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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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스포츠단
축구레알 마드리드 CF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 레알 마드리드 CF C · 레알 마드리드 CF 칸테라
농구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B
역사와 문화역사역사 · 챔피언스 리그 · 유니폼 · 갈락티코스 · 상대 전적
역대 시즌13-14 · 14-15 · 15-16 · 16-17
문화응원가 · 레알 마드리드 TV · Hala Madrid(잡지)
관련 상식더비 매치엘 클라시코 · 데르비 마드릴레뇨
기타오해
구단 시설경기장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바클레이카드 센터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의 경기장이다.
훈련 시설발데베바스
기타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 · 관광

1 개요

본 문서는 원년인 1902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레알 마드리드 CF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2 초창기

1895년에 마드리드에 처음 설립된 축구 클럽인 Football Sky는 1900년 New Foot-Ball de Madrid와 Club Espanol de Madrid로 분리된다. 이 중 Club Espanol de Madrid는 1902년에 Sociedad Madrid FC로 개편되는데 이게 현 레알 마드리드의 시작이다(레알 마드리드에서는 Club Espanol de Madrid의 회장이었던 훌리안 팔라시오스를 초대 회장으로 인정하고 있다.). 개칭 후 초대 회장인 후안 파드로스 루비오와 2대 회장인 카를로스 파드로스 루비오 시기 동안 코파 델 레이에서 4연패를 달성한다.[1]

1920년부터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엠블럼에 왕실의 상징인 왕관을 달았다. 이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로부터 '레알'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이다. 현재 클럽 명 앞에 '레알'이 붙은 클럽들은 모두 알폰소 13세 시기 때 칭호를 하사받은 것이다. 스페인 제2 공화국 시기와 내전 당시에는 격하되어서 'Madrid C.F.'라는, '레알'을 뺀 명칭과 왕관을 뺀 엠블럼을 사용하였다.

초창기부터 마드리드 지역 대회를 발 아래에 두었다.[2]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서 서술한 코파 델 레이 4연패 등으로 스페인 전역에 이름을 날리면서, 바스크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던 아틀레틱 클럽, 그리고 카탈루냐 지역의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최강자 중 하나로 꼽혔다.[3]

레알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황금기는 보통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저승사자 군단 시대), 1960년대 중후반(Yé-yé 마드리드 시대), 1980년대 후반(독수리 오 형제 시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라울&갈락티코스 시대)으로 구분된다. 특히 Yé-yé 마드리드 시대의 도래 이후에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자국 출신 선수가 대표 팀의 아이콘으로 군림하는 전통이 확립됐다.[4]

2.1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

항목 참조.

3 저승사자 군단[5]

1953년에 레알 마드리드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와 계약하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하며 다국적 군단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저승사자 군단 시절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간 선수들은 이 외에도. '폭주하는 소령' 페렌체 푸스카쉬(Ferenc Puskás), '칸타브리아의 광풍' 프란시스코 헨토(Francisco Gento),[6] 엑토르 리알(Héctor Rial), '나폴레옹' 레이몽 코파(Raymond Kopa), '벽' 호세 산타마리아(José Santamaría),[7] 미겔 무뇨스(Miguel Muñoz), '마법사' 아만시오 아마로(Amancio Amaro) 등이 있다.

1953/54 라 리가 우승
1954/55 라 리가 우승
1955/56 라 리가 3위, 유러피언 컵 초대 우승
1956/57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1957/58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1958/59 라 리가 준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1959/60 라 리가 준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코파 델 레이 준우승
1960/61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16강, 코파 델 레이 준우승,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
1961/62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준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1962/63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16강
1963/64 라 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준우승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11시즌 동안 리가 8회 우승(평균 승점 83), 유러피언 컵 5회 우승/2회 준우승, 기타 컵 1회 우승[8]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업적을 이룩하고 저승사자 군단이라 일컬어지며 전 유럽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강력한 헤게모니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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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저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할 수 있는 왕조를 구축한 클럽을 꼽으라면 전 유럽 축구사를 통틀어 봐도 몇 없는데, 미친 오프사이드 트랩과 정신 나간 포지션 교체, 경기 전체를 쥐고 상대를 가둬서 패는 것으로 유명했던 요한 크루이프의 팀인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중반까지의 <토탈 풋볼> 아약스 왕조,[9] 라이벌이었던 아약스의 가패 축구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왕좌를 이은 프란츠 베켄바워의 70년대 초중반의 <데어 카이저의 팀> FC 바이에른 왕조,[10] 이안 러시, 수네스, 앨런 핸슨, 캘러헌, 필 닐, 케니 달글리시 등등... 제라드도 고개 내밀기 힘든 리버풀 레전드들이 구축했던 70년대 중반~80년대 중후반까지의 <붉은 제국> 리버풀 왕조,[11] 이전 시대의 아약스를 연상케 하는 엽기적인 오프사이드 트랩 시도와 숨 막히는 프레싱으로 이름을 날렸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의 <사키 혁명> 밀란 왕조,[12] 역대 최강을 넘보는 메시와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한 사비, 그리고 크루이프의 철학이 레이카르트와 과르디올라를 거쳐 정착된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도 초반까지 이르는 <포제션 풋볼> 바르셀로나 왕조 정도만이 이와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4 Yé-yé 마드리드(Yé-yé Madrid) 시대

저승사자 군단의 강세는 저게 끝이 아니고, 70년대 초반까지도 라 리가 우승은 기본에,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도 여전히 정상을 다투는 팀이었다. Yé-yé 마드리드는 '제2의 디 스테파노, 제3의 디 스테파노를 스페인 자국 출신 선수로 키워 내자'라는 정책의 일환으로서 탄생한 196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일컫는 애칭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디 스테파노 시대가 저문 이후 스페인 각지에서 젊은 인재를 불러 모아 자국 출신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고, 이러한 세대 교체는 대표 팀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써 이뤄졌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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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é-yé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 우승

Yé-yé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결과물은 바로 스페인의 1964년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 64) 우승이다. 당시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던 "마법사" 아만시오 아마로는 디 스테파노의 뒤를 잇는 레알 마드리드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들은 아만시오 아마로를 비롯하여 벨라스케스, 피리, 소코, 마누엘 산치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1965/66 유러피언 컵, 즉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이 이후로 30여 년 간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그 저주를 끊어 낼 때까지...

5 독수리 오 형제(La Quinta del Buitre) 시대

1980년대에는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에 강한 영향을 받아 스페인 각지에서 선수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닌, 유스 클럽으로부터 팀의 주축 선수들을 키워낸다는 의식이 확립됐다. 그 결과물로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80년대 후반을 강타한 독수리 오 형제(La Quinta del Buitre, 라 퀸타 델 부이트레)'로 불리우는 레알 마드리드이다. 다섯 마리의 독수리, 혹은 소수 정예 군단을 의미하는 이 애칭은 유스 클럽에서 올라와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한 "독수리"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마놀로 산치스,[14] 미첼[15], 마르틴 바스케스, 미구엘 파르데사로 이어지는 5인방을 지칭한다. 그 외에도 프란시스코 부요, 울리 슈틸리케, 첸도, 우고 산체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보유한 마드리드는 1980년대 UEFA 컵 두 번, 라 리가 5번 연속 우승, 코파 델 레이 한 번,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세 번 우승을 일궈내며 세계 최고 클럽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특히 이 시기는 프랑코 독재가 끝난 시점에 이룩한 부흥기이기 때문에 과거 독재 정권의 비호 속에 전성기를 구축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주된 근거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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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오 형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가 뒷줄 제일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도 아랫줄 가운데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었고,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도 역임한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도 있다. 그 외 선수들도 하나같이 ㅎㄷㄷ한 레전드들.

다만 이같이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마드리드에 단 하나의 흠이 있다면 바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없었다는 점. 분명히 유럽 최고의 강호 중 하나였으며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은 강팀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유독 챔스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저 당시 챔스 무대에서는 킹 케니 달글리시를 위시한 붉은 제국 리버풀이 아직까지 그 위세와 명맥을 유지하던 시점이었으며 헤이젤 참사 이후 영국 축구가 한동안의 침체기를 거치는 동안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밀란이 전 유럽을 호령하던 시기였다. 1990년에 접어들어서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바르셀로나 드림 팀 1기의 대약진이 시작되면서 독수리 오 형제는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고 라 리가 무대에서도 한동안 바르셀로나에게 왕좌를 내줘야만 했다. 이에 따라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 조급증에 걸린 나머지 감독 경질 횟수도 더욱 늘어만 갔다.

6 라울 마드리드

한동안의 침체기를 겪은 뒤 마드리드는 1994/95 시즌 바르셀로나로부터 라 리가 우승을 탈환하는 것으로부터 반격의 준비를 시작한다. 비록 이듬해 다시 바르셀로나에게 연이어 라 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헌납했지만, 1996/97 시즌 다시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력을 정비한 레알 마드리드는 1997/98 시즌 유프 하인케스 감독 체제 하에서 미야토비치, 레돈도[16] 등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30여 년 만에 챔스 우승을 달성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는 바로 부트라게뇨 이후 마드리드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게 된 '엘 니뇨' 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라는 존재를 발굴해 낸 것에 있었다.

다만 라 리가 왕좌는 여전히 바르셀로나의 차지였고, 기존 선수들과 새로 유입된 선수들 간의 불화 등의 요인이 겹쳐지며 라커룸 안팎으로 혼란의 정국이 거듭된다. 챔스 우승을 이끌어내는 데 공헌한 하인케스 감독도 시즌이 끝나고 해임되었다. 이러한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이어지는 1998/99 시즌 중반에는 팀 순위가 10권 밑으로 내려가고 존 토샥 감독이 중간에 경질되는 등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처럼 어수선한 와중에서 과거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도 활약한 바 있었던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리가 우승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거두는 가운데 챔스 8강에서 하필 전년도에 트레블을 이룩한 팀, 베컴, 로이 킨,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등 베스트 멤버가 건재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나게 되었다.

마드리드는 당장 챔스 진출권 수성이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맨 유는 리그 선두에 트레블 시즌의 주축들이 건재해서 대부분의 유럽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맨 유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 홈 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1차전, 마드리드와 맨 유는 0-0 무승부를 거뒀고 퍼거슨 감독은 자신들의 홈, 올드 트래포드에서 갖는 2차전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라고 발언. 이에 대해 라울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해 주겠다'라고 화답하면서 두 팀의 신경전은 극도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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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챔피언스 리그' 라울 곤살레스

운명의 8강 2차전. 두 팀의 치열한 공방 끝에 라울은 2차전 원정에서 홀로 2골을 넣으며 본인의 말을 증명했다. 라울의 2골과 맨 유의 자책 골이 겹쳐 OT 원정에서 3-2 승리를 거두어 준결승에 진출. 특히 세 번째 골에서 레돈도의 패스는 유명한 장면.

이후 라울은 챔피언스 리그 내내 최고의 활약을 보이면서 발렌시아와의 결승전에서까지 연달아 골을 작렬, 1999/00 시즌을 챔스 우승으로 드라마틱하게 마무리한다. 비록 리가 최종 순위는 5위에 그쳐 챔스 진출권에 들지 못했지만 우승 팀 자격으로 차기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라울의 활약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익히 알려진 갈락티코스 체제를 추진할 수 있는 기폭제를 얻게 되었다.

당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르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유럽 축구는 이른바 3M의 시대였는데(레알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17] 이 세 클럽이 서로 물고 물리는 각축전을 벌이며 유럽 축구의 패왕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시기였다. 셋 모두 서로가 상대가 아니고서는 여간해선 지지 않았고 유럽 무대에서 꾸준하게 강한 모습을 보이며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였던 시기로 기억된다.

