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국가 파시스트당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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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아돌프 히틀러

1 개요

자신들의 딸이 강간당해도 저항하지 않는 국민들을 어찌하란 말인가. 국가사회주의 이념은 너무 고귀해 독일국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1945년 괴벨스-

분노와 광기의 이데올로기.

극단적인 권위주의,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를 내세우는 정치 이념. 전체주의의 대표격인 사상이다. 정확히는 1919년 이탈리아의 B.무솔리니가 주장한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 사상 및 운동을 말한다. 일본북한에서는 파쇼(내지는 파쑈)라고 말하는데, 원래 파시즘이란 단어의 유래가 19세기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정치 결사체인 파쇼의 사상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자 파쇼(Fascio)의 당원들이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을 일으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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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Fascism)이란 단어의 근원은 파시즘의 상징이기도 한 속간(束桿)에서 비롯되었다.[1] 고대 로마시절 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들고 다니던 것으로 라틴어로 파스케스(Fasces)'라 불리며,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했다.[2] 좌측에 이탈리아 국기 위에 그려진 도끼와 나무다발이 같이 묶여있는 것이 파스케스다. 20세기 근대 이탈리아에서 농업 협동 조합노동조합등을 의미한 단어인 파쇼(Fascio)라는 단어와도 연관이 있다.

파시즘이란 사상은 개인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무조건 우선시하고, 결속을 통한 힘을 강조한 사상이었기에, 파스케스는 그 상징이자 이름의 유래로서 매우 적합했다.

3 사상

이론적으로서 정통 파시즘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과 구분하는 요소는 정신적 고귀함이므로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르게 본다는 데서 로크의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는 맥을 달리한다. 자유주의의 첫번째 원칙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이고 공산주의는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의 경제적 탄압을 끝내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공산주의를 이룩하는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둘은 물질적인 것을 중요하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목표는 평화와 풍요가 첫번째 목표지만 파시즘은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를바 없기에 인간은 정신적인 가치를 첫번째 목표로 한다. 비슷하게 유심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원론적으로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 개체이며, 개개인은 각자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외부적인 기관들과 물질의 억압을 끊어내야 한다는 아나키즘의 인간관과 오히려 사상적으로는 비슷하다.

이게 정치의 차원으로 들어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서로 극단적으로 척을 지게 된 건 아나키스트들은 저 배를 달리 하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양자의 모태인 계몽주의의 인권, 민주주의, 만민평등 등의 관념을 수용하고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간 반면, 파시즘은 오히려 근원인 사상적 반계몽주의를 정치적 차원의 반계몽주의로 밀어 붙혔기 때문이다.

알프레도 로코(Alfredo Rocco,1875-1935)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는게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는 로크가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정부를 설립한다는 것과 마르크스가 노동자가 부르주아의 사회를 끝내고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즉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다는 사상과는 정 반대되는 사상이다. 사회가 인간을 형성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것이 정신적인 가치라면, 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니체의 상대주의와 초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니체는 도덕적 진리는 없고 상대적 가치들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상대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의 다양성의 존중을 주장했다고 볼수 없다. 이러한 존중역시 결국엔 하나의 가치일 뿐이며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했을 때 나오는 결과는 어떠한 판단도 불가능한 절대적 혼돈일 뿐이다. 이 상태의 인간을 니체는 바람직한 상태라고 보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기에 이를 지지할리는 만무하다. 니체는 이러한 상태에서 '초인'이 등장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파시즘은 이러한 사상을 빌려서 국가, 즉 사회가 이러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국가와 사회는 특정한 하나의 국가와 사회를 지칭하지 않는다. 궁국적 목표는 정신적인 가치의 달성이기 때문에 이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국가와 사회를 가지고 있는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잘 알려져 있듯이 니체가 독일민족에 대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도) 니체와 파시즘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기도 한데 니체는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며 국가가 이러한 가치들을 대변하거나 만들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시즘은 국제화와 세계화를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한다.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공통점들은 언어, 사상, 인종등이 있을수 있는데 한국인과 중국인의 공통점은 부분적 사상(유교)와 인종으로 줄어든다. 여기서 국가 하나를 더한다면 공통점은 더 줄어들고, 더하면 더할수록 계속 줄어들게 된다. 결국 끝에 남는것은 경제적 이익이다. 파시즘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파시즘은 공산주의(제n인터네셔널)와 자본주의(세계시장)와 달리 세계화에 반대한다.

