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미합중국 대통령에서 넘어옴)
역대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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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 있는 역대 대통령 밀랍 인형들.[1]
러시모어 산에 있는 러시모어 조각상.[2]
The American President
“I do solemnly swear (or affirm) that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will to the best of my ability, preserve, protec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 미국 대통령의 선서문[3]

미국의 대통령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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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 : 버락 오바마
한국어 : 미국 대통령
한자 : 美國 大統領
일본어 : アメリカ大統領
영어  :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중국어(간체): 美国总统
영어 약칭  : POTUS

1 개요

대통령 상징곡인 Hail to the Chief
세계 최강의 권력자 지구의 황제 천조국 황상

미국 대통령미국국가원수이다. 1788년에 미국헌법을 만들면서 만들어진 직책이자 지위로 1789년부터 조지 워싱턴이 첫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미국의 연방 헌법에 의해서 미국 대통령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 수반이다. 또한 미국 헌법 제2장에 의해서 미국 육군, 미국 해군, 미국 공군, 미국 해병대총사령관직을 통해서 군을 통솔한다. 워낙 막강한 권한과 책임 때문에 천조국 황제(...)라는 별명이 있다. 오늘날 세계 정치•경제 등 모든 세계 질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수장인만큼,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는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주요 관심사, 이슈가 되기 마련이다. 미국 대선 시즌이 되면 전 세계가 예의 주시한다.

미국 헌법 제2장에는 미국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횟수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필요한 경우 계속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을 하는 바람에 1951년 제22차 수정헌법으로 3선을 금지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선은 실질적으로는 직선제나 별로 다른 것이 없지만 헌법상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원래는 대통령은 당선자가 부통령은 2번째로 득표를 많이 받은 후보가 맡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제12차 수정헌법을 통해서 러닝 메이트 방식인 현재의 방식으로 변경된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궐위가 될 경우 대통령직을 승계 받는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재선한 44대 버락 오바마로서, 2009년 1월 20일에 공식 취임하였다.

2 권한

미국 대통령은 헌법과 미국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권한 내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서 승인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과 그 법률 내에서 필요할 경우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상원의 동의로 내각의 장관, 차관, 부장관 임면[4]권, 연방의 주요직, 대사, 연방대법원 ● 항소법원 ● 고등법원 ● 지방법원 판사의 임명권, 사면권[5], 형 집행 연기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 상원의 동의로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권한, 외교권, 미군에 대한 지휘권, 비상조치, 한국군의 육군 전시작전통제권 및 한국군 해·공군의 전·평시작전통제권, 의회에 연두교서를 보내 입법을 권고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여러가지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단 우리나라 대통령과 다르게 법률안 제출권이 없고,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정해져 있다.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원의 임기가 2년 밖에 안되는 탓에 해산권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법률안을 못 내도록 한 것은 제왕적인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금지한 것이다.

3 유래

미국이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지만 제대로 된 정부를 갖추지는 못한 상태였다. 문제는 미국이 독립을 한 것도 전제군주제에 대한 반감으로 독재권력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원하였기 떼문이다. 이 당시에 연방조직은 의회 뿐이었던 상황에 독립전쟁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요구속에서 대통령직과 연방정부제도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문제는 1788년 헌법 비준 전에는 어떠한 단일한 실제적 권력이고 뭐고 없다보니 도대체 이 대통령직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결국 관습과 여러가지 제도들은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취임한 이후에 생겨나게 되었다.

4 자격

만 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6]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7]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이 타국에서 귀화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데, 문제는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속인주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국적법 상 태생적 미국 시민이라는 단어가 미국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에만 한정되는지, 미국 50개 주 외에서 태어났어도 해외 미국인 자녀에게 적용되는 법령에 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법학계나 정치권에서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그로 인해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주둔하고 있던 파나마 운하의 미군기지에서 태어난 존 매케인이나 캐나다에서 쿠바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한 테드 크루즈의 대선 출마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5 임기

미국 대통령미국 부통령의 임기는 4년의 임기를 가진다. 제22차 수정헌법은 미국 대통령의 3선을 금지시켰다.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여 그 남은 임기 동안 2년 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한 사람도 1회만 중임할 수 있다. 단 부통령은 임기제한이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3선 이상을 재임한 대통령인데, 그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위기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4선(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선에 잇따라 당선됨으로써 1932년 3월 4일부터 1945년 4월 12일까지 재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미국 대통령은 1회만 중임해 온 불문률을 깨뜨린 것으로써 그의 사망 뒤 대통령의 3선 금지가 성문화되었다.