시즌레알 마드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바이에른 뮌헨
1997/98우승8강8강
1998/998강우승준우승(맨유에게 패배)
1999/00우승8강(마드리드에게 패배)4강(마드리드에게 패배)
2000/014강(바이에른에게 패배)8강(바이에른에게 패배)우승
2001/02우승4강8강(마드리드에게 패배)
결과
우승311
준우승--1
4강111
8강132

그러한 3M의 시대 속에서도 가장 돋보인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였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를 진두지휘하며 위기 때마다 구해냈던 존재가 바로 라울 곤살레스였다. 저 시기 동안 라울은 2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기록을 세우며 챔스의 사나이로 등극했고, 당시 라울의 존재는 마드리드 로컬 보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연고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라커룸 안팎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전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 어떤 선수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특히 이 시기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함께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며 소위 '영혼의 투 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모리엔테스와는 스페인 대표 팀에서도 한솥밥을 먹으며 이 시기 스페인 대표 팀을 상징하는 공격수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유스 선수 시절부터 이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때까지 쭉 함께 했던 죽마고우인 구티도 이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텼던 든든한 동료 중 하나이다. 이처럼 라울이라는, 아만시오 이래 내려온 스페니시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가 다시금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과거 독수리 오 형제나 Yé-yé 마드리드 시대와 같은 스페니시 혹은 마드리드 유스 출신 선수들을 주로 기용하는 정책이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는 다르게 페레스 회장의 주도 아래 '축구는 곧 레알 마드리드로 통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 과거 30여 년 전 유럽을 손아귀에 넣고 호령하며 공포의 헤게모니를 구축했던 그 시절을 다시금 반복하기 위하여 한동안 마드리드가 취해 왔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정책이 시작된다. Los Galácticos(은하계 군단), 즉 갈락티코스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7 갈락티코스(Galácticos) 1기

국내 팬들에게(혹은 대중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이름이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라면 2000년도 초반 페레스 회장이 이끌었던 정책인 바로 이 갈락티코스 정책이다. 이 정책의 요점을 말하자면 '세계 유수의 공격수들을 모아 드림 팀을 만들겠다!'라는 것인데 실제로 거의 모든 선수들이 각 나라 역대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선수들을 끌어 모아서 선수진을 구성했다.

  • 2000/01 루이스 피구: 이적료 6000만 유로, From FC 바르셀로나
  • 2001/02 지네딘 지단: 이적료 7350만 유로, From 유벤투스
  • 2002/03 호나우두: 이적료 4500만 유로, From 인테르
  • 2003/04 데이비드 베컴: 이적료 3750만 유로, From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초대형 영입의 시작이었던 루이스 피구(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다)는 레알 마드리드의 원수와도 같은 FC 바르셀로나의 중심 선수였기에 당시의 파장은 엄청났다.[18] 그 이후 유벤투스로부터 지네딘 지단을 사 오면서[19] 2001/2002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게 되는데 이때가 갈락티코스의 성적이 절정인 시기였다. 다만 당대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로 불리던 지단과 피구의 공존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01/02 시즌 초반 델 보스케 감독은 두 명의 플레이 메이커를 사용하는 데 골머리를 앓았고 시즌 중반 피구가 부상을 당하자 이전부터 수비력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내던 지단 밑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면서 경기력이 안정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시즌 마드리드는 리가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친다. 지단과 피구의 공존이 비로소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2002/2003 시즌에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이 시즌에 마드리드는 라 리가 타이틀은 되찾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전성기에 들어선 네드베드가 이끄는 유벤투스에 석패하며 4강에서 탈락했다. 당시 지단, 피구, 라울이 2선에서 보여주던 플레이는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결과가 아쉬웠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영입하였다. 호나우두-라울 투 톱에 지단-피구 공격형 미드필더진이라는 유례 없던 최강의 공격진이 편성됨으로써 이때만 하더라도 네임 밸류와 공격력 모두에서 만점 활약을 펼쳤다(단 수비가 안습이라 앞서 공격진의 위력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 서술하겠다). 다만 이 시기의 호나우두는 장기 부상 이전의 그는 아니었다. 성향상 포스트 플레이가 불가능했기에 공격 방식에 한계가 있었고, 마드리드 이적 후 초기엔 그나마 괜찮았던 활동량도 체중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시망하면서 파트너였던 라울만 죽어났다. 그리고 마드리드는 2003년에 잉글랜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과도 같은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게 되는데...

7.1 무너진 갈락티코스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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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벽'

베컴의 영입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첫째는 베컴의 포지션이 피구랑 겹쳤다는 것. 두 선수 모두 당대 최고의 오른쪽 날개로 평가받았기에 둘 중 하나는 포지션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막대한 돈을 들여 사온 선수를 벤치에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수비력이 그나마 나은 베컴을 중앙 미드필더로 두고 두 선수의 공존을 꾀한 포메이션인데, 이는 당연히 실패한다.
두 번째 문제는 팀 내에서 위화감이 생긴 것. 호나우두까지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는데, 베컴이 들어오면서 팀 내에서 '갈락티코스가 아닌' 선수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클로드 마켈렐레. 마켈렐레는 대놓고 이를 비판했고, 결국 마켈렐레는 당시 갑부 구단주를 맞아 신흥 강호로 부상하던 첼시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마켈렐레의 이적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당시 갈락티코들에 준하는 주급을 재계약 협상 시에 요구했고 당시 주급 체계상 마드리드는 도저히 마켈렐레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만약 이때 마켈렐레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오늘날의 레알 마드리드의 주급 체계와 프랜차이즈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외에 호나우두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든가 하는 자잘한 문제들도 있었다. 호나우두는 다른 재능에 비해 머리를 극도로 못 쓰는 공격수였는데, 크로스 능력이 역대 최고 수준인 베컴을 데려왔으니 당연히 비효율이 발생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강력한 공격진을 서포트해 주던 마켈렐레가 이적한 뒤 마드리드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이후로 마드리드는 마켈렐레의 후계자를 찾는 데 전념하게 된다. 거론된 후계자만 해도 상당한 숫자인데, 파블로 가르시아, 에스테반 캄비아소, 토마스 그라베센, 에메르손, 마하마두 디아라, 라사나 디아라 등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마켈렐레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후 2006/07 시즌 리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도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허나, 이런 성적상의 실패와는 별개로 베컴의 영입으로 갈락티코스의 마케팅은 완성되어, 선수에게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금전적 이익을 보게 된다.
단, 당시 마드리드의 부진을 마켈렐레의 이적 탓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폐가 있을 수도 있다. 마켈렐레 이적 후인 03/04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그 1위를 달리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나, 로테이션 부족으로 주전 멤버들의 혹사가 시작됐고 후반기에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켈렐레의 이적으로 바로 팀 경기력에 문제가 생겼던 건 아니다. 분명 스타 선수들의 영입으로 불균형적인 스쿼드가 된 것은 사실이나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도 꾸준히 영입하면서 그 간격을 메꾸려고 했다. 다만 그 영입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팀의 붕괴를 막을 수 없었을 뿐이다. 이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오해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렇게 망한 갈락티코스였지만 선수의 기본적인 능력치 탓인지 FIFA 시리즈 게임에서 03/04 레알 마드리드는 그야말로 피파 게임의 듀오론(...)에 상응하는 사기 팀이 되었다. 마침 악명을 떨친 시기도 비슷하고

7.2 문제점

이 정책이 결과적으로 성적 면에서 실패한 것은 팀의 균형을 짜는 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정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격진은 지단 같은 슈퍼 스타를 영입해서 채우고, 수비진은 파본 같은 카스티야 출신으로 메꾸겠다!'라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지다네스 & 파보네스라고 불렀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공격에 비해 수비 포지션은 자체 스펙보다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이다.[20] 기본적으로 수비수들이 공격수들에 비해 다소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더 오래 뛰는 것이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는 갈락티코스를 진행하면서 팀에 오랫동안 충성했던 베테랑 선수들(대표적으로 이에로를 들 수 있다)을 방출하고 그 자리를 공격수로 채우다 보니 팀의 균형은 점차 무너져만 갔다. 물론 포지션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성 또한 큰 문제로 불거졌다.

결국 수비진을 카스티야 출신으로 메꾸기는 벅찼는지 로마에서 이름을 날리던 센터백인 월터 사무엘을 들여 왔으나 안습한 활약으로 인테르로 헐값에 방출된다.[21] 그리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던 조너선 우드게이트도 영입했는데 이 선수가 워낙 유리몸이라 2년 동안 9경기라는 병맛 같은 기록을 보여 주었고 데뷔 경기에서 자책 골을 넣는 등 전설과도 같은 활약으로 미들즈브러로 방출된다.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 팬들 사이에서 우드게이트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박찬호급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이 시기 마드리드와 뉴캐슬의 거래 관계가 재미있는데, 서로에게 맞사기를 먹였다. 뉴캐슬에선 우드게이트라는 대박 사기를 쳤던 반면 마드리드 역시 마이클 오언이라는 만만찮은 사기를 먹였다(...). 사이 좋은 친구들 이후 수비수 최초로 발롱 도르를 수상한 파비오 칸나바로와 맨 유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가브리엘 에인세를 영입하며 수비를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녹록치 않았고, 이후 세르히오 라모스, 마르셀루 등이 성장하고 나서야 수비에서도 숨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케르 카시야스를 제대로 레벨 업 시켜 2004/05 시즌엔...

▲ 2004/05 시즌 라 리가 상위권 3 팀의 슛 허용 숫자 비교
1위 바르셀로나: 총 331회 슛 허용, 173회 유효 슛 허용, 실점 29
2위 레알 마드리드: 총 583회 슛 허용, 348회 유효 슛 허용, 실점 31
3위 비야레알: 총 421회 슛 허용, 229회 유효 슛 허용, 실점 37
▲ 2004/05 시즌 사모라 상 순위(출전 횟수-실점으로 집계)
1위 빅토르 발데스(바르셀로나): 35경기 출전, 25실점, -10.
2위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37경기 출전, 30실점, -7.
3위 레오 프랑코(아틀레티코): 37경기 출전, 32실점, -5.

이런 경악스러운 슛 허용 대비 실점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슛 허용 수는 세군다 리가로 강등된 누만시아(19위)와 알바세테(20위)의 기록을 넘어서는 놀라운 수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정책으로 인해 제일 큰 피해를 본 케이스는 마드리드의 유스들이라고 단언할 만큼, 우수한 꿈나무들이 다른 팀으로 옮겨 가거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심했다. 사무엘 에투의 경우 카스티야를 떠나 바르셀로나에서 친정 팀을 상대로 수많은 골들을 기록하여 마드리드 입장에선 제대로 부메랑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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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비 가르시아, 알바로 아르벨로아, 로베르토 솔다도, 알바로 네그레도, 후안프랑. 국가 대표 소집 중에 찍은 사진이다.

