면 대부분 입체 교차설비가 설치되어 있겠지만 베트남은 다르다.
신호등은 우리나라와 같이 신호 변경시 남은 시간을 초단위로 표시해 준다. 그런데 파란불일 때만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빨간불, 노란불, 좌회전 등의 경우 다음 신호까지 남은 시간까지 표기해 준다. 그런데 가끔식 옆으로 가려면 99초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횡단 보도 신호는 주로 같은 방향의 도로 신호와 동일하다. 이 때 초록불 깜빡일 때 길 건너지 말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데(?), 초록불 깜빡이기 시작한 지 3초3초룰만에 신호가 바뀌기 때문. 신호등에 따라서는 아예 안 깜빡이는 경우도 있다.
철도는 미터 궤간으로 협궤 1,000mm(일본의 JR이 1,067mm)인데 상태가 굉장히 나쁘다. 컨테이너가 차량 밖으로 삐져 나올 정도에다 속도도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가는 철도는 한국으로 치면 경부선에 해당하는 간선 철도이지만 하노이 역에서 호치민 시 사이공 역까지 대략 1,200km의 거리를 여객 열차로 장장 28-36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중부지방에 험난한 지형을 생각하면 하노이 시내를 분명히 지나가는데도 단선에 깨진 콘크리트 침목을 쓰고, 선로 앞 1m 반경 내로 주택가와 상점이 들어서 있어도 안전 펜스가 없어서 마치 한국의 삼학도선을 방불케 한다. 이렇다보니 오토바이를 선로 한 가운데에 버젓이 세워 놓고 용무를 볼 정도다.
반면 강이 크고 아름답다 보니 하운을 이용한 물류 수송은 그럭저럭 되는 듯하다.[13] 요즘엔 그래도 관광 열차 개발과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장거리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금호고속이 진출해있다. 주로 한국에서 사용하던 2004년식 이전의 차량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베트남내 현지생산 유니버스를 투입하고 있다. 노선은 하노이(미딘) ~ 바이짜이(하롱베이)~캄파, 하노이 시내 ~ 노이바이 공항, 호치민 ~ 캄보디아 프놈펜등을 운영중에 있다.
택시마다 서로 차의 색상이 다른데, 가장 안전한 것은 초록색[14]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니 사실상 공식은 이 쪽. 실제로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 전부 초록색 택시가 온다.[15] 이외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등의 택시는 사립이거나, 가짜(!!) 택시인 경우가 많다.[16] 아니라고 해도 이런 택시들은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편이다.[17]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록색 택시는 전부 편하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드물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도 있기 때문. 결국 사람 운에 따라 달렸다(...)
6 문화
베트남에는 토끼 해가 없다. 대신 고양이 해가 존재한다(베트남 어로도 토끼에 해당하는 묘(卯)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의 발음이 같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한문 영역 기초 베트남어 시험지에도 베트남에는 토끼띠 대신 고양이띠가 있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나왔다.
유교권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중국,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신다. 베트남 공산당은 초기부터 전통주의, 민족주의 세력을 많이 포섭했고, 대민 선전용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근성의 저항의 역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또한 강조했다. 때문에 아시아권의 다른 공산주의 국가, 특히 북한이나 캄보디아,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처럼 뭔가 좀 정신나간 말세적, 초월적 집단 광기에 휩쓸려 전통 문화를 초토화하고 단절하는 과정이 없었다. 오히려 혁명과 전쟁을 기반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재창조하기 위해 이념 대립 이전의 베트남 역사와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관혼상제 등을 비롯한 일상 생활과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성리학과 불교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된 편이다. 비록 건축물 같은 물질적인 전통의 상징물들은 전란 속에서 쑥대밭이 된 게 많지만.