제22차 수정헌법이후 2009년까지 재선에 성공해 8년간 재임한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5명이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임기 도중 사임하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대통령은 제9대 대통령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으로 취임 1달 만에 사망하였다.

6 선거방식

미국의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지도자로 구성주의 대표들이 4년마다 선출한다. 선거방법은 50개주에 할당된 선거인단과 워싱턴 D.C의 선출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획득한 자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선거인단 배정은 각주출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합친 수가 그 주선거인단이 되며, 여기에 워싱턴 D.C에 배정된 수를 합한 것이다. 통상 대통령선거일은 '슈퍼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11월 첫째주 화요일이다. 각 주별로 선거를 치르며, 통상 2개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득표를 가장 많이 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 이러한 간선제 방식 때문에 직접투표에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에 져서 낙선된 대통령후보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선거인단 중 과반수를 확보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각 주별로 1표씩 행사한다.

자세한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참고.

7 승계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게 될 경우에는 부통령이 그 자리를 승계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그도 없으면 연방의회가 법률로 정한 순서에 따라 하원의장 - 상원임시의장 순으로 승계한다. 단,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 출마자격(만 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를 만족하지 못할시 순위에서 제외되며 차순위 승계자로 넘어가게 된다. 1947년에 제정된 대통령직 계승법에 의하면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부통령(Vice President)
2. 하원의장(Speaker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3. 상원임시의장(President pro tempore of the Senate)[8]
4. 국무부 장관(Secretary of State)
5. 재무부 장관(Secretary of the Treasury)
6. 국방부 장관(Secretary of Defense)
7. 법무부 장관(Attorney General)
8. 내무부 장관(Secretary of the Interior)
9. 농무부 장관(Secretary of Agriculture)
10. 상무부 장관(Secretary of Commerce)
11.노동부 장관(Secretary of Labor)
12.보건복지부 장관(Secretary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13.주택도시개발부 장관(Secretary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14.교통부 장관(Secretary of Transportation)
15.에너지부 장관(Secretary of Energy)
16.교육부 장관(Secretary of Education)
17. 재향군인부 장관(Secretary of Veterans Affairs)
18. 국토안보부 장관(Secretary of Homeland Security)

  • 1974년 8월 9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에는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포드는 1973년에 사임한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후임으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어 연방의회 양원의 인준으로 취임한 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상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례이다.
  • 미국의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 시 하원 의사당에 대통령,부통령,상하원 모든 의원, 대법관, 각료등의 미국 연방정부의 최고위층이 모이게 된다. 이 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승계순위 중 한명의 각료를 지명해서 백악관 혹은 모처에서 대기하게 하는데 이를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 라고 부른다. 이 상황을 묘사한 드라마로 유명한 정치드라마 웨스트윙(드라마)에서도 묘사된 적이 있으며, 2016년 9월부터는 미국의 ABC방송국에서 Designated Survivor라는 드라마까지 방송되게 되었다.

8 역대 미국 대통령

미국 대통령/명단 항목 참고

9 특권

백악관을 주거공간으로 사무실로 쓸 수 있는 특권을 지니며 이에 따라 필요한 전체 보좌관, 보좌 비용, 의료 지원, 취사, 가계 등의 지원을 받는다. 해외 순방이나 여행을 할 경우 에어포스 원이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제공된다. 에어포스 원은 이 안에 날아다니는 백악관이라고 불린 만큼 업무를 보기 편하도록 개조되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이 관리한다.
미 해병대에서는 마린 원이라는 해병대 소속의 헬리콥터에어포스 원처럼 사용할 수 있다. 미국 비밀검찰국에서는 전용차량인 캐딜락 원이라는 특수 제작된 방탄 리무진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

또한 위키백과의 말을 빌려서 '현직 대통령과 가족들은 미합중국의 국토안보부 비밀검찰국 경호전문인력들에 의해 보호된다. 경호권은 에이브러햄 링컨때 생긴다.
전직 대통령의 경우 1997년까지는 모든 전직 대통령과 그들의 가족들을 전직 대통령의 사망시까지 보호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 클린턴 전대통령까지는 평생 동안 경호가 지원된다. 하지만 이후의 대통령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부터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 최대 10년까지만 보호받게 되어 있는데, 최근 테러에 대한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 결정은 재고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모든 미국 연방공무원의 최선임이기에 봉급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2001년까지는 연 $200,000을 받았으나, 봉급 인상이 이루어져 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연 $400,000의 봉급을 수령한다.[9][10] 또한, 미군의 통수권자이자 총사령관(Commander-in-chief)이다. 단, 주방위군은 비상사태가 아닐 경우 주지사가 통제한다.

