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목록/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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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1.1 한국프로농구

  • 2003~2004 시즌 KBL 개인 타이틀 밀어주기 : 시즌 막판에 특정 선수들에게 개인 타이틀 수상을 밀어주기 위해 경기중 양팀 선수들이 수비를 건성으로 하는 등 기가 막힌 추태를 벌였다. 김주성은 블록부문 경쟁자 R.F. 바셋을 제치기 위해 원주 TG삼보-인천 전자랜드 전에서 무려 11블록을 기록하게 되었고, 같은 경기에서 문경은은 원주 선수들의 지원(?)에 힘입어 3점슛 22개(66득점)의 신기록을 세우고, 문경은의 경쟁자 우지원은 다른 경기에서 3점슛 21개를 성공했다(70득점). 당연히 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고, 팬과 해설가들의 비난에 급기야 KBL은 그 해 타이틀 시상식을 취소하게 된다. CBA의 경기당 최다득점은 에릭 맥컬럼의 82점[1], 최다 3점슛은 리온 로저스의 15개, 최다 블록슛은 야오밍의 13개이며 밀어주기 의혹은 전혀 없다.완전 병크
  • 2012~2013 시즌 : 여러모로 악재가 많았던 시즌.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의 흥행 실패 이후 꼬이더니 해당 팀들의 신인 드래프트를 노리려고 한 져주기 논란, 계속된 저득점화 현상의 심화[2]와 코트 내에서의 과도한 신경전, 김일두의 혼혈및 비주류대학 출신 비하 발언, 현직 감독의 승부조작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농구의 몰락은 이제 시작이었으니...
  • 2014~2015 시즌과 챔피언결정전, 김영기 총재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버프를 안고 기대 속에 시작하였으나, 총재 김영기의 막장 행보와 심판 자질 문제, 중계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리그 중흥의 기회를 걷어찼다. 거기다 모비스와 동부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시간을 평일 오후 5시(!!)로 변경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이에 항의하는 플래카드가 1차전 도중 등장하자 KBL 관계자가 제지하려다가 팬 중 한명이 허리 쪽에 부상을 입는 등 마찰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챔피언결정전 3경기 3쿼터에서는 작전타임 및 선수 교체과정에서 실수를 범한 기록원이, 유재학 감독이 항의하자 경기 도중 자리를 이탈했다 돌아와 경기가 5분간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야구 눈치보는 세상 불통의 극치 이게 독재가 아니고 뭡니까? 또한 시즌이 끝난뒤에는 대대적인 불법스포츠도박 파문까지 일어나며 또다른 흑역사 시즌의 절정을 만들어낸다.

1.1.1 원주 동부 프로미

  • 나래 해커스 : 나래 블루버드에서 바뀌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삼보 엑써스로 바뀌었다.
  • 양토토 사건 : 김영만과 함께 농구대잔치 시절 중앙대의 원투펀치를 담당했던 장신 포워드 양경민이 원주 동부에서 뛰던 2004~2005 시즌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의 토토를 자신의 팬클럽 회장에게 대리 구매하도록 했다. 당연히 선수가 자기가 출전하는 경기의 토토를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며 나중에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져 양경민 선수는 벌금 100만원의 유죄가 확정되었고, KBL로부터는 36경기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후 징계는 슬그머니 경감되었지만 양경민은 더 이상 제대로 뛰지 못한 가운데 쓸쓸히 은퇴를 했다. 은퇴 뒤에는 스카우트 일을 맡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었고 한동안 근황이 알려지지 않다가 웨이터를 전전한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이후 찜질방을 오가며 살던 양경민은 2013년 9월 찜질방에서 절도죄로 구속되었다.
  • 강동희 전 감독 : 한때 전설의 기아자동차에서 에이스로 활약했고,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떨쳤으나 승부조작 때문에 한국판 피트 로즈로 전락하고 말았다(...).
  • 이충희 전 감독 : 감독으로 부임한지 불과 한 시즌만에 12연패를 두 차례나 세우는 진기록을 달성하며 팀을 나락으로 꽂아넣는 등 동부산성이라는 팀에 걸맞지 않는 한심한 성적을 냈기 때문에 멍충희라는 치욕스런 별명으로 불리며 감독 취급도 안 한다. 작전타임 때의 전술도 빼어나지 못했을 뿐더러 주전선수들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몸이 정상이 아니었던 김주성 등을 무리하게 출전시켜 아작내는 등 혹사로 인한 주전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끝없는 부진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이러한 악재 등이 겹치자 이충희 감독은 결국 9승 31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자진 사퇴하였다. 당시 코치로 있던 김영만을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킨 후 잔여 시즌을 치렀지만 결국 동부는 13승 41패, 창단 이래 최초로 최하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심지어는 동부의 홈경기 때 감독을 비롯한 프런트의 퇴진을 성토하는 플래카드를 걸어 항의하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 안재욱, 이동건 : 프로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에 참여한 행위로 리그에서 영구제명을 당했다.

1.1.2 부산 kt 소닉붐

  • 나골코 시절 : 나골코 시절 크게 부진했다. 프로 원년, 1997~1998, 2002~2003의 세 시즌을 제외하고 전부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특히 골드뱅크의 이름으로는 플레이오프 한 번도 못 밟아 봤다. 게다가 재정난도 심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는 꼴찌를 한 적이 없다.
  • 코리아텐더 맥스텐 :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고 팀명을 푸르미에서 맥스텐으로 바꿨으나 모기업의 가난을 막지 못하고 끝내 KTF(현 KT)에 매각했다. 그래도 나래 해커스나 진로 맥카스에 비해 뛰는 시즌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단 12경기였지만...[3] 그리고 나골코 시절을 마감했다는 것
  • 2008~2009 시즌 : 12승 42패(승률 2할2푼2리)로, 4분의 1도 안 된다! 물론 10위를 기록. 그리고 추일승 감독의 별명은 추필승에서 추무능, 추필패로 전락하였다.
  • 2009~2010 시즌 우주복 마스코트 : 역대 마스코트 중 가장 최악인데다 오히려 매직윙스 시절보다 더 퇴보했다. 모비스의 초창기 마스코트와 분야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 디자인을 떠나서 심각한 수준이며, 모기업인 KT와 모든(야구, 축구, 농구, 배구를 합쳐도) 마스코트에겐 있어선 큰 재앙인 수준. 완벽한 흑역사가 되었다.
  • 박태양 : 2009-10 시즌을 앞두고 실시한 귀화 혼혈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 중 1명으로 미국 이름은 크리스 벤. 나이가 어려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고 시즌 후반에는 그런대로 중용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후술할 원하준과 함께 5년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KT는 2013-14 시즌 도중 전태풍을 트레이드로 데려와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1.1.3 서울 SK 나이츠