이를 정리하자면 파시즘은 세계적 민족주의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파시즘은 정신적인것, 문화의 상대성, 시민의 의무, 이상주의를 지지기 때문에 비사회주의 좌파는 다소 파시즘적이라고 볼수도 있다. (mindblowing) 일본과 한국의 우파또한 파시즘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치적 파시즘(일본제국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체사상 이 나라들은 좌우가 바뀐거 같다.
전체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결합이 파시즘이란 데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 요소가 거의 없었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사례를 들어 반론이 제기된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파시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에서 파시즘을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집단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규정은 파시즘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를 대체적으로 잘 정리해 놓은 것이다. 파시즘의 속성은 공동체와 전체에 대한 강조와 동시에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의 성향을 철저히 부정, 비판, 반대한다는데 있다.

한데 저러한 파시즘에 대한 규정은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나치 독일의 경우에는 적절하게 들어맞으나 일본 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유럽의 파시즘 국가들은 주권이 왕, 귀족 계급에서 시민으로 넘어간 이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개인이나 정당이 집권했는데 비해 일본은 시민 민주주의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소수의 엘리트집단이 전체주의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3]

이런 군국주의적 엘리트층과 군부 출신 엘리트층이 초기에 주도했으나 이후 일본 대중들도 자발적으로 따랐으므로 일본 제국 역시 명백한 파시즘 국가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대중은 강압적으로 따르기만 했으므로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된 전체주의 형태를 보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파시즘 국가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고, 유럽의 형태와는 별개로 아시아에서 나타난 다른 형태의 파시즘 국가가 일본 제국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의외로 파시즘이 그다지 불건전한 사상이 아니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근대 이성의 위기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사상의 한 갈래였으며, 좌파 민중주의(마르크스주의)의 반대쪽 극단에 선 사상이 우파 민중주의라고 할 수 있는 파시즘이었다. 그리고 이 그럴듯해 보이는 사상에 혹한 사상가들도 많고, 파시즘 국가의 탄압 아래에서 전향한 사회주의자들도 넘쳐났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예이기는 하지만, 하이데거가 나치의 옹호자가 되었던 이유 역시 그가 단순히 '가장인 남성'으로서 현실 논리에 굴복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사상과 파시즘 사상 사이에 합치하는 부분이 일정 부분 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즘 또한 무너져가는 근대에 대한 하나의 반향이었으며, 역사적 전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과대망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명심하자. 애초부터 세상에는 아예 쓸모 없는 대안도 완벽한 대안도 없다. 하지만 파시즘은 그 근본부터가 선전과 선동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상이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층과 중층이 가진 힘, 다시말해 대중의 정치적 힘을 이용하기 위한 장대한 감성팔이가 결국에는 파시즘의 본질일 뿐인 것이다. 파시즘을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근대의 괴물처럼 과장하는 것 역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지만, 민중을 쥐락펴락해서 자기들의 입맛대로 하겠다는 사상이 정당화될 여지 또한 없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나 계몽주의와 달리 파시즘이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이유다.

한국에선 과거 운동권이 파쇼란 단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끝에 파시즘=전체주의 식으로 오용하는 경향이 있고 신문 기사 등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며, 그래서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같은 의미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자주 보이지만, 앞선 내용에 있듯 엄밀한 의미에서 파시즘이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적인 형태가 지배계급의 엘리트주의와 결합하는 상태로 등장한 것으로, 엘리트주의가 없다면 전체주의적인 것은 될지언정 파시즘으로 볼 수는 없다. 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이란 용어가 너무도 헤프게 남용되어서 파시즘은 이제 학술적인 용어라기보단 욕의 일종이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상대가 식육목에 속하지 않지만 상대를 개새끼라고 욕하듯이 상대가 파시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냥 상대를 파시스트라고 욕하는 격이 된 것이다.