사무엘 에투뿐 아니라 하비 가르시아(맨체스터 시티), 로베르토 솔다도(발렌시아), 보르하 발레로(피오렌티나), 디에고 로페스,[22] 알바로 네그레도(이하 세비야), 후안프랑(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안 마타(첼시) 등 라 리가나 유럽 주요 리그에서 카스티야 출신으로서 타 팀 주전 자리를 꿰차고 국가 대표까지 뽑히는 선수들이 꽤 많다. 그리하여 마드리드는 유스 선수들을 방출할 시 일정 금액에 선수를 재영입할 수 있는 바이-백 조항을 자주 걸어 둔다. 또한 카스티야 출신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여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골을 넣는, 이른바 '부메랑'이 가끔씩 날아 오기도 한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이-백 조항으로 2008/09 시즌에 헤타페에서 재영입된 카스티야 출신 데 라 레드는 유로 2008 당시 국가 대표에도 소집되는 등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로 평가되었으나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못한 심장병에 의해 24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측면 수비수 아르벨로아는 리버풀이 마드리드에 역수출했다(바이-백 조항을 쓴 것이 아닌). 하지만 역시 계속 잔류시켰다면 괜한 돈 안 써도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는 뭐라 답할 수 없다. 이에 마드리드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페르난도 가고의 입단식에서 '우리는 암탉이 있으나 다른 곳에서 계란을 산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8 네덜란드 커넥션

마드리드의 갈락티코스 정책을 이끌었던 페레스 회장이 성적 부진 등의 책임을 지고 2006/07 여름 비시즌 기간 회장 선거를 거쳐 그 뒤를 칼데론 회장이 이어받게 되었다. 칼데론은 이전의 갈락티코스가 아닌 다소간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다시금 불러들였고 카펠로 감독 체제 하에 마드리드는 2002/03 시즌 이후 네 시즌 만에 라 리가 우승 트로피를 탈환하게 되었다.

2006/07 시즌 우승 후 카펠로 감독(리가 우승에 성공했으나 마드리드 고유의 색을 잃게 했다는 이유로 경질된다)을 이어 2007/08 시즌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들어온 이후 잠깐 동안의 네덜란드 커넥션 시기가 있었다. 이는 공격수 뤼트 판 니스텔로이, 클라스 얀 훈텔라르, 윙 포워드 아르연 로번, 공격형 미드필더 베슬리 스네이더르라파엘 반 더 바르트(VDV), 수비수 로이스톤 드렌테까지 네덜란드 국가 대표 선수만 6명이 뛰던 시절이었다. 이들 중 몇 명의 활약은 썩 괜찮아서 2번의 라 리가 우승을 이끌어 내기도 했고 우승을 하지 못했던 시즌에도 바르셀로나와의 화끈한 리가 1위 탈환 경쟁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훈텔라르의 적응 실패 및 주전 경쟁 탈락, 반 니의 부상, 로번의 부상, VDV의 적응 실패, 스네이더르의 부상, 드렌테의 기량 미숙으로 결과적으로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로번은 FC 바이에른으로, 스네이더르는 인테르로[23], 훈텔라르는 밀란으로 그리고 판 니스텔로이도 함부르크 SV로 이적하게 되었다.

VDV의 경우 카카에게 밀려 벤치를 지키게 되자 끝까지 나가고 싶어했으나, 이적 협상을 번번이 실패하였고 암에 걸린 부인이 스페인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두고 이적할 수는 없어 남아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커넥션을 주도했던 칼데론 회장이 구단 총회에서 투표 조작 파문을 일으키며 임기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 형식으로 2009년 1월에 사임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다시 차지하게 되면서 과거 칼데론의 유산을 지우겠다는 미명 하에 네덜란드 커넥션은 급격히 와해되었다.

결국 2010/11 시즌이 시작하기 바로 전 VDV도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 드렌테도 당시 승격 팀인 에르쿨레스로 임대보내면서 네덜란드 커넥션은 완전히 끝났다.

9 갈락티코스(Galácticos) 2기

과거 갈락티코스를 이끌었던 페레스 회장이 재취임한 후 2009/10 시즌 갈락티코스 정책의 부활을 천명했고, 그 첫 타자로 밀란의 카카를 6450만 유로(약 1130억 원)에 데려왔다. 그리고 나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역대 최고 이적료인 9300만 유로로 데려오기에 이른다. 2000년대 후반 최고 선수 논쟁의 중심에 있는 메시, 호날두, 카카 중 두 명을 보유하게 된 것. 마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최고 선수 논쟁의 중심이었던 피구와 지단, 호나우두를 동시에 보유한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림피크 리옹으로부터 프랑스의 떠오르는 신성 공격수 카림 벤제마를 3500만 유로에 영입한다. 그러고 나선 또 리버풀 FC의 사비 알론소를 3000만 유로에 영입했다.

그러나 엄청난 선수들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2009/2010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또 16강 탈락했다. 으악. 그래서 일부 팬들은 갈락티코스를 탈락티코라고 불렀다. 또한 코파 델 레이 32강 1차전에서 단 한 번도 라 리가를 밟아보지 못했던 3부 리그 팀인 알코르콘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흑역사로 남을 무려 0:4 패배를 당하는 대이변을 허용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결국 4골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홈에서 1:0 승리에 그치며 종합 1:4로 충격의 첫 라운드 광탈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즌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 펼쳐진 곳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이었다.[24] 그런데 온 팀은 하필 인테르와 FC 바이에른. 네덜란드 커넥션이 실패하여 내보낸 베슬리 스네이더르와 아르연 로번이 중심이 되어 양 팀을 결승으로 이끌어 왔다.[25] 그렇게 나간 지 1년 만에 다시 마드리드의 홈 구장으로 돌아오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2차 갈락티코스로 되려 바이에른과 인테르만 흥하게 되었다. 역시 믿고 쓰는 레알산

그리고 리가에서도 2위에 그쳐 완전 무관으로 끝나고 말았다. 승점 96점으로 준우승 이에, 빡친 운영진이 페예그리니 감독을 한 시즌 만에 내치고 주제 무리뉴를 데려온다는 소문이 언론 등에서 흘러나왔다.

10 주제 무리뉴(José Mourinho)

2010년 6월 1일, 결국 주제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으로 공식 취임했다. 물론 마드리드가 챔스를 먹으려면 좋은 감독보다는 운영진이 개념을 찾는 게 더 시급하지만...[26] 마드리드 운영진은 무리뉴에게 클럽 이름을 제외하곤 모두 바꿔도 좋다고 허락했고 무리뉴는 갈락티코스의 종식을 선언했다.

FIFA 월드컵 기간 중에 벤피카에서 앙헬 디 마리아(아르헨티나)를 영입했고 측면 공격수 페드로 레온(스페인)과 라 리가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세르히오 카날레스(스페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타로 떠오른 슈투트가르트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사미 케디라(독일)와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에게 지속적으로 구애를 했으나 실패. 인테르의 더글라스 마이콘디에고 밀리토 영입을 꾸준히 타진했으나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급한 대로 허술해진 센터 백 자리를 메우기 위해 첼시에서 히카르두 카르발류(포르투갈)를 2년 계약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카카가 월드컵에서 장기 부상을 당하여 이적 시장 종료 전에 독일의 신성 메수트 외질을 데려왔다.

한편 오랫동안 레알 원 팀 맨이었던 라울 곤살레스구티는 각각 샬케 04, 베식타스 JK로 떠나며 오랫동안 헌신해왔던 팀과 작별을 고했다. 라울의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계승했다. 이에로와는 달리 라울과 구티 등은 선수 본인들의 이적 의지가 있었고, 나름 예우를 해서 보냈다. 아무리 레전드고 클럽의 상징이라도 뛰고 싶은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것보단 차라리 다른 팀에 보내는 게 나으니까. 더구나 이후 라울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초청하여 기념 경기를 치러 주었고, 구티도 유스 팀 코치로 영입했기 때문에 대우에 대한 비판을 들을 일은 없을 듯하다. 물론 네이버에선 안 통한다
그리고 오렌지 커넥션의 두 축이었던 로이스톤 드렌테라파엘 반 더 바르트 역시 각각 에르쿨레스(임대)와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며 팀을 떠나며 오렌지 커넥션의 종말을 고했다. 유리몸이었던 크리스토프 메첼더는 자유 계약으로 샬케 04로 팀을 옮겼다.

10.1 2010/11 시즌

무리뉴 취임 이후 3개월 동안 라리가와 챔스, 코파델레이에 걸쳐 19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개막전 마요르카 원정에서 0-0 무승부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지만, 라리가 12경기에서 33득점 6실점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고, 챔스에서도 AC 밀란, AFC 아약스, AJ 오세르와 같은 조가 되어 4승1무를 거두며 일찌감치 조1위를 확정지었다.

그러나 11월 29일, 불구대천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0:5로 대참패. 외질, 케디라, 알론소의 중원이 붕괴되면서 그야말로 압살당했다. 부주장 세르히오 라모스는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메시에게 백 태클, 푸욜에게 싸대기, 사비에게 밀치기 콤보를 시전하고 3샷 3킬 퇴장당하는 사건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에 남을 악몽의 날이었다. 이날 패배로 선두였던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샤에 승점 2점 차이로 역전당하며 2위로 내려갔다. 그리고 시즌 끝까지 1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날 이후 마드리드는 큰 슬럼프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었으나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호날두의 두 골로 발렌시아에게 승리하며 좋은 분위기를 다시 조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라고사와 세비야에 3-1, 1-0 승리를 거두며 다시 3연승 행진을 기록하며 바르샤와 승점 2점 차이로 2010년을 마감했다.

2010년 12월 17일, 챔피언스 리그 16강 대진에서 지난 시즌 레알을 떨어뜨렸던 리옹과 또 만났다.

윈터브레이크 후 라리가에서 헤타페와 비야레알을 잡으며 5연승을 달리던 중, 2011년 1월 16일 벌어진 19라운드 경기에선 20위 꼴찌인 바르샤에게 홈에서 0:8로 진 UD 알메리아와 1-1로 비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바르셀로나와 승점 차가 4점으로 벌어지면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설욕전을 벌여 이긴다고 해도 리가 선두를 되찾긴 어렵게 되었다.

1월 26일 맨체스터 시티에서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임대 영입했다.

그리고 21라운드. 바르셀로나는 원정 경기에서 에르쿨레스를 3:0으로 격파하고 홈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는 사이, 마드리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17위 오사수나와의 원정 경기에서 충격적이게도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혼돈의 라 리가 후반에 골을 먹자 무리뉴는 아데바요르, 카카, 알론소를 동시에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오사수나의 끈끈한 수비를 뚫어 낼 수 없었던 데다, 2경기 연속 결승골로 잠시 각성했었던 벤제마는 온갖 쩌리질을 거듭하며 패배의 주역이 되었다. 이 결과로 바르셀로나와의 승점 차는 7점.

2월 3일 코파 델 레이 4강 세비야와의 2번째 경기에서는 벤제마가 실망스러운 활약을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을 무력화시켰음에도 외질과 갓데발의 연속 골로 2:0 승리(합계 3:0)를 거뒀다. 결승 상대는 바르셀로나.

2011년 2월 23일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난 리옹과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제 홈에서 이겨서 호구 탈출하능가 그리고 호구에서 탈출했다. 2차전에서 3:0으로 승리를 거두고 6년간의 16강 탈락 징크스를 떨쳐 내었다.

25라운드 경기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전에서 0:0으로 비기면서 한때 5점 차로 좁힌 바르셀로나와 승점 차를 다시 7점 차로 만들었다. 그 뒤로 말라가(7-0승[27]), 라싱(1-3승), 에르쿨레스(2-0승), 아틀레티코(1-2승)에 4연승을 기록하며 세비야에 비긴 바르샤에 5점 차로 따라붙던 승점 차였으나 2011년 4월 3일 30라운드 경기 스포르팅 히혼과의 안방 경기에서 0:1로 패해[28] 8점 차로 벌어졌다. 무리뉴의 연승도 날아가면서 리그 우승이 힘겨워졌다.

사실상 리그 우승이 날아가며 팀 분위기가 침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4월 5일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선 토트넘 핫스퍼를 4:0으로 말 그대로 담궈 버렸다. 피터 크라우치가 경기 초반 연이어 높은 태클을 가하다가 퇴장 당해버린 후 30개가 넘는 슈팅을 기록하며 사실상의 반 코트 게임을 만들었다. 2차전에서도 무난하게 1:0 승리를 거두며 9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이로서 유례가 없던 챔스 2, 리가 1, 코파 1경기의 엘 클라시코 4연전이 성사됐다.