  • 진로 맥카스 농구단 : 창단식도 치르지 못한 채 모 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해 SK에 매각, SK 나이츠가 1997년 9월 11일에 창단식을 가지게 되었다.
  • 서울로 연고이전한 이후 2011~2012 시즌까지의 팀 성적 : 2001년 청주에서 서울로 연고이전을 한 이후 2002-03 시즌부터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02/03 시즌부터의 팀 성적은 10-7-7-9-7-5-8-7-7-9-1-3(십칠칠구칠오팔칠칠구일삼). 11/12시즌 까지 PO 진출이 단 한 번이었다. 특히 04/05시즌과 10/11시즌은 그야말로 내려가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다행히 2012-2013 시즌은 정규시즌 1위로 시즌을 끝낸 뒤 아쉽게도 모비스에게 4전 전패를 하며 통합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다. 2013-14 시즌에도 그대로 잘 나갔지만 막판에 힘이 풀리면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14-15 시즌 : 정규시즌에 1위싸움을 하는 등 잘나가다가 2월에 당한 5연패를 기점으로 추락하더니,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한 뒤 인천 전자랜드와의 6강PO에서 3연패로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4]
  • 2015-16 시즌 : 김선형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한 출장정지,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부진, 계속 터지는 부상 등으로 전년도 3위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 변현수 : 2009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지명을 받은 뒤 쏠쏠한 활약을 펼쳤으나 루키 시즌을 마친 뒤 LG로 이적했다. 그러나 나중에 완전 트레이드가 아닌 3년 임대로 밝혀졌고 2012-13 시즌 종료 후 복귀한 뒤 바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복귀하면 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2015년 1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입건된데 이어, 3월에는 배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되었던 염순호, 최귀동과 함께 함지훈에게 스포츠 도박 관련 부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일로 체포된 일로 구속 기소되어 사실상 영구제명을 당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 방성윤 : 2005년 드래프트에서 부산 KTF 매직윙스에 의해 1순위로 지명된 직후 3:3 트레이드로 SK로 이적했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프로 적응 문제로 3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없었다가 끝내 30세의 나이로 2011년 은퇴했다. 하지만 은퇴 후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제대로 흑역사화.
  • 박승리 : 문경은 감독이 귀화선수 드래프트 당시 문태종을 거르고 지명하여 화제가 되었던 선수. SK 입단 후에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2016년 귀화에 실패해 KBL을 떠나게 되었다.

1.1.4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 1998-99 시즌 : 32연패, 1할 이하의 승률, 단일 시즌 역대 최소승.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잃어버린 15초 : 2002-2003시즌 파이널 원주 TG 엑서스와 5차전에서 4쿼터 막판 원주 TG 데이비드 잭슨의 3점이 터질당시 경기시간이 15초동안 멈춰있던 사건.[5] 이걸로 원래대로라면 대구 동양이 이겼어야할 경기가 78:78 동점으로 끝나고 3차 연장까지 가며 끝내 지고말았다. 대구 동양 프런트는 KBL에 항의를하고 재경기 승낙까지 받아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6] 결국 정태호 동양 단장이 경기시작직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승적 차원으로 재경기 포기와 5차전 결과를 받아들인다. 결국 그 6차전에서도 지면서 준우승.
  • 심용섭 전 단장 : 심단장 부임 후 팀은 온갖 운영상의 병크를 남발하며 암흑기를 활짝 열어젖힌다. 대표적으로 김승현 이중계약 파동(김승현항목 참조). 김남기 감독 계약 변경(시즌 중에 김남기 감독의 계약기간과 연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린다. 더군다나 김남기감독은 국가대표 전임감독으로 재직중이던 것을 오리온스가 억지로 빼왔던 감독이다). 이러한 병크들로 팀 순위는 심단장 부임 이듬해부터 10-9-10-10(십구십십)을 찍으며 마침내 연고지 이전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 연고지 이전 : 2011년 6월 14일 고양으로 연고지 이전 발표. 기존의 대구팬들도 분노할 뿐만 아니라 오리온스는 고양에서 1경기도 못 이기고 있다가 10월 28일, 7경기만에야 첫 승을 기록했고 결국 이 부진으로 인해 막판 분전에도 불구하고 2011-2012 시즌은 8위로 시즌을 마친다.
  • 어이없는 팀명 변경 : 2015년 9월 팀명이 바뀌었는데, 오리온이 두번 반복되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팀명을 변경했다(...). 사실 새로운 팀명을 팬들의 응모로 받겠다고 이벤트를 실시했었는데 거의 전부가 다 오리온 뒷통수즈라든지 오리온 배신즈, 고양 오리온 야반도주, 고양 오리온 패륜즈 같은 연고이전을 까는 이름들이었다.(...)

1.1.5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

  • SBS 스타즈 시절 : SBS 시절에는 챔프전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몇몇 시즌을 제외하면 중하위권에 머물렀으며 관중 흥행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 초창기 3시즌 : 연고지인 안양에 체육관이 없어서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과 의정부를 임시 홈구장으로 삼아야 했다. 이 셋방살이는 99-00 시즌에 끝나게 된다.
  • 안양 대림대학교 체육관 : 첫 연고지내 내 집마련이었지만 고작 1400명의 관중수용만 가능했다. 덕분에 이 시즌에 기록한 평균관중수는 KBL 역대 최저기록이 되었다(...). 이걸 막아보겠다고 플레이오프기간에는 수용규모를 훨씬 넘기는 무리한 관중동원으로 통로까지 꽉꽉 들어차게 만들어 안전문제로 언론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 KBL 초유의 몰수경기 : 2003년 12월 20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4쿼터 5분여를 남겨놓고 SBS의 외국인 선수 앤서니 글로버에게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된 것에 항의, 정덕화 감독이 선수들을 코트에 내보내지 않아 몰수패를 선언당한 것이다.
  • 2001-2002 시즌부터 2004년 3월까지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게 17연패를 당하였다.
  • KBL 역대 한 경기 최소득점 기록 : 2012년 1월 11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원정경기에서 41:52로 패배하며 한경기 양팀 합산 최소득점 신기록까지 깨지고 말았다.
  • 김일두의 귀화혼혈 선수 및 비주류대학 출신 선수(김시래) 비하 발언
  • 원하준 : 2009-10 시즌을 앞두고 실시한 귀화 혼혈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로 미국 이름은 케빈 미첼.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그가 한국에 온 계기였던 어머니가 이미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의욕이 꺾여있었다. 결국 한 시즌만에 미국으로 돌아갔고 박태양과 마찬가지로 5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KGC는 이로써 10개 구단 중 귀화혼혈 선수 덕을 가장 못 본 팀이 되었다.

1.1.6 울산 모비스 피버스

  • 최희암 감독 시절 : 부임하자마자 강동희, 김영만을 팔아먹은것도 모자라 성적마저 개판을 치고 말았다.
  • 전신 기아 엔터프라이즈와의 관계
  • 오토몬스 시절 초창기 마스코트 : 삼원색에 얼굴을 띈 마스코트였지만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 한때 오토몬스 초창기 홈페이지에서의 구단소개에서는 이 마스코트의 사진이 있었지만
  • 김동우 : 대학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2003년 전체 1순위 지명으로 모비스에 오게 되지만, 이후 프로 적응 문제와 부상 문제를 겪게 되면서 대학 때의 명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확고한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식스맨과 주전을 오가다 2011-2012 시즌 이후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하게 된다. 결국 최악의 1순위 지명으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 되었다.
  • 신정섭 : 프로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에 참여한 행위로 리그에서 영구제명을 당했다.

