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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梨花女子大學校 Ewha Womans Universi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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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 眞진, 善선, 美미 |
개교 | 1886년 이화학당 수업 개시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설립 |
분류 | 사립대학 |
재단 | 학교법인 이화학당 |
국가 | 대한민국 |
설립자 | 메리 스크랜튼 |
총장 | 제 15대 공석 |
소재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
재학생 | 학부생: 16,660명 (2015. 10. 01.) 대학원생: 6,824명 (2015. 10. 01.) |
교직원 | 전임교원: 983명 (2015. 10. 01.) 직원: 523명 (2015. 04. 01.) |
대학구조개혁평가 | A등급(2015년 기준) |
교색 | ■ Primary Color |
웹 사이트 | 이화여자대학교 홈페이지 |
목차
1 개요
梨花女子大學校, Ewha Womans University.[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사립 종합 여자대학교다.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한국 여성에 대한 근대 교육을 위해 세운 이화학당이 모체이다.[2]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이화(梨花, 배꽃)란 이름을 내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1945년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대학교가 되었다. 초대 총장은 메리 스크랜튼 여사이다.[3]
2 연혁
1886.05.31. | 미국 북감리교에서 파견된 선교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부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설립. 단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였다. |
1887 | 고종이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이름을 하사.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4]을 설립. |
1890 | 제2대 당장 루이자 로드와일러(Lousia C. Rothweiler) 취임. |
1893 | 제3대 당장 조세핀 페인(Josephine O. Paine) 취임. |
1907 | 제4대 당장 룰루 프라이(Lulu E. Frey) 취임 |
1910 | 대학과 신설 |
1912 |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 대학과 설치. |
1914 | 대학과 1회 졸업식(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 이화유치원[5] 신설 |
1915 | 유치원 사범과 설치 |
1918 | 고등과와 보통과를 이화학당에서 분리하여 각각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보통학교로 개교. |
1921 | 제5대 당장 자네트 월터(Jeanette A. Walter) 취임 |
1922 | 제6대 당장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 취임 |
1925.04. |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칭 |
1927.03 | 이화여자전문학교 제1회 졸업식 |
1935.03. |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정동에서 신촌으로 이전 |
1939.04. | 제7대 교장 김활란 취임 |
1943 | 재단법인 이화학당 설립 |
1945.12. | 동대문부속병원 신설 |
1946.08.15. |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이화여자대학교로 개편(한국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 |
1950.06. | 대학원 신설 한국전쟁으로 휴교 |
1951.09. | 부산에 임시 교사(校舍) 마련 |
1953.08. | 서울로 복귀 |
1954 | 대학원 제1회 졸업식 |
1956 | 대강당 건축 |
1958.04. |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개교 |
1961.09.30. | 제8대 총장 김옥길 취임 |
1969.11.20. | 자연사박물관 신설 |
1977 | 한국 최초의 여성학 강좌 개설 |
1979.09.01. | 제9대 총장 정의숙 취임 |
1990.09.01. | 제10대 총장 윤후정 취임 |
1992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개교 |
1993.10.06. | 이대목동병원 개원 |
1996 | 제11대 총장 장상 취임 세계 최초 여자공과대학 설립 |
1999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문 |
2001 | 국내 대학 최초로 국제학부 신설 |
2002.08.14. | 제12대 총장 신인령 취임 |
2003 | 금혼 규정 폐지 |
2005 | ECC 기공식 아시아 최초 세계여성학대회 유치 |
2006.08.01. | 제13대 총장 이배용 취임 |
2007 | 국내 대학 최초 자유전공학부 신설 의학전문대학원 신설[6] |
2008 | ECC 완공 법학전문대학원 신설, 법과대학 폐지.[7] 이대동대문병원 폐원 |
2010.08.01. | 제14대 총장 김선욱 취임 |
2014.08.01. | 제15대 총장 최경희 취임 |
2015.07.26 | 의과대학 체제로 전환, 의예과 신입생 선발 |
2016.10.19 | 제15대 총장 최경희 사임 |
2016.10.20 | 제15대 총장 최경희 사임 함에 따라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은 공석이다. |
3 개신교 미션스쿨
선교사가 세운 개신교계 미션스쿨인 만큼 채플을 30분씩 8학기(4년 내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모르고 입학했다가 당황하지만, 신자가 아닌 학생들은 그 시간에 다들 딴 짓을 한다. 얼마든지 자도 좋다. 물론 채플 시간이라고 예배만 드리는 것은 아니고, 유명인사가 와서 강의를 하거나 공연을 할 때도 있다. 사실 공연이 더 많다. 옛날에는 간혹 개신교 신자인 연예인들이 오기도 했다. 한 학기 채플에서 기본적으로 교양합창 수업 학생들의 합창, 무용과 학생들의 무용채플, 이화 페스티벌 학생/동아리 공연 채플이 이루어진다. 음대 교수들 착출.
