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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
이름 |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
분야 | 음악 |
입성날짜 | 1997년 2월 12일 |
위치 | 7021 Hollywood Blvd. |
이름 |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
본명 |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David Robert Jones) |
국적 | 영국 |
출생 | 1947년 1월 8일, 런던 브릭스턴 |
사망 | 2016년 1월 10일, 뉴욕 맨해튼 |
직업 | 가수, 프로듀서, 배우 |
학력 | 라벤스 우드 스쿨 졸업 |
데뷔 | 1966년 1집 "David Bowie" |
링크 | > > |
목차
1 개요
Starman / Space Oddity / Ziggy Stardust
글램 록의 대부이자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진, 팝과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천재 아티스트
록씬의 카멜레온, 영원한 음악의 아이콘
영국의 가수이자 배우. 본명은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 미국 록밴드 몽키스(The Monkees)의 데이비 존스와 헷갈릴까봐 미국 개척자인 제임스 보위의 성을 따서 '보위'란 예명을 썼다고 한다.[1] 본명으로만 보면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긴 하다. 덧붙여 Bowie의 실제 발음은 '보:이(/ˈboʊ.i/)'에 가깝다.
록 음악의 전설이자 록 음악계의 카멜레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수많은 스타일과 실험에 도전한 사람으로 유명하며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 이다. 포크 록, 글램 록, 소울, 미니멀리즘, 디스코, 테크노, 인더스트리얼 등의 장르를 모두 섭렵하였다.
2 약력
2.1 어린 시절
런던 브릭스턴 거리에서 헤이우드 스텐턴 존스와 마거릿 메리 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물려받은 유산이 많았으나 사업하다 다 까먹고 말단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웨이트리스 출신이었다. 태어났을 당시의 형제자매라고는 이복 누나들 뿐이었지만 나중에 이복 형과 함께 살게 된다. 보위의 이복 형은 조현병 환자였는데, 이는 후에 보위가 시도하는 다양한 페르소나의 모티브가 된다.
유년기 시절부터 독서와 음악을 통해 학구열을 불태웠으며 이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열다섯 살 때는 조지 언더우드라는 친구와 여자 문제로 싸우게 되었는데, 이 때 조지의 반지 낀 주먹이 보위의 왼쪽 눈을 강타하면서 보위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결국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홍채를 가리게 되었고, 이때문에 보위가 오드아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언더우드와는 쿨하게 화해하고 이후에도 친하게 지낸다고. 대인배#
2.2 데뷔 및 초창기
학교에 불성실한 태도, 눈 부상으로 인한 장기 결석 등이 겹치면서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지만 이미 보위는 티렉스의 리더였던 마크 볼란 등과 친분을 쌓으면서 음악계를 향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싱글을 발매하면서 음악계에 입문한 것은 1964년이었지만, 그가 데뷔 앨범을 발매하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걸렸다.
1966년 4월 데이빗 존스는 이후 '데이빗 보위'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2] 이듬해 6월에는 데뷔 앨범 'David Bowie'를 발매하였다. 하지만 평단의 평이나 개인의 평이나 모두 썩 좋은 앨범은 아니었고, 그 다음에 나온 'David Bowie'부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 앨범은 67년의 앨범명과 동일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Space Oddity'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보위가 데뷔 앨범을 영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이 제목의 앨범은 69년의 앨범을 말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Space Oddity'가 싱글로 발매되었을 때는 마침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시기였고, UK 차트 5위 및 빌보드 15위까지 올라간다.
저 원피스에서 마크 볼란 냄새가 난다.[3]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을 거쳐 1973년까지 보위의 백 밴드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기타리스트 믹 론슨과 함께 1970년에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발매하는데, 이는 이전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하드록을 시도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The Man Who Sold The World하면 너바나의 커버곡을 더 먼저 생각한다. 지못미.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이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을 MTV Unplugged에서 커버하였다.
이후 보위는 머큐리에서 나와, 믹 론슨과 함께 밴드 Arnold Corns를 결성해 몇 개의 싱글을 발매하였고,[4] 이후 다시 솔로로 돌아와 RCA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1971년 'Hunky Dory'를 발매한다. 이전까지의 보위는 자크 브렐과 같은 유럽 쪽 대중 음악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특히 루 리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상 벨벳을 재발굴한 첫 인물이며, 심지어 뉴욕에서 OTL중이던 루 리드를 영국으로 데려와 2집 제작을 지원해(믹 론슨과 함께 프로듀싱을 해 주었고, 일부 세션으로도 참여했다.) 그가 솔로 뮤지션으로서 경력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쯤 되면 은인이다. [5] 그 뿐만 아니라 앤디 워홀, 밥 딜런 등에도 영향을 받아 앨범에 이들의 이름을 넣은 곡들을 수록했다. 하지만 이 앨범도 발매 당시에는 큰 반향을 주지 못하고, 사실상 망했다. [6] 그리고 보위는 다시 한번 음악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2.3 Ziggy Stardust
보위는 당대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선사하고자 했는데, 그 일환으로 그는 붉은 머리, 파격적인 의상을 통해 영국 음악계에 도전장을 내민다. 기본적으로는 티랙스에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미국 로커 이기 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 결과 나온 앨범이 바로 1972년에 나온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성쇠, 줄여서 Ziggy Stardust). Ziggy Stardust 앨범은 티렉스의 Electric Warrior와 함께 글램 록을 대표하는 음반으로 남았는데 이듬해까지 보위는 자신을 'Ziggy Stardust'라고 부르면서 활동한다. 이듬해 발매한 'Aladdin Sane'에서는 얼굴에 번개 무늬를 그린 앨범 커버를 발매했는데, 한동안 보위팬들은 공연장에 올 때 이 번개 무늬를 그려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휴식 및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보위는 1973년 7월 3일 해머스미스 공연에서 지기 스타더스트의 은퇴 - 사실상의 사망선고 - 를 발표하고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런던의 두 건달들은 공연 직후 악기들을 털어가게 되는데. 그리고 그는 공식적으로 지기 스타더스트 컨셉을 다시 들고 오지 않았다.
