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버팔로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차이 없음)

2017년 2월 1일 (수) 17:11 기준 최신판

{{틀:퍼시픽 리그}}

220px380px
팀 엠블럼마스코트
버팔로 불, 버팔로 벨
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オリックス・バファローズ
구단 법인명㈜오릭스 야구 클럽
(オリックス野球クラブ株式会社)
창단1936년 1월 23일
연고지오사카오사카 시 / 효고고베[1]
구단 연고지 변천효고니시노미야 시 (1936~1990)
효고고베 시 (1991~2004)
효고고베 시 & 오사카오사카 시 (2005~)
구단명 변천한큐군 (1936~1946)
한큐 베어스 (1947)
한큐 브레이브스 (1947~1988)
오릭스 브레이브스 (1989~1990)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1~2004)
오릭스 버팔로즈 (2005~)
홈 구장타카라즈카 구장 (1936)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1937~1990)
홋토모토 필드 고베[2]
(1991~2004, 2006, 고시엔 기간 중)
교세라 돔 오사카 (2005~)[3]
2군 구장북고베전원스포츠공원 야구장 (2000~)
모기업오릭스 그룹
모기업 변천한큐 전철(1936~1988)
오릭스 그룹(1989~)
감독후쿠라 준이치 (福良 淳一)
킷 스폰서미즈노
일본시리즈 우승
(4회)
1975, 1976, 1977, 1996
퍼시픽리그 우승
(15회[4])
1967, 1968, 1969, 1971, 1972,
1973 후기리그, 1974 전기리그, 1975 전기리그, 1976 전후기리그,
1977 전기리그, 1978 전후기리그, 1979 후기리그,
1984, 1995, 1996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75, 1977[5]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1회)
2010
공식 홈페이지
1975년, 1976년, 1977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74-롯데 오리온즈한큐 브레이브스1978-야쿠르트 스왈로즈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5-야쿠르트 스왈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1997-야쿠르트 스왈로즈

1 소개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 됩니다 같은 동네에 있었던 야구단에서 비슷한 말을 본 것 같은데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에 가입한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오사카/고베. 2004년 일본프로야구의 리그 축소 문제와 초유의 파업(공백의 2일) 등의 혼란의 결과로 2004년 오프시즌에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킨테츠 버팔로즈가 합병하여 현재에 이르게 됐다. 두 구장을 왔다갔다하기 때문인지 퍼시픽 리그 팀들 중 유일하게 지역명을 팀명에 붙이지 않는다. 지역명 필요 없을 정도로 인기 있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6]

한국에서 어문 규정을 잘 지킨 언론사의 경우 오릭스 버로스[7]라고 많이 표기한다. 진짜 제대로 지키려면 '오릿쿠스 바파로즈'라고 해야 한다. 외래어가 외래어인 경우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나니까.

2 홈구장

2.1 교세라 돔 오사카

large.jpg
02_image_1.jpg
항목 참조.

2.2 홋토모토 필드 고베(고베 종합운동공원 야구장)


12_re015.jpg
홋토모토 필드 고베항목 참조.

3 역사

공식적로 오릭스 버팔로즈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브레이브스-블루웨이브의 프랜차이즈에 흡수된 형태이기 때문에 브레이브스-블루웨이브 프랜차이즈를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오릭스 버팔로즈 공홈에 있는 구단역사를 보면 오리엔탈리스가 한큐 브레이브스를 인수한 1988년(오릭스로서의 리그 첫 참가는 1989년.)부터 게재하고 있다.[8] 그야말로 족보가 참으로 거시기한 상태. 사생아 일단 일본프로야구기구 웹사이트나 위키에서는 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 -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을 전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과거 한큐, 킨테츠 팬들을 온전히 수용한 팬베이스라고 보긴 힘들지만, 구단 측에서는 그래도 한큐, 킨테츠 추억의 유니폼 같은 행사는 하는 편이다. 올드 유니폼 종류만 4가지인데 한큐 브레이브스, 닛세이-후지이데라 구장 시절 킨테츠 버팔로즈,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9] 4종류가 쓰인다.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올드 유니폼 데이가 열린다. 물론 OB(레전드) 초청도 긴테츠때 따로, 한큐때 따로 이렇게 한다. 구장에서도 과거 긴테쓰, 블루웨이브 응원단의 깃발이 보이기도 하며 몇몇 응원가는 긴테쓰/블루웨이브 시절에 쓰던 것들이 그대로 쓰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의 오릭스 버팔로즈는 2005년 이후에 재탄생한 신생팀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영구결번이었던 긴테쓰 스즈키 케이시의 1번이나 한큐의 후쿠모토 유타카의 7번[10][11]이 해제된 것만 봐도, 과거의 역사는 되도록 잊으려는 듯 하다. 참고로 현재 오릭스 버팔로즈의 준영구결번은 이치로의 51번.

그렇기 때문에 이 항목의 '역사' 부분은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로 한정해 소개한다.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구단연혁은 독립된 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

2016년 블루웨이브 시절 경험이 있는 현역 일본인 선수는 스즈키 이치로, 고토 미츠타카 2명 뿐이며, 외국인 용병선수까지 합하면 구대성까지 총 3명. 그나마도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고토는 라쿠텐, 구대성은 시드니에 있어서 사실상 현재 오릭스에는 없다.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 경험이 있는 현역 선수는 2015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있던 포수 나카지마 사토시가 은퇴하면서 0명이 되었다.

3.1 브레이브스 - 블루웨이브 프랜차이즈 역사

bravesflag.jpg
한큐 브레이브스의 구단기.

1936년 한큐 전철한큐군(阪急軍)이란 이름으로 창단. 전후인 1947년 한큐 베어즈(阪急べアーズ)라는 이름으로 프로야구에 참가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연패로 1947년 리그 진행 중에 한큐 브레이브스(阪急ブレーブス)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1950년 양대리그제 시행으로 퍼시픽리그에 참가했으며,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阪急西宮球場)을 홈으로 삼았다. 한큐 철도망의 덕택에 경기를 보러오는 고정팬들이 꽤 있었다.[12]

1950년 양대리그 시행이후 퍼시픽 리그에 소속되었으나, 1960년대 중반까지 니시테츠, 난카이, 토에이, 마이니치(다이마이) 등 잘나가던 팀들에게 밀려 그저 인기 없는 구단으로 회색 구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똑같이 "짐짝 구단" 이란 비아냥을 듣던 킨테츠 버팔로즈와 서로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지내다가,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이 부임한 이래 1967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일본시리즈 상대가 아주 잘 나가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 때는 교진군의 V9시절(1965년~1973년 연속 센트럴리그-일본시리즈 우승)의 최전성기였는데, 교진군이 9연패를 하던 시절 그 중 거의 절반 이상인 무려 5회(67~69, 71~72)[13]나 만나 모두 준우승에 머무르며 콩라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무튼 퍼시픽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으로 성장한 것은 잘 된 일. 그러나 니시모토 감독은 항목 보면 알겠지만 그 뒤에도(..)

이후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이 1974년 부임, 니시모토 감독이 만들었던 토대 위에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V9시대가 끝난 이후 1975년부터 1977년까지 3년 연속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76년과 1977년 2년 연속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하여 과거의 치욕을 되갚았다.[14] 시기에 배출한 스타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1,065도루를 기록한 도루왕 후쿠모토 유타카와 통산 350승 투수인 요네다 테츠야, 그와 콤비를 이뤘던 카지모토 타카오, 극강의 서브마린 투수 야마다 히사시, 강속구 투수 야마구치 타카시, 1973년, 1979년 수위타자인 카토 히데지, 홈런타자 나가이케 도쿠지등이 있다.