대부분의 학교가 2학기(1년) 내지는 4학기(2년)인 데 비해 파격적으로 긴 시간이다. 그나마 채플 내용이 교양에 가까운 편이고 채플 시간이 30분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갈수록 종교적 색채가 짙어져 학생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채플 시작 직전 대강당의 모든 문을 잠가버린다. 쪽문은 1분 정도 더 열어주지만 대강당 계단을 뛰어와서 들어갈 확률은 희박하다.
이 시간에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채플 조교마다 달라서 못하게 하는 조교들도 있다. 음료와 먹을 것은 반입할 수 없으며 대강당 로비의 탁자에 올려놓고 들어가야 한다. 빠진 학생들을 위한 보충 채플이 있으며 (한 학기에 2번 가능) 그 외에 특별 채플(기본 1시간을 넘어간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학년이 될수록 채플 이수를 다 못해 한 학기에 2개, 3개, 4개 이상 듣는 학생이 제법 있다. 채플학과.[8] 못 들은 채플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채플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채플 하나당 10점을 채워야 하는데,[9] 성경 필사 1점, 리포트 2장에 2점 하는 식이다. 한 학기 채플을 개근하는 경우 선물을 준다. 담요, 에코백 등등. 마이보틀이 유행하자 2014년 2학기 채플에서는 학교 이름을 새긴 이화보틀을 채플 개근선물로 내놔서 개근자가 많았다고 카더라.
4 재단
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44.1%로써 조금 낮은 편이다.(전국 평균 56.9%)
2014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
운용수입 중 등록금 비율이 63.7%로, 전국평균 63.2%과 비슷하다.
5 남학생은 당연히 없습니다
여자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남학생이 입학한 적이 있다는 루머가 끊이질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규정에 성별에 대한 제한이 없어서 장난삼아 원서를 넣은 남학생이 합격했다는 이야기. 이 루머에 따르면 그 남학생은 결국 자퇴했고, 그 후로 입학 규정에 성별제한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다른 버전으로는 무용과에서 여학생들을 받쳐주기 위해서(…) 남학생을 받아 연습을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분명히 없다. 이화여대에 남학생이 입학한 적은 개교와 개벽 이래 한번도 없었다. 역대 총장들은 "국회의원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여대를 철폐하고 이화는 문을 닫을 것"이라 발언했다. 다니고 싶은 남학생은 이대부속초등학교, 이대부속중학교, 이대부속고등학교로 가라.
학내 신문에서 소문의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한 인터뷰를 했는데, 원칙적으로 주민등록번호에서 성별이 남자 코드이면 원서를 받지 않는다. 무용과 남학생 떡밥의 경우 수업 특성상 알바로 남자 무용수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 외에 음대의 오페라 공연때도 남자 배역은 타 대학 음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해서 뽑는다. 이때 뽑혀서 이대 공연에 섰던 남자 성악가들 중에 이후 유명 성악가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도 나름 전통이라고.) 숙명여대 등 다른 여대의 경우 대학원에서는 남학생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대에서는 심지어 본대학원 뿐 아니라 경영대학원이나 교육대학원 같은 야간대학원 대학원생 조차도 불허.
따라서 의대, 약대, 초등교육과처럼 특정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학과조차 여학생만 받는다. 이런 종류의 학과는 정원을 교육부에서 엄밀히 통제하며, 그렇게 하는 게 이치에 맞지만… 그 학과가 여대에 설치되었다면? 슬쩍 여성 할당제가 되는 것이다. 그게 결국 문제가 터진 게 바로 아래 나오는 로스쿨.
하지만 이화여대에서 남학생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그건 가능하다. 타 대학 학점교류나 외국 대학 교환학생의 경우이다. 키 190cm에 털 많은 외쿸인 남자가 이대 과잠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가끔 흠칫한다.기욤 패트리이대티셔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신촌 대학 교류라고 하여 학점교류가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학부생들도 4개 학교를 오가지만, 대학원생들은 본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이 다른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요즘처럼 학점교류가 많아지기 훨씬 전부터 이 제도가 시행중이라 학점교류를 하는 비율이 잦다. 이 때문에 나머지 세 학교 남자 대학원생들이 이대에 오는 빈도가 꽤 높다. 대학원 세미나실에 앉아있는 남학생들은 거의 세 학교 학생들이라고 봐도 무방.