아오자이(Áo dài)라는 아주 섹시한 민속 의상이 알려져 있다.월남판 치파오[18] [19]
한국인들이 남에게도 가족 호칭을 붙이듯이 베트남에서도 가족 호칭을 붙인다(형, 언니 등). 그렇지만 보통 "누나, 오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동생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이나 "동생"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기준으로 나이가 많아도 "너"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유교적 가치관을 공유하지만[20], 공산주의의 영향, 그리고 참파나 이웃 타이족 등과 교류하면서 생긴 발전으로 대인 관계는 나이 차, 직급 차가 크지만 않으면 비교적 수평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조선처럼 성리학을 국교에 가까운 중심 사상으로 내세웠던 근대 이전에도 실제로 지배자 계급 아래 민간 사회 차원으로 내려가면 성리학적 사회 질서의 핵심 기관이었던 서원이 베트남에는 없었다. 한 고장에 꾸준히 눌러 앉아 수직적 인간관에 기반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각 지방에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기관인 서원이 없다 보니 민간 차원의 사회적 유교화는 더딜 수밖에 없었고, 여기다가 조선과 달리 베트남은 역사상 끊임 없는 남진을 하며 유동적인 사회 구조를 유지하다 보니 사회적 인간 관계의 큰 틀은 유교적이라 할지라도 그 내부의 실질적인 구조는 수평성과 개방성이 더 돋보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예전에는 조공을 받으러 내려온 명나라 관리가 탕롱, 즉, 현대 하노이의 왕궁에서 국왕이 신하들과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누고, 선비들과 농민, 상인들이 섞이며 남녀 간에도 유별이 없는 무늬만 성리학을 따르는 나라지 내용물은 주변 비 유교권 동남아 국가들처럼 야만인이라고 까는 기록들이 있다.그 외에도 나이가 많고 결혼한 사람을 한국에서는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르지만 베트남에서는 "삼촌, 고모"라고 부른다. 물론 "삼촌, 고모" 입장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호칭하는 상대를 "조카"나 이름으로 부른다.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상호 대칭적인 편이다.그만큼 전반적인 사상적인 틀은 유교 성리학을 택하면서도 현지의 사회적 생활상은 동남아적 성격과 섞여서 동북아권이랑 다른 부분이 있다.
"너"라고 부를 때의 "bạn"은 직역하면 "친구"라는 의미가 된다. 이 나라가 공산주의라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의 "동무"라는 말과 비슷하게 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6.1 언어
베트남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어째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말레이시아의 흑인종인 네그리토와 인도 동부 산지대 주민, 캄보디아인도 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베트남어는 성조(聲調)가 6개다. a, á, à, ạ, ả, ã. 성조가 두 개 겹치는 경우가 있다는 오해를 하곤 하지만 "Việt Nam"이라는 단어에도 성조는 Việt부분에 있는 성조 하나 뿐이다. 왜냐하면 ê 자체로 독립된 글자이기 때문이다.[21] 더욱이 a-ă, â-ơ 같이 비슷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른 모음들도 있다.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이고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근데 정작 프랑코포니회원국이면서 영어가 널리 쓰이는 것은 매우 안습이다. 최근에 베트남은 초등학교때부터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6.2 음악
전체적으로 대중음악은 도이모이 정책 이후 개방이 되면서 서구 문물이 많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정책 부실이 이곳도 마찬가지라서 대중문화 산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동아시아에서 제법 락 음악과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한 나라였다.
그러나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공산주의 정권에 겁먹은 상당한 뮤지션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로 잠적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CBC 밴드[22]
공식적으로는 서구식 대중음악을 베트남 정부가 통제를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활동이 가능했고 도이모이 정책 이후엔 해금되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에는 다양한 록 밴드가 활동 중이며 언더그라운드 씬도 상당히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베트남 록 포털사이트 참고. 물론 아직도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서구의 강한 음악'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아직 많은 인기는 없다고 한다.#
베트남의 가수인 뚜언 아인(Tuấn Anh)이 아시안 프린스라는 가상의 인물로 다른 베트남계 미국인 가수(Heart2Exist)의 노래와 같이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 또 2015년 3월 28일 뮤직뱅크 in Hanoi로 성공적으로 콘서트가 개최된 바 있다.
남 베트남출신 이민자 가수 Heart2Exist의 Who i am/25 Years(Tôi Là Ai/25 Năm, 2002)공연 실황에서 남 베트남 국기가 나오는데 왜 나올 수 있는지 추가바람.[23]
6.3 음식
- 문서 참조 : 베트남 요리
베트남 요리는 풍부하고 신선한 채소와 허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채소가 없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라고 말할 정도로 채소 요리를 좋아한다. 반면 육류 요리의 경우 궁중 요리에서도 고기를 사용한 요리가 별로 발달하지 않을 정도이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노이는 미국의 "When on Earth"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10대 도시들 중 하나로 뽑혔을 정도다.