1978년과 1984년 다시 한 번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15] 세이부가 돈질을 앞세워 파리그를 씹어먹기 전까지 브레이브스는 파리그를 대표했던 최강팀이었다. 그러나 모기업인 한큐 전철의 경영난으로 인해 1988년 시즌 종료 후 금융업체인 오릭스에 구단이 매각되었다. 한큐 전철 창업주의 유언 중 야구단 팔지 말라는 말이 있었으나 끝내 팔았다고 한다.(...) 같은 시기 팀을 매각한 옆 동네에서 비밀번호나 찍던 팀이 생각난다면 기분 탓일려나 하지만 한큐는 나중에 한신 전기철도를 인수하면서 한신 타이거스를 먹었다.


오릭스 브레이브스의 구단기.

인수 직전까지도 성적이고 관중동원이고 뭐고 막장을 치달았던 옆동네 오사카의 난카이 호크스와는 달리, 한큐 브레이브스는 효고 현 지역에서 백만에 가까운 관중을 동원할 정도로 나름 팬베이스도 두터웠다. 오리갑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브레이브스의 마스코트 브레이비[16]도 상당히 인기있었다. 그리고 쇼와 말기에 파리그의 왕자 자리를 세이부에게 넘겨주기는 했지만, 그 시기에도 끝까지 세이부와 선두 다툼을 벌일 정도로 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큐 브레이브스의 마지막 해인 1988년 프랜차이즈 스타 후쿠모토 유타카야마다 히사시가 팀의 매각과 동시에 은퇴했지만,[17] 그들을 대체할 젊은 선수들이 전성기에 있었다. 투수에 사토 요시노리(항목1)와 흑마구 좌완투수 호시노 노부유키, 타선에는 마츠나가 히로미-카도타 히로미츠-부머 웰스[18]-이시미네 카즈히코-후지이 야스오 등이 활약했다. 특히 오릭스로 이름을 처음 바꾼 1989년에는 긴테츠 버팔로즈, 세이부 라이온즈와 정규시즌 마지막날까지 파리그 우승을 두고 삼파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오릭스 브레이브스는 승차 없이 단 1리 차이로 2위에 머물게 된다. 안습.[19]


왼쪽은 블루웨이브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 만든 마스코트인 네피. 이후 2010년 마스코트 변경 전까지[20] 활약했다.[21]
오른쪽은 스즈키 이치로.

1991년에 니시노미야에서 고베로 연고지를 옮겼고, 오랫동안 써왔던 '브레이브스' 대신 항구 도시인 고베의 이미지에 맞게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팀명을 바꾸었다.

397e49a2.jpg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의 구단기.

연고지 이전 후 긴테쓰를 89년 리그 우승 해놓고 일본시리즈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말아먹은 흑역사도 있긴 하지만 우승전력으로 올렸던 오기 아키라 감독의 지휘 아래 천재 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등장, 사토 요시노리, 호시노 노부유키, 노다 코지, 후지이 야스오등 기존 전력들의 분전, 다구치 소, 히라이 마사후미 등 신진 선수들의 대두 등이 맞아떨어지면서 1995년, 1996년 2년 연속 리그 우승과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고베 대지진을 극복하고 거둔 우승이라 더욱 값진 우승이 되었다. 이 시기 팀의 전력이나 티켓파워에서 이치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우측 외야 관중석에 우익수 포지션의 이치로를 보는 사람으로 북적였다고. 하지만 그것도 약발이 떨어져 1997년부터는 도로 관중수가 하락했다. 특히 1996년에는 리그 우승과 더불어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수가 140만이 안되는 안습함을 보여주었다. 이게 다 한신 타이거스 때문이다. 위치 바꿔도 어쩔수 없는 이 안습한 인기

2000년대 들어 주요 전력이던 다구치 소, 스즈키 이치로 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에는 반등의 기미라고는 전혀 없이(...) B클래스(하위권)에 쭉 맴돌았다. 구대성 선수가 바로 오릭스의 침체기인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구대성, 카네다 마사히코, 다니 요시토모 등이 분전했지만 성적은 줄곧 하위권이었고[22] 오기 감독 이후 이시게 히로미치, 레온 리[23], 이하라 하루키 등 감독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 줄곧 갈리기만 했다. 암흑기의 한가운데이던 2003년에는 당시 리그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20실점 이상을 허용한 패배만 4번을 당하는 굴욕적인 기록도 세웠다.[24]

여담으로 한큐-오릭스는 지금까지 4차례 승리한 일본시리즈에서 첫 해인 1975년을 제외하곤[25] 모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어 승리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팀이기도 하다. 거기다 그때 요미우리의 감독은 모두 나가시마 시게오였다.선수 시절 일본시리즈에서 한큐전 5연승을 기록한게 미안해서 감독 시절 선심써준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리라

3.2 현재 : 블루웨이브-버팔로즈 프랜차이즈 합병 후

2005년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 합병하여 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스가 되었다. 합병시 긴테쓰가 흡수되는 형태였기 때문에, 구단의 공식적인 역사는 오릭스 브레이브스-블루웨이브를 계승한다. 개족보

합병의 이야기를 하자면, 킨테츠 버팔로즈는 나름대로 오사카의 터줏대감이였으나 옆동네 야구단의 압도적인 인기에 밀려 적은 인기와 함께 어마어마한 오사카 돔의 이용료 등으로 인한 적자 때문에 더이상 야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고 GG를 치게 된다. 이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회장인 와타나베 츠네오를 위시한 보수파 구단주들을 중심으로 아예 한 구단[26] 더 합병한뒤 10개 구단으로 단일리그제로 환원한다는 구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반발한 선수회[27]는 전무후무한 파업으로 이를 간신히 저지하고, 없어지는 구단 대신 한 자리를 채우는 방향으로 2리그 유지를 시키는 등, 파란의 연속이였다. 결국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새로 창단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된다.

합병 주체가 오릭스 였기 때문에, 킨테츠 버팔로즈는 흡수당한것으로 취급하므로 구단역사는 오릭스를 계승하게 되었다. 따라서 킨테츠의 역사는 여기서 . 영구결번 등도 2004년을 끝으로 없어지게 되었다.[28] 한가지 더 슬픈 건 킨테츠 버팔로즈는 팀이 해체될때까지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릭스도 블루웨이브 시절에 해본건데... 긴테츠 팬들은 영원히 운다 카더라