외국 대학에서 온 교환 학생들 중 상당수가 남학생이다. 물론 함께 수업도 듣는다.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추가바람.(…)
5.1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시의 성차별 문제
남학생 입학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은 법학전문대학원도 예외가 아닌데 사실 이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서울에 배당된 로스쿨 TO를 100명이나 신청해놓고도 이화여대가 당첨된 이유는 학교측이 준비를 잘한 것도 있지만 남자도 뽑겠다라고 하는 말을 해놓았기 때문. 당시 로스쿨 TO를 따내기 위해 법학과가 있는 학교들이 피터지게 경쟁했음을 감안한다면 100명 TO를 온전히 받기 위해서 어쩔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100 TO가 승인이 나니까 말을 바꿔서 여자만 뽑겠다고 했으니 반발이 상당했다. 실제 로스쿨제도가 시행되자 이화여대 로스쿨은 100명을 모집하는데 모두 여학생만 모집했다. 로스쿨 총 정원 2,000명 중에서 100명을 따로 여성만 우선 선발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애당초 이화여대가 로스쿨 TO를 배당받을 때의 공약이 어긋나기에 로스쿨을 지망하는 남학생들이 대거 뭉쳐 소를 제기한 결과, 결국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에까지 갔으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이화여대 로스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약대가 있는 여대에 대해서는 소가 제기되지 않고 로스쿨에 대해서만 소가 제기된 까닭은 절차상의 결함이 있기때문임에도 여성 우선선발 인원의 숫자가 그리 크지 않으니[10] 남성의 침해 정도가 크지 않아서 영향력이 크지 않고, 이때까지의 여자대학교의 관행을 들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만 하면 관행이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 한참 이전에 금녀의 벽이라고 불렸던 육군사관학교의 여자 입학 금지 교칙이 위헌 판결이 났던 적이 있었다. 물론 꼬우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다른 곳 남자 TO가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나중에라도 문제소지가 있어, 아마 앞으로도 해당 이야기가 꾸준히 나올 듯.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 2013. 5. 30. 2009헌마514판결 참조
6 특징
연세대 사회대 대학원의 문화 쪽과 같이 김신, 최이 등 2자 성 쓰기에 앞장서는 여성이 많은 학교이기도 하다.
1970년 이전, 메이퀸(5월의 여왕)을 뽑았지만 1977년 들어 '여성의 성 상품화다', '이런 시국에 여왕이 가당한가'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폐지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메이퀸이 학교의 전통이라고 반발하였으나, 메이퀸의 후보가 되는 각 단과대학 메이퀸을 뽑는 과정에서, 3개를 제외한 단대가 메이퀸 선출에 반발하여 단대 메이퀸을 뽑지 않음으로써 결국 폐지되었다.
1946년부터 학칙에서 입학 자격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고교를 졸업한 자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미혼 여성자(제14조 1항)로 명시하고 결혼한 자는 총장이 제적한다'(제28조 7항)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른바 금혼규정. 하지만 이 규정은 2003년도에 폐지되었다.
애초에 이 금혼 학칙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당시 조혼 풍습 때문에 결혼을 이유로 학업을 강제 중단하게 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아, 그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성들의 고등 교육환경과 인식도 달라진데다, 결혼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헌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학교로 돌아온 어머니뻘 학부생도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단, 결혼으로 인해 퇴학당한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시에 해당된다. 또한 금혼 학칙이 없어지면서, 기혼 여성들이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하기도 했다. 58년 만의 아줌마 신입생들, 첫 기혼 신입생 졸업.
이화여대 총장직에 금혼 규정은 없지만, 결혼 경력이 없는 여성에게만 총장직을 맡길 수 있다는 암묵적 규율이 있었다. 그러다가 장상 전 총장이 이 불문율을 깨뜨리고 최초의 기혼 여성 총장으로 취임했다. 교내 운동권들이 농담 삼아 '철의 여인'이라 부르던 총장이다. 前 총장 이배용은 2번째 기혼 여성 총장이다.
타짜의 정 마담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은 안 된다. 정 마담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본인의 애드립이 아닌 대본에 있는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MT 등으로 놀러 가면 술을 마시는 대신 스무디킹에서 스무디 사놓고 논다고 위키백과에 써 있으나 스무디보다는 커피나 차 종류를 더 좋아한다. 물론 공대는 예외이다. 공대는 닥치고 소주다. 다만 다른 대학보다 훨씬 적게 마시기는 하는 듯하다. 실제로 인문대 신입생 OT 때는 10명 정도 있는 한 방에 맥주 1병과 소주 2병씩을 나눠줬다. 술이 떨어지면 음료수나 물을 떠놓고 술게임을 한다고 한다. 기껏 MT 간다고 소주를 사와도 대부분 도로 가져오는 일이 부지기수며, 결국 과방에 처박아 두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한두 잔씩 홀짝홀짝 마신다고 한다. 다만 자연과학대학에는 주당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류가 활발한 동아리도 추가.