2016년 기준으로도 냉장고가 잘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맥주에 얼음을 넣어 준다. 먹어 보면 의외로 마실만 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단지 얼음의 위생 상태를 보장할 수 없을 뿐(...) 현지에 나가있는 주재원의 말에 의하면 얼음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으면 괜찮다고 한다. 얼음 업체에서 얼음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운데 구멍이 생기는 모양이다.한 호치민 횟집에갔는데 , 손님들 맥주에 담겨있던 얼음을 빼고 다른 얼음을 넣은뒤 뺀얼음을 다른 손님 잔에 넣어주던데
6.4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다. 프로리그인 V리그를 갖추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꽤 강호급이라 동남아시아 축구대회인 스즈키컵도 우승한 바 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오만 쇼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팀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같은 국제경기에서는 늘 예선탈락. V리그도 세계적으로는 약체급이다. 리그 강호인 다낭 FC는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본 감바 오사카에 15-0으로 크게 지며 성남 일화가 2004년에 페르시크 케디리(인도네시아)를 15:0으로 이긴 것과 더불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최다 골실점 차 기록[24]으로 남아있다. 리그 우승팀은 AFC컵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2007년 아시안컵 공동개최국으로 진출하여 일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와 엮인 조에서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여 그나마 개최국의 체면을 살린 바 있다(참고로 공동 개최국인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죄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2015년 베트남 청소년 국가대표팀 출신 르엉 쑤언 쯔엉이 K리그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에 임대 영입되었다.
자세한 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태권도의 인기가 많아서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은메달)도 태권도에서 나왔다. 그밖에 체스도 인기가 많아서 동남아 지역에서는 지존급이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체스로 은메달을 따는 등 여러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호앙 쑤안 빈(42) 선수가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202.5점으로 차지했다. 그런데 베트남 사격팀 사령탑이 바로 한국인 박충건(50)감독이었고 사격장 시설도 부족하여 한국 인천에 머물면서 사격 연습을 해야했다.# 그래도 베트남 교민에 따르면 사람들의 함성소리로 인해 천둥소리가 나고, 상인들이 길거리에서 음식을 나눠주며, TV들은 메달을 딸 때마다 속보를 내보냈고, 일부 아나운서는 중계하다 말고 울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직 초창기지만 야구의 저변 활성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하노이에는 어느 미국 사업가의 지원하에 하노이 캐피탈즈라는 U12, U14 유소년 야구팀을 운영 중에 있으며 포니대회를 비롯한 국제 유소년 야구대회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 호치민에도 야구클럽팀이 존재한다. 국내 모 은행의 지원하에 호찌민시 근처에 정식 야구장과 리틀 야구장 각각 한 면씩 2014년 2월 완공 목표로 공사중이었지만 연기되었고 정식 야구장은 아예 공사중단되었다.
7 외교 관계
인접한 나라와는 사이 좋은 나라가 거의 없다.[25] 역사적으로도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나 태국과 여러번 싸웠다. 베트남이 밀고 쳐내려 오면서 영토를 집어삼키는 바람에 18세기 중반에야 현재의 국경선이 만들어졌으며 19세기 초(1802년)에 들어서야 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그전까지 여러번 전쟁을 하였다. 베트남은 16세기 중반 남북으로 나뉘었다가 19세기 초에 통일되었다. 심지어 라오스, 캄보디아는 일시적으로 베트남에 괴뢰국으로 전락,종속된 적도 많고 캄보디아는 아예 합병당한 적도 있었다. 민주 캄푸치아 참고.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둘 다 태국을 싫어하는데 정작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그래도 동남아 내에서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와 우호관계이고, 남아시아에서는 부탄과 2012년에 수교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은 프랑스와 인도와 방위협력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7.1 미국과의 관계
베트남 전쟁에 패배한 미국은 철저히 베트남에 복수하려고 했고, 베트남군에 의해 축출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를 간접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쟁이 끝지 20년이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 현재 북한에 취하는 유사한 경제제재와 봉쇄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미국이 마스터베이션용으로 제작한 영화를 보면 항상 베트남군이 천하의 악당으로 나올 정도. 하지만 냉전이 해소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악감정도 없어져서 사이공이 함락된지 20년만인 1995년 수교를 하게 된다.
2006년에는 쩐득렁 당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여 뉴욕 증권가까지 둘러보는 파격 행보로 주목받았다. 이 때 쩐주석은 미국 등지에 거주중인 비엣끼우(옛 남베트남 출신 동포)들을 향해 고향 방문시 비자를 면제해주고 특히 투자를 할 경우 여러 혜택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등지의 리틀 사이공 주민들[26]은 쩐주석의 방미를 매우 불쾌해했으며 그가 리틀 사이공을 방문한다는 설이 돌자 "여기가 어디라고 공산당 우두머리가 온다는거냐!"라는 말까지 하기도.