1.1.7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박수교 전 감독-단장 : 명문팀 기아를 깔끔하게 개박살낸 전력에도 불구하고 전자랜드의 감독으로 선임된 후, 전시즌 4강에 나갔던 팀을 역시나 깔끔하게 개박살 내주시며 2004-05 시즌 꼴찌로 이끌었다. 엽기적인 것은 이런 성적에도 되려 다음 시즌 단장으로 승진한 것. 단장이 되더니 역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제이 험프리스를 선임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는데, 이 감독은 선수와의 의사소통 미비로 결국 20경기 만에 짤림으로서 당시 역대 최단명 감독 타이틀을 차지한다. 이외에도 각종 퍼주기 트레이드를 남발하며 결국 2005-06 시즌 8승 46패로 역대 최다패 기록을 경신하며 박종천과 함께 감독도 아닌 시궁창 취급. 팬들은 이러한 화려한 업적을 기려 그에게 '수교본좌', '박수괴'라는 칭호를 내렸고, 팀에게는 '개그랜드'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 2005-2006 시즌 : 구단 역사상 빼도박도 못하는 최악의 시즌으로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뀐 끝에 8승 46패로 마무리. 이는 전에 언급한 박수괴 때문이지만. 참고로 이때의 46패는 역대 최다패 기록.
  • 박종천 전 감독 : 부임 후 1승 11패를 기록하며 단 12경기만에 사퇴, 같은 팀 제이 험프리스가 보유하고 있던 역대 최단명 감독 타이틀을 갱신한다.(...) 결국 그 시즌 팀은 꼴찌9위.(10위는 대구 오리온스)
  • 구단 사상 한 경기 최소 득점 기록 : 2014년 10월 26일 모비스 전, 48:72. 1쿼터를 19-12로 앞섰으나 2쿼터 12득점, 3쿼터 6득점, 4쿼터 11득점으로 처참히 무너졌다.
  •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래 챔피언결정전 진출 전무 : 유재학 감독 시절에는 2003~2004 시즌 1시즌만 올라갔고, 2000년대 중반의 암흑기를 거쳐 2009~2010 시즌부터 새 감독으로 부임한 유도훈 체제에서 2010~2011 시즌, 2012~2013 시즌, 2014~2015 시즌에 세 번이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도전했지만, 세 번 모두 실패했다. 이는 KBL 10개 구단 중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1.1.8 창원 LG 세이커스

  • 박종천 전 감독 : 김태환 감독의 뒤를 이어 2004-05 시즌 LG를 이끌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모략으로 김태환 감독을 몰아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결정적인 것은 이해 팀 성적.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9위를 기록하며 박종천 감독은 한 시즌만에 전격 사임. 이 해의 여파로 다음시즌인 2005-06 시즌에 신선우 감독의 부임에도 불구, 8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은 DTD였지만 PO탈락. 세이커스가 창단 이래 PO에 나가지 못한 시즌은 이 두 시즌을 포함 딱 다섯 시즌뿐이다. 다른 세 시즌은 99~00, 11~12, 12~13 시즌.
  • 송영진 : 97학번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받으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외국인 선수와의 대결을 위해 체중을 불린 것이 결과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며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2004-05 시즌이 끝난 뒤 현주엽이 FA로 영입되면서 보상선수로 지명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새로운 소속 팀에서는 부활에 성공했지만.
  • 퍼비스 파스코 : 2006-07 시즌 KTF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심판을 가격하며 즉시 퇴출+영구제명 콤보를 먹는다. 해당 시즌 우승을 노렸던 LG는 그대로 무너지며 PO와의 악연을 이어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대팀 장영재의 악의적 파울과 심판 편파판정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해봐야될 부분이다.[7]
  • 서장훈 : 2011~2012 시즌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8] 결국 소속팀 LG는 극심한 부진 끝에 겨우겨우 7위를 하게 된다. LG에서 이렇게 1시즌만 보낸후 KT로 이적했고 거기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은퇴를 하였다.
  • 전형수 : 2007~2008 시즌 부활하는 듯하여 FA계약을 맺었으나, 이후 주전은 커녕 식스맨자리를 전전하게 되어 먹튀로 전락해버렸다.
  • 데이본 제퍼슨 : 과거 자유계약제 시절에 뛰어도 충분히 통했을 만할 실력을 가졌다는 평을 받은 특급 외국인선수였고 실제로 13/14 시즌 창원 LG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일등공신이자 이 시즌의 진정한 MVP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9] 그러나 성실성 여부가 종종 논란이 되곤 했고 2014-15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국민의례 과정에서 혼자 건방지게 스트레칭을 하는 무례를 저지른데 이어 사과 기자 회견 직전 SNS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사진을 올린 것이 결정타가 되어 KBL에서 영구제명되었다.

1.1.9 전주 KCC 이지스

  • 2006~2007 시즌 : 2012~2013 시즌 전까지 KCC가 유일하게 최하위를 기록했던 시즌으로, 부상으로 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15승 39패라는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 서장훈 영입에 따른 이상민의 FA 보상선수 이적파동 : 2008-09 시즌을 앞두고 서장훈은 FA로 KCC로 이적하게 되었다. 서장훈이 KCC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팀의 레전드이자 대학교시절 호흡을 맞췄던 이상민과 함께 뛰기 위해서. 문제는 KCC의 보호선수 설정이었는데 당시 규정으로 보호선수는 FA영입선수 포함 3명만 설정할수 있다는 병맛 규정이 있었다. KCC는 임재현도 FA로 영입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설정할수 있는 보호선수는 한명. 근데 KCC에는 이상민뿐만 아니라 추승균도 있었다. '설마 나이가 많은 이상민을 데려가겠어?'하며 추승균을 보호선수로 택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0] KCC는 이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하승진을 지명하고 서장훈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전 시즌 성적인 10위에서 2위로 수직상승하는데 성공했고, 삼성 또한 전보다 성적이 크게 오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기에 팀전력 떼놓고 보면 윈윈이라고 할수 있다.[11] 그러나 트레이드해 온 서장훈은 시즌을 마친 후 하승진과의 공존문제로 인해 결국 인천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12][13]
  • 2012~2013 시즌 : 2006~2007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최하위의 성적을 냈다. 시즌 전 팀의 에이스였던 추승균이 은퇴하고 하승진공익근무요원 복무[14]로 팀을 잠시 떠나게 된데다 전태풍마저 규정에 따라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어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시즌 중반에 김효범을 영입하고 2월 초에 강병현도 전역하긴 했으나 안 그래도 전력이탈이 심한데 부상까지 많아서 결국 13승 41패의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며 2014~2015 시즌 이전까지는 최악의 시즌으로 남게 되었다. 그 와중에 전 시즌의 삼성과 바로 다음 시즌의 동부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 김민구 음주운전 사고
  • 2014~2015 시즌 : 2012~2013 시즌보다도 더 참혹한 성적을 냈다. 덤으로 2006~2007 시즌에 기록했던 10연패 타이 기록과 홈경기 12연패까지 당했다. 공익근무를 마친 하승진이 돌아오고 지난해 득점왕을 차지했던 타일러 윌커슨과의 재계약, FA 최대어였던 포인트가드 김태술의 영입으로 강력한 다크호스로 평가받은 만큼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던 김민구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시즌 아웃이 되면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용병 윌커슨은 기복이 심한 플레이에 최다 실책왕의 불명예 주인공이 되버렸고 정작 야심차게 영입한 김태술과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하승진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데다 이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까지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속절없는 부진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10년간 팀을 이끌어오던 허재 감독이 2015년 2월 자진사퇴하는 충격적인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허재 감독을 보좌했던 추승균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승격시켜 잔여 시즌을 치렀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구단 역대 최저 승률을 2시즌만에 갈아치우며 12승 42패,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0위는 팀 전력이 파탄나버린 모 구단 때문에 불가능
  • 전주실내체육관 우승 배너 : 다섯 번의 우승 중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은 전신인 대전 현대 시절 우승인데 마치 KCC가 우승한 것처럼 걸어놨다. 기아 시절의 역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모비스조차 97 시즌 원년 우승 배너만큼은 기아의 로고가 새겨진 것을 사용한다. 대전 팬들 입장에선 대전을 버리고 연고를 옮긴것도 모자라 우승 기록마저 빼앗아 간 셈.