2.4 위기, 그리고 베를린 3부작
지기 스타더스트에서 벗어난 당시 글램 록은 하락세였고 글램 록의 양대 산맥 중 한 축이었던 티렉스는 이미 한물 간 밴드로 인식되고 있었다. 보위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장르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Pin-Ups'라는 커버 앨범을 낸 후에는 그의 세션 밴드였던 Spiders from Mars와도 결별한다. 다음 앨범 'Diamond Dogs'에서는 그전까지의 글램 록 노선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페르소나 Halloween Jack을 선보였으나, 이 앨범에 수반하는 투어 와중에 보위는 이미 소울 장르에 심취해 있었으며 소울을 자신의 음악에 흡수시키고자 시도한다. 'Diamond Dogs' 투어 도중에 녹음하여 이듬해 발표한 'Young Americans'은 완전한 소울 앨범이었으며, 앨범 제목에서 노린 것과 같이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76년 보위는 그가 출연했던 영화 The Man Who Fell to Earth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페르소나 'Thin White Duke' 컨셉을 구상하였으며, 이 컨셉을 바탕으로 소울과 록의 융합을 이룬 걸작 앨범 'Station to Station'을 발매하였다. 지기 스타더스트를 넘어 앞으로 나올 후속작으로의 전환을 이끌어 낸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큰 흥행을 일으키면서 빌보드 3위, UK 5위의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이 시기는 또한 보위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적 시기였는데, 그의 코카인 중독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 1975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히틀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게다가 Station to Station 투어 도중 스톡홀름에서는 "영국은 파시즘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잇달아 문제를 터뜨리게 된다. 후에 그는 이에 대해 사과하면서 "약물로 인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라고 후회한다. 'Station to Station' 제작 과정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인터뷰 중 말한 적이 있고, 그 당시 살던 로스앤젤레스는 '그 엿같은 동네는 지구 표면에서 지워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야말로 완벽한 흑역사. 그리고 그는 베를린으로 떠나 요양 겸 후속 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베를린에서 그는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작업하면서 독일(정확히 말하면 서독)의 크라프트베르크, 노이! 등의 크라우트락에 영향을 받은 앨범 Low를 77년에 발매한다. 이전의 앨범들과는 달리 상당히 음악이 성숙해졌다. 이는 그가 서독에서 코카인 중독 치료에서 받은 고통이 큰 영향을 미쳤다. LP의 뒷면 전체를 채우고 있는 Warszawa - Art Decade - Weeping Wall - Subterraneans 네 곡의 연주곡은 Low 앨범의 백미. 그전의 보위 앨범들은 그가 선보였던 페르소나의 이펙트가 강했던 반면 베를린 3부작은 그야말로 보위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마음껏 선보였던 작품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10월에는 "Heroes" 역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앨범 제목이자 타이틀 트랙인 Heroes는 노이!의 곡 Hero에서 따온 것이며, V-2 Schneider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당시 멤버였던 플로리안 슈나이더에게 헌정하는 곡이었다. Low 앨범과 마찬가지로 뒷면의 곡들은 대체로 어두운 연주곡이지만, 앞면의 곡들은 Low의 곡들보다 좀 더 록에 가깝고 대중 친화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다.
보위는 1979년 Lodger를 발매하면서 베를린 3부작(Low, Heroes와 함께)의 마침표를 찍는다. Lodger는 스위스와 미국에서 녹음되었다. 베를린 3부작으로 불리우는건 앨범이 독일 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베를린 3부작에서는 독일의 크라우트록,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아트 록을 적절히 조합하면서 그의 음악적 능력을 모두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상업적 성공의 전성기는 80년대에 찾아온다.
2.5 미국으로의 진출
베를린 3부작에서 보여준 음악적 시도를 잠시 뒤로 하고 보위는 다시 새로운 트렌드에 융화되고자 노력했다. 1980년 발매한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에 수록된 Ashes to Ashes는 UK 1위를 차지하면서 그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음악이 되었고, 1981년에는 퀸과 함께 'Under Pressure'를 녹음하면서 세 번째로 UK 차트 1위에 오르게 된다. 영화 The Hunger를 촬영한 뒤 그는 1983년 EMI와 계약하였고, 당시 세계를 휩쓸던 디스코 열광의 추세를 받아들여 Let's Dance를 발매한다. 보위 본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타이틀 곡 'Let's Dance'는 빌보드 싱글 1위의 영예를 차지하고, 후속 싱글 두 장 모두 빌보드 차트 20위 안에 들었다. 이 앨범을 통해 보위는 그야말로 최고의 상업적 업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보위의 최전성기였다.
2.6 하락세
Let's Dance의 성공을 바탕으로 뒤이어 발매한 Tonight과 Never Let Me Down에서는 Let's Dance에서 시도하였던 팝 메인스트림과 록의 융합을 계속 선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온 앨범들이 너무 어정쩡해서 결국은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보위 역시 이 앨범들의 실패를 인정한 바 있다. 이승환이 보위의 명성을 처음 접하고 궁금증에 산 앨범이 Never Let Me Down 앨범이었다 한다. 그리고 이뭥미? 라는 반응을 보이고 보위에 대한 관심을 한동안 안 두었다고. 나중에 다른 곡들을 접한 뒤에야 비로소 뒤늦게 이런 음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Never Let Me Down이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모두 실패작이었기에 보위는 지금까지의 팝 친화적인 노선을 버리고 이전에 시도했던 하드 록으로 다시 방향을 전환하는데, 놀랍게도 이 와중에 자신의 이름마저 버리고 Tin Machine이란 이름의 그룹을 만들어 1989년 데뷔 앨범 Tin Machine을 발매한다. 그러나 큰 특색이 없었던 음악은 밋밋했고 판매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로 Tin Machine II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한 장 더 발매하지만 이는 더 큰 실패로 돌아왔고 보위는 결국 그룹을 해산한다.