일부 친미 밀덕들이 미국-베트남 관계를 반중 포위망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베트남은 미중간에 등거리 외교를 취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의 반중감정이 매우 심하기도 하고, 안보의 경우에는 남중국해 분쟁을 두고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긴 하지만. 베트남 경제가 중국에 매우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베트남 정부차원에서 반중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베트남 국방장관이 미국에서 베트남은 미중간에서 중립을 취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소리 기사
하지만 반중 포위망까지는 과장이더라도 현재의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중국 견제라는 서로의 공통 목표가 분명히 있기에, 꽤나 좋은 편이다. 베트남 하면 특히 할리우드의 영향으로 월남전의 이미지가 강하여 사이가 의례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베트남은 급증하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 베트남군의 현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미국과 군사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오바마의 베트남 방문과 덧붙어 미국이 무기수출 금지를 풀었으며 남중국해와 인접한깜라인만을 미군에 허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거기에 베트남은 미국의 대잠초계기와 전투기를 구매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해당기사 Vietnam May Request F-16s, P-3 Orions From US U.S. deepens military ties with former foe Vietnam 게다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 록히드 마틴 사의 P-3 해상초계기도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을 겪었지만 국민 감정은 꽤나 좋아진 편인 듯 하다. 베트남인의 78%는 미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원래 호치민은 처음부터 베트남을 친미 공산국가로 만들고자 미국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퇴짜맞고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전쟁을 벌이게 된다. 지금 베트남이 미국한테 기대고 심지어 미군 무기를 베트남군의 최신 장비로 들여오는걸 보면 지금의 월미관계는 호치민이 목표하는대로 가는걸지도 모른다.
7.2 대한민국과의 관계
한자문화권과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과거 리 왕조의 왕자였던 이용상과 이양혼이 고려로 배를 타고 망명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 전쟁과 국제결혼 등을 통해 관계를 맺어오고 있고,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텔레비젼을 통해 편성되면서 상당수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한국 노래도 꽤나 인기를 얻은 탓에 베트남 내에서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나 드라마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보면 케바케기는 하지만 여하튼 한국에서 베트남계 이민자들이 상당해지면서 한국에서는 충남외국어고등학교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개설하였다. 또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는 1998년 개교하고 2004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의 기반이 다져지고 현재 수천여 명이 하노이한국국제학교를 다니는 등 교육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관계가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생긴 한국과의 악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의 90%가 1975년 이후에 태어났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악감정은 줄어든 것 같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베트남인의 82%가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한국에 호의적인 국가로 조사되었다.
또한 현재 한인이 호치민에 약 14만 명이 살고 있고, 하노이에는 대략 4~5만 명이 살고 있어, 베트남에 적지 않은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대한민국 출신의 박충건 감독이 베트남 사격대표팀 감독을 맡아 공기권총 10m 종목에서 베트남의 현역 장교인 호앙 쑤안 빈에게 베트남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는 데 기여했다.
7.3 북한과의 관계
'공산주의 동맹국'답게 한때는 절친한 우방국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군은 공군 전투조종사를 파병하기도 했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안학수 육군하사가 평양으로 이송되기까지 했다.[27] 이렇듯 사이가 좋았으나...냉전시기 소련과 중공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북한은 중월전쟁 당시 중공의 편을 들었고, 이에 격분한 월맹정권은 형무소에 억류했던 이대용 공사 등 대한민국 외교관을 석방했다. 석방 당시 깍듯하게 '따이한(대한)'이라는 정식 국호를 쓰며 푸짐하게 송별연까지 열어줬다고 한다(...) 외교관을 형무소에 억류시켜놓고 이건 뭐 병주고 약주고 외교관 출신 탈북자로 유명한 고영환씨의 회고록을 보면 베트남 전쟁 와중 북한측에서 베트남이 격추시킨 미군 전투기 좀 뜯어보고 기술 좀 배워가자 했던걸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려서 그때부터 김일성이 배은망덕한 놈들이라 하며 사이가 틀어졌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에 따라 한월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과는 예전같은 우방국의 지위라기보다 데면데면한 공산주의 국가 사실 80년대까지라면 북한이 훨씬 잘살았으니 관계가 깊을수밖에 없기는 한데 그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역전되었기 때문에 북한이 베트남에 투자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월수교 이후로는 문화적으로 남한 드라마와 노래가 베트남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문화적으로도 멀어져갔으니 당연히 우방국이라고 보기에는 뭐한 수준이 될수밖에 없기는 했다. 북한이? 뭐, 그래도 일단은 형식적인 우방국으로써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는 중.