1.1.10 서울 삼성 썬더스

  • 원년 꼴찌 기록 : 비록 21경기만 했던, 시범시즌과 다름없는 시즌이었지만. 이후 LG와 SK의 가세로 10개 팀 체제로 리그가 시작된다.
  • 1997-1998 시즌 : 청주 SK 나이츠와 홈경기에서 4쿼터에만 51점을 헌납하며 119-124로 역전패당한다. 이 두팀은 각각 9-10위를 달리고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꼴찌를 해서 드래프트 1순위를 차지하고자[15] 노력(?)했었는데 이때 삼성이 4쿼터부터는 아예 후보들을 보내는 수를 쓰며 고의적으로 탱킹을 시도하지만 그래도 이당시 SK 전력이 안습이라 접전이라 쓰고 병림픽을 펼친끝에(...) 레지 타운젠드와 드와이트 마이베트, 이 둘에게 40점 이상을 헌납하며 지고만다. 그리고 경기 끝나고 언론, 팬들에게 고의적 져주기, 승부조작이라는 비난을 들어야했다. 이 51점은 KBL 역사상 한 팀의 한 쿼터 최다 점수기록으로 남아있다.
  • 김상준 전 감독 : 2002-2003 시즌부터 상위권 비밀번호 555253466을 찍던 팀의 순위를 순식간에 꼴찌로 밀어넣으며 삼성의 암흑기를 열어젖혔다. 덤으로 구단 사상 최다 연패인 14연패 및 홈경기 14연패까지 기록했다.김상준 ㅅㅂㄹㅁ 시즌 전에 강혁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 시킨 뒤, 시즌 도중 이면계약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김승현을 영입하고 김동욱을 내주며 돌파구를 마련하는 듯 했으나 정작 김승현도 제 몫을 하지 못했었고 결국 첫 시즌에 13승 41패로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 시즌 후 자진사퇴함으로써 흑역사 확정.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불리며 팬들에게 돌상준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미친 듯이 가루가 되도록 대차게 까이며 이순철처럼 감독도 아닌 개쓰레기 금지어로 취급받는다. 다만 마지막 66을 찍을 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팀인 건 둘째치더라도 그 여파로 2012~2013 시즌에는 가까스로 6강에 들었지만, 2013~2014 시즌은 초반 부진 때문에 다시 꼴찌로 추락할 뻔 했고 결국은 8위로 마감하게 되었다.
  • 우지원 : 그가 삼성 썬더스에서 뛰던 2001-2002 시즌 삼성 썬더스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8위를 하였다. 그리고 서장훈의 FA 영입 때 보호선수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보상선수로 지명되자마자 모비스로 트레이드되었다.
  • 2012-2013 시즌 플레이오프 : 전자랜드와의 6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3전 전패로 광탈. 보너스로 포스트시즌 7연패 기록은 덤. 그래도 이시기엔 플레이오프라도 진출해서 흑역사라 하기엔 좀 묘하다.
  • 2014-2015 시즌 : 2011-2012 시즌보다도 더 참담한 성적으로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상민을 새 감독으로 선임하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시즌 전부터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팀 전력이 얇아 최하위 후보로 점쳐졌는데 시즌이 개막되자 예상했던대로 약한 팀 전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는데 20점차 이상 패한 경기도 많았을 뿐더러 2014년 12월 23일 전자랜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무려 54점차로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심지어 농구팬들은 이상민 감독을 향해 극한직업 촬영중이라며 안쓰러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돌상민이라 부르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김준일을 발굴해낸 게 위안거리였지만 이동준을 비롯한 기존 선수들이 따라주지 못했고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리오 라이온스를 내주고 찰스 가르시아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지만 제자리걸음만 연속하여 용병 농사도 실패했다. 결국 11승 43패라는 구단 역대 최저 승률을 경신하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울기로 전락했다.
    • 프로농구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 (2014년 12월 23일 전자랜드 전 46-100, 54점차,전반 득점이 전자랜드의 1쿼터 26득점과 같으며 3쿼터에 단 7득점)
  • 프로농구 역대 특정 구단 상대 최다 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2년 1월 10일 홈경기에서 이긴 후 2015년 12월 17일 원정경기에서 한 점차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모비스를 상대로 23전 전패를 기록했다.