오릭스의 2군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네이밍라이츠(명명권) 시스템으로 인해 서패스 고베(サーパス神戸, Surpass Kobe)[29] → 서패스(サーパス, Surpass)[30]'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31] 2008년을 끝으로 계약이 해지되며 다시 오릭스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네이밍라이츠로 2군을 운영하는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뿐(쇼난 시렉스)이었다가,(2000~2010) 2011년부터 이쪽도 그냥 베이스타즈 2군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막장인 프런트와 팀 전체 전력의 반을 차지하는 외국인,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선수들이 어우러져 전체 12개 구단 중 인기는 최하위인 팀. 실제로 설문조사에서도 고작 0.3%만이 오릭스의 팬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인기가 처참하다. 프런트가 합병을 추진한 이유중 하나는 긴테쓰의 주력선수인 나카무라 노리히로, 이와쿠마 히사시, 오무라 나오유키, 이소베 코이치 등을 획득해서 우승을 노려보고자 했기 때문인데, 정작 해당 선수들은 이에 반발했다. 나카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그러나 망했어요 크리, 이와쿠마와 이소베는 선수회의 선봉에 서서 공식적으로 오릭스를 엿먹이며(...) 고생길이 훤한 라쿠텐행을 선택했다. 오무라는 들어갈 것처럼 말하다가 막판에 뒤통수를 치며 FA권리를 행사해 소프트뱅크로 갔다.(이후 트레이드로 오릭스에 왔다). 또 이 기간에 들어온 드래프트 하위 신인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오릭스의 큰 문제점은 구단주가 야구팬인데 야구단 운영을 모른다는 거다.[32][33] 어쨌든 모 회사가 금융회사라 돈은 많은데, 한신처럼 지역내 팬베이스가 확고한 것도 아니고, 젊은 선수를 제대로 키워내는 팀도 아닌지라 다른 팀의 퇴물급 베테랑 선수, 포텐이 터질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끝내 어느정도 나이는 먹었는데 유망주 딱지는 못 뗀 2군 본즈 같은 선수, 연봉 대비 효율이 낮아서 퇴출된 이름값 센 외국인 선수를 꾸역꾸역 채워오는 식으로 운영을 하였다. 결국 킨테츠와의 합병, 스즈키 이치로, 다구치 소 등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잇다른 이탈 이후 스타선수의 부재와 그 외의 자잘한 막장행보로 인해 원래의 오릭스 팬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 특히나 젊은 여성층에는 팬이 거의 없었다. 일본의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끔 농담으로 나오는 말이 "현실에서 젊은 여성 오릭스팬은 본적이 없다."일 정도.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와서 양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프런트진이 여성 팬 유치에 많이 진력해서 최근에는 젊은 여성 오릭스 팬들이 많이 늘었다. 특히 신규 유입된 이들 여성팬들에게 카프조시에 대항하는 오리히메[34]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별명이 생기는 등 나름대로 마케팅에 꽤 성공했다. 오히려 경기의 승패에 죽고 사는 아저씨, 꼰대의 이미지는 과격, 무식의 꼴리건 훌리건 이미지로 대표되는 한신 타이거스의 팬들에게 많이 붙어있다.

이렇듯 팀 꼬라지는 막장이지만, 구단가 하나는 센스가 일품이다. MEGA STOPPER라는 밴드가 주로 만들고 있는데, 스카 펑크풍의 흥겨움이 돋보인다. 특히 매년 같은 시기에 구단응원가를 발표하는 도호쿠 라쿠텐과 비교하면 넘사벽. SKY, PLAY BALL, calling.

합병 이후에도 몇 년간 B클래스를 맴돌며 라쿠텐과 함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8년에는 1999년 이후 9년만에 처음으로 A클래스(상위권)에 진입하였다. 15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한 코마츠 사토시카네코 치히로, 키시다 마모루, 야마모토 쇼고등 10승 선발투수들이 마운드를 지켰고 타선도 고르게 활약하며 투타의 균형이 맞았다. 테리 콜린스 감독[35]이 잘리고 오이시 다이지로가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시즌 초반을 어수선하게 보냈지만, 어찌저찌 반등하는데 성공하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이어 리그 2위[36]를 차지하였다...가,

2009년에는 56승 86패 2무로 다시 퍼시픽리그 꼴찌로 추락했다. 5위, 즉 꼴찌에서 두번째가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거취를 둘러싸고 구단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팀 분위기가 개판치바 롯데 마린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참... 작년 신인왕 코마츠가 1승 9패 7.09라는 충격적인 추락을 보여주는 등 마운드가 전반적으로 붕괴했다. 오이시 다이지로 감독은 사임[37]하고 2010년 33-4 오카다 아키노부한신 타이거스 감독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여담으로 2009년에는 터피 로즈가 9년을 채우며 외국인 제한이 풀린 덕에[38] 5명을 가동하는 팀이 되었는데, 야수진에만 4명. 그것도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호세 페르난데스, 그렉 라로카등 각 팀의 주포급의 거포들로만 쫙 깔아버린 덕에 팀 전체 공격력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해버려 다른 팀들에게는 공포를 안겨주지만 정작 팀의 인기는 하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초중량 타선은 부상 크리로 전혀 잘 가동되지 못하였다

2010년 2월 5일 아침에 팀의 외야수인 오제 히로유키 선수가 전지훈련지인 오키나와 미야코 섬의 숙소에서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39] 일단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새해부터 뭔가 심상치 않더니 성적도 리그 5위로 시망. 결국 21세기 첫 10년을 2008년 단 한 번 A클래스에 든 것으로 마무리했다. 후새드. 이 팀보다도 적다.. 그나마 이 팀과는 달리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한게 위안일라나[40]

OB-WK009_orix_E_20130219042431.jpg
2011 시즌에는 대대적인 전력강화의 일환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풀린 이승엽을 얻어오고, 거기에 박찬호라는 카드까지 영입했으나 둘다 한시즌만 뛰고 한국복귀를 하게 되었다. 차승 백도 잠깐 다녀갔다 그러나 시즌 최종 성적은 4위로 여전히 B클래스. 그나마 위안인건 꼴찌가 작년 일본시리즈 우승팀 치바 롯데 마린즈란 것과 5위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란 것 정도..? 물론 라쿠텐은 도호쿠 대지진으로 분위기가 ㅈ된 것도 있지만.

새 유니폼과 마스코트가 이 해 1월 8일에 공개되었는데 마스코트 자체가 모에선을 너무 맞은 느낌이 든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배경 스토리에 따르면 박사가 멋대로 만들어낸 시공을 초월한 소 로봇이라는데…. 모에한건 자랑 수인에 하악하악하는 팬들에게 능욕당하는건 안 자랑 버팔로 벨 참조. 한국에서도 모에선을 맞았다. 여성팬이 없으니 이런 일도 가능한건가.

동시에 공개된 유니폼은 예상보다 멋지게 나왔다. 홈은 의외로 괜찮은 편이며 외곽선과 넥라인에 금색을 사용한 덕에 황금간지가 줄줄, 원정은 회색이긴 했지만 가슴 로고와 폰트는 보조색인 노랑색이 커버하기에 사이타마 세이부보다 몇배 나은 편. 남색은 서드 유니폼에 적용되었다. 다만 밀워키 브루어스의 유니폼 색상을 연상시키게 한다는 평이 있다. 1월 28일 NHN이 오릭스와 1년간 공식 후원계약을 체결하여 헬멧과 유니폼에 한게임 로고가 박힌다.기사보기

4 역대 시즌

4.1 2012년

4.1.1 시즌 중

06215449.jpg

이대호를 영입하면서 타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현실은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 롯데 자이언츠8888577 시절이 생각난다면 지는거다 그러고보니 반도에도 류현진과 아홉 난장이가 있었...