2.7 90년대 이후
1992년에는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 참여하여 All the Young Dudes, Heroes, Under Pressure를 불렀다. 이후 솔로 복귀작으로 Black Tie White Noise를 발매했지만 록과 소울과 일렉트로니카가 혼재된 이 음반을 평론가들은 미심쩍어했고, 보위의 이름을 보고 구입한 대중들도 혼란스러워했다. 그 다음으로 OST로 발매된 The Buddha of Suburbia를 내고, 브라이언 이노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도입한 Outside를 발매하였다. 이후로도 그는 계속하여 최신의 조류에 적응하려 시도하며 드럼 앤 베이스를 도입한 Earthling을 발매하였으나 이러한 시도들은 보위가 이제 시대의 선도자가 아니라 후배들의 뒤나 쫒는 신세가 되었다며 좋지 못한 평을 받았다. 이후 발매하는 'hours...', Heathen, Reality의 앨범들은 록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며 보위가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함을 알렸고, 앨범 발매에 이은 전세계 투어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8 기나긴 침묵
그러나 Reality Tour에서의 여러 사건사고가 터졌다. 공연 중 난입한 자가 보위의 눈에 사탕 막대기를 찌른(!) 사건까지 있었다. 다행히도 눈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또 심장마비 증상으로 인한 수술의 여파로 그의 음악 생활에 커다란 침묵의 시기가 온다. 2005년 이후로 그는 어떠한 신곡도 발매하지 않았고, 가끔 게스트로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공연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몇 년 정도의 공백기라고 여기던 팬들도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조바심과 안타까움에 사로잡혔다. 보위가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새로운 정규 음반 발매를 기준으로) 음악적인 활동을 5년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2003년 이후 아무런 신보가 없었던 것은 정말로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의 침묵이었다. 글램 시절의 음반들이 발매 35주년, 40주년을 맞이했음에도 'Ziggy...'의 40주년 기념반을 발매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팬들 사이에서조차 '이제 보위도 사실상의 은퇴를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분위기가 있었을 정도.
2.9 그리고... 10년 만의 화려한 귀환
그런데... 보위의 66세 생일이었던 2013년 1월 8일, 정말로 뜬금없이 새로운 싱글 Where Are We Now? 가 공개되었다! 게다가 이 싱글과 함께, 10년만의 새 앨범 The Next Day가 3월에 발매 예정이라는 뉴스까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해졌다! 사실상 그 전에는 그가 새로운 음반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조차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뜬금없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보위는 이 음반 작업을 위해 평소 자신과 음악 작업을 오랫동안 해 왔던 사람들에게만 몰래 연락을 하여 기밀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프로듀서로는 'Space Oddity' 시절부터 그와 함께 한 토니 비스콘티가, 그리고 밴드의 멤버들은 그와 오랜 시간 투어와 음반 작업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참여했다. 단 한 번 이 소식이 새어나간 적이 있었는데, 보위가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에게 작업 요청을 했다가(예전에도 로버트 프립은 보위의 앨범에 공동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거절당한 뒤, 프립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야 나 보위한테 음반 작업하자는 메시지 받았음!"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그러나 프립의 팬들은 그게 뻥인줄 알았다고 한다.(...)
오랜 침묵을 지키던 거장의 귀환 소식에 그의 싱글 Where Are We Now? 는 영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곧바로 점령하였다. 앨범은 2월 말에 아이튠즈로 전곡이 공개되었으며, 한국의 정식 발매는 3월 13일.
앨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상당한 호평이었다. 간만에 데이빗 보위의 명반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평가 중에서는 심지어, 1980년 이후 최고의 보위 앨범이라는 말까지도 있을 정도였다. 보위의 복귀에 대해서 '락 역사상 가장 화려한 귀환'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는데, 단지 광고를 위한 과도한 호들갑은 아니었다.
The Next Day 앨범은 정식발매 후 곧장 UK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2013년 첫 주에만 4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해 가장 빠르게 팔린 앨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앨범 차트 1위를 찍을 만큼 상당히 호평.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오오 노익장 오오 미국은 2위를 했는데, 1위를 한 건 본 조비의 신보였다. 앨범차트 1위 다툼을 보위와 본 조비가 한다는 것에 대해 "지금이 1980년대냐?"라는 반응이 있기도.(...)
그러나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보위는 이 음반의 곡을 중심으로 하는 투어나 공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은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지만, 정작 보위의 공식적 언급은 없었고, 단발성으로나마라도 공연을 가지지도 않았다.
Where are we now? 의 뮤직비디오에 이어서 공개된 영상은 The Stars(Are Out Tonight)과 The Next Day의 뮤직비디오인데, 이 두 뮤직비디오가 무척 파격적이다. Where are we now? 가 상당히 정적인 뮤비였던 데 반해, 뒤의 두 뮤직비디오는 상당히 격렬한 영상과 똘끼충만한 내용이다. 뮤비의 캐스팅도 무척 화려한데, The Stars(Are Out Tonight)에서는 틸다 스윈턴이 보위의 부인 역할로 출연해 평범한 아줌마와 광기에 가득한 여인의 두 모습을 너무나 훌륭히 연기했다. 또한 The Next Day에서는 게리 올드먼과 마리옹 코티야르가 출연하는데, 상당히 반기독교적인 뉘앙스의 뮤비이다! 비밀 클럽 느낌의 장소에서 원펀치 날리고 입장하신성직자 복색의 올드먼이 성녀의 컨셉을 한 탕녀 코티야르를 유혹해대는 모습은... 고든 경감님이 탈리아 알 굴을 꼬시는 뮤비 여기서 보위는 클럽의 한켠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 하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올드먼과 코티야르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승천한다. ...어? 혹자는 보위가 10년간 잠적하고 간신히 돌아왔는데, 또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그리고 나중에 결국...