7.4 캄보디아와의 관계
캄보디아와의 관계는 정말로 안 좋다. 역사적으로도 베트남이 남베트남 일대로 남하하면서 캄보디아가 차지하고 있던 남베트남 지역의 영토들을 뺏어먹고 틈만 나면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약탈할 정도였다. 원래 호치민 시[28]를 비롯한 베트남 남부가 캄보디아 땅이었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캄보디아에 암흑을 가져온 크메르루주 정권을 베트남이 1979년 캄보디아에 대한 무력 침공으로 몰아내던 과정에서 베트남은 그 대가로 캄보디아의 땅이었던 푸꾸옥을 자국 영토로 또 귀속시켰고[29] 때문에 푸꾸옥은 지금도 분쟁의 대상이다. 또한 도이모이 개혁정책을 캄보디아에서 시험적으로 시행하는 등 캄보디아 입장에선 좋을 수가 없는 관계. 하지만 현재는 베트남인의 캄보디아 관광이 활성화 되는 등 조금식 서로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
7.5 태국과의 관계
역사적인 숙적 관계. 양국은 각각 대월과 아유타야 시절부터 인도차이나의 맹주 자리를 놓고 수세기동안 치열하게 다투었다. 역사적으로 태국은 동쪽과 북쪽으로 베트남은 남쪽으로 진출해 왔는데 결국 이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역에서 충돌해 이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계속 싸웠다. 그 와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게서 땅을 삥뜯어 넓힌 건 덤.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들의 대립은 계속되는데 이념에서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전역을 공산화시키는 교두보, 태국은 그걸 막기위한 방어선 역할을 수행했다.
7.6 중국과의 관계
중국에서 베트남이 받은 문화적 영향은 심대하다. 그러나 과거 중국과 지속적인 투쟁의 역사 덕에 감정이 영 좋지 않다. 현대에 들어서도 베트남전으로 잠시 가까워진듯 했으나 중월전쟁 이후 정치/군사적으로 여전히 사이가 영 좋지 않다.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경계심은 대단해서, 호치민조차 중국에게 무턱대고 대규모 지원을 받다간 코 꿰이고 말 것이라고 경계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 중에도 저렇게 경계를 한 것이다. 실제로 중공은 영토분쟁으로 유명한 남중국해의 한 섬을 남베트남이 무너져가는 베트남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베트남 대신 차지했고, 월맹정권이 통일을 이룩한 뒤로도 베트남이랑 대치하며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스프래틀리 군도과 남중국해의 영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마찰을 빚어, 베트남내에 반중감정이 여전히 잔존하고있다.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인의 74%가 중국에 대해 비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일본(89%)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남중국해 관련 반중시위가 확산되서 베트남 내 중국인을 죽이고 중국 공장을 방화하기도 했었다
[1]
그런데 이렇게 반중이 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꽤 교류를 하는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 대만에 이어 GDP가 중국과 가장 많이 관련된 나라로 꼽혔다 [3]
7.7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과거에는 노인 가운데서도 불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우리나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은 일본어를 썪어 쓰시는 경우가 있으니까 지금은 뭐... 참고로 베트남에서 흔히 접하는 바인미 빵의 원형이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전래된 바게트 빵이다.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베트남 길거리를 가보면 프랑스풍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베트남의 불제강점기는 노동 인력 강제 징발, 아편 제배 강요, 술 빗기 금지 등의 베트남 민중의 일상과 연관 된 가치관을 훼손하는 착취적인 정책을 취하여 깊은 반불감정을 낳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베트남이 근대 문물을 받아 들인 창구도 프랑스였고, 그 프랑스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주의, 사회주의 지식인, 군인 계층도 대부분 프랑스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가며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등 영향력이 깊었기 때문에 감정적인 원한은 별개로 프랑스 문화의 영향력은 짙게 남아 있다. 당장 미국이나 다른 서방측에서 제작한 베트남 전쟁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북베트남이나 베트콩 측 인사들과 인터뷰는 대부분 프랑스어로 진행 되는 것만 봐도...