즉 파시즘은 전체주의의 한 갈래이나 전체주의가 곧 파시즘인 건 아니다. 비슷한 예로 공산주의사회주의의 한 갈래일 뿐 모든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는 아니다.

물론 70~80년대 당시 국외 문화의 유입을 "민족문화의 창달""건전한 민족문화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통제하고 상당부분 금지했기 때문에, 한국도 배타적 민족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도 있다. 허나 해외에서는 현대 한국을 파시즘이 만연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후안 페론 집권 시절의 아르헨티나를 독재국가이긴 하나 어느정도 민주주의적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파시즘으로 분류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사상을 띈 민족주의에 단일민족설+주전성향의 우파 집권까지 파시즘의 단어적 정의에는 완전히 부합한다는게 근거. 단지 파시즘의 정의자체가 논쟁의 여지가 많은것또한 사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정권은 이론적 기반이 희박하고, 그때 그때 기회주의적 성향을 자주 보여왔기 때문에 '무엇이 파시즘인가?'는 정답이 없다.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이런 권위주의, 전체주의적 의미에 입각하여 유치하다고 만화를 탄압하는것을 어른들의 파시즘이라고 평한 바 있다.

3.1 정체

모든 파시즘적 이데올로기는 환빠스러운 즉 '영광스러운 과거로의 회귀'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주창한다. 나치의 경우 고대 아리안 종교에 대한 관심과 함께 "게르만 족의 생활 공간(레벤스라움)," "고유 영토" 등의 개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며, 나치당은 비스마르크, 프리드리히 대왕, 더 나아가서는 바바롯사 대왕 등을 민족 영웅으로 내세우며 선전에 나섰다.[4] 아돌프 히틀러 본인은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일천년 동안 유지될 자신의 제국이 로마와 같이 많은 유산들을 남길 것이라는 몽상을 품고 있었다.