Valentine`s Day의 뮤직비디오가 뒤이어 공개되었는데, 구성은 단순한 편이지만, 중간 중간 보여주는 보위의 동작이나 가사의 내용에서 NRA와 개인의 총기 소지에 대한 것을 비판하는 느낌이 있었다. 기타를 정면에 대고 겨누는 자세라거나... 특히 한 손에 기타를 들고 하늘로 뻗은 자세는 찰턴 헤스턴이 NRA 연설에서 총을 든 모습을 찍은 사진을 [1] 의도적으로 따라했다는 지적이 있다. 가사에서도 제목이 그 밸런타인 데이가 아니라, '밸런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날이라는 뜻으로, 가사의 내용에서 밸런타인이 총기 난사를 저지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부 팬들은 이를 2008년 밸런타인 데이에 벌어진 노던일리노이 대학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곡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그의 25번째 스튜디오 LP, Blackstar흑성가 그의 69번째 생일인 2016년 1월 8일에 발매된다는 공식 발표가 전해졌다
11월 19일, 신곡 Blackstar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12월 17일, 신곡 Lazarus가 공개되었다.
데이빗 보위는 이번 앨범에서 재즈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했는데, 대중적으로는 아무래도 좀 난해한 사운드의 신곡이어서였는지 혹은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공개된 곡들의 당시 반응은 그냥저냥한 정도였다. 데이빗 보위가 노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음악적으로 계속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으로 주목받았지만, The Next Day 앨범 때의 폭발적인 반응은 없었다. 적어도 2016년 1윌 10일 이전까지는.
2.10 지기 스타더스트, 우주로 돌아가다
Look up here, I'm in heaven.- 유작 Blackstar의 'Lazarus'의 첫 가사
2016년 1월 8일, 25번째 스튜디오 LP, Blackstar가 발매된 지 이틀 후인 2016년 1월 10일, 데이빗 보위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었다. 향년 69세.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던 중에 일어난 갑작스런 부고에 팬들의 충격이 상당했다. 가족들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고. 가장 빠르게 반응한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카녜 웨스트를 시작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셀럽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페이스북에 의하면 18개월 동안 암투병을 해왔다고 한다. 해당포스트 보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모양인지, 40년간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브라이언 이노와의 마지막 이메일에 작별인사를 담아 보냈다고 한다.[7] 브라이언 이노는 그 부분이 작별이라는 것을 보위의 사망 이후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해당기사
또한 보위는 사망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앨범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있으며, CNN과 빌보드는 유작 앨범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앨범인 Blackstar의 모든 곡들이 마치 그가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는 확신생각이 들 정도. 특히 타이틀곡인 Blackstar와 마지막 유작 뮤직비디오가 된 Lazarus는 보위의 사망소식을 알고 나서 가사와 영상을 다시 곱씹어보면 소름끼치는 대목들로 가득하다.[8] 록 음악계에서 유작이 된 앨범 중, 뮤지션 본인의 죽음 자체가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 녹아서 만들어진 음반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9] Blackstar 앨범은 무척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사망 때문인지는 몰라도 Blackstar 앨범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였고, 빌보드에서도 1위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데이빗 보위는 사망 직전에 'Blackstar'를 이을 앨범을 제작하려고 했다고 한다. 죽음까지 몇 달 더 남았다는 생각에 그런 계획을 했다고. 기사참조
유작이 출시된지 2일 뒤에 사망한 것을 볼 때, 정말 음악으로 맺은 최후다. 혹자는 음악으로 탄생해서 음악으로 떠나간 데이빗 보위를 참된 음악가라고 평가한다.
Starman Forever
그의 음악적 성과를 기리는 메모리얼 콘서트가 2016년 5월 31일 케네기 홀에서, 흑인 밴드의 본좌인 더 루츠, 신디 로퍼, 더 마운틴 고츠, 페리 페럴, 밥 딜런의 아들인 제이콥 딜런 등이 출연한 가운데 열렸다. 또한 BBC에서는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데이빗 보위를 추모하는 공연을 갖기도 했다.
마돈나, 엘튼 존, 게리 올드만 등의 뮤지션 혹은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기리는 트리뷰트 무대를 자신들의 공연에서 가지기도 했다.
2016년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레이디가가가 보위 트리뷰트 무대를 선보여 보위의 히트곡 여러개를 불렀으며, 2016년 BRIT 어워드에서도 로드(가수)가 보위 트리뷰트 무대로 life on mars를 불렀다. 대체적으로 로드 쪽 무대가 더 낫다는 평. 레이디 가가는 보위의 화려한 페르소나를 보여준 무대였다면, 로드의 무대는 데이빗 보위의 음악인으로서의 위상을 기린 무대였다.
3 디스코그래피
David Bowie Discography | |||||
1967 | 1969 | 1970 | 1971 | 1972 | |
David Bowie | Space Oddity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Hunky Dory |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 |
1973 | 1973 | 1974 | 1975 | 1976 | |
Aladdin Sane | Pin Ups | Diamond Dogs | Young Americans | Station to Station | |
1977 | 1977 | 1979 | 1980 | 1983 | |
Low | "Heroes" | Lodger |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 Let's Dance | |
1984 | 1987 | 1992 | 1993 | 1995 | |
Tonight | Never Let Me Down | Black Tie White Noise | The Buddha of Suburbia | Outside | |
1997 | 1999 | 2002 | 2003 | 2013 | |
Earthling | 'Hours...' | Heathen | Reality | The Next Day | |
2016 | |||||
Blackstar |
4 음악 스타일
보위의 음악은 록을 기반으로 했으며, 여기에 댄스, 디스코, 일렉트로니카 등의 다양한 장르를 자신의 것으로 융화시켰다. 여기에 그는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하면서 Ziggy Stardust, Thin White Duke와 같은 페르소나를 도입하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굳히는데 성공했다. 페르소나에 있어서는 마돈나의 선조이며, 마이클 잭슨에 앞서서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했던 인물.