어느 정도이냐 하면 이대호가 팀내 홈런과 타율 그리고 타점 선두를 차지했고, OPS도 0.846으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나머지 타자들은 전혀 이대호를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2012년 보란듯이 6을 찍었다. 비밀번호 하나 더 추가. 그 와중에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타점왕 자리를 가져갔다(...). 팀 전체에서 유일한 타이틀 홀더다 이게(......) 버팔로 벨 말고도 리그 선두가 있구나.[41]

다만 이 때문에 이대호가 돋보이는 효과가 있었으니(...). 1년차 외국인이 유일하게 활약하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는 대박영입이라고 찬사를 받았다. 시즌 초기에는 이대호가 크게 부진하면서 실망하는 반응이 주류였으나, 빠른 적응과 함께 공격력이 폭발하기 시작하자 180도 달라진 반응을 보여줬다. 특히 이대호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나카무라 타케야와 시즌 막바지까지 홈런왕 경쟁을 해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42]

이대호 없는 오릭스는 야구단이 아니다.

4.1.2 스토브 리그

프론트가 약을 빨았는지 스토브리그 기간동안 미친듯이 선수들을 빨아들여 이적시장 태풍의 핵이 되었다.

우선 10승 경험이 2번이나 있으나 감독과 사이가 틀어져서 2군에서 썩던 요미우리 자이언츠토노 슌을 트레이드로 땡겨온 것으로 시작, 원 오릭스 소속이나 한신으로 간 뒤 포텐 터져서[43]3할 3번찍고 각성한 히라노 케이이치도 FA로 계약하였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 FA를 선언한 테라하라 하야토의 보상선수로, 11년까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절대적 마무리투수였던 마하라 타카히로를 공짜로 업어왔다(...).

그리고 스프링캠프 직전에 마지막으로 대박이 터졌는데, 현재 퍼시픽리그 최고 외야수라 여겨지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이토이 요시오까지 트레이드로 영입하였다. 주전급 4명, 그것도 리그 타이틀을 노려볼만한 영입을 4건이나 성공시켜서 무시못할 전력으로 발돋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문제는 이토이를 제외하고는 2012년 시즌에 다들 약간씩 하자가 있던 선수들이라 넷 다 잘 터지면 대박이지만 재수없으면 3명 정도는 밥값 못할지도 모른다는게 불안요소. 토노는 감독과 불화가 있기는 했지만 12년에는 1군 등판이 거의 없었고, 히라노는 커리어 로우를 찍었으며, 마하라는 1년내내 부상 + 2014년 FA취득(...). 사실 이토이도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보내달라고 니혼햄에 요구했다가 트레이드된 케이스[44]라 언제 구단과 불화를 일으킬 지 모른다.

4.2 2013년 시즌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이대호 앞뒤로 믿을 만한 선수들이 좀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대호가 공격의 핵인 건 부정 못 하는 상황. 개막 당시에는 리그 최강급의 타선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공인구의 변화로 인해 사전 예측만큼의 위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이토이나 이대호나 홈런을 양산하는 스타일이 아닌 중거리포이다 보니, 공인구가 바뀌었다고 홈런이 크게 늘어나고 그러지는 않는지라 다른 팀들이 오히려 덕을 크게 본 것. 그렇다 해도 이토이-이대호-발디리스로 이어지는 클린업은 기술과 힘을 겸비한 리그 최고의 타선이라는 평을 받지만 그 셋과 포수 이토를 제외한 나머지 쩌리들은 공인구가 바뀌었건 말건 여전히 땅을 파고 있는지라 팀 전체 타격성적으로는 오히려 파리그 최하위라는 웃지 못할 상황. 공이 바뀌었으면 부활해야 하는 T-오카다도 여전히 삽을 푸고 있고

반면에 투수진은 시즌 전의 걱정이 그대로 터져서 12년에 그나마 밥값을 했던 키사누키 히로시의 대체자원으로 여겨지던 이가와나 토노는 1군에서 뛰기엔 부족한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고 노히트노런으로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니시 유키는 부침이 심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으며, 외국인 선수들은 내려갈 선수는 내려간다는 진리를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중이라 믿을 수 있는 선수가 언제나 그랬듯이 에이스인 카네코 치히로 딱 한명뿐이라는 안습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불펜도 시즌 초반에 선발 이상으로 불을 질러댔지만 리그 정상급의 마무리로 각성한 히라노 요시히사, 분전중인 2년차 신인 사토 타츠야, 시즌 초 전범랭킹 1위였다가 제 페이스를 찾은 히가나 베테랑 키시다 마모루등의 활약으로 안정화된 것만이 위안거리.

결국 작년과 마찬가지로 클린업이 터지지 않으면 패배하는 패턴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으며 승률 5할에 올라갈 듯 하면서 못 올라가고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고토레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이토이가 앞에서 받춰주고 있으며 그밖의 가용자원도 훨씬 늘어났고 불펜의 경우는 12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운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기에 파리그의 평준화에 힘입어 A클래스는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 편이었으나...

결국 A클래스 진입에 실패했다. 경기가 순연돼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가 열릴때 라쿠텐과 3연전을 했다.슈퍼 한국시리즈? 가을야구 하네 최종 성적은 144경기 66승 73패 5무(0.475)로 리그 5위를 차지하며 꼴지 탈출에는 성공. 다르빗슈도 없고 이토이도 없는팀의 주축이 다 털린 니혼햄이 대신 꼴지를 차지했다. 클린업 이토이 요시오[45]-이대호[46]-아롬 발디리스[47]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머지의 삽질로 팀타율 꼴지를 차지했고, 그와 반대로 팀 투수진은 3.31의 평균자책점으로 라쿠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결국 투타의 밸런스 붕괴가 A클래스 진입에 실패하게 한 원인. 에이스 카네코 치히로가 2.01(2위)의 평균자책점과 평균 7이닝(29경기 223⅓이닝)이 넘는 투구, 200삼진(1위), 10완투를 했음에도 안습한 타선 때문에 15승 밖에 거두지 못했고[48], 유망주 니시 유키도 커리어 최초로 규정이닝 진입(166이닝 투구)에 성공하며 3.63(리그 9위)의 방어율을 기록했음에도 10승 달성에 실패[49]했다. 외국인 투수 딕슨은 규정이닝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괜찮은 성적을 냈다. 셋업 사토 타츠야(1.75,41HP(1위))와 마무리 히라노 요시히사(1.87,31S(2위) 11HP)로 이어지는 라인도 좋았다. 리그 동네북으로 출발했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이 해 드디어 우승했는데 얘내는 좋은 선수들 데려가놓고서는 왜 계속...

오프시즌에는 클린업의 중추인 이대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아롬 발디리스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빼앗겼다. 그 공백을 매우기 위해 소프트뱅크에서 거액을 주고 영입했으나 그에 걸맞지 않게 삽질만 하던 뛰던 파워히터 윌리 모 페냐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리드오프 역할을 하던 유틸리티 내야수 에스테반 헤르만을 영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내야수 유니에스키 베탕코트도 영입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수위타자를 차지한 경력이 있으나 젊은 선수들에 밀려 출장기회가 적었던 외야수 텟페이그래도프랜차이즈 스타이던 고토 미츠타카와 맞바꿨다. 드래프트에서도 사회인 야구 최대어로 꼽히던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는 등 나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

4.3 2014년 시즌

4월 6일 기준으로 윌리 모 페냐가 8경기동안 6개의 홈런을 치며 자신을 버린 소프트뱅크에 확실히 복수하고 있다. 팀도 5연승으로 1위를 달리며 쾌속의 스타트를 끊었다. 정작 소프트뱅크로 간 이대호는 안타는 괜찮게 치고 있지만 홈런을 치지는 못하고 있다. 투수진도 니시 유키 등이 대폭발. 3-4월동안 무섭게 달리면서 그 달의 퍼시픽 리그 월간 MVP 투수(니시 유키), 타자(윌리 모 페냐)부문 모두를 쓸어갔고, 과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연상케 하는 반지원정대 급 라인업을 갖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수위 다툼을 하고 있는 중. 5월17일 5시간에 걸친 수위공방전에서 12회말 이토의 희생플라이로 2-1로 승리, 수위를 따냈다. 탑릭스!! 111의 꿈이 실현되는가!