1.2 기타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 농구 대표팀 : 역대 최악의 올림픽 농구대표팀. 모든 경기에서 패하여 본선 참가국들 중 최하위(12위)를 기록. 내용 자체도 최악이어서 첫 경기인 호주전에서 22-44로 리바운드 수에서 2배 차이로 밀리는 등 대회 내내 제공권에서 압도당했다. 이 때문에 대회 전부터 '드림팀'으로 불렸고 실제로 전승으로 우승한 당시 미국 대표팀에 빗대어 '나이트메어' 팀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화룡점정은 바로 선수들의 음주파문으로 대회 기간 중 정재근 생일파티를 하면서 일어났다. 8월 7일 대한농구협회최인선 감독과 허재에게 6개월 선수자격정지 처분을 내렸고[16], 김남기 코치와 정재근은 3개월 자격정지, 이상민과 협주엽은 근신처분, 그리고 기타 8명에게는 주의환기처분을 내렸다. 이후 올림픽에 단 한번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듬해 프로 출범과 맥을 함께한다.
  • 연세대학교 vs 삼성전자 농구단의 1994~95년 농구대잔치 준결승 경기 : 삼성전자의 문경은, 이창수, 박상관 등은 팀의 선배인 김현준의 은퇴를 명예롭게 장식한다는 이유로 당시 서장훈이라는 강력한 센터로 중무장한 연세대학교를 농구대잔치 8강전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후배인 서장훈을 상대로 K-1수준의 더티한 반칙을 일삼았으며 특히 박상관은 리바운드하고 내려오는 서장훈의 뒷목에 강타를 먹여서 서장훈이 그자리에서 목 골절상을 당하고 실려나가고 만다. 결국 이 사건 덕에 삼성전자가 연세대학교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지만 기아자동차에게 말 그대로 개발살이 난다.[17] 서장훈은 이후 삼성에 안 좋은 감정이 생겼으나 공교롭게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었을 때(2002~2003 시즌을 앞두고) 제 발로 삼성으로 갔다. 그 여파로 이창수와 박상관은 삼성을 떠나야 했다.
  • 정상헌 : 재능은 뛰어났지만 불성실한 태도로 커리어를 망친 선수. 경복고 시절 방성윤의 라이벌로 꼽혔지만 고려대 진학 후 잦은 무단 이탈로 말썽을 일으켰다.[18] 그래도 재능을 높이 산 오리온스가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으나 또 무단 이탈하면서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이후 모비스로 트레이드되어 유재학 감독 밑에서 개과천선하나 했지만 상무 전역 후 훈련에 무단불참하면서 다시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면 그냥 흔해빠진 몰락한 선수 취급을 받는 정도겠지만...2013년 처형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2014년에 징역 20년이 확정되었고 2033년까지 사회 복귀가 절대 불가능해짐으로써 농구인으로서의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인생까지 완전히 영구제명되었다.
  • 삼성생명 : 2003 겨울리그 종료 후 정은순 강제은퇴. 그 이후 만년 준우승팀으로 전락했고 2004년 당시 코칭스태프였던 박인규 정미라 둘 다 경질되었다. 박인규는 그 이후 프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고 정미라는 2009-10시즌 금호생명 코치로 갔으니 1년만에 물러났는데 2012년 여자농구가 올림픽 못 가게 한 원흉이 되었다. 2011년에는 박정은, 이종애 계약 시 샐러리캡을 위반하여 드래프트 지명권을 박탈당했다.
  • 정덕화 : 청주 KB 스타즈 감독 시절 김영옥에 음주를 강요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어설픈 WKBL이 은폐에만 급급했다.
  • 진성호 :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시절 특유의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조성원, 박상관 등을 길러내며 대학농구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지녔으나, 1998년 현대산업개발 레드폭스 감독 부임 이후 1999년에 소속 선수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폭행을 저지른 바 있었고, 이어 2000년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당시 금호생명과의 경기 전반전에서 밀리는 바람에 락커룸에서 진신혜 선수를 구타해 고막을 터뜨린 사실이 발각되자 구단측이 이를 은폐하려다 팬들의 반발과 KBS의 단독보도에 힘입어 구단측에 의해 자숙차원에서 경질했으나 여름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복귀하자 결국 대한농구협회 측은 제명조치했으나 이듬해에 제명이 풀려 중국에서 감독직을 하다가 이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고교농구 승부조작 조사 회피 등의 병크를 저지르다가 2012 런던 올림픽 본선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박명수 : 춘천 우리은행 한새 감독 재직 중 2007년 4월 미국 전지훈련 도중 소속 팀 선수 성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 판결을 받고 한국여자농구연맹에서 영구제명 조치를 당했다.
  • 김광은 : 2011년 12월 27일 부천 신세계 쿨캣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라커룸에서 박혜진 선수의 목을 조르고 밀치는 등 폭행 논란으로 자진 사퇴하며 박명수 전 감독에 이은 우리은행 흑역사 감독 2호로 등극되었다.
  • 정재근 : 2014년 연세대학교 감독 시절 제1회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 고려대학교와의 결승전에서 심판을 폭행하는 바람에 5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프로 선수 시절에도 폭행 등 소소한 흑역사가 다수 있었다.
  • WKBL 쫄쫄이 유니폼 : 1997-98 시즌 당시 여자 실업농구 일부 구단에 시범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여 한국여자프로농구 초창기에 5개 프로 구단과 국가대표팀에 공식 채택된 유니폼 유형으로 수영복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형으로 선수들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유니폼이었다. 선정성 논란과 선수들의 불편 호소로 인하여 2001년 겨울리그부터 폐지.
  • 첼시 리 : 사상 초유의 공문서 위조 사건의 주인공. 조모가 한국인이라는 주장을 하여 귀화선수로 등록하고 대표팀 승선을 위한 특별귀화 절차까지 밟으려다가 법무부에 의해 증빙서류를 위조한 정황이 발각되었다. 이미 농구계 안팎에서 첼시 리를 의심하는 시선들은 많았으나 이를 애써 무시한 WKBL 사무국과 하나외환 농구팀의 합작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2 미국

2.1 NBA

  • 1986년 NBA 드래프트 : NBA 드래프트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 이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 몇 명이 불운을 맞이했다. (대표적으로 1라운드 2픽으로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된 렌 바이어스 (메릴랜드대)의 약물중독 사망, 1라운드 3,6,7픽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피닉스 선즈댈러스 매버릭스에 각각 지명된 크리스 워시번 (NC 스테잇), 윌리엄 베드포드 (멤피스 주립대(현 멤피스대)), 로이 타플리 (미시건대)의 약물 과다복용 등.)
  • ABA : NBA에서 대놓고 흑역사로 묻고싶어하는 리그. 1967년에 NBA와 경쟁하기 위해 만든 리그로 3점 슛, 선수들의 별명, 치어리더, 덩크 콘테스트, 얼리 엔트리등 현대 농구판에 기여한 것이 많은 단체이고 1960년대까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독립 리그중 가장 현재의 단일리그와 치열하게 경쟁을 했던 리그다. 하지만 ABA는 결정적으로 구단이 가난했기 때문에 NBA의 돈과 언론공세를 이겨낼수 없었고 결국 1976년도에 NBA에 합병당한다. 합병 과정에서 덴버 너기츠, 뉴저지 네츠, 인디애나 페이서스,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편입되었지만, 합병 이후 NBA 인사들의 ABA에 대한 대접은 박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ABA출신인 샌안토니오가 5회 우승을 이루고 조용한 강팀을 유지하고 있다.
  • 팀 도너히 :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재직했던 심판. 개인적으로 진 도박 빚을 갚으려고 자기가 심판을 담당한 경기에 돈을 걸고 승부조작을 했다. 그동안 선수나 감독이 자신이 결부된 경기에 돈을 걸고 승부조작을 한 경우는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가장 공정해야할 심판이 자신이 나서는 경기에 돈을 걸고 승부조작에 나섰다가 적발된건 초유의 사태로 리그 전체의 신용과도 결부될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결국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며 당연히 리그에서는 영구제명. 나중에 2002년 LA 레이커스와 새크라멘토 킹스 간의 서부 결승 6차전 때 승부조작이 있었음도 인정하면서 엄청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1.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1994/95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12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라트렐 스프리웰 : 1997년 12월 당시 감독인 PJ 칼리시모가 자신을 꾸짖는 것에 반발, 목을 조르는 사고를 치면서 구단은 남은 계약을 해지한다. NBA는 스프리웰의 선수 자격을 1년동안 정지시켰으나 선수협의 반발과 적극적인 중재로 징계가 경감되었다.
  • 2015/16 시즌 NBA 정규시즌 최다승 기록인 73승 9패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고 NBA 역사상 최초의 만장일치 정규시즌 MVP 스테판 커리를 선두로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상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역사상 최초로 파이널에서 3-1 리드를 뒤엎고 내리 3연승으로 7차전 접전끝에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팀 역사에 최악의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2.1.2 뉴욕 닉스

  • 돈 넬슨 前 감독 - 재임 기간 동안의 성적은 34승 25패로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나, 패트릭 유잉-샤킬 오닐 트레이드 요구로 결국 구단 내에서 반발이 심해져 시즌 도중에 해임당했다.
  • 막장 GM 2인조
    • 스캇 레이든 - 뉴욕의 심장인 패트릭 유잉을 멋대로 트레이드시켰다.
    • 아이재아 토마스 : 전 단장. 선수시절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대표하는 전설이었으나 단장으로서의 능력은 항목 참조.