일제의 경우 물질주의적 서구에 대항해 이른바 '야마토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정신주의로 무장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좀 정도가 심했던 황도파의 경우 이른바 쇼와 유신이라는 미명 하에서 천황의 친정을 주장하기에 이르른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부활, 지중해의 이탈리아 내해화라는 명백한 극우적 복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파시즘적 조합주의 등을 좌파적 요소로 지목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파시즘 국가가 통제하는 구조를 일컫는 것으로 생산수단을 자본가들로부터 박탈하고 사회화하는 사회주의적 경제 구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구상들은 집권 이전 포퓰리즘적 구호로 이용되었을 뿐 실제로 파시스트들이 집권하게 되면 이들이 과거에 내세웠던 이데올로기적 정책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총통이나 두체(Duce)에 대한 충성만을 강조한다. "총통은 독일이며 독일은 총통이다"라는 유명한 구호가 이를 증명하며, 나치당의 강령 등을 내세워 사회주의적 요소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히틀러 본인의 행동[5]만 제시해도 충분히 논파가 가능하다. 이러한 파시즘의 특성에 대해서 영국의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독특한 해석을 한 바 있는데 그녀에 따르면 파쇼란, 대부분 자의식 과잉에 빠져있는 이들이 파쇼가 되기 때문에 항시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세우려 한다고 해석했다. 파쇼들은 기존의 여타 사회 집단에 적대적인 것은 물론이고 같은 파쇼들 사이에서도 적대적인 권력 암투를 계속하기 때문에[6]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파쇼들이 사회주의 노선을 걷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하는 제3의 위치[7]를 취하게 된 원인에는 많은 연구가 있다. 파쇼들 중에는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고, 파시즘의 민족 공동체에 관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나키즘에서 유입된 것이다. 아나키스트가 보면 피눈물 흘리겠다. 전체주의가 이렇게나 마개조하다니... 노동계급이 국민국가와의 협조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개념은 분명 생디칼리즘의 영향이다.[8] 때문에 이 문제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일단 알아둬야 할 점은, 파쇼들은 어떠한 특정한 사상의 공유를 통해서 생성된 철학적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파시즘이 먼저 있고 그를 공유하는 파쇼들이 파시즘의 기치 아래 모인 것이 아니라, 파쇼라는 집단이 먼저 모여서 활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외부에서 파쇼들의 언행 등을 관찰하다가 정립한 개념이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파쇼들이 서로 모이게 된 배경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부조리의 원인이 되는 암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된다"는 비교적 원초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는 게 통설이다. 쉽게 말해 "엉망진창인 사회를 단박에 엎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모여 형성된 잡종이라는 것.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파쇼들이 사회주의 노선을 걷지 않은 원인이 비교적 명확해진다. 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심각한 정치적 소요 사태를 겪었는데,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볼셰비즘 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시즘이 볼셰비즘으로 완성(?)된 이후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에 있던 기존의 사회주의자들과는 차이가 있다.[9] 즉 이탈리아에 갑자기 등장한 이 직업적인 혁명가들이 하는 일들이란 건 소요 사태에 위협을 느낀 일반인이 보기에는 좌우의 문제를 떠나 그저 "분탕질"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다 이러한 혼란의 배후에 외세인 소련이 있다는 국가적인 경계심까지 섞인다. 결국 파쇼라는 집단의 시작 자체가 소위 "매국 좌빨"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혼란기에 노동자와 빈민계층이 사회주의 사상에 몰리면, 공산혁명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본가와 대기업이 파시즘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기존 정치권의 자유주의자들까지 공통적으로 보이던 행동이다.[10]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파시즘이 태동했던 대도시 밀라노가 아니라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라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가난한 농촌이었다. 이 농촌의 지주 계급들은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 자신들의 지배권에 위협이 될까 두려워해 파시즘을 지원한 것이었다. 또한 파시즘이란 사상 자체의 기회주의적인 면도[11] 종래의 경제체제를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그대로 내버려두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자본가들 역시 정권에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상당히 인생이 팍팍해지게 된다. 또한 파시즘의 가장 깊은 기반은 "생계수단이 없으며 사회에 무차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무법자들"에 있기 때문에[12] 파시즘도 최종적인 목표는 기존 경제체제의 전복이었다. 그러나 이미 파시스트 본인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했으므로, 파시즘이 결국 혁명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4 파시스트 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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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 중의 하나. 깃발에 그려진 나무뭉치에 묶인 도끼는 본래 로마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들고다니던 파스케스(fasces)라는 것으로,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했다고 한다.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을 민족이나 국가 같은 전체를 위하여 바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상이므로,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하는 파스케스는 그 역사적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상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얘네도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치고, 심지어 나치즘의 원류인 집단이 사용한 엄연한 전범기지만 하켄크로이츠에 비해 유럽에서 별로 임팩트있게 느끼지 않는지 사실 별 생각없이 쓰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군쳐 발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기록보면 핀란드헝가리, 불가리아가 진짜로 얘네보다 더 잘 싸웠다 진짜로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를 독일에서의 히틀러처럼 악마 취급을 안 하고 오히려 아직도 파시즘 정당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정도로 평가가 (비교적)좋은 편이기 때문. 물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착했다기보단 독일에 비해 파시스트의 활동이 비교적 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자세한 사정은 무솔리니 문서를 참고하자.

또 서구에서는 파스케스에 담긴 의미를 파시스트보다 로마의 집정관이 사용했던 권위의 상징으로써 많이 받아들이기에, 그딴 찌끄레기들과 로마 제국의 위엄을 비교할 순 없지 하지만 로마식 경례는 금지한다 여전히 허용되는 분위기가 많다. 미국 상원 문장에도 파스케스가 쓰인다.[13] 물론 파시스트들이 쓰기 전부터 있었던거라 파시즘과는 관련이 없다.