그렇게 퍼시픽리그 1위인 상태로 교류전에 돌입했건만 주위의 시선은 여전히 촌놈마라톤 취급에 이제 슬슬 DTD가 오겠지(...) 하지만 그러한 주위의 시선을 비웃듯 교류전에서도 선전을 계속하면서 호크스만 똥줄을 타게했다. 결국 교류전도 3위로 무난하게 통과하고 수위의 자리를 지켜내면서 반환점을 통과했다. 여름 동안에는 호크스와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치열한 수위다툼을 전개할 듯이 보였다.

7월 10일 호크스와의 3회전중 트리플 플레이를 따냈는데, 심판진의 오심으로 무효처리 되었다.[50] 설상가상으로 7월 25~27일에 걸쳐서 벌어진 적지 후쿠오카에서의 소프트뱅크와의 맞대결 3연전에서는 칼을 갈며 벼르고 별렀던 소프트뱅크의 역습에 3연전 싹쓸이 패. 1.5게임차 뒤진 2위로 내려앉았다. 이전부터 0.650에 육박하던 승률을 조금씩 까먹으며 버텨왔지만 시즌 중후반 선두 경쟁을 하고 있는 팀과의 중요한 일전에서 거의 자동아웃 수준이던 상대팀 포수 호소카와에게 2경기나 결승타를 맞는 등 내용도 영 좋지 못한 상황. 그대로 내려가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버릴지, 혹은 극복할 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8월에 들어와서 호크스가 파죽의 9연승을 기록하면서 게임차가 벌어졌고 1위자리는 절망적으로 보였다. 222라도 그게 어디야. 그러나 8월 중순에 벌어진 위닝시리즈를 거둠과 동시에 호크스가 주춤하는 틈을 타서 다시 게임차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9월초에 후쿠오카 돔에서 벌어진 호크스와의 맞대결 3연전에서 1무 2패의 루징시리즈를 거두면서 완전히 끝났나 했는데, 그 이후에 호크스가 주춤하면서 다시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 중순에 홈에서 벌어진 3연전에서 2승1패로 깔끔하게 되갚아줌으로써 다시 한번 1위 탈환의 가능성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 3연전의 두번째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2008년 이후 6년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사났네, 경사났어. 게다가 2위임에도 불구하고 1위인 호크스보다 5경기가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2위팀 인데도 매직넘버가 들어오는 기괴한 상황도 가능해졌다. 가자, 111!

하지만 소프트뱅크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면서 결국 우승은 실패. 그리고 6년만에 올라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3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게 1승 2패로 밀리면서 광탈하고 말았다[51]. 시즌 최종성적이 호크스와 게임차 없이 무승부 숫자에서 비롯된 승률차이로 2위였던 만큼 오래간만에 좋은 성적을 낸 오릭스로서는 천추의 한으로 남을 시즌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222가 어디냐

2013년 시즌을 정리하자면 2012년의 막강 투수진에 업그레이드 된 타선이 힘을 보태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풍을 일으킨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에이스 카네코 치히로는 트리플 크라운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하며 만장일치로 사와무라상을 수상했으며 , 니시 유키와 외국인 투수 딕슨도 규정이닝 달성 + 3점대 방어율로 선발진을 잘 지켰다. 사토 타츠야(홀드 포인트 1위, 홀드 3위)와 히라노 요시히사(세이브 1위)를 필두로, 히가 모토키, 키시다 마모루 등이 가세한 불펜진은 리그 최상급의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타자진은 리그 2위로 작년의 클린업만 야구하는 타선에서 확실히 탈피했다. 이토이는 타격왕을 차지했고, 윌리 모 페냐는 홈런 3위로 이대호의 확실한 대체재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거기에 T-오카다가 23홈런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머지 선수들도 리그 평균급의 타격을 해주며 밸런스 패치가 적절하게 이뤄진 모습을 보였다. 세리그의 모 팀은 올해도 밸런스 패치 실패

4.4 2015년 시즌

스토브 리그와 FA 전쟁의 승자, 그러나...

1게임만 더 이겼어도 1996년이후 18년만의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2014 시즌의 성과에 고무된 구단은 2015년 시즌 본격적으로 19년만의 우승을 목표로 삼고 과감한 보강에 나섰다. 특히 2015년은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지 20주년이 되는 해라, 당시 고베를 본거지로 삼고 있었던 팀으로서는 더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도 돈 쓰는 규모는 적지 않은 구단이었으나 그동안 헛돈만 써왔던 예년과는 달리 FA시장에서 알짜 FA를 줄줄이 낚으면서 12개 구단 중에서 오프시즌에 가장 전력보강이 충실한 팀으로 평가 되었다. FA 시장에서 팀내 FA인 에이스 가네코 치히로를 잔류시키고, 히로시마와 계약이 만료된 브라이언 벌링턴을 영입했다. 거포였던 윌리 모 페냐와 재계약을 포기하고 요코하마 DeNA에서 계약만료된 토니 블랑코를 영입했다. 또한 충실한 투수력을 보강할 야수진의 보강에 힘을 쏟아서 타팀 출신 FA에서도 닛폰햄에서 FA를 선언한 고야노 에이이치와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복귀하는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영입에 성공하였다. 특히 가네코, 고야노, 나카지마는 지역 라이벌인 한신 타이거스도 눈독을 들이던 선수들로, 한신과의 영입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인기는 처질지언정 금융업으로 다져진 현질 능력만큼은 결코 한신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했다. 그리고 인기팀인 우리가 설마 오릭스따위에게 FA들을 뺏기랴고 낙관하던 한신 팬들은 오릭스의 과감한 행보에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보강의 결과 몇년 전만 해도 666이 당연하던 팀이 2015년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하게 되었다.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개막 4연패, 그 후 1승을 찍더니 다시 4연패를 하는 등 초장부터 영 좋지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6월이 되기도 전에 승패마진 -15를 찍는 역대급 막장 시즌을 치르는 중.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오릭스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리그를 씹어먹는 포스를 보였던 카네코 치히로가 부상으로 개막부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딕슨이 리그 MVP급 포스를 보여주고 니시도 작년을 능가하는 성적을 찍고 있으며 토메이가 신인 2년차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투구를 보여주면서 선발진은 선방하긴 했는데, 작년의 팀을 떠받쳤던 주축 불펜들인 히라노(5.40, 5월31일 시점) 사토(4.35, 5월31일 시점), 키시다(5.63, 5월 31일 시점), 히가(부상으로 등판없음)가 전부 나가 떨어졌다. 5월말 시점의 팀 성적 34패중 19패가 역전패라는 사실이 이 팀의 안습한 불팬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팀 타격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타선을 이끌던 이토이가 극도의 부진에 빠지고 그나마 공갈포라도 쳐 주던 페냐가 나가면서 데려온 블랑코는부상, 부진에 시달렸고 팀은 암흑기 포스를 풍기고 있다. 거액을 투자한 메이저 마이너에서 돌아온 나카지마의 성적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나마 새얼굴인 신인왕 경쟁 대열의 루키 니시노 마사히로와 고작 2500만엔 연봉의 독립리그 출신 카라바이요가 체면치레를 해 주고 있는 정도이지만, 둘 다 사실상 신인이기에 언제 하락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욱 암울. 이러다가 우승할듯

결국 6월 2일, 모리와키 히로시 감독이 사실상 사퇴하면서 후쿠라 준이치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할 공산이 커졌다.