4월 16일 1차전 리가 32라운드 경기에서는 페페를 수미로 기용한 4-3-3을 들고나와 분전했지만 센터 백 라울 알비올이 퇴장당하면서 페널티 골을 먹어 패색이 짙었으나 알베스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 킥으로 만회해 1:1 무승부.

4월 20일 2차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역시 4-3-3을 들고나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카시야스의 인생 선방 퍼레이드와 호날두의 헤더로 1:0 승리를 거두며 3년 동안의 무관에서 벗어났다. 코파 델 레이 우승은 18년 만이다.
그런데 결승전이 끝나고 우승 기념으로 마드리드 시내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부주장인 세르히오 라모스가 버스 위에서 우승 트로피를 치켜들었다가 실수로 떨어뜨렸고, 결국 트로피가 바퀴에 깔려서 박살이 났다. 일단 우승 컵 복원 작업이 끝날 때까지 복제품을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그리고 국왕 폐하의 소환장이 날아오겠지

4월 23일 바르샤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앞두고 메스타야에서 발렌시야 CF를 전반전에만 4골을 퍼부으며 무려 6:3으로 압승을 거두며 기세를 높였다.

그러나 4월 28일에 벌어진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선 안방에서 바르셀로나에게 2:0으로 패했다. 리오넬 메시에게 2골을 얻어 맞으면서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을 설욕당했고 더불어 페페, 무리뉴, 라모스가 퇴장당하거나 경고 누적으로 다음 2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29] 9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한층 힘들어졌다. 결국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결승 진출 좌절. 35라운드까지 리가에서도 바르셀로나에게 승점 8점으로 뒤쳐지면서 사실상 리가 우승도 좌절되었다. 그리고 락라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괜찮아 이제 16강 마드리드 시절은 끝났잖아

결국 36라운드 바르셀로나가 레반테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레알 마드리드는 준우승을 확정지었다. 레알은 마지막 4경기에서 세비야(2-6승), 헤타페(4-0승), 비야레알(1-3승), 알메리아(8-1승)에 4연승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리가에서 40골을 득점하며 텔모 사라와 우고 산체스의 라리가 최다 득점기록(38골)을 갈아치웠다.

10.2 2011/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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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0/11 시즌이 끝나고 레알 마드리드 수뇌부는 변화를 시도했다. 무리뉴 감독과 견제, 균형 관계에 있었던 호르헤 발다노[30] 레알 마드리드 사무총장 겸 스포츠 디렉터를 해임시키고 무리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네딘 지단을 그 자리에 앉히면서 감독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었다.

7월 22일 지네딘 지단이 스포츠 디렉터 자리를 맡고 있는 와중 무리뉴도 감독 겸 스포츠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스카우팅, 유소년 육성, 선수 이적에 대한 권한을 감독에게 대폭 허용한 것은 레알 마드리드 클럽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라파엘 바란의 영입은 지단이 스포츠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된 후 첫 공식 영입이다.

바란 외에 라 파브리카 출신인 호세 카예혼을 바이-백 조항을 이용하여 영입하였으며 독일에서 주가를 올린 누리 사힌과 소속 팀에서 계약이 만료되어 프리로 풀린 하밋 알틴톱을 영입했다. 그리고 벤피카로부터 파비오 코엔트랑을 3,000만 유로로 영입했다. 계약 기간은 6년.

8월 26일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결과...또 올랭피크 리옹을 만났다. 얘네는 전생에 무슨 견우와 직녀였나 마지막 컷을 보자 하지만 종전과 달리 2연승으로 거뜬히 이겼다.

스페인 선수협 파업 파동으로 개막전이 1주일 연기된 가운데 사라고사 원정 6-0승, 헤타페와의 홈개막전 4-2승으로 가볍게 시즌 스타트를 끊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디나모 자그레브 전에서는 1:0으로 승리를 따냈지만 호날두가 부상을 당하는 손실을 입었다. 이어 9월 19일 레반테 원정에서 1.5군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디 마리아의 보복성 태클로 인한 패싸움 상황에서 케디라가 불필요하게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31] 레반테의 끈끈한 수비에 고전하다 결국 콘에게 골을 먹고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곧이어 라싱과의 9월 22일 리가 경기에선 라싱 선수들의 육탄 방어에 밀려 여러모로 앞서고도 0:0으로 비겼다. 그래도 14라운드까지 1위를 지키면서 15연승을 달렸기에 자신만만했으나, 안방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1:3으로 패하면서 최다 연승(바르셀로나가 거둔 16연승) 타이 기록 실패 및 패배로 인하여 1위를 넘겨 줬다가 바르셀로나가 에스파뇰 원정에서 비긴 덕분에 다시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코파 델 레이 8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에게 2:1로 져 버렸고 결국 역대 바르셀로나 전 전적이 86승 45무 86패로 같아졌다. 결국 안방에서는 2:2로 비겼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코파 델 레이 2회 연속 우승 도전은 좌절됐다. 역대 바르셀로나전 86승 46무 86패.

챔피언스 리그는 6전 전승 19득점 2실점을 거두며 16강에 진출, 2000년대 와서 천적이던 올랭피크 리옹을 상대로 4:0, 2:0 완승을 거두며 이젠 어림도 없는 상대임을 입증했다(리옹이 자국에서도 부진한 상태이긴 하지만). 16강 조 추첨에선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와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1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호날두가 선제골을 넣으며 후반 추가 시간까지 리드를 하다가 극적인 동점 골 실점으로 무승부를 거뒀지만, 홈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두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상대는 아포엘이다. 다른 팀들에 비해 쉬운 상대라는 평을 받았고 1차전 원정 경기에서 거뜬하게 3:0으로 이겼다. 안방에서도 5:2로 이기면서 2시즌 연속 4강에 진출하며 FC 바이에른과 준결승전을 치르게 되었고 1차전 원정 경기에서 1:2로 패배했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평가.

리가 29차전까지 승점 75점으로 바르셀로나에게 6점 앞서 있었다. 26차전까지만 해도 10점 차였으나 2경기 연속으로 비기는 바람에 좁혀졌다. 벌써 라 리가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가 됐다고 팬들은 기뻐하는 상황이었으나 31차전 발렌시아 전 경기도 비기면서 승점 차가 4점으로 좁혀져 기뻐하기엔 이른 상태가 되어 버렸다. 32차전 다음 경기는 연고지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원정 경기이며 34차전 엘 클라시코 경기인 바르셀로나 원정이 남아있기에 바르셀로나에게 역전 당할 수도 있기 때문.

다행히 아틀레티코 원정에서 4:1로 가볍게 뭉개 버렸고 강등권에 있는 스포르팅 히혼도 3:1로 이겨 4점 차를 유지하면서 고비를 일단 넘기긴 했다. 엘 클라시코 다음에 세비야, 그라나다, 마요르카, 아틀레틱 클럽 등 중하위권 팀들 위주로 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 그래도 강등권 탈출이 걸린 그라나다 및 중상위권인 아틀레틱 같은 경우 우습게 볼 일이 아니기에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었다.

2012년 4월 22일 리가 우승을 사실상 판가름하는 엘 클라시코가 열렸다. 무리뉴는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알론소, 케디라를 미드로 세우는 전술을 내놓았고, 과르디올라는 산체스 대신 테요를 선발 출장 시키며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초반, 레알 마드리드는 계속해서 세트 피스 기회를 얻다가 결국 코너킥을 케디라가 골로 연결 시키며 1:0으로 앞서간다. 그 후 마드리드는 바르사의 공격을 시종일관 효율적으로 차단한다, 마드리드 수비진은 약이라도 빨았는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경로를 예측하며 환상적인 수비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후반전 과르디올라는 사비를 빼고 산체스를 넣으면서 변화를 꾀한다. 곧바로 이 카드가 먹히면서 산체스가 골을 성공시켜 1:1이 되었다. 하지만 마드리드도 곧바로 역습 상황에서 외질과 호날두의 환상적인 합작으로 골을 성공시켜 다시 2:1로 앞서간다. 그 이후에 바르셀로나는 계속해서 마드리드의 골문을 위협하기 위해 공격 루트를 바꾸어 봤지만 마드리드 선수들은 정말 이 경기만큼은 '레알'이었다. 마드리드 선수들은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모두 완벽하게 막아내면서 결국 2:1로 승리.

이 승리로 마드리드가 얻은 것은 많다.

1. 동률이었던 전적을 다시 우세로 전환.
2. 캄프 누 54경기 연속 무패 저지.
3. 호날두, 시즌 42골로 메시를 제치고 리가 1위, 지난 시즌 기록을 갈아 치움.
4. 승점 7점 차로 우승의 9.9부 능선을 넘다.
5. 사상 최초로 100점 만점에 100점

물론 모처럼 힘든 경기에서 휴식 없이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뛰었기 때문에 FC 바이에른과의 2차전이 홈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2차전에서 접전 끝에 연장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승부차기에서 호날두와 카카의 실축에[32] 라모스가 홈런을 작렬하면서 패배. 라모스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년 연속으로 결승의 문턱에서 진출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수 년 동안 카카의 부활을 믿고 지지하던 마지막 팬들마저 이 경기에서 대부분 돌아섰다. 카카의 부진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교체로 투입되어 한 골이면 그대로 결승 진출인 상황, 그것도 연장 승부에서 훌륭한 찬스를 우물쭈물하다 날려 버렸고, 승부차기 키커로 선택되었으나 실축하여 무리뉴의 마지막 믿음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거기다 경기 종료 후 라커룸에서 카시야스와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올라와 팬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33]

5월 2일 라 리가 20라운드[34] 아틀레틱전에서 이겨 승점 94점으로 32번째 라 리가 우승을 확정하였다. 2위인 바르셀로나와 승점 차이는 7점.

5월 12일 라 리가 38라운드 마요르카 전에서 이겨 역대 라 리가 한 시즌 최다 승점, 100점으로 2011/12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거기에 한 시즌 최다 득점(121)은 덤.

10.3 2012/13 시즌

시즌 시작을 알리는 수페르코파에선 캄프 누 원정에서 라이벌 바르셀로나에게 2:3으로 역전패했지만 발데스의 예능 플레이 덕분에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 희망을 걸어 볼 만하게 되었다. 결국 홈 2차전에서 이과인과 호날두의 골로 2:1로 승리하면서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수페르코파를 우승하였다.

그런데 리가에선 초반 2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 중이다. 1차전 발렌시아와의 안방 경기에서 1:1로 비겼고 2차전인 헤타페 원정에선 이과인이 먼저 골을 기록했으나 나중에 2골을 허용하면서 1:2로 역전패 당했다. 아직 초반이라고는 하지만 리가 15위를 기록 중인데 그나마 다음 경기는 강등권으로 유력시되는 그라나다와의 안방 경기이다. 결국 3:0으로 거뜬하게 이기긴 했지만 4차전 세비야 원정에선 0-1로 패하면서 리가 10위로 주저앉아버렸다.

2012/13 시즌 들어서 호날두의 의미심장한 '슬프다' 발언에다가, 세비야 원정 패배 이후 무리뉴 감독도 '팀이 부진한 건 감독인 내 책임이지만, 나의 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팀 내부 운영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후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집념의 역전승을 보여줬다. 맥아리없이 대충 하다가 대충 지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무리뉴도 3번째 골이 터질 때 골 넣은 선수마냥 격한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7차전 엘 클라시코 원정에선 호날두가 2골을 터뜨리며 2:2로 비겼다. 8차전까지 순위는 4승 2무 2패로 4위. 이후로 연승을 달리며 3위까지 추격했지만 13차전 레알 베티스 원정에서 0-1로 패하면서 3패를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13차전을 1위 바르셀로나가 이기면 10점 차 이상으로 승점 차가 벌어진다. 아직 1/3도 안 된 초반부에 3패는 제법 큰 타격이다.