7.8 러시아와의 관계
베트남은 예전에도 친소 경향이 강했고[30] 현재도 친러 국가이다. 러시아와는 북베트남 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 관계가 느슨해지다가 2010년대부터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들이 미군을 괴롭혔던 무기도 소련이 지원해준 무기들이었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벌어질 때, 이웃 캄보디아가 중국 편에 붙고 베트남이 소련 편에 붙으며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언제 어느 때나 러시아는 여전히 베트남의 무기공급책이기도 하다. 2015년 3월에는 베트남이 러시아 폭격기에 재급유 거점을 제공하고 있던 것이 드러나 미국이 충공깽(...)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중국이라는 적이 바로 코앞에서 위협을 가하는 중이므로, 과거 전쟁으로 사이가 안 좋긴 하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미국과도 협력하고 러시아와도 동시에 우방관계를 유지 중이다. 다만 러시아가 베트남과 사이가 안 좋은 말레이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미국과 서방국가 견제를 위해 중국과 협력하는 상황이 러시아와 베트남의 관계에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측은 소련시절에 베트남에 세워졌던 구소련기지를 다시 활용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베트남측은 러시아가 깜라인 만의 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불허했다.#
러시아는 남중국해 문제에서 거의 중국을 지지하고있다. 이래서 베트남으로써는 친미 노선도 하는거일것이다
[4]
7.9 바티칸과의 관계
교황청은 베트남 통일 전에 남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1975년에 북베트남에 의해 베트남이 공산통일되면서 양국 간의 외교관계가 끊겼다. 본래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의 계속된 종교 박해로 세계가 우려하던 기독교 박해국이었으나 1988년부터 베트남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다는 종교 백서를 발표하고, 투옥한 성직자들을 풀어주고, 바티칸과 수교를 맺기로 합의하는 등 박해국 이미지 탈피에 부심해오고 있다. 바티칸 역시 베트남과 바티칸의 유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복지 서비스를 베트남 국민들에게 제공할 것이라 약속하며 베트남과의 외교를 시도해 왔다. 현재 바티칸은 베트남과의 수교 및 관계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대표단을 파견해 놓은 상태다. 양측은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 내의 가톨릭 교회의 자유와 권리를 얼마나 폭넓게 허용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이슈가 주교 서임권이다.
8 정치
공산주의 일당독재 국가로 현재 베트남의 유일한 정당이자 집권 정당은 베트남 공산당(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 당 꽁 싼 비엣 남/ 黨共產越南), 일명 '월공'이다. 이전엔 구색정당으로 민주당과 사회당이 있었지만 둘다 1988년에 해체되었다. 한편 남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결성한 각종 단체들은 베트남에서 반체제조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2006년에는 자유민주주의베트남정부 소속인 베트남계 미국인 사업가 응우옌 흐우 짜인이 한국에 입국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되어 강제송환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베트남 헌법 제5조는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 노동자의 선봉대이고 노동자, 농민계급 및 전 민족의 권리에 충성하는 대표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치민 사상을 신봉하는 국가 및 사회의 영도세력이다. 당의 모든 조직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헌법 제9조에서는 베트남 조국전선과 그 구성조직들이 인민정권의 정치기반이다. (중략) 인민으로 하여금 주권을 행사하고 헌법과 법률을 엄정히 시행토록 하며 국가기관, 민선대표, 간부의 활동을 감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헌법에 나오는 공산당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각종 반체제 사건에 3~4년형 정도의 징역형 혹은 이에 상응하는 집행유예나 보호감찰 정도만 내리는 등, 갈수록 체제비판 세력에 대해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베트남 인권상황에 대한 미국의 비판과 압박이 주효하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쿠바 등과는 달리 베트남은 중국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어 미국과의 우호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보니 어느 정도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 반체제 행위들 중에 '중국에 대한 비난'도 들어가 있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비난이 곧 중국과 공산주의 형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중공이랑은 잘만 싸우고 있다 또한 이 부분은 과거 호치민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호치민이 베트남에 사회주의를 들여 올 때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공산주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지금 베트남 정부의 운영방침이기도 하다. 즉, 반체제는 그럭저럭 넘겨도 되나 반민족. 정확히는 국가반역죄만 죽일놈의 행위로 보고 있는 것.[31] 또한 보트피플의 후손들이 아직 디아스포라 상태 (물론 대부분 미국/영국으로 퍼져있긴 하지만) 이기 때문인 것도 크다.
그런데 개헌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서 엄청난 개혁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물론 언제까지나 반체제. 특히 국호에서 '공산주의'를 제외하자는 가히 파격적인 의견도 나왔다. 막장 베트남 공화국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호치민 살아 생전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다. 게다가 심지어는 주석 직선제나 다당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다당제 도입은 정권 수뇌부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쳐도, 공산당이 다수의 후보를 내세우고 직접 국민이 투표하는 주석 직선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긴 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의견들이 묵살되지 않고 일단은 검토 의제로 수용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현재 베트남을 포함하여 단 4곳[32]밖에 남지 않은 공식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정치 개혁에 적극적이며 앞으로의 정치 개혁 상황을 진지하게 지켜봐야 할 나라.