로스쿨이 있다. 로스쿨 선정 자격을 두고 법적 시비가 붙어 고등법원까지 갔는데, 서울대, 이화여대, 경북대, 전남대에 내준 로스쿨 인가는 위법하긴 하나 취소 시 공익을 현저히 저해해 취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11] 참고 이 위법성은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로스쿨의 대상이 되는 학교의 교수들은 참여하지 못하나 서울대 - 이화여대 등의 법대 교수가 위원회에 참석하여 공정성이 문제된 사례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대에서 로스쿨을 운영하는 것이 성차별이라는 헌법소원도 제기되었다. 전체 로스쿨생 2,000명 중 이대에서 100명을 뽑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로스쿨의 문이 좁아서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결국 합헌판결을 받았다. #
국내 대학 중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학과나 타이틀을 은근히 많이 가지고 있다. 국제학부, 자유전공, 언론홍보영상학부, 여자대학교 내 공과대학(세계 최초), 캠퍼스 투어, 학부 내 뇌·인지과학 등등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인터넷상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벗'이다. 타학교에서 주로 쓰는 '학우'와 비슷한 호칭이다.
이화여대 축제 명칭은 '대동제'이다. 그런데 외부 학교에서는 '재미가 없다' 는 평이 많다. 일단 타 학교들처럼 화려하게 가수들을 초대한다든지 주점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 그러나 이화여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초인기의 축제라고.
정확히는 먹방 축제나 돼동제다같이 돼지가 되자 벗들아라고도 한다. 그만큼 먹거리나 소소한 재미가 큰 축제라는 평. 그러나 외부인만 재미가 없지 내부인은 재밌는 축제인 것.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물건이나 학교 에코백, 동양화과 부채 등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유명한 물건들도 있다. 축제에 가수가 아예 안 오는 것도 아닌 듯. 2016년에는 에릭남이 축제에 방문해 공연했다고 한다.
7 학부
이화여자대학교/학부 참조.
8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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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대학원
- 교육대학원
- 디자인대학원
- 사회복지대학원
- 신학대학원
- 정책과학대학원
- 공연예술대학원
- 임상보건과학대학원
- 임상치의학대학원
- 외국어교육특수대학원
9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이화여대의 창립 이념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화의 FM은 '해방 이화'다. 여성을 해방하자는 소리다.[12]
이화는 서양에 소위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이 일어나던 시기 이후 한국에 세워졌으며, 그리스도교 교리에 입각한 여성의 교육, 전인격적 발달, 자립, 주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대의 전신인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이희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를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나의 소망이었고 인생의 목표였던 양성평등(남녀평등)을 실현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과 함께 여성학 과정이 개설된 국내에 둘 뿐인 대학 중 하나다.[13] 이 점에서도 볼 수 있듯 이대는 국내에서 여성학 강의가 가장 많은, 또 여성학이 연계전공으로 세워져 있는 드문 학교 중 하나이다. 덕분에 여성학 관련 강좌의 질이 좋다는 평이 많으며, 또 학교의 특성으로도 취급하는 분위기. 그래서인지 재학생들 중 여성학에 관련된 수업을 하나쯤은 들은 학생이 많은 편. '여성학' '성문화연구' '글로컬시대의 아시아여성' '세계여성문학' '한국의 구비문학' 등.
운동권 페미니즘과 학문적 페미니즘은 별로 접점이 없지만 학내에 페미니즘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여러 단위가 존재한다. 여성위원회, 틀린그림찾기, 운동권 총학, 미대 총학, 사회대, 법대 기타 등등. 장단은 있을 것이다.
11년 춘투에서는 총학이 자신과 관계 없다고 여겨지는 외부 집단(교내 미화노동자)과 연대하여 최저임금에서 생활임금으로써의 인상, 노조의 설립과 전담자 고용, 인간적인 처우와 휴식공간 등을 요구하는 연대투쟁을 벌여 승리하였다. 틀 안에 갇힌 페미니즘이 아니라 연대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라 생각된다.