10 대략적인 정당의 역사

미 건국 초기에는 정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당 제도가 "국가를 분열시킨다"고 생각했던 건국 지도자들의 뜻과,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정당을 갖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워싱턴이 퇴임하자마자, 연방의 권력을 늘려 강대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각 주들에게 최종권력을 주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말소될 것을 우려한 토머스 제퍼슨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결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해밀턴의 추종자들이 만든 연방당, 그리고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신의 민주공화당에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적 정당의 체제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두 당 모두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었고, 유권자들도 대체적으로 당보다는 후보를 보는 편이었다.

제퍼슨 대통령 아래 나라가 좀 잘 돌아가자, 애초부터 굳건한 기반이 없었던 연방당은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다가 결국 와해되고, 매디슨, 먼로 등 민주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가 도래한다.

마땅한 야당이 없던 민주-공화당 28년(1801~1829) 이후 존 퀸시 애덤스에 반대한 앤드루 잭슨 지지세력이 탈당하여 민주당을 세우면서 잔당세력은 휘그당이 되었다. 휘그당은 이따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승리한 대통령이 죄다 병으로 급서하는 안습함을 보이며 점차 몰락의 기미를 보인다.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 휘그당이 몰락하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어 지금의 양당제가 시작된다. 참고로 이때 승리한 공화당은 아직도 미 역사상 유일하게 신생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링컨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24년간의 장기집권(1861~1885)이 있었다.[11]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의 클리블랜드가 잠시 집권하여 이를 깨뜨렸으나(그나마도 이어진 임기가 아니었다) 이후 공화당이 다시 16년간(1897~1913) 장기 집권했다. 다만 링컨 이후 한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관세 정책 빼고는 정책차가 거의 없었으며, 공화당이 선거인단 덕에 당선된 케이스도 두번이나 된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 운동[12][13], 인민당 운동[14]을 결성한 것. 1892년 후보로 나온 제임스 위버 후보는 8.5%, 약 백만 명의 지지를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중서부 4개주를 승리하기도 했다).] 등이 두드러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권 연장을 꾀한 민주당이 윌리엄 J. 브라이언이라는 걸출한 웅변가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다음 인민당과 손을 잡아 1896년도 대권에 도전했으나, 쇼미더머니 수준의 선거자금을 모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대패하고 만다. 윌리엄 vs 윌리엄 [15].

이런 정치적 변혁은 현실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트러스트와 개혁을 옹호하는 혁신주의(progressivism) 경향이 두드러진 것. 공화당 역시 혁신주의를 주창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이런 경향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하 테디), 윌리엄 태프트, 정권을 교체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테디는 1912년 공화당을 탈당해 혁신당(progress party, 혹은 진보당)을 차리기까지 했다.[16] 이러한 공화당의 분열로 윌슨의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으나 외교정책 문제와 1차대전 참전 문제로 신임을 잃고, 대공황까지 다시 공화당이 12년(1921~1933) 집권한다. 다만 이시기의 공화당은 혁신주의 사조를 완전히 뺀 자유방임주의 보수정당이었다.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이하 'FDR')이 나타나 4선까지 하고 해리 트루먼까지 이어가면서 민주당이 20년(1933~1953)을 집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레이건과 부시의 12년이 있긴 했지만, 대략적으로 8년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가 되었다.

10.1 전후 미국 대선사; "뉴딜 동맹" 대 "남부 전략"