2.1.3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역대 최소 득점 경기 참사 : 1950년 11월 22일, 당대 최강의 팀이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와 조지 마이칸을 상대하던 포트웨인 피스톤즈는, 어떻게 보면 기발하면서도 기가 막힌 작전을 펼친다. 무조건 시간 끌기. 6-10의 장신에 기술도 훌륭한 마이칸이 공을 오래 잡을수록 승산이 없다고 여긴 피스톤즈는 공격권을 얻을때마다 무조건 시간을 끌었고, 결국 이 경기는 관중들의 야유 속에 19:18이라는 어처구니없이 낮은 점수를 내고 피스톤즈의 승리로 끝난다. (시간을 계속 끌다 막판에 기습적으로 결승점을 득점) 양팀 모두 단 네 골을 넣었고(나머지 득점은 모두 자유투) 농구라고 보기도 힘든 최악의 졸전에 경악한 NBA 관계자들은[19]결국 1953-54시즌부터 "한 팀이 공격을 게시하고 24초안에 슛을 하도록"하는 샷클락을 도입하게 된다. 이 제도는 nba 뿐 아니라 농구 자체에 이식되어 현재 제도화된 모든 농구경기에서 이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잘되긴 했지만 경기 자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하는 프로스포츠의 원래 목적은 개나줘버린 쓰레기 경기.
  • 조 듀마스 단장의 삽질[20]

2.1.4 마이애미 히트

  • 2011 NBA 파이널 : 이미 시즌 전부터 르브론 제임스의 The Decision 파문으로 생긴 잡음으로 시끄러웠고, 리그 탑플레이어 3 힘으로 결승까지 오르긴 했지만 전문가들이나 팬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에이스가 시리즈 내내 침묵하는 등 후반 경기운영이 흔들린 반면 상대팀더크 노비츠키를 필두로 중요할 때마다 클러치샷을 성공시키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히트는 우승에 실패한다. 단순히 여기서 그쳤으면 흔히있는 패배에 불과했겠지만 시리즈 도중 웨이드제임스가 감기에 걸린 노비츠키를 카메라 앞에서 조롱하는 Mocking Dirk 사건이 터지고 시리즈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제임스가 팬들을 향해 "니들이 뭐라 떠들어도 난 잘먹고 잘사니 찌질대지 말고 현실로 돌아가라"라는 식의 Real World 발언으로 초대형 어그로를 끌면서 실력에서도 매너에서도 진 최악의 시리즈가 되었다.
  • 2014 NBA 파이널 : 시리즈 평균 14점 차, 합계 70점 차로 파이널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라는 굴욕을 당할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 끝에 우승에 실패했다. 그것도 2차전에서 2점차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해서 수치가 저렇게 나온 것이지 그 외 경기에서는 평균 15~20점차 정도였고 경기 도중 30점 정도 뒤진 적도 있었으며 가비지 타임이 이미 후반 시작할 때 나오기도 했다. 시즌 후 르브론 제임스친정팀으로 돌아가면서 빅3는 해체되었다.

2.1.5 멤피스 그리즐리스

  • 밴쿠버 그리즐리스 시절

2.1.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 조 스미스 이면계약 파동 : 결국 계약은 모두 무효가 되고(래리 버드 조항 불인정) 미네소타는 3년동안(원래 5년간 1라운드 박탈이었는데 감형되었다.)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박탈당하고 350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21]

2.1.7 보스턴 셀틱스

  • 렌 바이어스:보스턴이 1986년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 지명했으나,드래프트 며칠 후 약물중독으로 사망한채 발견되었다.
  •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까지의 암흑기
    • 레지 루이스 : 셀틱스의 빅3(버드-맥헤일-패리쉬)를 대체할 만한 차세대 스타였지만, 199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샬럿전에서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되었지만, 그해 7월 27일에 연습 도중 또다시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사망. 이것은 셀틱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2.1.8 브루클린 네츠

  • 뉴욕/뉴저지 네츠 시절
    • ABA 시절의 잦은 경기장 이전 : 첫해 네츠의 홈구장은 뉴저지주 티넥에 위치한 티넥 무기고(진짜 무기고 맞다!)였다. 그러나 ABA 플레이오프 기간에 뉴저지주에서 서커스단이 먼저 구장 사용허가를 따내는 바람에 플레이오프를 열 구장이 없어서 플레이오프 출전이 금지된 흑역사까지 있을 정도.(...) 그래서 아메리칸스는 뉴저지에선 못해먹겠다고 GG치고 다른 곳을 물색하던중 뉴욕 주 카맥에 위치한 롱 아일랜드 아레나로 옮긴다. 이 연고이전을 통해 뉴욕 주에 들어온 아메리칸스는 팀명도 '뉴욕 네츠'로 변경했다. 아메리칸스 시절과 뉴욕 초창기에는 여느팀이나 그렇듯 고전을 면치 못했고, 뉴저지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여러 문제로 뉴저지 재이전조차 실패하고 중간에 홈구장을 한번 더 옮겨야 했던 안습의 네츠는 로이 보 구단주가 1972년 NHL 뉴욕 아일런더스까지 창단하면서 낫소 베테랑스 메모리얼 콜로세움으로 홈구장을 같이 쓰게 되어 방랑팀 상황은 해결한다.
    • 1976년부터 2001년까지의 암흑기 : 통칭 어빙의 저주.
    • 에디 그리핀 - 시튼홀대 출신으로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7픽으로 지명되었지만, 휴스턴 로켓츠에 지명된 리차드 제퍼슨(1라운드 13픽, 애리조나대), 제이슨 콜린스(1라운드 18픽, 스탠포드대), 브랜든 암스트롱(1라운드 23픽, 페퍼다인대)와 맞바꾸어지면서 명암이 갈리기 시작한다. 드래프트되었던 3명은 쏠쏠히 활약했지만, 그리핀은 프로생활 내내 술과 마약으로 갖은 말썽을 일으키다가 2007년 8월 27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1.9 샬럿 호네츠

  • 前 구단주 조지 쉰 : 1999년부터 구단 여직원과 관련된 성추문이 불거졌고, 결국 팀이 2002년에 뉴올리언스로 이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역사는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항목을 참조.
  • 2011~2012 시즌 : NBA 사상 최악의 성적을 냈는데 한 시즌동안 꼴랑 7승 59패 승률 0.106을 기록하며 한 시즌 사상 최저 승률을 기록했다.