운동권 페미니즘은 이 사회를 미시적으로 조망하며 이 시대 20대 여성-나 자신과 사회의 관계 안에서 관계의 회복을 조망한다. 어찌 보면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에 모토를 맞춰 진행해 나가고, 학문 페미니즘은 국제사회를 거시적으로 조망하여 노동과 여성, 제3세계 국가와 여성, 후기 식민지주의와 여성, 여성으로써의 경계(국적, 소셜 클래스 등) 넘기 등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관찰한다.
메갈리아 관련 활동으로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모욕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던 트위터 메갤문학 계정주 등이 이화여대 출신이다.
9.1 논란
국민의 정부 이후 이화여대 출신들의 페미니즘 활동이 두드러지고 이는 여성가족부 설립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화여대는 과거 된장녀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유없이 엮여 폭풍처럼 까인 적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된장녀의 본거지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대학이 신촌-이대역 근처에 있어서 그 근방에 보이는 여자들의 화려한 옷차림을 이대생과 동일시하면서 생겨난 편견 아니면 일반화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이 근처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인 만큼 성별에 상관없이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14].
매스컴에서 지식여성의 대표적인 존재로 이대 출신의 여성에게 여권에 대해 질문을 자주 하는데, 딱히 여성학 관련 공부를 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답변을 한 것이 여성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보도되면서 이화여대와 더불어 페미니즘 전체가 왜곡되었다.
10 등록금
우리나라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교로 널리 인식되고 있지만, 2009년, 2010년 2년 간 등록금을 전면 동결하여 2010년에 4위로 내려갔다. # 그리고 예체능이라든가 약대, 의대 쪽은 이대보다 비싼 학교가 많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된장녀 및 페미니즘적 이미지와 맞물려 이러한 사실과는 상관 없이 제일 비싼 등록금의 대학으로 이미지 굳어져 까이고 있다. 등록금 적립액이 국내 1위라고 한다. 참고기사
인문대, 사회과학대, 사범대 등 문과계열의 등록금은 370만원대, 공대는 09학번 새내기 공대 등록금이 약 550만원선으로 타 사립대학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 약학, 공과, 예체능 계열은 이보다 약간 더 비싸다.
2년 간의 등록금 동결은 이전의 총장이 대교협 회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으며, 새로운 총장이 부임한 뒤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비친 적이 있다카더라.
강사에 대한 대접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15] 하지만 교수 임금이나 정교수 진급 등은 꽤나 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등록금으로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소문도 들린다. 허나 등록금으로 교내 토목공사를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그럴 리 만무하다. 대신 조경에 돈을 쓴다는 설이 유력하다.
11 캠퍼스
이화여자대학교/캠퍼스 참조.
12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서울시 양천구 목5동에 본교 부속병원인 이대목동병원이 있다.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의학도서관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이대동대문병원도 있었지만 폐업했다.
13 기타
13.1 시험 간식
각자의 소속 단대나 학과에서 시험때마다 간식을 나눠준다. 그 외에, 학생지원처에서 1,000명 단위로 시험기간에 학문관에서 나눠주는 간식이 있고, 교양 시험기간 중 하루는 총장이 모든 열람실의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 사실 학생들이 나눠주는 거지 뭐.
샌드위치나 떡 등을 카드와 함께 나눠준다. 간식 나눠주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알바 공지사항이 뜬다. 간식 받고 싶은 사람은 날짜와 시간을 참고하자.
13.2 군가산점 폐지 주도
1994년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 2,000여 명이 청와대 총무처 등에 당시 7급,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있던 군복무 가산점 제도 폐지 청원을 내며 군가산점 폐지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8년 10월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이화여대생 졸업생 5명 및 연세대 남성 장애학생 1명#이 위헌 신청을 냈고 동년 12월에 위헌 판결을 얻어냈다. 군가산점 제도 참고.
13.3 ROTC 유치
최경희 전 총장의 유산
자꾸 유치 이유를 묻는데, 학생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여군도 ROTC를 창설하게 되자 모든 여자대학교에서 ROTC 인가 신청을 했다. 숙명여자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는 인가를 받아 ROTC를 창설했고, 여대가 아닌 남녀공학 대학에서도 여학생을 후보생으로 받았으나, 이화여대는 ROTC인가 유치전에 실패했다. 타 대학들에 비해 학번 간ㆍ사제 간 서열문화가 유연한 편인 교내 정서가 군대 문화에 물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ROTC에 대하여 교수진 및 높으신 분들이 처음부터 그다지 탐탁지 않아했다는 소문도 있다. 2010년 4년제 여대들이 모두 ROTC 유치 신청을 할 때 함께 신청했으나, 선정되기 위한 조건(기숙사 설립, 운동장 리모델링 등)을 충족시키지 않아 탈락, 2011년에는 신청하지 않았다. 애초에 학교가 ROTC를 유치할 생각이 없었던 듯.