그리고 16차전 안방 경기에서 에스파뇰에게 후반 89분에 동점 골을 허용하며 2:2로 비겼는데 바르셀로나와 13점 차로 제법 크게 벌어졌다. 게다가 12월 22일에 벌어진 17차전에선 말라가에게 3-2로 패하면서 바르셀로나와는 16점 차로 더 크게 벌어졌으며 아틀레티코와는 7점 차. 4위인 말라가에겐 2점 차로 추격당하면서 우승은 커녕 4강 유지에 급급한 처지에 처했다.

챔피언스 리그 3차전에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원정에서 1:2로 졌다. 덕분에 도르트문트와 1위 쟁탈전을 벌어야 할 듯하다. 4차전 도르트문트와의 홈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하지만 맨 시티에게 1승 1무, 아약스에게 1승을 거두면서 나머지 6차전 마지막 조 예선 아약스와의 안방 경기와 상관없이 조 2위로 16강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16강에서 추첨으로 맨 유와의 경기가 결정되었다. 호날두 더비 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의 승점 차이도 많이 벌어졌는데 챔스도 이러니 정말 이번 시즌은 가시밭길이다(...).

2013년 새해와 같이 시작된 18차전에선 레알 소시에다드와 각축전 끝에 4-3으로 겨우 이겼다. 리가 10위 정도로 중위권이지만 강등과 승격을 연이어 벌이던 소시에다드에게 안방에서 힘겹게 이겼다고 우려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19차전, 19위로 강등권인 오사수나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면서 더더욱 험난한 리가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게다가 바르셀로나가 19차전에서 이기면서 무패 행진 승점이 18점으로 크게 벌어졌다. 무리뉴 감독도 리가 우승은 힘들어졌다고 인정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전념하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다.

휴식기를 지나고 후반기에 들어서자 더욱 심각해졌다. 페페가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고 카시야스마저도 손 골절로 장기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 게다가 라모스는 심판에게 욕설을 해 라 리가 4경기 + 코파 델 레이 1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과 FC 바르셀로나와의 라 리가 엘 클라시코, 코파 델 레이 8강전을 치르게 되었으니(...) 레알 마드리드 팬 멘탈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죽음의 일정 다섯 경기 무패를 기록했다! 3승 2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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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후반기 일정을 위해 세비야로부터 골키퍼 디에고 로페스를 영입하였다. 등 번호는 25번. 하지만 마드리드에서 카시야스는 단순한 주전 골키퍼 이상의 역할을 해주고 있던 터라, 마드리드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22차전 강등권이던 18위 그라나다 원정에서 어이없게도 호날두의 자책 골로 0:1로 패하면서 시즌 5패를 기록했다.

홈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스 16강 1차전에서 1-1로 비겼다. 전반전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이긴 했으나 여전히 세트 피스 수비에서 문제를 드러내면서 결국 한 골을 허용했다. 얼마 안 되어 호날두의 동점 골이 터지긴 했으나 후반전에서는 원정 골을 넣은 맨 유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에 딱히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으며 그나마 만든 찬스들도 데 헤아의 선방에 번번이 막혔다. 맨 유도 반 페르시와 긱스의 아쉬운 찬스가 있었지만서도...어쨌든 지는 것보다야 낫지만 홈에서 원정 골을 허용한 채 비겼기 때문에 거의 최악의 결과를 얻은 셈. 가뜩이나 빡센 향후 일정을 보면 이번 1차전에서는 최소 승리를 거둬야 했었는데 더 답답해졌다.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궁금한 상황이었지만 3월 6일에 벌어진 원정 2차전에선 2:1로 이기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2월 27일.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 2차전에서 2골을 기록한 호날두의 활약을 앞세워 캄프 누에서 3-1로 깔끔하게 관광 보내 버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바르셀로나는 점유율에선 앞섰지만 수비진을 끌어올려 미드필드에서부터 강력한 압박으로 맞선 마드리드의 방어를 뚫지 못해 패스가 자주 끊겼고 유효 슛에서도 뒤졌다. 메시는 밀란과의 챔스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꽁꽁 묶였으며 페페의 공백은 신예 바란이 훌륭하게 메웠다.

그리고 3월 3일, 호날두와 케디라를 벤치에 앉히고 1.5군으로 나선 엘 클라시코에서 2-1로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를 격파하며 험난할 거라던 일정을 무서운 상승세로 돌파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점유율에선 앞섰지만 강력한 전방 압박과 순간적인 역습에 당하며 엘 클라시코 2연패를 기록했다. 이 경기의 백미를 꼽아보자면 벤치에서 나와 직접 작전을 지시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한 무리뉴.

3월 6일에 열린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초반 맨 유의 촘촘한 중원 압박에 고전하며 라모스의 본 헤드 플레이 자책 골로 16강 마드리드 시절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니가 아르벨로아에게 플라잉 니킥 + 확인 사살 +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하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퇴장을 당했고 교체 출전한 모드리치의 슈퍼 골과 호날두의 결승골로 8강행을 결정지었다. 최악의 5연전이라며 험난한 일정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으나 오히려 팀 조직력을 다잡는 기회로 삼아 3승 2무로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5연전 성적을 정리하자면,

  • 1월 30일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Vs 바르셀로나 1:1 무
  • 2월 14일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1 무
  • 2월 27일 코파 델 레이 4강 2차전 Vs 바르셀로나 1:3 승(코파 델 레이 결승 진출)
  • 3월 3일 프리메라 리가 26라운드 Vs 바르셀로나 2:1 승
  • 3월 6일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2 승(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

한 번의 실수가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토너먼트에서 원정 2승을 거뒀다는 것에 의미가 지대하다.

챔스 8강 추첨에서 갈라타사라이로 상대가 결정되었다. 비록 터키 원정이 부담스럽지만 이번 시즌 겪어 왔던 죽음의 대진들과 챔스 8강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는 수월한 대진을 받았다는 평. 주제 무리뉴와 베슬리 스네이더르, 디디에 드록바의 재회, 또한 챔스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부락 일마즈의 득점 경쟁도 관심거리.
홈에서 열린 챔스 8강 1차전에서 갈라타사라이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었다. 호날두는 이 경기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갈라타사라이 수비진을 누비며 1골을 넣었고, 금상첨화로 최근 부진을 보였던 카림 벤제마와 챔스에서 골과 인연이 별로 없었던 곤살로 이과인도 골을 추가했다. 수비 역시 별로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라파엘 바란은 초반 박스 안쪽 단 한 번의 슈팅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디디에 드록바를 봉쇄하는 활약을 보였다. 사비 알론소와 세르히오 라모스가 경고 누적으로 2차전을 결장이라고 쓰고 카드 세탁이라 읽는다하게 되지만 갈라타사라이 역시 수비수 온케우와 주포를 담당하고 있는 부락 일마즈가 2차전에 나올 수 없다. 사실상 4강에 거의 다가간 분위기.
그리고 4월 10일 원정에서 열린 갈라타사라이와의 챔스 8강 2차전에서 2:3으로 패배했으나 종합 스코어 5:3으로 4강에 진출했다. 전반전 이른 시간에 호날두가 선취골을 넣고 5골(...)만 허용하지 않으면 4강에 올라가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대로 전반전을 마치며 딱히 큰 일 없이 4강에 올라가는 듯했으나, 후반전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50~70분대 사이에 에부에, 스네이더르, 드록바에게 골을 허용하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다행히도 이후에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추가 시간에 호날두가 골을 넣으며 경기를 끝마쳤으나, 에시앙이 교체 아웃되고 나서 흔들리던 수비진과 잘 되질 않았던 공격 전개로 인해 힘든 경기를 펼쳤다. 또한 아르벨로아의 쓸데없는 퇴장도 아쉬울 따름.
그런 와중에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적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말라가를 상대로 후반전 추가 시간에 2골을 몰아 넣으며 역전 드라마를 완성하여 레알 마드리드는 울상을 지었다. 말라가가 구단주, 선수 가리지 않고 분노를 감추지 못할 만큼 오심으로 점철된 경기였다는 점도 컸다.

챔피언스 리그 4강 추첨 결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리매치가 성사되었다. 유독 독일 원정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마드리드인데 그나마 1차전 원정이라는 점, 그리고 조별 리그에서 도르트문트에게 1무 1패로 밀리긴 했으나 부상 등으로 사실상 수비진이 초토화되었던 그때완 다르게 이번에는 아르벨로아를 제외한 수비진 정상 가동이 가능하다는 점은 플러스 요소가 될 듯하다. 물론 도르트문트가 절대 만만한 팀은 아니지만 충분히 결승에 갈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어쨌든 도르트문트는 챔스 예선에서 마드리드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린 팀이라 경기 결과는 알 수 없다는 팬들도 많았는데...
그리고 벌어진 1차전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1:4 대패를 당하면서 바이에른에게 0:4로 털린 라이벌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분데스리가 팀에게 능욕당하고 말았다. 라이벌 클럽끼리 똑같이 4골을 얻어 맞았다는 것도 주목할 점 중 하나로 2012/13 시즌 챔스에서의 분데스리가의 강세를 증명해 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쳐발렸고 레반도프스키 한 선수에게만 4골을 허용하는 등 바로 전날 라이벌의 대패를 비웃은 꼴이 무색해졌다. 바르4 vs 알 마드리드 양 팀팬들은 서로 '그렇게 설레발 떨더니 정작 지네도 떨어졌넼ㅋㅋ', '그래도 니네보단 우리가 낫거든?' 하며 우물 안 엘 클라시코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 봐야 양 팀 다 탈탈 털렸단 사실은 변화가 없기에 사실 도긴개긴이다... 그러나 어떤 레알 마드리드 팬, 바르셀로나 팬들은 이 경기 후 서로서로 사이좋게 탈락 위기에 놓인 아픔을 위로하기도 했다. 같은 라 리가에 속한 팀으로서의 동병상련일지도... 우리는 사이 좋은 라 리가 라이벌 그나마 바르셀로나보다 다행스러운 건 원정에서 한 골은 넣었기 때문에 2차전 홈에서 3:0으로 이기면 진출할 수 있...으려나? 팬들은 설레발을 자제하자며 마음을 비우고 지켜 보자는 쪽인 듯하지만 과연...
레알 마드리드가 역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으로 1975/76 시즌 유러피언 컵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지금은 2부 리그 신세인 1975년 잉글랜드 챔피언 더비 카운티를 상대로 1차전 원정 경기에서 1대 4로 대패했다가 안방 2차전에서 5대 1 영화 같은 대승을 거두고 종합 6대 5로 4강에 올랐던 일이 거론되기도. 문제는 이 일이 20년도 더 된 일이라는 점.
5월 1일(한국 시각)에 벌어진 안방 경기에서 총력을 다했지만 수비적으로 나선 도르트문트를 뚫지 못했고, 10분 정도 남겨 둔 후반 83분부터 벤제마와 라모스가 골을 넣었으나 끝내 마지막 1골을 넣지 못하고 그대로 2:0으로 승리, 종합 3:4로 득실에서 밀려 이번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외질과 호날두가 제 역할을 못해준 것이 컸고 특히 외질은 자국 리가를 흠모하는 독일 국적 터키인의 패기 골문 앞에서 호날두에게 패스하지 않고 일명 '나라 사랑 슛'을 날렸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친 실책 때문에 팬들에게 까였다. 이제 남은 건 코파 델 레이 우승 뿐이다...