인터넷 관련해서도 윗동네 중국과 똑같은 인터넷 검열 국가지만 그나마 중국처럼 유튜브, 트위터 등을 아예 못들어가게 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베트남인 유튜버나 베트남어 위키백과도 활발하다(참고로 베트남어 위키백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많은 문서를 자랑한다).
물론 최근 페이스북을 차단한 적도 있고, 반정부 웹사이트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있다.[33] 지역이나 장소마다 차이가 있는지 다낭 공항에서는 트위터를 막아놨는지 접속이 되지 않는 반면 다낭의 리조트에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모두 접속되는 등...2015년 8월 현재, 호치민과 하노이에서 페이스북 로그인 및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현지 로밍폰이든, 와이파이든. 한국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네이버로 인식하듯 베트남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런 위치에 있다.
2016년 2월 경, 베트남에서 트위터도 뚫렸다.
교육문제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답게 국정교과서를 썼었으나 2015년 UN 권고안으로 검정교과서 도입 준비에 들어갔고, 4월 말에 비준 통과 후 하반기에 2018년 검정교과서 도입을 확정했는데, 이때 벤치마킹 한 나라가 하필이면 대한민국인 탓에 (실제로 주한 베트남 대사관 및 베트남 교육부가 한국의 교육현장 참관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적잖게 까이고 말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선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참조.
현재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강제 노동은 상당히 큰 비난을 받고 있다.
8.1 소수민족 문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소수민족 숫자는 54개이다. 하지만 전체 민족의 82% 정도를 비엣인(Người Việt, 월인(越人))이라 불리는 킨족(Người Kinh, 경족(京族))이 차지하기 때문에 킨족이 사실상 베트남인인 셈이다. 여기도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베트남도 소수민족들에게 장난아닌 탄압과 차별을 해왔다. 중국에서는 한족이 실세이듯이 베트남에서는 킨족이 왕초 노릇을 하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이나 참족같은 소수민족들은 미군의 도움으로 20000명 정도 되는 부대를 창설해서 서로 죽였을 정도. 물론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
베트남 다수 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미군들은 이 므엉족 참족을 실컷 이용하다가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가차없이 철수했고, 남겨진 이들은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전역에서 매국노로 몰려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34]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은 의외로 서구 제국주의 열강 뺨치는 수준이었다.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강요하였고 힌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사찰을 지었다.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 했을 때에는 합병 1년만에 창씨개명, 풍습개조, 지명개명, 직할화,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촌락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 시키려고 하였다.이러나 저러나 지배 당하는 민족은 불쌍하다
특히 베트남 남서부의 떠이응우옌(Tây Nguyên, 西原) 고원 지역의 경우 현재도 베트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34년 기준으로 떠이응우옌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으며, 킨족의 인구수는 3만 3천 명에 그쳤다. 그러나 남베트남은 고원 지역에 225곳의 지역 개발 중심지를 만들어 27만 명의 킨족이 이주했으며, 통일 이후 북부 지방에서의 이주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79년 83만 명이었던 킨족 인구는 1989년 160만 명으로 증가했고, # 2010년대가 된 현재 떠이응우옌에는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이 중 400만여 명이 킨족이다. 이런 대량 이주에는 특히 커피 산업의 발달이 큰 영향을 끼쳤다. 2001년에는 베트남의 소수민족 차별 정책에 말미암아 떠이응우옌 지역에서 소수민족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킨족 이주정책은 계속된 상황.#[35]
9 경제
- 문서 참조 : 베트남/경제
10 군사
- 문서 참조 : 베트남군
11 관련 문서
(영어위키)Vietnam- ↑ '월남'을 '베트남'의 '한자 음차'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음차가 아니다. 애초에 베트남도 한자문화권 국가다. '越南'을 베트남어로 읽으면 그게 '베트남'(정확히는 '비엣남')이다. 중국 역시 자신들의 언어대로 읽어 '위에난(Yuènán)'이라 부른다.
- ↑ Viet Minh. 실제 발음은 '비엣민'.
- ↑ 이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기 전, 중국 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호칭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한중수교 전까지 우리에게 중국 = 중화민국(대만)이었다. 도올 김용옥은 과거 대만 유학생활을 회고하며 '중국에서 유학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중국은 대륙이 아닌 중화민국, 즉 대만을 의미한다.
- ↑ 비엣남을 베트남으로 부르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참고로 '越南'을 일본어로 음독하면 '에츠난(えつなん)'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 에츠난도 등재되어 있긴 하다.
- ↑ 본 이미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에 항전하기도 하였다.