결론적으로 파스케스가 하켄크로이츠와 다르게 여전히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가 쳐 발리기만해서 별 거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 들어 나치식 경례[14]나 욱일기 같은 것들도 옛부터 전해지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금기시되어있다. 파스케스가 로마 제국 때부터 사용됐다는 이유로 허용되는 것이라면 이쪽도 허용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반증이다. 이 항목의 경우 굳이 이 점을 차치한다. 하긴 맨날 쳐들어오는 족족 발리는 바보들인데 내세우면서 떠들 작자들도 없고

5 유사사상

5.1 네오 파시즘

네오 파시즘 문서 참고.

6 국가

7 인물

8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례

안타깝게도 세계 대공황 때처럼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종교 근본(극단)주의를 내세운 각종 정당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이러한 민족주의나 종교 근본(극단)주의가 21세기 네오 파시즘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면 곤란하다. 위에 예시로 등재된 사례는 어디까지나 민족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극단주의에 따라 폭력적인 사회 운동을 표출할 뿐, 독일, 이탈리아, 일본처럼 추축국이 아닌 나라는 딱히 추축국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유사 파시즘 운동이 제2차 대전 당시의 그것처럼 일단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로남불로 점철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어떤 단체가 파시즘 단체라고 지목될 때는, 그것이 단순한 정치적 비방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 볼 수 있도록 하자.

9 픽션에서의 파시즘

10 관련 문서

  1. 속간에 묶여 있는 몽둥이는 태형을 집행할 권리를 도끼는 사형을 집행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동양에서 도끼를 부월이라고 부르며 도끼 모양이 임금 왕자가 된 것과 비슷한 원리
  2. 사실 속간은 로마 공화정을 뜻하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공화정을 체택한 국가에서 권력기관의 상징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미국 상원의장에도 속간이 들어가 있고 링컨 기념관에서 링컨이 앉아있는 의자에 속간이 새겨저 있으며 프랑스 대통령 의장에도 속간이 그려저 있다.
  3. 2차 대전때의 일본은 1차대전까지의 독일과 비슷한 형태다.
  4. 정작 여기서 언급한 인물들이 본인이 나치 선전에 이용되는 꼴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5. 에른스트 룀을 숙청한 "장검의 밤" 때 나치당 내의 좌파적 인사들까지 함께 죽였다.
  6. 무솔리니의 라스 숙청, 히틀러의 장검의 밤, 김일성의 도서정리사업
  7. 파시즘은 사실 당시의 좌익 사상과 우익 사상을 적절히 혼합한 것이기 때문에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위치로 불렸다. 민족 무정부주의, 민족 생디칼리즘, 페론주의, 슈트라서주의 등이 이에 속한다.
  8. 이 때문에 생디칼리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르주 소렐의 경우, 좌우파 모두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9.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개념이 확실히 잡힌 현대의 기준으론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마르크스시즘이 볼셰비즘의 형태를 취하는 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차이가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
  10. 독일에서 제1당이지만 불과 32%의 지지율을 얻었던 나치당이 연립정부로 집권한 것도 좌파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으로 여타 정파들이 나치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11. 이는 파시즘이 튼튼한 이론적 근거가 있지 못하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12. Zetkin, Clara; Foner, Phillip Sheldon. <Clara Zetkin: Selected Writings>. New York: International Pub, 1984
  13. 비공식적인 프랑스의 국장에도 파스케스가 있다.
  14. 이쪽은 나치한테 밟혔던 프랑스와 연합군의 주축인 미국도 사용하던 것이다. 이것도 이란에선 별 신경 안 쓴다.
  15. 공산주의 독재자에서 삼대세습까지 발전한 케이스
  16. 다만 장제스 정권은 파시스트 정권이 아니다. 장제스 개인이 파시즘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국가 차원으로 발전한 적도 없었고 일부 비밀결사적 형태를 띤 삼민주의역행사가 파시즘을 토대로 1인 독재를 추구했을뿐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파시즘이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른 기간은 불과 5년도 되지 않는다.
  17. 철위대에서 안토네스쿠와 공동 1인자 노릇을 했으나 1940년 권력투쟁 과정에서 안토네스쿠에게 철위대와 함께 숙청당하고 독일로 망명하여 1993년 사망.
  18. 참고로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19. 민주적으로 선거를 실시하고있는것 같지만 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