다만 실제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1933년 이후 정국은 민주당의 기존 남부 지지 + 북부의 서민 중산층 + 흑인 등 소수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 동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아이젠하워 역시 뉴딜정책 자체는 거의 계승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인종문제가 불거진 1960년대 이후 민주당 텃밭이던 남부(딕시크랫)는 점차 이탈하여 독자출마나 팀킬행위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극우 + 백인 우월주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남방 전략)"을 펼치게 된다.[17] 이후 닉슨을 거치면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뽑아내게 되며, 1980년대 이후 남부는 명실 상부한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닉슨 이래로 레이건, 부시 부자는 남부 + 서부 + 기독교 근본주의 + 백인 중심 + 신자유주의로 연달아 대승을 거두는 등, 공화당은 이 전략으로 2000년대까지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민주당이 이 시대에 대선에서 승리를 간간히 거두긴 했지만, 케네디 이후로 남부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린든 존슨텍사스 출신, 지미 카터 역시 남부의 조지아 출신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개인의 깨끗한 이미지와 워터게이트 어드밴티지도 있었다), 빌 클린턴 역시 남부(아칸소) 출신이었다. 반면 낙선한 마이클 듀카키스매사추세츠 출신 동방정교도였고, 앨 고어의 경우 2000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구인 테네시(남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남방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11 기타 정보

  • 2014년 기준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은 전원 남성이다. 주요 양당의 후보는 물론, 유력 여성 후보조차도 힐러리 클린턴을 제외하면 아직 나온 적이 없다.
빌 클린턴은 물론, 심지어 버락 후세인 오바마도 아일랜드 혈통이 섞여있다[20]. 현대의 대통령이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물론 차별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피가 하도 섞이고 섞인 탓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는 물론 21세기 초까지도 인구 통계에서 백인 조상의 출신마저 따지던 미국으로서는 눈에 띄는 것은 사실.
  • 독일계 이민자의 직계 후손으로 대통령이 된 케이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Eisenhauer → Eisenhower)
허버트 후버(후퍼/Huver → Hoover)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모계 성씨인 밀하우스가 독일계 성씨다. 멜하우젠/Melhausen → Milhous).
  • 마틴 밴 뷰런(판뷔런, Van Buren)은 전형적인 네덜란드계 출신으로, 그의 제1언어 역시 네덜란드어였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명가 루스벨트(Roosevelt) 역시 판로저벨트(Van Rosevelt)이라는 네덜란드 성씨였다. 제임스 먼로의 먼로(Monroe)는 스코트계 성씨(그의 혈통에는 웨일스계도 섞여있다). 반면 프랑스계 이민자를 직계 조상으로 둔 경우는 없다. 드물게 그리스계 후보가 유력 후보가 된 적이 있으나, 그가 바로 현대 미국의 대표적 역전패 후보인 마이크 듀카키스(...)
  • 사실 미국 최초의 President는 워싱턴이 아니었다. 워싱턴 앞에도 독립(1781) 이후 연방조약이 비준되면서 탄생한 연방의회는 만장일치로 메릴랜드 주의 존 핸슨을 "대륙 회의 연방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핸슨은 '미국 의회의 총의를 모은 연방 의장'이라는 직함을 받았고, 정부기관을 만들고 조약에도 서명하였다. 임기는 1년이었다. (핸슨 등 2회 역임 포함) 그렇게 7대가 지나고 연방헌법이 비준된 1789년에 대통령이 된 것이 워싱턴이다.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워싱턴은 8대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 미국 대통령은 임기수를 세지 않고,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댓수를 높인다. 대한민국이 2016년 현재 18대인 박근혜 정부까지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던 것[21]과 다르다. 다만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경우 원래는 한 대로 치다가 두 대로 나누어 세게 된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최근의 일이다.
  • 미국 대통령들은 44대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가톨릭)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도들이었다. 물론 종파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리고 개신교라고 해도 몇몇은 무신론 불가지론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 미국 대통령의 별명과 애칭은 여기(#)를 참고할 것.
  •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바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 날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이 때 제정된 이유는 미국의 국부인 워싱턴과 미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의 생일이 모두 2월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
  •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때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성경에 올려놓고 선서하는 것이 원칙.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선서할 때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사용한 성서를 사용했으며 선서 때 성경을 사용하지 않은 사례는 1901년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사례가 유일하다. 42대 대통령인 클린턴은 자신의 할머니가 사용한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했으며, 44대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의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를 했다.
  • 지금까지 미국의 모든 대통령은 안경을 썼다.아무래도 40세 이상인데다 수많은 문서를 봐야 했으니 다만 대중에 나설 때도 안경을 낀 사람은 몇 안된다.
  • 왼손잡이였던 대통령은 20대 제임스 가필드, 31대 허버트 후버, 33대 해리 트루먼, 38대 제럴드 포드, 40대 로널드 레이건, 41대 조지 부시, 42대 빌 클린턴, 44대 버락 오바마로 총 8명이다. 재미있게도 20세기 후반기의 대통령들은 연달아 왼손잡이 대통령이 나왔다. 가필드와 트루먼, 레이건은 양손잡이.
  • 로맨싱 사가 2에 나오는 남자 제국경장보병들의 이름은 미국 대통령들 이름에서 따왔다[24].
  • 한국 인터넷에서는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 미국 대통령을 천조국 황상이라 하기도 한다.