그래도 교류전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자기 홈에서 3연승 스윕하며 체면치레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8월에는 어느 정도 승을 먹으며 5위 라쿠텐에 1경기 차까지 따라붙어 탈꼴을 향한 희망고문 모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찌감치 선두 소뱅과는 27.5게임차라는 까마득한 수준의 승차가 생기며 사실상 우승 트래직 넘버는 소멸. 3위 세이부와는 8게임차, 4위 지바롯데와는 7.5게임차라는 초월적인 수치라 따라잡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9월 15일,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제치고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10월 1일 기준으로 오릭스의 잔여 경기는 2경기에 불과하지만, 라쿠텐은 무려 6경기여서 이 순위도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감독의 사임 발표 등으로 팀 분위가 와해된 라쿠텐이 시즌 막판 무기력하게 무너지면서 최하위 탈출에는 성공했다. 그래봐야 555

4.5 2016년 시즌

그렇습니다 이 팀당장 해체해도 안 이상한 팀입니다
애초에 기대도 안했지만 4년만의 최하위

개막 후 13경기가 지난 4월 12일 현재까지 팀 홈런이 단 1개도 없었다. 이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개막 후 무홈런 기록[52], 팀 득점과 실점 모두에서 영예로운 리그 꼴찌이며, 당연히 퍼시픽리그 꼴찌를 순항중이다.(...) 14경기만에 이토이 요시오가 홈런을 기록하였고 꽤 긴 시간동안 라쿠텐과 함께 팀 홈런이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5월 초에 뜬금없는 분전과 세이부, 라쿠텐 두 팀의 거한 삽질로 한 때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리면서 탈꼴찌의 희망을 가지는 듯 했으나 교류전이 시작되면서 도로아미타불...

5월 24일 릭 밴덴헐크가 선발등판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NPB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22 : 6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떡실신을 당했다(....) 주자 만루에서 4볼넷으로 밀어내기 4점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다음 주자일소 2루타를...

6월 19일 기준으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함께 교류전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 교류전 때만 되면 오릭스도 중박은 친다는 이야기도 올 시즌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3연전에서 스즈키 세이야하드캐리로 3경기를 모두 역전패로 내 준 것이 뼈아팠다. 우천순연된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를 승리해도 공동 최하위, 지면 단독 꼴찌가 된다. 6/20(월) 한신과의 원정경기에서 패하면서 5승 13패를 기록하며 교류전을 최하위로 마감했다.

팀은 여전히 못나가는 가운데 일본의 마일리지 포인트 카드인 폰타와의 홍보활동 제휴로 폰타의 마스코트인 너구리 폰타의 트위터 계정을 통한 버팔로즈 응원 기획이 시작되었는데 경기 시작 전에 업로드 되는 일러스트에 나오는 폰타의 희망찬 표정과 패배한 경기 후에 업로드 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짠한 표정의 폰타가 네티즌들의 묘한 동정과 공감을 얻으면서 컬트적인 인기만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무려 15만이 넘는 팔로워를 기록하면서 불과 2개월 반만에 본진인 폰타의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수를 뛰어 넘어버렸다. # 이기라는 야구는 안 이기고 희한한 데에서만 성공 중 2013년 한화 이글스??

홈이 돔구장인데도 여기저기서 우천취소를 많이 겪어서 치른 경기가 다른 팀에 비해 5~6경기 적은 상황이다. 퍼시픽리그에 돔을 쓰는 팀이 4개나 있는데... 여러모로 묘한 시즌이 되고 있다.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1위 소뱅과 25경기 차, 3위 지바 롯데와 15경기 차의 최하위를 기록중이었으나, 후반기 들어서 5위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엄청난 추락을 하게 되면서 5위와의 경기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7월 31일에 세이부와의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기록, 세이부와의 경기차이는 0.5경기차밖에 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세이부가 8월 첫 3연전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스윕을 당해준 덕분에 최하위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의외로 시즌 막판 1위 감별사 노릇을 했는데, 소프트뱅크에게 스윕을 거두거나 위닝을 하면서 닛폰햄의 극적인 역전우승에 일등공신이 되...는듯 하다가, 그 닛폰햄 또한 9월 14~15일 2연전에서 잡으면서 2위로 내려 앉혔다. 특히 14일엔 닛폰햄 오오타니 쇼헤이의 일본 구속 최고기록인 164km 직구를 이토이가 멋지게 받아쳐서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 내는 명장면까지 만들었다. 1위를 하고 싶다면 오릭스부터 잘 잡도록 하자...

결국 최하위, 그것도 NPB 팀들 중 승률이 가장 낮은 팀이 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누가 감독을 맡든 답이 없을지도... 그리고 2016년 시즌 종료를 기준으로 양대 리그 12구단 중 유일하게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를 진출한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 되었다. [53]
오사카금색똥칰

5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1,300,676명 (-5.0%)1,438,467명 (+8.1%)1,703,734명 (+18.4%)1,767,220명 (+5.2%)1,794,475명[54] (+0.1%)
일일 평균18,482명19,979명23,663명24,890명24,923명[55]

6 한국과의 관계?

1977년 안승민의 영입, 2011 시즌 박찬호이승엽의 영입, 그리고 2012년 이대호의 영입에는 대한민국 시장을 고려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유는 오릭스그룹이 푸른2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오릭스저축은행#으로 한국 금융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56] 오릭스그룹이 2010년 푸른2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하였고 한국 투자자들을 더욱 끌어모으기 위해 한국프로야구 선수의 오릭스 버팔로즈 진출을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출신 선수들의 영입을 통한 이미지 제고로 오릭스저축은행이 개설한 투자 파생상품이 인기를 모았으며, 오릭스 경기 중계권을 한국 방송국에서 사들이면서 이로 인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 포스트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이후 제2금융권에서 재미를 봤는지 현대증권의 인수협상 1순위 기업으로 선정됐다. 기사

2016년 SBS 인기가요에서 TWICE정연CHEER UP 무대에서 이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정말 cheer up이라고 위로라도 해줘야 될 판이다.링크
※ 참고로 2006년 오릭스 버팔로즈 팬클럽 가입 특전 유니폼(팔소매 한쪽만 파란색 색칠되어있는)이다.