그러나 2016년 2월 24일 ROTC 유치대학으로 최종 선정 되었다. 다만 학생들의 반발이 매우 심하다. 학교 측에서 총학, 학생들과의 의논 없이 멋대로 유치를 추진해 뉴스로 유치를 알게 된 재학생들도 많았다고. 최경희 총장 개인의 의지로 밀어붙였다는 얘기도 많다. 더구나 반전운동의 면모를 보였던 그동안의 행보에 정반대되는 터라, 학내에 군대문화가 진입한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학생 대다수는 매우 불만이라는 소문이 있다.
이대 방송국의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반대의 1.5배였다고 하나, 뉴스로 ROTC 유치대학으로 최종 선정된 걸 처음 안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부족한 기숙사 인원을 확충하기 위해 전임 김선욱 총장이 추진한 신축 기숙사를, 그대로 학군단에 갖다 바쳤다는 거. 당장 2017년 부터 후보생을 받게 될 경우 이화여대 학군단은 학군 57기부터 임관시키게 된다.
13.4 이화이언
이화여대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중고 교재 판매나 야잠 등 물품 공구, 취업 및 고시 정보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게시판 중 익명게시판인 비밀의 화원이 있고, 이 안에도 여러 게시판이 있는듯. 줄여서 '비원'으로 불리는데, 이화여대 학생이라는 인증절차를 통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단, 타 학부 출신이지만 이화여대 대학원생인 경우에는 비원에 접근할 수 없고, 편입생은 이용이 가능하다.
14 역대 총장
- 제1대 메리 스크랜튼: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로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조선으로 건너온 미국인 선교사들[16] 중 1명으로, 종교는 개신교 중 북감리교 계열이다. 조선 말기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은 것을 보고 여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 중구 정동에 학당을 설립했다. 단 1명의 여학생으로 학당을 시작,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운영하였다. 이화여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 학교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분의 이름을 딴 "스크랜튼 학부"라는 것도 있다. 한편 이화학당뿐 아니라 1902년에는 수원에 삼일소학당[17]이라는 여학교도 세웠다.
- 제4대 룰루 프라이: 이화학당에 대학과를 설치, 여성에게도 대학교육의 길을 열었다. 유관순 열사 재학 당시 교장이기도 하며,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러주었다.
- 제5대 자네트 월터: 체육 수업을 시작했다.[18] 당시 학생들이 입던 한복 치마에 어깨끈(어깨허리)을 달아, 가슴을 숨막히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활동하기 편리하도록 개량했다.
- 제6대 앨리스 아펜젤러: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유창했다.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고, 학교를 신촌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 자신의 제자를 정신대로 내몰았던 제7대 김활란(金活蘭)[19]: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등의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까이고 까이는 총장(...).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도 있지만 그녀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중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조선부인연구회, 방송선전협의회, 애국금차회에 참여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언론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을 통해 강연하며, 《동양지광》, 《조광》에 대한 기고로 일본 제국의 전쟁 지원을 선동하는 친일 및 전쟁지원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 제국의 한민족 말살정책인 신사참배 강요에 협조하고,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에도 앞장섰다는 것이 그녀의 과오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연세대학교의 윤치호 총장과 비슷한데 더 까이는 듯.[20] 여기에서 공적을 살펴보면, 이화여대를 엄청나게 크게 키우고 서울 신촌 캠퍼스를 확장하고 해방 이후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냈으니 총장 역할에 굉장히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상당히 좋았다고 하며[21] 여권향상 부분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한 뒤로 민중들의 여권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YWCA 활동을 열성적으로 추진하였다. 실로 여권운동 향상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허나 앞의 친일행적이 뒤의 업적을 다 덮어버리는 것이 현실. 최근에 이대생들을 중심으로 동상 철거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교회가 바로 금란교회(金蘭敎會)이다.
- 제8대 김옥길: 김동길 前 연세대 교수의 친누나. 최규하 대통령 시절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 제11대 장상: 왕년 철의 여인. '총장은 기독교인 비혼 여성이어야 한다'라는 룰을 깨트린 인물. 정치계로 나가 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운동권마저 (나쁜 뜻이라도) 철의 여인이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재오에게 발리며 빵상(…)이란 별명까지 붙는 등 눈물과 수모의 정치생명사를 쓰고 있다.