11.1 미국 대통령의 체격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뚱뚱한 순위 1위는 175kg의 27대 윌리엄 태프트[25], 2위는 22대, 24대의 125kg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3위는 112kg(사망시)의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뚱뚱한 몸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지 최근의 대통령들은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다.
  • 트루먼의 2기 대선 상대인 공화당의 토머스 E. 듀이는 173cm로 트루먼과 키가 같았다. 이 선거는 트루먼이 항상 열세였고, 민주당 탈당 세력(월리스, 서몬드)이 두 명이나 출마했으며, 심지어 트루먼 본인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으나 트루먼이 이겼다. (최후의 순간에도 듀이의 승리를 알리는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의 역사적인 오보가 나올 정도였다) [26]
  • 트루먼 이래 미국 대통령은 빌 클린턴(6' 2" = 188cm), 조지 워커 부시(5' 11.5" = 182cm), 버락 오바마(6' 1.5" = 187cm) 등 미국 백인 남성 평균인 178cm보다 크다. 모두 여러모로 "위너". 키는 정말로 권력인 모양이다(?)[27]
  • 실제로도 1900년대 이전까지는 상대보다 키가 작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가 더 많지만(예외가 링컨 정도), 1900년 이후로는 상대보다 키가 큰 후보의 승리가 압도적이다. 참고로 1900년 이후 이런 핸디캡(?)을 두 번 연속으로 극복한 유일한 인물이 조지 워커 부시(…). 그래도 180cm을 넘는 182cm다. 그리고 오바마도 재선에선 자신보다 약간 큰 밋 롬니(6' 2" = 188cm)[28]에게 승리하였다.
  • 가장 극적인 승리는 1812년 제임스 메디슨이 차지했는데, 163cm의 키로 191cm의 드윗 클린턴을 상대로 승리했다.
  • 지금까지 대통령 43명의 평균 키는 5피트 11인치(180cm)이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영어 위키백과의 여기 참조(#)

11.2 승리의 여신 오하이오 - 대통령의 출신 주

오하이오 주는 당시 동부, 서부, 남부, 북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으며 인구가 상당하여 지금도 미국의 인구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로 "오하이오주를 제압하는 자가 대선을 제압한다"는 거의 정설화 되어있다. 1896년부터 빗나간 적은 단 두 번[29] 사실 오하이오는 애초에 클리블랜드를 빼면 1860년 링컨 선거 이후 항상 대선의 승부처였다.[30] 오바마 대통령도 두 번 모두 오하이오주에서 이겼다.

정확도는 네바다 주가 더 높고[31], 1980년 이후로는 뉴멕시코 주가 2000년앨 고어 지지를 제외하면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하지만 오랜 역사나 득표 비율과 실제 대선결과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점, 무엇보다 인구가 많다는 점(50개 주 중 7위, 선거인단 21->20명)에서 오하이오 주가 제일 낫다.[32]

출신 주는 건국 초기에는 버지니아주 출신이 7명이 나왔고, 그랜트 이후로 하딩까지 55년간 모두 7명의 오하이오주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참고로 죄다 공화당이다(…).) 이후에는 다변화 되었다. 오바마의 경우 하와이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비 본토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11.3 선거인단에서 승리한 대통령

선거에서 총득표수에선 패했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하여 한 경우는 역대 세번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로 인해 승리한 쪽은 모두 공화당이라는 것.

  • 1876년, 19대 러더퍼드 헤이스(185 대 184, 25만표 뒤짐), 새뮤얼 J. 틸던을 꺾고 승리. 문제는 그냥 승리도 아니고 날치기 승리였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고하자.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다.

11.4 가족으로서 대통령이 된 경우

  • TeddyFDR은 먼 친척 형제지간. 흔히 당숙과 조카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루스벨트 가의 족보를 보면 둘은 12촌 형제가 된다.