- ↑ 몽골 제국은 어디 갔냐는 취소선이 있었는데 맞는 말이다. 몽골 제국이 없다! 몽케칸 시절인 1258년에 몽골 제국은 베트남을 공격한 적이 있다.#
- ↑ 이건 베트남에서도 불법이다. 2명까지는 괜찮은데 3명부터는 단속한다.
- ↑ 1500만 동이 얼마냐고? 75만원.
- ↑ 요즘은 아예 법으로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도로를 나눈다.
- ↑ 단 큰 도로의 경우 오토바이는 바로 턴이 불가능하고 턴을 할 도로의 횡단보도 앞쪽에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한 다음 직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교통 정리에 도움이 되기는 한데 오토바이 물량이 미어터질 경우에는 이딴거 소용 없다 - ↑ 교차로가 심하게 엉키면 차량도 보행자도 신호를 씹는다. 아니, 이쯤 되면 이미 신호 따위는 장식이 된다. 이 때는 경찰이 직접 개입해서 어떻게든 통제를 한다. 그런데 경찰의 통제는 교통이 엉키지 않아도 물량(?)이 꽤 많다 싶으면 출동한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구정 등의 큰 연휴 때.
- ↑ 우스갯소리로 횡단보도는 다른나라가 다 있길래 만들었다라고 할 정도니(...)
- ↑ 예를 들어서 사이공 강의 경우 웬만한 컨테이너 선박(!)도 들어갈 정도로 강이 깊다. 한강에서는 상상도 못할 상황. 다만 이 굉장한 강의 깊이 때문에 다리를 놓는 게 곤란하다.
- ↑ 택시
- ↑ 일부 호텔에서는 햐얀색깔 하노이 택시도 온다
- ↑ 택시로고 가 이상하거나 요금이 급격히 오르면 짝퉁택시이다
- ↑ 우리나라 처럼 할증 같은걸로는 안하고 그냥 조금 더 멀리돌아가는 수법
- ↑ 언론에서는 여자만 입는것 처럼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사실은 남자도 입는다.
- ↑ 베트남 항공이 아오자이를 기내승무원 복장으로 쓴다
- ↑ 어디까지 나 "전반적"이다.몇몇 부분은 많이 다르다
- ↑ ê는 e와는 발음이 다르다.
- ↑ 1960년대부터 활동한 밴드인데 사실상 친미적인 사람들이어서 미국의 CIA 요원들과도 연계가 있었다고 한다. 1971년 클럽에서 공연하던,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으로 인해 미군 1명과 베트남 여성 1명이 사망한 뒤 베트남 생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4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예견한 CIA요원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베트남을 탈출하여 인도에 거주하다가 국제 난민으로 인정받아 미국 휴스턴에 정착했다고 한다.# 2011년, 당시 클럽에 관객으로 왔던 베트남 참전용사들을 모아서 그때 중단되었던 연주를 다시 하는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
- ↑ 심지어 성조기도 나온다!
- ↑ 다만 아챔리그 개편전인 아시아 클럽컵에서 2001년 11월 24일 스리랑카 리그 소속인 SC사운더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18:0으로 진 기록이 있다.
- ↑ 사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여러나라 사이에 낀 나라는 다른 나라와 사이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 ↑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자본주의 국가인 남베트남 주민들과 그 후손들로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게 패망하자 미국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자기 조국을 멸망시킨 공산국가 베트남을 죽도록 혐오한다.
- ↑ 베트남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한국군 포로는 없다. 그러나 실종 및 전사로 처리된 일부는 이런 식으로 북송당하기도 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안학수 하사로, 북한에서 탈출을 기도하다 처형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 ↑ 옛 사이공. 캄보디아말로 프레이 노 코르
- ↑ 1967년 남베트남 행정군사지도. 푸꾸옥 섬이 남베트남 영토로 표시되어있다.
- ↑ 중소분쟁에서도 대놓고 소련을 지지했다.
- ↑ 이 점은 서방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매국노에게는 관용이 없지만 반체제 행위는 적당히 눈감아 준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외환죄라는 것이 존재한다.
- ↑ 나머지 3국은 중국, 쿠바, 라오스. 세 나라 모두 베트남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사회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주체주의 - ↑ 해외의 남베트남 잔존 세력이나 베트남에서 금지되어 해외로 망명한 정당들(베트남 개혁당, 대베트남 국민당 등)이 목표물이 되고 있는데 한국의 자유북한방송, 북한민주화위원회 포지션쯤 된다고 보면 된다.
-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 ↑ 참고로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동부의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 주의 경우 크메르인의 인구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밀도도 km²당 20명 미만으로 km²당 100명 정도인 떠이응우옌보다 인구가 확실히 적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