데뷔 초기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기반으로한 포크 록 음악의 영향(60년대 말 영국에서는 솔로 가수로서는 밥 딜런같은 포크 록 가수 형태를 취하기가 쉬웠음. 티 렉스의 마크 볼란 역시 마찬가지)이 짙었지만 70년대로 들어서면서 화장을 짙게 한 지기스타더스트라는 가공의 캐릭터를 만들어 티랙스에 이은 글램 록의 주도적인 인물이 된다. 이 시기에는 디트로이트의 펑크 로커 이기팝과 미국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팝아트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살인적인 인기와는 달리 미국 시장 진출에는 실패한다.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짙은 화장을 하지 않고 블루 아이드 소울에 도전했고 70년대 말에는 실험적인 음악에 도전해 브라이언 이노(록시 뮤직이라는 글램록 밴드에 있었으나 후에 독립하여 엠비언트를 창시한 뮤지션, 유투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짐)와 음악을 같이 한다. 평론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70년대가 사실 상 보위의 대중적인 전성기.
80년대는 뉴웨이브가 큰 인기를 끌면서 당시 음악을 반영한 음악을 했지만 평가면에서는 저평가되는 시기, 반대로 렛츠댄스나 모던 러브같은 싱글이 미국에서 히트한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활동이 부진했으나 당시 인기를 끌던 전자음악을 도전한다.
데뷔 후 80년대 디스코 시절 이전까지의 앨범은 거의 전부 명반으로 인정받지만, 특히 글램 시절의 절정기 (Hunky Dory,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Aladdin Sane)와 마약 중독의 절정이었던 시기의 음반(Station to Station), 베를린 시절 앨범 중 초반의 두 장 (Low, Heroes)들은 역대급 명반으로 추앙받고 있다. Scary Monsters 음반까지는 음악적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으니 언급된 음반 이외에도 이 사이의 음반들은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뛰어난 앨범 수만큼이나 명곡도 수두룩하다.
- Space Oddity[10]- 첫 히트곡이자 어쩌면 보위 의 시작과 끝을 말해주는 듯한 곡 이 곡을 캐나다인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하기 전에 우주에서 직접 부르고 찍은 영상(!)도
당연하다는 듯이있다. 링크 영화 그래비티 이후, 꼭 보라고 추천받는 영상이기도 하다.[11] 2016년 5월 2일에 공개된 콜오브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의 트레일러 영상에 커버 되어 삽입됐다. 그래서 최근 원곡의 뮤비 조회수도 덩달아 올라가는 중이라카더라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Nirvana가 언플러그드 라이브에서 커버한 버전이 더 유명(...). 이 곡을 Nirvana의 곡으로 아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 도플갱어에 대한 주 내용 때문에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 오프닝 노래[12]로 나옴.
- Changes - 영화 '슈렉 2'에서 커버되어서 나온다.
- Life on Mars - 동명의 영국 드라마로 유명하다. 그 영드에서 1화에 이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라이언 머피의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서도 등장했다.
뭐야 이거 무서워자세한 것은 라이프 온 마스 항목 참조. 로드가 추모 공연에서 부른 곡이기도 하며,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꼽히는 곡이기도 하다. - Starman - 한국에서 자우림이, 일본에서 호테이 토모야스가 커버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일부분이 공연 중에 음악으로 나오기도 했다. 영화 마션에서는 주인공과 나사와 중국이 힘을 합쳐서 화성 탈출 준비를 하는 장면을 쭉 훑으며 이 곡을 틀어준다.
- Suffragette City
- Ziggy Stardust - 동명의 앨범 제목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페르소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란 컨셉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에 대해 "보위는 화성 갔어!
곧 오실 거라구!"라고 말하는 팬들도 제법 있다.어쩌면 화성에서 지구로 록 전파하러 오시고 지구에서 음악만들고 다시 화성으로 가서 새로운 음악을 전파하려는 것인지도 - Aladdin Sane
- Rebel Rebel - 보위의 곡 중 가장 많이 커버된 곡으로, 보위 자신도 2003년에 커버 버전을 녹음했다. 영화 '미녀 삼총사 2'에서 그 리테이크곡이 나온다.
- Young Americans - 동명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이자 이 앨범에서 첫 번째로 싱글컷팅된 곡이다. 비틀즈의 명곡 A Day in the Life의 일부분이 삽입되어 오마주되기도 했다. [13]
- Fame - 존 레넌과 공동작업한 곡.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곡이다.
- Golden Years - 영화 '기사 윌리엄'에서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장면에 뜬금없이(!) 나오는 음악이다.
하긴 그 영화에서는 중세 사람들이 We Will Rock You를 부르고 있으니... - Sound and Vision - 베를린 3부작 중 첫번째 앨범 Low의 수록곡. 여러 광고에서 사용되었다. 라이브 버전
- "Heroes" -
대망한미국 영화 '고질라'의 주제가로 커버된(by 월 플라워스), 무척 유명한 곡이다. 영국에서는 응원가로도 쓰인다고. 엠마 왓슨이 출연한 영화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에서 터널송이자 메인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데이빗 보위 사후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이라고 한다. - Ashes to Ashes - 역시 동명의 영드가 있다. 라이프 온 마스의 후속편. 이 곡의 뮤직비디오와 이 곡이 수록된 'Scary Monsters' 앨범의 표지에 나오는 피에로가 그 드라마 속에서 나온다.