- 제12대 신인령: 이화여대의 그 유명한 금혼규정을 없앤 인물. 법대 출신이며, 로스쿨 유치에 힘 좀 썼다. 희귀한 여성 법학자였으며, 그와 별개로 학창 시절엔 '내가 서울시내 경찰서 중 안 들어간 곳이 없다' '내가 숨어지냈을 때' 등등의 자랑을 하곤 한다. 후자는 지명수배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파쇼적인 면을 보여주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망은 더욱 컸다.
- 제13대 이배용: 2010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인문대학 사학과 출신이다. 총장 임명 전에 역사스페셜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이분 이후로 총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기존 총장은 학생과 거리가 먼 사무적인 총장이었다면, 이 분은 학교 이미지를 대표하고 학생들과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총장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문자가 오기도 했다.("사랑하는 이화인 여러분♥개강을 축하합니다. 신종플루도 조심하길 바래요. 화이팅!" 같은. 하지만 보낸 사람은 총장비서실 소관이라는 소문이 있음.) 학생들 사이에서 배드래곤(Dragon)이라고 불리는 모양. 다만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2년이나 동결했는데 이 정도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거 아님?"이란 말을 하여 '우리나라 등록금 정도면 조낸 싼 거라능'이란 말을 한 이기수 고려대학교 총장과 함께 까이고 있다. 핑크색, 옥색 등 현란한 색깔의 정장을 입고 채플에 등장하는데,
옆에는 항상 총장님의 자그마한 토드백을 드는 비서(가방셔틀)와 함께 나타남그 때문에 '이핑총(핑크총장)'이라고도 불렸으나, 총장 취임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오히려 파란 옷을 많이 입고 학내 행사에 등장하여 '불총(블루총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퇴임 후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취임. 현재는 자주색 의상을 즐기시는 듯. 참고로 행정고시 강사 정원준에게 까인다. - 제14대 김선욱: 2014년 8월까지 총장직을 역임하였다. 법대 출신이며, 재학 중 학생회장을 지냈다.[22] 제26대 대한민국 법제처 처장(2005-2007)을 역임하였다. 전임 이배용 총장에게서 전체문자스킬을 배웠는지 가끔 학생 전체에게 문자를 날리곤 했다. 시험기간에 열람실에 예고없이 나타나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편지와 함께 가벼운 먹을거리를 돌리기도 했다.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때문에 엄총(엄마총장)으로 불렸을 정도. 전임 이배용 총장이 문화 쪽에 관심이 많았다면,[23] 김선욱 총장은 이화여대의 아웃풋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편이었다. 법대 교수 출신이었던 이력을 보아[24] 총장 직위에 있는 동안 학생들의 고시 및 각종 시험에 대한 지원이 크고 지속적이었다.
- 제15대 최경희: 현재의 이화여대 총장. 사범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했고, 사범대 학장을 지냈다. 2014년 총학생회 '시너지 이화'가 독선적인 프라임 사업 설립에 대해 반발하자 대동제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협박했고, 이에 대해 학생처에 대동제 예산의 확충을 요구하자, 총장이 직접 흰 봉투에 100만 원을 넣어 교직원으 손으로
남몰래총학생회장에게 전달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의 주인공. 총학생회가 이를 비판하며 대자보를 붙이자, "순수하지 않은 학생들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공개면담 약속한지 이틀만에 박살내셨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학생복지를 독단적으로 대폭 축소시킨 후 총학생회에서 채플 총장 연설 후에 시위를 벌이자 '쉿, 땡큐~' 라고 하며 유유히 자리를 뜨셨기 때문에 백총, 쉿총(최근에는 불통총장, 멍총)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이화여대 태풍의 눈.수많은 명언을 남기고 있다.학교의 주인은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삐삐 틀렸읍니다.이화여대의 수많은 재학생과 졸업생 및 교수들이 이렇게까지 사퇴론을 부르짖게 만든 총장은 없었다. 2016년 10월 정유라 부정입학관련 논란으로 인해 결국 여론에 견디지 못하고 2016년 10월 19일에 사의를 표명했다.
15 출신 인물
이화여자대학교/출신 인물 문서 참조.
16 사건사고
2016년 10월 정유라 각종 특혜논란이 불거지자 아주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한 이대생의 증언에 따르면 취업문제가 극심한데도 학내 분위기는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뺨치는 분위기라고... 교수들도 함께 시위에 참가하고있다고 한다.
- 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 문서 참조.