그러나 그 코파 델 레이마저 준우승, 그것도 홈인 베르나베우에서 14년 동안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던 상대인 AT 마드리드에게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배하며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무리뉴 감독이 심판에게 대들다 퇴장당하고, 에이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마저 비신사적 반칙으로 퇴장 당한 것이 컸다. 결국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을 최악의 시즌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시즌이라고 말했다. 팀에게나 감독에게나 최악의 시즌이었던 셈...그리고 무리뉴 감독은 구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면서 3년간의 무리뉴 체제는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2013/14 시즌부터 카를로 안첼로티를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 FC가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기 전까지 일단 보류한 탓에 자꾸 안첼로티 감독 영입이 늦춰지고 있다. 결국 파리 생제르맹이 로랑 블랑을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6월 말에서야 안첼로티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11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11.1 2013/14 시즌

대부분의 팬들이 지난 시즌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분노의 영입이 이루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으며, 프리시즌부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우선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다니엘 카르바할이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망해가는 말라가의 이스코였는데, 맨체스터 시티나 맨 유 등과의 경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하며 영입에 성공했다. 이적료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약 3000만 유로.
다음 타자는 레알 소시에다드의 돌풍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제2의 사비 알론소로 평가받고 있는 선수인데 이 선수를 무려 3219만 유로를 주고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팬들의 반응은 대부분 좋은 선수이긴 한데 이스코 영입까지 합치면 거의 7000만 유로를 두 선수 영입에 투자하는 것은 과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외에 카르발류가 AS 모나코로 이적했으며, 코엔트랑과 이과인이 각각 모나코와 아스날 이적설이 떠돌고 있어 팀의 전체적인 개편이 이루어질 거라는 전망이 크다. 여기에 지난 시즌에 이어 가레스 베일을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으나 토트넘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NFS(Not for Sale)라 쉽지는 않을 듯.
화제를 모은 카카의 잔류 여부는 결국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직접 카카의 잔류를 요청하면서 일단락되고 있다.

8월 19일 레알 베티스와의 개막전에서 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다가 2-1로 겨우 역전승을 거두었다. 국가 대표 차출의 여파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팀 내 주역들의 경기력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특히 호날두가 이날 부진하여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개막전에 이케르 카시야스가 아닌 디에고 로페스가 선발 출장하여 골문을 지키면서 경기 종료 후 팬 사이트에서 또 다시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35] 무리뉴가 선수와의 불화 때문에 기용하지 않을 성격도 아니니 카시야스가 정말로 로페스에게 밀린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중. 특히나 현지 팬들의 극렬한 야유에도 불구하고 안첼로티마저 카시야스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로페스를 기용할 이유가 없다. 하여간 무리뉴나 로페스만 그동안 애꿎게 욕먹은 셈.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순식간에 가레스 베일에 대한 이적설이 터져 나왔다. 이적 시장에 폭풍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듯이 무려 9300만 파운드 + 코엔트랑을 토트넘 핫스퍼에게 제의했다는 루머가 폭풍 같이 뜨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영국의 공신력 있는 언론[36]에서 보도하면서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다. 벵거의 말대로 정말로 이적 시장이 미친 듯 그런데 정작 본인이 그 덕을 톡톡히 보는 중 이미 이야라멘디, 이스코, 카세미루, 카르바할 등의 영입으로 1000억 이상 퍼부은 레알 마드리드이기에 '더 이상은 쓰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축구 팬들의 뒤통수를 때린 이적설이다.[37]
그리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홈페이지 샵에 가레스 베일의 11번 유니폼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기사대로라면 이적료는 1억 파운드 + 코엔트랑, 한화로 약 2000억 가량.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 이스코, 이야라멘디, 카르바할, 가레스 베일, 카세미루 등을 영입하면서 쓴 돈은 1억 8천만 파운드고, 곤살로 이과인(4000만 유로 추정), 라울 알비올(1200만 유로 추정), 호세 카예혼(1000만 유로 추정)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제하더라도 1억 2천만 파운드 가량이다! 참고로 이 돈에 2000만 파운드를 보태면 풀럼 FC를 살 수 있다![38]
결국 이적 시장의 마지막 날인 9월 2일(한국 시간 기준), 드디어 가레스 베일 이적의 오피셜 소식이 떴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9100만 유로의 이적료[39]에 연봉 700만 유로, 6년 계약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 카카의 밀란 이적 오피셜이 떴다. 대다수의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연봉 도둑이 나갔다며 후련해하고 있다. 이대로 이적 시장을 마무리한다면 돈을 무진장 썼다는 걸 제외하면 전력 보강이 쏠쏠한 이적 시장이었겠지만...

9월 3일 새벽에 메수트 외질의 이적 오피셜이 떴다. 아스날 FC로 50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하며 레알 마드리드 역대 방출 이적료와 아스날의 역대 영입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마드리드 팬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3시즌간 90여 개의 어시스트를 남긴 외질의 이적에 자체 키배를 벌이고 있다. 이래저래 다사다난한 여름 이적 시장이었다.
외질의 방출은 이스코의 영입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안첼로티는 밀란 시절처럼 공미 자리에 창조성이 뛰어나서 다른 윙 포워드나 공격수들의 공격력을 최고로 살려줄 수 있는 선수보다는, 스스로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득점을 노릴 수 있는 타입의 공미를 기용해 왔다. 물론, 밀란 시절의 카카는 지공 상황에서뿐 아니라 역습 상황에서도 모든 수비수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그냥 사기 캐릭터였다.
어쨌든, 안첼로티는 역습 상황에서 템포를 죽이지 않고 좋은 패스를 줄 수 있는 타입인 외질보다는, 양 윙 호날두, 베일과 함께 득점을 노리고, 플레이 메이킹은 역습에 특화되기보다는 뛰어난 볼 키핑으로 뺏기지 않고 상대방 진영으로 볼을 배급할 수 있는 모드리치에 의존하는 전술을 사용할 것으로 보이고, 역습 상황에서는 외질의 패스보다는 베일과 호날두의 개인기와 스피드에 의존한다는 방침...인 것 같은데, 애초에 굳이 그렇게 바뀌어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마드리드는 무리뉴 때 이미 유럽 최고의 역습 능력을 지닌 팀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9월 29일 올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그것도 안방에서 연고지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0-1로 패했다. 이 패배로 14년동안 이어진 라 리가에서의 마드리드 더비 무패 기록도 깨졌으며 올 5월에 벌어진 코파 델 레이에서 아틀레티코에게 패배하며 무관을 겪었던 것에 대한 설욕도 실패했다.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가 7전 전승으로 1, 2위를 기록한 가운데 3위를 기록 중이다.

챔스에서는 5승 1무로 가볍게 16강을 확정짓고 16강에서 샬케 04와 만나게 되었다. 밸런스 붕괴

한편 라 리가에서는 선두권인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와의 승점 차가 5점으로 벌어졌으나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의 대결이 무승부로 끝나고 20라운드에서 두 팀이 각각 레반테, 세비야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계속 승리를 거둬 20라운드 기준으로 승점 차는 1점으로 줄어들었다.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 홈 경기에서 아틀레티코를 3:0으로 완파해 베르나베우에서의 2연패 수모를 갚았다. 4강 2차전에서 디에고 코스타의 경고 누적 결장은 덤. 반대편 4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소시에다드를 상대로 홈에서 2:0 승리를 거뒀기에 별다른 반전이 없으면 엘 클라시코 결승이 유력하다. 그리고 2차전 원정에서 전반전 호날두의 페널티킥 2골이 사실상 경기를 종결시키며 2:0 승리로 결승에 올라갔다. 4월 16일에 치러지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 상대는 바르셀로나로, 결승 장소는 3년 전 두 팀이 붙었던 10/11 코파 델 레이 결승 장소이자 발렌시아의 홈 구장인 메스타야로 결정되었다.

챔스 16강 1차전 샬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2000년 레버쿠젠 원정에서의 3:2 승리 이후 무려 14년 만에 독일 원정에서 승리했다. 그것도 6:1 대승으로... 특히 2골을 기록한 가레스 베일은 안첼로티가 "레알 마드리드 입단 후 최고의 경기"라 평가할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라 리가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주춤하는 사이에 1위로 올라섰다. 호날두의 퇴장에 이은 3경기 결장에도 불구하고 헤세가 미친 듯한 활약으로 공백을 메워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 16강 경기 이후에 펼쳐진 마드리드 더비 원정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동점까지 만들어가며 승점 차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승점이 같으면 상대 전적을 따지는 라 리가에서 아틀레티코한테 상대 전적이 열세인 것은 좋지 않지만... 한편, 라이벌인 바르셀로나는 피파 바이러스의 영향 및 최근 안 좋은 경기력이 여전함을 보여주며 강등권에 있는 바야돌리드에게 0:1 패배를 기록하였고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1위는 굳건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라 리가 28라운드 말라가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안방에서 샬케를 3:1로 격파했지만 중요한 공격 자원들인 벤제마와 헤세가 부상을 당해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특히 최근 기세가 좋은 벤제마의 경우엔 아직 자세한 부상 치료 기간이 나오진 않았지만 하필이면 엘 클라시코 더비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엘클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헤세 역시 이번 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전치 6개월의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어 많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으로 벤제마는 엘 클라시코 출전이 가능했지만...

29차전 엘 클라시코. 안방에서 역전과 재역전 끝에 3-4로 졌는데 메시에게 해트트릭을 헌납했고 라모스가 퇴장당하는 격전을 치렀다. 이 패배로 2위로 내려갔고 바르셀로나에게 1점 차로 추격당하고 있다. 이 여파 때문인지 30차전 세비야 원정에서도 1-2로 패하며 2연패를 당했다. 호날두가 선취 골을 넣었으나 카를로스 바카에게 2골을 헌납하며 역전패. 이 패배로 3위로 추락해버렸다! 이제 남은 8경기에서 1위 아틀레티코와 2위 바르셀로나가 져야 하는 경우의 수에 매달리게 되었다. 31차전 라요 바예카노전에서 5-0으로 대승하며 2연패 분위기를 날렸지만 아틀레티코와 바르셀로나도 나란히 31차전을 이기는 통에 여전히 3위이다.

챔피언스 리그 8강 추첨 결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리매치를 하게 되었다. 도르트문트가 귄도간, 슈멜처, 수보티치, 블리시치코프스키 등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하거나 불가능한 선수들이 많은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레반도프스키가 경고 누적으로 1차전에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또한 2차전이 마드리드가 극악의 승률을 보이고 있는 독일 원정이라는 걸 감안하면, 여러모로 홈 경기인 1차전에서 승부를 보는 게 관건일 듯하다.

그리고 1차전 홈 경기에서 베일, 이스코, 호날두가 사이좋게 득점하며 3:0으로 이겼다. 이날 공격진의 활약도 좋았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특히 페페는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무실점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런데 2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부상을 입은 호날두를 빼고 경기에 임하긴 했지만 초반 디 마리아의 PK 실축과 1차전과는 다른 정줄놓 수비로 인해 전반에만 마르코 로이스에게 2골을 허용하면서 힘든 경기 끝에 0:2로 패배했다. 다행히 합산 스코어 3-2로 4강 진출에는 문제가 없었다.

추첨 결과 4강에서 유럽 대항전 악연의 상대 FC 바이에른을 만나게 되었다. 이로써 마드리드는 16강, 8강, 4강 모두 독일 팀을 만나게 되었다. 독일 팀 도장 깨기 샬케(보통), 도르트문트(어려움), 바이에른(매우 어려움) 가뜩이나 호날두가 부상으로 코파 결승은 물론 챔스 4강 1차전도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판에 1차전이 홈, 2차전이 독일 원정이다(...).