- Fashion -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과 패션 모델들을 소개하면서 같이 흘러나왔다. 원래는 데이빗 보위가 직접 공연을 하길 주최측에서 바랐지만, 데이빗 보위가 거절했다고.
- Under Pressure - 퀸과 같이 만들어서 불렀다. 서로의 라이브 레파토리로 계속 사랑받는 곡이다.
- Let`s Dance - 보위의 유일한 영, 미 동시 차트 1위곡.
- China Girl - 보위가 친구 이기 팝에게 준 곡이고, 나중에 자기가 다시 불렀다.근데 이 곡의 뮤비가 인종차별 논란을 받고 있으나 뮤비를 보면 또 그렇지 않다.무슨 말이냐면 직접 뮤비 보자.그럼 안다.
- This is Not America -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와 같이 작업한 곡으로, 영화 Falcon and the Snowman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되었다.
- Absolute Beginners
- Modern Love - 1983년 발매된 곡으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 '나쁜 피'에 삽입된 것으로 유명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도 오마주 되었다.
등등. 90년대 이후의 곡을 제외한 것이 이 정도이다.
90년대 이후에도 그의 곡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용되었다. 최신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그의 곡이 옛것 최근것을 불문하고 계속 사용되거나 리메이크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5 영향력
음악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특히 글램 록쪽엔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였고 지금까지도 그 장르의 대표 아티스트격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펑크 록쪽에도 그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80-90년대 브릿팝까지 영향을 주었다. 스웨이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밴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때문에 한때는 데이비드 보위를 모방한다는 비난과 야유를 받아 공연 중에 무수한 쓰레기 세례를 당했던 안습한 일도 있다(...)지못미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과도 접점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플라시보가 있다. 보위가 플라시보 곡 작업에 참여했고, 같이 공연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때 보위의 후계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보위와의 친분으로 인해서 글램 록으로 지긋지긋하게 오인을 받는 게 신물이 난 브라이언 몰코는 나중에 가서는 인터뷰에서 '보위 이야기는 그만! 그만하라고!'라며 기자의 말을 먼저 잘라버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듯.
6 음악계의 친분
보위는 음악계의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여러 뮤지션들과 친분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에게 영향을 줬거나 호감을 느낀 뮤지션들에겐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친분을 맺는 스타일. 게다가 대중예술쪽의 사교계와 각종 파티에서 가장 환영받는 멋진 왕자 같은 존재였으니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절친으로는 위에서 언급된 루 리드,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그리고 이기 팝 등이 있다.다들 소문난 또라이들이다. 존 레넌과도 인연이 있어서 공동작업으로 명곡 'Fame'을 남겼으며,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도 자기 앨범에서 커버한 적이 있다. 퀸과도 공동작업으로 'Under Pressure'라는 명곡을 남겼고,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한 뒤에 열린 추모공연에도 참석했다. 자신의 곡 'Heroes'를 부른 뒤,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전에 부른 'Under Pressure'에서 빠심이 대폭발한 애니 레녹스가 보위를 꽉 껴안고 부비부비거리는 게 더 인상적인지라.#)
루 리드와는 주먹다짐 에피소드가 있다. 70년대 내내 보위와 리드는 절친이었지만 79년에 보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싸운 적이 있는 것. 정확히 말하면 리드가 보위를 일방적으로 팼다. 레스토랑에서 보위를 비롯한 지인들과 식사 중에 루 리드가 보위에게 자신의 다음 앨범을 프로듀싱해줄 것을 부탁하자 보위는 마약중독 등 나쁜 습관 먼저 끊고 좋은 컨디션으로 음악에 임해야만 도와주겠다고 시큰둥하게 말했다.[14] 이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다혈질인 리드가 보위의 얼굴을 기습적으로 몇 대 가격했고 갑자기 맞은 보위가 반격하려 했지만 지인들이 말리는 바람에 더 이상의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고 헤어졌다. 이 사건은 목격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소문이 퍼졌을 뿐 아니라 현장에 같이 있었던 멜로디메이커 지의 기자에 의해 기사화까지 되어 유명해진다. 이 뒤로 둘은 수년간 서로 연락을 안 하고 사실상 절교한 상태였으나, 나중에 화해하게 된다. 루 리드는 데이빗 보위의 50세 생일 기념 공연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의 경우, Outside 투어 때 오프닝으로 동반하고 자기 곡 I'm Afraid of American'의 리믹스도 맡겼다. 레즈너는 심지어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다! 플라시보와도 친하다. 보위의 50세 기념 공연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서로 게스트 출연해 주는 관계이며 보위는 Without You I'm Nothing을 보컬 브라이언 몰코와 함께 녹음하기도 했다. 아케이드 파이어 1집 CD를 박스채로 사서 지인들에게 돌렸다는 전설이 있으며(후일 같이 공연도 했다. 당연 멤버들과 관객들은 떡실신.),TV 온 더 라디오의 곡 Providence에 배킹 보컬로 참여했다.
불세출의 블루스락 기타리스트 故스티비 레이 본의 메이져 데뷔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1982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한 스티비 레이 본은 자신의 실력을 맘껏 뽐냈으나 유럽인들에게는 땀내나는 미국남부 스타일의 음악이 너무 어색한 탓인지 야유를 많이 받고 스티비 레이 본은 큰 실의에 빠져있는도중 그 공연을 유심히 지켜보던 보위가 자신의 앨범 Let's Dance 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전격 고용하는 등 지원을 해준다. Let's Dance의 성공으로 음악계에서 스티비 레이 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영미 록 계의 마당발.