17 관련 문서
- ↑ women's가 아닌 womans를 쓴다. 이화여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여학생들을 모집할 때 힘들게 부모와 주변을 설득해 1명씩 1명씩 데려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초에 womans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 한명 한명을 전인적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뜻에서 그와 같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설립 당시에는 womans도 문법적으로 혼용되었다는데 확인바람그럴 듯한 설명이나, 외국 유학이나 취업 목적으로 영문 자기소개서를 쓸 때 womans라고 쓰면 문법 틀렸다는 비웃음과 함께 고치라고 하는 경우도 꽤 있다(…). 스스로가 여성 '교사'였던 설립자 스크랜튼 여사가 직접 지은 교명이라고 하니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고. 게다가 이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적어도 단수격 woman에 소유격인(')를 붙혀야 그나마 문법적으로 말이 된다. - ↑ 현재 중구 정동의 이화학당 터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35년 정동에서 현재의 신촌으로 이사왔다.
- ↑ 수정 전 초대 총장이 김활란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김활란은 7대 총장이었다. 참고. 그런데 이분의 아들인 윌리엄 스크랜튼은 무려 프리메이슨 한양 롯지의 창립 멤버였다고 한다.
개신교 학교의 흑역사. - ↑ 현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의 전신
- ↑ 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
- ↑ 2005년부터 의예과 신입생 모집 중단.
- ↑ 2009년부터 법과대학 신입생 모집 중단,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선발.
- ↑ 문제는 채플의 내용이 1주일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3개 이상을 듣는다면…
홀리! 홀리!그래서인지 고학년들 중 종종 친한 후배를 대상으로 땜빵 1번에 3~4만원의(!!!) 매우 높은 보수를 주는 채플 대타 알바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걸리면 엄청 강한 징계를 먹는다고 한다. - ↑ 2개면 20점, 3개면 30점
- ↑ 전체 로스쿨 TO를 봤을때는 작지 않을수도 있으나 모두 선망하는 인서울 TO에서는 꽤나 비중이 높다.
- ↑ 이를 사정 판결이라 하며 행정소송의 특유한 판결 형태다.
- ↑ 여기에는 여성해방 이야기가 아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FM인 자주관악·통일연세·민족고대가 함께 모여 "자주통일민족해방"으로 만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 ↑ 단 두 학교 모두 학부 과정은 아니고 대학원 과정. 물론 여성학과에서 개설하는 수업들을 학부생들이 자유롭게 들을 수는 있다.
- ↑ 위의 주석을 다시 읽어보자.(…) 첨언하자면 인터넷이 있기 전인 90년대 초반에 뉴스위크에서 '돈의 노예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라는 기사를 이화여대생 5명의 사진과 함께 보도한 사건이 있었다. 길가던 아무 여대생의 사진을 찍어 모자이크도 없이 저런 기사에 무단으로 포함시킨 것이었다. 얼굴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피해자들은 당연히 명예훼손과 초상권으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뉴스위크는 결국 9천만원을 배상하였다.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보도사진에 의한 초상권 침해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가 되었다.
- ↑ 실제로 여러군데 강의를 뛰는 강사분이 수업중에, ㅎ대,ㄱ대,ㅇ대,ㄷ아대등의 강사비를 말씀해주셨는데, 이대가 가장 많이 준다고 하셨다.
- ↑ 헨리 아펜젤러, 알렌, 언더우드, 클라크, 스크랜튼.
- ↑ 現 매향중학교와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전신. 매향중학교는 본래 오랫동안 여중이었으나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 ↑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대도 엄청났다고 한다.
- ↑ '활란'은 Helen이라는 영어 이름을 비슷한 음의 좋은 뜻을 가진 한자를 덧대어 한자어 이름처럼 삼은 것이다. '베델'이 '배설(裵設)'이 되고, '오언(Owen)'을 '오원(吳元)'으로 쓰는 것과 비슷. 영어 이름은 미국 유학 및 해방 후 각종 외교활동에 참여할 때 필요했기 때문에 편의상 지은 것이다.
- ↑ 여권운동가로서의 공적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제 말기 정신대 모집을 위한 강연에 참석했다는 이야기 등, 그녀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상반된 일까지 하면서 친일을 했다는 것이 일종의 비웃음을 닮은 질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시절 김활란 선배를 보고 진짜 대단하다고 평했다 한다.
- ↑ 이때 총장이 제8대 김옥길 총장이다. 자세한 에피소드는 김옥길 문서 참조.
- ↑ 이화 커리어 르네상스 인증, 이화 문화기획단, 이화 문화 예술기획아카데미 이런 거 다 이분 작품. 물론 이배용 총장이 직접 기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방향 제시는 했다고 보여진다.
- ↑ 법대 특성상 사시 합격자 수가 최대의 관심사이며 커리큘럼 및 학생지원도 그쪽이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