11.5 임기/취임시 나이/사망시 나이

  •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암살당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을 승계했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년 9월, 당시 만 42세 11개월). 당선된 대통령으로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년 1월, 당시 만 43세 6개월).
  • 반면 가장 노년에 취임한 대통령은 40대 로널드 레이건(1981년 1월, 당시 만 69세 11개월). 그다음은 9대 윌리엄 해리슨(1841년 3월, 당시 만 68세 1개월).
  • 역시 가장 단명한 대통령도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한 JFK(당시 만 46세 6개월(177일)),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2006년 12월 26일 사망한 38대 제럴드 포드(만 93세 5개월)이고 그 다음이 간발의 차이로 2004년 6월 5일 알츠하이머로 사망한 로널드 레이건(당시 만 93세 4개월(120일)). 이 기록은 적어도 아버지 조지 부시(카터와 똑같이 1924년생 동갑이지만 부시가 생일이 4개월 정도 빠르다)가 그 나이가 되는 2017년까지는 깨지지 않을 듯하다. 그 이전에는 90세 8개월(247)일의 제2대 존 애덤스, 90세 2.5개월(71일)의 허버트 후버가 가장 장수했다.
  • 단명한 대통령으로는 역시 암살당한 만 49세 10개월(304일)의 제임스 가필드, 임기를 마친 대통령, 그리고 암살당하지 않고 병사한 대통령만 치면 제임스 포크가 만 53년 7개월(225일)로 가장 단명했다(전체적으로는 3위). 그 다음(전체 4위)은 56세로 사망한 16대 링컨과 21대 체스터 아서가 잇는다. 비록 암살당했지만 링컨도 미국 대통령 중에서는 제법 단명한 편.
  • 임기가 가장 길었던 대통령은 단연 12년 1개월의 FDR(4선 대통령이었으나 4기가 시작되자마자 사망). 이후 헌법이 개정되면서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반면 가장 짧은 대통령은 딱 1개월의 윌리엄 해리슨.[35] 그 다음은 5개월 반만에 암살당한 가필드가 뒤를 따른다. 뒤에 나오는 인기 순위에서 이들은 조사 명단에도 잘 없거나, 있어도 하위권인 수모를 당하고 있다. 존재감의 문제인 듯. 지못미.
  • FDR 이전까지는 승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당선 다음해 3월 4일이 취임식이었는데[36], 1933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0조에 의거 FDR 재선 이후로는 1월 20일로 바뀌었다.

12 인기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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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의 머리 & 블레싱 Murray & Blessing의 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마다 순위가 다른데, 리버럴 성향에서는 루스벨트가 2위, 워싱턴이 3위고 보수 성향에서는 그 반대(보수 리버럴 전체적으로는 루스벨트가 2위). 이 경우는 리버럴/보수 할 것 없이 제퍼슨이 4위, Teddy가 5위 였다. 마찬가지로 정치색 상관없이 꼴찌는 하딩.
  • 꼴찌의 경우에는 링컨의 전임자(15대)인 제임스 뷰캐넌이 단연 1위, 가끔 링컨의 후임자인 앤드루 존슨(17대)이 1위를 탈환(…)하기도 한다. 그외의 꼴찌 그룹으로는 워런 하딩(29대)[39], 9대 윌리엄 해리슨, 10대 타일러, 14대 피어스, 13대 필모어 등이 있다. 1위인 링컨의 그늘이 작용한 것 같다. 오오 링컨 이펙트.
  • 앞에서 말했듯 임기가 짧았던 대통령들은 조사에 안 끼워 줄 때가 많은데 그래도 해리슨을 빼면 중위권은 한다;; 윌리엄 태프트의 경우엔 대부분의 조사에서 딱 중간에 있는 위엄을 보인다. 무게중심 이런 "중간은 가는" 대통령으로는 조지 부시(아버지)와 빌 클린턴 등이 사이좋게 있으며, 윌리엄 매킨리마틴 밴 뷰런도 정중앙 순위 근처에서 모습을 보인다.
  • 그 외의 꼴찌 그룹 율리시스 S. 그랜트의 경우는 역시 링컨 이펙트를 받으면서 꼴찌 그룹 멤버였으나 이후 조사에선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폐 덕인가 하기엔 좀 그렇다
  • 리처드 닉슨도 비슷한 케이스. 그는 사임 8년 후인 82년에도 전체 36명중에 34위를 기록했었지만, 이후 대통령은 늘어나는데도 등수는 조금씩 올라가는 중.[40]
  • 조지 W. 부시는 재직 중이던 2002년과 2005년에는 각각 23위, 19위로 중위권이었지만, 퇴임 직후인 2009년 CSPAN[41] 조사에서 (사임 직후의 닉슨에는 못 미치지만) 43명 중 36위를 차지하는 업적(?)을 남겼다. 야~ 신난다~ 2008년 재직중 조사에도 37위였다. 존 타일러보다도 순위가 낮아 앞으로의 꼴찌 그룹의 신생 돌풍(…)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순위다툼이 치열하다