7 기타
- 그는 데뷔 이전 BBC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음악에 관련한 것은 아니었다. 만 17세의 그는 '장발남성학대방지협회(The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의 창립자로서 BBC 투나잇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을 가졌다. 평생에 걸쳐 보여준 그의 반항아적 기질을 생각하자면, 참 보위스러운 첫 등장이 아니었나싶다. [2]
- 배우로도 유명하다. 가장 최근 출연작 중 유명한 역은 프레스티지의 니콜라 테슬라. 카트린 드뇌브, 수전 서랜던과 함께 나온 헝거에서는 흡혈귀역을 맡았다. 그 외에도 여러 영화에 얼굴 들이미는 경우가 많으니 한 번 눈여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1986년도 짐 헨슨 감독의 판타지 가족 로맨스물(?) "라비린스 Labyrinth"(짐 헨슨이 감독과 이야기. 각본은 테리 존스[15])에서는 당대의 완전무결 미소녀 제니퍼 코넬리와 함께 출연했다. 데이빗 보위는 이 영화에서 어둠의 미궁에 사는 마왕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고전영화 커버에 환장한 할리우드가 이 영화만큼은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이유가 마왕 역할을 맡을 남자배우가 마땅치 않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처럼 돌았다. 보위의 노래 "As the World Falls Down"과 함께 나오는 무도회 장면에서 코넬리와 보위가 서로 춤을 추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마왕이 코넬리가 맡은 '사라'라는 소녀에게 구애했다가 매정하게 거절당해 의기소침하게 물러서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열혈 해외빠순 네트워크의 능력자들 덕분에 코넬리가 이후에 출연한 다른 영화들과 보위의 각종 영상들을 활용한 편집본으로 패러디영상이 만들어져 팬클럽들의 오프모임을 중심으로 은밀히 나돌았다고 한다.
사춘기를 지나 성장한 사라가 마왕의 매력에 뒤늦게 눈을 뜨고 마왕과 간신히 조우하여 알콩달콩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 외 다수
- 영화 배우로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 The Man Who Fell to Earth) 라는 1976년 SF영화에서 주인공인 외계인 역이 처음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는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나 상당한 컬트적 인기와 영향력을 누리는 수작이다. 보위의 연기도 인상적이라 단지 가수로서의 인기나 유명세만으로 배우를 한게 아닌 걸 보여준다.
-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인공인 뉴질랜드인 영국군 소좌 잭 셀리어스로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대위 요노이와 애증의 관계에 빠지는 역할이다.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인데, 요노이 장교 역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16]와 애증을 넘어선 뭔가 때문에 보통 두 캐릭터 간의 관계를 동성애로 해석하는 평이 많다.[17]
- 두 번 결혼했으며, 첫 번째 부인 앤절라와는 1970년 결혼해서 80년에 이혼했으며 슬하에 1남을 두었다. 그 아들이 영화 더 문,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감독한 던칸 존스이다. 두 번째 부인인 소말리아 출신 모델 이만과는 1992년에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영국에서는 롤링 스톤즈, 퀸과 같은 대형 록밴드 못지 않은 영향력과 인기가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인기가 높지 않다. 음악인들에게는 명성이 있는 것 같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듣보잡 취급을 당해왔다.
정확히는 Under Pressure에서 프레디와 함께 부르는 한 명의 가수안습.어차피 돌아가셨잖아? 그러니 한국으로 투어 올 일은 이제 더이상 없다. 망했어요.
-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라 밝혔으나, 후에 Station to Station 시절 양성애자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1983년 인터뷰에서는 "그 때 양성애자라고 말했던 건 최악의 실수였다"라면서 다시 이성애자로 주장했으며, 이전의 주장들은 유명세를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결혼을 두 번 해서 자식도 둘이나 있으니 확인사살. 그렇지만 실제로도 결혼하여 자녀를 가진 기혼 게이의 비율은 의외로 높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나 작가 오스카 와일드도 기혼자이면서 동성애/양성애자인 케이스. 물론 보위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보위의 전 부인 앤절라는 회고록에서 보위가 믹 재거와 자는 걸 봤다고 주장했으나 어디까지나 루머인 듯 하다.2002년에도 자신의 양성애자 인터뷰를 자신의 기믹 중 최악이라고 인정하였다.
- 프랑스의 생수회사 비텔(Vittel, 네슬레 소속)에서는 보위의 페르소나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팬이 그 광고를 보면 여러모로 아스트랄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광고 이 광고에서 데이빗 보위의 페르소나로 분장한 사람은 데이빗 보위 커버밴드로 무척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 그의 음악적 영향과 성과 때문에 영국에서는 두 번이나 훈장과 기사작위를 주려고 했으나, 두 번 다 거절했다고 한다.
Sir David Bowie, 보위 경 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인가!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주최측에서 폐막식 공연의 한 파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했다. 그래서 그의 단독 파트는 영국의 패션 모델들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배경음악으로만 나오게 된다.
- 애니메이션 소울 이터 17화에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표지 패러디가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참고로 저 장면은 원작 만화엔 없고 애니메이션판 오리지널이다. 본즈 어지간히 음악 좋아하는듯. R.O.D the TV 에서도 젠틀맨 부활 계획에 관여한 에이전트의 이름으로 지기 스타더스트가 언급된다.
영국인이니 그럴 만도 한가?
- 미남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나이가 든 지금도 미중년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69세이며 미모는 그대로이니 이제 명실상부한 미노년.
그리고 그 미모 그대로 화성으로 가셨다.
- SF영화 더 문과 소스 코드를 감독한 영화감독 덩컨 존스는 보위가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본 아들이다. 사실 본명은 '덩컨 조위 헤이우드 존스'...그래서 어릴 때 조위 보위'라고 불렸다고 한다.(영국에서 실시한 괴상한 록스타 자녀 이름 순위에서 9위를 차지했다고...)