그런데 1차전 안방 경기에서 카림 벤제마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다만 1무 9패를 기록하고 있는 바이에른 원정은 어떨지 모르기에 아직 결승 진출을 장담할 수는 없다. 무실점 승리에 큰 의미를 둬야 할 듯하나, 골 결정력이 조금은 아쉬운 경기였다.

현지 시각 4월 12일에 치러진 라 리가 33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가 원정에서 그라나다에게 0-1로 잡히는 사이 알메리아를 안방에서 4-0으로 잡아내며 3위에서 2위로 순위를 올렸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헤타페 원정과 엘체전 안방 경기를 2-0으로 잡는 바람에 아직 승점 3점 차로 뒤쳐지는 2위다. 승자승에서 1무 1패로 아틀레티코에게 밀리기에 우승하려면 최소한 남은 5경기 전승에 4경기를 남긴 아틀레티코가 2경기 이상은 미끄러져 주길 바라야 한다. 하지만 아틀레티코가 연승을 거두면서 3경기를 남겨두고 있고 중하위권인 말라가와 레반테와의 홈 경기만 이겨도 마지막 남은 바르셀로나 원정과 상관없이 우승이 확정되기에 레알로선 말라가와 레반테가 아틀레티코를 이겨주는 기적(?)을 빌 수밖에 없다.

그런데 36차전에서 레반테가 아틀레티코를 2-0으로 이겨줬으나 레알 마드리드도 35차전 홈 경기로 열린 발렌시아전에서 고전하다가 가까스로 막판 호날두의 골로 겨우 2-2로 비기면서 승점을 1점 좁혔을 뿐이다. 물론 남은 3경기를 모두 이기면 92점이 되기에 희망은 있으나, 남은 2경기에서 아틀레티코가 1경기를 더 져야 한다(1승 1무만 거둬도 우승 확정).

그리고 현지 시각 4월 16일, 메스타야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 작년 무관의 악몽도 있고, 이번 경기마저 진다면 시즌 엘 클라시코를 3전 전패로 끝낸다는 굴욕적인 기록을 작성하게 되기에, 항상 중요했지만 이번에는 그 중요성이 어마어마한 엘 클라시코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 바르셀로나는 헤라르드 피케의 결장으로 양 팀 각각 공격과 수비에 결함이 생긴 가운데 전반 11분 앙헬 디 마리아의 골로 레알 마드리드가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전반전을 1-0으로 마치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으나 후반 초반 벤제마와 베일의 찬스에서의 삽질로 경기가 이상해지더니 결국 마르크 바르트라에게 코너킥 헤더 동점 골을 먹으면서 경기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후 바르셀로나의 페이스로 흘러가나 했으나 후반 85분, 이날 찬스에서 아쉬운 모습들을 보였던 가레스 베일이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로 왼쪽 사이드 라인을 전력 질주, 아주 멋지게 바르트라를 제치고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영웅이 되었다. 후반 90분에 사비의 킬 패스에 의해 연장전으로 끌려갈 위기가 있었지만 네이마르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가버리면서 마지막 위기를 넘겼고, 결국 2010-11 시즌과 똑같이 메스타야에서 바르셀로나를 잡으며 코파 델 레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상대는 2년 전 준결승에서 마드리드의 발목을 잡았고 지난 시즌 트레블을 이룩한 현 시대 가장 강력한 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FC 바이에른. 양 팀은 베날두와 로베리의 대결이라고 경기 전부터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기대를 깨고 먼저 득점을 한 사람은...

세르히오 라모스였다!

라모스가, 그것도 두 번이나 헤더로 골을 성공시켰고,아, 이건 쐐기에요! 뒤이어 호날두가 전반 34분에 그의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 15호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종료 직전 후반 90분 프리킥으로 16호 골까지 넣었다. 그러나 사비 알론소가 3-0으로 리드하던 상황에서 쓸데없는 태클을 걸어 옐로 카드를 받으면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 옥의티. 경기 후 안첼로티가 3-0으로 이기던 상황에서 왜 알론소를 빼지 않았냐는 질문에 '3-0으로 이기고 있어도 경기가 끝난게 아니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답하였다. 리아소르의 기적이스탄불의 기적의 피해자였으니...

라모스 개인으로서는 2년 전 '라쏘공' 사건의 아픈 기억을 떨쳐낼 수 있던 경기였고,이제는 라꽂공 호날두 개인으로는 역대 챔피언스 리그 한 시즌 최다 골을 성공시킨 경기였다. 게다가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면서 이 기록은 스스로 경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러 가지로 이번 승리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12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의 감격이 가장 크겠지만 1무 9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던 바이에른 원정에서, 그것도 4-0 대승으로 첫 승을 거뒀다는 건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제 리스본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더비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혹은 전임 감독인 주제 무리뉴가 지휘하고 있는 첼시를 기다리게 되었고, 결국 상대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결정되면서 자그마치 마드리드 더비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런데 리그 36차전에서 아틀레티코가 레반테 원정에서 0-2로 패하면서 잠깐 리그 우승 희망이 보이는가 했다. 하지만 36차전 경기, 강등권 탈출에 사력을 다하는 16위 바야돌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막판 동점 골을 허용하며 레알이 1-1로 비긴 탓에 리그 우승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아틀레티코가 1승만 거둬도 91점이 되는 반면 레알은 2경기 다 이겨도 90점에 불과한 상황. 사실상 남은 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뿐이다. 어쩌면 35차전 발렌시아에 이어 바야돌리드전까지 2경기 연속으로 비긴 것은, 이제 리그는 포기하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사력을 다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37차전 셀타 비고 원정에서 0-2로 지면서 정말 리그는 확실히 포기한 모양. 리그 최종전인 에스파뇰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종 순위는 승자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밀려 3위. 이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틀레티코와 더블을 놓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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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전반전 카시야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디에고 고딘의 헤더에 실점하면서 좋지 않은 분위기로 전반전을 마쳤다. 이후 후반까지 아틀레티코의 수비 벽을 뚫을 듯하면서도 좀처럼 뚫지 못했으나 기어이 93분 코너킥에서 세르히오 라모스의 극적인 헤더로 동점을 만들었다. 오오 라모스느님 연장전에 들어가서는 양 팀의 선수들 모두 확연히 지친 모습을 보였지만 웃은 쪽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연장 후반 110분에 이번 경기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앙헬 디 마리아가 돌파 이후 슛을 시도했고, 티보 쿠르투아의 손을 맞고 굴절된 것을 반대쪽에서 돌파해 오던 가레스 베일이 헤더로 연결하면서 마침내 라 데시마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18분 마르셀루의 중거리 슛이 작렬하며 쐐기를 박았고, 120분 호날두의 페널티 킥으로 확인 사살까지 성공하여 연장 4-1 승리를 완성했다. 이로써 12년 동안 갈망했던 챔피언스 리그 10번째 우승, 라 데시마를 달성했다.

11.2 2014/15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14-15시즌 참고.

전반기 22연승으로 폭주했으나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지며 결국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시즌이 종료된 후 안첼로티는 경질되었다. 한시즌전 더블에 라데시마를 이룬 감독을 짜르는 레알의 위엄

그리고 새로 부임한 감독은 리버풀 FC, 인터 밀란, 첼시 FC, SSC 나폴리 등의 클럽을 맡았던 라파엘 베니테스. 앞서 맡은 팀인 나폴리에서 결과 좋지 않았고 매니징 스타일상 레알이랑 상극일 가능성이 높기에 탐탁치 않아하는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많다.

12 라파엘 베니테스(Rafael Benítez)

12.1 2015/16 시즌

새롭게 선임된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지난 시즌의 실패의 원인을 적절한 로테이션의 부재로 여기는 팬들의 여론을 의식해서 인지, '호날두도 쉬게 해줄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철저한 로테이션을 고수할 것을 천명하였다.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나초 페르난데스, 이스코 등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저번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니 크로스, 하메스 로드리게스 등을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영입하던 것과 달리, 프리시즌 기간 유독 영입설이 거의 없고 조용하다. 레알의 영입설이 잠잠한 이유로는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재계약 건과 같은 '내부 단속'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레알은 마르셀루다니 카르바할과 2020년까지 재계약에 합의하였고, 이제 라모스와의 재계약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라모스와의 재계약이 확정되면 본격적인 선수 영입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저번 시즌부터 지적되어 온 이케르 카시야스의 심각한 폼 저하와 케일러 나바스의 실전 감각 저하 등으로 끊임없이 제기 되어온 골키퍼 영입에 대한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태. 그리고 레이더망에 다비드 데 헤아가 포착되었다. 데 헤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거듭된 재계약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대한 의사를 확실히 하는 상태이나, 계약기간이 1년 남은 만큼 최대한 싸게 영입하려는 레알과 지안루이지 부폰이 가지고 있는 세계 골키퍼 최대 이적료를 갱신하는 이적료를 원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갈등에, 세르히오 라모스의 맨유 이적설까지 얽히며 라모스를 판매하지 않으면 데 헤아를 넘기지 않겠다.라는 맨유 측 입장이 누설되며 데 헤아 영입 건이 꼬이는 모양새이다. 그래도 워낙 선수 본인의 이적 의사가 강하기 때문에 가격에 상관없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성사될 딜로 여겨지고 있다. 데 헤아는 이미 프리시즌 훈련장에서 반 할 감독과 면담 후 레알로 가겠다는 의사를 전한 상태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맨유가 데 헤아를 한 시즌 더 쓴 후 자유 계약으로 내보내는 수를 쓸 수 있다고 추측하는 중이다.

세르히오 라모스 이적설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0년 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수비의 핵심이자 부주장, 라 데시마의 영웅으로 쭉 헌신해온 라모스의 주급은 이적한 지 이제 두 시즌째가 된 가레스 베일이나 이제 이적 첫 시즌을 끝마친 하메스 로드리게스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 동안 라모스는 여러 차례 페레즈 회장에게 호날두 다음 수준의 주급을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묵살당하였고, 마침내 라모스는 10m 규모의 연봉으로 재계약하지 않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그러나 프리 시즌 훈련에 합류한 라모스의 모습과, 레알의 매우 높은 이적료 요구에 라모스 이적설은 점차 사그라드는 모양새이며, 9.5m 선에서 연봉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라모스 영입이 점점 어려워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니콜라스 오타멘디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은 다비드 데 헤아의 영입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1군과 백업의 차이가 현격한 중앙 미드필더진을 보강하기 위해 PSG의 마르코 베라티를 영입하자는 여론이 강하나, PSG는 베라티를 팀의 현재이자 미래로 보고 있어 NFS를 때리는 상황으로 영입이 쉬워보이지 않는다.

포르투로의 이적설이 강하게 대두되던 팀의 영원한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결국 7월 11일 포르투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심각한 폼 저하와 라커룸 정치 다툼 등으로 많은 팬들에게 얼른 이적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유소년 팀에서 뛴 기간을 포함하면 25년간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뛰어온 팀의 주장이자 레전드 No. 1이 정말로 이적하는 상황을 맞은 팬들은 그야말로 충격. 안티팬과 팬 모두가 하나 되어 그 이적을 슬퍼하고 새로운 팀에서의 선전을 축복하고 있다.

이로써 다비드 데 헤아 등 월드 클래스 골키퍼의 영입이 더 시급해진 상황이나, 데 헤아는 맨유의 프리 시즌 명단에도 포함되는 등 점차 이번 이적 시장에서의 이적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듯 하고, 7월 13일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에 위고 요리스의 손등 부상 소식 등 월드 클래스 골키퍼의 영입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새이다. 이제는 케일러 나바스를 믿는 수밖에.