13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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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경은 워싱턴 유니언 역이다. 지금은 없는걸 봐선 잠깐 전시 했던걸로 예상된다. 추가바람.
  2. 왼쪽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1927년 시작되어 1941년 완성된 이 조각은 당시 재임 중이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을 제외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통령인 링컨, 워싱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퍼슨이 새겨졌다. 관련 내용은 아래의 "인기 순위" 항목 참조. 영화 내셔널 트레저 2에선 황금의 도시를 감추기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3. 미국 연방헌법 제2조 1항에 규정된 내용이다.
  4. 임명권과 파면권
  5. 의회 동의 필요
  6. natural born citizen
  7. 제14차 수정헌법에 따라 정부 관리로 취임한 국민이 반란이나 반역에 참여하면 다시는 정부에 진출할 수 없다. 정부에 재진출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8. 상원임시의장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원의 의장과 다름없는 직위이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상원의 의장은 부통령이 겸직하게 되어 있지만, 부통령은 표결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할수 없기에 실질적으로 상원에 출석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임시의장을 둬서 실질적으로 하원의장과 비슷한 역할을 정해둔것이다. 임시의장은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이 맡는게 관례로 되어있다.
  9. 2016년 5월 현재 약 4억 7천만원
  10. 2016년 현재 행정부의 경우 부통령의 연봉은 $230,700, 장관 및 그에 준하는 공무원(Level 1) $207,500,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참모급 $176,461정도 받는다. 사법부의 경우 연방 대법원장은 $255,500, 대법관은 $244,400, 입법부의 상/하원 의원의 연봉은 $174,000 이다.
  11. 사실 링컨의 후임자인 존슨은 민주당이다. 다만 내각은 공화당이 장악한 형태.
  12. 한 예로 수차례나 대통령에 출마한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1912년 선거에서 6%나 득표한다.
  13. 이 시대의 정치사를 사회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것이 소설 <강철군화>이다. 강철군화는 인민당이 주지사 권한을 넘겨받지 못할 것이고, 선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시각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급진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 시대는 "사회주의 혁명을 의회 쿠데타에 가까운 보수 양당의 선거제도 개악으로 저지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선거인단 제도 등 미국 선거제도 자체가 소수당을 사표로 몰아 붙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14.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없는 대기업들에 반발한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인민당(people's party, 혹은 populist)* 포퓰리스트, 즉 인민당이 포퓰리즘의 어원이 되는 정당이라고 하나, 포퓰리즘의 진짜 어원은 로마의 평민파에서 출발한다.
  15. 중서부에서는 대승했으나 북부를 털려서 망했어요.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연대를 해제한 1900년과 1908년에도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패배하게 된다. 일설에는 대통령이 됐으면 아마 지금 미국은 농경국가로 탈바꿈해 있을지도 모른다 카더라.
  16. 흔히 "진보 정치사조"로 해석되는 "progress"는 여기서 유래되었다(한국으로 따지면 국민참여당 정도가 "혁신진보" 사조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사조는 "사회/사민"사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란 단어 자체는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시작되었지만, progress의 의미는 이렇게 조금 복잡하다). 링컨의 반트러스트적 면모를 두고 혁신주의 사조를 링컨대까지 끌어올리는 시각도 있다. 이후에도 혁신주의는 1924년, 1948년(이 경우는, 민주당의 전직 부통령 월리스가 탈당한 경우) 대선 등에서 독자 출마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인다.
  17. 남부 극우파인 골드워터에 대한 존슨의 대승으로 끝난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섯 주에서만 승리했는데, 모두 남부였다.
  18. 할아버지 윌리엄 해리슨은 앵글로색슨계지만 어머니 쪽이 아일랜드 혈통.