7 주요 선수

7.1 현역

7.1.1 투수

7.1.2 포수

7.1.3 내야수

7.1.4 외야수

7.2 OB

7.2.1 감독

7.2.2 투수

7.2.3 포수

7.2.4 내야수

7.2.5 외야수

7.3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일본프로야구기구 특례에 의해 오사카 부와 효고 현의 두 현에 걸쳐서 한신 타이거스와 공동으로 더블 프랜차이즈로 인정받는다.
  2. 2011년부터의 이름. 개장년도인 1988년부터 2002년까진 그린 스타디움 고베, 2003년부터 2004년까진 야후 BB 스타디움, 2005년부터 2010년까진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이란 이름을 씀.
  3. 고시엔 기간 동안은 한신 타이거스가 오사카 돔을 쓴다.
  4.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
  5. 1976년과 1978년은 전후기리그를 전부 우승해서 플레이오프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일본시리즈 직행.
  6. 설령 오사카와 고베를 모두 통튼 이름을 쓰려고 해도 이미 오사카-고베(한신)는 타이거스가 이미 가져가서 어찌 할 수 없다. 한신이 기업명이지 지역명이 아니라는 분들, 잠시 중·고교 교과서를 펴서 일본 주요 공업 지역 보고 오세요.
  7. 단, 외래어 표기법만 적용하면 버펄로가 맞는데(영어 발음 기준으로, 마지막 s가 유성음 /z/로 발음되므로 발음에 따라 '즈'로 표기) 국립국어원에서 외래어 표기법 외에 관례적으로 적용하는 다른 원칙까지 따를 경우 버펄로라고 적어야 한다. 뭔 소리냐면 국립국어원에서 외래어 표기법과 더불어 추가로 적용하는 관례화된 규정이 더 있다는 뜻이다. 구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은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된 뒤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중에 '일러두기'란을 외래어 표기법에 포함되지 않은 규칙들을 추가했다. 이것들은 표준어 사정(査定) 때 외래어 표기법과 더불어 관례적으로 참고해 왔다. 현재는 외래어 표기법이 개정을 통해 보강되면서 현재 저 '일러두기' 부분 중 제6~9장만 참고하고 있다. 아무튼 이 '일러두기'의 제6장의 5.(나)를 보면 "어말의 -s[z]는 ‘스'로 적는다"는 규칙이 적혀 있다. 원래 외래어 표기법만 적용하면 철자와 관계없이 발음에 따라 '즈'로 적어야 하는데, 발음 따지기 귀찮아서 -s로 끝나면 그냥 닥치고 '스'로 적게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법 뿐만 아니라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의 '일러두기' 제6~9장까지 준수하면 Buffallos를 버펄로로 적어야 한다. 뭐 이리 복잡해
  8.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중간에 운영주체가 인수된 경우라도 과거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버리지 않으며, 당연히 홈페이지에 소개해 놓고 있다.
  9. 그 중에서도 1995년~1996년 퍼시픽리그 V2 시기.
  10. 다만 이쪽은 블루웨이브 시절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이적한 신도 타츠야가 후쿠모토 본인의 허락을 받아 달기도 했다. 등번호값에 한참 못 미친 활약을 해서 그렇지
  11. 여기에 야마다 히사시의 17번은 준영구결번이나 다름 없었다.
  12. 여담으로 한큐가 다카라즈카 극장을 세운 방법과 똑같이 야구장 설계 초기부터 한큐 철도망이 지나가는 근처 부지를 잡고 지었다고 한다.
  13. 1970년엔 롯데 오리온즈가 파리그 우승. 1973년엔 난카이 호크스가 전기리그 우승 후 플레이오프에서 한큐를 3승 2패로 누르고 파리그 우승.
  14. 1975년의 일본시리즈 상대는 바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참고로 카프는 이 해 구단역사상 최초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선 한큐에게 전패(무승부 2번 포함)해버리는 바람에 우승에 실패했다. 히로시마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은 그로부터 4년 뒤 이룰 수 있었다. 그때 히로시마의 상태팀 감독우에다 토시하루의 전임 감독인 건 안 비밀 사족으로, V9 시절 한큐를 씹어먹을 정도의 기세를 자랑한 그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75년 그 해 센트럴 리그 꼴찌를 기록했다(...) 아니 이 분의 감독생활 첫 해였다지만 V9나 해놓고서 2년 만에 어떻게 그 지경까지
  15. 다만 일본시리즈에선 센트럴리그 팀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1978년엔 야쿠르트 스왈로즈한테(참고로 스왈로즈도 이 해가 첫 센트럴 리그 우승이었다. 거기다가 첫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해버렸으니..), 1984년엔 9년 전에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3승 4패로 패했다.
  16. 요미우리 자이언츠호시노 센이치를 거르고 뽑은 1968년 드래프트 1차지명 출신의 故 시마노 오사무가 전속 슈트 액터로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마노는 호시노와 달리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한큐에서 은퇴했지만, 은퇴 이후 오히려 브레이비-네피의 슈트 액터로 이름을 알리며 전화위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고, 팀이 오릭스에 매각되면서 마스코트가 '네피'(1991년 런칭)로 바뀐 뒤에도 지병으로 은퇴를 선언한 2004년까지 슈트액터를 맡았다. 2010년 사망.
  17. 후쿠모토는 우에다 토시하루의 말실수 때문에 은퇴했다(...) 자세한 건 후쿠모토 유타카 항목 참조.
  18. 일본프로야구 용병 중 최고의 용병 반열에 한 두번은 거론되는 인물이다. 특히 1984년에 외국인 최초의 타격 삼관왕을 기록했다.
  19. 전 시즌이었던 1988년 10월 19일 카와사키 더블헤더 경기에서 긴테츠에게 고춧가루를 뿌렸던 롯데 오리온즈가 이번에는 오릭스에게 고춧가루를 뿌렸다. 이 해에는 긴테쓰가 10월 12일 세이부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4연타석 홈런을 때린 용병타자 랄프 브라이언트의 활약의 힘입어 파리그를 우승한다.그리고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에게 대역전극을 허용한다.
  20. 시마노가 이 해 사망했다.
  21. 상단 각주에서 나오다시피 시마노 오사무가 네피도 연기했다.
  22.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2001년 팀 사상 마지막 퍼시픽리그 우승의 제물이 된 때도 이 때였다. 긴테쓰의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2001년 9월 26일 오사카 돔에서의 원정경기에서 9회 초까지 5-2로 앞서 있었으나 8회 도중 교체된 구원투수 오쿠보 마사노부가 9회 말에 아웃을 하나도 못 잡고 안타→2루타→볼넷 크리로 만루를 허용했다가 9번타자 후루쿠보 겐지(그날 3타수 무안타)의 대타로 나온 키타가와 히로토시에게 NPB 사상 최초의 대타 역전끝내기 만루 리그 우승 홈런 을 얻어맞고 긴테쓰 좋은 일만 시켜줬다. 결국 오기 감독은 그 해를 끝으로 사임했다. 여담으로 당시 긴테쓰 감독은 공교롭게도 오기의 제자였던 나시다 마사타카였다(...)
  23. 롯데 오리온즈,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용병으로 활약한 명선수.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흑인 감독, 메이저리거 데릭 리의 아버지. 여담이지만 수정 전 레론 리란 이름으로 적혀있었으나, 레론 리는 바로 레온 리의 친형이다(...) 참고로 이쪽도 롯데 오리온즈에서 장기간 활약을 펼친 명선수.
  24. 7월 27일에는 후쿠오카 돔에서 다이에에게 32안타를 얻어맞고 26-7로 패배했고, 8월 1일에는 야후 BB 스타디움으로 몰려온 고베의 홈 관중들 앞에서 투수진은 홈런만 7발을 얻어맞고 타선은 스기우치 토시야에게 꽁꽁 틀어막혀 29-1떡실신 당했다. 지금의 똥칰보다도 더했다! 이러니까 사람이 안오지.. 옆 동네가 이러다가 어떻게 되었나를 잊었는감?
  25. 고바 타케시가 이끌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4승 2무로 탈탈 털며 첫 우승을 했다. 그러나 8년 뒤에는 에이스 야마다 히사시가 3패를 당하며 오히려 역관광당했다.