7월 17일, RCD 에스파뇰의 주전 골리인 키코 카시야 영입을 발표했다. 데 헤아의 영입이 사실상 1년 뒤로 미뤄지자 임시 조치로 데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케일러 나바스를 No.1 골리로 쓰고, 키코 카시야를 벤치 멤버로 활용하며 다음 시즌 종료 후 데 헤아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겠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세르히오 라모스의 운명도 마침내 재계약에 합의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BBC, Sky Sports 등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연봉 900만 유로에 두둑한 보너스를 주는 조항을 추가하는 정도에 재계약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중국에서의 프리 시즌 종료 후 시즌 개막 전에는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은 라모스가 재계약 협상을 유리하고 끌고가는 것에 자신들을 하나의 협상 카드로써 이용했다는 생각에 크게 분노하였다는 루머가 있다.

8월 17일, 마침내 구단은 세르히오 라모스와 재계약에 합의했음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0년까지이며, 구체적인 연봉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라모스는 재계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이적요청을 한 적이 없으며, 마드리드에서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구단을 떠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언급하였다. 아울러 새롭게 주장으로 임명된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8월 18일, 인테르의 마테오 코바치치 영입을 발표했다. 중원의 제 3옵션으로 쓰는 동시에, 루카 모드리치의 후계자로 쓰기 위해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적료는 2800만 유로로 추정되며, 6년 계약이다.[40]

8월 21일, 페페와 2017년까지 재계약에 합의했음을 발표했다.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의 든든한 센터백 듀오가 이번 시즌에도 유지됨과 함께 페페는 라파엘 바란과 안정적인 세대 교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고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력을 시즌 내내 보이고, 특히 강팀과의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당연히 레알 팬들의 불만은 가득했고, 베니테스는 경질되었다. 경기 결과와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15-16시즌 참고.

13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13.1 2015/16 시즌

리그 18라운드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자 수뇌부가 긴급 회의를 소집, 결국 베니테스를 경질하고 비장의 카드라 볼 수 있었던 지네딘 지단 감독 부임을 시즌 중 꺼내들게 된다. 그리고 부임 145일이 지난 2016년 5월 29일(한국 시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라 운데시마(열 하고도 한 번째 우승)를 달성하게 된다. 경기 결과와 자세한 내용은 레알 마드리드 CF/15-16시즌UEFA 챔피언스 리그/2015-16 시즌 참고.

13.2 2016/17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16-17시즌 문서 참고.
  1. 당시엔 라 리가가 출범하기 전이라 지역 대회만 존재했다. 그리고 각 지역의 챔피언들이 진출 자격을 얻고 참가하여 해당 시즌 스페인의 진정한 최고를 가리는 대회가 코파 델 레이였다. 물론 라 리가가 출범하고부터는 그런 거 없고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2. 다른 클럽들이 전부 합쳐 10여 회 우승할 동안 혼자 20번 넘게 우승할 정도로 일방적인 독주였다.
  3. 이 세 지역을 대표하는 세 클럽의 3강 체제는 라 리가 초창기까지도 이어진다. 아틀레틱은 바스크 순혈주의를 고수하여 강호들에게 완전히 밀려났지만, 여전히 이 세 클럽만이 라 리가 출범 이후 강등 경험이 없으며 또한 코파 델 레이 우승 횟수 탑 3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4. 이러한 아이콘의 계보는 1960년대의 아만시오 아마로, 1970~1980년대의 산티야나, 1980~1990년대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1990~2000년대의 라울 곤살레스로 이어진다. 라울 곤살레스 이후의 2010년대에는 이케르 카시야스세르히오 라모스가 세대를 이어가고 있으며, 비록 스패니쉬는 아니지만 포르투갈 출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전설로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있다.
  5. 이 팀을 갈락티코스의 계보에 포함시켜 원조로 칭하기도 한다.
  6. 역대 최고의 클래식 윙어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는 선수 중 하나로 당시 백 넘버는 11번. 특히 '레프트 윙어'로 한정하면 축구사 최고의 윙어라는 평이 지배적일 정도로 전설적인 선수. 저승사자들 중 가장 오래,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던 선수라 우승을 지겹도록 경험했다. 파올로 말디니 정도가 그에 근접했지만 아직까지 클럽 커리어로 헨토를 능가하는 선수는 전무하다.
  7. 정말 별명이 그냥 '벽'이었다.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셈.
  8. 1958/1959, 1959/1960 시즌 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 1960/1961 유러피언 컵 우승을 막아낸 것이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만 아니었다면 저 시기에 리가 우승만 10번에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였겠으나 라이벌리는 예나 지금이나...
  9. 미셸과 코바치 감독까지 요한 크루이프 중심의 팀 컬러 하에 전성기를 유지하였으나 코바치 사임 이후 새롭게 감독이 된 게오르게 크노벨 감독이 신임 주장 투표를 거쳐 크루이프의 주장직을 빼앗자 이에 앙심(...)을 품은 크루이프가 빅 엿을 시전하고 바르셀로나로 이적. 그 이후로 급망 테크를 타며 몰락. 이후 미셸과 크루이프의 철학은 바르셀로나에서 이어지게 된다.
  10. 당시 바이에른 왕조의 주역들은 70년대의 서독 대표팀(70 월드컵 3위, 72 유로 우승, 74 월드컵 우승, 76 유로 준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활약 못지않게 국가 대표팀에서도 두루 두각을 나타냈던 왕조.
  11. 이 기간 동안 리버풀은 유러피언 컵을 무려 9년이나 개근했는데 당시의 유러피언 컵은 현재의 챔피언스 리그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오로지 유럽 각 국가별 자국 리그의 우승팀 혹은 전년도 유러피언 컵 챔피언만이 출전할 수 있는 구조였다. 즉 9연속 유러피언 컵에 출전했다는 것은 저 기간 내내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리그나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다는 이야기. 다만 헤이젤 참사로 이 전성기는 비극적인 막을 고한다.
  12. 아리고 사키 감독 사퇴 이후 카펠로 체제부터는 안정 노선으로 전향했다. 오렌지 삼총사로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레이카르트, 훌리트, 반 바스텐 이 셋 모두가 뭉친 시기는 길지 않다. 셋 중 가장 꾸준했던 레이카르트는 아약스로 넘어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친정 팀에게 비수를 꽂기도 했다.
  13. 'Yé-yé'라는 별명은 당시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비틀즈의 히트곡 'She Loves You'의 'Yeah~ Yeah~ Yeah~'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당시의 레알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팀이란 의미가 담겨 있는 셈.
  14. Yé-yé 마드리드의 멤버 마누엘 산치스의 아들이다. '마놀로'는 이름이 아닌 애칭이고 본명은 아버지와 같은 마누엘 산치스이다. 팀에서 담당했던 역할은 스위퍼이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 클럽에 입단하여 임대 한 번 가지 않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뛰다 은퇴했다. 밀란의 말디니 부자와 비슷한 케이스. 우연의 일치인지 양쪽 다 수비수 집안에 시기도 아버지 1960년대, 아들 1980~2000년대로 동일했다.
  15. 90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했던 그 미첼맞다. 레알마드리드에서 통산 559경기 출장.
  16. 이 둘은 이후 클럽의 단장을 맡기도 한다.
  17. 또 하나의 M자 돌림 클럽인 밀란은 카펠로 사임 이후 한동안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고 안첼로티가 부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럽 대항전에서 다시금 두각을 나타내게 됨.
  18. 이 당시 피구를 영입하면서, 피구에게 줄 주급이 모자라다고 쫓아내듯 밀란으로 이적시킨 선수가 '황태자'란 별명으로 불리던 페르난도 레돈도. 그는 1990년대 중후반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진의 핵심으로 1994/1995, 1996/1997 라 리가 우승과 1997/1998, 1999/2000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공헌한 바 있다. 밀란 이적 후에는 끊임없는 부상으로 별 활약 없이 은퇴했는데, 부상 중 지급받았던 주급을 반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 이때 피구의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깼으며, 이 기록은 마드리드가 제2의 갈락티코스를 천명하며 2009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사 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는다.
  20. 더군다나 마드리드는 이전부터 수비진이 빈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마누엘 산치스페르난도 이에로가 1990년대 레알 마드리드의 센터 백을 맡았지만 백업으로 있던 이반 캄포와 아이토르 카랑카는 안정성이 부족했고, 이후 이반 엘게라가 노쇠해 가는 이에로의 파트너가 된다.
  21. 마드리드에서는 매우 안습한 모습을 보이며 피구와 함께 인테르로 갔으나 1년 전에 먼저 넘어간 캄비아소와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인테르의 핵심 선수가 된다. 감사합니다 믿고 쓰는 레알산
  22. 디에고 로페스는 2007년 마드리드를 떠난 후 비야레알, 세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6년 만인 2013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그 동안 부동의 주전이었던 카시야스를 밀어내는 데 성공한다.
  23. 아이러니하게도 2009년 여름 이적 시장 때 이적한 이 두 선수는 해당 시즌 마드리드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각 팀의 주전으로서 만나게 된다.
  24. 2008/09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함께 라 리가, 코파 델 레이 우승도 성공하면서 트레블을 이룩한 FC 바르셀로나를 두고 인터뷰하던 스페인 국왕이 다음 시즌은 결승전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다는 말로 은근히 바르셀로나를 도발했다. 즉 이번에는 자신이 서포팅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안방에서 우승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결과는... 바르셀로나가 마드리드에서 빅 이어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
  25. 로번은 스네이더르 등이 쓸려 나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나간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갔으니.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26. 레알 마드리드는 시민 구단이라 말 그대로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감독보다 회장이 먼저 잘려 버린다. 구단주 소유 체제인 잉글랜드 구단과 큰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다.
  27. 공교롭게도 상대 감독이 전임 레알 감독이던 마누엘 페예그리니였다.
  28. 무리뉴는 2002년 2월 23일 FC 포르투 감독 시절 베이라 마르에 홈에서 진 후 9년 만의 홈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29. 경기 후 페페의 다이렉트 퇴장을 두고 오심 논란이 크게 일었다.
  30. 선수 시절 마라도나-발다노-부루차가 삼각 편대 중 한 명으로 아르헨티나를 월드컵에서 우승시킨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무리뉴가 첼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사이가 안 좋았다.
  31. 디 마리아가 얼굴을 가격당하고 쓰러진 상황에서(다만 접촉은 있었지만 손으로 살짝 닿은 정도라 그렇게 나뒹굴 정도는 아니었다.) 곁에 있는 상대 선수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런데 케디라가 디 마리아가 쓰러지자 진짜 크게 다친 줄 알고 화나서 밀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32. 사실 실축까지는 아니다. 연속으로 막은 노이어 골키퍼가 야신 모드였을 뿐이다.
  33. 카시야스는 '괜찮다'는 격려와 응원의 말과 함께 올린 것이었지만 다른 선수도 아니고 탈락의 일등 공신 카카의 너무나 해맑은 표정에 마드리드 팬들은 황당...
  34. 당시 리가는 36라운드까지 진행된 상태였지만, 이전에 20라운드가 스페인 선수 협회의 파업으로 연기됐던 바 있어 뒤늦게 진행되었다.
  35. 카시야스가 컨페더레이션스 컵 차출 때문에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것을 고려해 보면 당연한 처사...라고 모두 생각하지만 본래 카시야스가 지난 시즌을 제외하고는 거의 언터처블이었으며, 무리뉴의 사퇴 이후로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겼던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36. BBC, 스카이 스포츠 등.
  37. 물론 레알 마드리드가 한 시즌에 정말로 미친 듯한 영입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9/10 시즌에 카카와 호날두를 모두 영입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근데 베일은 그 호날두보다 이적료가 더 높다(...).
  38. 풀럼은 약 1억 4천만 파운드에 매각됐다.
  39. 호날두의 월드 레코드인 9500만 유로는 결국 넘지 못했다.
  40. 일부 언론에서는 이적료 3200만 유로로 추정.