더 괴상한 8명은 대체 얼마나 괴상한 거야?
- 게임 제작사 퀀틱 드림의 첫 작품이었던 오미크론에도 등장한다. 위 이미지는 스팀판 오미크론의 기본이미지인데 파란 얼굴의 인물이 바로 데이빗 보위이다. 쌍용에서 발매했던 한국 정식발매판 오미크론 패키지판의 표지모델 역시 데이빗 보위이다. 또한 이 게임에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중간중간에 보위의 음악이 여러 곡이 수록되어 있다. 게임 중간에 어느 한 바에서 싱어송라이터가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스토리의 흐름상 필요한 장면도 아니고 노래를 부르는 인물은 아예 병풍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을 꽤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이게 또 나름대로 인상깊은 장면이다. 게임을 제작한 데이비드 케이지는 애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보위와의 친분도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 게임 자체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는데 보위가 게임에 참여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한 점이다. 이 게임에서 보위가 맡은 음악은 1999년작 앨범 'hours...'에 들어가 있다. 데이빗 보위 사후에 이 게임의 유통사인 스퀘어 에닉스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리며 스팀판 오미크론을 기간 한정으로 무료로 배포했다.
- 게임 앨런 웨이크의 엔딩곡으로 Space Oddity가 나온다. 가사는 직접 찾아보길. 단,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인 사람은 금지. 이 노래의 가사가 완벽하게 내용누설이 되기 때문.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도 역시 Space Oddity가 나온다.
- 벤 스틸러가 감독 및 주연을 한 영화 주렌더에서 극 중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이 패션 대결을 할 때 데이빗 보위 본인 역으로 출연하여 대결의 심판을 본다. 사람들이 데이빗 보위가 심판을 보겠다고 하니 아무 소리 없이 납득하는 게 개그인지 현실인지...
- 심슨 가족 시즌 26 12화의 커튼콜로 starman이 나온다. 가사가 에피소드 내용과 어우러지며 눈물을 짜낸다.
- 영화 월플라워에서 이른바 '터널 음악'으로 보위의 음악, Heroes가 등장한다.
-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 그의 음악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들어볼 수 있으며, 이 곡은 스토리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그의 곡을 커버한 버젼이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등장인물인 존 왓슨은 데이빗 보위를 한두 사람쯤 데리고 데이빗 보위 하나를 또 다른 데이빗 보위 위에다 붙이고, 또 다른 데이빗 보위를 처음 두 사람의 데이빗 보위의 팔뚝에다 붙인 다음에 그걸 전부 합쳐서 더러운 베치 가운으로 둘둘 감은거와 똑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낯익다고 생각할 만한 형상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냥 데이빗 보위 세명을 가운으로 감은거잖아은여히니까 그러려니 하자.
- 콜오브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의 트레일러에서 Space Odity를 Lady heroine이 부른 버전이 삽입됬다. 가사가 트레일러에 꽤 잘 어울린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키라 요시카게가 이 사람을 모티브로 했을거라는 말이 있다.
- 2016년 8월 고2 중앙교육 영어 25번 문제로 나왔다.
- 유투브의 리액션 채널 Fine bros에서 노년층의 리액션 패널인 'Elders react'에게 보위의 승천하기 5일전 마지막 뮤직비디오인 Lazarus를 보여주며 추모하는 리액션을 보였는데, 노년세대가 기억하는 음악의 거장이였던 보위를 슬퍼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볼 수 있다.
- ↑ 제임스 보위, 통칭 짐 보위는 "보위 나이프"라는 칼로도 유명하다.
- ↑ 예명을 쓴 이유는 몽키즈의 멤버 '데이비 존스'와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함.
- ↑ 사실 한 해 전인 1970년에는 마크 볼란이 참여한 싱글 'The Prettiest Star'를 발매하기도 헀다. 이 곡은 앨범 Aladdin Sane에 새롭게 연주된 버전으로 실려 있다.
- ↑ 'Moonage Daydream' 등의 이 곡들도 이후 재녹음되어 지기 스타더스트 앨범에 실려 있다.
- ↑ 실제로 루 리드는 그가 공연장에서 White Light/White Heat를 부르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 이 앨범이 팔리고 차트가 올라간 것은 지기 스타더스트가 흥한 다음부터이다. 결과적으로는 UK차트 3위에까지 오른다.
- ↑ "Thank you for our good times, Brian. They will never rot."
- ↑ 특히 Lazarus의 뮤직비디오는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환자용 침대에 누위서 절규하는 데이빗 보위의 초췌한 모습이나... 특히 마지막에 옷장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 데이빗 보위의 모습은 자신의 마지막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 마무리의 모습으로 무척 인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 ↑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거나 음악 활동을 한참 그만둔 뒤에 죽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 ↑ 데이빗 보위의 첫 히트곡으로 데이빗 보위 사후를 전후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다.
- ↑ 가사가 현실적인 버전으로, 그리고 당연히 희망적인 방향으로 개사되었다.
- ↑ 이 때에는 Midge Ure의 편곡된 커버 버전
- ↑ I heard the news today oh boy!란 부분이다.
- ↑ 물론 보위도 마약에 쩔어 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 시기엔 마약을 끊은 상태였다.
- ↑ 영국의 전설적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선의 멤버이다
- ↑ 이 영화의 영화음악도 같이 맡았다.
- ↑ 다만,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전쟁과 국가, 생명, 충성 등에 대해 일본군을 대표하는 요노이 대위와 하라 겐고 하사(기타노 다케시 분)와 영국군을 대표하는 셀리어스 소좌를 대비해 놓은 내용이다. 여기에 존 로렌스 중좌(톰 콘티 분)이 영국군·네덜란드군 포로들과 일본군의 중간 위치에 있는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