2.1.10 샌안토니오 스퍼스

  • 제리 타캐니언 前 감독 : 1990년에 UNLV(네바다 대학교 라스베가스 캠퍼스)를 전국대회 챔피언에 올려놓은 명장이었고 1992년에 스퍼스 감독으로 NBA에 진출하면서 선수들과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팀워크를 망칠 악동도 없었으나, 자신의 지도 방식과 프로에서의 방식이 안 맞아서 1992/93 시즌 초반에 9승 11패라는 불명예를 안고 경질되었다.

2.1.11 시애틀 슈퍼소닉스

2.1.12 시카고 불스

  • 1998~2004년까지의 암흑기

2.1.13 올랜도 매직

2.1.14 LA 레이커스

  • 디트로이트 겜즈 : 창단 당시의 팀명. 4승 44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1시즌만에 미니애폴리스로 연고이전했다.
  • 2014~2015시즌 : 겨우 시즌 한달만 지났음에도 구단 최악의 흑역사 확정.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에 내년까지는 피할 수가 없다.
  • 2015~2016시즌 : 위의 시즌보다 더 최악. 한 시즌이 전부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 행사로 소모되었다.

2.1.15 LA 클리퍼스

  • 창단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의 암흑기 : 단 한번도 50승을 넘은 적이 없었다.....
  • 前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 : 인종차별 발언으로 구단주 자격이 정지되었다. 이후 스티브 발머가 구단을 새로 인수한다.

2.1.16 애틀랜타 호크스

  • 대주주 브루스 레벤슨의 인종차별 발언 : 인종차별 사건 시즌 2.

2.1.17 워싱턴 위저즈

  • 길버트 아레나스 : 2010년도에 총기 반입으로 큰 사고를 치고 만다. 시즌아웃.
  • 이전 명칭들
    • 시카고 패커스(Packers), 지퍼스(Zephyres) - 각각 포장업자, 산들바람이라는 뜻인데, 농구팀 이름치고는 나약한 이름이었다. 그린베이 패커스는 강팀인데?
    • 워싱턴 불리츠 : 이름 그대로 총알처럼 빠른 농구를 하자는 의미이지만, 팀 명칭이 총기 사고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1997/98시즌부터 팀명이 위저즈로 바뀌었다.

2.1.18 인디애나 페이서스

  • 앤 메이어스 - NBA에 처음으로 입단을 시도한 여자 농구선수. UCLA 출신인 그녀는 1979년에 페이서스에 입단하여 1년간의 계약을 맺었으나, 사흘 간의 루키 캠프에서 통과를 못해 입단 7일만에 퇴출되어 이후 여자농구에 몸담았다.
  • 오번 힐의 난투극 : 2004년 12월 20일 디트로이트와의 경기 중 론 아티스트벤 월러스와 몸싸움을 벌였고 관중석에서 맥주컵이 날오자 관중석으로 난입, 난투극으로 확산되면서 45초를 남겨두고 버저가 울리지 못한 채 97대 82로 인디애나가 승리했으나 아티스트는 잔여경기 출장정지의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22] 그리고 레지 밀러는 커리어 마지막 우승기회를 이 사건으로 놓치고 말았다.

2.1.1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르브론 제임스The Decision  : 르브론 제임스 커리어 최악의 실수.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건 팬들도 쉴드를 포기했다. 한편 르브론은 2014년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뒤 2016년 NBA 파이널 우승으로 팀에 트로피를 선물했다.

2.1.20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샘 보위(Sam Bowie) : 198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유망주였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했다. 드래프트 때 상위지명 심지어는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도 기대를 저버리고 소리소문 없이 은퇴한 선수들도 많은데 이 사람이 유독 흑역사로 치부되는 이유는 이 사람 바로 다음에 지명된 1라운드 전체 3순위 선수 때문이다. 그러면 왜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자는 흑역사 취급을 안 받냐고? 그 이유는... 그 선수마저 흑역사로 취급받는다면 현재까지 NBA에서 뛰었던 모든 선수들이 단 한 명만 빼고는 전부 흑역사가 되어야 한다.
  • Jail Blazers 시절 : 이 팀의 스타급 선수 몇몇이 팀원들끼리 싸우기, 심판과 싸워서 테크니컬 파울 먹기, 마리화나 피우기, 술먹고 운전하다 경찰에 체포되기...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구설수를 치자, 포틀랜드 팬들은 그들을 교도소 블레이저스(Jail Blazers)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붙였다.
  • 그렉 오든 : 위 84년 드래프트에서 저질렀던 짓을 똑같이 저질렀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1.21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1972~73시즌 : 9승 73패, 승률 0.109. 이는 NBA 역대 최소 성적(82경기 정규시즌 기록상에서만)이다.[23] 73패 역시 NBA 최다패 기록이다.
  • 2014~15시즌 : 2014년 12월 2일까지 17연패를 기록했다.
  • 2015~2016시즌 : 개막 18연패 최다 타이, 전 시즌에 이어 28연패로 미국 프로 스포츠 최다 연패. 신인 자릴 오카포는 길거리에서 루저라고 조롱받자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 샘 힌키 現 단장

2.1.22 휴스턴 로켓츠

  • 1995/96시즌부터 2002/03 시즌까지 착용했던 유니폼과 엠블럼 : 당시 트렌드에 맞추어 만들어졌으나, 찰스 바클리에 의해 유치하다고 대차게 까였다.
  • 스카티 피펜 : 항목 참조.
  • 찰스 바클리 : 팀 내의 모두까기 인형.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2 대학농구