  19. 심지어 케네디는 아일랜드계의 전형적 종교인 가톨릭까지 믿었다!
  20. 클린턴은 정확히는 본인이 그렇게 주장한 케이스. 앤드루 존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태프트, 트루먼, 린든 B. 존슨, 카터, 레이건도 부분적으로 아일랜드 혈통.
  21. 이승만(1~3대), 박정희(5~9대), 전두환(11~12대)처럼 2번 이상 역임한 독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22. 대신 제일 친하게 지낸 사람은 있었는데 바로 전임 피어스의 최단임 부통령이었던 윌리엄 루퍼스 킹. 뷰캐넌은 그와 동거한 적도 있었고 주변 정치인들도 킹을 뷰캐넌의 배우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 것 때문에 뷰캐넌을 동성애자로 추측하기도 한다.
  23. 클리블랜드도 취임식 때까지는 독신이었으나... 자세한 건 항목 참조.
  24. 제임스, , 리처드, 허버트, 해리, 로널드, 드와이트, 프랭클린
  25. 이 분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태프트 대통령이 그 살 때문에 그대로 욕조에 끼었다고 한다(…). 백악관 관리 여러 명도 모자라 버터 한 통을 부은 다음 간신히 꺼낼 수 있었고, 이후 욕조를 교체해 현재까지도 백악관 욕조는 미 전국에서 가장 사이즈가 크다고 한다(…). 당시 성인 남성 3명이 들어갈 크기다.
  26. 듀이는 FDR과 대결한 1944년 대선에서 오하이오에서 승리했음에도 징크스가 빗나가며 크게 패했다. 물론 FDR의 상대로 나온 네명 가운데는 가장 선전했다.
  27. 사람들은 대체로 무의식중에 키가 큰 사람들을 더 친절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같이 선 상대보다 키가 월등히 크면 상대에게 말 못할 압박을 주면서도 보는 이들에겐 상대보다 더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28. 11717117-standard.jpg
  29. 빗나간 두 번은 닉슨을 이긴 존 F. 케네디(1960년)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4기 선거(1944년)이다.
  30. 클리블랜드는 주지사를 지낸 뉴욕을 지지기반으로 승리하는 특이한 경우로, 약점인 뉴욕주에서 패해 중간에 한번 쉬었다가 대통령 임기를 나누어 두 번 수행한 케이스다.
  31. 1912년 이후 1회(1976) 틀렸다. 그 이전에는 중서부 주의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며 별 의미가 없었다. 20세기 초 3회나 낙선했던 윌리엄 J. 브라이언이 네바다에서 세번 이긴건 대표적인 예.
  32. 제도는 선거인단은 없지만 1984년 이후 지역선거의 결과와 대선의 결과는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33. 플로리다에 걸린 25명의 선거구가 논란이 되어 주대법원 재판까지 갔으나 결국 부시가 이겼다. 112년 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선거인단 제도의 불합리성이 드러났고, 이 재판도 편파적이다라는 말이 많아서(무엇보다 당시 플로리다주의 주지사가 부시의 둘째 동생이었다.)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으나 현재까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부시가 테쿰세의 저주를 피한 것이 이것 때문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
  34. 이 경우는 득표도 선거인도 모두 애덤스가 밀렸지만 잭슨이 선거인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의회로 넘어가게 됐고 결과는 헨리 클레이 담합을 성공시킨 애덤스의 승리.
  35. 취임년 4월 4일에 사망. 취임식 날 비를 철철 맞으면서 연설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레이건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중에 취임 최고령자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거전으로 승리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노력이 모두 무색하게 되었다. ?안습.
  36. 단, 조지 워싱턴은 4월 30일 취임.
  37. 그래도 워싱턴과 FDR 모두 ?콩라인 은 아니다.
  38. 보수에게는 평이 좋지만(실제로 미국의 보수층은 레이건 재임때를 '미국의 리즈 시절'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이란-콘트라 사건이라든가, 포클랜드 전쟁 당시 일방적으로 영국 마거릿 대처편을 든 것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를 아예 악의 축으로 규정한 탓에 미국 내에서도 히스패닉이 가장 싫어하는 미국의 대통령 1위이다.
  39. 다만 미국인이 싫어하는 대통령 1위는 거의 이 사람.
  40. 재미있는 것은 등수의 등락 방향이 FDR과는 같고, 워싱턴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도리어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 쪽은 리버럴 쪽일지도. (단, 82년 성향 조사에는 보수 쪽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리버럴에서는 뒤에서 두 번째).
  41. 미국 국내 유선 종편채널 중 하나로 미 상,하원 의정활동 실황및 미 정책연구기관이 주체하는 미 국내,외 정책현안 관련 토론회등을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