  26. 당시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으로 휘청대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치바 롯데 마린즈와 합병한다는 안이 있었다. 결국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다이에 호크스를 인수해 현재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어진다.
  27. 당시 선수회 회장이 바로 후루타 아츠야였다.
  28. 상술되었듯, 일본프로야구 최후의 300승 투수 초혼(草魂) 스즈키 케이시의 1번이 오릭스에서는 본인이 원치 않아서 영구결번에서 해제되었다.
  29. 2000~2005
  30. 2006~2008
  31. 서패스는 일본의 주택건설업체인 아나부키공무점의 맨션아파트 브랜드이다. 한국으로 치면 래미안 경산 정도 되는 네이밍 센스. 그러나 아나부키공무점은 이후 경영사정 악화로 부동산회사인 다이쿄에 인수되었다.
  32. 구단주이자 라쿠텐 이글스 창단의 숨겨진 일등공신 및 이대호 박찬호 이승엽 데려오신 분인 미야우치 요시히코는 모기업이자 일본 최대의 리스 회사인 오릭스의 창업주로, 일본 재계에서 소문난 야구광이라 환갑이 넘어도 투수로 뛸 정도다. 그러나 2004년 프로야구 리그재편 문제 때 오릭스와 긴테츠의 합병을 주장해 선수협과 야구팬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4년에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당시 결산시점에서 12구단의 재무제표를 연결해 봤더니 총합이 적자였다고 하며, 야구를 흑자를 내는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 리그개편이 필요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으며, 지금(인터뷰 당시 2014년)은 10구단 체제가 아닌 12구단 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릭스가 흑자를 유지한다면 구단명을 기업명까지 뗀 '오사카 버팔로즈'로 바꿀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다. 그래봤자 누가 야구 보러 교세라돔에 올까.. 니시노미야+고베 팬들을 배신할 셈이냐?? 야알못
  33. 이전 문서에는 구본무에 비유하는 역링크가 있었으나, 구본무와는 달리 미야우치는 가족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야구 외 경영 및 일본의 국가경제 및 정부정책 자문에서도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주장한 인물이라 구본무같이 적자를 감수한 투자는 잘 하지 않았다. 합병 후 10년간 성적이 망해서 그렇지
  34. 일본어로 견우와 직녀에 나오는 직녀.
  35. 현재 뉴욕 메츠 감독.
  36. 여담이지만, 이 때에 오늘도 졌다가 공개되었다.
  37. 현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타격 코치
  38. 2010년엔 알렉스 카브레라마저 풀린다. 외국인 6명으로 운용이 가능할 뻔했으나 로즈가 재계약을 하지 못해 결국 카브레라로 돌려 5명으로 유지할듯 싶어보인다.
  39. 그 이후로 오제의 등번호인 41은 애도의 의미로 팀에서 사실상 준 영구결번이 되었다.
  40. 요코하마의 현재까지 마지막 A클래스인 2005년엔 세리그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없었다. 2007년부터 도입.
  41. 버팔로 벨은 아시다시피 씹덕들 사이에서 마스코트 인기 독보적 선두다.(...)
  42. 결국 홈런왕은 나카무라 타케야에게 돌아갔다.
  43. (적어도 2010년대 이전까지)오릭스가 내보낸 선수들은 다른 팀에서 포텐이 터지거나 부진에서 벗어나 부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언급된 히라노도 그렇고, 보다 상징적인 사례로 긴테쓰 시절 40홈런을 치며 메이저에 도전했다가 LA 다저스에서 1년도 안되 폭풍 방출(...)된 뒤 오릭스에 돌아왔으나 부상과 구단과의 갈등으로 삽질을 거듭한 끝에 자유계약으로 풀린 강타자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있다. 2007 시즌이 끝나고 오릭스에서 방출된 그를 주니치 드래곤즈가 육성선수로 헐값에 데려갔고, 그는 그해 주니치에서 20+홈런을 치는 등 맹활약하며 끝내 일본시리즈 MVP가 된다! 노리히로는 현재까지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2013년에는 현역 통산 2000안타까지 달성한다.
  44. 이토이의 FA 취득은 2017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최대 4년동안 쓸 수 있다.
  45. 0.300/0.384/0.468 17홈런 61타점 75득점 33도루
  46. 0.303/0.384/0.493 24홈런 91타점 60득점
  47. 0.289/0.371/0.441 17홈런 91타점 60득점 1도루
  48. 사와무라상 조건 7개를 모두 달성해서 다나카 마사히로보다 1개 앞섰지만 결국 다나카가 사와무라상을 탔다.투승타타
  49. 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에서 부상으로 인해 2이닝 투구 후 교체됐다.
  50. 1루수인 T-오카다가 다이렉트 캐치로 타자아웃, 1루를 밟아서 주자아웃,3루에 송구해서 3루주자 아웃. 헌데 1루심판인 요시카와는 1루앞에서 원바운드후캐치한걸로 판정했다.
  51. 참고로 2008년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2위로 올라와서 홈에서 3위인 닛폰햄 파이터즈에게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 역사는 반복된다.
  52. 1953년 난카이 호크스. 12경기. 퍼시픽리그는 개막 3연전에서 6팀 모두 단 한개의 홈런도 치지 못했다.
  53. 센트럴리그의 과거 꿈도 희망도 없었고 클라이맥스도 경험하지 못했던 요코하마 DeNA가 2016년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인 요미우리를 누르고 파이널에 진출하였기 때문이다.
  54. 구단 신기록
  55. 구단 신기록
  56. 이미 오릭스는 오래전에 국내 지사가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오릭스 한국지사는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근처에 있다.
  57. 정확히는 최다탈삼진을 1956~57년 2년 연속으로 딴 적 있었으나, 당시엔 연맹표창이 없었다(....) 진짜 안습인데 이건
  58. 다만 이건 본인이 별로 타이틀 등에 욕심을 갖는 성향이 아니었다. 시즌 종반에 최다승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이긴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도록 감독이 촉구했으나 “남의 승리를 가로채는 짓은 참아 주십시오” 라고 등판을 거부한 적도 있었고, 본인이 승리 투수가 되는 데도 별 집착이 없었던 터라 현역 마지막 시즌인 1973년에는 자신의 통산 승리 수가 통산 패전 수를 웃돌게끔 구원으로 등판하라는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제안에도 이를 거부한 저도 있었다.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10대 0으로 이기는 것보다는 0대 1로 지는 게 좋다. 승패보다는 충실한 투구를 했는지의 여부가 나한테는 더 중요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선수, 코치, 감독직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노무라 카츠야"투수 같지 않고 부처님 같은 성격이다" 하고 했을 정도(...)
  59.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긴테츠 버팔로즈에게 패배해 긴테츠의 첫 일본시리즈 진출을 허용했다. 그리고 긴테츠는..
  60. 애니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보면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 모델이 이 분으로 비슷한 계열로 보면 된다. 현역시절 일본에서 역대급 성적을 냈다 후 은퇴 뒤에 예능/배우 등등 가리지 않고 대단한 역활을 했었다 라고 하는데 아마도 주측.
  61. 다만 판정 자체는 옳았다. 다음 날 신문에 도이 쇼조의 발이 에 닿은 사진 이 올라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