  • Fab 5 : 1990년대 초반 강팀이었던 미시건 대학교의 뛰어난 주전 5명(크리스 웨버, 주완 하워드, 제일런 로즈, 지미 킹, 레이 잭슨)을 일컫는 호칭이었으나, 2002년 들어 이들과 관련된 금품수수 등 온갖 비리가 드러나면서 1991/92 시즌부터 1998/99 시즌(1992, 93년 전국 토너먼트 준우승 포함)까지의 모든 기록이 삭제되었다.
  • 존 칼리파리 감독의 부정행위들
  • 2015년 시라큐스 대학교 스캔들 : 2014-15시즌 도중에 2001년부터 10여년간 발생했던 학업 미수행, 추가 부수입, 약물 검사 정책 미이행 등 여러 가지 규정 위반 사항이 발각되면서 인해 108승 기록 말소, 향후 4년간 3명씩 총 12명의 장학생 발탁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짐 베이하임 감독도 9경기 동안 벤치에 앉지 못하는 징계를 당했다.
  • 그 외 수많은 부정행위 사건들
  1. 포틀랜드 C.J.맥컬럼의 형이다. 동생과 반대로 NBA 문턱도 못갔다.
  2. 경기시간을 12분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감독 및 여론의 반발로 보류하였다. NBA도 경기당 6~70점대 득점이 나올 정도니까.
  3. 코리아텐더 전체로 따지면 단 120경기 만에 KTF에 매각되었다.
  4. 이는 KBL 사상 최초로 6위 팀이 6강 PO에서 3위팀을 3전 전승으로 이긴 첫 기록이다.
  5. 샷클락 24초 기계만 돌아가고 경기시간이 멈춰있었다.
  6. 파이널 6차전이 불과 몇시간 뒤였다. 그리고 재경기에서 동양은 5차전 결과 무효, 지금 6차전으로 예정된 경기를 그대로 5차전으로 치뤄야한다는 의견이었지만 TG에서는 5차전 무효는 받아들이되, 곧 벌어질 6차전도 취소시킨뒤 5차전 경기도중 갈비뼈 부상을 당한 허재가 다 완쾌되고나서 원주에서 5차전을 다시해야한다는 무리수주장때문에 여기서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7. 그래도 상대팀 선수 + 심판을 코트에서 가격한 것은 어떻게 봐도 용납될 만한 일은 아니다. 정확한 순서는 장영재의 파울에 흥분하며 장영재의 목을 밀쳐 쓰러트린 후 팀 동료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에게 다가가 심판마저 밀쳐 넘어뜨린다. 이후 코칭스탭 및 선수들이 말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더 난동을 부렸을 상황.
  8.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오정연과의 이혼 소송까지 있었다.
  9. 이 당시 외국인선수상이 폐지된 상태였고 정규리그 MVP는 오로지 국내선수들에게만 준다는 것이 기자들의 불문율이었다. 그 결과 13/14 시즌 정규리그 MVP는 문태종이 수상하였다.
  10. 사실 삼성은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데려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달라고 했으나 KCC에서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KCC에게는 잘 된 일이었지만.
  11. 물론 이상민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도 보호 못하는 KCC과 KBL의 거지같은 행정이 최악의 형태로 드러난 점에서 흑역사인 것은 맞다.
  12. 서장훈이 트레이드된 배경도 단순히 "팀내불화"라고 하기엔 사정이 복잡하다. 2008 시즌 후 KCC는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하승진을 지명했는데, 처음에는 서장훈과 하승진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었기에 둘다 보유하려했다. 그러나 KBL에서 가장 크고, 가장 느린 두 선수가 동시에 뛰는건 불가능했고, 따라서 두 선수의 출장시간이 크게 줄었다. 이에 베테랑인 서장훈이 불만을 표하자 팀은 당연히 더 젊고 신체조건이 월등한 하승진을 택했고, 서장훈을 트레이드한것. 감독인 허재도 방송에 나와서 서장훈의 의견을 존중하여 트레이드를 했다고 인증하기도 했다.
  13. 예전 편집에서는 "서장훈"이란 선수 자체가 여기 흑역사 항목에 올라와 있었는데 서장훈 fa영입과정이면 몰라도 서장훈이란 선수가 이 항목에 오를 이유는 없다. 위에 언급되었다시피 서장훈 영입 이후 KCC는 10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으며 그가 트레이드된 것은 그 다음 시즌이다. 팀내 불화 역시 서장훈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승진과 공존이 힘든 상황에서 팀이 더 젊은 하승진을 택한 것이다(서장훈이 그냥 후보처지를 받아들이면 되지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가 까마득한 후배 때문에 고작 20분 출장하는 건 인적자원 측면에서도 낭비다. 초고액 연봉자를 모셔다 놓고 벤치자원으로 쓰는 정신나간 팀이 대체 어디있겠는가? 실제로 서장훈은 트래이드 이후 전자랜드를 플옵으로 이끌었으며 이후 전랜이 문태종과 함께 황금기를 누릴때 MVP후보로 언급될만큼 뛰어난 선수였다). 더군다나 서장훈이 팀에서 깽판을 친 것도 아니었다(뛰어난 선수가 기량에 걸맞는 출장시간을 받지 못할때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를 영입한 KCC의 성적이 상승한데다, 고작 한시즌 좀 넘게 뛰긴 했지만 트레이드될 때 강병현이란 훌륭한 자산을 남겨준 서장훈이 흑역사 항목에 있는 건 상당히 실례다. 이전 작성자는 아마 "그 난리를 치고 영입했는데 한 시즌도 못 뛰고 팀내불화 일으키고 트레이드됐으니 민폐"라고 착각한 모양인데, 실제로 한 시즌 이상 뛰었고 출장시간 부족으로 인한 불화는 서장훈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1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사실 하승진의 키는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면 당연히 면제였지만 병역 기준이 점점 강화되면서......
  15. 당시 나오는 선수 중 최대어가 무려 현주엽이었다.
  16. 허재는 몇 개월 후 술로 인해 사고를 치게 되는데,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체포 후 포승줄에 묶이는 망신을 당한다.
  17. 참고로 '목장훈 사건' 즉, 서장훈이 목에 보호대를 차게 된 계기는 이날 부상이 아니라 김주성 항목에 나와있는 주성타 때문이다.
  18. 단 재능하나는 무시무시해서 무단이탈뒤 복귀할때 연습량 부족에도 상관없이 경기때마다 엄청난 활약을 한다.
  19. 당시는 생긴지 얼마 안되던 NBA가 인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성과가 조금씩 나오던 시기였는데 이 사건이 찬물을 확 끼얹는다. 이 경기의 임팩트는 고작 한 경기 때문에 농구 본연의 규칙을 고쳐야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20. 2003년 NBA 올해의 경영자에 선정될 정도로 배드보이즈 시즌 2의 구축까지는 성공적이었으나, 해체 후 팀 재건 과정에서 실착을 연발했다. 2014년에 사장에서 사임했다.
  21. 이 계약 파동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국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나비효과를 부른다. 1997년 울브스는 젊고 유망한 스타 케빈 가넷을 놓치지 않기 위해 6년 1억2천만불이란 초대형 계약을 맺은 참이었다. 이로 인해 자유계약 시장에서 거물급 선수를 영입하기 어렵게 된 울브스는 드래프트를 통해 전력보강을 할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력보강을 통해 장기계약한 케빈 가넷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편법을 썼다가 걸렸는데, 1라운드 드래프트픽 박탈로 유망한 신인을 못 뽑으면서 생기는 전력의 균열은 2000년대 중반에 한계를 보이며 팀이 무너지고 만다. 이를 극복하고자 월리 저비악이나 트로이 허드슨, 마이크 제임스 등 평범한 선수들을 잡아두거나 자유계약에서 데려오기 위해 과도한 연봉을 주는 무리수까지 뒀고, 이로 인해 더욱 팀이 약해져 가넷이 결국 2007년 팀을 떠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참고로 앞서 언급한 초거대 계약은 04년에 끝났고 이후 가넷은 0자신이 받을수 있는 최대치에서 거의 연간 천만불 가까이를 포기하고 5년 재계약을 한 상태였다. 근데 이 돈으로 뻘계약이나 해대니...) 만약 드래프트를 통해 꾸준히 전력보강을 해서 로스터 보강을 충실히 했다면 가넷이 최전성기를 원맨팀에서 다 보내는 일도, 이에 실망해 그가 결국 떠나는 일도, 이로 인해 10년 가까이 리빌딩을 하면서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전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22. 스티븐 잭슨 30경기, 저메인 오닐은 25경기 출장정지. 맥주컵을 던진 관중은 영구 출입 금지 조치.
  23. 2011~12 시즌에 샬럿 밥캣츠가 7승 59패 승률 0.106을 갱신했지만, 이는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이라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